말 할 때와 들을 때

 

1986. 9. 17. 새벽(수)

 

본문:야고보서 3장 1절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기도합시다.

우리의 일생은 준비하며 연습하고 또 시험치뤄 올라가고 혹은 떨어지고, 저희들의 읽고 듣고 보는 한 말씀 한 말씀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반석이 되고 또 모래가 되어 생명과 평강과 승리도 되고 사망과 실패와 비참도 되는 것을 압니다. 한 현실 한 현실은 이 두 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이루지 않고 지나가는 현실은 하나도 없음을 압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공연히 악령 악성 악습 이놈을 죽이지 못하여 이놈에게 미혹당함으로 분주하고 헛된 일로 분망하여 이렇게 중요한 사실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구하지 아니할 것 생각지 아니할 것 돈이나 세상 어떤 죄악된 이런 것만 생각하여 공연히 우리 마음은 분주하고 복잡하고 더럽고 추하고 나약하여서 스스로 자멸하는 일을 얼마든지 하고 있는 저희들입니다.

이 자멸하는 이 어리석고 어두운 가련에서 구원할 자가 누굽니까? 다만 주님의 피공로와 성령님의 감화와 진리 외에는 우리를 깨끗게 할 자가 아무도 없고 강하게 온전케 생명으로 충만케 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영감의 이 말씀을 읽는 축복을 주시고 듣는 축복을 주시고, 깨달아 기억하고 간직하여 때를 따라 생각나는 축복을 주시고, 이대로 실천하여 실상을 이루어 날마다 반석 위에 집짓는 자와 같이 세상 어떤 그 변동이 와도 죽음이 와도 하나님의 심판이 와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영원히 영원히 서서 이 건설이 영원하고 다 생명되는 이 복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항상 어린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온전한 주의 궤휼 없는 이 말씀을 사모하여 여기에서 점점 자라가고 고쳐가고 온전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새벽에도 나오지 못한 이 형제들 악령 악성 악습 그놈에게, 그놈의 사람들 되어 있는, 그것들에게 붙들려서 자유하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누가 여기서 해방하겠습니까? 주님만이 해방하실 수가 있습니다.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우리는 남에게 어떤 말을 하든지 가르치든지 지도하든지 또 권유를 하든지 반드시 거게 대해서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저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지 해 가지고 일시 그 사람을 설복을 시키고 자기 의사를 따르게 하고 또 자기 지도를 따라서 자기 사람 되도록 하려는 그것이 성공인 줄 알고 그런 버릇을 자꾸 하는 그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자꾸 자살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왜? 자기가 다른 사람을 지도하든지 또 가르치든지 무슨 말을 했든지 그거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낱낱이 하나님 앞에 다 심판이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다른 사람을, 말을 잘못해 가지고 그 사람을 잘못 지도해서 삐뚤어지게 만들었다든지 그 사람을 못쓰게 만들었으면 자기가 일시에 무슨 물질 같은 걸 유익을 봤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이용해 가지고 무슨 세상에 없어질 그런 무슨 수입을 봤다 할지라도 그것으로써 자기 영원을 하나님 앞에서 자꾸 심판받아 깎아 버리니까 이 세상에서 일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있고 복있는 사람도 있지마는 심판을 전부 받아 가지고 하니까 그거 다 댓가를 다 이렇게 계산하고 보니까 그 사람보다 더 비참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래서, “선생이 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스승되지 말아라” 네가 벌로 뭐이든지 말해 가지고 말한 그대로 심판받을 그것이 우리 앞에 전지 전능자가, 영원한 것을 가지고 우리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그분이 보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이거는 생각지 안하고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지도합니다.

내가 언제 어떤 권찰하고 둘이 동행을 했는데 마침 자기 구역 식구를 하나 만나게 됐습니다. 만나니까 대뜸 그 구역 식구에게 이런 말 저런 말 하는데 그 사람은 그말을 하니까 그저 자기 구역장이니까 듣고는 있습니다마는 그 사람이 그 말을 들을 때에 하나도 먹혀 들어가지 안하고 ‘소용 없는 말 한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알기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지도하는 건 뭐이든지 이치에 해당도 안된 이런 말을 하나마 그저 듣고 있는 것이지 이대로 실행하면 안 된다’ 하는 그런 것을 자꾸 그 사람이 각오할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그만 잘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뉘든지 만나면 자꾸 입술만 내 벌리면 되는 줄 알고 그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은 생각지 안하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신앙 지도 아닌 사람들도, 어떤 사람 보면 만나면 남 말할 여가 없습니다.

어짜든지 제가 말을 해 가지고, 그라면 벌써 거석한 사람은 말하다가, 내 말을 듣기를 조심하고 말하기를 조심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상대해서 말할 가치도 있고 필요도 있고 효력도 있겠지마는 벌써 제 말만 할라고, 말하면 그만 다른 사람 말할 여가 없이 자꾸 제 말만 내돌려대면 그 사람은 삼가 멀리 합니다.

‘아예 이 사람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이 사람이 이거 회개하기 전에는 가까이 해서 안 될 사람이다.’ 그 사람을 어떤 사람은 평생 안 만나 버립니다, 그만. 평생 말 한 해요. 무슨 말이나 그 사람이 말하면 그만 ‘그런 사람이다’ 하고서 그만 이래 상대해 주지를 안한다 그거요.

말해 가지고 자기가 이 세상 것의 무슨 유익이나 자기 주장이나, 정권자들, 이 정치 운동하면서 선거 운동이나 하면서 마구 씨부려대는 그 사람들, 그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그 사람들이 참 자기 화를 자꾸 자기에게 들이 퍼붓고 있습니다.

퍼붓고 있소.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사석에서 말하는 것이든지 공석에서 말을 하든지 어짜든지 다른 사람을 상대해서 한 말은 꼭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하나도 털끝만한 것도 빠짐없이 심판받는다는 요것을 꼭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더불어 상대해서 말할 때에 그 말한 것이 어떤 말 했든지 그 말한 것이 이 세상에서도 그 사람에게 잘못을 가르쳤든지 옳은 걸 가르쳤든지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의 행동도 이렇고 저렇고 변화가 됩니다, 그 말에 따라서. 말 한 마디에 따라서 그 사람의 행동이 변화가 됩니다. 나쁘게 변화되는 사람도 있고 좋게 변화되는 사람도 변화가 되는데 그것보다도 우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한 것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다는 요것을 꼭 기억해야 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야고보가 말합니다. 동생 야고보가 말합니다.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다른 사람한테 네가 그저 가르칠라고 지도할라고 남에게 자꾸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그런 것을 네가 삼가서 말해라. 네 말 한 마디 하는 그것이 다 하나님 앞에서 빠짐없이 다 심판을 받기 때문에 이것을 생각하고 사람을 상대해서 말을 해라.

그렇기 때문에 네가 많이, 자꾸 말을 많이 할라고 하지 말고 이 말 하는 것이 하나님이 들으실 때에 보실 때에 이 말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나 내게 대해서 칭찬이 있겠나 벌이 있겠나 이것을 생각하고 말해야 되지 이거 생각지 안하고 말하는 사람은 참 그 사람은 전부 자기 혀를 가지고 자기를 다 망쳐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 만나면 그저 아무나따나 자꾸 말합니다. 이래서 제일 위험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위험한 사람이냐 하면은 예수 믿는 이거 권찰들, 또 장로들, 또 반사들, 또 목사들, 이 사람들이 제일 위험한 자리에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을 상대해서 말해야 되기 때문에 자꾸 이래 아무나따나 말합니다.

아무나따나 말해 가지고 그저 말하는 그것이 지도자인 줄 알고, 말할 때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게 지도가 되는 것인 줄 알고 그저 사람만 만나면 그만 말을 할라고 하고 있고, 또 둘째로서는 이 국민학교 선생이 제일 불리한 자리 있습니다.

이것도 어린 아이들에게 말하면 그저 무조건 그 아이들이 ‘예예’ 이래 하니까 그게 또 버릇이 돼서 사람 만나면 무조건 자꾸 말할라 합니다.

이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고 말하는 것인데,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말을 웅변으로써 말을 잘하는 웅변가의 말보다도 오히려 말 못하고 말 안 하는 그 벙어리가 낫다’ 이랍니다. 그러면 말을 웅변으로 잘하는 사람의 말을 만일 은이라고 비한다면은 말을 못하는 벙어리는 금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말은 전부 말 안 하는 게 낫지 말해 사람에게 유익을 못 준다 하는 그런 것을 다 안 믿는 그 통계 맞춘 철학자들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자로서는 어떤 사람이 제일 복있느냐? 말 제일 많이 한 사람이 복이 있고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불행스럽습니다. 왜? 사람을, 말할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자꾸 사람을 살리는 말, 구원하는 말, 필요 있는 말, 그런 말은 자꾸 많이 할수록이 그 상이 되어지고 또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뭐 책망하는 말이나, 또 무슨 하나의 유모아 있는 그런 말이나, 또 한번 웃는 말이나, 이 보통 말이나, 말할 때에 언제든지 ‘내가 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다.’ 요것을 꼭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헛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우리가 두려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제일 우리가 가까이 해야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이 자기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다 심판받을 것을 알고 ‘그분이 기뻐하나 그분이 노여워하나, 그분에게 뒤에 큰 저주를 받겠나 상을 받겠나?’ 요걸 생각하고서 말하는 그 사람이라면 대단히 존귀한 사람입니다. 왜? 그 사람 대해서 자꾸 말을 들을수록이 자기에게 복이 되고 그 사람 말을 그 두렵고 아주 권위 있게 신중하게 들을수록이 자기에게 복이 있고 이라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알아서 접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어짜든지 이 말할 때에 이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말을 하나 이 사람이 자기를 보고 말하나 요 둘로 구별하는 그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위주로 해서, 자기 위해서 자기 좋도록 그저 그 사람을 자기 사람을 만들라고 자기를 위해서, 자꾸 자기 위해서 자기 위주로 이래 말하는 게 있고 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해서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하는 말 하고 있고 말은 둘뿐입니다.

하나님 위하는 말 있고 자기 위하는 말 있고 그러면 말은 두 가지 종류뿐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구별해 가지고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이면 대단히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척 만나 가지고 말을 할 때에 ‘이 사람은’ 사람이 말할 때 몇 가지 위하는 말이 있다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몇 가지 위하는 말이 있다 했습니까? 요 둘뿐입니다. 그걸 확정지우십시오. 말은 하나님을 위하든지 자기를 위하든지 요거 둘뿐입니다.

그러면 민족을 위한다 민족을 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누구를 위하는 사람입니까? 국가를 위하는 사람은 누구를 위하는 사람입니까? 공산주의면 민주주의면 그 사상을 위하는 사람은 누구를 위하는 사람입니까? 그거 다 자기 위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위하는 사람.

말은 둘뿐입니다. 자기를 위한 말이냐 이 사람이 하나님을 위한 말이냐? 그 사람이 그 사람에게 ‘새벽기도 나오십시오’ 하는 그말은 하나님 위하는 말입니까 누구 위하는 말입니까? 하나님 위하는 말이라.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하면서 전도지 주면은 그거는 누구 위한 말이요? 하나님 위한 말이라.

왜? 그 사람 구원하는데 왜 하나님 위한 말이라? 그거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이 대속의 공로를 베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 위한 일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 둘을 알고 사람을 접할 때 ‘이 사람은 이 세상 과학을 위해서 지금 말하고 있다. 이 사람은 또 이 현재 정치를 위해서 말하고 있다. 이 사람은 세상 도덕을 위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뭘 위하는 사람입니까? 자기 위하는 사람입니다. 요걸 똑똑히 구별해요.

자기 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말을 내가 참고로만 삼지 그 사람 말에 절대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참고로만 삼습니다. 내가 그거 참고로만 삼소. 거기 복종하는 게 아니라 참고로만 삼고, 암만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 과학 선생이 이것을 말하더란대도 이거는 이렇다 과학은 과학으로 자기가 배울 것뿐이지 거게 그대로 복종해서 할 거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가 복종해야 되지 복종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사람을 접촉할 때에도 ‘이 사람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위주로 해 가지고 말하고 있나 피조물을 중심으로 위주로 하고서 말하고 있나?’ 피조물 중심 위주로 말하고 있으면은 내가 참고로 삼아 가지고 내가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활용은 할지라도 거게 복종은 해서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 위주로 하는 말이라면 어린 아이가 말해도 그말에 복종을 해야 되지 복종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을 들을 때에 ‘이 말에는 달든지 쓰든지 내가 복종해야 될 말이다. 이 말은 내가 참고로 삼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이용을 할지라도 여게 대해 내가 복종할 말은 아니다.’ 이 말을 들을 때에 ‘이 사람이 하나님 중심으로 위주로 하는 말이냐 피조물 중심 위주로 하는 말이냐?’ 요 두 말로 구별을 하고 그라면 두 말로 구별하고 난 다음에는 ‘내가 이 말에 대해서 복종해야 될 말이냐 이 말에 대해서 참고로만 삼고 이용해야 될 말이냐?’ 요것을 둘로 구별하고, 들을 때에 그렇게 구별하고, 또 말할 때 이 두 가지로 말하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대단히 복있는 사람입니다. 아주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기억해서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다른 사람에게 아무나따나 자꾸 벌로 말만 해 재끼면 되는 줄 알지 말고 그 너 말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살리나 죽이나? 네게 그 말하는 것이 네게 화가 오고 저주가 오느냐 네게 축복이 오겠느냐? 이 말 함으로 하나님이 네편이 되느냐 이 말 함으로 하나님이 너와 원수가 되어지나? 이 중대한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 해야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사람의 말을 들을 때에 몇 가지로 구별해야 됩니까? 두 가지.

두 가지 한 번뿐입니까? 두 가지로 구별하고, 또? 내가 그 행동은? 행동은 두 가지로 해야 됩니다. 두 가지로 구별해서 듣고 두 가지로 행동해.

이 말은 내가 참고로 삼을 것이지, 암만 막 하라고 명령해도 참고로 삼아서 내가 이것을 들어 가지고 참고를 삼아서 이용을 할 거는 하고 이용 안 할 거는 안 하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어린 아이가 말해도 ‘야, 이거는 하나님 중심 위주의 말이다.’ 하면은 내가 어린 아이가 말할지라도 거기 대해서 복종을 하기로 각오를 해야 됩니까 어째야 됩니까? 둘로 구별하고 둘로 작정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말을 듣든지 들을 때에 둘로 구별하고 둘로 작정해야 됩니다. 둘로 구별하고 둘로 작정하는 거.

둘로 구별하는 것은 뭘로 구별하느냐? ‘이 사람이 하나님 중심 위주의 말이냐 피조물 중심 위주의 말이냐?’ 둘로 요 구별해서 그것부터 해야 됩니다.

그러고 작정 둘 있는 거는 뭐이냐? 하나는 내가 아무리 어린 아이가 말하고 원수가 말할지라도 이 말은 절대 내가 복종해야 된다. 복종 안 하면 안 된다. 또 이 말은 아무리 왕이 말한다 할지라도 이 말은 내가 참고만 삼아야, 참고 삼고 난 다음에 내가 내 안에 있는 모든 신앙으로 비판해 가지고 ‘이거는 내가 사용해야 되겠다. 그리 안 하면 이거는 아주 금해야 되겠다.’ 이 일단 받아 가지고 내가 참고로만 삼아 가지고 내가 그것을 이용하고 활용해야 되지 거게는 복종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말을 들을 때에 둘로 구별하고 둘로 작정할 것. 또 내가 말을 할 때에도 같습니다. 내가 말을 할 때에도 둘로 구별해 가지고 말하고, 이 둘로서 작정되는 그것인 것을 알고, 내가 이 말 하면은 그 사람이, 내가 나쁜 말 하면은 그 사람이 그대로 나쁜 행동할 것 나쁜 작정이 될 것이고 내가 좋은 말 하면 그 사람이 좋은 작정, 되든지 안 되든지 내가 말한 데는 반드시 그 실행이라는 결과가 거게 맺어지고 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말을 해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말을 듣든지 말을 하든지 할 때에 요 지혜 두 가지를 가지고 둘로 구별하고 둘로 작정할 것. 듣는 데는 둘로 구별하고 둘로 작정하고 내가 말을 할 때에는 둘로 구별해서 말을 해. 하나님 중심이냐 위주냐? 그라고 난 다음에 나는 하나님 앞에 그거 심판을 반드시 받는다는 거. 왜? 내가 말하면 그게 벌써 행동이 됐습니다. 내가 말을 했으면은 그 듣는 사람은 어떤 행동이라도 행동이 됐습니다.

반대하는 행동이 됐다든지 그리 아니면 거기 그만치 물이 들어서 감염됐다든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심판거리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은 종일 이제 이걸 한번 실행을 해 봐요. 실행을 해 보면 압니다. 그 실행을 하면은 자꾸 일이 돼요. ‘내가 이 사람의 말은 내가 평생 안 들어야 되겠다. 이 사람의 말은 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요거 가지고 구별하면은 우리에 분주 복잡한 것이 아주 간단하게 돼 버립니다.

많은 사람을 말하지마는 이 사람의 말은 아예, 그 말을 하는 데 하루 열 명을 만나 가지고 말하면은 그 열 명 말하는 데에 ‘이거는 안 들을 말이라’ 하는 그것으로서 사람들의 말을 듣는 데에서 요 두 가지로만 구별하게 되면은 그 수많은 복잡이 없어집니다. 하루 사람들 시간, 십분으로, 열 가지로 나누면 십분지 팔은 사람들 말 듣는 것이 그게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 듣는 그것이 다 그대로 행동하는데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걸 바로 들으면 십분지 팔을 없애 버리니까 이 십분지 이만 하니까 항상 놀고 수월하게 일해도 다 될 수가 있어. 이 분주하고 복잡한 것이 자꾸 듣는 데에서 복잡해지고 망하고 또 이걸 구별하면 벌써 듣는 데서 복이 있지 자기 말하는 데에서 그게 복이 있지. 말하는데 왜? 잘못 말해 놓으면 심판도 있지마는 그 말한 그것으로서 뒤에 다 자기를 망칩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점점 새벽기도 오는 사람이 줄어지는데 자꾸 전도해 가지고 새벽기도 오는 사람들 많이 만들어요. 우리 새벽기도 하는 사람들이, 뭐 어제 주일에는 보고하는 것 보니까 지난 주일에는 오백이 그때는 좀 넘어. 삼천오백 뭐 사십 명인가 육십 명 됐는데 우리 교회 생긴 지 제일 많이 올라간 셈입니다.

우리 교회서 금년에 장년반은 오천이 돼야 됩니다. 어짜든지 기도하고 자꾸 이렇게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전도하도록 이렇게 그 일을 힘을 쓰고,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또 주일학교는 만오천 돼야 돼요. 이거 잊어버린 학생들 양떼만 와도 만오천이 넘어요. 중간반은 사천이 돼야 되고. 이거 우리는 자꾸 계획과 그 목표를 세우고 하는 것을 성경이 허락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걸 세우고 자꾸 기도하고 이래서 장년반이 오천이 나온다면 오천이 다 새벽기도 다 나와야 돼.

새벽기도 숫자나 주일오전 숫자가 같애야 교회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지금 없어. 옛날 교회는 다 초대교회는 다 그랬었어요.

또 유치반 중간반을 위해서도 기도해서, 유치반 중간반들도 자기네들이 뭐 여기 나오지 못하면 자기 집에서라도 꼭 첫날 첫시간 하나님 앞에 이렇게 관계를 맺고 나서 이래 해야지 하나님과 관계 맺지 안하고 하는 것은 그건 이 아주 밀림과 같은 위험한 세상에 맹수가 으글으글한데 그 아무 보호자 없이 저 혼자 돌아다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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