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능력


선지자선교회 1980년 4월 4월 금새

 

본문: 누가복음 5장 4절 - 10절 상반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소로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자업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택함을 받지도 아니했고 하나님이 부르시지도 아니하셨는데 악령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미혹시키기 위해서 잘못 믿는 행위를 해도 아무 징계도  없고 또 세상적으로 잘 되는 하나님의 간섭이, 징계의 간섭이 없는 그런 것을  교회 안에 들어와서 보이므로 '저래 믿어도 하나님의 징계도 없고 세상일은 잘  된다' 이렇게 생각 되도록 미혹시키기 위해서 악령이 보내서 불택자가 예수 믿는  척 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렇게 믿는 자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상관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에 별 징계가 없이 꼭  교회만 나와 예수 믿는다는 말만 하지 안 믿는 사람과 같은 사람 같은 행위를  해도 그대로 세상살이가 유지가 되고 또 잘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아, 저래 믿어도 되는구나' 해 가지고 그  본을 떠서 자기 구원을 크게 손해 보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귀가  그런 사람을 보낸 동기도 목적도 그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간섭도 없지 또 그 속에 하나님에게 대한 것은 전적  부인하면서 마귀가 보내서 온 사람들이니까 믿으면서도 예수교를 조롱하고  업신여기고 제 수단 방법대로 이렇게 하니까 오히려 진실 되게 믿는 사람은 속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이렇게 취급해서 업신여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안 하니까 얼마동안 기독교가 평안하게 환란 없이  지나가게 되면 이런 사람들이 차차 세력을 잡아서 불택자들이 세력을 잡아  순전히 불신자와 같은 그런 방식으로 교회를 꾸려 나가도록 이렇게 하고 또 그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양심이나 진리나 거리낌이 없이 마구  달리니까 그 달리는 속도가 빠르지 수단 방법 가리지 안 하니까 힘이 있지.

 또 세상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적으로는 능합니다. 유식도 하고  언변도 좋고 세상 권리도 있고 택한자는 그것을 보고서 부러워하고 미혹을  받아서 따라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속에 참 진실 되이 믿는 사람은 볼 때에  '저거는 분명히 저게 택자라면 하나님이 아직까지 착수하지 안한 자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불택자다 신자의 행위나 사람은 아니다'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은  자기로서는 주목을 하고 따라가지 안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 이렇게는 못한다 그거요.

 또 하면 그것이 개에게 진주 던지면 진주를 발로 밟고 물려고 달려드는 것처럼  그럴 터이니까 그렇게 하지를 안 합니다. 참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대 희생가요.

다만 그것은 신자 행위가 아니니까 '이런 이런 행위는 하지 말아라' 이렇게만  말을 하지 그 사람을 꼭 집어서 말을 하지를 못하게 되니까 벌써 저 사람을 그런  교훈을 하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아, 저게 지금 나를 대항하고 나를  훼방하고 내 주장을 지금 대항해 나간다' 그것을 그 사람이 알기 때문에 대립이  되어집니다. 대립이 되어지고 또 택한 자 중에도 아직까지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옛사람이 강한 사람은 그 사람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 사람이 좋다 그거요.

 그러니까 정통으로 믿는 그것보다 조금 넓게 믿는 게 좋고 그것보다 더  널펑하게 믿는 게 좋고 그것보다 세상 사람과 꼭 같은 행동하면서 믿는 것이  좋고.

 천주교는 술 담배 먹는 거 상관이 없습니다. 또 그보다도 더 널펑한 통일교  같은 그런 것은 세상 사람으로서 하는 일을 금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이오.

다만 그들은 주장하기를 서로 사랑하라 봉사하라 이것만했지 하지 말라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다 할 수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게 좋은 거라 이러니 택한 자들도 미혹을 받으면 그들과 한 편이  되어지니까 교회 기관에서 총회라든지 노회라든지 무슨 시찰회라든지 이렇게 그  회에서 머리되는 그 장자를 뽑을 때 책임자들을 뽑을 때에는 투표해 가지고서  많은 숫자를 따라서 결정이 되어지니까 그런 사람의 숫자가 많게 되면  마지막에는 불택자들 마귀가 보낸 그 사람이 세력을 잡게됩니다. 그 사람이  세력을 잡게 됩니다. 불택자가 세력을 잡게 된다 그거요.

 그러면 그때는 어느 때이냐? 교회라 하는 것이 개혁을 해 나와 가지고 타락해서  개혁을 해 가지고서 더 오랫동안 무사히 지내 나가고 시대도 무사하고 사회도  무사하고 국가도 무사하고 무사하게 지내나가면 이런 것들이 자꾸 등장돼  가지고서 모든 머리노릇을 다 머리노릇을 다 하게 되면 이제는 교회가 형편없이  타락이 되어집니다. 타락이 되어지면 거기서 같이 타락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사람에게는 같이 타락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사람에게는 어찌 되는고 하니 많은 사람들과 대립이 된다 그거요.

 그러면 교회가 대립이 많이 돼, 대립이 많이 되면 그 사람이 쫓겨 나가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천주교가 그렇게 타락할 때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한 삼 사백 년을 두고 뭐 죽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이러다가 마지막에 개혁하려고 혁명이 일어날 그때는  그때에는 그 석 달 동안에 죽은 사람의 수가 한 10만 명 됐다고 합니다. 그만치  대 박해를 당하면서 진리를 주장해 가지고서 그 진리를 개혁해서 천주교에서 이  개혁교가 생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기는 큰집이고 이 개혁교는 새로 나온 작은  집이라 좋게 말하는 사람은 자기는 큰집 여기는 작은집 그래 말하고 또 욕하는  욕되게 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원 둥치 거기서 갈라져 나간 교회라 열교라 깨어져  나가고 나갔다고, 깨질 열(裂)자 깨질 열(裂)자 찢어져 가지고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라 이래 가지고서 열교라 이렇게 말합니다. 또 자기네들은 벌써  옛날부터 있는 묵은 교회고 너거는 새로 난 신교라 새로 난 교라 사도교회가  아니고 신교라 이렇게 말하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거기 미혹을 받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많은 박해로서 개혁이 되고 또 그렇게 되지 안 하는 개혁은  이렇게 자꾸 타락이 되니까 하나님께서 이 진짜 가짜를 가려야겠다 해서 환란을  일으킵니다. 왜정말년에 신사참배 환란은 누가 일으켰는고 하니 주님이  일으키셨고 6 25 때 박해의 환난은 누가 일으켰는고 하니 주님이 일으키지  땅위에 환란이라는 환란을 주님이 일으키지 안한 환란은 없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믿는 사람의 그 사이비한 것을 자기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아서  참 믿는 사람도 환하게 들어내 보이고 또 거짓부리 신자도 들어내 보이고  외식자도 들어내 보이고 말로만 신자지 참 믿지 않는 이 가짜도 들어내서 보이고  자기 신앙도 자기가 어떻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그런 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환란이 일어나니까 환하게 성경에 위반된 일을 장자 된 자들이 전부다  범합니다. 이거는 뭐 더듬어 봐도 이거는 성경에 위반된 계명을 척척 어기고  이래 나가니까 그때사 모든 사람들이 '아, 저거는 참 가짜로구나' 어려움이  있어서 몸과 생명과 모든 것이 다 절단이 나지고 모든 사람이 다 거꾸러지고 그  앞에 다 굴복을 해도 참 주님을 내놓지 아니하고 몸과 생명을 다 성경대로  바쳐서라도 직위를 보수하고 죄짓지 아니하고 의롭게 살고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그걸 볼 때에 '저게 참 신자로구나' 하나님이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드러내서 개혁을 시킵니다. 개혁을 이렇게 시키면 개혁된 지  초기에는 '자, 누구를 장자를 낼꼬' 하면은 환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참 신자,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머리가 됩니다. 다 장자로 이는 뭐 총회장, 노회장,  당회장, 뭐 시찰회장, 이렇게 장자의 직책을 가지고 나가니까 교회가 잘  나갑니다.

 잘나가고 또 시대는 평안하고 이러면 교회가 가속도로 부흥이 됩니다. 부흥이  되는 거기에 이제 악령이 또 그런 것을 자꾸 집어넣습니다. 집어넣어 가지고  그게 차차 들어와서 들어오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들어와서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시간이 지나면 세상 것을 가지고서 자꾸 미혹을 시켜서 저거 파를 만들어  가지고서 그게 세력을 가지게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교회가 평안 무사하면 가짜가 많이 들어오고 마귀가 보낸 게 많이  들어와 가지고 교회가 부패하게 되고 부패한 교회가 개혁이 도리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위 환경을 섭리하지 아니하고 저거끼리 개혁을 하려고 하는데는 많은  순교자가 납니다. 많은 순교자가 나야 개혁이 됩니다. 그러나 어떨 때는  하나님께서 이거 순교자를 내려고 하면은 순교자 몇 되지도 안 할 터이니까 할  수 없어서 그 환란을 일으켜 가지고서 이 개혁을 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우리 한국에 개혁된 이 개혁은 믿는 사람끼리 이렇게 투쟁해 가지고 많은  순교자 나는 그런 개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환경을 환난을 일으켜 자기서  왜정말년에 신사참배라는 그 환난을 인해서 개혁이 된 것이 한국 교회의  개혁입니다. 그 개혁을 할 때에 그때는 일부 승리한 사람들이 그저 뜨문뜨문  있지 그렇게 많이 있지를 아니했습니다.

 다른 데는 모르지마는 제가 사는 거창군 내에도 신사참배 안한 사람들이 몇  사람 없어서 그 주남선 목사님이 신사참배 안 했고, 이리저리 숨어서 다니는 몇  사람들이 피해서 신사참배를 안 했고 개명교인들은 한사람도 안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데 지방 사람들은 전부 다 했습니다. 다른 데도 다 그럴 것입니다.

 제가 해방 직후에 전국에 다니면서 집회를 하면서 보니까 들어보니까 신사참배  안한 사람 한 사람 그 때는 다 모두 안한 사람을 이렇게 존대하고 안한 사람은  다 이렇게 존대하고 또 안한 사람들 그 자신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자기 안한  그것을 파묻어 버리고 아주 아무것도 아닌 양으로 이래 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또 그 안한 걸 자랑해서 이러는 사람 있고 그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 후에는 별 환난이 없었고 6 25 때 환난이 있어서 그때는  개인들이 신앙을 지킨 것이기 때문에 뚜렷이 이는 신앙으로 이겼다 졌다 하는  그런 표가 별로이 없습니다. 6 25 환난에. 그러나 그 환난에도 이기고 진  사람들이 생겨졌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기독교가 아주 전성기가 돼 가지고  크게 부흥이 되어지고 이러니까 얼마 된 세월이 아니지마는 몇 십 년밖에  안됐지마는 한국 교회는 가속도로 지금 이 악령이 보낸 자들이 많이 들어와  가지고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나라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가지고 이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신신학이니 정통이니 이 신학 사상이 신학 사조가 이 신신학이라 이게  정통이다 거게 대한 말이 별로이 없습니다. 지금은 그런 말이 별로이 없습니다.

뭐 신신학이니 정통이니 그런 말하면은 다른 사람들이 덕석스러운 말을 하는  거같이 그 아주 그거는 화평성이 없는 꼬집고 우리는 그런 무슨 못된 사람으로  그렇게 볼만치 지금은 희귀하게 되었습니다.

 또 지금은 신본이니 인본이니 이거는 신본주의다. 이거는 인본이다 신본  인본이라는 말은 아예 들어보지 못할 만치 까부라졌습니다. 이거 중요합니다. 이  신본이 이거는 인본 신학 이거는 신본 신학이다. 이 신학은 신본신학이지 이  신학은 인본 신학이다. 이 해석은 신본이다 인본이다 마디마디 따라 들어야  됩니다.

 신본이란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 중심으로 해서 주장을 하는 것이요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요 인본이라는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위주로 해서 사람  중심으로 해서 해석하고 주장하는 그것이 인본이라 그거요.

 이것이 갈래길 중에 큰 갈래길 아닙니까? 이것이 성경 해석 해석마다 붙여야 될  터인데 그런 말은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 신본이니 인본이니 말하면은 그 사람은  조브라운 사람이고 남을 헐뜯는 사람이고 독선주의고 고집쟁이고 사람이 좋아서  인간미가 없어서 접촉 못할 사람이라 이렇게 지금 정죄할 만치 되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대적으로 타락해 가는 이 타락에서 솟아오른다는 것은 얼마나  위인인줄 모릅니다. 신앙의 위인이요. 자기가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시대적으로 타락한 이 노선이나 이 계통이나 또 신학 사상이나 이런  것을 바로 잡지 못하면 개인의 신앙생활 잘한다는 그까짓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 비유컨대 큰 그물로 던지면 그물 속에 들어 있는 고기도 자기는  자유 하는 바다인 줄을 알고 제 마음대로 놀았지마는 나중에 그물을 잡아 들  때에는 그게 들려 올라 오요 그물을 잡아 들 때에는 들려 올라온다 말이요.

 벌써 넓은 범위에서는 그 신신학이 그 사람을 벌써 점령하게 됐고 신신학  졸업한 목사가 그 사람을 지도하게 됐고 신신학 벌써 노선에 들어 가지고 있고  신신학과 또 정통신학 벌써 인본에 포위해 가지고 있고 이렇지마는 얼마든지 그  안에서 신앙생활 자유로이 할 수 있고 이렇지마는 나중에 그 줄기적으로  신학적으로 들려 올려 올 때에는 저도 꼼짝 못하고 그 신학에게 따라 가게 된다  그 말이요. 그래 가지고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다에 있는 고기가 자기 역량 있는데 까지만 그물을 알지 그 이상을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돌아다녀도 그물이 눈에 안 보이니 그물 속인지  어째 알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복되게 해야 복되지  인간 자기 제 스스로 된 것이 아니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양성원에 제가 가 가지고서 정경이니 이거는 외경이니 가경이니 하는  거게 대해서 첫째로 말하기를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그에게 정경을 알도록  해야 되고 정경 노선에 소속하도록 해줘야 되지 제 힘으로 안 된다 그것을  첫째로 강하게 말했지마는 양성원 학생들로서 그 말을 무슨 말인지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 그렇게 별로이 없다 그거요. 그것이 막 바로 칼빈이 궁극적  구원이라는 그 성질의 신조와 같은 신조입니다.

 교회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또 하나는 택한 자이지마는 아직까지 중생도  안 했고 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구원을 착수하지도 안 했는데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이웃이 그 환경이 가정이라든지 자기 친구라든지 자기 직장이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그 분위기에 끌려서 교회에 안 나오면 안 돼서 지금 나오기는  나오지마는 중생도 안됐고 그 사람 속으로 믿는 사람이 아닌 그런 신자들도 있다  그 말이요. 택자로서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구원 착수하지 아니한 그런 사람들이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도 하나님이 구원 착수를 안 하기 때문에  어떻게 놀아도 하나님이 그에게 징계가 없습니다.

 성경에 '이전 네가 어두울 때는 너 하는 것이 개의치 안 했지마는 지금은 네가  빛을 봤기 때문에 지금은 용서 못한다' 성경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 뜻의  말씀을 했습니다. 이전 어두울 때에는 개의치 안 했지마는 지금 빛을 보고 난  다음에는 너희들이 어두운 짓을 하면은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 말씀했다 그  말입니다. 그런 신자들이 있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불택자와 꼭 같은 신앙 생활합니다. 나와도 불택자와 꼭  같은 신앙생활 하요. 어릴 때에 유아 세례를 받았지마는 그 사람이 꼭 뭐  불택자와 불택자도 마귀가 보낸 사람과 꼭 같은 한 덩어리 돼 가지고서 예수를  믿다가 이 사람이 참 언제 나이가 늙어지더니 자기가 어떤 큰 파란을 만나든지  하면 그때사 이제 돌이켜 회개를 하는 수가 있다 그거요. 그때도 중생 되지 안  하면 안됩니다.

 중생이 되고 난 사람에게 회개가 있지 중생 되지 안한 사람에게는 그 회개라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것이 가식이고 외식이지 진정 자기가  잘못됐다고 뉘우쳐 가지고서 돌이키는 회개는 아니라 그 말이요. 성화가 된  회개가 아니라 그 말이요.

 한 종류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하나님께서 중생 시키시고 택함은 영원 전에  된 것이고 하나님의 목적 정하실 때에 됐고 그 중생은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다가 중생 된 사람도 있고 교회에 나오지 안 하는 데도 중생 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본인은 모릅니다. 다만 그게 말해 바람이 불면 동풍이  부는지 서풍이 부는지 모르지마는 바람이 불고 난 다음에 물건들이 움직이는  것을 봐서 알 수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생은 언제 됐는지 모르지마는 중생 된 사람의 그 사람의  행동을 보아서 알 수가 있다 중생 된 뒤의 그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을 보아서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중생 되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파에서는 '예수를 믿다가 크게 심령이 어떻게 변화를 받는 그런  큰 은혜를 받을 때 중생 된다' 그것은 교리가 틀렸습니다. 중생 되고 난 다음에  믿는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는 행동보다 중생이 먼저입니다.

 이래서 중생, 교회 나오다가 중생 되는 사람도 있고 교회 나오지 안하고 듣지도  못했는데 복음을 들을 때에 중생 되는 사람도 있고 중생 되어 가지고 즉시 예수  믿는 행동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중생 된지 오랜 후에 예수 믿는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택함을 입은 자가 중생 되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성화 구원 건설  구원을 그 사람에게 착수한 그 후, 착수함을 받아 가지고 교회에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교회 나오는 종류가 이제 몇이지요? 손가락 좀 게을  부리지 말고 이러면 되지 않아요? 뭐 손가락 못내, 못내기를 어짜든지 게을해.

야만인은 게을합니다.

 세 가지, 세 가지 종류의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있는데 불택자 아직까지  하나님이 착수하지 안한 자 그자에게 대해서는 이 누가복음 5장 이 본문이  해당되지 아니합니다.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해당되지 아니하고 택한 자가 중생  되어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를 착수하신 이 사람에게만 한해서 누가복음 5장에 이  고기 잡은 이 교훈이 이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이 사람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이 사람은 택함을 받고  중생을 입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시작을 한 이 사람에게 한해서는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이 법도대로 믿음 지키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제 생각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도 세상 것을 해 보려고 아무리 해 봐도 헛일이라 하는 것을  여게 단언해 놓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헛일입니다. 헛일이지마는 그 사람들이  어데 초저녁에 헛일인줄 알았습니까? '잡히겠지 잡히겠지' 자꾸 기다리는 것처럼  세상일이 '되지 되지' 해 가지고 자꾸 이래 기다리고 세월만 보내면 되는 거  같으나 안됐다 그거요.

 이제 돼 가니까 '요번에는 되겠다' 했는데 되는 줄 알고 했는데 다 돼간다고  생각했는데 뒤에 가서 탁 틀려서 되는 거 같이 보이지마는 실패되는 거같이  보이지마는 실패되는 거 같으나마는 또 실패하고 되는 거 같으나마는 실패해서  안 된다 그거요. 저만 골만 빠지고 세월만 허송 세월하지 아무리 해 봐야 안  된다 그거요. 결말이 안 돼 버려 되는 거 같은데 결말에 가 보니까 도리어 또  헛일, 결말에 가 보니까 헛일, 이렇게 자꾸 헛일이 되어지는 이것은 택하고  부름을 입은 사람에게는 이렇다 하는 것을 여게 단언 지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벌써 봐서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데 되는 거 같습니다. 삐뚤어지는  일을 하는데 뭣이 되는 거 같습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 두려운 줄도 모르고  진리법칙 두려운 것도 모르고 제 맘대로 하는데 그래도 뭐이 되는 것 같다 이래  보여지면 신앙에 눈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느냐? 저 사람이 불택잔가  아직까지 하나님이 착수하지 아니하신 택자인가 저 사람이 결말에 가서 실패가  될 건가 택자라면 결말에 실패가 되는가 요렇게 딱 요 세 가지로 보고 있으면  그러다가 결말에도 실패가 안되고 척 돼지면은 저 사람은 잘 말하면 아직까지  하나님이 착수하지 안한 사람이로구나 저 사람은 불택자로구나, 불택자라고  정하지는 못합니다. 아마 불택잔지 착수하지 안한 사람인지 둘 중에 하나다  이렇게 판정을 짓고 그 사람을 삼갑니다. 그 사람을 삼가요 부러워하지 안하고  그 사람을 삼가요. '이 사람 조심할 사람이다' 이 사람은 우리 교회에 있는데  목사라면은 '이 사람을 조심해서 이 사람에게 사람 접선을 이걸 경계를 시켜야  되겠다' 이래서 말을 못해도 그 사람과 접선하지 못하도록 자꾸 이래 애를  씁니다. 말은 하지는 못해도 그 사람에게 접선하면 신앙을 손해를 보일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 접선 못하게 합니다.

 못하게 하는데 또 저거끼리는 접선이 잘 됩니다. 당장에 집회 같은데 가서  보면은 한 그저 몇 시간인데 딱 들어붙소. 뭐 그만 둘이 사상이 딱 맞고 성질이  딱 맞고 이래 가지고서 취미가 둘이 딱 그만 절친한 친구가 돼버립니다. 집회 가  봤자 불과 한 4, 5일밖에 안 되는데 4, 5일 가운데에 오고 가고 시간 있지 또  예배 보는 시간 있지 자는 시간 있는데 만나는 시간이 얼마 안 되는 데도 뭐  찰떡같이 들어붙어 버려 그러면 손해를 봐,  이러니까 그걸 자꾸 만나지 못하도록 경계를 하고 자꾸 이래 애를 쓴다 말이요.

이러니까 신앙의 눈이 있는 사람은 이런데 신앙의 눈이 없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이 화목이라 그 사람 참 화목성 있고 그 사람 친근하고 재미있다 줄줄 따라  가지고서 또 그 사람이 이러면서 구역에 부흥을 시킵니다.

 부흥시키고 이러니까 그 사람이 예수 잘 믿는다고 바울은 점치는 여인이 와  가지고 이는 하나님의 종이라 너거에게 영생의 도를 점한다 또 어짜든지 이  사람을 영접해 가지고서 이 사람의 도를 받아라 이렇게 바울을 협조해 주는데  속에 귀신이 들어 가지고서 지금 바울 떠나고 나면은 보니까 이제까지 우리  지방에서는 그 선지자로 보았는데 그게 바울이라는 그 예수 믿는 선지자도  오던데 보니까 이 사람이 먼저 선봉에 나서 가지고서 하나님이 종이라 이렇게  말하더라 그 사람이 과거에 마귀에게 접해 가지고서 인정받은 그 인정을 이제 그  바울 사도를 통해서 인정받아 놓으면은 완전히 그 고을은 그게 점령할거라 그  말이요.

 이러니까 있을 때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일어나도 결국은 다 마귀 수입이지  하나님의 교회는 아니라는 것을 바울이 눈이 밝기 때문에 많이 근심했어. 여게  대해서 바로 선포해 가지고서 이게 무엇이라 하는 것을 지적을 하면 참 택함을  받은 자들이 이를 따르지는 안 하지마는 그렇게 하는 날에는 이거 박해가 크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걸 말을 하나 안 하나 여러 날 근심을 하다가 아무래도  내가 여게 하나님이 보냈는데 여게서 죽어도 이걸 바로 선포해야 되지 이거 안  하면 안되겠다 해서 선포를 했습니다.

 "귀신아! 이 여인에게서 나오너라" 이라니까 자기가 박해를 생명을 내놓고  전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해서 귀신이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말이요. 그 사람에게서 나왔어. 나오니까 금방 점치는 여인이 그만 바보가 돼  버렸어 아무것도 말 못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 사람으로 인해서 돈 벌던 사람, 그 사람으로 인해 가지고서 저거  가정에 환란 면하고 복 받는다고 생각하는 이 어리석은 사람들이 막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바울을 송사하고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얼마나 맞고 얼마나  고생을 당했습니까?   이랬지마는 바울이 그 세력보다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이 더 크신 분이신  걸 깨닫고 또 그렇게 자기가 이런 박해를 당할 줄 번연히 알고도 이런 박해를  당할 줄 알고도 이렇게 박해를 당할 수 있어도 당할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도를  증거 하게 한 자기 속에서 강하게 역사 한 이 성령의 역사를 생각해 보니까 천한  죄인이 자기가 이렇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강하게 능력 있는 자기가  되어지도록 성령님이 자기에게 내주해 가지고 역사 하시고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믿음 주신 걸 생각하니까 기뻐 못 견디겠다 그 말이요.

 매 맞은 것은 알고서 매 맞을 줄 알고도 진리대로 살게 된 그 선물의 신앙 받은  것을 생각할 때에 좋아서 못 견디겠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바울이 거게서 기뻐서 찬미를 해 버렸어 찬송을 불렀어 찬송을  부르니까 벌써 넘었다 그거요. 인간 선을 넘었어. 벌써 그는 신앙 신앙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더불어 동행하는 기쁨이요 동행하는 찬송이요 동행하는  용기라 그 말이요. 그 전능자 전지자 천지의 대주재자 창조주와 결합이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거기 있는 지방이 떨려서 옥문이 제대로 열리고 야단이 났습니다.

잠가놓은 자물쇠가 터지고 이제 지진이 나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게 뭐이냐?  조물주와 모든 활동에 모든 것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바울이 같이  됐다 하는 그것을 표시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옥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문이 열렸으니까 이제 도망칠 터인데  그러니까 옥중에 묶인 것도 다 풀렸다 그 말이요. 옥문도 다 열리고 다 풀렸어.

이러니까 갈 터이니까 바울이 거기서 또 성령이 시켜서 외쳤다 그 말이요.

'너희들이 한 사람이라도 꼼짝하면 안 된다' 이러니까 그분으로 인해서 지진이  나지 옥문이 열리지 그분의 명령을 꼼짝 못하고 있으라 하지 이러니까 죄수들이  꼼짝 못하고 있었다 말이요 옥사장이 있다가 보니까 옥문 다 열렸으니 거기는  별별 죄수가 있는 데에도 이 바울이라는 이 죄수가 있는데 이게 나갔으면 저는  그 모든 벌받아 가지고서 저는 사형 당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런 비참한 일 당하는 것보다 내가 자결해 죽는 게 낫겠다고서 그만  자결해 죽으려고 하니까 바울이 있다가 '네 몸을 해라지 말라 여기 죄수들이  하나도 안 나가고 다 있다' 이런데 이분이 호령을 치고 이러는 거 보니까 그  전날은 죄수로 멸시하고 취급을 했지마는 그 시간을 통해서 이분을 보니까 이거  사람이 아니라 저거 말 생각으로는 신이라. 와 가지고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면서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어라 그러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 그 날밤에 모시고 가  가지고서 모든 상처를 씻겨서 치료를 해 주고 그 날밤에 그 옥사장 집에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이튿날 책임자가 이 소식을 듣고서 '이거 안되겠다 바울이라는 사람을 내  보내야 되겠다'고 그만 가라 하라고서 나가라 하라고서 안 가갔습니다. 어떻게  나를 갔다 놓고 이 문제를 해결도 짓지도 않고 가라고 못 간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일뿐 아니라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다.

 이러니까 '아이구, 로마 시민권 가졌는데 로마 시민권 가졌는데 로마 시민을  이래 놨으니 저는 지금 큰 절단 났다' 그 말이요. 죄 없는 사람을 형벌  달았으니까 저는 지금 곧 사형 당할는지 뭘 당할는지 몰라.

 이래서 와 가지고서 빌지 안 했습니까? 그렇게 어려운 시민권 그런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다 버렸습니다. 바울은 세상적으로도 구비한 구비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 이런 것을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모든 것을 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버렸고 또 그 모든 것이 다 배설물이라. 그 속에  진짜 사람 얻는 이 자기 수입이 따로 있는 걸 알았다 그거요. 하룻밤에 선 것이  빌립보 교회입니다.

 요새 빌립보서를 갖다가 며칠 했는데 그렇게 돼 가지고서 된 교회입니다.

깨끗한 교회요 이러니까 교회가 깨끗한 교회라 하룻밤에도 섰는데,  교회라 하는 것은 자기가 희생 없이 서는 것 아닙니다. 목회자들이 어짜든지  목회 하러 가 가지고서 목회 하러 가 가지고서 요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잘  얻어먹고 잘 입고 대우 잘 받고 평안하고 자기 올라가고 하는 요런 것만 노리는  사람은 그것이 삯꾼이요 이리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자기의 희생 없이는 안  섭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의 씨가 피라 이랍니다. 예수님의 피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피, 교회세운 사람의 피, 피로서는 것이 교회입니다. 고생으로서는 것이 이  고난으로서는 것이 교회요 또 고난을 상관치 아니하고 고난을 각오하고 고난을  바로 깨달아서 이 고난을 진실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요 사람에게  함께 하는 권능으로서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세 종류 사람 가운데에 택한 자로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착수하신 이 사람 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라면  자기가 세상 어떤 것을 소원하든지 시키는 대로하면 그 소원이 다 이루어집니다.

 세상 소원 두 가지가 있겠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금하는 소원이 있고 하나님이  허락한 소원이 있지 허락한 소원은 다 됩니다. 요걸 굳게 잡아야 돼. 허락한  소원은 다 됩니다. 요 소원은 다 되고 요 소원은 가지고 간다 그 말이요. 허락한  소원은 다 됩니다.

 그러면 소원이 다 되다니 허락지 안한 소원은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순종을  하면은 허락지 아니한 소원은 주님이 자기 눈을 띄워서 하나님이 허락한  소원으로 바꾸게 하십니다. 허락한 소원으로 바꾸게 해 가지고 이루어도 기어코  이루어지게 합니다. 세상소원 다 돼요.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 소원 성취가 다 되는 것이 예수교입니다. 뭐 하려고  지금 그 짓 하는고 그 짓 하는 것은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니 세상 소원되어지는  거기에서 깨달아 주님 시키시는 대로하면 다 되니 주님이 시키신 무궁세계의  것도 거짓말이 섞이지 아니하고 다 사실이겠구나 이러면 이 문제가 더 크다  이것을 깨닫고 그게 중점적으로 두고서 나갈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인해서  주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배와 고기 집어 던지고 달라 드는 것처럼 이런 사람될까 해서 이런  사람 돼 주기를 바래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도리가 깨달아지면 돼요.

공부 못해도 돼요 배울 필요 없어. 박사 안 돼도 되고 목사 안 돼도 돼요 그  사람이 사람 살리요 하나님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 그 사람을 들고 쓰시오.

 무슨 문제가 있어 여게서도 자기가 잘못 배운 것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바꾸어야 됩니다. 안 바꾸면 헛일이요. 여게서 배우는 것을  어떻게 지식의 주체가 되어야 되지 자기 지식의 주체가 되어야지 지식의 주체는  딴 것이 되어 가지고서 이 지식을 배워서 다른 지식이 다른 지식으로 주체되어  있는 그 지식을 보강이나 하고 키우는 그 사람은 암만 있어 봤자 오리가 닭 되는  거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기본회개입니다. 지식도 그 사람의 지식의 주체 지식이 뭐이냐  어느 지식이 주체냐 이것입니다. 버려놓은 사람은 모르고 나는 그 악기를  모르지마는 악기 배운 다른 사람 말 들으니까 잘못 배워 가지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사람이 썩 잘 치는데 모르는 사람이 볼 때에 아주 칠 줄 모르는 사람은  가르치기가 쉽고 조금 잘치는 사람은 가르치기가 어렵고 모르는 사람이 볼 때에  참 잘 치는 사람은 못 가르친답니다.

 잘 못 질이 들어 가지고 제대로 됐기 때문에 그걸 다 반복해서 그걸 버리고  하기 때문에 그 버릇이 돼서 구습이 나와 가지고 암만 바로 가르쳐야 안  된답니다. 그와 마찬가지요 지식도 그러합니다. 그래 그걸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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