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으라

 

1986. 3. 1. 토새벽

 

본문:히브리서 12장 1절∼8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해서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구름같은 간증자들이 둘러싸 있다 하는 말은 구름으로 말하면 물방울 김이 서려 가지고 구름된 거니까 그 숫자는 뭐 헤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구름같은 간증이라 말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간증자들이 있다 하는 말씀인데 그 간증자는 무슨 간증자들인가? 두 간증자인데, 사람들이 각각 모두 요렇게 해야 지혜롭게 하는 것이다 저렇게 해야 지혜롭게 하는 것이다, 요래서 내 소원과 목적을 달성하겠다 조래서 소원과 목적을 달성하겠다고 모두 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또 자율 이것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다 살았습니다. 그 종류가 뭐 구름같이 많습니다.

또 어리석고 미련하게 자기일랑 부인하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그분의 인도에게 따르고 자기는 그분에게 딱 맡겨 놓고 그저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는 이런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사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 살고 간 모든 사람들을 따지면 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를 위해서 자기 지혜대로 자기 힘대로 또 자기 원하는 대로 욕심대로 그렇게 살아서 세상에서 무엇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그것을 부러워해서 예수 믿는 집사라도 아이들에게 새벽 기도 갈라 하는 것은 가지 말라 하고 학교 가는 것은 가라 하고 공부하는 것은 자꾸 권면하지마는서도 신앙 생활 하거나 뭐 요절을 외우거나 하는 그런 것은 ‘야, 네가 지금 공부해 놓고 그래 잘 믿지, 잘 믿는 것도 좋지마는 그래라.’ 모든 부모들이나 뭐 장로라도 그렇고 목사라도 그렇고 집사라도 그렇고 평신도도 그렇고 모두 이 구름 같은 간증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 종류를 크게 나누면 두 종류밖에는 없는데 하나는 어짜든지 이 세상에 사람들의 지혜와같이, 모든 사람들같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을 표준으로 삼고 그것을 욕망으로 삼고 모두 제 나름대로는 제 힘껏 제 잘난 재미로, 제 지혜 있는 재미로, 제 실력 있는 재미로, 제 열심으로 뭐 제가 들어서 뭣을 해 볼라고 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공부해 가지고서 높은 자리도 있고 권세도 갖고 부자도 가졌고 또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일도 하고 이라니까 사람들이 모두 다 ‘예수 믿는 것은 천국이 있다 할지라도 뭐 천국에 잘 살라고 우선 세상에서 못 살 수가 있나, 이러니까 첫째 이 세상을 소망 두고 살아야 되고, 또 첫째는 제가 제 일을 해야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천국도 생각하고, 또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도 좀 참고로 삼아야 되지 않느냐?’ 요것이 전부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 전부라고 할 수 있고, 또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세상적으로 뭐이 되니까 모두 부러워하고 다 영광이라 존귀라 이렇게 하고 있고,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 버리고 또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자기 중의 자기로 세워서 이제는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나 뜻이나 자기의 힘이나 뭐이나 그런 건 다 부인하고 하나님으로서 자기의 전부를 삼을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대로 하고 모든 희로 애락도 다 하나님이 희로 애락하는 그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전부 따라서 움직이는 이런 사람 있으니 그 사람은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다, 과격하다, 미련타 이렇게 말을 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해 가지고서 살던 사람들은 베드로전서 1장 24절 이하에 보면은 말씀하신 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신 말씀이 곧 너희에게 전한 이 복음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 보니까 떠나고 난 뒤에 아무것도 없다 그거야. 다 헛일이라. 아무것도 없어. 또 믿음으로 지키다 나간 사람은, 아벨은 세상을 떠났지마는서도 오늘까지 아벨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증거하기를 예수님과 비슷 비슷한 그런 존귀한 성공을 했다, ‘예수님의 보혈은 아벨의 피보다 낫다’ 이렇게 아벨의 피와 예수님의 피와를 비교했으니까 그 아벨의 성공이라 하는 것은 말할 수 없다 그말이오. 또, 그러고 노아도 지나간 사람이지마는 그 한 토막 지나갔지마는 볼 때에 그분이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이 걸음 걸은 것이 온 세상을 정죄했고 그 사람은 온 우주를 다 상속 받아서 차지했더라 그거야.

이래서, 믿음으로 산 사람 있고 자기로 산 사람 있고, 믿음으로 산다 말은 하나님 따라 사는 것이요, 자기로 사는 것은 하나님은 둘째로 두고서 제가 주인이 돼 가지고 제 주장대로 위주대로 산 사람이 그 사람이 자기로 산 사람입니다.

이런 것이 많이 있다. 이러니까, 오늘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서,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믿음의 사람은 자기만ㅡ요거 보십시오ㅡ자기만 아는 돌뱅이 요 안에 요것만 보고 사는데 믿음의 사람은 자기를 초월해 가지고서, 자기를 초월해 가지고서 이 한없는 범위 아주 무한한 이 범위를, 그 시야를 넓게 잡아 가지고서, 범위를 넓게 잡아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시간적으로 말해도 현재만을 생각지 안하고서 이제 과거도 생각하고 미래도 생각하고, 이 공간적으로도 이 세상만 생각하지 아니하고 앞으로 이제 예수님 재림되어서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될 그 공간도 생각하고, 또 존재로 말해도 자기가 이 피조물만 생각하지 안하고 창조주까지 이래 생각해서 좀 시야를 넓힌 사람들이 다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요 좁게 보지 안하고 모든 존재라는 그 전체를 보고 계산을 대어 살고 있고, 요 믿음이 없는 자율이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자기라는 것 조그만한 고 똑 꿀밤만도 못한 요 자기, 조그만한 자기 요것만 보고서 계산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계산이 다 답안이 다르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래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 하지마는서도 누가 아나, 내게 대해서는 내가 제일 사랑하고 내가 제일 나를 아끼고 제일 복되게 하지. 내 일은 내가 해야지, 내가 나를 구원해야지, 내가 나를 복되게 영광스럽게 해야 되지 뭐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어디로 끌고 갈란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미련하게 끌려가는 그거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이러니까 자기로 사는 사람과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으로 사는 사람이 이 둘이 만나면 싸울 거라 말이오. 싸울 거라.

싸우는데, 그거는 왜 싸우느냐? 그거는 다 제 맘대로 다 그거는 옳다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옳다. 생각하는데,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자기로 사는 사람이 서로 시비하면서 등신이라 합니다. 저거 등신이다, 저거 어리석은 자다, 네가 어리석은 자다 이렇게 다 어리석은 자라고 이라는데 그 원인이 어데 있습니까? 왜 그렇게 됐습니까? 예? 내가 이제 말했는데 왜 그렇게 됐어? 시야가 좁고 넓어 그렇다 그거요. 알겠습니까? 그거 이해 됩니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전존재의 전부를 다 보고서, 그 전부를 다 보고서 여게서 계산을 대 가지고서 수지 계산을 대서 산 것이고, 믿음을 떠난 고런 사람들은 자기만 딱 보고 살았기 때문에 그 자기라는 것은 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것인데 그것 보고 살았으니까 그 계산과 저 계산이 맞을 리가 있습니까? 안 맞는다 그거야.

이래서, 하나님의 지혜인 이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은 이것은 전지의 지혜를 자기 지혜로 삼아 가지고서 전지의 지혜로 전 존재를 다 보고서 시간으로 말하면 영원 전에도 봤고 영원 후도 보고, 이런데 요거는 단지 오늘만 보는 자도 있고, 또 학생 시기만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젊을 때만 보는 사람도 있고, 고 다음에는? 살아 있는 때만 보는 사람도 있고 죽는 건 보지 못하고 죽음 너머 부활하고 심판하는 그거는 전연히 보지 못하는 사람 있다 말이오. 인간의 지식은 범위가 좁아서 요 좁게 보고 하나님의 지식은 전체를 보게 하는 시야가 넓은 전체를 상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이 지식은 넓고 좁아서 아주 이것은 틀린다 그거야.

그러니까, 조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는 아주 미워하고 부인하고 자기는 이거 속이는 것뿐이라. 이거는 고때밖에 모르는, 배암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완전자 자존자 그분을 믿어서 그분으로 나를 삼아 가지고 나는 그분에게 맡기고 나는 그분 시키는 대로 하고 ‘나는 당신시키는 대로 할 터이니까 나일랑 당신이 책임져 주십시오.’ 요렇게 딱 계산 대 가지고서 그래 놓고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시야가 넓은 사람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 사람의 사는 생활은 자기로 사는 원죄,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원죄요 본죄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산 모든 많은 행동들이 그것이 본죄요, 이런데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지 못한 어두운 사람들은 다 자기로 산다 그거요.

이래, 간증자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중에 와서 제일 큰 성공 영원한 성공을 했고 후회 없는 성공을 한 성공자가 있다. 성공자가 하나 있는데 그 성공자가 누군고 하니 그 성공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성공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공자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사는 것이 한 가지로만 살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활을 말하면 뭐인고 하니 그것은 십자가의 생활이다. 십자가 생활을 예수님이 하셨다.

십자가로 성공을 했는데, 그러면 십자가로 성공을 했었는데 그 십자가 생활이 무슨 생활이냐? 그 생활이 곧 믿음 생활이다. 믿음 생활을 하면은 십자가가 닥쳐진다. 그래도 그 십자가가 닥쳐졌을 때에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이 십자가가 닥칠 때에 십자가를, 그것을 싹 통과만 하면 큰 것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사람들이 모두 주를 따라서 믿음 생활하다가 십자가가 오면은 그만 뒤로 후퇴해 버리고 낙망해 버리고 만다. 그런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의 구주가 되신 예수님은 무슨 주냐 하면 믿음의 주라. 당신도 믿음으로 성공했고 또 우리도 믿음으로 성공시킬 주님이시다. 주님이라 말은 책임 맡았다 말인데, 그러면, 예수님이 믿음으로 성공했고 우리도 믿음으로 성공하는데 믿음으로 성공하는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면은 가다가는 이 십자가라 하는 고개턱을 닥친다.

십자가라 하는 고개턱을 닥치게 된다. 십자가라는 고개턱을 닥치게 되는데 그 십자가 고개턱을 보고서 사람들은 고만 겁이 나 가지고서 믿음을 포기해 버리고 다시, 믿음은 하나님 따라 사는 게 믿음이요 또 자주장으로 자율로 사는 것은 믿음을 배반하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율로 사는 것이 그것이 이제 자기로 사는 것이 믿음을 배반한 것이요, 또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 믿음의 생활인데, 믿음의 생활을 하다가 어려움을 턱 닥치니까 고만 그 어려움이 십자가인데 그 어려움을 닥치니까 사람들이 그만 믿음을 배반하고 자기 지혜로, 자기 생각으로, 자기 뜻으로, 자기 노력으로, 자기 주장대로 휙 돌아가 버리고 만다 그거요.

왜 그러냐? 십자가만 봤지 십자가 그 너머 이쪽의 그걸 몰라 그렇다. 이 십자가가 뭐인지를 몰라 그렇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십자가라는 이 고개턱, 고개턱 너머도 살펴봤고, 고개턱 이 쪽도 살펴봤고, 고개턱도 살펴봤고, 십자가라는 그 만당 말이요, 잿만당 십자가라는 이 고개턱, 이 고개 고개라는 것, 여기 저 대티 고개, 대티 고개 하면 내나 이래 올라가 가지고서 내나 고개 넘어서 이래 넘어 내려가는 것 아닙니까? 십자가의 고개턱에서 깨닫지 못해 가지고서 실패한 것이다.

십자가 그 고개턱은 뭐하는 것인고 하니 그것은 자기의 불행스러운 모든 불행을 벗어나는 탈출구다. 자기의 모든 불행을 벗어나는 하나의 피난 구멍이다.

십자가는 피난 구멍이다 고거 기억하십시오. 피난 구멍이다. 십자가의 고개턱은 피난 구멍이다. 또 십자가는 뭐인고 하니 내가 보지도 못하고 잡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한 한없는 영광스러운 존귀스러운 그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를 내가 십자가의 고개턱만 훅 넘으면 그다음에는 참 굉장히 좋은 존영하고 영광스러운 그런 행복스러운 세계가 있다. 행복스러운 세계를 넘어가는 것이 그것이 십자가의 고개턱이다.

또 십자가는 뭐인고 하니 십자가는 하나님이 보시고 ‘너는 달아보니까, 달아보니까 너는 한 냥쭝이니 너는 한 냥쭝 밖에는 복을 못 주겠고, 너는 한 돈쭝도 없고 너는 한 푼쭝이니까 네 한 푼쭝에게는 한 푼쭝의 복을 줘야 되지 한 푼쭝에게 한 푼쭝 이상 복을 주면 너는 거기 치여 죽는다.’ 이러고, ‘너는 보니까 참 이 우주와 영계의 하나님의 모든 창조한 것을 다 네게 맡겨도 될 만치 네가 그렇게 실력의 중량이 있으니 너는 모든 걸 맡겨 준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실력과 인격과 그의 자격을 다는 저울이라. 십자가는, 십자가의 고개턱은 그 자격을 다는 저울이라. 모든 불행을 피하는 도피의 길이라, 문이라, 또 내가 감히 그런 세계는 보지도 못하고 꿈도 못 꾸는 그런 영광스러운 세계에 넘어가는 그 세계에 들어가는 입문이라 하는 요것을 예수님은 아셨다 말이오. 알고 요렇게 했습니다.

다니엘도 그런 사람, 다니엘이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는 기도하겠습니다 하는 그게 뭐 하는 겁니까? 그거는 믿음 지키는 거라 말이오.

믿음 지키는 것 아닙니까? 믿음을 지키니까 뭐 왔습니까? 이제는 뭉쳐서 사자구덩이 집어 넣어라 하는 십자가가 왔다 그말이오. 그러나 그 십자가는 뭐하는 것인가? 다니엘을 죽일라고 하는 원수가 가득찬 그 원수가 꽉 차서 온 전국이 원수라. 다니엘 죽일라고 왕까지 전부 다 똘똘 뭉쳐서 한덩어리 돼 가지고 조서를 내리지 안했소? 다니엘의 원수가 가득찬 그 원수의 세계를 피난한 것이 그것이 다니엘의 십자가라 그말이오.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는 십자가요, 또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잡아 다 넣는 십자가 그것은 하나님이 저울로 달고 있다 말이오. ‘보자, 달아 보자. 이게 중량이 얼마나 되는가 달아 보자.’ 달아 보니까 파사 나라를 다 다니엘에게 다 맡겨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그 중량이 있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인제 달아 보니까 합격이 됐어. 벨사살 왕은 하나님께서 그 분벽에 쓰기를 ‘데겔’ 이라고 쓰였는데 ‘데겔’이라고 쓰인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저울로 달아 보니까 중량이 모자랐기 때문에, 왕의 중량이 모자랐기 때문에 왕을 뺏들어 딴데 줬다 말이오. 지금 대주재인, 주권자이신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저울로 달고 있는데 저울에 달고 있는 것을 다니엘은 알았기 때문에 저울에 지금 중량이 떨어지지 안할라고서 뭐 그저, 발발 떨지도 안하고 떡 안심하고 기뻐하면서 ‘안 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암만 그래 쌓지마는서도 우상에게 절하지 안 할 줄 아십시오.’ 얼마나 배짱 있는 말입니까? 중량이 합격이 됐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그 십자가를 떡 넘어서 사자구덩이 들어가는 그 고개를 턱 넘어서 사자구덩이 한번 턱 집어 던졌다가 나왔다 말이오. 들어갔다 나왔더니마는 그다음에 그 이튿날 어찌 됐습니까? 그 이튿날 파사 나라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래 가지고 왕도 그만 굴복했어. 다니엘아 할 때 왕이여 만세수나 하십시오 하니까 왕이 깜짝 놀래 가지고 고만 그때 다니엘이 뭐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다니엘 사람이 돼 버렸어, 고만. 다니엘에게 완전히 굴복을 해 버리고 다니엘은 완전히 정복했어. 왕도 정복했지 그 원수들도 정복했지, 원수는 뭐 가만히 두고 다니엘은 축복했겠지마는서도 다리오 왕이 다 잡아서 사자구덩이 집어 넣어 죽여 버렸지 온 전국이 다니엘에게 막 이렇게 다니엘을 섬기면서 복종했지, 이러니까 그 다니엘이 평소에도 총리가 됐지마는서도 그 십자가의 고개턱인 사자구덩이에 집어 넣게 되는, 신앙의 어려움 당한 그 어려움이 없었으면 다니엘이 성공한 그 성공이 멋있지를 안할 건데 그 어려움을 인해서 다니엘의 신앙의 성공은 참 멋있게 됐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래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십자가의 고개턱의 이 쪽도 보고 저 쪽도 보고 또 그 십자가도 보고 이 세 면으로 올바른 지식을 가져 가지고서 성공했다 말이오. 우리에게 닥친 것도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준비하는 것이 있고, 또 이 십자가를 지는 게 있는데 십자가 준비는 뭐이 십자가 준비인고 하니 ‘구름같은 간증자들이 다 둘러 있다. 그러기 때문에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십자가를 준비하는 것은 자기를 흠 없이 깨끗게 하는 것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준비입니다. 더러운 자는 십자가를 못 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근본 깨끗하신 분이지마는서도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지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거룩하게 했다’ 하는 그런 말씀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근본부터 원죄도 본죄도 없는 분이시지마는서도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면, 십자가 준비는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깨끗게 하기 위해서 이런 고난 저런 고난을 당하는 그 고난은, 고난을 당하는 데에는 자기를 깨끗게 하는 부분이 있고ㅡ요거 잘 안 들으면 몰라요ㅡ자기를 깨끗게 하는 부분이 있고, 깨끗게 한 그것이 십자가 지기 위해서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깨끗게 한 고 부분이 있고, 깨끗게 하고 난 다음에 깨끗한 것 가지고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고난받는 그 고난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고것이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십자가의 고난.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준비의 믿음이 있으니 그것은 ‘거리끼고 얽매이는 죄를 벗어 버리라 그래 가지고서 자기 달음질을 해라’ 하는 건 자기를 아주 깨끗게 깨끗게, 자기를 깨끗게 하기 위해서 이 어려움 당하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자기를 깨끗게 할라고, 자기를 깨끗게 할라고 예수님의 대속의 이 공로를 자꾸 입는 고난입니다. 입는 고난. 그러기에 우리 고난은 자기를 깨끗게 하는 고난이 있는 요것을 알아야 돼요. 자기를 깨끗게 하는 고난, 자기를 깨끗게 하고 난 다음에 깨끗해진 것이, 깨끗해진 것이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제삼자 다른 사람을 구속하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는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에 당신이 만일 털끝만치라도 깨끗지 못했으면 그 십자가는 그거는 우리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아무 효력이 없어. 당신이 흠 없이 완전히 깨끗해졌기 때문에 우리를 대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십자가를 지는 준비하는 것은 자기 위하여 자기를 깨끗게 하는 준비이고, 깨끗게 하는 준비고, 자기를 깨끗게 하고 난 그 다음의 주를 위하고형제를 위해서 고난 받는 고것은 다른 사람을 대속하는 준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믿음 생활을 이렇게 하는데 믿음 생활을 할 때에 고난이 있으나 그 고난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내가 입는 고난이 있고, 또 대속의 고난을 입고 예수님이 나에게 명하신 대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그 고난이 있으니 그것은 깨끗한 자기로 준비하고 난 다음이라야 다른 사람에게 효력을 주는 것이지 깨끗한 준비를 하지 못 한 거는 효력을 못 준다 그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지금 어떤, 이제까지 우상 숭배하던 그런 사람이 있다. 또 자기가 이제까지 창기로 지냈다. 창기로 지냈는데 그 창기로 지낸 사람이, 그 사람이 이제는 십자가의 대속을 입고 자기를 깨끗게 할라고 창기노릇을 안 할라고 한다 그말이오. 창기노릇을 안 할라고 이렇게 애를 써도 안 되니까 창기노릇 안 하기 위해서, 창기노릇 안 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소산수 물로 가지고서 자기 낯을 씻어 버렸어. 자기 낯을 씻었어.

자기 낯을 씻었는데, 창기노릇 안 하기 위해서 자기 낯을 씻어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자기를 깨끗게 할라고서, 창기노릇 안 할라고 자기가 소산수 물로 가지고서 자기 낯을 씻었으니까, 그러면 자기 낯을 그렇게 씻었으니까 거게서 자기가 깨끗해졌습니까, 깨끗해진 것이 아직까지도 미완성입니까, 창기노릇 안 할라고서 자기를 깨끗게 할라고 했는데 깨끗해졌습니까, 깨끗해지지를 아직까지 못 하고 미결로 돼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소산수로 낯을 씻어서 낯이 막 어덕더덕해서 그만 문둥이 중에도 막 얼칭이가 됐다 말이오. 얼칭이가 돼 놓으니까 그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보고 달라들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 전에는 좋아하던 놈이 아이쿠 징그럽다 하면서 다 도망쳐 버리지 미인이라고 달라들지를 안한다 그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소산수로 씻을 때에 자기는 깨끗해졌습니까, 안 깨끗해졌습니까? 예? 소산수 물로 벌써 씻었을 때에 자기는 깨끗해졌다 말이오.

깨끗해진 고것은 자기를 위해서 깨끗했고, 그라고 나니까 소산수 물로 씻었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누가 압니까? 몰랐지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무것이라 하는데 그 사람 도무지 모르겠어. 얼칭이가 돼 버렸어. 이랬는데 말하는 것 보고 자세히 수족이나 보고 다 보니까 그 사람은 그 사람인데 얼굴 보고는 모르겠다 말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그라고 난 다음에 자기의 고난 중에 평생 자기는 병신으로 이와같이 살고 있는 그 어려운 고난은, 그 고난은 다른 사람을 대속하는 일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대속하는 일이 돼.

그걸 보고는 ‘아이쿠 저 사람은 죄 안 지을라고 저렇게까지 했구나’ 그것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감동 받아 가지고서 크게 구원에 유익을 봤어. 이러니까 십자가라는 것은 요 십자가는 신앙 생활하다가 어려움당하는 것인데 이 어려움은 어데까지는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요, 어데까지는 그다음은 다른 사람을 구출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십자가는 첫째가 뭐이라고 말했어요, 내가 이제? 세 가지로 말했는데, 첫째? 모든 불행스러운 환난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라. 그게 뭐이냐 하면 내나 자기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 하는 것이나 꼭 같은 진리라 말이오.

그다음에 행복된 세계를 자기가 점령하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이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그것도 꼭 같은 것이라 그말이오. 그런데 그것이 고개턱은 자기를 저울로 달아 주는, 하나님이 저울로 달아보시는 그 저울이다 그렇게 비유로 말씀을 했습니다. 요거 가서 많이 생각하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말할라 하는 것은, 그저 시간 없으니까 자꾸 빨리 하는데 내가 녹음 들어보면 빨리 하는 것이 참 재미가 없어. 이래도 뭐 시간이 없으니까 자꾸 빨리 한다 말이오. 좀 푹 집회를 내 가지고서 마음을 놓고 있으면 하지마는 가슴이 도곤도곤, 지금, 지금 도망칠 사람이 꽉 찼는데 시간이 급하니까 가야 돼요, 또. 급하거든 가십시오.

그러니까, 말을 빨리 해야 되겠는데 오늘 아침에 지금 설교할라 하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뭐이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주라니? 주님은 믿음으로 성공했다. 우리도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주님도 믿음으로 성공했고 우리도 믿음으로 성공한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되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다. 믿음으로 받는다 말은 공짜배기로 받는데, 믿음은,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우리의 행복을, 우리의 구원을 만드는 것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 구원이나 우리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우리 구원이나 행복은 순전히 주님께서 만들어 놓은 공짜배기인데, 공짜배기인데 이 공짜배기를 내가 얻는 공짜배기로 얻는 그 방편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행복을 만드는 것 아니요, 구원을 만드는 것 아니요, 믿음은 공짜배기로 얻는 방편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암만 그 사람이 천하에 제일 가는 믿음을 가졌더란대도 그 사람 믿음 가지고 자기 구원은 털끝만한 것도 만든 거는 아닙니다. 공짜배기로, 하나님이 만들어 은혜로 공짜배기로 주시는 걸 받는 실력이 있고 받는 기술이 있고 받는 능력 있는 사람이지 제가 만든 것 아니라. 믿음이 우리 구원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받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랬어. ‘믿음의 주’ 주님도 전부 `죽기까지 복종하는' 믿음은 복종인데 이 복종 가지고서 아버지에게 받았지, 그러니까 ‘이러므로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했고 모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무릎을 꿇게 했고 그 모든 것이 주라 시인하게 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안하시고 자기를 비어서 종의 형상을 가졌고 사람같이 되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했다’ 전부 복종이라. ‘믿음의 주라' 주님은 아버지에게 복종만 해 가지고 성공했지 딴거 가지고 안 했다 그말이오. 믿음의 주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믿음으로 가지고서 모든 것을 성공을 하기 때문에 믿음의 주를 바라보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 말할라 하는 것은 믿음을 만들어라. 믿음을 만들고, 너거들은 아무 할 것 없다. 믿음만 만들고 믿음만 사용해라. 믿음만 만들고 믿음만 사용해라. 그러면 믿음 그거 뭐할라고? 주님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가지신 그 전부를 다 가지고 주님의 지능도, 주님의 자체도, 주님의 모든 창조물도, 주님의 소유도, 주님의 영광도, 존귀도, 당신의 것은 하나도 남김 없이 우리에게 다 줄라 한다 말이오. 다 주는데 그것만 받으면 된다 말이오. 우리가 뭐 딴거 만들라고 애를 쓰는 것 아니고. 받으면 되는데, 받는 데에는 받는 방편이 뭐입니까? 저 뒤에도 받는 방편이 뭐이요? 믿음! 받는 방편이 믿음이라. 이러기 때문에 믿음만 잘 만들고 믿음만 잘 사용하면 다 된다 그거요.

그러면, 믿음을 만드는 것이 어떻게 하면 믿음이 만들어지는가? 믿음 만드는 것은 신구약, 하나님이 계약해 놓은 이 계약이 있기 때문에, 여게는 계약뿐이오. 나는 영원 자존자다, 나는 한 분뿐이시다, 나를 한 분뿐인 것으로 내가 말할 때에 이것을 네가 알고, 이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을 인정하고 요대로 살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가 돼 가지고서 역사하게 됩니다.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 우리에게 계약했고, ‘나는 이런 이런 존재로 너희에게 대해 이렇게 해 주겠다’ 하시는 것을 당신의 자체에 대해서 계약으로 선포해 놓았고, 당신의 모든 섭리에 대해서 계약으로 선포해 놨고, 당신의 모든 창조한 모든 만물에 대해서 선포해 놨고,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해 주겠다 하는 것으로 계약으로 선포해 놨기 때문에 그 계약을 낱낱이 아는 것이, 첫째 그 계약을 아는 것이 그것이 믿음 만드는 것의 삼분지 일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아는 고대로 내가 인정하는 것 ‘이는 틀림없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고 거짓이 털끝만치도 없다, 정확 무오하다.’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 만드는 삼분지 일, 삼 요소로 믿음이 되는 것인데. 삼분지 일을 또 한 것입니다. 고라고 난 다음에는 알고 인정하고 고대로 행하는 것이 고것이 이제 믿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믿음을 만드는데 믿음 만드는 것은 몇 가지 요소로 믿음을 만듭니까? 믿음을 만들라면 몇 가지를 갖추어야 됩니까? 저 뒤에 한번 손가락 들어 봐요. 그래. 세 가지로 만들어요. 세 가지로 이렇게 만든다 말이오.

만드는데, 이제 만드는데 처음에 만들어 놓으면 똑 먼지만한 것 만들어 놨고, 그 다음에 또 두번째 만들면은 콩알만한 것 만들고, 그 다음에 또 자꾸 이래 만들면 이게 큽니다. 자꾸 만들면 커져요. 그다음에는 집채만한 것 만들었고, 그다음에는 이 산더미한 것 만들었고, 그다음에는 우주보다 큰 걸 만들었고, 우주보다 큰 것 만들면은 우주를 차지하고 거머쥐고 마음대로 자유할 수가 있어. 이런데, 만드는 건 세 가지를, 이 계약을 알고 인정하고 고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을 만드는데 자꾸 만들어 믿음을 키우는 거는 어떻게 되는 거냐? 키우는 것은 이제 더 알고 더 인정하고 더 행하는 것입니다. 뭐 쉬워. 간단해요.

더 알다니? 자기가 계약에 있는 것을 한 성구 알다가 두 성구 자꾸 아는 것도 이것도, 이거는 뭐이냐 하면은 양으로 말이지요, 양으로 자꾸 이와같이 지금 더 알아서 아는 지식을 자꾸 키워 가는 것이고, 또 그다음에는, 알지마는서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데도 그 사랑이라는 것의 그 질을 아는 데에는 천층 만층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그 사랑에 대해서 깨닫고, 처음에는 개 머래 먹듯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렇게 자기가 알고 외웠지마는서도 깨닫고 보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데 대해 자기가 깨닫고 보니까 참 감사해서 못 견디겠고, 또 더 깊이 깨닫고 보니까 이제 자기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의심하고 믿지 못했던 것이 참 후회가 되고, 또 더 깨닫고 보니까 ‘나도 주를 따라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막 바쳐서 이제 이 사랑으로 살아야 되겠다’ 자꾸 깨달음, 깨달음, 깨달음, 깨달음, 다문 한 성구 한 진리라도 깨달음이 점점 깊어지고 깨닫고 깨닫고 더 깨닫고 더 깨달아 자꾸 그 깨달아지는 것이 그것이 질로 커져가는 거라. 질로 커져가는 것이고, 또 한 성구 두 성구를 자꾸 알게 되는 것은 이거는 양적으로 커가는 것이고, 양적으로 커가고, 이라면 인정하는 것도, 자기는 평안 무사할 때는 인정을 했지마는서도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들어가는 거와 같은 그런 일,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너 예수 믿으면 이제 독침으로 찔러 죽인다 이렇게 할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또 하나님은 주권하고 계신다. 야, 네가 암만 독침 가지고 이래 쌓아도 그거 찔러 봐라. 하나님이 찌르게 하셔야 찌르지 찌르게 하지 안하면 못 찔러. 또 네가 독침을 나한테 찌른다고 가지고 해도 독침이 나를 죽일 줄 아느냐? 내 죽이고 살리는 건 주님이 주권하고 있어. 암만 독침을, 독침 속에 나를 집어 넣어 놔도 하나님이 나에게 죽게 안 하시면 기적만 나타나지 소용이 없다.

불이 나를 태워 죽일 줄 아느냐? 안 된다. 불 속에 암만 그래도 불은 나를 죽일 주권은 없어. 내 생사에는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불에 들어가도 당신이 나를 죽였지 불이 나를 죽이지 못해. 암만 불에 넣어 봐라. 불에 들어가도 당신이 죽게 하시면 내가 바짝 타서 죽을 것이고, 이제 죽게 안 하고, 당신에게 있기 때문에.

당신이 ‘불 속에 들어갔지마는서도 내가 네 생사의 주권 가지고 있는데 너를 죽이지 않는다’ 하니까 불 내음새도 나지 안하고 그슬리지도 안했더라 그말이오.

이래 자꾸 그럴 때도 믿는다 말이오. 자꾸 하나님 말씀을 믿고 믿고 더 믿고 더 믿고, 이래서 요런 환경에서는 믿지마는서도 그 다음에 어려운 환경이 되면 믿음이 고만 달랑달랑해 가지고 믿음이 그만 흔들립니다. 또 고게서 힘을 써 가지고 그 다음에는 고런 환경에서도 또 믿고 믿고 해서 이 역사에 최고의 어려운 믿을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라도 ‘믿습니다!’ 하는 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믿음을 키운다 그말이오. 믿음을 양적으로 자꾸 넓히고 질적으로 자꾸 키우고 이래 가지고 그 믿는 인정이 자꾸 더 커진다 말이오.

다 같이 사람인데, ○○○전도사하고 주 남선 목사님하고 저 개평에 가 가지고서 6.25때에 설교를 하면서 이 황충이 떼가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정신 차려서 거게 굴하면 안 된다고 실컷 설교하니까 그 안에 있는 내무서에 있는 여인이 있는 걸 보고서 주 목사님은 설교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설교 마치고 나니까 ‘동무 좀 저 우리 따라 갑시다.’ `가자' 가 놓으니까 이놈들은 이렇게 우리를 망하라고 이렇게 하는 놈들이니까 이놈들은 지금 사형을 줄 게 아니라 우리가 다 해방시켜 놓고 요놈들은 아주 멋있게 잔치를 하자 하고서 지금 감옥에 들어가라 하니까 뭐 ○○○조사님하고 ○장로님하고 발발발발 떨어서 영 죽을 지경인데 주 목사님은 기뻐하시면서 ‘하나님 하시는 솜씨 좀 보자’ 이라면서 떡 들어가더니마는서도 십 분도 안 돼서 쿨쿨 실컷 잠을 자고 있더라고서. 그거 왜 그렇습니까? 그거 믿음을 만든 것이 다르다 그말이오.

믿음을, 고런 때 가 가지고는, 고런 때 가 가지고 전지 전능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여호와 하나님은 피난처라. 하나님은 나를 책임지시고 보호하심이라. ‘네 생명은 머리털 하나도 다른 것들이 해하지 못한다.’ 이 약속을 그렇게 단단히 내 놨지마는서도 주 남선 목사님은 평소에 믿음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럴 때도 인정이 됐지마는서도 ○장로하고 ○○조사하고는 인정이 안 됐다 말이오. 믿음을 덜 만들어 놨어. 고보다 좀 쉬운 데서는 믿지, 어려운 데는 못 믿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만들고 만들어서 이 세상에 최고의 어떤 일이 닥쳐도 요동치 안할 수 있는 믿음을 자꾸 키워 나가요. 믿음을 자꾸. 자기가 스스로. 믿음을 만들라고 우리에게 현실을 줘. 현실을 주는데, 나는 믿는 줄 알았는데 그 다음 현실을 보니까 고만 믿음이 그거 가짜고 고만 믿음이 없고, 이래서 현실에서 자꾸 믿음을, 아는 양을 자꾸 넓혀서 한 진리 알다가 두 진리 알고 또 그다음에 한 진리라도 또 깨닫고 더 깨닫고 더 깨닫고 더 깨닫고 자꾸 깊이 깨달아.

또 인정도 자꾸, 요런 어려움에서 인정하던 것이 더 어려움에도 인정하고 더 어려움에도 인정하고, 더 어려움에도 인정하고 최고의 어려움에도 믿는 인정하는 그 인정이 변동되지 안하고 요동치 안할 수 있는 그런 인정으로 자꾸 길러간다 그말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는 뭐이지요? 삼 요소 중에 하나는 뭐입니까? 실행, 실행. 그러면 실행인데 고 말씀대로 행하는데, 고 말씀대로 행하는데 쉬울 때는 행했지만 어려울 때는 또 못 행해. 요 환경에는 못 행했어.

그 다음에는 노력해 가지고 고런 환경에 또 행해. 고런 환경에 또 행해. 온 세상에 어떤 역경이나 환경이나 어떤 존귀나 어려울 때는 잘 승리하더니마는서도 고만 영광과 좋은 게 오니까 고만 툭 떨어져 버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려움은 좋아서 어려움 나빠서 어려움, 고생스러워 어려움 평안해서 어려움, 그 두 가지 어려움의 종류가 있는 것인데, 그러면 이런 저런 데도 실행이라. 그 실행을 자꾸 길러서, 아무리 좋아서 천하에 제일 좋은 자리에 올라가도 믿음 배반치 안하고, 또 천하에 제일 고통스러운 자리로 닥쳐도 실행 배반치 안하고, 그 실행이 여게도 변동 없고 저게도 변동 없고 이라는 것이 믿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 만드는 요소가 몇 가지 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저 뒤에.

녜, 이 세 가지로 만들어요.

세 가지로 만드는데, 믿음을 인제 만들고 난 다음에는 써먹어야 됩니다. 써먹어야 되는데 써먹는 거는 쉬워요. 만들어 놓으면 써먹기는 쉬워요. 써먹는 거는 뭐이 써먹는 거냐 하면은, 큰 어려움을 닥쳤습니다. 이제 다니엘이 지금 사자구덩이에 들어가서 집어 넣어서 사형을 받는 이 큰 어려움을 닥쳤는데 그때도 그때 믿음을 써먹는다 말이오. 그때 믿음을 써먹다니? 뭐 써먹어? 내나 믿음 만들어 놓은 것 세 가지라.

그때 하나님의 계약을 알고, 하나님의 계약에 뭐라 했지?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 해도 듣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는 계속하라 했다. ‘하나님 말씀에 기도하라 했다.’ 하나.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 이러니까 또 하나님을 인정하는 인정을 또 그때 쓰지, 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쓰지, 그러니까, 믿음 써먹는 게 뭐하는 게 아니라 이 세 가지 만들어 놓은 것 고대로 지금 고것 써먹는 게 믿음 써먹는 겁니다. 이 세 가지로 만들어 놓은 것 어데서든지 이 세 가지 써. 아무데도.

뚱딴지 같은 사람 저 사람 지금 큰 지금 망할 일이고 큰 일이 닥쳤는데, 큰 일 닥치니까 야 사람아 지금 위에 상관에게 가서 교제도 하고, 좀 또 이렇게 모든 사교도 하고, 좀 선물도 하고 어째라 하니까 이거는 맹꽁이라 아무것도 없어. 이 큰 일이 닥쳐서 지금 죽을 지경이라 다른 사람은 벌벌 떨고 있는데 ‘야, 이 큰 일 닥쳐 어짤래?’ `뭐 그거 문제가 없어.' ‘네가 어짤라고?’ `믿음만 하면 되는데.' 믿음만 하면 되는데. `여게 그러면 뭐 할래? ‘믿음만 하면 되지, 믿음 쓰지.’ 그것도 보니까 믿음 쓴다고 믿음만 떡 들고 옵니다.

믿음만 떡 들고 와요. 믿음을 떡 들고 오는데 그 믿음은 몇 가지로 되어 있는 믿음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로 되어 있는 믿음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고만 못 든다. 이 몇 안 들었어. 세 가지로 만들어 놓은 믿음 아니요? 믿음은 이 세 가지로 만들어 놓은 것 아니야? 그러면 믿음 쓰는 거는 어떻게? 이 세 가지로 만들어 놓은 이 세 가지 쓰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 세 가지 써. 믿음 쓴다 말은 이 세 가지로 믿음을 만들었는데 이 세 가지 써먹는 거라. 그러면, 믿음을 만들어야 쓰지 만들기 전에는 못 써요.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을 제가 평소에 알아 놔야 되지, 그런 성구가 있는 것을 몰라 놓으면 안 돼. 그러니까 성경을 자꾸 읽는 거라. 양적으로 하나님의 계약을 알아야 되겠고, 알고 난 다음에 제가 만들어 놔야 되지, 인정되는 걸 만들어 놔야 되지, 지금 닥치기는 태산 같은 산벼락 같은 어려운 일이 닥쳤는데 자기가 인정하는 것을 만들어 놓은 거는 평안 무사시 때 좋을 때 그때 ‘믿습니다’ 하는 그 인정만 만들어 놨으니까 그 어려움 닥치면 바싹 깨져 버리고 헛일이라 말이오. 안 만들어 놓으면 못 써요. 불 속에 들어가도 그 인정이 깨지지 않는 그런 딴딴한 믿음이라야 돼. 불 가운데 들어가도 깨지지 안하고, 사자구덩이 들어가도 깨지지 안하고, 또 감옥에 가도, 요셉이는 감옥에 가도 깨지지 안했어.

깨지지 안하는 그런 딴딴한 여문 인정을 만들어야 되지, 또, 그런 어려움에서도 조금도 상관없이 그대로 행하는 것, ‘나는 기도 합니다.

우상에 절하지 않을 줄 아십시오.’ 그게 행하는 거라. 어떤 일을 닥쳐도 그 행동이 깨지지 않는 따글따글한 그 야문 행동, 야문 행동 여문 인정 똑똑한 성경 지식 요 세 가지를 만들어 놔야 써먹지 평소에 만들지 안하는 것이 믿어져야지 뭐 그때 가면 믿어지지 안한다 그말이오. 믿어지지 안하지. 그때는 행하면 이거 큰 일 나겠다 싶어서 행해져야지, 행하지를 못하겠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결론은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자. 어데든지, ‘저 사람은, 저 어데든지 뭘로 할래?’ ‘믿음이면 되지 뭐.' 허허 그거 참, 믿음만 하나만 하면 돼, 믿음 하나만, 불이 나도 믿음 하나면 되고, 사형을 받아도 믿음 하나면 되고, 사자구덩이 들어가도 믿음 하나면 되고, 믿음 하나만. 믿음 하나만 가지면 그 사람은 사자구덩이에 들어 가서 먹혀도 성공, 온 세계는 점령했어. 세상이 와 가지고서 꺾을라 할 때에 그 믿음이 꺾어지지 안하고 믿음이 승리했으면 믿음이 승리한 그 믿음에게 진 거는 다 내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그것에게 졌으면 그것은 내 상전이요, 나는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이 비결을 알고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는 이 일을 여러분들이 어데서든지, 매일 ‘너 뭐 하노?’ `나는 믿음 만들고 있다' `뭐 할라고?’ ‘공산주의가 와서 너 예수 믿으면 죽인다 할 때도 주여 믿습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인 것을 믿습니다. 주님은 나의 보호자이신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모든 주권 개별 섭리를 믿습니다. 이 믿음이 요동치 안할라고 지금 믿음 만드느라고.’ ‘너 지금 이거 환난 왔는데 지금 피난을 가든지 해야지.’ ‘나는 피난 안 가. 나는 믿음이야. 하나님이 요리 가라 하면 요리 가고 조리 가라 하면 조리 가고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이것 하나가 내 모든 승리하는 비결이라.’ 그것이 믿음 써먹는 사람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매일 삼십 분 기도 이것 쉬지 맙시다.

이렇게 자꾸 듣고 난 다음에 그저 지내 듣지 말고 기도할 때는 다른 것 기도하지 마. 기도할 때는 하나님 말씀을 자꾸 생각해요. 이 말씀을 자꾸 생각하면 속에서 힘이 나와요. 이 말씀을 생각하고 생각하면 힘이 나와서 주여! 그럽니다. 빌립보 옥중에서 바울이 그래 한 것 우리가 체험할 수 있지 안해요? 우리가 이렇게 있다가도 이 공연히 가만히 이래 살살살 이래 기도하다가도 말씀을 이래 자꾸 새김질하며 이래 기도하다 보면 기도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주여! 그만 고함을 꽉 지르게 됐다 말이오. 그거는, 그거는 속에 불이 콱 나와서 고만 꽉 지르는 거라.

그거 가지고서 천지도 진동시키고 모두 승리한 것이라.

믿음 만들고 믿음을 써먹는 것 단단히 기억합시다. 기억하고, 자꾸 믿음을 만들어요. 쉬지 말고. 공장에서도 믿음 만들고 어데서든지 만들 수 있어요, 이거는.

주님이 전부 믿음 만들라고, 현실 주는 것은 전부 믿음 만들라고 주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 현실을 하나도 허비하지 말고 그 현실에서 믿음을 잘 만들어서 어데서든지 믿음을 쓸 수 있고, 여게는 써먹을라 하니까 믿음이 바싹 깨져 버렸습니다. 여게는 있지만 여게는 쓸라 하면 믿음이 바싹 깨져 버렸어. 그러면 안 돼. 어데서든지 믿음이 깨지지 안하고 믿음이 끝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 고런 믿음을, 자꾸 탄탄한 믿음을 만들어요.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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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32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으라/ 히브리서 12장 2절-8절/ 860224월새 선지자 2015.10.31
»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으라/ 히브리서 12장 1절-8절/ 860301토새 선지자 2015.10.31
330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어라/ 고린도전서 1장 20절-21절/ 851201주새 선지자 2015.10.31
329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어라/ 갈라디아서 4장 19절-31절/ 851104월새 선지자 2015.10.31
328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어라/ 고린도전서 1장 19절-25절/ 851129금새 선지자 2015.10.31
327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어라/ 고린도전서 1장 20절-21절/ 851127수야 선지자 2015.10.31
326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어/ 고린도전서 1장 21절/ 851130토새 선지자 2015.10.31
325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어라/ 고린도전서 1장 20절-21절/ 851128목새 선지자 2015.10.31
324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어라/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851105화새 선지자 2015.10.31
323 믿음을 더하는 방편/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30803수야 선지자 2015.10.31
322 믿음을 구하라/ 에베소서 1장 15절-23절/ 790824금야 선지자 2015.10.31
321 믿음은 주님과 결합되는 것/ 요한복음 14장 8절-23절/ 871212토새 선지자 2015.10.31
320 믿음은 전능/ 누가복음 8장 49절-56절/ 850908주전 선지자 2015.10.31
319 믿음은 전능/ 히브리서 11장 1절-2절/ 850908주후 선지자 2015.10.31
318 믿음은 전능/ 야고보서 2장 14절-20절/ 880930금새 선지자 2015.10.31
317 믿음은 전능/ 히브리서 11장 1절-2절/ 850911수야 선지자 2015.10.31
316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마가복음 9장 21절-27절/ 880630목새 선지자 2015.10.31
315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히브리 11장 5절-6절/ 870129목새 선지자 2015.10.31
314 믿음으로 죽은 것이 살아나는데/ 요한복음 11장 39절-44절/ 871210목새 선지자 2015.10.31
313 믿음으로 얻는 구원/ 디모데후서 3장 15절/ 861219금야 선지자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