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묵상하는데서 변화

 

1985. 2. 19. 화새벽

 

본문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 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여게 28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만일 주시어든' 하는 이 만일에 대해서 그 뜻을  오해하기 쉽겠습니다. '만일' 하는 말은 우리 말로 이래 쓸 때에는 '혹 만분지  일이라도 주님이시거든' 그렇게 아주 그저 확신이 아주 없는 그런 말로 그렇게  듣기 쉽습니다. 그러면 '주님인지 주님 아닌지 모르겠는 데 혹 주님이시거든  만일 주님이시 거든' 이렇게 듣기 쉬운데 그 다음에 베드로가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할 때에 오라 하시니까 물 위에 아주 뛰어내려서 내려서서 걸어간 걸  보면 믿음에 대해서는 의심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만일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주님이 자기 보기에 자기 주님인지  주님이 되시는지 안 되시는지 하는 그런 말이 아니고 자기는 감히 참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그런 자인데. 이 베드로는 대단히 성질이 빨랐고 아주 깨달으면  즉시 행동을 취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감히 내가 주님을 내 주로 이렇게 모실  수 없는 이런 자이지마는서도 나를 주 믿는 사람으로 주님이 내 주님이  되신다면 그가 깨달아서 놀랄 때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하는 그런 말을 고기 잡았을 때에도 말을 했습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감히 나는 주님을 모실 수 없는 사람이요 주님과 같이 있을  수 없는 사람이요 주님이 내 주님이 되었다고 참 인정할 수 없는 그런  자입니다. 내가 어떻게 주님을 모실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죄인 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하는 그말과 꼭 그 내용이 같은 말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오라 하는 그 말씀은 베드로의 그 대답에 대해서 나는 네  주가 확실하니 네가 오라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베드로는 그때에  자기로서는 감히 나는 주 믿는 사람이 아니요 나는 주님 앞에 용납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의 부족을 깊이 느끼고. 그런데 주님이 자기를 영접해 주시니까  자기는 그 이상 더 소원이 없고 만족이 없었던 그 기쁨 상태를 가졌던 것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그렇게 그립고 그렇게 좋고  이러니까 주님이 명령하시는 그 명령에는 어떤 명령이 라도 다 그대로 형통할  뿐만 아니라 또 그 명령에는 죽는 명령이라도 어떤 명령이라도 주님의 명령에는  복종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간절했던 것입니다.

 그거는 자기의 부족을 느낀 것과 또 주님이 어떻게 크신 분과 주님과 자기와의  거리는 너무도 많아서 감히 주님을 상대할 수도 없는 그 거리가 먼 데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시고 구원한다는 것은 그 감격에 못 견뎌서 그 감격에 못 견디는  그런 심정이 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감과  자기가 부족한 것과 상대방은 큰 것 자기는 부족하고 상대방은 크다는 거 이런  것을 생각하고 상대방이 자기에게 대해서 부족하니 감히 이것은 받아 주지도  안할 것이고 접촉해 주지도 안할 것이고 이거는 뭐 상대해 주지도 아니할  터인데 자기를 상대해 주는 그런 때에 감격한 그 마음들은 우리가 보통  생활에서도 잘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베드로와 주님과 그 사이. 베드로가 주님을 보고서 생각한 것은 이런  심정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런데. 주님이 나는 네 주님이니 염려 말고 오 라  하는 그 명령에 순종하고 싶은 그 주님의 명령에 한번 순종하고 싶은 마음  상대방이 크니까. 주님이 뭐 시키는 데에 한번 그 시켜 주심을 받는 그 영광 또  시켜 주실 때에 순종하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 그것이 이 베드로에게 있었던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안 한 비천한 사람인데 참 어떤 이 세상 높은 사람이라도  자기는 아주 티끌 같이 생각하고 그 진토같이 먼지같이 아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그렇게 쌍방의 관계가 층하가 있는데 상대방이 자기를 인정해 주고 자기를  사랑해 준다는 거게 대해서는 감격의 눈물이 나는 것이고 참격의 마음에  상대방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 또 자기의 희생을 아끼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베드로는 요런 심정으로 화해졌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도 주님을 상대할 때에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닌 자기의 자기의  낮은 거, 자기가 실상 자기를 아주 가치가 허무하다는 그 허무를 자기가 느끼고  또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어떻게 존귀하신 분인 것을 깨닫고 주님과 자기와의  그 거리는 말할 수 없는 멀고 감히 주님이 자기 같은 것을 생각해 줄 수 없는  이런 것을 깨달았을 때에 자기는 주님이 자기를 사랑해서 자기를 상대함에  대해서는 뭐 죽는 것이고 사는 것이고 상관 없이 주를 위해서 충성하고 싶은 그  마음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거는 우리 보통 사람들도 사람된 사람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로 쌍방이 관계를 가지는 데에는 그 상대를 자기와 같게 여기는  데에서 거게서 조심이나 또 감사나 두려움이나 그 소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자기가 상대방 보다 크고 높고 이렇다고 자기가 인정이 돼지고 상대방은  자기보다 아주 작고 낮고 그렇게 참 무가치한 사람으로 이렇게 생각할 때에 그  사람은 상대방에게 대해서 하는 일이 모든 일이 조심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조심 있을 리가 없고 주의할 리가 없고 감사할 리가 없고 뭐 충성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거는 사람이 서로 교제하는 데에 다 그러합니다.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 데에 그 자기의 부족과 상대방을 높이는  여게서 감사함이 있는 그런 거 하나 있고, 그게 또 없을라면 아주 자기는 크고  높은데 상대방은 아주 불쌍하게 가련하게 여겨서 그 참 측은하게 여겨 가지고서  가련하게 여겨서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갓 낳아 놓고 난 다음에 그것은  자기에게 모든 전부가 다 죽고 사는 것이 매였으니 거게 대한 책임감으로  그렇게 관계를 가지는 것과 여러 가지 관계를 가지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도 아주 상대방을 너무 허무하고 약하기 때문에 자기가  책임감에서 그렇게 가지는 그 교제에서 봉사가 있을 것이고 인내가 있을 것이고  희생이 있을 것이고, 또 상대방이 자기보다 월등하게 높은데 자기에게 대해서  그렇게 인정해 주는 그런 일에는 그 인정해 주는 그 사랑이 다 뜨겁고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충성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상대방과 자기와 꼭 같다고 이렇게 볼 때에는 일대 일이기 때문에 거게는 아무  작용이 없는 것이요 언제든지 뻔뻔하게 자기는 자기대로의 자존심을 가지게  되고 상대방은 상대방대로 자존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는 아무런  상대방을 대해서 희생하는 것이나 또 충성하는 것이나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희생과 서로 상호 관계에서로 상호 관계에 충성이든지 충성이  아니면 희생이든지 희생이라 말은 봉사라는 말과 한 가지 말인데 충성이든지  희생이든지 그 둘이 있는 데라야 거기에 그 건설이 이루어 나가지 건설이 돼  나가지 그것이 충성도 없고 희생도 없고 일대 일로 돼야 되는 데에는 언제든지  투쟁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부간이든지 또 같이 동역하는 사람들이든지 자기가 직장을  가진 그 직장에서든지 언제든지 뭐 나도 자기도 자기대로 당당한 하나로 알고  상대방도 상대방도 당당한 그 하나로 이래 알 때에는 언제든지 일대 일입니다.

일대 일인 데에는 거게는 투쟁만 있지 거게는 아무런 그 인간을 초월한 그런  건설적인 그런 아름다운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모두 결혼하는 데도 똑 같은 사람이 결혼할라 하는 그런 것은 서로  같은 동등이 돼야 멸시도 천대도 받지 안하고 다 서로 이래 일대 일로 이래  상대해서 하겠다는 그런 것이지, 그런데 그런 부부는 절대 이상적인 그런  기이한 건설은 없습니다. 그저 참 자기가 그 부부간에든지 또 동역자간에든지  어데든지 거게 자기가 충성이 있든지 그리 아니면 희생이 있든지 둘 중에  하나가 있어야 거게는 인내가 생겨지는 것이고 계속이 되고 그 모든 애로를  극복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는 데에는 애로라는 그런 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나 인내나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와는 아주 다릅니다.

 자기의 부족감을 느끼고 상대방의 존귀함을 느끼는 거게는, 그 존귀함을  느끼는데 상대방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사랑하는 그 사랑을 가지게 됐다 하면은  상대방은 높고 자기는 아주 비천한데 서로 사랑의 관계를 가지게 됐다.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하게 되고 자기도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는 그런 사랑의  관계를 가지게 됐다. 그런 관계를 가졌다고 하면은 상대방이 높으고 자기는  낮으면 거게는 필연적으로 무엇이 생겨지겠습니까? 어떤게 생겨지겠습니까?  어떤게 생겨지겠오? 충성이 생겨집니다. 충성이 생겨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상대방이 아주 낮고 자기는 크고 높고 그러면 자기는 상대방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희생이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기가 낳은 자녀에게 대해서 충성이 생겨집니까, 희생이  생겨집니까? 희생이 생겨집니다. 희생이 생겨지는데 그 희생이 차차 차차  없어집니다. 희생이 차차 차차 없어지는 것은 뭣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 부모의  희생이 차차 차차 없어지게 됩니까? 저 ○○○집사. 녜, 그 아이가 점점  자람으로 차차 차차 얼대 일이 돼 가면은 그 희생이 필연적으로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또 자기가 상대방은 크고 자기는 작은데 상대방이 작은 자기를.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시옵소서' '내가 감히 말하지 못  하시지마는서도 만일 내 주님이시거든'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그 루디아가  바울에게 대해 말했습니다. '나를 만일 주 믿는 사람으로 인정이 되거든 내  집에 와 가지고서 유숙해 주십시오' 하는 그런 말 했는데 그런 것이 다같은  성질의 그 인간의 심 리성이요, 인간의 심리성이 곧 영감성입니다.

 그렇게 낫다고 생각할 때에 그때는 희생이 자꾸 생겨지고 또 자기보다 높은데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자기를 사랑할 때는 거게서  감격해서 충성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자꾸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충성이  없어지는 것은 내나 상대방에 대해서 존경이 없어지는 것이요 존경이 없어지고  제가 자꾸 크지고 높아지니까 '이제는 충성 할 거 없이 뭐 내가 나 위해서 살지  뭐 그럴 게 뭐 있나?' 감격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서로 상호 관계에는 이  감격이라는 이 감동이라는 감격이 없으면 거게는 아무 무의미한 관계요 거게는  건설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요거는 만일이라 하는 고것을 혹 잘못 알고 언제 내가 그전에 요 만일에  대해서 퍼뜩 말했는데 고 만일에 대해서 이 '만일'이라니까 확신이 없는 말을  가졌다 하는 그런 걸로서 보기 쉽다 말이오.'만일 주시어든' 그러면 주님인가  주님이 아닌가 그것도 똑똑히 믿지도 안하고 '만일 주님이면' '혹 주님이  되십니까?' 하는 그런 의심하는 그 강한 그런 표현으로 이렇게 보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잠깐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말하고자 해서 이 마태복음 14장을 또 읽게 된 것은 이것입니다.

그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들은 거게서 사람들이 변화가  됐습니다. 또 주님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서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그 사람들이  또 변화가 됐습니다. 또 주님이 하시는 그 모든 역사를 보고서 또 그들이  변화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그 목적지를 갈라고 할 때에 아주 형통하게 순조롭게 잘 갔습니다.

가다가서 고만 이 풍랑 만나 가지고 가지 못하고 고난을 당했습니다. 당하고 난  다음에 처음에 갈 때의 사람들과 뒤에 풍랑 만날 때의 만난 그 후의 사람과  이렇게 비교를 여게 다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갈 때 사람은 어데 뭐 그렇게 그런 사람이 어데 기록되어 있느냐? 기록  안 되어 있지마는 우리는 거게서 얼마든지 거게서 추상을 할 수 가 있습니다.

왜 있느냐?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지금 그 모두 다 베드로나 그런 사람들도  그물과 모든 배를 다 집어던져 버리고 주님을 따라다녔을 때에는 주님 한  분이면 다 되는 그런 소망이 찼던 것이 분명하고 또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죽은 자를 살리고 오만 거 다 안되는 거 없었고 이러니까 그때 주님이 우리  임금이 됐으면 되겠다 하고서 모두 억지로 임금을 삼을라고 이렇게 애를 쓸  만치 예수님에 대해서 그들이 확실히 알았고 또 소망을 가졌고 변화가 됐던  것인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주님의 말씀과 영감과 주님의 하시는 기적을 호고서 그  사람들이 그 변화된 사람들이 됐다, 변화 됐었다. 우리가 봐도 무슨 은혜 있는  집회만 가 가지고 한 며칠 동안 집회만 참석해도 고만 우리는 뭐과 거도 잊어  버리고 세상일도 잊어 버리고 자기 어떤 형편의 이런 것도 잊어 버리고 그만  변화된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 집에 돌아오면 자꾸 이것 저것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그 변화된 사람은 또 변화가 돼 버립니다. 내나  옛사람으로 그만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제자들이 변화산에 가 가지고도 그 예수님과 또 그엘리야와 모세가 그렇게  셋이 회의하는 것을 보고 거게서 말씀하는 걸 듣고 이라니까 그만 마음에 확  사람들이 변해서 '아. 우리가 장막 셋을 지어 가지고 그만 여기서 삽시다.'  그걸 봐서 모든 자기의 과거 형편이라 하는 것을 다 잊어 버렸다는 것을 또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이런 사람들이 돼 가지고 주님이 가라 하시니  하는 그 명령 순종으로 갔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이 돼 가지고 그 명령  순종하는 그 명령에야 그게 얼마나 거게 대해서 의심이나 뭐 있겠습니까? 참  그거 외에는 다른 거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가다가 형통했습니다. 그라다가 차차 차차 이 두 가지를 잊어 버리는  거 잊어 버렸다는 말이 거게 어디 있는가? 없지마는 우리가 그 신앙의  경험에서도 그렇게 주님 말씀 듣고 이라다가 이 세상에 이런 거 저런 거 주님이  시키시는 말씀대로 행한다고 해도 이리 저리 행하다가 보면은 차차 차차 주님과  멀어지고 고만 말씀도 멀어지고 자기와 그 사건과 자기와 사람과 자기와 물건과  그 단 둘이만 상대해 버리고 다른 거는 다 잊어 버린 그런 사람이 되더라  그거요. 우리의 경험에서 그렇고 또 여게 보니까 그렇게 됐다 그거요.

 나중에 보니까 주님에 대해서는 생각 하나도 없으니까 주님이 물 위로 걸어  오신다고 해도 그들이 처음에 믿을 때는 뭐 주님이 모든걸 지으셨고 이랬으니까  날라와도 주님이 날라오신다 이랬지 뭐 이상하게 보지를 안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물 위로 걸어 오는 유령이라고 그렇게 하는 걸 봐서 완전히  잊어 버렸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내로라 하니까 베드로가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옵소서' '걸어오라 하십시오' 한 걸 봐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그들이 완전히 그만 당장 변해져 버렸다. 그 공포와 비겁이  염려가 의심이 다 없어져 버리고 확신과 담대와 평강으로서 넘쳤다, 주님에게  복종하고 싶은 소원으로 넘쳤다 한 그것을 또 여게 나타내고 있다 말이지  간단하게.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어제와 같습니다. 어제는 시펴 1편의  말씀을 봤는데 읽어도 여호와의 말씀으로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읽는다 말은 하나님이 이렇게 계약했기 때문에 전부 계약이라 말은  계약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계약이라 말은 조건이라 말입니다.

계약이라'말은 조건이라 말이오. 계약이라 말하는 것은. 상호간에 계약했다  그말은 상호간에 조건이 있다 그말이오. 상호간에 계약했다 그말은 상호간에  조건이 있다.

 주님과 우리와는 조건이 있는데,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러면 왜  성경을 즐거워 하느냐? 여기 성경에는 주님과 나와의 그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이  조건만 착착 찾아 가지고서 내가 요 조건 행하면 당신이 또 고 조건 행해야  되고 이렇게 상호 관계가 되기 때문에 이 면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고 이랬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뭐이냐?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하고 이 말씀을 읽고 많이 읽고 듣고, 또 이 말씀을 묵상하고 그러면 거게서  성신의 감화도 오고 모두가 돼집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뭐인 가? 이 말씀은 곧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문서로 나타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또 예꾸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감동시키는 감동으로  나타나는 그 감동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대형한 사죄를 주셨고 칭의를 주셨고 화친을  주셨는데 예수님의 그 성령과 물과 피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증거를 해서  우리가 자꾸 그 증거를 받아 가지고 사람이 변화되는 그것을 성경에 말했는데  이 셋은 셋이 아니고 셋이 하나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이 셋이 어디 있는가? 이  셋은 신구약 성경 말씀 안에 있습니다.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자꾸 읽으면  내가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충만해지고 또 진리로 충만해 지고 영감으로  충만해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 읽고 내가 명상하고 명상하는 그것이  유일한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면 하나님 앞에 거저 뭐 달라 하는 그것이  기도인 줄 알지마는서도 성도의 기도 가운데에 제일 시간을 많이 들이고 많은  기도가 어떤 기도냐 하면은 감사 기도입니다. 주님이 내게 어떻게 하셨느냐  하는 그걸 생각하는 것이요, 또 그 다음에는 내가 주님에게 어떻게 했노냐 하는  그거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거 내가 주님 앞에 어떻게 했느냐 하는 그것이  결과적으 보면은 자복 기도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자복할 거 밖에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자기의 모든 사정을 도고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기는  주님에게 맡길 수 밖에 없고 주님에게 간구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밖에 없다 하는 그것이 간구의기 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의 그 끄트머리만 따 가지고서 감사 기도. 자복 기도, 모든  것을 도고하는 도고 기도. 또 간구하는 기도 이렇게 한 것이 그것이 전부가 다  주님과 자기와의 둘이 서로 교제해서 주님을 자기가 상대할 때에 이게 나오는  것이지 주님과 자기가 상대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나온 것이지 이거 주님과  자기가 상대하지 안하고 자기 욕심에서 나온 거, 아 내가 이런 욕심이 이런  소원이 있으니 주님 앞에 구해야 되겠다 하는 이러 기도는 전부이 다 그거  도둑놈의 기도지 아무 소용이 없는 기도입니다. 감사도 별별 종류 있는데. 다  전부 자기가 왕이 되어 있으면 전부 그거는 속고 마는 것이 핀연적으로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가 읽고 듣고 자꾸 묵상하고 자꾸  생각하고 이래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진리와 영감과 자기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되는 것이요 그러면  예수님의 피를 생각지 안해도 성경 말씀은 성경 말씀 그 전부가 다 예수님의  피공로를 이렇게 분산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를 분산해 놓은  것이요. 성령의 감화를 분산해 놓은 것이요, 진리를 분산해 놓은 것입니다.

분산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걸 똘똘 뭉쳐서 다 뭉치면 그 뭉텅이는 많은데 그  뭉텅이를 뭉쳐 가지고서 그것을 분석하면 성령과 진리와 피 이 셋이 합해  가지고 하나 되어 있는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듣든지 읽든지 자꾸 그렇게 이 말씀을 접해 가지고 이 말씀을  묵상하면 자기와 주님과의 관계가 자꾸 변해집니다. 변해지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할 것이 뭐이냐 하면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뭣이 나옵니까? 자꾸 순종하면은 거기서 이제 주님이면 자기 전부다  주님이면 자기 전부요 자기에게 모자라는 거 없이 주님이면 자기의 전부의  전부가 뭐 되고 얼마든지 무한히 남는다 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 졌는데,  그러면 이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졌는데 하나 남은 것이 뭐입니까? 두 가지라  했는데 하나 남은 것이 뭐이요? 예? 두 가지인데 하나 남은 것이 뭐입니까?  크게 말해 봐. 어? 뭐라 하노? 그래 뭐 이라? 하라는 뭐? ○ 목사님, 참 저거  참 이상하네. 와 ○ 장로님을 ○ 목사라 해? 저 목사 될 모양이야 어? 표적,  표적. 그까짓 거 사업이고 생각하면 마귀 들어오는 거라. 다 치워 버리고  어짜든지 요대로의 요 둘만 하면, 요새 반사 해요? 반사하는데 그러면 요새 뭐  사업해? 치워 버리고 반사 자꾸 하면 반사하면 반사하는 가운데에서 또 뭐 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자꾸 주님이 주는 것만 해요. 주는 것만. 나중에 가서  장사를 하라 할란지, 사장을 하라 할란지 대통령을 하라 할란지 그거 몰라.

주님이 주시는 대로만 자꾸 하라 그말이오. 그러면 일이 돼져 나가. 요 믿으면  참 지극히 큰 승리요 성공이요 행복인데 사람들이 안 믿어 탈이라.

 표적을 봐야 되는데 이거 죽는 자도 살고 죽은 것도 예수님이 살리고, 또 삼십  팔년된 병자도 살리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오천 명도  먹이고 여러 가지 표적을 봤는데 이 표적을 볼라면 어데 가 봐야 되겠어?  표적의 종류를 알라면 몇 종류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표적의  종류를 나눌려면 종류가 몇 종류 있다고 했던고? 표적이 몇 종류 있어? 다른  사람 손가락 가리켜 봐요, 모두 다 듣지도 안하고 전부 이래 놓으니까 저 어떤  사람은 또 뭐 이라나 이라나 뭐이라나 뭐이요? 저 ○집사 보자. 서이? 표적서  이, 한번 말해봐. 무슨 표적 무슨 표적 서인고? 어? 무슨 표적 무슨 표적이  서이라? 표적의 종류가 서이라면서? 또 뭐 저 뭐꼬 이것 저 뭣이가 뭐꼬? 저  ○선생, 표적 둘이야 표적이 둘, 둘 이래 해야 돼. 이래. 뭣 몇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라 하니까 하나도 못 가리켜. 이래야 돼. 이래 둘, 둘.

 둘은 주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행하신 표적, 그거 하나 있고 또 그 하나는  주님이 자기에게 행하신 표적이 있어. 남의 표적은 볼라면 뭐 이러 모든 전기나  그런 것을 많이 읽어야 하겠고 또 많이 들어야 되겠고 많이 보아야 되겠고 힘이  들지마는 또 힘이 들어 봤자 딴지 않애. 자기에게 있는 표적은 자기 행동마다  표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돼 가지고 주님이 멍하시는 대로 복종만  하고, 복종하고 이런 사람이 돼서 주님의 명령대로 복종하면 그 복종한 끝에는  뭐이 나옵니까? 나오는 게 뭐이요? 어? 어? 표적. 나오는 거는 표적 뿐이라.

표적뿐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 기독자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전부 기적으로  표적으로 이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부 하나님의 힘으로 저거 힘 아니고  하나님의 돕는 그 능력으로 기적으로 살아나온 것과 꼭 같이 오늘 우리믿는  사람들도 세상에서 하늘을 '향하여 가는 이 걸음은 전체가 표적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인데, 우리가 이런 사람이 돼 가지고 순종하지 안하기 때문에  표적을 못 봤고 또 순종을 해도 자기가 관심을 가지지 안하고 고만 이렇게 벌로  행했기 때문에 표적이 나타나도 다 잊어 버렸다 그거야 잊어 버린 사람 많아요.

 이런 사람이 돼 가지고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은 이것은 다 전능이다,  다 영생이다. 이것을 깨닫고 요런 사람이 돼 가지고 요런 명령인 줄 알고  순종한 사람은 고 다음에 표적이 나타났으면 혹 표적을 잊어 버릴 수 있오.

하나도 잊어 버리지 안하고 낱낱이 다 볼 수 있오? 표적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볼 수 있습니다. 다 볼 수 있어.

 요 사람이 안 되고 요렇게 명령 순종이 안 됐기 때문에 그 나타나는 것이  표적이 나타나 표적인 줄 모르고 그만 그냥 지나가고 '모든 사람이 천 인, 만  인이 다 그런 형편과 사정과 처지가 많이 있는데 하필 하나님이 도와서 그거 다  표적이라고 할 게 뭐 있느냐?' 한 보이지요, 그런 사람이 되고 말지요.

 그러나. 자기가 주님은 이래 하신 주님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또 이 주님의  명령 순종은 이거는 전능한 그 행위다 어떻게도 하면 된다. 그러니까 물 위로  오라 하니까 물 위로 푹 뛰어내린 거는 아, 주님의 명령대로 가면 된다는 그  확신이 얼마나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 놀래서 죽는다 하는 사람이 물에 뛰어  내리겠오?  이렇게 요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명령 순종은 절대 전능이다. 주님은 또  이렇게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그분은 참 창조주요 전능주요 또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주님이시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시다. 요 주님으로 믿는 자기가  돼 가지고 주님의 말씀은 요런 말씀인 것을 알고 믿음으로 복종했다고 하면은  복종하고 난 다음에는, '그 모든 된 것이 복종하고 된 것이 다 이거는 주님이  해 주셨다, 주님의 능력이다.' 그렇게 자기는 인정할 수 밖에 없고 말씀대로  했는데 더 어려움이 당하면 어려움이 있으면 또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어려움이 있으면. '아, 내가 요렇게 함으로 어려움 있는 것은 주님이 능력  없어서 요 일을 못 하셔서 요래 닥친 것이 아니고 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요렇게 큰 환난이 닥치는 것은 요 환난 닥친 요것을 주님이 해  주셨다. 요 환난이 평안보다 더 복되기 때문에 요 환난을 주님이 주셨다.

그러면 이 환난이 내게 어떻게 필요한가 보자.' 또 그 소망이 생길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꼭 예수 믿는 거는 전지 전능자가 당신을 이러 하신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과 이러하신 주님의 명령인 줄 알고 순종하는 거 요게서만 믿어  나가고 요게서만 성장해 나가도록 딱 해놨기 때문에 전지 전능자가 요래했기  때문에 요게 딴 데로 불거지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게 입각하지 아니한  자는 제가 아무리 명철해도 제 꾀에 제가 빠져서 다 망하고 말지 그 영생이  이루어지는 그 일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요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될 수가 있어.

 이러니까. 우리 할 일은 뭐입니까? 어짜든지 그저 성경 말씀을 듣고 읽고  아무리 바빠도 직장에 가 일하면서 그라면 모든 성경을 자꾸 읽을 수 없고 뭐  일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겠습니까? 읽을 수 없거들랑 고 몇 절을 외우십시오.

한 절이라도 외우십시오. 외우는 고 말씀을 외우면서 고 말씀을 외우면서 또  생각하고 외우면서 생각하고 외우면서 생각하고 일은 손으로 하고 외우면서  생각하고, 그러면 일은 언제 하고? 그라다가 손 다 칠라고?  자 여러분들 둔한 사람이 잘 다칩니까? 민첩한 사람이 잘 다칩니까? 어떤  사람이 잘 상해요? 둔한 사람이 잘 상해요. 또 그 사람이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일을 낭파를 많이 시킵니까, 어리석은 사람이 낭파를  많이 시킵니까? 어리석은 사람이 낭파를 많이 시켜.

 주님의 말씀을 자꾸 요렇게 사모하고 묵상하고 이렇게 하면 자기라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또 미련한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이  됩니다. 자기를 망치는 자기를 망치는 이 모든 병이 가득 들어 있는데 하나씩  둘씩 치료가 됩니다. 자기를 망치는 병이 치료가 됩니다. 치료되면 건강해지지  안해요? 망치는 병이.

 이 사람이 일생 동안 못 쓸 못 쓸 욕심 하나. 자기 속에 있어 가지고 욕심  고놈 하나 때문에 일생 동안 망치는 사람 많습니다. 뭐 여러 가지 망치는 게  아니라 고 사람은 고 사람은 자기를 망치는 욕심 하나 있어 가지고서 망칩니다.

그놈이 암병 한가지라. 또 자기를 망치는 취미 하나 가지고서 일생을 망치는  거. 고 취미 고놈 취미 마귀가 준 건데 마귀가 준 취미인데 고 취미는 자기와  자기 가정을 다 망치고 자기 일생을 망칠 그 취미 인데, 그놈의 취미가 그렇츰  취미 있어 밤낮 그 취미만 생각하는 수가 있다 말이오.

 그 취미 하나 가지고서 자기 망치는데, 취미 그놈이 자꾸 말씀 생각하니 살살  더 치료가 돼 가지고서 자꾸 병이 녹아진다 말이오. 자꾸 이 병 뭉텅이가 차차  차차 녹아진다 말이오. 그 자기를 망치는 욕심이 치료가 되지 또 취미가 치료가  되지, 자기를 망칠 욕심 때문에 망친 사람 뭐뭐 여기 꽉 찼습니다. 전부 그라면  아마 그 병에 안 걸린 사람이 별로이 없을 거라. 또 그까짓 취미는 평생 하나도  없어도 좋은데 그 망칠 취미 그것 때문에 망치는 사람이 지금 많이 있다  말이오.

 그게 지금 자꾸 이래 놓으니까 취미 그놈을 망치는 것이니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서 자꾸 영감과 진리와 주의 피공로 말씀만 자꾸  생각하고 묵상하면 말씀 속에 뭐이 들었다 했어요 몇 가지들었다 했어요? 말씀  속에 영 가지 들었어?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말씀 속에 몇 가지 들었는지?  모르면 안 돼. 모르면 마귀에게 얼마든지.끌려 가. 말씀 속에 몇 가지 들었어?  저 ○○○조사님. 손가락으로 가리켜봐. 똑똑히 가리키네. 이 세 가지. 말씀  속에 이 세 가지 들었어. 피, 성령, 진리, 이 셋이 들었어.

 이러니까 자꾸 이 말씀을 생각하고 새김질하고 묵상하고 이라니까 이놈이 그  사람은 볼 때에 그래 저 사람이 사람 인간성도 괜찮고 열심도 괜찮고 또 충성도  괜찮고 머리도 괜찮고 또 부지런하기도 하고 또 참고 견디기도 하고 모든 게  쓸모 있는데 저 사람에게는 못 쓸 취미 고게 하나 들어 가지고서 취미 조놈만  쏙 잡아 빼 놓으면 저 사람 당장에 굉장한 사람이 될 터인데 조놈이 들어서  조것 때문에 조것 때문에 자기는 항상 천한 사람 되어 있고 불쌍한 사람 되어  있고 모든 게 불통한 사람 되어 있고 저 사람은 고것 때문에 이것도 못하고  저사람 고것만 아니면 당장에 목사 노릇 할 수 있는데 고놈 때문에 목사도 못  되고 고놈 때문에 존귀해지지도 못하고 고놈 때문에 만날 그 마음은 조마조마  하고서 그 마음은 남한테 뿍 눌려 가지고서 천하게 되어지고, 그 취미 하나  때문에,  어떤 사람은 욕심 하나 때문에 저 사람은 욕심 고놈만 욕심 고것만 쏙 빼내  버렸으면 다른 데 흠이 없는데 욕심 고놈만 쏙 잡아 빼 버리면 저 사람은 인간  중에는 상등 인간이요, 저 사람이 뭣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뭐 오만 거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오. 목사도 할 수 있고 뭐 오만 거다, 하는데 고 사람이  욕심 저놈이 하나 들어 가지고서 안 됐다, 고것도 하나가 있고 어떤 사람은 또  사상, 백지 쓸데 없는 생각. 그 사상 하나가 들어 가지고 또 망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다 좋은데 조 놈의 자존심 조거 자존심 고놈이  고놈이 들어서 죽자껀 해놓고 자존심 그게 들어서 탁 깨 버리고 탁 깨 버리고  이래 가지고서 저 사람은 자존심 고것만 빠져 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그 혈기 오기, 혈기 모든 힘이 구비하고 온전한데  저거는 뭐 닥치면 그만 혈기 가 날 때에는 고만 정신없이 저놈의 혈기하고  성질이 급한 거 하고 다 한 가지입니다. 고 혈기 급한 거 고놈만 빠져 나갔으면  참 쓸모 있는 사람인데 고것 때문에 아무 짝도 못 쓰는 사람 또 있다 그말이오.

 그 사람이 급하다고 해 가지고서 못 쓰는. 아주 급해야 번개같이 급해야  됩니다. 번개같이 급하면서 번개같이 급하면서 그 사람이 또 느리게 할 때 에는  이거는 뭐 참 반석같이 느리게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급할 줄도 알고 느리게  할 줄도 아는 이것이 생명력이 강한 사람입니다. 짐승 가운데서도 저것은 아주  날래기는 짐승 중에 제일 날래고 날래기만 하는 짐승은 못 쓰는 짐승이오.

날래고. 또 짐승은 느릴 때는 저 이상 느린 게 없다. 그놈이 용기를 가진  것입니다.

 이래서, '저 사람은 그 나쁜 말로 말하면 저 사람은 혈기 하나 가지고서  망쳤어? 우리 교역자 가운데에 그 참 쓸모 있는 좋은 사람인데 아주 희망이  있는데 그놈 그 혈기 그거 하나 가지고서 망쳐집니다. 나는 그걸 좀 알기  때문에 저게 참 좋은 점이 있다. 혈기 저걸 죽일 수 안 있겠나? 그래 가지고  등용해 보면은 죽자껀 일해 놓고서 고만 혈기 고놈 하나 때문에 뭐 거석하다  그만 푹 혈기가 올라와 가지고서 다 깨 버린다 말이오. 다 깨 버려요. 다 깨  버리는데 혈기 고놈이 차고 올라와서 푹 깨고 나면은 마귀라 놈이 뒤에 수습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고 말며 말고 이라니까 마음이  탁 풀어져서 낙심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엉뚱하 욕심 하나 뚝 집어 넣는다  말이오. 욕심 하나 넣으니까 둘이 그만 합병이 됐어. 병이 둘이 합했다 말이오.

합병증이 됐다 말이오. 욕심이야. 이라고 난 다음에 또 그게 또 합병 하나  들어서 또 취미 못 쓸 또 취미가 나와서 이래가지고 방종해서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말씀을 자꾸 이래 하면은 치료가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것만 치료되면 다 되는데, 이 치료하고 난 다음에 이제 치료가  됐지, 치료는 되지마는 용기가 안 나온다 말이오. 치료가 됐지마는 서도 용기가  안 나. 용기가 안 나오는 것은 주님은 전능자로도 믿어지고 그는 완전자로도  믿어지고 능치 못함이 없는 자로 믿어지고 다 되는데 과연 주님이 내게 그렇게  해 주나 안 해 주나 그게 문제라 말이오. 주님이 내게 그렇게 해 주지. 아,  주님이 전능자인 줄 알지마는 전능하신 주님이 내게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내게  나를 위해서 해 주시려나 안 해 주시려나 그게 문제라.

 그 문제는 내게 해 주신다는 그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는 데에는 어째야  확신을 가져집니까? 어떻게 하면 확신이 생겨집니까? 어짜면 생겨지지. 확신이?  어짜면 확신이 생겨지지? 아.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이분이 다 할려면 할  수 있는데 내가 그거야 믿는다. 그거는 믿지마는서도 당신이 나한테 그렇게  전지 전능을 가지고서 다 기울여서 해 주시면 그거 야 내가 뭐 하나님처럼  돼지지마는서도 그렇게 해 주실란지 안 해 주실란지 그게 의문이다. 그 의문을  없애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그 의문이 없어 집니까? 저 ○○○집사님. 어?  표적. 표적을 봐야 된다 말이지? 예? 표적을 봐야 된다 말이지? 대답은 잘,  답은 맞도록 했는데 알고 했는가 모르겠어 자 표적을 봐야 되지, 표적을 봐야  됩니다.

 표적 어찌 하면 봐요? ○○○집사. 표적을 어떻게 하면 볼 수가 있어? 자기가  행해 보면 표적 나와. 그렇지 안해요? 주님이 나한테 그래 해 줄 란지 안 해  줄란지 모르겠다 이랬는데 주님 시키는 대로 해 보니까 달칵 달칵 주님이 해  주시고. 시키는 대로 해 보니까 이것도 주님이 시키는 대로 자. 물 위로  걸어오라 하는데 척 내려 걸어가 보니까 걸.어지 거든. 그러면 주님이 시키는  대로 어려우나 쉬우나 시키는 대로 해 보니까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일이  돼진다, 말이오. '햐, 주님이 내게 함께 하시는구나. 함께.' 이래 가지고서  주님이 나한테 함께 하신다. 주님은 이런 전지 전능자시다. 이분이 나에게 이  능력 가지고서 함께 하셔서 내가 당신 시키는 대 로만 하니까 당신이 이 전부의  능력 가지고 나에게 대해서 전부를 가지고 다 해 주신다. 요걸 자꾸 표적을  자꾸 보니까 자. 그라면 그 사람이 무슨 염려가 있겠오? 안 되는 일 있겠오?  요걸 좀 하자 그말이오.

 다른 거 없어. 아까도 말하기를 여러분들이 경험해 보면 알 거야. 자꾸 주님을  가까이 생각할 때 가까이 하고 주님하고 아주 다른 거 없이 주님만 생각하고  진리 생각하고 주님과 가까이 생각해 자기 마음에 생각하기를 '아, 이때는 좀  새 사람이 됐다. 변화 사람이 됐다.' 하는 그런 생각이 됐을 때에 자기를 살펴  보면 압니다.

 그럴 때에 보면은 어떻게 명철한지 할 거 하나도 안 빠져. 그때에 생각이 나  가지고 생각한 거는 틀린 생각이 없어. 실수가 없어 잊어 버린 일이 없어.

주님과 함께 할 때에는 자기가 다를 때에는 열흘도 한 달도 다 잊어 버렸는데  그때 잊어 버린 거 다 생각나. 잊어 버린 거. 그때 다 생각이 난다 말이오. 아  이것도 해야 되고 이것도 해야 되고 다 생각. 그. 이래, 생각 나니까 뭐 생각  나니 모든 거 하는데, 그렇게 생각 나서 하다 보니까 잘못 하면 주님 잊어  버리기 쉽다 말이오. 그래 그렇지. 이 하나님의 도가 얼마나 광대하고 정확한데  안 믿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암만 말해 봐야 소용이 없어  이러니까, 그저 여러분들은 그 세밀한 그걸 지금 말하는 건 자꾸 이런 의심  귀신이 들기 때문에 그걸 없에게 자꾸 이래도 저래도 말하는 것인데 그저  이거는 무조건 여러분들이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자꾸 재독을 들어요. 재독할  때 잠을 못자도 재독 와서 듣고, 또 구역에서 재독할 때에 재독을 듣고. 새벽  기도 와서 말씀을 배우고, 또 성경 자꾸 읽고, 일할 때도 그러면 다른 거 못  하면은 성경, 그 뭐 이런 거는 하도 많이 봐 놨으니까 알 수 있지 않았오?  마태복음 14장에 있는 이 말씀은.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면서 자꾸  생각해요. 일을 하면서 자꾸 생각하고 이렇게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일을  하면서 생각하니 그 속에 자기를 망칠 것이 자꾸 병이 치료가 됩니다. 자기를  망칠 인격의 병이 치료가 됩니다. 사상의 병이 치료가 됩니다. 욕심의 병이  치료가 됩니다. 좋은 욕심만 있고 좋은 욕심이야 있어야 됩니다. 나쁜 욕심은  치료해야 되지 취미도 치료 해야 되지 정신도, 치료해야 되지 모든 거 나쁜 거  치료해지고 좋은 것만 생겨 지니까 자꾸 이러면 자꾸 나쁜게 치료돼지니까 그  사람이 그 일을 그 전보다 잘 하겠오, 못 하겠오? 예? 잘 하겠오, 못 하겠오?  이러면, 여러분들이 반사 노릇 하는 거. 그럴 거라 말이오. 주님을 생각  하니까 자꾸 이래 생각하니까 반사 노릇할 때도 심방을 갈 때도 이래 생각  하니까 가기는 제가 가지마는서도 제가 갔다 그 처음에 이렇게 분석해 보면은  과거에 갈 때의 십배의 사람도 더 됩니다. 십 배의 사람도 더 능력있는 십 배의  능력도 더 가진 사람이 돼 가지고서 심방 갈 때 있고 심방은 가기는  가지마는서도 어떤 때에 그 능력의 백분지 일도 안 되고 가 가지고 송장만  갔다가 고기 덩어리만 왔다 갔다 하지 아무런 능력 없을 때 있다 말이오.

그러면. 주님과 주의 말씀을 새김질하고 주님이 내게 해 주시는 그것을  체험하는 이 제자들과 같이 이런 사람이 돼 가지고 심방가는 데는 그 말의  권능이 있고 또 지혜가 있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거 뭐 얼마나 배워야 되고 얼마나 알아야 되고 할 건데 이 걸  자기가, 그만 듣고 실행해 보면 저절로 알아지는데 듣고 버려 버리지 실행 안  하니까 이런 송장 덩어리 같은 이걸 데리고 가르칠라 하니까 암마 가르쳐 봐야  효력이 없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성경이 다른 거, 껍데기 알맹이를 다 말해야 이거 몰라. 알 맹이  다 치워 버리고 고만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꾸 읽든지 듣든지 하고, 이 말씀을  읽을 수도 없고 일하러 가면 어째 재독을 듣겠오, 설교 들으러 오겠오? 또 그때  누가 설교를 해 주요? 그때 또 성경을 볼 수가 있어요? 성경 보고 어째 할 수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그만 그때는 자기 외우는 말씀, 무슨 성경 본문대로 못 외워도  좋아요. 삐뚤어지게 외워도 좋아요. 그저 성경 말씀만 생각하면서 자꾸 이렇게  저렇게 성경 말씀을, 아, 마태복음 14장에 그 제자들이 갈 때에 이렇게 돼졌다.

그 제자들이 이렇게 이렇게 보니 이런 사람이 됐다. 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는 능치 못함이 없다. 요런 사람이 돼졌다. 이라다가 그들이 어떻게  하다가 그만 그 생각이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니까 모든 풍랑이 일어났다.

 이 자꾸 이런 걸 생각하면 이 생각하면은 이 세상에 마귀는 생각하면은 자꾸  그 일이, 삐뚤어졌으니까 그거 생각하다 보면. 이 기계 일하던 사람이 딴거  생각하다가 손가락도 끊고 그란다. 손가락 끊은 사람은 손가락 끊은 사람은 그  회사 사장한테 돈은 물리지마는서도 실은 끊긴 그 자가 손가락 팔목도 끊겨야  됩니다. 왜? 사실에는 그 엉뚱한 생각해서 그렇소. 엉뚱한 생각. 엉뚱한 생각  그러나 성경 말씀과 주님을 생각하면 그 기계가 내려 와서 푹 찍다가도 들려  올라가요.

이러니까 이 성경 말씀 좀 떨어지지 말고 자꾸 묵상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라면 그행사가 다 형통하다고  하지 안했어요? 그라면서 그대로 순종해 봐요. 요 두 가지만 하면 다 되는 요  두 가지를 해 보면 고만 그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 두 가지 빼  놓고 하든 말든 이 두 가지가 들어서 모든 일을 할 터이니까 하면은 형통해질  터인데 도무지 믿고 행하지 않으니까, 믿고 행한 다 해봤자 숫자가 지금 벌써  수 천명 가운데서 요 몇 몇 사람 안 되는 요것만 와 가지고 여기 와서 지금  이라 가지고 있으니까 뭐이 되겠습니까? 요것만 와 가지고 있으니 요거 뭣  되겠오? 이 사람이라도 실행을 다 하며 되겠는데 요게서도 듣고 버리는 사람 다  있고 촐촐 이래 추리고 저래 추리면 여기 참으로 믿는 사람이 여게 몇이나  될란지?  어리석시 말고, 어짜든지 이제 세상 욕심 그런 거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와 피공로 이 세 가지 욕심으로만 가득차고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하늘과 땅의 것아 다 자기 것 됩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됩니다.

요것 믿고 고대로 한번 해봐요. '그러면,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뭐이냐? 두 가지 밖에 안 시켜. 하지 말라는 거 하나 있고 하라는 거 하나 있고  두 가지 뿐이야 하지 말라는 건 죽어도 하지 말아요, 그까짓 거. 안하면 이거  큰일 나겠다. 안 할라 하면은 뭐 협박도 오고 뭐 별별 일들이 다 있습니다.

있지마는서도 양이 목자에게 안겨 가지고서 가기 때문에 염려할 거 없어.

그러면 별별 일들, 자살도 있고, 죽인다 하고 또 별별 협박 그까짓 거 하나도  염려하지 말고 회개하는 걸음에는 원수가 없어. 회개하는데 그까짓 거 원수  오면 하나님이 탁 바싹 부서 버려서 그렇지 해할 자가 없어. 회개하는 걸음을  아무도 부 술 자가 없다 말이오. 방해할 자가 없어. 담대히 해요. 그래 가지고  좀 변화가 돼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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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말씀의 혜택/ 사도행전 20장 28절-32절/ 860223주새 선지자 2015.10.30
294 말씀이 양식되는 법/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880421목새 선지자 2015.10.30
293 말조심/ 베드로전서 3장 8절-12절/ 840830목새 선지자 201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