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생각하는 믿음

 

1984. 7. 11. 수새 

 

본문 : 히브리서 12장 1절∼2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선지자선교회  이 역사에는 수많은 사람이 왔다 갔습니다. 왔다 간 그 사람들이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에 '잘 됐다. 잘 내가 살았다.' 이렇게 생각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입니다. 모두 다 죽음이 올 때에는 후회가 막심한 것이 사람입니다. 모두가  다 '헛일했다.' 하는 그것이 결산이 되기 때문에, '나는 헛일했다. 나는 잘못  살았다.' 하는 그것이 저희의 일생 생애의 결산이 되니까 그 사람이 평안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이 닥쳤을 때에 사람이 대개는 다 불안과 후회와  근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다가 마지막 숨이 끝날 때 되면 그때는 다시 새로  기쁨을 가지는 것이 기독자들입니다.

 불교인이나 이종교의 어떤 사람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죽음이 가까왔을  때에 후회되는 일이 없고 더 자기가 못 해서 마음에 불만스러운. 그 일을 못  해서 불만스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죽음 좀 전에 가지는 마음들이요, 그  마음이 지나고 난 다음에 아주 마지막 찰나에서는 큰 고민과 고통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그것이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죽음이 조금 거리 멀게 있을  그때까지는 자기가 그 하던 욕심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에  불만스러워하고 더 욕구하면서 평안을 가지지 못하고 욕구하는 그런 고통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불신자들이요, 그러다가 이제는 욕구해야 소용없다 하는, 그  욕구가 끝나면 그만 근심과 고통으로 끝을 마칩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어떤 군인이 의료과에 있었는데 그 환자들이 죽을 때에,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봤는데 그 죽는 사람 그 사람 불신자인데 죽는 사람의 통계를  내기를 제가 말한 대로 이대로 통계를 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보니까  죽을 때가 가까우니까 후회를 많이 하고 자기가 이제까지 산 생활에 대해서  후회를 많이 하더라. 후회를 많이 하디만 후회 끝에는 참 만족과 기쁨과 감사를  가지고 그렇게 기쁨으로 떠나더라. 죽을 때에 이종교인과 기독교인들이  다르더라.' 그래 자기가 '아무래 도 이 기독교에 뭐이 있는가 보다. '최종에  가서 사람들의 변화되는 것 보니까 다른가 보다.' 그래 그 사람이 예수님 믿기를  시작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불신자들은 죽는 그 시간까지 욕심의 만족을 이루지 못해서 욕심에 불만성을,  가지고 그저 '내가 일어나면' 하는 그 욕심에서 있는 힘이 끝날 때 까지 그렇게  마음에 갈급히 가지고 있다가 있는 힘이 끝나게 되면 '이제는 모든 것이  헛일이구나. 나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하는 당황과 두려움과 슬픔을 가지는  것이 불신자들의 전부요. 믿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여간 좀 잘 믿었든지 못  믿었든지 죽음이 가까워 오면 회개를 합니다. '아. 내가 공연히 이렇게 헛된  생활을 하고 말았구나.' 하는 후회를 하면서 '하나님이 지금 좀 살려 주시면  내가, 다문 뭐 몇 달이든지 몇 해든지 혹은 며칠이라도 살려 주시면 내가 사는  그동안에 내가 무엇을 하겠다.' 이렇게 후회하는 그 후회를 가지고 있다가  이제는 힘이 다해서 '다 틀렸다. 끝장났다.' 하는 그럴 때는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공로를 자기가 깨닫고 마지막 단계에는 감사와 기쁨과 만족을 가지고  평소에 그 사람이 듣지도 못하고 또 읽어 보지도 못하고 느껴 깨달아 보지도  못한 그런 영계의 일을 말하는 것을 저도 몇 번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뭐 교회  다니기만 다녔지 별것이 없었는데 마지막 그 시간에는 '주님이 하늘에 계시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님이라 가운데 계시면서 지금 나를 위로하시면서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 또 하늘나라는 보니까 거기에는 빛의 나라인데 모든 것이 다  어린양의 그 빛 아래에, 통솔 아래에 다 평강을 누리고 있다.' 그걸, 그 사람이  평소에 없는 지식을 말하는 것을 더러 봤습니다.

 ○○○집사님이 기억하고 있는가 몰라도 농산 교회 건너 마을 그 마을 이  뭐입니까, 바로 길가에? 예? 접재실에 ○씨 부인이라고 하나 있었는데 마지막에  죽을 때에 그 사람이 아주 영계의 말을 많이 하고 평강을 가지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이 지금 어디 교역자 노릇 한다 말을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은 죽는 그 시간까지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욕심에서 욕심으로 분발하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는 당황하고 어디로 갈지를  모르고 그렇게 죽는 것이 모든 사람의 거의 전부요. 또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마지막 죽음이 가까웠을 때에는 다 후회하고 죽습니다. 다 후회 하고. 뭐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딴에는 참 필요하고 요긴한 일을 한다고, '다른 사람은  이게 필요 없지만 나만큼은 이게 요긴하다.' 하고 믿음을 떠나서 자기 딴에는  요긴한 일을 한다고 각각 모두 이랬지만 제가 철이, 없어서 다른 사람은  헛일해도 나만큼은 요긴한 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사욕대로 요긴한 일을 한다고 하다가 일생을 다 속아서 후회를 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아닌 자기를 알아야 됩니다.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돈을 좋아하고 그저 전심전력이 돈을 위하여 경영하고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돈을 지금 사랑하고 돈을 좋아하고 모든 생애가 돈을 위해서  하는 그 전공, 물질에 대한 전공 생애가 되는 그 사람, 전공 생애를 하는 그  사람, 물질을 그렇게 좋아하는 그 사람, 그 사람 성령의 사람 아니고 그게 바로  육체의 사람입니다. 또 그 사람이 무슨 감정이 일어나서, 분한 마음이나  감정이나 일어났으면 감정의 사람 그것이 옛 사람이오. 그게 새사람 아닙니다.

어떤 좋은 거나 나쁜 거나 시기가 일어나면 시기 사람 그 사람이 내나  옛사람이오. 또 이 세상의 명예나 지위나 그런 것을 위주로 해 가지고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거기에 속한 사람 그 사람이 막바로 옛사람입니다.

 자기의 직장을 위주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거기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서 그분에게 축복 받고 구원  받으려는, 주님에게 향한 그 마음보다 세상 자기 어떤 개인 사업이든지 남의  사업의 종업자로 지내든지 어떤 직장을 가졌든지 만일 자기의 모든 사모와  주력의 것이 주님이 아니면 그 모두가 다 옛사람입니다. 자기 아닌 자기입니다.

자기 아닌 자기인데, 그것은 작기를 꼬우려고 자기처럼 나타나니까 어리석은  자기 마음은 그게 자기인 줄 알고 그 마음이 거기에 복종하고 마음하고 한  덩어리 되고 몸하고 한 덩어리 돼 가지고 날뛰는 것이지 그게 바로  옛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소에 들어가면 옛사람과 참 자기를 똑똑히 구별하지만 그  전에는 자기인지 자기 아닌지 그걸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자기가 저질러 놓은 삐뚤어진 것입니다. '거리끼고 무거운 죄를 벗어  버리라' 그 말은 삐뚤어진 것을 벗어 버리라 그 말입니다. 삐뚤어진 것. 뭐 죄라  하면 사람들은 무슨 몇 가지 종류로 이래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고 뭐이든지  믿음이 아닌 것은 다 죄입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지 안한 것은 다  죄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내가 생각하려고 나올 때 가진 말씀은 그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라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마침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신실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진실하시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구주가 되어  있으니 구주를 모신, 우리가 배반하든지 말든지 구주는 우리의 구주가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믿음과 십자가 질 것. 십자가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함으로써 오는 모든 마음의 어려움이나 물질의 어려움이나 몸의  어려움이나 그 어려움이 다 십자가입니다. 한 말로 말해서 십자가입니다.

이러니까, 믿음과 십자가 둘을 가지자.

 그러면, 믿음은 어떤 게 믿음인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 믿음은 우리가  현실을 닥쳤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소에 많은 말씀을 했으니까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현실을 잘 살피면 어떻게 할 것을 자기가 압니다. '아, 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개 하나님의 뜻이라. 요게  하나님의 인도라. 요게 진리라. 요게 대해서 요게 진리라. 요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요 요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요 요게 믿음  지키는 것이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대개는 보면 그날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 가지고  가서 새김질을 하고 그 말씀대로 자기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이라는데, 이제  그런 초보에 있지 말고, 우리는 오늘 아침에 들은 말씀도 있고 어제 아침에 들은  말씀도 있고 일 년 전에 들은 말씀도 있고 십 년 전에 들은 말씀도 있으니까 그  많은 말씀을 자기 역량대로 자꾸 나비 봅니다. 그 많은 말씀들을 내가 자꾸  이렇게 나빕니다. 이 말씀도 생각하고 저 말씀도 생각해서, 사데 교회가 '네가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라.' 과거에 수많은 들은 말씀을 자꾸 이래 한번 나빈다  말이오. 한번 나벼서 수많은 말씀을 한번 죽자꾸 나비요. '아, 이 말씀 이 말씀'  수많은 말씀을 자기가 한 시간 하든지 두 시간 하든지, 어떤 사람은 그래 하려  하면 또 모르면 생각해서 발견하고 이렇게 해서,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신사참배 때문에 갇힌 사람들이 육 년 조금 넘어  갇혔었는데 육 년 동안, 참 길다면 긴 세월인데 긴 세월을 어떻게 넘겼는가? 긴  세월을 넘긴 것이 성경도 못 보게 하지 찬송도 못 부르게 하는 데 찬송가를 나빈  사람들이 있고. 찬송가를 자기 아는 대로, 처음에 그 찬송 하려 하면, 초두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중간에 어디든지 조금 한 절 알았는데 그 한 절 알았으면 그  한 절로 통해 가지고 고 찬송 전장을 알라고 이래 하면 어떨 때는 사흘도 걸리고  이틀도 걸려 가지고, 찾기 위한, 찾는 그 재미로, 찾는 노력에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냈고, 어떤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성경에 대해서 이제 드문드문 자기가  아는 대로 이렇게 나비 가지고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을 나비는  가운데서 재미가 생기고 기쁨이 생기고 평강이 생기고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이렇게 하다가 이제 그것이 언간히 되고 난 다음에는 '아, 내가 이제는 제일  짧은 성경 시편 일편을 보자.' 일편을 나비 보면 일편이 죽, 처음에는 안 되다가  몇 번 읽고 난 다음에는 정확하게 일편을 읽게 되고,  또 신약으로 말하면 유다서를 읽어 주고, 이러다가 차차 차차 나중에 가서는  차차차 짧은 성경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이제 차차 차차 넓은 성경에서 제일  양이 많은 그런 성경도, 이제 시편이면 시편에서 "일편에 무슨 말씀이라" 자꾸  나비면 나중에 일편을 외우고 그 다음에는, 이편도 처음에는 달려들 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편을 또 애를 쓰면 또 이편을 외우게 되고 삼 편을 외우게  되고 그래서 모르면 하나님께 물어 가지고 성경 외우는 것을 일로 삼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성경을 몇 권을 외웠고 찬송가를 몇 백 장을 외웠고 이렇게 그  재미에서 세월 가는 줄 모르게 그렇게 지냈고,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제 얼마 됐다니까 '언제 그래 됐노' 하면서  '언제 그래 됐노' 하면서 그만 그때 고난이니 어려움이니 또 밖에 무슨 가족이니  밖에 나가면 평안하게 있는다 하는 그런 거니, 고난 그런 걸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서 나비는 거기에서 하나님과 교제되고 거기서 자기  변화되고, 거기서 또 새로 깨달은 진리 생겨지고 이라는 가운데서 자기도 자꾸  발견해서 새로 보니까 재미가 있고, 새 자기를 발견하니까 재미있고 하나님도 새  하나님을 발견하니까 재미있고, 그런 또 관계의 조화가 바로 맺어지니까  재미있고 이래서, 육 년 동안 고만 재미있는 가운데서 세월 가는 줄 모르게  그렇게, 오히려 나오는 것이 안 됐고 그 자리 있으면 싶으고 하는 그런 참  재미있는 그런 평안한 세월을 지냈다 하는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거기 가서도 그저 다른 것 없고 '내가 신사참배를 반대하게 됐으니까  견뎌 보자.' 이라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견딘 사람 있어요. 내가 마산  가니까 '이놈들, 날 찢어 먹든지 볶아 먹든지 구워 먹든지 마음대로 해라. 암만  해도 내가 신사참배 하겠느냐?' 하고, 그렇게 한 사람은 갔다 나왔는데 보니까  용모가 변화가 없어. 용모가 변화가 없어. 내가 그런, 대개 할머니들이 그런  분들이 많습디다. 그래서 '아, 집사님, 수고 했습니다.' 그라고 나중에 설교  듣고 난 다음에 나중에는 그만 후회를 하면서 '나는 그만 육 년 동안 헛일 했네,  헛일 했네.' 하면서 그렇게 말한 할머니들 마산 가서 많이 봤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한 시간 한 시간 듣는 고 말씀만 가지고 하는  그것을 이제는 초보에 거기에만 있지 말고 이제는 들은 말씀 모든 말씀을 자꾸  나비기를 힘을 써요. 자꾸 이래 나비기를 힘을 써서, 이제껏 들은 말씀을 자꾸  나비기를 힘을 쓰면 자꾸 떠오릅니다. 떠올라서 자꾸 알려지고 알려지고 해서,  자기의 신앙이 들은 말씀이 하나 생각하는 것보다 둘 생각이 나지면 그만치  깨끗해진 것이요, 셋 생각하면 그만치 깨끗해진 것이요 열 거석하면 더 깨끗해진  것이요, 스물 하면 더 깨끗해진 것이요, 또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소원만  가지고, 한번 그렇게, 그 한 말씀 깨닫고 요대로 되기를 소원하면 주님 앞에  그대로 기도하면 소원이 벌써, 우리 속에 소원이 됐으면 뭐이 됐느냐? 소원이  됐으면 하나님이 내게 소원을 일으켜 주시고 그대로 이루게 당신이 하십니다.

소원을 우리 안에, '우리 마음에 두시고 이루어지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에.

 그러므로 이제는 한 말씀만이 아니고 과거에 들은 말씀을 낱낱이 나벼서 그걸  하다가 모르면 안 되면 노우트도 들여다보고 또 설교록도 들여다보고 '아, 내가  몇 해 동안, 언제, 언제 그때는 봄인데, 여름인데, 언 제 그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이 도무지 아롱아롱해 생각이 안 난다.' 그럴 때에는 설교록을, 대개 거기에  년 월 일 기록 돼 있지요? 예? 네, 기록돼 있으니까 년월일을 생각하면 더비  보면 그때 '아 요렇고 요렇다.' 하면 새로워진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알려 주신 것.

 또 나중에는 성경으로 들어가 가지고 성경을 이렇게, 그 절수는 모르더라도  성경에 뭐 있다는 것을 자기가 다시 생자하면서 거기 대해서 명상도 하고 묵상도  하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서 마음의 눈이 밝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마음의 눈이  밝아서,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하는 그 안약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  말씀을 자꾸 생각해 가지고 많은 말씀들을 자기가 깨닫고 있으니까 자기 현실을  닥쳤을 때 '아, 이거는 이렇다 저렇다.' 비판이 빨리 난다 말이오. 다른 사람이  뭐 물을 때에 거기에 대해서 그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말해 주지를  못하고, '네게 영감이 가르쳐 주지만 성경 원리로 말하면 이렇다 하는 원리는  대번 다 말해줄 수가 있다 말이오. 원리는, 성경 원리는 그 사람에게 '이래  됐으니 성경 원리는 이렇고 저렇다 하는 그것을 바로 지도할 수가 있다 말이오.

그게 뮈이냐? 그게 눈 밝은 거라. 그게, 안약 사서 발랐다 그 말이오. 사서 바른  것은, 돈은 무슨 돈을 주고 사? 자기를 기울이야 돼요. 자기 정력과 시간과  자기의 모든 것을 기울여야 기억도 돼지고 알아지는 것이지 저절로 알아지는 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안약을 사라 했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우리는 많은 들은  바의 말씀을 사데 교회와 같이 버리지 말라 '어떻게 들은 것을 생각 하라.'  과거에 천 마디를 들었든지 만 마디를 들었든지 들은 것을 생각하라. 또 과거에  받은 것은, 능력 받아서 한 번 행한 것은 지금도 하면 됩니다. 하면 돼요.

 그렇게 하면서, 그게 다 합해서 믿음인데, 믿음 지킬 것과 앞에 있는 우리의  십자가 질 것, 믿음을 지켜 나가는데 암만 어려움이 있어도 겁내지 말고  하나님이 도우시니까, 뭐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대로면 피조물은 좋다고  찬성합니다. 찬성하요.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칼을 가지고 나를 찌른다 하면  나를 찌를 때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나를 찌르는 그 칼도 속으로  기뻐하면서, 그 칼은 입이 없어 말을 못하지 칼은 말하기를 그래 할 것이오.

'이래 찔려도 찬양하십시오. 이래 찔려도 요동치 마십시오. 이래 찔려도  꺾어지지 마십시오. 이래 찔려도 영감과 진리로 자유하십시오.' 그라면서, 그  칼은 찌르고, 칼은, 나를 찌르는 그 칼은 나를 동정하고 나에게 대해서 소망을  가지고 나를 찬양하고 나에게 대해서 소원을 가지기를, 믿음 지키기를 소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믿음에 자유하기에 이르기를 원한다, 만물이 탄식하면서.'  그러니까, 조브라운 생각가지지 말고, 이 전체를 대국적으로 생각한다 말  있지만 대국적 생각 그것도 다 소용없고,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 전체를,  우리가 많이 들었고 알았고 이라니까 전체를 생라하면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믿음만 지킬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태속에 들었다 믿음을 안 지킬 때도 안  지킨 그 값으로 제가 놀라고 두렵고 떨기만 떨었지 하나님의 사랑의 태속에 들어  있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십자가. 요 두 가지를 잊어버리지 말고 믿음 지킬라면 모든  것을 나벼서 다 깨달아야 될 것이고 또 요대로 내가 현실에 실행 하려 하면  반드시 애로를 통과해야 할 것이고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 뿍뿍 나가면 뭐이  되느냐? 그 행위는 전지의 행위가 됩니다. 전지의 행위가 되고 전능의 행위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행위가 됩니다. 전지의 행위 되지, 그러니까 실수  없지, 전능의 행위니까 실수 없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도와서 완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 받는 행위가 되니까, 이래 가지고 모든 것을 온전케 하는 이이신,  예수님의 믿음으로 온전인, 믿음으로 온전 됐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믿음만 가지면 온전이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 꽉 잡고 놓지 말아요.

 이런데, 어쨌든지 우리는 자유를 가지도록 합시다. 자유, 자유라 말은 뭐인고  하니 자기가 평소에 깊이깊이 넓게, 넓게 궁구하고 심사숙고 해 가지고 '나는  요렇게 걸어가는 것이 옳겠다.' 하는 그것은 자기 속에 영감이 작정시킨 것인데  그대로 걸어가려 하는데 그 현실 요것에게 제재받고 저것에게 제재받아 가지고  그대로 걸어가지 못하는 것이 자유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걸어가는 것이  자유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를, 자유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자유하는 사람 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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