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양식되는 법

 

1988. 4. 21. 목새벽

 

본문 :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기회라는 것은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면  이 에서와 같이 우리가 축복을 한 번 삐끌트린다고 다시 축복 못 받는다는 그건  말이 아니고 에서는 그 야곱의 형인데 그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 기도를 받는 그  일은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고 그래 하는게 아닌데 그때 한 번 밖에는 안 했는데  그 한 번 그 기회 놓치니까 다시 그 뒤에 축복을, 해 줄 축복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기회가 지나가니까 축복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무엇이든지 그 일이 닥쳐지는 그 일마다 고 일에 기회는 한 번 뿐이지  두 번 없다 하는 것을 그것을 이 성구를 가지고 우리는 어데든지 그렇게 인용할  수가 있습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뭣이든지 다 그렇습니다. 고 기회 지나고 나면 그 뒤에 또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같이 보지마는 그 일이 아니고 그와 같은 종류의 일은 될지라도 그  일은 아닙니다. 그 일은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이 양성원 학생들이 그만  무엇이든지 먹으면 그만 그대로 그거 피와 살이 되는 줄로 그렇게 아는 거와  갈애요. 먹으면 반드시 그게 소화가 돼 가지고 아주 이런 가루보다도 더 아주  가는 참 표시하기가 어려울 만치 그렇게 나뉘어져 가지고 갈아져 가지고 영양이  돼 가지고 고 그 뒤에 이제 피와 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것을 분말할 줄을 몰라. 그게 소화되는 것은 고기뭉텅이를 먹었으면  고기뭉텅이가 자잔하게 아무리 같고 쌓아봤자 그거 가지고는 피와 살이 안  됩니다. 아무리 잘게 같고 매 갈아도 그게 피와 살은 안돼요.

 그게 더 잘게 더. 가늘게 참 그것을 뭐 아주, 가늘기를 무슨 아메바균이 가늘다  하는데 아메바 균이 가는, 작은 그 보다 더 작게 가늘게 그것이 분류돼야 비로소  영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돼요? 영양이 된다는 거. 더 그리 돼야 영양이  된다는 거. 그리 안 하면 안 돼. 더 그리 돼야 영양이 돼요.

 그렇게 그것을 가리켜서 소화된다 이렇게 말하는데 하나님의 이 말씀의 책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배에는 쓰더라, 입에는 꿀같이 다나  배에는 쓰더라.

 입에는 꿀같이 다나 배에는 쓰더라 그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으로 들으면 아주  맛있고 재미있고 좋지마는 이제 그대로 자기가, 소화는 무얼 가리켜 말하는 건고  하니 배에는 쓰다 말은 소화시킬 때는 심히 고통스럽다 그말인데,  소화는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고 하니 그렇게 내가 배운 진리를 그대로 살라고  하면 그대로 행할라고 하면, 아무리 배워서 가르치는 사람이 세밀히 가르친다  해도 자기가 행할라고 하면은 사람이 세밀히 사람의 입으로 가르친 것은 마치  음식물을 가늘게 세분한 것, 아주 가늘게 만든 그와 같고 자기가 생하는 데에서  깨닫고 느껴지는 것은 영양이 되는 거와 같습니다.

 가루를 가는 데에, 밀가루 가는 데에 뭐 그 보니까 채가 뭐 백 사십반이니 뭐  이백 사십 반, 백 사십 반 되면 보통 가루고 이백 사십 반 그런 거는 별로 이  없을 만치 아주 가늘어서 그렇게 가는데 그렇게 가느니까 그거는 먹으면 막바로  그것이 영양이 되느냐? 그것도 또 몇 천 배 몇 만 배 더 세분이 돼야 영양이  되느냐? 그거 바로 영양됩니까? 바로 영양이 돼요?  그러면 여러분들, 아주 백 목사는 너무 가르치는 걸 너무 쪼개고 세밀히 자꾸,  하나님 말씀을 이래 그만 말씀만 해 놓으면 저절로 되지 이렇게 한다고 말한  사람이 어떤 목사가 말했는데 그 목사 그런 주장 가지고 하기 때문에 형편 없이  이단으로 이리 끌려갔다 저리 끌려갔다 돌아다녔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아무리 하나님의 도리를 세밀히 해석을 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할지라도 사람의 방언으로 거기에 대한 뜻을 바로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 대한 행함의 뭐 백분지 일도 천분지 일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행함에 깨달은 것을 아무리 말할라 해도, 인간의 방언은 이거 마치  말하면은 채로 말하면은 뭐 아주 굵은 여기 자갈 치는 채와 같은 그런  정도밖에는 안 됩니다. 비유컨대 말이지요.

 이러니까, 그것을 자기가 배우고 난 다음에 세밀히 배운 것을 기억할라고 애를  씁니다. 기억할라고 애를 썼으면 애쓴 그것은 어느 정도에 자기가 깨닫는 것이  되느냐 하면 자갈 치는 채, 자갈 치는 채, 그 채로 쳐서 칠 만치 그만치 좀  분류된 것입니다. 그런 데 주먹덩이같은 거야 안 나겠지요. 솔방울 같은 거 요런  거는 다 계란 같은 거는 다 빠져나가겠지요,  그런데, 그런 정도밖에 안 되고, 그것을 세밀히 자기가 실행해서 말씀대로  실행해서 사람이 될라고 애를 씀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그랄때에 깨달아진 거.

깨달아진 그걸 사람이 깨달아졌으니까 그걸 말을 할라 합니다. 말로 다른  사람에게 깨달은 걸 가르쳐야 되겠다 싶어서 가르칠라고 애를 씁니다.

 가루칠라고 애를 쓰는 그 가르치는 것은 마치 여기에 에게 아주 천하에 제일  세밀하게 가르치고 아주 깊이 분석해서 가르친다고 하면은 뭐 비유컨대 한 이백  사십 반 아주 채, 채가 아주 소문 거 그런 정도나 될까 그게 그 영양이 안  됩니다.

 그게 들어가 가지고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이 소화기에서 이것을 작용을 해  가지고서 영양이 될라고 할 때는 그거는 아주 그뭐 물같이 되는 것인데 아무 그  건데기 하나도 없는 그래 가지고 거기서 영양이 돼 나가는 그런 아주 세분되는  그 과정을 통과해 가지고서 영양이 돼나간다 그거요.

 이러니까, 말씀을 듣고 배워 가지고서 실행을 한 그 사람이 그것을 사람에게  증거할라고 하니까 말은 찍해야 뭐 인간의 방언이라 하는 것은 이 방언은 그저  이 방언이라 하는 것은 자갈 치는, 자갈 치는 그런 채와 같애. 엉그러. 방언  그까짓 거야 얼마 됩니까? 방언 그까짓 거야얼마 됩니까? 방언이라 하는 것은  암만 뭐 해석을 또 하고 또 하고 해봤자 그 실상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 방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신구약 성경 문서계시고, 문서  계시 속에 세분하는 것은 문서 계시를 자기 이성 감각으로 들어 깨닫고  거기에다가 더 세분하는 것은 자기 양심을 써 가지고서 깨달아지면 좀 더 세분.

되어지고 양심보다도 아무리 진리대로 해도 성령이 동참해서 인치지 안하면 안  된다. 영감으로 깨달아지는 그것이 비로소 자기에게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게 영양이 되는 거라. 그게 소화되는 거라.

 이러니까, 사람들이 ‘이미 믿는 유대인들에게’ 믿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 아니요?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배운  바의 이 말씀대로 실행할라고 하면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네가  그만치 사람이 변화되고 ‘진리를 알지니’ 그 다음에 진리를 안다 말이오.

‘진리를 알지니’ 그것이 영감으로 아는 것 인데,  이렇게 자기가 행할라고 할 때에 깨달아지는 이 깨달음, 깨달아지는 이  깨달음은 영감으로 깨달아지는 깨달음인데, 영감으로 깨달아지는 깨달음인데 이  깨달음을 자기가 행할라고 애를 쓰니까 생하는 가운데에서 아무리 사람이 나한테  가르칠라고 해도 보니까 가르치는 사람 그분은 좀 깨닫기는 아주 나보다 훨씬 잘  깨달은 것 같은데, 더 행하고 더 됐으니까 잘 깨달은 것 같은데 그분의 깨달음을  말로 가르칠라고 하니까 이 인간의 말로 표현이 안 되니까 이렇게 말했다가  저렇게 말했다가 이 비유 저 비유 끌어대고 자꾸 또 그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말이지,  이걸 모르는 세계의 사람은 또 하니까, 또 하니까 또 하는 가운데에서 자기에게  무엇인가 오는 게 있어 가지고 좀 깨달아지고 열 번 하니까 열 번 또 하니까 또  좀 더 깨달아지고 백 번 그 설교를 자꾸 이렇게 하니까 조금 뭐인가 비추어서  자기에게 와서 깨달아지는데 그 들을 때에,  내가 행하려고 할 때에 깨달아진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발표 못하는 것처럼  저분도 깨달은 것을 발표를 못 하는데 그분이 발표 인간의 방언으로써는 발표할  수 없는 그걸 지금 발표를 하고 있는데 발표하는 걸 들으니까 나보다는 앞서  가지고 있다, 나보다는 뒤서 있다, 아직까지 저 사람은 하나님 말씀 듣고 통으로  삼키는 사람이지 아직까지 소화는 한 번도 안 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말씀이  영양되지는 못한 사람이다 그걸 다 알 수가 있다 그말이오. 자기가 지나왔으니까  다 알아요. 자기가 그 길을 한 번 지나갔으면 얘기하면 ‘고 다음은 개울이  있지? 또 말하기를 ‘그 다음에는 덩바꾸가 있었지?’ ‘아이구 어찌 압니까,  그거?’ 먼저 다 지나가 본 사람들은 그걸 다 아는 거라. 그러니까, ‘말하는  것이 내가 본 것을 내가 느낀 것을 속속 다 말하네’, 이래서 비로소 신앙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양성원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걸 통으로 삼킬라고 만하지 여기에  대해서 이것을 소화시켜서 영감이 자기에게 알려 주고 영감으로 믿어지게 하고  영감으로 소원하게 하고 영감의 능력으로서 그 일을 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영감에 도달하지 못하고 영감이 뭐인지 모르는 그런 자리에서 아직까지  머물고 있는 학생들이 많애, 기도 인도 시켜 보면 다 알고 앞으로는 이제 설교를  종종 시킬란지 모릅니다.

 나는 엊저녁에 나는 그 O조사가 했는가 싶어서 O조사가 했다고 하면 이제  그거는 쪼끄매 이 진리에 맛을 쪼끄매 봤기 때문에 인제 이거는 오늘 새벽에  보니까 나는 그 사람인 줄 알았거든. 안 나왔으면 혼을 낼라고 야단을 칠라고.

이제 깨달았기 때문에 혼을 내고 뭐 몽둥이로 뚜드려 패도 제까짓 게 딴 데  가지는 못해. 조끄매 깨달아서 이 맛을 보고 요게 대해서 눈이 열렸으면 딴 데  못 갑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 딴 데 절대 못 갑니다. 갈 길이  없습니다. 부득이 파송시켜서 갔으면 갔지 제맘대로 딴 길을 가지는 못해.

 엊저녁에 증거하는 것 보니까 쪼그매 눈이 열려서 조금 눈이 열린 그 면을 내가  조금 봤어. 이래서 그래서 내가 그러면 인제 좀 안심하고 좀 뚜드려 대면서 매를  때려 가면서 가르칠 수 있다 말이오. 그래 인제 O조사라 하는 구만. O 조사는  지금 뭐 OOO교회 교인인데 그전에 좀 뛰하이 멀끔하이 그래 가지고 있었는데  조금 얼마 전부터 좀 달라져. 인제 깨달아졌으면 몽둥이로 때리요. 안 되면  몽둥이로.

 처음에는 이랬습니까? 저랬습니까? 나중에 거석하면 그만 그거 내가 있다가  네라고도 할 수 있고 야단도 칠 수가 있고 이래. 왜? 그거는 보면 조금 됐기  때문에 된 사람은 강하고 옛사람 그놈은 약하기 때문에 막 달라 들어 둘이 달라  들어 뚜드려 패면 그만 그놈 옛사람 그놈은 죽어 버리지,  이거 옛사람이 강하고 새사람은 약할 때에는 이거 옛사람 이거 설설달래서  붙들어 놔야 되지 그리 안 하면 당장에 새사람은 처박히고 옛사람 그놈이 돼  가지고 날뛰기 때문에, 그런 자들 많이 있어, 뭐 참 성경 모르면 사람이 바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된다는 것. 그러면 성경을  자기가 읽는 것은 이것은 다 기록할라 하면은 온 세상에 두어도 둘 곳이 없다  하니까 양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양이 무한하다고 할만치 많습니다. 이런 것을  육십 육 권 도리에 기록했으니까 얼마나 간추려졌습니까?  이랬는데, 그 온 세상에도 둘 곳이 없을 만치 양이 많은 것은 뭘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영감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는 영감 의지를 가리켜 영감 의지, 이거는 문서 의지인데. 영감  의지. 그거 은밀한 의지라.

 그런데, 그렇게 그거는 복잡한 것인데 껍데기만 듣고 이와 같이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보면, ‘내가 어떤 사람 말하기를 네가 그 설교를 잘못한다. 설교를  잘못해서 그 교인들이 자라지 안하고 본이 안 된다.’ ‘설교를 잘 못 하다니요?  내가 목사님 설교 어 아 하는 것까지도 전부이 다 기록해 가지고서 녹음한 고  녹음한 거 하나 어 아도 하나도 사투리도 하나도 안 빼고 꼭 고대로 하는데  그러면 설교를 잘못 한다 말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네가 잘못한다. 네가  문서 고것만 가지고 자꾸 증거하고 있지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안하고 성령의 감동에 있기를 원한다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하는데 너는  문서 계시 그거로만 한 것처럼 그것만 증거하지 네가 성신의 감화의 역사가  없는데 네가 설교를 잘못하지 않느냐?’  너는 설교하는데 성신의 감화의 역사가 와야, 내게도 감화의 역사가 와야 내가  증거하는 것이 다 같은 그 말로 가지고서, 녹음기로 하면 똑같은데 다 같은 말로  표현을 하는데 그 표현 속에 인간의 방언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건너갑니다.

 또, 듣는 자도 다 같이. 듣는데 인간의 그 지혜와 총명으로 들을 수없는 그  영감으로 되어지는 것이 그 속에 건너가고 있다 그말이오. ‘그걸 네가 모르니  헛일 아니냐?’ 그걸 모르는 사람은 뭐 대 박사라도 헛일입니다.

 우리 이 총공회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이 모든 걸 깨끗하게 숙청해서 깨끗게 깨끗게 합니다. 그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렇다 저렇다 말해서 나는 속으로 내가 짐작하는 바가 있고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다 정체를 드러내서 이거라 저거라 정체를 이리 드러내고 저리  드러내고 드러내 가지고서 뭐 모든 거 청산할 것이나 숙청할 거는 숙청하고 이거  누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셔.

 나는 과거에는 내가 좀 했기 때문에 자꾸 이렇게 좀 물의가 일어났는데 나는 안  하고 하나님이 하시도록만 나는 인제 기도하면 하나님이 숙청하고 안 되면  죽여서 숙청해도 숙청시켜 버립니다. 그게 살려 둬 가지고 안 되면 죽여 버려도  죽여 버린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고라가 그거 살려 놓고 아무리 설득을 시키고 이해를 시켜서  안 될 판이니까 고라를 어떻게 했습니까? 어떻게 했지? 어떻게 숙청했지? 땅이  입을 벌려서? 그래. 또? 몇 사람이 그리됐노? 몇 명이지? 이백 얼마? 이백 오십?  그거는 하나님이 둬 가지고 안 되는 거라. 이백 오십 명이 생명이 같이 타고 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설득시키고 설득시켜도 그거는 되지 안 할 것은 없애 버렸다  말이오.

 오늘도 그 역사를 하십니다. 이걸 어라, 조금 옮겨놔서 떨어지구로 해야 되겠다  해서 될 거는, 될 수 있는 대로 당신은 애끼시고 애끼시고, 엊저녁에 설교에  사랑 말 많이 했는데.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애끼시고 애끼시고 이래 가지고  어짜든지 ‘아, 이까짓 퍽 끊어 내 버려라.’ 그렇지 안합니다.

 어짜든지 그걸, 예를 들어서 그 사람에게 무슨 병이 들었으면 처음에 애껴서 될  수 있는 대로 잉 폐기 처분을, 이거 폐기 처분을 적게 하고 수술을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하고, 이거 뭐 수술하는 사람들도 이거는 그만 썩 베서 손가락만치 썩  베어내는 그런 의사가 있고,  애껴서 이거 손가락만치 베어내면 안심은 안심이지마는 이라면은 뒤에  회복하기가 어렵고 또 다른 지장되는 일이 많으니까 이거 그만 한 번에  손가락만치 썩 끊어내 버리면 수술 한 번에 다 돼 버리고 그만 좀 그만 되는데  이걸 애껴서 열 번 해도 쪼금씩 쪼금씩 그래 가지고 다문 얼마라도 덜 끊어내고  덜 베어내고 그것을 수술이 완치가 되어지도록 그렇게 할라고 하는 그 참 사랑을  가지고서, 자기 가족을 수술하면은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한번 끊어낸 거는 다시 회복 못 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요소 하나님이 지은  거 모양으로 못 해요. 구멍살이 채여 가지고서 되기는 되지마는 하나님이 만든  것처럼 고렇게 만들어지지는 안 합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애껴서 애껴서 이걸 한 번에 그만 손가락만치 베어내면 될 걸 요  손가락 반만치만 베어내고 되도록 하기 위해서 열 번 수술하니까 수술해서 고거  손가락 하나만치 베어낼 걸 반만치 베어내고 반은 살리도록 그렇게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안 될 걸 고칠라고 하는 데에 될 수 있는 대로 고걸 희생을 덜 시키고  고거 그래 가지고 치료할라고 애를 쓰다가 안 되면 끊어버린다 그말이오, 이백  오십 인은 애끼지 안하고 끊어 버렸어. 노아 때 그거 그래는 뭐 여덟 사람  나머지기면 뭐, 아마 그때도 번식 하면 수십 억, 수십억 돼요. 그때 그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싹 그거 처분했다 말이오.

 이래서, 내가 어떤 사람 말하기를 ‘너는 너거 부부가 너무 구원에 방해하고  좋아 지냈기 때문에 뗐다. 뚝 떼놨다. 이북 이남으로 떼놨다.’ 그래 또 언제 뭐  죽었다고 또 소식이 왔다고서 뭐 이라기 때문에 ‘너거 남북으로 떼놔도 만날  생각은 거기 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죽였다. 하나님이 죽였다.’ 이렇게  하나님이 수술해.

 이러니까, 내가 가만히 봐 보니 우리 총공회는 백 목사 공회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깨끗이 자꾸 숙청을 하는 것 같애요. 숙청하는 것  같아서 이런 인물 저런 인물 이번에도 그 많은 인물이 드러났습니다.

 드러나서 이제 그거 자기가 하나님 중심으로 고칠라고 하면은 고칠 수 있고  고칠 기회를 놓치면 마귀의 것이 돼 버리고 맙니다.

 성경에 바울이 말하기를 사탄에게 내어줬다 그말은 내어 줬다 그말은 죽었다  말입니까? 죽었다 말 아니오. 사탄에게 내줬다 말은 이제 말을 하고 하고  사랑으로 자꾸 이래 권고하고 권고하고 이렇게 해도 안되니까, 안 되니까 이 안  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안 됐다. 이제는 안 됐다 할 수 없다.’ 할  때에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벌써 그게 사탄에게 내어 주는 증거라.

 하나님이 내 준 증거, 사람이 그러므로 내 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줌으로  사람에게 그렇게 느껴진다, ‘이거는 안 된다.’  사탄에게 내 준 것은 이제는 마귀가 그를 주관하기 때문에 마귀의 그 장중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말이오. 그 다음부터는 자꾸 마귀의 이용물이 돼. 자꾸 하는  것이.

 시간 가서 그런데도 어제 어데 뭐 저 여기 OO교회에 OOO 목사님이 뭣을  팜프렛트를 보냈는데 그런 걸 보냈다고. 나는 읽어보지 안했어. 누가 읽어봤는데  교학실에 가져왔다더나?   왔는데, 사람이 나이 많으면 아이 된다고서. 이제 나이가 육신이 되면 벌써  아이라. 그거는 모두 지능이나 모든 것이 다 그이의 지능이 줄어진다는 말인데  육십이 되면 그만 벌써 아이가 되고 칠십이 되면 줄어져서 벌써 아주 갓난 어린  아이같이 그렇게 지능이 아주 도로 어린데로 돌아가서 도로 어리게 돼지고  약해지고 팔십이 되면 벌써 뭐 살아있으나 송장같이 그렇게 갓낳아 놓은 아이  모양으로 그렇게 줄어지는 것인데 이렇게 정년퇴직하지 안하고 팔순이  되도록까지 이렇게 자꾸하고 있으니까 이거는 자꾸 엉뚱한 소리 하고 이랬다  저랬다 말하고 자꾸 바꾸고 인제 선망후실로 이렇게 이래 돼지고 이런다 이래  하는데 그게 잘못 얘기한 거라.

 사람은 늙으나 누가 안 늙는 이 있어? 하나님은 안 늙어. 그러기 때문에 내가  늙은 것 같지마는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보다 내가 총명이 여러, 분들보다 횔끈  낫다, 여러분들의 전부만은 내가 몰라도 여러분들은 내가 총명이 내가 더 낫다.

기억이 더 낫고 머리가 더 나아서 망할 것은 내가 그거 다 망한다고 그렇지마는  알 거는 더 잘 알아. 그러기 때문에 성경 내가 깨달은 게 평생에 내가 깨달은  것이 자꾸 작년보다 금년에 잘 깨닫고 어제보다 오늘 더 깨닫고 설교도 어제  설교한 것보다 오늘 설교가 더 깨닫고 자꾸 이러니까 하나님이 늙지 않는다 하는  그걸 느껴지고 있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도 양성원 학생들이 음식을 바로 먹는다고  영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게 얼마나 세분이 돼야 되나? 세분이 되면 이백 사십  반 채로 가지고 친 것만치 가늘어지면 되는가? 아니야. 그런 걸로 형언할 수  없이 세분 돼져야 비로소 그게 우리의 피와 살이 그걸 먹을 수 있는 영양이 된다  말이오,  그거 우리가 소화해서 영양이 돼 가지고 영양을 바로 피와 살이 먹는 것입니다.

피와 살이 뼈가 먹는 거라 말이오.

 그렇게 세분해야 되어 지는데 하나님 말씀을 통으로 삼켜서 떡 이걸 좋은 찰떡  맛있는 찰떡을 해서 이거 영양되지 싶어서 이거 살에다 떡붙여 놓으면 그 찰떡이  영양이 되는 게 아니야. 안 돼.

 이 영양이 되는데 피부로도 다 먹는데 그거, 내가 저 어데 사택에 오다보니까  여기에 곱창집이 오니까 거기 들어오니까 뭐 아주 냄새가 맛있는 냄새가 나요,  곱창 굽는 냄새 나요. 그래 내가 이래 오면서 이래 이라면서 ‘아! 이거 야 곱창  굽는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은 곱창 먹지 안할 것이다.’ 안 먹으면 살이 안 찌요?  안 먹어도 살 쪄요.

 왜? 이 피부에서 피부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세분된 것으로서 이 피부가  빨아들여. 전체가 빨아먹어요. 이러기 때문에 이치를 알면 전부 도통을 다 해야  돼.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세밀히 깨달아야 됩니다. 세밀히 깨달아야 돼.

 양성원 학생들 보니까. 기도 인도시켜 보니까 제법 뭐 될라 하는 사람들은 와  가지고 뭐 있는데 이제 그 희망이 있어요, 희망이 있는데 교만하면 안 돼.

선내끼 알고 나면 아는 줄로 그게 다인 줄 알기 때문에 안 돼.

 엊저녁에 설교한 O조사가 지금 엊저녁에 설교했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요  말씀 목사님의 요 말씀을 문서적으로 고대로 꼭 외우고, 내가 ‘어린 아이같은  너거는 연구하지 말고 고걸 외우고 자꾸 고대로 살라고 애써 봐라. 고대로  살라고 애써 가지고 고 사람이 돼져 가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그만 이제는  너거가 연구 좀 해라. 인제 연구해서 마음대로 인제 탈선되지 안할 만침은  강령적으로는 알았으니까 연구해라.’ 그 연구하면 힘이 들건데 연구를 안 해,  또, 게을 박아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넓은 길 가자 하는 사람이 제가 자기 지능으로, 자기 지능으로 깨달을 수 있는  그것도 ‘아 나는 세밀하게는 가기 싫다. 대충으로 이렇게 광범위하게 평범하게  갈란다.’ 그 평범인지 좁은 길 넓은 길 하는 그것을 몰라 그래.

 넓은 길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넓은 길은 안 믿는 사람 말한 것 아니오. 믿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가운데 넓은 길을 가는 걸 말하는 것이지 불신자 말한 게  아니라. 주석에  내가 보니까 모두 다 불신자들이 살고 있는 그거, 그거 그거는  그거 다 넓은 길속에, 좁은 길이라 하는 그게 내나 넓은 길을 말하고 있어.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12 말씀을 대할 때/ 요한복음 6장 63절-64절/ 830723토새 선지자 2015.10.30
311 말씀을 들어 깨닫고 실행하는 자 만들 것/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830722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30
310 말씀을 묵상하는데서 변화/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50219화새 선지자 2015.10.30
309 말씀을 복음으로 들어라/ 창세기 3장 1절-6절/ 830808월밤집회 선지자 2015.10.30
308 말씀을 빼앗기지 않는 연습/ 마태복음 13장 1절-9절/ 850503금새 선지자 2015.10.30
307 말씀을 삼가 들어야 할 이유/ 신명기 28장 1절-19절/ 860508목전집회 선지자 2015.10.30
306 말씀을 삼가듣고 명령 순종/ 신명기 28장 1절-14절/ 801211목새 선지자 2015.10.30
305 말씀을 새기자/ 창세기 12장 1절-3절/ 881221수새 선지자 2015.10.30
304 말씀을 새기자/ 요한계시록 2장 23절/ 890115주새 선지자 2015.10.30
303 말씀을 생각하는 믿음/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40711수새 선지자 2015.10.30
302 말씀을 전하고 듣는 것이 기적/ 사도행전 14장 1절-28절/ 851204수새 선지자 2015.10.30
301 말씀을 증거 할때/ 마태복음 24장 37절-51절/ 860803주새 선지자 2015.10.30
300 말씀을 증거 할때/ 디모데후서 1장 8절-10절/ 860824주새 선지자 2015.10.30
299 말씀의 귀중성 권위성 중대성/ 사도행전 27장 20절-26절/ 860815금새 선지자 2015.10.30
298 말씀의 능력/ 요한복음 5장 5절-9절/ 860502금새 선지자 2015.10.30
297 말씀의 역사/ 마가복음 10장 29절-31절/ 820418주새 선지자 2015.10.30
296 말씀의 역사/ 에베소서 5장 15 –16절/ 800123수새 선지자 2015.10.30
295 말씀의 혜택/ 사도행전 20장 28절-32절/ 860223주새 선지자 2015.10.30
» 말씀이 양식되는 법/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880421목새 선지자 2015.10.30
293 말조심/ 베드로전서 3장 8절-12절/ 840830목새 선지자 201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