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어다 준 역할

 

1986. 9. 21. 주일오후

 

본문:사도행전 3장 3절∼13절 상반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오전에, 나면서 앉은뱅이된 이 형식과형식이라 말은 역사적인 사실이라 말입니다.

형상을 가진 일이라 해서 형식이라 말합니다.또 그 앉은뱅이를 다른 사람들이 구걸하는 자 만들라고 성전 미문까지 메어다가 놓았다 하는 것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것이 곧 사람은 타락한 후에는 날 때부터 원죄 아래에서 원죄로 말미암아 변질돼서 정상적인 사람은 되지를 못하고 다 병든 사람이라 그대로 나 가지고는 좀 있다가 죽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다 소멸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면서 병신으로 난 것은 인간이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근본이 악성으로, 인간의 본성이 악성으로 변질된 이 사람으로 난 것을 가리키고, 또 그 변질된 사람을 그 변질된 것을 고치지는 아니하고 변질된 그 사람을 뭐 이런 수양, 저런 교육, 이런 모든 연성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병신이 병신노릇을 하도록 성장시키는 것이요, 또 그렇게 위해서 봉사하고 수고하고 희생하고 하는 그 모든 것은 다 그 병신이 병신노릇 해 가지고 얻는 수입을, 다른 사람에게 정상적인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입고 남으로 인해서 자기가 유익되게 되는 그 이기주의의 일들이 달성되도록 하는 그런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라.

그래서, 이 세상에 여러가지로 다 부모네들은 성공을 시켰다고, 또 남의 선배된 사람들은 후배들을 성공시켰다고 그렇게 자부하고 또 자타가 인정하고 있지마는 인간이 날 때부터 변질된 사람으로 출생된, 이 타락으로 변질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온갖 은혜를 베풀고 수고를 가했다 할지라도 앉은뱅이를 구걸할 장소에 메어다 놓는 다 그 일이 된다 하는 것을 해석했습니다.

이방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역연 교회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교회에도 사람이 전도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구로 이렇게 전도해서 교회 나오게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타락된 인간의 변질된 이 본성을 고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정상의 사람을 만들어 준 그 일 외에는, 뭐 학교 공부를 시켜서, 또 어떤 기술을 가르쳐서, 그 사람을 어떤 또 지식을 가르쳐, 또 교회에 인도해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게 해, 뭐 어떤 걸 한다 할지라도, 무슨 방편으로 그 사람을 성장시키든지, 전도해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 성장을 시켜서 교회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찰이 되고, 반사가 되고 하는 것이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되고, 무슨 장관이 되고, 총장이 되고, 교수가 되고, 뭐 또 이런 저런 기관장들이 되고, 이런 사장들, 이런 주인공, 뭐 어떤 일이 된다 할지라도 원인은 이 타락된 변질된 인간 본성을 다시 이것을 회복시켜서 본성의 악 그것을 선으로, 다시 말하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위주의 사람으로 인간의 본질과 본성을 변화시킨 그 일이 없는 그 운동은 어떤 운동을 하든지 꼭 같은 운동입니다. 그 운동은 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병신노릇 가지고 먹고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병신노릇은 뭐인데? 구걸하는 거. 구걸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피해 보이고 모든 사람의 혜택을 입는 그 일이지 제가 뭐 어떤 종교 창설자라고 뭐 별별, 우리 나라에도 기독교의 종교가 별별 종교들이 있지마는 깊이 따져들어가면 전부 남을 착취하고 아주 이타주의라고 해도 이타주의 그게 범위 넓게 더 넓은 그 이기주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이타주의를 방편으로 쓰는 것이지 근본부터 이타주의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창조주와 연결이 됐을 때에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존재케 하는 그분과의 연결된 그거 외에는 전부 돈을 주고 명예를 착취하고, 또 그 사람에게 적은 봉사를 주고 그 사람의 모든 그 인격이라는 인품을 매수하고, 뭐 방편들이 다 여럿이 있으나 어쨌든지 구걸하는 행위지 그것은 사람을 그렇게 구원하는 행위는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목회하는 사람이나 또 그 밑에서 다 같은 목회로서 권찰직을, 반사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든지, 그러기에 그런 사람을 이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좋기는 좋습니다. 좋은 것은 교회로 인도하는 그것만이라면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로 인도한 것이 좋은 이유는 교회에 나오면 혹 그 사람이 회개해서 변질이 되어 이제 원죄와 본죄를 완전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몸이 되어서 순전히 하나님의 수족 지체같이 되어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완전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영원 불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그런 것으로서 그 사람을 회개시켜서 변질시키지 안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중생되면 기본구원은 얻는 것인데 기본구원 얻는 그 중생의 은혜는 우리가 전도를 안 해도 중생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 중생의 은혜는 본인이 알기도 전에 중생을 하고 중생된 지 오랜 후에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중생되는 것도 믿는 사람들의 전도를 통해서 중생은 되지마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순전히 객관 역사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공력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거게 참가하지 안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 기본구원이라 그렇게 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희망이 있어서 그 나옴으로 말미암아, 기본구원을 자기가 나기도 전에 벌써 얻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은 “벌써 나기 전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그렇게 말했고, 또 “행함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예정대로 나기 전에 벌써 구원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랬는데, 우리가 전도해 가지고 교회 나오게 하는 것은 그것은 뭣으로서 그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느냐 하면은 교회에 나오면 혹 그 사람이 예수님의 피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와 진리의 이 역사로 인해서 그 사람이 변화되어서 조그만치라도 회개를 해서 전체적으로는 완전히 성화되지 못했을지라도 변질된 그것이 조금씩이라도 그렇게 회개가 되어 가지고 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그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인도하는 것이 가치 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이렇게 안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불택자들이 자녀 위해서, 친구 위해서, 민족 위해서 수고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 타락된 인간의 변질된 악성, 악령 거게서 완전히 분리시키지 못한다고 하면, 다시 말하면 병든 사람을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하면 암만 노력해 봤자 결국은 그 사람이, 병든 사람이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을 침략하면서 사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가해하면서 해를 끼치면서 사는 것이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지는 절대 못 합니다. 또 유익을 끼쳤다면 무능하니까 거게 이용을 당한 것이지 제가 능동적으로 그렇게 유익 끼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안 믿는 사람 가운데서는 물론 그것이 인간병을 알지도 못하는 것인데 원죄와 본죄로 병든 인간병을, 인간병은 뭐이냐 하면은 창조주 조물주 중심과 위주를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된 그것이 바로 인간병입니다.

병인데 그것을 고치지 못하니까 그 모든 것은 다 그 결과적으로는 이세상을 거쳐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사람 만드는 그 외에 딴것이 없는 것이고, 또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해 가지고 학습 세례를 받게 하고, 또 성직을 맡아서 집사나 장로나 목사를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그 인간병을 고쳐 주지 못했다고 하면 역연 그 사람의 생활은 전부 구걸하는 생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장로나 목사나 모든 사람들이 목사는 그 목회를 통해서 구걸하고, 장로는 모든 이런 사업들을 통해서 구걸하니 언제든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말은 자세히 들어보면 그 모든 말은 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그 결과를 노려서 이런 저런 방편상 전술상 이렇게 쓰는 것이지 그 모든 것의 동기나 목적이나 그 모든 것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람을 전도해 가지고 교회 나오게 해도 그 사람에게 이 인간의 변질된 이 변질을 고쳐서 인간이 정상화 본질로 돌아가도록 이렇게 고치지를 못하고 한다면은 그 사람은 병신을 구걸하도록 메어다 놓는 사람이요, 또 그 사람이 고치지 못한 사람은 언제든지 그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은 그런 생활이기 때문에 뭐 국제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든지 또 어데 가서 무엇을 하든지 해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그 수입한 모든 것을 가지고 연보를 해서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엄격하게 따지면 그 모든 것은 다 그 구걸하는 것을, 구걸한 것을 그저 배당하는, 배당해서 서로 분식하는 그것이지 그것이 아무런 다른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는 사람을 교회로 인도해 가지고 그 사람이 병이 나으면 성전에 들어가는데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병이 없는 사람은 제사장이 보고 ‘너는 성전에 출입할 수 있다’ 이렇게 인정을 해 주면 성전에 출입하고 그리 안 하면 성전에 못 들어갑니다.

성전에 못 들어가는 것은 죄인이라 못 들어가기 때문에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를 예수님이 낫우고 난 다음에는 그 환자에게 말하기를 “네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다 진찰을 받고 난 다음에 너는 완전히 깨끗한 사람이 됐다고 하는 것을 인정받거든 하나님 앞에 감사 예물을 드리고 그때부터 성전에 출입하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전도해서 그 사람을 예수 믿도록 만들어서 어데까지 뭐 세상적으로 성장을 시켰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그 사람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지 안했으면, 그 사람의 몸이 변화되지 안했으면, 심신의 기능이 변화돼서 이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그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아 모든 사물을 취급하든지 모든 인인 관계를 가질 때에도 전부 하나님 중심으로 인인 관계 사물 관계를 가지는 사람으로 변화되지 안했으면은 어데까지 자랐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은 일을 한 사람이고, 또 앉은뱅이가 구걸한 것을 같이 갈라먹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거게 지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랬는데, 그때에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갈 때에 그 앉은뱅이가 이 사도들을 보고서 주목을 하고서 그래 손을 내밀었습니다. 내민 것은 사도 두 분이 들어가니까 이 점잔한 분이 들어가니 아마 여게는 좀 뭐 얻을 구걸이 톡톡하겠다 싶어서 손을 내 밀면서 좀 또 병신 노릇을 합니다. 그냥 ‘이거 구걸 주십시오’ 이라면 안 될 터이니까, 그거 내가 안 봤지마는 우리가 추상할 수 있다 말이오. 이거 ‘좀 한 푼 주십시오’ 이라면 잘 안 줄 거고 이러니 이래 가지고 ‘아 으으으으' 떨면서 `어얼히어얼히’ 말도 못 하고 ‘흘흐흐허’ 이뭐뭐 여러가지로 막 병신노릇을 했을 것입니다. 병신노릇 했을 것이라. 그래 가지고 그래 달라 했을 거라. 그 병신 노릇.

이 세상에서 국제시장에도 그저 사람들이 뭐 낯을 붉히고 이래 또, 이 경상도 사람은 ‘음’ 이래 가지고 있는 거는 뭐냐 하면은 아예 내가 지금 이렇게 뚱 이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부래 알아 기어라, 그거 벌로 덤비면 안 된다 하는, 그거 뭐 서설을 내부리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나한테 조금만치라도 덕볼라 하는 사람 오면 다 절단내 버리고 나한테 전부 덕을 보이지 안하고 내게 유익을 주지 못할 인간들은 다 물러가라, 내게 유익 줄 사람만 오고 유익 주지 못하고 내것 뺏들 인간들은 다 도망쳐라 이렇게 하는 것이 이 사람들의 그 모든 다 처세술인 것입니다.

그 모양으로 이제 이 앉은뱅이는 사도들을 보고서 뭘 얻을까 싶어서 주목하고 이래 봤습니다. 그럴 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는 나에게 은과 금을 지금 달라고 하고 있지마는 네가 요구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마.’ 말했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마'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라’ 하고서 그 앉은뱅이에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나는 은과 금은 가지지를 못했다, 은과 금은 내 소유로 내가 가지지를 못한 게 아니라 가지지 안했다. 내가 과거에는 은과 금을 내 소유로 내 보배로 가졌지마는 이제부터는 내가 깨닫고 난 다음에는 은과 금은 그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로 삼는 것이, 내 주로, 내것으로 삼는 것이 이것이 가장 복되고 유익된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내가 그런 것은 다 배설물로 다 여기고 은과 금은 내게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빌립보 3장 에도 보면은 말하기를, “내가 세상에서 보배로 여겼던 그 모든 것을 다 찌끼로 뭐 배설물로 여긴 것은 과거에 보배로 여겨서 그 가치가 있다고 해 가지고 내가 학벌을 따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고, 또 문벌을 따기 위해서, 로마 시민권을 얻느라고 많이 노력을 했고 뭐 이런 거 저런 거 다 모든 것을 필요하고 유익하고 보배라고 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했지마는 이제 내가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런 모든 것은 다 배설물로 삼았다” “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만이 참되고 영원하다는 것을 내가 알았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는 것과 또 내 생애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야 완전하고 영원하고 살았고 모든 것이 다 자타에게 평강이 되고 복이 됐지 그 밖에 그 모든 것은 다 속일 것이요 속이는 것이요 유혹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혹하는 미혹의 욕심에 내가 끌려 가지고 그래 했던 것인데 알고 보니까 이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내가 다 여기고 버렸다.” 바울이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제 이 베드로나 이런 사람들도 ‘은과 금은 내게 없다’ 아마 이 자리에서도 은과 금은, 자기가 은과 금을 소망으로 삼고 은을 위해서 노력하지 안했고 금을 위해서 노력하지 안했고, 자기는 자기에게 얻어야 될 것 다섯 가지,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감과 진리 이 다섯 가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요 자기가 또 원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보배로 여기시는 것이요 자기가 보배로 여기는 것이요, 이거는 우주와 영계를 다 봉사할 수 있는 것이요, 통치할 수 있는 것이요, 은혜를 베푸는 시은을 할 수 있는 것이요, 이것은 모든 것에게 다 없어서는 안 되는 모든 존재들에게 다 필요할 수 있는 이것이 내가 이것이 갖추어진 것만치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내가 됐고 이거 하나도 없으면 모든 존재를 다 가해하는 것만 되고 말았지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베드로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마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하고서, ‘그러면 있는 게 뭐입니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이라니까 그거 아마 구걸하는 사람은 ‘뭣을 줄란가?' 이렇게 기다렸을 것입니다.

‘뭘 줄란가?’ ‘내게 있는 것으로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서 걸으라’ 하고서 일으키니까 일어서 버렸습니다. 그만 그때에 나면서 병신으로 났던 병신이 완전히 다 변화돼 버려서 병신이 완전히 성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한 사람이 되고 말았어.

이래 이것으로써 우리에게 보이시는 것은 인간은 원죄와 본죄로 다 변질된 병든 사람이기 때문에 많이 살면, 모세만치 살면 일백이십 년 살다가 죽을 것이고, 또 그리 안 하면 육칠십 년 살다가 죽을 것이고, 또 칠팔십 년 살다가 죽을 것이고, 뭐 요새는 많이 살면 백삼십 세까지 산다 하는데 백삼십 세 살아 봤자 삼십일 년도 못 견딜 터이니까 헛일 아닙니까? 어짜든지 병든 사람으로 산 것은 그는 이제 죽으면 그것으로서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고 그 다음에 부활은 하기는 하지마는 사망의 부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고,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을 갈아 입기 위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5장에 똑똑히 말씀을 했습니다. “썩을 것은 영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썩을 것이 썩지 안함을 입기 위해서 이 모든 혈육의 것을 벗는다. 혈육의 것을 벗는 것은 신령한 것으로서 변화함을 받아서 입기 위해서 벗는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이 원죄와 본죄로 죽은 인생을 살리는 데에는, 원죄와 본죄로 죽은 인생을 살리는 데에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살리는 길이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살리는 길이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뭣을 가리킴인가? 예수님은 대속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자, 왕인데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 완전하고, 선지자로 완전하고, 왕으로 완전한 그 완성된 인간을 만드는 그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이름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인간이 병든 인간으로 멸망받을 인간으로 정죄 아래서 저주 아래서 난 인간을 영생의 구원으로 그렇게 구원시켜서 성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뭐인데? 그 이름은 곧 다섯 가지입니다.

다섯 가지는 예수님이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 영원에 죄되는 것을 예수님이 다 대신 그 형을 받아 가지고 그 죄를 다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고, 또 하나님의 율법을 대신 완전히 행하셔 가지고 그 완전히 행한 것을 그 사람에게 대행한 것으로서 입혀 주었고, 또 하나님과 화친된 것을 그 사람에게 입혀서 이 세 가지 사죄 칭의 화친을 입혀 줬으니 이 운동, 그 사람을 이 공로를 입혀 가지고 그러면 이 공로로 말미암아, 이 공로를 입히고 이 공로로 말마암아 두 가지 운동자가 나왔으니, 이 공로로 말미암아 두 가지 역사하는 운동이 나왔으니 그 운동 하나는 성신의 감화요 운동 하나는 진리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대속하기 전에 왔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하는가? 구약 성경도 이 아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벨이 양을 잡아 가지고 제사 드린 그것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예표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사람들에게는 이 원죄와 본죄로 죽은 거게서 구원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세 가지 공로를 우리에게 입히기를 누가 입히는고 하니 성령과 진리가 입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은 뭐하고 있느냐? 성령은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성신의 역사요 또 진리 역사입니다.

성령과 진리는 세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믿어지게 하고, 또 입게 하고, 이 세 가지 대속을 벗지 못하게 하고, 벗지 않도록, 강제로 못 하게 하는 게 아니라 벗지 않도록 하고, 또 이 세 가지 대속을 입은 자들에게 영감과 진리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게 하고 하는 이 다섯 가지 운동, 이 다섯 가지 운동은 인간을 변질된 거게서 완전히 정상적인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본질대로의 사람으로서 이렇게 성화시키는 이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제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가 완전히 나았습니다. 완전히 나은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운동인 이 다섯 가지 운동은 우리를 부정모혈로 잉태되어서 출생한 그 원죄, 본죄, 악성, 악습, 악령으로 된 이 사람을 완전히 변질시켜서 변화시키는 데에는 이 다섯 가지 운동 외에는 없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이 병신이 그만 당장 일어났습니다. 이거는 뭐이냐 하면은 변질되어서 비정상의 사람으로 출생한 것은 일반인은 다 비정상인으로 출생됐고 다만 특수인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님만이만 이 원죄 본죄 아래에서 출생하지 안했지 다른 것은 다 원죄와 본죄 아래에서 죄악의 사람으로 출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나면서 병신된 자인데 이 병신된 자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름으로 일어서라 하고서 일으키니까 일어서 버렸어.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라 그말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 이름이 높다 하는 것도 역사가 높다 말이요 그 사람 이름이 없어졌다는 말은 그 사람 역사가 없어졌다 말이오. 그 사람 이름이 죽었다는 거는 그 사람 역사가 다 절단나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사죄 역사, 칭의 역사, 화친 역사, 영감 역사, 진리 역사 이 다섯 가지 역사를 믿고 일어설 때 일어설 수 있다 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섯 가지 역사를 믿고 일어설 때에 일어서게 된다. 내가 사죄를 입었으니 내가 다시 범죄하지 안하고 죄 가운데 있지 안하고 죄짓지 안할라고, 나는 칭의를 입었으니 내가 의롭게 살라고, 나는 하나님과 화친됐으니 하나님을 내가 떠나지 안할라고, 나는 영감으로 중생됐으니 영감으로 살라고, 진리로 중생됐으니 진리로 살라고 이렇게 요 사실을 믿고 살라고 애만 쓰면, 애만 쓰면 완전히 인간 변질성으로 출생된 이 모든 것은 완전히 성화되어서, 변화되어서 새사람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게서 보입니다.

그라니까, 이 베드로는 은과 금은 가지지를 안했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이 사람을 나면서 앉은뱅이 된 데에서 고쳐 줬습니다. 고쳐 주니까 그만 이 앉은뱅이가 일어섰습니다.

일어서니까 그때부터 이 앉은뱅이는 구걸하던 일을 완전히 떠나 버렸습니다. 이제 다시는 구걸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남에게 구걸하지 안하고 자기가 과거를 생각하며 자꾸 구걸을 많이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한 푼 주면 ‘내가 여기 앉은뱅이로 있을 때 내가 남에게 구걸하지 안했느냐? 이제 나를 하나님이 고쳐 줬으니까,’ 다른 사람 한 푼 주면 두 푼 줄 것이요, 구걸 하는 사람이 완전히 벗어졌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나면서 앉은뱅이를 이것을 완전히 일어서서 온전한 사람을 만들었지, 두번째는 구걸하던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구걸을 줄 수 있는, 구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지, 또, 셋째는 그렇게 항상 탄식하고 불만하고 늘 공포와 염려와 그 속에 불만 불안 가운데 쌓여 있는 사람을 한없는 기쁨의 사람 만들었어. 아마 그 대중 가운데 많은 군중 가운데 제일 기쁘기는 이 사람이 제일 기뻤을 것입니다.

오늘 은 뭐 제가 웃고 어짜고 하지마는 나이가 사십 이상 되는 사람으로서 속속들이 웃고 기쁜 사람은 없습니다, 사십 이상 된 사람은. 철이 없어 신혼부부라든지 뭐 한 삼십 이내 있는 천지를 모르고 그저 먹을 것 있으면 떠들었지 인생이 사십이 되든지 그리 안하면 오십 고개 넘어서 오십이 넘어 가지고 ‘인생이 무엇이냐, 내 장래가 뭐냐, 내가 살 날이 얼마가 남았느냐, 내가 죽으면 어찌 되느냐, 이 자식들은 어찌 되느냐?’ 벌써 인간의 눈을 뜨고 난 다음에는 그 평강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 사람은 지금 일국에 정권을 가졌으니까’ 아니오. ‘저 사람은 큰 회사 사장이니까' 아니오. ‘저 사람은 자녀가 저렇게 뭐 모두 출세를 했으니까’ 아니오. 알겠습니까? 이렇게 그 앉은뱅이는 항상 구걸하면서도 근심 걱정 안 했겠습니까? 근심 걱정이요 불만 불평이요 항상 불만입니다. 왜? 구걸 얻어도 얻어도 또 더 얻고 싶고, 얻으니까 또 얻어야 되겠고 또 얻어야 되지 않습니까? 자꾸 자꾸 남에게 이 사람 벗겨야 되겠고 저 사람 벗겨야 되겠고, 이 사람을 이용해 먹어야 되겠고 저 사람을 이용해 먹어야 되겠고,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인인 성사해 가지고 인인 성공을 해야 되겠고 저 사람으로 인인 성공해야 되겠고 모든 사람을 다 접촉해 가지고, ‘내가 이제는 이 정권자가 됐으니까 이제는 나는그러니까 이 무슨 도, 무슨 도 무슨 도 또 무슨 도 무슨 도, 미국으로 말하면 무슨 주 무슨 주이 주에 있는 사람들 내가 다 점령을 해야지’ 뭐 그 사람은 좋은 줄 알아도 그 사람 항상 불만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불만, 어떤 사람은 명예에 불만, 어떤 사람은 권세에 불만,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찬성하는 찬성 수에 불만, 뭐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랬는데 이 앉은뱅이는 다 이런 사람이오. 다 이거 있던 사람인데 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셋째는 완전히 기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앉은뱅이가 일어났는데 그 사람에게 무슨 불만이 있었을 것이요 불안이 있었을 것입니까? 그때 또 누구보다도 기쁘지 안했습니까? 소망과 희망이 넘쳤습니다. 이래서, 이 사람을 이렇게 행복된 사람으로 베드로가 만들어 줬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을 이제 성전에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성전에 출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성전에 네번째 성전에 출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당장 평생 거기 가도 항상 나이가 몇십 세가 됐는지 모르지마는 성전 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구걸하는데 거기 들어갔던 자가 이제 베드로와 요한 만나 가지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니까 그 이름을 가지고 이제는 그 사람이 성전에 자유로 출입하는 사람이 돼졌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과 직접 영교하는 사람이 돼졌지,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다섯째로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보고서 ‘하 저거 참 저래 살진대야 안 사는 게 낫지, 저래 났으면 안 나는 게 낫지, 저 난 게 무슨 소용이 있나?’ 불쌍하고 가련했는데 ‘저거는 날 때부터 병신인 모양이라.

아이구, 저런 자식 낳을까 싶어 참 겁나. 저렇게 불쌍한 사람이 어데 있고 비참한 사람이 어데 있어?’ 이랬는데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에게 줬을 때에 당장 그 사람은 변화됐습니다.

온 청중이 뭐, 그때 몇백 명이나 모였는지 몇천 명이나 모였는지 몇만 명 모였는지 모르지마는 모든 군중은 다 앉은뱅이로 일어선 그 사람에게 인기가 집중입니다. 뭐 시선이 전부 다 그리 다 기울여졌을 것인데. 인기 집중이오. 제일 인기가 좋았소. 모든 사람이 그리 기울어졌습니다. 그렇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을 당장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존대하게 보이는 이 사람 만드는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보니까 그 앉은뱅이 그 사람이, 나은 사람이 이제는 저를 메어다 놓은 사람도 있고, 메어다 놓은 사람도 있는데 메어다 놓은 사람들이, 일어났으니까, 자, 메어다 놓은 사람들이 일어났으니까 그 기쁘겠소 즐겁겠소? 자, 메어다 놓은 사람들이 그 앉은뱅이가 일어났으니까 기쁘겠습니까 즐겁겠습니까? 기쁘겠다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 보십시오. 걱정이 꽉 쌓였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걱정이 꽉 쌓였지. 밥통이 떨어졌거든. 밥통이 떨어졌어.

죄짓고 살면서 꺼먹꺼먹 꺼머 가지고 막 이래 가지고 남을 모가지를 따고 피를 쪽쪽 빨아서라도 저가 마누라에게 잘 먹어라, 잘 입어라 ○○○ 모양으로 이렇게 이래 해 주니까 좋아서 벙긋거리다가 이게 떡 떨어져 버리면 죽을 지경입니다. 그 사람이 교회 나와 가지고 예수를 믿어서 다시는 그런 짓 할 수 없다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면은 예수 믿는다고 막 달라들어 가지고 핍박하고 하는 그게 뭐 때문입니까? 이거 때문이라 그 말이오.

이렇게 떡 일어난 사람이 이제까지 메어다가 만날 성전 미문에 갖다가 놨는데, 놓은 사람이 있다가 그래 이 나으니까, 나으니까 ‘야 어데 가노, 어데 가노?’ 어데 가노 하면 대답했겠소? ‘어데 가노? 우리하고 같이 가자. 내가 너한테 메어다 준다고 그렇츰 애를 쓰고 이랬는데 뭐 나 안 따르고 어데 가노, 어데 가노? 어데 가, 어데 가?’ ‘싫어! 듣기 싫어. 듣기 싫어, 가! 물러가. 가. 싫어.

너는 나 앉은뱅이 이용만 해먹었지 무슨 필요 있어? 내가 평생에 병신이라도 나 고쳐 줬어? 떠나! 나는 나 고쳐 준 사람에게 가.’ 베드로에게 가 가지고 붙들고 막 춤을 추면서 자꾸 뒤에 따라다닙니다.

여러분들! 제가 아무리 제 힘과 몸과 생명을 다 희생했다 할지라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람병을 고쳐 주지 안하면 결국은 저는 뺏기고 맙니다.

결국은 원수되고 맙니다. 무슨 소용이 있소? 똑똑히 알고 살라 그 말이오.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따라옵니다. 따라오는데 뭐 앉은뱅이 따라오는 거 베드로가 따라오라고 뭐 자꾸 손짓 했겠소 어쨌겠소? 자꾸 따라오는데 따라오니까, 따라오니 그저 아무 말도 안 하고, 자꾸 따라오니까, 사람들이 자꾸 따라오니까 그저 제 뛰고 오는가보다 하는데 죽자고 안 떨어집니다.

아마 그때 베드로가 ‘야, 이제 그만 집에 돌아 가거라.’ `아이구 안 돌아 갈랍니다. 나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나는 평생 따라다닐랍니다.

평생 나는 선생님들의 종노릇하겠습니다. 내가 평생 나면서 앉은뱅이인데 이래 성해졌으니까 내가 평생 선생님들 섬겨야 되지 내가 집에 가서 뭐하겠습니까? 나는 안 갈랍니다.’ 떼 버리고 죽자껏 떼 버려도 안 갈 것입니다. 죽자껏 떼 버려도 안 갈 거라. 요거 알아요. 알아요.

그래 놓으니까 어제 내가 보니까 저 어떤 양반 말이요, 자기 아들 애착스럽게 참, 자기 자녀는 되게 사랑해. 사랑하는데 보니까 팔월 추석날 막 차를 내 가지고 아들 딸 손자 전부 다 꺼먹꺼먹 꺼머 가지고 양산동 기도원에 왔어. ‘이거, 인제 이거 아무래도 병을 고쳐 줘야 되지 나중에 자식 뺏기고 아들 뺏기고 다 뺏긴다.’ 하는 그랬는가 꺼멍꺼멍 꺼머 왔어. 꺼머 와 가지고 그래 있는데 있다가 비가, 비가 또닥또닥 하니까 ‘그만하고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그래 가지고 싸 가지고 가. 아직까지도 덜 됐어. 그래 가지고는 못 만들어.

비가 와도, ‘비가 와도 기도해야지 안 된다. 오늘 온 거니까, 또 우리가 은혜받기 위해서, 주님 앞에 기도하기 위해서 비도 맞아야 되고 죽어도 될 터인데 비 온다고 가? 안 된다.’ 이랬으면 될 것인데 아직까지 자기 아들 안 돼. 아직까지 지금 안 따라가요, 지금. 인제 완전히 병을 고쳐 줘야 따라가지.

베드로 유익이 뭐요? 그것뿐입니까? 그라고 나니까 다른 사람이 있다가서 베드로 보고 ‘야 저 어떤 사람이야? 저 어떤 사람이야?’ 막 주목하고 뭐 인기가 굉장합니다. ‘저 어떤 사람이야? 어떤 사람이야?’ 이라니까 베드로가 하도 민망하니까 떡 말하기를 ‘우리 개인의 경건이나 무슨 의를 가지고 이 사람을 낫운 것처럼 왜 우리를 보고 주목해? 자꾸 우리를 주목하고 우리를 뭐 별스러운 사람, 우리도 자기와 같은 사람이야. 왜 우리를 주목해?’ 모든 사람이 주목하면서 이렇게 존대했습니다. 존대했어. 이렇게 존대했어.

존대하니까 베드로가 있다가 딱 구별하기를 ‘이거는 우리 개인의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한 것이다.’ 그 종 예수, 종 예수. 알겠습니까?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한 예수님, 하나님께 복종한 예수로 말미암아 이제 이 인간 구원이 생겨났다 그 말이오.

베드로가 은과 금은 제 소유로 삼지 안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 공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 구원 공로를, 이 운동을 자기 것으로 삼았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 구원 운동, ‘야, 너 재수하는데 서울대학 들어가려면 서울 가 가 재수하라.’ 한 것만치 너는 뺏겼다. 한 것만치 뺏겼다. 뭐 제가 일류 대학에 가서, 일류 대학이면 뭐이며 어데 가면 뭐할 거냐? 인생은! 병자로,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죄에서 해방시켜서, 완전히 인간을 성화시켜서 산 사람으로 성화시키기 전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거 외에 딴게 없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것이 돈 가진 것만 못했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이제 이런 큰 역사가 몇 가지입니까? 요번에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몇 가지? 다섯 가지? 또? 뭐 여섯 가지? 또? 일곱 가지야, 일곱 가지. 일곱 가지.

나면서 병든 앉은뱅이 나았지, 또 한번 해 봅시다. 앉은뱅이 낫았지, 또 구걸하던 자, 만날 남에게 덕만 볼라 하고서 가해하던 구걸하던 자 이제 구걸 주는 자 만들었지, 또 성전에 평생 애써도 하나님 만나보지 못하던 자 하나님 만나보게 만들었지, 또 항상 비참하고 가련해서 남한테 천대받던 그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인기 끄는, 인기가 끌리는, 가장 인기 집중하는 그 사람 만들었지, 근심 걱정 그런 고통이 있는 것을 그중에 제일 기쁘고 즐겁고 행복된 사람, 아마 그 시간에 아마 그 사람보다 더 행복된 사람은 없었을 거라.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보다 더 행복된 사람 있었겠소, 그때? 가만히 생각해봐요. 아마 그때 그 사람이 제일 즐거울 것이고 기뻤을 것입니다. 몇 가지요? 다섯 가지.

또 베드로는, 이제 죽자껏 낳아 가지고 빼빼 빼빼 그런 데서 길러 가지고 젖 먹이고 마른 자리 진 자리 가려 가면서 길렀고, 또 국민학교 시켜, 또 중학교 시켜, 대학 시켜, 또 외국유학 시켜, 박사 학위까지 만들어서 또 뭐 어떻게 다 했는데 그 사람은 차지 못 하고, 메어다 놓은 자는 차지 못하고 누가 차지했소? 그 앉은뱅이 누가 차지했소? 누가 차지했어요? 자, ○○○집사 한번 대답해 봐.

누가 차지했어요? 베드로가 차지했어. ○○○집사님, 누가 차지했어? 베드로가 차지했어. 깨달아져요? 깨달아져요? 베드로가 차지했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해.

누가 차지했느냐? 그 사람을, 그 사람을 이 다섯 가지를 고쳐 준 그 사람에게, 다섯 가지 고쳐 준 그 사람의 사람이 되고 말아요. 이 다섯 가지로 고쳐 준 그 사람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 사람이 뭐 가지고 다섯 가지 고쳐 줬어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가지고 고쳐 줬지.

저는 어째 됐어요? 그 사람이 줄줄 따르니까 사람 얻었지. ‘야, 저 지금 너를 자꾸 메어다 놓은 사람이 지금 공들었다고 자꾸 가자 하는데 가거라.’ 이라니까, ‘가자 한다, 가거라 가거라.' 이라면 가겠소? 자꾸 가자 하면 ‘아, 싫어요. 잔소리 말아요. 내 병신 이용만 해 먹었지 뭐 지금 했다고 지금 뭐 구걸 해 가지고 갈라 먹었지 뭐 내가 평생 그랬으면 병신 노릇만 하고 지냈을 터인데 이제 나를 병신에서 고쳐 준 나는 이 베드로 따라다니지 안 간다’고서. 뭐 아마 그때 메다 놓은 사람들이 아주 냉면당했을 것이라. 낯이 빨가이 냉면당했을 거라.

야, 그래도 가자. 집으로 가자.’ 가자 하면 따라갔을까요? ○장로님, 따라갔겠소? 따라가겠소? 안 따라갔어? 냉면당했지. ‘아, 안 따라갈랍니다.’ 냉면당했어.

냉면당할 요량하고 살아, 함부래. 냉면당할 요량하고. 냉면 안 당하구로 살아.

이라고, 베드로 있다가 그러니까 ‘야, 좀 그라면 그래 쌓으니까 가 보지’ `안 갑니다.’ ‘가 봐라' `안 갑니다. 내가 당신 떠나서 어데 가겠습니까? 내가 선생님 따라서 죽어도 나는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선생님 따라다니겠습니다.’ 그 사람 됩니까 안 됩니까? 그 사람 돼. 그 사람 돼요.

알겠습니까? 정말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운동으로 사람을 완전히 고쳐서 이 다섯 가지를 만들어 준 그 사람의 사람 되고 맙니다. 그 사람 사람 되고 말아. 이 재미로 사는 거라, 이 재미로. 백 목사도 이 목사노릇 잘했으면 이 다섯 가지 병을 고쳐 준 자는 딴데 못 가요. 백 목사 사람이야. 죽어도 같이 따라와요. 아무 데도 안 가요.

알겠습니까? 이것 때문에 사는 거라, 이걸 보고서. 그러니까, 따라오니까 몇 가지요? 몇 가지? 여섯 가지 아니요? 또, 자기도 모든 사람이 주목합니다. 하도, 다 주목해 ‘아이구 저 어떤 사람이고? 저 천사이가 뭐꼬? 저 어떤 사람이고?’ 막 이래 주목 모든 사람이 주목하니까 이제 이거, 모든 사람이 주목한다 그말은 모든 사람이 영광을 내게 돌리니까 그 말이오. 모든 사람이 내게 영광을 돌리니까 이 영광을 바로 돌려야 되겠다 그 말이오.

영광을 돌리니까 ‘우리 개인의 경건 가지고 된 줄 알고 자꾸 우리를 주목하고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느냐? 이거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 그 종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했다.’ 그 영광은 주님에게 딱 돌려 버리고 차지하지 안했습니다. 얼마나 영광을 모든 사람이 돌리기 때문에 그렇겠습니까? 이러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자는 이렇게 자기도 영광스럽게 됩니다. 영광스럽게 되니까 모든 사람이 영광 돌려.

암만 대통령이 뭐, 미국 대통령 대국 대통령은 많은 사람이 자기 사람 있을 줄 알아도 실은 조그만한 교회의 목회자만치 자기 사람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저 뭣을 바라서, 뭣을 바라서 껍데기로 이래 둘러맞춰 가지고 이렇지 진정 마음과 속, 정과 속, 정신 전부 저 위해서 ‘그가 죽을 때 되면은 내가 생명을 대신 할 수 있으면 대신 할 수 있겠다.’ 뭐 세상 거 그런 거 있지마는 그거는 다 외식 껍데기고 진정 그 속에 심신과 인격과 속에 중심을 다 기울임을 받은 사람이 누구겠소? 누구겠습니까? 정권자입니까? 사장입니까? 어떤 사람이요? 목회자입니다. 알겠습니까? 목회자요, 또 권찰이오.

우리 교회는 이 나보다 말이지 권찰에 대해서 뭐 나보다 훨씬 권위가 더 있습니다. 내가 혹 물어보거든. 저거 권찰이 좀 어떻다 싶어서 권찰 좀 한번 내가, 내가 시기하는 거는 아니고. ‘저게 보자. 권찰을 낫게 여기나 나를 낫게 여기나, 저거 내 사람이 됐나 권찰 사람 됐나?’ 슬그머니 알아보고 저거 권찰을 슬그머니 무슨 말을 한번 해 보면 그만 낯이 새파라이 포로족족 해 가지고 ‘안 그러는데요?’ 그만 돌아갑니다. 돌아가. 조금 더 말하면 대번 항거 나올 거라.

왜? 그 사람 만드는 데 공이 더 들었거든. 나는 설교만 했지마는 공이 더 들었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 이러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것보다 자타에게 유익이 없다는 것을 여게서 똑똑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제일 행복되게 살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 인간병 고친 사람입니다. 인간병 고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대목회를 해도, 대정권자가 돼도, 대사업가가 돼도 자기를 참사람으로 고치지 못한 사람은 참 행복은 맛보지 못합니다. 거게만 참 행복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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