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행함의 믿음

 

1984. 12. 23. 주일오후

 

본문 : 야고보서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은 세상에 말하는 믿음들이 많이 있지마는 기독교에서 믿는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그 목적이 무엇인 것을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대로 그대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서 그치면 그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랬습니다.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믿음 자체가 산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라.

 우리가 성경이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그 뜻은  무엇이며,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해 주셨으며 또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신 이 사실을 자기가 아는 것이 귀하고 또 인정하는 것이  귀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알고 인정한 대로 실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귀한  믿음은 믿음이지마는서도 그 믿음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대학자라도 죽었으면 그는 소용없고 아무리 위대한  정치가였더라는데도 죽었으면 소용없습니다. 또 세계를 참 마음대로 이렇게 자유  할 수 있는 그런 어떤 그 발단적인 그런 과학을 가졌다 할지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젊은 사람이라도 용감스러운  사람이라도 그만 죽으면 거게는 아무 작용은 없는 것입니다. 죽었으면  회로애락은 없습니다. 기쁨도 없고 또 분함도 없고 슬픔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아무 작용이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기록해 주신  대로의 하나님을 어떠한 하나님이심을 알고 또 어떻게 우리가 소망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을 알고, 또 어떻게 행해 나가야 할 것을 안다 할지라도 다  귀한 것은 귀하지마는서도 행함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죽으면 아무 작용 없습니다. 죽은 자에게 기쁨이 있을 리가 없고 죽은자에게  두려움도 있을 리가 없고, 평안함도 있을 리가 없고 또 승리나 쾌락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죽으면 아무 오관의 감정이나 움직임이나 그 작용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아무리 명철하고 세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명이 끊어지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 작용이 없습니다. 또 아무리 유순하고  인자하고 관대한 그 덕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명이 끊어졌으면 그는 그저  하나의 흉한 송장이요 썩어질 것뿐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온갖  지식의 믿음을 가지고 또 인정의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실지로 행함이 없으면  그에게는 아무런 작용은 없습니다. 또 아무런 그 효력도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 말씀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은 지극히 큰 능력이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온갖 영광스러운 그 능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크신 생면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있습니다. 알고 인정하는 자에게는 지극히 큰  능력이 큰 능력의 보호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그 능력이 다 와서 있지마는  행함이 없으면은 그 능력은 우리 속에서 그대로 머물고 있고 잦아지지 아무런  작용은 전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는 것이 보배로운 일이요  인정하는 것이 지극히 귀한 일이지마는 아무리 이 귀한 믿음을 가져서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고 또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가 우리에게  와서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행함이 없으면 그 보호는 우리에게 역사할 수가 없고  또 그 능력은 우리에게 와서 활동하고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지식과 인정의 믿음만 가지고 행해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결국은 그 믿음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죽은 믿음이니까 썩어지고 없어지고  맙니다. 자기가 알고 인정하는 이것만 가지고 있을 때에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할 수 있는 그 능력이 와서 머물고 있습니다.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도 와서  머물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그 사람이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가 아니면 그 강한  대적 앞에서. 맹수 같은 그 사자의 이빨 앞에서, 그 사자 앞에서 그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그것만 생각하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 보호를 입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서 보호 입은 것도 뭐 별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와같은 능력이 우리에게 다 와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식으로 알고 있고 또 인정하고 있지마는서도 그 능력의 보호만이 보호할 수  있는 그런 현실을 주님이 만들어 주실 때에는 그 능력의 보호를 체험하게 하신  것이요, 그 능력의 보호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요, 그 능력의 보호가 어떠한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고 신앙으로 자라가게 하려 하는 것인데 그때에 자기는 그  무서운 대적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은 그 행동을 하지 안하면 그  능력은 역사하지 못합니다. 입은 행동을 그 믿는 믿음대로의 행하는 행동이  나타날 때에 그 행동을 통하여서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도 와서 일할 수 있고 또  지극히 큰 능력의 모든 역사도 건설도 파괴도 원수 갚는 복수도 모든 것 다 그  능력이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자들이, '너희들이 썩을 양식을 위하지 말고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하실 때에 '우리가 그라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할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곧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독생자를 알고 인정하고 알고 인정하는 대로 고대로 행하면 하나님을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행할 때에 와서 대기하고 있는 지극히 큰  능력이 내 행함 안에서 내 행함을 통하여서 역사해서 그분만이 할 수 있는 그  지극히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다 신앙생활들이요 그분만이 할 수 있는  지극히 큰 전투의 방어나 승리를 그 분이 하셔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알고 인정하는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자기가 현실을 당할 때에  그분의 어떠하심을 알고 인정하는 그대로의 행함이 있어야 됩니다. 그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 능력은 와서 우리에게 산 역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 성탄일로서 오전에 말씀을 우리가 그저 그리 세밀하지는  안하지마는서도 강령적으로는 우리가 잘 배웠습니다. 성경을 보고 그 순서대로  그 사실을 찾을려고 하면 아마 성경을 그래도 몇 독을 읽어도 안 될 것이고 여러  번을 읽어야 할 터인데 그렇게 간추려서 우리가 배웠습니다. 이러니까 그대로  우리가 지식할 수 있고. 또 그 사실을 그 실상을 인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할일이 무엇이냐? 할 일은 행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그  알고 인정한다는 것이 다 죽은 것이요 그 다음에는 그 썩는 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전부 다 허무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갈 때에 우리 앞에 어떤 그 큰 일을 닥치든지  작은 일을 닥치든지 또 내게 뿐 아니라 이 국가적으로 크고 작은 일, 참 어려운  일, 세계적으로 이렇게 모든 그 크고 작고 복잡하고 상상 못 할 온갖 그 순서를  닥칠 때에 우리는 행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순서를 닥칠 때에 아, 이  순서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 이 순서가 나타나는 것이니 이것도  주님이 다 예정하신 그대로의 순서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인정하고, 그러면  이 순서는 하나님의 목적인 곧 우리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구원을 위한 이  예정이요 이 순서라는 것을 그 현실에서 우리가 믿을 때에 믿을 때에 그때에  근심도 나올 것이요 어려움도 나올 것이 요 염려도 나올 것이요 두려움도 나올  것이요, 거기에 내가 그대로 행할라고 할 때에 그런 그 순서인 그 현실로 알고  그 현실이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 곧 내 구원을 위해서 그것이  나타나고 있는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고 내 구원을 위함이니 이 순서를 내  구원을 위하여 내가 작용하겠고 내 구원을 위하여 이것을 다 이용하겠고 내  구원을 위함인 줄 알고 이 것을 상대하는 그 사람이 될려고 할 때에 산 자의  온갖 작용이 일어날 것이요, 잠시 잠깐은 그 어려운 작용이 일어날 것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 자기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행하면 살고 안 행하면 죽고,  행하면 전능이 와 가지고서 자기가 하는 일을 일 해 주시고 또 전능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보호해 주실 것이고, 자기가 믿고 인정함으로 고대로 믿고,  인정하는 대로 자기는 행하고, 인정하는 대로의 담대함과 평강을 가질라고  인정하는 대로의 그 평안의 기쁨을 가진 사람이 될려고 애를 쓸 때에 거게  싸움이 있을 것이요 씨름이 있을 것이요 여러 가지 애로가 있을 것이요 그런지  그 후에 잠깐 그 순서가 통과한 뒤에는 크게 즐거움의 결과를 자기가 가져오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모든 순서를 닥칠 때에 그 순서가 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순서라 하는 것을 알기도 하고 인정도 합니다.

그것만으로서는 죽은 믿음입니다. 알고 인정함으로 알고 인정하는 사람이 내가  돼야 되겠고, 알고 인정하는 내 성품이 돼야 되겠고 내 마음이 돼야 되겠고,  그러면 내 마음에 평강이 이루어져야 될 것이고 기쁨이 이루어져야 될 것이고  담대함이 이루어져야 될 것이고 고 말씀에 따라서 내 구원을 이루는 그 행위를  우리가 하여야 할 것입니다. 믿지 안하면 그 행위를 하지 못할 것이요 행위를  할라고 할 때에는 여러 가지 마찰과 그 애로가 있을 것이나 그것이 산 자의  행위입니다. 산 행위입니다. 그렇게 행할 때에 그 능력은 내게 살아 역사하고,  그 보호는 내게 살아 역사하고, 또 그 삶을 인하여서 내가 살았고 내 행위가  살았고, 거기에 상당한 그 결과인 자기에게 평강이 맺어질 것이고 거게서  하나님의 영광도 맺어져서 하나님의 그 영광이 세상에게 드러내서 빛이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고 현실을 만날 때에 고것이 우리 구원 위해서 예정된 이  사실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실행하는 사람이, 인정하는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알고 인정함으로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행함이요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행함이요 그런 성질을 가지는  것이 행함이요 그런 담력을 가지는 것이 행함이요 그런 평강을 가지는 것이  행함이요 이로 말미암아 그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명해 주시는 고 명령 준행하는  것이 그것이 다 행함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은 내게 살아서  역사하시고 만일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 명령은 내게 와 가지고서 살아 역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고 아무 작용이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얻는 구원은 다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그 간격 이 삼  일이라는 간격이 있었지마는서도, 우리 생활의 모든 걸음은 십자가의 걸음인데  십자가의 걸음은 당장 죽고 당장 살아나고, 당장 근심하고 당장 평안하고, 당장  울고 당장 웃고 당장에 떨고 당장에 평안함을 가지는 것이 우리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가 행함 있는 믿음을 가질라고 할 때에 행할라고 할 때에  거게는 먼저 두려움과 어려움과 그 죽음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요, 그러나  어려움이 있을 것이나 하나님의 그 지극히 크심을 내가 믿음을 인해서 어려움이  있으나 어려움 있는 그것은 내 인간 자체의 생각이요 인간 자체의 실력이요 그  인간만으로서 상대하는 것인데 그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믿음으로 그  능력이 오면은 문제 없이 그런 것을 다 쉽사리 다 해결할 수가 있고 승리할 수가  있고 그런 대적들을 다 방어할 수가 있는 이 사실을 자기가 믿을라고 실지로  믿을라고 그 실행 있는 믿음을 가질라고 고렇게 자기는 인정하고 행할라고 애를  쓸 때에 애로 가 있는 그것이 십자가요 그렇게 애를 써서 행할 때에 지극히 큰  능력은 와서 역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상상 못 할 그런 결과를 맺는 것이 다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도 그는 살아나기 전까지는 도무지 안  된다는 그 마리아와 마르다의 생각이 옳지마는 살아나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다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자기네들의 생각으로는  상상도 못 할 썩은 자가 살아나는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그 일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었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그 일을 하실 수  있었던가?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고 고대로 자기들이 부인되는 십자가를  진 자기들이 부인되는 고 행위를 자기들은 할 수 없지마는 하나님은 할 수 있다.

주님은 할 수 있다. 주님의 약속은 신실히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믿을 때에 그 능력은 와 가지고서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다 그러합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무 재미도 없고 아무  작용도 없고 아무 감각도 없고 그저 흐리멍텅하게 그렇게 꼭 생명 없는 것을 다  뻐들트려 놓은 거와같이 아무런 산 작용이 없고, 또 산 작용은 그것은 파괴와  건설의 작용이 있을 것이고 희로애락의 작용이 있는데 아무 그런 감각의 작용이  없는 그 이유는 뭐이냐? 우리의 믿음에 그 생명이 와서 일할 수 없는 그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오전에도, 우리의 구원은 자존자에게서 시발됐다, 또 완전자에게서  시발됐다 사랑의 하나님에게서 시발됐다, 전지에서 시발됐다, 전능에서  시발됐다, 영원에서 시발됐다, 영원불변에서 시발됐다, 무형에서 시발 됐다  이렇게 말을 했는데 이것을 알 자가 누구냐?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지식하고  입으로 아무리 말하고 그렇다 인정해도 이 지식은 산 지식이 못 됩니다. 이  지식은 산 지식이 못 되고 이 인정도 산 인정이 못 됩니다. 산 인정은  어데서부터 시발되느냐 하면 실행에서부터 시발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현실에 듣고 보고 접하는 모든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  전개될 때에 모든 것이 전개되는 모든 그것이 전개될 때에 우리는 그것이 곧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면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며  인정하면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성경을 봐서 다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해서, 인정하는 사람으로 살 때에 능력이 와서 역사합니다.

인정하는 사람으로 살지 안하면 그 능력은 와서 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자가 거게서 내가 무엇이관대 지극히 크신 하나님께서 이 우주와  영계의 모든 것을 예정하신 그 예정이 내 구원을 위해서 예정되었다는 이 사실을  제가 조그매씩 차차 알게 될 것이요 이것을 알 때에 한 없는 감사와 기쁨을  가지게 되고 평강을 우리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의  기쁨과 평강은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생각하는 데에서 나오고  어렵지마는서도 지극히 작은 것에라도 실행을 하는 거게서 맛을 볼 수가 있고,  고게서 체험할 수가 있고 고게서 그 실상으로 산 그 생명의 능력을 자기가 가질  수 있고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뭐 별별 일이 우리에게 닥칠 것입니다. 참 울 만한 일도 있고 두려워할  만한 일도 있고 기막히는 일도 있고 답답한 일도 있고 무서운 일도 있고 오만  일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예정 없는 일은 없습니다. 전부  예정대로입니다. 예정이 아닌 것은 하나도 나타남이 없이 전부 예정대로입니다.

전부 예정대로인데 어떤 일이 나타나든지 내게 나타났든지 내가 들은 것이든지  눈으로 본 것이든지 접한 것이든지 내가 모르고 있는 그 모든 것이든지 어쨌든지  그 모든 것은 우리 기독자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내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내 구원은 작게 말하면 내 소아(小我) 작은 내지마는서도 좀 범위를  넓히면은 대아(大我) 내요, 더 범위를 넓게하면 모든 역사에 있는 기독자들이 다  한 덩어리 된 우리의 내요, 우리의 내가 깊이 들어가서 보면은 마지막에 우리가  없어지고 우리가 단 한 사람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되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실행이 없는데서 기독교의 이 지극히 큰 것, 참 놀랠  일이요 놀래고 놀랠 일이요 측량도 못 할 이 지극히 큰 일인데, 고만 이 일에  대해서 전부 머물거려서 다 부인해 버리고 맙니다. 그저 입술뿐이고 이러니까  기독자가 아주 기만쟁이가 될려면 아주 기만쟁이가 되고 거짓부리로 속이고  거짓부리된 자가 될려면 얼마든지 거짓부리 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기만의 그 기만의 모든 종합으로 그렇게 사람이 생각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해 보지 안하면 인간의 지식으로는 궁구해서 발명할 만한 그런 사실들은  아닙니다. 행함으로만 발명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에게 닥쳐진 그 현실 이것도 주님의 예정이라 하는 것이  믿어지지 안하고 어떨 때는 예정이라 하면은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또  불만이 나오고 오히려 낙망이 나오고 우리 속에 악이 많이 나오지마는서도  그거는 옛사람입니다. 이래서 그리 그리 애를 쓰다가 옛 사람을 다 벗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요렇게 바꾸어 변화될 때에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한 내 구원을 위한  기독자의 구원을 위한 예정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그 종적을 대략이라도  알게되고 고럴 때에 우리의 마음의 눈은 밝아서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그  시간적으로도 넓어지고 공간적으로나 종별적으로 넓어져 볼 때에 과연 우리의  생각으로 측량 못 할 하나님의 이 예정 순서를 참 복되게 예정했다 해서 그때에  말하기를 '나는 우매 무지한 짐승과 같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세밀히  관대하시게 아시고 적극적으로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시고 예정하셨는데  망령을 부렸다고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우리는 신앙생활 하다가 뭣이 나타났든지 뭐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것의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모든 존재들이 있지 않습니까? 무서운 것도 있고  징그러운 것도 있고 더러운 것도 있고 참 아주 미운 것도 있고 모든 존재들의  별별 존재가 다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비위에 맞은 그런 것들만  존재케 해 가지고 우리의 배경을 삼지를 아니하시고 우리가 상상도 못하고  싫어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섞여 있습니다. 큰 것도 작은 것도 두려운 것도 참  기막히는 것도 그런 것들이 다 존재하고 있는데, 이 모든 존재가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하는 이것을 믿는 믿음을 가졌을 때에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은 우리가 논리적으로 해 가지고서 당장 알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신 이 사실을 성경을 보아서 알고 또 인정을 하면서 그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창조했으니 거게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염려하거나 어떤 그 모양을  가지고 어떻게 나타났다 할지라도 내 앞에 모든 존재는 이렇게 저렇게 그 존재  모든 존재로 내 주위 환경의 애경을 딱 만들어 놓고 내 게는 네가 요렇게 해라  하는 고게 있습니다. 네게는 요렇게 해라. 그런 배경속에서 너는 요렇게  걸어가라 하는 그 걸음이 있을 때에 그때에 우리는 그 배경 속에서는 도무지 참  발자욱을 옮겨 놓을 수가 없는 그런 아주 애그러질 수밖에 없고 기절할 수밖에  없는 거기에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과 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그분이 전지전능의 창조주시요, 그분이 창조하신 그 사실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자꾸 이와 같이 자기가 명상하고 이래 가지고서 믿음으로 믿음으로 자꾸 자기가  새로와져 갈 때에 측량 못 할 그 존재 앞에서 담대히 주님의 명령대로 한 자욱  한 자욱 떠벅 떠벅 걸어갈 수 있습니다. 걸어갔을 때에 그 걸음은 전능하신  능력의 걸음 인데 그 걸음을 걸어가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그 걸음은 전능자의  길입니다. 전능자의 도우심입니다.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는 것을 자기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존재에 대해서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창조하신 이 사실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듣고 배웠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 모든 존재를 상대할 때에 그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자꾸 자기가 새롭게 해 가지고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게서 주님이 요리  가라 조리 가라, 요거 해라 조거 해라 하는 고것을 믿음이 떨어지면 할 수  없는데, 믿음으로 인해서 행해질 때에 그 행함을 통하여 본 사람은 비로소  하나님이 구원 위해서 창조하신 것도 그 사람이 확실히 지식하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함께 하신다는 것도 자기가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이 알고 인정하는 데에서는, 알고 인정하는 거기에서는  기독자들이 그저 그렇게 기쁨을 가지지 못하고 하나의 허영적으로 또 하나의 이  뭐 기만적인 이 지식으로 이렇게 보게 되기 때문에 고게서 머무는 사람은 다  거짓부리의 사람이 되고, 거게서 머무는 사람은 다 교만한 자가 돼 버리고 말고,  거게서 머무는 사람은 다 흐렁망텅하게 방탕하고 방종하고 거짓되고 모두 다  흐린 그런 사람 되고 맙니다. 고게서 고게서 모든 실존이든지 실존을 보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대로 행할라고 하니 그 행해지지를 안하고 행할라고  하니까 거게서는 도무지 행할 수 없는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그분의 어떠하신  분인 것을 믿고 그분이 나와 약속하신 그것을 믿고 자꾸 그분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인해서 고 현실에 주님이 명령하신 고 명령을 따박따박 걸어서  지나가고 난 다음에 뒤를 돌아보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그 능력도 자기가  체험했고 하나님의 신실하심도 체험했고 또 하나님이 모든 순서를 다 내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신 것이다 이거는 틀림이 없다 하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모든 존재가 나타날 때에 거게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 사실을 확실히 산 지식으로, 자기의 그 살아 있는 보배로, 또. 자기의 구원을  이루는 참 보배로운 양식으로 이렇게 그것을 복되게 유리하게 그것을 자기가  양식 삼을 수 있는 사용할 수 있는 그것은 다만 믿는 자에게만 되지 믿지 앉는  자에게는 안 됩니다. 믿는 자라 말은 알고 인정 하는 것만 된 게 아니고 고  가운데에 행함이 있어야 그 모든 감각과 작용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순서들이 나타날 때에 우리는 거게서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지도록 해야 되겠고 그 예정에 대해서 확고 부동한 사람이  자꾸 돼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확고 부동한 사람이 돼야  되겠고, 또 모든 것이 나타날 때에 모든 존재는 주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확고한 사람이 우리가 돼야 되겠고, 또 모든 그 현실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지극히 큰 능력이 믿음으로 행하는 자 그 믿음 안에서 역사하는 이  사실도 자기가 실지로 경험하고 체험해서 믿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평소에도 자꾸 그렇게 우리의 믿음을 살려서 새롭게 하고,  이렇게 묵상도 하고 명상도 하고 이렇게 해 봐야 됩니다.

 우리가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성경을 떠나서 성경을 떠나서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다 공상이요 그것은 다  공상이요 그것은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그 유혹에 빠져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아무리 눈감고 명상을 한다 해도 또 어떤 것을 생각한다 해도  우리의 그 생각하는 것은 거게서 보배로운 지금 작용인데, 그 생각을 할 때에  생각할 때에 어떤 위대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생각하고, 또 어떠한 사건을  생각하고, 어떠한 물질을 생각하고, 자기 속에서 연상돼서 나오는 자기 생각을  자꾸 생각하고 이것은 공상과 유혹입니다. 공상과 유혹 외에 딴것은 없습니다.

공상과 유혹입니다. 그것도 끝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공상과 유혹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점점 인간화되고 점점  세상화되고, 점점 암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 기록한 대로 성경에서 소개해 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 전능하신 분이라, 하나님이 이거는? 하나님이 그것도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은 그것도 하실 수 있다, 저것도 하실 수 있다, 또 자기가 공중을  본 다음에 아, 구름 저것도 주님이 지으셨다, 저 지금 빗방울이 내리는 저것도  주님이 저렇게 섭리하신다. 저 모든 궁창의 별들도 주님이 지었다, 아, 넓은  우주도 주님이 지었다, 주님의 창조에 대해서 성경에 말씀한 대로 성경대로  그렇게 자꾸 생각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공상이 아니요 그거는 공상이  아니요 그것은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는 것을,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말씀하신 대로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계시를 묵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이 점점 하나님의 계시의 그 진리에 가서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마음이 주님과 그 진리에 접하면 접하면 우리는 어떤 마음이  되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모든 것이 거룩하여진다 하는 그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자꾸 접하고 하나님  말씀을 자꾸 우리가 접해서 묵상하고 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꾸 이렇게  성경이 가르쳐 주신 대로의 하나님을 자꾸 생각해서 대화하고 그 하나님에게  묻고 자꾸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교제해서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으로 교제하고 또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의 모든 것을 비판하고 관찰하고  또 평가하고 자꾸 이렇게 하면 그것이 주님을 딿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라'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딿는 자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받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요한복음 8장 l2절에  보면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그 빛이, 하나님의 그 빛이. 하나님의 그 속성의 빛이, 그 완전하신 완전하심이,  거룩하심이, 전지하심이, 전능하심이 사랑하심이, 진실하심이, 영원하심이,  불변하심이, 그 하나님의 완전하신 그 빛이 옵니다.

 이래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랬습니다. 그  안에 생명 있다 말은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 말인데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연결이십니다. 하나님과 연결, 자존하신 하나님과 연결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안에서만 연결이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안에서 연결되면  그것이 산 자가 되는 것인데 산 자에게는 그 삶이 뭐이냐? 그 삶이 사람들의  빛이라 말은 그 삶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과 꼭 같이 깨끗하게 밝게 하시고,  또 그 마음이 그 몸을 또 하나님의 행동과 같이 밝게 하고, 그 몸이 또 행동을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섭리와 꼭 같이 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의 빛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자꾸 이렇게 성경 말한 대로 생각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돈벌이보다 낫고 사업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왜 나으냐?  나은 그 이유는 하나님을 자꾸 생각하고 또 하나님의 그 모든 속성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해 놓으신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교훈 하신 교훈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언해 주신  예언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리 지도 하신 그 지도를 생각하고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그 빛을 받아서 우리 마음이 밝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 밝게  되니까 사람 중에 사람 중에 그러면 좀 아주 저능의 사람이 그 사람의 일에  대해서 세밀히 관찰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명철한 사람이 관찰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둔한 사람. 아주 저능의 사람과 명철한 사람의 그 관찰하는  것이나 또 계획하는 것은 아주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명철한 사람도  하나님에는 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광명하게 이렇게 빛이 와서  비추시기 때문에 한 달 내 가도 할 일이 없을 때에는 할 일을 생각나지 않게  합니다. 할 일이 없는데 뭐 할라고 생각이 나겠습니까? 또 아무리 엉뚱이같이  자기는 상상도 못 할 저 먼 데 상관없는 일이라도 또 자기가 해야 될 그 생각은  하나님께서 하게 하십니다. 그 생각을 당신이 주관하시지. 뜻을 주관하시지, 또  소원을 주관하시지, 모든 판단을 주관하시지, 이러니까 전능자가 내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그 자기의 마음의 빛을 받아서 자기 마음이 전능자의  마음으로 되는 그것이 둔탁한 자가 이렇게 저렇게 제 마음대로 해 가지고서 모든  것을 재 저지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 진리에 자기 마음을 기울여서 그 빛이  자기에게 들어와서 마음이 밝은 빛이 되도록 그렇게 하는 데에 애를 쓰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필요 있다고 한 자기의 사명이나 자기의 본분이나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나 자기가 방어해야 될 것이나 또 자기가 준비해야 될 것에 대해서  하나도 물샐틈없이 고것이 다 완전히 준비할 것은 준비하고, 또 상대 할 것은  상대하고, 마련할 것은 마련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그  모든 것이 다 바로 되니까 그게 막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거와 같은 그 깨끗함이  되어질 뿐만 아니라 그 속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자유로 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일을 하라고 하시고 이 일을 해라 내가  도와 주마 하는데. 엉뚱한 딴 일에 정반대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도울  수 없고 그 사람이 방해를 지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거 이래 하라  하는데 그 사람이 그 일 하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즐거워서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 돕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 도리에 대해서 우리 마음을 늘  기울이고 있는 이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연결되는 것이니까 연결됨에서 그분의  무한하심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성경대로의 생각을 많이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우리가 산에 가도 들판에 가도 뭘 봐도 뭐 오만 걸 다 성경대로 우리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거 보자. 하나님이 어떤 걸 지으셨나?' 이래 보면  이것도 저것도 큰 거 작은 거 뭐 별스러운 거 하나 뭐 지으신 것을 요것도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 참 재주 묘하다. 세밀하다. 저것도 어찌 저거 뭐  할라고 지었을까? 아, 그거 필요해 지었는데 그거 좀 생각해 보면 알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내가 모르나 하나님이 필요해서 지으셨다 이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이거 저거 한참 이렇게 보면은 그걸로서 우리 마음이 깨끗해지고 우리  마음이 밝아집니다. 우리 마음이 밝아져서 그 밝아진 마음 가지고 뭣을 척 듣고  생각하면은 밝게 듣고 생각해서 그것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상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모든 이 순서들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이 순서인데 이 뭐 이것도  예정했다, 저것도 예정했다. 자꾸 아이들 어린 아이들 똑 일 학년 공부하는 것  같지마는서도 아. 이것도 하나님이 예정하셨다, 저것도 예정 하셨다 그거 또  예정 안 했느냐? 예정 안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것 저것 모든  것을 예정하셨다는 이것을 하나씩 자기 생각나는 대로 자기의 지식의 범위에  따라서 자꾸 이것도 하나님 예정했다, 저것도 하나님이 예정했다 자꾸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을 되풀이 해서 자꾸 그렇게 하는 가운데에 우리 마음은 깨끗해지고  우리 마음은 밝아집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다 이랬습니다. 눈이  밝으면은 이 손도 밝은 손, 다리도 밝은 다리, 몸뚱이도 밝은 몸뚱이. 머리도  밝은 머리, 뭐 쿡 못이 삐쭉한 못이 있는데 눈이 있으면 이래 떡 보고 이래 턱  치워 버립니다. 그러니까 이마에 눈이 없지마는서도 그 눈을 가진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그 눈을 가진 그 몸은 밝은 그 눈 하나 가짐으로 인해서 전신이 다 눈  밝은 몸뚱이가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면 마음에서 작용되는  그 모든 것이 다 밝은 작용이 된다 그랬습니다.

 참 우리 마음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도 살펴보면, 사람이 그 고생하는, 저  사람은 평생에 안 가질 욕심 하나 고것 때문에 평생 고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 가질 욕심, 그 욕심 가져 봤자 소용도 없는 건데 공연히 안 가질  욕심 하나 가지고 안 가질 욕심 하나 가지고 욕심 하나 잘 못 가져 가지고 평생  고생하는 사람 있고 병신되는 사람도 있고 또 자기가 안 할 소망 하나 가지고서  안 할 감정, 안 가질 감정 하나 가지고 안 가질 분개 하나 가지고 안 가질 교만  하나 가지고 안 가질 오기 하나 가지고 이래서 안 할 말 한 마디 하고 안 할  행동 하나 하고 안 할 계획 하나 더하고 이래 가지고서 자기가 허영 하나  가지면은 일생 동안 그 빚을 갚아도 못 갚습니다. 또 그 허욕 하나 가졌으면 그  허욕 때문에 일생 동안 그 빚진 걸 갚으려 해도 못 갚습니다. 참 이렇게 마음에  이 올바른 빛의 마음에 밝은 마음 가진다는 것은 이거 얼마나 행복된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꾸 명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은 자존하신 분이라, 자존하신 분이라 원인이라, 자존하다  말은 그분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 말입니다. 그분 외에는 원인이 없습니다. 모든  것의 원인이라. 이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저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제가 아는 대로 막 주 시킵니다. 저것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저것도 저것의  원인은 주님이다. 저것도 주님으로 말미암았다. 주님이다. 자꾸 여러 층 가지고  많이 말할 수 있어. 주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그것이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이요. 그럴 때에 우리 마음은 밝아지고 깨끗해지고  넓어지고 그 모든 것을 내가 능히 내 식물과 같이 그런 것을 다 신앙 구원의  밥으로 이용해서 잘 그렇게 사용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찾아보면 아, 저것도 하나님이 저렇게 알고 보니까 저것도 사랑으로 지으셨구나,  저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라. 저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라. 모든 게 하나님  사랑이라. 내가 가다 보니까 가시가 한 개 길가에 꽉 막고 있는데 내가 그리 안  하면 뭐 벌로 뛰어다닐 터인데 가다보니 가시 하나 있으니까 툭 자빠지고 난  다음에도 그것도 하나님께서 '너 이놈 조심해라 이래 벌로 돌아다니면 가시에  걸려 넘어진다.' 이것도 사랑이구나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전부가  사랑입니다. 전부가 사랑. 잘못 해 가지고서 다치는 것도 사랑, 또 미끄러지는  것도 사랑, 또 자기가 깨달은 것도 사랑, 또 뭣이 잘 돼서 잘 돼서 성공한 것도  사랑, 전부가 사랑이라. 성경이 사랑이지 만물이 사랑이지 모든 환난이 사랑이지  모든 그 현실이 사랑이지 비참이 사랑이지 모든 고통이 사랑이지 사랑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랑을 깨달아서 자꾸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명상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그 탯 속에 우리가 자라고 있다. 하나님의 태 사랑의 태속에 자라고 있다 그렇게  말을 깨닫고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라고, 하나님은 전지자라 하는 것도 또 생각해 봅니다. 아. 제가 아는 대로  아. 요것도 요것도 하나님이 아셨구나, 요것도 아셨구나. 차차차 자기가  하나님이 아셨다는데 대해서 하나님이 아신 데 대해서 차차 차차 연상해 나가면  아, 이것도 하나님 알고 저것도 하나님 알고 하나님이 모든 거 다 아신다,  하나님이 다 아신다, 이것도 다 아신다. 이걸 자기가 차차 차차 연상해서 알게  될 때에 자기는 지혜 있는 사람이 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안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도 우리가 생각하고 그분의 목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분워 목적이 얼마나 큰지 아 하나님이 이렇게 크신 분이  당신의 목적 하나를 정하셨는데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만들려는 것이요, 하나님과 꼭 같은 자라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려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영하신 당신의 기업, 당신의 기업, 우리가 그 유리 공장에  있는 사람은 유리 공장이 그 가정의 기업 아닙니까? 그 가족들은 유리 공장 하나  뜯어 먹고 삽니다. 뜯어 먹고 사는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음식을 잡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당신은 당신의 뜻을 이루는 그것으로서 쾌감을 가지시고 그것으로  만족을 이루시고 당신의 뜻은 뭐인데? 당신의 뜻은 모든 피조물이 생겨지는  것이요 당신의 뜻은 피조물을 다 새롭게 하는 것이요 당신의 뜻은 피조물의 나쁜  것을 다 선정해서 심판하는 것이요 당신의 뜻은 옳은 것은 다 칭찬하고 보상하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피조물들을 행복되게  피조물들을 해치는 것들을 다 숙청시키는 이 파괴와 건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당신의 양식이라 이렇게 했습니다. 당신의 양식이라.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서 당신의 그  광대하시고 무한하신 당신의 뜻의 이모 저모를 우리를 통해서 성취하시는 그  만족을 당신은 영원히 이루시고 우리로 만족하신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베소 l장에 보면은 우리를 그의 기업으로 삼으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셨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그 목적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꾸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 목적을 생각하고, 또 자기가 들은 대로 생각하고 배운 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목적이 얼마나 귀하며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그 목적의  뿌리가 얼마나 깊으며 그 목적이 얼마나 광대하며 그 목적을 위해서 모두 다  준비된 구비가 얼마나 구비하며 또 그 크고 길고 높고 넓으심이 어떠한 것을  자꾸 이렇게 우리는 성경대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고 성경 읽은 대로의 이대로의 우리는 자꾸만 생각해서 우리  마음이 성경대로의 하나님에게 가서 있고, 우리 마음이 성경 구구절절에 가서  있고, 우리 마음이 성경대로 성취되는 거기에 가서 있고, 성경대로 성취되는 그  결과의 행복의 영광에 가서 있고, 또 성경이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 하나 지도하는 그 지도에 우리 마음이 가서 있을 때에 우리 마음에는  첫째로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옵니다. 하나님의 빛이 온다 말은 환하게 이  광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온다 그말은 깨끗이 온다 그말입니다.

깨끗이 온다 그말은 온전한 게 온다 그말입니다. 온전한 게 온다 그말은 능력이  온다 그말입니다. 능력이라 말은 벌써 빛보다 조금 둔탁한 말입니다. 빛은  그보다 더 깨끗하고 더 정확한 말입니다. 빛보다도 생명이라 말은 더 속에  세밀하고 정확한 그 발표의 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마라  이거는 이방인들이 다 구하는 것이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걸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 말씀도 그 나라를 구하라 말은 예수님  계시는 그 나라 예수님 모시고 사는 그 나라에 우리가 살라고 예수님 모시고  사는 영원히 모시고 살터인데,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신데, 지금도 이  세상은 두 가지가 합한 세계입니다. 지옥과 천국이 둘이 한테 딱 들어 붙어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의 현실에는 반드시 이 둘이 들어붙어  있습니다. 내가 이라면은 천국에서 살고 이라면은 지옥에서 살고 이라면 주님  모시고 살고 이라면 마귀에 따라서 살게 됩니다. 이런고로 그 나라에 살기를  힘써라 하는 말씀은 주님 모시고 주님 계시고 주님이 통치하시는 주님이 계시고  주님이 왕이 되시고 주님이 주관하시고 주님이 통치하시는 그분의 통치 아래에  그분 계시는 곳에 그분 모시고 살기를 힘써라는 말이오.

 그러면, 모시고 살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사람이 거게 들어가서 살 수  있습니까? 못 삽니다. 거게는 못 삽니다. 거게는 성령과 주님의 피와 중생된  새사람, 중생된 새사람, 참사람 이 사람이 그 나라에 살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살기를 힘써라. 새사람으로 살라할 때에 옛사람이 와서  덮치면 이것을 죽입니다. 새사람의 생각은 평강과 생명이 넘치고 옛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지옥되고 남도 지옥되고 전부이 사사의 움직임마다 전부  사망뿐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기를 힘써라 하는 것이요.

 그 나라를 구하라, 그 나라를 힘써라, 새사람으로 사는데 네가 땅위에서 이것  저것 준비하는 그런 준비하지 말고 하늘나라의 실력을 갖추어라. 새사람의  실력을 갖추어라. 진실로 살아난 자이기 때문에 진리로 점점 충만해지고 진리로  충만해지고 진리로 더 능력 있게 일 할 수 있는 진리로 충만해지라 말은 우리가  이 진리는 뭘로 충만합니까? 내가 책상 위에 앉아 가지고 성경 암만 읽어도  그것도 좋지마는 그것으로서는 진리의 충만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자기가  아는 것은 책상 위에서도 되지마는서도, 진리를 자기 진리로 자기가 되게, 그  자기 진리로 그 진리가 자기 힘이 되도록 하는 데에서는 현실에서 밖에는 못  하는 것입니다. 고 현실에 진리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불법이 거게 있고 그  영감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악령의 감화가 있고 둘이 있는 거기에서 현실에서 그  인간의 모든 생각, 인간의 생각. 제 감정의 생각. 제 속의 모든 옛사람의 생각,  옛사람의 주장을 버리고 이 진리대로 자기가 현실에서 한 자욱 딱 걸었을 때에  고 진리는 자기 진리가 됐습니다. 또 영감대로 자기는 고대로 한 걸음 걸었을  때에 통과되면 그 영감은 영감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실행으로 진리가  자라가고 실행으로 영감이 자라가고 실행으로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은 더 덧입는  자가 되어져서 새사람으로 점점 충만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새사람으로  살기를 힘써라.

 그라고, 세상에서 이런 모든 돈이나 또 자기중심의 일들이 형통하고 성공이  되면 웃고 기뻐하는 그런 죽음에 속한 그 쾌락이나 기쁨을 네가 가지고 살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 중심의 일이 성공이 됨으로 진리대로 됨으로 영감 성공이  됨으로 영감 성공이 되고 나면 진리 달성이 되고 나면 하나님 중심의 일이  승리와 성공이 되고 나면 반드시 그로 인해서 너희에게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할  그 기쁨이 너희에게 생기는 것을 네가 맛을 볼 것이다. 그 기쁨, 그 쾌락, 그  행복. 그 부요로 네가 부요해지기를 힘써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 나라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말씀하신 것은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전지자이니까 그에게 실족이 있을 것이 없고  전능자이니까 실수가 있을 것이 없고 완전자이니까 그분의 모든 계획이나 모든  진행이나 모든 그 역사가 다. 온전해지니까 그분이 알아야 할 일을 모를 것이  없고. 그분이 말해야 될 것을 말을 빠지지 안할 것이고, 그분이 해야 될 일을  하지 안할 것이 없을 것이고, 그분이 계획하고 원할 것을 빠져 놓지를 안할  것이고 그분이 쓸 데 없는 것을 한 마디도 한 행동도 한 생각도 하지 안할  것이니까 그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너희에게 잘 돼져 간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해 주시는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님의 목적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자꾸 이렇게  명상해서 성경을 읽어 가면서 차차 성경 지식이 더 광대해 갈수록 자기가 목적에  대해서 명상하는 것도 더 범위가 넓어질 것입니다. 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렇게 얼마나 범위 넓게 모든 거 예정도 이 목적 위해서, 창조도 이  목적 위해서, 섭리도 이 목적 위해서, 그러면 섭리는 하나님 섭리는 송곳  끄트머리같이 그렇게 조금 쪼부단하이 그렇게 짤쪽한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하나님의 섭리가 우주에 충만합니다. 우주에 충만하고 영계에 충만한 것을  자기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가  충만한데, 이 전부에 충만한 섭리 그 섭리에 사람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모든  인간이나 만물이나 역사가 다 그 섭리에 움직이고 있는 이 섭리를 자기가  명상해서 확실히 관찰했을 때에 이 섭리 속에서 이 구원을 위해서 하는 그 속에  들어 있는 구원에 대해서 염려할 것이 무엇이더냐? 염려할 것이 없고, 염려할  것은 하나님을 인해서 염려되고 다른 것은 염려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이렇게  점점 가면 하나님 한 분에게로 우리가 자꾸 집중되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다.

영원전 우리의 구원인 이 완전을 완전을 자기가 품고 당신이 품고 계셨는데  완전은 영원 전 당신 그리스도에게 잉태되어 있었는데 그 잉태하는 그 잉태를  성허하기 위해서 모든 예정, 창조, 타락 이렇게 해 놓으시고 그 다음에 때가  되매 여게서 완전히 구원을 하기 위해서 당신이 사람으로 땅위에 오셨습니다.

사람으로 땅위에 오신 것은 그리스도가 사람되어 온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가  사람되어 온 것이요, 창조주가 사람되어 온 것이요, 전능자가 사람되어 온 것,  전지자가 사람되어 온 것이요! 전지. 전능. 완전자. 대주재. 자존자 그분이  사람되어 우리 우리 구원 하실려고 왔습니다. 그분에 감사하다고만 말할 거  아니라 위대합니다. 위대, 위대.

 제가 어떤 데 가 보니까 서울에서인데, 서울에 그 ○○교회에서 집회할 때에  어떤 그 집사님 두 분이 그때 보니까 은혜를 받아서 그라는데 밤새껏 그 노래를  그래 부릅디다. 영광. 영광, 영광, 영광 그저 밤새껏 영광이라.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합디다. 하나님의 영광을. 왜? 하나님이 이렇게 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다는 그거는 뭐 영광으로 감사를 돌리고 영광 그는 영광, 그분의  하신 일은 영광이라고 영광이라 할 수밖에 없이 뭐 감사라는 말 못 해요.

감사라는 말 못 하고 영광 영광 그라면서 하루 밤낮을 하룻밤 하루낮, 그러니까  이십 사 시간을 계속해서 영광이라고 아주 얼굴이 발가이 도취돼 가지고  영광이라고 그렇게 그분도 최고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인데 그렇게 영광이라고 두  분이 찬미하는 소리를 저도 들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하나님이 그 강보로 싸서 구유에 누우셨다. 그분이 뭐할라고  사람되어 오셨는고 좀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고, 사람되어 오신 그분이 뭣이  사람되어 왔는가,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이렇게 우리는 자꾸 생각해서 우리가  거게 내 마음을 기울여서 생각하면 손해가는 것 아닙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마음이 하늘에 있고 우리 마음은 빛이 들어와서 우리 마음은 밝아지고 우리  마음은 거룩한 마음으로 성화돼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명상 많은 사람이 명상 많은 사람이 제일 성화는 빨리  이룬다 그렇게 말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도 좋지마는서도 실행하는 그것은 잘못하면 탈선하기 쉽고 하나님을 자꾸  명상하고 그 진리를 명상하고 그 명상에서 그 믿음이 생겨지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현실에 부딫혔었을 때에 그 현실에 자기에게 당면된 하나님의 뜻 고거  하나하나를 이루어 가는 것이 제일 알뜰히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사람되어 오셨다. 그분이 오셔 가지고서 삼십 삼 년 일 하신 그  대속도 우리가 그 대속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다 아무리 해도 알 사람이  없습니다. 또 그분이 대형인 그 형이 아니면 그 대형을 어떻게 그게 되겠습니까?  대형이 어떻게 그 대형을 주님이 안 하셨으면 누가 하나님의 지성법의 요구에  만족을 누가 이루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사람의 타락은 사람의 타락은 당신이  인간을 완전히 다 책임 져야만 되지 책임지지 안하면 안 된다는 이것을 당신이  계획하시고. 타락은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해서 하나님과 완전히 떨어져서 완전히  하나님과 떨어져서 원수돼서 하나님과 떨어져 완전히 죽은 자, 완전히 하나님과  완전 절단을 이렇게 내서 조그만치라도 걸리는 거 없이 완전 절단 내시고 완전  절단으로 완전 멸망 속에서 당신이 완전히 책임지시고 구원하신 것이 그것이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까지입니다. 완전 책임지시고 대속하시고 그 다음에 삼일  만에 부활하시 것은 대속하신 이것을 택자들이 이 은혜를 입고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옛사람은 장례 지내고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새사람으로 살아나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살게 하려 함이라고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 사활에 대해서, 그러므로 우리들이 사죄 받고 중생되고 부름 받아  가지고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하고 있는건데 우리 신앙생활에는 그분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그 시험을 치는 것이요, 또 인정하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 인정하게  하시고 실상으로 자기가 그분을 자기가 모시고 그분의 혜택을 입은 자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선포하신 계약과 또  하나님의 이 대속의 구원을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알고, 연습하고, 또  연성하고, 또 연단 받고 완전히 이루어서 이렇게 나아가도록 하려는 이 세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예수님의 사죄와 칭위와 화친의 대속을 주시고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로 중생된 이 생명으로 살게 했는데, 이 생명으로  살면 가속도로 우리가 성장돼 가고 이 생명으로 살지 안하고 이 생명을 버리면  우리의 성장이 지체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요 사실을 깨닫고 우리 현실 부딫히는 것은 주님이그 현실을  영원 전 예정하신 대로 고대로 순서가 옵니다. 중간에 하나도 돌변적으로 오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신 그대로 모든 순서가  오니까 고 순서에서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이 모를 믿나 안 믿나 또 저 모를  믿나 안 믿나 그 못 믿는 것을 발견해서 서로 믿게 하고 또 믿은 것은 통과해서  다시 지나 보내고 또 새 순서를 만나게 하고 이래 가지고 우리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그 어려움이 오든지 쉬운 일이 오든지 큰  일이 오든지 복잡한 일이 오든지 그 모든 것이 올 때에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고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약속된 것이 믿음으로 약속이  됐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믿는 거 알고 인정하고 믿고 그 분을 믿으면 못 할 거  없습니다. 그분은 못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알지 못하심이 없습니다.

그분을 알고 믿음으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그것이 사람이 볼  때에는 천부당 만부당하는 일이지마는서도 그부을 알고 인정하고 내가 그분을  알고 인정함으로 그분을 믿음으로 내가 행할 때에 그 행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은 거게 와서 역사할 수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우리가 입고 있다. 능력의 강력의 그 강력히  역사하심을 따라서 우리에게 베푸시 지극히 큰 능력,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푸신 지극히 큰 능력이 어떠하심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안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지극히 큰 능력의 크심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안한다. 그 능력이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의 성공을 하셨고 삶의 성공을 하셨고 완전 성공하신 것이 그 능력  가지고 성공했는데, 그 능력 가지고 성공한 그 공로를 너희들에게 입혀 주니까  그 공로를 입으면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완전자라 무흠자라 이렇게 하는 그  공로를 입혀 주니까 이 공로를 입고 또 그 능력을 주니까 이 공로를 입고 그  능력을 힘입어서 이 공로를 벗지 말고 이 공로 입은 자로 살아 통과하라 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듣고 지나 보내지 말고. 오전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시라, 또 그분의 그 목적은 어떠하다, 또 그 목적을  위해서 구비되어 있는 배경은 어떠하다. 그러니까 모든 예정이나 모든 순서는 그  목적을 위해서 있는 순서다, 우리는 예정과 창조 속에서 그 사랑의 은혜를  익어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영광의 찬미가 만들어져 가고 있다. 영광의  찬미가 만들어져 가지고 있는 거는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다 통치하고  지배하고.그것들을 뛰어난 초월한 그 모든 것은 발등상이요 하나님은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의 위치를 가지고 만물을 충만케 하는 그 충만케 할 수 있는 이  위치가 교회의 위치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많이 명상하고, 자꾸 우리가 실감 없이 그저 지나  보내기 때문에, 그 행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 신앙은 감각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에는 두려움도 없고 두려움의 자극도 없고 겁의 자극도 없고 기쁨의 자극도  없고 어려움의 자극도 없고 통쾌의 자극도 없고 그 승리의 취미도 없고 우리는  죽은 송장에게는 썩는 것뿐이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우리가 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우리 믿음이 죽어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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