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1980. 7. 2. 수새

 

본문 : 요한복음 14장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하나님께서 세상에 빛을 주셨습니다. 빛이라 말은 모든 것을 환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빛인데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두 가지 빛을  주셨는데 하나는 자기 안에 있는 마음이 빛을 주셨으니 곧 양심이요, 하나는  모든 자연 만물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모든 피조물들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이것을 자연의 빛이라 또 사람들의 양심을 자연의 빛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빛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졌으므로 이 두 가지  빛을 가지고 보고 알지를 못하게 된 것입니다. 보고 아는 것은 어떤 것을 보고  알게 하려는 빛인고 하니, 피조물들로 자기를 지으시고 보호하시고 관할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와, 자기와, 자기 아닌 모든 다른 것들과의 이  관계점이나 존재점이나 이런 것을 다 알도록 하기 위해서 빛을 주신 것입니다.

만물을 보아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목적을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의 축복을 알게 되고, 또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나 만물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만물을 보아서  알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또 이 만물이 있지만 자기 안에 양심이라는  것이 없으면 안 되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에 빛을 주셔서 마음에 빛 마음이 밝은  이 이성 비판 또 본능적 주관 이것을 주셔 가지고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로 인해서 어두워져서 사람들은 만물이나 자기나 자기로서 알 수  있는 나타난 것 이런 것은 제 생각대로 다 비판하고 평가하고 보이지 않는 크신  하나님은 완전히 잊어버리게 됐습니다. 이래서 타락 이후에 실은 인간은  누가나다 유물주의가 돈 것입니다. 물질만 보았지 신령한 면은 전혀 모르는 자가  됐습니다. 자기 안에 죽은 영체가 있지만 영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이러다가 예수님의 이 대속 또 구속 대속이라는 것은 대신 속한 것을 대속이라  그렇게 말하고, 구속이라는 것은 대속 외에 이제 영원히 택한 자들을 하나님  같이 온전케 하려는 그 모든 역사를 가리켜서 구속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구속이라 하면 다 들어갔고 대속이라 하면 사죄 칭의 새생명 준 것을 대속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두 가지 빛이 있었는데 범죄로 어두워져서 이 빛 가지고는 모르게 됐을 때에  예수님의 공로로서 다시 두 가지 빛이 더 왔습니다. 두 가지 빛이 더 왔으니  이제 온 이 빛을 가리켜서 특별히 보여 주는 빛이라. 특별 계시라. 계시라 말은  모르는 것을 보여 준다는 말입니다. 열어 보여 준다. 그래서 처음에 두 가지  받은 이 자연의 빛을 자연 계시라 하고, 또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다시 두  가지 빛을 주셨으니 이 빛을 가리켜서 특별히 보여준 특별히 알려주는 특별  계시라 말합니다.

그러면 특별 계시로 두 가지 알려 준 것은 어떤 빛을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신구약 육십육 권의 이 도리를 빛과 또 성령의 감화 감동의 이 빛과 이 두 가지  빛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러면 이 처음에 두 가지  빛이 왔는데 타락으로 이 빛이 소용없게 됐습니다. 소용없게 된 이 깜깜  어두워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둡고 다만 저만 아는 것, 저만 안다 말은 저뿐인  그래서 인간은 모든 것이 저로 말미암아 발생 됐습니다. 이런데 자기라는 그  자체가 죽은 것이요. 만물보다 거짓된 전적 부패해서 완전히 죽은 것인데 모든  인간의 행동은 이것으로 인해서 발생된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밖에 있는 땅 위에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다 사망에 속한  것들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여기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두 가지 빛이 왔습니다.

문서 계시와 영감 계시 문서 육십육 권 도리로 알려 주는 이 계시가 왔고 성신의  감동으로 알려주는 영감 계시가 와서 이 두 가지 계시가 와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계시가 와 가지고 무엇을 알려 주는고 이 두 가지 계시가  와서 모든 잊어버렸던 처음에 받은 두 가지 계시를 되살렸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처음에 받은 두 가지 계시 이것을 이제는 되살려서  유효하게 됐습니다. 또 두번째 준 특별 계시 이 두 계시 육십육 권 도리와 영감  이 영감을 주셔서 이제는 택함을 입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몇 가지 계시를  받았는고 하니 네 가지 계시를 가지게 됐습니다. 네 가지 계시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네 가지 계시를 하나님의 주신 하나님이 주신 목적이 어디 있는가? 이 네  가지 계시를 하나님이 주신 목적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또 완전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단일성의 하나님 이분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보존하시고 운영하셔서 생명과 평강과 모든 기쁨이 이분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을  알게 하고 이것을 얻어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네 가지 계시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불택자 불신자에게는 두 가지 계시가 왔으나 그 계시가 완전히 자기에게는  무용의 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자기가 하나님과 끊어졌기 때문에 그  계시가 다 무효하게 됐습니다. 계시의 목적이 다 허사가 됐습니다. 만물은  피조물이 하나님 알아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바로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한  것인데 인간이 범죄함으로 인해서 그것을 활용할 수 없도록 어두워졌기 때문에  자기에게 알려주는 그 계시의 효력을 보지 못했고, 또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게 한 것인데 그 양심이 완전히 어두워졌기 때문에 효력을 내지 못하게  됐는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무효하게 되었던 이 두 가지 계시가 따시  유효하도록 살아나게 됐습니다. 또 이 두 가지 계시 외에 특별히 계시 준 두  가지 계시가 있으니 하나는 문서 계시요 하나는 영감 계시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은 네 가지 계시를 가졌습니다. 특별 계시 둘, 일반 계시  둘, 네 가지를 가지고 이 네 가지를 써서 네 가지를 힘 입어서 이 네 가지에게서  배워서 무엇을 알게 하는고 하니 곧 하나님을 믿으며 나를 믿으라 한 우리의  중보자 구속주를 알게 합니다. 구속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이 왔고 왔지만  우리는 구속주를 모릅니다. 온 이 네 가지 계시를 사용해서 구속주를 차차 차차  알게 합니다. 구속주와의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합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 계시로 구속주를 차차 알게 하고 또 구속주와 올바른 관계를  점점 맺게 합니다. 그러면 이 구속주는 또 두 가지 계시와 구속주를 소개해서  구속주를 알게 했는데 또 구속주는 이 두 가지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영원 자존자이신 이 하나님을 알게 해서 하나님고ㅘ 자기와의 관계가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대로 관계를 가지게 하는 것이 인간 구원 성공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목적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의 목적이신 곧 하나님과  같은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 이 자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되는 이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온전한 자가 도어지는 것이 자기에게 있어서 하나라도 되는 것은  아니고 온전은 하나님이요. 거룩도 하나님 한 분이요. 깨끗도 하나님 한  분뿐이신데 하나님의 이 온전함에 연결되어 하나님의 온전으로 자기가  온전해지고, 하나님의 거룩으로 자기가 거룩해지고,    씨 하나님의 거룩으로  자기가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깨끗으로 자기가 깨끗해져. 존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존재된 것이 이 존재는 진동될 수 있는 나라에 속한 것들입니다. 변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변할 수 있는 자기가 생겨진 이것이 변할  수 있는 이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다시 변할 수 없는 영원 완전자로 이루어지는  이것이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의 목적이요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그 향방, 향방은 어디냐?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기는 뭐 하려고? 하나님과 뭉쳐지려고, 하나님과 결합되려고  이래서 내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게 복종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내 지식의 왕이  되고, 내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에 종이 돼. 하나님의 지식과 내 지식이 완전히  분류돼 있지만 이것은 하나 되는 것, 나는 그 복종으로 하나 되고, 하나님은  점령으로 하나 되고, 나는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은혜로 받아 하나 되는  이것이 되어지는 것이 우리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제 아침에 말씀한 거와 같이 우리는 어디서든지 제일 사모할 것이  목표가 하나님이요, 제일 써먹을 것이 뭐이냐?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이요, 그  다음으로 써먹을 것이 뭐이냐? 계시 육십육 권 도리와 영감이요, 그 다음으로  써먹을 것이뭐이냐? 양심과 자연 만물입니다. 그러기에 고 다음으로 가깝게 있는  것이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이시요. 이제 그 다음으로 우리가 가깝게 해야 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이 이 네 가지 계시를 쓰지 안하면 자기 구원이 이루어지지를  안 합니다. 네 가지 계시, 범죄함으로 구속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처음에 받은  두 가지 계시가 완전히 무효하게 됐습니다. 자기 몸 밖에 있는 이 자연 계시는  그대로 있지만 자기가 어두워졌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 아무리 햇빛이 있지만  눈이 어두워지니까 햇빛이 있어도 깜깜하요. 그 모양으로 자연 만물은 그대로  있지만 다만 인간이 하나님과 끊기졌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또 양심은 자기가 하나님과 끊겨졌기 때문에 이 양심이라는 것이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다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아 중생된 자는 이 두 가지 자연 계시가  자기에게 유효하도록 다시 소생됐습니다. 다시 회복됐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일반 계시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또 특별히 준 특별 계시  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 계시로 특별 계시를 돕고, 특별 계시로 자연 계시를 도와  자연 두 가지 처음 받은 이 일반 계시와 또 두번째 받은 이 특별히 우리에게  주신 이 빛, 그러면 첫째 빛, 둘째 빛 이 계시라고 하는 말들은 하나님을  보여준다는 그런 뜻에서 말해서 계시라고 그 명사를 붙인 것입니다. 빛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빛은 광범위하고 계시라는 하는 것은 하나님을 보여  준다는 거기에 대해서 주로 한 것인데 뜻은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준 두 빛, 또 예수님이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와 진 두  가지 빛, 이거 네 가지 빛이 우리에게는 활용되도록 돼 있습니다. 네 가지 빛, 그러면 네 가지 이 빛을 사용해 가지고 우리가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도 알게  되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중보자가 됐느냐? 예수님이 중보되신 그  중보는 그 높이가 얼마나 되며, 깊이가 얼마나 되며, 넓이가 얼마나 되며, 그  강함이 얼마나 되며, 권위가 얼마나 있느냐? 예수님의 이 대속을 네 가지 빛으로  알게 되고 이제 네 가지 빛으로 알게 된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자기가 어떠한 그 관계의 소망이 있나? 어떤 관계를 가지게 됐느냐? 어떤 그  결과를 맺게 되느냐? 그 결과는 한 말로 말하면 하나님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그 결과입니다.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결과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네 가지 빛을 받았는데 이 네 가지 빛을 이 빛으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 빛을 사용하게도 되고, 또 네 가지 빛을 한목 사용하게도 되고, 이  빛으로 한 빛으로 세 가지 빛을 막 동원시키고, 또 동원시켜서 어쨋든지 네 가지  빛이 마지막에는 이 빛으로 처음에 발원하든지 이 빛으로 발원하든지 이 빛으로  발원하든지 이 빛으로 발원하든지 시발이 어느 빛으로 발원이 되든지 발원이 돼  가지고는 난중에 이 네 가지 빛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됩니다. 네 가지 빛이  하나 되어서 네 가지 빛에 이 빛을 힘입어서, 네 가지 빛을 힘입어 가지고 보는  게 뭘 보느냐? 네 가지 빛을 힘입어 가지고 보는 것이 우리의 중보자 대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네 가지 빛과 예수 그리스도와 이제 다섯 가지가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내 것을 가지고  증거한다." 그 말은 나를 증거한다 그말입니다. 나를 알려 준다. 또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진리 안으로 너희들을 이끌어 드리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네 가지 빛과 우리의 구속주요 참 빛, 우리의 구속주요 참  빛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빛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자존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자체와 속성과 그의 소원과 그의 경영과 그의 역사를 환하게 보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보게 됐기 때문에 예수님은 참 빛이라 요한복음 1장에  "세상에 빛이 있으니"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니요 참 빛이 있었으니" 곧 이 빛이  예수님이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네 가지 빛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예수 그리스도는 큰 빛이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을 내가 내 하나님으로  이제 섬기게 되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이 되고, 나는  당신의 백성이 되고, 이렇게 하나님은 내 머리가 되고 나는 하나님의 몸이  되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동하고 정하는 것이 다 하나가 되도록 이렇게  역사하는 신인 결합의 일행 이 결과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네 가지 빛을 한목 써야 됩니다. 네 가지 빛을 한목  쓰지 안하면 안 됩니다. 양심도 써야 되고 또 이 자연 만물이 가르치고 있고 이  자연 만물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자연 만물이 만물을 우리가  사용함으로 예를 들면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는 이것을 이것이 뭐이냐? 자연  만물을 사용하는 것이요. 자연 만물이 왜 내 입에 밥이 돼 가지고 내 영양이  되느냐 하면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거 좀 여러분들이 생각이 혹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나 이러면  도통이 됩니다. 이제 이러면 참 도통이 되요. 도가 통합니다. 진리가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심도 써야 되고, 자연 만물을 쓰는데 자연 만물이  우리에게 이치를 가르쳐 주는 것도 있고, 또 아는 데에 직접 제가 희생해 가지고  돕는 것도 있고 이래서 이 모든 자연 만물은 우리의 교과서라 할 수가 있고, 또  우리의 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학자 공부하는 자본 말이오. 학비, 자연 만물은  우리의 학비라 교과서라. 밥을 내가 먹어서 알게 될터이니 그거는 우리의  학자라.

모든 것이 영생은 이것이니, "영생은 이것이니 곧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아옵고 보내신 자 예수 그리서도를 앎이니이다." 영생은 참 빛,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을 아옵고 보내신 그 아들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 말했습니다. 요한복은  17장 1절 이하에 보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네 가지 빛을 한 목 들어야 큰 빛을 찾소. 네 가지 빛을 한 목  들어야 그 사람들은 한 가지 빛만 가지고 날뜁니다. 자꾸 아무리 그 육십육 권을  제가 외워도 소용 없소. 양심의 빛이라는 것 고 빛을 쓰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또 양심의 빛과 육십육 권 도리를 똘똘 뭉치고 자연 만물 뭉쳤다  할지라도 성령의 영감의 빛이 없으면 소용 없습니다. 이 네 가지 빛이 합해야  됩니다.

네 가지 비치을 합하는 순서가 제일 첫째로 우리가 알기 쉬운 것이 뭐입니까?  알기 쉬운 것이 첫째 가깝게 있는 빛이 뭐입니까? 가깝게 있는 빛이 가깝게 있는  빛이 이 자연 만물입니다. 자연 만물, 양심이 자기 속에 있으니까 가까운 줄  알아도 가깝지 않소. 이제 자연 만물이 자기에게 가깝고, 이 자연 만물을 자기가  접해서 그 빛을 받으면 자기 속에 양심이 이제 묻혔던 양심이 발견됩니다. 이제  이 자연 만물과 양심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이제는 성경을 보면 이 두 가지 이  세 가지 빛을 가지고 성신 영감을 받게 됩니다. 영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 빛이 합해지면 곧 우리의 중보자이신 참 사람이며 곧  하나님이신 이 예수 그리스도 이 구주를 만나게 됩니다. 만나게 됐습니다.

이제는 큰 빛을 만났습니다. 큰 빛을 만나면 이제는 영원 자존하신 완전하신,  영원 불변하신, 단일성이신, 창조주이신, 전지 전능자이신, 개별 섭리자이신  이분을 만나서 이분과 결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우리의  완성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또 시간이 되어서 이만하고 앞으로 계속하겠습니다.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누가 들어서 그만 기록하면 조식 신학이 되는데 그것을 이제까지  제가 여 가르쳐 놓은 데에서 제가 설교하는 것 언제든지 교리입니다. 교리  설교입니다. 전체가 교리 설교요. 이래서 계시론에 대해서 충분하게 내가 가르쳐  놨고, 하나님이 뭐이냐? 이 신론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론에 대해서, 인간론에  대해서, 세상론에 대해서, 속죄론에 대해서, 구원론에 대해서, 만물론에 대해서,  심판론에 대해서, 부활론에 대해서, 무궁세계론에 대해서 다 말해 놨습니다.

안한 게 하나도 없어.

그걸 간직했으면 그것을 엮어서 간추려지면 이제 그것이 오늘의 세대를 감당할  수 있는 조직 신학입니다. 오늘의 세대를 감당할 수 있는, 그것 내가 한 것  아닌데 나는 하나님에게 여러분들은 내가 알아서 여러분들 가르치는 줄 알지만  나는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나는 확실히 압니다.

왜? 대개는 내가 모르고 나섰는데 내가 무슨 말 할지 모르고 제목만 알고  나섰는데 말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줘서 내가 말을 하나 그 시간에  나도 배우고 배워서 여러분들에게 말한 그것이지 내가 내대로 뭐 연구해 가지고  내가 안 것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여 놓고 떼고 요래 하는 그런 것 아니고 그저 하나님께서 내 입에  당신의 지식을 넣어 줘서 그대로 발표합니다. 발표했지만 나는 이것이 뭐인가  몰라서 그것을 발표하고 난 다음에도 떨립니다. '이게 무엇을 이래 놓고 또  정죄받지 않겠느냐?' 떨리는데 그 뒤에 차차 차차 생각하고 성경을 대조할 때에  맞아서 그 다음에는 크게 외치고 그 다음에는 아무때나 따나 외치고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배운 데가 분명히 있고 알지만 여러분들은 내가 하나님에게 배워  가지고 전한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좀 어려울 것입니다.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고로 요 알아야 됩니다. 알면 행하는 것은 저절로 행해집니다. 아는 것이  십분의 칠쯤 어려우면 행하는 것은 십분의 한 삼사 어렵습니다. 아 사람이 불에  들어가서 타 죽는 것을 아는 게 어렵지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제가 불 속에  들어갈 리가 있습니까. 힘 있는 동안에는 불 속에 안 들어가는 거는 필연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그 하나요. 알면 필연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필연적으로, 그런고로 새벽으로 좀 많이 교인들 데리고 나와서 그걸 배워야 되지 이제 아는  것 같이 말하는데 그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아는 척 합니다. 누구든지  여러분들, 여러분들 앞에서 이 진리 외에 나는 척 하는 그런 유식한 사람이거든  고만, 그 사람은 '저 사람이 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저러는구나!' 하는  고렇게만 알면 됩니다. 천하에 있는 대박사라도 그 사람이 우리가 이제  하나님에게 배우는 이것을 무시하고 멸시하면 그 사람이 무식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고대로 단정 지우면 틀림이 없는 정평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네 가지 빛, 네 가지 빛 요것을 기억하고 네 가지 빛이 이제  합하여서 큰 빛, 참 빛, 참 빛이라 말은 이거는 거짓 빛이라 말이 아니고 참  빛이라 말은 그게 참이라 말은 완전성을 가르칩니다.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이  빛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렇게 뿌리가 깊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렇게 뿌리가 깊고 이렇게 넓고 큽니다.

불교 같은 그런 것, 불교는 인도에서 난 한 사람 석가모니가 자기가 추측, 추론,  추상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불교는 추측, 추상, 추론이요. 저게 여  사층에 가면 그 꽃 피는 것 하나, 여 꽃 피는 것 그게 불도화라 합니다. 꽃을  여러분들이 보면 또 압니다. 그 아무런 것도 아닌데 커 보이는데 자연히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 꽃이 아닙니다. 그거는 요것을 단단히 잡아야 합니다.

이종교 그런 종교 있는 그거는 뿌럭지를 보면 우리가 믿는 이 도에 속해서 이  도를 위해서 있는 것인데 도를 위해서 있는 것, 또 범위가 극히 좁습니다.

불교인들은 저희들이 뭐 팔만 대장경이니 뭐이니 말하지만 우리는 육십육 권의  성경 한 권뿐인데 그래도 나는 중을 데리고 이야기 해 가지고 이제 그 중이 말  두 마디 세 마디만 하면 막혀 가지고 그 다음에 말을 못하는 것을 내가 중을  만나 가지고 안다 말이오. 왜? 자기네들 범위는 자기를 찌근 범위를 요래  말하는데 이 범위 위에 이 범위를 말하면 저희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이  범위를 말해 주면 저희들의 불교의 범위가 그 안에 포함됐다는 그걸 알게  됩니다.

여    집사님의 동생은 평안남도의 제일 큰 부자의 장자인데 평안 제일 큰  부자 그 장자인데 그 많은 살림을 다 가지고 절로 들어가서 지금 참신하는  도사라 이럽니다. 이러는데 그 사람 만나 가지고 내가 몇 번 말했소. 그거는  말할 것도 없어. 우리가 보는 한 구속도 보지를 못하고 있어. 그러니까 나중에는  말 안 해요.

우리가 믿는 도가 어떤 도인지 알아야 되지 불교나 유교나 뭐이나 같은 줄로  이렇게 알기 때문에 헛일이요. 오늘 예수교를 아는 이거 조직 신학이나 모든  것이 불교는 이렇게 말하고 뭐 말한다 이렇지. 그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수준이 이 모든 이종교의 수준과 같은 수준이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기독교는 성인 중에 뛰어난 한 성인이라 이렇게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 통일을 해야 돼. 종교 통일해야지요. 오늘까지 있는  기독교와는 종교 통일이 되야 됩니다. 그 한 종류요. 그 벗어나지를 못 해.

벗어나지를 못하게 돼 가지고 있오. 알고 보면 그게 하나가 될 수가 없어. 하나  되면 좋지만 하나 되면 그게 깨지지.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바로 깨달은 자가 이종교가를 만나서 한 시간 이야기  하면 그거는 깨졌고 이는 그만큼 점령이 됩니다. 자꾸 말 할수록이 별 문제가  없어도 말할수록이 그거는 깨지고 삼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똑똑히 지혜 있는 사람은 기독자와는 종교 변론이나 철학  변론이나 아무 변론도 하면 손해다. 하면 먹혀 들어간다. 하면 먹혀 들어가고  거기에 삼켜 들어가지 도무지 예수가 그이가 논리 중에 제일 으뜸 되는 논리를  취했다. 그분들은 그래 말합니다. 으뜸되는 논리라. 논리가 아니고 이제 근본이  그 거기에기 때문에 이는 피조물과는 다릅니다.

오늘 아침에는 네 빛 합해서 다섯 빛, 처음에 두 빛 그 다음에 또 두 빛 이 네  가지 빛인데 이 빛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 삼켜졌습니다. 두 가지 빛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주셨고, 두 가지 빛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줬습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뱀의 후손을 삼키게한다는 그 약속 이후로 이제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서 특별 계시라는 이 특별 빛이 두 가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네 가지 빛이 다 활용하도록 됐습니다. 이 네 가지  빛은 큰 빛을 찾아갑니다. 참 빛을 찾아갑니다. 이제 참 빛을 찾아가면 이 참  빛으로 말미암아 영원 자존자를 향하여 찾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영원 자존자와  자기와 결합됩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그런고로 이 네 가지 빛을 다 합해야 예수님을 찾아가지 한 가지 빛, 두 가지  빛, 세 가지 빛 가지고 안 됩니다. 네 가지 빛을 다 찾아야 찾아 갑니다. 우리가  현재 현실이라는 고 현실을 통과해야 알만큼 예수님을 아는 것, 그 현실을  통과치 않고 예수님을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것, 고 현실을 통과해야 알 부분은  고 현실을 통과해야 아는 것입니다. 고것이 뭐이냐? 고것이 고 네 가지 빛을 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빛만 사용해도 안 돼. 네 가지 빛을 다 사용해야  돼. 그거 사용 안 되면 안 돼.    씨 네 가지 빛 그것 기억 안 하면 안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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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72 믿음/ 신명기 28장 10절/ 790901토새 선지자 2015.10.31
271 믿음/ 사도행전 20장 25절-35절/820905주전 선지자 2015.10.31
270 믿음/ 로마서 4장 1절-8절/ 820121목새 선지자 2015.10.31
269 믿음/ 마가복음 9장 33절-50절/ 810701수야 선지자 2015.10.31
268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10819수야 선지자 2015.10.31
267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4절/ 810701수새 선지자 2015.10.31
266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3절/ 810629월새 선지자 2015.10.31
265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 810325수야 선지자 2015.10.31
264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 810707화새 선지자 2015.10.31
263 믿음/ 요한복음14장 1절/ 800628토새 선지자 2015.10.31
262 믿음/ 마태복음 8장 13절/ 800709수새 선지자 2015.10.31
261 믿음/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10토새 선지자 2015.10.31
260 믿음/ 요한복음 14장 1절/ 800704금새 선지자 2015.10.31
259 믿음/ 요한복은 14장 1절/ 800703목새 선지자 2015.10.31
» 믿음/ 요한복음 14장 1절/ 800702수새 선지자 2015.10.31
257 믿음/ 요한복음 14장 1절/ 800701화새 선지자 2015.10.31
256 믿음/ 로마서 10장 13절-15절/ 811122주전 선지자 2015.10.31
255 믿음/ 요한복음 14장 1절/ 800625수새 선지자 2015.10.31
254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00927토새 선지자 2015.10.31
253 믿음/ 요한복음 14장 1절/ 800627금야 선지자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