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21일 목새

 

본문 : 롬4:1-8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 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위급하고 험악한 처지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구출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이렇게 제일 어려운 입장에 우리를 두시는  까닭은 우리를 제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망도 제일 크시고 또  사랑도 크시고 미움도 크신 것입니다.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에 보내는 것은 이리 속에서도 구원하실 수 있는 능을  가지셨기 때문에 이리 가운데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양이 이리를 봄으로  엉뚱한 짓 하던 그 양이 이리가 두려워 목자에게 빨리 달려오기를 원함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 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을 세상에 보냄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으로 인하여 자기가 심히 위급한 이 사실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입장이 튼튼하다, 안심된다,  하나님이 계시니 문제 없다, 안심이다, 튼튼하다 이렇게 생각한 그 사람들을  보면 다 멸망시켰습니다.

 구약 이스라엘들을 보면 그들이 멸망한 그 대목마다 기록된 것을 보면 아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낙관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믿었고 의지했든지 어떤  불의 어떤 죄악을 범해도 상관없이 그렇게, 불효 자식이 부모를 믿는 것처럼  그렇게 무조건 믿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실패를 했습니다.

 실패하지 않고 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자기 입장이 또 심히  위급한 것을 알아서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을 바라 보고 의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도 그가 마지막에 신앙을 가졌을 때에는 자기의 원수가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님을 깨달아 두려워해서 자기 침상의  요가 눈물에 떠내려간다고 했습니다. 두려워서 가죽과 뼈가 붙어서 아주 그 몸이  참 시체처럼 해골대처럼 그렇게 수척한 그런 경우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이런 성질로 두렵게 하기 위해서 세계에 제일 위급한 공산주의  앞에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렵게 하시는 이 사실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기를 이 문제가 긴급하고  긴박하니까 돈을 생각하는 것보다 이 두려움이 앞서고, 지위나 권세나 명예를  생각 하는 것보다도 이 두려움이 앞서고,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도 이 두려움이  앞서고, 모든 것보다 이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그것이 순위입니다.

 다음에는 이 두려움을 아무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다만 우리를 구속하신 주  하나님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이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는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뜻을 생각하면 연달아서  주님을 사랑해야 되겠고 그 계명을 지켜야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연상적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그것이 영감입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을 모든 것 다해서 사랑하고, 모든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고,  제일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 다해서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왜 믿음이 점점 떨어져 가느냐? 떨어져 가는 이유는  대부분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라,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라, 만물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라 하는 이 세 가지 일을  법칙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랬는데 사람들이 꺼꾸로 생각해서,  물질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것도, 또 하나님이 주신 것도, 또 하나님의 뜻대로 제가 써야 할 것도 알아서  행동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물질에 대한 하나님에게 소망은 거의 가지고 또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할 줄도 알고 하나님이 없게 하시면 없어질 줄도 알고  물질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법칙대로 행동을 한다고 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합니다. 사람들에게  대해서 사랑하고 믿고 보호하고 구원하고 용서하고 도와라 하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합니다. 국가적으로도 공산 국가보 다 믿는 나라들이 이렇게 합니다.

믿는 나라 중에도 미국 나라는 더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한국에서도 믿는 사람들이 이북에서는 칼을 갈고 독을 품지마는 이남의  사람들은 그렇게 복수적으로 생각하지도 아니할 뿐 아니라 그들이 칼을 갈고  있어도 설마 이렇게 생각을 하고 아주 낙관시하고 아주 후하게 생각해서 그들은  '저걸 어떻게 해야 남한을 절단내고 다 뺏들까?' 이런데 여기에서는 그들을  사랑해 보려고, 그들을 후하게 대접해 보려고, 서로 말을 해 대화로 해 가지고  서로 친교를 맺자 하려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칙입니다. 사람에게 대해서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미국이 자기들에게 속한, 속할 때에는 미국이 선하다 이렇게 보여지니까 다  저절로 다 거기에 친교를 가지고 속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공산주의의 이  사상이 점점 번져 나가서 그때와 달리 침략을 하고 있습니다. 침략을 당하는데  침략 당할 때에 세상 법과 같이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고 이렇게 해서  일 대 일로 했으면 세계는 점점 미국에게 붙들리게 되고 미국의 세력은 점점  강해지고, 그들이 그래 가지고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다스렸으면 세계의 평화는  사람 생각으로서는 유지될 것으로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독교를 믿기 때문에 사람을 돕는 이 일에 대해서는 힘이  있었지마는 침략하는 자에게 있어서 대항하는 데 대해서는 힘이 없었습니다.

암만 대항을 해도 외부뿐이지 속에서는 자책을 가책을 받기 때문에 힘이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점점 점령을 당한 것입니다. 국가적으로도 이렇고  개인으로도 다 기독자들이 이렇게 해 가지고 실패를 당합니다.

 이것이 불신자와 같이 그렇게 행동하면 불신자에게 일 대 일이면 지능이 신자의  지능이 뛰어납니다. 이길 터인데 '원수를 사랑하라. 복수하지 말아라.

목마르거든 배고프거든 먹여 주고 마시워 줘라. 네가 이웃을 사랑치 않으면 내가  너를 돌보지 않는다.' 이런 계명이 이것이 사람에게 행하라는 법칙이기 때문에  이렇게 함으로써, 이렇게 함으로 점점 멸시를 당하고 점점 그들에게 정복을  당하고 그들에게 살해를 당합니다.

 저들이 생각하기를 '예수 믿는 도는, 전투에는 일 대 일로 이렇게 전투를 해야  되는 것인데 예수 믿는 이 사상은 사람에게 칼로, 그는 너를 칼로 찔러도 너는  칼로 찌르면 안 된다. 그는 너를 침략해도 너는 침략 안 된다. 너는 그저 사랑과  방어 이 외에는 못 한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들어오면 그  국력은 어리석어서 약화된다. 이러니까 기독교는 아편이라.' 이것을 단정지운  것입니다.

 소련에서도, 동독에서도, 중공에서도, 이북에서도 단정을 지운 것은 기독자의  이 선한 면을 약하게 보고 '아편이라, 기독교는 아편이라.' 이렇게 단정을 지운  것입니다.

 그들은 통계를 맞춰 가지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국교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쭉  내려온 걸 보면 그들은 위약했고 이 민주편에서는 위약을 안 했습니다. 그들은  침략해도 이쪽은 침략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용서 없이 이해로 꼭  복수했지마는 여기에서는 용서하고 복수한 일이 없습니다.

 열 번 칼로 찔러놓고도 '우리가 서로, 그러면 내가 화해하겠다.' 암만  찔러가면서 '화해하자 화해하자.' 이러니까, 저쪽에서는 아무리 침략하고 난  다음에도 '서로 화평하자.' 하면 거기 '화평하자.' 이것이 국제적인 믿는  나라들의 방편이요 개인적으로도 이렇게 합니다.

 이러니까 기독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했는데 점점 오그라져 들어가고  점점 탈환을 당하고 피해를 보게 되니까 이렇게 하라고 하고 이렇게 하면 뭐 백  배도 주고 여러 배도 준다고 이렇게 성경에 말해 놓고는 아무 도움이 없으니까  '이것 공연한 기독교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이 다 헛일이다.' 이러는  사람, '아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계신다' '계시면 왜 이러냐?' '계시는 데 나는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지 못하고 축복을 받지 못할 내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저렇게 스스로 해석을 해 가지고 낙망도 하고 의심도 하고, 이러니까  '성경에 있는 이 성경을 하나 하나 정확하게 그렇게 믿을 것이 없고 대충  하나님은 선의 하나님이시요, 또 악의 것도 있는데 악의 것이 승리하고 선의  것은 언제든지 양보다. 하늘나라가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양보해도 좋다.'  별별 잡된 해석을 가지고 이렇게 나가기 때문에 오늘 믿는 사람은 이건 참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얄궂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대개는 신앙을 버리고 차차 차차 자기도 모르게  하나의 도덕 신앙으로, 하나의 관념 신앙으로, 아무리 살기는 악으로 살지마는  하나 수양의 신앙으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반들이 거의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육체의 생활로는 죄의 법을 섬겨야 된다. 그러니까 행동은 죄의  법으로 하고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 예배당에 갈 때는 선한 말을  하고 선한 생각을 가지고, 선한 생각 가지고 자기 마음을 좀 새롭게 수양을 하고  실지로 살 때는 일 대 일로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고, 칼은 칼로 갚고,  거짓말은 거짓말로 갚고, 수단은 수단으로 갚고, 악은 악으로 갚고, 독은 독으로  갚고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또 해석을 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하면 그게 잘 되면 하지마는 하나님이, '네가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랑하고 구원하고 용서하고 길이 참고 화평하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계명을 지키지 않고 세상 사람같이 이렇게 살면  하나님이 그를 내비두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이 치십니다. 자, 인간에게 대해서 악한 자에게 악으로 대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망하게 되지 또 악으로 대하면 하나님에게 망하게 되지, 이러니 이  기독자들이 이리도 가지도 못하고 저리도 가지 못하니까 그만 기독자라 하면 다  어깨가 축 처져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자가 이리도 저리도 못하니까 그저 어떻게  할 줄 모르니까 어깨가 축 처져 가지고 활기가 없습니다.

 '어라, 어쨌든지 세상은 다 내 주고 하늘나라나 가자' 하나의 염세주의자가  되어져서 이렇게 다 맛 잃은 소금이 버림당한 것처럼 이렇게 버림을, 세상에도  참 쓸데없는 이런 사람들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법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라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라 이 두 가지 법이 있는데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는 이 법이  첫째고 그 법을 지키고 난 다음에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라는 이 법을  말씀한 것인데 꺼꾸로 돼서 물질에 대한 법은 제일 먼저 지키고, 그 다음에  인간에 대한 법은 둘째로 지키고, 하나님께 대한 법은 지키지 않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법도 지켜야 효력이 안 나오니까 '뭐, 다 제 힘으로 살아야 되지  하나님의 축복 축복 듣기도 싫다' 이런 사람들이 되고, 또 인간에게 대한 법을  지켜 봐야 효력이 안 나오니까 '이것은 공연히 참 아편같은 기독교지 아무  효력이 없다.' 이래 돼 가지고 있는 것이 현상태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왜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법도대로 지키는데 효력이 안  나오며, 인간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지키는데 효력이 안 나오느냐?  하나님에게 대한 법도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효력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집안에 있는 물두멍에 물이 있는 것을 이웃 사람이 와서 물 없으니까 달라  하니까, 가져가라고, 없거든 가져가라고. 이것이 기독자의 행동입니다. 가져가라  하니까 가져갔는데 수도꼭지를 잠궈 놓으니까 물이 바짝 말라서 하나도  없습니다. 인제 줄 것도 없고 저거 먹을 것도 없습니다. 꼭 이 상태입니다.

 수도꼭지를 열어라. 열면 무진장으로 물이 나오니까 자꾸 줘도 물은 나오고  이러니 사람들에게 호감만 얻게 되고, 인심만 얻게 되고, 자기가 하나님이 주라  하는 대로 주니까 기분 좋고, 또 하나님 기뻐하시고, 얼마든지 하나님은  수도꼭지의 물 모양으로 저수지의 물 모양으로 자꾸 이렇게 보내 주니까 줘도  남고 줘도 남고 줄수록 이 물은 더 많이 나오고, 열 집을 주니까 '이 집에는  물을 많이 나눠 먹으니까 더 수도관을 크게 해야 되겠다.' 거기에서 백 집이  먹으니까 '수도관 더 크게 해야 되겠다.' 자꾸 수도 공사를 하는 것이 다 그런  것이라. 이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되어야만 되는 것인데 하나님과의 이 관계가  수도꼭지 잠기듯이 딱 잠궈져 가지고 있으니까 이 일이 안 되고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을 무엇 때문에 그를 의인이라고 믿음의 조상으로 역사에 온  사람 중에 제일 믿음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가? "그가 하나님을 믿으니  의로 여기셨다" 그것을 하나님이 위대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는 말이오. 둘째로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오. 셋째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가 인정하는 것이오. 그 다음에는  그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믿음으로 해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다" 믿는 것은 어떤 것이 믿음이냐?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고, 의지해야  되고, 순종해야 되고. 믿음으로라니?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일 처음에는  이 만물만 물질만 줬습니다. 물질만 줘도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자연계시라 말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안 돼서 하나님이 문서 계시를 줬습니다.

문서로 가지고 '이렇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르쳐 주신 그  문서를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문서로만 가지고도 구약 시대에 안 되니까 말세에 성령을 물 붓듯  우리들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 속에 택한 자와 중생 자라면 성령이 다 그 속에  와서 계십니다. 벌써 이제는 하나님이신 성령이 우리 마음 안에 와 가지고 계셔  가지고 우리에게 자꾸 계속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윤곽적으로 외부적으로는 신구약 성경의 문서가 가르쳐 주는 이 문서를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이오. 그 다음에는 내적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감화  감동시켜 주시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과 성령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사랑하지' 하지마는 하나님을 알면, 아는 것을 먼저 두면 하나님을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두려꿔지고 하나님이 사랑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일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이 어떤 분인가  차차 성경이 말씀한 대로 내가 알아보니까 그분이 지극히 크신 분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신 이 성경의 가르치심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이  점점 커져가서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또 성경의 가르침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시요, 참 자존의  사랑으로, 자존의 기쁨으로, 자존의 뜻으로, 주권적으로 목적을 정하시고,  주권적 의지로 모든 것을 예정 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시고,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우리를 타락 중에서 구속하시고, 타락도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성화시키는 역사를  이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존재는 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이오. 그러면 모든  존재의 기다리고 있는 목적이 및이냐? 우리 구원 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별별 그 희한한 일들이 움직여지는 새로 발견되는 이 모든 것, 요새는  원자 세계라 해 가지고 인간들이 원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이것도 하나  움직임인데 이런 움직임 전체가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예정의 순서대로 이것이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 구원, 모든 존재가 내 구원 위해서 지금 존재하고 있고 모든  움직임이 내 구원 위해서 움직이고 있고, 이 구원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이렇게 이 구원을 당신이 정하시고, 누구에게 피동됨이 아니고  그분 혼자의 자존적으로, 자존적인 사랑이요, 자존적인 기쁨이요, 자존적인  뜻이요, 이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분을 우리가 아는 것.

그분을 성경이 가르친 대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분인데 이분이 얼마나 실력  있느냐? 결혼을 했으면 '나는 평생 남자로서는 이 사람을 사랑하고 살아야 될  사람이다.' 하고 난 다음에는 이분이 어떤 분인지 하루 살면서 실력을 봐서  실력이 나오니까 사랑이 더 가고 안심이 더 가고, 한 달 살면서 그분에게 모든  것보다 위대함이 나오니까 자기에게는 더 기쁘고, 그분이, 자기 남편의 실력의  큼에 따라 자기 행복이 더 되어지고, 기쁨이 더 되어지고, 사랑이 더 커지고,  의지가 더 커지고, 더 바라지고, 소망이 더 커지고, 힘이 더 나오고, 배짱이 더  나오고, 이것이 우리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있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다  자연계시입니다. 이게 다 자연계시요 하나님을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으니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에서 찾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앎으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맺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이분이 위대한 분이다.

자존하신 분이라. 제일 크신 분이라. 제일 능하신 분이라. 이분이 모든 것을  지었어. 모든 것이 이분의 것이라. 이분의 사랑을, 이분의 뜻을, 이분의 주권을,  이분의 섭리를, 이분의 약속을, 이렇게 자꾸 성경이 말하는 것을 하나 둘  믿어지니까 이분의 사랑에 대해서, 이분의 크심에 대해서, 이분의 약속에 대해서  깨달아지니까 점점 그분을 사랑하는 것도 더 커지고, 높여 숭배하는 것도 더  커지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도 더 커지고, 의지하는 것도 더 커지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도 더 커지고 이렇게 되어지는 이것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바로 맺는 것입니다.

 시편 91편에는 보면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겠다" 이게 1차 해결,  빠져 가지고 있는 걸 건지고, 건지고 난 다음에는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겠다" 하나님에서 이렇게 당신이 우리에게 당신은 누구라는 것을 일반  계시로, 그 다음에 문서계시로, 그 다음에 성신의 감화인 영감계시로, 우리에게  당신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고, 그러면 우리가 당신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우리에게 현실 주시는 것은  전부 이것을 지금 인식을 시키고 시험을 하시고, 얼마 동안 인식을 시키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식을 시키고 난 다음에는 '어느 정도 인식하는가  보자'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시험하고 난 다음에는 '네가 이제 나를 인식하지 아니하니까 내가 너와는  상관이 없다.' 상관 없는 걸 또 보입니다. 그분을 인식하고 믿으니까 '네가 나를  믿고 인식하고 믿으니까 너에게 대해서 이렇게 해 주겠다.' 또 그것을 또 나타내  보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일들은 어떤 일들이냐? 이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역사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역사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아는, 진정 아나 모르나 그 행동을 보아서 알라고 우리를  시험하는 역사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 행동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라, 네가 나를 의지하고 바라보고 믿으니까 내가 이렇게 해  준다.' 하는 그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또 하나님 역사입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진 것도, 요단강물이 갈라진 것도, 사자의 입이 봉해진 것도,  모든 신앙가들, 요셉이나 그런 사람들이 다 결과를 잡은 것도 '보라, 나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니까 내가 이렇게 해 주는 것 봐라.' 이렇게 보이는 것이오. 또  하나는 뭐입니까? '네가 입술로만 그러하지 내가 누구인 것을 알지 못하고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네가 내 사랑도 인정치 않지, 내  위대함도 인정치 않지, 내 모든 권세도 섭리도 인정치 않지, 이러니까 너는  아무리 나를 입으로 불러도 나와 상관이 없다.' 없다는 것으로써 이렇게  망해지고 험악해지는 것이 이것이 또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떤 입장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안 도우면 우리는 안  된다. 이렇게 긴박해지고 원수가 강해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다음에  결과는 어찌 될 것이냐? 그와 나와 관계가 없으면 그들에게 통통 맞아서,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 인류 가운데에 제일 비참함을 당함같이 비참함을 당할  것들이 우리들이다.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 어찌 되겠느냐? 그들을 열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 공산주의의 사상을 산산히 다 박살을 시켜서 거기에서 하나님이  불택자로서 우리에게 유익 없는 자는 다 도망하게 한다 했습니다. 이사야 49장에  보면 너를 해하는 자들이 하나도 없이 다 물러갔다 했어. 또 물리치지 않고  거기서 없어질 자들은 다 저거 손에 저거가 죽고, 저거들끼리 저거들을 죽이도록  이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지금 나타날 결과는 것입니까? 나타날 결과는 우리가 인류  가운데 비참한 자가 되는 이것 하나 있고, 하나는 하나님이 과거 모든  신앙가들에게 하신 그 역사가 일어나서 우리를 해할 자는 어디로 갔는지 다  없어져 버렸고 또 저거끼리 다 해쳐서 저거 피를 마시도록 다 저거가다, 저거가  죽이도록 이렇게 저거가 저거를 망치는 이것으로 없어지고, 거기에서 택한  자들은 다 돌아 온다 했습니다. 동에서 서에서 먼데 가까운데서 다 돌아온다  했어 이 결과를 맺든지 앞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재 할 일이 핏이냐? 이런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서 떨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구출할 자가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이분 외에는 없습니다. 강대국으로 도피해 봤자 소용 없어요. 지금 미국  가운데 있는 그 쿠바에 신무기를 자꾸 들이잽니다. 재니까 얼마 전에는 '우리도  그러면 너희를 무력 대항을 하겠다.' 이러니까 멈춤 하니까 미국 사람들은 이제  레이건 대통령이 잘한다 이랬는데 그 사람들이 콧똥도 안 뀌요. 요새 지금 자꾸  갖다 들이 잽니다. 하치나 말거나 들어다 잽니다.

 처음에는 어북 '너희 일 대 일로 한번 악을 부린다.' 이러니까 멈춤 하다가  차차 차차 해 보니까 폴란드에 보니까 안 그렇거든. '내나 그거다. 아편 그것  같다. 아편쟁이기 때문에 이것들이 다 벌벌 떨고 도망하는 것이니까 문제가  없다.' 자꾸 지금 갖다 잽니다.

 거기 갖다 재어놓은 것만 해도 미국 나라를 일시에 전멸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뭐 강대국으로 가면 소용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관계를 맺는게 무엇이냐? '이렇게 되어 있는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당신과 가까와지기를 원해서 한다.' 이걸 믿는게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맺는 것이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돼야  되느냐? 여기에서는 '오늘날' '오늘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을 지켜야 된다.'  오늘 이 시간, '오늘날' 오늘날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는 것은 하지 말아라 하라  하는 것 그것 두 가지로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것은 하지 말아야 되겠다.'  뒷날로 미루지 말고 오늘날 하지 말라면 하지 않을 것, 오늘날 하라면 할 것,  이것이 당신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만 하면 당신이 해 줄 수 있느냐? 해 줄 수 있다는 그런  것을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가지는 것이오. 또 이렇게 하면  좋은 날을 보고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불의한 것들은 다 물러가고 저절로  없어지고, 거기에서도 구출할 자는 다 구출하고, 이렇게 할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이것이 믿는 것입니다.

 이분의 권능을, 이분의 사랑을, 이분의 진실을, 이분의 지혜를, 이 분이  우리에게 약속한 이 계약을 의심 없이 믿는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다 그들을 우리가 하나도 해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하나도  해하지 않고 그들도 살고 우리도 살고, 그들도 행복 되고 우리도 행복되고, 이  악한 일만 전멸이 되어집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제일 급선무인데 이것은 하지 않고 꼭 지금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라 하는 이 계명만 지키고 하나님과의 관계 가지지 않으니까 하나님  믿지 않으니, 독침을 가지고 찌르려 할 때에 그때에 그 앞에서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 앞에서 하나님, 그 앞에서 공간에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가  여기까지는 내밀었지마는 그 다음 공간을 그분이 허락지 않으면 더 나오지  못합니다.

 모든 움직임을 활동을 당신이 주권하고 있습니다. 개미가 수염을 요래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이 또 흔들라 해야 흔들지 흔들게 안 하면 못 흔듭니다. 하나님의  개별 섭리를, 하나님의 주권을, 하나님이 거기 함께 계심을, 이것을 문서계시로  보인 것이, 불에 들어가면 타는 것인데 불에 들어가도 불이 태우지 않은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실물로 지금 말씀하시고 또  실물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것 아닙니까? 사자구덩이에 들어갔지마는 하나님이  발톱과 그 입을 봉해 버리니까 그가 해하지 못한 그것을 보인 것이 뭐이냐? 사자  같은 것이라도 불꽃 같은 그런 혹독한 가운데라도 상관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믿는 것이 하나님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일 두려워하고, "너는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 받았으면 위엣 것 생각하고 땅엣 것 생각지 마라. 위엣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찾지 마라." 위에 수지 계산을 맞춰라. 하나님과 너와의 어찌 되느냐  그 수지 계산을, 천국에 어찌 되느냐 그 수지 계산을, 영에 대해서 어찌 되느냐  그 수지 계산을, 땅의 수지 계산만 맞추지 말고 하늘의 수지 계산 맞춰라.

피조물을 믿고 의지하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 이게 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인데 이 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신관, 하나님에게 대해 어떻게 보느냐, 하나님에게 어떻게  상관하느냐 이것은 가지지 않고 인간들에게 상관하는 이것만 하기 때문에  인본주의가 되고 말았다 그거요. 이것이 왜 그리 됐느냐? 제가 하나님 것 되는  이것은 하지 않고 인간에게 호감받아서 하려는 제가 제, 하나님에게 하나님 은혜  가지고 제 안면 나타내고, 제 영광 나타내고, 제 인심 나타내고, 제 호강하고,  여기에서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에 그렇게 흥왕됐었는데 왜 그들이 거기에서 비참을  당했습니까? 그들이 생각하기를 '이들이 우리보다 강성해지니까 이것 위험하다.

숙떡숙떡....' 숙떡공론이 나올 때에 그때에 저거가 할 일은,  벌써 그들이 숙떡공론이 나온 것은 '이들이 우리보다 강성하니까 이것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 이렇게 나오는 것은 하나님과 저희들에게 틈이 났기 때문에  그들에게 틈이 난 것이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섬기는 것이 이것이 흐려가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진다. 우리 조상 요셉이와 같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래 되어진다.' 요셉 같은, 요셉 자손이 되도록  이렇게 반성해서 그렇게 기울이지는 않고, 아주 어긋나게 '우리가 이렇게  왕성되어도 자기들 해하지 않는다.' 하는 것을 인심을 써서 그들에게 후하게도  선하게도 자꾸 이렇게 할수록이 그들이 자꾸 더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모니까  몰수록 '이것 오해를 해 그러니까 오해를 풀어야 된다. 화평을 해야 된다.'  이것으로 점점 급박해져 가지고 마지막에 그 꼴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 잊었기 때문에, 미국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저  강대국으로 아주 궁지에 빠졌습니다. 오늘 남한이, 안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저희들의 방편이지마는 남한 교회가 하나님 잊어버렸어. 하나님  잊어버리고 전부 요새 보면 공문이 어떻게 날아드는지? 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연보하는 사람들도 참 복이 없을 것입니다.

 마구 그 공문에 돈이 굉장히 들어서 나올 것인데 이것 읽어 보면 다 저  나타내는 것이오. '나는 뭣을 지금 하고 있다 여기에 와서 협조하십시오.' 뭐  거기에 가 가지고 '무슨 협회, 무슨 운동' 큰 이름을 내놨는데 가 보면 찍해야  두 사람이 하나는 회장이고 하나는 뭐 부회장이고 하나는 뭐 총무고 이래  가지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런 줄 알고 가면 떡을 사 주고, 밥을 사  주고, 요리를 사 주고 자꾸 하나씩 둘씩 매수해 가지고 그 편을 만들고, 이래  가지고 '우리가 지금 열이 됐다, 스물이 됐다, 서른이 됐다.' 그것 전부 자기  구멍가게 만드는 것이고 자기 사다리 만드는 것이고, 자기 간판 만드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은 우리가 섬길 분이요, 우리가 높일 분이요, 그를 두려워할 분이요,  그분을 위할 일이지, 그분에게 덕 보기 전에 그분을 위할 분이오. 그분 위해서  죽든지 살든지,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그분으로 인하여 생겨진 것이  그분으로 인하여 움직이고 그분을 위해서, 그분에게 속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으로 생겨진 것이, 그분을 인하여 움직여서, 그분에게 딱 들어붙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요구의 우리 할 일입니다. 이랬는데 이렇지 아니하고  땅에 인간을, 물질을 이용하고 인간 이용하다가 최고급으로는 하나님의 법도도  이용하고, 하나님의 이름도 이용하고, 하나님도 이용하고, 하나님의 간판도  이용해서, 하나님 믿는다는 이걸 이용을 해 가지고 자기를 위하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복수가 얼마나 클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바른 관계를 가지는  이것이 그저 우리 민족이 다 가지면 좋고, 세계가 다 가지면 좋고, 소련 중공도  다 가지면 좋고, 전부 다 가져서 모든 인류가 하나님과 이 관계를 다 가져서 다  행복되면 좋고, 안 되면 마지막에는 자기 혼자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까짓 거야 숫자가 적으니까' 그리 멸시하지 않습니다. 전인류가 멸망 당할  때에 노아 여덟 식구지마는 그 여덟 식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를  구출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하고, 다해서 그분을 사랑하는 이  길밖에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바치라 할 때에 아브라함이 독자를 바치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제야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줄을 알았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역사인 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는 어떤 자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어떻다는 것을 가르치는  역사하시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네가 배워서 인정하는가 안 하는가 보자.' 시험 하시고,  시험하시고 난 다음에 합격이 되면 '보라, 이렇게 내가 해 줄 터이니까' 하는  그것이 미국이 강대해진 것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자, 이제 시험에 낙제를 하고  네가 암만 가르 쳐도 배우지 않고 네대로 하는 것, '네대로 하니까 보라, 내가  어떻게 해 주는가? 계약대로 내가 어떻게 해 주는가?' 이렇게 멸하는 것이  그것이 또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가르치는 것, 시험하는 것, 합격되면 축복하는 것, 위약하면 벌주는 것, 이것을  몇 번이든지 재독하고 재독하고 자꾸해서 우리를 고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땅위에 모든 것이 형통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밤에 어찌 될지 모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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