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에게로 나아가자

 

1989. 5. 21. 주일오전

 

본문: 마태복음 10장 16절∼18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성경만이 우리 믿음의  법칙입니다.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 하는데 대한 법칙은 신구약 성경 외에는  없습니다. 성신의 감화도 성경 안에서만 역사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깨달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의 소유도 몸도 생명도 다 투자하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소유도  귀중히 여기고 자기 몸도 귀중히 여기고 생명은 최고로 귀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귀중히 여기는 것들을 내가 투자할 길이요 바칠 길입니다.

소유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귀하기 때문에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바치는 것이요  또 자기의 몸과 생명보다 하나님의 뜻이 귀하기 때문에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신구약 성경에서 배워서 아는 것인데 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안 이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칠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보다 하나님의 뜻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하나님의 뜻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뜻보다 이런 것들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으면 저버렸지 자기의 이 세 가지  모든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바칠리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건설구원은-기본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거기에 대해서 관심도 가질 필요 없고 알 필요도 없고 노력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시는 이 구원이니 이 구원은 너무도  그 가치가 커서 사람들의 요소의 무엇을 조그마치라도 거기에 접할 수 없어서  순전히 은혜로 되는 것이지 가치가 적어서 은혜로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영원한 나라에 가 가지고 기본구원을 얻은  자와 얻은 자의 차이가 되는 그 영광의 구원은 모두 다 우리들이 건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집짓는 비유로도 했고 또 성전  건축 비유로도 했습니다.

 이제 이 건설구원을 하는 것은 아무나따나 행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것만이 영생이 되고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가치가 더 큰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다가 자기의 이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그 가치 차이를 가진  사람이라야 예수 믿는 건설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소유도 귀하고 몸도 귀하고 생명도 귀합니다. 이것은 온 천하 보다 귀한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요 자기 몸도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렇게 귀하지마는 건설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이런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이 귀중한 세 가지를 바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 이것을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보다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건설구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에게는  하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비로소,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의 소유  몸 생명보다 가치가 크다는 것을 생각하고 깨달은 사람이 비로소 희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깨닫고만 있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깨달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찾았을 때에는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애끼지 않고 거기다가 다  투자하기를 원하는 그 사람만이 전설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이루는 그 구원은 영생이 되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머리가 되고 하나님의 수족과 몸과 같이 그렇게 귀중한 만물의  중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자기 이 귀중한 세 가지를 그 뜻에  바쳐서 그 뜻대로 살아야 건설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면 신중히 다루어야 되겠고, 자기의 몸이  망하고 흥하는 것이라면 신중히 다루어야 되겠고, 자기의 소유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라면 신중히 다를 만한 가치가 있지마는 하나님의 뜻이야 이렇게 말해도  되고 저렇게 말해도 되고,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그거야 이거나 저거나  거기에 대해서 가치를 여기지 안하는 그자는 중생된 자라도 건설구원에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들이 천 명이면 천 명, 만 명이면 만 명, 평신도뿐만 아니라 최고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목사들까지도 하나님의 뜻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야 이리 말하나 저리 말하나 그 상관없는  것으로서 자기에게는 별 가치 없는 하나의 말단의 어떤 그 관련된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담겨 있으니까 성경 깨달음이 이거냐 저거냐, 성경 해석이 이거냐 저거냐 하는  데 대해서 아무것이라도 상관없다는 이런 가증스러운 것을 가지고 오늘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종들이요, 설교자들이요, 목회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의 가치는 영원 무궁을 하나님의 뜻에서 결정하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이 통치권, 소유권, 그들에게 환영받는 시은의 권세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 하나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도 내가 중간반 공부하는 것 보니까 '현실에 하나님의 뜻에는 예수님의  대속이 속에 들어 있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내재해 계시고 전지전능이 그 안에  내재해 역사하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하나님의 뜻 안에 들었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을 제것을 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행하는 거기에 있고, 또 삼위일체 하나님을 제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그것을 제것으로 삼는 데  있고, 하나님의 충만도 예수님의 대속의 효력도 자기 것을 삼는 데에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거기에 있지 딴데에 있지 않습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명보다 귀하고 우리의 몸보다 귀하고 우리의  전소유보다 귀하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배울라고 바로 찾을라고  사람들은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돈만 못 하게 여기는 자에게는 돈을 찾지  하나님의 뜻을 찾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명보다 천하게 여기는  사람은 제 생명 사는 것이 급하고 고귀하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자기 생명을  바치려고 하는 그런 일이 될리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이래서, 오늘도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하는 '내가 하는 것은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내라고 말했습니다. 너희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는  누구든지 전부를 다 말해서 너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너희를 보냄이' 너희를  보냄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대속해 가지고서 내보내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는  것이니 세상에 살게 하는 것은' 하는 말입니다. '세상에 머물게 하는 것은 하는  말입니다. '세상에 거주하게 하는 것은'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양을 제일 살해하고 삼키는 데에 맹수들이 많지마는 제일 능한 것은  이리입니다. 양을 잘 잡아먹는 것은 이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양은  맹수 중에 사자 그런 것보다도 이리를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리는  양을 삼키는 맹수요 양은 이리를 제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위해서 생명까지 바쳐서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 우리를 이  어떤 세상에 살게 하느냐? 마치 양이 이리 가운데 사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제일  원수 많은 원수 속에 살게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원수 속에 살게 하신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 원수는 양을 삼키는 원수인데 그러면 원수는 어떤 게 우리가 알아야  되겠는데 원수는 곧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원수인가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이리는 곧 마귀입니다. 마귀요, 귀신이요, 사귀요 사탄이요, 뱀이요,  용이요, 붉은 용으로, 이렇게 성경에 기록했는데 오늘 주일학교 공과는 이것을  가르친 줄 압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달리 말하면 내가 너희들을 이 세상에 살게 하는 것이 마귀  속에서 살게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사탄 속에서 살게 한다, 귀신 속에서 살게  한다, 사귀 속에서 살게 한다, 미혹의 배암, 용, 붉은 용 속에서 살게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귀신이 어떤 게 귀신인가? 온 세상이 다 귀신입니다. 어떻게 온  세상이 귀신인가? 그 공과 공부에 보면은 마귀란 놈이 우리를 삼킬라고 달라들  때에 그가 입고 오는 그 갑옷이 무엇인가 하는 갑옷에 대해서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이 마귀가 배암을 입고 왔기 때문에 그 해와와  아담이 마귀인 줄을 모르고 친구인 줄 알고 달라 들어서 서로 대화하다가  마지막에는 삼키워서 멸망받고 말았습니다.

 온 세상을 왜 마귀라고 하는고 하니 세상이 마귀는 아닙니다. 사람도 깨끗하고,  동물도 깨끗하고, 또 식물들도 깨끗하고, 무생물도 깨끗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다 깨끗합니다. 깨끗한데 왜 이것을 가리 켜서 마귀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벌써 마귀가 우주의 피조물 대리로 하나님 앞에 세워 놓은 것이 범죄해서  마귀가 점령했기 때문에 오늘은 마귀가 무엇이든지 제가 필요한대로 입어서  가장을 해 가지고 세상의 무엇을 입고 가장하든지, 가장이라 말은 옷을 달리  입었다 그 말이오 꾸미기를 달리 꾸몄다는 그 말입니다. 거짓 걸로 꾸몄다  말이오.

 그러니까 마귀란 놈이 왕도 제가 자기 갑옷으로 입고 올 수 있고, 또 모든  친구도 부모 형상도 부부간도 또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심지어 목사도 장로도  다 마귀란 놈이 그놈이 입을 수만 있으면 입어서 필요할 때에는 입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모든 것을 제가 입을 수 있는 그런 권세를 가지고 있고  모든 우주에 있는 피조물은 마귀에게 입혀질 수 없는, 마귀를 자기중심에 모시지  안 할 수 없는 그런 권세가 없기 때문에 이제 모든 것을 다 마귀란 놈이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무엇을 입고 올란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온 세상은 마귀가 입고 올 수 있는 것들이다, 양을 삼키는 이리가 입고 올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온 세상은 마귀가 입고 나를 삼킬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온  세상은 마귀가 입고 나한테 와 가지고 나를 삼키는 이리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온 세상은 이리의 다 무더기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은 다 깨끗하지마는 마귀가 입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이리 노릇 하는 데, 나를 삼키는 데에 그것이 필요하게 이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자기 집안에 있는 아름다운 가구라도 저것도 마귀가  입고 올 수 잇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주 자기를 사랑하셔서 자기에게 모든 걸  다 희생할 수 있는 부모도 마귀가 입을 권세가 있기 때문에 마귀가 입고 올  때에는 그 부모는 나를 죽일라 하는 그 일을 맺고야 마는 것입니다.

 여기에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다' 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입어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를 가리켜서 양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부모지마는 귀신이 들어가 놓으면 그 부모를 통해서 귀신이 와  가지고서 그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진실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의인으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로 살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기 때문에 너희  주위 환경은 너를 삼킬 원수로 가득 찬 세상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에 가정 생활을 하든지, 사회 생활,  하든지, 직장 생활하든지, 학창 생활을 하든지, 무슨 정계에서든지 어데서든지  어떤 분야에서 자기가 살든지 '내 주변은 전체가 이리다. 나를 삼킬라고 하는  이리다.' 요것을 기존 지식과 선입적 관념으로 딱 가지고 내가 이 이리에게  삼키지 안해야 되지 이리에게 삼키면 나는 멸망받는 다는 요것을 가지고, 아무리  무엇이 와 가지고서, 어떤 나라의 정권이 와 가지고서 내 새사람을 삼킬라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가족이 와 가지고서 새사람을 삼킬라고 할지라도, 자기의  생명을 가지고서 생명을 이용하여서 내 새사람을 삼킬라고 할지라도 이 육의  생명을 주었으면 주었지 새사람의 이 인격이나 새사람을 삼키우지 안하고  양보하지 안하려는 요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깊은  이면을 말했습니다.

 이래서 우리들은 세상에서 어떤 것을 조심 할 것인가? 나로 하여금 참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그것, 의인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그것, 죄 없이 살지 못하게.

하는 그것,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는 것을 살지 못하게  하는 그것, 진리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그것, 예를 들면은 내가 진실되게 살라고  하는데 진실을 양보하라고 하는 그것, 정직하게 살라고 하는데 때를 따라서  그렇게 타협도 하고 에누리도 해서 정직도 지킬 때에 지키고 안 지킬 때에 안  지키고 이렇게 그런 것을 다 중단해서 휴식하라고 하는 이건 모든 유혹들,  우리로 하여금 새사람으로 참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공심판에  걸리지 안할 온전한 사람으로 살라고 할 때에 살지 못하게 하는 그것 온 세상이  불타고 앞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도 하나님의 심판에 걸릴 것이 없이  무난히 평안히 담대히 통과할 수 있는 그 사람으로 살라고 할 때 그 사람으로  살지 못하세 하는 이건 것이 우리의 원수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변에는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고로 가다가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오고, 윤리적인 어려움도 오고, 사회적인  어려움도 오고, 신체적인 어려움도 오고, 생명적인 어려움도 오고 소유적인  어려움도 올 때가 있습니다. 각양의 어려움이 옵니다. 어려움 오는 그런 것은  통틀어서 한 가지 말로써 어떤 어려움이 오든지 그 어려움 오는 것은 주님이 그  어려움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서 오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려움은 한 말로 말하면 뭐인가? 그 어려움은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는가?  새사람 내놓으라 하는 것입니다. 참사람을 내놓으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참사람을 내놓지 안하면 승리자로서 참사람을 내놓으라 한 그것들은  전부 자기 종이 됩니다. 자기가 통치할 수 있고 자기에게 지배를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대주재자가 통치를 받게 하십니다. 그때에 자기가 그 대적에게  삼켜져서 참사람을 내놓고 이 땅위에 있는 옛사람 혈육의 사람으로 사는 그것을  귀중히 여겨서 그 사람을 편키 위해서 새사람의 그 온전한 인격을 내서 팔아  버리면 그때에 자기는 마귀의 종이 되고 세상의 종이 되고 죄의 종이 되어서  자기는 그다 음부터는 자유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것을 하나 둘씩 이겨 나가야 하는데 이런 어려움을 닥칠 때에  이것이 곧 이리의 장난이요 이리의 모든 작용들인데 이리의 작용 그 배후 깊은  속에 넘어다보니까 주님이 그 뒤에서 조종을 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그  뒤에 조종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나선 것은 이리요 마귀요 원수요 사람이지마는  그 속에 모든 것을 심사 판정해 가지고서 영원 무궁의 보응으로 시상하고 보웅해  주실라고 하는 그분이 속에서 조정하시고 우리를 감시하고 계십니다.

 이래서 제가 지은 그 찬송가에 '섭리의 고개턱 너머' 섭리의 절정 너머 '숨어  엿보시는' 숨어서 엿보는 숨어서 '네가 어떻게 하노 보자' 하고서 당신이 없는  것같이 숨어 가지고서 우리의 행동을 엿보시는 마중의 주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이 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가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꾸었는데 이 공산주의자들이 와 가지고서, 이제 이거 모두 다  이제는 남한도 다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그런 아주 양협한 그런 것은 너무  조부라운 사람들이요 못난 사람들이다. 이제는 뭐 소련도 중공도 다 이제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그런 것을 다 너무 괴팍스럽고 너무 치우친 것이기  때문에 또 화평으로서 이와같이 서로 타협해 나가자 이래서 소련에서도 대  데모가 일어나고 중공에서도 대 데모가 일어나고 모두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남한에서는 지금 긴장해 가지고서 남침 적화 통일되면 어짜나 하고서  밤낮 깨어 있었는데 이제는 안심한 시대가 돼 지금은 뭐 시대가 지나왔기 때문에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남침이니 하는 그건 소리는 꿈꾸는 소리요 지나간 시대의  소리지 지금 현시대에는 맞지 않다 하는 이런 때가 됐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안심하고 잠자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북에서 이제까지 그 사십오륙 년을 공을 들이고 나왔던 그 모든  것이 다 깨어지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한 번뿐입니다. 한 번뿐인데  이렇게 모두가 다 물씬물씬해 가지고 있어서 뭐 여기에서도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고 또 좌경 세력이 그렇게 괭창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되나 안 되나? 이것으로 되면 피흘리지 안하고 그만 이게 되겠는데  되나 안 되나 하는데 이것으로 안 된다는 것을 그분들이 벌써 판정을 했습니다.

이것 될 줄 알았는데 이것으로 안 된다. 안 되기 때문에 요런 기회에 한번 한  번만 내밀어 버리면 여기는 일사천리로 아무 어려움 없이 된다는 이런 모든  판단을 할 수 있는 그런 시점에 지금 다달아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지금 뭐 버글버글해 가지고서 이렇게 남침의 지금 이  전쟁이 일어났는테 6. 25 전쟁이 이래 일어났는데 그때 그 전쟁 일어나는  거기에서 나는 어데로 가서 숨어야 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어째 내가 그때  그랬든지 '어데로 가 숨어야 되겠느냐?' 생각도 안 했는데 어데로 숨으러 가야  되겠느냐 그 생각을 가지고서 숨을 것을 생각하니까 재은은 도시라고 도시가  숨기 쉬우니까 도시에 숨나 산골짝에 숨나 그런 숨을 것을 생각하다가 보니까,  내가 보니까 어떤 내가 아는 성도도 그 아마. 가는데 보니까 숨으러 가는 것  같애요. 숨으러 가는데 나를 알고 인사를 하면 내가 봤다 할 터이니까 차라리  모르는 척 하고 가 버리는 것이 내 입장이 좋을 거다 해 가지고 아마 그냥 가는  것 같애요. 이라다가 깼습니다. 깨서 '내가 이거 완전히 멸망의 방법을 내 피난  방법으로 삼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서 오늘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신 이가 목자이신 주님이십니다. 똑 이런 입장입니다.

입장인데 이리떼보다는 목자가 강합니다. 이리떼는 목자 앞에는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목자가 목자의 지팡이를 가지고서 훌기면 그만 도망을 칩니다. 이러기  때문에 목자인 그 다윗이 사자가 오고 곰이 왔지마는 그만 수염을 잡고 찢기도  하고 이랬기 때문에 이리는 목자에게 오지 못하기 때문에 목자는 모든 맹수를  방어하고 양을 보호하는 것이 목자입니다.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신인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요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사망을 이겨서 완전히 승리를 하신 주님이 우리의 목자십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둬 두시는 이는 주님이 이 세상에 둬 두시고 이 세상에 둬 두시는 목적은 모든  각종의 어려움을 우리들로 하여금 겪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둬 두시는  주님의 목적이십니다.

 그러면 큰 이리도 오고 작은 이리도 오고, 이리떼도 오고, 한 마리 이리도  오겠습니다. 단일 문제도 생겨지겠고 종합 문제도 생겨지겠고, 아주 사소한  문제도 생겨지겠고 강대한 그런 문제도 생겨지겠고, 뭐 사회 문제, 국가 문제,  인류 문제, 가족 문제, 경제 문제, 사업 문제, 모든 신체 문제, 자기 생명 문제,  모든 어려운 문제가 오는 것은 다 그 속에 마귀가 들어 가지고서 우리를 삼키기  위해서 모든 어려운 문제를 주는 것이고,  또 이 세상의 어려운 문제 가지고 우리를 삼킬라 하다가 안 되면은 우리를  꾀우는 우리가 좋아하는 달콤한, 세상이 좋아하는 부러워하는 부귀 영광 존귀  이런 걸 우리에게 줘 가지고서 새사람 내놓으라고 꼬우는 것으로서 그렇게  역사하는 역사도 있습니다. 마귀란 놈이 강압을 가지고서 위력을 가지고서  우리를 삼키는 것도 있고 우리를 달래 가지고서 우리를 좋게 해서 이렇게  치켜들어 가지고서 꾀워서 우리를 삼키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게 오든지 내가 주님의 뜻대로 참사람으로 살라고 할 때에 살지 못하게  하는 그 모든 방해물은 그것은 다 이리라, 그것은 다 마귀라, 마귀가 오만 것을  입고 오기 때문에 껍데기 그것은 마귀가 아니고 속에 들어가서 작용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올 때에 우리의 피난은 어떤 건가? 우리의, 원수의 무서운  대적이 올 때에 우리의 피난하는 방법은 뭐인가? 경제적으로 큰 환난이 올 때에  우리의 피난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생명적으로 위협이 올 때에 우리의 피난할  방법은 무엇인가? 세상 부귀 영화 존귀 성공 이건 걸 가지고 우리를 삼킬라고 할  때에 그런 것이 올 때에 우리의 피난해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입니까? 무엇입니까?  양을 덮치는 그 새력이든지 양에게 이렇게 아주 좋은 꼴을 이래 갖다 주며 살살  달래면서 꼬우는 것이든지 어쨌든지 참 사람을 삼킬라고 오는 그것은 단 걸로  오든지, 쓴 걸로 오든지, 번쩍거리는 걸로 오든지, 흉악한 걸로 오든지, 달래는  거로 오든지, 나를, 추켜 올리는 걸로 오든지, 나를 꺾어 내루는 걸로 오든지,  어떤 걸로 오든지 참사람으로 사는 것을 살지 못하게 하는 그것은 여기에 비유한  데 이리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이 올 때에 좋은 걸로 오든지 쓴 걸로 오든지 어떤 걸로 오든지  올 때에 거기에서 우리의 원수를 대적하고 우리가 구원 얻는 그 길은 무엇인가?  방법은 무엇입니까? 방법은 무엇입니까? 방법은 목자에게로 가는 거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목자에게로 가는 것뿐입니다. 우리를 해하려고 오는 것, 내가  참사람으로 신앙생활 하려고 할 때에 하지 못하게 방해가 되는 어려움이 올  때에는, 사회가 나를 어려움 줄 때도 있고, 국가가 어려움 줄 때도 있고, 정치가  어려움 줄 때도 있고, 사법이 어려움 줄 때도 있고, 모든 의회들이 어려움 줄  때도 있고, 가족이. 직장이 모든 여러 것들이 다 어려움을 줄 때가 오는데 그  어려움 오는 것은 두 가지라. 좋은 거 싫은 것 두 가지로 와.

 좋은 것을 줘 가지고는 꼬우고 어려운 걸 줘 가지고는 우리를 강제로  해가지고서 우리를 해치려고 오는 것이니까 어떤 해로 오든지 상관없습니다.

어떤 해로 오든지 오는 그것은 이리입니다. 무엇을 입고 왔든지 이리입니다.

무엇을 입고 왔든지 마귀입니다. 그럴 때에는 우리 할 일은 무엇입니까? 유일한  방법은 목자에게로 가는 것뿐입니다.

 요것을 하나 증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6. 25와 같이 밀고  내려오면 어짤 건가? 우리가 이리 저리 피난 갈 것이 아니라 우리의 피난처는  주님뿐입니다. 이러니까 그건 일이 있을수록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고 성경  더 보고 기도 더하고 회개 더 하고 주님 앞에 대해서 더 가까이 사모하고 더  밀접하게 교제하고, 그분은 창조주시요 주권자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모든 크고  작은 것을 개별 개별을 섭리하시는 그분인데 그분이 요구하는 것이 이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작응은 그분의 작용이기 때문에 그분께로 가까이 가면은 그분이  '아멘! 할렐루야! 왔다! 됐다' 이거 외에는 딴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밤에 제가 꿈에 망령된 길을 걸어서 '어데로 갈까? 산으로 가나 들로  가나? 이거 아는 마을로 가나 모르는 마을로 가나? 이거 뭐 도시로 가나  그러나?' 그런 것을 생각하다가서 그렇게 날뛰다가서 제가 퍼뜩 깼는데 '내가  이거 완전히 옛사람이 됐고 완전히 미쳐졌다. 내가 이거 광인이다.' 우리의  피난처는 예수밖에 없는데 그 어만 데로 가니까 이거 멸망을 자취하고 가는  것이로구나. 내가 신앙이 요새 지금 그런지를 하나 몰라서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  주시는 것인지 또 여러분들이 다 그런 신앙이니까 하나님이 증거하라고 보여  주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보니까 권사님 한 분이 가요. 권사님 한 분이 가는데 내가 보며 이렇게  웃으면서 '저 권사님도 피난 가는가 보다.' 피난 가면 내가 이래 보고 있으니까  나를 보고 뭐 인사를 할 줄 아니까 모르는 척 하고 갑니다. 그런 거 아마 내가  뒤에 해석하기를 알면 어데로 갔노 나한테 물으면은 모른다 하면, 안 될 거고  그럴 터이니까 아예 모르는 것이 낫다 싶어서 아마 저래 가는가보다. 저분도  피난가는가보다.' 이라다 깼어, 그 피난도 다 헛일 돼. 그 피난도 다 헛  피난이라. 어짜든지 예수님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자, 그 찬송이 어뎁니까? 그 찬송이 몇 장입니까? 59장 찬송 하나 합시다.

 59장.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게.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있는 것 망하겠네.

 만유주 여호와 우리를 보시니 피난처요  세상에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에 창검이 쓸데 없네.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있으니 여호와요.

<기도>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 없이 그대로 정확히 이루시는 주의 말씀의 절대  권위를 믿는 저희들이 되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처세하고 있는  세상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삼키려는 다 이리가 되어 있는 이 세상인데 외모는  이런 것 저런 것을 가졌지마는 속에는 악령이 그것들을 입고 와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삼키려고 하는 여러가지 모양으로 달고 쓰고 맵고 또 흉하고 길하고 하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서 우리의 신앙을 유혹해서 유린하고 꺾어 없애려는 이런  모든 환경 속에 사는 것이 저희들인 것을 밝히 가르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럴 때마다 인간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면 모든 불리한  것은 유익이 되고, 우리에게 두려운 것은 평안이 되고, 우리에게 해가 되는 건  유익이 되는 이 사실을 확신하는 저희들이 되므로 어떤 사회적이나 국가적이나  시대적이나 개인적이나 가정적이나 경제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생명적으로 어떤 것이 올 때라도 우리는 이로 인해서 움직임은 주님 앞으로  가까이만 나아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승리되고 좋은 결과를 맺어지는 이  사실을 확신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이 어떻게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신 것을 확실히 깨닫고 이제는 염려 없이  주님의 뜻대로만 살면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확실히 잡고 요동치 않고 항상  믿음으로 사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인도하기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더우기 성령으로  충만시켜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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