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실천신학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2일 화새 

 

본문 : 출애굽기 20장 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여기 계명은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모든 말씀을 다 계명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구약 성경은  다 하나님의 계약이면서 또 하나님의 교훈이면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이라는 것은 이행하지 안하면 거기에는 상당한 책임 추궁이 있는 것을  가리켜서 명령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그 사람에게는. 그러면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 한해서 말씀하신 것인가? 하나님 앞에 택함을 입고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한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뭐 불택자는 상관치  않습니다. 또 택자라도 아직까지 부르심을 입지 안해서 중생됐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안한 그런 사람은 여기에 해당치 아니하고 다만 그  사람이 주님에게 택함을 입고 또 중생되고 그래 가지고 예수 믿기 시작한 그런  사람들에 한해서 말씀을 한 것입니다. 자기 주관 행위가 사작되는 그때부터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지 자기 주관 행위가 시작되지 안할 때의 말은 아닌  것입니다.

 성경에 이 성경에는 순서가 이렇게 순서가 돼 있고 또 저 성구에는 그 순서가  저렇게 돼 있고 신구약 성경에 모든 어떤 그 한 조건을 말할 때에 그 순서  기록은 각각 다른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한 군데만 보고  요대로의 순서라 그렇게 생각하면 또 안 됩니다. 그런고로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먼저 자기가 거기 대해 있는 것을 전면적으로 보고 그 모순 된 면을 발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성구에서는 이렇게 말했는데 저 성구에서는 저렇게 말하니까  이거는 정반대가. 이거는 모순되다. 그러면 성경은 모순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은 책이요, 또 하나님의 그 전지자이시요 저가 모은  책이기 때문에 거기는 뭐 서로 이렇게 충돌되거나 그런 모순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렇게 모순된 일들이 서로 충돌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순 된 점을 찾아 가지고 거기에서 모순된 것 같으나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하나가 됩니다. 처음에 어떤 그 단구를 찾고  그 다음에는 모순된 점을 찾고 그 다음에 일치된 점을 찾을 때에 그때에 바른  깨달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군데 가지고 그 순서를 고집하고 또  그 순서가 틀리니까 이렇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고. 양성원 학생들은 여기서 공부할 때에 여러분들 이 자기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를 힘입어서 살아났고 또 이 은혜를 계속 받고 있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성경을 보고 깨닫고 깨달은 대로 실행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은혜를 주어서 깨닫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은혜를 주셔 가지고 깨닫게 한 그 깨달음과 다른 사람의  깨달음이 어떤가 하는 이 깨달음의 말하자면 사회성을 자기가 구경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깨달은 그 깨달음과 모든 사람이 깨닫기를 어떻게 깨닫고  있는가, 모든 사람의 깨달음을 자기가 이런 기회에 구경하고 대조해 봅니다.

 또, 그 역사성, 그러면 어느 한 시대는 이렇게 깨달았는데 또 다른 시대에는  어떻게 깨달았느냐? 그러면 우리가 벌써 신약 성경을 받은 지가 교회들이 신약  성경을 받은 지가 약 이천 년 다 돼 갑니다. 그러면 이천 년 다 되어 가는데  주님이 그 승천하신 후 몇 십 년 동안에는 어떻게 깨달았으며 백 년 지나 간  때는 어떻게 깨달았으며 그 이백 년 지나간 때는 어떤가? 한 백 년을 일  세기라고 하니까 이 세기 때 오 세기 때에 그 지금은 무슨 세 기입니까? 이십  세기 아닙니까? 그러면 이천년이 다 돼 간다 말이지요. 이러니까 시대적으로  어떻게 깨닫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구경하고 열람하고 보는 것이 그것이  교회사 교리사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사라 하는 것은 예수님 오시기  전부터 구약부터 신약까지의 이 하나님의 교회들이 어떤 그 움직임을 가졌으며  어떤 흐름을 가졌으며 또 어떤 그 움직임의 결과는 어찌 됐고 어떤 그 흐름의  결과는 어찌 됐다 그런 것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 목사님이 여기서 도미하실 때에 '저는 가서 무엇을 전공을  하면 좋겠습니까?' 이래서 그 사학을 말했습니다. 교회사와 교리사 그 사학을  연구하고 오라 이랬었습니다. 이라니까 그 목사님이 좀 마음에 달게 받지 안하고  섭섭하게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 조직 신학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확실히 이걸  연구하겠다 그렇게 말하지 안하고 그만 그래 의견이 일치되지 안하고  떠났었습니다. 떠나 가지고 그곳에 가서 일 년 공부했습니다. 일 년 공부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에게 제게 감동하신 그 하나님이 그에게도  감동했습니다. 그 영감이 같은 영감이 됐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그 전에  편지도 뭐 아무것도 없었는데 제가 전과를 했습니다. 과를 바꿨습니다. 사학과로  바꿨다고 그렇게 소식이 왔었습니다.

 왔을 때 내가 편지 써서 보내기를, 그 편지 원본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간수하기는 한다고 했는데, 보내는 중에 그 첫째는 이미  되어 있는 모든 기록되어 있는 기존에 있는 모든 그 실상을 다 열람하고 그것만  가지고는 죽은 지식이기 때문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런 현재에는 어떠한  미래가 닥쳤느냐. 그러면 이 현재는 현재는 과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현재에서 과거를 열람해서 지식하는 사람이 되고, 또 그 현재라는 거기서 그  시대 현재에서 그 미래라는 것이 어떻게 됐는가 그런 것을 연구해서 앞으로  목사님이 연구하는 그 연구가 그러면 지금 앞으로 이 교회사는 어떤 교회사가  나올 건가 하는 그것을 확실히 발각해 가지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원한다. 그러면 앞으로 교회들이 현재 이렇게 교회가 되고 있으니 앞으로는 지금  어떤 교회가 나오겠다. 하나에 하나 보태면 답안이 둘 나오는 것 마찬가지로  이제까지 과거 현재 이 모든 것의 그 제의 답안이 나오는 그걸 연구하라. 그걸  말했고, 또 교리사도 이제까지 어떤 교리가 있은지 그것이 원인이 되고 하나의  시발이 되어서 그 다음에는 어떤 교리가 나왔다, 그것을 쭉 인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그걸 연구해 가지고 현재는 이 교리들이 이러니까 앞으로는 어떤  교리가 인제 어떻게 나타날 것이다 하는 그것을 연구하도록 그렇게 하라. 그러면  교회라 하는 것은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교회의 원천이 어디 있는가? 그  교리에 있다는 것을 연구하라. 그러면 어떤 교리니까 어떤 교회가 돼졌다 하는  그것을 연구하라고 한 서너 가지를 기록해 보냈었습니다.

 그 뒤에 만났을 때에 말하기를 목사님이 기록해 보낸 대로 그대로 연구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어떻게 그러니까 어렵고 이렇게 해서 연구하기가 힘이 들고  이래서 아마 그렇게 한다고 하기는 했는데도 너무 힘이 들어서 잘 그렇게 뭐  충분한 연구를 못했다고 그렇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와서  서부교회 있으면서 한 삼 사 개월 있으면서 그런 것을 좀 간추려 정리를 하도록  해라' 그래서 인제 정리를 하고 그 다음에 교회를 맡아서 목회로 나갔습니다.

 목회는 그 실천 신학인데 자기가 책상 위에서 문서 신학만 하고 실천 신학을 안  하는 사람들은 마치 어떤 그 발명가가 논리 연구만 하고 실험 연구를 하지  안하면 그 사람은 파선하는 줄 모르게 탈선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논리 연구가  있는 동시에 그것을 실험연구에서 재수정을 해서 바른 데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논리 연구가 없이 실험 연구만 할라고 하는 사람은 개발을  못하고, 또 논리 연구만 하고 실험 연구가 없는 사람은 수정을 못해서 그 정확을  개발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요새는 이제 가르치는 것을 듣지 안합니다. 그러나 얼마  동안은 한 몇 해 동안은 늘 가르치는 것을 제가 오층에서 들었습니다. 듣고  있다가 혹 서로 의문되는 것은 그것은 말을 해서 서로 고치기도 하고 이렇게  했었는데 지금은 뭐 그럴 것이 없다 생각해서 별로 듣지를 않습니다. 이번에도  내가 한 시간도 듣지를 못했습니다. 이랬는데 지금 세계적으로 지식적으로  건전하게 광문 다학적으로 말하고 있는 그 면은 미국에 신학교가 많지만  웨스트민스트 신학교가 제일 지성적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령한 면이나 또 뭐 무슨 영적이라 그렇게는 좀 말하는 데에는 다 거기  속했지만 제일 먼저 첨단을 걷고 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 그런 거는  아니지만 거기에는 다 잡탱이가 들어와 있고 지금 카브넌트 신학교가 좀 제일  올바른 길을 걷고 있지 않느냐 제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사학을 공부할 때나 또 조직 신학을 공부 할  때나 성경 신학을 공부할 때나 그럴 때에는 다 그분들은 그래도 세계의 모든  흐름을 다 구경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니까 그 분들이 믿는 그  신앙을 소개하는 게 아니고 그 모든 일반 세계의 흐름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여러분들이 듣고 보고 내가 깨달은 거와 어떤이 그래 대조를 해서  내가 깨달은 거와 같으면 안심을 하고 또 내가 깨달음과 다를 때에는 그것을  연구 과제로 두고 그것을 연구할 것입니다. 연구해 가지고 자기가 이게 좋나  우리가 성경이 있기 때문에 아주 근본인 정확무오한 성경이 있으니까 성경보고  얼마든지 대조할 수 있으니까 대조해서 자기가 옳은 걸 찾도록 하고 만일 옳은  걸 찾지를 못할 때에는 또 자기의 그 선배에게 그것을 물어서 어짜든지 옳은 걸  찾아 가지고. 신앙이라 하는 것은 진실해야 됩니다. 진실이라고 하는 거는 어떤  것이 진실인가 하니 그 하나되어 있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실에  찾아 나아가려면 거룩을 가지라. 거룩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데 그  섞여 있는 가운데서 찾고 찾고 찾아 가지고 완전을 찾아서 완전에 도달됐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거룩이라고 말하고, 지금 찾는 모든 과정을 똑 잡아 떼 버리고  마지막에 결과만 말할 때에 진실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두 다 조그만한 이 한 자리에 앉아 가지고 온 세계가 지금 교리는  어떤 흐름으로서 이 교리가 내려왔는가? 교회들은 또 어떤 흐름으로 지금 어떤  상태로 어떤 종류로 흘러 내려 왔는가 그것을 우리에게 소개 해 주는 것이니까  그 책을 볼라면 많은 책을 봐야 될 때는 많은 책을 봐 가지고 간추려서 우리에게  교회의 역사를 말해 주고 또 깨달음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이 교리사입니다.

말해 주는 것이니까 이것을 자기가 대조해 가지고 거기서 확신을 가지는 것도  있고 의문을 가지는 것도 있고 이래 가지고 어쨌든지 마지막에 끝에 가서는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이거다. 이거는 이거다 하는 단정을 지우는 그것이 있어  가지고 자기가 주관 해석에서 깨달음에서 단정을 지우고, 또 성경대로의 단정을  지웁니다. 이 성경이다. 과연 성경이 이렇게 말해 놨다. 이래 단정을 지워서  나가지 안하면 신앙이 힘있게 자라 나가지를 못합니다.

 ○○○목사님이. 어떤 신학자 유력한 신학자인데. 그 신학자의 그 신학 서적을  보고 그 분이 책을 많이 읽기는 읽었는데 그 모든 책이 죽은 책이 다 그렇게  말했어. 그래 말해 가지고 그때 많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죽은 책이다. 그 분을  청해 가지고 강사로 모셨었는데 나중에 그 분이 강의를 안 나갔습니다. 그것  때문에 충돌이 돼서. 죽은 책이란 말은 무엇 때문에 죽은 책이라 하느냐 하면 이  사람은 이란다. 저 사람은 저란다. 모든 사람이 말한다는 그런 말만 자꾸 엮어  놓고 너는 어떻게 믿느냐, 나는 어떻게 믿는다는 그게 없기 때문에 그거는 죽은  책이다. 그거는 책을 주워 모아 놓은 책을 주워 모아 놓은 도서실은 되고 무슨  서재는 될지라도 그거 산 교훈은 아니다. 그거는 아무리 이 책은 들여다보면 이  책은 이래 말했고 저 책은 저래 말했는데 그 본인이 나는 이렇게 믿는다 하는  그것을 밝혀놓지 않했기 때문에 그거는 다 죽은 책이다, 죽은 신학이다 그렇게  말했어. 그 말이 옳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모두 그걸 소개해 주는 것이니까 세계 어느  시대에는 이렇게 교회들이 이런 흐름을 가졌고 어느 시대에는 그 교리들이  세계적으로 이렇게 했고 이 지역에는 이런 교리를 가졌고 저런 지역에는 저런  교리를 가졌고 교리와 교리가 서로 충돌이 됐었는데 그 때는 충돌돼 다 제  잘났고 제가 옳다고 말했지만 한 세대가 지나갈 때에 그게 어떻게 됐느냐 그걸  결과를 보면 아, 그게 맞았다. 저게 맞았다 하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에서도 서방 교회나 동방 교회가 그 때는 좀 잠간 그랬지만 나중에  보니까 그 결과적으로는 아무래도 서방 교회가 좀 더 건전하게 나갔다 이래  가지고. 역사는 그 사실을 증거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이렇게 소개해 주는 것이  교리사요 교회사요 또 조직 신학이, 이러니까 그걸 공부할 때에 여러분들이 이제  성경과 주의 피의 능력과 성령의 감화를 여러분들이 다 받았기 때문에 힘입어서  하나님이 내게 가르쳐 주신 독특한 이 깨달음을 내가 가지고 세계의 깨달음이  어떤가 이거 지금 한번 내가 널리 가 보지는 못하면서 그런 데서는 세계의 모든  것을 다 종합해 가지고 벌써 세계적으로 뭐 첫째 둘째 가는 그런  신학교들에게서는 모든 그 교재가 가르치는 그 재료가 넉넉히 있으니까 그런  것을 우리가 우리에게 간단하게 필요한 대로 소개해 주는 것이니까 그것을 들을  때에 대조를 해 가지고 옳다, 이거는 의문이다. 의문을 자꾸 두고는 안 됩니다.

의문하는 것은 어짜든지 그거는 뭐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고 또 죽기 전에 그  의문이라는 것은 없이 다 해결을 지워야 돼. 해결을 지워 가지고 확신을 다  가져서 그것이 거룩입니다. 자기가 혼자 안 되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 가지고  자기 선배들에게 물어 가지고라도 이래 가지고 나중에 아, 요거다 하는 그  여러분들이 확실히 믿어지는 그 확신이 옵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래 나가는  사람이라야 앞으로 신앙의 승리를 하지 그저 허리멍덩하게 그라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어떤 한 성구 가지고 요 순서가 이런데 하는 그런 순서 가지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그 순서는 여기에를 옳게 바로 말할 때 있고 저게 바로 말할  때 있고 그렇게 틀리게 말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부르심을 입고 빼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그 부르심보다도 재심을 입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나 기록하기는 부르심을 입고 빼심을 얻고 고 다음에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그렇게 말씀했소. 그렇기 때문에 그 순서를 그것을 한 군데만 보고  그래 하지말고 한 군데는 이렇게 순서했는데 한 군데는 저렇게 순서로 했으니까  이것도 성경이 틀린다 그렇게 생각지 말고 하나님이 전지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이 순서를 이걸 먼저 잡았고 저거는 순서를, 저게는 저 순서를 먼저  잡았고 순서가 다 일치 되어 있지 많다 하는 일치되어 있지 않다 하는 그것을  나중에 저는 모르고. 그러나 일치 안 된 좀 이거 무엇 때문인가 이라다가  마지막에 깨닫고 보면 일치되지 않는 그것이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또  일치되지 일도록 그렇게 해놓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무한하신 지혜가 무한하신 지혜가 우리에게 알도록 해 놓은  그 지식이기 때문에 심히 유한한 우리들이 그 지식을 당장에 다 파악을 할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그 말은 말씀대로 실행하면 말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말은 그 참 제자 된다 말은 예수님을 닮는다 그말이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화가 된다 그말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그라고 나면  자기가 실행하고 나서 그 실행한 진리를 새로 알게 됩니다. 자기가 변화된 데  따라서 알아진다 그거요. 그런 것이니까 자기가 되어 감에 따라서 아는 지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기가 자라지도 안하고 그것을 다 알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탐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경을 연구해야 됩니다. 자기가 깨달은 대로. 제일  건전한 연구는 뭐이냐 하면 성경을 읽으면 깨달은 대로 제일 껍데기가  깨달아지니까 껍데기 깨닫고 그대로 실행하면 또 나중에 변화되고, 또 변화되면  그만침 알맹이 깨닫고. 알맹이 깨닫고 또 실행하면 또 자기가 변화가 돼서 더  알맹이가 되어지고 자꾸 이래 가지고 자꾸 깨달아 나가고 자기가, 그러기 때문에  성경으로 내가 실랭하고. 실행으로 내가 변화되고, 변화됨으로 또 성경을  깨닫고, 또 깨달음으로 내가 실행하고, 실행함으로 내가 변화되고, 그러면  변화도 자꾸 변화가 돼서 무한히 자꾸 변화가 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고. 여기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그 주님을  사랑하는 거는 어떤 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고 하면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계명을  지키지 안하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지 안하는 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계명은 뭐이 계명인가? 신구약 성경말씀이 계명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은 뭘 가르치고 있는가? 신구약 성경 말씀은 간추리면 예수님의 대속을  가르치고 있고 대속으로 말미암아 영감을 가르치고 있고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리가 또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을 가르치고 있고 또 대속과  영감이 또 진리를 가르치고 있고. 이러니까 말하자면 계란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병아리가 먼저냐 닭이 먼저냐? 어느 게 먼저입니까? 어느 게 먼저입니까?  우리는 닭이라 하지만 그 세상에는 말이오 세상은 그게 뺑뺑 돌아가기 때문에  그닭이 먼저라. 닭이 어디서 나왔는데? 계란에서 나왔지. 계란은 어디서  나왔는데? 또 그 닭에서 나왔지. 이라기 때문에 쌩쌩 돌아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하나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 모든 깨달음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계명은 어떤 게 계명인고 하니 신구약 성경 말씀이 계명이요, 신구약  성경 말씀은 뭘 가르치고 있는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고 계명 지키는 것이 주님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 사랑하는 것이 계명  지키는 것이요, 계명 지키는 것이 주님 사랑하는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것이고 또 계명을 지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서 천 대까지  이르게 한다. 그 은혜를 베푼다 하는 그 은혜라는 것은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고  하니 공으로 주시는 걸 가리켜서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은혜라는 것은  값 없이 공으로 주는 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인데 요 은혜라는 데는 값 없이  주시는 것을 은혜라. 고 속에 들어가면 우리에게는 값을 낼 만한 우리가 댓가를  치를 만한 그런 가치성의 것을 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는 그 댓가를 치를 만한  것이 없는 우리를 그 초월한 우리에게 없는 그 고차원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는 그런 것을 아 안에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안에 들어가면 뭐이냐 하면  은혜 주신다 말은 네가 행동하는 것은 동에서 행동했는데 서의 것을 준다  그말입니다. 너와 전혀 관련 없는 것을 준다 그말입니다. 네 행동이 뭐이 돼  가지고 되는 그게 아니고, 네 행동이 돼 가지고 행동이 그것이 뭐 변화돼 된  것이 아니고 네 행동과 관계없는 것을 준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말한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천대까지 베푼다.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은혜라는 말은 그걸 기억하십시오. 은혜라 말은  우리에게는 댓가를 치를 만한 그런 뭐 우리가, 댓가를 치른다는 말은 우리의 것  가지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것으로는 할 수 없는 것 참  우리로서는 도저히 아무 것도 우리는 털끝 만한 것도 할 수 없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는 그런 뜻을 가리켜서 그 은혜를 베푼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안에는 뭘 말 한 거냐 하면 네가  한 그 행동을 진화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고 행동에 좀 보충을 시키고 행동을 좀  개량을 시켜 가지고 된 게 아니고 네 행동과 전혀 딴판의 네 행동과 딴거 너는  이 행동하니까 하나님은 이거 주셨다. 전연이 네 행동과 관련 없는 그 관련 없는  것을 나타내서 은혜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고, 또  은혜라는 것은 그것은 내가 상상도 하는 게 아니고 내 주관에는 아무 이해하지  못할 그런 나에게 아주 초월한 그런 고차원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런 것을  땅에서 은혜를 베푸신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것을  알고 내게 필요한 것을 구비해 주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내가 계명을 지킴으로 내가  지키는 그 행동을 통해 가지고 나를 통해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가리켜서  무어라고 말했느냐? 그것을 축복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걸 축복이라. 내가  하는 나를 통해서 무엇을 되는 그걸 하나님이 나를 통해 가지고 당신의 지극히  큰 능력으로 역사해 가지고 주시는 것을 축복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내가  볼 수 없는, 내가 그 분이 어디 계시는지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영원히 봐도 못  봅니다. 볼 수 없는 그분이 내 하는 일에 볼 수 있는 그 일을 해서 나에게  주셨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축복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기적이라 하는 것은 내가 볼 수 없는 그 분이 볼 수 없는 그 분이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당신이 혼자 해 놓으셨다. 그러면 축복이라 말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그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내가 하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할 수  있지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일을 해 주셨다 하는 내가 그 관련을 가져 가지고  있을 때 하는 것을 말해서 축복이라 그렇게 말하고. 기적이라 말은 내가 볼 수  없는 그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이 내게 볼 수 있는 것을 단독이 해  가지고 내게 주셨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기적이라 그렇게 구별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적이라 말은 하나님의 그 능력만이가 할  수 있는 그 일을 나에게 보이지 안하시면서 그 분이 나에게 볼 수 있는 그 모든  당신이 혼자하시는 그런 일을 해서 나에게 주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분은 내가  못 보지만 그 분이 해 놓은, 해서 나타난 그것이 내가 환하게 알 수 있도록  그렇게 나타내 주셨다, 나타난 것을 해 주셨다 그걸 가리켜 기적이라. 또  축복이라 그걸 좀 여러분들이 잘 구별하고,  그러면, 표적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표적이라 말은 실상이 속에 있는데 실상이  있는데 그 그림자와 같이 나타낸 것이라. 실상을 나타내고 있는 그 실상을 그  속에 볼 수 없는 그 알기 어려운 그 실상을 알기 쉽도록 나타내 보이는 그  흔적을 가리켜서 표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 표적이라 말은 그 표적의 효력은  그것으로 인해서, 이 표적의 실상은 뭐인가? 이 표적의 실상이 뭐인가? 그  표적은 인해서 실상을 찾아 가지고 실상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오병이어로 떡 먹고 난 다음에 찾아 왔을  때에 주님이 좀 탄식하신 것은 '너희들이 나를 찾아오는 것은 떡먹고 배부른  까닭이요 표적을 본 까닭은 아니다.' 오병이어로 그 오천여 명이 먹은 것은  그것은 그게 뭘 가리키고 있느냐, 그 속에 실상이 있는데 그 실상 그것은  너희들이 깨달을라고 생각하지 안하고 그걸랑 잡고 그거 얻을라고는 하지 안하고  껍데기 표적에 이용한 떡 먹고 배부른 그것만 가지고 찾아 왔기 때문에 그  표적이 너거에게는 효력이 없다 말이오. 그 표적을 나타낸 그 표적의 그것 먹고  배부른 그것만 너거에게 효력이 있었지 이 표적으로 속에 알맹이를 가리켜 주는  그 알맹이를 너희들이 하나도 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썩을 양식과 썩지  않을 양식으로 또 해석을 가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표적이라는 말과 기적이라는 말과. 기적이라는 말은 볼 수 없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볼 수 있는 일을 해 주셨다 하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고,  표적이라는 것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내가 볼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볼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내가 볼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나에게 알려 줄라고,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해서 볼 수 없는 그것을 내가  짐작하고 참고하고 연구하고 추론해 가지고 그것을 알 수 있도록 깨달을 수  있도록.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셨다. 그런 걸 가리켜서  표적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든지 또 표적을 베푸시든지 그거는 다  하나님 혼자만이 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축복은 우리를 통한 우리가 거기  참가해서 인적 요소가 참관한 것을 가리켜서 축복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러면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데에 그 가치적으로 평가를 한다고 하면 어떤 것을  높이 평가할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표적을 나타내 주셨다. 또 기적을  나타내 주셨다 그러면 그게 다 표적이라면 그 속에 알맹이 있는 건데,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데. 역사해 주시는 것 중에 가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가치 있는 것인가? 가치있는 것이 뭐인가? 우리의 영이 있고 마음이  있고 몸이 있고 행동이 있고 또 뭐입니까? 소유 있고 그라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순서로 말하면 가치적으로 무엇이 제일 가치  있습니까? 양성원 학생들 한번 대답해 보이소. 뭣이 제일 가치 있지요? 어제 그  나한테 질문한 일이 있었는데, 여러분들은 뭘 원합니까? 소유를 원합니까.

행동을 원합니까, 그 몸을 원합니까. 마음을 원합니까. 영을 원합니까, 뭘  원합니까? 뭣을 제일 가치로 삼아서 여러분들이 뭣을 제일 가치 있는 걸로  삼아서 허할 것입니까? 이 다섯 가지 중에 여러분들은 만일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면 다섯 가지 중에 어떤 것을 취하기를 원하겠습니까? 영이라고 말은 하지만  어제 내가 거기에 들을 때에는 그 소유를 말했습니다. 소유를 귀중하게 평가해서  이 소유하는 그게 가치 있는 것이지. 영이나 마음이나 몸이나 그거 있으면  행동은 그 다음 되는 것입니다. 영에 하나님 이 같이 하시면 그만 그 다음에  마음과 몸이 되어지는 것이고, 영과 마음에 같이 하시면 또 몸은 되어지는  것이고. 영과 마음과 몸에 같이 하시면 행동은 되어지는 것이고, 영과 마음과  몸과 행동에 같이 되어지면 그 소유는 저절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순서를 좀 바로 잡아서 그렇게 좀 생각하고 꺼꾸로 생각하는 그런 일 하면 안  된다 그거요.

 거기서는 서울의 어떤 파의 목사님은 자꾸 이렇게 해 가지고 뭣이 이래 가니까  기적이 나타나되 자기네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뭐이 나타난 그것을 많이 말하고  있다 이라기 때문에 제가 교역자회서 조금 염려한 것은 뭐냐? 이러면 땅의  복음되기 쉽다 그걸 내가 여러번 말했습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땅의 복음되기 쉽다. 그러면 그것은 암만 잘돼 봤자 없어지니 지상 천국이 됐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가하는 것을 땅의 복음과 하늘의 복음, 그 하늘의 복음은  물론 행동도 다 거기 속하고 다 거기 속했지만 그 가치의 평가의 순위를 그렇게  바로 정해서,  그러기에, 그 병 고치는 사람병, 그러니까 영병하는 말은 일반들이 이해를 못  하기 때문에 그 말 하면 영도 병들었으면 죄 짓는다 말 아닌가 그래 갖다가 들어  붙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해석을 많이 했습니다. 영병은 뭐이냐 하면  영병이 무능성, 그 무능성은 어떤 게 무능성인가? 영이 자기 마음과 자기 몸을  자유 자재로, 주님은 주님의 마음과 몸을 주님의 영이 통치했습니다. 통치해서  그 세포 하나도 영에게 거역한 것이 없고 영에게 대해서 불만한 것이 없었고  심신의 기능이 영을 만족했지만 우리는 그 심신의 기능이 영을 반대해서  매장시키고 영은 매장을 당하고 있지 영이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통치하고  지배할 그런 권리가 없기 때문에 지금 영의 무능성을 자꾸 성장시켜 가지고 그  영이 자기의 마음과 자기의 몸의 기능을 통치해서 아무리 죽을 때라도 이렇게 가  끌고 가면 갈 수 있도록 그렇게 그 영이 강건한 영이 돼야 된다.

 또, 그 마음의 병은 고쳐야 되는데 마음 치료는 뭐인가? 마음 치료는 그  성령으로 더불어 함께 하는 그 자기 중생된 영에게 복종하고 영에게 소망 두고  영에게만 소속한 그 마음이 돼야 된다. 위로는 이 마음이 돼야된다. 그래 가지고  자기 밑으로는 그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에게 증거한다는 그 성령과  자기 중생된 영에게 소속해서 통치받고 그를 좋아하고 그와 하나 돼 가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몸을 다스려야 된다. 몸의 기능을 다스려야 된다.

 그러니까 그 영의 병도 두 가지, 마음의 병도 두 가지, 몸의 병도 두 가지.

뭐이 두 가지라? 영의 병 두 가지는 하나는 그 영이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게  영의 영인데 그 병은 중생될 때에 우리가 고침 받았습니다. 중생 될 때 고침  받았어. 그러나 하나 병은 뭐이냐 하면 자기 심신의 주격 위치에서 그것을  통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거 병을 지금 고칠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의 병이 둘인데 우리는 하나는 중생될 때에 치료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영의 병  치료할라 하는 것은 몇 가지 치료할라 합니까? 영의 병 치료 몇 가지? 하나.

 또, 마음의 병 치료는 지금 몇 가지 치료 지금 받을라 하고 있습니까? 이래 두  가지. 하나 병은 뭐이냐 하면 성령하고 우리 중생된 영하고 함께 동행하는데 이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에게 와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주는데 이 마음이 거기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 마음이 악령과 악성에게  복종하지 이 마음이 성령과 중생된 영에게 복종하지 않고 이라는 게 이게 병이라  그말이오. 이 마음 병, 이 마음 병, 또 한 가지 병 더 있는 게 뭐이냐 하면 이  마음이 그렇기 때문에 제 몸뚱이를 지배하지 못한다 말이오. 제 몸뚱이를. 자기  몸을 그 마음이 그 몸을 지배하지 못하고 마음에는 양심에는 이리 해야 되겠다  하는데 그 몸뚱이는 저 하고 싶은 대로 제 뻐드러져 나가도 그래 못 가구로  잡지를 못하고 통치하지 못하고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마음의 병이라  그말이오.

 또, 몸의 병은 몇 가지입니까? 몸의 병은 몇 가지? 몸의 병도 두 가지라. 몸의  병도 두 가지, 두 가지 뭐인데? 하나는 성령과 중생된 영과 마음과 하나 된 그  마음에게 이 몸뚱이가 지배를 받지 안하고 순종하지 안하기 때문에 고전 뭐이냐  하면 요 몸의 병이라 말이오. 그게 한 가지 병, 또 한 가지 병온 뭐입니까? 이  몸뚱이가 자기 환경이나 주위나 모든 이 사물이 있는 데 제가 거기에 자유해야  될 터인데 환경이 암만 그래도 죽음 앞에서도 이 몸뚱이가 자유해야 되는데 이  몸이 죽음 앞에서도 마음에게 순종해야 될 터인데 마음에게 신앙 양심에게  순종을 안 한다 그거야. 이러니까 이 한 가지 병은 옳고 참된 신앙 양심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한 가지 병이요, 또 자기 몸밖에 있는 모든  사물들에게 그 영과 신앙 양심에게 복종하는 그 마음이 거기서 자유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 모든 자기 밖에 있는 인간이나 물건에게 대해서 위에 자기  마음이 자기에게 지도하고 명령하는 그 명령을 모든 물건과 인간과 모든 자기  환경 자기 현실에게 그대로 실행을 하지 못한다 말이오. 그것을 다스리지를  못한다 말이오. 그러면 현실을 다스리지 못해. 현실을 지배하지 못하고 현실에게  피동된다 말이오. 현실에게. 그 사람에게 피동되고 권세에게 피동되고 모든  만물에게 피동되기 때문에 이제 병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 병을 우리가 고칠라고  애를 쓰는 것인데,  그러면, 우리가 그 위에서부터 쭉 내려오면서 영의 병이 고쳐지면 마음의 병이  고쳐지고 마음의 병이 고쳐지면 몸의 병이 고쳐지고 몸의 병이 고쳐지면 그  사람에게 접촉했던 모든 사물은 다 영생으로 살아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이것을 지금 노리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표적이나  기적이나 나타나는 것은 뭐이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잘해줘서 부자가  되고 무슨 사업이 잘되고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노리는 게 아니고 그것보다  그것보다 그 몸의 병이 고쳐져서 아래 위에 바로 되고, 그것보다 마음의 아래  위가 바로 되고. 그것보다 영이 위에는 바로 됐지만 밑에가 바로 못 됐기 때문에  이 바로 되기를 원하고 쓰는 것이 우리들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표적을 원하나, 그 표적을 원하나 표적이 그 하나님의 기적이라  말 한가지인데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해서 내가 할 수  없는 역사를 하나님이 해 주시는데 하나님이 그 기적을 나에게 나타내시고 기적,  기적을 나타내는데 그 기적 중에는 우리가 제일 원하는 기적이 첫째가 뭐이라야  됩니까? 무슨 기적을 원해야 됩니까? 영의 기적, 다음에는 마음의 기적,  다음에는 몸의 기적, 다음에는 행위의 기적. 다음에는 소유의 기적, 이렇게 이  순위로 나가서 하지 안하면 자꾸 마귀는 끌고 자꾸 세상으로 나가기 때문에  잘못하면 나중에 가서 세상에 있는 그런 것만 자꾸 동경하고 하기 때문에 그거  땅에 있는 복음이다 그래 걱정을 한다 말이오. 그거 땅에 있는 복음이라 이래서  내가, 어떤 그 사람들이, 그 교역자회 때에도 이러면 우리가 땅의 복음이 된다.

이러면 지상 천국주의가 마지막에 되게 된다. 이라다가 나가면 나중에 가서는  위에 가르치는 데서 그리되면 저 끄트머리 그 말단에 가 가지고는 뭐이 되면  기독교 유물주의가 되고 만다, 기독교 세상주의가 되고 만다 그래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했다 말이오.

 그 여러분들이 잘 깨달아서 이 배우는 기회에 이 기회를 놓지 말고 잘 배워서  이런 거 한 마디씩만 이렇게 배워서 해도 여러분들이 일 년 공부 다른 것 짜다라  하는 것보다도 그 보배입니다. 이런 게 하나씩 배워서 깨달으면 돼지만, 못  깨달으면 탈선돼 나가기 때문에. 이제까지 그 수천 년 내려오면서 그 모든 영의  문제라든지 이 사람이 그 인론에 대해서 인론에 대해서 신론 인론을 공부하는데  지금까지 이 세계에 인론에 대한 그 교리가 나왔으나 인론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그 인론에 없다 말이오. 인론에 없고 이제까지는 다 그 밖에서  말했는데 그런 거 하나만 배워도 여러분들이 족하다 그거요. 너무 그 욕심을  가지고 헛되게 말하면 안돼. 지금 삐뚤어져 가지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몰라.

 이러니까, 성경은 이번에는 신약 성경을. 일 주일 동안에 신약 성경을 그  통신과를 다할라 하면 여러분들이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잘해서 어짜든지 시키는 대로 공부를 잘하면 앞으로 실력 있는 목회자가  될 것입니다. 제가 그전에 연경과라 하는 것을 두고 여기에 ○○○목사 뭐  ○○○목사 다 이렇게 모두 ○○○ 목사 이 모두 ○○목사 전부 다 연경과에다가  입학을 시켜 가지고 연경을 했는데 연경과 일 학년 하고 일 학년 하고 이 학년  하다가 말았습니다. 왜? 일 학년하고 나니까 이 학년하니까 뭐 설교 잘하고 그만  교만해서 자꾸 지식적으로만 나가 버리고 실행이 없으니까 사람은 안 따라  나가고 지식만 나가니까 교만해져 버리고 말아. 그래 너거가 이렇기 때문에 더  가르치지 못하겠다. 여기서 중단해라. 그라고 그때 연경과를 그대로 중단을 시켜  버렸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제도 여러 가지 종류를 내가 서너 가지 종류를 말했는데 잘  연구해서 어짜든지 자기가 그만 기독교는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은 뭐이냐 하면  인정하고 실행하는 거라. 인정하고 실행하는 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것도 여러분들이 연구할라면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인데 우리를 무한히  탁월하신 분인데 그 분과 우리와의 관계는 딴거는 가질 수가 없어 그 분을  인정하고 그 분을 따라 움직이는 거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뭐 있겠소? 딴  방법이 있겠소? 딴 방법이 있을 수가 없어.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데는 주시는  방법이 그 방법 외에는 딴 방법은 있을 수가 없는 거라.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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