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설교

 

1984. 9. 26. 수새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11절∼13절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어제 아침에 시편 91편 l4절의 말씀을 증거했는데 계속 증거하기로 했는데,  계속 증거하려고 했는데 지금 이 말씀을 낭독하고 증거하는 것이 역연 그 말씀에  대해서 계속 증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연관성 있는 것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하는 그 말씀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망령 부리다가,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셔서 그렇게 형통하고 참 존영했었는데 망령을 부리다가 그렇게  아주 학살에 이르게 됐던 것입니다. 그런 것도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형통케 해 주시고 좀 잘해 주시면 그것 가지고서 주님을 더  영화롭게 기쁘시게 해야 될 터인데 조금만 뭘 잘해 주면 그만 교만해 가지고서  망령을 부립니다.

 목회자도 한 시간만 은혜 있는 설교하게 되면 그만 교만해 가지고서 망령을  부리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또 죽을 쑤야만 하는 것입니다. 부흥사로 다니는  사람이 한 집회를 은혜롭게 인도하도록 제가 죽자 살자 하고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무지 무능한 것인 것을 깨닫고 간구할 때에 하나님이 은혜로운 인도를 한  집회에 이루도록 이렇게 해 놓으면 그만 그 사람이 교만해 가지고 그다음부터는  망령을 부립니다. 제가 한 것처럼, 제가 그렇게 한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할 수 없어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은혜를 베풀지 안한다는  것은 문제는 문제지마는 부득이 그래도 그 사람 하나가 더 중하기 때문에 그  사람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중단시켜 버립니다. 중단시키니까  그 집회에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이나 죽을 쓰게 만듭니다. 그라면 그때 죽자  살자하고 자기가 깨닫고 회개를 하면은 또 하나님께서 은혜를 그대로 복구시켜  가지고서 베푸십니다.

 그러면 사람이 집회, 한 집회는 은혜 있고 한 집회는 은혜 없고 이러다가  나중에는 그것이 교만이 차차 차차 없어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기가 실상  참 말로가 아니고 실상 방해를 했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제가 들어서 뭐  도움되는 일은 만의 일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열을 주면은 거기서  제가 잘못해 가지고서 모두 홀려 버리고 참 십의 일 주는 사람, 십의 이 주는  사람, 그저 뭐 십의 십을 다 전달해 주는 사람은 참 없다고 그렇게 봐야 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한 집회에 한 시간 죽쑤게 하고 그다음에는  또 그게 안 그러면은 두 집회만에 한 시간 죽쑤게 하고 또 그라다가 또 제가  스스로 된 줄 알고 교만해서 망령을 부리면은 그다음에는 한 집회 실패를 하게  되고 이런데, 이것을 깨닫고 차차 차차 조심해서 하나님 이 은혜를 주셔  가지고서 잘 되었을 때에 그때에 교만하지 안하고 망령되지 안하고 조심을 하게  되면 어찌 되느냐?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제는 집회마다 실수가 없이 자꾸 은혜를  베풀도록 그렇게 권위 있는 집회를 인도 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그러기에, 그저  집회 할 때마다 은혜 있다면 그 사람은 많은 회개를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하는 줄로 이렇게 알고, -하나님  앞에 집회를 인도한다고 하면은 그거는 제일 우리 생활 중에 최고적인 생활이기  때문에 그 생활에서. 그 생활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딴 생활이겠느냐 하는 그것을  지금 말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하는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은혜가 안 되니 은혜 안 되면 회개를 할 요량일랑 하지 안하고,  스스로 섰다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만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계속 그  사람을 통해 가지고 은혜를 베풀다가는 그 사람을 아무짝도 못 쓰는 사람 만들  터이니까 하나님께서 그 대중에게 큰 손해지마는 그 사람 위해서 은혜를  중단한다 그 말이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제가 하는 줄로 아는 사람은 제가 그때는 은혜가  있지마는 지금은 은혜가 없으니까 '그때는 내가 주먹을 이래 내니까 은혜가  있었는데 지금 주먹을 안 내 그런가 보다. 그러면, 주먹을 이래 낼까?' 설교  연습한다는 것이 월요일부터 다음 주일날 설교할 것을 제 마음대로 하나 선택해  놓고서, 자, 이라는데는 요 때에는 역사의 어떤 한 페이지를 하나 척 얘기하면은  그때 '아, 저 사람이 모든 이 시국도 잘 아는 박사로구나' 또 그 사람이 어떤  철학자의 한 말 한 마디 척 내 쓰면서 주먹을 두르면 '아이구! 저 사람이 참  지식이 아주 박식이로구나' 또 어떤 사람이 이런 이 사실. 실질적인 생활면에  있어서 또 이런 걸 떡 한번 떡 말하고 이러면. '요거는 요때는 요거 끼우고  저기에는 조거 끼우고' 짝 조작 배기로 다 만듭니다. 다 만들어. 조작배기로 딱  만들어 가지고서 그러면 손을 몇 번 때려. 손은 강단을 두 번 때려야 되느냐 세  번 때려야 되느냐, 또 주먹을 이래 내야 되느냐 저래 내야 되느냐 요걸 딱  조직해 가지고서 자꾸 그래 하니까, 그 은혜가 삭아지기 전에는 고걸로 가지고  하니까 좀 가리워지기는 가리워지지마는 하니까 자꾸 그 사람이 그리 힘씁니다.

그리 힘쓰니까 이제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그만 같이 하지 안하고 은혜를 끊어  버립니다.

 은혜 끊어 버렸는데. 다른 사람이 소문 듣고 은혜 있다고 강사로 청하기는  청했는데 하나님과 연결 줄이 끊어져 놨으니 이제 낭파라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는 그 사람이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모든 책을 다 뒤져 보고 이래 가지고서  하다가 나중에 '옛날 어찌, 옛날 그때 내가 강단에 막 뛰고 굴리니까 잘되던  가보다' 이러니까, 이제는 과거에 하던 형식은 다 외부의 형식은 다 갖추고  인간의 하는 말이나 모든 그런 논리나 지식은 다 구비시키고 하나님의 능력만  없게 되다 보니까 그 사람이 나중에 가서는 하나의 배우와 같이 돼 버리고  맙니다. 배우와 같이 돼 버립니다. 배우. 배우는 사실이 아닌 것을 제가 그렇게  나타내는 것 아닙니까? 백지 죽을 일도 아니면서 막 죽는 시늉하고 울음도 안  나오는 거 눈물을 흘리고, 그러니까 배우들은 속에 산 눈물이 아니고 죽은 눈물,  제가 눈물 흘리고자 하면은 하루 열 번이라도 눈물 흘립니다. 그게 돼야 배우가  돼. 배우가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제가 눈물 흘리고자 하면은 눈물 흘리고  그거는 속눈물 참 눈물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것 모양으로 설교자도 나중에는 하나님은 같이 하지 안하는데 제가 그 연습을  해 가지고 배우가 되니까, 떡 보면 '아, 저 사람 저 부흥사 지금 버렸다.' 눈  있는 사람 귀가 있는 사람이 보면 대번에 안다 그 말이오. '저 사람이 그만  완전히 버려져서 이제 외식자, 그만 배우가 돼 버렸네.' 그러니까 그때 뛰던 거,  그때 뛰던 놀음 그대로 뛰고 그때 고함지르던 그대로 지르고 손 낼 때 같이 내고  또 이럴 때 같이 하고 이라지마는 완전히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지  안하고 저 혼자 하는 것을 환하게 볼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런 것도,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그 은혜가 어떻게 해서  온 은혜며 또 제가 어떨 때 그 은혜가 왔는가? 이것을 생각하고서 겸손해지지  못하면 결국은 그 사람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부흥사도 망하고 마는데 하물며  평신도로서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받고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뭐 어떨 때 은혜가 왔으며 내가 내 정신이 어떨 때 은혜가  왔던가, 내 말이 어떨 때 은혜가 왔던가? 내 행동이 어떨 때 은혜가 왔던가,  내가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할 때에 은혜가 왔던가,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할 때 은혜가 왔던가. 사건을 만날 때 어떻게 할 때에 은혜가 왔던가 고걸 잊어  버려 버리고 그만 제가 한 줄로 이렇게 알면은 그 사람 넘어집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러면 스스로 섰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넘어진다 그 말이오. 조심하라 그 말은 안 넘어진다 그 말이오.

스스로 섰다고 하는 그 사람은 반드시 넘어지니까 네가 넘어지기 전에 어서  회개를 해서 넘어지지 않도록 하라 그 말이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모든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만 무조건 아버지라 했습니다. 무조건 아버지라고 했어. 이스라엘 백성 그때에  요셉이가 총리대신이 되고 뭐 요셉이가 아주 그때 참 정권을 가지고 이랄 때에  이스라엘 백성 이라면 그들이 다, 요새 이북에서 뭐라 하나? 아버지라 한다 하나  어버이라 한다 하나? 예? 뭐라고 말해? 예? 어버이가? 어버이면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한데 합한 건가? 그래. 어버이라고 말이지. 김일성이를 어버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때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어버이라고 그래 했습니다. 그렇게 존대했어. 존대한 그것은 어떻게 그 존대가  왔더냐? 요셉이가 그런 애로와 궁지와 그런 모든 어려움을 당해도 변하지 안하고  참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충성하고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요셉이 하나 보고서  그와 같이 했다 말이오. 요셉이 하나 보고서 그와 같이 해 주었는데,  그들이 처음에 가 가지고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한다 하면 애굽 사람들은 상놈이라고 한자리에 앉아서 음식도 안 먹고 한자리에  앉지를 아니하는 그런 천업입니다. 여기서는 요새 천업이 없어. 참 옛날은  천업이 뭐라 하느냐? 백정, 소 잡는 거 아주 천업이요, 또 여기에 챙이나 만들어  가지고 다니는 그거는 천업이기 때문에 그거는 참 이익이 많습니다. 애굽에서는  아주 목장 한다면 하면 천업인데, 가 가지고서 말하기를 처음에 애굽에 척  들어갔을 때에는 바로 왕이 청해서 갔는데 '무슨 업을 하고 있느냐' 이러니까  '예, 저희는 목축업을 하고 있습니다.' 선조 때부터 내나 하나님 정해 준 그  업을 그대로 자랑을 했습니다. 자랑을 하고 그때 하나님을 높이고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가 그렇게 존귀해졌어.

 존귀해지고 나니까 저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은 차차 멀어지고 저거만  나타내고. 제가 뭐 제 솜씨 있고 제가 언변 좋고 제가 잘나고 지혜 있고 저거  민족이 뭐 어때서 그런 줄로 이렇게 아니까 하나님이 차차 차차 손을 떼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어디까지 이르렀더냐? 애굽 사람들이 멸시를 하고 멸시를  하니까 나서 가지고 '아, 애굽 사람들이 우리가 이라니까 이것을 멸시하니  이것을 이렇게 막아야 되겠고 이렇게 교제를 해야 되겠고 이렇게 선물을 해야  되겠고 이렇게 친근해야 되겠고' 하나님하고 친할 줄 모르고 자꾸 애굽  백성들하고 어떻게 해 가지고 해결을 지울려고 이라니까 점점 그럴수록 천대가  돼 버렸습니다. 천대가 돼져서 마지막에는 '남자라 하는 거는 하나도 살려 두지  말고 전부 몰살을 시켜라' 이래 가지고 나고 난 다음에는, 어린 것도 다 죽일 뿐  아니라 갓 낳을 때 그만 머슴아들은 전부 산파들더러 '아예 낭시라도 주물러  가지고 그만 죽여 버리라' 다 그랬다 말이오. 만일 죽이지 안할라 하거들랑 다  나일 강물에 갖다 던져 버리라 이래서 다 몰살을 시키는 그런 지금 경우가  있었다 그거요.

 그렇게 모두 다 존대를 했는데, 그만 점점 그래 가지고 그들이 세상 애굽  사람하고 이렇게 저거가 잘하고 저거가 뭐 '야 이럴 때는 저거가 우리를 멸시를  하니까 멸시할 때는 우리가 멸시당할 게 아니라 주먹을 내야 된다.' 멸시 할  때는 멸시를 안 당하려고 또 좀 대항을 하고 또 이것을 살살 달개서 뭐 교제하면  될 줄로 그래 알고 자꾸 인본주의를 썼다 말이오. 쓰니까 마지막에는 남자는  몰살을 시키기로 해 버렸어. 그러면 남자 몰살 시키고 여자만 두면 종자는  끊어지는 거 아닙니까? 여자는 저거들이 데리고 살고 남자는 전멸하기로 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때에 또 그들이 부르짖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죽는다고  이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애굽에서 해방을 시켜 주는 것인데 이 비밀을  모른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은혜가 오는가. 어떻게 해서 믿는  사람이 형통해지고 성공을 하는가 하는 그 비결을 모른다 말이오. 믿는 사람의  성공은 순전히 하나님으로만 되는 것이지, 하나님으로만 된다 말은 방편은  진리요,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은 하나님의 그  방편대로 해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방편대로 하지 안 하면 안 돼. 그러니까,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방편을 쓰는 것이고, 성경 말씀대로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해 주시기를 믿음으로 바라고 의지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실지로 와 가치고 역사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애굽 사람들은 망령을 부리다가 안 됐다 그 말이오.

 그런데, 여러분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이 천대를 하니까 천대하니  이 천대를 면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자꾸 저거 인본주의 행동을 할수록이 점점  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언제 비유에 대해서 한번 내가 말했는데, 제자들이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할 때에 그때에 어떻게 하니까 풍랑이 일어났어요? 예? 노를  젓고 옛날 방편 그 방편을 자꾸 쓸수록이 풍랑은 더 일어났고 오만 방편을 다  쓰고 힘을 쓸수록이 배는 꼼짝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랬지요? 내나 같은  진리라 그 말이오.

 그런고로, 어쨌든지 그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택자는 벌써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어떻게 해야 오느냐?  바울이 말하기를 자기에게 가시가 없어지기를. 고난이 없어지기를 원했는데  하나님이 떡 말씀하시기를. 세 번 기도하니까 마지막에는 들어 주시지 안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주신 은혜가 족하니라 내 능력은' '내 능력은' 어디서  이루어진다 했습니까? '약한 데에서 이루어진다.' 네가 이 약함을 인해서  하나님에게 부르짖을 그때에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데에 하나님이 와 가지고 대신해 주시고, 자기가 죄인된  것을 깨닫고, 죄인된 것을 깨닫고 죄인으로 나타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의를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는 참 무능자요 재를 저지는 줄 아는 자가 될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능력으로 같이 해 주시고 그로 하여금 실수하지 안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해 주시는 하나님이라 그 말이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거울이 된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서 애굽에게 존대를 받았고, 어떻게 해서 천대를 받았고, 또 천대를 받을 때에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긍휼이 그들에게 가 가지고서 열 가지 재앙이나 내려  가지고서 구원을 하셨고. 또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당해서 인간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어떻게 하니까 그 어려움이 해결이 되던가, 홍해가  앞을 막았을 때에 어떻게 하니까 홍해가 갈라졌으며 또 라마에 가 가지고서 물이  써서 다 먹고 죽을 때에 어떻게 하니까 그 물이 단물이 됐던가, 므리바에 가  가지고서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게 됐을 때에 그들이 어떻게 하니까 물이  나왔던가, 모든 아말렉 족속과 모든 족속들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 가지고 칠라고  할 때에 그들이 어떻게 하니까 승리하게 됐던가? 그때가, 하나님만이 자기들을  도울 수 있는 분이신 줄 알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에게만 모든 걸 다 맡겨 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당신의 뜻대로만 순종하는 고거,  하나님으로 저희들의 전부를 삼았을 때에 그들은 다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 하시니까 땅에 이런 저런 문제가 없었더라 그거요.

 이것이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그들이 그래 한 거와 같이 우리도 그들이 망할  행동 하면 망하고 그들이 흥할 행동 하면 흥하고,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행동하면 우리도 하나님 은혜를 받고, 또  그들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할 수 있는 그 행동을 하면은 우리도 버림당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행동하면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긍휼을 입히신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게 긍휼 입을수 있는 행동하면 우리도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것이고 하니까 그들이나 우리나 꼭 같다 그 말이오.

 '그들의 당한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 그들을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다 말이오. '아 그들을 보니까 내 행동 요거는 하나님에게 버림받을 행동이다,  요 행동은 이제 멸시와 천대받을 행동이다, 요 행동은 학살을 당하고 박해를  받아야 될 행동이다, 요 행동은 주님의 긍휼을 입을 행동이다, 요 행동은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셔 가지고서 여러가지 권능을 나타내가지고 기어코라도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는, 구출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이다.'  이스라엘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가 복 받을 수 있는  행동하면 복 받고 망할 행동하면 망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거울이라'  이런 것을 우리에게 거울로 주셨다 그 말이오.

 '당한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말세는, 말세라 말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세 토막으로  나누면은 처음에 노아 이전에 한 토막이요, 예수님의 초림까지에 한 토막이요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한 토막인데, 마지막 토막은 그거는 신약  시대인데 그것을 가리켜서 마지막 토막이라 말세라 그럽니다.

 이러기 때문에, 첫 동가리도 중하지마는 첫 동가리보다 둘째 동가리가 중하고  둘째 동가리보다 셋째 마지막 동가리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러니까, 탑을 쌓을  때에 이런 데는 탑이 없지마는 일본 가면은 탑 쌓아 놓은 것이 많이 있어요.

있는데, 그 탑을 쌓는데 아주 공사를 많이 합니다. 위에 탑 꼭지를 달아 놨어요.

탑 꼭지를 달아 놨는데, 내가 몇 사람에게 물었소. '저 위에 저기에 뭐이냐?'  '그게 보석이라 또 어떤 탑은 정금이라' '그러면 저기에 값이 어찌 되느냐?'  '그것이 이 탑을 다 쌓은 그 공사비보다 저 위에 마지막에 꼭대기에 해 놓은  저것이 가격이 훨씬 비싸다' 그래 말해요. '훨씬 비싸다.'  이래서, 처음에는 그 탑 선 꼭대기를 떼어 갈라고 사람들이 거석해 가지고 이래  하다가 떨어져 죽기도 하고 이래도, 그 나라에는 섬나라이기 때문에 고만 죄를  지어도 딴 데로 도피할 데가 없어요. 도피할 때가 없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은  단합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남해 사람들이 단합이 잘돼요. 남해 사람들이  단합이 잘됩니다. 왜? 오래 동안 나오면서 섬 안에서 바다가 있어 딴 데로 못  가니까, 남해에는 사립문이 없이요. 삽짝문 대문이 없어. 대문 할 필요가 없어.

거기는 도적이 없기 때문에, 제주도는 더 그래요, 제주도는. 왜? 거기는 섬이기  때문에 딴 데 도피할 곳이 없이 오래 동안 나왔기 때문에 그래 길러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말세라고 말하는 것은 신약 시대인데 신약 시대가 제일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한 거, 히브리서 11장 끝 절에 보면 말하기를 '이렇게 생명을 내놓고  신앙생활 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마는, 많이 있지마는 우리가 아니면' 이 신약  교회가 아니면 그들은 성공하지 못한다. 신약 교회가, '우리가 아니면 저희들은  온전함을 이루지 못한다.'  이래서, 신약 교회가 탑을 쌓는 걸로 말하면 마지막에 꼭대기 제일 값비싼 탑과  같은 이런 것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도 제일 많고 또  경험도 제일 많고 또 하나님의 온갖 은혜가 제일 많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세에 너희들에게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물 붓듯 부어 준다. 이랬어.

과거에는 그런 일이 없었어.

 이러니까, 이 말세가 제일 어려운데, 말세에 참 신앙생활 하기도 제일 어렵고,  미혹도 최고로 강하고, 또 박해도 최고로 강하고, 신앙생활 하기도 최고로  어렵고. 하나님이 신앙생활하는 능력을 주시는데 최고로 주시고 이런 중요한  시기인데, 이 중요한 시기에 구약 시대에 된 그 모든 일을 다 거울삼아  가지고서. 그때와 우리와 같기 때문에 그때 일을 거울삼아 가지고 '그때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실패했다. 보자, 구약 시대에 어떻게 실패했느냐? 요래서  실패했다. 아, 그러면 나는 그러면 요렇게 하면 실패를 면하겠다. 구약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느냐? 요렇게 입었다. 아, 나도  요렇게 하면 입겠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거울로 주셨다, 거울로 주셔  가지고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한 것이라.' 거울로 주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그것을 기록해 가지고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런데, 섰다 말은  목회자가 목회 성공하는 것이 선 것이요, 구역장이 구역장 성공한 것이 선  것이요 또 자기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써 총리대신 한 그 다니엘과  같이 요셉같이 그것을 잘 성공한 사람은, 그것을 잘 해서 참 승리 성공한 사람은  그것이 선 사람이요. 또 사업가가 사업에 성공한 것이 선 사람이요 사장이 사장  성공한 것이 선 사람이요, 또 시집 가 가지고서 현모 현처로 이렇게 좋은 현모  현처가 돼서 가정에 아주 기념될 만한 그런 주부가 됐으면 그 사람은 선 것이요.

모두 다, 섰다 말은 성공이라 그 말이오. 섰다 말은 성공이라 그 말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선 줄로' 제가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그 말입니다.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러면, 반드시 제가 제  힘으로 섰다고 생각하면 넘어지게 된다.

 그러면 안 넘어지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안 넘어집니까? 자기의 무지 무능을  알고 순전히 옳고 바르게 한 것은 주님이 하신 줄을 아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또 주님의 긍휼은 어떨 때 옵니까? 자기는 이렇고.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진정 자기의 못 할 거, 무지 무능이요 또 거짓되고 다 약하고 이래서,  자기에게는 그것을, 옳은 것을 이룰 만한 그런 재료나 실력이나 그런 인품이  아무것도 없는, 자기에게 병든 거 잘못된 거 실패 시키는 거 나쁜 거 그것을  낱낱이 알고 '나는 요런 자이니 나는 안 됩니다. 나는 요런 자이니까 당신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됩니다.' 자기를 죄인인 줄 아는 사람에게 의인되는 권세를  주시고. 자기는 실패할 자인 줄 아는 자에게 하나님이 성공을 주시고, 자기는  이제 교만한 자인 줄 아는 자에게 하나님이 겸손을 주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얻는 것은, 하나님 앞에 얻는 것은 잘난 사람이  얻습니까? 못난 사람이 얻습니까? 대답해 봐요. 못난 사람이 얻지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는 강한 사람이 얻습니까? 약한 사람이 얻습니까? 약한 사람이 더  많이 얻습니까? 죽은 사람이 더 많이 얻습니까? 예? 죽은 사람이 제일 많이  얻어. 죽은 사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잘난 것보다 못난 것이 낫고.

못난 것보다 아주 죽은 자가 더 좋습니다. 제일 좋소. 죽은 자가. 우리는 있기는  있는데 완전히 죽은 자인 줄 알고 그럴 때에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는  그런 역사가 와 가지고서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죽은 자를 붙들고 산 일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넘어질까 조심하라'  요 l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어려움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해야 되지 허락 안 하면 안 됩니다. 마귀가  지금 예수님이 승리했기 때문에, 승리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반항을 못 합니다.

예수님의 종이 됐습니다. 부리는 종이 됐소. 마귀는 예수님의 부리는 종이 됐기  때문에 예수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지 달리는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공심판 앞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게 아니고 공심판에서 완전히 구출해  가지고서 영생을 가진 자로 사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장에 두시고 마귀를  시켜 '네가 시험해 봐라 요 사람은 요래 시험해라 저 사람은 저래 시험해라' 그  시험할 정도와 종류와 방편을 딱 가르쳐 놓고서 고대로 해야지 하나도 어기지  못합니다. 어기면 사형이오. 어기지를 못해 지금 인제. 옛날은 어기고 마귀가  됐지마는 지금은 어기면 그만 당장 유황불 구렁텅이기 때문에 어기지를 못한다  그 말이오.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요 말씀을 믿어야 됩니다.

'허락지 아니하시고' 주님이 마귀에게와 모든 것에 대해서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요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허락지 안하고' 당신이 허락 안 하면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모든 일을, 우리는 그거보다도 더 앞서 가 버렸어. 이렇게  말씀했는데 우리에게는. '모든 현실을 당하는 모든 현실은 다 주님이 만들어  주신다' 여러분들이 현실을 당하는 모든 현실은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면  안 온다 이랬는데 우리는 그 성경 가운데서 더 깊이 빼 가지고서 우리는 '우리  현실은 전부 주님이 다 만들어 주신, 혼자 주권적으로 만들어 주셨다' 요렇게  배워 놨으니까 그 이상 더 파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걸 알면  자기네들이 그렇게 망령을 부리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만들어 주셨는데. 그  현실은 주님이 혼자 만드셨다. 만드셨는데, 그 현실은 우리 구원에는 없으면 안  될 그런 현실들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 현실은  자기에게 보배로운 현실이기 때문에 어떤 현실이 당하든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렇게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지 안했습니까? 이런데 너무 신앙생활 안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그만 초월해서 너무 그 거리가 멀어 놓으니까  안 되는 것 같애.

 내가 어데서 전화를 받았는데 '아, 이 교역자를 바꿔 주십시오.' 그래 '왜 바꿔  달라 하느냐? 그러면 은혜가 없더냐?' '아니 은혜가 없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진리를 틀리게 가르치느냐?' '아니 진리 틀리게 가르치는 거 아닙니다.' '그러면  어쩌라고?' '너무 우리 교인에게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참 은혜는 되고 옳기는  옳는데 거리가 멀어서 안 되니까 좀 우리와 그래도 연령적으로나 모든 신앙의  실력적으로, 너무 어리니까 우리에게는' 말하자면 그 말이오. '그라면 젖으로  먹여야 될 터인데 밥으로 먹으니까 소화가 안 된다 말이냐' 이라니까 '아, 예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젖으로 먹일 교역자를 바꿔 달라고서 그렇게 그 전화가  왔어요. 젖으로 먹일 교역자로 바꿔 달라 이래서 '그러면 이번에 교역자  회의하면은 한번 의논하지' 내가 그라고 말았습니다.

 그거 모양으로 여러분들에게 아마 너무 그만 젖을 먹어야 될 터인데 밥을  주니까 소화를 못 하는 것 같애. 이러니까 암만 가르쳐야 깨닫지를 못 한다 그  말이오. 그래도 언제 그랄 여가가. 이라고 그만 그대로 실행만 하면 쫙쫙 다  그만 돼 버리는데.

 우리에게 모든 시험은 하나님이 다 조절하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만 주시지 감당치 못할 어려움은 우리에게 주시지를 아니합니다.

 여기 보십시오. '너희가' 13절에 '사람이' '사람이' 그러면 내나 우리 믿는  사람 말이오. 성도 말이요. 불신자 말하는 거 아닙니다. '사람이' 우리 성도가  '감당할 시험 밖에는' 자기가 힘만 쓰면 그 시험을 능히 승리하고 날 수 있는  그런 시험만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감당 못 할 시험은 우리에게  안 오게 하신다 그 말이오.

 이 말씀을 믿어야 돼요. 이러니까, 자기에게 어려움 왔으면 '아, 이 어려움도  나에게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어려움이니까 힘만 쓰면 이긴다.'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달라들면 이기는 것인데 아예 '내가 이런 일을 어찌 이기겠느냐' 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거요. 이 믿음이라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제가 시골에서 어릴 때에. 시골에서는 추석이나 이런 때 놀 때 닥쳐도 아무 놀  만한 그런 놀음이 없어요. 요새는 뭐 춤도 배우고 이라니까 되지마는 그때  그것도 없어. 꽹매기 아니면 놀음이 없어. 꽹매기 그것만 밤낮 장 두드리고 있을  수 없고 이러니까 그때 논다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그래요. 지게를 갖다 놓고,  지게를 갖다 놓고 이래. 나무를 '걸쳐 놓고 '자, 사람을 짊어지는 일 하자' 어떤  사람은 두 사람, 장골 두 사람 짊어지고 어떤 사람은 세 사람 짊어지고 어떤  사람은 네 사람 짊어져요. 인제 그때는 힘 비교하는, 씨름하는 거와 마찬가지라.

이라는데, 사람이 돌을 갖다 놓고 할 때도 있고 쌀가마니 갖다 놓고 이래 할  때도 있는데, 처음에 이래 놓으면 아무도 못 지고 일어나요. 이 사람도 지고  일어나려고 죽자껏 애를 쓰다 못 지고, 일어나요. 또 저 사람도 못 지고  일어나요. 또 못 지고 일어나요. 이라는데, 그라면. 거기 있는 사람이 못 지고  일어나는데 마지막에 어떤 힘 센 사람이 하나 가지고 일어납니다. 하나 가지고  일어나면 다 지고 일어납니다. 하나 가지고 일어나면 다 지고 일어나요. 하나  가지고 일어나니까 고 사람보다 조금 힘이 모자라지마는 그래도 좀 힘 있는  사람이 생각하기를 '아, 저 사람이 지고 일어나는데 내가 못 지고 일어나? 저  사람이 지고 일어나는데?' 고 사람이 막 죽자껏 힘을 쓰니까 지고 일어난다  말이오. 일어나니까 '아, 조 사람이 지고 일어나는데 내가 못 지고 일어나?'  이러니까, 마지막에는 거기에 있는 젊은 청년이라 하는 것은 삥삥이 같은 것도  다 지고 일어나요. 그래 그게 뭐이냐 하면 벌써 확신 단정 확신 단정이라는 것은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몰라. 확정하고서 자기가 이제 '이라겠다' 아주 자기가  단정을 짓고. 확정을 짓고 '아, 이거 내가 하겠다' 단정을 딱 해 버리면 그게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라, 그분은 신실하다 말이오. 모든, 그분은 실수가 없어.

미쁘다 그 말은, 그분은 실수하지 안해요. 우리가 감당 못 할 걸 혹 하나 감당치  못할 그런 걸 하나라도 끼워 가지고 어떤 사람은 감당 못 하게 하는 그런 일이  없어. '미쁘사' 그분은 실수가 없다 그 말이오. 실수 없이 우리에게 꼭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딱 맞춰 가지고 각자에게 다 해 주시기 때문에 실수가 없어.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여기에서, 앞으로  지금 공산주의가 밀고 내려올란지 뭐이 올는지, 저는 요새 그렇게 기도합니다.

공산주의가 밀고 내려오는 그 시험이나 또 우리 국내에서 있는 시험이나 다  시험은 같아. 왜정 말년에는 공산주의 없어도 그 나라의 시험으로써 그런 시험  있었기 때문에, '어쩌든지 시험을 주시되 이 주일학생들 이 어린 것들이  하나님을 배우고 알고 믿고 의지하고 자꾸 이렇게 자라가고 하니까 어린  학생들이 몰사하는 그런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그저 우리를 시험해  가지고서 순교할 사람은 순교하고 순생할 사람은 순생하고 하도록 그렇게 좀  구비하게 해서 시험을 해 주십시오' 나는 그렇게 요새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일 공산주의가 돼 버리고 말면, 지금 우리 주일학생도 뭐 이만 얼마인가  되는데. 이만 삼천 명? 이만 사천 명인데. 주일날 잘 안 나와도 해 놓고 저거가  믿는 줄 아는 그게 이만 사천 명인데, 이만 사천 명이 이것이 다 몰사해서,  그거는 강제로 가르치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인하도록 만드는데 그때에 누가 그걸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들을 죽게 하는 그것이 합당치 않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그것을 주님이, 어린 학생들을 다 몰사하도록 그래 하지 마시고 서서히  길러 가지고 해야 안 되겠습니까?' 나는 이래 가지고 요새 하나님하고 시비를  하고 있습니다. 인제 그런 기도를 늘 계속해요.

 그런데, 그 기도 하면 힘이 나와요. 학생들을 들고 말하면 힘이 나오지마는  나를 들고서 기도할라 하면은 그 기도밖에 안 나와. '주여' 나는 죽어도  마땅하고 그들에게 뭐 어떤 박해를 당해야 마땅할 놈입니다. 나같이 범죄한  죄인이니까 나한테는 큰 몽둥이가 있어야 되겠고 이게 마땅하지마는 어린 것들  그런 것들은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인제 어린 아이들, 주일학생 말해 가지고서  그 덕에 피난하려고 내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주일학생 덕택에 우리 장년반이  피난을 할 수가 있는 그 길밖에 없어요. 장년반은 몽둥이 맞을 짓밖에는 안 해.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시험을 당할 즈음에' 그 말은 시험  당할 때에, 시험 당할 때에. 벌써 공산주의가 밀고 환난 올까 해서 벌써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피할 길, 피할길 줬는데 피할 길은, 피할 길은  여러가지 피할 길이 있습니다. 피할 길은 뭣이 피할 길인고 하니. 우리가  패전하는 것은 뭣 때문에 패전하느냐 하면 믿음 없어 패전하는 것. 피할 길이  믿음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피할 길이요, 또 우리가 패전하는 거는 뭣  때문에 패전합니까? 범죄하기 때문에 패전하니까 회개하는 것이 또 피할 길을  준비케 하는 거라. 피할 길,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승리하도록 이렇게 도움을  받는 것은 뭐입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줘  가지고 기도하게 하는 것이 피할 길을 주시는 것이요, 회개케 하는 것이 피할  길을 주시는 것이요, 믿음이 없으니까 자꾸 하나 둘에서 믿음을 점점 길러  가지고서 장성한 믿음이 되어 지도록 하는 그것이 피할 길을 주시는 것이라 그  말이오.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랬으니까, 오늘 아침에 내가 증거하려고  하는 것은 지금 그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평소에, 평소에 말씀을 지키지 못하면, 평소에 말씀을 지키지  못하면 환난 때에 말씀을 지키지 못합니다. 평소에 주님을 사랑치 못하면 환난  때에 주님을 사랑치 못합니다. 평소에 승리 못 하면 환난 때에 승리 못 합니다.

'지극히 작은 데 충성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다' 하는 지극히 작은 데  충성하는 것이 뭐인가? 충성이라 하는 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사는 것이 그것이 충성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주님에게 충성하는 것이니까 지극히 작은  충성은 어떤 것이 지극히 작은 충성인가? 평소 평일, 평시, 평시 평일 평소,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그것이 지극히 작은 데 충성하는 것이요,  그라면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될 수 있다 그 말은 인간이, 한국 사람이 다  패전해도 패전 안 하는 그거는 참 아주 최고로 어려운 최고의 지극히 큰 충성이  되겠습니다.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이랬지마는 신사 참배에 그때 승리한 사람이  거창군내에서는. 거창군내에서는 주 남선 목사님이 신사 참배에 승리했고, 또  거기에 그 무슨 장로님이오, 나이 많은 장로님? ○○○씨. 예배당에 가 있다가  죽었지? 무슨 기도? 유기도. 유기도 장로님이 신사 참배를 승리를 했고, 개명  교회 교인들이 다 전부 신사 참배를 승리. 뭐 신사 참배 안 했어요 그들은.

자기의 싸움도 이르지 안했어. 내가 앞에 앞장서 가지고 이라니까 나하고  싸우느라고 거기 가지도 안했어. 나도 승리했고. 이렇게 했는데 승리한 사람이  별로 몇 사람 없었어요. 선천 고을에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고을이 다  믿는데 승리한 사람 하나도 없었는데. 그 승리가 그렇게 어렵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패전한 그 패전에 이긴 그것이 지극히 큰 충성이라, 그때 이긴 사람은  지극히 큰 충성을 한 사람이요 그때 패전한 사람은 지극히 큰 불의를 행한  사람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것이 언제 그 승패가 있느냐? 지극히 작은 데 승리한 것이 지극히 큰  데, 승리한다 말은 평소. 자기 평소에 자기가 주의 피를 버리지 안하고 대속을  입고 사는 거. 평소에. 평소에 하나님 말씀대로 산 그것이 천하 인간이 다  말씀대로 살수 없는 지극히 큰 최고의 어려움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믿음 지키는 것이 지극히 큰 환난 때 믿음 지키는  것이요, 평소 때 주님을 사랑하고 높이고 배반치 않는 것이 환난 때에, 지극히  큰 환난 때에도 된다.

 그러기 때문에, 평소, 자기가 평소. 지금은 뭐 지키려면 지키고 말라면 말고  쉽지 않습니까? 평소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그것이 대환난 때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말씀 지키면 환난 때도 지킬 수 있다.

평소에 자기가, 평소라 말은 자기의 늘 살고 있는 그 장소를 말 할 때에  평소라고 말하는 것이고, 평시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가 늘 그저 살고 있는 오늘  내일 자꾸 매일 살고 있는 그걸 평시라고 말하는 것이고, 이러니까 자기는  평범한 때에 자기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말씀대로 살면 천하 인간이 다 살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

 그러면, 여러분들, 하나 문제 내고 나서 끝을 내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천 명이면 천 명 만 명이면 만 명 다 시험을 이기지 못할 만한 그  큰 시험이 오는데, 큰 시험이 와서 모든 사람이 다 그 환난 때에 그만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믿음을 파는데, 그 큰 환난, 자기가 그때는 주님을 믿을 수도  없고 믿음 지킬 수도 없는 대환난이 있는데. 대환난이 오는 것은 뭣을 발표하기  위해서 대환난을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입니까? 뭣을, 뭣을 심사해서 뭣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대환난은 하나님께서 뭣 때문에 대환난을  우리에게 주십니까? 무엇을 알아보기 위해서 주십니까? 저 ○조사님 네 평소에.

평소에 믿음 지켰나 안 지켰나 그거 지금 발표하는 것이라. 평소에 믿음 지켰나  안 지켰나 그거 발표라. 평소에 믿음 지켰으면 어떤 환난이 와도 문제가 없어요.

 우리가 독침 앞에서 어떻게 할까, 독침 앞에서 어떻게 할까. 우리가 공산주의의  온갖 박해 앞에서 어떻게 할까. 고문과 고형 앞에서 어떻게 할까 또 모든  탄광이나 그런 데 갖다 넣어 놓고 할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할까 어떤 앞으로 아주  어려운 극난의 어려움을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그것이 그런 어려움의  고문과 고형의 극히 어려움 그것이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어렵습니다. 어렵습니까? 쉽습니다. 왜? 평소 쉬운 때에  쉬운 신앙생활 하면은 그 어려움의 신앙생활은 문제가 없습니다. 말할 게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큰 고문과 고형의 최고의 어려움을 두고서 걱정하지 말고  어려움을 두고 걱정하지 말고 이 평소에 자기가 믿음 지킬 데 대해서 조심해서  평소에 믿음만 지키면 그거는 걱정할 필요도 없어.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증을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모든 승리할 것은 평소에. 평소에 자기가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평소에만 말씀을 지키면 어디든지 말씀을 지킬 수 있고, 평소에만 자기가  믿음을 지키면 어디든지 믿음 지키고. 평소에만 주님의 사죄를 벗지 안하면  어디서든지 벗지 안할 수 있고, 평소에만 주님의 의를 벗지 안하면 어디서든지  벗지 안할 수 있고, 평소에만 하나님 배반치 안하면 어디서든지 배반하지 않을  수 있고. 그러니까, 평소에 주님 모시면 어디서든지 주님 모실 수 있다. 평소에  자기가 의를 입고 있으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의를 입을 수가 있다. 이러니까,  평소가 지극히 작은 것이요, 지극히 큰 것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아주 최고  절정인 그런 모든 어두움을 가리켜 말씀하는 것이니까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승리하도록 합시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러분들 구역장들이 새벽기도를 끌고 나오면 대환난을 당할 때에 문제가  없는데, 새벽기도를 나오라고 평소에 권면해서 나오면 그 사람들이 준비해  가지고 자기 가정에 환난도 없을 것이고 환난 와도 문제 없이 이길 건데  평소에는 가만히 둬 뒀다가 낭파가 되고 난 다음에 와 가지고서 '목사님 이 일을  어쩔까요?' 난처한 얘기를 하니 속에 아무것도 기름이 없는데 이렇게 됩니까?  그러니까 주일학생도 반사가 기를라면 그 학생들을 수요일, 주일 오후예배,  그만 주일 오전 예배만 볼게 아니라 오후예배 수요일예배 두 번만 참석 시키면  그 학생이 나중에 그만 나중에 반사를 메고 다닙니다. 반사를 도울 수 있다  말이오. 거기다가 또 새벽기도까지 참석해 놓으면 나중에 반사는 가만히 있으면  태워 가지고 다녀요. 그만한 반사가 할 일 다해요.

 이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둔다, 이제 자기가 공력을 들인 그 공력이  절대 허사가 되지 않습니다. 새벽기도 참석하도록 이렇게 이래 하면은 그 공력이  나중에 자기가 심방 다니면서 골빠지는 것보다 낫다 그거요  말씀을 듣고 고대로 딱 결심하고서 확정을 짓고 그대로 실행해요.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평소에 거기에 모든 게 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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