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실력

 

1989. 3. 13. 양성원 개강 예배

 

본문: 사무엘상 3장 19절∼4장 2절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쳤더니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들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옛날이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일꾼들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의 힘도  소용이 없습니다. 죽는 힘이 산 자에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죽은 것이 산 자의  힘은 되지 않습니다. 온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썩은 것들이라, 죽은  것들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옛날이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종들은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썩은 것으로 살리는 일과 산 자를 길러내는 데에 도움되지 못하는 것을  알고 그저 산 지식 하나님의 말씀만을 힘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고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아주, '자라매' 하는 것은 아직도 나이가 어립니다. 그러나 19절에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그러면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하는  말은 그 한 말이 무효로 무능으로 돌아가지 아니했다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어린 아이가 말하니까 그 말하는 것을 그렇게 권위 있게 인정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했습니다. 목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의 말이 하나도  허무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그 말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이 증거가 이것이  목회자의 실력입니다.

 뭐 어린 사무엘이니까 얼마든지 멸시할 수 있고 세상적으로 큰소리 호령치는  그런 소리도 얼마든지 세상에 많은데 어린 사무엘이 말하는 것을 누가 그렇게  신중히 듣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실 때에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했습니다. 사무엘이 한 말을 한 마디도 헛되지 않도록  꼭 그대로 실행이 이루어 지도록 실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실력입니다.

 자기가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그것을 한 달 두 달, 미련한 사람들은 일  년은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라는 몇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는  가운데에 그 사무엘의 한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니 누가 그 사무엘의 말을  업신여길 수가 있으며, 금하는 것을 어떻게 업신여기며, 권고하는 것을 어떻게  업신여기며, 또 척망하는 것을 어떻게 두려워 여기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목회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고 김현봉 목사님이 아현교회서 목회할 때에 그 당시는 우리 한국에서 그  교회가 제일 큰 교회였습니다. 이랬는데 모든 사람들이 '아현교회는 다 핫바지들만  입고 다니는 그런 무지러기기 때문에 김현봉 목사님이 그렇게 통치권을 가지고  목회한다' 그렇게들 말한 사람들이 많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 많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접해서 보는 사람들은 그 김현봉 목사님이 말한 것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실상이 이루어지니 '모든 사람들을 광목 바지 저고리  시커멓게 물들여서 해 입히라' 하니까 그들이 핫바지라서 핫바지를 입은 게  아니라 핫바지 입은 것도 명령을 어기지 못해서 안 되는 줄 알아서 핫바지  입었습니다. 그분이 딱 떠나고 나니까 거기 있는 교인들이 누구에게 순종합니까?  별별 사람들이 들어왔지마는 다 순종 안 하고 제대로 다 흩어졌는데 흩어지고 난  뒤에 보니까 거게는 장관들도 많고, 사장들도 많고 세상적으로 아주 유력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요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요대로 이루어지지마는  강퍅한 자들은 모릅니다. 슬기로운 자들은 알고 사무엘을 두려워하고 따랐지마는  강퍅한 자들은 망해도 모르고 흥해도 모릅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이러면  인제 세월이 얼마 지나가면 '아, 이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말한 것은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 사람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명령이요 뜻이다. 하나님의 것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선지자라 말은  미래사를 아는 사람을 가리켜서 선지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선지자라는 뜻은  하나님의 은밀한 그 의지를 모르는 어두움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타내는  그 권위와 직책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서 선지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 알았더라' 이것이 목회의  권위입니다.

 이러기에 목회는 실상은 한 이삼 년 거기 지내야 그곳에서 목회를 할 수가 있는  건데 자꾸 우리는 목회자를 자주 옮깁니다. 왜? 이삼 년 커녕 일 년도 지내지를  못합니다. 일 년을 둬 두면 큰 낭패가 날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사전 수습으로  이것을 옮겨야 되게 되니 참 한심한 일입니다. 옳은 목회를 하면 처음에는 다  무시하고 다 거역하지 않겠소? 이삼 년이 지내면 나중에 주님이 그 말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까 모든 사람들이 '아, 이는 하나님의 선지자다'  인정하고 나니까 그의 목회가 사람에게 대해서는 아무것도 어려울 게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이 언행심사를 했기 때문에 그렇지 제 맘대로  말하는 걸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겠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힘들고 마음이 조려지고 어려워지지 뭐 그 교인들이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교인과의 그 상관에는 아무 어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 알았더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이제  주님이 의논할 데가 없으니까, 이 사무엘밖에는 의논할 데가 없으니 사무엘에게  의논을 과거에도 해서 사무엘이 하나님과 의논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냈기 때문에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지 그렇지 않으면 그게 이루어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저가 내 안에 내 말이 저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명중해서 그대로 소원했기 때문에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일는 것을 원한다고 이루어지겠습니까?  이루어지는 그게 큰 것보다도 하나님과 함께 동하고 정하는 그것이 중대합니다.

 이래서 목회자들이 벌써 교회를 수습하기 위해서 '뭐 장로 수습이, 이거 무슨  부목사 수습이, 이런 것 저런 것 어렵다' 그게 문제돼 있으면 벌써 그 사람은  외식하는 목회자입니다. 그런 거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바로 돼서 그분이 동하고 정하는 그분에게 피동되는데  그분에게 피동되는 것은, 피동되는 그를 대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요 그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권위  있는 중보 위치가 어데 있겠습니? 우리 목회자들은 요것을 기억하고 이래야  되는데 도무지 여게 대해서는 아무 생각 없고 전부 외식들만 하고 있습니다.

 4장 1절에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사무엘은 선지자다' 이래  가지고 온 이스라엘이 거게다가 소망을 두고 경외하는데 그 목회하기가 무엇이  힘이 들겠소? 그러면 사무엘은 참 목회하기 쉬웠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그가 사사된 지 이후로는 연방에서 전쟁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그 사사 노릇 하기가 수월합니까? 껍데기는 수월하나 그 속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관계 거기에 전심 전력 기울여 주력하기 때문에 껍데기는 할 것이 없어.

이것이 하나님의 종들이며 목회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쳤더니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더라' 이러니까  그때 이스라앨의 사사가 엘리입니다. 이러니까 엘리의 통치를 받아서 했는데  찾아보면 하나님은 엘리에 대해서 대단히 섭섭하게 여기시고 분노하고 계시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금 제가 군대 있고 주권의 명령 위치에 있다고 해서 전쟁을  나가니까 그 얼마나 어두운 일이겠습니까?  또 사무엘 17장 33절로 누가 한번 읽어 보십시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네, 이것이 목회자의 실력입니다. 목회자는 자기가  평신도 신앙 생활에서 또 목회하면서 신앙 생활에서 자기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편에 서서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시니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이 사실을 체험하고 경험한 이것이 목회자의 실력입니다. 이래서 적은 일이라고  업신여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준행하는 신앙 행위 그 하나  하나에서 자기는 경험이 생겨지고 체험이 생겨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니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또 도와 주시니 아주 유약한 그  목동이지마는 그 세상이 두려워하는 맹수도 그것을 쳐서 이기고, 아버지의 명령을  복종하기 위해서 양 한 마리를 안 뺏기려고 그 입에서 후벼 낼 때도 냈고 그가  달려들 때는 찢어 죽인 그것이 저의 체험이요 경험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해 봐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지 않겠소? 그래서 늘 주일학교 반사들에게  매일 광고하는 것은 '공과를 외우라. 외우고 난 다음에 그대로 실천을 해라.

실천하는 가운데서 경험과 체험을 네가 얻을 것이다.' 그러면 경험의 지식과  체험의 지식을 이 공과와 아울러서, 가르쳐야 네게 속한 양의 새끼가 젖으로 먹고  자라지 이것을 너는 외우지도 않고 실행하지도 않고 이렇게 마구 들어서 앵무새  모양으로 옮기기만 옮기면 어머니가 먹을 수 있는 그 식물을 어린 아이에게  먹이면 그거 뭐 상하지 그것이 무슨 영양이 되겠습니다? 이것을 많이 말해도  우리 서부교회에 반사들이 공과를 외우는 것도 하지 않습니다. 실행하는 거는  더욱 하지 않습니다. 요것이 지금 큰 하나님의 노여우심이 돼 가지고 있는데 요걸  돌파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빛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 O총무도 와  앉았는데 요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공과를 벌써 한 공과면 셋 주일 넷 주일 어떤 공과는 다섯 주일까지 가는데  이 공과를 반사들이 외우지도 않고 실행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실 수가 있습니까? 말씀에게 제가 움직여야 움직이는 그게 생명이요  능력인데 그것은 모든 걸 다른 걸 살릴 수 있는 건데 말씀과 저와 상관이  없으니까 하나님과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래서, 우리 목회자는 자기가 목회 나가기 전에 말씀대로 실행을 해서 '아,  말씀대로 하니까 되더라. 말씀대로 하는 데에 누가 대항하겠느냐?' 말씀대로 내가  그대로 순종할 때에 대항하는 적이 적으면 적은 승리가 오고 크면 큰 승리가  오는 것을 경험하고 체험했으니까 그 사람이 목회할 때에 무슨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두려워서 주저할 것이며 또 말씀대로 증거하고 그와 같이 했으면  승리와 성공이 올 것을 기다리지 무엇을 피조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다 여게서 왜정 말년에 그 강한 일본의 세력도 담대히 막아내고 또 6,25 같은  공산주의 세력에서도 공산주의들을 담대히 막아내는 것이 이것이 모르는 자들은  장난 삼아 뭐 하나 거짓말 많이 하는 세상이니까 거짓말같이 듣지마는 이것을  막아내고 그렇게 승리하는 것이 그것이 다 다윗같은 이런 경험과 체험에서  생겨진 것입니다.

 사무엘을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선지자로 저를 세우셨다' 하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그것이 그 사무엘상 1장으로부터 죽 보면, 3장 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 엘리 제사장이 40년 사사 노릇 했습니다. 그 사람이 90여세 장수했습니다.

이랬지마는 벌써 '하나님의 이상이 희귀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무슨 계시 보이는,  것을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 없었더라. 이러니까 곧 선지가 없어지는  이런 때인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린 사무엘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이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에게 하나님의 무엇인가  영감으로 새로운 깨달음과 또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그 심령의 변화가 없으면  이것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이것을 생각지 않고 이것은  예사롭게 생각하고 이미 하나 들은 말씀 그거 팔아 가지고 인기 올리고 자기가  왕권을 잡는 이것만 하도 삼기 때문에 언제는 내가 집회 때에 '이번에는 이 모든  외식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팔아먹도록 상품 만드는 일 내가 하지 않겠다.

이러기 때문에 어런 아이라도 들으면 다 들을 수 있도록 이 말씀을 가르치지  거게서 이거 팔아먹는 그런 자의 상품되도록 그렇게 가르치지 않겠다.' 일반  교인들이 듣고 배우도록 가르치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지난 8월 집회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동산을 만드시고 이 동산은 보기 좋고 아름다운 실과들이  많이 있게 하셨다' 하는 그 말씀을 내가 몇 시간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정력의 삼분지 이를 완전히 해방시켜서 정력의 삼분지 이는 할 일이 없어  수월하도록 만드는 말씀이다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인간들이 자기 처소, 자기 형편 사정을 보다 좀 더 낫게 하려고 여기에 뭐 거의  전심 전력을 다 기울이고 예수 잘 믿는다 하는 사람이 아마 한 삼분지 이를  기울이고 삼분지 일은 하나님께 기울일까 거의가 다 자기의 처소 마련하는 데에  기울이는데 인간이 마련하려고 기울여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처소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현실이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하면 그 현실은 보기 좋고 먹기 좋고 아름다운 과실이 얼마든지 있는데 요것을  몇 시간 가르쳐도 그뭐 자기에게 들리지 않으니까 그것을 예사롭게 생각하고,  요걸 좀 파고 들어가면 일이 나는데 요거 파고 들어가서, 내가 말 들으니까  OO목사님이 이번에 가 가지고 요거 좀 파고 들어가 조금 파고 들어간 것  말하니까 가는 곳마다 미국에서 모두 다 부흥이 나고 뒤비졌다고. 이걸  여러분들이, 이 깨달아서 받은 말씀을 자꾸 연구하면 이 복음이면 세계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점령이 어떻게 돼서 나갈런지 몰라도 결단코 이 복음을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분이 당신이기 때문에 이 복음으로서 세계에 전파될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보이지 않았더라' 하나님의 종이 자기에게 새로운 계시가 없으면 새로운  깨달음이 없으면 이거 하나님과 끊어졌으니 자타를 죽이는 이런 일이 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음성이 무엇인가? 그분에게서 무엇이 나오는  것을, 그분이 뭣을 지시하는 것을, 그분이 뭐 가르치는 것을 이것을 받는 데에  전력을 기울여야 될 터인데 여게는 생각지 않고 피조물, 이거 수습해 가지고  이것과 뭐 뭘 잘 만들어 가지고 하려 하는 거게 다 기울어지기 때문에 이거 전부  외식자입니다.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물론  구십 몇 살이니까 눈도 어둡지마는 이것보다도 이거 표현은 신령한 눈이  어두웠다 말이오. 심령의 눈이 어두웠어. 그렇게 전쟁에서 전멸을 당하고 아들도  자부도 또 엘리도 이렇게 다 죽임을 당한 이런 전멸 일이 자기 앞에 있지마는  그것도 모르고 뿍뿍 전장으로 간다고 가 가지고 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기에 벌써 목회자가 하나님과의 연결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깨달아지는 그  이상이 자기에게 없으면 이것을 놀라날 줄 알아야 되지 하나님과야 뭐 어찌  됐든지 교회나 평안하고 가서 이런 저런 간교한 말 해 가지고 어리석은 자를  꾀워서 그 사람이 이 말에 착 넘어가 가지고 제 사람이 되니까 '햐, 수단 있다.

이래서 사람이 내 사람 됐으니 문제 없다.' 그게 그 사람 꼬와서 제게 넘어온 것만  알지 그게 만군의 여호와를 꼬우는, 만군의 여호와께 그런 궤술과 복술을 행하는  것인데 이것을 모르고 그래서 만날 나타난 그 수습 하는 데만 야단이고  하나님과의 관계 수습에 대해서는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목회는 못 합니다. 평생  돌아다니며 쫓겨나고 헛일입니다.

 우리 신임 투표 하니까 그것 가지고 그 공회 때 말하기를 '이것이, 틀리지  않았느냐?' '왜?' '신임 투표 할 때에 그것을 이동한다고 했으니까 이동하면 이동을  시켜 줘야 될것 아니가? 신임 투표 시켜 놓고 이동 안 시켜 주니까 이것이 이  행정이 말과 틀리지 않느냐?' 하는 거 가지고 강하게 말을했었습니다. 나는 그때  말을 하지를 않았어. 내가 이번 총공회 때 그것을 말을 했습니다. 신임 투표는  불신임 당하면 거게서 쫓겨나고 또 쫓겨나 가지고 다른 데 오라 할 데 없으면  그만 쫓겨서 저 세상으로 나가서 다시 목회의 선 안에는 못 들어온다는 그말이오.

쓸모 없는 목회자를 쫓아낸다는 그 방편이오, 신임 투표는. 또 하나님이 인정하는  목회자는 높이 들어서 쓴다는 그 방편입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계시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법궤 옆에 누웠지마는 오늘 우리는 어데  누웠어야 되겠습니까?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 말씀을  모시고 이렇게 섬기는 그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이 암만 주고 싶어도 그자라야 눈이 뜨여서 줄 수가 있고 귀가 열려서  들을 수가 있지 항상 있기는 세상하고 하나 있고 하나님은 꿈에 본듯 이렇게  보고 말았고 하나님 말씀은 그만 들으면 녹음이나 해서 '녹음 테이프 있으니까  됐다. 노트에 적어 놓으면 됐다.' 하고 하나님 말씀을 모시고 섬기는 일이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에게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여호와의 궤를 섬기고 그 옆에서 늘 모셔 있으니까 그에게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인제 그는 생전 처음이니까 하나님이  불렀지마는 저거 선생님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 알고 갔었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모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랬는데 4장 3절에 보면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들이 다 실로에서 법궤  가져왔습니다. 법궤 가져오고 난 다음에 10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왜 하나님 법궤를 끌어왔는데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법궤 끌어와야 되지 법궤 안 끌어오면 안 되니까 법궤 끌어다 놓으니까 법궤로  말미암아 재앙을 받아서 삼만 명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의 말씀인데  이 전능의 말씀은 섬겨야 되지 제가 전능의 말씀을 이용해 먹으려 하면 화를  받습니다.

 3장 12절로부터 보면, 누가 한번 읽어 보십시오.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고 가증스러운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그 일을 그것 가지고 이용해서 저희 섬기는 일, 저희를 위해서,  하나님 섬기는 그것을 자기 위해서 하는 이것이 하나님에게 극히 노여움이 됐던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도, 예수 믿는 도, 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면 이것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법칙인데 하나님 섬기는 일 하지 많고 이것 팔아먹고 이용해  가지고 자기의 상품처럼 자기 위하는 이것이 하나님 섬기러 온 그 모든 백성들의  섬김을 갈고리 가지고 그 고기를 거머내서 제가 먹고 하는 그거와 다른 게 뭐  있습니까?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참고 참았지마는 마침내 마지막에는 그렇게  예언하시고 전멸을 시켰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나 하나님의 후배들이 이렇게  복음을 저 위해셔 이용해 먹고, 복음의 종이 되고 복음에게 이용을 당하지 않는  그것을 자꾸 말하는 것은, 듣기 싫어해도 말하고 배척을 당해도 말하고 이래 하는  것은 성경을 보기 때문에, 그래도 말하면 그것들도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망치지 않고 행여나 고쳐질까 싶어서 기다리고 있고 또 말하니까  그에게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지 않고, 이러니까 범하는 자도 범하는 자를  경고하는 자도 망하지 않지마는 그렇게 삐뚤어져 나가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복수는 무섭게 임합니다.

 우리 총공회가 삐뚤어진 길 가는 것을 그것을 말을 하니까 얼마나 반대하고  모두 다 제가 왕이 돼 가지고 잘난 소리 이래 하는데 그러다가 갈 자는 가  버렸어. 이랬는데, 오늘 교회는 완전히 속화입니다. 어데 성경대로의 교회가 어데  있습니까? 오늘 현실의 교회는 성경대로의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 목회자들은  성경대로의 목회를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아무리 그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를 지킨다 해도 성령이 찬성 안 하면  헛일이오. 예수님 당시에 그들이 뭐 얼마나 율법을 지켰습니까? 닭 모이를 안  줬습니다. 안식일날은 파종하는 것 된다고 불을 안 땠습니다. 얼마나 십일조를  세밀히 했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인격을 바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성령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때는 안했습니까?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나다나엘은 그는 '간사함이 없는 자라' '나를 언제 봤습니까?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있는 걸 내가 봤다' 그러기에 그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지켰지마는 그  양심을 통하여 성신의 감화 오는 것은 상관 안 했습니다. 그 사람 율법 지키는  것이지 하나님의 생명법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목회자가 영감을 생각지 않고 그냥 구변으로 가지고 이렇게 하면  되는 것으로 아는 그자는 외식자기 때문에 희망이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배척이나 당하고 이래도 밥 먹고 있는 것은 옆에 사람 빛으로써 근근히 있지마는  그 종말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고로 하나님의 종의 그 자격에 있어서, 하나님이 그의 말에 권위를 줘야지.

그 말에 권위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지. 또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인 줄  인정하도록 해야지.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선지의 그 은혜가 자기에게 있어야 됩니다.

 이래서, 여게 있는 양성원 학생들은 그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신학 그것만 자꾸  공부하는 그런 데에다가, 그거는 끝이 없어. 족보 얘기는 끝이 없다 그말은 족보  애기는 '아무것이 아들이 아무것이 아무것이 손자가' 그게 아니오. 족보 얘기는 이  사람이 말하고 저 사람이 말해저 모든 인간들의 지식 족보가 더하요. 사상 족보가  더 하요. 그 끝이 없어. 끝이 있습니까?  그런고로 이번에는 내가 교학실장에게 말해서, '안 되겠다. 육 주간을 공부하는  데 삼 주간은 나한테 그 시간을 달라. 삼 주간은 성경 공부하는 데에다가  기울이도록 그렇게 하겠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삼 주간을 나에게 허라해  썼습니다. 이번에는 삼 주간을 성경 공부만 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내가 삼 주간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아무 그런 힘도 없고 그런 이유도 없습니다.

왜? 그래 봐야 감당을 못 하니까. 이러니까 여러분이 성경 공부하는 삼 주간인 줄  알고 여게서 잘 받아서 공부하면 참으로 여게서는 세계에 제일 으뜸가는 이  하나님의 종들이 날 수 있는 이 기관입니다.

 이래서 앞으로는 양성원이라는 이것은 목회자 양성 성경학교로 할 것입니다.

요새는 학교라 하면 가치가 없으니까 신학이라야 좀 이름이 높으고 신학보다도  신학대학이라야 이름이 높으고 신학대학보다 신학대학원이라 해야 된다 하기  때문에 이 마귀란 놈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썩은 일만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그런 건 다 내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공부해서, 제가 무디 선생의 그 성경학교를  보니까 벌써 그것도 그때는 나왔지만 썩고 썩어서 지금은 완전히 썩어 버렸어.

지금은 인제 그것들도 향방을 하나님 말씀으로 향방을 정하지 않고 세상이  따라가는 그것 따라가려 하니까 '다른 데는 지금 대학이 됐는데 우리는 성경  학교라니? 신학이라고도 해야지.' 그것이, 그것이 신학으로 타락돼 가지고 신학이  신학대학이 되고 거게서 또 타락해 가지고 신학대학원이 돼 가지고 지금은 석사  박사 학위까지 주게 됐으니까 심히 올라갔지마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완전히  타락된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란 놈은 자꾸 타락을 시킵니다. 이래서 그걸 내가 보고, 우리 양성원  이 목회자 양성 이 성경학교 에서는 이게 주님 오실 때까지 변동 없이 타락하지  않고 그 향방을 하나님을 향하여 보는 그 향방이 변동되지 않게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까 하는 그것을 내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어짜든지 요번 기회에 성경 공부를 단단히 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있는 그 사람 되십시오. 여러분들의 말하는 것이면  하나님께서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걸 딱딱 책임지시고 성취하는데 안  떨 자가 누가 있습니짜? 제가 위천교회 있을 때에 여게 OOO목사님의  장모입니다. 그분의 아들은 OOO목사입니다. 자기 하는 일이, 그분이 사교술이  많은데 나 하는 일과 다르니까 말하기를, 할 때마다 '내가 또 이러면 하나님의  징계받을 줄 압니다. 징계를 받아도 내가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징계받을 줄 안다  하고 징계받아도 한다 하고 하고 난 다음에는 며칠 안 돼서 하나님께서 또 매를  때리니까 회개하고 울며 회개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됐습니다.

 목회는, 목회자가 뭐 주먹을 쓰겠소, 그거 이 세상 권세 관권을 쓰겠소, 이  복술이나 모든 사기 협잡의 수단을 부리겠소? 이거는 만고에 하나님이 안 해  주면 이거는 죽은 자 한 가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기가  되도록, 이거 외에는 의지할 것도 없고 바랄 것도 없고 아무 힘이 없소. 요런  사람들이 되면 하나님의 소원을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루실 것입니다.

 다 같이 잠깐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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