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충성

 

1989. 8. 19. 토새벽

 

본문: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임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횐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함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횐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맙씀음 들을지어다

 

 지난밤에 OOO전도사가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도 잘했고 그대로 나가면 좀  소망에 닿는 그런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된다.' 하는 그것을  깨닫고 잡은 것이 있습니다.

 {{}}증거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된다는 그것을 인정치 안하고 제가  아주 말만 잘 꾸며서 훌륭하게 하면 된다, 그 말에다가 가치를 두고 설교의  권위를 하나님에게 두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걸  회개치 안하면 죽을 때까지 어데까지 권위 있어 인정을 받는다 빼도 항상 그  사람은 외식입니다. 그걸 돌이켜서 고쳐야 됩니다.

 또 그러고, 내가 설교하라고 말한 것이 석 달 전에, '유월달에는 한 가운데  삼일밤, 또 그다음에 칠월달도 한가운데 삼일밤, 또 그다음에는 팔월달 한 가운데  오일밤 그렇게 설교를 해라.' 내가 말을 했고, 그래 '그렇게 세 번 설교하고 나면  봐서 유망하면 너는 어데 개척교회나 그리 안 하면 어떤 교회를 하나 맡아서,  조그만한 교회 하나 맡아 가지고 나가야 된다.' 하는 그것을 내가 선포해 놓고  있습니다.

 기도하기를 그렇게 내가 기도를 합니다. 제게 대해서 '앞으로 목회를 맡겨서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지 안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입을 열어서  설교를 하게 하시고' 하는 그게 하나 조건이고, 또 한 조건은 '그가 이 준비를  위해서 충성한 것만치 그 결과가 나타나게 해 주옵소서. 충성이 없으면 진공이  되고 충성이 있으면 하나님이 충성이 있다는 것을 그의 증거로 나타내 주옵소서.'  하는 그런 것을 내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아마 화요일날 밤에는 어데 있었던고 모르겠습니다. 늘, 그라고 난  다음에 자기 집에 있지 안하고 그만 식사만 하면 저 꽃마을 기도실로 가 가지고  늘 계속하고 기도하고 있다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구속받은 자들로 충성하면 하나님이  그걸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인 것을 알고 그에게 함께 하십니다. 충성이 없고 제가  무엇이든지 엉뚱한 걸 믿으면, 자기 지식을 믿든지, 명예를 믿든지, 이미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있는 그 인정을 믿든지, 그걸 믿고 하나님 믿는 것이 적으면  그 사람에게 자꾸 하나님께서 멀리 하십니다.

 이래서, 모든 목회자들이 왜 목회가 안 되느냐? 안 되는 그 이유는 목회하는  실력을 하나님에게 두지 안하고 엉뚱한 데 두는 그것이 원인의 제일 큰  원인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증거하는 것이 성령으로 하고 말의 아름다운  말, 오묘한 말, 그런 말로 내가 설교를 하는, 말에 설교의 권위를 삼지 안하고  성령님으로-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권위를 삼는다 이렇게 했는데 이 말로  가지고 권위 삼는 그런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을 권위로 삼지 않기 때문에 목회가  안 됩니다. 또 자기가 충성을 또 안 하니까 목회가 안 됩니다.

 이래도 안 되는 것은 목적이 달라서, 그렇게 목회 잘하고 권위 있는  목회자되면은 그것 가지고 자기 생활이 넉넉하고 대우가 넉넉하겠고 안 믿는  사람들이 생활하면은 '이래야 우리 가족들이 잘살고 자녀들을 이렇게 투자해서  출세를 시키고' 하는 그런 것을 생각하는데 그런 것 다 하나님이 보십니다.

 또 그 사람이 '네가 이제-이번에 거창서 공부한 거와 같이-네가 지금 발람과  니골라의 교훈을 지키고 있는지? 그 목적이 어데 있는지?' 그런 것 다 하나님이  보시기 때문에 어짜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도록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을라고 하는 그것을 자기가 깨닫고 자기의 하는 목회 생활에 힘이 되는 것인  것을 이렇게 깨달은 사람들은 그 면으로 힘쓰니까 돼집니다.

 그래서, 내가 판단하기는 목회가 잘 안되는 것은 전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서 대우하지 않는 것, 또 자기가 충성하지 않는 것. 그외에' 또 하나 있다면  제가 목회를 하나 하나님을 이용해 먹을라고 하고 하나님에게 이용당하지  않을라고 하는 것, '이 목회해 가지고 내가 뭐 어찌 이래 해야 되겠다.'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살살 달갭니다. 하는 그런 그 가증스러운 일은 하나님 앞에서는  용납지를 안 합니다. 또 그러고 '하야, 이거 교회라 하는 것이 이거 뭐 어리석고  이러니까 이제 내가 이 모든 수단이나 방법이나 복술 이 정치성 가지고 언변을  가지고 이리 저리 하고 수단 방법 가지고 하면 되겠다.' 하는 벌써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그것이, 교인을 만홀히 여기는 게 하나님 만홀히 여기는 것이요 교인  하나 하나를 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렇게 두려움을 가지고 하는 것이 없으면, 벌써 그게 없으면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 사지고 그 꼴이 되면 자기 행위하는 그것이 바로 자기가 됩니다. 자기가  되기 때문에 자기가 그런 사람 만들이 놨으니 그 사람이 뭐 되겠습니까?  이래서 내가 보고 하나님 채점하는 것만치 그렇게는 정확지는 못 하지마는  채점이 대개 팔십프로 구십프로는 맞습니다. 그 채점이. 이러기 때문에 그  돌이키라 하는 걸 돌이켜야 되지 '내가 돌이키지 안해도 어짜든지 백 목사 저거  뒈지면 내가 인정받겠다.' 어림도 없어. 나는 죽어도 하나님은 안 죽습니다  하나님은 늙지도 쇠하지도 않소.

 이러기 때문에 그걸 돌이켜야 되지 하나가 틀리면, 하나가 틀리면 그만 바로  가지는 못합니다. 지남침, 지남침이라고 여기 저 나침판이라든가 뭐인가 이거 우리  나라 말은 쇠라 이래 하는데 그거 똑 남쪽만 향하는 지남침인데 그 지남침에  아무것도 자극 주는 게 없어야 남을 정남을 가리키지 뭐 조금이라도 자극 주는  게 있으면 그게 걸려서 정남은 못 가리킵니다. 그러면 요리 꼭 정남 가리킬 게  요기서 한푼이 좀 틀리면 나가면 자꾸 더 틀립니다. 꼭 이와 같소.

 자기의 교리 신조, 그놈 뭐 옛날 육체의 이스라엘 말년에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 모두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성경을 가르쳤는데 그거  잘못된 걸 그들이 알았습니다. 잘못된 거 알았는데, 잘못된 그것을 알았으니까  어서 고쳐서 구주가 왔으니까 구주의 바로 가르치는 것을 배워 가지고  자기네들이 그 효력을 보고 구원을 이루어야 될 터인데 도리어 바로 가르치는  분이 오니까 대립이 돼지고 적이 돼져서 점점 더러워졌습니다.

 육체의 이스라엘 말년에 자기네들이 틀렸다는 그것을 알고 고쳤으면 복이  있겠는데 틀린 것을 틀렸다고 알도록까지 해 준 큰 축복이 왔는데 거기에서 틀린  걸 깨달은 것이 자기의 구원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마지막에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돼졌습니다.

 그 왜 그리 돼졌습니까? 그리 된 원인이 뭐 입니까? 한번 말해 보십시오. 그래  된 원인이 뭐입니까? OOO조사? 그리 된 원인이 뭐이지? 어? 하나님이 노해서  그렇게 됐지. 왜 하나님이 노하시는 일을 왜 했는가? 뭣을 해서 하나님이  노하셨는가 말이요? OOO? 자기를 하나님보다 높였기 때문에,  그걸 따라서, 주님의 교훈 따라서 '내가 어제까지 이제까지 수십 년 이렇게  말했지마는 이게 틀렸기 때문에 이제 주님 말씀하신 이 말이 맞습니다' 하고서  이렇게 따라가면 주님도 기뻐하시고 자기도 은혜받을 터인데,  그라면은 주님 따라서, 주님 따라서 갈라 하면은 자기가 위신이 떨어지고, 권위가  떨어지고, 자기 주장하는 것들이 도태를 당하고 낮아지고, 주님이 높아지고  이라니까 제가 낮아지기 싫어서,   거게는 반드시 교훈이 나왔으니까 주님을 인정하면 저를 부정해야 되고 저를  부정하면 주님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에 둘 다 인정은 할 수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하나 인정하고 하나 부정하게 되는 그런 기로에 딱 있을 때에 그때에  자기를 높이는 자는 별수 없이 그것은 실패하고 맙니다. 내가 어제 어떤 책이  내게 왔는데 그 책을 잠깐 이래 좀 훑어보니까 하나는 보고 내가 기뻐하는 것도  있고 좋아하는 거, 기뻐하는 거 있어서, 그것도 그만 단도. 직입이란 말과 같이 딱  '이게 옳다' 이래 버리면 되는데 옳은 거 그거 알고도 비비 틀어서 자꾸 이래  둘러가 가지고 나중에 그게 옳다는 것을 그래 해 놨고 또 그라다 보니까 자꾸  어두워져서 잘못된 그런 것들이 많이 있더라 그말이오. 그러면 그래 되면 뒤에  결국이 어떻게 나가느냐? 그 결과가 어떻게 나간다는 걸 답안을 떡 낼 수가 있어.

 이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하나님 앞에는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고 하나님만을  따라갈라고 해도 그 유한한 우리들이 완전자를 따라갈라 하면 힘이 들지 쉬운  일이 아니오. 이런데 심지어 하나님보다 자기 높여서 자기 위주로 하고 이래 하는  자가 무슨 목회를 합니까? 안 됩니다. 차라리 장사를 하면 그만, 장사하는 사람이  돼져야 되지 거게는 인간 생활에 제일 앞장서 가지고 걸어가는 제일 발단에서  살고 있는 것이 목회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게서는 그만 하나 하나가 하나님이냐 자기냐? 그만 둘 중에  지금 절정에 다달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세상 방법 가지고 목회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힘만 쓰면 돼. 힘만 쓰면 되는데 인제 문제가 뭐이냐?  OOO조사로 말하면 그대로 계속해서 힘을 쓰느냐? 계속 해서 힘을 쓰면 조심할  것은 절제해야 돼. 절제할 것은 몸을 좀 조심을 해야 되지 그와같이 힘쓰게 되면  자꾸 몸은 약해지게 됩니다. 잘 먹어도 약해지고 몸은 약해지게 됩니다. 왜?  사람의 진수가 정기인데 그 정기를 쏟아서 기울이니까 그게 약해지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회 나가 가지고 자기가 다 약해지기까지 뭐 이렇게 하는 사람 목회  성공하지마는 목회 나가 가지고 자기는 자꾸 살만 띵띵 찌고 잠만 자고 자꾸  이래 돼지면 그게 뭐이냐? 정기를 쏟을 줄을 모르기 때문에 쏟을 방편 몰라  쏟아지지 안하고 이러니까 만고에 다른 사람이 뭐 짐을 지라 하나요 뭐 어데  삽질을 하라 하요? 아무것도 안 하고 이러니까 노니까 얼마든지 수월하고 살찔  수밖에 더 없지.

 그러기 때문에 목회자는 하나님을 자기의 감독자로 이렇게 삼은 자는 그보다 된  시집살이가 없고 하나님을 부인한 자는 그보다 더 자유 있는 편안한 자리가  없습니다.

 이래서 목회자들이 좀 깨닫도록 그렇게 여게서 은혜받는 게 좋을 거고,  OOO조사는, OOO조사 어데 갔노? 산에 갔나? 어데 있노? 그래. 이제 앞으로  계속이 문제입니다. 계속하면 뭐 그래만 힘써 나가면 아무 교회 가도 설교  모자란다고 배척은 안 당합니다.

 이러니까 자꾸 은혜를 끼쳐서, 엊저녁에도 은혜를 모두 많이 받았는데 인제  계속하지 안하고 교만하면 헛일이라. 고래 내가 와 가지고 말하기를 '네가 과거에  친했던 그런 친구,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손해케 하는 것이니까 네가 과거에  친한 친구 그런 걸 똑 잡아떼 버려야 되지 접하면 안 된다.' 하는 그걸 내가 주의  말을 줬습니다.

 인제 설교로 그래 내가 딱 세 번 시켜 놓으니까 그동안에는 만날 여가도 없고,  '만나서, 만일 만나서 애기하면은 주님과 멀어지기 때문에 이 설교에 수치당한다.

이러니까 아직까지는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셔 힘을 쓰다 보니까 그런 데 접선이 없는데, 그만 접선만 있으면 죽어 한 번  만나 죽는 독이 있고, 열 번 만나 죽는 독이 있고, 두 번 만나 죽는 독이 있고, 세  번 만나 죽는 독이 있고, 만나서, 한 번만 만나도 죽는 그런 독이 있어. 이걸  알아야 되지, '나는 어데서 뭣 먹으니까 내가 지금 그 독이 들어와서 내가 죽는다.'  이걸 알아야 되지 자기가 그 독으로 인해서 손해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 독의  손해를 모르면 저는 죽지 뭐 별수가 뭐 있어? 앞으로 계속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라고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본 것은 지금 전국에서 먼데서 여게서 두 시간  말씀을 들을라고 이렇게 왔는데, 재독 듣지마는 재독은 뭐 자기 집에 가서도  테이프만 사 가면 들을 것이고. 왔는데, 지난밤에도 은혜를 받은 줄 압니다. 은혜  받은 것은, 거게 바로 깨달아서 '저 사람이 있는 전심 전력의 충성을 기울여서  하나님이 기뻐 인정하시니까 저래 된다, 나도 첫째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도록  내가 모든 면에 충성을 해서 깨끗하게 해야 되겠다.' 요렇게 생각하면 되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 그거요,  그러고 오늘 아침에 이 사데 교회, 사데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에 꺼꾸로  이등되는 사데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보다는 좀 낫지마는 이 사데 교회는  이게 허무한 교회인데 사데 교회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이  이러니까 일곱 영은 성령을 말했고, 일곱 별은 교회 사자를 말했기 때문에  성령님도 주님이 잡으시고 그 교회 사자도 주님이 잡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  교회는 희망이 있다 그말입니다. 사자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고, 또  성령님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그 교회에 주님이 은혜 베푸시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데 교회는 지금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입니다.

여게 그라면 왜 죽었느냐? '내가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 이  건설구원에 관한 것인데 건설구원은 온전이 표준입니다 온전이 표준이오.

행위구원인데 행위구원은 온전이 표준입니다. 그러면 온전된 행위가 구원되지  온전치 안한 것은 구원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행위에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하는 이 말은 행위 구원에는 온전이  표준이기 때문에 온전이 아니면은 구원에 거게 참가를 못 하게 됩니다. 참가는 그  전체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고 개별 개별의 그의 시간 시간의 행위를 말한  것인데 한 시간 그 시간은 온전한 행위가 됐으면 구원에 참가하고 온전치  못했으면 구원에 참가를 못 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표준은 행위 온전이라. 온전한 행위만 구원이 되지 온전 안 한건  구원이 안 된다는 것을 여기 똑똑히 밝혀서 말을 했는데.

그러면 온전한 행위의 이 구원을 얻는 데에는 뭘 하면 되느냐 하는 걸 여기 간단  명료하게 말씀해 놨습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 '실상은 죽어 있다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 또 '온전한 행위, 또 그다음에 흰옷 입는 것, 또 '횐옷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 또 '생명책에 기록한 것을 흐리지 안하고,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생명책에 기록된 거는 하나님의 공심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기록된 것인데 제가  행위에서 잘못했기 때문에 흐린다,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흐린다  말은 닦아 버린다 말이오. 생명책에서 닦아 버려. 예수님의 대속으로 생명책에  기록이 됐는데 제 행위로 인해 닦아 버린다 말이오. 흐린다 말은 닦아 버린다  그말이오. 지워 버린다 그말이오. 그러면 지워지지 안하는 것, 또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아노라 하는 것.

 그러면 이런 좋은 점이 뭘로 되느냐? 이 좋은 점이 여게 꼭 두 가지 가지고  됩니다. 두 가지 가지고.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도 요 두 가지만 하면 죽은 것이  살아나고, 또 횐웃 입는 것도 요 두 가지 하면 살아나고, 또 온전한 행위도 요 두  가지 하면 살아나고. 또 주님과 동행하는 것도 요 두 가지 하면 살아나고,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안하고 그대로 유지 되는 것도 요 두 가지 하면 돼지고, 또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그를 인정하는 것, '안다 하리라 그러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주님이 '이는 내가 다 책임졌습니다' 하면 그에게 대해는 전부  다입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사활의 대속을 했는데 '이는 내가 이를 위해서  사활의 대속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건 전부 내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면 다 돼.

'내가 책임을 지되 요면 요면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하면 그게 내나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그러면 둘째 사망이 되고 마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이게 뭐이냐? 이 모든 잘못된 거 완전히 회복하는 데에는 간단한 두  가지만 하면 돼.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받은 것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지켜서 잘못된 거 있으면 고치면 되는 거라. 받은 것은 생각하고, 받은 것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지켜 행하면 돼. 들은 건 지켜 행하는 것.

 받은 것을 생각한다는 건 뭐인가? 그것은 이번에 가서 배울 때에 뭐라고  배웠습니까? 영감이라고 배웠지요? 성신의 감화가 왔을 때 자기가 어떻던가?  성신의 감화가 왔을 때에 어떻던가 하는 그것을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산에서 은혜를 받았든지, 성신의 감동을 받았든지, 집회에서 성신의  감동을 받았든지. 자기가 그러면 큰 환난이 나 가지고 죽을 지경될 그때에 성신의  감동을 받았든지, 어짜든지 성신의 감동받을 그때의 자기 마음도 있고, 생각도  있고, 성질도 있고, 인품도 있고, 또 욕망도 있고, 자기의 겸손도 있고, 진실도  있고, 모든 허영과 허욕을 고쳐서 깨끗한 것도 있고, 있으니까 자기가 성령이 오셔  가지고 자기에게 어떻게 역사하신 그때에 내가 어떻던가 하는 그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안 됩니다.

 여게 받은 것이라 말은.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내게 와서 역사하시는 그 성신의  역사를 자기가 받은 것입니다. 자기가 성신화된 게 있어. 성신화된 게 있고  변화된 게 있기 때문에 그때외 자기를 항상 놓지 말아야 돼요,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라' 하는 것은.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수십 년 전에 은혜받은 골짜기나 은혜받은 돌팍, 은혜받은  굴, 은혜받은 무슨 그런 자기의 경우,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제일 불행스럽고  아주 그때는 참 절망이고 죽을 지경이라고 하는, 인간으로서 다시 그 이상이 없는  가장 그 어려운 때, 가장 어려운 때, 가장 자기가 비참해진 때, 그때가, 사람이  그리워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그럴 때에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때만치 좋은 사람이 없어. 그때 같은 사람 돼지면 다 성자 돼지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그 사람에게 무슨 아무 역경이  없이 그저 술술 밥먹고 평안하게 아무 간섭 없이 그래 지내가는 그거는 참  마디도 없고 줄기도 없고 그건 죽은 행위입니다. 사람은 굴곡과 파란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은 하는데 그거  안 받는 사람은 항상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꼭 같소. 자기가 처음 믿을 때나  뭐이나 꼭 같소. 아무 감각도 없고 그런 거, 그런 것은 그게 미직지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버려 둔 거라.

 이래서. 사람이 일생 동안 자기로서 제일 범죄했을 때에, 또 일생 동안 자기로서  제일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자기로서 일생 동안 제일 절망을 당했을 때에, 그런  역경을 하나님이 고치시기 위해서 그런 것을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줄 때에 누가 그거 안 당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그러런 그럴 때에 자기가 어떤 자기였던가? 그럴 때에 받은 것이  무엇인가?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던가? 어떤 사람이  되었던가 하는 그것을 항상 생각해야 되지 그거 잊어버리면 안 돼요. 그거 하나  생각하는 것, 큰 것 작은 것 모두 다,  그러니까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 데 그거 그 시가에 참. 구경 좋고 또  등산 가니까 좋더라. 이제 관광 가니까 좋더라 그런 걸 찾지마는 믿는 사람들은  받은 것을 찾고 있습니다. '아무 데 가서 내가 은혜를 받았다. 아무 데 가저 내가  그때에 깨달음을 받았다, 성신의 감화받았다.' 하는 그것을 지내간 것을  잊어버리지 발고 그것을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그걸 생각해서 그때의 사람으로 돌아가 가지고 그 사람을 자꾸  가지고 놓지 안하면 그 사람은 그때에 그 환경을 만드신 이가 주님이시요 그때에  거게서 하나님이 성신의 감동으로 자기에게 참사람을 찾아서 깨닫게 하신 이가  주님이기 때문에 생각하고 놓지만 안하면 그 사람으로 자꾸 계속해. 그 사람으로  계속하면 자꾸 거게서 자꾸 자라가고 자라가기 때문에 자기는 후퇴나 부패나  속화가 안됩니다.

 이래서 '어떻게 받았으며 또 어떻게 들었는지 들은 것을 자꾸, 들은 대로는 내가  지켜서 행해야 되겠다, 들은 대로는 지켜서 행하고 성신의 감화를 받은 대로는  놓지마. 그것이 하나님이, 세계에서 제일 큰 죄에 빠진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제일 큰 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세상에 제일 불행을 만난 사람이 하나님을, 제일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굴곡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데 떨어지면서도, 떨어지면서도 '하나님이 이렇게  지금 떨어뜨리니까 안 떨어질 수 없고 떨어뜨리니 이 떨어뜨리는 것은 당신이  뭣을 들어 올릴 그 당신의 이런 계획이 있다' 하는 그런 것을 보기 때문에 아무리  떨어져도 거게서 소망 가지고 하고. 아무리 높아져도 '이게 지금 내가 자꾸  높아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기서 한번 흔들어 떨어뜨려 가지고 나를 또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그 섭리를 자기가 깨닫는 사람들은  자꾸 자라갑니다.

 이래서 '어떻게 받았으며' 하는 것은 성신의 감화가 왔을 때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됐던가? 성신의 감화를 받는 환경을 평온한 데서도 받는 수가 있고, 역경에서도  받는 수도 있고, 또 여러가지 참 두려움에서 받는 수도 있고 아주 절망에서 받는  수가 있고 있는데, 그래서 성령의 감화가 자기에게 와서 역사한 그것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생각하면 돼, 그거는. '아 그때 주님께서 나에게 이와같이  역사하셨다' 해 가지고 생각해 가지고 그 사람이 돼 버리면 돼. 그 사람이 돼  가지고 나가고 또 들은 것은 자꾸 자기가 실행을 해서 고쳐 나가고 이 두 가지가  우리에게 제일 회복되는 그런 유일한 방펀입니다.

 그러니까 왜 그리 되는가? 제가 생각한다고 왜 되고 지킨다고 어찌 되는가?  되는 것은 일곱 영과 일곱 촛대를 주님이 장중에 잡으시고 계시기 때문에 이 두  능력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거창 집회 때에 그때에 받은 것을 잃지 말고 들은 말씀을 지켜 행하면  앞으로 썩 커 올라갈 것이고 또 그라다가 내나 받은 것 다 잊어버려서 그만  펑소가 돼 버리고 들은 말씀 떠내려 보내서 자기는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고  실행으로 가지지 안하면 자기에게 아무 소용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제는 성경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방학 때에 지금 바다에 놀러 돌아다니는데  공부하러 온 게 이백사십구 명인데 이 부모네들이 눈이 뜨이면 여기 참석을  시켜서 공부를 시키면 그게 그까짓 거 대대학 시키는 것보다 나은데 이  부모네들이 꼭 자식을 다 망쳐.

 그러고 지금 중간반은 '요즘은 중간반 새벽기도는 계속하여 거창 집회 목사님  설교 말씀을 재독하고 있으므로 학생들이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학부모님들은 빨리 돌아가셔서 중간반 학생들을 새벽기도에 참석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중간반 광고입니다. 그라고 주일학교 학생들도 빨리 가서 일깨워서,  새벽기도 참석시키는 그게 뭐 온 천하 학문을 다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보면  하나님으로 자기 전부를 삼지 안하고 세상 지식 가지고 뭣을 삼은 그 굴레를  벗어 버리지 안하면은 못 삽니다. 그 보자기를 벗지 안하면 헛일이오.

그라고 기도를 거창 기도원에 도로 문제, 또 그 뒤에 산을 정지해서 우리  천막터를 만들라는 그 문제, 또 우리가 산을 사야 되는 그런 문제 그런 걸 위해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할 때에 넣어서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기도로 가지고 모든  '일을 성공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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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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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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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목회충성/ 빌립보서 3장 8절-11절/ 800409수새 선지자 201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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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목회충성-처녀성/ 빌립보서 3장 10절-11절/ 800410목새 선지자 2015.10.30
229 목회학-교역자의 자세/ 마태복음 24장 40절-51절/ 860204화새 선지자 2015.10.30
228 무신론에 분개하고 결사기도/ 열왕기하 19장 20절/ 880611토새 선지자 2015.10.30
227 무지 두 가지를 회개하자/ 누가복음 16장 1절-13절/ 810412주전 선지자 2015.10.30
226 무한한 관심의 사랑/ 요한복음 15장 1절-2절/ 800314금새 선지자 2015.10.30
225 무한한 영광을 마련하는 법/ 골로새서 3장 1절-4절/ 791214금야 선지자 2015.10.30
224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마가복음 11장 20절-26절/ 850910화새 선지자 2015.10.30
223 묵은둥치와 새움/ 고린도전서 13장 1절-3절/ 890511목새집회 선지자 2015.10.30
222 문서인도, 영감인도, 섭리인도/ 에베소서 5장 15절-17절/ 810324화새 선지자 2015.10.30
221 물과 피와 성령의 역사/ 요한일서 5장 7절-9절/ 820429목새 선지자 2015.10.30
220 물질 바로쓰면-양심 밝아짐/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830627월새 선지자 2015.10.30
219 물질 바로쓰면-양심 밝아짐/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30530월새 선지자 2015.10.30
218 물질관/ 디모데전서 6장 3절-10절/ 820926주전 선지자 2015.10.30
217 물질관/ 디모데전서 6장 3절-10절/ 820925토새 선지자 2015.10.30
216 물질관/ 디모데전서 6장 5절-10절/ 820924금새 선지자 2015.10.30
215 물질관/ 디모데전서 6장 5절-10절/ 820923목새 선지자 2015.10.30
214 물질관/ 디모데전서 6장 3절-10절/ 820926주후 선지자 2015.10.30
213 물질관/ 고린도후서 9장 6절-11절/ 790916주전 선지자 201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