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교역자의 자세

 

1986. 2. 4. 화새벽

 

본문:마태복음 24장 40절∼51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성경에 많은 해석을 붙이는 사람이 성경에 대한 유력한 사람이요 또 잘 가르치는 사람이라 이렇게 생각한 그런 생각은 아주 망할 생각입니다. 또 사람이 성경을 가르치든지 설교를 하든지 할 때에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야 되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긍정받고 인기를 끌어야 하겠다 하는 그 생각도 순전히 죽여야 할 옛사람이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열방을 파괴하고 파멸하고 건설하고 뽑고 심는, 피조물의 힘이 아닌 지극히 큰 능력이 하나님 말씀과 같이 역사하는 것인데, 이 능력에는 근방에 가지도 않는 것입니다. 다 그것은 피조물 행위인데도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들어서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양의 껍질을 입은 이리요 절도요 강도입니다. 그것이 오래 나가면 이단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보든지 듣든지 읽든지 증거하든지 할 때에는, 첫째가 이 말이 하나님의 단일 심판에 인정받을 수 있나 없나 하는 그것을 첫째 생각해야 합니다. 온 천하 사람에게 찬성을 받으면 뭣할 것입니까? 오늘 세계에 온갖 노벨상들이 많이 있은데 그런 것은 세계에 인정받는 것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에 인정받는 것들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째로 생각하기를 내가 배우는 것이나 성경을 읽고 듣는 것이나 또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하나 안하나 하는 그것을 첫째로 중점으로 둘 것입니다.

그럴 때 옛사람은 다 용납되지를 못하고 말라 죽고 쫓겨 갑니다.

둘째로는, 내가 이래 증거하는 일에 크고 작은 모든 개별개별을 주권 섭리하시는 이분이 나의 증거하는 데에, 내가 목회하는 데에, 내가 성경 보고 행동하는 데에 지극히 큰 능력이 나와 같이 하나 안 하나 요것을 둘째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관심을 가지지 안하고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유명해도 알곡은 없고 끝은 멸망받습니다. 마귀란 놈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반 거짓말을 하고 온 거짓말을 하게 해서 참을 버리고 거짓을 가지도록 이렇게 만들기 때문에 전부 우리가 들어서 옳고 바른 것을 다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또 안 됩니다. 재림도 가까왔고, 말세지 말을 당했기 때문에 전부 말 교회가 돼서 말은 전부 천사 같은 말 다하고 정통 진리 말 다 할 수 있는 때가 됐으니 지금은 기적과 표적과 축복을 구할 때다. 교인들도 이걸 구해서 이것이 없으면 가짜 종인 줄 알라. 이것이 없으면 타락한 교회인 줄 알라. 이 역사가 없으면 거게는 참 생명의 도가 아니라 하는 것을 인정하도록, 예수님 당시에 그때에 육체의 이스라엘 말년인데, 그들이 말할 때마다 이구 동성으로 ‘자기가 이렇게 말하면 하늘에서 오신 메시야인 것을 우리가 뭘 보고서 믿겠느냐? 표적을 보여라’ 그분들은 그렇게 타락했다 해도 오늘 신령한 교회들이 타락한 것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왜? 너무 말은 많으니, 이 제사장은 이렇게 저 제사장은 저렇게 이 서기관은 이렇게 저렇게 이 바리새 교인은 저렇게 이렇게 다 말을 하는데 이것을 다 판단할 수가 없으니까, 이 말도 말 들어 봐서는 다 진리요 정통이요 저 말도 진리요 정통이요 그것을 구별할 만한 그런 지능이 자기들에게 없는 것인 줄 알고, 우리는 말을 표준하지 말자. 말이야 어떻게 됐든지 말은 다 백 점이다. 거짓말을 하든지 참말을 하든지 마귀란 놈이 내놓은 말이 많기 때문에 온갖 말을 끌어 대서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킬 수는 있기는 있기 때문에 내 이성에 이해되고 감각되고 감동되고 이라면 됐다 하는 그런 껍데기 신앙을 버리고 주님이 말씀을 하셔도 ‘하늘에서 온, 우리가 믿을 만한 표적을 보여 달라.’ 그들은 우리보다는 진실했습니다. 오늘에는 거짓인가 참인가 하는 그것은 생각지도 안하고 거짓부리가 되든지 지옥으로 인도하든지 천국으로 인도하든지, 하나님의 심판에야 이렇게 정죄받든지 이렇게 인정을 받든지 생각도 없고 우선 자기의 주관이라는 이 주관에 맞으면 좋아합니다. 그것만 움직이면 좋아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리 잘 제작한 영화라도 한 번 본 것은 세월이 없어 지나가 버립니다. 또, 새 것을 꾸며내야 됩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도 이미 사람들이 한번 끄슬고 지나간 것은 그것은 인기가 없습니다. 또 새것을 뭘 꾸며내서 새 미혹을 줘야 인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서, 속에서 고름이 줄줄 흐르는 병든 자가 하도 간청해 쌓아서 가 가지고서 기도해 주고 즉시 나았습니다.

그 사람이 생활의 어려움을 따라서 딴 데로 이사를 가 가지고 만화를 그리는데 만화를 그려 가지고서 지금 돈을 얼마나 벌었든지 부자가 됐답니다. ○○○권사님, 얼마나 부자가 됐어? 혼자 벌어 가지고서 많은 가족들을 다 살리고 있대요. 그림 그려 가지고서. 병신입니다. 앉은뱅이입니다.

어짜든지, 이 세상에서는 옳고 바른 참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영생의 말을 하는 이 지식도 있고 배암의 지식이 능란하게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내가 설교를 하든지 설교를 듣든지 할 때에 영생의 말씀을 내가 듣느냐, 배암의 말을 내가 듣고 있느냐 요것을 구별을 할라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래도 저래도 자꾸 주석해서 해석만 해서 여러 가지로 이렇게 해석만 붙이면 위대하다. 내가 어떤 목사, 그 목사가 지금 어데 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번 와서 ‘목사님 이 성경에 대해서’ 그때 제가 가르칠 때에 혹 첫째는 이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라, 셋째는 이것이라 고것을 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게 대해서 첫째는 이것이고 둘째는 이것이고 셋째는 이것이고 네째 이것이고 다섯째는 이것이고 이래 되면 어찌 됩니까, 이게 어떻습니까? 이래 해석을 하면 바로 됐습니까?’ 얼토당토 안 할 자타를 죽이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얼토당토 안 한 것입니다. 아무나따나 해석만 붙이면 되는 줄 압니다.

나는 그걸 몰랐는데 ○○성경인가 뭐인가 그 성경을 가지고서 성경 파는 장사가 우리 교인 가운데 그런 책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성경을 다 샀다고 하는데, 내가 이번에 주보를 내는 것을 ‘그 주보를 다 좀 가져오라 그것을 우리가, 주보를 낼 판이면 의논을 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구원에 손해를 보이지 않는 그런 것이라야 되지 남의 구원을 절단내는 일이라면, 우리에게는 심판이 있기 때문에 가져오라’ 그렇게 말을 한 것은 제가 이런 주보 저런 주보, 몇 우리 진영의 주보를 제가 보는 가운데에 ‘이 사람들이 나는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안했는데 이것이 어데서 배워 가지고 어데서 와 가지고 이런 쑥물이 왔는가’ 그래서, 그거 이상하다 했는데 우리 집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성경을 가지고 와서, 새벽에 우리가 권찰회하니까 시간이 다 지나가도록 뒤에 와서 앉았다가 다 볼일 보고 오랜 시간을 지나고 난 다음에 나한테 와서 무릎을 꿇고 ‘목사님 이것을 목사님을 드릴라고 선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래.

‘뭐인데?' 이라니까 `○○성경이라는 성경입니다.’ 그래 내가 있다가서 보지도 안하고 ‘나는 선지 사도들이 기록한 신구약 육십 육 권으로 되어 있는 성경만 나는 받지 ○○이라는 그런 성경은 나는 모르는 성경이고 그런 성경은 내가 용납지 않는다. 그거 무슨 성경인지 모르나 그 ○○이라는 거 붙인 것이 벌써 그거 아마 사람 이름인지 뭐인지는 모르지마는 그것이 벌써 성경이면 신구약 성경이라고는 말할 수 있지마는 ○○이라는 것이 뭐꼬?’ 이라니까 ‘사람이라' ‘○○이라는 그자가 틀렸다. 왜 성경이 제 성경이라고 제 이름을 붙이노 붙이기를? 성경에다가.’ 안 한다 하니까 이걸 기증으로 한다 하기 때문에 ‘나는 기증은 받지를 안할 것이고 그러면 그거 성경이 어떤 잘못이 있는지 그것도 내가 보지도 안하고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뒤에 가서 오히려 정죄를 받기 쉬울 터이니까 내가 그러면 그걸 한번 보겠다 보는 데는 내가 돈을 주고 보겠다. 돈을 그래 만 삼천 원이라든가 얼마인가 해서 돈을 주고서 그래 그걸 내가 보지 안했습니다.

보지 안하고 이랬는데, 그 뒤에 말 들으니까 ○○○목사님이 여게 신학 강좌할 때도 우리 예배당에서 그 책을 팔고 또 교학실에도 ○○성경 사라고 광고를 붙여 놓고 마구○○성경이 대 인기를 끌고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싹 다 뺏들어서 그리 마구 집중되고 안 산 사람들이 없다는 그런 말을 듣고서 비로소 내가 ○○성경이라는 것을 처음에 대할 때에 마귀 역사라 하는 것을 내가 첫 눈에 봤고 그래서 그것을 시간 있으면, 어떤가, 어떤 걸로 그런가 이것을 볼라고 했었는데, 안 보고 있었는데 우리 교역자들이 다 샀다고 하니까 아무래도 이거 봐야 되겠다 싶어서 제가 그것을 조금 봤습니다.

○○톰슨 성경 산 사람 손들어 봅시다, 교역자 쳐 놓고,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 앞에 죄 짓지 말고. 뻐뜩 들어 보십시오? 녜. 산 것은 우리가 이단서도 사서 그것을 잘못된 것인 것을 알아야, 우리는 사람을 지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닌 것을 아닌 것으로 알아야 바로 지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뜻으로 샀으면 괜찮고 ‘야, ○○성경이라는 별 성경이 나왔으니까 못 듣던 소리고, 별 성경이 나왔으니 별게 나왔으니 먹어보자. 별게 나왔으니까 사 가지고서 내가 여게서 무엇인가 얻어 보자 하면은 고것이 막바로 호기심이라는 원죄입니다. 고 죄를 뽑아 버리지 안하면 저는 어떤 유명한 사람이 돼도 헛일입니다.

그것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이게 틀렸다는 것을 보고 깨닫고 하는 것은 좋습니다.

책을 냅두려거든, 거게다가 이단이란 말을 써서 그래 책을, 장마다 다 중간 중간에 써서 둬서 뒤에 후배들이, 후손들이 볼 때에 ‘이거는 이런 서적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그렇게 가지고, 그렇지 안하면 다 집어 뜯어서 없애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딴 짐을 지우지 않겠다. 지금 신앙 생활하는 그대로 하라. 사탄의 깊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 위에 보면은 니골라당의 교훈이요, 이세벨의 교훈이요, 다 거짓 선지자들의 교훈을 말해서 사탄의 깊은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탄의 깊은 것이라 말은 사탄의 지식, 배암의 지식에 깊고 오묘한 것을 말하니, 깊고 오묘한 데 들어가 놓으면 여러분들이 나오지 못합니다. 나올 만한 그런 시간도 없고 지능도 없습니다. 깜깜 어둡습니다. 내가 아는 대로 여게 앉은 여러분들이 심령이 어둡습니다. 어두운 걸 내가 보고 있습니다. 불교의 불경을 가서 파고 들어가면 거게서 나올 만한 시간도 없고 들어가다 보니까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도 들어가고 보니까 너무 세월 많이 지냈기 때문에 거기 다 나오기 전에 죽습니다. 그런 게 다 사탄의 깊은 것입니다.

모든 이런 저런 철학들을 말하는 그런 것도 다 사탄의 깊은 것들입니다. 사탄의 깊은 것은 대학자들이 무책임하게 집어 내놓은 그런 것들이 다 사탄의 깊은 것들입니다.

거게 제가 보니까, 창세기 1장에 천지 창조에 대해서 하나님은 분명히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했다고,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을 했는데 ‘천지 창조한 거는 엿새 동안에 들어가지 안했다. 첫째 날 둘째 날 하는 것은 빛을 지을 그때부터 말해서 엿새를 말하는 것이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는 창조라 하는 것은 거게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이 천지의 모든 근본되는 근원인 이 재료를 창조해 놓고 난 다음에 그 뒤에 분류 창조한 것이 엿새 동안에 창조했지 그 창조는 억억억억만 년도 더 걸렸다. 더 걸렸다. 엿새 동안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주와 영계를 엿새 동안에 지었다는 말은 이거는 아주 무식한 그런 미개한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지 이는 지성인들이 말하고 있는 거는 아니다’ 이래서 엿새 동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 성경에 몇 번이든지 있는데 이것을 다 부인해 버렸으니까 신구약 성경을 처음부터 부인하도록 딱 만들었습니다. 요것이 사람들 속에 믿음을 싹 뽑아 버려서 하나님 말씀이 절대성이라는 것을 그것을 다 없애서 깨뜨리고 만 것입니다.

또 이뿐 아니라 어떻게 거기다가 오만 것을 기록해 놓고서 성경이라고 말합니까, 인간의 말을 기록해 놓고 성경이라고 말합니까? 그러면 어떤 자가 말하기를 ‘관주 성경은?’ 관주 성경은 성경에 있는 단어를 이 단어가 여게도 있다 저게도 있다 말한 것이지 그것이 사람의 말을 갖다 놓고서 성경이라 그렇게 한 관주는 없습니다. 이 ○○성경이라 하는 이것은 성경에 인간의 말들을, 이 모든, 귀신들의 한 말들을, 기독교의 첫째 적이 되어 있는 고등비평가들의 말들을, 모든 이런 저런 우리의 적이 되어 있는 학자들의 말들을 기록해 놓고서 ‘성경’이라.

그 책이 성경이라고 말했으니까 그 말도 성경이라 말 아닙니까? 틀립니까? 이래도 눈이 어두워 못 본다 그말이오.

하나님에 대해서 엘로힘이니 엘로알이니 뭐이니 이래 가지고서, 이는 단수이다, 복수다, 문법상 이거는 복수다 이래 가지고서 ‘여게 하나님으로 기록한 이 단어는 이방 모든 신들의 이름을 기록할 때에, 신들을 표시할 때에 이것으로 표시했다. 모든 재판관들을 표시할 때에 이것으로 표시했다. 이러기 때문에 이는,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삼위 일체라는 복수가 여게서 나왔다’ 우리는 그 엘로힘이니 엘로알이니 하는 그것 보고서 삼위 일체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을 짓되’ `우리가' 했으니까 복수라는 것을 거게서 제일 근거를 두고 그다음에는 성경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고 똑똑히 말씀을 해 놨기 때문에 우리는 거게 근거해서 삼위 일체를 믿는 것입니다.

또, 알 것은 ‘모세 오경은 그후에 기록을 했기 때문에 모든 이방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 모든 이종교 모든 미신 그런 것들이 내놓은 그 말을 기독교에서 인용해 가지고서 신구약 성경을 기록했다’ 요렇게 말하면 고것만 해도 인본주의로 죽었습니다. 고만하면 죽고 죽고 더 죽고 남았습니다. 살 희망이 없습니다. 고걸 회개를 해야 되지.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그 말씀이, 사람들이 귀신 주장대로 하는데 이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사용하는 말을 인용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는 없는 가운데에 사람을 지었고 사람의 두뇌를 지었고 사람의 언어를 준 그분이 인간들에게 줬던 거 인용한 게 아니고 하나님 그분이 내나, 창조주 그분이 당신이 창조하신 말씀, 당신이 낸 말씀 그 말씀을 가지고서 신구약 성경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고, 기록은 우리에게 됐지마는 기록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은 인간의 말을 따라서 인용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들이 따다가 이렇게 저렇게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이 말씀이 인간들이 사용하고 난 나머지기를 사용했느냐? 하나님이 사용한 그 말씀을 인간들이 끌어다가 사용하고 있느냐? 성경 기록은 그후에 돼도 이 성경의 내용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은 모든 말이 있기 전에 있었습니다. 있기 전에, 우리에게 문서로 표시는 그후에 모세가 표시했지마는 그 전에 있었습니다. 너희들이 이 동산에서 다스리고 지키고 먹고 먹지 말아라 하는 그 말이 인간의 말 나고 난 다음에 난 말 아닙니다. 나기 전에 난 말입니다. 나기 전에 그때 다 된 말을 그것을 기록은 그후에 됐지마는 인간들의 말을 따다 한 것 아닙니다. 요것도 중요합니다. 요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하는, 그 지방에 쓰고 있는, 쓰고 나머지기 그 말을 끌어다가 이것 표현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요것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 하는, 하나님의 그 신성에 다 정죄가 되고 저촉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성,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그 신성, 그분이 어떤 분인데, 그분이 지금 우리에게 성경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말을 냈습니다. 그분이 낸 말 그분이 쓰시는 것이지 인간들이 만들어 낸 말 그분이 쓰시는 것 아닙니다. 마귀라는 말도 그분이 내셨지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아닙니다. 모든 이단들의 배암의 지식이라는 이것도 하나님이 배암을 통해서 당신의 구속을 위해서 필요 있기 때문에 예정된 고대로 낱낱이 말 한 마디도 다 창조해서 나온 것이지, 말 한 마디도 그 말 한 마디의 근원이 당신 한 분에게 있습니다.

수많은 말이 있으니까 이 말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니고 이 근원은 여럿이다.

이원론 말하는 자는 이단자입니다. 삼원론 말하는 자는 이단자입니다. 말은 인간들이 내놨다고 하는 그 사람의 말은 범신론자요 그 사람은 다 범원론자입니다. 모든 것은 다 원인이 따로 있다 하는 자요. 이것이 예수교와 어떻게 성경과 함께 일치가 되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벌로 날뛰면 죽도록 해 봤자 하나님 앞에 심판받고 구원은 못 이룹니다. 숫자 많은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일 심판 앞에 가서 심판을 받아야 되고 심사를 받아야 되고 검사를 받아야 될 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인지 몰라도 ‘일원이라’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 제가 며칠 전에 열 두 가지를 기록해서 줬는데 고 말은 요래 붙여도 안 되고 조래 붙여도 안 되고 고 말을 빼도 안 되고 안 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알고 이렇게 해야 되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라 말은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는 원인 없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존재의 원인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일원론, 근원은 하나이라.

다원론, 근원이 많다. 다원론을 말하는, 범원론을 말하는 것은 이것은 다 마귀들이 거짓말로 만들어 냈는데 마귀들이 거짓말 만들어 낸 것도 당신의 구속을 위해서 당신이 마귀를 시켜서 요렇게 만들어 냈지. 당신이 마귀도 당신이 만들었고 죄도 당신이 만들었습니다. 의도 당신이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오늘 학자들은, 정통에서는 죄를, 마귀를 하나님이 만들었다 소리를 담대히 못 합니다. 왜 못 합니까, 못 하기를? 뭣 때문에 못 합니까, 못 하기를? ‘그러면 죄를 하나님이 만들었으니까 하나님도 죄가 아닌가?’ 하나님은 그 차원이 그 종류가 그게 아니기 때문에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죄도 의도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이의 목적이 선하시고 당신이 선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어떤 걸 한다 해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더러워지거나 변해지거나 하는 분이 아니시요 그분이 완전자시요 영원 불변자이십니다. 그분을 모르기 때문에 그분에게 대한 역사를 해석을 담대히 못 하는 것은 그분에 대해 무식한 소행입니다.

이래서, 마지막에 꿰어 맞추기는 보니까 ‘하나님은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라, 복수의 하나님이라, 삼위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요 엘로알이라는 요 히브리어 여게에 근거해서 여게서 표시하고 있다.’ 요게 사이비하지 않습니까? 요 성경을 보는 자는 요 가운데서도 지식주의자 ‘요런 말을 이상한 말을 해야 사람의 인기를 끌까, 조런 이상한 말을 해야 인기를 끌까, 요래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유식하다고 할까, 어떻게 해야 내가 유식한 말을 할까?’ 고것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증거하는 것입니다. 자기 알라고 하는 것이요 자기 증거입니다. 고만해도 멸망이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아무나따나가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말 하는 것을 하나님이 잘한다 이렇게 찬성해 주든지 그리 안 하면 ‘이놈’ 쥐 박아서 멸망을 시키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래서, 모든 쓸데 없는 말들을 이것을 척 기록해서 벌써 ‘이거는 성경이라’ 어데 그게 성경입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사람의 말로 도를 삼았다 말은 성경 삼았다 말이오. ‘사람의 말로 도를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다’ 이랬는데 그때보다 지금은 교묘하게 뚜렷이 성경이라 하고서 인간 말을 해 가지고서 이제.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신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신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분은 한 분뿐이다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으로 우리가 부릅니다.

이 하나님을 배암의 말로서 ‘이래서 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 원어가’ 히브리어 그게 하나님입니까? 히브리어 그까짓 게 하나님입니까? 헬라어 그까짓 게 하나님입니까? 아니오. 무슨 가치 있소? 하나님이 그것으로써 표현했기 때문에 가치 있지 히브리어 헬라어가 아무 가치 있는 거 아닙니다. 거기 생명 있는 거 아니오.

내가 어떤 자가 초대를 해서 내가 갔었는데 거게 ○○신학교 학생이 거게 같이 초대받아 왔었습니다.나는 무식하고 그분들은 학자이기 때문에, 말하는 가운데에서,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했는데 히브리어 박사들은 예수를 안 믿는 박사라도 구약에 대해서는 히브리어 모르는 목사들보다 성경을 더 잘 알고 그렇게 더 낫게 안다고 그라면서 증거를 하기를 히브리어 박사를 끌어다 대면서 증거를 합디다.

내가 좋은 말로 ‘그것은 잘못 가르쳤는데, 인간의 말로 신구약이 이렇게 기록됐지마는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는데, 믿는 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깨닫지도 못한다고 말했는데,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알려 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말하니까 안 그렇다고 변론을 하기 때문에 내가 그 자리에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어데 그따위 이단 소리를 하냐고서, 어느 교수가 그렇게 말하더냐고, 말하기를.

그러면, 성령 없고 마귀가 주장하는 자가 세상 히브리어 지식이 능하다고, 헬라어 지식이 능하다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보다도 성경을 낫게 안다 말이냐? 그러면 하나님의 도가 인간의 지식에 이 인간의 지식에게 지배를 받고, 그속에 성경 안에는 내재적 영감도 있고 또 우리 속에 내재 영감이 있고 조명의 영감이 있고 역사 영감이 있어 가지고 순전히 영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변화돼 가지고 알게 되는 것인데, 그러면 예수 믿지 안하는 사람 속에 마귀가 주장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했는데,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주관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마귀가 주관하는 그 사람이 성경을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보다 낫게 안다 말이냐? 고함을 질렀습니다. 어데 그따위 소리를 하고 하느냐고서 그때 거기 동참한 사람이 이 자리에 앉아 있을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그분이 가서, 돌아가서 생각하고 생각했는지 나하고 이래 벌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신앙이, 깨달음이 맞다’ 그라고 있습니다. 그분이 어떤 데 가, 내가 말 들었는데 어떤 데 가서 증거할 때에 그분이 말하기를 ‘한국에’ 아무것도 아닌 저인데 ‘이 사람 있는 것이 한국에 행복이다. 한국의 보배다.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보배다’ 그 사람이 집회 때에 그런 말 한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와 가지고 나한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이거 처음 듣는 말일 건데, 신구약 성경을 히브리어 헬라어로 기록했는데 이 세상 사람들이 쓰는 그말을 인용해다 쓴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기 위해서 그 말을 냈고 그 말을 숭상했고 그 말을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 제일 인정하도록 권위 있도록 했고 이래 가지고서 이 말로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에 넓게는 못 해도 세 가지는 기억하고 증거를 하십시오. 첫째는, 단일 심판, 심판은 단일 심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설 사람들입니다. 공심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면제됐지마는, 다 통과했지마는 통과됐다고 우리에게 심판 없는 게 아니고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다 우리가 서 가지고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 내가 정죄를 받나 안 받나, 이 말씀을 주장하는 것이 성령이냐 악령이냐, 이 말이 사람을 죽이느냐 살리느냐, 이 말이 세상 운동, 마귀 운동, 옛사람 운동을 하는 것이냐 새사람 운동을 하는 것이냐 이거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거는 ○○○목사님이 말을 합디다. 이단자가 되는 요소 중에 제일 근본 요소가 뭐이냐? 인기 끌려고 하는 그것이 이단자의 근본 요소다 그렇게 말합디다. 그거 무슨 말인고 하니, 원죄가 뭐이 원죄냐? 원죄는 배암에게서 나온 것인데 원죄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자로 살아야 할 자를 배암이 와 가지고서 제가 그랬기 때문에 ‘너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지 말고 내 중심 네 위주로 살아라’ 해서 위주와 중심을 바꾼 고것이 원죄입니다. 고게 원죄요.

하나님보다 저, 하나님에게 욕이 되는 거보다도 제게 욕되는 거, 하나님에게 영광되는 거보다도 제게 영광되는 거, 하나님 높아지는 거보다도 저 높아 지는 거, 하나님 자랑하는 거보다도 저 자랑하는 거, 하나님 칭찬하고 환영하는 거보다도 저 환영하는 거, 요게 막바로 마귀입니다! 요게 막바로 마귀요! 요게 바로 원죄가 지금 이라고 있는 것입니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 이라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악령 악성 악습으로 이렇게 표현한 이것이 내 표현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에게 알려 줘 가지고서 표현한 것인 것을 나는 믿습니다. 잘못 믿어 심판을 받을란지 몰라도 나는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증거할 때에, 참 뜨거운 국에 멋 모르고 벌로 날뛰지. 우리 한 마디 한 말이 자기 일생 동안 신앙 생활 했다고 해도 고 한마디 고것의 배상을 치르고 나면 아무것도 없을 수 있습니다. 한 마디 말이 여러 수천만 명의 행동을 똘똘 뭉친 것보다도 가치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의 권위를 가진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기야 있든지 없든지 사람들이 따르든지 안 따르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받지 안할 여기에 제일 우리는 주 가치를 삼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대로 했다고 해도 성경에 내가 잘못 깨달음인지 모르나 그래도 우리는 성경을 우리에게 유일한 법칙으로 주셨기 때문에 이 성경을 준해서 성경에 정죄받지 안하도록은 우리가 우리 힘으로써 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성경에 정죄받지 안하도록은.

그래도,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은 바울이 말하기를, 자기 마음에 자책하는 그것도 매우 적은 것로 생각한다 했습니다. 자책할 것이 없다고 해서 됐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모든 깨달음에는 이 면은 이라면은 옳다 싶으지마는 알지 못하심이 없고 그 지식의 무한한 광대하신 그분 앞에 가서 심판받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일방적인 지식이나 편벽된 지식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날까지는 뻘뻘 떨면서 이 심판에 걸리나 안 걸리나 여게 대해서 항상 두려움으로 그날까지 이 모든 과제들을 들고서 가는 그것이 바울의, 성령의 사람의 간증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여론은 매우 경한 것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물론 사람의 여론을 우리가 참고를 삼지마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그것을 옳으냐 그르냐는 가치에 대해서는 아주 상대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말을 했습니다.

이러기에, 암만 우리가 정신 없이 날뛰어도 내가 이 증거하는 이 증거가 하나님의 심판에 가서 정죄를 받나 안 받나, 하나님의 심판에서 인정을 받나 안 받나, 내가 이 증거한 것을 하나님이 정죄할라 하면은 나는 그때 어떻게 하노, 정죄할라 하면은 이 성구로 가지고서 나는 증거를 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성구를 말해 주지 안했습니까’ 자기가 변증할 수 있고, 변증할 수 있는 그 성구가 있지 안하면 자기는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합니다. 성경 말씀에 변증할 성구가 있어야 그래도 거게라도 등어리를 대고야 말할 수 있지 거기 등어리 대지 안하고 무슨 말을 제가,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단에서 마음대로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의 말이 열방을 파괴하고 파멸하고 건설하고 뽑고 심을 수 있는 이것이 우리가 증거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과 같겠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는 전지 전능의 말씀, 주권의 말씀을 우리가 말하고 있습니다. 주권의 말씀을 우리가 증거하고 있는 것이오. 우리가 증거하는 말 한 마디가 천하에 있는 수많은 지식을 다 뭉쳐도 그까짓 거보다 중량이 비교할 수 없이 높은 말씀을 우리가 증거하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증거해야 됩니다.

성경에 맞은 말 말하면 문체가 없어도 좋습니다. 웅변이 없어도 좋습니다.더듬으며 증거해도 좋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그대로 증거 바로했으면 거게 역사하는 능력이 큽니다. 하나님이신 성령이 그 말씀을 붙들고 역사합니다.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실지로 시공한 전능의 진리가 이 말씀을 붙들고 역사하십니다.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붙들고 역사를 하십니다.

그 일은 현재는 보잘 게 없을지라도 앞으로 가면 갈수록,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에서 전파될 것이고 은밀한 것이 다 드러날 것이고 자꾸 확대해서, 일천 년을 지나가니까, 일천 척이라 했지마는 그게 세월을 말한 것입니다. 일천 년이 지나가니까 더 확대되고 더 확대되고 더 확대되고 더 확대되고 충만해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가 증거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증거할 때에 첫째는 하나님의 심판에 인정받나 안 받나 이것을 생각해도 마귀 고놈이 살짝 끌어다가 우리가 보면은 새사람으로 분명히 내가 살라고 시작했는데 가다 보면은 나도 모르게 옛사람으로 바꿔지는 것이 찰나적으로 바꿔지는 걸 보고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지도 안하고 증거하는데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것입니까? 그래도, 우리가 증거하는 것을 욕은 하기는 해도 아는 사람들은 그 증거가 바르다 참되다 옳다 하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 모든 사람들이 다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총공회에 속한 하나님의 종들이 증거할 때에 대설교가가 안 돼도 좋습니다. 대웅변가가 안 돼도 좋습니다. 많은 사람의 인기를 안 끌어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까지 가도 옳다 참되다 인정받을 수 있으면 됩니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히 주장입니다.저는 심판 앞에까지 가서 옳다 참되다 하나님에게 인정 받으리라 그것을 다 절대는 못 붙이지마는 나로서는 전체가 다 백프로 다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한 세력들이 많았는데 조만간에 그 반대한 세력들과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누가 영원히 굴복을 하고 종이 되든지 누가 이제 머리가 되든지, 머리되고 꼬리되는 것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선악간에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다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설교할 때에 성경을 해석할 때나 사람을 지도할 때에,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은 바울이 말하기를 이거는 주의 명령으로 한다. 나도 성령받은 줄 알고 내 깨달음으로 한다 그렇게 구별해서 말을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증거해야 될 것이고, 그거 우리가 가 봐야 압니다. 가 봐야 알지마는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자꾸 돋프고 돋파서 ‘이거는 이라면 이런 반대가 나오고 저런 반대 나오고 이런 학설 저런 학설이 있는데 이 학설과 배치되니까 이거 어찌 되나?’ 많은 성경으로 자기가 증거를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증거했기 때문에 요것은 이렇게 증거할 수가 있다 말씀의 배경이 있을 때에 제가 담대히 증거하지 말씀의 배경 없는 것을 ‘어떤 학자가, 대학자가, 어떤 신학자가,’ 신학자가 학자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무 박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떤 종교 개혁자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떤 부흥사가 무슨 상관 있습니까? 다 그거는 사람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내 배경이 돼 가지고 여게 이렇게 말했다 하면 우리가 안심할 것은 거게서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펴야 되겠고,

둘째로는, 알기 쉬운 것은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시나?’ 그걸 가르쳐서 우리가 은혜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같이 하나 같이 안 하나? 같이 하는 건 사람들의 인기 끄는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자기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이 자기 속에 와 가지고서 내재 역사를 하고 있느냐 하는 그걸 자기가 알 수 있다 그말이오.

내가 ○○에 있는 ○○○목사를 서울로 보낼라고 하니까 안 갈라고 자꾸 반대를 하고서 그라기 때문에 내가 마지막에 말하기를 ‘네가’ 그때 지금 ○○○교회입니다. 그때 ○○○교회인데 ○○교회가 거기서 우리가 새로 나와 가지고서 ○○○교회가 됐습니다. ○○교회에 내가 부임을 시키면서 ‘내가 보내는 것인지 주님이 보내는 것인지 네가 가서 증거를 봐라. 거기 가서 증거를 할 때에 성령이 네 심령을 환하게 밝게 해 가지고서 네 심령 속에 성령이 너를 붙들고 역사하는가 안 하는가 그걸 보고서, 역사하지 안하면은 내가 인간적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게 가지를 말고 다시 ○○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첫째 증거고, 둘째로는, 네가 증거할 때에 네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이 듣는 자들 속에서 역사해서 그분들이 이해를 하고 깨닫고 은혜를 받는가 안 받는가, 둘째로는 외증을 내가 받아라. 내증 받고 외증 받고 두 증거를 받으면 알 수 있으리라.’ 그래 보냈습니다. 갔다 말이오. 나중에 뒤에 와서 만나 가지고서 ‘어떠냐? 네가 나는 반대할 수 있지마는 하나님은 반대하면 네가 화가 있다. 네 속에 역사하기를 하나님이 역사하시더냐 안 하시더냐 안 하시면 가면 안 된다. 그거는 내가 인본적으로 말한 것이다. 네가 다를 때보다 성경이 네가 충만해 가지고서 역사하는 걸 네가 알 터이니까 성령이 너와 역사했으면 하나님이 보낸 것 아니냐?’ 그말을 하고서 이제 가고 안 가는 거는 네가 판단해라, 하나님과 너와의 합해 가지고 판단해라 그렇게 말해 가지고서 ○○○교회로 갔던 것입니다.

그래 보냈습니다. 그런 것도 하나님의 영이 나와 같이 하나 안 하는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언제 내가 ○○○목사님이, 지금은 인제 아주 목사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길이 참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일체 오래 참으신 이 참으심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당신이 참을 수 없는 일을 참으시고 참으시고 이렇게 이 길을 끌어서 나를 걷게 하셨는가?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미련하기 때문에 주님이 내게 참으신 것을 내가 내 후배에게 대해서 참는 것으로 주님이 나에게 참으신 그것을 내가 찬양하고 내가 기념하겠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모든 이름을 들려면 그만 전부 다요. ○○○목사님, ○○○목사님 ○○○목사님 다 그렇소. 내가 일체 내가 뭘 이래 말하다가서 주님 앞에, 주님이 내게 참으신 그 참으심을 내가 생각할 때에 나는 여게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이것이 큰 하나님 앞에 진노를 끼친다. 여기에서 참고 참아서 오늘까지 나오고서 그런 가운데서 자꾸 변화되고 변화되고, 고린도전 6장에 보니까 그들이 처음에는 이와같이 다 우상 섬기던 자요 악한 자요 간교한 자요 거짓부리 자요 음행하는 자요 도적질하는 자요 다 이런 자이었는데, 이런 자이었는데 이런 자가 변해서 네가 되지 안했느냐 하는 것을 고린도전서 6장에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길이 참아라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실수 안 할 수 없고 실수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길이 참으나 옳고 그른 것을 혼잡시키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회개를 해야 됩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무슨 죄입니까 옳은 줄 알고 대항하는 것이 성령 훼방죄입니다. 막바로. 이거는 회개하기 전에는 그 사람에게 성령이 같이 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목사님이 그때, 자기는 일찍 목사 안 시켜 준다고 또 도시에 큰 교회로 보내지 않는다고 이래 가지고 그 가족들을 다 얼마나 동원했던지 그 가족들이 전부 그때 처음에는 나를 더 지지했었습니다. 이랬는데 저 그만 ○○교파로 다 넘어 가 버리고 지금 뭐 ○○교파에 있는지 ○○교파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랬는데, 큰 아들 있는데 큰 아들에게 박대한다고, 대우하지 안하고 박대한다고 그때에 ○○○목사님을, 원하는 도시 교회 가면 당장 쫓겨 나갈 것이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그래도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게 좋지 않는가, 그를 아끼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것을 지금은 그 목사님이 알란지 몰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보면 분명히 거게 대해서는 내게 큰 수치를 가루는 하나의 주님의 기쁨이 되어지지 그것 내 양심에 가책이 없고 주님이 아시는 대로의 내 힘대로는 그를 구원할라고 했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분이 그 속삭거려서 몇을 만나 가지고서 반대하는, 백 목사를 반대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나면 강단에 서서 설교가 안 되고 그걸 회개하면 설교가 되고 그게 얼마나 뚜렷했든지 간에 본인이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습니다.

이런 것도 다 이것이 내가 뭘 말할려고 하느냐 하면은, 둘째로서는 내 모든 언행 심사의 행위에 하나님이 같이 하시나 안 하시나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같이 하실 때에는 내가 모르는 의도 되는데, 모르는 옳은 말도 하는데, 나는 그 말을 해야 될지 안 해야 될지 몰랐는데 그 말을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말을 해서 ‘네가 무슨 말을 할 것을 네가 생각지 말아라. 그때 말하시는 이는 너희 아버지의 영이니라. 무슨 말 할 것을 네가 생각지 말아라.

그때에 말 하시는 이는 너희 아버지의 영이 네 속에서 너를 붙들고 말할 터이니까 하라’ 하는 요대로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같이 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을 할 것입니다. 경험하고 체험을 할 것입니다.

또, 자기는 철통같이 작정하고 기도하고 단정했는데 정반대로 꺼꾸로 뒤집어져 버리고 맙니다. 분명히 고 현실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아니하셨다는 것을 증거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요 마음을 가질 때에 설교자에게 하나님의 같이 하셨다 요 마음을 가졌을 때에 설교자에게 같이 하지 안하셨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말이오.

이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나 안 하시나 그것을 우리가 보고서 이렇게 묵묵히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좀 안심이 되고 하나님이 함께 안 하시면 우리는 동동거리면서 놀래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이 나를 이제 버려둔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 고아와 같이, 노아의 방주 밖과 같은 이런 사망만 가득찬, 생명을 떠나서 사망만 가득찬 이 속에 내가 들었다’ 하는 것을 그것을 느끼고서 부르짖으면서 다시 주님을 찾아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도록 이렇게 요것이 되고야 그래도 좀 안심을 할 수 있는 ‘나와 동행하느냐 안 하느냐’ 이 증거는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볼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왜 내가, 내가 경영하지 안한 이 엉뚱한 말을 해 가지고서 재를 저질러서 큰 화를 내가 마련했는가? 왜 이 말을 내가 뭐 할라고 했는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안한 증거 아닙니까? 이 말을 내가 왜 뚱딴지 같이 이 말을 했을까? 나중에 보니까 그 말한 것이 권능의 말이요 하나님이 하신 말입니다. ‘이 말을 하나님이 나에게 해 주셨구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릴라고 올라갈 때에 이삭이 묻기를 ‘제물은 어데 있습니까? 자기도 말한다는 것이 거짓말로 속인다고 한 게 아니고 자기도 쑥 나오는 말이 ‘제물은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 놓으셨다’ 뒤에 번제 드릴 그 짐승이 거게 찾아와 가지고 걸려 가지고 옆에 있을 거는 생각도 못 하고 말했는데 하나님은 알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말한 것을 나는 몰랐는데 말하고 보니까 하나님이 말해서 그말이 다 예언이 됐고 딱딱 들어맞고 하는 것은 우리가 분명히 알 것입니다.

제가 성경에 대해서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하는 이것도 내 말이 아닙니다.

나도 집회 가운데에서, 설교하는 가운데서, 본 교회서나 다른 데서 설교하는 가운데에 그 말이 툭 튀어 나왔는데 어째 나왔는지 몰라서, 내가 이 말하고 난 다음에 이거 큰 정죄받을 실언을 하지 안했는가, 실언을 하지 안했는가 그 뒤에 생각하고 생각하고 따지고 따지고 이래 보면, ‘나는 몰랐는데, 의외에 나온 말씀인데 이 말씀이 내가 이제까지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나에게 깨닫게 해 줘서, 내가 모르니까 내 입에 넣어 줘 가지고 나도 모르게 말을 하게 해 가지고서 한 말이라는 그런 것이, 대부분이 이 교계에서 인정하지 못한, 제가 새로 깨달아 가지고 말한 것은 내가 연구해서 안 것 아니고 내 입에다 넣어 줘서 나도 모르게 증거해 가지고 그 증거를 뒤에 살펴서 조사하고 조사하고 성경적으로 이렇게 심사해 가지고서 안심을 오래 후에 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여러분들 속에도 분명히 성령이 그렇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 언행 심사에 주님이 나와 같이 하시나 안 하시나, 성령이 같이 하시나 안 하시나 이렇게 하는 이 증거를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증거가 없으면 우리는 발버둥을 쳐서 놀래는 사람이 돼야 되지 ‘있거나 없거나 사람들에게 인기만 끌면 된다, 배짱만 내면 된다’ 어데 이렇게 미련하고 강퍅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겠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도, 공자가 그가 사모하는 그 인격은 주공인데 그분은 자기의 스승인 주공을 만일 꿈에 사흘 동안을 꿈을 꾸지 못하면 잠을 자지 못하고 발동을 쳤다고 합니다. 몽불 주공이라, 내가 꿈에 주공을 보지 못했다. 이러니까 자기가 아는 대로의 이상하는 사람 아주 존경할 수 있는 그 사람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람의 생활은 거게서 많이 교정돼서 인간적으로는 그분을 도덕가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꿈에 더러운 꿈이 꾸이면 그 이튿날 종일 우리는 고민해야 됩니다. 꿈에도 그래도 복음 운동을 하고, 그것 다 그런 것을 주장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떨 때는 쥐 그놈이 쥐라는 놈이 막 이렇게 큰 쥐가 있는데 그 쥐를 내가 죽이기 위해 가지고서 자꾸 하나님 말씀으로 주사를 놓으니까 그놈이 발버둥을 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나중에 기어코 그놈을 죽여 버리고 죽이고 나서 쭉 뻐드러졌는데 보니까 큰 그 쥐가 뻐드러졌는데 깨고 보니까 꿈이면은 상쾌합니다.

또, 큰 아주 염소가 달라 들어 가지고서, 수염소가 달라들어 가지고 하는데 그놈이 많은 사람들을 휩쓸고 죽이고 있는데 그놈을 이래 가지고서 당글어 매고 뭐 이렇게 해도 힘을 당할 수 없는데 어떤 분이 와 가지고 그놈을, 나를 도와 가지고서 그놈을 죽여 버리고 그놈을 죽여서 쭉 뻐뜰트리고 나면은 꿈에라도 기쁩니다. 깨고 나면 기뻐. 여러분들도 다 이렇게 믿음의 승리의 꿈도 꿀 것이고 범죄의 꿈도 꿀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에게 꿈이든지 생시든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지 안하면은 이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없어. 더 두려운 일이 없어. 뭐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나 뭐 인간면을 이라다가, 뜻밖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지 안하는 어떤 실수가 툭 나오면은 하나님이 자기 버린 걸 생각하면 천인 만인이 환영해도 그까짓 게 눈에 보이지 안해. 보이지 안해.

이래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나 안 하시나 이것을 우리가 살펴서 내가 아는 대로에 하나님이 나의 언행 심사에 동행해 주신다 하는 이것을 잡기 전에는 우리가 안심하지 안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이것을 붙들기 전에는 우리가 마음에 안심이 되지 안하고 걱정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라고 난 다음에 그다음로서는 자기의 하는 일에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에 벌써, 어떤 교회든지 그 교회에, 교역자에게 그러는 거는 교역자는 교회의 머리기 때문에 그 교인에게 나타나는 기적과 축복이 교역자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역자 자기에게 나타나는 것도 자기에게 나타나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벌써 그 교회에, 인간이 역사하지 않는 거 말이오. 분명히 이거는 사람이 손 대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일, 무슨 사건 해결이라든지 무슨 건설이라든지 그런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기적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면 그 축복 그것이 좋아서 좋은 것보다도, 기적 그 사건이 큰 거보다도, 크나 작으나 ‘주님이 우리 교회에 함께 하신다. 우리 교회를 기뻐하신다는 증거다.’ 제가 대구에 대창골 집회 때에 육백여 명이 그때, 보이는 증거로서, 본인들은 다 본 증거로써 그렇게 나타난 그것을 가지고 기뻐하는 것은, 병도 다 낫고 모든 거 다 하는 것인데 그걸 가치로 삼는 게 아니고, 내가 구하기도 그렇게 구했고, ‘하나님이 우리 진영에 함께 하신다.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하는 그것으로서 그래도 안심이 되고 기뻐하고 이러니까 ‘여게서 뒤돌아보지 안하고 이대로만 빨리 힘써 전력 기울여서 가면 되겠구나’ 하는 것에 마음에 위로와 안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내가 어제 어떤 교역자가 와 가지고서 말하는데 그 교회가 부흥이 되지를 안하고 침체 상태에 있습니다. 있는데 그 말하기를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기적이 나타나면 뭘좀 말 좀 해 봐라. 나도 좀 먹자.’ 그 교회에 유력하게 그 교회를 위해서 참 힘써 애쓰는 사람이 그 사람이 생각도 하기 전에 그거는 얼토당토 안한데, 엉뚱한 어떤 , 그 사람의 생활 문제에 해결의 길이 열렸다 하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에 ‘고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고 말을 듣고 `너거 교회에 하나님이 그런 역사가 여게 저게서 일어난다고 하면은 하나님이 너거 교회를 버리지 않는다는 증거다.’ 또 어떤 교회를 내가 볼 때에 그런 일이 ‘그런 일이 자꾸 많이 나타납니다. 그런 일이, 이 큰 교회서는 구역장들이나 알지 나는 모릅니다. 조그만한 교회는 교역자가 다 알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교인들이 그 생활을, 내가 증거한 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증거했고 이 증거한 말이 전능의 능력 전지의 지혜 이 모든 기적과 축복을 다 가지고 있는 이 말씀이 증거했으면 증거한 그 결과가 이런 게 나타나고 저런 게 나타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기적과 축복이 나타납니다.

나타나는 것을 교역자가 볼 것입니다.

그러면, 교역자가 거게서 교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 주시고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이대로 거하라, 이대로 네가 충성하라 하는 것이니까 이제 안심이다 하고 요대로 자꾸 증거하고 요대로 나가야 되겠다’ 안심해서 겨우, 탈선되지 않도록 조심해 가지고서 교회가 돼 나가도록 이렇게 힘을 쓸 것이고, 아무리 해도 교회가 문제가 일어나고 자꾸 교인들이 낭파가 되고 모든 것이 화가 일어나는 것이 분명히 나고 하면은 그것을 ‘네가 죄 짓기 때문에 뭐 어떻기 때문에’ 하면은 그 교역자는 교역자가 망할 교역자입니다. 두 말할 것 없이 제가 말씀을 잘못 증거한 것입니다. 말씀을 잘못 증거한 그게 원인입니다. 또 제가 개적으로 지도했으면 지도가 잘못된 원인입니다. 그것이 원인입니다.

그러기에, 될 수 있는 대로는 내가 어떤 목사들에게 말하기를 개인 지도를 하지 말아라. 개인 지도를 하지 마라. 그저 너는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이, 이 말씀이 바로 증거하나 삐뚤어지게 증거하나 이것만 조사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고 동행해 줄 수 있는 요 말씀 증거하는 요 공적 증거만 하고, 그다음에는 ○○○목사가 여게서 우리가 안수해 준 사람인데 나는 기쁜 소리 듣는 것은, 그분이 지금도 ○○○목사님을 참 체받아서 똑 그대로 나가고 있는데, 안수해 줬지만 우리에게 감사장도 하나도 없고 인사하는 일도 없고 한 번도 그 뒤에 없습니다. 없으나 그분이 가 가지고, 뒤를 내가 그래 나는 살핍니다. 보면은, 교인들이 가 가지고서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가지고 말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았다가서 이제,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싱거워서 혼자 말하다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가서 ‘저는 그러면 갈랍니다.’ 섭섭해 가지고 하는지 어짠지 `갈랍니다.’ 이라면은 그래 마지막으로 ‘녜, 이제까지 하나님 말씀을 배웠으니까 양심을 쓰십시오. 양심대로 생각하면은 다 아실 터이니까 나한테 물을 것이 없고 내가 가르칠 수 없고 하니까 말씀을 배웠으니까 양심을 쓰십시오.’ 그라고 보낸다고서, 그라고 보낸다고서.

이러니까, 내가 그 소식을 들을 때에, 우리에게 오나 안 오나, 안 와도 좋고 어쨌든지 우리가 안수를 했기 때문에 그분에게 대한 책임을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서 우리가 책임이 있는 것인데 그분이 그렇게 경건하게 목회 생활을 해서 교인이 한 사백 명이 되는 교인이 그대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 나는 종종 기도하면서 감사하고서 그분이 실수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서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맡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안 오면 내가 죽어야 될 줄 아십시오! 내가 들어서 그 화를 다 받아야 됩니다! 어떻게 목사가 사람을 변화시킬라고 왔는데 왜 교회에 분쟁이 왜 입니까 있기를? 자기가 병이 들어서 말을 못 하든지 하면은 마귀란 놈이 그때 막 매장을 시켜 한다 하지마는 이래 좌우에 날선 검의 말씀이 있는데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동행하는 지극히 큰 능력의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을 내가 바로 했으면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 때문에 인간들이 무엇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사람들의 마음이나 끌어서 인기나 끌고 인간들이나 꾀워서 요래 조렇게 간교하게 해 가지고서 사람을 복술 가지고서 옛사람을 좋게 해서, 옛사람을 좋게 해서 그 옛사람만 좋게 하니까 그놈이 좋다고서, 이제 치리받을 것을 이렇게 올려 주면은 좋아서, ‘죽도록 충성하지’ 죽도록 충성해? 안 돼! 여러분들, 이것이 다 교역자에게 있기 때문에 일곱 별과 일곱 촛대의 비밀이라는 것을 요한계시록에 말한 것은 바로 교역자가 교인이요 교인이 교역자입니다.

교인들에게 모든 화는 그 교역자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여게 책임을 지고 아마 회개를 하고 깊이 살펴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 이 말씀을 지금 시간 지나갔기 때문에 해석할 시간이 없는데 여게서, 한 자리에서 일하고 한 밭에서 일하고 한 자리에서 누워 자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대체로 이것이 뭐인가? 이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깨닫고 있는 대로는 이것이 기본구원에 관한 것인가, 건설구원에 관한 것인가, 어느 것인가? 이거 판정이 안 됐다고 하면 설교 암만 해 봤자 사람 죽이는 설교밖에 못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에 다섯 처녀는 멸망받을 사람들이고 다섯 처녀는 구원 얻을 사람들이라고 요렇게 이 성경을 깨달은 요 교리에서 기독자의 열심은 바싹 다 깼습니다. 그자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학자가, 그 신학자가 심판을 받을 것이오! 그 신학자가 대심판을 받을 것이오! 어떻게 그것이 기본구원입니까? 기본구원으로서 슬기 없는 다섯 처녀는 불택자요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택자라 하기 때문에 예수 믿으니 거게 내게 대해서는 상관이 없다. 이러니까 고 속에 함축이 돼 가지고서 고 문제를 해결할라 하면은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서, 다 기울이지 안하면 안 되고 다 기울 때에 폭발이 돼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인데 요 해석을 요것을 기본구원으로 해석해 놨기 때문에 슬기 없는 다섯 처녀는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슬기 없은 다섯 처녀가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될라고 애써야 될 것을 다 애쓰지 못하도록 묵살을 시켰기 때문에 요 자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습니다! 스승된 자들은 하나님 앞에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아라 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업신여깁니까? 얼마나 큽니까? 회개 안 하면 얼마 안 가서 꺾어 쪼글트려 버립니다 하나님 앞에 쪼글트릴 때에 어떤 자가 서겠습니까? 아무 소용 없소, 자기의 세상에 날개가 떨어지게 하고 마지막에 안 되면은 순간도 못 있고 하, 하, 하, 하 하며 아파서 견디지 못하는 거게까지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능력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자살 행위입니다. 그것은 건설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이 편집실에 와 가지고서, 다른 교파에 있는 목사인데 여기 설교록을 거석한 것을 어떻게 펴 보는데 마침 마태복음 25장에 해석이 있는데, 25장에 슬기 없는 처녀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다 택자들이다. 불택자가 아니다.

택자들이다. 이거는 건설구원을 말한 것이지 기본구원을 말한 게 아니다.

기본구원은 사람의 공로는 털끝만치도 들지 안하고, 건설구원, 그 사람이 준비하니까 되고 준비 안 하니까 안 됐으니까 그거는 행위가 버림당하고 영접받는 것의 근거가 됐기 때문에 이거는 건설구원 행위구원이지 기본구원이 아니다. 기본구원은, 인간의 행위는 거기는 얼토당토 안 하고 근방에 가지도 못한다.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만 된다 하는 요 하나 해석을 보고서 당장 쫓아와 가지고서, 내가 이제까지 고민을 하고서 ‘아무래도 이게 아닌데’ 고민을 가졌던 것이 이 설교록을 보고서 이제 내가 해결을 봤습니다.

이 해결 받으니까 모든 해결이 다 되는데 이게 해결되기 전에는 내가 성경 깨달은 게 전부 다 이것이 얽혀 가지고서 도무지 확신이 없었는데 이제 알았다 하면서 와 가지고서 돈을 가지고 와서 있는 대로 싹 다 사고 나머지기도 전부 자기가 다 사겠다고서 이라면서 그렇게 돈을 넣어 놓고 회원으로 가입하고 갔다 말 들었습니다.

여게도 그겁니다. 여게도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한다는 이것을 기본구원, 그 사람들은 기본구원이니 뭐 그 말이 없소. 불택자로 말합니다, 불택자. 이걸,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은 불택자들이요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들은 택자들이다.

우리 말로 말하면 기본구원이오. 그분들로 말하면 택자요. 택 불택으로 요 말씀을 듣기 때문에 기독자가 힘써서 예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힘쓸 문제가 다 하나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왜 고것이 건설구원에 관한 것이고 기본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판명할 수 있느냐? 거게 ‘그러므로’ 하고서 고다음에 `깨어 있으라' 모든 것은 행동을 말했습니다. 다 쭉 열거한 것이 행동입니다. 행동 여하에 데려감을 당하고 행동 여하에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으니까 건설구원 행위구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게까지 생각할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거 하나 자기가 잘못 가르쳤으면 그 사람을 아무리 긴장해라 조심해라 힘써라 말해 봤자 폭탄에는 구멍이 뚫어졌는데 무슨 폭발력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안 나옵니다.

이래서, 이 건설구원을 사람들이 다 놀고 먹는 거와같이 이렇게, 건설구원에 함축된 그 능력, 주님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라 했는데 이것은 다 구멍이 뚫어져서 다 새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라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설교해서 인기만 끌면 됩니다. 인정만 받으면 됩니다.

언제까지? 죽기 전에 반드시 그 사람의 목회에 실패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십시오. 나이가 허여이 늙어서 죽기 전에 그 사람의 목회가 육체의 힘이 줄어지니까 점점 줄어지고 세월이 지나가니까 점점 도태돼 가지고서 마지막에 실패하는 것을 여러분들의 눈이 볼 것입니다.

성령은 늙지 않습니다. 믿음은 늙지 않습니다. 영능은 절대 늙는 게 아닙니다. 안 늙습니다. 육체의 힘이 늙어서 소리를 크게 못 냈으면 못 냈지 능력의 역사는 갈수록 더 능력은 더 크게 역사합니다. 왜? 그 능력을 가루는 방해물이 적기 때문에. 점점 회개해서 옛사람의 요소는 자꾸 죽어지고 자꾸 그 사람의 성화가 되어지니까 그분이 쓰시는 데에는 방해물이 적기 때문에 더 많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 내가 전설에 듣기를, 그런 말이 있다고 하는데 사도 요한이가 마지막에, 메어다 놓으면 서로 사랑하라는 그 한 마디에 어떤 그 권위 있는 설교보다도 교인들이 은혜를 많이 받는다 그런 말 들었어. 그럴 것입니다. 왜? 말은 적지마는 영능이 큽니다. 생명의 역사가 큽니다. 말은 적지마는 주의 피의 능력이 큽니다.

진리의 능력이 큽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가 클 것 아니겠습니까?

이래서, 여게서 보고, 첫째는 자체의 심신의 구원과 멸망을 말하는 것이고 고다음에는 자기의 소유의 멸망과 구원을 말하는 것이고, 고다음은 무궁한 하늘나라의 대우의 크고 적은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그다음에 마지막은, 예수 믿는 자들이 동무를 때리고, 때리는 거는 뭐 때립니까, 육적으로 때립니까? 요것도 그 동무가 뭐인가? 한 자리에서 일하는데 일하는 자가 누군가, 깨어 있는 자가 누군가, 그것 모르면 이 성경 해석은 다 뒤집어지고 교리와 신조는 다 뒤집어 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조직 신학이 이렇게 났지마는 요것을 살펴 가지고서 요 시종을 다 이거 전부 나열해서 이것을, 비판하라 말은 이 모든 걸 다 놓고 이거와 저거와 비교해 가지고 판단하는 게 비판이오. 하나만 놓고 판단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오. 존재들을 전부 다 놓고 그것을 비교해 가지고 판단하는 게 비판이요 평가는 그거 모든 것을 놓고서 한테 대조해 가지고 요것보다 요게 낫다 요것보다 요게 낫다 이래 가지고서 가치를 전체의 가치를 정해 가지고서 그중에 요거는 어느 위치의 가치 있다 하는 그것이 평가라는 것입니다. 평가라는 뜻이 그것입니다.

이래서, 동무를 때린다는 것은 누구를 때리는 것이겠소?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을 때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니? 성경이 죽이라는 사람은 죽여야 되는 것이고 이제 이 사람으로서 영원히 살아라 하는 것을 로마서 6장에도 말씀했습니다. 이게 새사람입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우리가 새사람 아닙니까? 중생된 거는 영인데 그 영과 심신의 합작됐을 때는 새사람입니다.

합작이 안 됐을 때는 중생된 영입니다.

이래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렇게 생명 삼아 가지고서 그 생명으로 그 능력으로 우리가 살아나 가지고 사는,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 이 사람을 상우는 것이 때리는 것입니다. 입술 한 마디에서 죽입니다! 네 입술이 너를 얼마나 저주하고 얼마나 망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왜 입술 한 마디 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왜 죽입니까, 죽이기를! 네가 목회를 암만 해도 네가 그 사람을 죽여서, 그 사람의 신앙이 펄펄 살았는데 그 사람의 신앙을 죽인 것은 내 입술이라! 네가 살리기 전에는 그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해! 동무를 때리고 주객으로 더불어 먹고 마시다가 주인이 오면은 벌받는 자.

주객으로 먹고 마신다는 술이 무엇입니까? 술은 하나님의 도를 훼방하는, 믿음의 사람의 믿음을 흔들어서 하나님 하고 부부되고 짝된 것을 세상하고 짝되도록 이렇게 만드는 것, 그 교인을 세상하고 짝되는 것, 옛사람을 마구 일으켜 가지고 이라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거야 뭐 옛사람을 좋아하고 이렇게 하면 막 그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해 댈 건데. 세상의 지식 많고 실력 있고 돈 많고 언변 좋고 한 이거 다 옛사람, 세상 사람 그걸 이렇게 올려 주면 그 사람들이 나서 가지고 얼마든지 일합니다. 일하지마는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제가 만들어서 일해 놓은 고 사람들이 저를 배척해서 버립니다. 하나님이 고 보응을 시킵니다. 하나님은 능하신 분이시요 인간의 공작에 이용당하고 저해를 당할 분이 아니십니다. 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심은 대로 거두리라.

내가, 그 목사는 지금 딴 진영으로 갔는데 ○목사라는 목사님인데 그분은 여게 아는 사람들은 지금 알 겁니다. 자기 교회에 장로가 들어서 자기를 배척해서 지금 골치를 앓아 가지고서 바짝 말라 그래 가지고서 골치를 앓아 가지고 나한테 와서 말하기 때문에 내가 첫 말에 말했어. 그 장로를 누가 장로를 시켰느냐?’ ‘내가 그 장로를 세우지 안했습니까?' `장로를 세울 때에 그 장로를 세우면은 그 장로로 인해서 네가 유리하고, 너를 네 편이 돼 가지고 너를 돕는 사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웠느냐, 장로 실력 있어 세웠느냐, 실력이 없으면 그 사람을 장로로 길러서 하나님의 일군으로 참 일군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길렀느냐 네가 고것을 판단해라.’ 네가 실력 없는 사람을 있다고 해서 세웠으면 네 무지가 되기 때문에 실수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보응을 주지 않는다. 또 네가 그 장로를 세울 때에 자격이 모자라지마는 그래도 이 사람을 장로로 세워서 이 사람이 장로가 돼야 이 교회를 그라다가 앞으로 도와서 나가겠다. 진정 그 사람과 교회를 위해서 네가 세웠느냐, 세웠으면 그 사람이 네게 집중, 네게 전적 사격하는 네 단일 적이 되지를 안할 것이다.’ ‘네게 세울 때에 이 사람 장로 세우면 이 사람는 내 편이 돼 가지고서 얼마든지 나를 도울 것이라. 너를 위해서 세웠으면 그 사람의 창에 네가 맞아야 된다, 맞아 죽어야 된다. 회개를 해야 되지 회개를 안 한다면 너는 네가 그 창을 면하지 못한다. 그 창은 그 사람이 찌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창으로 삼아 너를 찌르기 때문에 네가 회개해야 된다’ 내가 고것을 묻기 전에 말을 했습니다.

말하니까 그 사람이 나한테 말하기를 ‘예, 깨닫겠습니다. 고 말씀하신 대로 셋째로 내가 그 사람을 세워 놓으면 내 편이 돼 가지고서 내 사람이 돼 가지고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내가 생각을 하고 장로를 세웠습니다. 내가 요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그 뒤에 가서 고걸 회개를 하고서 그다음에 그 사람이 여게 따라왔었는데, 따라오고자 했는데 그 사람 죽인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 교회에 가서 종종 도와 주라 했더니마는서도 그 교회 가 가지고서 ‘내가 이래 있지마는 이 진영에 외나 진짜 대가리는 내고 겉어머리 대가리는 백 목사다.’ 이래 가지고 제가 위에 올라 앉아서 이라고 이라니까 그 사람이 보고서 이거 가증스럽고 우스운 거로구나 이래서 그 사람을 슬슬 추켜 올려 가지고서 ‘예, 그렇습니까? 고만 이 교회를 목사님이 맡으십시오. 이 교회를 암만해도 나는 자격이 없고 하니까 이 교회를 목사님이 맡으십시오.’ 이래 가지고 거게서 둘이 목사로 맡으라 하니까 ‘이 교회 목사님이 와서 자주 설교해 주십시오. 계속 와서 해서 해 주십시오.’ 이라는데 저를 놀리는 줄 모르고 비행기 태우는 줄을 모르고 이래 가지고서 마지막에 딱 거석하고 난 다음에 가도 내나 고 버릇 또 제가 뭘 권리를 가지고 할라 하니까 탁 차서 그만 꺼꾸러져 가지고서 아주 가서 그 근방에 가지도 못하고 멸살을 당하고 그만 천대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이, 하나님이 우리의 심리를 다 보시고 계시는 줄 아십시오.

그분이 알지 못하심이 없다고 전지자라고 말하면서 그분이 내 행위에 대해서는 왜 모릅니까? 왜 주변의 행위에 대해서는 모릅니까? 모든 처리를 왜 그분이 모릅니까? 전능자인데 왜 그분이 그거는 처리 못 하겠습니까? 그분을 붙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그분에게 잘못됐는가 해서 그분의 노를 푸십시오. 그분의 노를 풀기 전에는 맺힌 것이 끊쳐지지 않습니다. 그분의 노를 푸는 것이 그분을 대접하는 거, 노를 풀어 보십시오. 당장에 일이 풀리는가 안 풀리는가 그분의 노를 풀고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면 되고 안 하면 안 된다는 요것을 정말로 믿어서 그분을 그분으로 대우하면 그분이 여러분들을 대우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서, 이것이 기본구원에 관한 교리인지 건설구원에 관한 교리인지 이것을 여러분들이, 교역자들이 모였으니까 살펴서 하나라도, 만일 건설 구원에 관한 말씀인데 기본구원으로 말했다 하면은 완전히 그거는 이단자 아닙니까? 사람 죽이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가 아무나따나 성경을 마구, 모르면 본문대로 좋습니다. 모르면은 본문대로 읽어서 증거하면서 ‘너는 목사가 돼 가지고 해석도 못 하고 왜 그러냐?’ 사람이 말할 때에, 또 하나님이 ‘왜 해석도 안 하고 그라느냐?’ 이랄 때에 그분이 ‘나는 여게 대해서 똑똑히 모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면 이 우주를 영원한 것으로 재창조할 수가 있는 이런 능력의 말씀인데 내가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내가 당신의 뜻에 거리낄까 두려워서, 사람을 살려 죽이는 일이 될까 싶어서 내가 말을 하지 못하고 떨려서 내가 요렇게 본문으로 합니다’ 할 때는 하나님께서 ‘오! 네가 나를 두려워 할 줄 아는구나. 네가 나를 아는구나, 내가 일하지 안하면 안 되는 줄 아는구나. 네가 내게 거리끼지 안할라고 하는구나’ 요거 하나로써 당신의 노를 풀고 만족하고 ‘그래, 인간의 두뇌를 만든이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총명을 줘서 알게 하지. 알게 하지.’ 알고 난 다음에 교만하지 안하고 알뜰히 고것을 보장하고 고대로 자기가 실행해서 살 때에 또 알게 하시지.

이렇게 하나님은 당신 앞에 겸손히 굴하는 자를 당신이 쓰시고 함께 하시고, 자기를 나타내서 자기 인기나 나타내 가지고 자기를 높여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는 자를 하나님이 언제든지 복수합니다. 시편 2편을 보십시오. 군왕이 누굽니까? 군왕이 제가 왕된 자 아닙니까? 제 중심자 아닙니까? 그자가 하나님 무시하는 것을 하늘에 계신 이가 비웃는다 했습니다. 비웃는다 했어. 허허, 네가 어데라고? 천부당 만부당한 건데, 네가 하나님께 대해 어데라고 네가 그런 대항을 하며 그런 주장을 하며 네가 그런 사상을 가지고 일하노? 어데라고? 너 일생 동안만 온천히 망하구로 만들고 말겠다.

자기가 삐뚤어지게 나가는 것을 그것을 죽기 전에 낭파되지 안하고 망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을 망치는 하나님의 무서운 복수입니다. 가인이 범죄했을 때 뭣 때문에 그때 그거 하나 죽여 버리면 되는데 그거, 죽이는 자를 벌을 내고 그렇게 많은 인종을 만들어 가지고 복수를 합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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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물과 피와 성령의 역사/ 요한일서 5장 7절-9절/ 820429목새 선지자 201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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