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영광을 마련하는 법

 

1979. 12. 14. 금야

 

본문 : 골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3절에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너희가 죽었고" 이 말씀은 예수님 믿지 않을 때의 옛사람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자기아닌 자기 곧 옛사람 자기아닌 자기 옛사람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악령이 왕권을 가지고 있고 악령이  왕권을 가지고 있고 악습과 악성 이것이 다 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옛사람을  벗어버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택함을 입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그 사람에게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 이런 모든 죄가 왕노릇을 못하게  됐습니다. 왕노릇을 못합니다. 패잔병과 같이 그 사람 육안에서 늘 반란을  일으키기는 일으키지마는 이것이 왕권적으로는 있지 못하기 때문에 택함을 입고  중생된 사람들은 이 세력을 벗어날 수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자기를 완전히 죽여 버리는 옛사람을 벗을  수 있다는 그것을 여기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과 영원한 화평과 결합을 가져서  이미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또 4절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우리의 생명이라 말은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힘이  생명이요 사망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그 힘이 없어지는 그것이 사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 되신 것은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가 됐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  영원한 결합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된 이 영생을 가진 것을 가르쳐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예수님의 영원한 영광에  같이 참석해서 참예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1절과 2절에 위엣것을 찾으라 이 말씀은 위엣것을 찾으라 만나게 되고 만나면  가지게 되는 것이니 위엣것을 네것을 삼아라 그말입니다. 위엣것을 찾으라 말은  위엣것을 네것을 삼아라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엣것을 생각지 말라.

 이 말씀은 위엣것을 연구하고 땅엣것을 연구하지 말아라 땅엣것은 네가 아무리  연구해 봐도 그것은 유익이 적고 결국은 다 허사가 되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위엣것을 연구하고 가지도록 노력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위엣것과 땅엣것과 땅아래의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 세상이라고 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위에는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아래는  지옥이라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제일 좋은 나라가 하나님하나님요 그 다음으로 좋은 세계가  세상이요 제일 나쁜 세계가 지옥인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세계가 인생앞에는  놓여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이 공중높은 이 공간적으로 저 높은 이 공중이라  하늘나라 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위엣것이라 하늘의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평가적으로 평가적으로 높은 것을 가르쳐 말하고 이 세상은 평가적으로  하늘나라보다도 낮은 것 지옥은 이 세상만도 못한 것,  그래서 그 표현으로 위엣것이라 땅엣것이라 땅아래 것이라 그렇게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모든 좋은 것만 가득히 있는 세계가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병드는 것도 없고 고통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늙는 것도  없고 사람들이 불행이라 하는 그 모든 나쁜 것은 하나도 없는 나라입니다.

 또 지옥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세계입니다. 이 세상은  하늘나라의 좋은 것이 그것이 그림자와 같이 그렇게 비추어 가지고 있는  거와같은 세상이요 또 지옥의 모든 나쁜 것이 그림자와 같이 비추어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하늘나라는 좋은 것만 가득찬 세계요 지옥은 나쁜 것만 가득찬 세계요 세상은  하늘나라의 좋은 것과 비추어 나온 좋은 것 지옥의 그 나쁜 것이 비추어 나온  나쁜 것 이 두 가지가 섞여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섞여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나쁜 것이든지 자기 신체상이나 생명상이나  가정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활동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모든 쾌락적으로나  무엇이든지 세상은 인간이 다 원치 아니하는 그 나쁜 것과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원하는 그 좋은 것들과 이 둘이 한테 섞여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나쁜 것이 자기에게 부딪혔을 때에는 그  나쁜 것의 나쁜 것을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나쁜 것을 자기가 접촉해 보는  이 나쁜 것을 느끼는 거기에서 이것만 나쁘다 하고 그것만 벗을라고 야단을 치는  사람은 눈이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자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나쁜 것이든지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그와같은 종류로서의  나쁜 것 나쁜 것도 천도 만도 종류가 넘는데 그거와 같은 종류로서의 나쁜 것이  세상 것은 지극히 시간적으로는 짧고 또 그 자체적으로서는 아주 미약한  것입니다.

 아무리 나빠봤자 그까짓 것이야 미약하고 아무리 나빠봤자 기껏해야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그 하룻밤 고생밖에는 안되는 그런 짧은 것이지마는 이것으로  인하여 내세에 영원무궁한 무한의 나쁜 것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러기에 이 세상에 조그마한 그 나쁜 것을 인하여서 내세에 무한한 나쁜 것이  있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고 세상에 이런 저런 좋은 것 이것을 자기가  만났든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든지 할 때에 세상에서 좋은 그것을 자기가 보고  좋다 부럽다 자랑스럽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소경입니다. 멀리 보지  못하는 그런 소경이요.

 이 좋은 것을 인하여 이것으로 인해서 무한한 좋은 것이 인생에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어떤 좋은 것을 만났든지 이것으로 이와같은  종류가 하늘나라에서는 무한히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 무한히 좋은 것이  하늘나라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세상에 나쁜 것을 만났을 때에 내세에 무한한  나쁜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 이것을 자기가 성경을 보아서 깨닫고 세상에서 좋은  것으로 인하여 무한한 좋은 것을 발견하려 깨달으므로 자기 소망은 보이는  조그만한 이 좋은 이것으로 인해서 무한히 좋은 것이 하늘에 기다리고 있는  이것을 깨달아 세상의 좋은 것으로 이 작은 것도 짧은 것도 이렇게 좋은데  무한히 좋은 것이 하늘나라에 있으니 그것으로 인하여 무한히 좋은 것을 깨닫고  발견하고 이러니 세상에 잠깐 좋은 이것도 좋지마는 무한히 좋은 것이 있으니  어짜든지 이 세상에서 무한히 좋고 영원히 좋은 이것을 상대해서 살아야 되겠다  하여 세상에 좋은 것을 인하여 하늘의 무한히 좋은 것을 깨닫고 보이는 좋은  것을 뒤로 두고 무한히 좋은 것을 향하여 달음질하는 이 사람이 보이는 것을  상대하지 앟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므로 산다고 이 성경에 말한대로의 이  사람입니다.

 또 이 세상에 어떤 나쁜 것이든지 자기에게 나쁜 것이 닥쳤을 때에 이 세상의  보이는 작고 적은 나쁜 이것을 인하여 내세에는 무한히 나쁜 것이 기다리고 있는  이것을 깨달아 무한한 나쁜 이것을 상대하면서 무한한 나쁜 무한한 고통 이것을  상대하여 내가 짧은 이 불행도 견디기가 힘든다고 하는데 무한한 불행 고통을  당했으면 내가 어떻게 되겠느냐?  무한한 불행과 고통을 예수님께서 나를 거기서 건지시기 위해서 대형하셨다  하는 이것을 깨달아 이 세상에 나쁜 것을 어떤 큰 나쁜 것이라도 내세에 영원한  그 나쁜 것에 비해서 억억만분의 일도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내세에 영원히 받을 그 고생의 억억만분의  일도 안되는 것이요 그런고로 세상에서 나쁜 것을 자기가 만났을 때에 이것도  어려운데 이 나쁨의 억억만 배도 더 된 나쁜 것을 주님이 대신 이 나쁨의 고통을  나쁨에 대한 그 어려움을 대신 당하시고 나에게 사죄를 주신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 나쁜 거기서 무한한 나쁨의 주님의 대속을 생각하여 조그만한  나쁨도 그 움싹으로 겨유 보이는 보일 듯 말 듯한 조그만한 불행이나 화나  고통이나 근심이나 가난이나 이런 고통도 이렇게 힘드는데 그 힘드는 데에서  무한히 힘드는 것을 주님이 대속하신 것을 생각하고 깨달아서 주님의 대형에  대해서 감사하는 그 깨달음을 가지고 주님의 이 대형에 대해서 자기가 이  감사함을 느끼는 이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후란시는 세상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그 어려움을 자기가  체험하면서 무한한 어려움을 주님이 대신하신 이 대형하신 이 어려움을 깨달아  자기의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주님의 대형에 대한 이 은총을 깨닫게 하는 하나의  충격으로 깨닫게 하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그렇게 살고 지나갔습니다.

 또 세상에 좋은 것을 만날때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무한히 좋은 것이  있으니 세상에서 잠깐 있다가 없어질 좋은 것 이것이 없어져서 없어질 때는 다  울고 불고 야단지기고 잠깐 좋다가 또 그것이 없어지고 없어질 때는 그냥  없어지지 아니하고 울고 불고 없어지는 이런 것도 좋은데 무한히 좋은 것을  주님이 우리 위해서 예비하시고 이것을 받게 하셨으니 세상의 이 좋은 것으로  인해서 무한히 좋은 것을 자기가 욕망하고 무한히 좋은 것을 상대해서 사는  사람이 이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세상에 나쁜 것으로 영원한 나쁜 것을 발견하여 그것을 상대로 세상의 좋은  것을 발견하여 무한히 좋은 것을 자기의 상대로 이러기 때문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보이는 것을 인하여 살지 아니하고 이제는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하여 사는 이 사람이 의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은 다 보이지  않는데서 나왔고 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근원이며 보이는 것보다 크다 무한하다.

 이것을 성경이 가르쳐서 세상 좋은 것으로 영원한 좋은 것을 발견하고는 보이는  좋은 것은 이것은 상대하지 아니하고 그것은 상대하지 아니하고 그것은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무한히 좋은 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려고 이제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사람 보이는 불행을 이것을 불행으로 여겨서 울고 불고  하지 아니하고 무한한 불행을 상대하여 이 불행에서 구출해 주신 예수님의 이  대속의 사랑에 감격해서 세상 모든 고난은 주님이 나를 대형해 주신 이 사랑을  깨닫게 하는 이 작용만 하지.

 그것이 나에게는 고통이 되어지지 않는 것이 그것이 믿는 사람의 참된 정상적인  심정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깨닫고 다음으로는 이 세상에는 지옥의 것이  비취어 나온 것과 하늘나라의 것이 비취어 나온 세상이니 두 가지가 섞여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섞여있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잘 안들으면 몰라요 은혜를 받아도 단편적으로 단어 한 마디로 은혜를 받는  사람 짤막 짤막한 은혜를 받는 사람 길고 넓고 이 큰 한 체계적인 이 전체적인  면에서 은혜를 받는 사람 사람 각각 다릅니다.

 점점 우리가 은혜받는 것이 넓게 받고 길게 받고 깊게 받고 부분적으로 받던  것이 이제 전체면에서 면의 은혜를 받는대로 자라가야 됩니다.

 이러니까 한 마디 한 마디 말하는 것을 듣지마는서도 벌써 이 구원도리를  말하면 처음에 들은 거 중간에 가면 다 잊어버리고 중간에 가 들은 거 마지막  가면 다 잊어버리고 이러니까 끝도 밑도 없는 말이요 무슨 말인가 모른다 말이요  그런 사람은 여기 있으면 잠도 오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럴 것이요.

 우리 생활은 전체에 관련된 생활인데 말도 못알아 듣는 사람이 그 사람이 무슨  실지 생활을 하겠소 안됩니다. 이 세상은 지옥의 것이 비추어 나와가지고 있고  하늘의 것이 비추어 나와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습니다. 이것은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다 좋아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것이 비추어 나와 있소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것은 다  지옥의 것이 비추어 와 가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섞여있는 세상이라  그런데 잘 안들으면 모릅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언제든지  좋아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싫어하는 것은 싫은 것으로 그대로 있지 아니하고  좋아하는 좋은 것과 싫은 것 이 두 가지가 섞여 있는데 그것을 내가 상대할 때에  그것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내가 행동함을 따라 내가  거기에 대해서 작용함을 따라 좋은 것이 나쁜 것이 될 수 있고 나쁜 것이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작은 것이 큰 것이 될 수도 있고 큰 것이 작은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것이 거기에 대해서 내 행동의 여하에 따라 그것이 나쁘다고 하는 그것이  좋은 것으로 변해지기도 하고 좋은 것이 나쁜 것으로 변해지기도 하고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변해지기도 하고 큰 것이 작은 것으로 변해지기도 합니다.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이렇게 변해집니다. 좋은 것은 다 좋소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요. 싫어하는 것은 다 싫어합니다. 죽음은 다 싫어하고 삶은 좋아하고  가난은 다 싫어하고 부요는 좋아하고 고통은 싫어하고 평안은 좋아하고 기쁨은  좋아하고 실패는 싫어하고 성공은 좋아하고 수치는 싫어하고 영광은 좋아하고  권세는 좋아하고 권세없는 무능은 싫어하고 다 그렇소.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는 것과 죽는  것 둘이 있으면 어느 것 좋으냐? 믿는 사람들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좋다 그  잘못 믿는 사람이요 예수 믿는 사람 돈 뭐할라고 부자보다 가난한 게 좋다. 그  잘못 믿는 사람이요.

 예수 믿는 사람 평안이 좋으냐 고통이 좋으냐 고통이 좋다 그것도 잘못 믿는  사람이요 예수교는 고통을 좋아한는 고행주의의 도가 아닙니다. 세상을 싫어하는  염세주의의 도가 아닙니다.

 어쨌든지 우리는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두 가지가  섞여있는 세상이니 우리는 어느 것을 좋아하느냐? 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돼야 정상입니다.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정상이요.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 우리도 다  싫어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 왜 어떨때는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 사랑보다 미움이 낫다 부자보다 가난한 것이 낫다. 이렇게 말씀할  때는 다 이유가 있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세상에서 좋은 그것을 버리라  할 때는 그것을 싫어해라 버리라 할 때는 그게 나빠서 버리라는 것 아니요. 그걸  나빠서 버리라는 것 아니요.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있는데 이거 가질라 하면 더  좋은 것 가지지 못하고 뺏기게 되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서 덜 좋은  것을 버리라 크게 좋은 것을 인해서 작게 좋은 것을 버리라 하실 때에 하신  것이고 또 좋은 것을 좋을 것을 버리고 나쁜 것을 취하라 할 때 있습니다. 나쁜  것을 취하라 할 때 나쁜 그것이 좋아서 취하는 것 아니요. 나쁜 것을 취하라 할  때에 그때에 믿는 사람들이 성경 말씀대로 하면 나쁜 걸 취하게 되는데 나쁜  것을 취하느냐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좋아서 취하느냐? 아니요 나쁜 것이  나쁘지요? 나쁜 것이 나쁘지마는 왜 취하느냐? 나쁜 걸 취하면 하나님과 진리를  내가 내어 주지 안해도 되고 좋은 것을 취할라고 하면은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을  내 줘야되는 그런 경우가 될 때에는 이 나쁜 거 취하는 것이 큰 손해가 없고 큰  손해 보지 아니하고  이러기 때문에 어느 손해가 큰 손해냐 이것을 비교하고 평가해서 세상이 나쁘다  하는 것을 그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나쁜 거 그것을 취하는  데에는 나쁜 것이 좋아서 취한다는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 아니요.

 그거는 염세주의자라 고행주의자라 못쓸 사람입니다. 나쁜 것이 좋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나쁘지마는 이것을 안취하고 좋은 걸 취하려 하면  하나님과 진리를 내놔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쁜 걸 취하지 또 하나님과  진리를 내놓지 안하고도 나쁜 걸 취하는 어떤 경우는 이 작은 나쁜 것을  취하므로 큰 나쁜 것을 예방할 수가 있을 때 나쁜 걸 취하요 일시의 작은 나쁨을  취하므로 작은 나쁨을 취하므로 큰 좋은 것을 취할 수 있는 그런 경우에 나쁜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언제든지 평가적인 도요. 그러기에 좋은 것을 우리는  다 취해야 되는데 좋은 것을 취해야 되는데 자 좋은 것을 취하고 하나님과  진리도 내가 취하고 좋은 것과 하나님과 진리와 다 취하고 하늘나라의 좋은 것도  다 취하고 하늘나라의 큰 좋은 거 하나님, 진리 세상 좋은 거 이 네 가지를 한  몫 취하게 될 때에는 좋은 거 취합니다. 좋은 것을 취해 갑니다.

 이러다가 어떤 경우에 이를 때에는 좋은 것을 취할라고 하면 하나님을 내놔야  되고 진리를 어겨야 되고 하늘나라의 무한히 좋은 것을 손해를 봐야 되고 이럴  때에는 이 세상의 작은 좋은 것을 내놓고 무한히 좋은 거 작은 좋은 거 내놓고  하나님과 진리 무한히 좋은 하나님과 진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내놓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거와 꼭 같소.

 수지 계산을 맞춰가지고 유익되도록 하는 거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평가적인  도요. 공연히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사이비한 기독자로서 실은  염세주의적인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기 쉽고 공연히 고생을  좋아하는 고행주의의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기독자는 어짜든지 유익을 보도록 하십시오 손해보지 마십시오 어짜든지 유익  보십시오 어짜든지 평가적으로 유익되도록 손해보지 말고 예수님도 하나님과  진리와 무궁한 세계와 이 세상 좋고 나쁜 거 지옥의 무한히 나쁜 거 이것을  상대하셔 가지고 이것을 상대하셔 가지고 어짜든지 수지계산 맞춰서 좋은 거  취했습니다. 유익된 거 취했소 작은 것보다 큰 거 취했소.

 작은 거 자본 들여 가지고 큰 거 취하고 작은 고생으로 큰 고생 면하고 작은  고통으로 큰 평강을 얻고 짤막한 죽음으로 영원한 죽음을 면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렇게 하신 것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걸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전체의 존재라 하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하늘나라가  있고 지옥이 있고 하늘나라의 것과 지옥의 것이 비추어 와 가지고 거기에는  실상이요. 여기에는 그림자와 같이 이렇게 이것이 섞여있는 세상인데 세상에  좋은 것은 거기 좋은 것이요 나쁜 거 아닙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이요. 좋은  것은 좋은 것이요 나쁜 것은 나쁜 것입니다.

 이런데 좋은 거 이거와 나쁜 거 이것을 내가 상대하고 살 때에 이 좋은 것을  내가 어떻게 요리를 하느냐 나쁜 거 이것을 어떻게 요리를 하느냐 이 좋은 것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지금 하느냐 나쁜 것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하느냐 좋은 것에  대해서 잘못된 방편을 쓰면 좋은 것이 변해서 나쁜 것이 되고 좋은 것에 대해서  옳은 방편을 쓰면 좋은 것이 더 좋아지고 좋은 것이 더 좋아지고 이것을 바로  방편을 쓰지 못하면 좋은 것이 나쁜 것으로 바꾸어지기도 하고 좋은 것이  작아지기도 하고 좋은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이러기에 이 좋은 것을 내가 상대해서 이 좋은 것에다가 내 행동이라는 행동을  여기다가 첨부를 하는데 내 행동을 여기 보태서 가공을 하는데 이 좋은 것에다가  내 행동을 보태서 지금 가공을 했는데 이 가공으로 인해서 이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고 진리를 버릴 수도 있고 하나님과 진리를 내 하나님으로  내 진리로 삼을 수도 있고 하늘의 무한한 좋은 것을 얻을 수도 있고 이것으로  하나님 하늘의 무한한 진리 다 이 좋은 것을 잘못 가공하므로 빼앗겨지고 이  좋은 이것이 변해서 무한한 고통으로 이것이 이 큰 것을 얻는 것인데 세상에  좋은 거 그것 현상유지 그것이 조금 바꾸어지는 좋은 것 요것으로 될 수도 있고  나에게 세상이 제일 싫어하는 어떤 나쁜 것이 나에게 와서 부딪쳤을지라도 요게  대해서 내가 가공을 어떻게 하느냐 요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손을 대느냐 요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요게 대해서 상대해 가지고서 행동하게 되느냐 요 행동으로  세상에 제일 나쁜 이것이 제일 나쁜 이것이 이것이 들어서 하나님과 진리를  내것으로 삼고 하늘나라를 내것으로 삼고 하늘나라의 지극히 보배를 내것으로  삼고 이것이 세상에 좋은 것도 삼을 수 있고 이것이 나쁜 이것이 한없는 영광과  존귀와 성공도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이라 평가하고 또 이보다 큰 지옥의 무한히 나쁜 거 있고 이보다 하늘나라의  무한히 좋은 것이 있고 이 좋은 거 이것보다 크신 하나님이 계시고 진리가 있고  하늘나라가 있고 나쁜 것 이것보다 무한히 큰 무한은 아니지만 큰 악령이 있고  죄악이 있고 지옥이 있고 이것을 보고 내가 당면한 이것으로써 이것이 내가  여기에 대한 행동을 가하므로 인해서 이것이 그 결과가 어찌되느냐? 그 결과를  계산되어 가지고 사는 것이 이것이 지혜있는 사람인데 우리는 그거 몰라요.

우리는 그것을 알만한 지혜가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가공을 하면 이것이 무엇으로 변해나갈 것이며 커 나갈 것이며  나빠져 나갈 것인가 그거 모릅니다. 다만 이것을 아시는 이는 우리를 책임지신  성령님만이 이걸 아시오 아무도 모르요.

 이러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당한 좋은 거 나쁜 거 이것을 어짜든지 잘  가공해서 이것을 잘 요리해서 잘 가공을 해서 이것이 좋아지고 좋아지고  좋아지도록 이렇게 가공을 해서 나쁜 것이 한 번 더 나빠져 가지고 좋은 거 되는  것도 있고 나쁜 것이 그것이 나빠져 가지고 큰 나쁜 것을 다 제거하고 큰 좋은  것을 가져오는 수도 있고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거기에 접해가지고 가공해서  이것이 변해지는 그 결과는 인간은 상상도 측량도 못합니다.

 그러기에 주님만이 이것을 아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복있는 사람이 누구냐? 주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나를 사랑하시니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나를 사랑하셨으니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의심치 아니하고 믿고 주님은 전지한 지혜를  가지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의심치 않고 믿고 주님은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이 능력을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은 이렇게 복잡하고  광대하고 유한한 초초한 것이 무한을 향하여서 영원을 향하여서 나아가는데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 완전자가 나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는 참되고 옳고  하나도 손해갈 것이 없고 후회할 것이 없는 온전한 건설을 이루어 가지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자기 앞에 닥친 일에서 내눈에 보이기에  좋은 거 나쁜 거 이것을 가리지 않고 좋은 거 나쁜 것을 가리지 안하고 좋은  것이 그 인도에 따라서 나빠져도 그 사랑 그 지능을 믿으므로써 달게 받고 좋은  것이 좋은 것으로 와도 그것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을 향하여서 주의 인도를  따라서 나아가는 이것이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또 우리는 지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좋은 것이라도 나쁜 것이라도 다 좋고  나쁜 것 아닙니다. 우리 사람은 각각 다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는 이것이 좋은 것이 필요있지마는 저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그것이  필요없어 화가 되는 수도 있어 지식이 좋지마는 그 지식이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돈도 그러하요.

 어떤 사람에게는 그 좋은 것이 없어야 될 때도 없어야 되는 사람도 있고 적어야  되는 사람도 있고 많아야 되는 사람도 있고 또 그 좋은 것이 있어야 할 때도  있고 없어야 할 때도 있소 있어야 할 때도 있고 없어야 할 때도 있소 좋은 것의  좋은 것의 양이 많고 적은 그 양도 많아야 좋은지 작아야 좋은지 우리는  모릅니다. 좋은 것이 어느 시간에 있어야 되는지 그거 모릅니다 좋은 것이 어느  장소에 있어야 될는지 없어야 될는지 그거 모릅니다. 나쁜 것도 나쁜 게 다 나쁜  거 아니요.

 나쁜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 그 나쁜 것이 아주 요긴하게  필요한 때 있소. 큰 나쁜 것이 필요한 때도 있고 작은 나쁜 것이 필요한 때도  있고 나쁜 것이 없어야 될 때도 있고 나쁜 것이 있어야 될 때도 있소.

 이런데 세상은 좋아봤자 잠깐이요. 나빠봤자 잠깐인데 이것이 본체인 무한한  세계가 무한한 나쁨과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좋고 나쁜  이거 모두 인간에게 따른 모든 행, 불행 이것보다도 더 큰 분이 있소.

 하나님이 계시오 진리가 있소 하늘나라가 있소 마귀가 있고 지옥이 있고 영원한  그 불행의 고통이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한한 세계를 향하여 찾아가는데 나에는 나는  분명히 나쁜 것도 필요하고 좋은 것도 나에게 필요하니 어느 것이 어느 때에  필요한지 나는 모르요. 어느 것이 어느 장소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요.

 그 또 분량이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 그 모르요. 다만 이것을  아시는 이는 주님뿐이시오. 이것을 아시고 넉넉히 조정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이도 주님뿐이시오.

 이 능력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도 주님뿐이시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려고 해봤자 이는 지혜가 없어 능력이 없어 뭐이 좋은지 몰라 전체는  일방적 지식이요. 일방적 지식 일방적 비판 일방적 평가 오늘의 영광이 내일의  죽음이 될지 모른다 그말이요. 이 오늘의 죽음의 고통이 삼일만에 부활의 영광이  되는 것을 인간이 모른다 그거요.

 이러기에 기독교는 이 전체와 영원무한을 상대한 범위넓은 이 광대한 도입니다.

광대한 도요. 광대한 소마이요. 이 광대한 전체면을 관련해 가지고서 사는 것이  기독자의 생애인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조브라운 마음을 가지고 눈앞에 있는  알랑알랑한 것 있으면 좋다 까끌까끌한 것은 싫다.

 명예가 오면 좋다 수치가 오면 싫다 그것은 너무도 근시안적입니다. 너무도  소경이요 멀리 보지 못하는 것이요 너무도 조브라운 사람이요 이런고로 우리는  성경 말씀 이 말씀한 대로까지 우리는 넓혀서 우리가 상대할 바를 다 상대해  가지고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 지식을 가져야 되겠소 이 세상은 잠깐인데 무한의 싹이 와  있는 것이라 요게 섞여있는 것이라 요 섞여있는데 말하자면 나쁜 거 좋은 거 두  가지가 섞여있소.

 나쁜 것은 불신자에게도 우리에게도 안좋습니다. 가난이 좋으냐 부자가 좋으냐  어느것이 좋소? 어느것이 좋다 했습니까? 부가 좋습니다. 수치가 좋으냐 영광이  좋으냐? 영광이 좋습니다. 고통이 좋으냐 평안이 좋으냐? 평안이 좋습니다.

좋은데 왜 평안을 버리고 고통을 취하느냐? 이유가 있다 그말이요. 왜 영광을  버리고 천대를 취하느냐? 이유가 있어.

 이것은 고것으로 다가 아니고 끝이 아니고 이것이 지금 무엇으로 가공이 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에 제일 인간들이 싫어하는 이것이 가공만 잘하면 인간에게 제일 보배로운  영원한 보배도 되지 인간이 좋다고 하는 이것을 잘못 가공하면 영원한 고통도  되어지지.

 이러니까 우리에게 당당은 좋은 거 나쁜 거 이것도 평가하지마는 이것보다도  이것이 어떻게 가공이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지금 어떻게 조화가  되어지느냐? 내가 여기에 대해서 내 행동을 보탤 때에 이것이 무엇으로 변해져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이러기 때문에 현재에 좋은 거 나쁜 거  그것을 평가해 상대해 살 수가 없고 이것을 나쁘다고 피하고 좋다고 취할 수가  있는 게 아니라 이것이 어떻게 변해서 나가야 되느냐 하는 그 무한함이 거기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므로 보이는 것을 상대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하여 인간의 지능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 주님만이 지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인데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완전하시고 완전하신 사랑을 가지셨으니 이 사랑을 가지시고 나를 책임지시고  보증자 되신 그리스도의 영이 나를 사람하사 보증하셨으니 이것으로써 만족하고  이것으로 안심하고 하나님과 무한한 하늘의 좋은 것을 상대하면서 이것을 조성해  가도록 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영의 인도하시는 이것을 찾아 가지고서 거기에  따라서 그러므로 고통이냐 그 너머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기쁨이 있느냐 그  너머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어떤 것이든지 네가 가공만 잘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은 걸 이루는 것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는  것은 나쁜 것도 좋은 것을 만들 수 있고 좋은 것으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세상에 제일 나쁜 것으로 세상에 제일 좋은 것도 만들 수가 있다. 세상에 좋은  것을 버림으로써 무한히 좋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광범위하고 다 방편을 가지고 있는 이 우주와 영계와 우리의 상대인데  이 상대를 향하여 가는 우리들이 자기의 내일도 모르고 아주 어리고 천박하고  이런 우리의 지식은 가지고서 무엇을 판단해서 웃고 하느냐.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겨놓고 능하신 손아래 복종하라 너는 능하신 손아래  복종하라 모든 걸 주께 맡겨버리고 능하신 손아래 복종하라.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지혜와 주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 그의 인도를 따르는 이외에는 생명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조브랍지 맙시다. 보이는 거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요 이거는 극히 작은 것이요.

보이는 영광의 가치도 수치의 가치도 부요의 가치도 가난의 가치도 그 뭐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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