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선지자선교회 1985년 9월 10일 화새 

 

본문 : 마가복음 11장 20절∼26절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르 이스라엘을,  상징해서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아야 할 이스라엘의 그 행위를 예수님께서  무화과로 상징해서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패역한 것을 무화과로 가지고  여러 번 상징해서 인용해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저주의 대상이 되어  있는지 축복의 대상이 되어 있는지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확히 그렇게  판단해서 가지는 것이 슬기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저주하시는데 저는 축복해  주시리라 그렇게만 믿고 있는 것도 미련한 일입니다. 과거에 육체의 이스라엘이  그들이 생각하기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저주할 수 있는  이런 패역을 부릴 대로 부리고 하나님 말씀을 어길 대로 어기면서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리라 그렇게 믿는 그것이 하나님께는 더 노여움이 됐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들이 이렇게 망한다' 하는 것을 미가서 3장에 보면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그 말은 예수님께서 그 말씀하신 것이 왜 그대로 권위 있게  이루어지는가?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여기서 제일 중요한 뜻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그  뜻하시는 하나님의 의사와 자기와 일치되는 것을 주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무화과 나무에 대해서 뜻하신 그대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다 이루어졌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내 안에서 계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그것이, 역사하시는 것이 내 입의  말로 나타났다.' 늘 그런 말씀을 자주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오래 동안 이스라엘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다가 회개를 안  하니까 마태복음 23장에도 보면 "화 있을진저" 그 화 있다는 말씀을 일곱 번이나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참으시기는 참으시지만 옛사람을 그걸 죽이지 안하고 옛사람을 자꾸  이렇게 그대로 가지고 옛사람으로 살고 새사람으로 살지, 안하니까 옛사람을  멸망시키는 그 일을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 그대로 됐습니다. 이 뜻 가운데는  우리도 이 세상에서 옛사람은 자기 원수요 모든 인류의 원수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옛사람을 죽여 달라는 기도를 우리가 늘 합니다. 또  새사람으로 장성해 가기를 우리가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우리가 옛사람을 이 무화과 나무처럼 이렇게 저주  받아 죽도록 하고 새사람이 자라가도록 하는 이런 기도는 이것은 어찌 됩니까?  이 기도는 세 가지가 합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이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기도하는 데에는 하나님 말씀은  있지요, 하나님 말씀이 옛사람을 죽이라고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옛사람을 죽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은 있고. 또 내가  그와같이 기도하니까 행함도 있고, 이런데 뭣이 없어서 우리가 옛사람을 죽여  달라고 그렇게 기도해도 옛사람이 죽지 안하고 항상 새사람으로 살지를 못하고  옛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그러면, 거게는 하나님 말씀도 있고 또 우리가 기도하고 하니까 기도하고 자기가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고 싶은 그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전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 안 하는 사람 아마 여게 없을 것입니다. 다 옛사람,  악령과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여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이루어지지 않는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 이유는 세  가지가 합하면 이루어지는데 두 가지는 있지만 한 가지가 없어 가지고  이루어지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 네,  믿음입니다. 한 가지 없는 것이. 그렇게 우리가 옛사람을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는 것이 행함이요. 또 힘을 쓰는 것이 행함이요, 또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미 명령하신 일 이요, 그런데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와같이 힘을 쓰면  하나님이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장성시켜 주실 것을 믿는 이 믿음이  모자라기 때문에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이 일을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것을 믿으면 너희들도 산을 옮겨서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의심치 안하면 된다 이것으로써 비유한 것은, 그 인간의 생각으로서는  도무지 될 수 없는 일이요. 또 역사에 없는 일이다. 역사에 없는 일이라도 아무리  어려운 일도 된다 하는 것을 하나 나타내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라 하는 것은 네 의사가 하나님의 의사와 같고 네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과 같고 네 욕심이 하나님의 욕심과 같고 이러면 이것이  이제 그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 믿는 거는 어떤 게 하나님 믿는 것인고 하니  믿는다는 말은 그를 딿는다는 말입니다. 믿는다는 말은 그를 쫓는다. 그를 따른다.

의심한다는 것은 그를 딿지 안하고 그와 반대된다, 반동한다 대립한다 하는 그런  것을 말해서, 의심이라 하는 거 인정하지 않는다 반대한다, 대립한다 하는 그런 걸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 한없는 큰 권능을 가져 있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지극히 큰 세 능력과 우리가 이미 법적으로는 연결돼 가지고  있고 계약적으로 연결돼 자지고 있고, 하나님의 공심꽐적으로는 우리가 연결돼  가지고 있습니다. 연결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그 실상으로 현실에서 믿음을  지키지 안하기 때문에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라 하는 이 말을 통틀어서 말할라고 하면 하나님을  닮아가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을 본받아 가고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가라.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가면 너희들의 언행 심사가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의 언행 심사가 그대로 이루짐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이렇게 우리가 권위  있을 수 있는 우리인데,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따라가지 안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안하고 하나님을 닮아가지 안하고  하나님을 본받아 가지 안하고 하나님을 배워 가지 안하고 하나님 화되어 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안 된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고. 그 다음에 덧붙여서 말씀하시기를.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라는 말씀을 덧붙여서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일이 대번에 안 되지만 자꾸 기도하면 하나님을 믿는 일이 제대로  돼 간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하고 나서 무엇이든지 네가 원해서 구하는  것은 그것은 다 받은 줄로 그리 믿으라 그랬습니다. 그 기도하고 난 다음에  소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는 그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기도하고 난 다음에 소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다 이루어지면 뭐 인간은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 인간인데 인간이 못쓸 아주  사욕대로 하는 그 사욕이 다 이루어진다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기도하면 네  소원대로 다 이루어진다 그 말은 기도하면 네가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못 된  거는 없어지고 하나님과 일치가 돼서 하나님 형상이 갖추어지게 된다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 기도하면 네가 점점 올바른 사람이 돼서 참 하나님이  이루어 주지 안할 수 없는 그런 참 사람의 올바른,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타에게 구원이 되는 하나님이 소원하는 그 소원을 네가 가지게 되고 하나님이  소욕하는 그 소욕을 네가 가지게 되고 하나님이 이 일은 안 이루어지면 안  되겠다 해서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원하는 그 일을 너도 원햐는 것이 되기 때문에  네 기도가 다 이루어진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참 이 기도라 하는 것은 굉장한 능력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된다는 이 기도는 기독자에게 아주 특권 중에  특권인데. 요한계시록 8장, 9장에도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들 기도대로  모든 것은 다 된다. 지금 이 역사에 앞으로 전개되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대로  됩니다. 지금 어떤 성도가 기도하든지 기도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에게  일임을 해 놨기 때문에 성도의 기도한 그대로 모든 역사는 전개돼 나가고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이 하시기는 하시지만 사람이 기도를 하게 하시고  기도한 그대로 하나님이 응답해 주셔서 이룹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실 일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어서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몸과 같이 되었고, 이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모든 그 권세를 줬습니다. 사람에게 줬다 말은. 예수님께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예수님에게 그 권세를 줬다 말은 예수님 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로부터는 이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앞으로 전개돼 나가는 그 모든 그 순서를  다 주님에게 전권을 맡겨서 일임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전권을  맡겨 일임했으니까 성도가 예수님과 일치만 되면 성도들이 전권을 맡은 그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의 기도대로 다 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을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은 얼마나  이것이 권위 있고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뭐 그거면 뭐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신다 했으니까 그 소원 성취 다 되니까 그보다 더 큰 권세가 어디 있으며  그보다 더 큰 재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런 기도의 그 특권을 우리가 받았는데,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안한다면 우리는 참 거지 중에 거지요, 비참한 중에 비참한 자요  가난한 자 중에 가난한 자요, 기도가 만일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그보다도 더 부강한 자가, 존영한 자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가 막히지 안하도록 이 일을 항상 힘을 써야만 하겠습니다.

기도가 막히지 안하고 기도가 권위 있게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기도가 권위  있게 되는가? 기도가 권위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으라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집사님 어디 손들어 보이소? ○○○집사님, 내가 하는 말을 그걸 꼭 듣고,  이거 내가 하나님 아니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말씀인 것을 알고 달라붙고  말이지요, 거기서 합당한 자만 되면 모든 게 이루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어주지 않는 것은 이루어 줘서는 안 될 그런 이유가 있어서 이루어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졸라대는 그 일이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그것이 기도의 골자입니다.

그래서, 여게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다 이룰 줄 알아라' 그말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 간다 그말이오. 암만 돈을 달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 돈 주면 망할 터인데 돈을 주실 수 있습니까?  돈을 진서 그 사람에게는 참 돈을 가진 것이 보배고 그 사람 돈 가진 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자녀에게는 구원이 되어 지는 이게 된다면 하나님이 왜  그 일을 안 해 주시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닮아가라, 네 의사가 하나님의 의사를 닮아가야 되고, 네 소욕이 하나님의 소욕을  닮아가야 되고 네 뜻이 하나님의 뜻을 닮아가야 되고, 네 모든 속성들이 하나님을  닮아가야 되지 너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너에게 만일 권세를 줘서 권세를  준다든지 돈을 준다든지 너를 지금 괴롭게 하고 있는 그 모든 사건들을 다  완전히 제거시켜 준다면 네가, 철장에 갇혀 있는 맹수를 철장을 뚜드려 부숴  버리면 나와 가지고 얼마나 재를 저지르겠느냐? 그와 같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는 특권인데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의 기도가  권위가 없는 것은 왜 없느냐? 하나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이 소원하는  소원이 네 소원이 됐으면 되는데, 뭐 소원뿐 아니라 모든 면으로 하나님을 네가  닮아가지 안해서 그렇고 하나님을 본받아 가지 안해서 그렇다. 내가 말한 것은 왜  이루어지느냐 하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 또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일하시는 그것이 내 말로 나오는 것이라.

아버지와 나와 하나라. 이렇게 이러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시지 아니하시고, 그분에게 속하여서 이와같이 피동으로 이렇게 되기  때문에 지극히 높여서 모든 만물을 구속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2장  5절에는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했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무슨 마음을 품으라는 것인가? 그 다음에 보면 예수님을 닮아라 그랬어 예수님을  닮아라. 언행 심사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 자체가, 인격 자체가 예수님을  닮아가면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에 있는 것을 모든 것을 다 구원하시고 머리가 된  것처럼 너도 오든 존재들에게 필요한 네가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요긴한 것이  네가 되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기도는 특권인데, 내가 하나님을 자꾸 닮아가야, 이래서  아래도 말했지만 예수님의 대속은 뭐인가 하면 사죄가 대속이, 칭의가 대속이요,  화친이 대속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죄는 그것을 범하지 않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을 범하지 않는 것, 하라는 것을 범하지 않는 것이 사죄에 관련된  것이고, 나중에는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그것이, 이제  행하는 것이 그것이 그 칭의에 속한 것인데, 그라다가 영감까지 가서 피동이 되고  복종하면 그것이 칭의를 입고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  진리와도 결합이 됐어, 또 영감과 또 결합이 됐어, 그러면 남은 것은 하나님  본체밖에 없는 데 본체와 결합되는 거는 뭐이 본체와 결합되는가? 본체와  결합되는 것은 내가 그이에게 속한 것이요 내가 그이에게 피동되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그이의 형상을 닮아서 그와같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화친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최고의 복은 어떤 것이 최고의 복인고 하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는 것이 최고의 복인 것입니다. 이래서 시편 17편에 "깰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17편 15절에, 세상 사람들은 거석하지만,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녀이다" 이걸로 삽니다. 하나님 거 가지고  제 욕심대로 먹고 쓰고 살고, 남은 거 있으면 요거는 내 새끼니까 줘야 되겠다,  보관할 자격이 없어도 그걸 요긴하게 쓰지 안하고 그렇게 유업으로 주고 내가  얼마 벌어 가지고 자손에게 넘겨 줬으니까 나 할 일 했다 하는 그런 자가 금생에  속한 사람이요, 하늘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녀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깰 때라 말은 이 다음에 부활 할 때를  가리켜서 깰 때라고 말하고 지금도 또, 그 정신을 깨서 참 성령의 사람이 될  때에는 깬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정신을 차리면, 잘 때는 정신 없지 않습니까?  잘 때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깨면 아는 것처럼 기독자들이 참으로 깨고 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기독자들 이 참으로 정신을 바로 차리고 나면  뭐 지위니 권세니 돈이니 뭐 세상 무슨 행락이니 소원 성취니 그까짓 거 하나도  생각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그말은 하나님과 같은 속성,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그 신성과 같은 인성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신격과 같은 그런 인격이 되어지는 그것으로써, 하나님의 모형이 되는 것으로써  만족한 다 그것이 최고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본체와  결합되는 것이라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특권인데, 이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할라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본받아 닮아가야 되고 자기 그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그런  소원을, 살인 강도의 소원같은 그런 소원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소원 자체가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되는 그런  소원이 되어져야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참사람이  소원하는 걸 소원해야 하나님이 들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기를 힘을  쓰는 거. 하나님을 따라가기를, 하나님을 본받기를, 하나님을 닮아가기를, 하나님화  되어가기를, 하나님 본받아 가기를 자꾸 힘쓰는 것이 중요한데 그 본받은  것만침은 네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기도하고 나서 하는 것은 다 된다 하는 기도는 뭐냐?  하나님을 믿고, 그 다음에는 기도해라. 기도하는 것은 자꾸 기도하면 그 기도로써  하나님과 점점 같이 돼 간다. 하나님을 닮아가게 된다. 어제 아침에도 말했지만  그 사람에게 있는 모든 이 세상으로 말하면 문화나 모든 생활이나 그런  기능이겠습니다. 그러면 기능을 배우는데, 그 사람이 글 써 놓은 문서를 가지고  배우는 게 쉬울런지 그 사람을 배우는 데에는 같이 이제 생활하는 것이 배우는  게 빠를란지 뭐이 빠르다고 했습니까? 뭐이 빠릅니까? 생활하는 것이 빠릅니다.

그 뭐 대학 교수 집에 가 가지고 국민 학교도 안 한 사람이 가 가지고 식모살이  한 달만 하면 그 가정에 일반 생활하는 것은 교수와 수준이 같습니다. 사람 못쓸  거는 그렇지만 된 사람은 대번에 배운다 그말이오. 대번에 배우니까 다른 지식은  없고 거게 관련한 것만 보고 들은 것만 자꾸 배우게 되기 때문에 배우니까 다른  면이 없으니까 그 지식이 기형적이 돼 나서 그만 무식한 사람이 대학 교수 집에  가 가지고 식모살이하면 나중에 그게 꺼꾸로 뒤집어져 가지고 고약하지도 안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 지식 이 체계적인 지식, 모든 지식이 없고 그 면만  같다 하니까 그 면만 보니까 이거 뭐 교수나 내나 다 동등이라 합니다. 저하고는  어림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기형 지식으로써 못쓸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닮는 것은 가까이 하는 게 제일 닮는 게 쉽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해 가지고 의논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꾸  의논하니까 처음에는 달라고 했다가 하나님 상대해 보니까 이거는 달라고 할 게  아니로구나. 이거는 안 해야 되겠다. 내가 또 기도하기 전에는 이 복수, 이 원수  풀이를 해 주십시요 이랬는데 주님하고 기도하다 보니까 원수 풀이해 달라는  그런 것을 다 취소해야 되지 안 되겠다. 이래서 자꾸 자체가 자꾸 변화돼 간다  그말이오. 기도함으로 변화돼 간다 그걸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데에는 기도하면 하나님을 닮아간다. 하나님을  닮아갈라고 하면 기도하면 하나님 닮아가는데, 네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닮아갈라고 하거들랑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할 것이 아니라 사람도 바라보라 하는  것으로 그 다음에 말씀을 했습니다.

 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고 하니 네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만 이래 바라보면서 자꾸 기도하면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고, 또 사람을 네가 바라보기는. 사람을 따라갈라고 바라보는  게 아니고, 사람을 따라갈라고 바라보는 게 아니고 사람과 뭐 석연치 안한 일이  없나? 혐의란 말은, 좀 혐의란 말은 분명치 못하고 뭣인가 좀 께꾸름한 의심할  만한 그런 거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사람과 뭐인가 딱 들어붙지 안하고  사람과 뭐인가 뻐석하게 서로 성글어진 게 있다 말이오. 사람과 성글어진 거 있는  거 그런 거를 사람에게 네가 뭐 잘못한 게 있나? 하나님은 닮아갈라고 애를 쓰고  또 사람에게는 무슨 네가 잘못한 게 없나?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때를 따라 양식 준다. 사람에게 대해서 뭣인가 참  양식이 되도록, 그의 인격의 양식이 되고 심령의 양식이 되고 그 모든 지혜의  양식이 돼서 그가 나를 접촉하고 듣고 소문 듣고 봄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점점 참사람과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힘을 얻게 하는 그것이 양식 주는 것이라  그말이오. 양식 주는 거.

그래, 마태복음 5장에는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절에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길에  있다 말은 이 세상, 천국 가는 이 길을, 이 세상살이를 가리켜서 길이라 말합니다.

세상은 천국 가는 길이요 지옥 가는 길입니다. `네가 길에 있을 때에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해결하라 그말이오. 해결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에게 내어 준다 말은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심판하는 그 천사들에게 내어 준다. 하나님이 심판하시지만 심판할 때에 수종드는  자들은 천사들입니다. 세상 재판도 그래. 재판에 가서 뭐 딱 그라면 사형하면  그만 딱 묶어 가 버리지 않습니까? 또 몇 달 선고하면 딱 잡아다가 그만 가둬  버리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천사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간수에게 내어 주어 또  간수도 내나 그게 천사입니다.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요거는 좀 알기가 어려운 말인데,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는 이 옥은 무형의 옥입니다. `형체가 있는 옥이 아니고 무형의 옥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같지만 전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너는 십 리 밖에는 못 나간다.' 예를 들면 십 리 범위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사람도 있고, 백 리 범위 속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도 있고 또 `너는  한국만 있지 외국에는 못 간다' 한국이라는 범위 속에 갇혀 있는 사람도 있고, 그  범위. 공간 범위 이커 물질 범위는 작지만 그보다 더 큰 범위, 자유를 가지되 너는  요만한 자유성을 가지고. 기쁨도 너는 가지지만 이렇게 범위 좁은 기쁨은 가지고  있지만 넓은 범위는 너는 가지지 못한다. 너는 그 쾌감도 너는 아주 반디 속 같은  그런 조그만한 쾌감 그런 거나 가지지 참 사회적인 쾌감은 네가 가지지 못한다.

세계적인 쾌감은 가지지 못한다. 우주적인 쾌감은 가지지 못한다. 모든 피조물  전체에게 대해서 쾌감은 가지지 못한다. 피조물 전체에게 쾌감을 가지고 그  다음에는 창조주와 피조물 그 전체를 향해서 쾌감을 가진다면 이 쾌감은 그  사람은 이제 감옥이 하나 없이 자유하는 사람이겠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모든  것에 자유와 행복에 무형의 범위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 범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하나 해결해야 그 범위를 넘어서지 해결하지 안하면 그 범위를 넘어  서지 못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남김이 없이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이렇게 영원 미래는 이렇게 철두 철미하고 모든 것이 정확하게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계를 보면서 살라 그말이오. 이 세계를 보면서  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첫째는 하나님을 닮아가야 되는데, 하나님을 닮아가는  데에는 기도해야 되고 하나님을 닮아가야 기도의 권세가 있고 또 기도가 막히지  안하고 다 들어 주실 수 있고, 우리가 기도를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닮아가는  데에는 어째야 되느냐? 닮아가는 데에는 기도해야 된다. 기도하는 데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해야 되지 어떤 사람은 자기 욕심만 바라보면서 기도하기 때문에  그 욕심이 기도를 할수록 더 땐땐해져 가지고 그게 녹아지지 안하고 더 단단하게  더 강퍅해지고 악독해집니다. 그 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게 아니고  자기 욕심 건 그놈을 거머쥐고 하기 때문에 점점 견고하지니까 뭐 나중에 가서는  기도 많이 하고 나면 사람을 죽여도 제 욕심대로 달성할라고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그말이오. 그거는 기도를 바로 하지 안해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데에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다음에 하나님 바라보는  것만은 못하기는 못하지만 그 다음에는 사람을 바라보는 거 아니고, 사람에게  소망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사람을 다만 상대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기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사람 상대한다는 것은 내가 사람에게 무슨 거리낌이 있나?  사람이 내게 무슨 원망하는 게 있나? 내가 뭣이에게 잘못했나? 또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줄 걸 주지 못해서 빚진 게 있나? 그 내가 기도해 주지 못한 거, 사랑  주지 못한 거, 봉사해 주지 못한 거. 내가 참아 주지 못한 거. 견뎌 주지 못한 거  그런 것도 다 주지 못한 것이라 말이오. 뭐 똑 물질 주지 못한 것만 못 한 게  아니라. 이래서 바울이 `나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 그말은 바울의 신앙  지식이 넓음에 따라서 자기가 지금 다른 사람에게 마땅히 줘야 할 것을 주지  못한 그런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빚진 자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과 아무 혐의가 없도록,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도록 이렇게  사람에게 원망하는 그런 일이 없도록 이런 것을 해결해야 됩니다.

무슨 돈 때문에, 어떤 사람 보니까 아, 돈 그건 주지 안해 가지고 벌써 만나는  사람마다 아, 서부 교인입니까?' 만나니까 이렇고 이렇고 이렇습니다. 목사님한테  해야 되겠다' 나한테도 편지가 이래 오고 이랬는데 그 뒤에 그것을 해결했단 말을  들었습니다. 본인이 다 해결했다고 그 해결하기가 힘이 드는데 그분이  해결했습니다. 그 해결한 걸 잘했습니다. 해결하기가 힘이 들었지만 그런 것을 다  힘들여서도 그 사람에게 해결할 걸 해결해 주니까 그게 풀려졌다 말이오. 그만치  하나님과 자기와의 가까워졌고, 기도의 권위가 있게 됩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놓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있는  동안에, 길에 있을 동안에 급히 사화해라 시기가 지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급히  사화해라.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 하라 말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하라 그말입니다. 세상에 있을 때가 길에 있을 때입니다. 세상 딱 떠나  버리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만 재판관이 간수에게 내어 줘 가지고 재판해 가지고  잘못됐다 잘했다 심판받는다 말이오. 심판받아 가지고 그다음에 천사들에게 내어  줘 가지고 이 사람은 어느 정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고  어느 정도의 구금을 줘라 해서 그 모든 자기의 활동성이나 권위성이나 또 자기의  역사성이나 쾌활성이나 자기의 봉사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는  신임성이나 모든 것이 다 딱 고정돼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딱 결정이 되면 그  결정된 것을 다시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는 영원이라 하는 것을 늘 기도할 때 말합니다. 현재는  영원이라. 현재는 현재로 끝나는 게 아니고 현재는 영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현재라는 것온 영원의 좌우가 결정되기 때문에 현재라는 것은 귀중한 동시에  우리가 조심해서 살 일이지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욕심을 향해서 그것을  충족시킬라고 하다가서 영원히 자기가 비참하고 그런 감옥 속에 갇히는, 아무것도  자유하지 못하는 거, 그래서 이것은 무형의 감옥이 그 무형의 감옥이요, 진리의  감옥이요, 이것은 자기 양심의 감옥입니다. 자기 양심이 자기를 가둬서 나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그 사람은 나에게 어떻게  할지라도 나는 그 사람에게 거리낌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면  사람에게 자유하는 그러기 때문에 모든 만물에게 자유로 출입할 수가 있고,  사람의 마음에 자유로 출입할 수 있어. 그 사람 마음에 내가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데. 그 사람 마음에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  속에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 속에 내가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람되는 것은 그 사람이 못 들어 오구로 막습니까, 자기  양심이 자기를 막아서 그 사람 속에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무엇으로  그렇지요? 네, 거게는 상대방이 따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마음에 가책이 돼서  그에게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나를 저주해서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있는 세계가 앞으로 영원 무궁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있는 걸 찌끼로 생각하고 우리들이 다 신앙 생활에 전심 전력을 기울일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지금 제가 이 말씀을 증거하는 거는 뭐이냐 하면 사람으로 더불어  거리끼지 않도록 해라. 네 딴에는 지금 옳다고 생각하지만, 옳다고 생각하지만  너와같이, 만일 서부 교인이 다 너와같이 되면 어찌 되겠느냐. 그걸 한번 생각해  보라 말이오. 서부 교인이 너와같이 돼지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바울이  말하기를 나를 본받으라 한 것처럼 온 서부 교인이 나와같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 사람이 되어져 라. 네가 하는 것이 요거는 옳다 하지만 그러면 온 서부 교인이  너와 같이 되면 어찌 되며 천하 신자들이 너와같이 되면 어찌 되느냐? 다른  사람은 너와같이 되면 안 되는데 너는 너와같이 된 그것이 좋다고 옳다고 하는  것이 틀리지 안했느냐? 그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보면서 자기를 깨달아서 고칠 걸 고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고칠 걸 고치고. 이래서 하나님은 소망하고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배워가도록 하고. 사람에게 대해서는 혹 잘못됐는 게 있는가. 남을 보아서 자기를  깨닫게 됩니다. 남을 보아서. 남을 보아 깨치라. 남을 보아서 깨달으라. 사람이라  하는 것은 원죄, 자기 중심 이게 있기 때문에, 자기 중심 이게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있는 것은, 이런 건 담박 죽여야 되겠다 하는 그런 나쁜 거라도. 다른  사람에게 있으면 그런 거라도 자기에게 있으면 상관이 없어. 상관이 없다  그말이오. 이래서 무슨 있는 것은, 악은, 이게 다른 사람에게 있으면 어찌 되느냐?  다른 사람에게 있으면 '이거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자기에게 있는 것은  그것을 이리저리 변호 해 가지고 용납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해서는 너무 후하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너무  박하고 이렇게 하후 하박하기 때문에 공평이 없이 이리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위하는 게 자기  죽이는 거라. 가만히 여러분들이 벌써 몇 해라도 살아왔으면 그것을 자기를  연구해야 돼요. 계산을 해야 돼요. 아. 내가 이것은 나 위해서 한 일이 뭐인가?  내가 나를 위해서 내 중심으로 나를 위해서 한 게 뭐인가 하는 것을 잊어 버리지  말고 그걸 낱낱이 가지고 계산을 대보면 벌써 몇십 년 살았으면 현재와 미래라는  것이 다 과거가 돼 버렸으니까 그것을 계산해 보면 아, 나 위해서 말한 것도, 나  위해서 행동한 것도, 나 중심해서 계획한 것도, 뭐 대인 관계 한 것도 모든 사물  관계한 것도 전부 나 위해서 한 그거는 뭐이냐? 그것이 다 나를 망쳤고 나를  스스로 그게, 말하자면 자살 행위가 됐더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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