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둥치와 새움-두 사랑


선지자선교회 1989년 5월 11일 목새집회

 

본문 : 고전 13 : 1 - 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 기독교는 영원 전 홀로 계신 분이 계셨으니 그분은 무엇으로 인하여  계시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계셨습니다. 계신 그것은 영원 전에 계셨지 영원 전에  계셨지 언제부터라고 할 수 없는 영원 전에 계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다고  하면 그 말은 어폐가 있는 말입니다. 영원 전 홀로 계셨는데 그분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를 당신이 나타내시기를 하나님이라 이렇게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뜻은 한 분뿐이시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근본 하나님이 나타내신  이름인데 그 후에 악령들이 유혹시켜서 뭐 하느님이니 또 하늘님이니 이런 모든  많은 그 표현들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당신이 당신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타락 후, 마귀의 침노를 받은 후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런 이름  저런 이름을 지어 가지고 붙여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영원 전 자존하신 하나님 한 분이 계셨고 그분이 첫 목적을 정하셨으니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때에 그 한 분은 본체도 하나시요 한 분이신데 그때에  그리스도라는 또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은  그때는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데 그 역사에 목적을 정하시기를 하나님이 당신과  꼭 같은 피조물을 창조하시려고 목적을 정하신 것이 자존하신 하나님이 처음으로  역사하신 제일호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계시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의지 안에서 정하신 역사입니다. 이 목적을 곧 그 후에 나타내시기를 하나님의  택하심이라 이런 말로 나타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만 되는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을 곧 하나님이 정하시고 그 목적 하나를 달성하려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그 택함이 시작됐습니다. 그 택함이 시작된 그 택함은 그것도 다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 된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목적이 택함으로 나타났고 또 이 택함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정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예정으로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창조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면 이 창조라는 이 창조까지가 하나님의 당신 안에서 당신  뜻 안에서 지금 당신의 의지 세계에서 이렇게 순서를 이루신 것이고 아직까지 이  시공 세계는 생겨지지 안한 때입니다.

 그 후 의지 세계에서 예정 창조하신 그 일이 처음으로 창조로 시공 세계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지 세계의 창조의 순위가 있고 시공 세계의  창조의 순위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의지 세계의 하나님의 역사와 의지  세계의 순위대로 당신의 그 주권 능력으로 이 시공 세계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의 주권 의지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예정 세계의 순위가  있고 그대로 또 이렇게 시공 세계 곧 영물과 물질이라는 이 두 가지 요소로  이렇게 역사하시는 이 두 가지 역사를 하나님이 병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단독 주권 의지대로 예정하신 그 예정 그것을 홀로의 주권 능력으로  그대로 지금 하나씩 이 시공 세계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보이는 이 시공 세계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의 의지 세계대로  지금 그 순서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심을 따라서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구원은 이 시공 세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부터 시작된 구원인데 우리 구원의 근원은 자존하신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요 그분의 의지 시작에 목적을 정하신 그것이 곧 우리 구원의  시발입니다. 그러면 이 목적을 정하신 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정하셨다. 그  뒤에 발표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 이렇게 발표를 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시며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우리는 그때는 있지도 안했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했으나 그 후에 하나님이 시공 세계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지을까'  하는 의논을 할 때 그때에 하나님이 비로소 우리라는 복수로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이 하나님으로 나타낸 것을 우리라고  그렇게 나타내신 것으로 그렇게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이 시공 세계를 창조하실 때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하는 이 태초는 이 시공 세계가 시작되는 그때를 가리켜서 태초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그것은 시작이 없어 영원 전이라 이렇게  발표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시공 세계가 시작되는 그때가 곧 하나님이 시공  세계를 창조하시기 시작되는 때이니 그때가 태초입니다.

 이래서, 창세기 l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는 그 태초와  요한복음 l장에 태초라고 말씀하신 그 태초는 다릅니다. 요한복음 l장에 기록되어  있는 태초는 창세기 l장의 태초보다 앞서 있는, 먼저 있는 때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공 세계를 창조하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하실 그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가리켜서 하나님이라 그렇게 계시하셨습니다. 계시라 말은  당신이 열어 보여 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알려 주시고 보여  주셨습니다.

 이랬는데 그때에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흑암에 깊은 곳 수면에 운행하셨다. 거게  다니셨다. 창조된 창조물 거게 하나님이 다니셨다.' 이렇게 했는데 그때에 다니신  하나님은 곧 영원 전 하나님 의지 세계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맡으신  하나님이시요 목적 곧 택함을 맡으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곧 제이위  성자라는 하나님이 그때에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사람을 마지막 날에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그 사람을 관리하시는 그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거게 머물게  하시고 그때부터 사람으로 이 접선하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아담 해와가 선악과  먹고 난 다음에 숲속에 숨었을 때에 아담을 찾아서 오신 하나님이 계셨고 에덴  동산으로 처음에 안내한 하나님이 계셨으니 곧 그 하나님은 도성인신하신 곧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라는 제이위 성자인 하나님이 우리를 예약적으로 타락  후에 대속을 처음으로 선포하시고 베푸신 것이 창세기 3장 l5절에 여인의  후손으로 나타나고 또 타락 후에 가죽옷을 지어서 입힌 그때가 곧 대속의 역사를  시공 세계에서 나타나게 역사하시는 그 역사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후에 아담의 자손에서 가인과 아벨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한 아담 해와의 자손인데 그 아담과 해와는 최초의 교회입니다. 제일 처음  된 교회가 아담 해와입니다. 그 첫 교회에서 원 줄기가 그대로 나와 가지고 된  것이 곧 아벨의 줄기입니다. 거게서 탈선되어서 나온, 잘못되게 갈라져 나간 것이  가인입니다.

 이 육적으로는 가인이 원줄기였으나 하나님편의 이 모든 계약적과 그  성령적으로 된 줄기는 동생 된 그 아벨이 원줄기였습니다. 거게서 가인이 아벨을  죽여서 하나님께서 다시 셋을 낳아 가지고 아벨의 그 신앙 줄기, 구원 줄기,  하나님의 목적 줄기를 계대했습니다. 거게서 나와 가지고 아담의 자손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라다가 모두 다 장성하니까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녀 낳고 그라다가 죽는  그것으로서 이 보편적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 나오는데 거기에 원줄기가  있었으니 곧 에녹입니다. 에녹은 승천했으나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동하고 정한 그 구원 줄기, 신앙 줄기는 그대로 땅위에 계속해 나왔는데  그 계속이 얼마 동안 쭉 나오다가 성경에 발표되기를 노아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다 보편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있다가  때가 자꾸 이래 험악해져서 사람의 딸들이 나왔는데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딸들하고 이렇게 결혼해야 될 터인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욕심대로 취해서 아내를 이한  그것이 이 원줄기에서 탈선돼서 잘못 갈라진 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노아는 원줄기를 계대해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거와 같은 그  구원 줄기, 그 신앙 줄기, 이래서 하나님으로 동행하는, 하나님에게 복종으로만  사는 이 구원의 진리대로의 원줄기가 나왔으니 그것이 곧 노아입니다. 노아는  다른 모든 사람들은 제 욕심대로 저 좋은 대로 했는데 노아만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으로서 생애한 것이 그것이  그때에 잘못된 줄기와 원줄기 바른 줄기와의 갈라졌던 것입니다.

 갈라진 그것을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하나님의 명령 순종대로 한 노아의 모든  명령 순종은 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운동이 됐고 하나님의 구원을  자기가 상속받는 그 계대의 운동이 되는 것으로서 홍수 심판이 나서 노아의 여덟  식구의 그 계통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가졌고 남은 사람들은 다 탈선돼서  홍수에 멸망을 받았습니다. 홍수에 멸망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이  홍수에서 결정되지 안했고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 하나님의 목적에서 시발되어  하나님의 예택으로 뻗어 나왔고 예택으로 뻗어 나온 것이 그것이 창조돼 가지고  선택받은 자의 구별된 신앙 행위가 시작되어 나오는 것이 이제 그 나타난  아담으로부터 된 것입니다.

 아담이 첫째 탈선된 행위를 했는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 l5절의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탈선된 줄기가 바른 줄기를 가지고, 대속으로 바른  줄기 가지고 찾아낸 것이 배암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으로 전투해서 여인의  후손이 승리할 것을 그것은 하나님의 대속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선포하시고  예약하신 것인데 그 선포도 예약도 그것이 이 시공 세계에서 된 일이나 실은  의지 세계에서 된 것이 시공 세계에 그대로 순서가 이루어졌고 발표가 했던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노아까지 내려와서 또 노아는 그때까지의 하나님의 구원 계통을  바로 잡아 가지고 나왔었습니다. 노아의 홍수로써 하나님의 구원 계통에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다 완전 청소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물심판입니다.

 거게서 또 그 줄기가 나와 가지고, 이 마귀가 있기 때문에 또 그 줄기가  갈라졌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 삼 형제인데 삼 형제는 다 물에서 구원을  얻은 그 사람들이었으나, 셈은 그 줄기의 바른 계통의 줄기고 함은 거게서 이탈된  그 탈선된 하나의 잘못 나온 가지입니다. 마지막 아들 야벳은 그는 원줄기는  아니나 원줄기에 속해서 그 줄기의 혜택을 같이 입을 것을 하나님이  선포하셨습니다. 이래서 셈 맏아들은 황인종의 조상이 됐고, 야벳은 백인종의  조상이 됐고, 함은 흑인종의 조상이 돼서 이렇게 역사 세계가 자꾸 지금 꾸려져  나옵니다.

 이라다가 그 후에 많은 그 세월을 걸쳐서 다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 도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뚜렷이 나타내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세워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하나님의 그 도를 새롭게 가져 지키는  사람으로서 그 도인으로 하나님이 정하시고 그 도의 길을, 생명의 도의 길을  걷도록 하신 것이 아브라함 때에 와서 다시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하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새롭게 하신 것이 네가 이 모든 것을 잘못된 삐뚤어진  이런 것을 버리고 다시 새 움처럼 네가 새로와져라 하는 것으로서 버릴 것이  무엇인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때에 사람은 세월이 지나가는 가운데에 하나님은 차차 멀어지고 하나님에게  머물러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은혜 안에서 사는 것보다 껍데기로 외식으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이 모든 땅에 흙에, 흙에 머물고 흙에 붙어서 소망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와 축복 세계 안에서 살아야 될  인간이 타락해서 땅에 붙어 살게 됐습니다. 땅에다가 소망을 두고 살게 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역사로 보이는  것들을 나타내니까 심령이 어두워져 놓으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는 부정하게 되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역사로  보이는 것이 나타난, 이 보이는 것이 나타난 이 모든 흙에서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마시는 것도 다 나오고 이라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 역사가 보이는 이  물질로 나타났습니다.

 이러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보이는 이 물질에 속해서 있고 또  그는 보이지 않는 인격 존재인, 신격 존재인 하나님과 이 교제해 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이 사람들이 타락해서 보이지 않는 원형인 그 신격인  하나님과는 교제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모형으로 되어 있는 사람의 육체에만  교제를 하고 관계를 해서 있어서 그때에 아브라함이 나타날 때에는 사람들은  벌써 소망이 땅에 있었고 소속이 인간들에게 소속해 있었습니다. 실상은 하나님과  벌써 끊어져 있습니다.

 이래서, 거게서 다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브라함을 처음에 부르실 때  말씀하시기를 '네가 본토를 떠나라' 그 말은 네가 땅에다 소망 두고 사는 땅의  소망을 그것을 버리라 하는 말입니다. 땅의 소망을 버리라,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그 말은 네가 인간에게 소속해 가지고 인간으로서만 지금 교제하고 연락하고  이렇게 사는 그 인간 소속을 버리라 하는 이것을 하나님이 첫 명령으로  명령했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만일 본토 떠나기를 꺼려하고 친척 아비집을 떠나기를 꺼려  했더라면 하나님의 지시는, 하나님의 인도는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은 본토를 더러워서 버리는 게 아니고 본토보다 하나님이 더 낫다는 그  깨달음의 은혜를 아브라함이 입었습니다.

 이것도 아브라함 스스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런 은혜를 입게 하시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니 본토보다 하나님의 축복이 낫다, 모든 친척  아비보다 하나님이 낫다' 하는 것을 바로 비판하고 바로 평가해서 그때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아깝지마는 보다 나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 길을 택해서 출발한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후 아브라함이 떠날 때에 롯과 함께 떠났고 또 아브라함이 떠날  때에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게  하실 때에 가는 걸음에 방해되지 아니하고 같이 가는 자들은 다 데리고 갔습니다.

자기 혈육이 아니고, 혈육 아니라도 다 데리고 갔습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 소망으로 이제는 그 소망을 버리고  땅에 속해 있던 자가 그 소망을 향하여 갈라고 할 때에 방해하는 자는 다 버리고  갔습니다. 방해하는 자는 버리고 가고 가는 데에 같이 따라서 동행할 자들은 다  데리고 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도가 흑암 가운데에 흐려져 있다가 다시  새롭게 된 이 한 순서입니다.

 요새는 새로와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갱신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내가 언제 보니까 OOO교회 집회에서도 갱신이라는 그 제목으로써 그렇게  논하고 있는 것 봤습니다. 그런데 그 갱신을 말하는데 사람들의 이 행위의 갱신은  말하고 교리와 신조와 행정에 대한 갱신은 말하지 안했습니다. 그게 중요한데  그것을 말하는 걸 내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녹음 테이프를 내가 들었습니다.

녹음 테이프가 지금 내게 있습니다.

 그랬는데 그렇게 나가다가 아브라함은 역연 처음에 출발한 때와 같이 그는 땅에  소망을 피조물에 소망을 가지지 안하고 하나님의 축복에 소망 가지는 것을  외부로 하고 직접 하나님에게 소망 가지는 그 소망을 중심으로 해서 나가는데  롯은 그때에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 걸음을 걸었지마는 그는 자기가 소망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가족들과 모든 목자들, 종업자들이 그  사람이 그의 소망의 대상이 됐고, 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보다도 보이는  모든 땅위에 있는 이런 저런 조건들이 그이에게 소망이 되어져서 그때에 이로  인해서 아브라함과 롯은 갈라졌습니다. 갈라진 계통을 여러분들 이렇게 대략으로  말하니까 집에 돌아가면 위에서 쭉 계속해서 연구해 보면 갈라진 그 갈라짐이  지금이나 그때나 꼭 같은 성질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고  내나 그 마귀가 있기 때문에 갈라지고 유혹되는 방법도 유혹에 빠지는 방법도  생명으로 전진 향상하는 것도 사망으로 탈선돼 나가는 스스로 멸망을 자취하는  길이 꼭 같습니다.

 그후에 아브라함이 지난 후에 계속해서 많은 선지들이 나와서, 선지들이 나온  것도 다 토막토막에 살펴보면 다 이런 계통으로 나오다가 원줄기가 있고  원줄기에서 다 탈선돼서 갈라진 그 줄기로서 이렇게 나오다가 예수님이 오시기  전 육체의 이스라엘의 그 종교 말년에도 그때에도 두 줄기로 갈라졌습니다.

 갈라져서 다 예수님을 구주로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었지마는 거게서 막상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니까 메시야를 강보로 싸서 예루살렘에 갔을 때에 벌써  그는 자기의 구주로 이렇게 영접하고 찬양한 사람들도 있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려고, 또 노동일 하는 이 목자들도 그는 성 밖에서 양을 치지마는 성 안에 말  구유에 구주가 나신 그 소식을 천사들을 통해서 듣고 가 가지고 영접을 했습니다.

 또 먼 나라에 있는 동방에 있는 그 박사들도 그들도 메시야 난 것을 그들이  하늘의 징조를 보고 알아 가지고 찾아와서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또 그때에 뱃속에 들어 있는 세례요한은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한 달도 안 됐는데 영접해서 갔을 때에 그때에 뱃속에 있는 세례요한은  오는 메시야를 영접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그때에 비로소 천국을 전파하면서 사생활 삼십 년을 거치시고  그것도 우리 대속으로 사생활이 전부 우리 대속 생활입니다. 우리가 죄 지은 걸  대속하기 위해서 하시고 공생활로 이제 우리의 대속을 시작하실 때에 그때에 다  같은 유대인들이지마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배척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나다나엘이 와서 예수님을 뵈올 때에 예수님께서 '너는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때에 깜짝 놀라서 '나를 어떻게 압니까?'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 내가 그때 내가 너를 보지 안했느냐?'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간사함이 없다 말은, 인간 따라 피동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포해 놓은  그 계약 줄기를 잡고 계약 줄기보다도 자기 양심을 써서 진정 원하는 데에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로 인도하시는 거게다가 눈을 기울이고 거게다가 자기의  소망을 두고 왔기 때문에 너는 간사함이 없다. 이 모든 일반 육체의 이스라엘들과  다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체의 이스라엘들에 대해서는 말씀하시기를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사람 계통으로서는, 사람 계통으로서는 대제사장이면 원줄기요 또  제사장 서기관들이면 성경을 제일 잘 아는 성경 학자들이요 요새로 말하면  신학교와 같은 그런 성질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정죄해서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 누군가? 그는 서기관들과 바리새 교인들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하는 것을 성경에 증거를 해 놨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요 모든 육체의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중심적인 표본적인 신앙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그 위치를 가진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저버리게 됐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게 성경에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와서 가르치심과 저들의 가르친 것이 다른 그것이  사고입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보고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저거보다  옳다는 것을 인정을 했습니다. 인정을 했지마는 그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명예 지위, 영광 권세 모든 사람들이 저들을 유일의 하나님의 종으로 신앙  표본으로 삼고 따라가는 이런 많은 인정을 받고 높은 지위와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있는테 교훈이 다르니 그 교훈을 옳다 긍정하는 날이면 자기네들의  교훈은 다 무너져야 되는 것이고 또 거게서 다 영광이 다 뒤비지고 완전히  박탈되어지기 때문에 순전히 그것이 악으로 그리 됐습니다.

 자기 중심인 악, 자기의 그 육체의 소욕, 육체의 소욕이라 말은, 육체의 소욕이라  말은 첫째 아담의 자손의 소욕이라 말이오. 첫째 아담의 자손은 배암에게  유혹받아서 그 속에 배암이 왕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 욕심은 전부 다  배암적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때에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알았으나 욕심과 교훈에  그 이성 판단의 양심의 판단과는 대립이 돼 가지고 결국은 강하기는 욕심이 강해  가지고 양심도 짓밟고 이성도 짓밟고 그들은 이제 그를 따라서 자기네들의 육을  유지할라 하니까 교훈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정죄해서 못박았습니다. 주님이 예언하시기를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고 하니까  이제 부활하지 못하도록, 참말로 부활하나 안 하나, 부활을 하나 안 하나 하는  것을 보고 또 부활해 가지고 나타나면 더 큰, 크게 저희들이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이제 부활을 감시하고 부활을 방해하기 위해서 군인들을 보내서  지켰습니다.

 이라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군인들이 감시해서 확실히 보았고 또  부활하시는 그 권세를 군인들이 방해해서 막을 수가 없다는 그 사실을 와서  보고했습니다. 기절하다시피 두려워 떨어 와 가지고 사실을 고했습니다. 그때에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그총중에 수뇌되는 그 모든 열심쟁이들 그들은 다  들었습니다. 듣고서 이제는 그가 말씀을 하셨고 또 구약에 여러번 말씀을 했으니  이가 메시야인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메시야라는 것을 틀림없이 확실히  알았습니다. 알았지마는 메시야라고 '우리가 잘못했다. 부활하신 것 보니까  메시야다.' 하고 그 때라도 회개하면은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면 사해 주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상이요 주장입니다.

 이랬는데 그들이 그때에 대두되는 것은 지위나 영광이나 명예나 권세가 문제가  아니라 메시야를 돌로 쳐 죽이라고 십자가 못박아 죽이라고 이렇게 주도한 것이  저거들이니까 저거들은 틀림없이 다 사형을 받아야 됩니다. 육체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 죽임을 받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때는 처음 그 어려움보다도 더  큰 어려움 생명 문제가 되니까 알고도 할 수 없어 군인들에게 돈을 주어서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하고 입을 막아 놓고 그들이 거짓말 해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도록 많이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부활한 것을 안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주장도 있고 부활하신 걸 확실히 본 증거로서 이 지금  정통으로 내려온 그 주장들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자기가, 인간이 완전자가 없습니다. 이 풀 포기를 봐도  처음에 났던 속잎이 자기 역할을 다 하고 나면은 누렁잎이 됩니다. 누렁잎이  노력한 것으로서 인해서 새움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식물들은 새움이 나왔으니까  '이 새움을 저걸 족쳐대야 되겠다' 그런 식물 없고 고요히 마지막에 누렁잎이 될  때까지 자기에게 있는 영양을 다 기울여서 새움을 자라도록 이렇게 보양하고 다  보양이 끝나면 그는 말라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귀가 들어가서  변질이 웠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변질된 것은 천사와 사람만 변질됐지  다른 것은 변질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딴거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자기가 잘못 가르침이 있는 그것을 별스럽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어제 가르친 것이 잘못되고 오늘 가르친 것이 바로 될 수  있습니다. 자꾸 하나님의 역사가 자꾸 새로와지게 하기 때문에 옛 것은 옛날에  적합했고 그 시대를 감당했고 또 오늘에는 또 새 것이라서 새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새 것으로 자꾸 하나님이 이렇게 자라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칼빈은 지금으로부터 사오백 년 전에 그 시대를 감당한 유력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시대와 시대가 다릅니다.

 이런데 그 시대의 감당을 완전히 감당했는데 감당한 것을 지금 후 세대가  자기네들의 새로운 깨달음과 아주 뒤떨어지고 다르다고 이렇게 하며 조롱하는  것은 자기의 첫 떡잎, 움이 날 때 첫 떡잎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게 없었으면 제가  안 납니다. 생기지 못합니다.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는 그  시대를 감당했으니 언제든지 참 그 시대를 감당한 그것이 둥치니까 그 둥치를  요동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둥치만으로서 계속하면은 잎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습니다. 그 원둥치에서 새로운 조그만한 움이 나 가지고 그게 자라야 잎도  피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그 시대의 어떤 인물이 없어져도 영원하신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는 그 다음 세대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런 교리도 다시 새로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교리와 신조도 보여 주시고 또  행정도 보여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묵은 둥치를 새움이 무시하면은 자기를  멸살시키는 것이 되고 또 묵은 둥치만 가지면 묵은 둥치가 새움을 무시하면 그는  희망이 없습니다. 묵은 둥치는 새움을 양육해야 되고 새움은 묵은 둥치의 혜택을  감사하고 그 혜택을 언제든지 입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에 이십세기에 새로운 교리와 신조가 나왔다 할지라도 바로 되어  있는 옛날의 묵은 둥치 원둥치가 되어 있는 그 교리 신조를 그대로 그 능력을  힘입어야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칼빈주의의 사상 중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그분이 발견하고 말했는데 주권이라는 그 둥치는 언제든지 힘입어야 되고 그  둥치를 버리면 죽습니다. 또 그는 하나 더 좋은 거 또 그거 또 하나 있는 것은,  '성경만치 가고 성경만치 중단해라.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중단하면 중단해라.

성경을 넘어서 가지 말아라.' 좋은 원둥치를 만둘어 놨습니다. 그러면 그 둥치의  혜택은 언제든지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라고 이렇게 나다가 비로소 그때에 다시 원둥치에 새 줄기를 나타냈으니 그  새 줄기 나타낸 것이 곧 세례요한입니다. 그 세례요한이가 와 가지고 그때까지는  암흑 세계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진노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이  그러했지마는 표현은 진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진노받을 만한 그런  외식 행위가 많이 있기 때문에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을 만치 그런 외식 행위가  많이 있는 거기에서 선지자를 오랫 동안 금했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지  안했습니다. 말라기 이후로 말라기 기록한 선지 이후로서는 그때에 그후에는  선지자가 나지를 안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지자가 없으니까 갈길을  모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암흑 세계에서 마치 대가리 끊어진 닭과 같이 벌로 뛰고 굴리니까  죽을라고 발동이지 그거 생명 역사가 없었습니다.

 이라다가 많은 세월 동안 육체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게 붙여서  세상에게 짓밟히게 해서 역사에 이스라엘 유대인의 그 참사 보다도 박해라는  것은 역사에 없는 그런 참사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다른 민족들은 그만 못한 그거  몇십분지 일만 되는 그런 박해를 받아도 다른 민족들은 다 멸종이 됐는데  인간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모질고 독한 그 박해를 받았지마는 그 이스라엘의  유대인이라 하는 종자가 남아 있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킁 능력이요, 또 그분이  주권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보고 깨달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게서 비로소 수백 년 후에 한 선지자 낸 것이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이는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요 신약 시대의 처음 시작한 선지자입니다. 양쪽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중간에 중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통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이 소개돼서  전파됐고 또 그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인계해 가지고 나는 쇠해야 되고 그는  흥해야 된다. 그는 곧 성령으로 세례를 줄 자요 나는 물로 세례를 줬기 때문에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에도 감당치 못한다' 하는,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해야  된다는 요것이 이양 방법에서 잘됐습니다.

 요래서 세례요한은 지금까지 그는 우리가 존경하고 따르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제사장과 모든 바리새인들,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그가  '우리는 잘못 가르치나 이는 바로 가르친다. 참으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사야가  왔다.' 요렇게 인계를 해서 '그분을 따라라. 그분의 교훈이 옳다. 우리 교훈은  잘못됐기 때문에 이것은 시정하고 그분의 교훈을 따라라.' 이렇게 인계를 했더라면  그때에 복있는 제사장들이 됐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도 옳은 제사장이  없었느냐? 사가랴라는 제사장은, 그 제사장은 그때에 예수님이 벌써 나기 전,  세례요한의 아버지인데 그는 벌써 나기 전 세례요한이 길잡이로 날 것을  계시받아 가지고 세례요한을 그렇게 하나님의 종으로 길렀고 또 그로 인해서  메시야가 올 것을 벌써 영감으로 받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믿는 사람들이 많았지마는 껍데기로 나타나는 이 모든  외식적인 가형적인 교회 이런 교회만 보고 보지 못하는 속에 이면의 영감 교회  신령한 교회를 보지 못한 외식자들은 다 메시야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그때와 꼭 같습니다.

 그래서, 신약 교회가 나와서 사도 교회가 했어. 사도들이 신약 교회를  창설했습니다. 신약 교회 창설한 것은 곧 구약 교회는 둥치요 신약 교회는 거게서  난 새움으로서 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예언하시기를 벌써 넉 달이 되었으니  추수할 추수기가 됐다 그렇게 요한복음 4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넉 달이 됐다  말은 구약 시대의 사천 년이 됐는데 구약 시대 사천 년은 지금 줄기가 자라는  시대고 신약 시대 이천 년은 이것은 곧 그 결실이 맺는 하나님의 교회에 완공이  되는 준공이 되는 탑으로 말하면 탑 꼭지를 세우는 거와 같은 이런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벌써 곡식이 누렇게 되었으니 너희들이 하나님의  일꾼을 청해 가지고 추수를 해라' 하는 것을 예언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신약 교회가 나와서, 사도 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 있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서 비롯한 그것이 곧 신약 교회입니다. 이 사도 교회가 생겨 가지고 그때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했으나 이리저리 자꾸 퍼져 가지고 넓어졌습니다.

그래 나가다가 로마로 전도가 돼 가지고, 로마에는 아주 그 종합국이요 세계에  제일 으뜸되는 그런 법률을 가지고 있는 입법을 가지고 있는 그런 강대국인데  거기에 종교라 하는 건 세계 종교가 다 모여 가지고 있는 곳인데 하나님의 도가  들어갈 수가 있겠느냐? 거게 틈을 탈 수가 있겠느냐? 이럴 때에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은 곧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셨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 하는 그 능력이라는 그 말이 다이나마이트라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로마의 이런 강대국이고 종합국이고 종교 종합체지마는 여게  하나님의 복음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를 전파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폭발을  시켜서 여게서 능히 복음이 설 수 있다 해 가지고 그분이 로마의 전도자로서 가  가지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흥왕됐던지 로마 나라는, 로마에는 황제라는 왕이 있었는데  교회에서 교회가 왕성돼서 이제는 교회가 오히려 세상 국가를 다스리고 주도권을  가질 만치 그렇게 흥왕이 됐었습니다. 이래서 교회에서는 그들이 황제 세운  것같이 교회서도 이거 통치하는 왕을 세워야 되겠다 해 가지고 교회서 세운 것이  교황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 왕성이 되고 기독교가 박해 없이 로마에서 크게  대왕성이 되니까 거기에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 병이 들었어. 인본이 됐어. 그러기  때문에 오늘 기독자들이, 오늘 기독자들도 박해가 없는 가운데서 그렇게 시달림  없는 가운데서 자라는 데에는 반드시 병든다는 그것을 여게서 우리가 원리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해방 이후에는 6·25 전란이 났지마는 6·25 전쟁이 벌써 사십 년이나  되는 이런 긴 세월이 지내니까 그 동안 아무 일 없이 이렇게 나오니까 기독교는  완전히 지금 부패해졌습니다. 로마 나라에 이렇게 교세가 자꾸 왕성되세 되니까  교세가 왕성되니 그때에 세상 그 황제가 이 교회 교황에게 다스림을 받아야 되고  또 거기 인정을 받아야 되고 거기 통치를 받아야 되는 이것이 좋은 것 같지마는  이로써 그때 부패는 시작해 가지고 그때부터 주후 삼백 년 경부터 이 로마  교회은 인간 세력이 거게 가 가지고 차차 세력을 잡아 가지고 불의한 교권들이  생겨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불의한 교권들이 생기기 시작해 가지고 거게서 차차 차차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자기네들 주장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성경 보면 안 되니까 성경을 못  보게 하고 성경을 제한적으로 보게 했습니다. 이래서 '성경 가운데서는 이런 그  성구는 보고 이런 성구는 보지 말아라' 이렇게 해 가지고 해 가지고 하다가 그  다음에 성공회가 서지고 난 다음에는 이들은 이 성구를 보지 못하게 하고  이랬는데 이 성구는 보라 하고 이랬었다 그래 가지고 그때 내가 성경을, 나는  믿은 지가 얼마 안 되니까, 믿은 지가 지금 그라니까 오십오 년 됐습니다. 오십 오  년 됐기 때문에 얼마 안 되니까, 그때 내가 보니까 천주교 성당에서 보는 성경은  성경이 있는데 붉은 글로 써 놓은 성구가 있고 그냥 검은 글자로 써 놓은 성구가  있는데 이래 붉은 글씨 쓴 그거는 보고 딴거는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어째 성경을 못 보게 하느냐?' 이 성경 보는 걸 주장하다가 수십만 명  죽었습니다. 또 구원은 베드로에게 열쇠 줬기 때문에 원줄기라고 생각하는 이  천주교, 지금 이 천주교지 그때 사도교가, 사도들이 세운 사도교가 이거  천주교라는 그 이름이 처음에는 암호로 돼 가지고 있다가 차차 차차 성립돼서  천주교가 됐습니다. 이래 됐는데 그때에 구원은 이 천주교 라는 그 파 그 계통  속에만 구원 있지 딴데는 없다. 거게만 들어오면 구원이 있다 하는 그것이 성경  구원관과 달라서 시비가 나 가지고 생명을 바쳐서 주장하다가 죽은 사람들  많았습니다. 또 이런 또 썩어지고 나니까 나중에 이 천주교만 들어오면 구윈 얻을  게 아니라 돈을 가지고 속죄표를 만들어 가지고 돈만 주면 죄사함을 받는다. 죄를  속하는 돈 주고 사는 속죄표만 사면 죄가 사함받습니다. 이런 제도가 났었어.

이래 가지고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신앙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고  잡탱이를 만들어 가지고 이런 걸로 구원된다는 이것 때문에 그것을 반대하가  죽은 사람 많습니다.

나는 그 역사 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잘 모르나 그 역사 공부를 한 사람 어떤  사람에게 들었는데 마지막에는 한 달 동안에 순교당한 수가 십만 명이라고. 그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죽고 죽고 이렇게 나와 가지고 시비난 가운데에  그때에 그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다'하는 그 교리를 주장하다가 하나님의 보호로 죽지 안하고  그대로 개혁을 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교리적인 교리 신조적인 개혁은 칼빈이 했는데 칼빈이 그 혼자  한 것 아닙니다. 수많은 선진들이 다 생명 내놓고 고수하던 그 모든 교리와  신조를 여게 저게서 다 주 모아 가지고 편집자가 칼빈입니다. 칼빈이 위대한 것은  그 편집하는데에서 아닌 것은 아니라 취사 선택해 가지고 모든 아닌 것을 다  그것을 다 제거해 버리고 이제 옳은 것만 간추려 가지고 우리에게 지금 장로교  교뢰와 신조를 준 것이 칼빈이가 그 교리 신조 정리를 해 가지고 줬기 때문에  대공로를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래 가지고 주장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 제한적 대속, 택한 자들만 대속했지 누구든지 다 모든 사람을 대속하는 일반  대속이 아니라는 그것이 그게 교리와 신조의 원줄기입니다.

 이래 가지고 나오다가 이제 예수교가 나와 가지고 이런 교리 저런 교리로  갈라질 때에 그때에 칼빈 줄기를 따라서 갈라진 교파가 있었습니다.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온 교파를 가리켜서 개혁교라, 그들이 말하기를 개신교라 또 지금  말하기는 작은 집이라 천주교는 큰 집이라 이래 가지고 나와 가지고 그때에 지금  나오는 감리교도 생겼고, 성결교도 생겼고, 장로교도 생겼고 그 뒤에 다른 것들이  많이 생겨졌어. 내가 똑똑히 역사는 모르지마는 침례교니 하는 이런 것은 그 뒤에,  안식교도 그 뒤에 생겼다고 그렇게 저는 생각이 되는데 내가 똑똑히 역사는  모릅니다.

그렇게 이 천주교가 뭉텅이가 돼 가지고 나오는데 거게서 다시 새로운 움싹이 나  가지고 이거는 틀렸다 해 가지고 새로 새로운 새 움이 돋아 나왔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개혁교라, 그걸 개신교라, 그 개신교가 나와 가지고 또 거게서 교리와  신조가 달라서 갈라진 것이 이제 우리나라 들어온 걸로 말하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이 세 가지 교파가 들어왔고 다른 외국에는 그 외에도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나왔는데 감리교라는 것은 감독 정치를, 속에는 교리와 신조가 달랐고,  감리교는 합동주의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합해 가지고 구원 얻는다는 그게 내부  교리와 신조요 외부는 '감독 정치를 해야 되지 이거 자꾸 교회를 감독을 해야  되지 이래 냅두면 이게 죽겠다.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감독을, 감독 제도를  세워야 된다는 것으로써 감리교라는 것을 했고, 장로교는 이 장로들을 세워  가지고 다 목사들만 세워 놓으니까 이 전부 이래 가지고 너무 목자 우선권으로  이래 되니까 '이 장로들을 세력을 좀 올려 가지고 이 장로 정치를 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장로교가 나는 생겼다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나는 거게 대해서 그 좀 역사에 대해서 궁금해서 OOO목사님이 그때에 학생  때에 미국을 가면서 '내가 미국 가서는 뭣을 지금 전공을 하면 좋겠습니까?'  그렇게 말할 때에 그때에, 그때 내가 O목사님을 안주해서 목사 안수를 시켜서  보낼 때 그때 OO신학교 졸업을 했는데 보낼 때 그때 안수 위원이 내가  몇이던가 잘 모르는데 내 생각으로는 나 혼자 하지 안했느냐 싶습니다. 왜?  성경에 목사 안수를 혼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성경입니다. 여럿이 단체도  되고 혼자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그라면서 그분이 묻기 때문에 '내 마음에는 사학을 가서 좀 연구하고 왔으면  좋겠다' 사학이라 하는 것은 교회사 교리사, 교리사는 교리 신조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고 교회사는 이 교회들이 어떻게 지금 돼 나가느냐 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인데 그것을 제가 처음에 말했습니다. 그라니까 O목사님이 마음에 좀  찡찡하게 여깁디다. '나를 조직 신학을 그런 걸 연구했으면 좋을 건데 그렇게  하는가?' 그래 나는 더 가치성을 거게다 뒀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데.

그래 그냥 갔습니다. 가 가지고 얼마 후에 편지가 오기를 나는 아무래도 전과를  해서 이거 그때 뭐 조직신학을 해야 된다고 했던가 그런 내가 그건 잘 안  들었습니다. 편지를 해 그랬기 때문에 그뭐 자유로 하라고 그뒤에 내가 답을  했던가 안 했던가 내가 모르겠습니다.

이랬는데 얼마 일 년인가 지나고 나니까 '내가 이제 전과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사학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이 돼서 사학으로 다시 돌렸습니다' 해서 그렇게  편지가 왔습디다. 그래 내가 편지가 와서 사학 공부를 하는 데는 요 네 조건으로  하라고 내가 네 조건을 그때 말해 준 것이 그 기록한 것이 내게도 메모지가 있고  또 목사님도 그거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네 조건으로 공부하라 한  그것 때문에 사학 공부하기에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나는 우리 OOO목사는 우리 진영에 나는 보배라고 생각합니다. 왜?  사학은, 사람들이 조석으로 변합니다. 문화인과 야만인의 차이가 제일 뚜렷이 차이  있는 것은 야만인들은 그 모든 비판이나 평가에 시야가 좁습니다. 문화인은 그  시야가 넓습니다. 당장 하루 보고 판단하지 안하고 일 년 보는 것보다 십 년 보고  적어도 그 사람들은 한 이십 년이라는 세월을 봅니다. 이십 년 동안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 그걸 봅니다. 그것보다도 벌써 삼십 년이고 사십 년이고 오십  년을 그 사람의 이력을 보면은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학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내가 그때 요구한 것 중에 하나는 뭐이냐? '이런 그 교회사가, 어떤 교회사가  어떤 교회사를 낳았고 어떤 손자 교회사를 낳았고 이것을 다 좀 열람해 가지고  오늘 교회사는 앞으로 무슨 교회를 낳겠느냐? 이 교리가 이런 교리가 이런 교리  낳고 이런 교리가 이런 교리 낳고 자꾸 변해져 나가고 이라고 또 새 것이  나오니까 교리가 지금은 이런 교리가 있으니 이런 교리의 자손은 아들은 뭘로 날  것이냐? 앞으로 어떤 교리가 지금 야단을 치고 이거 또 미혹의 교리는 어떤  것이며 정통의 교리는 어떤 것인가?' 이것을 공부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나중에  와 가지고 본인이 말하기를 그렇게 공부할라고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그 공부를  하다가 못 했다고 그런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사학을 공부했었는데 요는 사학을 공부했으면 과거의 사학을, 교리사를  공부했으면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런 교리 이런 교리가 나온다. 이 교리는 살았고  이 교리는 죽었다. 이런 교회 저런 교회가 나온다. 이 교회는 산 교회요 이런  교회는 죽은 교회다. 앞으로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왜? 과거라는 것은 현재의  근원입니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의 근원입니다. 이래서 나는 '과거 현재를 똑똑히  공부해 가지고 미래를 알아내서 그것을 가르쳐 주는 그런 스승이 돼 달라' 하는  그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래 나는 지금도 그때 지도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바로 지도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제가 조직신학을 말하지 안하고, OOO목사님이 처음에 나왔을 때에 '조직신학을  좀 네가 해 봐라. 해 보되 이제까지의 모든 조직신학이 있는 그 조직신학에  새움으로서 거게서 새로 움돋아 나와서 이십세기를 감당할 수 있는 그  조직신학을 거게서 좀 이제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배우고 안  것이 있으니까 여게 한번 편집을 해 봐라' 하고 그것을 맡겼습니다. 맡겨 가지고,  지금은 능하지만 그때는 아직까지 뭐 어려 그런지 한 서너 장 써 가지고 왔는데  와 보니까 전부 다 고쳐야 되지 안 됐어서 또 그걸 고쳐 가지고 또 새로 또  그렇고 한 두서너 달 그라다가 '안 됐다. 그만 이거는 내비두고, 이거는 내비두고  어학을 가르치라.' 이래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이래 가르쳤는데 라틴어는  가르치지 안하고 히브리어 헬라어는 그분이 공부를 해 가지고 가르치게  됐었습니다.

 그라다가 얼마 후에 너무 그 조직신학이 없어서 '그라면 이제 조직 신학을,  그라면은 박형룡 박사의 조직신학이나 벨곱프 조직신학이나 지금 유력한  서적들이 나와 있으니까 그 서적들을 토대를 해 가지고 여게서는 이렇게 하는데  그와 좀 다른 교리, 우리가 그 인정하는 교리는 인정하는 교리로 인정하고 거게서  다시 다른 새로운 깨달음의 교리가 있는 것은 그것으로서 이제 작성을 해서 해  봐라, 요래 그래 가지고 가르치라. 가르치는데 여게서는 이렇게 말했는데 우리들은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믿는다.' 이렇게 하라 했는데 그라는 가운데서 나중에  그것은 원둥치인데 둥치로 돌아가 버렸고 새움은 그들은 모르게 됐습니다.

원둥치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O목사가 만나 지금, 이거 다 자기네가 볼 것  아닙니까? 이 목회록을 볼 거라 말이오, 지금. 내가 그분에게 직접 대화 하는  말이요.

 박형룡 박사 조직신학을 근본으로 해 가지고 했는데 박형룡 박사 조직신학의  그만 그 둥치로 돌아가서 그 둥치를 인정하고 그 둥치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  새로운 깨달음은 그것을 그만 말하지 안하고 희박하고 저리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래서 완전히 가르친다는 것이 이 나에게 하나님이 주셔 가지고 깨닫게 한 것은  이것은 다 말살을 시켜 버리고 다른 것만 가르치는 게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OOO목사님을 성경신학을 가르치라고 했는데 성경신학 가르치는 것이  그것이 자기가 성경신학이 뭐 별로 한국말로 되어 있는 서적은 별로이 없고 제가  성경신학을 기록하던 걸 얼마 동안 기록하다가 그만 중단하고 그 후에 하지를  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그분에게 주지를 안했습니다. 안 주고 이랬는데  지금 그분에게 조직신학을 이걸 가르치라 할까 이래 내가 지금 안심이 안 돼서  맡기지를 안하고 있습니다.

 왜? 조직신학이라 하는 이거는 그렇게 깊은 속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깊은  속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마는 이렇게 저렇게 모두 다 줄기들을 다 간추려 가지고  이런 줄기 저런 줄기가 있다는 그것을 간추리기 때문에 잘못하면 그 줄기에 속해  버리고 그 줄기에 새 움싹을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만일 이래  되면은 나중에 가서 OOO목사도 결국은 박형룡 박사의 조직신학으로 그리  돌아가 버리고 말고 이 우리가, 우리에게 깨달아 준 총공회 교리와 신조는 이거는  거게서 삭감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맡기지를 안하고 있습니다. 몇 번  청하기도 했습니다. 청해도 내가 안심이 안 돼서 맡기지 않습니다. 누구를 맡겨  줄꼬? 누가 이 새로운 총공회 교리와 신조를 알고 또 그것도 알면 요거와 요거와  비교해 가지고, 새로운 게 좋은 게 아니고 비교해 가지고 어느 것이 더 나으며 이  세대에 이제 감당할 수 있느냐? 요것을 평가해 가지고 가치를 평해 가지고 나은  것을 이렇게 할 수 있는 그 지금 조직신학은 누가 해야 될까, 지금 그것을 생각을  못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내가 누구한테 맡겼지? 조직신학을 누구한테 그전에  맡겼지, 연구하라고? 아무도 모르나? OOO이 모르나? 내가 OOO이한테 내가  말했을 것인데? 어? OOO이는 성경 신학 맡겼고 조직신학을 내가 누구한테  맡겼지? OO이 하고 또 누하고? OOO목사하고 OOO하고 두 사람에게  조직신학을 내가 좀 연구해라 그렇게 맡겼었는데 그뭐 하나는 하나님이 데려가  버려서 헛일이고 하나 남아 있는데 그게 바로 될란지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이 천주교에서 개혁으로 갈라져 나온 것이 이제 개혁교가 감리교,  성결교, 장로교 이런데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라는 것은 성결교는 순전히 교리  신조로 인해서 갈라졌고 장로교 감리교는 교리 신조도 다른 동시에 행정이  달라서 그래 가지고 갈라져서 감리교라는 그 이름을 가지게 됐고 장로교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장로교 교리를 믿고 장로교가 됐습니다. 장로교에서 이와같이  믿는데 장로교에서 나를 쫓아내기 안했으면, 장로교 중에도 이제 OO파에 내가  속해 있었는데, 왜 장로교가 OO교파로 이와 같이 지금 고신 총신 또 기장 칼측  이렇게 이래 가지고 갈라졌느냐? 갈라진 그 이유가 다 갈라지지 안할 수,  합할래야 합할 수 없는 시비가 생겨 가지고 갈라진 것이 갈라진 것이지 그냥  어떤 사람이 명예를 위해서 갈라진 것 아닙니다. 이것은 합동과 고신과는 합해질  수 없는 그 속에 내용이 있기 때문에 갈라졌고 그 다음에 다시 합하자고 해  가지고 고신과 총신이 합동돼 가지고 합동했다가 나중에 할 수 없어 다시 갈라져  가지고 고신은 갈라진 것은 환원이라, 다시 고신으로 돌아온다 환원이라 해  가지고 고신이 일단 총신됐다가 다시 고신이라 이름을 가진 것을 가리켜서  환원이라, 환원파라 이렇게 말합니다.

 OO교파에서 있을 때에 나는 거게서 내 깨달음이 또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주장함으로 많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래 거게서 나를 제명해 버리지 안했으면  나는 나오지 않습니다. 제명해 버리지 안하면 거게서 내가 어짜든지 뭐 죽어도 이  진리를, 내가 깨달은 진리를 증거를 해 가지고 무엇이 되든지 안 되든지 이렇게  했을 터인데 거게서 쫓아내 버리니까 그거 쫓아내니 내가 쫓겨 나와서 내대로  사는 게 옳다 해 가지고 한 것이 서부교회가 하나 있어요. 똑 하나요.

하나 서부교회가 있어 가지고 거기서 차차 차차 이와같이 지금 거기서 뭐  주일학교 반사가 목사되고 이래 가지고 차차 이래 해서 돼지고 다른 교과에서  넘어온 목사들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게옳다' 싶어서 온 목사님이 OOO목사님이  OOO교파에 있다가 이 교파로 넘어왔습니다. 또 OOO목사님이 OO측에  있다가 이리 넘어왔습니다. 그 외에는 거의 다 여게서 자라 가지고 다  목사됐습니다. 전도사 되고 목사되고 다 됐습니다.

 이래 가지고 오늘 우리가 총공회라고 이와같이 한 그 이유는 그 쫓겨나왔는데  차차 차차 교회가 많아져 가지고 이래 돼지니 이것이 그래도 우리도 모임이,  모여야 되겠다. 우리가 아무래도 무슨 의논이 할 일이 있고 또 교리 문제 나면은  서로 의논해서 갑론을박을 해 가지고 바른 것을 지켜야 되겠고 이래 가지고 이  모이는 것이 사도행전 l5장에 있는 예루살렘 공회를 본받아 가지고 그렇게 모여  가지고 이런 것 저런 것 의논을 했는데 그래 모인 그것이 모인 그 모임이  뭐이냐? 그것 예루살렘 공회처럼 공회라 하자. 우리가 다 같이 모였다 말이오.

같이 모였다는 뜻으로 아무 다른 이름 없고 공회로 이렇게 모였었습니다.

모여 가지고 사건이 있을 때는 사건 처리하고 사건 처리하고 나면은 없어집니다.

공회, 임시 공회 공회장이 있어도 공회가 해체돼 버리면 사건 다 끝나 버리면  공회가 벌써 끝나 버리면 공회장은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거게서  아무래도 이래 가지고는 관리가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까 언제든지 계속해서  관리하는 그 기관이 있어야 되겠으니까 우리 공회, 그때는 총공회 아니오.

공회에서 거게서 모든 것을 책임 맡을 그 위원들을 내 가지고 그분들로 관리하게  하자. 이걸 위원 내는 위가 첫째는 행정위가 하나 있었고, 또 교훈하는 교훈위가  하나 있었고, 목회하는 목회위가 하나 있었고, 경제를 관리하는 경제위가 하나  있고 이 넷 위가 있다가 지금은 하나 더 보태서 개척 교회를 세우니까 이것도  한번 책임을 지고 해서 개척위 세워 가지고 다섯 위원들이 있어서 이분들은  언제든지 계속 있어 가지고 하자.

 왜? 공회장이라 하는 그것은 장자로 이러기 때문에 거게서 제일 모든 권세  가졌기 때문에 월권하기 쉽고 탈선하기 쉽고 권리 욕심부리다가 망하기 쉽기  때문에 이것은 상존 기관으로 하지 말고 임시 기관으로 하고 그 밑에 부하로서  하부로서 맡기는 이 위원, 네 부를 만들어 가지고 그 네 부 해서 네 부에 맡겨서  경제위에도 목회위에도 그 위마다 그때 몇 사람씩 했어, OOO목사? 사람이 몇  사람이야, 한 위에? 두 사람. 하나는 감독하는 위원이고 하나는 실무하는  위원이고 이래 가지고 두 분이 이래 가지고 오늘까지 나왔습니다.

 나오다가 이렇게 이런데 자꾸 넓어지니까 그 한테 장 무슨 일 있으면 온 전국이  다 모일 수 없고 이라니까 부득이 서울 지방은 서울 지방대로 모이고, 또 부산  지방은 부산 지방대로 모이고, 대구 지방은 대구 지방대로 모여서 그 일 있으면  그 지방끼리 모여서 해야 되지 우리가 다 모일 수는 없다. 이래 가지고 지방끼리  모인다고 해 가지고 지방 공회라 한 것이고 이러니까 공회와 공회가 이레 지방  공회니 뭐이니 다 모이니 이거 구별 없으니 안 되니까 다 모이는 공회라 해  가지고 총공회라는 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뉘가 그 무슨 교주되는 것저럼  명예 영광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부득이 이거는 교회가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부득이 행사한 그것이 이름이 된 것입니다. 교파를 만들라고 한 게 아니고.

이러니까 지금은, 그래 왜 우리는 대한 예수교에 들어가지 안했느냐? 우리는 대한  예수교는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 예수교는 아닙니다. 세계 예수교도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온 예수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아침에 말한 대로 죽 자존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계통돼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그  의지 세계에서 나오던 거게서부터 줄기 잡아 나와 가지고 이제 시공 세계에서  이렇게 나은 계통에서 나와 가지고 나오는 이 한 예수교, 한 예수교로 이와같이  지금 된 그 예수교, 그라면 천주교도 아니고 이거 그저 한 예수교인데 예수교  중에 줄기로 나온 원줄기 이 장로교가 낫다 해 가지고 거게 나왔다가 거게서 또  깨달음이 다르니까, '우리가 깨달음이 우리는 따로 가겠다' 한 것 아니오. 나는  따로 가지 안했소. O목사 저와같이 나는 탈퇴해 나간 것 아닙니다. 거게서  있을라고 이래도 그 제명을 해서 할 수 없어 그래 쫓겨 나온 것이오. 여러분들이  바로 알아야 돼, 이걸. 그래 가지고 오늘에 이 총공회 됐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되는 데까지는 그뭐 따로 모이니까 처음에는 OO교파 안에서  핍박이 있다가 그 다음에는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핍박이 있어서 있어 차지고  OO교파에서도 다 정죄받았고 또 뭐 여게 저게 정죄 안 받은 데가 없습니다.

많이 받았어. 이단이라고 정죄받았으나 나중에 따져보니까 이단이 아니니까 그래  이단이 아니다. 아니다! 인정되고 '우리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 잘못했다. 지금  인정한다.' 이래 가지고 오늘 세계에서 총공회라 하는 것은 이것은 다 이상스럽게  봤지마는 지금은 총공회 그거는 괜찮다. 그거 이단은 아니다. 저거 잘 믿을라  하는 사람들이다, 열심히 믿을라 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지금 왔으니까 욕은  거의 지나가 버리고 이제 이, 총공회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이 단계입니다. 내 말이  틀리요? 총공회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이 단계에 왔습니다.

 단계에 왔는데 지금 여기서 마귀란 놈이 무슨 작용을 하고 있는고 하니 여기서  이거 불집 넣어 가지고, 여기서 찌덩찌덩해 가지고 또 이거 갈라질라고 자꾸 이래  쌓아니까 다른 사람이 '야 총공회 저거 가는 것은' 모두 다 '그 사람들은 기도실  지어 놓고 다 그만 다 그래 하니까 다 우리도 그 본 뜨자.' 우 따라왔습니다.

 왔는데 이 기도실 지어 놓고 요 기도실 뭉텅이는 요 뭉텅이대로 한 뭉텅이 조  뭉텅이는 조 뭉텅이대로 한 뭉텅이 그대로 제가 패권을 잡을라고 이와같이 지금  왕될라고 이렇게 하는 여게서 그 사람들이 떡 넘어다 보고 '저거 총공회 보자,  어떤가 보자. 아이구야 거게도 보니까 뭐 누구파 누구파 그 여러 파인데 그것도  좀 있으면 갈라지겠더라. 뭐 별게 더 있느냐?' 이래 가지고 오늘날 혜택을 박살을  내고 있습니다. 요거 회개해야 됩니다.

 국제에 나가 봐. 나가 보면 뭐이 있을건가? 이거 서는 데는 수많은 애로와  수많은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고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안하면 서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든지 마귀가 같이 하든지 둘 중에 하나가 같이 하게 됩니다.

마귀가 같이 하는 것은 망하고 하나님이 같이 하는 것은 그것은 그 보면은 일 년  보고 이 년 보고 십 년 보고 이십 년 보면 알아. 그 결과가 뭐인고 안다 그  말이오. 그 열매를 보아서 알아요.

 이러니까 제발 다른 생각 가지지 말고, 우리 총공회 교리와 신조와 행정이 달라.

우리는 진리 가결이지 종다수 가결이 아니라.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독재 밑에서 나도 하나님께 독재 당하는 그 정치로 나가고 있고 하나님께  독재당한 것은 하나님의 독재라면 모든 사람에게 그 독재로 통치하고 독재로  지도하는 그것이 우리들이라. 정치가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그 모든 교파들의  행정과 우리 행정이 다릅니다. 총공회 행정이 달라.

 이러니까 여러 사람이면 '사람이 많은 사람이면 그만 그게 그걸 주로 삼아서 그  옳다고 인정하자' 하는 그거나 '성령받은, 목사 안수받아 가지고 목사된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의논하면은 그것이 다 결의다.' 하는 그것이 뭐이냐? 종다수  가결이오. 하나보다 둘이 모이면 된다는 그 종다수 가결해 가지고 그 회가  타락하지 안하고 부패하지 안한 회가 역사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거 뭐이냐? 그게 틀린 것이 변치 않는 한 분, 최초부터 있던 육십육 권의 도리  신구약 성경만이 우리에게 믿는 도리를 밝히 가르치고 있으니까 이것을 보고 장  이 잣대로 재 가지고, 이 잣대는 신구약 성경 육십육 권만을 잣대로 삼아 가지고  재어 나가자.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이 잣대에 안 맞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노원이나 소원이나 사십오 명을, '나이 많은 사람들만 주장한다'  하기 때문에 소원도 내자, 소원은 삼십 명 노원은 십오 명으로 해 가지고 사십오  명이 이와 같이 위원들을 정하되 이거는 뭐이냐? 이 잣대 찾는 것이다. 잣대 찾는  것이다. 잣대를 찾아 요 잣대로 재 보니 요게 옳다. 요 잣대를 찾고 잣대로 재  가지고 재 보니 옳다. 잣대로 재는 요 일을 하는 그 위원들이지 저거 생각대로  결정을 지우는 위원은 아니라 하는 이것이 이것이 얼마나! 이게 그렇게 쉽게 된  것 아니오. 하나님이 하셔서 이거 해 준 것이오.

 이랬는데 또 그만 나가기를 '사람들이 모여서 해야지, 이러니까 그 독재주의라,'  백 목사가 독재했으면은 백 목사가 하나님에게 독재당해 가지고 하나님 독재를  그대로 전달했으면 하늘나라에 상급이 클 것이오. 제가 제 맘대로 하나님과  이탈된 삐뚤어진 독재를 했으면 영원히 멸망할 것이오. 자손 대대가 멸망할  것이오. 하나님께 독재당한 그 독재를 전달시켜서 독재했다면 상급이 대대토록  있을 것이요 영원 무궁토록 있을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을 보고 살지  인간들의 일이 이렇다 저렇다 한다고 거기 정죄받고 살지 않습니다.

 이런데 이 총공회 교리와 신조, '이거는 좋다. 교훈은 좋기 때문에 나는 교훈은  받겠습니다. 행정이 나쁩니다.' 행정과 교훈은 떨어지지 못합니다. 암만 이 교리와  신조를 믿는다 할지라도 이는 다수 따라간다 하는 그 주장이면 다수 따라가는데  제까짓 게 혼자 할 수 있습니까? 다수대로 따라가면 다수의 원하는 대로 가야.

되지. 그라면 세상 가는 대로 가야 될 것 아니겠소? 마지막에는 다수는 세상이  많지 누가 많소? 그러니까 요새는 지금 민주주의라는 요게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중요한 것입니다. 요 민주주의라 독재주의라 요 하나님이 독재주의를 뭐라  하시느냐? 요 독재주의 독재주의 하나님이 기뻐하시요. 요 민주주의 때문에 다  죽습니다.

 이러니까 모두 다 어떤 교파라도 거게서 목사들 모여서, 모여 가지고 다수를  따라가자. 다수에는 목사들보다도 세상이 많으니까 세상 많은 사람 따라가자  이러기 때문에 세상 따라가자 하는 것이 민주주의요. 독재주의는 하나님 한 분을  따라가는 것이 독재주의입니다. 이 뭐 틀렸소, 틀리기를? 틀렸소? 정말 틀렸거든  틀렸다고 말해 봐요. 공연히, 이런데 '이 간판을 고쳐야 되겠다' 간판은 이 교리와  신조를 자기 교리와 신조로, 이 행정을 자기 행정으로 해 가지고 자기 신앙 생활  해 나갈 사람은 부득이 '저게 뭐 저런 게 있나?' 하니까, 따로 떨어졌으니까 따로  떨어져 가지고 모이니까 그것이 공회요. 무슨 교파 만든 게 아니오. 그게 공회요.

임시 무슨 사건 있으면 모여 가지고 '성경대로 비판하자' 그래 가지고 그러니까  '암만 비판해도 성경이 아니면 안 된다.' 이러니까 만일 백 명이 있다가 아흔아홉  명이 단합이 돼도 결정은 못 지운다. 한 사람이 반대하고 있으면 아흔아홉 사람만  단체가 되고 한 사람은 따로 불거지고 만일 한 사람이 나중에 시비하다가 그  사람이 말한 게 성경적이라면 아흔아홉 사람이 거게 굴복을 해야 된다.' 하는 것이  우리 주장이라 그 말이오.

 그런데 공연히 '교훈은 좋지마는 행정이 나쁘다' 하는 그 오해를 해 가지고 그런  것입니다. '행정이 나쁘다' 하는 것은 첫째는 뭐이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요게서 갈라졌습니다. 요 해석에서 갈라졌습니다. 그분들은, 그분들은 안  믿을 때와 같은 그 인간살이, 땅에 소망, 우리는 못나도 땅에 소망 가지지 말고  하늘에 소망 가지자. 인간에게 접하지 말고 하나님께 접하자. 아브라함의  자손이오. 못해도 못나도 아브라함의 계통을 갈라고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가면 하나님의 능력의 혜택이 올 터인데 혜택이 오니까 욕 얻어먹는  뺨을, 뺨을 열 번 맞아도 살찌는 영양이 뺨 열 번 맞은 것보다도 더 보충하고도  살이 뚱뚱 찌고 건강하니까 가지마는 이거는 하나도 영양은 받지도 못하고  혜택은 못 보고 뺨만 맞으니까 이거 손해라. 그러니까 아예 이 교리와 신조  행정을 가지지 못할 사람은 나가야 됩디다. 뭐할라고 이 총공회 간판을 가지고  있겠소? 간판을 떼 버리고 나가는 게 좋습니다. 공연히 매만 맞고 덕은 못 보고  무슨 소용 있소? 이거 그러기에 성경이, 핍박을 당해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대로  하면 여러가지 박해가 있지마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위로는 넘치기 때문에  남고 남으니까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공연히 설설 추어 이렇게 말합니까?

 오늘 본 말씀에도, 오늘 본 말씀에도 고린도전서 l3장에 이제 말했는데 요새는  모두 다 부르짖기를 사랑이오. 사랑이라. 뭐 이북과 공산주의 민주주의도  사랑이라. 그게 밑에 알맹이를 고쳐야 되는 것이지 껍데기만 모이면 됩니까?  이래서 사랑인데 사랑을 지금 주장합니다. 막 사랑 사랑 하는데 총공회서는  사랑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이게 다르요.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 사랑이 다르다.

'어떻게 네가 천사의 말을 하고 또 예언하는 능이 있고 산을 옮길 만한 그런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비밀을 다 알고 네 있는 것을 다 가지고 다른 사람을  구제하고 또 네 몸을 주어서 불사르기까지 이렇게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다  아무것도 아니라.' 사랑 없이 누가 생명까지 주겠소? 사랑 없이 생명까지 주겠소?  생명까지 준 사랑이라도, 생명까지 준 사랑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이라니까 이 사랑이 뮈이요?  사랑은 요한일서 4장에 가서 구별해 보십시오. 배암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의 껍데기는 같애요, 달라요? 뭐라고 배웠어요? 사랑의 껍데기는  같애요. 알맹이는 달라요, 같아요? 달라. 요걸 아는 사람은, 요거 아는 사람은 요  교리와 신조를 버리지 못해. 알맹이가 왜 달라? 알맹이 다른 것은 성경에 나타낸  대로 보니까 예수님의, 예수님의 대속이라. 사랑은 뭐이 사랑이냐? 그 사람을  하나님 배반한 데서 구출해야 된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 명령을 어긴 데에서  구출해야 된다. 하나님 하지 말라는 걸 하는 데서 구출해야 된다. 요 세 가지가  죄입니다. 거게서 구출해서 거게서 건져내야 된다.

 이제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하는 사람,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는 사람, 하나님과 화친돼서 하나님에게 속해서 동하고 정해서 그래서  사는 사람, 이래서 하나님에게만 소망 두고 이제 이거는 잠깐 나그네 세상이요,  영원한 세상 하늘나라가 있기 때문에 그 나라를 소망하고 사는 것으로 소망을  바꾸게 하는 요것이 사랑이라. 알맹이가 요것이라. 알맹이 요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이제 그 사람을, 그 사람 비위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이라도  딱딱하게 하지 말고 그저 용납을 아라. 용납을 해라.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안  해도 용납을 해라,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하고 하나 돼도 용납을 해라. 하늘나라  망하거나 말거나 세상 좋도록 해라. 하나님이야 어찌 되든지 인간 좋도록 해라.

그것이 배암 사랑이라, 자, 배암 사랑 원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다 배암  사랑하고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고 배암 사랑하고 둘이 싸웁니다. 싸우다가는 다 하나님의 사랑  버리고 배암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애비가 자식 사랑하는 거 자식이 애비  사랑하는 거, 에미가 자식 사랑하는 거 자식이 애미 사랑하는 거, 아내가 남편  사랑하는 거 남편이 아내 사랑하는 거 다 요 사랑과 사랑이 차이가 있고 구별이  있고 종류가 달라서 다릅니다.

 이래서 왜 총공회를 왜 욕을 하고 미워하는가? 이 하나님의 사랑 쓰고 배암  사랑 안 쓴다고. O선생 알겠어? 이해가 돼? 확고히 잡아? 공연히 아무나따나  총공회로 자꾸 이래 나온 줄 알아? 있을래야 못 있어서 그래. 거게 있었으면 내가  그 안에서 싸워. 내가 파를 가를라 하면 그때 한창 싸울 때에 OOO목사님이니  OOO목사님이니 그분들이 '조사님이 반기만 들면 우리가 다 따라가겠습니다.'  그때 들었으면 삼분지 이는 따라와. 나는 그짓 하기 싫어.

 모두 장이 되기 원해, 지금 앞으로 언제 올지 모르는데 제가 장자를 하면은 이  총공회로 말하면, 총공회가 없으면 대한 예수교라 하면은 우리는 잡을 필요가  없어. 대한 예수교는 과연 대한 예수교는 책임자가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대한  예수교 총회장 잡으면 그 사람 붙들지 우리 붙들리는 없어. 우리는 우리대로 교리  신조 있기 때문에 총공회라 하기 때문에 총공회라고 총공회, 총공회 책임자가  누구냐? 총공회장이라 하면은 총공회 이걸 박멸할라 하면 먼저 대가리를 잡아  숙여서 이래야 되기 때문에 대가리 잡아 숙여야 돼. 이러기 때문에 과거에  총회장들이 다 먼저 꺼꾸러져 가지고 다 그들에게 삼켜졌다고.

 이러니까 앞으로 이 이름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나쁘나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우리는 이름을 똑똑히 신분을 밝혀서 좋으나 나쁘나, 이거는 나빠도 우리가 했고  좋아도 우리가 했고 상을 받아도 벌을 받아도 우리가 하겠습니다. 하는, 자기  이름을 똑똑히 밝히는 것이 그것이 총공회 간판을 세우라 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이 총공회라 보자, 총공회는 어느 놈을  잡아야 되느냐? 총공회 지금까지는 내가, 잠깐 있다가 없어졌지마는 총공회장이  백영희 목사이기 때문에 백영희 목사 이놈을 잡아야 되겠다.' 그때 잡아 가지고  잡아서 훌칠 때에 그때에 총공회라는 그 뭉텅이를 그놈들에게 내주지 안하고  자기 생명을 내줘도 이거를 보수해야 돼!  이것을 생각지 안하고 장자만 되기를 원해서, 뭐 그러면 그게 좋은 게 뭐 있어?  장자 그걸로 그로 가지고 뭐 돈이 오요, 그걸로 가지고 다른 교회서 오는 것은  실은 뭐 한 가지라도 오면은 그 큰 짐이고 그것을 뭘로 댓가를 치러 줘야 되니  귀찮애 내가 내것 내 먹고 살 수 있는데 그런 쓸데 없는 자꾸 짐되고 무겁고  빚지고 하는 그전 걸 할 필요가 없어. 안 받으면 섭섭해 그런 거 어짤 수 없어  받고 다른 거로 어떻게 이래 해 주지 그런 거 바라서 그런 뇌물 먹기 위해서  총공회장 되기를 원하는 줄 압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걸 원하면  박멸되지요. 예수도 모르고 진리를 근방에 가지도 못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못한 사람이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데.

어제 우리가 가르쳤는데 밭을 갈고 양을 치다가 오면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주인의 먹을 것을 예비하고 먹는 동안에 수종들고 그 뒤에 먹으라 하지 않겠느냐'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하는 그 해석이 뭐야? 대답해 봐. 와서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먹으라 하지 안한다 했어. 먹는 거는 그거 뭐, 깊어. 먹는 거는 혼자  먹어요, 여럿이 먹어요? 주인하고 먹어요, 혼자 먹어요? 혼자 먹어요, 혼자 먹어.

혼자 먹는 게 뭐이라, 혼자 먹는 것이? 혼자 먹는 것이 혼자 행하는 것입니다.

혼자 행하는 것. 혼자, 설교하는 것이오. 혼자 지도하는 것이오. 사람 지도하는  것이오. 혼자 행정하는 것이오. 혼자 하는 것. 그러면 혼자 하지 누구하고 해?  혼자 안 하고 누구하고 해? OOO조사님? 누구하고 해? 성령, 주님, 삼위일체의  주님. 우리에게 나와서 중보자로 우리에게 접선해 가지고 있는 성령, 성령과 함께  돼야 돼.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전할 때 웅변으로  열변으로 전하지 안하고 사람의 지혜로 전하지 안하고 성신의 감동이 같이  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노력입니다.

 어짜다 보면 그래? 밭갈고 양치고 이렇게 밭갈고 회개 운동 뭐 인간을 구원하는  운동에 열심히 해서 솜씨가 났습니다. 한 어떤 사람은 한 백 명 모입니다. 백 명  뭐 이제는 자신 있다. 천 명이 모입니다. 이제 자신 있다. 몇만 명 모이니 자신이  있다. 이라고 나면은 저 혼자 날뛰어. 저 혼자만 날뛰어. 앉아 먹어. 그게 뭐이요?  그게 저 혼자 단독하는 그것이 뭣 하는 길이지? OOO이? 뭣 하는 길이야?  여기는 뭣하는 길이야? 그 뭣하는 길이라? 자기 혼자 먹는 그게 뭣하는 길이라?  그 뭣하는 길이라고 했지요? 믿음이 자라는 길이요, 믿음이 타락되는 길이요?  믿음이 타락되는 길이라! 요걸 알아야 돼! 요게 총공회 교리와 신조라! 쉽지 안해.

나는 이제는 우리 안에서 자꾸 이러기 때문에 나는 이걸 자랑을 해야 되겠어. 막  무더기 죽음으로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목회하면서 성경에는 보니까 너희들이 같은 위로, 같은 사랑, 같은 권면  같은 말을 하라 하는 것이 몇 장에 있지? 빌립보서 2장에 있어. 내가 이것을  지금으로부터 삼십육 년 전에 대구 가 가지고, 대구 성경학교에서 좀 한 시간  말해 달라 해서, 그때 벌써 핍박이 있고 자꾸 이 지금 분쟁이 나고 핍박이 있는  그때인데, 가 가지고 요 말씀을 했어. 요 말씀을 내가 증거를 했어. '다 같은 말,  같은 사랑, 같은 권면, 같은 위로 한 가지 해라 하니까 그 사람들이 '저 무슨 저런  정신 빠진 소리를 실 없이 하고 있는가?' 장로가 가든지 뭐이 가든지 그 같은 거  해야지 하나 해야지, 어데서 나오는데? 한 군데서 나았기 때문에 거기서 나온  것이면 같은 것이라. 거기서 나온 것을 하라 그 말이오. 너 혼자 하지 말고. 이걸  말하니까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어.

 이제 오늘 아침에 시간 많이 갔기 때문에 더 하지는 못하겠는데 그것만  아십시오. 사상이 두 가지입니다. 배암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은 도성인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이  그것이 사랑의 행동이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 안에  있는 자는 사랑 안에 있는 자요, 그것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주는 자는 사랑을  주는 자요, 그것으로써 다른 사람을 접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접하는 사람이요.

이거 아니고 제 몸뚱이 주고, 돈 주고, 학비 대 주고, 오만 거 대 주고 제 좋을  대로 몸뚱이 주고 여자도 몸뚱이 주고 남자도 몸뚱이 주고 오만 것 다 해도 사랑  아니야! 그 결과가 되면 사랑은 아니라. 그 결과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하라는 것을 어기게 되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는 거 하게 되는 그  사람 만들면 그거는 사랑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라. 그거는 배암의 사랑이라.

그러니까 배암의 사랑이 달콤하기 때문에 아담 해와도 배암 사랑으로 끌려가  가지고 죽었지, 해와가 아담 사랑하고 아담이 해와 사랑했지마는 다 죽였어.

죽였지 살린 게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내가 온 것은 화평을 주러 온 게 아니고 검을 주러 왔다 내가  오기 전에 이런 벌써 싸움이 붙었으면 좋겠다, 이 불이 붙었으면 좋겠다. 네  원수가 집안 식구리라.' 얼토당토 안한 말이라. 왜 원수가 집안 식구라? 왜 원수가  돼?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할라 하고 그거는 배암 사랑 가지고  사랑할라 하니까 달라.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지 마라! 배암의 사랑에 미혹받지  마라! 이러면 조만간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반드시 옳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간단하게 사죄  칭의 화친 하늘의 소망이요, 진리 영감이오. 네 가지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중생됐어.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늘의 소망으로 우리가 중생됐어. 우리는  사랑으로 자라가야 돼. 이 네 가지로 자라가면 돼요. 이 네 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이거 없는 거는 다 배암의 사랑이기 때문에 속여서, 배암이 아담 해와를 그렇츰  사랑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자손 전체가 전멸되지 안 했소? 요렇지마는 그 사랑을  받을 떼는 어떻게 달콤한지, 안 먹으면 죽을 지경이라. 그 사랑을 하나, 하나  표시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로울 만치 탐스럽고 하기 때문에 막 따먹었지.

그것이 배암 사랑이라.

배암 사랑은 사랑하고 나면은 뒤가 안됐습니다. 께꾸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주 딱딱하고 아주 가시 모양으로, 밤가시 모양으로 찌르지마는 하나님의 사랑은  뒤가 좋습니다. 뒤가 좋아. 안심이 돼. 갈수록 펴여. 배암 사랑은 갈수록 오그라져.

마지막에는 다 멸망이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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