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피와 성령의 역사


선지자선교회 1982년 4월 29일 목새

 

본문 : 요일 5:7-9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증거는 그가 가진 것을 나에게 가지도록 역사하는 것이 증거입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내가 알고 그가 보고 있는 것을 내가 보고 그가 가진 것을 내가  가지고 그가 된 것을 나에게 되게 해 주는 것이 증거입니다. 이 증거라는 말을  잘못하면 어떤 사실을 소개하는 것으로만 그렇게 좁은 범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것도 하나님을 증거키 위함이요 예정하신 것도  창조하신 것도 섭리하시는 것도 모두는 다 증거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며 또 하나님이 가지신 것은 어떤 것이며 하나님이 주고져 하시는  것은 어떤 것이며 주시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주는 그것을 가리켜서 증거라 이렇게 발표를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어학사전이나 찾아다 보고 그 단어 해석대로 생각하면 성경에 있는  단어는 헛일입니다.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이 증거한다 그 말은 성령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주는 일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주어서 가지게 하고 하나님의 가지신 모든 충만한 것도 우리에게 주어 가지게  하신다 하는 말이오. 성령은 진리입니다. 이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진리니라  말은, 진리는 없는 가운데서 영계와 물질계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도 이 진리가  창조했습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본체가 아니시요 하나님의 본체가 역사하는  그 역사를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표현합니다. 진리는 인격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존하신 분이, 자존하신 사랑이, 자존하신 기쁨이, 자존하신 뜻이  역사할 때에 목적을 정했으니 그 목적을 정한 그것이 진리입니다. 목적을 정한  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에 하나님의 움직임을 진리라 이렇게  성경에 표현했습니다.

 그 진리가 나오고 나오고 나와서 우리에게 나타난 진리의 외모가 있으니 신구약  성경 말씀이오. 모든 영계나 물질계 모든 존재는 다 그 진리가 나온 것입니다.

진리가 지은 것이요. 진리의 표현입니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라」 성령이 진리로 나타 났다, 그러면  진리로 나타난 그것이 성령이 진리로 나타났는데 그 진리는 무엇으로  나타났는가. 그 진리는 하나님이 목적을 정한 그 목적으로 나타났고 또 하나님의  예정으로 나타났고 하나님의 창조로 나타났고 섭리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진리가 나타난 것이요,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하나님의  창조가 움직이는 것이요, 창조는 하나님의 예정이 움직이는 것이요, 예정은  하나님의 목적이 움직이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은 자존하신 분이 움직이신  것입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 있으니」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이 말은 영원  자존하신 그분이 피조물인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주고 있는 것이  있으니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주는 이는 성령이시다 그말이오. 주는 이는  성령이시다.

 하나님의 본체는 우리에게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완전자가 불완전한 것에게 오면 소멸되어 버립니다.

그분의 본체는 영원 불변자십니다. 그분의 역사가 목적을 정했고 역사가 예정도  했고 역사가 창조도 했고 역사가 섭리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라」 이 증거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면,  로마서 8장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한다  그말은 성령님과 중생된 영이 힘을 합해 가지고, 거기에 우리라고 말하는 것은  심신으로 된 육의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몸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화친된 하나님의  요소로 생겨진 자라. 신의 성품으로 신의 속성으로 씨가 되어서, 하나님의  속성이 씨가 되어 가지고 이 속성으로 생겨진 자이기 때문에 이 자가 자라면  하나님이 자란다, 하나님 본체가 자란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모형이  자란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하나님 노릇 하는 자가  자랍니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하나님과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에게 갖다 주는 이가 셋이니,  그러면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것으로  가질 수 있도록 이렇게 하는 이가 성령인데 곧 셋이 이렇게 우리에게 가지게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크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부요치 아니하고 돈으로만 부요하려 하는 자가  어리석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소유물 같이 가져진다는 말이 아니고  인간이 알도록 표현하는 표현인데, 하나님으로 부요한다 말은 하나님이 자기를  더 가지고 가져 자기가 하나님의 것이 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만 되면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사망이요 하나님의 지은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 그것이 사는 것이요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기를 또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우리의  것을 되게 하기를 누가 하고 있느냐.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된 것만치 하나님의 피조물은 내것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 다 되면 영계나 물질계에 있는 모든 그것은 다 내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완전 지배를 받으면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은 나에게  완전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완전히 배반했으면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나를 완전히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증거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돈의 것이 됐다가 무슨 권세의 것이 됐다가 세상 지식의  것이 됐다가 이런 것이 됐다가 이래 가지고 죽었는데, 하나님의 것이 다른 것의  것이 되어 가지고 죽었는데 죽기를 그래 죽었소. 망하기를 그래 망했소.

이랬는데 이게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벌써 하나님과  원수된 이 멸망이 있고 제 마음대로 산 불의의 멸망이 있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멸망이 있는데, 이 멸망받는 자가 하나님과 합할 수 없기 때문에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이 공로로만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것이  되도록 한 것이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은 우리를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는 이 일을 성공해 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것이 된 우리가 실질적으로 영은 하나님의 것이 됐는데  하나님의 것 된 이 영이 능력 없는 것은 왜 능력이 없느냐. 이 마음이 방해하고  몸둥이가 방해해 가지고 능력 없습니다. 이것이 말을 안 들어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둘을 지금 달래 가지고 말을 듣도록 하려고 하는 것이 이것이 지금의  노력이요 우리의 건설 구원인 것입니다.

 이래서 증거하는 이것은 갖다가 주는 것이요 또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이 역사를 하시려고 나타나신 분을 가리켜서 보혜사라 성령이라 이렇게  이름을 붙였는데 내나 하나님이십니다. 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증거하는 일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리고 영접하게 해서 무슨  결과를 맺느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는 것,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고, 사람의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한다, 하나님에게 속하게 한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의  것이 되어서 그로 인하여 움직이게 한다 이런 말들로 표현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무엇을 하려고 우리를 하나님의 것을 만들려고 하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에게 입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 사망과 생명의 모든 것 그 전부를 다 우리 것을  만들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것 되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당신이 사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체, 내 손이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이 손이 움직이려면 움직이고 때리려면 때리고  들려면 들고 잡으려면 잡고 놓으려면 놓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지체가 된다,  하나님의 몸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 안에 계셔서 하나님으로 살고, 내라는 나는 하나님이  쓰시는 수족같이 되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이 움직임이 되어지면,  모든 피조물은 나에게 복종하고 내것이 되어서 나로 인하여서 움직이게 된다,  나로 인하여 살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교회의 위치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피는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말하고, 또 물은 진리를 말하고, 또 성령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와 제일 가까운 것이 피입니다. 피로 인하여 진리와 합하게 되고,  피와 진리와 합하여 성령과 합하게 되고, 피와 진리와 성령과 합하여지므로  인하여 하나님과 결합됩니다. 이것으로서 하나님의 것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충만은 그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의 역사가 있는 데에 진리가 있습니다. 피를 통해서 진리를  만나고 진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제일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오는 생명이나 평강이나 영광이나 존귀나 모든 것이  우리에게을 때에는 피를 통해서 옵니다. 피를 통하지 않으면 오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피를 쓰는 자는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 속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 속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피와 합해지면 성전이  됩니다. 주님의 피를 떠나면 성전이 되지를 못합니다. 주님의 피와 합하면  성전되고 성전이 되면 우리 안에 진리가 있고 또 우리 안에 있는 진리 안에  하나님이 내주해 계셔서 하나님은 주인이요 우리는 그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오. 집에 대한 모든 책임은 주인에게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신 주님에게 있습니다. 집은 주인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신 주님의 마음대로 사동합니다. 이 집을 말한  이런 것은 자연계시 이걸 가지고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뭐 쉽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나님의 성전이라 말은 하나님의 집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 말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산다 그말이오. 또 집은 누가  수리하고 누가 관리하고 누가 잘 보존합니까. 집에 대한 것은 주인이 합니다.

우리에게 대한 것은 하나님이 책임있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는.

모든 염려를 맡겨 버리라 그말은 내게 대한 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 버리라.

하나님의 집 노릇만 해라. 하나님이 내 주인 되도록만 하고 주인 노릇 하도록  하고, 또 하나님이 내 죽는 것 사는 것 존귀해지는 것 천해지는 것 당신이 책임  맡았기 때문에 내가 아이구 내가 천해지니 안 되겠다, 내가 존귀해져야 되겠다,  내가 존귀해져야 복음을 가루지 않겠다.

 그따위 소리 하지마. 내가 천해지거나 말거나 내게 대한 것은 일절 그 분이  맡지, 집이 집을 무슨 수리하노. 집이 집을 수리하지 못한다.

 집을 누가 와서 부숴도 집은 집을 부수지 못하게 못한다. 집 주인이 집에 대한  것은 관리하고 보존하고 한다. 주의 것이 되어라. 주님이 너를 총책임지게 해라.

집은 집이 사용하지 못한다. 집은 주인이 사용하는 주인의 사용물이다. 너는  네가 사용하지 못하고 네가 사용하면 벌써 성전에서 이제 마귀 당으로 바꾸어져  나갔고, 너를 주님이 전적 주님만 너를 사용하게 하면 너는 성전 된다 하는 그런  말인데, 여기에 증거라 말은, 어떤 재판에서 증거 증인이 있다면 그 증인이 알고  있는 것을 거기다가 반영시켜서 알게 하려는 것이요, 또 증인이 가진 것을  그들에게 알리는 것이요, 증인이 증거하는 그대로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증거인  것입니다. 증거 증인이 가진 그것을 반영을 하고, 그것을 그대로 나타내게 해  보고, 그대로 모든 사람이 인식하고 가지게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증인이라,  증인으로 불렀다.

 하나님의 증인, 이는 하나님의 증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의 가진 것은  무엇이며 성령이 알고 가지고 있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어 우리가 알고 가지게  하려는 역사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성령은 진리인데 이 진리는 피입니다. 이 셋이 증거하고  있으니 이 셋은 하나라. 그러면 피 진리 성령, 그러면 성령이 뭐하고 있느냐.

지금 피를 우리에게 자꾸 접선을 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피를 우리에게  접선 시키려고, 진리도 피를 우리에게 접선 시키려고, 이러는데 성령은 우리에게  직접 일하지 못하고 성령은 이 진리를 통해서 피를 우리에게 접선 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직접 피를 접선 시키려고 애를 쓰는데 진리가 할 때에 성령이  그 진리 안에 주인공이 되어 가지고 할 때도 있고 성령이 아닌 진리가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배암이 예수님에게,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 그러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한다 그렇게 배암이 이 진리를 이용할 때에는 진리만 그가 증거를 했지 성령은  거기에 역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껍데기 진리 뿐이지 속에 무한한 능력을 독자 적으로,  독자적 권위를 가진 진리의 권위는 역사하지를 않고 또 하나님도 역사하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성령도 진리도 우리에게 무엇을 증거하느냐 하면 피를 증거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피를 생각하라고, 피를 기억하라고, 또 피로 양식을 삼으라고,  피로 말미암으라고, 피와 접선하라고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이 피 가지고  뭐하려고. 이 피로 인하여 진리와 우리를 결합시키려고. 그러면 진리와 결합해서  뭐하려고 하나님과 결합을 시키려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려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려고, 하나님의 몸이 되게 하려고 이렇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는 우리에게 무슨 역할 하고 있는가. 피가 역사하는 역사는 우리에게  사죄를 역사하고 칭의를 역사하고 하나님과 화친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기에 우리와 제일, 지금 하나님도 우리와 접선하려고, 진리도 우리와  접선을 하려고, 피도 우리와 접선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 피는 그러면  우리에게 접선하기를 어떻게 접선하고 있느냐. 접선하고 있는 것이 이 피는 제일  껍데기로, 제일 껍데기가 사죄로 접선을 하고 있습니다. 사죄 접선 안에는 칭의  접선이 있습니다. 칭의 접선 안에는 화친 접선이 있습니다. 화친 접선 안에는  진리 접선이 있습니다. 진리 접선 안에는 하나님 접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피의 역사 밖에 있는 사죄 역사, 이 사죄 역사가 없으면 생명은  없습니다. 죽은 것입니다. 가정이든지 개인이든지 사업이든지 자기의 무슨  전공이든지 무엇이든지 이 피를 인하여 살게 되는데 이 피의 껍데기가 셋으로  나타납니다.

 이 피의 껍데기가 셋으로 나타나니, 피의 껍데기가 셋으로 나타나는 그 껍데기  중에 제일, 또 셋 껍데기 중에 제일 껍데기가 무엇이냐. 제일 껍데기가 사죄요,  그 껍데기 속에 속껍데기가 칭의요, 그 속껍데기 속에 속껍데기가 화친이요,  화친 껍데기 속에든 껍데기가 무엇이냐. 진리입니다. 또 진리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가 무엇이냐.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래서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사죄의 운동이 없는 그 말은, 그 일은, 그 경영은, 그  소원은, 그 사귐은, 그 영광은 암만 좋아도 다 죽은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과  접선도 하지를 못하는 것 희망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죄 역사가 없는 자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미 좋은 것도 없을 뿐  아니라 희망도 없소. 아무 희망도 없습니다. 비로소 인간이 희망의 시발이 뭘로  시발이 되느냐 죄 문제를 가지고 날뛸 때에 그 때에 이제 희망이 시발되는  것립니다. 희망이 시발되고 그 안에서는 죄 문제를 이러다가 제 마음대로 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것이 불의를 정리하고 의로 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형벌은 세 가지 형벌을 받았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벌이니 그것을 가리켜서 죄의 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한 가지 벌은 불의의 벌을 받았습니다.

 불의는 뭐인가 불의는 죄와 다릅니다. 죄는 하나님의 그 법칙을 기준해 가지고  법칙을 어긴 것을 가리켜서 죄라고 말하고 불의라는 것은 이것이 죄를 지어  가지고 하나님과 떨어져 가지고 난 다음에는 제가 왕노릇 해 가지고 이제 원죄가  행동한 그것을 가리켜서 불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이 하나님과 원수된  하나님을 배반한 이 값 이것을 가리켜서 자기가 왕이 됐다 주장이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의라는 것은 자율로 범한 그것을 말하고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을 말하고, 이러기에 이 타락도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하면 죄가 타락에  제일호고, 죄를 범해 가지고 그 다음에는 자율자 주관자 자율대로 사는 자가  되고, 자율대로 사는 자가 되어 가지고 그 속에 알맹이는 제가 왕이 된  것입니다. 왕이 됐으면 다 성공, 사망으로 완전히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간이 첫째 아담으로 인하여 죽기 시작된 것도 죄로 죽기  시작됐고 또 우리가 사는 역사가 시작되는 것도 이 사죄로부터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죄 운동이 있으면 그 다음에 사죄 운동이 이루어진 뒤에 칭의 운동이  이루어지고, 칭의 운동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화친 운동이 이루어지고,  화친 운동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이제 하나님의 것이 우리에게 나올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한 말로 뭉텅이로 말하면 피가 없는 데에는, 주님의 피가  없는 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피가 없는 데에는 아무런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그 속에 생명이 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말이든지, 지식이든지, 또 자기가 진리대로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행동이든지, 어떤 화평 어떤 봉사 어떤 희생이든지 거기에 피가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피가 없으면 그 말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주의 대속이 없으면  거기에는 죽은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의 제일 껍데기가 사죄이니 먼저 하나님의 법칙을 맞추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맞추려고 애를 써서 이 일을 성공이 되면 이제는 제가 제  주장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장인, 이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뜻인데 하나님의  뜻은 이미 나타난 것이오. 이것은 성문의지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요 나타난  하나님의 뜻 속에 그때 그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라. 하나님의 은밀의지라. 하나님의 은밀의지라고 하는  것은 곧 성신의 감화 감동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대한  진리입니다.

 신명기 28장에도 「오늘날 네게 명하는 것을 네가 지키면」 하는 그 말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것을 지키면 그 현실에 해당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것이 오늘날 지키는 것인데 그것은 껍데기요.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이  자리에선 다른 계명이 필요없다, 이 자리는 거짓말 않는 계명이 필요하다, 이  자리에 이 시간, 이 자리에 이 시간에는 내가 기도 안 하지 않겠다, 기도하겠다  이것이 필요합니다. 뭐 다른 계명 많지만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내가 지킬  계명은, 기도하면 사자구덩이에 집어 넣는다 해도 이 시간에 내가 지킬 계명은  기도하겠다 하는 이것이 내가 지킬 계명입니다.

 그러면 기도하겠다 하는 거기에, 기도하겠다 하는 거기에 그 속에 그 시간 지킬  진리는 뭐이냐 하면 영감이 자기에게 영감시켜 주는 그 영감을 자기가 받아야 그  시간 자기가 오늘날 내가 명하는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시간에 내가 기도한다 해도 성령은, 기도한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법칙을 지키지 않았슬니까. 그것이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라 그말이오. 나는  기도하겠다. 생명을 내어놓고 기도하겠다 했소. 생명을 내어놓고 기도를  하겠다고 했지마는 성령님이 그 일에 동행을 해 줄 수도 있고 동행을 안해 줄  수도 있다 그말이오. 왜. 생명 내어놓고 기도 하겠다고 진리를 지키는데  성령님이 같이 해주지 않을 턱이 있는가. 아니오. 생명을 내어놓고 그렇게  진리를 지켜도 성령이 보실 때는 가짜일 수가 있다 그거요. 동기가 다를 수 있고  목적이 다를 수 있고 방편만 그 방편을 취했기 때문에 결과는 다른 결과가  맺어질거라 그말이오. 그것을 성경에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발람 선지가  자기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 욕심 주장으로써 발람이 갔습니다. 가서 거기에서  네가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우리를 축복해라 할 때에 안 그러면 너는  당장 사형이다. 이럴 때에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생명을 내놓고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그들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면 생명 내어놓고 계명 지켰습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계명 지켰지마는 그 속에 알맹이는 제가 알맹이오. 자기를 비우지 않고  주인을 바꾸지 않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공산주의자들이 생명 내어놓고 공산주의에 사상을 지키고 있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생명보다 자기들이 주장하는 그 주장을 강하게 세웠지마는 그 속에  성령이 본다면 실은, 생명 내어놓고 지키는 일이면 다 의인 줄 알아도 생명  내어놓고 성경 법칙 지키나 공산주의 법 지키나 생명 내어놓는 것은 다 같은  정도의 도수가 아닙니까 이래도 그것이 다 보면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중심해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가 왕이 되어서, 생명, 내어놔도 저 위해서 생명  내어왔지, 자기 위해 생명 내어왔지 하나님 위해 생명 내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다니엘이 내가 죽어도 기도하겠다, 죽어도 기도하겠다고  이렇게 생명 내어놓고 계명을 지키는 믿음이지마는 그 믿음이 만일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중심해서,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니 또 내가 이래야 영광스럽고  이래야 존귀해지지. 자기를 위해서 자기 민족을 위해서, 자기 때문에 자기 민족  때문에, 자기와 민족이 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해도 성령은 동참을 안해 준다  말이오. 뭐이냐. 근본으로 돌아가서 저야 어찌 됐든지, 저거 민족이야 어찌  됐든지 자기를 구속하신 저희들의 하나님되신,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라야  합격을 시켜 준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오늘날 네게 명한다는 그 명령은 그날에 해당된 문서계시를 지키는 이  면에 성령이 함께 해 주실 수 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자기를 다해 자기는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은 자기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은 자기를 마음대로 쓰고 자기는 하나님에게 쓰여지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것이 될 때에 성령은 합격으로 인정해 준다 그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구약 성도들이 예수님을 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느냐.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는 그 실행 그것이  예수님을 죽였소. 그러기에 예수님을 죽이기 전에는 강하고 담대합니다. 우리는  진리대로 또 성경 말씀대로 행했다,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주인이 다르기 때문에 성령은 인정하지 않았는고로 성령의  역사는 아니오. 진리 역사는 진리 역사입니다. 안식일 지키므로, 예수님을  안식을 범했다고 안식일 지키는 그 계명 지키는 것 가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껍데기 율법만 행하지 않고 성령으로 더불어  행했더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율법으로는 흠 없는 사람이다, 구약 성경  지키는 것은 흠 없이 하나도 어기지 않고 다 지켰다, 율법으로서는 흠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생명이 없었어. 생명의 주를 대적해 가지고 생명의 주의  지체되어 있는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고 예수 믿는 사람 몰살 시키려고 지금  나섰다 그말이오. 율법으로서는 흠 없는 사람이.

 이러기 때문에 껍데기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는 행했는데 하나는 버림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한다, 뭐이냐. 영감, 성령이 인도하는 영감, 영감을  받는 데에는 쉬워. 영감 받는데는 저만 다하면 돼. 저만 다 내어놓으면 돼.

하나님은 우리에게 껍데기 행동 그까짓 것 바랄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내라는  인격성,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나, 나 이것을 당신이 지금 소원하셔서 하는  것이지 내 행동이나 껍데기 행동에는 내 힘이나 뭐, 당신이 없어 우리 힘을  빌리겠소. 우리의 무슨 하는 역사나, 당신이 능력 많은데,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으신 분인데. 우리가 하는 뭐 우리 일거리 가지고, 손이 모자라서, 힘이  모자라서, 시공의 힘이 모자라서 당신이 왔겠소. 아니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외식의 껍데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피 역사, 피  역사 제일 껍데기는 뭐이냐 하면 사죄 역사. 자기가 언행심사의 모든 생활 할  때에 이 사죄를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면 안에 있는 저 능력의 빛과 생명이  오지를 못합니다.

 이걸 가지고 싸우고, 그러면 그러고 난 뒤에, 이걸 싸우고 난 다음에는 이제  객관으로 살고 자기 주관으로 살지 않으려고, 자기 자율로 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제 생각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이것으로  더불어 싸우면, 자율과 싸우고 사욕과 싸우고 주관과 싸우고 이렇게 주관과  싸우게 되면, 이것을 이기게 되면 그 다음에 성령을 영접하게 되어서 성령을  영접하면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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