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증거


선지자선교회 1989년 8월 7일 월밤집회 

 

본문 : 계2:1-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2장으로 부터 3장까지에 기록된 것은 일곱 교회에 대한 것을  기록하셨습니다. 각 교회별로 공부한 그런 과거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주님의  재림도 가까왔고 너무 교회가 혼란스러워서 교회에 대한 정관을 가져야 하겠다  하는 것을 깊이 느껴서 이 말씀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와 올 때는, 노아 때는 죄악이 땅에  관영했다고 했지만 예수님 재림하실 때는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까지 관영한다고 하신 말씀은, 곧 하늘은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킴인데 교회 안에까지 죄악이 관영하다 하는 말씀입니다. 관영이라는 말은  가득 찼다는 것을 한문 글자로 말해서 관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번에 할 수 있는 대로는 2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일곱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해 주신 말씀을 공부하려고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전에도  말하였거니와 여기에 일곱 교회로 기록된 이 교회는 신학자들이 여러 모양으로  제각각 다른 해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틀어서 이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을  바로 안다면 신약 교회가 어디서 어떻게 되어 있든지 그 교회의 내용과 진상을  바로 안다 하는 말이 됩니다.

 이 말씀은, 교회라 하는 것은 건물이 교회가 아니고 믿는 사람들이 합하여  교회인데, 이 일곱 교회에 계시해 주신 말씀을 잘 공부해서 바로 안다고 하면  세계의 신약 교회, 근 이천 년이 다 돼 가는 모든 역사의 신약 교회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 되고, 또 신약 교회를 바로 알 수 있다는 말은 신약 시대의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바로 아는 것이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악령이 기묘하게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애를 쓰고 또 그 반면에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온전한 구원으로 입히실라고 애를 쓰십니다.

 그러기에 신약 교회가 곧 우리 믿는 택함 받고 중생된 사람들이오. 또 중생된  사람들의 그 모든 단체와 행동이 곧 교회와 교회의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여게 일곱 교회로 이렇게 나누어서 교회들의 이루어져 나가는 그 모든 역사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교회의 죄악이면 죄악  혹은 우리에게 소망으로 가질 것이면 가질 것이라 하는 이런 면으로는 우리가 다  힘을 써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나쁜 점은 그것은 곧 그 교회의 나쁜  점이 아니고 내게 대한 나쁜 점이라 그렇게들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하고 고칠라고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일곱 교회를 들어서 교회의 그 내용을 간단하게 기록을 하셨는데 그  기록된 것이 중복적으로 많이 기록이 됐습니다. 중복적으로 기록이 된 그것은  잘못하면 한 말 또 하고 또 한 말 또 하고 이런 것으로 이렇게, 그저 특별한 거게  뜻이 없이 그렇게 그런 것을 여게도 저게도 말씀해 놓은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악령이 하나님의 교회를 침노하는, 다시 말하면  교회가 속화되어서 타락되어 가는 그 순서의 과정들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한 교회 한 교회에 그 모든 좋은 순서도 있고 나쁜  순서도 있는데 그 순서 있는 순서를 우리는 잘 기억하고 챙겨서 악령은 이런  순서로 이런 결과를 맺고 또 저런 순서로 저런 실패를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하고,  또 악령은 그것과 그것과 그런 것을 종합시켜 가지고 사람들을 어지럽게도  만들고 타락하게도 만들고 속화되게도 만든다 하는, 그 방편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곱 교회에 모든 신약 교회의 내용을 다 담아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에 있는 그 내용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내용은 에베소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또 라오디게아 교회라면 라오디게아 교회에  계시된 그 내용은 라오디게아 교회에만 해당된 것이 아니고 일곱 교회에  기록하신 이 내용은 신약 교회 어떤 교회든지 어떤 사람들에게든지 다 해당되는  사실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여기 보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에베소 교회에 대한  이 내용을 전달하기는, 교회들에게라고 하면 이거는 에베소 교회만이 아니고 일곱  교회 전체를 가리켜서 교회들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건이든지 그 사건은 한 교회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한 교회를 대표로 해서  이렇게 계시했으나 계시된 그 내용은 모든 전 교회들에게 해당된 말씀이라,  그러기 때문에, 신약 교회에 속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건건은 다 자기에게 해당된 하나님의 계시로 이렇게 받아서 가지는  것이 그것이 요 성경적입니다.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어디든지 그랬습니다.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 버가모 교회도 그리했고,  두아디라 교회도 그리했고, 사데 교회도 그리했고, 빌라델비아 교회도 그리했고,  라오디게아 교회도 그리했고 다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교회들이라고 하는 그런 복수의 총칭을 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한 교회에  하신 말씀이 모든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 되는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교회는 한  교회뿐입니다.

 에덴동산 아담 하와가 초대 교인이요, 또 그 다음에 가인과 아벨이 초대  교인이요, 그때에도 아담 하와의 자손 중에 교회에 거기에 참가하지 못한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꼭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만이 하나님이 택해서 구원을  주시는 사람이라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인류 시조의 자손 중에 성경에 기록된  그 인물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또 기록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다 멸망할 사람들이라 하지는 못하지만 구원받지 못할 그런 사람들은  거기에, 성경 인물로 기록하지 안한 그런 인물들 가운데 다 섞여 있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거튼거튼 말합니다.-교회는 하나이라. 그러면 아담 하와로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의 교회는 하나라. 역사 교회가, 세월 력(歷)자. 역사 교회가 다  하나라. 또 널리 이 사회적 교회 이 지구상에 온 세계에 퍼쳐 있는 모든 교회는  하나입니다. 이래서 교회를 가리켜서 단일 교회라 그렇게들 모두 다 말을 합니다.

 교회는 단일 교회라. 단일 교회라 말은 교회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시대에 또 세계에 수많은 교인들이 있고 또 수많은 교리와 신조들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여러 교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단일 교회라 말은 단 하나의 교회라는 말입니다. 하나의 교회가 되는  것은 왜 하나의 교회가 되느냐 하면 교회라는 것은 한 분 하나님에게서 시발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관계를 가집니다. 그러면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숫자를  관계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종말은 하나로 끝을 맺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비유컨대 기본수는 하나인데 하나인 기본수에다가 거게다가 보태는 그  가수를 하나 보태면 둘 될 것이고, 둘 보태면 서이 될 것이고, 또 열 보태면  열하나 될 것이고, 또 백 보태면 백하나 될 것이고 기본수 하나에다가 거게다가  그 숫자를 가하는 더하기를 한다고 하면 더하는 대로 답안은 숫자가 나올  것입니다. 열을 더하면 기본수와 합해서 열 하나가 될 것이고, 또 스물을 더하면  스물과 기본수와 합해서 스물 하나가 될 터인데, 기본수는 하나요 보태지는 것은  수많은 것들이 보태지는데 답안은 하나입니다. 마지막에 결말에 답은 하나입니다.

 하나라고 해야 정답이 되지 하나 아닌 것은 다 정답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에 보태기 뭣을 하면 그 답이 하나가 되겠습니까? 하나라는  기본수에다가 뭣을 보태면 그 답안에 하나가 되겠습니까? 그거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영을 보태면 하나가 됩니다. 하나에 영을 보태면 하나가  됩니다. 기독교는 이것입니다.

 영원 자존하신, 완전하신, 유일하신, 모든 것에 원인이 돼서 일원이십니다.

 하나이신 한 분에게 인간을 뭐 천 명 만 명 보탭니다. 보태는데 한 사람이 한  사람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또 열 가지도 백 가지도 천 가지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하고 보탭니다. 보태 가지고 주물거려서, 자꾸  오랫동안 주물거려 신강하면 그 하나에 많은 것을 보탰는데 답안은 하나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백 가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주물러서 백 가지를  다 죽여 버리고 공을 만들어서 아무것도 없는 공을 만들고, 사람이 천 명 만 명이  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돼도 기본수 하나인 하나님과 천 명 만 명과 둘이 한테  뭉쳐 가지고 얼마 동안 뭉쳐서 자꾸 이렇게 작용하고 난 다음에는 뒤에 가서는  하나만 남아 있는 요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단일성의 교회라  그말은 하나님의 교회는 주장도 하나요, 힘도 하나요, 생명도 하나요, 이치도  하나요, 근본도 하나요, 결과도 하나라. 단일 교회가 되어져 가는 과정은 이제  말한 대로 기본수인 하나님, 한 분이신 하나님 한 분에게 수많은 타락한 인간들을,  다 타락 변질된 인간들을 다 이끌어 들여서 하나님과 이렇게 교제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본질 본성과 꼭 들어맞지 아니한 것들은 다 제거해 없애  버리고 하나님 한 분의 본질 본성과 꼭 같은, 크기는 커졌는데, 하나님 한 분에게  붙기는 수억억억억만 명이 붙었는데 보니까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하나님 한  분의 성질, 한 분의 뜻, 한 분의 마음, 한 분의 소원, 한 분의 주장, 그러니까  기쁨도 하나이요, 슬픔도 하나이요, 좋아함도 하나이요, 소원도 하나이라.

 이러니까 완전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타락해 가지고, 악령으로  말미암아 타락된 이것이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삐뚤어진  데서 다 거기서 구출해 냅니다. 삐뚤어진 데서 구출해 내는 것이 그것이  뭐입니까? 삐뚤어진 것이 뭐이 삐뚤어진 것입니까? 죄라 말은 삐뚤어진 거라  말입니다. 바로 죄라 말이 과녁을 맞추지 못한 삐뚤어진 것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오셔 가지고 역사했습니다. 그러면 그 목적을  달성하시는 데에 달성하신 그 방편과 과정이 어떠한가? 첫째는 삐뚤어진 것을 다  없애서, 하나님 한 분만이 옳고 한 분 외에는 옳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삐뚤어진  것을 이것을 다 탈색을 해 가지고 삐뚤어진 것을 다 뽑아서 없애 버리고  삐뚤어진 것이 하나도 없는 하나님 그분과의 하나되는 일 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서 대형으로 사죄를 해 가지고, 죄 없이 했다 말은 삐뚤어진 것이 없게  했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죄라는 것은 삐뚤어진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삐뚤어진 것을 없애기 위해서 오신 것이 예수님의  사죄의 공로입니다.

 또 옳은 것은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는데 한 분이신 옳은 하나님 한 분과 꼭  하나가 되도록, 옳으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그것이 곧 대행으로  칭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칭의입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것 다 없앴어, 또  옳은 것은 하나뿐인데 하나뿐인 옳은 것과 하나가 됐어.

 또 움직이는 역사가 하나인 자존자 완전자이신 그분으로 더불어 함께 움직여,  그것이 하나님과 화친인 것입니다. 함께 움직여. 움직이는데 그것이 보면 한  뭉텅이입니다. 그것이 한 뭉텅이요. 힘도 하나요, 생명도 하나요. 지혜도 하나요,  소원도 하나요, 성질도 하나요 꼭 하나입니다..

 하나이니까 피조물이 볼 때는 전부 하나님으로 봅니다. 피조물이 볼 때는 전부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으로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 안에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을 발견하면 하나님은 자존자요 완전자시요, 하나님의 교회인 성도들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하나된 자들이기 때문에, 성도들 밖에서는 성도들을 볼  때에 하나님과 꼭 같이 하나요 하나님이라고 볼 수 있고, 성도와 하나님 그  경계선 속에 들어와서 보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모든 교회는 피조물들입니다.

 이러니까 외부에서 볼 때는 하나요 속에 들어가서 보니까 하나는 자존자시요  하나는 피조물들로서 이렇게 둘로 되어 가지고 있는데, 이 피조물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되어 있는데 하나되어 있는 이것이 영원히 완전을 향하여  소망하면서, 완전을 향하여 소망하고 완전을 따라갈라고, 완전을 배울라고 해서  완전화 될라고 하는 요것이 뭐이냐?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영생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몇 가지로 구원하셨습니까? 네 가지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 사죄 칭의 화친의 피, 또 성령, 진리,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소망 이 네 가지로 예수님이 구속하셨는데  이 네 가지가 기본적으로는 우리에게 완전히 이루어져 가지고 있고 또  건설적으로는 지금 건설 과정에 있고 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왜 단일 교회라 하는가? 단일 교회라 하는 것은, 교회는 셋이 합해  가지고 하나된 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라 하는 것은 셋이 합해져 가지고  하나된 것이 교회입니다. 셋이 합해졌다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 영원 자존  주권하신 대주재이신 한 분이신 하나님 이 하나님과 또 영원 자존한 하나인 이  진리와 또 사람과 이 셋이 합한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 셋이 합해 가지고 하나가  된 것이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단일성이라는 것은 근본이 하나요, 또 진리가 또 하나님과  하나요, 사람은 진리화 하나님화돼 가지고 있어도 없어져서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한덩어리 된 것이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천 개가  되든지 만이 되든지 교회라 하는 것은 본질과 본성도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또 행동도 하나입니다. 생명도 하나입니다. 근본도 하나입니다. 목적도 하나입니다.

 또 그것을 이 셋을 결합시킨 그 방법은 무엇이 들어서 이 셋을 결합을  시켰는가?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과 이 셋을 결합을 시켜서 하나된 것이 교회인데  이 셋을 결합시키기는 무엇이 결합을 시켰습니까? 예수님의 피가 들어서 이 셋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하나 만들 때에는 삐뚤어진 것을 없애고, 바른 것을 만들어 세우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함께 움직이는 그것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죽으심으로 하나 만들었는데 하나가 산 소망이  없는데 죽으심으로 하나 만들어 가지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이제 영원한 소망을  가지는 이것으로써 비로소 교회는 완성됐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하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 하나님을 향한 소망 이 소망의 행위가 영생인데,  영생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움직인 행동만이 영생입니다. 다른 건 영생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이것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세 가지 해결을 해서 하나  만들었습니다. 하나 만들었으나 하나 만들어진 이것이 더 진보가 없고 더  거기서는 그대로 고정되어 가지고 존재만 하지 그것이 무엇이나 성장이나 진보나  향상이나 이런 그런 것이 없는 하나의 어떤 돌덩이 모양으로 고체와 같이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대속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성장하고 또 점점 성화돼 나가는,  향상돼 나가는 이 소망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을 사람들은 생각할 때에 우리 사람같이 생각해서 '죽었다가  살아났으니까 이렇게 기쁘고 좋은 일이 있겠나?' 이렇게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살아난 것이 당신이 좋음이 됐다고 하면 우리의 대속은 안 됩니다. 대속이라 하는  것은 꼭 제가 있는 댓가를 내 줌으로써 아무것도 없는 자가 부요하게 되는  그것이 대속입니다. 대속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죽음으로 우리의 이 세 가지 대속을 하셨으니까 그거는 대속했으면 그저 죄 없는  자로,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한 의로운 자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된 자로만  있는 것이지 그자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자로 자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자로  점점 향상할 수는 없습니다. 전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아무래도 하나님을 향해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 무한한  것을 자꾸 내가 받아서? 하나님을 향해서 소망해서, 내가 소망할 때에 하나님의  그 전부는 내것이 되어지는, 내가 소망을 하고 소망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전부는  내것이 되어지고 내가 믿음으로 내것을 만드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전부를  내것으로 소망하는 이 소망을 우리가 가질라고 해도 가질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소망할 그런 실력은 없습니다.

 실력이 없는데 예수님이 할 수 없어 다시 피조물인 인간을 입고 영원히  부활하셔 가지고 있음으로써, 그분이 하나님이신데 인간을 입고 다시 인간 살이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유 없는데 인간 살이 한 그 이유가 곧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소망 이것을 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인성이  완전자에게 소망한 이 소망을 가지고 완전자를 바라보면서 완전자의 그 충만을  자기 것으로 삼는, 소망하는 이 소망을, 예수님의 인성이 이 소망을 함으로써 이  소망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 소망의 권세가 열렸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만일 다시 부활하셨는데 부활하신 그 인성을 당신이 벗으면,  인성을 벗으면 우리는 사죄도 받았고, 칭의도 받았고, 하나님과 화친도 받기는  받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영생하는 소망은 없습니다. 그만 중단돼 버리고 맙니다.

 주님이 대신 이렇게 소망하는 그 소망을, 대생으로 소망한 소망의 예수님의  인성에다가 우리 인성이 붙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에 우리 인성이 붙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을 향하는, 소망하는 그 소망의 인성에게 그 뒤에 우리  인성이 딱 들어붙었기 때문에 그분의 소망하는 것이 우리 소망이 돼 가지고  영원히 소망하게 되는 것입나다.

 지금이라도 그분이 인성을, 우리 소망을 인해서 인성을 입은 그 인성을  벗어버리면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라는 건 다 끊어지기 때문에 영생은  다 중단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의  그 희생도 사랑의 희생이요 크지만 또 예수님의 부활하심의 그 사랑의 희생도  커서 죽음의 희생이나 부활하심의 희생이나 희생이 같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이걸 모르고 있기 때문에, 부활하는 부활날이라 하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좋아하기만 좋아하지 예수님께는,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소망하는 그 소망을 나 위해서 소망하지 안했으면  소망의 길이 끊어지고 소망의 그 방편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분이 나에게 이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이 소망하는 소망의 이 길을 열어서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의롭게,  하나님과 화친하기 위해 가지고 사람되어 와서 제물되신 그것도 우리에게 큰  사랑의 수고요, 그러면 그것은 그 수고가 영원전 창세 전부터 시작된 그 사랑의  수고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끝나 버렸습니다. 끝났습니다.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교리상 맞아요 안 맞아요? 여러분들이 꼭 듣고 교리를 딱 따져서  교리대로 믿어야 돼요. 교리대로 안 믿으면 안 돼. 심판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의 교리 가지고 심판하기 때문에 교리대로 되지 안한 것은 다  정죄받아서 다 실패됩니다. 죽으심으로써 죽음에서 나를 대속은 하지만 삶의  대속은 예수님이 신인양성일위로 그 인성이 다시 나를 하나님께 소망 가지는 이  소망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소망의 길을 열기 위해서 사람이 되셔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서 소망의 길을 연 그 길이 곧 내 소망의 길입니다. 그래서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을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 하는 것이 베드로전시 1장 3절  이하에 보면 기록돼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 하는 것은 단일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근원이  하나요, 또 교회의 온갖 조성의 방편이 하나요, 또 교회를 조성하는 그 공로가  하나요, 또 조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 하나요, 그 요소들이 하나라 말은,  요소가 하나라 말은 성령도 하나요 진리도 하나요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요 이래서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 영원히  하나님 한 분으로 하나 되어서 이렇게 영생하게 한 것인데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하나님과 그 사이를 이간을 붙여 가지고 떨어짐으로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짐으로 사망하게 된 이것을 하나님과 재연결시킴으로써 이제  영생하도록 만든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입니다. 그래서, 종자가 하나요,  요소가 하나요, 그 방편이 하나요, 또 근원이 하나요, 생명이 하나요, 힘이 하나요,  목적이 하나요, 소원이 하나요, 취미가 하나요 기분이 하나요, 성질이 하나요, 전부  하나입니다. 전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는 단일 교회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교회라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서는 수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이 수많은 교회는 어디로  들어갑니까? 수많은 교회는 단일 교회로 들어갑니다. 단일 교회로 들어가는데,  같은 요소 같은 질 그것은 아무리 합해도 하나가 되지만 이질이 되면 합해지지  않습니다.

 그거는 내가 좀 맞을란지 안 맞을란지 모르겠는데, 이 네모배기 말이요, 네모가  반듯한 네모배기, 장기짝 모양으로 네모가 반듯한 것 그것은, 네모배기인데 큰 것  작은 것 긴 것 다 많이 있어도 그것은 들어가면 하나로 딱 들어 맞을 수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여기 저 목수 OOO목수 어때? 딱 들어맞아? 그런데 그거  조금 꼬불텅하게 동그란 게 있으면 맞을까요 안 맞을까요? 고거 그건 갯수가  말이요 동그란 게, 꿀밤같이 동그란 것도 있고 좀 꼬부랑한 것도 있으면 그거  맞겠습니까 안 맞겠습니까? 그거는 안 맞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기독자들이 크고 작은 어떤 자라도 그 본질과 본성이 꼭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과 또 선포해 놓은 요 진리와, 그러면 예수님의 피와 이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을 향한 소망, 우리가 중생을 몇 가지로 중생했습니까?  너이로 중생했습니다. 처음으로 들은 사람은 '별스러운 소리 다 하네 저렇게 자꾸  네 가지니 뭐이니 저래 하니까 지금 백파는 이단이라 한다'고 그렇게 하지말고,  몰랐으면 아직까지 잘 몰랐기 때문에 예수 잘못 믿었어요. 잘못 믿었기 때문에  가보면 헛일이라.

 이러니까, 이 네 가지로 우리가 중생됐고, 또 우리의 힘은 몇 가지입니까? 자,  목회하는 사람들이 무슨 힘을 가지고 목회합니까? 20세기의 문화 가지고  목회하요 과학 가지고 목회하요? 물질 가지고 목회하요? 철학 가지고 목회하요?  뭣 가지고 목회해요? 무슨 힘으로 목회합니까? 웅변 가지고, 웅변 열변 가지고  목회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네, 그런 것 다 소용 없습니다. 꼭 요 네  가지 가지고 목회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와 하나님을 향한 소망 요망 네 가지가  자기 마음에 간절하면 그때 설교할 때에 그 설교가 좀 힘있고 이것을 위해서  생명과 모든 것 바쳐서 다 이걸 위해서 투자할 마음이 있으면 그 설교는 더욱  힘있고 이제 이 네 가지 힘으로만 목회하는 것이지 네 가지 힘 외에 천하 웅변을  다 가져도 그거는 마귀 역사만 이루어지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교회는 단일  교회요 하나인 교회입니다.

 이래서, 이 일곱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각각 다르나 이 일곱 교회로  이렇게 한 것은 그 일곱 교회의, 그 교회는 그렇고 저 교회는 그렇기는 그렇지만  그 교회가 그러니까, 그 교회 일곱 교회 중에 에베소 교회는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에 향해서 말씀하셨고, 또 서머나 교회는 그렇기 때문에 서머나  교회에 향해서 말씀하시고 그런 것이 아니고,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고 서머나  교회에 말씀한 것은 모든 교회들에게 다 말씀한 것이고 교인들에게 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인데, 왜 그라면 에베소, 서머나 이렇게 일곱 교회를 구별해 가지고 그와  같이 했느냐 하는 그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 이유는 뭐라고 했습니까?  중요성 그면도 있지만 중요성 그것보다도, 일 이 삼 사 순서를 따져서  중요성이라는 그런 면도 있기는 있지만, 그것도 있기는 있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뭣 때문에 여러 교회를 이와같이 들어 가지고 이렇게 하셨습니까? 이것이  교회가 있은 지 후에 된 것보다도 교회가 있기 전에 된 것이고 하나님이 영원 전  예정하신 그대로 이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일곱 교회에 된 이  현황을 보고 주님께서 이렇다 저렇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영원 전  예정하신 그대로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고 이런 것들이 이루어진 것을 이제  주님이 말씀을 하셔서 이 문서 계시에 기록을 한 것입니다. 그라면 이 실상 후에  기록했습니까, 실상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작정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있은 지 후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작정이 앞입니까 실존이  앞입니까? 작정이 앞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니까 그렇기 때문에 말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교회에  오묘하게 타락하고 기이한 역사들이 있는데 이 역사들이 일어나는 그 순서를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에베소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준 순서가 있고, 또  서머나 교회를 통하여 알려 준 순서가 있기 때문에, 이 교회에 일호 이호  칠호까지 있으니까, 중요성이라 하는 그 면도 여기서 우리가 살펴서 좀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다만 그것보다도 여게 제일 중요한 거는 뭐이냐? 요 타락은 요리  요리 타락 하더라, 요 변질은 요리 요리 변질되더라, 요 속화는 요리 요리 되더라,  요 마귀의 유혹은 요리 요리 하더라. 그래 가지고 여기에서 성장되는 과정,  타락하는 과정, 구원을 이루는 과정, 또 멸망을 이루는 과정 그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서 알리기 위해서 그런 과정들을, 지낼 과(課)자, 그런 과정들을 이렇게  예정하신 대로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곱 교회에 대한 이 사실을 똑똑히 모르면 신약 교회는  모르는 사람이 되겠고, 이를 똑똑히 알면 신약 교회는 다 아는 사람이 되겠고, 이  일곱 교회에 대한 그 방편이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아서 여게 대해서 자기가  하나도 속지 안하고 여게 대한 올바른 방편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 그러면 이  일곱 교회를 공부해 가지고 이 신약 교회에 대해서 자기는 올바른 관계를 맺었다.

일곱 교회에 대해서 올바른 관계를 맺었다. 미워할 거는 미워하고, 사랑할 거는  사랑하고, 끊을 거는 끊고 던질 거는 던지고, 가꿀 것은 가꾸고, 멸할 것은 멸하고  이 신약 일곱 교회의 내용을 알아 가지고, 일곱 교회에 내용을 공부해 가지고  이것을 똑똑히 알아서 이 일곱 교회에 대한 교훈대로 자기가 바로 살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무엇을 바로 한 사람이 됩니까? 일곱 교회를 공부해 가지고 이 일곱  교회의 교훈대로 자기가 바로 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무엇을 바로 한 사람이  됩니까? 신약 교회에 대해서 바로 한 사람이 됩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것을  공부해 가지고 일곱 교회에 대한 것을 똑 바로 알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무엇을  바로 안 사람이 됩니까? 신약 교회를 바로 안 사람이 됩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이 계시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됐다고 하면 그 사람은 무엇을 모르는 사람이  됩니까? 신약 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신약 교회를 모르면 신약 교회에 대한 교회 생활을 모르고 바로 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신약 교회에 대한 바른 생활을 하지 못하면 바른  구원이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못 이루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을 이번에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는 것을  느껴 가지고 이번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전에 혹 일곱 교회에 대해서 말할 터이니까 거게 대해서 많이 좀 읽어  보고 연구해 가지고 오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게 다 전달이 됐는지 모르지만  이번에 여기서 공부를 할 때 그래 하십시오. 말은 내지 말고 공부를 할 때에 딱  그러면. '조것은 바로 아무 교파로구나' 요 성경대로 내가 해석하니까 성경의  해석이 틀린 거는 틀렸다고 여러분들이 말을 하고. '조거는 어떤 교파로구나' 또  자기가 모르면 '이리 이리 믿는 그런 교파겠구나' 또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요  저 목사는 어떤 목사요 저 장로는 어떤 장로요 저 집사는 어떤 집사라' 요것을  요게서 보면 요 교훈대로 딱 알아 가지고 그렇게 알아야 여러분들이 바른 행동을  하고 바른 관계를 가져서 멸망을 피하고 구원을 이루지 그거 모르면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여기서, 제가 지금 오기를 '이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을 증거할 때에  내가 어떤 교파든지 사람의 이름이든지 그 이름을 말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을 하나님께 내가 기도하고 왔는데 또 실수를 할란지 모르겠습니다. 꼭  그런데 너무 사람들이 모르고 있으면 '바로 이게 아니냐' 이렇게 할란지 몰라요.

그게 내게 지금, 그걸 미리부터 기도하고 왔는데, 나는 말하지 안하고. 사람도  말하지 안하고 교회도 말하지 안하고 교파도 말하지 안하고 안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이 교훈을 들으면 환하게 보여질 거라 말이오. 이 교훈을 들으면 '야,  그거로구나, 그렇구나, 저렇구나.' 이렇게 알아서 이 말씀하신 대로 말씀이 그거는  틀렸다면 틀린 것으로 옳다면 옳은 것으로, 가까이 하라면 가까이 할 것으로, 멀리  하라면 멀리 할 것으로 이렇게 바로 알고 여러분들이 여기서 회개하고 행동을  해야 되지, 이제 말세지말입니다. 지금 인제 추수기가 됐습니다. 추수기가 됐기  때문에 이제는 이러나 저러나 마지막에 타작 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해  지금 추수할 때가 왔다 그거요.

 처음에 기본수에다가, 니꼬르(equa1) 기본수 하나 더하기 괄호 그 다음에 답이  하나 그라면 괄호 속에 뭣 넣어야 돼요? 영이라, 영. 여러분들이 이걸 단단히  알아야 돼요.

 이제 하나님과 수많은 사람들이 합하지만 완전히 자기를 부인해서,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하나님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아야 옳은 교회에 들어가는 것이지  그렇지 안하면 안 됩니다.

 꼭 요걸 여러분들이 이래 보면서 내게 대해서,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 '내가 요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보니까 나는 이런 자로구나' 자기를 확정해야 될  것이오. '나는 이런 자로구나' 확정해야 될 것이오. '우리 목사는 이런 자로구나'  확정해야 될 것이오. '우리 장로는 이런 자로구나' 확정해야 될 것이오. '어떤  교파는 어떤 것이로구나' 확정해야 될 것이오.

 그러면 여기서 이 세계에 어느 나라는 무엇이라 하는 그런 것을 말을 내가 안  하고, 말만 안 하고 그 실상대로만 말할 때에 그 이름은 여러분들이 지어서  속으로 붙이십시오. 속으로 붙여야 되고, 말하면 일도 성공도 못 하고 헛일합니다.

 그러니까 비밀은 비밀로 두고 성공할 때까지 잘 그것을 비밀을 잘 보수해야  되지 그게 폭로돼 버리면 성공도 못 하고 화만 당합니다.

 잠깐 기도합시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사 자연 계시인 이 모든 만물에서 우리의  구원 도리, 우리가 갈 길을 환하게 보여 주시고 여기서도 미진할 때에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 주시고 영감으로까지 인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금번에 말세를 당한 저희들에게 이 신약 교회를 똑똑히 보여 주어  저들이 바로 속할 데 속하고, 바로 인도받을 것 받고, 물리칠 거는 물리치고,  대적할 걸 대적하고, 갖출 것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금번에 이 말씀을  가르쳐 주실라고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주사 다 깨닫고 확정을 짓고 다시는 이런 저런 미혹에 걸리지  안하고 서슴지 안하고 자기 갈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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