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지식-행위-사람-목회자


선지자선교회 1984년 1월 2일 교역자회

 

본문 :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은 신구약 이 계약 성경을 가르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계약된  신구약 성경을 말합니다. 왜 성경을 복음이라고 그렇게 말하는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가장 기쁜 소리기 때문에 복음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왜 기쁜 소리인가? 하나님의 의가 이 복음에 표시되어서 있습니다. 이  복음 계약에 선포돼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뭐인가?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그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성취된 그것이 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 성취가 무엇인가? 영원 전 정하신 그 목적이 달성된 것이  하나님의 소원의 성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목적에서부터 도성인신으로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로 완성된 이 구원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여기에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의 곧 우리의 구원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하는 말씀은, 이 믿음은  점차적으로 성장돼 나가야 하고 완성돼가는 그것을 가르쳐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선지의 예언한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예언하기를 '오직 의인은' 의인은 어떤 사람이 의인인가? 의인은  하나님의 소원 성취대로 된 사람이 의인입니다. 곧 구원을 받아 가진 사람이  의인입니다.

 이 의인이 되는 데에도 믿음으로 차차 이루어지고 또 믿음으로 의인된 자는  믿음으로 산다 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근원으로 삼아, 하나님을 근원으로 삼아, 그로 인하여 산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근원으로 삼아 그로 인하여 산다.

 그러기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 의라 의인이라 하면 유일한  존재이신 그 유일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수많은 것들을 근거해  가지고 각종 그것이 주장하고 그것을 중심한 그것에게 합리되면 다 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이 의라고 말하는 것은 순전히 죄악입니다.

 여기에 의와 의인은 영원 자존하신 유일하신 하나님 그분의 소원대로 이루어진  것이 의요 그분의 소원 곧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분의 소원은 우리의 구원이  그분의 소원입니다. 우리의 구원 이 구원을 받을 때에도 믿음으로 받고 또  믿음으로 이 구원을 이루어 받은 자들도 믿음으로 산다하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산다 말은 곧 영원 자존하시고 유일하신, 홀로 한 분이신 그분을  근거해서 그분으로 인하여 사는 것을 가르쳐서 믿음으로 산다. 그렇게 여기에  표시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소원 성취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의요 그대로  된 사람이 의인이라. 그대로 된 사람들은 믿음으로 산다. 하나님의 소원대로  이루어진 그 소원 성취의 사람은 이제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산다.

이것은 영생이라.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고 믿음으로 의인되고, 믿음으로  의인되고 또 의인된 것 만치 믿음으로 삽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믿음 이  믿음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분으로 인하여 내 행동함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으로 인한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세 가지로 첫째는, 그분의 지극히 크시고  무한하심에 대한 믿음의 지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지식. 또 이 구원의  요소인 하나님의 이 사랑의 무한하고 광대하심에 대한 믿음의 지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또 이 둘로 인해서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이 있는 이 소망에 대한  믿음의 지식을 가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의 크심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의  사랑의 그 광대하심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지식이 소망의 지극히 큰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종교는 이렇게 믿는 것이 이종교들의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믿기 쉽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의 도요 이것은  인본의 도입니다. 믿음으로 지식한다 그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서나  사랑의 광대함에 대해서나 우리 소망의 지극히 큼에 대해서 우리의 지식을  가지고 궁구하고 거기에 도달해서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와서 그 지식이 우리에게 왔을 때에 우리가 그 지식을  영접해서 내 지식 만든 것이 그것이 믿음의 지식입니다. 요것을 잘 구별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지식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우리의 지식이 됐습니다.

믿음이 우리 지식이 된 것은 하나님의 그 지식이 이렇다고 할 때에 그 지식을  내가 받아 들여 내 지식된 그것이 믿음의 지식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내  지식이 하나님의 이 구원, 그 삼대 요소 이세 가지에 대해서 내가 성경을 보고  이렇게 저렇게 비판하고 논리해 가지고 자기가 깨달아서 믿는 그 지식이  아닙니다. 그 지식을 우리가 가지면 시발할 때는 그거나 그것이나 같은  것같지마는서도 승패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최종 결실의 때는 그 모든 것은 다  인본이기 때문에 불타 버리고 맙니다. 불로 연단할 때에 다 타버리고 맙니다.

다만 그분의 지식이 내기에 주입되어서 그 지식이 내게 와 가지고서 내 지식된  것이 그것이 믿음의 지식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첫째가 믿음의 지식을 가지는 일을 힘을 써야겠습니다.

그러면, 성경 말씀을 보는 데에도 성경 말씀을 보고 주관이 비판해 가지고  긍정하는 그 방편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 인본이요 은밀한 의미에서 성령은  인정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동참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고 내가 궁구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서 이렇다 할 때에 그대로 내가 받아들여서 가지는 그 지식이  믿음의 지식입니다.

 다음에는 이 셋에 대해서 믿음의 행위가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에 대한 믿음의 행위. 이 믿음의 행위라 말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으로 인해서 크심에서 발원돼 나오는 그것으로서 내가 행해지는 것이 그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내 주관이라 하는 것은 완전히 부인하기를  진공같이 부인해 버리고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의 그 크심에서 나온 내 행위가  믿음의 행위입니다. 크심에서 나온 행위가 내 믿음의 행위입니다. 또 하나님의  그 사랑의 광대함에서 나온 행위가 내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믿음의 행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믿음의 행위 또 지극히 큰 소망 그  소망에서 벋어나온 그 행위가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의 행위는 그 행위의 근원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의  요소가 아니고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를 점령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요소가  우리를 점령해서 우리는 그릇처럼 담고 있고 집처럼, 집처럼 와 가지고서  거처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또 이와같이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에 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은 그 크심이 만들어 놓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크심이 만들어  놓은 사람입니다. 외부는 사람이지마는서도 그 속에 능력은 전부 하나님의  크심의 그 능력이 와 가지고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크심의 능력이 사람을 입고  나타난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그  광대하신 사랑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에게 올 때에는 믿음으로 왔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으로, 그로 인해서 그에게 피동으로 왔다그 말이요. 믿음으로 왔다  말은 그에게 피동으로 왔다 말이요. 그로 인해서 그의 순전히 인간 능력이  아니고 사랑의 능력에 피동되고 사랑의 능력이 조성해서 사람이 되어진 것이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또 지극히 큰 소망의 믿음의 사람. 지극히 큰 소망이 사람을 만들었으니 그  지극히 큰 소망이 만든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소망이 만들었는데  그것이 어째 사람에게 왔는가? 소망이 만들었는데 그 소망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사람을 움직이니까? 사람은 거게 피동돼 가지고서 만들어져 가지고서 된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나타났는데, 복음에 나타났다  하나님의 이 선포된 계약에 나타났다 계약에 나타난 이 복음이 지금 이 복음이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 의, 하나님의 소원 성취인 하나님의 구원 이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고 받아서 점점 충만해지고 성장되어 가는 것이고 그러면  성장된 것 만침 그것은 달리는 살지를 못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살지 못하고  그것이 만들었기 때문에 내나 그 행동하고 그것밖에는 나타낼 것이 없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이랬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인 우리의 구원은 무엇 무엇이 되어서 무엇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과 하나닌의 사랑의 그 광대하고  무한하심.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지극히 큰 소망. 이 소망은 무한한 소망이라고는  성경에 말하지 안했고 영원한 소망이라 지극히 큰 소망이라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만이 붙일 수 있는 특수한 그 표현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에 대해서 그 크심이 우리에게 이  세가지로 이루어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이 우리에게 믿음의  지식으로 믿음의 행위로 믿음의 사람으로, 사람으로, 그 믿음이라 말은 그  능력에 피동됐다 그 말이요. 그 능력이, 마치 이 모터가 움직이니까? 모터에  따라서 그 모든 공장에 설비된 기계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 능력에 순전히  피동돼 가지고서 움직여지는 이것이 믿음의 지식이요 믿음의 행위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이 우리에게 역사해 가지고서 이런 결과가  이루어져야 되겠고 또 하나님의 그 사랑의 무한하신 그 사랑이 역사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이런 결과가 이루어져야 되겠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 주신 그  소망의 능력이 소망이 무슨 능력이 있는가? 그 소망은 성령과 물과 피가 보증이  돼 가지고서 내재 내주 역사해 가지고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소망의 능력이, 소망의 능력은 그 소망이 뭘로 생겼는데 능력있는가? 소망은  피와 진리와 성령으로 생겼습니다. 그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이루어져야만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속기 쉽습니다. 이거 뭐 알기는 아주 쉽고 뉘든지 단번에  다 알 수 있고 뭐 그 어렵지 않는 말이요 또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지식이라는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의 지식이 그것이 우리가  귀로 들을 수는 있고 또 그 사람이 발표할때에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는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는 있지마는서도 그 믿음의 지식이  참으로 껍데기인지 그 믿음의 지식이 참으로 그에게 지식되어 있는 것인지 그  우리는 모릅니다. 또 사람도 믿음의 사람 하는 것도 우리는 믿음의 사람도  본다는 것이 너무 사람은 몇 꺼풀들이든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우리가 잘  못 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제일 잘 보이는 것은 믿음의 행위가 제일 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우리 스스로를 알도록 하기 위해서와 또  제삼자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현실을 조성해 가지고  우리를 시험 하십니다. 시험하셔 가지고 그 시험에서 자기도 어느 정도 진실하며  어느 정도 거짓부리라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제삼자들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린도후서 13장 몇 절입니까? 5절에, 믿음에 있는가 없는가  스스로 시험해서 확정을 지우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자기를 연구하는 것이  대단히 필요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참 자기가 희생해가면서 가르쳐 준다고 해도 자기가 자기를  연구하는 것 만침 그렇게 가르쳐 주지를 못합니다. 왜 못 가르쳐 주느냐?  사람에게는 부패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가르쳐 주면 악문을 합니다. 진주를 개와  도야지에게 던지면 밟고 물러 온다 이렇게 표시한 말씀과같이 가르쳐 주면  도리어 은반 회수로 악문하기 때문에 그 가르쳐 준다는 것이, 그 악문을 받는  것이 염려돼 그런 것이 아니라 가르쳐 주는 것이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삼자가 자기에게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마는 서도 말해주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연구해서 이모 저모로 시험해 가지고  알아야 되지 남이 알려 주지 아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세 가지, 지식 행함 또 사람이  셋에 셋이니까? 삼삼구 아홉 가지가 되겠습니다. 이 아홉 가지가 바코 되지  못하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바로 됐는가 안됐는가  자기가 자기에게 속지 아니하도록 이것을 스스로 자기를 연구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런 시험도 치르시고 저런 시험도 치르셔서 예비적  시험으로, 참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그때가 오기 전에 예비 시험으로 이런 현실  저런 현실에서 우리가 그 지식면이나 행위면이나 사람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그것을 시험해서 확실히 알고, 나는 요 정도 진실하고 요 정도 거짓되다 이만큼  허무하고 이만큼 속에 알맹이가 들었다 하는 그것을 자기가 정확히 알 수 있을  만치 현실을 진 가지고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자기를 연구하고 자기가 자기를 애끼고 사랑하고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기르고 자기를 건축해야 되지 다른 사람이 자기를 건축해 주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유익한 것은 내가 하나도 가리지 안하고 전부 다  발표했다 이렇게 말했지마는서도 그래도 거게서도 다하지 못하는 가리움이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진주를 개와 도야지에게 던지면 그렇다고 말했고  거만한 자에게 명철을 말해 주면은 나중에 복수하러 온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성경입니다.

 그런고로,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살펴야 되지 다른 사람이 살펴줄 자 없고 또  자기가 자기를 이 세상에서 단속해야 되지 뭐 사람의 안면 체면 간판 너무나  외식입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간판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인정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욕하고 정죄하는 것이 무슨 큰  것입니까? 아주 그거는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또 그것은 유익만 있지 손해가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아 그거 있어 가지고서 내가 선생님 삼아 상고해서 그것  아니면은 내가 조사 안해 볼 터이니까? 그로 인해서 한번 재조사해 봤으면  있으면 고칠 것이고 없으면 상급될 것이고 참으면 상급될 것이고. 그거는  유익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이 나를 해하는 것은 절대 해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해하는 것은 절대 해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높이고 이렇게 위해 주는 거기에는 무서운 해독이 내포돼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지식이 행함을 만들고 행함이 사람을 만듭니다. 그러기에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크심에 대한 믿음의 지식이 있는지, 그 크심으로 인해서  크심의 세력으로서 내가 받아 가진 지식이 있는지, 그러면 그 지식이 있고 없는  것은 제일 알기 쉬운 행위에 나타나겠습니다.

 자기가 그 크심이라면 지극히 크신 분이 우리 아버지신데, 전지 전능자가  주권을 가지시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시는데, 전지 전능자가 주권적으로  우리에게 대한 환경을 만드시고 개별 섭리를 하시는데 우리가 세상이 날뛰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할 것이 없다 그가  올수록이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며 아버지의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  하는 거 나타날 것뿐이지.

 우리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에 거기 능력으로서 피조되어 있는, 만들어진,  피조된 지식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이 세상의 이런 저런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이 지식을 하나님의 크심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못 한 사람이 놀래는  그런 일이 올수록 반석 위에 세운 집같이 다른 거는 다 떠내그t 갔는데 그거는  남았으니까? 영광되고 자랑되고 참 기쁠 것이지 뭐 아무런 염려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현실을 만날 때에 내 지식에 인본이 없는가 그 크심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만들어 놓은 지식이 아닌 내 주관으로 내 인본으로 만들어  놓은 그 지식이 얼마나 있는가. 그 지식은 비오고 바람불고 창수나면 다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모래가 다 떠내려가. 그것은 왜나 가치를 이룰 수 있는  그때가 오면은 자기 인간 주관으로 자율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그 지식은 스스로  자기만 속았지 다 모래위에 건축한 거와 같기 때문에 다 떠내려가 버리고 하나도  안 남습니다.

 이러니까?, 그 능력이 와 가지고서 내기에 지식을 만들었어야 되겠는데 그  지식이 내게 어느 정도 있는가 그 현실을 만날 때에는 그것을 분명히 판명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지식도 행위도 사람도. 이것을 알겠는데 그  행위에서 지식의 어떠함을 알고 행위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음의 사람이 됐다  하는 것은 행위대로 맺어지는 결과기 때문에 짐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알기 쉬운 것인데 우리가 스스로 속는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  하시느니라' 잠언 21장 2절에, 다 저 보기에는 옳고 깨끗하고 잘됐다  싶으지마는서도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은 그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이러니까? 그분 감찰에, 사람 보기에 눈가림의 그 행위뿐이고 성령이 인정해 줄,  성령이 검인을, 검인을 찍어 줄 수 있는 그런 진실이 아니면 다 헛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지금 이제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배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이 배운 것을 진실로 그 참으로 만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참으로 만드는 것이 문제요. 지금 우리 진영 교역자는 처음에는  지식으로 받을 때이기 때문에 요 지식으로 받을 때에 모두다 쾌감도 누렸고 또  만족도 누렸고 기뻐했고 그때에 힘도 얻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지식에서 멈추고 그 실상에 나아 가지 안하기 때문에 우리의 설교도 마치 그저  익숙한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 한가지입니다. 가수들 노래부르는 것 한가지고 또  묵은 배우가 연극 하는 것 한가지라. 아무런 실감없이 자기의 감정이 거기에  가하지 안하고 그저 하나의 형식만 하는 것 모양으로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교인들이 안 들을라고 합니다. 이러니까?, 이 참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줄  압니다.

 우리가 소망에 대한 믿음의 지식이 있다고 하면은 땅 위의 것을 소망할 리가  천부당 만부당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을 내가 믿음으로 지식, 그 소망이  참 소망이 나에게 만들어 준 지식이 있다고 하면은 땅 위의 것을 바울같이  분토같이 버린다는 것은 필연한 일입니다. 땅 위의 것을 소망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이번에는 교역자 목사 시취할 때에 아무래도 이것 껍데기 뭐  지식이라는 그런 것만 가지고 안 되겠고 아무래도 좀 알맹이를 살펴서 장립을  시켜야 되겠다 해서 그 스무 가지를 제가 거기에서 간추려서 적어 놨습니다.

 그런데 그는 참 네 믿음은, 나는 행함으로 보일 터이니까? 너는 믿음으로  보여라 믿음을 내눈에 보여 달라 하지마는 보여 줄 수가 있습니까? 야고보서에  말씀하신 대로.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이랬는데 우리에게 권능이 어느 정도 있는지.

 그래서, 목회자라고 하면은 그 사람이 땅의 소망을 가졌으면 아직까지 목회자  아닙니다. 땅의 소망을 가졌으면 목회자는 아닙니다. 뭐 어떤 것이든지 땅의  소망을 가겼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큰 목회를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목회자가 아닙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지극히 큰 소망을 자기가  참으로 깨달아서 이 소망을, 소망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대로의  믿음의 지식을 소망에 대한 믿음의 지식을 가졌다고 하면 그 세상 것은 분토같이  펑가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그저 하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하나 자금이나  비용으로만 삼지 거기에 대해서는 꿈에라도 소망이라는 것은 가지지 안합니다.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그분의 지극히 크심에 대한 믿음의 지식을 우리가 가졌다고 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두려운 일을 당해도 놀래지 안할 것입니다. 우리를  놀래게 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절망케 할 자가 없을 것이고 우리를  눌루고 꺾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지식으로가 아니고 지금 내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지식  믿음에 있는지 행함 믿음에 있는지 사람 믿음에 있는지 요것을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살펴서, 아 그 뭐 매일 매일 살필 것입니다. 매일 시간마다 이것은  얼마든지 시험할 수 있는 그 현실이 오기 때문에 현실 현실에서 이 살펴서  확정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아 이는, 나는 분명히 여기에 대해서 믿음의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현실에서 깨닫고 믿음의 지식을 가지는 자 될라고 애를 쓰는 거기에서,  그래 하면 우리의 현실 현실은 어떤 현실이 되겠습니까? 무엇을 하는 현실이  되겠소? 무엇을 하는 현실이 되겠습니까? ○○○목사님 그랄라고 하면은 우리는  뭣하는 현실이 되겠소? 무엇을 하는 현실이 되겠소? 싸우는 현실 됩니다. 싸우는  현실. 싸우는 현실 마구 계속 싸움이요. 계속 싸움이요. 그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이요. 나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전후 좌우에 전부요. 나는  거기에서 믿음을 가질라고 할 때에 이는 쉬지 않는 싸움에서 필연적으로  긴장되고 필연적으로 답답하니까?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필연적으로 답답하니까?  원수의 그 화살이 꽂혀 들어올 수 있는 그 옹벽에 구멍이 뚫린 그것을 회개해서  다 치료를 이렇게 봉할 수밖에 없다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 믿으면 다 믿고 이래 자꾸 믿어 나가는 것이지. 지식과  행함과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면 다 되요. 하나 되면 쭉 다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되고 요 중간에 안된 것은 처음 것 그거 지식  그것이 거짓부리라는 것이요.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이 시대가 참 우리가  진실해야 되겠는데 오늘 밤에 요한복음 10장에 대한 것을 제가 말합니다. 거게  보니까?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안한거는 다 헛일이요. 절도요 강도요.

양들이 모릅니다. 도망칩니다. 저는 날뛰면 양을 죽이고 해하기만 하지 하나도  유익 주지 못합니다. 꼭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야 꼴도 얻고 구원도 얻고  나갈 때도 꼴도 얻는데 그문에 들어가는 데는 문지기가 꼭 문을 열어 줘야 들어  갑니다. 그 문지기가 무엇입니까? 이러니까? 성신의 찬동과 성신의 동참하는  성신과 동행하는 이것이 없이는 이구원 역사에는 털끝만치도 못합니다 전부  적이요.

 그런고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고요히  좀 자기의 과거도 생각하고 지금도 생각하고 이제 좀 깨어서 진실함으로 지금  한번 바꿔봅시다.

 고요히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지극히 크심의 믿음의 지식을 가지면 염려없는 사람이 됩니다. 두려움  없는 사람이 됩니다. 염려없고 두려움 없고 그 사랑의 믿음의 지식을 가졌으면  언제나 감사와 기쁨과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원망 불안 불평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그 소망의 믿음의 지식이 있으면 땅 위에 탐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뭐 분주 하겠습니까? 분주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래도 한적한 시간을 좀 가져야 합니다. 고요하고 한적한 시간  명상할 시간 좀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되지 우리가 껍데기로 이러니까? 속에  알맹이를 모릅니다. 목회한다 하는 것이 전부 이리가 들어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이리. 이리가 들어서 목회하고 절도와 강도가 들어서 목회하기 때문에 실은 양을  죽이고 양들은 다 도망쳐 버립니다. 껍데기 뭐 수백 수천 명이 모여도 전부 이리  떼가 모인 것이요. 이리 떼가 모인 것.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원수들이 모여  가지고서 야단을 지기는 것이지 하나님의 양은 거기에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좀 한적한 시간을 가져 가지고서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가  성경에서 배워서, 성경에서 배우고 배워서 성경에 가르치는 그대로 지식해  가지고 성경에 배워 가지고, 우리가 이 세상에는 아무런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두려운 것이 없어야 됩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두려운  것이 있을 수 없소.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뭐 죽음어라든지 어떤 대정치가라든지  그 아주 포악한 자라든지 뭐 독침이라든지 어떤 것이 와도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두려움이 없는 자기가 되는 것을 자기가 알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심에서  생겨지는 담력입니다. 그 분 한 분만을 두려워하면 피조물 가운데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 한 분을 두려워해서 그분을 두려워서 그분에게 대해서  두려운 문제를 해결했는데 피조물 뭘 무엇이 우리를 어떻게 하겠소?  하나님의 지극히 광대하신 이 사랑을 우리가 성경에서 연구하고 연구하면  우리는 전체가 자유 세계요. 전체는 하나님의 사랑 전폭 속에 싸였는데 우리가  염려할 것이 뭐 있습니까? 항상 감사할 것뿐이지.

 우리가 그 소망의 믿음의 지식을 가졌으면 우리 행위는 필연적으로 전 행위가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전부가 하늘의 소망을 위해서 하지 뭐 땅의 소망을  위해서 그런 생각이 꿈에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있을 수없습니다. 이것은 다  믿는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고 해도 하늘의 소망과 멀찌가니 두고서 입술만  하는데 그래 있지 않습니다. 예수를 참 믿는 사람이면 대개는 땅의 소망은 아예  그것은 그 사람 위해서 하고 구원을 이 하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간간접의  것으로서 한 방편으로 하고 있지 거게 소망이라 하는 것은 털끝만치라도 거기  소망을 가지지 않습니다. 안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유일한 소망 유일한 이 사랑 유일한 이 크심에 대해서 우리가 자꾸  시간을 들여서 성경 말씀에서 배우고 배워서 거기에서 하나님이 가르치는 그  가르침을 따라서 내가 얻어진 지식 그게 믿음의 지식이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심을 내가 받야 가지고 지식이라. 그러기 때문에, 내 지식을 가지고 궁구하는  내 지식은 부인해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들면은 결국은 하나님에 피동되지  못하게 하는 이 방해물입니다. 그것을 완전히 저버렸을 때에 그것을 죽여 버렸을  때에 그게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 들이는 데에 크게 작용을 하고  유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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