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진리결합 영감결합 본체결합


선지자선교회 1985년 9월 15일 주후 

 

본문 : 로마서 1장 16절-17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신구약 성경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라 말은 참된 이치라는 말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참된 이치는 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도 참된 이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 무궁한 세계에 가도 진리는 변치 않습니다. 진리는 무엇이  진리인고? 사람들이 인정하고 만들어 놓은 것이 진리가 아니고 진리는 자존자  조물주 그분의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분의 뜻은 영영합니다. 그분의 뜻을  어겨서 있는 그 무엇이라도 그것은 크면 큰 파괴가 될 것이고 적으면 적은  파괴가 되지 안 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심판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나 안 맞나 그것을 가리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크든지 많든지 강하든지 다 소용 없고 다  유황불못에 던지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은 아무리 작고 적다  할지라도 그는 영원히 멸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것이 멸해지면 하나님이 멸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멸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면서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계약을 맺어 놓은 계약이면서 참된  이치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물론 감정도 좋기는 좋습니다. 사람들이 말로만 사는  사람들 있습니다. 말이면 다인 줄 알고 말 그 외에는 없는 건 줄 알아서 말만  가지고 사는 그런 사람 믿는 사람 외식이요 불쌍한 사람입니다. 또 그보다는  나은. 행동 가지고 사는 사람 있습니다. 그것도 참 수고만 하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그보다 나은 사람들은 신앙 양심에서 삽니다. 신앙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에 맞추어 바로 하려고 애쓰는 것이 신앙 양심입니다. 신앙  양심으로 살고, 그보다 나은 사람은 내가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그것도  쫓지만 하나님의 영감의 빛이 와 가지고 내 마음을 밝히 비추어 주셔서 내  마음이 영감의 비침을 받아 모든 것을 바로 사색하고 바로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참 하나님의 심판에 걸릴 것이 없이 들어맞도록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써서  영감으로의 생활이 아니면 다 그런 것을 헛된 것으로 그렇게 평가하고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 다 영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은 다 이치에 관련됐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이 말씀이 가르쳐 주는 이치를 우리가 바로  깨닫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감정이나 시원하면 좋은 줄  알지만 그 감정이라는 것은 그것은 눈먼 소경과 같은 것입니다. 부딪혀지는 대로  그거는 움직이지 감정이라 하는 것은 아무 비판력이 없는 것이 감정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 감정이 무엇이 좀 충동이  되는 그런 기분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무슨 주위나 환경에서 나타나는  무슨 많은 숫자나 움직이는 그 운동의 큰 역사나 그런 것도 사소한 것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진에도 여호와가 계시지 안하고 바람에도 계시지 안하고 불  가운데도 제시지 아니하시고 세미한 음성과 함께 계시더라 하는 말이 그것이 좀  점점 진실함에 하나님은 계신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저 공연히 아는 줄 알고 그렇게 지내가지 말고 똑똑히 내가 알아서  이치를 바로 아는 이 이치를 안 지식을, 이성이 써먹는 것인데 이 이치를 바로  안 이 이치가 어떤 변하는 현실을 만나도 이 이치가 변동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가 지식해야 됩니다. 평안할 때는 생각해 보니까 그 이치가 이러했고  역경을 만나서 생각하니까 또 그 이치의 해석이 달라지고 이라는 것은 그것은  정함이 없는 거짓된 것들입니다.

 오후에 또 이 말씀을 봉독하는 것은 아무리 증거하고도 또 시원치 않아서 또 한  번 더 증거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의라, 사람의 의라, 이 의라는 말이 있는데 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만든 의요, 또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의 의는 하나님의 의를  믿으므로 자기 의를 삼고 자기 의를 삼은 그 후에 어떤 현실을 만나도 그 의를  내어 주지 안하고 잘 간직하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는 어떤 게 의냐? 의는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되는 것이 의입니다.

그러면 지극히 큰 능력이라는 것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그 본체와 또 본체가  역사하는 영감과 영감이 썩 밖에 나와 가지고 피조물 우리들을 접할 때에 그때에  나타난 그 접하는 영감을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하고 또 그 진리가 어린  사람들에게 더욱 접하기 쉽도록 나타난 것을 가리켜서 문서 성경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본체와 그 역사인 영감과 영감이 우리에게 직접 부딪혀 접해  가지고 역사하는 그 진리와 우리가 결합될라고 애쓰는 것이 의를 실상으로 내가  만들어 가질라고 애를 쓰는 것이요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설정해 놓은 의를 그  의를 내가 빼앗기지 안하고 잘 보수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은 벌써 연결이 돼 가지고 있고 우리의 심신은 법적으로는 연결이 돼  가지고 있고, 또 심판적으로는 연결이 돼 가지고 있고, 약속적으로는 연결이 돼  가지고 있지만 실지는 연결이 안 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신에게는 연결이  안 돼 가지고 있습니다. 연결이 안 돼 가지고 있는데 그 연결이 단번에 다 되는  것이 아니고 한 현실 한 현실에서 심신의 기능의 그 분자들이, 심신의 기능의  분자. 심신의 기능의 그 세포적 요소들이 그것이 한 현실 한 현실에서 연결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심신의 기능이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많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적게 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연결이  하나도 안 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연결이 많이 된 사람은 지극히  큰 능력이 그에게 많이 역사 할 수가 있고 연결이 하나도 안 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능력이 역사 할 수도 없도록 안타까운 가운데에서 늘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하는 이 믿음을,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말은 적은 믿음이 자꾸 연습을 하고 노력을 함으로 큰  믿음이 돼 간다 그말입니다. 믿음은 자체가 성장돼 가지고 믿음이 커 가는 것이  아니고 믿음은 한 믿음의 세포가 하나 둘 쌓여 가지고 그렇게 큰 믿음과 많은  믿음이 됩니다. 그것을 말해서 자라가는 믿음이라 이라는 것은 자체가 자라가는  것이 아니고 점점 집합돼 가지고 많아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적립되는  것이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거창서 그때 거기에 대해서 비유를 내가 써서 뭘 말했는데 그때 내가 무슨  비유를 써서 말했던고 모르겠습니다. 아. 네, 장기, 장기는 장기짝 있지  않습니까? 장기짝 하나에 둘 세 개 네 개 포개면 자꾸 높아지는 거 아닙니까?  장기짝 포개지는 거와같이 그렇게 믿음은 자라가는 것이고 커져가는 것이고. 또  뭐 하나 말했습니까? 아, 소나무 한 개가, 조그만한 씨를 심었는데 자라서 낙락  장송이 되는 거와 같은 그렇게 자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으로 그때  비유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뒤에 묻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다 해결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 가지가 합해 가지고 믿음이 되면 지극히 큰 역사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신구약 이 계약을 선포 해  놓으신 하나님이 참되신 분인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참되시매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도 참되다 인정하고 이 말씀대로 실행을 합니다. 이  말씀대로 실행을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우리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순종이 있고. 그 다음에 이라면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이루어 준다 하는 것을  의심하지 안하고 믿기만 해서 이 셋이 결합이 될 때에는 큰 능력이 역사한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과 그 말씀을 인정하는고로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을 합니다. 실행을 하면 어떻게 해서 실행을 하면서 믿기만 하면 큰 능력이  나오는가 하면 실행을 하면서. 실행을 하면서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자기 실행하는 그 모든 소망을 달성시켜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인데, 달성시키는  것은 자기가 실행을 한다고 해서 자기 실행하는 힘으로 가지고는 절대 달성을 못  합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달성되는 것을 욕망하는 그런 것은 그것은  다 영원한 것들이요 영생의 것들이요 불멸의 것들이요 완전의 것들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다 담대히 통과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불완전한 우리  사랑으로서는 아무리 뭉쳐 봤자 불완전은 불완전이고 유한은 유한이지 유한이  많다고 해서 무한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으로서는 영생에 속한  것과 하늘에 속한 것을 이루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계약을 우리가  지켜서 행하면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그 능력이 와 가지고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믿으면 그 능력이 오고 믿지 않으면 그 능력이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베드로가 믿으니까 물 위로 걸어가게 됐고 그만 의심하니까,  믿음을 저버려 버리니까 그 능력은 도로 돌아가 버리고 저는 물 속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수 없는 그 지극히 큰 능력과 우리와의 결합되는  그것을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예를 들어 가지고 하나 인용해 가지고 볼 수  없는 그 결합을 볼 수 있는 것으로 표시한 것이 다 표적입니다. 성경에  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볼 수 없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는 그런 걸 가지고 볼 수  없는 그 흔적이 나타났다 그래서 표적이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기가 실행을 하면서. 실행을 하면서 지극히 큰 능력 이 나를  돕는다 하는 것을 믿을 때에. 믿을 때 그때에 뭐이 되는고 하니 믿을 때에  그때에 자기가 진리와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와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요거 좀 잘못 생각하면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어떤 한 진리를  내가 그 진리를 잘 알고 있고. 또 그 진리를 버리지 안 하고 그 진리와 나와  함께 하려고, 내가 그 진리의 사람이 될라고, 또 그 영감의 사람이 될라고 또  하나님과 결합된 사람이 될라고 자기가 지식을 가지고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해도. 한다고 해도 잘 들어야 됩니다. 한다고 해도 자기가 그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과의 결합이 되는 것 아닙니다. 현실에서 그렇게 내가 지킬 때에, 그렇게  지킬 때에 사람의 힘으로 지킬 수 없는 그런 단계가 옵니다. 지킬 수 없는  단계가.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사람이 지킬 수 없는 그런 단계가 옵니다. 그런  단계가 오는 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처녀들이 등불 들고  기다리는데 밤중에 신랑이 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밤중이라 말은  어두움이 최고로 강한 세력을 가지고 나타나는 그때가 밤중인 것입니다.

평소에는 자기가 그 진리대로 지켜서 행했지만 진리대로 지켜서 행했다고 그  진리와 자기와 결합되는 것은 아니고. 잘 들어야 됩니다. 결합되는 건 아니고  진리를 지키고, 내가 진리를 지켜서 행하는데 진리를 지켜 행할 때에 차차차차  진리를 지키기가 어려워집니다. 진리를 지키기가 어려워집니다. 어려워지는데,  나중에는 얼마나 어려워지느냐 하면 그 어려워지는 것이 자기냐 진리냐, 자기냐  진리냐, 자기를 취하느냐 진리를 취하느냐 둘 중에 하나만 취하지 둘 다 취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이 올 때를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취할라면 자기를 내놔야 되겠고, 자기를.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그 자기를 생각하려고 하면 진리를 내놔야 되고 둘 중에 하나를 취할 수 있는  그런 단계가 오는 것이 그것이 최고로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고 말을 했고, 그 밤중을 통해서 진리와 자기와의 연결이 되느냐. 또  자기가 자기와의 연결이 되느냐, 진리와 자기와 연결이 되느냐 자기라는 사람이  자기 속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 자기가 있는데 옛사람 자기와 연결이  되느냐? 그러면 자기가 자기로 연결 이 되어서 자기가 자기하고 합해 가지고  자기 독립적인 자기가 되느냐, 독립적인 자기가 되느냐, 요거 잘 안 들으면  모릅니다. 독립적인 자기가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이 진리를 잡고 놓지  않기 위해서 진리를 잡고 놓치 안하려고 하니까 네가 진리를 안 놓으면 네  소유를 다 뺏든다 하는 어려움이 옵니다.

 이북에서는 진리를 안 내어 놓으려 하다가 소유를 다 뺏겨서 아주 토지 배당을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일 년 내내 가야 쌀 한 되도 나오지 안 할 그런 땅만  딱 주면서 요거 네가 예수 믿는 진리를 내놓지 안하면 요게 네게 할당된 땅이다  하고 줬는데. 그 땅은 뭐 일 년 내내 가 봐야 쌀 한 되도 나올 수 없는 그런  땅을 그렇게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벌써 '매매등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내가 아무래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살아야 되는  데에는 부득이 네가 지금이라도 예수 믿는 이 진리를 내놓으면 지금 배당 중에는  제일 옥토 좋은 땅 그것을 너에게 배정으로 줄터이니까 네가 이거 할래?  이러니까 대개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육의 모든 생명이나 그런 것을 내놓기가  아깝고 그거 내놓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다 진리를 양보하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 가지고 토지 개혁할 때에 그 좋은 땅을 다 배당받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  때에 진리를 내놓지 안할라 하는 사람들은 아주 개혁 때에 아무짝도 쓰지 못할  박토를 받고 진리를 잡고 그래 가지고 그 때문에 진리를 잡고 그래 가지고 굶어  죽은 사람들도 있고. 죽어서 그만 천국 간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은 죽어서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주고 이 진리를 잡은 것입니다. 다 주고 이 진리를  잡았습니다.

 평소에는 모두 다 이 진리를 잡고 있었지만 등 따시고 배부르고 먹고 입고 살고  뭐 얼마든지 살고 남은 거 가지고 진리와 결합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이런  마당이니까 다 진리를 잡고 있었지만 그때는 진리와 결합되는 것 아닙니다.

그때는 자기를 부인해야 진리를 인정하고. 자기에게 속하느냐 진리에게  속하느냐, 자기가 스스로 독립을 하느냐 그 분에게 소속이 되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그런 단계에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의 단계가 오기 전에는 여기에 소속이 돼서 영생으로  바꿔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으로 바꿔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행하게 되면, 이 진리와 결합이 되면 큰 능력이 오는데  그러면 이 진리 결합이 될라고 할 때에는 천국 비유에 보화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밭을 삼과 같다.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진주를  삼과 같다. 이것이 천국 비유입니다. 누구든지 다 이 통과를 다 합니다. 작든지  크든지, 그래서 그런 단계에 있을 때에, 그런 단계에 있을 때에 이제 자기가  가진 거 뭐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가정이나 모든 것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역사하는 역사와 역사가 우리에게 부딪치신 그 진리는 모든 것보다 크다 하는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그 셋 능력과 결합이 되는 데에는, 결합되는 데에는  결합되기 전에 모든 것을 부인해야 되는, 부인해야 되는 그런 순서가 오게 되니  그 순서가 오는 것이 그것이 밤중인데. 그런 순서가 오게 뒬 때에 그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셋 능력과 결합이 되는 것은 결합이 되는 것은 뭣 가지고만 할  수 있습니까? 뭣 가지고만 할 수 있습니까? 딴거 가지고 할 수 없습니다.

의지로도 안 되고 결심으로도 안 됩니다. 다만 그분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만 됩니다. 믿는 믿음으로,   믿는 믿음으로만 되는데, 그때에 의심치 안하고 믿으면 다 그대로 되리라. 산을  바다에 옮기우라 할지라도 그대로 되리라. 그런 것도 역사에 없는 일입니다.

역사에 없는 일이오. 우리가 뭐 그 시대 시대마다 다 모두 다 나라의 국권을  뺏기고 남의 나라에 점령을 당해서 식민지가 되고 하는 그럴 때에 그 참혹한  박해라 하는 것은 참 심한 것이지만 그런 일들은 다 역사에 있는 일들입니다.

역사에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희귀한 일은 아니라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그렇게 희귀한 일은 아니지만, 산을 바다에 손대지 안하고  옮기어 던지우라 하는 그런 것은 역사에 없는. 그런 거 요량하면 몇 천 배 몇 만  배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네가 뽕나무를 명하여 뽑혀서 바다에 심기우라 할  것이요 그대로 순종하여 이루어지리라 하는 그런 것은 뭐 어떤 나라에서 그  민족을, 그 국가를 점령해 가지고 자주 국가를 식민지로 만들라 할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죽임을 당하고 거기서 어려운 일이 있는데 그 어려운 일  있을 때 그런 어려운 일은 그래도 역사에 뭐 한 차례 두 차례 아니라 여러 수십  차례 수백 차례 지나간 일이지만 뽕나무를 옮겨서 손 대지 안하고 바다에  심기우라 하는 그런 일은 역사에 없는, 그런 거 요량하면 심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일이라도 네가 믿기만 하면 된다 이랬습니다. 믿기만 하면 된다.

 되는데, 이러니까 그때에 이 밤중이 되어질 때에 이 셋 능력과 네가 결합이  될라고 하면 이제까지 인연을 가졌던, 땅에 속한 인연을 가졌던 이 모든 인연을  끊어야 여기에 결합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것을 끊고 여기 결합 이 되어지면  결합이 되기만 되면 지극히 큰 능력과 연결됐기 때문에 그 모든 피조물에게는  해를 받지 안하고 이제 그 능력이 와 가지고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역사를 한다  그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능력과. 이 지극히 큰 이 셋 능력과 자기의 언행 심사의 그 모든  행동. 다시 말하면 자기가 이 셋과 연결을 가질라고 하면 이제까지 재래에  가졌던 모든 연결을 모든 연결을 다 부인해야 가지게 되는 것이지 부인하기  전에는 연결이 안 되고 항상 거기에 연결돼 가지고 있고 이 셋 능력과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연결될라고 할 때에는 재래의 연결됐던 이것을  부인해야 연결이 되는데, 부인해야 연결이 되는데 부인하고 연결될 수 있는 그  힘은 무슨 힘인가? 그거는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으로만 됩니다. 부인하고  연결되는 거는 믿음의 힘으로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의심치 안하고, 죽어도 의심치 안하고 불에 들어가도 의심치  안하고 어찌 됐든간에 내가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승리와 성공을  주신다는 것을 자기가 의심 없이 믿으면서 믿을 때에 온 세상이 달라들어 가지고  별별 유혹이나 별별 탄압이나 별별 박해가 와서 있을지라도 이 연결은 영원한  연결이기 때문에 세상은 아무 때 떠나도 떠날 터이니까 뭐 세상에서 다 뺏기고  떠나도 이 연결만 가지면 나는 성공이다 하는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연결을 가지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이 사실을 믿기 때문에 이 능력과  연결되면 죽음이 없다 금생과 내세에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될 때에 그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이요 이는 지극히 큰 능력과 연결됐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

이는 슬픔의 고통이 없는 것이다 하는 그것을 믿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안하고 이 연결을, 이 셋 연결을 예수님이 연결시켜 줬는데 이 연결을 끊지 않기  위해서 어떤 고문과 고형의 어떤 게 있어도 이 연결과 끊어지는 것은 죽음이나  어떤 거보다도 더 손해되기 때문에 이 연결과 끊어지는 것은 죽음보다 크기  때문에 이 연결과 끊어지지 안 하고 이 연결과 연결이 된 것은 없어질  생명보다도 낫고, 두고 갈 세상보다도 낫고, 모든 것보다 이런 것보다 평가가  높은 평가다 하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졌을 때에, 그때에 세상은 혹은 이것을  내어 놓으라고 해 가지고 온갖 우리에게 시험을 합니다. 시험을 하나 그  시험하는 것이 하나님이 한계를 정한, 주님이 한정한 시험이지 한정 무제한의  시험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시험을 해도 이것을 내주지 안하고  끊지 안하면 안 하는 것으로 그 시간을 통과해 버렸습니다. 통과하면 어찌  되느냐? 통과하면 그만치 지극히 큰 능력과 나와의 결합이 됐습니다. 결합이  됐으니까 결합이 됐으니 그 결합된 그 사유로 통해서 그 시간 그 일을 통해서 큰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다니엘이 그렇게 사자구덩이 들어가 가지고 죽지 안하고 거기서 나타난  것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나타난 것이나 또 우리가 양은 다르지만 우리가  믿을 때에 그 능력이 와서 내게 뭐 치료하지 못 할 불치병이 치료돼 나타난  것이나 또 내가 믿을 때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그런 그 능력이 와 가지고  기적적으로 나타나서 이룬 것이나 그런 것을 우리가 종종 봅니다. 이번에도  장생골 집회 때문에 큰 낭파 될 일들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암만 봐도 이거는  하나님의 기적이지 사람이 한 거 아니라고 그렇게, 뚜렷한, 사람은 도무지 할 수  없는 것인데 기적으로 나타난 그 기적이 기록돼 나왔는데 그것이 열 몇 가진가  기록돼 나왔다고 말 들었습니다. 또 자기가 불치병이 나은 것이 그것이 한  육십여 가지가 기록돼 나왔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렇게 내가 이 결합을 가치 있는 줄 인정하고 믿기 때문에 이 결합을  끊지 안하려고 하기 위해서 모든 걸 내어 놨는데 내어 놨는데 내어놓은 것이  끊어지지 안하고 내어놓은 것은 그대로 있고 결합만 된 사람은 결합을 통해서  내어 놨는데 내어 놨는데, 그 사람들이 말이요, 이 세상이 내어 놨는데 그걸  없애지도 안하고 결합만 된 그런 사건들은 이 결합을 통해서 내어 놨던 그것이  백 배나 이렇게 크게 된 그런 것들이 많이 있어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백 배나 크게 된 것을 우리가 본 일이 않고 모든 성경은 다 그런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라고 내가 이 결합을 끊지 않기 위해서 모든 걸 내어 놨는데 그거 내어놓은  것이 다 그만 끝이 나 버려서 그만 없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없어지는 것은 내나  내어 놨을 때에 그것이 벌써 기간이 끝나기로 돼 가지고 있는 기간은 내놓음으로  끝나 버렸으니까, 만일 그런 순서를 통과치 안 했으면 이미 내놓을 시기가  됐으니까 죽을 때가 돼 가지고 죽으면 죽음으로서 그만, 그것으로 그만 되고  마는 건데. 이거 셋을 내놓지 않기 위해 이 셋 때문에 생명을 내 놨으면 내놔서,  죽기는 죽어도 이미 죽을 때가 돼서 죽었는데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의 자기의  보배로서 그에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있고 하나는 내가 이래 하면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이 일을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의심하지 안하면 이루어 주신다.

의심하지 안하고 믿으면 이루어 주신다. 믿으면 무엇이 되기 때문에 이루어  주시나? 믿으면 그 믿음을 통해서 이제 이 셋과 자기는 연결이 돼서 셋의 것이  되고, 진리의 것이 되고, 과거에는 죄악과 악령과 사망의 것이 됐는데 거기서  완전히 해탈돼서 해방돼 가지고 이 셋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진리와 결합된다는 것이 내 마음으로 결합되는 것  아니고 진리로 결합되는 것은 내가 평소에 나는 진리와 결합이 됐다. 영감대로  살겠다. 결합했다. 하나님과 나와는 하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 가지고, 말하는  거 가지고, 자기가 또 믿는다는 그 믿는 거 가지고 되는 거 아닙니다. 반드시  그거는 현실을 통해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통하여서만. 현실을 만났을  때에는, 현실을 만났을 때에는 반드시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 중에 어느 것이냐  하는 그것이 확실히 판정나기 때문에, 네가 어디 속했으며 네가 어느 것을  취하며 네가 어느 것의 것이 될라냐? 어느 것의 것이 될라냐, 어느 것을  잡을라냐, 어느 것을 가치로 알아서 어디 속할라냐? 이것이 현실에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결정이 될 때 그때에 이것도 잡고 둘 다, 이것도 잡고 저것도  잡고 둘 다 잡을 수 있는 그럴 때에는 여기에 속하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이거냐 이거냐 둘 중에 어느 것이냐 하는 이런 단계가 오는 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고 말하고, 어려울 때라고 말하고, 고문 고형의 모든 박해의 때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럴 때에 이거냐 저거냐 둘을 가질 수 없는 그런 현실에서만  이걸 부인하면 이것의 것이 되고 이것을 부인하면 이것의 것이 되고 오른쪽 것을  부인하고 이 것의 것이 됐으면 둘째 사망으로 영원한 사망이 돼 버렸고, 이제 그  현실에서 왼쪽 것을 부인하고 오른쪽 것이 돼 버렸으면 그거는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 믿음이 없으면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무엇이든지 이 산을 옮기어 바다에 옮기어져라  그렇게 말을 하고 네 한 말에 대해서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하는 말씀이 그 말씀인 것입니다. 이래서 그것을  해석해 알려 주기 위해서 실물 가지고 이렇게 여러 번 가르쳐서 우리에게 모든  표적이라 하는 것은 볼 수 없는 속에 감추어 있는 것을 겉으머리로 내어 나타내  보인 것이 표적이라는 말입니다. 나타난 흔적이라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와 나와 이 결합이 되는 것이, 내가 진리와 결합이  단번에 다 되는 게 아니고 내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현실에 해당된 내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그  현실에 해당된 그 기능은 그때가 승패를 결정하는 이제 참전자입니다. 전쟁에  참전한 자입니다. 참전한 자인데 그때에 내가 패전하느냐 승리하느냐 하는 것이  그때에 결정이 되는 것인데, 그때에 해당된, 참전된 내 심신의 기능은 그 심신의  기능이 이 셋과 결합이 되는 데에는 반드시 이제까지의 관계된 그 관계가  끊어져야 여기 결합되고. 그러면 여기에 법적으로 결합이 됐지만 이것을 끊지  못하면 이걸 끊어야 이 결합이 돼지고 둘 중에 어느 결합이든지 한 결합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들인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자꾸 이렇게  이거냐 저거냐 이렇게 소속 결정되는 이것이 영원한 사망도 되고 영생도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와 결합되는 것도 그 현실에서만 결합이 될 수 있고 또  영감과 결합되는 것도 현실에서만 결합이 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본체와  결합되는 것도 현실에서만 결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와 결합된다는 것은 벌써 하나님이 셋으로 역사했는데 진리가  있고, 진리가 있고 영감이 있고 이거 다 따로 떼 놓고 남은 것은 하나님  본체뿐인데 이 본체와 결합하는 데는 진리와 결합하는 것도 아니고 영감과  결합하는 것도 아니고 이 본체와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본체와 결합되는 것은  어떤 것이 본체와 결합되는 것이냐 하면 하나님의 본체 그 형상대로 내가 닮아서  그 본체의 모형이 되는 것이 그것이 그분과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모형이 되는 거, 그러면 그분에게 속했고 그분에게 피동되고 하는 그분의  모형이 되는 것이 그것이 본체 결합이니까 본체 결합 그 모형을 내가 버리지  안하고 그 모형이 완성이 되어지는, 완성 통과가 되는 그 현실. 영감과 결합의  완성이 되는 통과의 그 현실, 진리와 결합의 완성아 되는 통과의 그 현실. 그  현실에는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것의 어려움을 가리켜 십자가라 말한  것입니다. 그것의 어려움을 가리켜서 십자가라 말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었는데 사흘만에 부활하셨는데, 이 결합할 때는 인제 결합할 때는 다  죽습니다. 결합할 때는 인제 죽었다. 결합할 때는 다 내놓고 다 죽었는데  결합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에서 살아 나타나는 것도 있고 아주  죽을 때가 된 것은 결합됨으로 죽었는데 다시 부활 할 때 나타나 가지고  영생하는 것도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거는 믿음이 없으면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렇게 하신다 는 이  사실을 의심 없이 인정하기를 자기 생명을 버리기까지 의심 없이 인정하는 거,  인정한다고 하지만 자기에게 천 원짜리 인정이 있고 만 원짜리 인정이 있고 일억  짜리 인정이 있고 있겠습니다. 자기는, 뭐 자기 돈이 만일 한 천만 원 재산이  있다면 그저 만 원 손해 가도 나는 인정한다 이렇지만, 나중에 천만 원이 홀딱  다 없어질 때에는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믿음으로 자라나간다. 그게 처음에는 안 되고 실패 실패하여도 한  번 실패하고 두 번째는 또 힘이 강하고 세 번 실패하고 네번째는 좀 강하고 이래  가지고 점점 자라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달라들어서 열심히 쉬지 않고 자꾸  연습을 해서 해 나가야 자기가 믿음이 의심으로 이렇게 타락되는 꼴을 한 번  봤으면 또 달라들고, 예를 들어 하루 동안에 열 번 타락하고 달라든 사람 은  하루가 지나가기 전에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만 그 일하는 것을 일 년에 한 번씩  십 년에 한 번씩 하는 자는 자기 평생해도 그거다 한 번 연단해서 옳은 거 가져  보지도 못하고 일생은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은 힘쓰는 자라야 성공하지 그렇지 않으면 성공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진리에 결합되는 것이나 영감에 결합되는 것이나 본체에  결합되는 것은 현실에서만 되어진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하고,  현실에서만 되어지는데 결합이 될 때에는 그때에는 그것이 바로 십자가다.

결합이 될 때에는 십자가인데, 결합될라 할 때에는 둘 중에 어느 것은 하나는  버리고 하나를 택해야 되지 둘 다 택할 수 없는 것이 그때 나옵니다. 평소에는  둘 다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세상 것도 가지고 이 셋도 가지고 양쪽을  다 가지고 이렇게 할 수 있었지만 그때는 되는 게 아니라. 그런데 나중에  마지막에 이거냐 이거냐? 어느 둘 중에 하나를 취해라 하는 그런 단계가 올  그때가 뭐냐 하면 이것을 '이거 죽자' 하고 땅의 소망을 다 버리고 이 셋 결합을  가질라고 하기 위했으니까 이제 죽었는데, 하기 위해서 죽었는데, 죽었는데 그  다음에 통과하고 보니까 다니엘처럼 살아나오는 것도 있고, 죽을 그런 만기가  됐으면 그때 이미 죽어서 썩어지고 말 것이 진리의 것이 되고 마니까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돼겼고,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돼졌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이 됐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바꾸어지게 됐고, 만일 기간이 남아  있으면 그것도 됐고 남아 있는 것은 또 그대로 세상에 남아 있으면서 다시 또  다른 훈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은 아니지만 김형봉 목사님에게 그때에 제가 한 번 집회에  참석하니까 믿음을 지킬라고 할 때에 그때에 그 어렵다는 것을 그런 말로  비유하는 말 내가 들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는 그걸 알기는 알면서도 그렇게는  몰랐는데, 매미가 땅 속에 있는 굼벵이인데 굼벵이가 땅 속에서만 살지 공중에  나오면 죽는 굼벵이가 땅 속을 버리고 공중에 날아다니면서 살 수 있는 매미로  부화가 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도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이  통과해야지 어려움 통과하기 전에는 그렇게 변화를 가지지 못한다. 그라면서 그  굼벵이가 때가 되면 올라와 가지고 갑갑해서 땅 속에 못 살아서 기어 올라와  가지고 나무에 올라가 가지고 나무에 딱 들어붙는데. 딱 들어붙을 때는 발톱이  똑 바늘같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딱 들어붙어 꽉 찍어 버리면 그만 찍어  들어붙어 딱 들어붙었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 거기 있으니까 시원하니까  시원하니까 좀 들어붙어 있으니까 처음에는 시원했지만 나중에 차차차차 헷볕이  쪼우니까 그만 뜨거워서 견디지를 못하고 갑갑해서 견디지를 못하고 거기서 기어  내려가서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싶지만 벌써 발이 딱 찍어 버렸는데 발이  굳어 버리니까 발이 굳어졌으니까 빼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하고 요래 딱  붙어 가지고 있는데 얼마나 거석했든지 되게 수분이 마르고 마르고 하니까 그만  굼벵이 등어리가 열 십자로 탁 갈라져 가지고 이래 갈라져 가지고 이럴 때에는  뭐 그때는 굼벵이는 그저 생명이 있으니까 사는 것이지 그 이상 더 어려움이  없는 죽을 지경으로 이제 안 죽으니까 살아 있는 것이지 뭐 굼벵이가 견딜 만한  그런 거는 아니라 그 말이오. 아니고 그래 가지고 나중에 열 십자로 톡  갈라지면, 갈라지면 껍데기는 빠짝 말라서 따글따글해지고 빠짝 말라서  따글따글해지는 그 속에서 굼벵이가 그 동안에 변화가 돼 가지고 매미가  되어진다.

 그러면 나중에 나중에 매미가 되고 난 다음에는 이제 갈라지는 그런 고비를  지나고 나면 제가 그 안에 들었으니까 시원하고, 좀 갑갑하고 하니까 더 좀  시원한 데로 나오면 싶으고 벌써 껍데기는 열 십자로 탁 갈라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동을 치니까 그 갈라지는 껍데기를 벗고 나올 수가 있어 가지고 나와  가지고 날아다니면 매미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변화가 되는 데에는 이와같은 그 어려움의 연단의 그 어려움을 겪어서  통과해 가지고 되는 것이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그 말로  비유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두 가지가 있으면 한 가지만 있으면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이루어 주신다 하는 걸 오전에 말했습니다. 오전에 우리가 '아. 나는, 나는 이  성질이 급해서 못 견디겠네. 성질이 급한 거 그걸 고칠라고 자기가 마음을 먹고  고치기를 원하고 고칠라고 하나님 앞에서 고치는 노력만 하면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 노력하면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 말했습니다. 그러면 성질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또 자기 모든 나쁜 행동을 다 자기가 고칠라고 애만 쓰고 이렇게 하면  마지막에 고쳐진다, 고쳐지는 것은 저거 힘으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고쳐 준다. 고쳐 준 것이 인간적인 인간 평선 이하의 것 같으면 인간  이 되지만 그것이 고쳐져 가지고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제한된 것이 무제한의 것으로 이와같이 성화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하는 것인데  그때에 믿으면 한다.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고쳐 주신다 하는 그것을 많이 말을  했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고쳐 주신다 하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되는데, 그 능력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안하고 굼벵이가 덩어리가  틔는 거와같은 그런 어려움의 그 절정을 당할 때에, 자기는 그 믿음을 가질 수가  없고 그 믿음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때에 그때에 그 믿음을 가지기만 하면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변화를 시켜 준다. 그러면 그때에 그 어려운 고난의 그 믿음을  가지고 유지하게 되는 그것이 뭐냐? 그 믿음이 네게서 난 게 아니라 인본에서 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로 하나님께서 그럴 수 있는 그 믿음을 줘 가지고 그때  그렇게 그 믿음을 유지해 가지고 성화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믿음 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을 불로 연단한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믿음을 지키다가  그 믿음을 보존하기가 어렵고 어려워서 나중에 그 믿음이 없어지고 맙니다.

없어지고 만데, 그 믿음이 어떻게 고문과 고형이 와도, 어떤 환난이 와도. 어떤  장기간이 와도 어떻게 와도 그 믿음이 없어지지 안하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변화되는 그 과정에 있어서는 그것이  십자가의 어려움인데. 십자가의 어려움이니 마치 비유컨대는 굼벵이가 등 터져  가지고야. 그런 땡볕에 쪼이는 그 어려움을 통과해 가지고야 부화가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변화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변화되고, 사망의 것이 영생의 것으로 변화가 되는 데에는 네가 참고  견디기 어려운, 어려운 밤중의 단계를 만나게 된다. 밤중의 단계를 만나게 되고,  만나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능력이 오면 너를 다 변화시켜 주는 것이니까  참고 인내해라. 그러기 때문에 인내에 온전함을 이루라. 어떤 일이 와도 참고  계속한다.

 참고 계속하는 데 온전함을 이루어서 뭐 죽어도 참고 고문과 고형이 와도 참고  어떻게 해도 참고하는 그것은 뭐냐 하면 승리한 믿음인데,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다 선물로 주어서 된 것이다. 그거는 불신자의 의지나 각오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믿는 자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큰  믿음, 어떤 사람은 작은 믿음 줘 가지고 큰 믿음을 받은 사람은 큰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건데. 그러니까 네가 하는 노력은 네게 있는 것을 다 들여서 노력해라.

다 들여서 노력하면, 그와 연결돼 가지고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분량을 정한대로 어떤 자에게는 금그릇도 되고 어떤 자에게는 나무그릇도 되고  어떤 자는 질그릇도 되고 어떤 자는 은그릇도 되고 그렇게 귀하게 쓸 그릇  천하게 쓸 그릇, 그렇게 각각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그렇게 되어 지는 것이니까  그런 애로의 순서를 겪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그말은 자기  부인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할라 하면 자기 부인하는 것이 쉽지  안한 그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무슨 어려움이냐? 주님이 나를  대속할 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과 같은 그런 어려 움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어 인정하려고 하는 데에는 너도 다 내놓고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된다 그 말이오.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뭘 만드는 그 하니 믿음은 의를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의를 만들라고 합니다. 믿음이 의를 만드는데 믿음은 말씀과 결합을 해서  살라고, 말씀과 결합해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해 살라고 이렇게 하는 것이  믿음인데, 그라다가 그 믿음이 효력을 나타낼 때는 언제 효력을 나타내느냐?  내가 말씀대로 순종하고, 순종 계속을 하면서. 순종하면서 내가 의심치 안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셔  성공을, 승리를 이루어 주신다 하는 것을 믿고 의심치 안하면 이루어진다.

 그러면, 의심치 안하면 그 어려울 때에 무슨 그때에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  하면, 그때 어려우니까 자기가 말씀 순종하는 것을 계속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이 옵니다. 말씀 순종을 계속하지 못할 그런 어려움이 올 때에 그때에  말씀대로 순종하는 걸 계속할라 하면 물질에 손해가 될 때 도 있고 직장을 뺏길  때도 있고 가정에 파탄이 일 때도 있고 자기의 몸이 감옥에 갇히는 것도 있고  자기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도 있고, 그러나 네가 하나님은 신실하시니 절대 그  일에 네가 손해 보지 안할 터이니까 끝까지 믿고 참고 견뎌서 인내에 온전함을  이루라. 그러면 네가 이 셋과 결합이 돼서 하나님의 능력이 너에게 왔을 때에는  인간이 아니고 초자연의 능력이 나타나서 너희들에게 백 배도 되고 여러 배도  되고, 그러면 이런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데는 여러 수십 수백 단계가 있는데,  물질같은 그런 거는 첫 단계인데. 그런 거는 그렇게 어려움이 없습니다. 어려운  시험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안하고 그런 거는 쪼그매만 연결돼도  되기 때문에 자기가 물질에 손해를 보고 물질적인 면에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다  바치면 물질면에 관련된 물질면의 모든 생애를 다. 내 힘이나 이 세상을  부인하고 주님의 능력을 바랄라고 하면 물질면으로 활동하는 그 모든 것을  주님에게 순종 활동을 하려고 내가 하면, 순종 활동을 하려고 하면 이 세상과  인연 가지고 있는 활동은 다 박살이 나야 되니까 세상과 인연 가진 물질 관계의  활동이 다 박살이 나도 이 인연을 버리지 안했을 때에 이 세상과의 관련은  박살이 나 버렸으니까 망한 사람이겠습니다. 박살이 나버렸는데 이와의  물질면으로 관계 가졌으니까 백 배나 푹 솟아 버린다 말이오. 백 배나 푹 솟아.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선진들이 이에 대하여 증거를 얻었느니라. 모든 믿는 사람들이 뭣  때문에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다' 해 가지고 그런 증거를  받았으니까 믿고 믿고 점점 더 믿는 사람돼지느냐 하면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해서 받은 게 있기 때문에, 체험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믿고 믿어 봐야 될 터인데 믿음에 나아가지를 못했기  때문에 항상 그저 벌벌 떨기만 떨고 있지, 한 번도. 찰싹거리는 그 물만 보고  떨지 저 건너 언덕을 건너갈라 하는 사람들이 찰싹거리는 물을 보고 그만 놀래서  깜짝깜짝 놀래니까 거기 가지를 못하게 된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믿음은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믿음은 의를  만드는 그 과정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의를 만드는 과정인데. 우리의 믿음은  의를 만드는 과정인데, 의를 만들다니? 믿음이 뭔데? 믿음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진리와 결합이 되고 그 다음에는 영감에 결합이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본체와 결합이 되는 그것이 이제.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그게 됩니다.

믿음으로 그게 돼서 결합이 되면 결합된 거, 변치 안 할 것으로 완으로 완료로  이제 끝마친 것으로써 결합된 것을 가리켜서 많든지 크든지 그것을 의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의를 만드는 과정의 방편이요, 의는 이  세 능력과 완전히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우주가 불타도 저게서 타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가 타지  안한 것은 그가 아직까지 불에 타 죽을 때가 안 됐고 살아 남아 있는 생명의  기간이 남아 있는데 그들 이 불에 집어넣어 봤자 타지는 안했습니다.

 오늘도 그러합니다. 오늘도 믿음 지키는 자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됐으면  부르실 때가 됐으면 그때 그것으로서 의를 얻어 가지고 가는 것이 그 때가  남았으면 자꾸 기적만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전부가 기적입니다. 기적이. 다 안 된다고 생각하고 했는데 사람 보기에는 안  되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와 또 되고 또 되고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저  사람은 뭐인지 저 사람은 뭐 죽는다 해도 그 것도 다른 사람들은 큰 낭파다  했는데 가보니까 그것도 아무것도 없고, 또 무슨 절단이다 했는데 그것도 뭐  아무것도 없고 그렇기에 참 믿는 사람은 오늘은 전부 기적과 축복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사람은 보지만 보지 않는 사람은 제가 아는  대로의 방편이 아니고 돼 가지고 있으니까 그거는 아는 방편대로 해석을 하니까  뭐 그래 되면 아. 그 사람 무슨 도둑질을 했나 재산 은익를 해놨다가 어찌됐나.

뭐 누구 때문이다. 아무 때문에도 된 것 아니요. 전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지.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가서 자꾸 생각해야 되지 듣기만 해 가지고는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것은 양심을 가지고 생각해야  알게 되지 이성으로 생각해 가지고는 모르고, 이성 가지고 생각하는 이성 그거는  둔한 것입니다. 우리 이성이라 하는 것은 둔하요. 그러기 때문에 이성적  생활이라고 하면, 뭐 자기네들은 과학적 생활이라 하는데 과학적 생활은 이성적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이성적 생활이고 과학은 양심 생활은 아닌 것입니다. 양심  생활은 벌써 과학을 초월한 것입니다. 양심 생활과 그 다음에는 영감 생활로  나아가서 마지막에는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것에게까지 우리는  성장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이 셋과 결합을 시키는 과정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와 영감과 본체와 결합하는 그 과정의 역사를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하는데, 결합은 언제 되는고 하니 현실에 된다. 현실에 되는데  현실은 어떤 현실이냐? 그 현실이 어떤 사건이든지 결합의 절정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절정 단계는 그것이 밤중인데, 그때는 어떤 밤중이냐? 처음에는 땅의 것도  가지고 하늘의 것도 가지고, 세상 세력도 거머쥐고 이 셋 결합도 가지고 둘을  가지고 이래 가지고 춤 추면서 가지만 이제 그게 정말로 어디 결합했느냐,  생사가 결정되는 단계는 그것이 밤중이라고 하는 어려운 때인데, 그때는 이거  가질라면 이거만 가지고 이거 내놔야 되고 이거 가질라면 이거 내놔야 되고 둘  중에 하나밖에는 가지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고통이 되는 것이다.

믿음 없는 사람은 고통이 되지만 믿음 있는 사람은 고통이 안 된다. 왜 무슨  말이냐 하면 이 것을 가질라면 이거 내놔야 되고 이거 가질라면 이거 내놔야  되는데 믿음 있는 사람은 이거는 보배고 이거는 죽을 것이요 다 망할 것이요  자기를 속일 것이요 다 이거는 거짓부리로 알기 때문에 거짓부리 이것이  절단나고 이거 바꿔지면 좋아하니까 그 사람은 죽는 것을 좋아하고 변화되는  것을 좋아하고 주를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세상이 감당치 못하고  그 사람에게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바꿀라고, 신앙생활할 때에 고난의 절정이 올  때에 그 고난받는 자가 어떤 자가 고난받느냐? 고난받는 자가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이 고난을 받습니까. 영생하는 사람이 고난 받습니까 주의 피와  성령의 진리의 사람이 고난을 받습니까, 땅에 속한 사람이 고난 받습니까, 그때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을 당할 때에 고난받는 사람이 중생된 새사람이요 영생하는  새사람입니까. 땅에 속해서 지금 악령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 있는 땅에 속한  사람 죽을 사람 그 사람이 고난을 받습니까 누가 고난받습니까? 자, 중생된  새사람이 고난 받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내가 몰라서  묻습니다. 여러분들이 어찌 알고 있는지. 그러면 고난받는 그때 '아,  고통스럽다. 고통스럽다.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느끼고 고난받는 것은  옛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옛사람입니다. 그놈은 죽어야 될  놈인데 평소에 안 죽어 가지고 그게 자꾸 방해를 했는데 그때 그런 단계에 그게  죽습니다. 그런 단계에 팍 꺾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사람이 변화됩니다. 딴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이래서, 그러기에 믿음 있는 사람들은 그런 고난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잘 이겨서 믿음 가진 자는 결합을 가질 수 있고 결합이  되면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의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기억하고. 재독 들을 때에 얼마든지 들어서 요게 확고해야 됩니다.

밤에 들어도 확고하고. 낮에 들어도 확고하고 급할 때도. 급할 때도 언제든지  요거 계산이 빨라야 되지, 지금 평안 무사할 때에는 믿는 계산이 됐다가서  급하면 그만 믿는 계산 치워 버리고 내나 옛사람 세상 사람의 계산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다는 그 믿음이 행할라 하니까 어려움 오니까 그만  믿음 저버려 버려요. 행함이 오기 전에 행할 그런 현실을 닥치기 전에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랬는데 아. 현실이 떡 닥쳐 가지고 믿어서 이제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게 판결될라 할 그때는 그 만 믿음 저버려 버립니다. 왜? 믿음을  가질라 하니까 고난이 오니까 '아이구 믿음 이거 던져 버려야 되겠다. 믿음 안  던지면 이거 고난당하겠다.' 믿음 던져 버리고 믿음 없는 사람으로 그 현실을  살아가는 것으로써 사람들은 자꾸 현실 현실에서 자기의 지체의 기능을 다  사형을 시켜서 둘째 사망으로 죽이고. 이러니까 나중에 부활해 봤자 다 죽어  버리고 뭐 '형체만 살아 있고 하니까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형체만 살아  있으니까 아무 소용이 없어. 덩치 커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는 몸뚱이는 자꾸 커서 자꾸 중량은 올라가지만 힙이 없으니까 저 내려갈  때도 기도하며 내려갑니다. '여기에 낙상되면 이 모두 다 수치스럽고 하니까  낙상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벌벌벌 떨면서 내려갑니다. 여기 찬양대 여기 볼  때에 내가 안 떨라고 이래 섰었지만 자꾸 이래 떨어. 힙이 없어 그래. 힘이  없어서. 그전에는 뭐 턱걸이 하면 서른도 하고 서른 다섯도 하고 이래  해재꼈지만 지금은 당글어 매달리지도 못해. 이랬는데 이 번에 거창 집회갔다  와서는 당글어 매달리요. 당글어 매달리는데 내가 내가 턱걸이 해 보니까 요게서  요만치 올라가. 요만침 올라가. 이제 또 뭐 집회 한 번 더 하면 또 이만치  올라올란가. 힘없으면 말이요. 덩치 있고 힘 없으면 소용없어, 아, 그 사람이  보니까 어만 근량은 커다란데 지식의 힘도 없어, 과학의 힘도 없어, 예술의 힘도  없어 도덕의 무슨 힘도 없어 종교의 힘도 없어, 아무것도 없으니까 참, 뭉텅이만  크지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밥 먹기도 어려워요 밥값도 나오지를  안해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 다음에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같이 차이  있습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내가 여기에 속하느냐 저게 속하느냐 둘 중에 하나로 되어지는  것인데, 어떤 현실은 여기에 속하느냐 저게 속하느냐, 둘 중에 준비를 하고  있다가 여기에 속하느냐 저게 속하느냐. 최종 결말이 지워질 때에는 여기에  속할라면 이거 버려야 되고 여기에 속할라면 이거 버려야 되고 둘이 판결나는  그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것이 십자가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꼭 바로 알아야 됩니다. 아는 것을 자꾸, 또 눈을 감고 새김질하고 새김질하고  자꾸 새김질을 해서 이제는 의심 없이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급할 때나 수월할  때나 언제든지 이 지식이 나를 지배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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