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상태


선지자선교회 1979년 10월 14일 주후

 

본문 : 사도행전 2장 17절-21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첫째로 우리에게 경고해 주시는 것은 꼭같은 은혜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은  은헤의 충만함을 받는데 어떤 사람은 그 은혜를 맛보지 못하고 도리어 이상한  사람으로 술취한 사람들로 그렇게 무식하게도 인정하는 그런 사람들이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는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는 하나님의 저주인데 그것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마음이 슬기로운 사람들이요 다시 말하면 예민한 사람들이요  은혜를 받지 못하고 술취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필요없는 방향으로 예민하게 하는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마는 옳은 일에 대해서는 민활해서 그 옳은 것을 다 측량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는 것이 그것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길가에 뿌린씨, 돌짝밭에 뿌린씨, 또 가시떨기위에  뿌린씨, 옥토에 뿌린씨로 그렇게 비유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패해지는 것 강퍅하고 미련하고 심히 낡아지는 것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완패해지는 것이 여러종류가 있습니다.

 그사람은 예의에 대해서 완패하다 그 사람은 경제면에 대해서 완패하다  그사람은 자비에 대해서 완패하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여기 완패한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완패한 것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이렇게  미련하고 둔하고 어리석지마는 그 사람들이 결단코 세상에 악을 행하고 죄를  짓고 남을 침략하고 모략하는 데에 둔하거나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둔한 것이 오히려 복이 되겠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 이  구원에 대해서는 둔하면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의 마음이 둔해지는가  미련해지는가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힘씀보다 세상이 주는 지식이 힘을 많이 쓰면 그사람의 심령이 둔탁해집니다.

 그래서 육체로 지식많은 사람이 많지않다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국민학교부터 점점 중고등 대학으로 올라가서 세상학문을 공부하는 것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주시는 이 진리 지식을 공부함이 지체가 되어야 되겠고 머리가  되어야 하겠고 앞서야 되지 이것보다 세상지식이 앞서면 그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주시는 구원에 대해서 둔한 사람이 됩니다. 미련한 사람이  됩니다. 어두운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길가에 뿌린씨로 비유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밟아놨더니 땅이 굳은 거와같이 이런 사람 말, 저런 사람 말, 많은  사람의 말들이 들어 그 마음이 그 모든 말들에게서 많이 속았고 많이 꾀었고  많이 마음이 바래졌고 낡아졌고 쇠해졌고 이제는 새것이 없어 비록 백지라도  자꾸 그려 놓으면 흰틈이 있어야지 이것 모양으로 세상이 소용없는 것으로써 그  총명에다가 막 그려제껴 놓으니까 이제 참 생명되는 하나님의 진리가 들어갈래야  들어갈 고이 없어 기록될래야 기록될 것이 없어 또 하나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구원에 대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하여 미련해지고 탁해지는 것은 자기를 생각함이 심해지면  미련해집니다.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 나를 지으신 하나님, 모든 것을 심판하실 하나님, 모든  것의 주인되신 하나님, 이분부터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자기를 생각할 일이지  이분도 놔두고 제가 무얼 잘났다고 저부터 항상 생각합니다.

 이것은 말을 해도 저부터 생각하고, 어데 가도, 저부터 생각하요, 절  나타낼려고 저만 유익되게 할려고, 저만 좋게 할려고, 저 권위만 세울려고  이렇게 구속하신 하나님보다 자기를 많이 생각하면 그 마음이 완패해집니다.

 이것을 가르쳐 돌밭에 뿌린씨라 했습니다. 사람은 먼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또 이분을 더 많이 생각하고 그다음에는 나 아닌 이웃을  생각하고 나보다 이웃을 더 많이 생각하고 셋째로 자기를 생각해야 되는데  사람들은 밤이나 낮이나 바쁠때나 틈날때나 언제든지 저밖에 몰라  그러니까 그 심령은 어두워집니다. 미련해집니다. 둔해져 강퍅해져 셋째로는  어떻게 해서 마음이 완패해지느냐? 세상 염려, 세상 재리, 그 마음이 항상  세상일만 생각합니다.

 아침부터 저녘까지 저녘에도 잠들기 전에는 항상 세상물질 이것만 생각하니까  그 마음이 어두워진데다가 물질로 또 한 번 확 뿌려놓고 또 두 번 물질 먼지를  뿌려놓고 세 번 물질 황토를 뿌려놓고 네 번 세상염려의 모래를 뿌려놓으니까  자꾸 이렇게 마음이 묻혀지고 묻혀지니까 제가 안들려져 가지고 어떻게 하겠소,  이래 놓으니까 제 생명보다 중한 일이지마는 마음이 여기 대해서 둔하니까  들려지지도 안하요 아무 촉감이 없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슬기롭게 만드는  비결은 내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 읽은 하나님의 말씀, 배운 하나님의 말씀,  나에게 감동 준 하나님의 감동 이를 잘 생각하고 기억하는 내 양심 자꾸 이것을  생각하면 옥토가 됩니다.

 뿌린씨가 씨채로 새가 와서 주워 먹었고 씨가 나나 돌이 빛을 막아 말라 죽었고  씨가 났으나 덤불이 가리워서 자라지 못하고 옥토에 뿌린씨는 씨가 심기워진  이후로는 그씨가 그 땅을 먹을 대로 다 먹어버렸소 이러니까 옥토에 뿌린씨도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됩니다.

 자기의 마음을 진리가 먹고 자기의 생각을 진리가 먹고 영감도리가 자기 마음을  다 차지하면 사업가가 영감도리가 자가 마음 차지하면 사기할 것 다 못하고  궤휼할 것 다 못하고 기만할 것 다 못하고 이것 저것 세상일 못하며 비러먹구로  어리석소, 영감도리가 자기 마음을 다 차지하면 그 마음은 전지의 마음이  됩니다.

 그가 행하는 데는 전능이 배후에서 책임지고 협조하요 이렇게 살기 좋고 살기  수월한 길이 있는데 오늘 기독자들은 저주를 받았는지 하나님이 버리셨는지  마음은 제가 차지했든지 물질이 차지했든지 세상 모든 사건들이 차지했든지  인간들의 대가리에서 나온 모든 죽은 지식 이것들이 차지했든지 내 마음은  그것들이 다 차지하고 하나님의 영감들이 차지하지 못했는데 내 마음이 뭘로  새로워지겠소 뭘로 깨끗해지겠소 무엇을 옳게 바르게 예민해지겠습니까 이것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아서 회개못한데 대해서 죽을동 살동 모르고 못견뎌서 마구  발동을 치고 야단을 치니까 뭐 저사람들 새술 취해 독주 먹었는가봐 되게 취했네  이런자들이 거기 있었으니 이것을 예사로 들립니까? 한 말씀은 우주를 지은  말씀이요 우주보다 큰 말씀인데 이 말씀이 돈만치도 크게 들리지 아니하고  자기만치도 크게 들리지 아니하고 세상권세만치도 크게 들리지 아니하는 이것이  그 마음이 어두운 것 아니고 무엇이겠소 미련한 것 아니고 무엇이겠소  어떤 사람은 믿기 시작한 그날부터 죽는날까지 빈부귀천, 고락, 생사를 가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계약을 인해서 무거운 짐진자와 같이 마음이  무겁게 무겁게 눌리면서 일생을 다 바쳐 노력하는데 예수믿는 사람이 하루도 주  뜻대로 살지 못하면서 예수믿는다고 택함을 입었으면 기본구원은 얻어서  하늘나라 가기는 갑니다.

 가나 벌거벗은 자요, 그 나라에 가 보니까 세상에서 입을 하나님의 지능을 입는  것이 없지 하나님의 속성을 입은 것이 없지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서도  하늘나라 요소는 하나도 입지 못했지 세상 요소는 부자고 잘나고 큰  사람이었지만 갈때는 싹싹 다 벗겨서 왜 이것은 죄악의 것인데 하늘나라  어찌가겠소 비틀어졌는데 어찌 가겠소 다 벗겨 버리니까 발가벗은 자로 영생은  하지 아무데도 필요없는 자지 이것을 인해서 벗은자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무거운 짐진거와 같이 탄식하면서 일생을 걸어가는 것이 이 계약의 말씀에서  죽고, 이 계약의 말씀에서 살고, 이 계약의 말씀에서 멈추고 이 계약의 말씀에서  옮겨가 자기의 전부가 이 계약의 말씀에서 동하고 정하는 이렇게 일생을 사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이 자기에게는 하나도 감촉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요  성경보면 잠 오고, 이 말씀을 들으면 시간이 길다, 저 죽이고 남 죽이는  심판받을 이런데는 눈이 깜짝 뜨이고 그것이 저주요, 불쌍한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강퍅한데 대해서 얼마나 울어야 될는지, 얼마나 가슴을 쳐야  될는지, 얼마나 기가 막혀야 할는지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이루는 구원은 병을 고쳐가는 것이요 자라가는 것입니다. 병을 고쳐가는 것이요,  자라가는 것입니다.

 병은 무슨 병, 하나님의 신성과 내게 다른 인격성, 하나님의 속성과 내게 다른  속성이 모두 병입니다. 순진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이  참사람이요 이 변질되지 않는 사람이요, 이 병을 고쳐서 건강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요 하나님의 모형적 인물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속성이 원형속성이라면 우리는 그와 꼭같은 모형속성, 지식도 하나님과 같은  지식, 지혜도 하나님과 같은 지혜, 사랑도 하나님과 같은 사랑, 성질도 하나님과  같은 성질, 뜻도 하나님과 같은 뜻, 소원도 하나님과 같은 소원, 감정도  하나님과 같은 감정, 진실도 불교자 이종교에서 말하는 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실과 같은 진실 전부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내 속성으로 오늘날 갖추는  것입니다.

 오늘이 지나가면 갖출길이 없어, 하나님과 다른 자기가 병이요, 하나님과 다른  것을 고쳐 하나님과 같은 자 만드는 것이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병고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은 하라는데 내 뜻은 하기 싫은 것 이것이  병이요, 하나님은 무한하시는데 나는 싫은 이 소원이 하나님과 나와 다른 것이  병이요 욕심이 하나님의 욕심과 내 욕심이 다른 것이 병이요, 하나님의 행동과  내 행동이 다른 것이 병이요, 이 병을 고쳐서 하나님의 모든 지정의와 내  지정의, 하나님의 마음의 움직임과 하나님의 마음의 움직임을 가르쳐 감동이라  말했소, 영감이라고 말했소, 하나님의 마음의 움직임과 내 마음의 움직임이  같도록 하나님의 활동과 내 활동이 같도록 이 점을 고쳐 점점 능숙하고  장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 때문에 사는 사람 아닙니다. 명예 때문에 사는 사람 아닙니다.

자기가 개혁가가 되기 위해 사는 것 아닙니다. 자기가 부흥사 되기 위해 사는 것  아닙니다. 유명한 목사가 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병들고 행위 병들고 사상병 든 병을 고쳐 하나님과 같이 되어지는 데에는  별 수 없이 하나님이 현실 현실을 주시면서 요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때는  네 마음을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네 인격성을 이것을 버려라 이것을 가져라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따라서 행할 때라야 이것이 치료가 되고  장성해지기 때문에 너는 공장에서 직공노릇에서 나는 남의 수하에서 종노릇에서  나는 층층시하에서 나는 은행해서 너는 정계에서 너는 목회에서 너는 신학에서  나는 개혁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치료하고 성장하는 것을 각각 너는 여기서 하라  저기서 하라 했기 때문에 자기는 목회자가 되고 신학자가 되고 개혁자가 되고  부흥사가 되고 정치가가 되고 사업가가 되고 농부가가 되고 어부가 되고 공인이  되고 상인이 되고 하는 것이지 그것은 내 병고치는데 쓰여지는 재료들이요  쓰여지는 현실들이요 그것은 사용해서 내가 치료를 잘 받든지 못 받든지 많이  자랐든지 적게 자랐든지 자기 애쓰는 대로 될 것이요 그러고 나는 이제는  치료받을 시간이 끝났다, 성장할 시간도 끝났다 하면 두고 떠나야지  요것은 사적으로 내것 만들었고 국법적으로 내것 만들었고 요것은 내것이다  주제넘게 하나도 못 가지고 가 다 두고 가야 돼 인간이 강퍅하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어두운데 내어주어서 내일도 모르고 모래도 모르고 요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도 모르요 현실만 보고서 사는 우리 안에 든 짐승같이 이렇게  살게 되는 것이 제딴에는 사는줄 알지 불쌍하고 가련하기가 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있고 땅위에 무엇 때문에 있습니까? 예수 믿어 보자 도기  위해서 있소 아니요 예수믿어 하나님의 은혜로 출세하기 위해 있소 아니요  세상에 제일 높은 출세를 주시면 받고 뜻대로 행할때에 세상에서 제일 천한  자리에 내어 던져도 기쁘고 즐거움으로 거기에 던지움을 받습니다.

 왜? 내 목적이 딴데 있기 때문에 당신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것이 내  목적이요 이것 익숙하고 능숙하고 성공되는 것이 우리의 성공이기 때문에  던질때는 던지움을 받아야지 올릴때는 올리움을 받아야지  그런고로 여기 상징적으로 말했는데 상징을 할 때에 처음에는 자녀라는 이거는  아이라는 말입니다. 그사람들 자녀라는 말 아니요 아이라는 말이요 원어는  고전어로서 미개한 때 말이기 때문에 다가 아니요 요새 말보다는 더 어둡소, 더  둔하요, 새 한 마리 짹 소리 가지고서 다 합니다. 젊은이 늙은이 그다음 것은  아이지 귀신이 들어가 놓으면 자녀인데 아이라고 그러면 이 계시의 목적과 뜻을  못받아  자녀라는 말은 아이라는 말인데 아이의 신앙, 종의 신앙, 종의 신앙은 절대  복종입니다. 이것으로 상징한 것은 이것을 합해서 우리에게 알기 어려운 뜻을  나타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병으로 떼어 버리는 것은 어떤 것을 떼어 버리느냐 마귀에게서 얻은  것을 떼어 버리요 피조물 중심이라는 거기에서 얻은 것을 떼어 버리요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된 것을 떼어 버리요 그것이 병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비하고 자라는 것은 무얼로 자라는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하나씩 둘씩 구비하고 자라갑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것 무엇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지식이 하나 더해집니다.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지식이 자랍니다.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지식이 다지요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그  본체의 움직임으로 내가 없는 가운데 생겨졌고 지금도 하나님의 그 본체의  움직임 움직임으로 내가 커져갑니다.

 이러니까 커지는 것이 본체의 움직임을 받아 커지는데 커지는 것은 하나님같이  커지요 땅에 있는 아무 요소도 여기는 가하지 못합니다. 땅에 있는 모든 요소는  이것을 이루는 데는 이용은 되어도 실질의 요소는 안됩니다.

 첫째 아담에게 지음받은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받은 요 영육 요것은 변하지  아니하요 요것이 세상에 타락 이후 원죄와 본죄 악령과 악성으로 인해서 요것이  더럽게 물들었던 요것을 완전히 이 색깔을 싹 빼버리고 탈색시켜 버리고  하나님과 진리로 물을 들여서 하나님과 간리와 꼭같은 영육을 만드는 것 요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비유컨데 이러하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은 하나님의 움직임에 따라서 내가  움직일때에 그것을 가르쳐 종이라 말합니다. 그 순종이라 그 믿음이라고 하요  따라서 움직일 때에 내가 순종이라 그렇게 움직일때에 나는 자라갑니다.

자라가요.

 그러기에 자라가는 것이 우리의 생애요 자라가고자 자라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요 하나님을 따라서 순종으로 피동되는 이것이 우리의 생애 모든  방편입니다.

 여기에 예언한다는 말이 곧 선지자라는 말이요 예언한다는말은 그것이 자기밖에  나타나는 것을 말하고 선지자는 나타내는 자를 선자자라고 하는 것인데 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예언하리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나타낸다 하는 그  말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달라 하느냐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저가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저를  사랑하므로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지식이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났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두려움이 만물을 통해서 나타났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영원자존하신 볼 수 없는 이 자존하신 하나님이 모두다 피조물을 통해서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서 오늘 사람들이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또  짐작하고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 예언한다는 이 말씀은 먼저 사람들에게 그다음에 천군 천사에게 그다음에  영계에 있는 영물들과 물질계에 있는 물질들에게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예언하리라 하니까 제가 똑똑히 아는 줄 알고 이것은 오늘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타내는 것으로 그렇게 좁은 범위로 봅니다. 아니요.

 교회는 만물 가운데 안에 있어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이라는  말씀대로 이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을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완전하시고,  충만하신 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이것을 가까운 택자들에게 천군천사에게  영물들에게 만물들에게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충만을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요 위치를 가르쳐서 요게 예언할 것이요 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에 신앙생활에서 종으로 종의 신앙으로 상징한 요대로 상징이라는 것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물건이나 일이나 그런 모양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것을 알도록 그럴 때에 상징이라는 말을 씁니다.

 아이 모양같은 믿음 종의 모양같은 믿음 종으로 상징한 믿음 아이도 상징한  믿음 요 믿음이 얼마나 보배냐 요것이 자라고 구비해서 선지자의 위치를 가지게  된다 예언하는 역사를 할 수 있는 중보위치를 가지게 된다.

 중계위치를 가지게 된다 요것이 요것이 참 교회라 요것이 참 교회라 그리하여  피조물과의 상관이 끊어져 있는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에게 보이는 존재로  나타내니까 보이지 않는자의 것을 충만을 보이는 자에게 나타내어 예수님이  인간의 중보자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이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고 대속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오신 것처럼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이 접할  수 있는 자로 피조물에게 충만케 해줄 수 있는 이런자의 위치를 이런 자의  자격을 이런자의 실력을 예언의 결과의 생애를 할 수 있는 이런 자로 성장되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있는 목적입니다.

 이것 아니면 살 필요가 없어 천하를 차지해도 소용없어. 예언한다는 여기에  대한 뜻을 바로 깨달아져야 이 가치가 예언하는 자가 되는 요 예언이라는 요  예언이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이 요것 아니면 다 말라 죽는데 그들이 제일  원하는 것이 요것인데 영원히 그들에게 봉사해서 그들이 요것 아니면 요 성자  위치에 있는 요 교회 아니면 그들이 바짝 말라 죽는데 영원히 그들에게 봉사의  위치 필요의 존재, 그들의 생사와 화복이 여기 매여있는 하나님 대리의 위치를  갖추는 존재 이것을 여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러기에 천하를 다 차지하는 것보다 더 크고 자기몸과 생명을 다  무엇을 위해서 희생의 제물로 주는 것보다 다 크고 왜 더 크고 다 많은 것을  주어 줄 수 있어.

 지위라면 이보다 더 위에 가는 지위가 없어 신인양성일위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제외하고는 이보다 더 높은자가 없어 이보다 높은 권세가 없어  이보다 더 큰 부자가 없어 시은자가 봉사자가 없어 이보다 모든 존재의 사모의  대상이 없어 이보다 더 권위있는 자가 없어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지혜라 하나님이 완전이 그의 완전이라 하나님의 무한이  그의 무한이라 그의 것이라 하나님의 영원이 그의 것이라. 이렇게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큰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과장입니까 털끝만치도 과장없습니다. 과장없이 놀랠 것은 이  사실을 과장없는 사실로 인정하고 하나도 이 일을 이루는 데에는 아끼지  아니하고 마구 투자해서 가는 술 취한자, 미친자, 미련한자, 어리석은 자와같은  이렇게 산 자가 있고 이것을 제 지식으로 생각해서 가감하고 타산해서 약쥐같이  그렇게 산자같이 영원히 후회할 것이요 이를 무시한 자는 멸해질 것이요 이를  대항한 자는 가루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실제인데 환상본다, 환상본다 이 실제를 얻을 수 있는데 이  실제는 하나도 얻지 못하고 이 실제의 그림자만 일생동안 만지고 있어 그림자는  실상 가면 없어지요 이 실상의 그림자 같은 것, 그러면 거기 뭐 촬영해 놓은 것  같은 것 이것만 보고 이 무한함을 보고 아하 좋다 그 존귀를 보고 아하, 좋다 그  진실을 보고 아하, 좋다 이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을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를 다  내것을 삼을 수 있는 나의 실상의 것을 삼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인데 실상은  하나도 삼지 못하고 이것을 그림자 보듯이 이것을 무슨 사진박혀 놓은 사진  보듯이 이렇게만 접하고 실상에는 하나도 상관이 없는 이런 사람으로 일생을  지나갈 사람이 누구냐?  날마다 새로워지는 신앙을 걷지 아니하고 자기의 종전신앙 현상유지 일 년전에  그 사람의 깨달음이나 일 년후에 깨달음이나 일 년전 사람이나 일 년후 사람이나  일 년전 그이의 소감이나 후 소감이나 일 년전 욕심이나 후 욕심이나 일 년전  생활이나 일 년후 생활이나 꼭같이 진보가 없는 것 성장이 없는 것 개량 개정이  없는 것 더 회개가 없어 그것만으로 족한자로 그렇게 사요. 요 젊은이의 신앙 참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젊은이의 신앙 그것도 지킬라 하면 힘 드요 힘들어 거기서 조금만 전진하면  될텐데 조금만 더 애써서 내가 어제보다는 오늘은 작년보다 금년은 지난번에  설교한 깨달음보다 오늘의 깨달음은 그때 그 영감보다 오늘의 영감은 그때에 내  눈에 시야보다 오늘의 시야는 다 넓고 깊고 높아져 이것이 없어 그대로의  신앙으로 요대로 있고 썩어질 세상에는 달음질 잘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힘보지 얼마든지 해보지 얼마든지 해봐. 얼마든지  취해보고 앞집 뒷집에 점포경쟁 가정 장식경쟁 학식경쟁 명예경쟁 얼마든지  해보지 경쟁하면 승리하겠지 승리했으면 얻었겠지 그러나 세상 마지막에는  가지고 가지 못하니 그만이지 그것 때문에 무한한 것을 얻을 기회만 놓쳤지  속했지, 이러기 때문에 욕심의 이름을 가르쳐 미혹이라고 이름을 지었소 성경이  성령의 소욕외에는 전부 자기를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젊은이의 믿음에서 조금만 더 힘쓰면 현상유지에 조금만 더 첨부되면  구원이 되는데 내가 언제 육축책을 읽어보니까 도야지를 먹이는데 얼마 먹이면  그 현상유지에 사료가 되는데 그것만 먹으면 안죽고 그만치 크지 아니하고 그  중량 줄지않고 가만히 있는데 거기서 이제 하나 먹이면 하나되는 것은 하나  먹이면 하나 중량이 늘고 둘 먹이면 둘 중량이 느는데 요것은 죽자고 먹여봐야  현상유지 하니 자라는 것은 하나도 없어 닭도 그것 먹여서 현상유지 하는  그것외에 계란 한 개의 십분의 일이 저축되면 열흘만에 알 하나 낳는답니다.

그것은 전부 알 되는데 현상유지의 사료만 주면 알 하나도 안 나아. 항상 그대로  있다가 늙으면 죽어버리고 말지. 요것 현상유지의 젊은이의 신앙에서 좀 더  힘써서 좀 더 힘써서 아이의 신앙으로 요렇게 이미 와 지키는 거기에서 요 시간  이래라 저 시간 저래라 그것만 지키면 아이처럼 성장해서 선지자의 실력이  하나님이 감추인 하나님의 모든 것을 피조물께서 나타나는 이 위치를 이 권위를  마련하게 되는데 이것 하지 아니하고 현상유지의 신앙으로만 지나가고 있는 것  대단히 계산을 잘 댄자 같고 대단히 찬찬한 자 같고 대단히 신중히 모든 일을  사는자 같고 대단히 무거운 사람같지만 어리석었어 어리석었어.

 제가 진리를 몰라서 죽고 저 망치는 줄 모르고 뭐 사람이 자꾸 휘떡거려  언제든지 정월 초하룻날 먹는 마음 그믐날까지 아니야 믿는 사람은 안돼. 이날에  이 시간에 이 마음 먹어야 돼 다음 시간에 또 딴 마음 먹으라면 딴 마음 먹어야  돼. 하나님이 요 마음 가리라 할 때 말에 따라서 번개같이 하고 이 마음 가지라  할 때 예예예 하나님이 가리라 하면 퍼뜩퍼뜩 빨리 따라가야 돼. 정신도 행동도  희로애락도 현상유지의 신앙. 이미 애써 신앙생활 하는데 그는 우리에게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지능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해 놓으신 결과로 충만해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이것이 실상인데 이 젊은이의 신앙은 이 실상에서 그림자면 얼마나 거리가 머요.

그림자가 실상이 됩니까? 그림자 이것이 만 년 났으면 실상이 됩니까? 그 실상은  그림 그려놓은 것이 억만년 가면 그것이 실상이 됩니까? 실상은 사진박혀 놓은  것이 실상이 됩니까? 안돼. 실상과는 거리가 천 리도 만 리도 너머 천 리 만  리가 아니라 그것은 되는 법이 없어. 절대 불가능이라 이렇게 우리의 움직임에  조금 다르면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는 천 리도 만리도 멉니다.

 이것보다도 늙은이의 신앙, 이는 꿈을 꾸어 꿈꿔. 꿈에 성자된 것이 꿈에  투자된 것이 꿈에 왕된 것이 꿈에 공중에 날아다닌 것이 그 실상과 무슨  상관있소 무슨 상관있소 이 거리를 두고서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상을 이루어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거기 그림자를 잡고  일생동안 그림자를 쫓고 지내요. 어떤 사람은 이걸 꿈만 꾸고 지나가요 꿈이  무슨 소용있소 우리가 조금씩 양보하고 퇴보하는 이 신앙에서 조금만 힘쓰면  현상유지의 신앙을 가지는데 꿈과 환상과는 거리가 심히 멉니다.

 현상유지의 신앙에서 좀 더 애를 써서 아이의 믿음으로 종의 믿음으로 내가  이미 예수 믿는데는 계명 다 지키고 믿는데 요 시간에 주님이 뭘 말하노 요것  내가 지키겠다 얼마 상관 아닌데 이러면 실상이 이루어지는데 왜 우리가  게을해서 늙은이 신앙, 젊은이 신앙 이것을 예사롭게 생각하고 머물고 있습니까?  왜 아이의 신앙으로 종의 신앙으로 나아가를 못합니까?  얼마 남았는데 모르지마는 하늘과 땅이 다 변해지고 해도 달도 변해지고 모두가  변해지는 이 일이 오기 전 우리는 이 일에 분발해야 됩니다. 어쨌든지 종의  신앙을 가져야 되겠소 종의 신앙은 자기 현실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고걸  찾아가지고 이걸 찾아 잡았으면 생사를 가리지 안해.

 요것 잡았으면 죽든지 살든지 요대로가 재물과 친척과 명예를 원수가 취한들  상관이 무어뇨 내 주께 있으리로다 왜 내 현실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내게 대한 하나님의 금지는 내게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요거는 요거는 지극히 작은 일이지마는 요거는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충만을  내것으로 삼는 이것이기 때문에 내 생명보다 커. 모든 학식보다 커. 어떤  구원보다 크고 요것을 아는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요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우리 현실에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요것보다 큰 것이 어디 있소  요것보다 귀한 것이 어디있소. 요기에는 내 전심 전력과 내몸과 생명 다  기울여서 요것 이루는 것이 성공입니다.

 왜 요것이 막바로 내것 될 하나님 내것 될 하나님의 능력 내것 될 하나님의  충만 요게서 내것 되고 안되고 결정되기 때문에 아주 믿는 것 쉬우나 어렵소  겸손한 자에게 쉽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 쉽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에게  쉽고 잘나고 위대한 자는 천하에 잘나고 위대한 자는 똘똘 뭉쳐도 절대 제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여러분들 자기를 부인하는 전에는 안됩니다. 자기를 주의 피로 구속받았으니  주의 것인 줄 알고 이제 내어놓아 주의 제단위에 올려 놓기 전에는 안됩니다.

올려놓은 자는 어리석어도, 병신이라도 상관없소 착착 이루어 가요 문둥이라도  이루어지는데 지장없소. 만신창이가 되어도 이루어지는 데는 상관없소 무식해도  상관이 없소 이미 무식하게 하신분이 당신이신데 그 자리에서 있는 충성 다 하면  돼.

 이러기에 인간의 의는 충성으로 말했고 인간의 불의를 불충으로 말했어. 뭐  그러기에 잘났거나 못났거나 자기를 하나님에게 다 맡기고 바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맡기고 바쳐 하나님에게 쓰여지면 다 되었어. 이것이면 다  영생입니다. 뭐 하나님에게 잘난 사람이 필요가 있소? 잘나 가지고서 뻣뻣하게  하는 사람 하나님이 일꾼없어서 그 사람에게 간청하겠소? 하나님이 능력없어  사정하겠소? 아니요 못나도 당신에게 굽신굽신 하는 자, 못나도 당신 의지하는  자, 잘나도 뻣뻣한 자 잘나서 '하나님에게 맡기지 못하겠는데' 하는 자 필요없어  하나님앞에 겸손합시다.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능하신 손아래 복종하라 교만한 자는 물리치느니라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리라 순위대로 착착 그를 키우십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우리가 일어서야 돼요 일어설 때가 되었소 지금이 어떤  때라고 이 구원을 뒤에 두고서 어리석게 이것을 저것을 이제 사욕을 채울려고  아무리 채워 보십시오. 채우고 나면 또 나옵니다. 채우고 나면 또 나와 또 나와  이것을 가르쳐 "곡간을 헐고 새로 짓는다" 했소.

 사욕의 소원성취를 다 해서도 그날 영혼 부르면 그것은 다 두고 가야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마귀에게 꼬이지 마십시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요것을 명심합시다. 각오를 해요 어리석지 말아요 아무리 꾀를 써 보았자  소용없어 아무리 민활해도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것뿐입니다. 세상 사람이 볼 때  미련하다고 하나 십자가의 길을 북북 걸을 것뿐이요 작정해요 각오해요 큰 것이  있는데 물불을 큰 것을 얻는데에 방편된다면 얼마나 좋소 몸과 생명 소유 다  이것 얻기 위한 자본이라는 것을 알고 아낌없이 투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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