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시발 순서

 

1980. 4. 14. 월새

 

분문: 로마서 12장 1절- 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이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여게 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마음과 몸을 합하여 육이라는 그  뜻입니다.

 성경에 마음이라 이렇게 할 때도 마음만을 말한 게 아니고 대개는 마음만을  말한 데도 있지마는 대개는 마음과 몸을 합해서 말할 때에 마음이라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몸은 신앙대로 움직여도 마음은 딴 짓 할 수 있는 그런 때에는 몸을  가르치지 안하고 마음을 가르쳤습니다. 몸하고 마음을 가르칠 때에 몸을 말하지  아니하고 마음을 말했습니다.

 또 자기가 마음은 그렇게 바로 움직였지마는 몸이 움직이지 아니할 때에 안  하는 그런 형편인 때에는 몸을 말했습니다. 몸만 말하면 마음은 절로 따라가고  마음을 말하면 몸도 저절로 따라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데 이 "너희 몸을"  하는 그 말은 몸만 말하는 게 아니고 마음과 몸을 다 합해서 말을 한 것입니다.

 "너희 심신을 산 제사로 드리라" 살아 있지마는 실은 그 심신은 살아 있으나  자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없기를 마치 죽은 것이 잡아서 잡은 짐승이 제  스스로는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처럼 이렇게 네 심신이 네 스스로는 움직이지를  아니하도록 순전히 네 심신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네 단독이는 움직이는 일이  마치 죽은 짐승이 그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이렇게 되도록 해라 이것이  단번에 안되니까 이 일을 연습을 시켜라 이 일이 단번에 되지 아니하니까 이  일을 연습을 시켜서 어짜든지 이 일이 성공 되도록 해라   그러면 몸도 마음도 다 살아 있고 얼마든지 이 심신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 동안에 제대로 움직이는 것이 끝나 버리면 벌써 죽음입니다. 죽었습니다.

헛일입니다.

 자기의 심신을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생각대로 제 주장대로 제  성미대로 제 비유대로 제 경영대로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이 끝나기 전에  그것을 가르쳐서 산 산 제사라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끝나기 전에 죽기 전에 말이요 자기의 심신의 움직임이 자기대로  움직이는 그 움직일 수 있는 자이면서 자기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 일을 연습해서  이 일을 성공하도록 해라 자기 심신이 자기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 일이 끝나  버리면 언제 끝납니까? 자기 이 심신을 제가 움직일 수 있는 그 일이 그만  안됩니다. 제가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 없는 때가 된 때는 어떻게 된 때입니까?  여반에, 자기 몸이나 자기 마음 그것을 제가 다른 사람이 들어서 옮기지  아니하고 제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그 일을 그 일이 끝났으면 그때는 어떤  때입니까? 예 죽은 때지요 죽은 때 죽은 때는 그 심신의 소용은 없습니다.

 그때는 뭐 그 후부터는 썩는 것뿐이지 아무 소용없소 심신의 움직임이 제  단독이 움직일 수 있는 때인데 산 자기의 심신이 아직 살아있다 그 말이요.

자기의 심신이 살아 있는데 제물로 드리라 제물은 잡아 가지고 다 사각을 떼고  내장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릴 것은 버리고 이래 가지고 잡아서 제단 위에 놓고  제사를 불살라서 여러 모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니까 이제 제단 위에  올려놓은 그 짐승은 제 단독으로 움직이는 그런 것이 인제 끝나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그게 뭐 떨기를 합니까? 그게 제가 제단을 올라가고 오지 말라하고  내려오면 내려오고 또 불사르면 뜨겁다고 하고 뭐 그런 것이 없다 이거요 완전히  그것이 제단 위에 동하는 일은 없는 것이 그것이 제물입니다.

 "산 제사로 드리라" 이 말은 죽음이 오기 전에 그 심신이 제 단독이 움직일 수  있는 제 심신이 제 단독이 움직일 수 있는 그 움직임이 끝나지 아니했는데 잡아  놓은 짐승처럼 제 단독이 움직이는 일을 전혀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움직일 수 있는 그 심신을 만들어라 그걸 말합니다.

 우리가 자기의 심신이라는 이것을 제 마음대로 제 주장대로 제 자유로 움직이지  아니해야 구원이 시작이 되는 것인데 이 일부터 해야 되지 이 일을 안 하면 모든  것이 다 헛일입니다.

 자기의 감정이라든지 자기의 욕심이라든지 자기의 뜻이라든지 자기의  생각이라든지 자기의 소원이라든지 그 모든 것대로 마땅히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심신인데 그렇게 움직여지도록 아니하도록 그렇게 움직여지는 그것을 차차 차차  꺾어 꺾어서 자기대로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도록 이 일을 연습을 시켜서  이제는 자기대로 움직이지 아니하도록 이 일을 연습을 시켜서 이제는 자기대로  움직이지 아니하고 제사를 드렸으니까 하나님의 법도대로 그것을 태우면 태우고  또 어느 부분만 태우고 어느 부분은 태우지 아니하고 또 그것을 즉시 태우고 좀  있다 태우고 어쨌든지 하나님의 법도대로 그 고기를 사용할 때에 어떻게  사용하든지 그 고기는 의의가 없습니다.

 불평이 없고 다시 뭐 사용하는 대로 그대로 사용되고 마는 그 재물처럼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자기 심신을 하나님께서 원하신 그 하나님의 법도대로 이제는 그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심신이 되어지도록 하고 자기가 사용하는 것이 되지  아니하도록 이 일을 연습을 해라 연습을 해서 처음에는 안 돼도 차차차차 연습을  해 가지고 어쨌든지 세상 떠나기 전에 이 일을 성공을 하고 나면 성공된 것 만치  그 다음에 무엇이 되어지는고 하니 성공이 된 것 만치 이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성공이 된 것 만치 세상을 이겨서 세상에게 피동이 안됩니다.

 제일 처음에는 이 심신이 자기대로 움직이는 이 일을 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법도대로 움직이고 자기대로 움직이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자꾸 금지를 이 일을  연습을 해서 이 일이 되면 되는 것 만치 이 세대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게 피동이 안될 수가 있다 이거요 이 세상에게 피동이 안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제 셋째 번에 무엇이 되어지는고 하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바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순서대로 해서 순서를 다하고 순서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고 순서가 성공된 것 만치 순서에 가서 시작이 되어 순서가 성공되게 되고  순서가 성공이 된 것 만치 순서가 성공이 되어집니다.

 이 삼 순서가 성공이 되어지면 이제 넷째로 믿음이라는 이 믿음이 성공이  됩니다. 대번에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은 자기가 성경대로 했다고 믿음  되는 것 아닙니다.

 믿음은 신구약 성경으로 믿음을 찾아가도록 하는 하나의 등불같이 신구약  성경이 우리들에게 안내하고 있는 것이고 신구약 성경으로 대략 방향이나  찾습니다. 방향 남쪽이면 남쪽이다 북쪽이면 북쪽이다 이래 방향이나 찾고 그  남쪽이라도 조금 오른편으로 조금 왼편으로 이렇게 세 부분적으로 정확한 그곳을  향하여 가는 이것은 성신의 감화 감동이 이것을 찾아 줍니다.

 양적으로도 성신의 감동이 그 양을 조절하고 또 질적으로도 성신의 감화 감동이  그것을 조절하고 종류 적으로도 소와 같은 소의 종류라 하면 거게는 양도 들었고  염소도 들었고 사슴도 들었고 노루도 들었고 이런 거 다 소 종류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대개 소 종류라 이거는 감람나무에 속한 것들이라  이거는 버드나무에 속한 것들이라 이거는 밀감나무 종류들이라 거기도 한없는  종류가 있다 그 말이요. 대략 그 근본적으로 들어서 가르친 것이 성경이요  거게서 그 속에서도 이제 여러 가지 그 종류도 있고 방향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성령이 가르쳐 주는 것이라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배우지마는 네가 한 그 명중할 네게 대한 정확무오의  길은 네 안에 기름부음이 너에게 가르쳐 준다 그대로 해라 그래야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순서를 거쳐가면 그 다음에는   넷째로 보배로운 믿음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믿음 이 믿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믿음이라 하는 그 말은 그 믿음 하나 가지고 다 된다 하는  말 아니고 거게 대해서는 자기가 지금 찾아서 믿음을 가진 그 믿음에 대해서는  전능입니다. 왜?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제가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에 제가 이제 참가를 하는 것입니다.

 보면 과거에 도를 하는 것이라든지 또 이런 뭐 자기가 시합하는 데도 보면  무엇이 싸움을 붙었는데 네 짐승이 강하나 내 짐승이 강하나 어느 것이 강한고  이 싸움이 붙으면 본인들만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돈을 걸어 놓은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그 옆에서 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도 이것이 이기면 배 액을  준다 배 액을 줘요  거기다 걸어 놓은 돈에 배 액을 줘요 나 여기 만 원 건다 이라면 이제 그  상대방이 지면 그 사람 따는 것까지 쳐줘야 됩니다. 이런데 저쪽 편에도 또 나도  만 원 건다 오만 원 건다 십만 원 건다 이렇게 개 임자가 아니고 그 소 임자가  아니라도 자기가 돈을 많이 겁니다. 걸어 놓으면 지면 진 편에 거게 가담한  사람은 전부 다 진 게 돼서 돈 다 떼 버려요. 이긴 편에 가담한 사람은 거  자기는 이긴 자가 아니지마는 이긴데 참가해서 계약이 됐기 때문에 이긴  사람으로 그 계약을 배 액을 다 받는다 이거요. 그러니까 시합하는 데도 그게  있고 노름하는 데도 그게 있고 장사하는 데도 그게 있고 계하는 데도 그게 있고  그런 게 있는 게 있습니다.

 이것 모양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제가 참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바로 찾아 가지고서 그 일을 저도 원하고 그 일을 하는데도  자기가 한다고 달려들어 한다 한다고 해서 제게 제 힘이 하는 것 아닙니다. 제  힘이 하는 것 할 수 없는 그거는 다 이 불완전 하는 것이 하는 그게 찍해야  불완전이지 뭐 완전이 있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된 그것은 다 완성이라 영원  불변의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것들이라 그거요.

 그러기에 다만 사람은 그것을 원하고 또 그것을 자기가 하려고 달라 드는 것  그것뿐인데 그렇게 해서 되어지니까 제가 한 줄 알지마는 자기는 실은 말하면  하나님이 혼자 하시는데 그 일에 자기는 참가해 가지고서 한 몫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에 참가해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전부 제가 한  것처럼 대우를 받고 거게서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하는 일입니다.

 요걸 똑똑히 이래 알아서 여러분들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말귀를 못 알아듣기  때문에 두루뭉시로 그만 이렇게 하는 말은 자기 귀에 속속 들어오는데 실지로  시공을 할라 해 가지고는 안 된다 그거요.

 시공을 해서 안되면 요 실제로 자기가 하려고 할 때에 해야 되는 그 실제에  이룰 수 있는 조성할 수 있는 그런 것은 말하면 귀에 들어오지 안 해요 그게 안  들어 오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신앙생활은 전부 된 것 같은데 안되고 두루뭉시로  이래 가지고서 그 사람의 궁극적인 거룩이나 진실은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거룩에 도달하지를 못해요. 진실에 도달하지를 못해요. 안 됐는데 저는 된 줄로  압니다. 이러니까 그만 쉽게 말하면 듣기 좋고 재미있고 그거는 되는데 그걸  실지로 하는 데에는 까다롭다 그 말이요.

 집을 짓는데 이러면 그만 회가 얼마 들고 뭐 들고 뭐 들고 이래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주 비비대면 집이 된다 하면 기분이 나는데 그걸 철근을 넣은 데에는  거게는 철근이 길이를 얼마로 끊어야 되고 또 굽이기를 요리 굽으면 요래 굽이고  요래 굽으로 요래 가 몇이 요래 곧고 또 몇 이는 또 뒤로 주로 몇 이는 알로  주고 요래 사면 아이 귀찮다 나 그런 집 안 짓겠다 아 그만 철근만 몇 톤 시멘트  몇 톤 모래 몇 차 아 그래만 둘둘 둘둘 집이 돼 버리지 이렇게 들어서 집을  짓는다 하는 그 소리는 재미가 있고 집 지을 용의가 나다가 이걸 실지로 요게는  무엇을 얼마 되고 어떻게 해야 되고 요게 서는 나무를 대야 되고 요게는 구멍을  작게 내야 되고 크게 내면 안 돼 하면 까다롭고 그만 듣기 싫어 '아이구, 그래  가지고 무슨 놈의 집을 짓노 어찌 그 집을 짓노' 실지로 입으로 제가 암만 해  봤자 실지로 집을 짓는 것만치는 거게 세부적인 모든 그 구비가 되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말로 하는 것도 대충이요 실지로 해보면 그보다 더 세밀한 세 부분에 있어서  그게 구비되어져야 이 일이 되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요.

이런 것을 싫어하는 그런 사람은 참 문제입니다.

 이러기에 여러분들이 이 진리를 가르칠 때에 뭐 때문에 그렇게 자꾸 말하느냐  하면은 인간의 말로 표시 못할 그것이 그 안에 들었는데 인간의 말은 거게까지  가지 못하고 그 이상 못 갑니다.

 인간의 발표는 그 이상 가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발표라 하는 거게 가 가지고  또 가서 말하고 또 가서 말하고 두드리고 두드리는 것은 거게 까지 발표 난  거기에서 인간의 방언으로 발표할 수 없는 그 속의 것을 영감 받아 가지고  자기가 추측하고 추상하고 거기서 깨달아지도록 하라 그 말입니다. 그런데 거게  따라 나오기를 싫어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를 깨달은 그것이 세밀해서 거게 참에게 도달한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신앙 생활이나 모든 사람된 인품이 철저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안한  사람들은 철저하지를 못합니다. 참 팔방 미인이 돼 버리고 맙니다.

 설교도 보면 줄기만 가진 사람 있고 또 저 끄트머리 잎사귀만 가진 사람  있습니다. 다 헛일이요 줄기 가지고 줄기에서 나온 가지가지고 가지에서 나온  새움 가지고 새움에서 나온 새 잎사귀 가지고 새 잎사귀에서 나오는 그 꽃을  가지고 이래 돼져야 이리 돼지지 그만 둥치만을 떼 놓으면 듣고 그 다음에 가지  말하면 그만 거게 따라 오다가 안 듣습니다.

 그 사람은 신앙 생활이 이렇게 늙어서 보면 그 사람이 자기 혼자 잘 믿는 것  같은데 실은 비판이나 평가를 딱 쳐 놓으면 엉뚱이 같은 소리한다 말이요.

엉뚱이라.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전부 거꾸로 깨달아 자기가 주관이 되어  가지고서 깨닫는다 그거요 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느냐 자기  친구가 자기와 같은 사람은 자기를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사망과 음부가 그의 친구가 되고 자기와 같은 그 자기 동무를  좋아하기 때문에 거기 따라갑니다. 그런고로 그렇게 하는 버릇은 고쳐야 됩니다.

 보면 제가 노트 평가한 걸 혹 읽어봐도 그러하고 설교를 들어봐도 그러하고  그만 가다 말아 두루뭉시로 자꾸 이 줄기만 듣고 자꾸 그 밑에 있는 그것은  자기가 몰라 그러니까 매사를 닥치면 거게까지 안 간다 그거요. 안 가고 시작만  해 놓고 대충해 놓으니까 일이 됩니까? 천국은 세밀한 나라입니다. 세밀한 나라  철두철미한 나라.

 이러기 때문에 눈이 어떻게 박혔습니까? 안팎에 눈이 가득 찼다 했소. 밖에  눈은 인간들이 상상할 수밖에 인간들이 발표할 수가 있고 인간들이 느낄 수 있는  그것이 그것을 보는 눈이 밖에 눈입니다. 안에 눈은 세상 사람들에게 암만  말해도 모르는 그 인간성을 초월한 영감으로 되어지는 그 면을 보는 것을  가르쳐서 안 눈이라 이랬소. 안팎에 눈이 가득 찼다 눈이 무슨 겉어머리 안팎에  눈이 가득 찼습니까? 그것을 상징해서 그렇게 말해 놨다 그거요.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보기에 얼마나 미끈합니까?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그 말 한 마디면 다 됐소. 다 간추리면 '예수 잘  믿으라' 말 한 마디뿐입니다.

 신구약 성경과 영감 전체는 예수 잘 믿으라는 한 마디 뿐이요 그렇지만 예수 잘  믿으려면 예수를 잘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잘 믿는지 그게 문제라 그거요. 집  지으라는 말 한가지라.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하는 이것도 여러분들이 가서 주석을 찾아 봐라  말이요 얼마나 엉터리 지식들이 많이 있는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제사는 제단 위에 잡아 올려놓은 것이 제물인데  일반 제물은 잡아 올려놓은 그것이 제물인데 이거는 산 제사라고 한 것은 이것은  심신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심신의 기능이 끝나지 안하고 심신의 기능이  있어서 이 심신이 움직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작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그 심신이 하나님에게 드려서 제대로 움직이는 것이 잡아놓은 짐승처럼  없는 이것이 되어야 된다 이거요.

 이것이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라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 이게 돼야 요것이  된 것 만치 요것이 콩알만치 됐으면 그 다음에는 이 세상에게 피동 되지  아니하는 것이 콩알만치 거기서 싸우면 됩니다. 그것만치 되지 그 이상은 안  돼요.

 세상에게 피동 되는 것이 인간들인데 세상에게 피동 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소 전부 여기 다 시대에 다 피동 되지 시대에 피동 돼서 시대를 역류하는  사람이 없다 이거요   모두 세상이 이러면 그대로 따라가고 저대로 따라가지 희로애락 비판 평가가  전부 세상을 따라서 이렇게 거게 피동 되어서 세상 소산이라 그 말이요.

 이렇게 되는데 그 세상 소산을 따라 망할 것이요 세상 피동은 다 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안 돼야 되는데 이제 세상, 세상에게 피동 되어 환경의 소산이  되지 말아라 환경에 피동 되지 말아라 세상을 이겨라 암만 해 봤자 못 이긴다  이거요.

 세상을 이기려고 하면 그 뿌럭지는 어데서 시작해야 되느냐?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린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된다 이거요. 이거부터 연습이 돼야 돼. 이런데  허욕쟁이들이 돼 놓으니까 전부 막 먹으려고만 생각해서   그때 여기 장 장로를 한 번 설교를 시켰더니마는 그 장 장로 설교에 나는 한  마디 기억하고 있습니다. 도박신앙이라 도박신앙 전부 이 땅 따르고 하는  노름하는 신앙이라 뭐 농사지을 것 없이 그저 앉아서 그만 노름해 가지고 뺏는  도박 신앙이라 전부 실지로 일은 하지는 안하고 전부 공짜 배기로 얻으려고 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로 준다 하니까 공짜 배기로 얻으려는 이 모든 것을, 이런  신앙가요 이런 목사들이기 때문에 전부 이 도박 목사 도박 장로 도박 집사 도박  신자 그분이 그 말을 참 바로 말했습니다.

 그분이 지금 그만 언제 한 번 그 잘못된 걸 말해 줬더니만 서도 그만 다시 안  오는데 그분이 그때 종종 오면 여게 강단에다 뭘 하나 써다 놓습니다. 놓는데  (알구진데) 잘못된 데 빠져 가지고 있소. 이단에 빠져 가지고 좋은 점은 좋은  점인데 그게 뭐냐 세밀히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 거꾸러지고 말았다 이거요   여기 박윤성 목사님 주석을 그분이 혼자 힘을 써서 다 출판했습니다. 참 아주  진리를 다 좋아하는 분입니다. 이런데 그분이 내가 저 금정산에서 집회를 하니까  집회하고 난 다음에 오더니마는 말하기를 그때 내가 전도사일 땐데 '조사님'  나하고는 친한 때입니다. '조사님 아 그 강단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고 자꾸 이래 하는데 그 교인들이 뭐 알아듣습니까? 아 대충  이래 말만 해 놓으면 성령이 오셔서 이렇게 감동시켜야 되어지는 것이지 그  무식한 교인들이 그거 어떻게 다 알고 있기로 그렇게 그 복잡한 그거 도로  교인들에게 번민을 주는 것 아닙니까?'  내가 설교하면서 들으니까 자꾸 이래 머리를 흔들어 귀찮다 이거요 아,  그러다가 졸다가는 또 이래 흔들고 이래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말은 은혜로 된다는 말도 있는데 값을 내지 말고  값없이 사라 이래 값없이 사라 이래 값없이 사라 그 말은 대가는 되지  아니하지마는 네 전부를 다 기울여야 된다 이거요. 기울려, 거게 참가가 된다  이거요   그랬는데 그분이 이렇게 깨닫는 것을 원하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분이 세일  교파로 넘어 가 가지고서 그리 가자고 나한테 책을 가져 와 가지고 권면을 몇 십  번했습니다. 말 해줘도 이 말은 안 들려요 그만 쉽게 '믿사옵니다' 하면 다 돼  버려요. 그만 뭉텅이만 하면 절로 다 따라요 이 신앙의 허욕이 된 이 도박 신앙  가져 놓으니까 따지기를 싫어한다 그 말이요. 말하면 그만 싫어해 가지고서 세일  교회로 갔다가 이제 그 친구들이 그래도 비참하게 돼서 '그리 말고 이제는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돌아오너라' 이래 가지고서 합동측으로 아니 총신으로  돌아 왔습니다.

 총신으로 돌아와 가지고서 그만 지금 총신에 엎드려 가지고 있는데 거기 가  있으나 저기 가 있으나 한 가지입니다. 사건을 만났는데 그 일을 하지만 내가  지금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치리 했으면 어떻습니까? 또 틀렸다 이거요.

 내가 틀렸다 소리하면 섭섭할 것 같아서 내 그 일을 그리 처리했는데 앞으로는  거게 이런 여건들이 생길 것입니다. 이런 여건 저런 여건 '이런 여건 저런  여건들이 생길 터인데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구, 그러면  잘못했구먼요' 한 여나므번 묻는데 여나므개 전부 다 틀렸소. 그래 가지고  일생동안 신앙생활 해 나가는 겁니다.

 우리교회도 그래 늙은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뭐 물어서 판단하라 하면 엉뚱이  같이 판단, 이러니까 항상 대립이라 신앙 생활, 신앙 생활 대립이니까 어느 게  옳은지 어느 게 틀렸는지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렸을 것 아닙니까? 둘 다  틀리기도 쉽지마는 그 옳은 것이 거기 하나 있다면 하나는 틀린 거 아니겠소?  그라면 안됩니다. 말귀를 같은 말인데 요 모떼기로 말하고 저 모떼기로 말하는  것은 고 모떼기로 말하는 것은 고 모떼기에서 들어올 그 이단이 있고 거게서  미혹이 있기 때문에 부득이 또 막아야 합니다.

 이러니까 까다롭게 역부러 어렵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말로 듣기도  어렵다는데 실지로 하기는 더 어려울 게 아닙니까? 여러분들 천하 사람이 먹도록  떡을 할라 하면 실지로 하는 것과 말로 하는 것이 자 어느 것이 어렵겠습니까?  말로 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실지로 떡 하는  것이 힘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그렇지 뭐 그렇지 않소  말로도 어려워서 듣기 싫고 못 따라 오는 게 실지로 뭐 따라 온다 말이요.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헛돼요. 이런 사람들 많다 이거요   교역자들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애. 이러나 판단이 없어 옳고 그른 것의  판단이 없어 하나님 미워하는 것 미워하지 못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 편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신본 인본을 전혀 몰라   이러니까 그런 사람은 참 빛 좋은 개살구라 허우대는 좋지마는 그 사람 믿어도  기회가 없어 소망이 없어 그걸 고쳐야 돼요 돌아서야 돼 그것을 가지고 자꾸  주장하고 써먹으면 나중에 가서 얼마 되면 나무가 가늘 때에는 이놈을 휘어서 막  곧으면 지끈 지끈 이러면 굽은 것이 곧아 가지고 담을 대고 이렇게 놓으면  곧아지지마는 이미 굳어 가지고 몇 십 년 커 놓으면 이래 아름드리 됐는데 뭐  어찌 고칠 수 있소 못 고쳐 그걸 곧게 하려면 톱으로 가지고 양쪽에 썰어 내야  돼. 자꾸 썰어 내야 돼. 썰어 내면 나중에 알맹이 가느다란 곧은 게 있지마는  그까짓 거는 쓰지도 못해 이라면 척척 부러진다 말이요   그 모양으로 하나님의 심판 해 가지고 톱으로 막 썰어서 이래 가지고서  알맹이만 내 놓으니까 그까짓 거 무슨 하늘 나라에 가서 옳은 희생이 있습니까?  못 쓰인다 이거요.

 그러기에 진리를 바로 깨달은 자는 변동이 없습니다. 진리를 바로 깨달았으면  그른 것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른 것도 알고 저 그른 것도 알고 사이비한  것도 안다 그거요.

 그 나라 사람이 다 옳다고 지지를 해도 다 지지하는데 그 사람들 보다 진리가  앞서 깨달았으면 이것 틀렸다 하면 오 년 십 년 몇 십 년 지나고 난 다음에 틀린  게 나온다 그 말이요. 그분은 진리를 깨달은 것이 그만큼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만큼 눈이 밝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말로 떡을 하면 하루아침에 천하 사람이 먹고도 남은 떡을 다 할 수 있다 하는  건데 말로 얼마나 쉽소. 실지로는 백 명 먹을 떡도 할라 하면 얼마나 힘이 드요.

말로 하는 것도 어려워서 그만 뭐이 혼동돼서 따라 오기가 싫고 아 복잡하다  듣기 싫은 그것이 그 실지가 없는 것을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들어 보면 실지가  있다 그 말이요. 자기 실지로 생활해 보면 말로 표시하는 그것만 가지고는 또  대충 입니다. 말로 표시 못할 그런 애로가 속에 들었고 그런 각도가 들었고 그런  요소들이 속에 내재해 있더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실행하는 신앙과 말로 하는 신앙과 실지로 같은 행위를 했지마는  그 행위의 뿌리가 어디까지 들어갔는지가 각각 다릅니다. 어데 까지 느껴서 그  행동을 했는지 어디까지의 각오 있어 그 행동했는지 어디까지 나갈 힘있는지  같이 외모의 행동이 같았으면 같다고 봅니까? 하나님은 그 속에 그것을 다  보시고 판단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 같이 사랑해도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그  질의 차이는 심히 큰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 듣는 것을 싫어한다 그 말이요. 그 말, 내가 매주일  듣습니다. 매주일 듣는데 그런 사람이 비판이 다 없다 이거요. 그걸 소위 말해서  잔소리라 이랍니다. 잔소리. 잔소리는 쓸데없는 소리지.

 이렇게 자꾸 요것을 가르쳐서 그 눈이 겨우 떨어져 가지고 눈이 떨어져서 그  면을 조금 보고 귀가 열려서 조금 그 면을 생각하고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라는 말은 양심을 가르치는데 양심이 구별하는 것은 인간의 말이 표시하는  것보다 양심이 둔합니까? 인간의 방언보다 양심이 예민합니까? 어떻소 남반에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양심이 예민하요 인간의 방언의 표시가 더 예민하요 예  어떻습니까? 양심이 느끼고 보고 알고 하는 것을 인간의 방언으로서는 표시를  못합니다. 인간의 심리학자들이 발표를 한다고 해도 그 심리학자들의 심리가  양심에 그 속에 그가 걷고 그가 보고 느끼는 것을 심리학자들의 발표로 발표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그것은 양심을 가르쳐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 무슨 말인지 그렇게 겨우 들려서 귀를 열어놓고 눈을 조금 열어  놨는데 마음을 좀 열어 놨는데 그만 어데 가 가지고서 어데 가 가지고서 귀를  막고 양심을 막고 눈을 가뤄 버리는 얼렁뚱땅으로 그만 도박 신앙이, 실지로  시공한해도 된다는 '야 이 천치야 일할 게 뭐고 부적만 한 장 사 가지고 붙이면  당장에 부자 되고 만사형통 되는데' 또 그런 것을 부러 쓰러 돌아다니는 놈 있고  '아 부적 가지고는 빈약해 안 된다 방을 봐 가지고 삽짝문을 요리 내고 저리  내고 그 문 하나만 잘 내면 그만 당장에 복이 들어오는데' 그것 따라 다니는 자  있고 '아 그것도 필요하지마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조상 좋아야 안되나  묘를 잘 써야 된다'  이러니까 '아예 네가 한 번 참 제일 천국에서 한 번 울리는 사람이 한 번  되려거든 함부로 보따리 하나 짊어져라' '무슨 보따리' '너거 아버지 어머니 그  해골 다 가지고서 보따리에 짊어지고 이제 팔도 강산을 돌아다니자 돌아다니면서  어디든지 봐서 그 묘 자리가 명산이거들랑 그 살며시 한 밤중에 가 가지고서 폭  구멍 뚫고 그 안에 소르르 가루만 그 안에 가루를 부숴 가지고 그래 가지고서  짊어지고 돌아다니다가 제일 좋은 명산 팔도 강산 돌아다니다가 명산 만나거들랑  묘 꼭지 말복 착 박고 그 한 서너 자 되도록 박아 가지고서 소르르륵 가루를 그  안에 집어넣어 놓고 그 뭐 그라면 삼 년만이면 운이 돌아오기 시작하면 네가  전국을 울릴 거다' 또 허욕쟁이 그놈은 그것 따라 다닙니다. '야 그것 참 그럴  듯 하다 모두다 명산 써서 명산 집이다 명산 집 자손이다 명산 한다 그 맞다  가자' 똑 돌아다니니 이놈이 풍수 놈이 꼬아 먹으려고  풍수 쳐놓고 그 말 있습니다. 약이 좋은 약이 있지마는 풍수 손자 똥을 구해서  쓰면 당장 낫지마는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풍수는 자손이 다 망해서 풍수  손자가 없다 그 말입니다. 이게 풍수인데 이 어리석은 게 꼬여 가지고서 아버지  어머니 해골 부숴 가지고서 짊어지고 갑니다. 가 가지고 이놈이 가서 이러니까  막 식사 대접하느라고 뼈를 빻아 가지고서 뼈를 가지고서 요 산 보고 요건  못하다. 이놈이 다 안다 그 말이요. 다 그 무슨 집이 역사를 조사를 했다 이거요   그래 가지고서 '야, 여기는 참 좋기는 좋은데 이게 천하 명산이다 명산인데  이게 어떤 자손인지 한 번 자손 한 번 알아보자' 그래 가지고 인제 자손 안다  하면서 잘 먹고 잘 입고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그 자손들이 굉장히 잘 돼 가지고  있고 참 전국에 일기 예보는 아주 잘돼 가지고 있거든 그 알아보고 난 다음에  어찌되지 그분의 뭐 그 오 형제인데 그 아들은 어데 갔고 그 또 손자 대는 어데  가 있고 그래 가지고 그분들이 전국이 이렇습디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그  명산서 그렇지  이래 가지고서 '자, 네가 이 산에다 지금 그 투장을 하는데 주인 모르게 투장을  하는데 이거 하면은 내가 네가 이것 택해 줬으니 네가 날 얼마 줄래' '보다시피  내가 찍해야 재산 있는 것이 논 몇 마지기밖에 더 있습니까? 아 그걸 다 주면  굶어 죽을 거고 한 마지기만 드리지요' 그래 한 마지기 받고 똑 써 놓는다  말이요 써 놓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암만 생각해도 '내가 안되겠다 그 뫼  파내라 나 다른 사람 줘야 되겠다 다른 사람은 지금 얼마를 줄라 하는데 네가  그래 가지고 되겠나' 가서 조우니까 이것을 지금은 그라면 지금 알린다고  조우니까 어째 또 한 마지기 준다 말이요 솔빡 다 뺏들어 먹고 되기는 뭐 돼  나중에 다 망해 버리니까 그 사람 데리고 시비도 못한다 그 말이요. 시비할라  하는 그 이제 풍수 그놈도 일이지마는 저도 일이거든 그 잘난 자손들한테 뫼  꼭지 썼다 하는 날이면 저도 그만 죽는다 그 말이요. 꼼짝도 못하고 그렇게 꼬아  먹는다 말이요.

 이것 모양으로 이런 신앙에도 허영자들이 있습니다. 이래서 그만 왜 집회를 못  가게 하느냐? 거기 가면 '아, 믿사옵나이다' 하나 하면 다 되는데 그만 그거만  듣고 와 가지고는 설교를 저거 안 듣습니다. 신앙 행위를 고쳐라 해야 안  고칩니다. 이래 가지고서 안수만 받으면 되는데 아 능력만 받으면 성경 볼 것도  없고 다 되는데 이런 허영 덩어리가 있다 이거요.

 그 장 장로라는 사람이 한 번 전도관에 갖다 오더니마는 자기가 감람나무라고  이라면서 와 가지고서 턱 와서 말하기를 허풍을 떠는데 '내가 감람나무 둘인데  하나는 박태선이고 하나는 나다' 하면서 내가 낸데 그 목사님이 그때 내가  목사지마는 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데에 설교 준비할 것 없습니다. 내가  앉아서 준비 안 해도 은혜 되게 하려면 할 수가 있고 설교 준비 암만 해 봤자  은혜 안되게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이것 그만 전능이라 이라면서 그래 막 이라고  손만 대면 그 마구 떨고 피똥을 누고 막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모두 겁이 나  거기 떨어진다 말이야 떨어지고 그래 가지고서 손을 대니까 벌벌벌벌 떠니까  그만 떨릴 거라 말이요 이래   그러니까 반항을 못해요 다만 '아이구, 나도 안수 받아 가지고서 지금 능력  있도록 안수 해 주십시오' 이래 안수 받으러 왔는데 떨면서 벌써 겁이 나 기압  돼 가지고 하니까 또 귀신이 또 기압을 해 가지고서 대니까 마음이 쩌리  쩌리하다 그 말이요. '아이구, 쩌리 쩌리하다 됐다 쩌리 쩌리하다'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또 쩌리 쩌리 떱니다.

 이라는데 와 가지고 이러기 때문에 '그라면 자, 내가 설교 잘 하도록 하는 것은  내가 네 덕 안 보겠다 못 하구로 하는 그것부터 해 봐라 오늘 아침에는 내가  설교를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인도할 때에 설교 할 때에 내가 은혜가 없도록  그래 밑에서 한 번 내게 *을 써봐라 그만 그 설교가 되는가 안 되는가 보자'  그래 놓고 그 날 아침에 이제 설교를 했는데 여전히 꼭 같다 이거요.

 이라니까 '그것은 멀어 그렇다 멀어 그러니까 이제 내가 안수만 해서 해  가지고서 설교 못하게 하면 당장 입이 막히고 이제 그럴 것이다' '그럼 그래  봐라' 자, 내가 손을 대니까 똑 대 가지고서 이래 막 이래 가지고 주여 뭐  어짜고 이래 야단을 지기도 그 아무 시작도 안 하니까 이래 야단을 지기도 그  아무 시작도 안 하니까 또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안 된다  제 딴에는 칼빈주의가 제일 큰 거니까 칼빈주의가 속에 꽉 박혀 있어서 요동이  없다 그만 안되나 너 그 짓 하지말고 다시 돌아서라 그 사람도 좀 허영이 있기  때문에 거기 자꾸 이래 미혹을 많이 받는다 그 말이요. 집회에 벌로 가 놓으면  실컷 만들어 놓은 것 다 가뤄 버리고 보자기로 싸 버려서 허영 보자기 허욕  보자기로 싸 놔서 헛일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설교에 대해서 그 말귀를 다 알아듣고 난 다음에 라야 그 다음에  그 순서의 신앙 생활을 시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다고 하는데  거의 다 틀렸다 이거요 비판하는 것 평가하는 것이

 오늘 아침에 요거 몇 가지 순서, 첫째 산 제사로 드리고 둘째 뭐요? 둘째가  뭐지 둘째가 뭐지? 그라면 둘째가 뭐 돼. 남반에 그라면 뭐 되지 둘째가 뭐요  그것 모르면 헛일이라 그 말이요. 신앙 생활 헛일이라. 산 제사를 드린 양 만치  그 다음에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함을 받아 세상을 이긴다 말입니다.

세상에게 피동 되지 않는다 말이요 환경에 피동 되지 않는다 말이요 환경에 피동  되지 안 할 수 있소 환경을 이길 수 있어  아무리 성내는 사람이라도 내가 거기 피동 되지 안 할 수 있고 아무리 재미있는  사람이라도 거기 피동 되지 안 할 수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거기  피동 되지 안 할 수 있고 돈에도 피동 되지 안 할 수 있다 그 말이요. 이 세대를  따르지 안하고 본받지 안하고 변화함을 받을 수 있다 말이요. 세상을 이길 수  있어  그러고 나면 셋째는 뭐지요? 또 셋째 이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된다  이거요  그러면 넷째 뭐 됩니까? 그라면 이제 믿음의 시발이 된다 이거요 이것도  쉽지마는 또 산 제사로 드리는 것, 세대를 본 받지 않는 것 그런 것도 또  실지로는 범위가 넓다 그거요 그것도 모르기 때문에 말을 해야 돼, 알려 줘야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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