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성장법


선지자선교회 1989년 5월 10일 수후집회

 

본문 : 누가복음 17장 7절∼10절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지극히 큰 위력 위대한 힘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하나는 흙에 들어가는 것마다 다 흙이 되고 마는 것이 그것이 흙의 하는 일이요  또 전통계입니다. 뭐 쇠도 들어가면 흙되고, 나무도 들어가면 흙이 되고, 돌도  들어가면 세월이 많이 지나면 다 흙이 되고 맙니다. 흙으로 비한 것은 세상을  비한 것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이 신앙이 대개는 보면 그만 세상을 접하면  세상에게 삼켜져서 세상화 됩니다.

 그 비유에 겨자씨는 그것이 흙에 들어가야 성공을 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자의 신앙이라는 것도 세상을 접한 데에서 비로소 승리도 성공도  목적 달성도 있는 것이지 세상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이 마치  겨자씨가 흙에 들어가야 그것이 성장해서, 나물인데 채소인데 그것이 나중에는  나무같이 그렇게 크게 되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자의 신앙 생활이 세상을  떠나서 불교 모양으로 염세주의로 그렇게 세상을 피해서 떠나 있으면 마치 물  떠난 배와 같이 아무 가치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염세주의가 아니면서 또 세상화주의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세상에 처하는 것이, 세상 속에 있는 것이 기독교요 또  세상으로 더불어 부절히 접촉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게  감염되어서 속화되는 세상화되는 그런 것이 기독교가 아니고 세상으로 더불어  전투해서 세상을 이기는 극세의 것이 기독교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와같이 신앙을 가진다는 이 신앙이 그만 서울 가면 서울 신앙되고, 미국 가면  미국 신앙되고, 공산 치하에 가면 공산화 신앙되고 이렇게 세상에게 감염되어  삼키워져서 세상화되는, 세상의 종되지 않는 이것이 겨자씨 믿음의 위력 중에  하나입니다. 지극히 큰 능력 중에 하나입니다.

 이래서, 아마 공산 치하로 이렇게 정권이 바꾸어지는 월남이나 캄보디아나 또  소련도 그랬고 중공도 그랬고 이북도 그랬고 그렇게 공산 정치의 나라가 될 때에  거게서 공산화되는 공산주의적인 기독교 신앙을 하지 안하고 거게서 변치 않는  신앙으로 그분들은 다 세상을 이기고 공산주의를 이겨서 완전 승리인 대개는  순교로 승리의 끝을 맺었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안한 이 생명 없는 신앙들은 다  공산화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 남한도 남북 통일을 말하니까 멋도 모르고 지금 말하고 있고 뭐 저거가 가  가지고 우선 말하니까 달콤하게 밥 한 그릇 주고 친절히 환영하고 하니까 좋은  줄 알아도 김일성이라는 그 사람이 그렇게 못난 사람 아닙니다. 그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지금 소련 중공 우리 한국에 그 사람을 당할 만한 그런 비중될 만한  그런 인물이 없습니다. 그 잘난 사람입니다. 여게서 저거가 가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말한다 해도 그것은 어린 아이 주물듯이 손에 대고 주물고 잡다히 말하고  있는 것이지 그 사람이 그렇게 쉽게 감화되고 설득되고 설복되고 그럴 사람은  아닙니다.

 그 인물은 나는 잘난 인물로 그렇게 봅니다. 조그만한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세계를 대항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그 나라에 대해서 머리 숙인 것이  없고 또 배짱 안 낸 데가 없습니다. 다 그래도 갋지를 못한다. 이제 이것으로써  결론을 지우고 했지마는 그 배짱이 강한 사람이라.

 이런데 남북 통일을 말하는데 그가 '우리 이제까지 하던 이 공산주의는 치우고  민주화 통일로 민주주의를 따라가자' 이렇게 할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백 프로  아니라고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러면 남한에 있는 기독자들은 거기에 감염되지  안하고 속화되지 안할라고 하면은 완전 승리를 이루는 순교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 남한에 볼 때에 순교를 각오하는 사람이나 순교할 만한 그런  신앙은 제가 볼 때 별로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이 평안 무사한 데서도 밥 한  그릇에 따라서 움직이고, 돈 한 봉투에 따라서 움직이고, 자기 조금 위해 준다고  다 거기에 완전히 자기를 팔고마는 이런 신앙 정도 이 총공회 교리와 신조와  행정이 맞저 안해서 지금 내두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이기고 자기  신앙의 지조를 지켜 나갈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들은 지금 감투를 만들어 마련하느라고, 면류관 마련하느라고  야단입니다. 자기의 활무대를 넓힐라고 지금 야단입니다. 또 교인들을 지금 많이  모을라고 야단이고 가면 야단이 되고 오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라 하는  것은, 일곱 교회와 일곱 촛대의 비밀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목회자는 그 목회  아래에 있는 모든 교인들의 구원과 심판을 다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가 붙드나 간 사람은 그 사람은 벌써 자기에게는 다 책임이 면제  됐습니다. 그러나 있는 사람은 자기가 그의 구원과 실패를 다 책임지기 때문에  심판대 앞에 갈 때는 반드시 그 책임자가 대신 계산할, 대신 계산한다. 일생 산  것을 목회자가 그 교인과 함께 가 가지고 이제 검사를 맡습니다. 계산을 댑니다.

이 성경에 다 계산한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 책임지고 계산할 그것은 생각지 안하고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어짜든지 그 사람의 마음을 붕 뜨게 좋게 해  가지고, 마음을 활짝 열어 놓도록 해 가지고 그에게 있는 돈이나 뽑아서 '보자,  오늘 주일은 돈이 얼마 나왔노?' 이런 거나 계산하지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설 그  심판을 계산하는 그런 사람은 대단히 희귀한 그런 형편이라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런데 지금은 어떤 때냐? 지금은 여게 목회자들도 그러하고, 권찰들도 그러하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붙여 준 사람이면 자기는 자기 마음 속에 떠날 사이가 없이  품어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어떤 환경, 주위, 시대, 형편, 모든 정사, 권세,  어두움에서 세상을 주관하는 그 세력, 악령 이것으로 더불어 싸워서 그 손에서  구출 해야겠고, 또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너에게 갚아 주겠다 주인의 즐거움에 와서  참여하라 하는 이 날이 있으니까 그 날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목회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은 세상에 있지마는 마음도 거게 가 있고 계획도 거게 가 있고,  소원도 거게 가 있고 거게서 소원 계획이 마음에 뜨거워지고 눌려지는 모든 그  마음의 움직임을 현실이라는 요 현실에 와 가지고 그것을 다 이루어 가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입니다.

 이래서 오전에도 이 겨자씨 믿음 이 믿음은 땅에 들어가도 썩지 안하고,  땅화되지 안하고, 세상화되지 안하고 그것들을 오히려 밥으로 삼아 가지고  그것들을 이용하고 정복하고 승리해서 자기의 그 신앙이 성숙하도록 이렇게 한다  하는 그런 말씀을 오전에 했습니다.

 이러나 내가 보기에 그 안면에, '아이구 지금도 내가 이 신앙이 속화가 되나 안  되냐? 주위 환경화되나 안 되나? 마누라화되지 안하나 하나? 혈육 자녀의 화  되지 아니하나 하나? 신앙 동역자들화 되지 안하나 하나? 교인과 장로, 세력 있는  장로들의 그화되지 안 하나 하나?' 이거야 뭐 누워서 놀기요. 이거는 싸움도  아닙니다. 총을 들이대고 죽인다고 하고 고문과 고형을 장기간을 계속하는 그런  데다 비해서 이거야 뭐 어려울 게 뭐 있습니까? 이래도 '어라, 양보해야 집구석이  편치.' 천하에 자기 통치하는 게 제일 어렵고 둘째로는 자기 아내 통치하는 게  둘째로 어려워! 마누라 사람 돼 가지고 있는 그게 무슨 신앙 생활이야! 안 돼!  내가 경험한 대로는 많은 사람들이 다 이세벨한테 다 삼켜져서 다 실패되고  말았어.

 내가 과거에도 이러기 때문에 고신에 있을 때에 모두 다 수뇌 목사님들의  사모님에 대해서 내가, 너무 하는 것이 모두 다 권세는 여자들이 다 잡고 있어.

사모들이 말하는 대로 전부 목사들은 다 따라 합니다. 그라니까 똘똘 뭉친  목사들도 그만 사모 분쟁으로 그만 다 분쟁되고 이와같이 하기 때문에 내가 그때  졸업하는 날, 그날 모든 사모님들이 오는데 지금은 차가 많지만 그때는 차가  없습니다. 아주 택시 타는 것은 아주 고급들이라야 타지 그리 안 하면 타지 못해.

그래 제일 수뇌 목사님 네 분의 사모가 오기 때문에 내가 거리에 서서 맞이해  가지고 인사하기를 '여왕님들 오십니까?' 내가 인사를 이래 했어. 이래 놓으니까  얼마나 싫어하겠소? 그라면서 떡 나한테 말하기를 '그 시골 조사 그게 다른 온  졸업생들 예물 무더기 전부 다보다도 그게 더 크네. 그거는 똑 집채 무더기 같네.'  그 많았습니다. 선물이 제일 많았었어. 뭐 전국에서 들어오니까.

 그래. 이렇게 우리는 '네가 스스로 믿음에 있나 없나 스스로 시험해서 확정을  해라' '나는 한 닢푼치다. 나는 두 닢푼치다. 나는 진공이다. 믿음은 없다. 나는  지금 믿음의 실력이 이거 세상하고 반반밖에 못하니 두렵겠고 이기지는 못하겠다.'  세상은 그들의 세상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를 그들이 자유할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몸을 그들이 자유할 수 있고, 내 생명을 그들이 자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것들을 자유할 때에 내가 이런 것을 다 그들에게 내어 줄지라도  빼앗길지라도 신앙을 안 뺏기고 가질 수가 있겠는가 하는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까?  자, 마음으로라도 한번 그런 것을 매일 한번씩이라도 생각해 보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정직하게. 공연히 '자랑삼아 드는 거니까 안 든다' 그렇게  생각지 말고. 없습니다. 없어. 그라면 또 한번 물읍시다. 그러면 매일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뺏들면서 '네가 신앙할라면 이거 내놓고 이제 이거 가질라면 신앙  내놔라' 할 때에 신앙 내놓고 그거 가지고 또 신앙 가지기 위해서 그것을 내놓을  사람들, 그런 작정과 각오를 정 안 되면 내가 신앙은 줄 수 없기 때문에 '신앙  가지기 위해서 내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다 내 줄지라도 최종으로 신앙만은  내가 내어 줄 수가 없다' 이렇게 다짐을 다져 본 사람 손 들어 봅시다.

고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더러 많이 있네. 자꾸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라면  겸손해집니다. 이라면 충성이 나옵니다. 이라면 안일주의 허영주의 허욕주의로  간판주의 명예주의, 유다서에 기이한 색을 따라간다. 다 호색가들이라' 호색가를  음행하는 그런 남자로 보지마는 그까짓 거는 다 소용도 없고, 그거는 아니요.

세상의 번쩍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가리켜서 이제 호색한다 그렇게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모두 다 번쩍거리는 거 그거 원해서 지금 뭐 그것 때문에 서울  가니까 변하고 미국 가니까 변하고 일본 가니까 자꾸 다 변화합니다. 그 별수  없이 십 년 보고 난 다음에 십 년 후에 보니까 확 변해서 완전히 알맹이만  변하는 게 아니라 꺼풀까지 다 변하지 안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이거 남  욕하는 게 아니오. 바른 대로 말하면, 내가 나팔 불지 안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심판받지 않소? 사람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총을 받아도 하나님 앞에 당하는  것보다 낫지.

 이래서, 이 겨자씨의 위력 중에 하나는 썩지 않는 것이오. 썩지 안하고 자라는  것이오. 썩지 안하고 자라는 이 신앙을 가지면 둘째 위력은 뭐인가? 온 세상이  그거는 얼토당토 안한 아주 허무맹랑한 일, 그것은 모든 세상이 부정하는 일이요  역사에 없는 일이라도 단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둘째 믿음입니다. '뽕나무야  뽑혀라' 이것이 무슨 세상에 그와 같은 일이 있었습니까? 온 세상과 반대요. 온  세상과 역사와 모든 이치와 온 세상에 전부 무슨 존재나 운동이나 모든 거와도  전부 반대되는 이거는 이해 못 할 이렇게 자기 주관일랑 냅두고 세상하고도 맞지  안하고 자기 주관과 이 백팔 십도의 반대되는 그런 것이라도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기 때문에 단행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여게 말했습니다. '뽕나무야 뽑혀라  옮겨져라 바다에 심겨져라' 이것을 행한 거 안 했습니까? 그래 하라고 명령하지  안했습니까? '명하였을 것이요, 명하였을 것이요, 겨자씨 믿음은 이것을 명하였을  것이요, 이렇게 행할 것이요, 행했을 것이요, 이렇게 이치에 안 맞고 천인 만인이  다 '그거는 틀렸다. 안 된다. 하지 마라. 그거는 아주 틀렸다. 그거는 안 된다.' 온  세상이 반대하는 일이라도 조금도 거리끼지 안하고 단행한다. 명하였을 것이요  단행한다 그 말이오. 이것이 둘째 겨자씨 믿음의 위력입니다.

 셋째는 '그것들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것이 셋째 위력입니다. 얼토당토 안한 일이나 그가 할 때에 모든 것이 다  응종합니다. 바다도 옹종했고, 뽕나무도 웅종했고, 운반하는 것도 응종했고 전부  순종했어. 이것이 아무리 제가 날뛰어도 열매에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안하면 모든  피조물들이 응종하지 않습니다. 겨자씨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저거 보기에는 시뻐  보이지마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말한 것이면 이루어지요. 잘못한 것이야 안  이루어지지.

 이거 셋째 위력인데 이 겨자씨가 아주 조그만한 것인데 그것이 땅속에 들어가서  썩어서 땅이 되지 안하고, 이제 짚동도 집어넣으면 좀 있으면 그만 다 흙되고  이라는데 그 조그만한 게 썩지 안하는 그 이유는 뭐이요? 그거는 생명이 속에  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 있는 믿음. 우리의 생명을 늘 말해서 우리  생명은 뭐이라고 말했습니까? 피, 성령, 진리, 하늘의 소망 이것을 생명이라고  말했어. 그러면 우리 믿음 속에, 생명이 있어야 세상을 이길 수가 있고, 또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의 명령이면 온 천하가 반대하고 부정된 거라도 단행할 수가  있고, 또 그랄 때에 모든 피조물이 어떻게 어려움이 있어도 응종한다 하는 것이오.

그러면 그래서 이 겨자씨 믿음에서는 생명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 그라면  겨자씨 믿음을 현실이라는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찾았으면 그게 뭐입니까? 그게 뭐이요? 그게 뭐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게 뭐이요? 진리요, 진리.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게  진리입니다. 진리. 또 그 속에 뭐 있다 했어? 예수님의 피가 있다고 말했어. 그  속에 삼위일체의 전지 전능이 있다고 했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무한한  그 소망의 은혜가 다 그 속에 가득 채여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믿음의 생명입니다. 이것이 없이 제가 제 맘대로 믿는다 믿습니다. 제가 봐도 제  마음을 분석해도 마음은 어만 데 가 있고 믿는다는 것을 그거는 백분지 일도 안  되는 것을,제가 분석해도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을 뭘 그걸 믿는다고 그렇게 해  가지고 사람만 속여 먹고 나가니까.

 왜? 과거에 조선 교회로 있을 때에 그렇게 노회장 총회장 감투 싸움 해 가지고  장자되기만 원했지마는 막상 하나님이 저울로 달라고 할 때에 신사참배 문제  오니까 다 그것에게 죽기가 두려워서 다 굴복해 가지고 다 세상화됐던 것이오. 다  세상화됐어. 그 사람들 말 잘하고 똑똑하고 유식하고, 모두 다 학벌들이 훌륭하고,  또 배짱도 있고 웅변도 있고, 또 아주 기백도 있고 다 그런 사람들이지마는 노아  홍수를 인간 요소의 어떤 특수하고 구비한 것이라도 그것 가지고 홍수 심판을  면하지 못했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에 이 생명 있는 믿음, 그러면 생명은 있는대 그것이 내것이  되는 것은 내가 믿으면 내것 됩니다. 내가 자꾸 내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고 애를 쓰고 하나님의 그 뜻은, 이 뜻대로 할라 하면 목이 베이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이 뜻대로 할라 하면 공산주의자들에게 당해 가지고 당장  사형도 받을 것이고 별별 일이 있지마는 생각합니다.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난 다음에 '이 뜻은 진리라. 전능의 능력을 가진 진리라. 이 속에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있어. 여게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를 만든 대속의 이  중보가 있어, 내가 찾은 하나님의 뜻 그 속에는 전지 전능이 있어, 하나님의  충만이 들어 있어.' 이것을 내가 자꾸 생각합니다.

 '내가 찾은 이 하나님의 뜻 이는 뭐이냐? 진리다. 하나님은 뜻인데 진리다. 이  속에는 피도 있고, 성령도 있고, 또 하나님의 능력도 있고, 우리들하고 약속한  모든 소망도 다 있는 이 진리다.' 자꾸 생각하면 그뭐 있는 게 자꾸 생각하면 이제  자기가 알게 되는 것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자꾸 믿습니다. 자꾸 말하면  인정하는 것, 인정하면 제것 돼.

 내가 찾은 현실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내가 생각하고 믿으면 그  뜻은 지극히 큰 능력이요, 보배요, 만능이라.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는  전부가 그 속에 다 들어 있어. 우리 현실에 하나님의 뜻은 그 뜻보다 내게는 더  보배가 없어, 가치가 없어. 그 안에 다 들어 있어. 이것도 생각해서 알고 믿으면  뭣 됩니까? 생명 있는 믿음됩니다. 생각하고 그라면 알아지고 알고 난 다음에는  믿으면, 인정하면 믿으면 그만 그 믿음의 생명이 됩니다. 생명 있는 믿음이 돼.

이라면은 세상에게 썩어지지를 안합니다.

 제가 조그만한 것에 가 가지고서도 썩어져서 뭐 그까짓 게 세상에 있는  조그만한 이 감투만 져도 야단이고, 조그만한 감투만 줘도. 그래 가지고 감투 사러  다니느라고 야단입니다. 여게 가서 명예 간판 저게 가서 또 무슨 감투 무슨 감투  이래 가지고 부지런히 감투 사서 감투가 꽉 찼어. 어리석은 자야! 어리석은 자야.

그것이 너를 구원하지 못한다. 너는 지금 그런 것을 마련할 그런 허영과 허욕의  때가 아니다. 네가 산 믿음 가져라.

 산 믿음에 대해서 생각이나 해 봐요 ! 이리 가야 밥 잘 먹고 옷 잘 입을까 그런  거나 생각하고 요리 가면 사례 많이 받고 내가 요래야 지금 교인들이 요 알고  은혜 받아 가지고 연보 많이 할 것이다 해서 십일조 많이 나오는 연보 많이  나오는 그런 거나 계산대지 자기가 산 믿음을 가져야 되겠다는 여게 대해서 관심  가진 목사님들이 많지를 못합니다.

 내가 우리 진영에 있는 교역자들 내가 볼 때에 여게 대해서 산 믿음 가질라고  이제 거게다가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 별로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으면 그게 곧 겨자씨 믿음의 요소인데 그걸  찾을라먼 힘이 들지 않소? 산 제사 드려야 되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안해야 되고,  날마다 새로와져 가지고 점점 새로와져서 변화가 돼야 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된다 하는데 여게는 기울일 시간이 없어.

엉뚱한 데만 소망 가지고 야단이지. 이러니까 이거 다 하나님이 이번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신 것이니까 회개를 해야 됩니다.

 이래서 믿음은 어쨌든지 겨자씨 믿음이라야 됩니다. 썩지 않는 믿음이라야, 우리  믿음은 겨자씨가 땅속에 들어가야 성공을 하는 것처럼 우리 믿음이라 하는 것은  세상하고 전해야 거게서 성공이 나옵니다. 세상하고 접해서 세상하고 전투해  가지고 세상을 내가 먹어서 양식을 삼아야 성공이 있는 것이지 세상에게 삼켜져  가지고 성공 있지를 안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정치가 틀렸다' 하는 것은 이제 그 진리 가결 이것을  틀렸다고 하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정실의 사람이 되지 말고, 지방 정실  혈육 정실 정실의 사람이 되지 말고, 부부 정실 정실의 사람이 되지 말고 정은 다  옛사람에게 속한 것이니 다 죽여 버리고 이제 네가 진리에 속한 사람이 되어져라  하는 이것을 자꾸 말해서,  진리에 속하다니?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안  떠나고 지시하는 곳에 갈 수 있어요? 이거 안 떠나고 지시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어요, 없어요? 딴 떠나고 갈 수 있어요, 없어요? 안 떠나고는 못 가요. 이런데  오늘 신앙은 이거 하나도 안 떠나고 그대로 그거 하면서도 지금 하나님 인도를  따라간답니다.

 이러면 세상에 썩어지지 안하고 세상하고 전투하는 이 신앙 생활을 실지로 해  보면 거게서 자기는 이거 전체는 다 '사람 좋게 하랴, 하나님 좋게 하랴' 왜? 그  둘은 꼭 맞서 가지고 있지 없을 때는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좋게 할라 하니까  사람 좋게 하는 거 할 수 없어서 하나님 좋게 하고 사람 좋게 하는 것은 눈물로  어짤 수 없어 버린 사람들은 마지막에 사람 좋기를 하나님이 다 해 주십니다.

 이러나 하나님 좋게 하는 걸 뒤로 두고 우선 달콤한 것 위해서 사람 좋게  날뛰는 자 쳐놓고, 보십시오. 아직 다 안 살았습니다. 오 년이고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사십 년이고 마지막 환난 때까지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장래를 어떻게  하는가? '스스로 속지 마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자기 육체를  위해서 심은 자는 썩어진 것으로, 성령을 위해서 심은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  사람의 행한 열매는 제가 그대로 먹는 것 아닙니까?  그라면 세상에 썩어지지 아니하는 신앙을 가지면 둘째로 권위가 뭐입니까?  둘째로 권위가 뭐이요? 첫째로는 썩어지지 안하는 것이 첫째 권위, 둘째 권위는  뭐이요? 둘째 권위는 뽕나무를, 하나님이 뽕나무 명해서 '뽑혀라 해라' 이런  소리야 이거 어찌 순종할 수가 있겠소? 이거는 순종할 수 없어. 그렇게 하라 하는  이 많은 순종할 수 없는데 순종해. 요것은 천하를 부정하고 전인류를 부정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다 그와 반대되는 것이라도 의심없이 단행한다 그 말이오.

요것이 단행의 권위라. 이거 무슨 이치인지 알아들리요? 이해가 돼요? 이  안경쟁이 이해가 돼요, 이 청년? 이해가 돼? 이해가 돼, 정말로? 어데서 왔어?  뭐라 하노? OOO교회면 잘 배웠기 때문에 이해가 되겠지.

 여기 혹 처음으로 온 분들은 이 말하면 '그 말도 같지 않는 소리한다' 그렇게  들려질 수가 있습니다. 제가 고려신학교 다닐 때에 OOO목사님이 OO교회에  시무를 했는데 집회를 해 달라 해 가지고 제가 거게서 금요일날 밤부터 월요일날  아침까지 그 사이 시간 있어서 신학교 공부하는 시간 외에 시간을 타 가지고  거기서 집회를 했어. 한 마디도 못 알아듣소. 암만 해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어.

뭣인가 알송알송하기는 한데 아무래도 모르겠다 해요. 그래 내가 나중에 말하기를  'O목사님 뭘 좀 알아 들립니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라더니마는  환도하고 난 다음에 그 뒤에 몇 해가 있으니 나를 OOO교회 집회를 인도해  달라 해. 그래 내가 있다가 말하기를 'OO 가서 말할 때에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는데 뭐할라고 나를 오라 하느냐고?' '나도 설교하는데 벙어리 설교고  거기는 귀머거리 다 교인인데 뭐할라고 오라 하느냐?' 그래 말하기를 '김현봉  목사님한테 삼 년을 배우고 나니까 이제 그때 조사님이 하던 말씀과 김현봉  목사님이 가르친 것과 비슷해서 그래 지금 그리워서 한번 우리가 서울에 있는  교역자들이 다 단합해 가지고 지금 우리가 한번 사경회 해 주시기를 청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해. 그래서 내가 갔었어요. 가니까 그때 가니까 김현봉 목사님  따라다니는 목사들이 많았는데 가니까 그들이 그때는 다 알아들어요. 꼭 김현봉  목사님이 가르치는 거와 꼭 같다고 이라면서. 나는 김현봉 목사님 만나보지  못했어요.

 여게서도 처음 오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릴 거라. 말을 해도 들리지  안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어떻게 알고 행해서 구원을 이루겠습니까? 여게서 이거  좀 탄식할 줄일랑 모르고 '에, 모르는 소리 무슨 소리, 국썩스러운 소리만 하고  있더라.' 그라고 말면 되는 줄 알아도 아무래도 우리는 진가가 구별하는 실상을  만나게 될 터이니까 문제되지 않습니까? 오늘이라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저, 이거 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테이프라도 가져가  가지고 한 테이프를 한 몇십 번 들으십시오. 그냥 뭐 몇 번이 아니라. '이거 뭐 뭘  이래 몇십 번 들을 게 뭐 있느냐?' 몇십 번, 한 테이프를 이삼십 번 들으십시오.

들으면 거게서 뭐인가 알아지는 것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능치 못함이 없지요. 창조주 대주재  주권자가 그렇게 말하는 대로 말했는데 어떻게 그 뽕나무가 복종 안 하며 어떻게  바다가 복종을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신앙은 그분의 명령이라야, 그분의  역사라야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분의 역사만을 우리 소망으로 그분의 역사만을 다  하늘나라로 촐촐 수려 가지고 가지 어떤 피조물의 역사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으로써 노아 홍수 때에 다른 거는 소용 없었어.

 사람들이 어리석다 해도 그분의 말씀에 순종한 그것만 구원됐지 딴 것은 그때에  아무 소용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만이 소용 있지 온 천하가 뭐 가결하고 전체가  단합해 가지고 어떻게 한다 해도 그런 것은 코에 호흡이 있는 그까짓 저 수로  헤아릴 것이 없다. 아예 무시해 버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를 꿰뚫은 과학이  있습니까? 노아 홍수를 꿰뚫고 일어선 무슨 세상에 지식이 있습니까? 네피림들이  있습니까? 영웅들이 있어? 다 소용 없었어.

 7절 이하에 이제는 이것은 믿음이 자라가는 방법입니다. 믿음이 자라가는 방법.

믿음은 이런 게 믿음이다 하는 것을 6절까지 말씀해 놓고 그 다음에 7절부터는  믿음이 어떻게 하면 믿음이 자라가느냐? 믿음이 점점 자라가느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믿음이 자라가게 되느냐? 자라가는 것을 여게다가 기록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라가는 방편을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밭을  갈거나 하는 이것은 비유로 말씀하신 건데 밭 간다는 말은 누가복음 9장에 '나로  하여금 주를 딿겠습니다마는 먼저가서내 가족을 작별하게 하시옵소서' '먼저 가서  가족을 작별하게 하시옵소서' 이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쟁기를 잡고 뒤를  들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은 가족에 대해서 무책임하라 말입니까? 거게는 '먼저' 하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명령 복종인 이 믿음으로 가족도 사랑하고, 공부도  하고, 오만 것도 하지마는 이제 구속받은 자가 주님에게 피동으로 이것 저것 할  일이지 주님에 피동 없이 먼저 제 능동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이거는  금물입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하는 그 쟁기나  여기 '밭을 갈거나' 하는 말이 다 같은 뜻을 통하고 있는 말입니다. 이 밭 가는  것은 이것은 주님이 씨뿌리는 비유에 옥토가 있고 돌짝밭이 있고 또 길바닥 밭이  있고 덤불밭이 있으니까 그 쟁기로 가는 것은 토지를 개간한다는 말인데 토지를  개간해서 물씬물씬하게 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이 길바닥과 같은 인간, 길바닥과  같은 인간들의 그 심리나 인품, 그것을 옥토가 되도록 만드는 복음 역사를  말합니다.

 또 돌짝밭을 돌을 다 개간해 놓고 그것을 다 추려서 옥토가 되도록 하는 거,  덤불밭을 옥토가 되게 하는 거, 교인을 만나면 이것이 길바닥은 많은 사람이  다니니까 다져졌어. 국민학교 가니까 그만치 다져지고, 고등하교 가니까 그만치  다져지고, 대학을 가니까 그만치 다져지고, 이 세상에 사회를 밟으니까 그만치  다져져.

 이것이 뭐이냐? 너무 세상에게 다 거짓말에 취했고, 속이는 데 취했고, 모두  꾀우는 데 취했고 이런 데 다 도취가 돼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 말씀 암만  말해봤자 거게는 참 아주 최고단위의, 고단위의 그 거짓말 굉장한 말들이 다 있고  이렇는데 그거 별별 달콤하고 그뭐 기묘하고 당장에 언뜻 되어지는 그런 일이  많이 있는데 굉장한 능력의 말, 아주 성취의 말, 성공의 말, 행복의 말 이런 것이  가득 찼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 속였더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런 말들에 취해 놓으니까, 활에 설맞은 새는 굽은 나무만 봐도  활인가 싶어서 놀라서 도망친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에 그런 말에 가뜩 거석해  놓으니까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정확 무오한  말씀이지마는 학교서 배운 순 배암 지식 거짓말 이거 모두 세상이 말하고 있는  그런 말과 같이 그 심령이 강퍅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권위성을 인정하지 안하고 그 결과성을 인정하지 안하니까 전부 거짓말로 이래  듣는 그런 사람들이 됐다 그거요.

 여게서도 암만 이 복음을 말해도 이 세상에 있는 학문을 많이 읽은 사람들 또  이리저리 공부 많이 하고 마귀 지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아무것에도 그런 말도  있고 저건 말도 있고 다 있는데 그런 말이야 뭐 세상에 그보다 몇 배나 오묘한  말이 많고 당장에 속성되는 그런 부자되고 성공되는 그런 말도 많고 그런 이치에  딱딱 들어맞는 일이 많은데' 하고서 하나님 말씀을 무시합니다. 이것이 길바닥  밭이요, 길 바닥. 길바닥의 인품,  세상으로 낡아져 버렸고 거짓되어져 버렸고 하도 그러기 때문에 하도 말을  거짓말을 많이 들으니까 이것도 다 거짓말이라 동류로 알고 이라니까 하나님  말씀 들어야 하나도 깨달아지지 안해. 들어가지를 안해. 파고 들어가지를 안해.

이래 놓으니까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이라,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이  옛사람이라 해도 비쭉거리고 속에 안 들어가. 학자들 속에 안 들어가. 그래도  맞아!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해. 맞아.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것이  옛사람이라! 틀림없어!  악의 정의를 창조주 중심이 아닌 피조물 중심을 악이라고 한다는 이것도  비쭉거리기만 하고, 비쭉거려도 언젠가 심판받아. 틀림이 없어. 성경에 악의  정의를 그렇게 해야 성경 해석이 되지 그리 안 하면 성경 해석이 안 돼.

 이런 사람을 이것을 데려다 놓고 예수 믿는 사람 하나 만들라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드요? 학자 예수 믿구로 만든다는 거 참 얼마나 힘드는지 모르요. 말로 해야  당할 수가 있소, 그걸 뭘로 하겠소? 하나님 앞에 무릎 싸움으로 기도해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감화하면이나 될까 그게 뭐 될까 몰라도 그리 안  하면 안 돼. 이 말 하면 벌써 대항할 말은 열 마디도 더 돼요. 실컷 많이  배워놨기 때문에. 이런 못쓸 인간을 못쓸 심리를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되니 하나님 말씀에만 생명이 있다. 내 전부는 말씀에 기울여서 투자해서 나는  살아야 되겠다. 이 사람 만들라 하는 그것이 이제 길바닥을 개간해 가지고 지금  옥토 만드는 거라. 이게 밭가는 거라. 사람이 돌짝밭은 해 나가다가도 자기에게  걸리면 치워 버립니다. 그 돌이 뭐이요? 자기 중심의 자기요. 이라니까 이것은 일  년이 돼도 제 중심 십 년이 돼도 제 중심, 장로가 돼도 제 중심 이걸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 앞에서 죽고 살고 여게서 맺도록 하는 이 사람을 만들라  하니까 어떻게 밭이 돌이 많은지 험하다 말이오.

 이걸, 밭갈다가 오는 이것을 말하요. 덤불밭에 뿌린 씨는 이게 세상이 가득 차  가지고 교회 와서 앉았어도 항상 세상 꿈 꿉니다. 귀로도 듣는 척 하지만 듣지도  안하고 지금 거게서 지금 계산하고 있어. 어떤 놈은 거게서 지금 공부하고 있어.

거기서 단어 외우고 있어. 제딴에는 단어. 뒤자빠진 것이 그런 거라. 이 세상 재리  염려 이것이 들어서 그 사람의 마음이나 인격은 그놈이 다 먹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뭐 먹을 것이 있어야지?  그러니 말씀에 어떻게 결실이 있을 거라? 그놈이 다 먹어 버렸는데. 이런 것을  회개를 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니 한 말씀 한 말씀에  딱딱 복종하는 이런 사람을 만드는 이것을 가리켜서 밭갈다가 온 사람이라.

이렇게 수고한 사람을 말하요.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이 양을 치거나 양을 치는 것은 이거 양이라는  그거는 철이 없기 때문에 벌로 뛰어 돌아다니지 또 그거는 어리석어서 잘 당하지,  약해서 잘 당하지 이러니까 이 세상에는 전부 이리떼인데, 이 세상은 이리떼인데  이리떼인 이 세상에서 삼키워지지 안하도록 그것을 자꾸 간수하고 관리하고  부탁하고 또 이렇게 할라 하니까 이 참 골 빠져 죽을 지경이라. 목회자 내 보내  놓으면, 목회자 보내 놓으면 처음에 건강하게 가 가지고 목회자로 나서 가지고  그만 삐쩍 마르고 병이 들 만치 이리 되면 또 목회는 그냥 하는데 이제 병이  들어 탈이라. 또 어떤 거는 아예 보내 놓으면 이제 다른 데는 뭐 일을 해야 밥을  먹었지마는 이거는 그냥 있으면서 설교록이나 하나 가져 가 가지고 설교 하면  되고 하니까 살이 띈띈 쪄 가지고 또 이래 가지고 또 있으니까 이것도 탈이라  그거요.

 '양을 치거나' 양을 먹이고 다스리고 치료하고 이거 관리하고 하는 이런 것을  총칭해서 양을 치거나 말했다 많이오. 이러니까 이것이면 우리 신앙 생활에 참  아주 원만한 생활이요 그저 신앙 생활 요거 둘을 말한 거는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그 말은 신앙 생활에 흠점이 없이 참 하나님이 만족할 수 있을 만치  충성되게 신앙 생활을 했다 그 말이오.

 '밭을 갈거나 양을 치다가 돌아오면 앉아서 먹으라 하겠느냐' 요게 인제  문제입니다.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요것이 깨닫기가 좀 힘이 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앉아서 먹으라 그러면  앉아 먹는 것은, 앉아 먹는 것은 주인하고 같이 먹소, 저 혼자 먹소? 앉아 먹으면,  와서 앉아 먹으라 이라면 주인하고 같이 먹소, 저 혼자 먹소? 와서 앉아서 먹으라  하면 주인하고 같이 먹어? 주인이, 그 다음에 보니까 '주인 먹을 거 예비하고  했으니까 어데 주인하고 같이 먹습니까? 같이 먹소 혼자 먹소? OOO 목사님?  '주인의 먹을 것 예비하고' 했으니까 같이 먹어요 혼자 먹어요? 와서 앉아 먹으라  했으니까 아직 주인 먹을 것 없기 때문에 주인 먹을 것 예비하라 했으니까 예비  안 됐으니까 주인 먹을 건 없지 안해? 주인 안 먹잖아? 주인 먹어요 안 먹어요?  예? 그 본문에 봐. 와서 앉아 먹으라 했으니까 저 혼자 먹으라 말이요 주인하고  같이 먹자 말이요? 어? 이거 탈이라. 이거 모르면 헛일이라. OOO조사님? 혼자  먹는 거 아니야? 주인 먹을 것 예비하라 하니까 주인 먹을 것 예비도 안 돼  가지고 있는데 뭘 같이 먹어, 같이 먹기를? 혼자 먹지. 요 비유의 뜻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와서 앉아 먹으라. 혼자 먹는 거.

 여게 먹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의 먹을 양식이  있다' 먹는 것을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이것이 인격이 먹는 거라. 고기덩어리가 먹는 거는 입으로  먹지마는 인격은 그 옳은 행위로 먹어요. 인격은 옳은 행위를 먹고 자라고  건강해져요. '와 앉아 먹으라' 할 자가 있겠느냐 이게 주인이 그렇지 않다 그  말이오. 이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대개 하나님 일하는 사람들이 그 밭을 갈든지  양을 치든지 이렇게 열심 있게 좀 얼마 충성을 하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혼자  먹는 게 뭐이요? 혼자 먹는 거 어렇게 해석해야 되겠어? '앉아 먹으라' 혼자 먹는  거 어떻게 해석해야 되겠어? 저 혼자 행하는 거라, 저 혼자 행하는 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 떡 충성을 해서 좀 권위 있는 그런 종이 되고 난  다음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의 순서는 주인 먹을 것 예비하고 먹을 동안에  수종들고 그 다음에 먹으라 했는데, 주인이 먼저 먹고 그 다음에 먹으라 했는데,  주님이 먼저 일하시고 그 다음에 우리는 거게 따라서 일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일하시도록 해 놓고 주님이 일 하시면 거게 나는 피동돼서 일하는 요것이 우리의  정상적인 활동입니다.

 주님은 먼저 동하고 나는 그 다음에 따라서 피동되고 주님은 먼저 일하고 나는  그 다음에 일해야 되는데 그러면 주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됩니다. 주님이 먼저  역사하시는 그 역사에 따라서,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조금 그렇게 해 놓으면 뭐  주님이야 역사하든지 말든지 저 혼자 다 해 치워.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들려요?  저 혼자 다 해 치워. 그뭐 설교를 해도 뭐 영감이야 있거나 말거나 뭐, 하나님의  성령이 같이 하거나 말거나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거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받아 가지고 하고 하나님이 이제 하셔야 하나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시고 나는  거게 따라서 당신의 지혜로 당신이 동하면 동하고 당신이 나를 통해서 말씀하실  때에 내가 말하지 제가 앞서 단독으로 이래 앞서 나서 가지고 안 하는 건데  목회자든지 신앙의 사람들이 얼마 하고 난 다음에는 그만 단독 왕이라. 독행의  왕이라. 이제는 뭐 하나님의 뜻을 찾고 뭐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할라 하는 그것이 없이 하나님 없이 저 혼자 움직인다 그 말이오.

 '와서 앉아 먹으라 할 자가 있겠느냐' 아무리 죽도록 충성을 하고 권위 있게  목회를 해도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해서 이렇게 하는 이것이 종의 할  일인데, 우리 기독자들의 모든 신앙을 해야 되는 건데 얼마 동안 처음에는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이 먼저 일하시고 그 다음에 나는, 일하시는 거게 따라 자기는  피동으로 일하고 참 자기는 껍데기요 하나님은 내부에서 일하도록, 자기 설교하는  것도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이 설교하고 껍데기는 자기가 설교하고 이렇게 삼가서  해 나갔었는데 얼마 동안 신앙 생활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치워 버리고 제가  혼자 다 해 버려. 요것은 믿음이 더하여지는 방법, 요것이 믿음을 박살내는  방편입니다.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그거는 거부했어. 안 된다 그 말이오. 요것이  믿음 절단나는 것입니다.

 나중에 얼마 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먼저 하시고 그 다음에  자기는 따라서 해야 된다는 요 겸손. 참 하나님이 하셔야 되지 하나님이, 저 혼자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요 겸손이 없고 뭐 솜씨 났으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뭐  주시거나 말거나 제 맘대로, '이 성구 하면 되지' 이제 똑 무당 경 읽듯이 제  맘대로 이렇게 합니다. 무슨 일을 처리해도 '하나님의 뜻이 이런가 저런가?' 이거  좀 살펴볼라고 생각도 안 하고 저 혼자 단행이라. 저 혼자 단행. 요것은,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저 혼자 먹으라 하겠느냐?  요 비유는 그래 됐는데 '먹으라 하겠느냐' 그라면 저 혼자 행하게 하겠느냐 그  말씀이오. 저 혼자 행하게 하겠느냐? 아무리 네가 능한 일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주인이 능한 일 많이 했다고 해 가지고 너 혼자 임의대로 네 독권을 가지고 네  자유 자재대로 그와 같이 하게 하겠느냐 그 말이오. 그걸 금해. 요게 믿음 죽이는  거라. OOO조사 똑똑히 이해가 돼요? 알아들려져? 그 시원찮은데? 이라면  속으로 아멘! 막 이렇게 뛸 건데?  '와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먹는 거는 혼자 먹는 거라. 주인하고 안 먹어. 저 혼자  행동하도록 하겠느냐 그 말이오. 그랬는데 얼마 동안 좀 성공하고 승리하고  나면은 그만 이제는 익숙하니까 뭐 주님이 동하시거나 말거나 설교 할 때도 제  마음대로 또 모든 지도나 판단할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제 맘대로요. 제가 왕이오.

하나님 죽어 버리고 없어져 버렸어. 저 혼자 단독이라. 이것이 신앙이 떨어지는  증거요 교만해지는 증거요 요것이 망하는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도 아니라. 뭐 배워 놓은 거 주문같이 똑 무당들 주문 외우듯이  배워 놓은 거 있기 때문에 그것만 있으면 그것만 줄줄 대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 물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설교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라야 되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아닌 것을 제가  성경이라고 제 맘대로 자유 선택하면 그거는 제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마귀  것이지 하나님은 같이 하지 안해요, 이런 말을 하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인고?'  말을 알아듣지도 못해. 알아듣지도 못해. 뭐 성경에 있으면 자기가 이래 보고  이거 택하고 저거 택했고 이러니, 또 인제 모든 주석이나 이런 거 보고 이것 보고  저것 보고, 사학에 가 가지고 또 한 마디 떡 집어내고, 또 뉴스에 새소식에 한  마디씩 집어내고, 또 신문에 뭐 한 마디 집어내고, 또 이종교에 유명한 말 하나  집어내고 모든 뭐 이종교에 한 마디 한 마디 떡 집어내고 이거 멤바를 다  짜봅니다. 짜 보며 '됐다' 그러면 요때 가 가지고는 요럴 때는 주먹을 콩 뚜드려야  되고 이럴 때는 퍼뜩 때려서 이래 해야 되고 이걸 실컷 연습을 해 보니까 됩니다.

그거 그렇게라도 준비하면 뭐 힘은 들지만 그것도 아니야. 이제는 좀 하고 난  다음에는 그만 인제 제가 하나님이오. 그만 제 주권으로 마음대로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하고, 제 생각대로 판단하고, 제 생각대로 증거하고, 재 생각대로  선택하고 이렇게 해서 저 혼자 행한다 말이오. 와서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왜,  이것이 어데서 생기느냐? 자신이 있으면 그만 그래 돼 버려. 그래. 그래서  교역자가 되면은 이거 처녀가 돼야 될 터인데 벌써 어떤 사람 내가 보니까 제일  처음에 한번 설교를 딱 시키니까 그 사람이 군에 갔다 와서인데 처음에 한번  설교를 시키니까 이거는 뭐 늙은 할마이라. 손자 증손자 다 낳고 있는 할마이  모양으로 뭐 어떻게 배짱을 내고 자신만만인지 그래서, 그 처녀성이 없어.

 나는 지난번에 내가 양산동 기도실에 간다고 내가 이틀인가, 강단에서 설교 세  번인가 안 했어. 세 번 안 하고 그 뒤에 가 가지고 가니까 떨려서 당체 팔도 숨길  수가 없고 떨려서 주저해 못하겠어. 이래서 뭐 설교를 못하겠어요. 이래서 '아이고  안 되겠다 하나님 내가 이 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이제 집회 준비 한다고 이거  뭐뭐 한 시간 두 시간 빼면 안 되겠고 이제는 내가 강단은 꼭 비우지 안하고 꼭  계속하겠습니다.' 계속하다가 왔어요, 인제.

 이런데 생전 처음으로 수천 명 있는 그 강단에서도 뭐 조금도 거리낌 없이 막  탕탕하고 이와 같이 해 재끼니까 하지마는 그거 벌써 내가 말하기를 '너는 노파  할마이다. 너는 지금 이라면 다른 사람이 흉을 보고 이랄까 저랄까? 도무지 지금  시집가지 안해서 지금 부끄러워 못 견디는 그런 처녀성이 하나도 없고 너는 그  할망타구성이다. 네가 목회해야 뒤에 그래 가지고 그거 고치지 안하면 얼마 못  한다.' 했는데 그 말한 대로라.

 목사가 자기가 강단에서 설 때마다 자신이 있고 이렇게 그만 떨떨하게 이래  아무런 주님과 연결이 없는 그것이 와서 혼자 먹으라 하겠느냐? 안 먹으라 한 그  말이오. 그게 믿음 죽이는 노릇이라. 믿음 더하는 노릇은 네가 주인 먹을 것  예비하고 주인 먹는 동안에 수동들고 그 다음에 먹으라. 주님 먹을 것 예비하고,  주님이 하시는 일, 주님이 하시는 일, 주님이 무슨 일 하실 건가? 주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이 뭐 하실 것인지? 당신이 하실 일을 제가 찾고 찾고 마련해  가지고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자기가 찾아서 마련해 가지고 이제 주인이  먹을 때에 수종들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때에 자기는 거게서 수종들어.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는 데에 수종은 뭘로 들어요? 자기는 거게서  기도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데 나는 어떻게 그 수종을 들까? 하나님이 이것을  당신이 선택해 가지고 이 일을 하시는데, 이 일을 착수하시는데 이 말씀을  하시는데, 이 말씀을 당신이 지금 하실 터인데 내가 어떻게 하면 이 말씀을  하시는 데에 내대로의 날뛰지 안하고 내 요소가 하나도 안 나오고 그분의 지체가  돼 가지고 그분에게 쓰여짐으로써 이와같이 동하고 정해 가지고 그 하는 일에  수종들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다 먹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다 이루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다 이루시고 난 다음에 우리들이 그 일을 세상에서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가 어데까지 충성했을지라도 충성하고 난 다음에는 또 '하나님이  하실 일이 뭐인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죽도록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찾을 라고 애를 쓰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하면 주인 먹을 것 마련하는 거라. 장만하는 거라.

 '하나님이 무슨 설교를 하라 하시느냐? 하나님이 오라 하시느냐 가라 하시느냐?  하나님이 무엇을 지금 하시느냐?' 당신이 당신의 이루실 당신이 하실 그 일을  내가 발견하느라고 애를 쓰고, 죽도록 일하고 와 가지고. '당신의 또 당신의 하실  일이 뭐인가? 이런데 이 하실 일이 이거다. 하실 일이 이거다.' 발견하고 난  다음에 '하시는 이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수종들면 될까? 그 일에 대해서 내  의무와 책임은 뭐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자기 의무와 책임을 지금 자기  할 걸 자기가 연구하고 있어. 이라고 난 다음에 이제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으면  그 다음에 자기가 먹는 거라. 하나님이 해 놓은 일 그거 제가 그 뒤에 나타내는  발표하는 것이지 제가 무슨 일을 합니까?  '주인이 먹은 후에' 하나님이 이제는 다 이루어. 하나님 당신편에서 벌써 다  이루시고 역사해서 오늘 설교는 당신이 다 설교해서 다 모든 것 다 해 가지고  역사해 놓고 난 다음에 그것을 자기는 그저 당신의 지체가 돼 가지고 발표하는  것뿐이라. 발표하는 것. 제가 무슨 설교 하겠소? 요렇게 되는 것이 믿음이 점점  자라가는 유일한 방법이오. 믿음 죽이는 방법이 뭐이냐? 점점 믿음이 늙어져  가지고 다 낭패되게 되는 그런 방법이 뭐이냐? 자기가 실컷 일하고 난 다음에는  어째요? 혼자 먹는 거라. 일하고 난 다음에 이제 제 단독 행위라. 이만치 솜씨가  낫고 이만치 설교도 이래 하고 이러니까 이제 그만 제 마음대로 하나님과 연결  없이 제 마음대로 혼자 하는 것 요것이 제일 멸망받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생 동안 어떤 사람들은 자기 설교를 쭉 적어 놓고도 설교 적어 놓은  그것 가지고 하는 일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 다 그 사람이 목회하는 사람입니다.

'요 설교하면 되겠다' 다 적어 놓고 다 이래 놔도 그 설교를 못해. 그거 할라고  하니까 깜깜하고 이거 혼자 하는 것이다 싶어서 자기 혼자 독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에게 피동됨이 아니고 능동되는 것이 돼 놔서 안 돼. 그러니까 그저 그래  놨지만 그거는 못 보고 '하나님이여 이 시간에 당신이 무슨 말씀을 주실랍니까?  당신이 말씀을 주시옵소서. 당신이 양떼를 먹여 주시옵소서!' 자꾸 이렇게  노력하고 당신이 이런 말씀으로 먹여 주시니 감사하고 충분히 하나님이 내적  역사를 하시고 난 다음에 이제 그것은 다만 자기 먹는 거는 그 후에 하나님이 다  내적으로 다 이루셔 놓은 그 일을 제가 발표하는 것이라. 무슨 인간이 제가  하겠소, 하기를? 그러기에 믿음이 더해지는 방법은 요것이라. 요라고 난 다음에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그래 하고 나서 '참 내가 요거 암만 해도 요거는 이  신앙의 아름다운 이거 신앙 생활이요 진리 생활이다.' 이래 가지고 칭찬받을 줄로  그렇게 생각지 아니하고 '할 일을 했다. 나는 무익한 종이다.' 그와같이 하고도,  하고도 자기가 보이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댓가를 생각하니까  억만금을 주고 사온 놈의 종이 단 백 원어치밖에 못하요. 그러니까 지금 항상  종이고 이제 당신에게 너무 큰 값에 팔린 것이 너무 가치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마음에 고민을 가지는 요것이 있어서 마지막에는 '무익한 종이라' 하는  이것이 있는 그것이 믿음이 자라가는 방법으로 가르쳤습니다. 요 간단한 시간에  말하니 그렇지마는 이치는 그러니까 요것을 가서 깊이 깊이 생각해 가지고 믿음  기르는 방법을 가지도록 합시다.

 이래서, 믿음을 기르고자 하는 사람은 오후에 말한 요것이 믿음을, 믿음이  자랴가는 유일한 방법이오. 그러면 자꾸 설교가 더 나아져. 작년보다 금년이 낫고  금년보다 내년이 낫고 내년보다 그 내년이 더 낫고 자꾸 더 나아져. 진리를  깨닫는 거는 점점 더 깨달아져. 하나님의 권능은 점점 더 나타나. 요거 믿음이  더해지니까. 요 방법을 가지지 안하고 나중에 일하다가 오면은 앉아 먹으라 할 줄  알고 앉아 먹으니까 그만 다 헛일되고 만다 말이오. 앉아 먹으라고 하지 안해요.

아무리 죽도록 위대한 일을 해도 주님이 동할 때에 내가 따라서 동해야 되지  주님 어떤 위대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주님 냅두고 저 혼자 동하고 날뛰는  그것은 주님이 싫어해요. 용납하지 안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요 까다롭고 별스러운 진리, 까다롭고 별스러운 진리, 별스러운 깨달음, 별스러운  교리 신조, 요것을 주지 안해야 총공회 요 간판을 유지할 수가 있어요. 요거 내  주면 그 간판 유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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