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만드는 것-십자가의 권능

 

1986. 2. 26. 수새벽

 

본문:히브리서 12장 1절∼2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십자가가 참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멸망할 사람들은 이 십자가 길을 미련케 어리석게 그렇게 보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들은 이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제일 큰 권능이라 하는 것을 믿습니다.

여게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믿음으로 성공하신 주님이요 또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님으로 책임지신 그 일을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지 안할 때에는 주님이 암만 우리를 구원 책임을 지셨지마는서도 주님이 그 일을 하시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주님은 우리를 책임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러면 믿음으로 주님이 우리를 책임지신 그 책임을 우리가 믿을 때에 당신이 그 책임을 잘 감당할 수 있고 또 주님이 믿으실 때에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지 주님도 만일 믿다가서 털끝만치라도 고 믿음에 삐뚤어지면 당신이 우리를 책임지신 이 구원을 절대 못 이룹니다. 당신도 믿음에 털끝만치만 이탈돼도 우리의 구원 책임을 지지 못하시고 또 우리가 믿지 안할 때에도 당신은 이 책임을 지지 못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이 큰 사명도 믿음으로만 감당할 수 있고, 또 아무리 주님이 믿음을 잘 지켜서 실력이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 할지라도 구원을 받을 우리들이 또 믿음을 안 지키면 안 됩니다. 두 믿음으로써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러면 이렇게 믿음 가지고서 주님도 오신 목적 사명을 완성하고 또 우리도 믿음 가지고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완전히 받아서 완성한다면 그 모두 다 제 지능을 가지고 무엇을 성공한다는 것이 세상인데, 제 지능은 하나도 가지지 안하고 남의 힘 가지고 성공을 할라고 하는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은혜의 도요 제 힘으로 하나도 성공할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 힘으로는 성공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주님이 주시는 성공은 풀과 풀의 꽃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얼핏 볼 때에 ‘이거는 참 영광이다, 존귀다, 성공이다.’ 이렇게 한 그것이 잠시 후면 비참하게 되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고 다 완전한 것들이요 영원한 것들이요 불변의 것들이요 다 영생의 것들이기 때문에 이것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으로서만 하지 딴것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일입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공짜배기로 줄 때에 우리가 공짜배기로 받아야 되는 것이지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우리 힘으로 아니고 은혜로 한다 그말은 그거 뭐 구원이나 그 가치가 적어서, 작아서 은혜로 되는 게 아니고 무한히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 댓가를 낼라 해야 거게 속한 것은 털끝만한 것의 댓가도 우리는 낼 수가 없습니다.생명 바쳐도 그까짓 거는 다 죽음에 속한 것들이요. 썩은 것들이요 더러운 것들이기 때문에 완전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순전히 귀하고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이룰 수 있는 그 구원인데 그 구원이기 때문에 우리는 순전히 공짜배기로 받아야 된다 그거요. 은혜의 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는 방편은 뭐이냐? 당신이 그릇 대라 하면 그릇을 대고 또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고 가라 하면 가고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그것밖에는 받는 방편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이 하시는 것인데 우리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너 이것은 앞에 사약이, 먹고 죽는 사약이 가득찬 그 자리에서는 내가 여기서는 먹지 말아라 할 때에 안 먹으면 온 천하가 달라들어서, 마귀가 세상 왕이기 때문에, 죽일라고 하는 그 현실에 주님이 먹지 말라는 것만 안 먹으면 안 죽는다 그말이오. 그런데 먹지 말라고 하는데 먹으면 죽는다 그거야. 또 네가 여게서는 있으면은 안 되니까 지금 여게서는 이 구멍으로 빠져 나가거라 할 때는 빠져 나가야 되지 안 나가면 또 안 된다 그거야.

또, 사람 보기에는 위험 천만한데 지금 온 세계가 물로써 그저 높은 언덕까지 자꾸 차올라 오는데 너는 여게 배 속에 들어 앉아라 하는데 이거 바람은 세게 불지 배는 그까짓 거 조그만한 배 그거 하나 있는 거 배 속에 들어앉으면 풍랑이 심히 일면 이거 다 파손될 터이니까 배 속에 들어앉아 안 되겠다 그거야. 온 사람들이 모두 노아 영감아 나오라고서 자꾸 지금 부르고 이라는데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 배가 뜨든지 어짜든지 이 배 속에서 나오지 말아라 할 때에 또 안 나와야 되지 나오면 또 할 수 없다 그거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길 외에는 우리를 구출하는 길이 없고 우리가 그 구원을 받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인데, 어제 아침에도 믿음을 만들라 믿음을 써 먹이라 그렇게 말했는데, 믿음을 만드는 것은 어떤 게 믿음을 만드는 것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신 거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말씀하신 그 모든 지식을 내가 그대로 참되다 인정하는 거, 그 지식, 하나님의 뜻인 그 지식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내가 알고 그 뜻을 천하에 있는 모든 것보다 더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는 고대로 하면 된다 하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 말이오. 믿고는 그대로 행하면 그게 뭐이 됐느냐 하면은 믿음이 됐습니다. 믿음은 이 세 가지로 되는 것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거 이 세 가지로써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 만드는 것이오. 믿음 만드는 거.

또, 믿음 써먹는 거는 어떤 게 믿음 써먹는 것인가? 이 세 가지 만들었는데 이 세 가지만 써먹습니다. 돈벌이도 이 세 가지만 씁니다. 또 자기가 무슨 사업하는 것도 이 세 가지만 씁니다. 출세하는 것도 이 세 가지만 씁니다. 성공하는 것도 이 세 가지만 씁니다. 요셉이가 무식한 사람이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 됐지마는 요셉이는 든든합니다. 왜? 뭐 믿음만 쓰면 되는데, 믿음만 쓰면 되는데 그뿐이야, 믿음만 써. 그저 하나님이 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면 안 하고 이 말 하라 하면 이 말 하고 하나님 시키는 대로만 한다 그말이오.

하나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대로 하면 된다는 걸 확실히 믿고 인정하고 고대로 행하는 거 요거 믿음인데 뭐이든지 이것만 해. 이 세 가지만 써먹는다 말이오. 이 세 가지만 써먹어. 언제든지 그만 무슨 태산 같은 일이 있어서 온 전국이 다 떨고 있는 일이라도 다니엘은 떨지 안해. 왜? 느부갓네살 왕이 잡아다 놓고 ‘너 그러면 사자구덩이 잡아 넣지 않느냐? 그것도 떨지 안해. 믿음 써먹으면 된다 이거 안다 그말이오. 믿음 써먹으면 된다.

여게 대해서 하나님이 뭐라 하시는고 하나님의 뜻 알고 고 뜻대로 내가 증거하면 되는 걸 내가 믿고 고 뜻대로 증거하면 된다 고거 행하는 거 세 가지라 말이오.

고거만 하면 다 돼. 모든 행정을 다 요렇게 했더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요셉의 통치는 사람 보기에는 요셉이가 통치한 것 같지마는서도 실은 전지 전능의 주권자 하나님이 통치한 것이니까 뭐 그동안에야 굉장히 형통했지요. 그러니까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 하면 다 주라, 아버지라 했습니다. 다 이스라엘 백성이라 하면 아버지라 했어. 이 요셉이가 한 것은 순전히 믿음 가지고서 했습니다.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는 일을 했는데 이거 아니고는 딴걸로 할 수가 없어.

믿음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라,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라 말은 십자가라는 이 문턱, 십자가라는 문턱이 있는데 십자가 문턱 너머, 십자가 문턱만 척 열고 넘어서면 그 속에는 어떤 곳이냐? 나를 해치는, 또 내게 해가 되는 그런 모든 것은 다 없고 내게는 좋고 유익하고 영광스러운 그것만 있는 그 세계로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우리에게 좋고 영광스럽고 평안한 그 세계를 들어가는 데에는 반드시 십자가의 문턱이 있어 가지고서 십자가를 이제 넘어야, 그 십자가 문턱을 넘어가야 그 영광된 그런 세계를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는 어떤 것인고 하니 우리가 참 위험하고 불행하고 죽고 망하는 그곳을 우리가 벗어나는 그 구멍, 우리의 모든 환란과 사망의 고통인 그런 불행스러운 곳을 벗어나서 피난하는 피난 구멍이 십자가 문턱입니다. 십자가 문턱은 피난 문턱이요 또 십자가의 문턱은 영광스럽고 한없는 행복스러운 그 세계를 들어가는 문턱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십자가를 참는다 말은 십자가 이 문턱은 아무래도 통과하기는 대단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으사’ 하는 것은 그 문턱을 넘어가기가 아주 힘든다 그말이오. 문턱을 넘어가기가 힘드는데, ‘부끄러움을 개의치 안했다’ 그말은, 이 부끄러움이라 말은 육체의 고난보다도 자기의 모든 인격이라는, 자기의 주체라는 것이 완전히 말살되는 것이 부끄러움입니다. 아주 멸시 천대 해 가지고 그런 인제 당하는 거 뭐 매 맞고 고문 고통하는 그거보다도 자기의 전인격이 막 박살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나, 이 문터막을 통과만 하면, 그러면 이렇게 어려운 문터막을 통과할 수 있는가? 그것은, 주님에게는 아버지가 그 문터막을 이리 넘어가라 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책임지기 때문에 주님에게 힘들지 않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주님이 ‘이 문터막을 넘어가거라. 네가 이 문터막을 넘어야 피란을 하지 네가 여기 있는 데는 지금 큰 환난이다. 네가 이 여기 있으면 안 되니까 이 문터막을 넘어라.’ 주님이 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다 가지시고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 능력을 가지고 이 문터막을 넘어라 했기 때문에 염려할 것 없이 우리는 참고 견디면 됩니다. 참고 견디면 그 문터막은 저절로 나를 안아다가 넘겨서 그 문턱 너머 새 세계로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홍해 바다를 준 그것이 내나 문터막이오. 홍해 바다를, 그 문터막을 넘지 안하면 자기네들을 죽일라고 하는 세계의 강대국이었는데, 애굽 나라의 따라오는 추격하는 그 모든 원수의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원수의 세계를 벗어나는 구멍, 피난하는 그 구멍을 홍해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홍해를 통해서 다시는 이스라엘이 애굽 병정들이 추격하는 그 어려움이라는 것을 다시는 보지 안했습니다. 또 그 홍해 바다 너머는 어덴가? 그들이 준비가, 믿음이 없어서 못 갔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그 문턱 너머에는 있습니다. 이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턱은 겨우 넘었지마는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그 곳에 갈 믿음이 없어서 다 광야에서 다 죽었다 이랬습니다.

믿지 아니하므로써 광야에서 다 멸망받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그때, 우상에게 절하는 그게 있고 불미 있고 했는데 그게 내나 뭐이냐 하면은 십자가의 문터막입니다. 그분들도 그렇게 믿음 지키고 이라니까 시기하는 사람들 많았습니다.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걸 어짜면 죽일꼬 이렇게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시기하는 마귀들도 많았고 또 하나님도 그를 한번 저울로 한번 달아 보자 하고서 달아 보는 그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느부갓네살의 금우상인 거게다가 절 안 할라 하는 것이 그게 참 어렵다 말이오. 절 안하는 것이 그것이 참 어려워. 절 안 하면 불미 속에 집어 넣어서 태워 버릴라 하니까 얼마나 어려움입니까? 그게 십자가의 문턱이라 하는 것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런 사람들은 벌써 알았다 그말이오. 알았기 때문에 ‘요게서 어짜든지 요거 벗어나야 된다. 내가 어짜든지 하나님의 계명 지켜 우상 숭배는 안 해야 된다.’ 안 하기가 어렵지마는서도 고게 십자가의 문터막이기 때문에 어렵지마는 고 어려움은 자기를 불구덩이에 집어 넣어도 그것은 멸망에서 자기가 영원한 구원으로 나가는 문터막인 줄 알기 때문에 넘어갈라고 애를 썼지 그 문터막을 피해서 딴데로 갈라고 하지를 아니했던 것입니다.

절 안 하고 불구덩이 들어간 고것이 그들을 죽일라고 하는 모든 원수의, 대적이 많은 원수의 그 세계는 완전히 벗어나 버렸습니다. 또 자기들을 옹호하는, 아주 자기들을 옹호하고 행복스러운 그 세계를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피난한 문턱이요. 또 그들이 행복스러운 세계를 들어가는 문턱이었습니다.

다니엘도 역연 그랬습니다. 다니엘도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그것이 자기들에게는 참 십자가의 아주 어려운 고통입니다.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어려운 고통이었지마는 주를 인한 어려운 고통, 주님에게 순종하는 순종의 어려운 고통, 순종의 어려운 고통, 그 어려운 고통이 십자가의 고통인 것을 알았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모두 다 웅성웅성 하면서 ‘다니엘이 총총리가 된다’ 이라니까 시기 질투해 가지고서 뭐 야단을 지기는데 벌써 그렇게, 한 달 동안은 느부갓네살에게만 기도해야지 딴데는 기도하면 사자구덩이에 넣는다 하는 이것이 벌써 돼 가지고서 왕이 어인을 찍어서 돌릴 때 그때 다니엘 이런 사람들은 다 안다 그거요.

이것은 내 대적들이 지금 나를 죽일라고 한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 안 하면 저희들이 꾀한 것이 헛일이 돼서 나는 살고 내가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면은 저들은 성공하고 나는 죽는다 하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저 다니엘은 암만 해 봤자 하나님 말씀 어기지는 안 하니까 요렇게만 묘한 방편 꾸며 놓으면 다니엘 저는 사자구덩이에 들어간다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줄 안다 그거요. 아나 다니엘은 요것이 자기로서의 십자가의 문터막이기 때문에 나를 시기하고 대적하는 그런 모든 대적들이 나를 삼킬라고 하는 이 원수의 속에서 내가 피난하는 구멍이다. 피난하는 구멍이다 하는 것을 그는 알았고 또 이렇게 계명 순종해서 이래 나가면 지금 이것보다도 더 좋은 행복스러운 세계가 있다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기뻐 즐거워하며 졌던 것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그 참았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십자가의 비밀을 모르면 안 됩니다. 십자가는 멸망에서 피란하는 구멍입니다. 멸망에서 피란하는 구멍이 십자가요, 또 내가 지금 있는 세계 보다도 더 좋은 행복스러운 그 세계에 들어가는 구멍이 십자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십자가는 이것은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이 저울에 달고 시험을 하시는 것이오. 또 우리가 그만한 믿음을 가져야 그만한 행복을 가진다 말이오. 지금보다 큰 행복을 주시는 데에는 고만한 믿음을 통과한 것이라야 그 행복을 감당할 수가 있고 또 지금 자기에게 무슨, 자기가 행복스러워서 모두 시기하는 그 어려움입니다. 참된 신자에게 어려움 오는 것은 시기해서, 마귀들이 시기해 가지고서 우리의 그 행복스러운 것을 깨뜨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마귀의 주는 어려움들입니다.

그 어려움은 그것은 지금 있는 행복스러운 이 행복은 대적들과 시기들이 많이 있고 이라기 때문에 이 어려움 속에 들어 있는 이 행복, 이 행복만 가지고 그 어려움을 피하는 피난길인 줄 안다 말이오. 알기 때문에 그들은 다 기뻐 즐거움으로 졌던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에 보면은 벨사살 왕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이 하루는 분벽에 큰 글자가 쓰였는데 데겔이라는 그런 글자가 쓰였는데 이게 뭐꼬 물으니까 다니엘이 해석해 주기를 이것은 왕을 저울로 다니까 중량이 모자랐다 하는 그말입니다. 중량이 모자랐다. 그러기 때문에 그날 밤에 고만 왕 절단나 버리고 헛일했어.

우리에게 닥친 그 십자가는 우리의 중량입니다. 우리 중량이 얼마나 되느냐? 우리의 믿음의 중량이 미래에 있는 행복을 감당할 만한 중량이 있고 이미 있는 그 환란을 피할 수 있는 고만한 중량이 있으면 된다는, 고만한 중량이면 능히 통과할 수 있도록 고런, 중량을 다는 것이 또 십자가입니다. 중량을 다는 것이 십자가, 우리의 실력의 중량을 다는 것이 십자가요, 우리의 이제 인격의 중량을 다는 것이 십자가요, 또 우리의 담력의 중량을 다는 것이 십자가요, 우리를 다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거게 달아 가지고서 딱 중량만 합격만 되면은 합격이라. 그 중량에 떨어지면 헛일이라. 그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데 우리가 감당 못 할 행복, 감당 못 할 지위, 감당 못 할 재벌, 감당 못 할 그 모든 영광 이런 것은 좋은 것 같으나 속은 해로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걸 감당할 만한 중량이 있나 이래서 그 중량을 달아 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중량에 모자랐다 그말이오. 모자란 것은 그에게 무슨, 옆에 있는 모든 고관 대작들이 모였을 때 그때 그들을 좋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 좋게 하지 안하고 그들 좋게 하기 위해 가지고서 그들을 중심해서 따라서 움직였다 말이오.

그게, 또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를 그렇게 악용을 하고 또 그런 잔치를 하고 하는 그것이 벌써 하나님 앞에서 왕이 될 만한 가치가 없어. 중량이 없는 사람이라.

그게 뭐냐 하면 사람을 따라서 움직여.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겠고 사람들이 기뻐해야 내가 뭐이 되겠다’ 이러니까, 사람보다 하나님이, 이라면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면 되겠느냐 요렇게 고것을 비교를 해 가지고 중량이 달려졌으면 문제가 없어. 중량이 달려졌으면 중량만 무거웠으면 아무도 해하지 못해.

전부 이 세상에 털끝만한 것도 주님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주권 개별 섭리라는 이것을 우리가 말로만 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문제인데 크고 작은 모든 것은 주님이 홀로 주권하시고, 그러면 큰 것만 주권하시느냐? 아니오. 머리털 하나도 당신이 주권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분이 주권하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분에게 거슬릴까 그분에게 좀 어떻게 ‘아이구, 네가 가치가 없다.

네가 이렇게 큰 재물은 네가 가지지 못하겠다. 이 큰 사업은 가지지 못하겠다. 이 큰 권세를 가지지 못하겠다.’ 그분에게 중량이 가볍게 보이면 탈이지. 뭐 그분이 인정하면은 천하 인간이 말해 봤자 소용없다 말이오.

그분만 향해서 가는 그걸 보고서 ‘저 등신이 그럴 때는 요렇게도 해야 되고 요래 틀어야 되고 조래 틀어야 되고 이렇게 슬슬 요래해야 되는데 저렇게 미련케 간다’ 그러나 구원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라 고렇게 가는 것이 하나님의 권능이라. 자기가 그렇게 갈라고 하기가 참 힘이 드는데 ‘기도하겠습니다. 말하면 이게 권능이다. 주여, 기도하겠다고서 내가 이거 말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너 그라면 사자구덩이 넣는다' 뚤뚤 묶어서 넣을라고 할 때도 또 묻기를 ‘너 기도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하면 된다. 안 한다 해라.’ ‘합니다' 해 놓고 `주여! 권능이다. 이렇게 내가 십자가 이거 지는 건 권능이다.’ 그래 가지고서 십자가는 구원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래서, 십자가는 모든 불행을 벗어나는 문턱이요, 십자가는 모든 행복을 이제 들어가는, 행복 세계에 들어가는 문턱이요, 하나님께서 나를 저울로 달 때에 그 저울에 경중이 어떻다 하는 그것을 중량을 다는 저울이라 요것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무슨 일이든지 요 십자가를 생각하고 십자가의 비밀을 생각하면서 걸어가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참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잘못을 뉘우쳐서 고치면 사해 줘라 하는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라.

이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안 됐으면 즉시 이 시간에 이 시간에 당장 효력이 나오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뭐이 불행이라 뭐이 행복이라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모든 것이 일반이라 하는 그것을 재독할 때 제가 들어 보니까 그렇게 설교한 것은 저도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그저, 불행이냐? 행복이 되고, 행복이냐? 불행이 되고,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은 요 십자가로서, 십자가로서, 더 행복의 자리로 나아가는 문터막은 반드시 십자가요 또 나에게 모든 불행을 이제 벗어나는 것도 십자가요 또 주권자 그분에게 내가 합격되는 중량을, 중량 합격으로 통과하는 것도 십자가라. 요 십자가의 비밀을 우리가 깨닫고 십자가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되면은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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