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선지자선교회 1983년 1월 16일 주후 

 

본문 : 약 2 :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지난 주일에는 역연 이 말씀을 증거했고 지난 주일 오전은 마가복음 9장 23절 믿는  자에체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오후에도 마음의 믿음의  요소, 마음의 믿음 속에는 어떤 요소가 들어 있느냐, 마음의 믿음이 어떤 요소를  내포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증거하겠습니다.

 마음의 믿음은 그 속에 네 가지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네 가지 믿음이 들어  있어야 마음의 믿음 마음의 확신이 되는 것입니다. 네 가지 믿음 중에 첫째가 지식  믿음입니다. 지식 믿음. 지식 믿음이라 말은 하나님이 여러가지로 가르쳐 주신 그  지식을 내가 받아들여 가지고 그 지식대로 내가 지식하는, 그 지식을 참 지식이라  인정하고 그 지식을 따라서 내 지식으로 삼는 그것이 지식 신앙이요 신앙의  지식입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읽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를 듣든지 그것은 다 지식인데  하나님의 지식을 듣든지 읽든지 할 때에 그 지식을 내가 따라서, 그 지식을 따라서  그 지식으로 내 지식을 삼으면 믿음으로 된 지식이 됩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아니고 세상에 있는 어떤 지식이든지 그 지식을 따라서 내가 지식하는 것은 믿음의  지식은 아닙니다.

 믿음의 지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가 지식하는  것이 믿음으로 된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따름으로 된 지식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나 책에서나 하나님 말씀 아닌 것을 듣고 배워  가지고 자기 지식으로 삼은 그것은 믿음의 지식은 아니고 세상 지식입니다. 마음의  믿음 속에는 믿음의 지식인 그 지식 믿음이 그 속에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소망 믿음입니다. 소망 믿음. 믿음으로 소망하는 것을 가리켜서 소망  믿음이라, 소망 믿음이라는 것은 소망은 자기가 희망하는 것이 소망인데 희망이라는  것은 참 세상에는 그 수가 심히 많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이 희망 있으니까 이것이  좋으니 저것이 좋으니 이것을 가져각 저것을 가져라' 할 때에 사람들에게 배우고  듣고 또 책자들을 읽어봄으로 자기가 '나도 이것을 한번 해 봐야 되겠다' 소원이나  소망이나 가지면 그것은 믿음으로 가진 소망이 아니고 세상이 주는 소망입니다.

 믿음이 주는 소망이라 말은 하나님께서 '네가 이것을 소망해라 저것을 소망해라  신구약 성경 말씀에 여러가지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그 소망을 '녜, 내가  이제까지는 이런 것을 소망 안 했지마는 당신이 말씀하셨으니 내가 이것을  소망합니다. 내가 이리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될 줄 알고 바라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시는 이것을 네가 믿어라. 이것을 네가 소망해라.

이렇게 될 것을 네가 확실히 바라봐라. 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하라고  하신 그 소망을 소망할 때에 소망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믿음.

 사람이 소망을 백 가지 소망을 가지는데 그 사람에게 믿음의 소망은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소망에서 소망으로 수없는 소망을 가졌지마는  믿음의 소망은 하나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그 소망을  내가 소망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으로 된 소망이요 소망의 믿음인 것입니다. 네 가지  중에 둘째로는 소망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또 그 요소 중에 하나는 실행의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실행의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몸으로 실행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나지 못해 그렇지 벌써 마음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행하라고 하시니 나도 행하겠다' 그렇게 마음에 작정이  되고 하나님을 따라서 실행할 그 실행이 마음 가운데에 가득 차고 준비가 됐을 때에  그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실행의 믿음이라, 행함의 믿음이라, 믿음의 행위라. 앞에  붙이나 뒤에 붙이나 뜻은 같은 뜻인 것입니다.

 일반도 다 믿음을 말하지만 우리 기독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서 되는  것만을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실행, 실행의 믿음이 자기 마음  믿음 속에 벌써 성립이 돼 있어야 합니다.

 넷째로는 마음의 믿음 속에 인내의 믿음이 그 속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인내의  믿음이라 말은 하나님이 '믿어라. 끝까지 믿어라. 네가 죽을 때가지 믿어라 아니.

죽을 때도 믿고 죽어라.' 이렇게 길이 길이 참고 견디라는 '인내하라. 네가 끝까지  계속하라.' 하는 인내의 믿음이 마음의 맏음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나 들을 때나 이 믿음이라야 기독자는 성공을 하는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신도  믿음으로 성공을 하셨고 우리도 전부 믿음으로 성공하는 이 성공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이 방편을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믿음을 떠나서는 기독자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예수님이 믿음을 가지고  성공을 하시고 또 우리들도 믿음을 가지고 온전함을 이루도록 하시는 이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이 없으면 다 헛일입니다.

 믿음 없다고 가난해지는 것도 아니고, 병드는 것도 아니고, 못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하늘나라의 것, 없어지지 아니할 것, 참 자기에게 유익되고  복된 것은 하나도 안 됩니다. 전부 가짜만 되지 실상의 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를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거게서 마음의 믿음을 갖추어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마음의 믿음을 가지지 안하면 암만 성경 읽어도  유익이 없고 설교를 들어도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는 첫째가 마음의 믿음이요,  둘째로는 실행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로는 소망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외부에 나타난 외형을 말한 것인데 이제 오후에는 그 속에 알맹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알맹이는 마음의 믿음 속에 실행의 믿음도 들었고, 소망의 믿음도 들었고,  인내의 믿음도 들었고 전부 다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내가 여게서 믿음을 가져야  되겠다.' 믿음을 안 가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얻을 것도 하나도  없고 자기 구원은 이루어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는 데에는 어떤 믿음을 가질까? '내 마음으로 믿는 마음의 믿음을 내가  가져야 되겠다.' 마음의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가지는 것이 마음의 믿음을 가지는  것인가? 그럴 때에 요 네 가지를 생각을 하면서 마음의 믿음을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는 '성경이 뭐라고 말하나? 무엇 무엇을 말하느냐?'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을  내가 지식적으로 압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그 지식을 내가 받아들여서 그대로  지식할 때에 그것이 믿음으로 가진 지식입니다. 그게 하나님께 순종으로 가진  지식인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러면 이 사실을 내가 소망하느냐? 그저 성경에 그렇게  말했지마는 나는 상관이 없이 내가 생각하느냐?' 요것을 하나님이 다 나에게  주시기로 약속했고, 내가 다 받을 수 있고, 내것을 실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요것을 소망하는 그 소망을 마음의 믿을 속에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요대로 내가 소망하느냐?' 어떤  학생이 이번에 그뭐 우주탄인가 뭐인가 문제가 생긴 거기 대해서 기도를 하면서,  나는 '그게 태평양에 떨어졌으면 좋겠다' 이랬는데 주일학교 학생은 기도한다는  소문을 들으니까 '태평양에 떨어지면 고기가 죽고 마지막에 사람에게 피해가 올  터이니까 이 지구 밖에서 그만 타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면서 그렇게 기도를  하더라고.

 그라면서 매일 자기 가족들에게 '주님이 이 지구 하에서 타 버리도록 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그렇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자다가도 '믿습니까?' 깜짝 놀라 무슨  소리인가 몰라 무슨 소리인가 들으니까 '예, 믿습니다.' 또 아이들에게도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 다짐을 자꾸 해서 '하나님이 소각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예  믿습니다.' 자꾸 이렇게 연상하고 있단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자문 자답으로 '내가 참 소망하느냐?' 무엇을 하나 성경에 봤으면 '이것을  내가 소망하느냐?' 혼자 자문 자답으로 '소망하느냐? 내가 소망한다.' 또 가다가  '내가 이 사실을 소망하느냐? 소망한다.' 누워서 자다가도 '이걸 내가 소망하느냐?  소망한다.' 그렇게,  이렇게 소망하는 믿음을,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다지고 다지고 또 소망하고  소망하고,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이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이 사실을  소망하느냐?'  '정말로 제일 크시고 자존하신 제일 크신 분, 그분이 한 손가락으로 우주를  지었는데 이렇게 크신 분이 이분이 아버지 되신 것을 소망하느냐? 믿느냐? 이분이  우리의 아버지시니까 그분이 우리에게 모든 것 해 주시마고 목적을 정했고,  주권으로, 대속으로, 보증으로 이렇게 하시는 이 사실을 소망하느냐?' 혼자,  혼자 눈감고 앉아서 '주여, 내가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내가 소망합니까? 예,  소망합니다.' 자꾸 이렇게 다지고 다져서, 이 지식의 믿음은 가지기가 제일 쉬운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대로 소망의 믿음을 가지는 이것이 참 힘듭니다.

 소망의 믿음을 가진 그것이 바로 되면 실행의 믿음이 돼 버립니다. 소망의 믿음이  바로 되면 필연적으로 실행의 믿음이 돼 버립니다. '나도 요와 같이 살겠다. 이제는  요와같이 행하겠다. 기회만 오면 놓치지 않겠다.' 이래서 실행의 믿음이 거게서  움돋아 오릅니다.

 지식의 믿음, 소망의 믿음, 실행의 믿음이 견고해지면 거기에 인내의 믿음이  생겨집니다. 이렇게 크신 분이 큰 포부를 가지고 큰 소망을 우리에게 이루시려  하니까 내 조부라운 생각대로 '이 시간 됐으면 좋겠다, 오늘 됐으면 좋겠다, 생전에  됐으면 좋겠다.' 이것은 언어도단의 조급의 것이고 아무짝도 못쓸 내 주관의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오래 참아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다니엘에게도  '일천 이백구십 일을 견디고 일천삼백삼십오 일을 견뎌야 구원이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오래 참고 견디라 했으니까,  주님이 주시는 구원은 젊음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늙음까지 끝내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죽음이 없는 영원 무궁의 구원이니까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 구원을 내가 이루어 받으려고 소망하는 내가 조부라운 내  마음대로 한계를 그렇게 정해서 되겠느냐? 그것조차도 한정도 당신에게 맡겨야지.

 십 년 만에 이루어 주실런지, 나 죽고 난 다음에 몇십 년 만에 이루어 주실런지,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 죽고 난 오랜 후에 수천 년 후에 신약 교회에 그분의 많은  수의 자손들이 생겨졌습니다.

 이러니까 자연히 지식의 신앙을, 하나님 말씀한 그 모든 지식을 내가 받아들여서  그 지식을 참 지식으로 알아 그 지식대로 내가 지식하니까 자연히 땅에 있는 모든  소망은 다 참 풀의 꽃과 같이 너무 허무하고 그분이 약속해 주신 그 지식의  소망만이 참 소망이기 때문에 그 소망에 굳게 서게 되고, 그 소망을 굳게 잡고  보니까 자연히 자기는 그대로 실행을, 그대로 살고 싶은, 그대로 실행하고 싶은  실행의 믿음이 자기에게 필연적으로 생겨지고, 실행의 믿음이 생겨지고 그 위에 세  가지 믿음이 생겨지고 보니까 자기가 그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것을 기간을 자기  마음대로 하루라, 오 년이라, 십 년이라, 생전이라 해 가지고는 안 되겠고 몇백 년이  걸릴런지 몇천 년이 걸릴런지 모르니 당신에게 맡겨서 잘 이루어 줄 것을  소망하면서 그분에게 맡겨 놓고 이루어 주시도록 끝까지 바라보면서 견디자 하는  이런 인내의 신앙이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신앙이 생겨지도록 우리가 한 말씀 한 말씀을 보고 자꾸 요 네 가지  신앙이 마음 속에 생겨지도록, 이러면 하나님이 현실을 주실 때에 그 현실에서는  무엇을 하시는고 하니 현실에서는 이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보자, 네가 참으로 지식의 믿음을 가졌느냐?' 지식의 믿음을 가졌느냐 그럴 때는  우리 지식을 시험할 수 있는 마구 온갖 지식이 다 모아들어옵니다. 온갖 지식이 다  모아들어와서 이 지식은 이렇게 말하고 저 지식은 저렇게 말하고, 지식이 많이  혼잡하고 혼돈되고 아주 복잡 해질 때에 그때에 우리는 우리가 지식하는 것이 어느  지식을 지식으로 자기가 확정을 지웠는지 그 결정이 나오고 표시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러면 그만 이 자식 따라가고 저 지식 따라가고 대학도 다닐 때까지  신앙 생활 하는 사람이 위에 가서 최고의 세상 학문을 배우니까 그게 크고 그게  오묘하고 성경 지식 하나님의 계약 지식은 허무하다 해서 그만 그리 따라갑니다.

어떤 사람은 중학교 때에 신앙을 잊어버려 이 지식을 팔고, 고등학교 때에 이  지식을 팔고, 대학에 팔고 최고의 학교에 가 가지고서 팔고, 세상 경험해서 많은  지식 가운데서 팔고,  이 파는데 하나님이 '네가 지식의 믿음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네가 가진 지식의  믿음이 어느 정도 확고하며 어느 정도 허무하냐?' 이것을 시험해서, 하나님은  아시지마는 시험해서 우리 본인에게 알게 하시고 다른 사람에게도 알게 해서 다른  사람이 속지 않도록 자기도 속지 않도록 이렇게 지식의 시험을 시험하기 위해서  우리 현실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 지식의 믿음이 거게서 약했다가 일어서기도 하고, 허무한  것이 허무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또 지식의 믿음이 굳게 서기도 하고, 또 가다가는  소망의 믿음을 시험을 하십니다. 소망의 믿음은 소망 가지고 시험하십니다. '나는  성경에 있는 이 사실을 소망한다' 이랬지마는 이런 소망 저런 소망 여러가지 소망을  갖다가 붙이니까 그만 자기도 모르게 이 소망 저 소망 이렇게 구경하다가 다른  소망으로 끌려서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가지지 못하고 세상이 주는 그 소망과 이  소망을 바꿔버렸습니다.

 바꾸고 그 시간을 지내보내고 나니까 후회가 돼서 다시 회개하고 '내가 이 소망을  잃었습니다. 내가 소망한다는 것이 참 요렇게 빈약 합니다. 이제는 어떤 세상이 와도  내가 믿음으로 소망하는 것 당신이 주신 그 소망 이 외에 딴것을 소망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소망의 시험에 통과도 되고 낙제도 되고, 이러다가 그게 됐으면  그 다음에는 또 실행을 시험합니다. 실행의 시험은 내가 그대로 살기로 결심도 하고  또 소원도 하고 했지마는 현실에 하나님이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그런 현실도  주시고, 그러니까 실행도 한번 해 보고, 조금 더 어려운 현실을 줘 가지고  실행했는데 하려 하니 그만 실행 못 하고 넘어졌습니다. 넘어지면 '나는 실행이  이렇츰 없습니다.' 자타가 알아서 거기서 또 회개하고 일어섭니다.

 또 그 다음에는 인내의 믿음을 또 하나님이 시험하십니다. 믿는다고 했지마는 얼마  어려운 일이 있으니까 그만 낙망하고 워낙 안 될 만한 그런 도무지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이요 비세상적인 그런 일이 턱 닥쳐 올 때는 '여게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겠나? 여게서 내가 소망을 계속해야 될까? 여게서도  실행을 계속해야 될까? 여게서도 하나님의 지식을 지식하는 것을 계속해야 될까?'  이제 발발 떨면서 이래 하다가 그만 그 계속하는 인내가 턱 꺾어질 수 있습니다.

 꺾어지고 그 시간 지나가고 나면 마음에 후회가 돼서 다시 일어나면서 또,  꺾어지면 꺾어져서 이걸 뺏길 때는 마귀 그놈이 와서 빼앗는데 빼앗겨 놓으면 좀체  그놈이 놓아 주지 않습니다. 한번 뺏겨 놓으면 일 년도 가고, 십 년도 가고, 어떤  사람은 평생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본야 완전자가 없기 때문에  주님이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소망의 담력을 주는 것이요 실상의 말일니다.

 우리는 안 넘어질 자가 아니오. 넘어졌다가 일어날 자요. 우리는 실패를 안 할 자가  아니오. 실패하고는 다시 주님을 붙들고 일어서서 성공할 자인 것입니다. '하루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해 줘라' 그말은 일흔 번씩 일곱 번 넘어져도  너는 낙망하지 말고 소망하고 다시 주를 바라보면서 일어서라. 다시 살아라.

 모든 것을 내가 주권하고 있으니 네가 회개하고 일어설 때에, 양 새끼가 목자를  두고 도망칠 때에는 이리도 맞대 있고 가시덤불도 맞대 있어 제가 목자를 떠나가는  경험에 애로 많은 것을 다 경험하고 체험했지만 회개하고 주님에게로 돌아오는  걸음은 주님이 어깨에 메고 아듬고 오기 때문에 과거에 저 혼자 주를 떠나 세상으로  달아날 때에 그때 경험한 그 경험이 있어서 그 일을 닥치면 깜짝깜짝 놀라지마는  주님의 품안에 어깨 위에 안겨 가니까 이리도 구렁텅이도 덤불도 상관이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우리의 이 믿음을 하나님이 시험하실 때에 넘어지지 아니할 수  없는 자입니다. 넘어질 것을 아십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넘어지면 또 일어서서  이렇게 이렇게 해서 자라고 자라서, 한번 넘어지고 그 다음에는 그 단계에서는 안  넘어지고 또 그위에 단계에서는 또 섰다가 넘어지고, 그 위 단계 그 다음에 안  넘어지고, 이렇게 넘어지면서 일어서면서 넘어지면서 이러면서 우리를 온전한데  이르기까지 인도하시는 방편으로 당신이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타락이 먼저요 구원이 그 다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이 믿음에 마음의 믿음에 네 가지  요소를 갖추려고 우리는 애를 써야 됩니다. '내가 지식하느냐? 이 지식을  받아들였느냐? 내가 지식하느냐? 지식한다. 이대로 소망하느냐? 소망한다. 이대로  실행하겠느냐? 실행하겠다. 말씀하신 대로 끝까지 견디겠느냐? 견디겠다' 혼자 자문  자답으로, 참 주님 외에 아무도 의논할 이도 없고, 믿을 이도 없고, 안심될 이도  없고, 맡갈 만한 이도 없고, 부탁할 만한 이도 없고, 책임질 만한 이도 없고, 바로  지도할 만한 그렇게 그런 실력가도 아무도 없고, 또 끝까지 견딜 분도 없고, 이러기  때문에 주님하고 이렇게 주님이 하라는 것 마음 속에 이 네 가지를 하려고 애쓰는  것은 이는 참 평강입니다.

 이는 가치 있는 일이요 이것이 허무한 것 같지마는 네 가지를 자꾸 이렇게 돌려서  이 네 가지 믿음이 마지막에 화합이 돼 가지고 단일성을 이룰 때에 이 네 가지  믿음이 하나가 될 때에 그 다음에 할 일이 뭐인가?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에서 자꾸 시험하십니다. 내가 되지도 안하고 '공부 다  생습니다. 나는 이 네 가지 믿음을 구비했습니다.' '그래?' 한 가지 현실을 주시니까  뜻밖에 이렇게 지식 하나 안 하나 하다가 많은 지식이 오니까 많은 지식을 듣다  보니까 그만 내 머리가 빙 돌아 가지고서 하나님이 말씀한 그 지식이 얼떨떨한 것이  '참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나간다는 것이 미개한 것이 아니며  무식한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최면술에 절린 것이 아닌가?' 그만 지식이 혼잡되어  얼떨떨해 가지고 그 지식이 흔들립니다.

 또 이런 것 저런 것 자꾸 소망을 이렇게 갖다 들이대니까 성경이 말한 그 소망  외에 딴 소망이 내게 와 가지고 그 소망을 내가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소망만 가진  자가 되지 아니하고 어만 소망을 가지게 되더라 그거요.

 또 내가 요대로 살겠다 했지마는 환경을 이래 주 대니까 그대로 살지 안하고  엉뚱한 실행을 우리가 하다가, 하고 나면 가슴을 치면서 또 후회를 하게 된다  그거요. 인간은 이렇게 연약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낙망이 사망입니다. 실패하지 아니할 수 없는 사람인데  낙망하면 저는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소망의 투구입니다.

 그런고로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서 당신을 바라봄으로써 첫째 사람  이것 치워버리고 새사람되는 새사람의 이 요소가 이루어지는 분량만치 그것이 자기  가치요 그게 권능이요 그게 세상에서도 권위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득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네 가지 믿음을 마음 속에서 읽고 듣고 할 때에 가지도록  노력을 합시다. 인류 조상도 이 지식을 못 가져서 아담 하와가 실패했습니다. 또  롯이나 에서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망하지 안해서 다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라든지 그 청년 그런 사람들은 지식하고 소망하고 인내하니까 다 성공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갈 때에 당장 이루어지는 일도 있고, 당장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오래 있다가 이루어지는 일도 있고, 죽을 때까지 안 이루어지고 죽고 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기간은 길어갈수록 가치가 커지지 적어지지 않습니다. 당장에 이루어지는  그것보다 오래 동안 있다가 이루어지는 것이 가치가 더 크고, 오랫 동안 이루어지는  것보다 죽고 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 더 큽니다.

 죽고 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도 죽고 난 다음에 바로 몇 해 후에 되는 것, 몇십  년 후에 되는 것, 몇백 년 후에 되는 것, 세월이 오래 갈수록 그 이루어지는 결과가  컸지, 우리 사람은 오래 가면 흐릿해지고 그만 흐미해집니다. 없어집니다. 인간은  사망에 속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생명은 갈수록 성장되지 그게 약화되어지는  것 아닙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는 것을 그들이 본 것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본 것은 다 그들은 죽음 너머 것을 봤습니다. 비유컨데 그들은  죽은 사람들입니다. 사자구덩이에서 넣었으니 죽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이 없어도 그들은 믿고 사자구덩이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사람  보기에는 그는 다 죽었습니다. 이렇지마는 그 이튿날 살아나올 때에 성과가  컸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믿어 나가려고 할 때에는 끝까지 견디는 이것이 있어야 되지  그것 없으면 안 됩니다. 오전에도 '끝이 없는 마음의 믿음, 끝이 없는 실행의 믿음,  끝이 없는 소망의 믿음, 끝 없는 믿음을 가지자.' 하는 것을 제가 기도했었습니다.

 그러고 또 하나님이 이 믿음을 시련을 합니다. 이렇게 자꾸 지식의 믿음, 소망의  믿음, 실행의 믿음, 인내의 믿음을 시험해 가지고서 네가 가지고 있나 없나? 잘못  가지고 있나?' 시험하시고,  또 시험하시고 난 다음에는 연단하십니다. 연단한다는 것은 금을 연단한다고  말했는데 금을 불로 연단하면 잡것은 타고 순금만 남는 것처럼 지식을 하나님  지식을 믿는다고 하지마는 잡탱이 지식, 그 지식만 믿지 안하고 인간 지식 하나님의  지식 몇 프로씩 섞어 가지고서 믿는 그것을 죽기 전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지식만이  참되지 인간의 지식은 참되지 않는다 하는 것을 그 사람이 자라가는 정도에 따라서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지식 하나만으로 자기 지식을 삼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꾸 연단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우리 앞에 닥치는 일을 우연이나 무심히 닥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일이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면 믿음을 연단해서 잡것을 없애는 것입니다.

 소망도 참 순수하게 하나님이 주신 그 소망만 가졌는지 여러가지 잡탱이 소망을  가졌는지? 하나님이 잡탱이 소망을 없애버리면 그만 기쁨도 달라지고, 평강도  달라지고, 그 사람의 모든 힘이 달라집니다.

 그거는 뭐이냐?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은 요동치 안하는데 세상에 속한 소망이  가감되니까 그게 많아지니 사람이 더 다르게 기뻐지고 그게 없어지니 사람이 또  슬퍼지고 이걸 봐서 네가 세상 소망이 몇 프로며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 몇 프로냐?  또 네가 실행하는 그 실행이 네가 누구를 돈 힘을 입어서 네가 실행하느냐? 네 꾀로  실행하느냐? 세상 이런 수단 방법으로 실행을 하느냐?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실행을 하느냐?  자꾸 이래서, 한목 그걸 없애버리면 안 되니까 차차 차차 하나님이 이렇게 금을  연단하듯이 연단해서 차차 차차, 마지막에는 신구약 성경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과 관계되는 요것만 남아 있고 나머지기는 하나도 없도록  해서 죽기 전에 정금보다 더 깨끗이 순전히 하나님의 지식만, 하나님의 주시는  소망만, 하나님의 그 능력으로 실행하는 실행만, 하늘나라만 바라보는 영원한 소망을  소망하는 그 소망만 요렇게 있도록 우리에게 한 그것을 가리켜서 행함의 믿음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믿음 속에 네 가지 요소 있는 것이 다 있어야 되는데 이것을 시험하고  연단하고 연성시키기 위해서 현실을 주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것을 가리켜서  행함의 믿음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시간이 짧기 때문에 언제 다  한번씩 실험해 볼 여가가 없습니다. 우리가 실험한다는 것은 몇 가지 안 됩니다.

일생을 살아봤자 몇 사건이나 살겠습니까? 이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의  믿음입니다.

 마음 믿음 속에 요 네 가지 요소를 확신 확신으로 다지고 다지고 다져서 요 네  가지가 굳게 되는 여게서 사람이 마음도 변해지고 몸도 변해지고 다 변해집니다. 요  네 가지 요소가 마음 가운데서 성립이 되어지면 다 돼 버렸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에 살게 하느냐? 그것은 시험할라고. 시험하는 것은 주님은  아시지마는 나도 모르고 있고 다른 사람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 있는데 없는 줄 아는 것, 없는 데 있는 줄 아는 것, 약한  데 강한 줄 아는 것, 그 실상과 자기의 지식이 일치되지 안한 그것을 실상으로  알리기 위해서 시험하시는 것, 또 잡것을 제하기 위해서 연단하시는 것, 그것이  행함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금년에는 첫 주일에는 '하나님의 도의 젖을 사모하라' 그 갓난아이가,  갓난아이는 아무것도 없어. 갓난아이는 젖 하나만 있으면 만족하고 젖 가진 어머니  있으면 만족하지 그 외에 딴게 없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요 다섯 가지 요만하면  족합니다. 요럴 수 있는 참 솔직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강한 사람이요  이것이 권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데에는 우리가 믿음으로만 하지 믿음 아니고는 다른 것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둘째 주일에도 믿음을 말했고 셋째 주일에도 믿음을 말했는데 요 믿음에 대해서  어짜든지 우리가 구비해 갖추도록 합시다. 마음의 믿음, 혼자 자다가도, 산길을  가면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공부하다가 '아이쿠, 내가 글 읽다가 이 믿음  잊어버리겠다.' 이렇게 할 수 있어서, 글 읽다가 믿음에 대해서 '내가 믿느냐? 내가  이 네 가지 믿음을 내가 믿느냐?' 이러면서 공부를 할 때에 그 사람은 명철해지고  그 사람은 산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라 했습니다. 우리 생각에도 주님이 그 안에 계셔야  생각이 살았고, 우리 취미에도 주님이 그 안에 계셔야 그 취미가 살았지, 우리의  성공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그 말 속에도 주님이 계셔야 그 말이 살았고  가면 갈수록이 존영해지지, 주님이 계시지 아니하는 말, 생각, 성공, 기쁨, 지식,  권세, 단체, 가정, 영광 어떤 것이라도 주님이 그 안에 주인공이 되셔 가지고 있어야  든든하지 주님이 주인공이 안 되고 주님에게 배치된 그런 것은 커도 많아도 다 죽은  시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확인, 확정, 확신합시다.

 (축도)  주님, 오늘 주일도 믿음의 말씀을 주셨사오니 감사합니다. 서부교회에 속한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주님이 보시고 만족히 여길 수 있는 확신을  날마다 갖추어 길러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사 현실 현실 만날 때에 주님 보시기에  합격 승리로 일 년을 마쳐 금년 일 년에 이루려는 이 구원이 지극히 클 수 있도록  믿음의 축복을 온 식구들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겸손하고 화평한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신덕을 빛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회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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