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것-기쁨,소망,안보,환난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22일 수야

 

본문 : 벧전1:3-7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당면한 일은 오늘밤에 주시는 이 말씀에서 말하는 네 가지만 회개를  하면 기뽀으로 즐거움으로 평안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425장(주:새찬송가435장. '고요한 바다로') 찬송과 같이 이렇게 세계가  점점 물 끓듯이 모두 전쟁에 도취돼 가지고 있는 이 모든 우리의 진실들이  이것이 우리에게는 큰 풍랑입니다. 큰 풍랑이지만 이 찬송과 같이 이 풍랑으로  인해서 우리 구원은 가속도로 빨리 이루어지기만 하지 세상이 우리익 구원을  손해보이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 구원을 손해 보일자는 자신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구원을 손해보이지 자신만 회개하고 굳게 서면 온 세상은 우리 구원을  돕는 일 외에는 하지를 못하도록 하나님이 딱 정해 놨습니다.

 네 가지 우리가 회개할 것 중에 하나는 "찬송하리로다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서  세상 이런 형편 저런 사정 모든 그런 당하는 현실들을 인해서 우리가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조급하고 비겁하고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다 회개해야  합니다. 왜? 주님은 우리를 항상 기뻐 노래하면서 살아가라 그랬습니다, 기뻐  노래하면서. 뭐 그렇게 노래할 게 있는가? 생각하면 감사의 노래할 것뿐입니다.

생각할수록 감사의 노래할 것뿐입니다 이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세상 일로 분주해서 날뛸 때는 상을 찡그리고 근심하고 있다가  고요히 묵상하면서 우리 주가 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나는 어떤 구원 얻은  자이며, 우리의 희망이 어떠하며, 우리편이 되셔서 우리를 돕는 은혜가 어떠한가  하는 것을 고요히 생각하면 그만 생각하다가,-모두 그런 모양이오.-생각하다가  '주여?' 고함을 지르고 그만 갑자기 똑 다른 사람이 보면 똑 미친 사람같이  됩니다 왜?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그럴 때에 모든 근심 걱정이 다 물러가고 완전히 기쁨으로 바꾸어 집니다. 이  기뻐 노래 부르면서 살아가라. 기뻐 찬송하면서 살아가라. 기뻐 차송은 어데 내  몸 밖에서 무슨 기악을 울리고 또 아주 유명한 성악 가들이 노래를 부르고 무슨  좋은 그런 구경이나 연극이나 그런 것이 있어서 우리가 그렇게 기뻐 찬미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으로 우리가 중생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러기에 자기가 고요히 묵상하면 자기 속에 하나님으로 인한 그 기쁨이 자기  속에서 솟아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가 가지고  전도하다가 얼마나 뚜드려 맞았던지, 뚜드려 맞고 이 왈에도 양괄에도 착고를  채우고 다리에도 채우고 그래 가지고 저 깊은 옥 속에 던져놨습니다. 이랬는데  밤중에 갑자기 그만 거기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하는 그만 찬송이 고함을  질러 터져나오는데 그러는 동시에 그만 거게 지동이 발깍 일어났습니다. 이래  가지고 옥문이 전부 다 열렸지 묶여 있는 죄수들이 다 풀렸지 거게 큰 진동이  왔었습니다.

 그날 밤에 빌립보 교회가 섰습니다. 교회 중에 빌립보 교회가 제일 깨끗하고  힘있는 교 회인데 하루밤에 세운 교회는 빌립보 교회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겉은  맞았지마는, 전부가 다 그놈 죽이라 하는 사람만 꽉 있지 하나도 거게 바울에게  기쁨이나 위로나 그런 것을 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옥에 채여 가지고 있으면서 가만히 자 기가 그 고난받는 것이나  고난반는 전도한 것이나 대주재이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나 이 모든 걸  생각하니까 어떻게 기뻐 못 견뎠든지 그만 차송을 기뻐서 찬송하니까 그렇게  깨달아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세와 자기 처지와 입장 모든 것을 바로 깨달아  기쁨이 충만히 튀어날 만치 깨달은 그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같이  역사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뭐 매맞은 것이고 모든 것 다 해결되고 가둬놓은 그 옥사장이  얼마나 혼이 났든지 와서 빌면서 가라 하는 걸 안된다. 너거가 판단하고 가라.!  그래 가지고 싹싹 빌고 옥사장도 그날 밤에 세례받고 예수 믿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능력은 이렇게 큽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첫째로, 회개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은 그  기쁨이 우리 속에서 솟아나와서 참 금할 수 없는 그런 감시f의 기쁘의 찬송이  우리 속에 금할 수 없게 솟아오르는 이 깨달음을 우리가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과거에도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 때문에 갇혀 있을 때에 그때 그 일본  형사들이 이 판자를 쭉 폈는데 판자 밑에다가 못을 총총 박아서 이래 놨으니까  여기 못이 모두 총총 박혀서 이만치 올라왔으니까 그저 거게 맨발로 지금  걸어가라고 하니까 그뭐 뚝딱뚝딱 하 그럴 것 아닙니까? 거게를 달라들면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하는, 어떻게 기쁘든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하는 그  찬송을 부르니까 그만 그들이 놀라서 그만 그 걸음을 다 건게 못하고 모셔냈는데  그래 주기철 목사님이 호통을 치기를 '너희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모르느냐?' 이러면서 호령을 치니까 그때 그만 그들이 벌벌 떨면서 그래 했다는  그런 것을 그 저기에 기록한 겯 나는 읽지는 안해도 읽는 사람에게 내가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기쁨 또 즐거움, 속에서 기쁘고 즐거운 그런 모든 기쁘고  즐거움, 이 즐거움을 바꿔야 됩니다. 뭐 오늘은 돈이 얼바 좀 들어왔으니까  기쁘다 하는 그까짓 거도 다 소용 없어. 오늘은 무슨 세상 사건이 하나  해결됐으니까 하는 그 기쁨도 소용 없습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기쁨을 바꿉시다.

 이 세상에 있는 기쁨은 어떤 기쁨이든지 만인간을 구원한 박애의 행위를 한 그  기쁨이라도 예수 밖에 있는 그 기쁨은 다 그것은 죽은 기쁨이요 마지막에는  반드시 슬픔으로 바꾸어지고 맙니다.

 이러니까 기쁨을 바꿔서 내 속에서 '자존하신 하나님,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 대주재 하나님이, 주권자 하나님이 아버 지라, 우리 아버지가  되셨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되신 것과 또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존영한 지위를 차지하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우리에게 상속된 이 구원을  생각하면 참 우리보다 더 기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묵상을 안 하고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노래 부르면서 갈, 찬송하면서 걸 어가야 될 이  찬송이 우리 속에서 터져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서 찬송이 터져나올 만치,  우리가 어떤 자이며 우리 입장과 처지와 소속과 희망이 어떤 자라 하는 이것을  못견뎌서 죽음 앞에서도 기뻐 찬송이 나오고, 감윽 깊은 속에서도 찬송이  나오고, 원수의 그 사형 선고받은 앞에서도 기쁨의 찬송이 나올 수 있는 이런  깨달음을 가졌을 때에 빌립보 옥중에 하나님의 그 진동이 온 것과 같은 이런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첫째 우리가 회개할 것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은총으로 인해서 기뻐 즐거워 못견디는 이 찬송하는, 찬송하 면서 어데서든지  찬송할 수 있는 사람, 뭐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와도 그때 입을 못 벌려  그렇지 찬송할 수 있고 그저 찬송을 말하니까 거기서 노래를, 대화하니까 노래를  안 부를지라도 속에서는 찬송을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찬송이 터져나오는 이런  감사와 기쁨이 우리 속에서 넘쳐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지극한 능력은  우리에게 와 가 지고 같이 역사합니다.

 뭐 돈 드는 것 아니오. 우리가 깨닫고, 사실되어 있는 그것을 우리가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자꾸 의심하고 부인해서 그게 병이지 있는 사실, 영원토록  변하지 안할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닫기만 하면 우리는 찬송 하지 안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깨달음으로 우리 속에 기쁨이 충만히 솟아오를 수 있도록 이제  기쁨을 바꿉시다. 땅에 있는 그런 기쁨 가지고 기뻐했던 그 기쁨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 즐거워 못견디는 이 기쁨으로 바꿔요. 이 기쁨을  바꿔요. 뭐 전부 보십시요,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은 무슨 기쁨' 그  기쁨 속에는 전부 죽음이 다 들었습니다. 그 기쁨 속에는 죽음이 다 들었어요.

겉에는 아주 아름답게 꾸며서 아주 굉장히 꽃같이 아름답지마는 속에는 죽음이  가득 찼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봐요. '오늘 내가 지금 무슨 기쁨이 있었는데 그  기쁨 속에는 죽음이 없는가, 죽음이 안 들었는가?' 여러분들이 가만히 생각하면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이 아니라면 그 기쁨 속에는 죽음 안 든  기쁨이 하나도 없습니다. 죽음이 가뜩가뜩 들었습니다. 뭐 사람들 사업가들, 또  가족끼리, 또 모든 이런 운동가들, 이런 정치 운동 저런 무슨 사회 무슨 운동 그  운동가들 하나 형통해지면 기쁘지마는 그 속에 다 죽음이 가득가득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죽은 기쁨을 가졌던 이 죄를 회개하고 죽은 기쁨을 버리고  영원토록 없어지지 안할 이 산 기쁨으로 바꾸자 그말이오. 기쁨 바꾸는 것  이것이 그렇게 잠깐 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을 바꾸는 데는 상당히 노력이  듭니다.

 이래서 내가 오늘도 어떤 사람 만나 가지고서, 이 조금 믿음이 낫아지면 이  병이 낫고 혹이 작아지고 또 믿음이 좀 거석하면 커지고 이러니까'뭐 이걸 그만  치료 안 해 볼까?' '그 치료도 하고 또 믿음도 가지라.' 내가 그렇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요.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신앙의 간증을 하면 그 믿지 않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도무지 정함이 없는 벌소리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 그렇게 말할 것이오.

 주님으로 말미암은 이 기쁨, 이 세상에 속한 기쁨을 버리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이 감사의 기쁨이 우리 속에 오면 달라집니다. 병도 달라지고 자기 사회도  달라지고 원수도 달라지고 전부가 다 달라져 버려요. 만물이 완전히 변해져  버립니다. 그 세계가 다 변해집니다. 내 안에서 이 기쁨이 내 안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있는 이 기쁨이 변해지면 내 밖에 있는 만물을  상대할 때 그 만물이 전부 내 눈에 다 변해집니다. 내 주관만이 아니고 실지로  상대할 때 다 변 해졌습니다, 벌써. 대하면 변해져.

 아마 여러분들이 혹 심방이나 전도하러 갔을 때도. 자기가 깨달아서 요 기쁨이  왔을 때에는 접측하면 상대방도 자기를 좋아하고 자기도 좋아하고 또 그럴 때에  만난 사람은 자꾸 만나기를 원합니다.'그분 한번 만났으면' 싶어하는데, 그만  그것 없이 가 놓으면 그만 '내음새 나서 안 만날라 합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은혜가 있어서 참 기쁨이  충만해, 없어지지 않을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해질 때는 이래 나서도 아예 그  기쁨이 없으면 문 딱 걸어 잠그고 어데 산에든지 가 가지고 그만 그렇지 그럴  때에 심방 가 가지고 대해 봤자 그 사람들에게 천대나 받고 도로 그 사람도 뭐  사망의 젓이나 줬지 생명의 줄 것은 없는 그런 걸 체험할 겁니다. 그래 기쁠  때는 나만 기쁜데 다른 사람이 그것 알 겁니까? 이래도 가서 척 가서 믿는  사람을 대하든지 안 믿는 사람을 대하든지, 학생을 대하든지 안 믿는 학생  대하든지 전부가 다 싹 변해버려. 그런고로 내 속에 기쁨이 변하면 내 주위의  환경의 세상은 변합니다. 변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요 기쁨을 회개하는 요것을 요게 처음 말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너희는 찬송하며 살아라. 찬송하며 살아라. 사형대 앞에서도  찬송하며 살아라. 십자가에 달려 가지고 십자가상에도 찬송 하며 살아라. 또  어데서든지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참 완전한 기쁨 영원한 기쁨이 우리에게는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마음의 눈으로 생각하고 생각하고 묵상하고 묵상하고  묵상하면은 이렇게 기쁨이 충만해지는데 그만 마귀가 우리 눈을 감겨서 그것  생각할 여가가 없이 돈이나 생각하고, 세상 무슨 사건이나 생각하고, 뉘 미운  것이나 생각하고, 이 모든 육체의 정욕들이나 생각하고 이러면 그만 깜깜해  가지고 우리는 고통 가운데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고로 오늘밤에 첫째 회개할 것이 이 기쁨을 바꾸자. 기쁨을 바꾸자. 사도  바울이 그 옥중에서 기쁨을 바꾸니까 큰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온 전국에 조서가 내렸을 때에 다른 사람들은 다 그만 식음을 전폐하고  죽겠다고 야단을 지겼는데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여전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깨달은 그 감사의 기쁨 그것이  들어서 다리오 왕도 거부했고 감사의 그 기쁨이 들어서 사자굴에 던짐을 받을  때에 그 깨닫고 나니까 어떻게 기쁜지? 거게서 잘되면 순교될 것이고 못되면  거기서 하나님이 살려 내 가지고서 복음의 큰 역사가 날 것이고 이 러니까  이래도 저래도 좋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깨달음의 기쁨에서 능력이  따랐습니다.

 이러니까 여게 권찰님들이든지 집사님들이든지 또 교역자들이든지 반사  선생님들이든지 이 속에 기쁨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을 접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그만 전하면 내 속에 무슨 마귀가 미혹 주는 이 세상으로  말미암은 근심 걱정이 가득 차 가지고 복음을 전하면 그 사람에게도 나로  말미암아 내가 가 가지고 그 사람에게 마귀 넣어주고 옵니다.

 또 이 세상 썩어질 기쁨으로 충만해 가지고서 가게 되면은 믿음 있는 사람은  죽이고 없는 사람은 세상을 그 속에다가 담뿍 집어넣어서 그만 그 사람이 세상  사람 만들어 버리고 옵니다. 이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기쁜, 이는  참 생각할수록, 자기 아버지가 사장만 돼도 그걸 의지해 가지고 기쁘고, 또 자기  아 버지가 그 양아버지가, O대통령이 양아버지만 돼도 그 얼마나 세도를 부리고  이랬는데 자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이것도 쉽게 안 돼.그러니까  어쨌든지 다른 사람 미쳤다 하든지 말든지,아버지는 창조주 창조주는 우리  아버지, 전능자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전능자, 전능자는 우리 아버지,  자꾸 자꾸 외웁니다.

 이러면 자기 강퍅한 마음에 배 들어갑니다. 이래서 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고, 우리의 주가 되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만물을 창조해 가지고 우리 구원에  사용하실라고 구비해 놓고 있는 이 모든 걸 생각하면 뭐 기쁘고 즐거워 못  견디는 거라. 안 그렇습니까? 예수 미치괭이라 하는 것이 이게 다른 사람이  미쳤다 하지 정말 깨달으면 절제 안 하면 미쳤다고 할 만치 뛰고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요. 제가 오늘 새벽에도 보니까 뭐 이러다가 고함을 콱 뭘 지르는데 그때는  제가 깨달음이 있는 모양이라, 그만 기뻐 못 견디는 모양이오. '주여 이런데  이런데 내가 뭣 때문에, 내가 비겁하냐? 이런 위치와 이런 소속을 가지고  있으면서 염려할 게 뭐이냐?' 뭐인가 제딴에는 깨달아 가지고서 감사가 튀어나온  거라.

 여러분들, 우리는 기쁨을 바꿉시다. 없어질 땅에 속한 기쁨 뭐 그까짓 거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뿐이지 아무 소용 없어. 따져보십시오. 무슨 가치 있는가?  무슨 가치가 있소, 그래? 안 믿을 때에 가진 것,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진 것, 그  기쁨 즐거움 뭐 만족하는 그것이 뭐 가치 있어? 그것이 사망으로 바꿔지지 안할  것이 뭐 있습니까? 한살 두살 많아가도 그만 바꿔지는데.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속에 주로 인한,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기쁨이  우리 속에서 생겨 나오도록 우리가 고요히 생각합시다 생각하면 우리 생각 속에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 생각 속에 나온 것이 공연히 위안제를 가지는 것입니까? 아니오.

그는 천지는 변해도 변 하지 않을 온전하고 참된 그 기쁨입니다.

 그 다음에 둘째로는 여기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딴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시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 산 소망이 왔습니다, 산 소망. 이제  죽은 소망 가지고 밤낮 분투노력 하다가 마지막에 죽는 그건 불쌍한 자 되지  말고 죽은 소망 버리고 이제 산 소망으로 바꿉시다. 죽은 소망과 산 소망을  바꿉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각각 모두 자기딴에는 큰 소망을  가지고 큰 포부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서 이 처녀들도 부러워서'그  학생은 참 희망이 있다. 그 청년은 희망이 있다.' 이래 가지고 부러워  야단지기지마는 그 소망이 다 죽은 소망입니다.

 여러분들, 우리는 죽은 소망과 산 소망을 이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죽은 소망. 세상에는 죽은 소망뿐입니다. 무슨 소망이 안 죽은  소망이 있습니 까? '나는 이래 가지고서 결혼을 해 가지고 아주 행복스러운  가정을 이루겠다.' 네가 천하에 제일되는 행복스러운 가정을 이루어도 예수  밖에서 있으면 그거는 죽은 소망이다. 반드시 죽은 소망이라. 반드시 멸망당할  것이고 뒤에는 영원히 가슴치고 후회될 것뿐이지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죽은 소망과 산 소망을 이렇게 구별해 가지고 '이 거는 죽은  소망이라.' 그래서, 내가 죽은 소망을 가지고 노력하고,죽은 소망을 가지고  살고, 죽은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하고, 죽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열중하는  이 모든 죽은 소망을 다 버리고, 죽은 소망을 다 버리고 내 육이 죽어도 죽지  안할 소망, 천지가 변해도 죽지 않을 소망, 예수님의 재림이 와도 죽지 안할  소망, 심판 앞에 가도 죽지 안할 소망, 산 소망. 이 산 소망으로 우리가  바꿉시다.

 산 소망으로 바꾼 사람은, 산 소망으로 바꾼 사람은 세상이 와 가지고 창으로  찌르면 좋답니다. 산 소망으로 바꾼 사람은 세상이 와서 창으로 찌르면  줘답니다. 욕을 하면 좋답니다. 산 소망으로 바꾼 사람은.

 산 소망으로 바꿔 가지고 산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노식한다고 세상 저거편  아니라고, 세상이 어리석은 자라고, 또 세상이 대적하고 핍박 하고 어떨게  박해한다 할지라도 소망을 바꾼 사람은 기쁩니다. 소망을 바꾼 사람은, 그  사람은 세상이 해하지 못하요.

 그 사람이 산 소망을 가지고 이루기 위해서 일하는데 자, 뺨을 때리면 어찌  됩니까? 뺨을 때리면 손해입니까? 뺨을 때리면 그것도 유익이오. 산 소망 가지고  산다고 먹는 밥을 뺏들어 가지고 굶기면 어짭니까? 굶으면 그것도 또 유익이오.

산 소망을 가지고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두면 그건 손 해입니까?  아니오. 그것도 또 유익이오'이놈 산 소망을 가지고 사니까, 산다 하니까 이놈은  죽여버려야 되겠다.'  그러면 죽이면 그거는 유익입니까 손해입니까? 유익입니까 손해입니까? 한번 저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이소.손해 못 지웁니다. 산 소망을 가진 사람은 손해 못  지웁니다. 아무리 이북에서 내려오든지 말든지 산 소망 가진 사람은 그들이  오면은 복될 것뿐이고 유익될 것뿐이지 털끝만치도 손해갈 건 없습니다.

 이러니까 썩지도 않고 쇠하지도 안하고 낡아지지도 안하고 더러워 지지도  안하고 죽지 안하는 이 산 소망, 이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소망을 바꿉시다. 죽은 소망은 버리고 죽은 소망을  바라고 살던 그것을 회개해서 산 소망으로 바꾸어 가지요.

 그러면 우리는 이 회개에서 기쁠 수 있습니다. 산 소망을 가지지 못한 자는  예수를 믿어도 고통이오. 예수를 믿어서 모두 금방 좋다고 허허 하지마는 그  속에 죽은 소망이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송장이 나옵니다. 이러니까 좀  있다가는 뭐 불만 불평 원망 시비, 산 소망으로 바꾼 사람은 어데서든지  평안이오. 만물이 해를 못합니다.

 그런고로 죽은 소망을 가지고 살던 이 죄를 회개하고 산 소망으로 바꿉시다. 참  잘난 사람입니다, 산 소망으로 바꾼 사람은 참 잘난 사람이오. 용기 있는  사람이요 행복스러운 사람이오. 그 사람은 담대할 수밖에 없어. 산 소망으로  바꿉시다.

 셋째로 5절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우리는 지금 참  안보가 문제입니다. 우리를 평안하게 보호해 주는 안 보가 문제라. 어떤 사람은  '지금 이 시국에서는 어떻게 안보를 할까? 뭐 헬리콥터라 하던가 뭐이 그런  비행기를 하나 마련헤 놓을까? 배를 한 척 마련해 놓을까? 또는 여권을 받아  놓을까?' 이런 것 저런 것'돈으로 나를-보호해 달라고 돈의 권세의 안보를  받을까,돈의 권세로 안보할까, 이 세상 무슨 권세로 가지고서 안보할까,  강대국에 이민으 로서 안보할까, 좋은 공중에 날아다니는 무슨 타고 다니는  비행기나 그런 것 가지고 안보를 할까, 누구 인간으로 안보를 할까 내 구변으로  안보를 할까?' 다 좋기는 좋지마는 궁극적인 안보는 안 됩니다, 궁극적인 안보는  안 돼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으로 우리가 안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믿으면 안보 받을 수 있어. 자기가, 자기가 믿으면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 안 믿으면 안 돼. 어떤 큰 대적의  권세가 태적의 강한 권세가 와 가지고 해할 때에 이 권세보다 나의 주님의  권세는 터 크심을 내가 믿을 때에 그 권세가 그 권세를 깨뜨리고 거게 나를  구출합니다. 믿을 때에 웃습니다. 그래 가지고 손양원 목사님은 모든 원수들이  날뛰는 것을 다 웃음으로 댄했다 합니다. 그들이 뭐 풋장담을 가지고서 이렇게  떠들지마는 속으로'야, 허풍 떨지 말아라. 허풍 떨지 말아라. 네 권세보다 우리  주님의 권세가 더 크다.'  주님의 전능하신 그 능럭을 믿을 때에 그 능력이 내 주관을 편케 하고, 내  마음을 편케 하고, 내 몸을 편케 하고, 실상 편케 하고, 그래 가지고 나는 그래  평안한데 호들이 만일 우리에게 했으면 유익만 주지 해는 못 합니다. 털끝만치도  해는 못 합니다.

 이렇게 그 능력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능력의 보호를 입어 평안 하고  즐거워하고 담대하고 있는데 그들이 만일 그 사람을 해합니다. 해하면 해한  그거는 전부 면류관이요, 해한 그거는 전부 상급이요 해한 그거는 전부 주님에게  가져갈 사랑의 선물이요, 이러니까 좋을 것뿐 이지 뭐 하잖을 게 하나도 없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땅에 있는 이런 것 저런 것 가지고 우리가 보호함을 입으려고  하던 이 안보주의를 이 세상에 피조물의, 어떤 뭐 강대국이 든지 어떤 것이든지  피조물의 안보를 우리가 바라던 그 안보를 회개 하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의 안보 이 안보로 안보를 바꿉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우리가 입었다 그말이오. 입고 있는데 입고 있는 것을 자기가 인정치  안하니까 떨지, 겁나지. 또 인정치 안하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호해 줄 터인데 안 믿으니까 보호해 줄 수가 없지.

이러기에 여게서 낭파 다 당하는 겁니다. 이제 주님의 어떠하심을 자기가 믿으면  믿음으로 인해서 우선 평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또 이 능력은 실상으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를 안보해 줄 수 있고, 먼저 믿을 때에 내 주관적인 평안과  기쁨이 먼저 충만해지고 믿을 때에 둘째로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실지로 우리를  안보해 주실 수 있고 셋째로 안보해 주시는데 그들이 그 다음부터 하나님의  안보를 받는데 그 다음부터 우리를 어떻게 하든지 그것은 전부가 다 우리에게  유익됩니다.

 사자구덩이 집어넣어도 유익, 불미 속에 집어넣어도 유익, 죽여도 유익, 살려도  유익, 그런 일이 없이 매만 맞고 나왔어도 유익, 죽임받 아도 유익 그만 이  안보를 받은 자는 그도 영원히 해하지 못합니다. 요걸 믿는 게 믿음이오, 요걸  믿는 게 믿음.

 요 믿는다는 것이 그래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요 믿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요 믿음이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 산에 가서, 또 밤에 자꾸 천 번이든지 백  번이든지 자꾸 말합니다. 자기가 안 믿는 그 요소를 말해서 다 자꾸,  조그마치라도 이래 갈면 다 갈려나가 버려, 없어져 버 려. 자꾸. 가만히 혼자  앉아 있으면서 '공산군들이 와서 쭉 포위를 해 가지고 설 것이다. 포위하고 설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 어떨까? 전능자가 나와 같이 계시니 무슨 문제냐? 또  주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셔서 주님이 하신 것이니 당신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징말로 믿는지 안 믿는지 나를 시험해 보시는 것이니까 사랑하는  자로 더불어 연애 하는 것이지.'  이러니까 이렇게 주님의 그 능력의 보호로 자기의 안보를 삼은 사람들은 안보를  삼은 그 믿음이 있을 때에 제일 처음에는 자기 주관적인 평안이 옵니다. 자기  주관적인 평안이 와. 기뻐.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가 있어.

이러니까 그 안보를 가지고 주의 안보를 믿는 그 믿음을 가진 그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객관 역사는 와서 일할 수도 있고 그때에 자기 주관은 그로 인해서 또 그  은택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관적인 그 평강도 얻게 되고 또 믿 음으로  말미암아 객관적인 그 보호도 입게 되고, 그럴 때에는 다른 어떤 것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요렇게 믿음에 입각되어 있는 자는 해하는 길이 없습니다. 해하는  길이 없어. 해할 수 있겠습니까? 해하지 못해. 자꾸 상급만 되지. 욕하는 것도  상급, 때린 것도 상급, 가두는 것도 상급, 주님 때문에 새앗겨서 거지된 것도  상급, 썩어질 것 가지고서 썩어질 것 이제 손해보고 썩지 안하고 영원 무궁한  것을 유익봤으니까 얼마나 쫓습니까? 이러니까 안보를 바꿉시다.

 넷째로 바꿀 것은 우리가 이런 저런 모든 환난 오는 것, 여러가지 근심할 만한  그 모든 근심거리, 고통거리, 온갖 환난 그런 것 오는 것을 그게 뭐입니까? 오는  그것을 시험으로 바꿉시다, 시험으로.

 내게 모든 오는 환난 그것은 환난 그것을 보고서 '나는 고통스럽다, 나는 지금  불행스럽다, 불리하게 됐다, 기막힌다.' 할 게 아니라 그것이 주님이 나를  당신이 주신 산 소망을 가졌나 안 가졌나, 당신의 능력의 보호를 입고 있나  없나, 믿나 안 믿나, 당신으로 말미암은 기뻐 못 견디는 이 노래 부르지 안할 수  없는 기쁨 이 기쁨을 자기가 가지고 있나 없나 하는 이것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모든 환난을 그 환난으로 볼 게 아니라 그 환난이 그것이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 같은 것을 귀중히 여겨서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하며  당신이 준 선물을 어떻게 간수하며 어떻게 인정하며, 당 신의 보호를 어떻게  인정하며, 당신이 준 산 소망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가? 이것을 사랑하는 자가  시험하시는 것이니까 시험하는 것이니 기쁘지,  모두 보니까 예비, 대학 뭐 예비고사인가 뭐인가 쳐 가지고 예비고 사에  떨어지고, 어떤 사람은 작년엔가 금년엔가 어떤 학생 그만 약 먹고 자살했데요.

대하에 들어가는 시험 칠 자격을, 시험 칠 자격을 얻지 못했다고 해 가지고 그만  낙망하고 약 먹고 자살했어.

 자기가 이렇게, 그런 시험도 그런데 지극히 크신 대주재이신 이 하나님, 이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는 것이라, 나를 시험하시는 것. 그러기 때문에 환난으로  보고 있던, 환난으로 보고 있던 요 죄를 회개하고 그 환난이 환난이 아니라  그것이 주님이 나를 시험해' 보시는 시험이라는 것으로서 우.리는 바꾸어 가져야  됩니다.

 주님이, 당신이 하나님이면서 나를 시험하시니까 시험할 때에 이 것이 참으로  나로 인한 이 기쁨을 가졌느냐? 만고에 천하 제일 기쁠 수밖에 없는데. 그때에  어떤, 기쁨을 가질 수 없는 이 세상 모든 것 으로는 기쁨을 가질 수 없는 그런  현실을 줄 때에 세상 것으로 인한 기쁨이면 하지마는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기  때문에 그때 기쁨이 없 어지지 않고 주님이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기뻐서  웃음도 더 크게 웃고, 기쁨도 더 크게 기쁘고 그러면 합격 안 되겠어?  또 '이게 보자, 네가 내가 지금 말했는데 너에게 산 소망을 줬는데 이 산  소망을 네가 지금 가지고 있나 안 있나, 이 소망을 인정 하나 안 하나?'  시험하는 것이니까 이제 거기서 '주님이 시험하신다.' 눈에는 안 보이지마는  창살틈으로, 아가서에 보면은 사랑하는 자가 이 창틈으로 지금 나를 내다보고  있다.나를 들여다 보고 있다. 안 보이게 은신해 가지고 창틈으로 '어짜는가 보자  눈에 보이지 않은 주님이 내가 당신이 준 이 산 소망을 어떻게 가지고 있나 이거  지금 당신이 시험해 보고 계신다.

 이러니까 저 혼자면 냉냉하지마는 이렇게 지극히 존귀한 자가 나를 시헙해 보고  있는 것이니까 그때에 시험하는 것이니까 '주여, 내가 소망합니다.' 산 소망을  가진 이 소망을 그때 힘을 바짝 써 가지고 이 소망을 가진 것으로서 이제 쭉  나타내면 주님이 '야, 네가 참으로 내가 준 소망을 가졌구나.'  또 이렇게 시험할 때에 "보자, 내가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 저를 안보하고  있는데 이 안보하고 있는 것을 제가 믿나 안 믿나 시험하는 것이니까 어떤 게 와  가지고서 '이놈, 당장 어떻게 할란다.' 할 때에 지극히 큰 능력이 보호하는 것을  당신이 시험할라고 하는 것이니까 네가 암만 그래도 나를 보호하는 능력이 더  크다.' 이래 가지고, 하거나 말거나 거기 대해서 위협받고 협박당하고 근심하고  걱정하지 안하고 그럴수록 사랑하는 주님이 지극히 큰 능력으로 나를 보호하실  약속을 하시고 나를 보호하고 계시면서 내 보호를 인정하나 안 하나 해 가  지고서 연극으로 꾸며 가지고 하다 떡 그래 가지고 이럴 때에' '주의 안보를  내가 믿습니다.' 믿는 걸로 턱 돼 버리면 합격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모든  환난을 사랑하는 주님이 나를 시험하시는 시험으로 바꾸어 깨달으라 그말이오.

깨달아 가지고 바꾸어 가지라. 또 모든 우리에게 오는 환난을 주님께서 내게,  내가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나 또 이 소망이나 안보를 이렇게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옆에 이 모든 환난이 올 때에 가만히 환난을 살펴보니까 그 환난이  땅에 속한 기쁨은 없애는 환난입니다. 땅에 속한 기쁨을 없애는 환난이라  그말이요, 그 환난이 땅에 속한 그 기쁨을 없애니까, 땅에 속한 기쁨이 없어지니  그만 근심하고 발둡을 합니다. 주님이 기쁨을 주시면서 그 기쁨을 가진 그  기쁨만 가지고 사망의 기쁨은 가지지 못하도록 해 가지고서 그 환난을 통해  가지고 사망의 기쁨을 하나씩 깨뜨려서 없어지라고 만드는 것이니 사랑하는 자가  나에게 사망의 기쁨을 없애고 산 기쁨을, 영생하는 영생 가진 그 기쁨을 나에게  바꾸어 주셔서 죽은 기쁨을 제거하시고 산 기쁨으로만 가지도록 이렇게  정선해서, 잡철을 태우고 순금만 남기는 것 모양으로 이렇게 정선해 주시는  것이니,  너희에게 당한 모든 환난이 네가 땅에 있는 기쁨과 하늘의 기쁨을 가지고 섞어  가지고 있는 그것을 땅에 있는 기쁨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네가 깨닫고  환난이 올 때에 환난이라고 걱정하는 그 근심 걱정하는 그 죄를 회개하고 땅에  있는 기쁨을 제거하고 하늘에 속한 주로 말미암은 기쁨만 남아 있도록 주님이 요  연단에서 잡 기쁨을 제거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네가 깨달아서 바꾸어 가지라.

또 네가 땅에 이것 저것 소망, 이런 소망 저런 소망 가지고 하늘에 소망도 땅에  소망도 섞어 가지고 있는데 요 환난이 땅에 속한 소망은 깨어지고, 깨어지는  거는 하늘에 소망만 가지도록 하는 젓이니까 땅에 속한 소망을 깨지게 하는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네가 깨달으라.

 그러면 땅에 있는 환난을 근심하던 그것을 회개해서 주님이 나에게 썩은 소망을  제거하고 산 소망으로만 완전히 구비하기 위해서 하시는 요 주님의 사랑의  연단인 것을 네가 깨달아 가지라.

 이러니까 환난으로만 보던 것을 회개해서 사랑하는 주님이 나를 시험해서 '있나  없나, 됐나 안 됐나? "시험하시는, 시험 끝에는 반드시 시험에 합격만 되면  높아지는 거라 그말이오. 시험해 가지고 당신이 당신과 당신의 모든 은혜를 내가  믿는가 안 믿는가 시험하는 그 시험이니 이 시험이 지극히 큰 희망이 있는  시험이기 때문에 기쁘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환난을 주님의 사랑의 시험인 것인 것을 깨달아서 환난을 시험으로  바꾸어 가지라. 회개해서 환난이 주님이 나를 시험하는 그 시험인 것을 네가  가지라. 회개해서 시험인 것을 깨달아서 시험을 잘 치 러라. 또 이것이 환난이  내게 있는 잡것을 제하는 이 연단하시는, 사랑의 주님이 나에게 잡것을 제하는  연단이시니 네가 환난을 환난으로 봤던 것을 회개하고 사랑하는 주님이 너에게  잡것을 제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인 것을 네가 바꾸어 가지라.

 또 네가 여러가지 환난이 오는 이것은 뭐이냐? 이러므로 말미암이 이 환난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게 절단난다 절단난다. 절단나는 것은 썩은  기쁨만 절단나고, 죽은 소망만 절단나고, 땅위에 없어질 것만 절단나고, 이로  인해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씌워지는 것, 이게 되는 것이니까 네가 이 환난  올 때에 네가 손해되는 것으로만 네가 생각하고 근심 걱정만 하던 요 죄를  회개하고 이것이 너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바꾸어 주는 이 역사인 것을 네가  알아라. 네게 모든 잡것을 제거하는 것인 것을 네가 알아라.

 너를 정말로 하나님이 어느 정도 대우를 해 줄까 할 수 있는 지금 대우가  결정되는 시험인 것을 네가 알아서 바꾸어 가지라. 요것을 우리에게 여게 보이  십니다.

 그런고로 오늘 밤에 우리가 요거 네 가지를 회개를 합시다. 이제 배우기만 하는  것이지, 배우기만 한 것이지 요 네 가지가 바꾸어 가 져지는 데는 그래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참 땅을 파고 무릎 씨름을 하고 자기의 이 주관이라는 모든  습성 주관 이것이 완전히 변화가 돼야 되니까 그리 쉽게 되는 것 아니오.

 이게 변화가 돼서 내 주관적 변화가 됨으로 주관적 평강이 오고, 담력이 있을  때는 담력이 오고, 용감이 있을 때는 용감도 오고, 기쁠 때는 기쁨도 오고, 내  주관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변화가 돼서 주관적 이 효력이 날 때에 그때 객관의  역사도 와 가지고 효력이 나고 그러 므로써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네 가지. 첫째는 땅에 속한 기쁨을 회개해서 주 안에 있는 기쁨으로  바꾸어 가질 것, 땅에 있는 모든 죽은 소망을 가졌던 것을 회개해서 산 소망으로  바꾸어 가질 것.

 요것을 여러분들이 가서 자꾸 따져봐야 돼요. 유식하거든 따져보라 말이오.

유식하거든 따져보면 '이거는? 내가 어떤 출세를 했다. 뭐 공부 잘해 어떤  일류학교 가 가지고 무슨 학위를 받았다.' 받아도 그것은 다 죽은 소망이다,  죽은 소망 다 없어질 것이라. 죽은 소망. 예수로 말미암아 산 소망이 따로  있습니다.

 이제 그런고로 죽은 소망을 가졌던 것을 회개하고 내놓고 산 소망으로 바꿔라.

이 피조물 이런 것 저런 것에 그 능력의 안보를 바라보던 네가 그걸 회개하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의 안보로 바꾸어 가지라.

 네가 근심 걱정 고통하는 모든 환난을 네가 환난으로만 생각해서 근심 걱정하던  환난으로 생각했던 그 죄를 회개를 하고 그게 환난이 주님이 나하고 영원히  맺을라고 나를 한번 시험해 봅니다. 얼마나 좋 소? 그 시험해 보는 게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어떤 아주 두루뭉싱이 같고 바보인 줄 알았는데, 바보인 줄 알았는데,  어떤 권찰한테 들었어. 바보인 줄 알았는데 남편이 깜깜에 밤중에 와 가지고,  밤중에 와 가지고서 이래 살망살망 이래 옷을 벗길라고 이러니까 그만 이러면서  막 고한을 지르면서 이러니까, 고함을 지르며 이러니까 그래 그 남편이, 그거  그럴 줄을 모르고 그랬는데 그 남편이 있다가 '내라 내라' 이러면서 그만  그때부터 안심을 하더랍니다. 그때부터 안심을 하더래요. 그 얘기한다고 어제  O집사님이 그 얘기를 해요.

 과연 사랑하는 자가 '이걸 믿고 살겠나 안 살겠나?' 하나님이 이걸 믿을 수  있나 없나?' 나를 시험할라고,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는, 환난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지금 당신이 그 모든 공작을 해 가지고 내가 당신이 준 기쁨을  가졌나, 당신이 준 산 소망을 가졌나? 당신의 참 능력의 보호를 내가 인정하고  입고 있느냐, 믿느냐? 이것을 시험해 보실라고 하는 시험이니 네가 환난으로  보지 말고 그 시험으로 봐라. 네가 환난으로 보지 말고 네게 있는 잡탱이를  제거하는 주님의 사 랑으로 바꾸어 가지라.

 네가 그 환난으로 볼 게 아니라 그것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관이 되는 것으로  바꾸어 가지라.

 그런고로 이 네 가지를 우리가 오늘 밤에 회개를 합시다. 그만 이것만 해  놓으면 다 돼요. 이것만 해 놓으면, 그거 하기가 힘들지 그저 어 짜든지 눈감고  묵상하고 어느 틈에든지 해서 내가 이 네 가지를 완전히 바꾸어 가지는 회개를  하면 뭐 삼팔선이 어린 교인들 위해서 오기를 원하는 그런 것은 할 수가  없지마는 실은 속으로는 오기를 원하지. 와도 털끝만치도 손해는 못 보이고  영광스럽게만 만들고 놓고 갔지.

 그런고로 오늘 밤에 요 네 가지를 단단히 회개합시다. 기쁨을 바꿀 것, 소망을  바꿀 것, 능력의 안보를 바꿀 것, 이 모든 환난을 주님의 사랑의 시험, 사랑의  제거, 사랑으로 정선하는 것. 사랑의 칭찬 영광 이 것이라.

 투쟁이 없으면 승리 못 하는 것 아닙니까? 환난이 없으면 내가 당신이 주시는  기쁨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암만 내가 가졌다 해도, 가졌다 해도 보일 게  없다 말이오. 이 환난을 통해서 당신에게'당신이 주는 기쁨을 내가 가졌습니다'  하는 것을 환하게 보여 줄 수가 있고, 당신이 준 산 소망 '당신으로 말미암은  소망만 내가 가졌습니다' 보여 줄 수 있고, '당신의 안보를 의심 없이 내가 입고  있습니다, 믿습니다.' 보여 줄 수도 있고, 이러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고로 환난은 사랑하는 주님이 나를 시험하시는 시험이요, 사랑 하시는  주님이 내게 있는 잡것을 제거하시는 제 거요, 사랑하는 주님이 나를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기 위해서 하시는 역사니 기쁘고 즐겁고 감사타 그거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늘도 종전과 같이 삼십 분 기도 후에 아랫층에서 설교 재독도 있고 또  철야기도 있습니다.

 주일학교 반사들,다음 주일은 23공과였던 좁은 문과 넓은 문을 한번 더  공부하겠습니다 좁은 문과 넓은 문을 한번 더 공부합시다. 그만 한 공과 가지고  한번 가니까 개 머래 먹듯이 그만 그래 버리고 아무 효력이 없어.이러니까 다음  공과는 좁은 문과 넓은 문, 23공과를 요번 주일에 다시 공부합니다  자, 이 시간 우리 네 가지 회개합시다.

어짜든지 기도합시다. 네 가지 바꿉시다. 뭐 이라면 삼팔선이야 오든지 말든지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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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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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바디매오는 바로 나/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870304수새 선지자 2015.10.31
241 바디매오의 신앙 5가지/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870219목새 선지자 2015.10.31
240 바람,불,구별운동/ 사도행전 2장 1절-4절/ 86052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31
239 바로 믿으면 표적이 나타난다/ 요한복음 6장 4절-15절/ 881003월새 선지자 2015.10.31
238 바로 아는 것과 바로 행하는 것/ 사도행전 1장 4절-8절/ 860619목새 선지자 2015.10.31
237 바로 아는 자의 복/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791019금야 선지자 2015.10.31
236 바로 알고 믿어라/ 요한복음 14장 1절 -4절/ 810326목새 선지자 2015.10.31
235 바른 교역자관/ 사도행전 20장 25절-35절/ 1988. 5. 5. 목새집회 선지자 2015.10.31
234 바른 기도하는 법/ 마태복음 6장 5절-15절/ 880111월새 선지자 2015.10.31
233 바른 지식/ 디모데전서 4장 4절-5절/ 841013토새 선지자 2015.10.31
232 바리새인과 세리/ 누가복음 18장 9절-14절/ 810705주후 선지자 2015.10.31
231 바리새인과 세리/ 누가복음 18장 9절/ 810706월새 선지자 2015.10.31
230 바리새인과 세리/ 누가복음 18장 9절-14절/ 860801금야 선지자 2015.10.31
229 바리새인과 세리/ 누가복음 18장 9절-14절/ 860730수야 선지자 2015.10.31
228 바리새인이 버림 받은 이유/ 누가복음 18장 9절-14절/ 810705주전 선지자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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