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세례를 받으며

 

1986. 9. 28. 주일오후

 

본문: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막은 모래만 있는 곳입니다. 이 초목, 풀이나 나무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죽어 버리고 하나도 없습니다. 종자도 없습니다. 죽은 끌터럭도 없습니다. 오래 돼 놔서 다 없고, 또 짐승도 거게는 없습니다. 사람도 못 삽니다. 왜?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모든 생물들이 하나도 살지 못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좋은 곳도 많은데 하필 사막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이 세상이 사막과 같은 곳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사막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에 블레셋쪽으로 인도하시면 사 일 만이면 가나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광야와 사막과 홍해 바다 가에로 인도해 가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여러가지로 경험하게 하고, 또 체험하게 하고, 자기의 온갖 면을 다 스스로 깨닫고 새로운 깨달음과 각오와 연단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신 그 사랑의 비밀을 우리가 자세히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사막으로 인도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낮으로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서 밤새껏 떨다가 해가 돋우니까 좋을라고 하니 구름기둥이 가리워서 방해하고, 또 낮에 종일 너무 더워서 그저 참 죽을 지경에서 근근히 지내다가 해가 기울어 서늘해지려 하니까 또 밉상스럽게 불기둥이 와 가지고 뜨겁게 그렇게 인도를 하셨습니다. 그때 닥칠 때에는 저희들의 욕심에 다 반대가 됐습니다. 욕심에 반대됐지마는 욕심대로 만일 됐다고 하면은 이틀 안 넘어가서 거게 있는 이스라엘은 다 죽어 버립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저거 욕심에 거슬리는, 아침에는 거슬리는 구름기둥이, 또 저녁 때는 거슬리는 불기둥이 와서 인도할 때에 그 인도를 마다고 만일 구름기둥을 피하고 불기둥을 피하면 다 죽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서 영감과 진리의 인도를 따라서 갈 때에 우리 욕심에 거슬리는 진리와 영감이 거슬린다고 진리와 영감을 버리고 제 욕심대로 나가면 그만 죽고 망합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 아마 버마 사건에 그때 믿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은 주일날 신사에 가는 것이 대단히 거리끼고 안됐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명을 지킬라고 하면은 참 거리끼고 안됐지마는 그것이 살리는 거라 피하면 죽습니다. 그대로 계명을 지켜서 영감과 계명을 지키면 큰 마찰이 있을 것 같으나 잠시 후면 그것이 큰 효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게서 우리가 가는 데에 더 실컷 만족히 좋도록 되면 좋을 터인데 계명과 영감이 거슬려서 욕심대로 못 하게 되고, 또 밤새껏 추워서 욕봤는데 해가 돋으니까 좀 따뜻하게 쬐울라 하니까 또 구름기둥이 와 가지고 쬐우지 못하게 하고, 하루 종일 더워서 견디지 못하다가 이제 해가 지니까 선선함을 좀 차지할라 하니까 또 불기둥이 와 가지고 뜨끈뜨끈 쬐우고 이래 하니까 자기네들에게 거슬리는 것같이 그랬지마는 그것이 아니면 죽고, 그럴 때에 그 인도를 따르지 안하고 제 욕심의 만족을 방해한다 해 가지고 제 욕심대로 하면 다 절단나고 마는 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에 이스라엘을 기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기뻐해서 하나님께서 그후에도 “너희들이 애굽에서 인도해 냄을 받을 때에 그때와 같이 나를 좋아하지 안하고 그때와 같이 나를 따르지 안하고 하기 때문에 그때 내가 너거를 사랑하는 것같이 이제는 정반대로 내가 너희들을 미워한다.” 이렇게 말했어. 그때 열심히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이제는 너희를 열심히 미워하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따를 때에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는가? 이 위에 있는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뜻을 바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그것입니다.

“우리 조상이 다 구름 아래 있고”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았다 그말입니다. 제가 혹 생각해 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보면은 그저 이 만당 저 만당 거쳐서 자꾸 이래 날아가는데 거게는 골짝도 있고, 들 강도 있고, 뭐 층암 절벽도 있고, 또 강도 있고 오만 거 있지마는서도 거침 없이 비행기는 주욱 자기 갈 길로 갑니다. 구름이 인도했으니까 그 인도가 어떠했을까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봅니다.

구름은 비행기보다 혹 위에 있을 때도 있고 혹 아래 있을 때도 있지마는 어쨌든지 공중에서 높이 떠 가지고 있는 것이 구름입니다. 그러면 구름이 주욱 인도할 때에, 그 구름기둥이 인도할 때에 그때에 여기는 무슨 개울이 있다고 강물이 있다고 저리 둘러갔겠습니까, 층암 절벽이 있다고 여게는 또 멈추고 저리 돌아갔겠습니까? 그저 구름이 인도한 쭈욱 인도하는 그 길은 그뭐 참 몇십 길 되는 데에 툭 떨어져야 되는 길도 있을 것이고, 또 강물을 그대로 꿰뚫어야 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층암 절벽이 앞에 닥쳤는데 그 층암 절벽을 또 기어올라서 가야 되는 것도 있고 뭐 별별 그 형태 아니겠습니까? 땅에서 기는 것으로 인도하면은 그런 형편과 사정을 다 보지마는 위에 비행기 가는 그 그림지를 따라서 한번 갈라고 한번 해 보십시오.

저는 위에서 타고 가면서 저 그림자가 밑에 환하게 비치고 있으니까, 비행기 그림자가 있으니까 그림자가 퍼뜩퍼뜩 지나갑니다. ‘야, 그림자 저걸 따라서 이렇게 사람이나 뭐이나 따라올라고 하면은 그 길이 어떻겠나? 그 길이 대단히 험하고 굴곡이 심하고 아주 높고 깊은 그런 차례들이 많이 있겠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구름기둥으로 인도했기 때문에 인도하시는 그 인도의 길이 대단히 험악했겠고 대단히 모순되고 다 자살하는 길과 같은 그런 길이었겠다.’ 그러나, 그들이 그 인도를 받을 때에 아무런 불평도 없고 이라면 뭐 수지 계산에 이라면 과학적으로 죽는다 산다 그런 거는 아무것도 없고 그만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 보면서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서 내게 오라고 하십시오’ 이라고 난 다음에 ‘오라' 하니까 일편단심 주님 음성 듣고 주님만 보면서 그만 뭐 죽느냐 사느냐 빠지느냐, 금방 물 속에서 지금 죽겠다고 아우성 치던 그 사람들이요, 또 물에 대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인데 주님이 오라 하니까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그만 배에서 푹 뛰어내려 가지고서 주님을 향해서 떠뻑떠뻑 걸어가니까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때 걸어가다가 잠깐 주님 외에 딴것을 보니까 그만 즉시 빠져들어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때에 그때에 그 참 별별 그 경로가 있었겠지마는 하나도 거게 대해서 ‘이라면 빠지겠는데요, 이라면 죽겠는데요, 이라면 가시덤불에 걸리겠는데요, 이라면 지금 이 층암 절벽이 앞을 가리우니까 어떻게 막히고 못 가겠는데요?’ 하지 안하고 그저 인도대로만, 사나 죽으나 그건 생각도 안하고 인도만 따라서 갈라고만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갔습니다. 갔는데 그들이 인도 받은 그 길을 아마 뒤에 그들이 연구를 했을 것입니다.

이래서, 성령이 “구름 아래 있고” 구름의 인도를 받았고, 구름의 인도를 받았고, 또 “바다 가운데로 지냈으며” 그러면 인도를 받는데 인도가 홍해 바다로 인도할 때 더 들어가면 죽는 거 아닙니까? 죽는 것인데 죽는다 싶어서 모세가 잠깐 ‘어떻게 하랍니까?’ 하다가 혼이 났습니다.

‘어떻게 하랍니까?’ `모세야,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해? 왜 나한테 뭐 묻노, 묻기를? 나한테 뭐 묻노, 묻기를? 너한테 구름기둥과 불기둥 인도를 받으라 했으면 그대로 나갈 일이지 묻기를 나한테 뭐 묻노? 네맘대로 할라면 네맘대로 하고 인도 받을라면 받지.’ 그 말에 모세가 회개를 하고 ‘가자' 하고서 그 홍해로 가니까, 하나도 거석하지 안 하고 가면 죽는가 사는가 그런 것도 생각지 안하고, 죽든지 살든지 그거는 생각도 안 하고 인도만 따라서 갈라고 가다가 쩍 가고 나서 뒤에 돌아보니까 층암 절벽을 날아내려왔는지, 층암 절벽을 날아올라갔는지, 홍해 바다를 어쨌는지? 다 통과됐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이 영감과 진리로 인도하시는 길 우리 현실에 이런 현실 저런 현실에 어떤 현실에든지 현실에 주님의 진리와 영감이 인도하는 것은 어떤 현실에서 인도하는 것은 견딜 만한 것도 있고 어떤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라 하면 대번 모가지가 달아나는 일도 있고, 어떤 현실에서 주님의 인도대로 할라 하면 직장이 떨어지고 당장에 사형을 당하는 그런 일도 있고, 감옥에 가는 일도 있고, 다니엘은 사자구덩이에 죽어야 되는 일도 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미 속에 들어가서 죽어야 되는 일도 있고, 이렇지마는 하나님의 성도들은 죽나 사나, 유익이 있나 없나, 수지 계산이 맞나 안 맞나 그런 타산이나 그런 계산은 하나도 안 하고 그저 주님의 인도만 따라갈라고만 애를 써서 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 걸음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잘 깨닫고 우리들도 그렇게 가는 것이 성도의 걸음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걸음입니다.

그랬는데 그렇게 그 길을 왔는데 물론 그래 오는 가운데는 별별 노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도 안 죽고 하나도 안 떨어지고 다 따라왔어.

제가 언제 테레비에 보니까 몽고 지방 저런 데서 그 큰 소떼, 또 사슴떼, 뭐 양떼 그런 떼들이 앞에 나서 가지고서 쭈욱 이래 가는데 그만 가기 시작하면 뭐 사정 없이 달아나는데 인제 그만 새끼 낳던 것도 있고, 낳은 것도 있고, 낳는 거는 그만 가다가, 가다가 새끼를 낳으면서 막 죽자 살고 달아나고 새끼 낳아 놓은 그거는 그뭐 따라가지도 못하니까 그만 거게 처박혀 죽고 이래 가지고 안 떨어질라고 그렇게 달아나기 때문에 그 대군이 서 가지고서 가고 맹수들에게 먹히지 안하고 살지 홀로 떨어지면 다 죽고 맙니다.

그걸 볼 때에, 저렇게 오늘 기독자들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에 가는 이 따라가는 걸음은 뭐 이렇고 저렇고 어떤 백난이 있어도 떨어지면 죽고, 그러니까 떨어지면 죽으니까 죽는 그 시간까지는 달려서 가는 것이 그것이 지혜의 걸음이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걸음이라 하는 것을 언제 제가 테레비를 보면서 그것을 한번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별별 그 상상 못 할 인도,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는 그런 인도지마는 그들은 죽느냐 사느냐, 유익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 아예 그런 타산은 하나도 하지 안하고 그저 인도를 따를라고만 애를 쓰고 따라갔던 것입니다.

따라가니까 뭐 따라간 것이 전부 기적이요 전부 이적으로 갔습니다. 가 놓고 보니까 전부 이적이요 기적이라. 다 초자연의 능력으로 갔어. 오늘도 기독자의 걸음은 이 걸음인데 주님이 이 걸음을 걷게 할라고 하지마는 우리들이 이 걸음을 걷지 안하고 항상 타산주의로 자기 주관 계산 가지고서 과학적인 신앙을 믿고 합리적인 신앙,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 합리주의가 원수입니다. 기독교는 합리주의라는 그 신앙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를 미혹하는 큰 원수입니다.

“모세에게 속하여” 하나님이 인도자로 세운, 하나님이 인도자로 세우신 모세에게 속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인도하실 때에 그 모세에게 속해 가지고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그러면 구름에서 세례 받았다, 구름 따라가는 그 걸음이 다 죽고 사는 걸음이었더라 말이오. 보니까 그 걸음 전부 ‘어찌 안 죽고 살아 왔노? 안 죽고 살아 왔노?’ 전부 죽는 걸음이오.

죽는 걸음인데 또 바다에서도, 세례는 죽고 사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러니까 바다에서도 이거는 으례히 만의 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인데 살아 나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요 험한 길입니다. 험한 길이라도 순종해서 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났고 하나님의 능력만 구경만 했고 자기들은 신기한 걸음만 걸었지 자기네들에게 손해갈 것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었다.

그때 인도 받은 사람이 한 삼백만 됩니다. 부산이 몇만 명 인구입니까? 부산 인구가 얼마입니까? 예? 삼백오십만, 그러면 부산 사람보다 조금 적구만, 녜. 한 삼백만 되는 식구 되는데 그 식구들이 그뭐 가져온 게 하나도 없습니다. 가져온 거 하나도 없어.

다 그때에 급하게 나오는데 식량은 가지지 못하고 그저 빵 조그매씩만 가졌고 전부 보물 금이니 이런 진주니 이런 것 거석하니까 그것도 힘대로 지고 올라 해도 남는데 언제 먹는 그런 거는 그때 아직 귀한 줄 몰랐다 말이오. 이러니까 먹는 것을 가져오지 안했어요. 이랬는데 삼백만 대중이 인도함을 받아서 이래 오는데 먹을 것은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그들이 굶어 죽을 수밖에 더 있습니까? 뭘 먹을 거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먹을 거는 하나도 없었어.

없는데, “다 같이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신령한 식물이라 그말은, 신령이라 말은 무슨 뜻인고 하니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의 식물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식물을 먹었습니다. 그뭐 밥을 해 가지고 먹이겠소 떡을 해 가지고 먹이겠소?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먹을 수 없는 일인데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의 그 은혜로 다 먹었습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걸음은 다 이 걸음입니다. ‘이래 가지고 아이는 많이 낳고 식구는 많은데 이 불경기 시대에 어찌 살겠나? 우리 믿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참 무기로 삼아도 안 되고, 악독을 무기로 삼아도 안 되고, 또 주일이고 뭐이고 아무것도 지키지 안하고 전부 기도고 뭣도 안 하고 이렇게 해도 못 사는 이 땅 위에서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하게, 진실되게, 또 주일 지키고, 하나님 말씀대로 오만 거 다 지켜서 살고 어찌 살겠노?’ 하는 것이 인간 생각입니다. 이 과학이오. 과학으로 못 삽니다. ‘어찌 살겠노?’ 하는 그게 과학이오. 그런데 “다 같이 신령한 식물을 먹었다”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으로 된 식물을 먹고 다 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는 걸음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그렇게 그 대중이 있는데 무슨 강물이 있어도 강물 같으면 달라들면 배가 벌떡하게 다 먹지마는 아무것도 없는 빈들판인데, 찍해야 사막에서 조금 지나와 가지고서 사막이라 반 사막인데, 물 한내끼도 없는 곳인데. 뭘 먹겠는가?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 가지고 그 대중들이 실컷 얼마든지 먹지 안했습니까? “다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하나님께서 반석을 예비하셔 가지고서 반석에서 물이 나와 가지고 그들이 마셨어. 그거 다 신령한 물이라 말은 하나님의 능력의 물이지 그뭐 자연의 물이 아닙니다. 물 먹은 것도 이 자연의 바위에서 난 자연수가 아니라. 일반수가 아니라. 일차 창조할 때에 창조된 그 물이 아니라. 초자연의 능력이 그때 만든 물이요 그때 만든 식물입니다.

오늘 기독자들이 신앙 걸음으로 걸어갈 때에 땅위에서 의식주라 하는 것은 다 이런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이 이런 것인데 우리가 항상 인간 생각을 가지고서 이래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기까지 나가야지?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기 전에 다 저거 생각대로 예산 다 맞추고 다 인본주의 다 해 버렸는데 뭐 하나님이 그 초자연의 능력을 베풀 필요가 뭐 있어야지? 이러기 때문에 전적 신앙이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은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반석은 그리스도시라” 그 반석은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우리를 인도하는 그리스도라. 그리스도라. 인도하는 그리스도라 말은 인도하는 영감과 진리라 그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셨고, 그리스도는 대속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 가지고 대속 공로대로 사는 것, 대속 공로를 입고 사는 것, 대속 공로로 사는 것, 사죄로 사는 것, 칭의로 사는 것, 화친으로 사는 것, 대속 공로로 사는 그것이 뭐냐 영감으로 사는 것이 대속 공로로 사는 것이요 진리로 사는 것이 대속 공로로 사는 것이니 대속 공로로 살게 하는 이를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시요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말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보기에 신인양성일위지마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면 그때에도 그들이 그렇게 먹고 마신 그것은 뭐냐 하면은 그리스도의 저희의 영이, 그리스도의 저희 구주가, 그리스도의 저희 성화시킬 성화의 주가, 예수님과 그리스도라 하면 예수님은 대속을 말하고 그리스도는 대속의 공로를 입혀서 대속의 구원을 완성시키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예수님의 인성을 벗은 신성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오늘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인도하시는 그 그리스도의 영은 곧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면, 오늘도 우리를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셔서 우리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인가?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도우심의 기적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이요, 기적이 아니면 통과할 수 없는 통과들이요, 기적이 아니면 건너뛸 수 없는 모든 강과 바다들이요, 하나님의 기적이 없으면 먹을 수 없는 길이요, 하나님의 기적이 없으면 마실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먹고 남았습니다. 그러나 거게서 욕심 부린 사람은 많이 먹을라고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었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람이 없었다. 요것이 오늘도 그렇다는 것을 잘 깨달으면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 사욕으로 뭐 해 봐야 그거는 공연히 자기만 골몰하고 자기가 녹았고 자기만 골빠졌지 그것이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많이 거둬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둬도 모자람이 없다” 의식주를 주님에게 딱 맡겨 놓고 당신의 법도대로 사는 그 사람이 행복이요 평안이요 염려 없이 우리를 이 세상 살이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5절에, 이렇게 신령 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마는,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또 그들도 죽을판 살판 주님을 따라서 이래 나아가고 이랬지마는,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그 가운데에 많은 숫자를, 많은 숫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 받았느니라”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 받았느니라”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안해서 광야에 멸망받았다.

이렇게 하나님이 특수한 은혜를 이렇게 베풀어 주실 때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가 깨닫고 각오를 가지고, ‘아, 이렇게 경험해 보고 체험해 보니 이렇구나.’ 하여서 경험과 체험과 깨달음을 버리지 안하고 그대로 밀고 나가면 되는데 그라다가는 또 ‘그렇지마는, 그때는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렇겠나?’ 이렇게 열 번 해도 하나님을 믿어 드리지 안하고, 스무 번 해도 믿어 드리지 안하고 항상 자기 주관은, 그놈이 거짓말쟁이인데 자기 주관은 인정하고 하나님은 인정하지 안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분해서 그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멸망을 시킨 것입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뭐 별별 일 다 보지 안했습니까? 따라오니까 굼턱도, 강물도, 덤불도, 오르막도, 내리막도, 떨어지는 것도, 높은 것도 상관없이 따라갈라고만 하니까 가 버렸어.

따라갈라 하니 가지고 왔어. ‘저기를 어찌 날아왔나?’ 뒤를 돌아보면 그럴 거야. ‘날아왔나, 저게도 날아내렸나, 저기는 뭐 배가 있었나?’ 그게 기독자의 걸음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함으로 광야에서 멸망을 시키셨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의 거울이 된다. 우리가 그걸 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다. 남을 봐서 깨달을 수 있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봐서 우리가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이것을 거울로 줬다. 거울 보면 우리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걸 봐서 우리가 알 수 있도록 하셨다.

왜 그들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적극성 있게 힘들여서 인도하시고 나중에 기뻐하지 안하고 그들을 광야에서 멸망을 시켰을까? 뭐 때문에 그랬습니까? 그 멸망 시킨 것을 말합니다.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런 것을 거울을 삼아 가지고 그들이 악을 즐겨하다가 멸망받은 거와 같이 우리가 악을 즐겨하다가 멸망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라.

그들이 악을 즐겨하다가 멸망받았다. 악을 즐겨하다가 멸망받았다. 그 악을 뭣이라고 해석을 했습니까? 악을 뭣이라고 해석했어? 자기 중심, 피조물 중심, 자기 위주, 자, 자기 중심 그것이 피조물 중심인데 과학은 뭐입니까? 과학은 무슨 중심입니까? 과학도 피조물 중심이오. 알겠소? 이게 악입니다.

그들이 항상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하시는 것도 봤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도 봤고, 바로 앞에서 온갖 기적과 능력을 베푸시는 것도 봤고, 열 가지나 재앙 안 봤습니까? 이렇게 봤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거는 이렇게 많이 봐도 그거는 뭐 헌신짝같이 버려 버립니다.

봤지마는 암만 봐도, 보고 난 다음에 또 ‘그때는 그렇지마는 이번에도 그럴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어 주기를 원해서 이렇게 길을 들이고 이렇게 공을 들이고 애를 썼는데도 꼭 제 중심, 제 고집, 제 자율, 제 생각 요놈은 철통같이 뭉쳐 놓고 요놈 시키는 대로 하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광야에서 멸망을 시켰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하나님께서 뭐 우리에게 베푸신 그런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걸 무시해 버려.

무시하기 때문에 그렇지 하나님이 하신 것을 낱낱이 우리가 측량해 본다면 참 놀랠 만한 그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매일도 똑똑히 계산 대 보면 매일도 ‘이렇지 않겠느냐, 요렇지 않겠느냐? 내 생각이 요렇다. 그러면 오늘 두고 보자.’ 그날 해가 넘어가기 전에 그게 아니고 요렇다는 것을 보여 주고 알려 줍니다.

이 보면 하나님을 시험해 볼라 하면 하나님께, 낱낱이 그분은 정확하고 나는 내 생각은 만물보다 거짓되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데도 악을 즐겨해. 자기 중심을 그렇게 즐겨해. 자기 위주를 그렇게 즐겨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를 즐겨하지 안하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그렇게 즐겨해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멸망시켰습니다. “이런 것이 거울이 되어서 우리는 그들과 같이 악을 즐겨하다가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않게 하려 함이니」 7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예를 들어서 거게 한 너덧 가지 예를 들어 줬습니다. 예를 너덧 가지 들었어.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되었으되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모세가 십계명 받아 가지고 내려오니까 저희들이 우상 만들어 놓고 마음에 흡족하고 좋아서 먹고 마시고 뛰고 놀지 안했습니까? 그걸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우상 만들어 놓고 좋아서 뛰고 즐거워하면서 이래 하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상 숭배는 그들은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 그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게 송아지 그게 우상이 아니오. 송아지 그게 큰 우상이 아니오. 저희 속에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을 따라서 생각하고 움직이고, 하나님을 따라서 비판하고 평가하고 계획하고 소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속에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있다 그 말이오. 자기 속에 자기를.

하나님은 이렇게 애쓰는 것은 ‘나를 하나님이 주관하십시오’ 하고 자기 주관하는 자가 인간이든지 돈이든지 무엇이든지 자기를 주관하는 자를 다 없애 버리고 하나님이 자기를 주관하도록 요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셨는데 아무리 경험하고 체험하고 해 줘도 인간이 하나님이 자기를 주관케 하지 안하고 자기를 주관하는 자가 있어. 자기가 자기를 주관하면 그게 우상이오. 우상이라 말은 그것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주장하고 있다 그 말이오.

우상은 뭐이냐? 하나님 아닌데 하나님처럼 거게 속하고 그것이 자기를 주관케 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알겠습니까? 우상은 그들이 하나님이 자기를 주관케 하지 안하고 자기들을 다른 것이 주관하는 게 있었어. 다른 것이 주관하는 게 있었어.

뭐이냐? 자기들 생각, 자기들 주장이 자기들을 주관했어.

그러면 자기 생각과 자기네들 주관이 뭐 만들었습니까? 금송아지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뭐이 만들었습니까? 자기네들 생각, 자기네들 주장, 자기네들 뜻 ‘요래야 백성들이 잘 따르고 좋겠다’ 해서 자기네들의 평가, 자기네들의 비판, 자기네들의 소원, 자기네들의 계획, 자기네들의 요게 맞다고 생각하는,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님 부인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뭉쳐 가지고 금송아지 된 것입니다. 그 의견을 종합해 가지고 금송아지 만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상 숭배가 누가 우상 숭배자입니까? 오늘 주님이 나를 주관하게 하지 안하고 나를 주관하는 자가 돈이 나를 주관하면, 인간이 나를 주관하면, 권세가 나를 주관하면, 자기 생각이 자기를 주관하면, 자기 과학이 자기를 주관하면, 자기 기술이 자기 주관하면 그게 다 우상입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지금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 기술이 지금 세계에 모든 시험하는 이 세계적인 고시에서 시험 치는 데에서 내가 요번에 여기 턱 합격이 돼야 내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서 이제 모든 형편이 풀리고 다 일이 되겠는데’ 요게 꼭 주일날 걸렸습니다. 주일날 똑 걸려 버렸어. 걸려 버렸는데 하나님은 ‘주일을 지키라’ 이렇게, 네가 하나님 시키는 거는 주일 지켜야 된다 이래 시키고, 자기 과학 기술 있는 그것은 ‘아무래도 요번에는 주일을 범해도 시험을 쳐야 된다’ 그렇게 시키고 그래서 자기가 만일 주일 범하고 시험을 쳤으면 그것은 그 과학이라는 그 기술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뭐 됐습니까? 뭐 됐소? 우상됐습니다.

그라다가 망합니다.

그러면, 그날 주일날 시험 친 것은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른 것입니까, 이제 한창 좋을라고 지금 세계 이거 되는데 딱 주일이 딱 걸려서 고거 못 하도록 그라니까 ‘에이, 주일 치우고 나는 이거 시험 칠란다.’ 하면은 그 사람은 뭣을 버린 사람이요? 그 사람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버린 사람입니다. 그 버리면 죽어요 살아요? 죽어요. 이게 우상 숭배자입니다. 우상 숭배하다가 다 멸망받았습니다. 많은 숫자가 우상 숭배하다가 멸망받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 이 가운데도 자기를 주관, 하나님이 자기를 주관하면 하나님이시요, 하나님 외에 딴것이 자기를 주관하면 그걸 가리켜서 뭐이라 합니까? 하나님 외에 딴것이 자기를 주관하면, 자기가 자기를 주관하든지, 돈이 자기를 주관하든지, 직장이 자기를 주관하든지, 인간이 자기를 주관하든지, 뭐 가족이 자기를 주관하든지, 뭣이든지 하나님 외에 그 사람을 주관하는 것이라면 그거는 뭐입니까? 그게 뭐입니까? 우상입니다. 알겠습니까? 똑똑히 가슴을 더듬으면서 찾아봐요. 나를 주관하는 것이 뭐 있는가? 어림도 없지요. 하나님 외에 우리를 뭣이 주관하겠습니까? 안 되지요.

이래도 밤낮으로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시고 나는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샀습니다. 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께 속했습니다. 나는 주님에게만 피동되어지는 주의 종입니다. 나는 주님의 성전입니다. 나는 주님의 지체입니다. 주님의 몸입니다. 나는 주님의 제사장입니다. 주님의 일군입니다. 나는 주의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해도 깜빡 하다 보면은 자기를 주님이 주관하지 못하고 자기를 어떤 다른 것이 주관했으면 주관한 그 한토막의 그 일은 영원한 사망이 되었고 그것으로 자기에게 큰 멸망의 암병과 같은 것이 자기에게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놈을 도려내도록 하기 위해서 공력을 들여야 됩니다. 그놈을 도려내도록 하기 위해서 공력을 들여야 돼요.

따라오다가 그만 못 따라오고 그만 곤하니까, 다른 사람 구원하는 것도 좋지마는 구원하다가, 주일학교 뭐 힘썼다고 이래 가지고 딱 마귀란 놈이 ‘야, 너 새벽에 일찍 네시에 일어났지, 네시에 일어나 가지고 또 이렇게 해서 주일학교 또 이래 돌아다니며 이렇게 했지, 힘썼지, 또 그러다 보니까 아침도 못 먹었지, 이제 오늘 낮에 점심 먹고 나니까 노곤하니 곤할 수밖에 더 있겠느냐? 이제 잠이 오는 거는 필연한 일이다.’ 어떤 놈이 하는데? 어떤 놈이 그라는데? 마귀 그놈이 하는 거라. ‘사탄아 물러가라. 주님이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했기 때문에 네가 아무리 한다 해도 지금 살아 있지 않느냐?’ 그놈을 물리치면 기운 있게 예배드리고 기쁘게 예배드리고 좋은데 그만 그놈에게 유혹받으면 ‘곤하다’ 하고 졸았으면 저는 오늘 다 주일을 실패했어. 암만 주일학생 많이 데리고 와도 실패했어.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말라” 그들이 그렇게 우상을 만들어 놓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기뻐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주일 범해 시험 쳐 가지고 합격됐다고 좋아하는 자야, 우상 만들어 놓고 먹고 마시고 춤추는 자로구나.’ 주일 범해서 어떤 뭐 시험치고, 주일 범해서 출세하고 어떻게 해 가지고 한 자야, 그것이 내나 우상 숭배자입니다.

내가 어제인가 언젠가 내가 어데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았는데 그래, 다른 사람은 다 예수 믿어도 그렇게 안 믿는데 이 총공회파는 무슨 파인데 예수를 그까짓로 믿느냐고. 다 주일날 급하면 와서 사무도 보고 볼 일 보고 이라는데 꼭 주일을 지킨다고. ‘이제 다음은, 내 다음부터, 다음부터 주일날 안 나오면 나도 각오가 있고 나도 알 터이니까 주일날 예배당에 갈라면 예배당에 가고 여게 직장에 나올라면 직장에 나오고 마음대로 하시오. 나도 각오가 있습니다. 나도 할라면 합니다. 나도 어떻습니다.’ 이래 쌓는데 ‘이거 내가 어떻게 해 볼꼬?’ 이랬는데 `어떻게 해 볼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전화를 한번 해 봐, 해 보니까 ‘뭐 죽자 하고 싸울 것입니다. 요번에 팔월달에 집회 가서 배운 게 그게 아닙니까? 뭐 죽자고 싸울 것입니다.’ 이래서 된 거 같애. 나중에 그뒤에 보니까 또 실쭉해. 뒤에 또 들어보니까 실쭉해서 ‘이거 졌는갑다’ 했더니마는 아예 안 졌어.

안 졌는데, 그래 전화가 왔어. 그런데 저 어데 갔다 오더니만, 저 뭐 어데 어데, 내가 그말은 안 해. 여러분들 알면 안 돼, 재미 없어. 저 어데 상부에 갔다 와.

상부에 갔다 오더니마는 떡 말하는 게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불러 가지고 ‘먼저 그거는 그만 없는 걸로 하고 잊어버립시다, 없는 걸로 하고. 그말 한 거는 없는 걸로 하고 잊어버립시다.’ 그라더래요. 이게, 요거 다 누구한테 머리 한번 숙였다 말이오. 알겠소? 주를 위해서 당한 자는 다 승리합니다. ‘그만 그거는 없던 말로 하고 그말은 다 그만 없던 말로 하고 그래 다 취소하고 지냅시다.’ 이라더래요.

이제 판결나 버렸어. 그렇게 재미있는 꼬신 꼴 보면 그럴 건데 우리가 날마다 기적 가운데서, 하나님이 당신을 믿으면 당신이 와 가지고 역사하시는 걸 날마다 구경할 것이라 그거요.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말라. 그들이 앉아 먹고 마시고 뛰노는 거와 같다.” 이렇게 우상 숭배해 놓고 우상 만들어 놓고 좋아서 뛰놉니다. 좋아서 뛰놀아요.

그전에 ○○○권찰님 있을 때에 그 동생이 재주 있어. 주일날 여기 시험 치는데, 내나 크나 작으나 한가지라. 오급 공무원 동회에 서기로 시험을 치는데 그때 생활이 곤란하고 하니까 주일날 시험을 치는데 주일날 시험을 칠까 말까 하기 때문에 내가 있다가 ‘주일날 안 치는 것이 성경 아니냐? 안 치는 것이 성경인데 그거는 치고 안 치는 거는 네가 판단해 가지고 해야 되지 치지 말라 해서 안 쳤다 하면 네가 뒤에 시험이 계속 올 터인데 네가 감당 하겠나?’ 이랬더니마는 시험을 쳤습니다. 시험을 쳤어. 시험 침으로 말미암아 이 자리 있지를 못하고 낙심해 가 가지고 믿음 팔고 가 가지고 똥도 안 되게 돼 버렸어. 알겠습니까? 다 그래. 여기도 그런 사람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자, 신앙 좋고 잘 기르고 아주 신앙 잘 기를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있고 그런 길이 있는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이 세상 무슨 처세하는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척척 어기고 새벽기도 나오던 게 새벽기도 안 나오고, 또 주일을 못 지켜, 주일은 뭐 지킬라 해 봤자 앉아서 그랄 거라. 앉아서 단어 외울 거라. 앉아서 단어 외우고 그래 껍데기로 더럽게 주일을 지키고 새벽기도 안 나오고 그렇게 하며 실력을 길러 가지고 떡 무슨 하나 출세를 하나 했습니다. 출세 하고 나니까 ‘됐다, 뭐라고 해도 그때, 지금부터 잘 믿지, 뭐.

그때 내가 그거 안 했더라면 뭐 헛일할 뻔 안했나?’ 이라며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그것이 뭣입니까?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노는 그자와 꼭 같은 자입니다. 그뒤에 즉시 멸망이 왔어. 알겠습니까? 이걸 알아들어야 돼요. 여기 그런 학생들 많아. 공부가 우상이야. 하나님보다 제게는 공부가 더 필요해. 하나님은 거스리고 거역하고 배척을 해도 그거는 배척 못 해. 밤낮으로 그거는 자기 안품에 품고 있어. 안품에 품고, 그 깊은 머리 속에 품고, 밤낮으로 만날 생각하고 주님은 그 백분의 일만 생각하면 네까짓 놈이 쑥 올라갔을 거다. 이런데 주님 버리고 그것만 사모하니까, 그거 사모하는 그거 우상이기 때문에 우상은 자기를 망치지, 하나님은 우상 섬기는 자를 때려 망쳐 버리는데 제까짓 게 하나님을 이겨? 못 이겨! 알고 놀아요. 내가 지금 하나 보고 있는 사람 있어, 하나! ‘보자, 네 뒤를 보자. 내가 죽기 전에 보자.’ 내가 뭐 내일 죽을지 모르지마는.

어리석지 말아요.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스스로 속지 말아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이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느니라. 육을 위해서 심으면 썩어진 것 거두고 성령을 위해서 심으면, 예수님의 대속을 위해서 심으면 영생을 거두느니라.” 너는 세상이 다 아니라. 오늘 죽을지 몰라.

언제 내가 신문 보니까 미국에 가 가지고 학위를 얻어 가지고 와 가지고 이라니까 막 시집갈라 하는 처녀들이 꽉 찼어. 모두 학위 얻어 가지고 오니, ‘인제 그 사람이 인제 우리 국내에서도 아주 유력한 인물이다.’ 이라니까 뭐 서로 청혼을 해 가지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해 가지고 결혼식 하고 신혼여행 갔는데, 신혼여행 가 가지고 여관에 들었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둘 다 시체라, 둘 다 시체. 그 신문 누가 본 사람 기억이 있습니까? 본 사람 있소? 본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여기도 보고 저게도, 쌔버렸네. 첫날밤에 그만 신혼여행 가 가지고 그만 둘이 코르르 팩 그래 버렸어.

어리석지 말아요. 어리석지 마. ‘목사님이 암만 해도 나는 양보 없다.’ 양보 없거든 이 자식아 얼마든지 해 봐라. 양보 없거든 얼마든지 해 봐라. 뼈가 빠지도록 해 봐라. 골이 빠지도록 해 봐라. 실컷 해 봐라.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은 짐승 한가지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런 거 해도 할 수 있어요. 그런 거 해도 믿음으로 할 수 있어. 하나님이 그거 하지 말라 하면 안 하고, 하나님이 ‘새벽기도 가고 해라, 성경 보고 해라, 또 반사 노릇 하며 해라.’ 하나님이 시키는 것 다 하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면 뭘 못 해? ‘내가 안 해도 이거 하면 내가 뒤에 막 이렇게 된다.’ ‘되는가 안 되는가 보자. 너도 보고 나도 보자.'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작은 걸 주권하고 있습니다. 오늘이라도 생명을 딱 부르면 그만 그만이라. 그 무슨 힘 있어? 아무 힘 없어. 무슨 힘이 있는데 배짱을 내.

8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간음하지 말자” 이거 간음은 결혼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부정하게, 정당치 안한,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남자가 여자를 탐하는 거, 여자가 남자를 탐하는 거, 음욕 품는 거 그런 게 전부 간음입니다, 전부 간음. 전부 간음.

오늘까지 간음하고 어떤 음란한 더러운 일 했다 할지라도 이 시간부터라도 딱 돌아서십시다. 돌아서면 됩니다. 이 시간부터 회개하면 돼. 간음 회개해야 되지 회개 안 하고 있으면 복 못 받아요. 간음을 회개 안 하면 복도 못 받고 그 사람 천국에 못 간다 했습니다. 천국에 못 간다 해. “음행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면 “음행하는 자 하늘나라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가지 못하면 영이 음행합니까 육이 음행합니까? 육이 음행해. 육이 음행할 때 영은 동의를 하고 찬성을 합니까 반대를 합니까? 성경에 보니까 반대하며 속으로 고통을 하고 있지마는 육 이놈이 강하게 억세게 하니까 하는 거라. 음행을 하는 거라. 음행하는 자는 천국에 못 가. 그 무슨 말이냐? 음행한 심신의 기능, 마음하고 몸뚱이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 음행했기 때문에 심신의 기능은 다 지옥 갑니다. 천국 못 갑니다. 그 다음에 안 한 거는 가지. 한 그거는 회개하지 안하면 그때까지 아무것도 못 가요. 그걸 회개했으면 가지요.

이래서, 말세에는 음행죄가 큽니다. 무섭습니다. 세력이 강합니다. 말세에는 음행으로 망합니다. 에덴동산에도 음행으로 망했어. 노아 때도 음행으로 망했어.

예수님 재림 때도 음행으로 망합니다. 음행으로 망해.

에덴동산에 무슨 음행으로 망해? 에덴동산에 음행으로 망한 것은 하와는 아담을 탐하고 아담은 해와 탐해 가지고 하나님도 배반하고 저거 둘이 좋아서 짝자꿍이 됐으니까 그거 음행 아니고 뭐이요?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이 추접하고 더러운 죄 이 죄를 우리가 회개해야 되지 회개 안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그것 때문에, 그것은 백해 무익이오. 그래서 그걸 어떤 사람은 그래 말했습니다. ‘음행은 살육지 도요’ 살을 깎는 칼이요, ‘팽인지 부라’ 사람 삶는 가마라 이렇게 했어. 왜? 거게 삶겨 가지고 일생을 깨 먹으면 쭉 뻐드러지고 말거든. 거기서 쪽 빠져 가지고, 이 보면 젊은 사람들 일하는데 정력을 가지고 옳은 일 하든지, 옳은 일 하면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 마귀에게, 음신에게 끌려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자기 정력 다 소모돼서 다 망하고 말아. ‘음은 살육지 도요’ 살을 깎는 칼이요, 빠짝 하니까 피골이 상접해. ‘팽인지 부라’ 사람 삶는 가마라 그렇게 말했어.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항상 하나님이 그렇게 보여도 무슨 일 또 현재 닥치면 ‘아이구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까?’ 또 의심합니다.

시험한다 말은 ‘하나님이 그리 해 줄까 안 해 줄까? 하나님이 해 줄까 안 해 줄까? 이라면 될까 안 될까, 될까 안 될까?’ 항상 미결이오. 항상 의문 중에 있소. 확실히 믿지 않고 항상 의문 중에 있어.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을 시험한다 말이오.

‘하나님이 해 주실까 안 해 줄까, 될까 안 될까?’ 그 의문 중에 있는 걸 가리켜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받았다 이랬습니다. 우리는 확신을 가져야 돼.

하나님이 한번 해 주신 것이고 약속했으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니까 믿고 가야 돼요.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을 받았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원망하지 말자」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에 모든 탐정군들을 다 데리고 갔는데 탐정군들을 다 데리고 가서 가나안에 있는 족속들이 어떤고 가서 한번 탐정을 한번 정탐을 하고 오너라. 이자들이 갔다 와 가지고 ‘그들은 뭐 기골이 장대하고 과학이 넉넉하고 무기가 모두 다 구비하고 이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비하면 그들은 장사고 우리들은 메뚜기에도 비교 못 한다, 메뚜기에도. 우리는 그 사람들 하나가 우리 백 명도 더 당하겠더라.’ 이런데 그들하고 이거 대항해서 지금 전쟁을 해야 될 모양이니까 이 와서 이렇게 보고를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 원망하고 울며 불면서 ‘우리를 그만 애굽에서 죽도록 냅두든지 광야에서 죽도록 냅두든지 하면 좋을 것인데 뭐 할라고 이 가나안에 데리고 와 가지고 이 전쟁해 가지고 우리의 자녀들은 다 종이 되고 우리 아내들은 다 저희들에게 뺏길 것이고 우리 죽자껏 종노릇 하다 나중에는 맞아 죽을 것이고 이런 꼬라지를 보게 하느냐?’ 막 울고 불고 굉장했었습니다, 굉장했어.

그랬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다가 말하기를 ‘우리보다 그들은 한없이 강하다.

우리보다 그들은 한없이 강하다. 강하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은 비교 없이 우주같이 큰데 그들은 먼지 같다.

우리하고 단둘이 붙으면 안 되지마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과 비교하면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그 정탐군 두 종류가 있는데 광야에서 난 사람, 광야에서 나온 사람, 광야에서 낳은 어린 것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말을 듣고서 ‘하나님이 같이 하시면 되지 그까짓 거 뭐 있느냐?’ 이러니까 어린 것들, 요새 우리들로 말하면 중간반 학생들, 주일학생들 이런 거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문제가 뭐이냐?’ 이라면서 가자 하고 애굽에서 나온 거 세상 지식 많고 상식 많고 경험 많고 세상 많은 그 애굽에서 나온 것들은 있다가 ‘아이구 우리가 거기 가면 죽겠으니까 우리는 뭐 여기 있을랍니다. 안 갈랍니다. 여기 있을랍니다.’ 여기 있을랍니다 하고서 안 간 것들은 광야에서 다 죽어 버렸습니다. 다 죽고, 거게 간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애굽에서 나온 사람 중에는 둘밖에 못 갔어. 여호수아와 갈렙 가고 나머지기는 광야에서 난 사람들만 다 갔어요.

이렇게 세상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는 말이 있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는 말 있습니다. ‘야, 너 지금 공부하는 데에 다른 사람 모두 새벽기도도 안 나가고 주일도 막 공부하고 이렇게 열심히 해도 지금 그 시험을 합격을 못 해서 지금 야단지기는데 너는 주일날은 시험 공부 하나도 안 하고 또 그중에 또 새벽기도 가고 이래 가지고 되겠나 안 되겠나? 아무것이는 너만치 머리가 안 좋으나? 그 사람은 지금 밤도 뭐 열심히 밤에도 잠도 못 자고 새벽에도 주일날도 막 불철주야하고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데 너는 공부 좀 하다가 아이구 늦게까지 공부하면 내일 새벽기도 못 갈라? 일찍 자빠져 자지.

새벽기도 못 갈라? 일찍 자빠져 자지. 또 새벽에는 또 일어나 또 새벽기도 또 가 가지고 제일 요긴한 시간 가 가지고 새벽기도 갔다 오지, 또 주일날 공부 안 하지, 네가 네 앞길을 네가 망친다. 망하겠나 안 망하겠나?’ 그래 말한 사람 있어.

‘망하겠나 안 망하겠나? 망한다.' 그랍니다.

또, 누가하나 오더니만 뭐라 하기를, ‘야, 인간의 머리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시라. 인간의 두뇌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라.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라. 너뿐이면 그 사람들은 두 시간 하고 너 한 시간 하면 네가 떨어지지, 너 하고 하나님하고 합작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하고 합하면 문제가 없어. 하나님이 너 지혜와 총명을 주시면 그 사람보다 낫겠어 못하겠어?’ 하나님하고 붙여서 말을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하고 붙여서 믿음의 사람들은 말하는데 마귀란 놈은 하나님 떼내 버리고 말합니다. 알겠소? 정탐군 가운데에서 하나님 떼고 이스라엘과 가나안에 있는 족속들과 일대 일로 말하는 그 정탐군은 마귀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하고 그거하고 단둘이 붙으면 우리가 안 되지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 하나님하고 들이붙이니까 뉘 말이 참말인요? 여호수아와 갈렙 말이 참말이요 그들 말이 참말이요? 여호수아와 갈렙 말이 참말이라.

‘야, 여게 있으면서 진리 배우고 반사 노릇하고 이래도 하나님과 너와 같이 하시면 문제가 없는데 네가 그거 하기 위해서 뭐 특별 공부 일류대학 가기 위해서 서울로 가야 된다, 뭐 어디로 가야 된다.’ 이래 가지고 이래 하면 ‘봐라.

그래 안 하고 되겠나? 그라니까 암만 다른 사람 그렇지마는 주일날은 안면상 나오고 주일날 예배 보고 난 다음에는 저녁에는 살며시 이불 밑에 전등 넣어 놓고 그래 공부도 하고, 또 딱 누웠다가 열두시 지나면 새벽기도야 가든지 마든지 공부나 하고,’ 잘 한다. 보자. 보자. 어떻게 하는고 보자. 믿음 없어. 믿음 없어.

나는 처음에 뭐 자랑, 모두 자랑할 때에 이렇게 자랑하고 나도 귀하고 자랑할 때에 ‘야, 이게 뭐 될란가?’ 했는데 나중에 하는 거 보니까 노래, 싹이 노래.

헛일이라. ‘저 믿음 한 내끼도 없다.’ 공연히 믿음 믿음 뭐, 무슨 믿음, 믿음이? 닥쳤을 때에 믿음 지키는 것이 믿음이지 공연히 닥치지 안할 때는 잘 믿는 척 하고 일이 떡 닥쳐 버리면 믿음 배반해 버리고 그게 무슨 믿음인가?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거울이 되고” 거울, 거울 압니까? 면경이라 하면 얼굴 보는, 낯 면자 거울 경자, 또 체경이라 하면 몸 체자 거울 경자, 거울 그거 말이오. 유리에 수은 뒤에 붙여 가지고 뻔득뻔득하게 잘 비치는 그거 말이오. 그거 거울이라, 거울.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당한」 「말세를 당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경계로” “경계로” 우리를 주의시키고 우리를 조심시키고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기록하였느니라. 알겠습니까?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네가 어데까지 성공이 됐다 할지라도 ‘내가 이만치 성공이 됐는데, 뭐. 이만치 공부를 해 가지고 지금 대학을 졸업했어. 일류로 졸업했어. 내가 명철이 있어.’ 야, 이놈아 네가 하나님이 너 서게 했고 하나님이 너 오늘까지 그와같이 만들었는데 네가 하나님 없이 네가 된 줄 알고, 스스로 된 줄 알고?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네가 벌써 하나님 떼놓고 네가 네 실력 가지고 네 가지고 됐다 하면 하나님은 ‘그러면 너 혼자 해 봐라.

나는 손 뗄께, 너 혼자 해 봐라.’ 여러분들, 유명하고 비참하다 하는 사람들 손 떼니까 그만이야.

다 모두 국민학교 다닐 때는 뭐 희망 있다 희망 있다, 중학교 다닐 때는 희망 있다 희망 있다 하는 것이 그만 고등학교 가면 희망이 없어. 그거나 그거나 같애.

대학에 가면 그놈이나 저놈이나 내나 속화돼 가지고 그 꼬라지라. 무슨 희망 있어? 뭐 있어? 다니엘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니까 그때 지혜를 십 배 더 줬습니다, 십 배 더 줬어.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마다 결단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능치 못 하심이 없는데 당신을 믿어 주는 것을 원하고 당신을 믿어 인정하는 걸 원합니다. 당신을 업신여기고 부인하는 거 ‘뭐 하나님 가지고 되나?’ 하는 고게 대해서 하나님이 제일 섭섭해서 복수를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알겠습니까? 서울에 좋은 학교 가는 것도 다 치워 버리고 전학을 해 가지고 이 무슨, ○○대학을 똥대학이라 하는데 똥대학에 와 가지고 해도 여기서 믿음 잘 지키면 좋다 해 가지고 이리 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하나님께서 나중에 좀 있어 봐요, 어데까지 올라가는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네가 너 혼자 된 줄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라. 네가 회개 안 하면 넘어진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손 떼면 그만이야.

사람이 유망하다 희망 있다 하다가 다 교만 들어오면 그만 헛일이라. 아무리 유망한 사람이라도 교만 들어오면 그때로 그만이오. 아무리 유망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 배척하면 그만입니다, 그만. 하나님을 제가 배척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 배척해야 될 것 아니겠소? 나는 사람을 그래 평가합니다. ‘보자, 저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여기느냐?’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은 그만 그 사람 유망하요. 하나님 두려워하면 유망하요. 또 ‘하나님에게 주권이 있으니까 그분에게 모든 게 달렸으니 하나님 거슬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하나님 앞에 발발 떨고 하나님 털끝만치 거슬려서, 하나님이 안 주시면 안 된다.’ 하는 그 사람이 유망한 사람이요 희망있는 사람이요 복 있는 사람이라. 얼마나 잘났는데 ‘하나님 업신여겨도 나는 된다’ 하는 거, 되는가 한번 해 보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의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치 않게 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 형편 알아서 우리에게 어짜든지 유익된 형편만 줬지 나쁜 형편 안 줍니다. 유익된 형편 주니까 자기가 어데까지나 자기에게 현실 주신 것은 자기에게 믿음만 지키면 유익될 줄 알고, 어떤 현실을 줘도 믿음만 지키면 유익될 줄 알고 자기는 감당해 나가야 되고, 어떻게 좋은 현실이라도 믿음만 떼놓으면 다 망할 현실인 줄 알고 가야 됩니다.

자기가 뭐 올라가서 이렇게 떠들고 만사가 형통하고 이러니까 ‘야, 이때야 뭐 되겠다.’ 이렇게 시쁘게 생각을 하지마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즉시 죽습니다. 하나님 떠나면 즉시 죽어요.

자, 구름기둥하고 불기둥으로 인도하는데 그 인도를 떠나면은 대번은 좋아요 나빠요? 그 불기둥 구름기둥, 아침에 지금 밤새도록 떨어 가지고 있다가 구름기둥이 오니까 햇빛을 가루니까 ‘히, 밉상이다.’ 이렇게 하는데 그때는 구름기둥 떠나면 대번에는 좋아요 나빠요? 좋아요 나빠요? 이것도 모르네.

밤새도록 지금 막 얼음이 얼고 영하 뭐 십오도니 이십도니 이래 내려가는데 발발 떨고 안 죽고 근근히 살았는데 해가 돋을 때에, 해가 돋을 때에 인제 해가 돋으니까 살겠다고, 아이구 좀 아이 인제 살겠다고 따뜻하다 하는데 구름이 떡 가리우면 그때 좋아요 하잖해요? 좋겠소 하잖겠어요? 좋을 사람 없어. 자꾸 해를 찾아다닐 거라 말이오. 햇빛을 찾아다닐 거라.

그러니까 그때에 구름기둥이 따뜻하게 볕을 쐬울라고 하는데 못 쐬우도록 가리우니까 덜 좋아해서 구름기둥 피해서 실컷 따시도록 실컷 따시기 위해서 구름기둥을 피해서 따뜻한 양지에 가 앉았으면 죽어요 살아요? 죽어요 살아요? 죽습니까? 죽어요. 죽어요. 요거 알아야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우상을 버립시다. 음행을 버립시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맙시다.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만족하고 믿음으로만 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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