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세리


선지자선교회 1981년 7월 6일 월새

 

본문 :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어제 오전과 오후에 바리새 교인과 세리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 인정과 영접을 받았고 바리새 교인은 하나님 앞에 물리침을 받은  것을 우리가 이제 배웠습니다.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일이 얼마나 크고 보배로운 것을 우리가 평생 연구해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는 것과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이것이 얼마나 크고  그 효력이 얼마나 넓고 얼마나 길고 깊고 세밀한 것을 우리가 연구해야 됩니다.

 아무리 설비가 구비되었다 할지도 전력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전력이 이제  다시는 거기에 가동할 수 없도록 됐다고 하면 그 공장 시설은 다 헛일이라.

아무리 그 사람이 아름다운 육체를 가졌다 할지라도 생명이 끊어지면 그만 그  미가 없어진다. 아무리 그 사람의 전공한 그 실력이 참 보배롭고 유력하다  할지라도 그만 정신이 착란돼 버리면 아주 못쓸 폐인되고 만다. 이런 것으로  비유가 안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손을 떼버리면 그렇게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허무해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붙드시고 인정하시고 되게 해보려고 하나님이  달라들면 아무리 천한 사람이라도 안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내게 대해서 책임을  져주신다 하는 일이 얼마나 크고 참 보배로운 일인지 우리는 이것이 죽고 사는  그런 것으로 비교가 될수 없는 이런 참 큰 문제인데 이 문제를 우리가 예사롭게  생각하는 것은 이 사실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들려지지 아니하고 보고  들어도 깨달아지지 아니하는 그런 것입니다.

 보여줌을 받지 못한 것은 우리가 평소에 믿음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이 어둡고 강팍해져서 그런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은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버림당하지 않으려고 하나님에게 인정받으려고 죽는 것도 개이치  아니하고 아무리 사지에 살아도 하나님에게 버림받지 않으려고 생명도 버리고  모든 지위도 권세도 아깝지만 만일 그것 아까와하다가는 하님께 버림당할  형편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그런 것을 초개와같이 버려도 하나님에게 버림 안  당하려고 하는 것이 다 순교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예사롭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 흥왕하고  굉장하다 해도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으면 그것이 시간 문제지 어떤 것은 일  년만에 몇 달만에 십 년만에 강하고 어떤 것은 많이나가 길게 나가는 것은 죽는  날까지 형통하지만 그것을 성도가 성소를 들어갈 때에야 알고 보니 일생 동안  멸망으로만 빠져 들어가기만 했다가 그 멸망이 영원히 있는 그걸 보고  놀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이렇게 환영을 받는 그것이 여기에 보니까 간단하게 서너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이거나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하나님과 친근해진다 하는 믿음 지킨다 말이나 꼭 같은 말입니다. 하나를 알면  다 알게 됩니다. 하나를 알아서 자기가 그것을 실행을 하면 다 알게 되고 또  성경을 일부러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경과 자기의 뜻이 같습니다.‘네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모든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러면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그것은 알고 있다말 아닙니까?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소? 알고 있는데 그게 내나 성경이라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자기 정신만  바로 돼서 사람만 바로 됐다고 하면 성경에 나타난 이 법도나 자기 양심으로  생각하는 법도나 된 사람의 자기 본능으로 자기가 원하는 법도나 꼭 같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거꾸로 돼 가지고 있으니까 이 말씀이 전부 자기에게 맞지 안하니  이것이 깨닫아지지도 않고 또 거슬리기도 하는 것이지 자기만 변화되면 이  말씀이 성경 아니라도 자기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근본은 마치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려고 진흙을 갖다 놓은 거와 꼭  같애. 진흙과 같애. 우리는 똑같은 진흙과 같은데 진흙 가지고 큰 그릇도 만들고  작은 그릇도 만들고, 또 아주 더러운데 쓰는 그릇도 만들고 깨끗하게 쓰는  그릇도 만들고, 또 보배로운 그런 것도 만들고 이렇게 다 같은 진흙을 가지고  여러 모양으로 토기장이가 만든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사  6.10. 수 람은 참 명철한 학자라, 위대한 부흥사라, 목사라, 정치가라, 부자라, 예술가라,  이 사람은 인간중에 천치,바보라, 천하에 이보다 더 흠한 병신이 없다 병신이라  그게 다 근본은 꼭 같은데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이렇게 창조하시고 저렇게  창조하시고 창조해 놓은 것을 하나님이 이렇게 섭리하시고 저렇게 섭리하셔서,   창조한 것을 가리켜서 선천이라고 안 믿는 사람들이 말하고 또 이렇게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을 그 사람들도 말해서 후천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나기 전에 날  때에 잘타고 났다 그걸 선천이라 말하고, 또 그 사람이 나고 난 다음에 참  조건이 좋아서 잘됐다 조건이 나빠서 못됐다 그걸 후천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게 다 하나님 한 분이 요렇게 조렇게 예정하신 그대로 착착 이루어  가지고 된 것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근본은 다 같은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  가지고 된 것이니 처음에는 자기가 아주 못난 사람 아주 인간 중에 제일 하찮은  존재, 성경을 보기 전에는 그 아주 못쓰게 된 것을 자기가 참 머리를 들지  못하고 천한 인간으로 아주 그렇게 생각하고   또 자기 부모가 그렇게 낳은 줄 알아서 원망 불평하고 또 자기는 비관하고  낙망해 가지고 자살도 하려고 하고 이렇게 했는데 성경을 보니까 아무리 못난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예정하시고 만드셔서 그렇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보니까  조물주가 그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만든 목적이 있을 것이고 이유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공평된 하나님이시니까 당신이 나쁘게 했다가 좋게 할 수 있고  금생뿐이 아니라 내세에, 영원무궁 내세가 있으니까 그렇게 낙망할 것이 없다  그말이오.

 금생에 제일 못난 사람 천한 인간이 그것으로 인해서 내세에 무궁세계에 영원  세게에 가장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그런 요건이 될 수도 있다 이거요.

성경에 보니까‘가난한 사람을 믿음으로 부요케 해 가지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했다’이랬소. 가난한 사람, 그 사람들이 가난하니까 다 바치라 하니 다  바치고 가난하고 참 인격이 가난하다 재산이 가난하다 총명이 가난하다 인물이  가난하다 아주 인물이 못났다 이거요.

 인물이 못났으니까 만고에 시집갈 데가 있겠소? 장가갈 데가 있겠소? 이러니까  이거는 예수 밖에는 바라볼 것이 없다 그말이오. 그 사람이 또 아주 못나고  병신이니까 아무도 등용해줘야지 쓸모없는 인간이라 예수 밖에는 믿을 것이  없어.

 우리 교회에 그 대티교회에서 나오는 사람 그 사람 이름이 뭐이지? 예. 정현이.

정현인데 아주 그 사람이 걷지도 못했는데 요새는 재법 잘 걷고 또 아침으로  보면 신주머니 당번 노릇은 언제든지 제일 앞에 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침도  안 먹고 와요. 이러니까 하나님 밖에는 바라볼 것이 없어.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반반하게 고쳐 가지고 싱싱한 사람 만들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하게 되면 저 사람을 지금 부자로 만들런지 그 사람을 대  정치가로 만들어 대통령을 만들런지 모릅니다. 어떤 학자를 만들런지 하나님께서  만들려면 잠깐이라.

 이라니까 이렇게 못난 자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이 뜻대로 산다고  하면 무궁세계에서는 해와같이 별과같이 빛난다고도 했고 (가난한 자에게)  이렇게 믿음으로 부요케 해준다 하나님 순종을 부요케 해준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잘났으니까 여기 저기서 자꾸 흔들어싸서 안됐지만 나는 못났으니까  흔드는 사람 없으니까 더 예수 잘 믿게 됐다.

 이래서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기는 참 불행 낙망 비관이었는데 믿고  나서보니까 그것이 오히려 잘난 사람보다 낫습니다. 잘난 사람은 보니까 주일을  지키려 해도 하도 어정거려싸고 잘난 남자는 잘난 여자를 만나 가지고 그것이  이세벨 모양으로 자꾸 바가지를 긁고 하니까 그 신앙 생활을 도무지 옳게 못  하는데 자기는 긁을 것도 없고 잘난 여자는 잘나 놓으니까 모두가 다 탐을 내  가지고 억센놈이 따먹어 가지고 이 억센 놈이 남편이 돼 놓으니까 꼼작 못하고  신앙의 자유 한 시간도 없다 그말이오. 자기는 못나 놓으니까 시집갈 때도  못가고 그냥 예수 믿는 수밖에는 바라볼 것이 없다 이거요.

 이러니까 아주 어떤 일등 기생이 예수님 믿기로 했는데 워낙 잘나놓으니까  자기는 결심을 해도 자꾸 남자들이 달라 들어쌓니까 신앙을 지킬 수가 없다  말이요. 그래서 소산수를 갖다놓고 손으로 소산수 가지고낯을 씻어버렸어. 이래  놓으니까 어떻게 얽히져 놨는지 손이고 뭐이고 이래 놓으니까 아무 것이를  탐하고 오던 자들이 그 얼굴 보고는 막 놀래서 다 도망쳐 버려요. 이러고 난  다음에는 아무도 건드리지 안하니까 예수 믿기가 어떻게 좋은지. 그래 가지고  예수를 믿었어.

 이러니까 예수 믿으면 아주 천한 자가 머리를 듭니다. 아주 천한 자가 아 이게  천한 것이 아니로구나 조물주가 이렇게 하셨으니 이렇게 한 목적과 뜻이 있으니  또 잘 믿어서 이렇게 하면 아무리 못나도 다 바치면 된다 했으니까 아무리  못나도 자기만 다 바치면 되고, 자기와 자기 소유를다 바치면 되고, 아무리  잘나도 다 바쳐야 되고 잘난 사람은 다 바치기 어려운데 나는 다 바치기 쉬우니  예수 믿기가 이렇게 행복스러울 수가 있다.

 내가 천하 인간 가운데에 내가 행복스러운 사람이지 불행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또 자기는 잘나서 우쭐하고 내가 제일이다 천하에 안하무인으로 이렇던 자가  예수님 믿고 나서 깨닫고 보니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된 게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셔서 그렇게 됐으니까 이것 가지고 뭣 하라고 만들어 주셨느냐? 다른 이의  모가치와 다 함께 자기에게 줬어. 씨와 양식을 줘 가지고 그와 같이 된 것이라.

 이것을 깨달으니 자기가 옆에 사람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그걸  가졌으면 그걸 가지고 옆에 사람에게 나눠주는 심부름할 것 심부름하고 옆에  사람을 자기와 같이 사람 만들어야 될 의무와 책임을 가졌으니까 이거 하려고  하니 참 골치 아프고 큰 무거운 짐을 졌다 말이요.

 이러니까 우쭐했더니만 팍 꺼꾸러 졌다 말이요. 그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9절에 보면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보십시요 예수를  믿고 나면 낮은 자는 자기가 낮은 게 아니라 한없이 높음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깨달았고 부요한 형제는 자기는 자기가 잘나서 그런줄 알고 천하 제일인 줄  알았지만 이 진리를 깨닫고 보니까 자기는 그런 게 아니라 공연히 어리석게  높은척 했다 말이요. 아주 자기는 팍 낮아졌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고 깨달은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에 자기만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와 나와의  근본이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그 사람에게는 아주 없게 했고 나에게는  부요하게 했으니 어떤 심정을 우리가 가지야 되겠는가? 어제 비유를 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동행하여 왔는데 그 주인이 한 사람에게는 아주 아름답게  존영하게 장식을 해줬고 한 사람에게는 참 아주 험악하게 추한 그런 장식과  형편을 줬습니다. 같이 왔다가 그렇게 됐으니까 부한 사람이 그 아주 가난한  천한 사람에게 대해서 어떤 심정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인간 심정이겠습니까?   같이 왔는데 주인이 나에게는 이렇게 해주고 저에게는 저렇게 해줘서 나는  이렇게 됐고 저 사람은 아주 졸하게 됐으니 그 사람에게 우쭐해야 그  인격이겠습니까, 마음에 미안하고 송구하고 안타까운 것이 인격이겠습니까? 예.

나는 이렇게 됐는데 저 사람은 얼마나 섭섭해 하겠나. 얼마나 저 사람은  불만해졌겠나. 그 사람에게 동정과 위로를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겨지는  것이 사람이겠소, 그럴 때에 우쭐해 가지고 멸시하는 그것이 사람이겠소? 사람  마음이 어떤 것이겠소?   자 여러분들 마음에 안타까워서 위로할 수 있으면 위로를 하고 싶고 동정할 수  있으면 동정하고 싶고 그 마음에 부끄럽고 미안하고, 부끄럽기는 왜 부끄러워?  자기는 그렇게 많이 받고 그는 적게 받다 보니까 그 사람 보기에 부끄럽다  그말이오. 미안하다 그말이오. 안타까워.

 이러니까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할 수 있으면 그 사람 마음을 편하게 좀위로라도  해주고 싶고 또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갈라서 줘서라도 너무 그 걱정하지 말고  나무라지 말고 섭섭해 하지 말라 이걸 둘이 나누어 가지면 좋지 않느냐 하는  것이 사람 아닙니까? 내게 있는 것이 네게 있는 것이니까 너는 못 얻을 지언정  내가 이 떡을 두 덩어리 얻었으니까 둘이 갈라 먹으면 되지 않느냐, 못 얻어  가지고 삐쭉하게 삐껴 가지고 그 사람이 섭섭하여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어쩌겠소? 위로하면서‘야 이거 내가 얻었으니까 둘이 같이 갈라 먹으면 되지  않느냐 그 사람에게 위로를 하고 싶고 동정을 하소 싶고 마음에 그 안타까와  하는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소? 이것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받은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겠소? 그게 사람의 마음이라 그말이오.

 우리가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 대해서 이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이요구하시는 사람의 마음이요 이게 바른 마음이요. 그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는‘내가 나 된 것도  주님이 이렇게 해 주신 것처럼 저 사람이나 내나 근본이 꼭 같지 않습니까? 나는  그 사람 보다 의로워서 이랬습니까? 슬기로워서 이랬습니까? 꼭 같은데 주님이  이렇게 입혀 주셨으니 그도 나와 꼭같은 자인데 그가 나보다 더 잘못한 것이 뭐  있습니까? 더 나쁜 게 뭐 있습니까? 같지않습니까? 주님이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서 나와 같이 되도록 해 주옵소서.’하는 이런 간구를 만들어 주신 주님께  간구하는 것이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소? 이게 사람의 마음이지요.

 그러고 또 마음 속으로 주님에게‘이것은 어찌됩니까? 이것 좀 갈라 하면  어떻습니까? 갈라 주시는 근본이 있으니까 이것을 제 마음대로 갈라서 하려고  하면 건방졌지 이러니까 제 마음대로 갈라 주지는 못하지마는 주인에게 아 저  사람에게 지금 떡이 없으니, 저 사람에게 뭐 없으니 이거 둘이 좀 갈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갈라 하도록 허락해 주옵소서.’ 간청하는, 갈라 하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소? 예.

 이것이 사람의 마음일터인데 그 없는 사람 보고‘네 까짓게 못났다. 이 등신아.

바보야. 아 이 구린내 난다. 가거라.’이렇게 제가 교만을 부리면 주님이,  그렇게 만들어 준 주님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또 주님에게‘저 사람은  저렇게 해주고 나에게는 이렇게 해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나에게는 이렇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하면 주님이 어떻게 그 사람을  생각하겠소?‘아무짝에도 못쓸 놈이다. 이놈에게는 줘 놓으면 있는 것만큼 남을  멸시하고 천대하고 하시하고 점점 나쁜놈이 될터이니까 어라 뺏어야  되겠다.’하지 않겠습니까.

 저 사람에게는 저러고 내게는 많이 줬으니 고맙습니다. 또 나눠주라 해 가지고  제것도 아닌 것이, 너에게 준것은 따로 준게 아니라 너에게 떡 두덩어리 준 것은  한 덩어리는 먹고 한 덩어리는 나눠주라 말이라. 다른 사람에게 한 덩어리 먼저  주고 그 다음에 한덩어리 남은 것 너 먹어. 이러니까 실죽해 가지고‘왜 내것을  주라해 이거는 내것인데 내가 권리가 있지, 주고 싶으면 주고 말고 싶으면  말지’하면 그렇게 있게 해주신 조물주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이것이 곧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인간을 대할 때에 이제 비유한 거와 같이 없는 자에게 대해서  위로할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과 저 사람 마음이 얼마나 상하겠느냐, 저 사람  마음이 얼마나 섭섭하겠느냐, 얼마나 고민스럽겠느냐,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그에게 줘서 위로를 해주고 동정을 하고 싶고 그에게 대해서 선을 봉사를  희생을 하고 싶고 조물주에게 대해서는 나도 저 사람보다 낫지 않고 꼭 같은데  나에게 이렇게 해주신 것처럼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신 것처럼 저 사람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이 있는 것을 좀 나눠 가지면  안됩니까 하는 이 심령을 가진 자라면 주님이 누눠 가지라 하면 얼마나 좋겠소.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기뻐 할거라 말이요. 요것이 하나님 앞에 환영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환영받는 인간의 심정이요.

 그런데 그와 정반대로 멸시하고 그 사람을 멸시하고 제가 스스로 된 것처럼 제  것처럼 저 혼자 다 포식하고 저 혼자 제 욕심대로 제 소원대로 제하고 싶은대로  심지어 아이도 낳지 놓지 않고 또 자녀를 대학 공부 시키려고 얼마든지 쌓아놓고  현재 당장 이것이 있으면 그 사람이 구원을 얻고 이것 있으면 그 사람이 살아날  수 있고 이것이 있으면 당장에 그 사람 예배볼 장소가 없어서 못 오는데 예배볼  장소를 만들어 교회를 세워가지고 예수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를 알수 있도록  이렇게 할 수 있는 이길이 있는 데도 이것은 하지 않고 제 것인 줄 알고 제게  대해서는 아낌없이 쓰면서 이렇게 쓰지는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합니까? 제가 제 힘으로 된 것인 줄 알고 없는  사람 보고 멸시하고 천대하고 자기의 의인이 됐으면 그 사람도 앞에 의인을  만들어야 될 의무와 책임이 있으니 바울은 자기에게 장점있는 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해주셨기 때문에 이 장점 가지고 다른 사람도 자기같은  장점을,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으니까 나도 사랑을 줘야 되니까 만들어야 될 이  의무와 책임이 있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죽자껏 인간 구원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고 난 다음에도 그 사람이 말하기를 뭐라고 말했습니까?‘나는 모든  사람에게 빛진 자라’줄 것을 못줬다 말이오. 할 일을 못했다 그말이오.

 이런데 이와 반대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있는 건  제가 해서 있는 것처럼 알고 저 위해서는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고 멸시나 하고 자기 자랑이나 하고  우쭐하기나 하고 하면 그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알겠습니까? 한번 말해  보십시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요? 몰라. 어떤 사람이겠소? 그 사람이 무자비한  사람이지 동정이 없는 사람이지 잔인한 사람이지 또 하나 있는데 요긴한 것 제일  요건 한 것 하나 있는데 그 뭐이겠소? 어떤 사람이라 했겠소? 예. 교만한 사람,  그게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게 교만한 사람이요. 이 사람은 물리침을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겸손은 정반대요. 둘이 있으면 하나 있는 사람에게 하나있는 사람보다 못한  양으로 이래 굽신거리는 그게 겸손이라고 마귀라는 놈이 세상을 바로 해석해  주지 못하게 세상이 그렇게 말해서 그 겸손의 정의를 그렇게 낸 것입니다. 모두  다 이 해석이 거꾸로 됐다 그말이오. 겸손은 있음에도 없는 척하고 자기는 열  가지를 알면서도 한 가지 아는 사람에게 그 사람만큼 모르는 척하는 그게  겸손이라고 해석합니다. 그것은 교만 중의 교만입니다. 가증이요. 외식이요.

 겸손은 뭐라고 배웠습니까? 겸손은 뭐라고 배웠지요? 겸손은 자기를 바로 알고  하나님도 바로 알고 옆에 사람도 바로 알아서 바로 안 그대로 알고 행하는 것이  겸손한 자입니다. 바로 알다니 하나님이 전부 다 만들었지 자기나 그 사람이나  밑천이 꼭같은 사람이지. 이러니까 그 사람에게 없는 것을 자기에게 준 것은  씨가 자기에게 와있지. 이러니까 씨는 그에게 줘야지 이걸 안 요대로 알고  요대로 안 대로의 사람된 그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게 겸손한 사람이요.

 이게 겸손인데 전부 이 성경을 뒤집어 가지고 겸손도 해석을 굽신거리는 것,  이러니까 자기는 사람들 앞에 머리만 숙이고 허리만 꾸부리면 이것이 겸손인 줄  압니다. 허리 꾸부리는 그것은 다른 사람한테 겸손하다 해 가지고 인정 받으려  하기 때문에 도둑놈 중의 도둑놈입니다. 겸손한척 해 가지고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아 가지고 한번 더해 먹으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겸손까지도  이용을 해 가지고 자기 사욕을 채우려 하는 아주 악한 자입니다.

 겸손은 이제 말한대로 그 사람이나 나나 근본이 같은데 하나님께서 내게는  이렇게 해줬고 그에게는 그렇게 해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대해서 동정이 되고  얼마나 섭섭하겠느냐 하는, 그렇지 않아요? 아이들도 둘이 왔는데 하나에게 사과  한 개를 주고 하나에게 안 주면 못 받은 아이가 웁니까, 안 웁니까? 울지. 저  아이는 받는데 나는 못 받으니까 섭섭해 울것 아니겠소. 그러면 한 개 받은  아이가 뭐라고 합니까? 너는 못 받았는데 나는 받았어, 이렇게 조롱하는 놈도  있겠지. 그놈은 못쓸 놈이라.

 대개는 어리아이라도 뭐라 합니까? 울면 어떻게 하겠지요?‘울지마라 이거 둘이  갈라 먹자.’내가 보니까 된 아이들은 그렇게 하데요. ‘너 가져라. 너  가져라.’그만 얼른 가 가지고 너 가져라. 나는 안 한다.’그만 둘이 갈라 먹자  소리도 않고 줘버려요, 이것이 인간의 심정이라 말이요. 이게 사람의 마음  아니겠소. 어린아이들도 내가 가만히 시험해 보니까 그렇데요.

 교만한 자는 망합니다. 교만한 자는 망해요. 제가 하는 깨달은 것 있는 것은  그전에 병낫는다는 이런 소문이 퍼져서 집회하면 병신들만 와서 모여들어 쌓아서  도무지 성한 사람들이 와 가지고 은혜를 받을 수가 없어. 그 중에 다른 병신은  내가 모르는데 문둥병자가 많이 오고 문둥병자를 제가 많이 관계를  가졌었습니다. 가졌는데 그때는 아마 전국 문동이 쳐놓고는 저를 모르는 사람  없었을 것이요. 문둥이 세계에서는 제가 유명했습니다. 그만 그사람들 거의 다  죽어버리고 지금은 너무 끊어졌어.

 그때 문둥이 관계할 때에 기뻤고 즐거웠는데, 가만히 문둥이를 접촉해 보면  전부 그 사람들은 문둥병이 안 들면 안 될 사람들입니다. 보면 다 교만성을  가지고 있어. 교만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문둥이마다 교만성이 내게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없는데 제게 요만큼만 있는 것 있으면 그것 가지고  어떻게 자랑하고 조를 빼고 어떻게 세도를 부리는지 어떻게 또 멸시를 하는지 요  비유에 말씀한 바리새교인과 꼭같은 사람들입니다.

 교만하면 가난해집니다. 여러분들 교만하면 가난해집니다. 그 가난해지게 해야  될 것 아니겠소? 교만하면 병신됩니다. 교만하면 약해집니다. 인간이 보기에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교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갑니다. 또 인간이 보기에 교만하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겸손하면 은혜가  옵니다.

 사도 바울에 큰 병이 하나 있었는데 하나님께 낫게 해달라고 세 번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졌던 수건만 흔들면 낫고 이러니까 그  수건을 다른 사람이 달라 해 가지고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자기가 다 갈 수  없으니까 바울이 한번 만졌던 수건을 주니까 수건만 가지고 이래 흔들면 전부 다  나았어.

 이랬는데 자기에게 병이 있었는데 그 병을 낫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세 번을  기도했습니다. 세 번을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세 번만에 말씀하시기를‘바울아  내가 네게 이 병을 준 이것이 너에게 가장 알맞기 때문에 줬다’하는 주의  음성을 듣고서 다시는 자기에게 있는 병을 위해서 기도하지 안했어. 자기가  깨닫기를 다른 사람이 나를 지나치게 인정해 줄까해서 또 내가 교만할까 해서  나에게 찌르는 가시를 줬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 몸에 신병있는 것이 무슨 원인으로 병이 있었지요? 무슨  원인으로 병이 있었습니까? 예. 이 시간에 말하지 안했소? 무슨 원인으로 병이  있었어? 그 교만으로 인해서 있었지. 교만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교만을  물리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병을 줬다 그말이오. 바울같은  사람도 그에게 있는 병이 교만이라 그말이오.

 제가 이 우리 진영에 거석한 사람들이 자꾸 이렇게 아파쌓으니 이거 무슨  일이냐? 내가 그것을 고민하면서 한 삼사 일을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에 알려주는 것이 이것이 그 원인은 교만이라. 그것이 하나님이 베풀어서  온자 교만할까 미리 방비로 주는 자, 이미 죽을 때는 가까왔는데 건강하면  교만해지니 겸손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인간에게 대해서 할 그 아름다움의  탑을 쌓아 가지고 끄트머리에 금으로, 이 탑쌓은 것보다 위해 꼭대기 아무리  지어 놓은 그게 가치가 더 비싸.

 이 마지막에, 인간 생활에는 제일 마지막 시간이 탑의 꼭지와 같은 것인데  이것을 값지게 잘 해야될 터인데 그것이 건강한면 덜렁 덜렁 그만 그날 저녁 턱  그래 버리니까 언제 하나님께 대해서나 인간에게 대해서나 자기에게 대해서나  깨달을 것도 깨닫지 못하고 겸손도 가지지 못하고 자기는 숙여서 이렇게  하나님에게 매달리지도 못하고 인간에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막 턱턱 다  했고,   오기날대로 다 했고 하나도 거침없이 이렇게 하다가 척 죽어 놓으면 참 그  사람의 생애의 종말이 비참해 질터인데 이렇게 병을 한 달이나 두 달이나 일  년이나 주니까 그만 땅에 있는 소망이 다 끊어졌으니 하나님에게만 매달려야  되지 이래 놓으니까 다른 사람 앞에 큰 소리를 할 마음이 없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는가 이러니까 사람 앞에 교만했던 것이 없어지지 겸손해지지 하나님께  매달리지 세상에 대한 소욕이 다 끊어져버렸지 남에게 이제는 하고 싶은대로  오기대로 다 못하고 자기 속을 썩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지지.

 이래 가지고 탑을 쌓은 그 탑 꼭지를 금꼭지로 잘 만들어 줬는데 네게 무슨  불평이냐? 내가 며칠 전까지 그것이 의문이 돼 가지고 기도를 하면서 내가  깨닫고 난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이렇지 않느냐?  그 사람이 참 이상해요. 무슨 일일까요? 그 사람에게 의문을 주는 그런 말을  내가 했다 그말이오. 의문을 주는 말을 하고 떠 슬슬 의문줘야 될 때에는 의문  주고 떠 해결해 줄때 해결해 주고 이렇게 했다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바울로 그 찌르는 가시를 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인정받을까 그걸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누구는 말하기를 그 사람을  문둥병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는 말하기를 눈에 눈병이 들어서 눈에 자꾸  고름이 슬슬슬슬 나온다고 그렇게 또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람게 지나치게  인정받을까 또 자기가 우쭐해질까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랬으니 아무리  인정해줘도 높아지지 않고 우쭐해지지 않고 이럴 수 있는 사람으로 그것 없어도  있는 것같은 그런 사람이 됐으면 없고 있는 게 낫습니까? 있고 있는 게  낫겠습니까? 없고 있는 게 낫지. 그런고로 우리가 요 심정에서 살지 안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그만큼 감소됩니다.

 이제 자기만 못한 그 사람에게 대해서 위로하고 싶고 동정을 하고 싶고 그  사람을 인하여 하나님에게 부탁을 하고 싶고 하님께 자기에게 주신 것을 나누어  가지도록 허락을 맡고 싶고 하는 요 심정을 가지는 것이 자기만 못한 자기에게  대한 심정입니다. 요것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안심합니다.

 그러면 못한 자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는 자는 어떤 자가 돼야 겠습니까?  은혜를 입는 자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입혀 주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자기는 특수하게 은혜를 입혀줬으면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우쭐해야 됩니까, 겸손해야 됩니까? 겸손해야 되지. 불평을 품어야  되겠습니까? 감사해야 되지. 원망을 해야 되겠습니까?   원망을 하다니, 하나님이 주니까 참 나도 하나님같이 돼 가지고 하나님에게 안  얻어도, 지금 하나님께서 주시니까 부요한데 하나님께 얻어서 하니 하나님에게  머리를 숙여야 되겠고 하나님 앞에 얻어서 하니 하나님은 주는 분이고 나는 얻는  자이니까 안됐다 나도 주는 분 그 자리를 차지해서 나도 하나님 됐으면 좋겠다  그런 망령을 부릴 수 있지요.

 그러면 그 사람 참 망해야 될 사람이요, 흥해야 될 사람이요? 한번 대답해  보십시요. 그 사람은 흥해야 될 사람이요? 흥해야 될 사람이라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 하나도 없지. 다 망해야 될 사람이고 우리가 인정하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줘 가지고 받았으면 자기는 하나님이 주지 안해서  없었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기에게 주면 자기는 그 받은 데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사람은 어떤 심정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대해서 그 먼저 말한 그런 심정을 가지지만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에게서 받았으면, 먼저 받은 사람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처럼 저  사람은 많이 있는데 나는 없게 된 것은 나도 없게 될만한 무슨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저 사람처럼 많이 줘서는 안될 무슨 요소가 있는 사람이요 적게 주는  것이 나에게는 필요한 이런 사람이다. 하나님이 저 사람은 나보다 많게 해줬으니  이것 참 얼마나 알아야 될런지.

 자 하나 물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노력해 가지고 그 동리에서 제일 권세  있는 사람, 제일 으뜸되는 사람이 됐습니다. 또 저 동리에는 자기 노력으로  으뜸된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저 나라의 왕이, 대통령이 그 사람에게 특명을  내려 그 사람을 그 동리에서 제일 으뜸되는, 머리되는 사람으로서 모든 동리를  주관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만들어 놨으면 두 사람 가운데에 어느 사람이 더 존귀한 사람일까요? 이숙희씨,  어느 사람이 더 존귀한 사람이지요? 예. 두 사람 가운데 어느 사람이 더 존귀한  사람이지? 신선생, 노력해서 된 사람? 노력해서 된 사람이 더 큰 사람이고  존귀한 사람으로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또 그 나라의 왕이 그렇게  제일 존귀한 사람으로 봉해 놓은 사람이 더 존귀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봅시다. 그 사람입니다.

 그거야 세력도 있을뿐 아니라 이 사람은 동리서 알지만 저 사람은 나라에서  세운 것 보니까 전 동리서 몰라서 무식했지 나라에서 그 사람을 그렇게 세울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운 사람 아니겠소. 세력은 누가 클까요? 세상은 누가 크겠소?  나라에서 세운 사람이 크지. 그 비교가 되겠소?   그 동리에 잘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뜻밖에 나라에서 그 사람 불려  올렸습니다.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그 사람을 불러 올려 가지고 그 사람에게 큰  상을 주고 큰 세력을 줬습니다. 큰 세력을 줘버렸어. 줬으면 제가 스스로  된것보다 그 큰 세력이 있는 나라에서 그 사람을 세력있는 사람으로 세웠으면  어느 사람이 크다 말이요. 나라에서 세력있는 사람으로 세운 사람이 큰 사람  아닙니까? 여러분들 그 해석이 그래 안되요?   예. 온 전국을 관할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큰 사람으로 세웠으니까 그 사람이  전국에 큰 사람 아니겠소? 이게 이해가 안 되면 안 돼. 이게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데, 자 그러면 그 동리에서 그 사람을 제일 으뜸되는 사람이라고 선출당한  사람이 있고 전국에서 으뜸되는 사람이라고 선출당한 사람이 있으면 어느 사람이  큰 사람입니까? 많고 큰 것이 인정 했으니까 작고 적은 것이 인정한 것보다 더  세력이 크지.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부강하게 해 준 사람과 제 힘으로 부강하게 된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느 사람이 더 큰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부하게 한 사람이 더 큰  사람이지. 그 사람을 대항하면 하나님을 대항해야 되지. 그사람의 뿌럭지는  하나님에게 뿌럭지를 박아주지 그 사람의 근본은 하나님이지.

 이러기 때문에 이 진리를 깨닫고 나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대할 때에, 모든  면으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대할 때에 스스로 그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해  가지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그 사람과 자기 노력으로 된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해 가지고 그 사람을 존귀한 사람으로, 그렇게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그 사람, 자기보다 큰 두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느 사람을  더 존귀히 여겨야 됩니까? 저 뒤에 한번 대답해봐. 어느 사람을 더 존귀히  여겨야 됩니까?   이것 잘못 알면 예수를 꺼꾸로 믿습니다. 어느 사람을 더 존귀하게 여기겠소?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큰 사람이 된 그 사람과  자기가 스스로의 힘으로서 그렇게 크게 된 그 사람, 두 사람이 있으면 어느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게 됩니까? 자기가 만들어서 그만큼 큰 사람으로 여긴 그  사람이 세력이 있고 더 튼튼하고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요. 하나님이 만들어서 그 사람이 세력이 더 크고 위대하고 뿌럭지가 더  있고 그 사람이 존귀한 사람으로 이렇게 인정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그렇지. 이겁니다.

 이러니까 요 진리를 깨닫고 나면 그 하나님의 예정으로 하나님이 해줘서 네가  그렇게 됐는데 네가 돼서 그렇게 됐나. 네가 스스로 된 것인가 하나님이 해줘서  그와 같이 됐지. 그러니까 너나 나나 꼭 같지, 이 진리를 배워서 깨닫고 나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대해서 생각할 때에 과거에는 인간 노력으로 된 줄로  알았는데 예수 믿고 보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해서 크고 작은 것이 되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보면 깨닫고 난 다음에 자기보다 큰 자에게 대해서 깨닫기 전  존대하는 것과 깨닫고 난 다음에 존대하는 것과 존대함이 같습니까, 깨닫고 난  다음에 그 사람에게 대해서 존대함이 적어집니까?   깨닫고 나니까 더 커집니까? 뭐이요?‘네나 나나 꼭 같으니까 하나님으로  됐는데 뭐 네가 스스로 해서 그렇게 되었나 꼭 같지.’이렇게 생각해서 존대하는  것이 적어집니까, 많아집니까? 적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그 존대함이 더 확실하고 커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이겁니다. 이거요.

 어제 설교 듣고 망할 길 가는 인간들도 있을거라 그말이오. 어떤 길? 하나님이  만들어 줘서 그 커진 것 있으면, 이 교회는 어찌하든지 못난자 편 가난한 자  편이 돼 가지고 위에 부자는 막 꺾어 내리고 위에 잘난 사람들을 막 꺾어 내리고  못난 사람 이것만 이리 되고 하니까 그 못난 사람끼리 해봐라 잘 되나 보자 이래  가지고 도리어 반항을 하고 섭섭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말이오.

 자기가 남보다 부한 자냐, 부한 자면‘아멘 주여 이런데 내가 오늘까지이렇게  했습니다. 요렇게 회개를 해야 그 복이 계속되지 회개 안하면 제까짓게 얼마나  잘났느냐 막 깨어버린다 그말이어. 어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 교만하기를. 당장  병신도 되고, 당자 거지도 되고, 당장 천치 바보도 돼 버린다 말이요. 어디라고.

또 못난자를 어떻게 대해요? 요 못난자 너는 내가 못나 가지고 그런 줄 알고  이랬더니만 다 중보는, 밑천은 같으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했으니 그래 됐지 제가  그래 됐나? 그 제 마음에 이렇게 되어집니까?   하나님이 나는 작게 했고 그 사람은 크게 했으니 하나님이 그 사람을 크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크게 했으니 그 사람 스스로 큰 것보다도 그 큰 것이 제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크게 했구나. 하나님이 그렇게 크게  했으니 내가 상대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크게 했으니 그 사람 크게 한 것은  하나님이 했기 때문에, 그 사람 큰 것은 하나님이 한 것이니 하나님처럼 내가  크게 봐야지 안 보면 내가 큰일나지.

 나는 그 사람을‘네까짓게 뭐 잘나봤자 잘난 그걸 너 잘났으면 네게 무슨 소용  있나?’이랬더니만 잘난 그것이 못난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잘나게  했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곧 하나님의 일이라. 하나님의 것이라. 그  하나님이라.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 해 놓은 일이라면 그 일을 자기가 존경하는  그분같이 대우가 됩니까, 안 됩니까? 예.

 여러분들,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 여기에 뭘 하나 놓아 두었습니다. 놓아  뒀으면 휘덕 들어서 치우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존경하면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이렇게 갖다 놓아 두었지 놓아둔 것이 이분이기 때문에 놓을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그것을 아무렇게나 그렇게 놓아둔 것이 아니다.‘이것은 누가 이래  놨지?’‘아무것이 이래 놓지 안했느냐?’ ‘아, 그 어른이 그래 놨어.’이러면  손을 안 됩니다. 그 일을 존경합니다. 이것이 인격이요.

 이런데 교회 안에서 못난 자가 잘난 자를 동등으로 무시하고, 가난한 자가  부자를 무시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를 무시하는 것은 그것은 예수를 바로  깨닫지 못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것인 것을 깨달을 수록 더합니다.

인간 실력으로 된 것이라면 실력대 실력이기 때문에 그 사람 나보다 실력이  나으니까 그 사람에게 꺾여지고 눌려지기는 눌려지지만 속으로는 항상 대결하는  마음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했기 때문에 대결하는 마음이 없고 그것도 감사하고  그에 대해서 자기는 경외할 것뿐이요. 높힐 것뿐이요.

 그러다가 그에게서 받았으면 어찌 됩니까? 그에게서 받았으면 어찌 되지요?  받았으면 하나님에게 직접 받은 사람과 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자기에게 줘서 받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직접 받은 거와 자기가  간접으로 받은 거와 하나님에게 대해서 달라야 되요, 같아야 되요? 강행수  집사님, 예. 예. 달라야 되요? 달라야 됩니까? 졸면 헛일이라. 어찌 그런고?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줬든지 다른 것을 통해서 줬든지 어떻게든지줬으면,  우편으로 부쳐줬든지 손으로 바로 줬든지 어떻게 줬든지 줬든지 간접으로 줬든지  직접 줬든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깨달으면 하나님께 대해서 감사함을 같이  해야지.

 또 사람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기계처럼 통해서 나에게 줬으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면 됐지 네까짓거야 무슨 상관있느냐 이래야 되겠소? 하나님이  그를 당신의 수족같이 쓰셔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쓸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수족같으니까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한 그 은혜 기관이니 그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감사해야 되겠소, 그 사람을 멸시해야 되겠소, 하나님 다음으로 감사해야  되겠소? 예. 이게 질서 아닙니까? 하나님 다음으로 감사해야지. 이것이  오계명입니다. 오계명. 하나님이 줬으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면 됐지 네가 줬나  하는 그것이 하나님 멸시입니까, 그 사람 멸시입니까? 하나님 멸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위에 사람은 밑에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 것, 밑에  사람은 위에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 것 이것이 성경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야 사람이 바른 사람되어지지. 이래야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지.

 이러니까 자기 위에 있는 사람에게 대해서, 무엇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대해서는 이렇게 존대를 해야 되고, 자기 밑에 사람에게 대해서는 이렇게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 대해서 동정을  구해야 되겠고 나눠주도록 해달라고 간청을 해야 되겠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되겠고 그 사람에게 준 것이 내게 준  것 같이 하나님께 꼭 같은 감사를 해야 되겠고,   또 그 사람이 그렇게 받은 것을 잘 감당해서 은혜의 기관이, 복의 기관이 잘  되어서 막히지 않고 거기서 통해서 얼마든지 살살 내려가 가지고 쫙 퍼쳐서 일천  척을 가면서 물이 배에 오고 일천 척 더 가니까 물이 허리에 오고 일천 척 더  내려가니까 두렁이 뜨고 이렇게 되어지도록 자꾸 그가 은혜의 기관이, 축복의  기관이 더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이것이 위에 사람에게 대해서 할 일이요 하나님께 대해서 할 일이요 밑에  대해서 할 일이요 하나님께 대해서 밑에 사람을 인해서 할 입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바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망령을  부리면 그 다음은 멸망입니다. 이걸 바로 깨달으면 그 다음은 흥왕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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