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교훈

 

1981. 6. 27. 토요일 새벽

 

본문:창세기 11: 1-9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성경에는 한번 말씀하신 것이나 또 여러번 말씀하신 거시안 권위는 꼭 같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번 말씀하신 것은 여러번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만침 더 중요하고  한번 말씀하신 것은 그만침 이 양이 작으니 중요성이나 도 우리가 우리가  이행성이나 하나님의 노를 끼치는 거싱나 기쁘게 하는 것이 것의 양이 다르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 그것은 아주 오해입니다. 성경에 말씀에  어떤데는 내가 진실로 말슴한데도 있고 전실로 진실로 말씀하신대데도 있고  진실로라는 그 말씀을 붙이지 안한데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같습니다.

또 여러번 말씀하시나 했으나 한번만 말씀하셨으나 꼭권위는 같습니다. 같은  이치를 우리가 못아랑 들으니까 같은 이치를 이런 면으로 우리에게 해석을 해  주시고 또 전면으로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시고 이리 하는 것은 그 한  이치지마는 그 이치를 우리가 못아랑 들으니까 이렇게도 우리에게 말해서 알도록  하려고 하시고 또 저렇게도 말을 해서 우리에게 알도록 하려고 이렇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실은 그 한 이치를 몇십번 말한 그것을 아는 것이나 한번  말씀하신 한번 고걸 아는 것이나 꼭 같습니다. 미음면 같습니다. 이제 한번  말씀한 한 가지 이치를 하나가지 이치를 한 가지로서 우리의 가르치실 때에는  자기에게 백분지 일쯤 믿어지고 또 백분을배가지 일을 가지고 이렇게 에를 들고  비유하고 또 비슷한 걸 말하고 해가지고서 알려 주면 백프로 그 사람이 인정하고  하는 그 사람에게는 많이 들어야 되겠고 많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한번  말씀하신 고 이치를 고대로 그런 것인것을 확실히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뭐 그  후에 두 가지 그 말로 또 두 가지 면 으로 이렇게 주심을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번 가르친 고것으로 믿으면 그는 답니다. 이런데 안믿기 때문에 이래 말하니까  조금 말하하지마는 내가 그 조금 좀 알기는 알겠지마는 또 이래 말하니까 조금  좀 더 인정이 됩니다. 또 이래 말하니까 조금 더 인정이 됩니다.

또 인정 조금되니 백 그 한 가지 이치를 백가지 이치를 들어서 말하니까 이제 그  사람이 백프로 인정이 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많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한벅  딱 말할 때에 그것을 참된다 인정 딱 한 사람은 그 뒤에 배번 말하니 한번  마랗나 다 하나깆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다 인정하고 그의 뜻이  권위있다 인정하는 사람이면 성경에 다 아니라도 됩니다. 또 이 자연계시 만해도  되요. 또 틀별계시만 해도 되요. 이런데 우리가 미덩지지 안하니 그 믿음을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자렇게 하시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문에 설교를 한 가지 설교만 하는 것과 한 가지 설교를 여면으로  이렇게 많이 하는 것 그것이 믿지 않는자에게는 많이 하는 것이 연필이 하고  미든 자에게는 한 가지 설교만 해도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있는 이치를  한 가지라도 따라 잡아야됩니다. 한 가지라도 꼭 잡고 이건 이렇다 변동없이  그렇게만 잡으면 이 성경 많은 것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우고 알고 기억화지  않해도 좋습니다. 지난밤에 그 아브라함에게 대해서 우리가 증거를 받았는데  아브라함은 그 사람은 모든 것보다 주님을 자기에게 더 필요로 했던 사람입니다.

모든 것보다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필요하고 또 자기가  가난에서 부자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필요하고 부자로 지내다가 당장 가난하게  되는 그것보다 하나님 놓치는 이것이 더 패고 이러니까 보다 하나님이 좋고 보다  하나님 잊어버리는 것이 낭패도다 그러면 그대로 살았소 또 자기가 그 모든 것이  자기에게 필요해서 자기가 이것의 것이 되는 것보다 저것의 것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것 도는기 낫다 또 이것 차지하는 것보다 저것 차지하는 것보다 하나님  차지하는 것이 낫다 그 간단합니다. 그렇게 만 살았소.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든지 그것보다 하나님이 내게는 더 필요하다 다  어떤 나쁜기 당한하든지 그것보다 하나님 잊어버리는기 더 큰일 난다 또 자기가  어떤 것의 것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것 되는기 낫다 내가 지금 그 미남의 그  여인이 되는것보다 하나님의 것 되는 기 낫다. 미남의 여인이 되는 것보다  미인의 사람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기 낫다 대정권자의 것이 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것 되는 기 낫다 내가 큰 유명한고 유력한 그 회사의 것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것 되는 것이 낫다. 고만 어떤 것에게 내가 소유가 되는  것보다 전 인류가 나를 좋아하는 전 인류의 것이 되는 것봐도 전 나라의 전이  되는 것보다 주 하나님이 것 되는기 낫다 그 뭐 간단하요 요렇게만 요자기가  누구의 무엇의 것이 되는것 보다 주의 것 되는기 낫다 자기가 어떤 것을  차지하는 것보다 화나님 차지하는 기 낫다 요 간단한 신앙이요. 요것만 가지고  요잣대만 오면 다 되 그러기 때문에 한 가지를 우리가 미덩도 확실히 믿고 또  견고히 잡으면 모든 진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 진리는 하나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여면으로 각도로 말했지마는 실은 한지리 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진리라도 굳게잡으면 됩니다. 이 아브라함의 모든 자기가  현실을 만날 때에 어떤 현실에 것이 되는 것보다 주님의 것 되는기 낫다 어떠  무엇을 만났을 때에 이것을 차지하는 것 보다 하나님의 차지하는기 나삳 고만  그라니까 어데든지 그 사람 두 가지 밖에 없이 어아 하나님의 것 되는 것  하나님을자기의 하나님 삼는 것 이것 밖에는 없어 그러면 그것이 실상은  법적으는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 되가지고 있소. 자기는 하나님의 것이 되가지고  잇소 그러나 되가지고 있는 그것이 실상이 되어지는 것은 자기 현실을 통해서만  실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피로 구속 받았기 때문에 주의 것입니다. 주의  것이지마는 실상 주의 네가 실상 주의 것이냐 실상의 되어지는 그것은 현실을 척  만낫을 때에 법적으로는 주의 것으로 내가 여 주여 했지마는 실상이 어떤 것이냐  할때에는 배반하는 수도 있고 그때에 이 제 주님의 것으로 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 실상 주님의 것이 되어지는 것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과 실상 자기 하나님이  되어지는 것 그러기에 우리의 현실은 네가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것 되어 있는 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확저오디어지는 거싱요 영원히 변도없이 확정  되어지는 것이요.

또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으로 되어 있는데 나를 구속해는 우리 하나님 우리 주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이신데 내 주 하나님이신데 내 주 하나님이 현실을  통해서 영원 불변의 내 주 하나님의 되버립니다. 요동치 않는 내 주 하나님  되버립니다. 그러면 내 하나님이 되고 이것으로 꽃을 완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와 정반대 입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 한 이 바벨탑 설교를 뭐 여 본교에서는  계속 몇번이나 했습니다. 요건 정 반대요.

그러면 그때가 노아 홍수 지낸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는 때입니다. 얼만 안된  때입니다. 안된 때인데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주셨느냐 어떤 현실을  주셨느냐 그들에게는 시날 평지 좋은 넓은 시날 편지를 그들의 현실로 주셨고 또  그 들의 언어가 하나요 언어가 하나라 말은 뜻이 하나라 말입니다. 뜻이  하나이요. 마음이 하나요 소원이이 하나요. 견해가 하나요 평가가 하나요. 또  그들이 한민족이라 이랬습니다. 한민족이라 말은 힘이 하나라 말이비낟. 위에  뜻이 하나요 했으면 그 다음에 사람들이 하나라 하면 뜻대로 있으니까 뜻은 이매  하나 됐으니까 그 다음에는 그 힘이 하나라 말 아니요 요 말은 무슨 말이 못알아  들으면 안됩니다. 자 언어가 하나라 하는 요 표현을 무엇이 하나로 봐야 되겠소  언어는 자기 속에 마음의 여러 종류의 것을 방을 표하는 것이 언어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언어가 하나라 그말은 그 사람의 듯이 하나라 말이요.

말이하나라 말이요 마음이 하나로 말이요 소원이 하나라 말이요. 욕심이 하나로  마링요 목적이 하나라 말이요. 경영이 하나라 말이요 비판이 하가 된 이 마음의  작용이 하나라 그 말이오 또 한족속이라 이거 하나니까 그 다음에 한덩어리가  뭐이 겠소 한 족속이라 그거 는 더위기 신비성이 없는 그 족속이라 하니가  고기덩어리요 그피라 말이요. 그 힘이이라 말입니다. 힘 그래서 그때에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받은 현실은 이세 가지입니다. 시날 평지라는 것과 또 그 언어가  하나요 또 족속이 하나라 하는 이 세 가지가 그들이받은 받아가지고 잇는  현실이요 받아가지고 있는 현실이요. 또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이 세 가지요 현실이 이 세 가지요.

그것은 이 세 가지에 세 가지로 되어있는 사람들이 되었이는 자들이입니다.

이랬는데 그것 가지고 뭣했는가 자기 현실 가지고 뭐했던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은혜 가지고 뭣했던가 그걸 어데다가 썼든가 그걸 가지고 무엇을  만들었는가 그것을여게서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 사람에게 은혜를 줘서 건강을  줬다 유식을 줬다 누구보다도 명철을 줬다 누구보다도 용감을 줬다 호라동성을  줬다. 부지런을 줬다. 의지를 줬다 돈을 줬다 지위를 줬다 권세를 줬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에게 주신 은혜가 여러 가지 있지 않습니까. 여러가지 있습니다. 그  우리가 되어 잇는 거 은혜로 되어 있는 것 그 위에 있습니까.

하나님 은혜로 되어 있는 것 제가 몰라서 이것은 내가 주위해서 건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내가 잘나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다 말해도 그것이  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거싱비낟. 우리는 그만침 알고 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떤 형편 사정 처지 존재 소유 권위 지위 명예 용감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거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틀림없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또 그것과 자기가 현재라는 시간과 현장이는 그 장소 현  형편이라는 그것이 다 자기 현실 아닙니까. 자기 현실 또 자기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로 받아가지고 있는 것 이것 가지고 뭐 했습니까. 이것 가가지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자기 자기는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 그 모든 거 썼습니다.

거게 이용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것 되는데에는 이용했어 그러니까 그걸 이용함으로서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것이 더 됐어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자 하나님이 더  됐습니다. 자기 하나님으로도 확정하되고 더 불변적으로 인제는 영원적으로  결정되버렸어 실상되버렸어 여게 사용 했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을 아브라함은 하나하나님에게 대해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사용했어 그 다음엔 또 자기에에게 대해서 사용했습니다.

자기에게 대해서 이떻게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사용했어 그 다음엔에  또 자가에게 대해서 사용했습니다. 자기에게 대해서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자기에게 대해서서나 자기를 하님의 것 되로 하라고 여게 섰어 이러니까 결론  작으로 자기기는 하나님을 위해 쓴 것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전부 사용했소  이 바벨탑을 싼 사람들은 그것을 뭐 어떻게 서 사용했소 뭐 어떻게 해서  사용했는지 요걸 알면 우리가 하나님이 내개 주신 무엇을가졌든지 가지고 있는것  바벨탑 싸듯이 요렇게 싸면 요것은 망한다. 머이 망해요 뭐이 망합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 가지고 있는 현실 그것을 가지고 뭣  햇습니까. 하나님 빼놓고 뭐 햇지요. 하나님 높힌다는 것 없었습니다. 그거  가지고 뭣 햇소 하나했습니다. 뭐 하나님 높히는 일했어 아니고 자기들 높히는  일 해써 우리 이름으로 나타내자 자기 네들 높히는 일 하나 했어 고거 하나했고  또 하나는 뭐 했습니까. 예. 하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으헤로 주신 것  있는데 그것 튼튼하게 하고 그 없어지지 안히기 우해서 그것 보존하기 위해서  햇습니다. 그러면 바벨탑을 싼 사람들은 몇가지 했지요. 두 가지 했소 두 가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그 모든 은혜로 된 그 모든 것 가지고 두 가지 했습니다.

하나니는 저거 높히는것 다음에는하나님이 주신 그 모든 것 없어지지 안하도록  그것 튼튼케 하는 것 요 두 가지 했어 요 두 가지 했습니다.

오늘도 천가지 만가지 종류의 생활이라도 요 두 가지입니다. 이기 강령이요. 그  사람이 정치가로 사업가로 에수를 잘못 믿든지 정치가로 예수를 잘못 못든지 그  사람은정치하다가 구원 못이루고 망했든지 사업하다가 구언 못이루고 망했든지  농없을 하다가 공업을 하다가 상업을 하아가 거 하다가 구원도 잘못 이루고 그만  죽어 망해 버렸든지 꼭 같은 것입니다. 꼭 같소 이기 뭐 알아들리집니까. 이 꼭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망하는 것은 뭘로 망하는가 바벨탑을 싸는 거와 같은  요런 걸로 망합니다. 또 성공을 뭘로 하느가 아브라함의 하는 거와 같은 고만침  야이 있는 것만침 성공을 합니다. 요걸 알아 들어야 되요. 요것을 딱 알아  들어서 딱 잡아야 되는데 이걸 안 잡으면 자기 신앙도 명하이 바보되는 것  바보가 되어지고 또 교회가 부흥이 안됩니다. 고 고쳐야 됩니다. 사랑을 가지고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하면 사랑의 방편을 말하는 것은 그것는 세상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방편은 십분지 일쯤 말하면 사랑의 그 본체 사랑의 자체는  증거할 때에 한 아홉번쯤 이렇게 증거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사랑의 역사하는 방편만 말하니까 무슨 사랑을 듣는 사람들이 무엇을  견고해지고 무엇으로 확고해지느냐 함년은 사랑의 방편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니까 육체 혈육의 사랑이나 정요의 사랑이나 동류의 사라이나 뭐 지방  살랑이나 무는 사라이안 그 사람은 방편은 같습니다. 방편으 같으니까 결국은  인본의 사랑화 되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사람이 흐리멍덩 해져버리고 말아 요  사랑을 말할 때에는 사람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 왜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그 사랑을 자꾸 증거해 세상이 그걸 모르기 때무에 그만  사랑하면은 세상이 알고 있는 그 사랑이 되버려리고 말고 그 사랑의 방편은 서로  주는 것 애끼는 것 좋게 하는 것 이런 것이라 말이요. 그리 되버리면 그것만  이렇게 되버려서 이러니까 사랑이 그 자체를 그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많이 말하는 것이 좋고 또 성경 한절을 한절을 가지고서 들고서 이래 말하고  한절들고 말하고 해석하는데 그것을 하는극것은 능해야 합니다.

지금 그래가지고 해가지고서는 하는 일입니다. 왜 이절 다섯절이 있는데 이  절수를 가지고서 해석을 하면은 요것대로의 뭐이 하나 딴 것이 되버리고 요  해석은 요기 다 말이요 그러니까 다섯절을 들엇 설교 했으면 그 다섯개의  다석개의 그 설교가 되버렷어  이러면 이것이 듣고 그 교인들이 이것을 종합할 줄모릅니다. 조합할 줄 모르고  자기 또 이 설교할 때에는 이 절수 할 때에는 이기 다 없이 했고 이 절수 할  때에는 이거 다 없이 버렸고 이절수 할때에는 도 이거 다없애 이것만 하고  이러니까 이리되니 자기 설교하는 사람도 그렇게 되어지고 또 듣고 사람은  어짭니까 설교하는 사람이 이 섯절을 보고 설교하며은 이절수 할 때에도 이  절수를 증거할 때에도 수를 말할 때도 이 네 절수가 맡은 이절수를 말했지마는  이 네절수가 다 여내포되야 된다 말이요. 이것이 한몫 움직여야 됩니다. 이래야  듣는 사람들이 그것을 다 들억가지고 산추려서 한 가지 예술품과 같이 요거는  요것이로군 하는 것이 간추리 되지 이거 말하 때는 이거 다 없었고 이거 말할  때는 이거 다 없고 나눈에 이거 말할때는 이거 다 없어져 버리고 이거만 말하고  이러면 그 사람들이 마지막 말하는 그것은 간직할지라도 그 나머지기 는 간직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무넹 단절적이 그 해석은 단 절적이 그 해석이 종합해석이 단절적인  해석으로 나와야 되고 또 그 종합해석이 단절적인 해석으로나오와야 됩니다.

단절해석할 때에는 그 종하이 단절해서긍로 나와야 되고 종합해석할 때에는  종합해석이 그 단절로 나가야 됩니다. 이것은 많이 연구해가지고서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도어지는 거게서 해야 되는 것인데 이것을 한절가지고 그절은 그절대로  따로 가버리고 이러니까 마치비유컨덴 팔은 팔대로 덜어져 버리고 팔은 팔대로  때서 각을 떼서 딱 내놓고 다리는 다리대로 각을 떼서 내놓고 간은 간대로  내놓고 있기야 다있지 이씩야 다 잇지마는 이기 한테 뭉치야 뭐이 되지지 할동의  작용은 없다 그 말이오. 그거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 설교하는 것은 쉽고 어렵소 그설교를 그렇게 하면서 못하는 교인들이 다 들어  이해를 해서 은혜를 받고 그 처음시간부터 마지마 막시간까지 들은 것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어서 한 결심이 일어나도록 이렇게 하나는 것은 그것은 어렵고  그렇게 하기는 어렵고 그것은 할라고 하면 자기의 연구를 해야 되고 실행을 해야  되고 그래서 이모든 절수고 똘똘 뭉쳐서 하나라라 하는 이 단일성 요것을 딱  자기가 잡고 그그건느 자기가 명상해서 되어지느 거싱고 자기 실천에서 되어지는  것이고 디어진느 것인데 이런 것없이 뭐 성경 한 절 몇가지만 들었으면 몇가지만  들수 나는 성경 이 절수도 내나 그래 해석하면 틀렸다 할 수 없ㅅ브니다 .

이절수는 그대로 해석하고 저래 그대로 해석하고 하는 그것은 게을 박이가  게을박이가가 설교가 수 있는 수은 운것입니다.

그 게을 박이는 그래 가지고 한절 한절 들어가지고 하는 그짓을 해놓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설교 준비할 필요가 없소 설교는 준비를 하되 하면은 그 설교가  마지막에는 그본문 보고는 알수 없는 본문보고는 알 수 없느 껍데기를 둘고  들어가고 들어가고 껍데기는 열절수가 있지마는 들어가 보니까 나주에 열 절이  아니라 다섯 절이로구나 다섯 절을뀌고 들어가니까 다섯절이 아니라 두  절이로구나 이제 두 절을 도 더 뚫고 들어가보니가 한절이로군 한절을 다더 뚫고  들어가니까 그 점수보고는 무슨 마링니지 모를 것 그기로구난 거게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거게서 입각해 가지고라야 그 되는 입니다. 설교는 그  준비해야 되지 그렇게 안하면 안되요.

그러기 때문에 설교를 준비를 자기가 그 주니비하는 사람이 울 월요일부터 딱  제목을 정해놓고 이렇게 하는 그것은 영감의 역사는 적습니다. 왜 그걸고  작정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해줬는지 안해줬든지 다른 설교 하라 하는지  모르니 모릅니다. 이러기 때무에 자기가 어느것을 하나님이 증거하라고 하는  것인지 그것은 최종에 증거하라 하는 증거로 받을 재간이없어 이거 받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혹 이 절수가 아니고 이 성경에 절수가 아니고 다른걸 증거하하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자기는 어둡고 하나님은 밝기 때문에 내가 한것이  맞았는지 맞았는지 모르겠다 말이요 맞았는지 안맞았는지 모르겠니까  최종시간까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이 이 시간에 이 설교하라 하는지  저 설교하라 하는지 거게 대해서 이것을 차즌 그 마음이 자기는 부족하고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의 뜻이 그긴지 아닌지 최종까지 들어  기더려야 되겠다 그 말이오. 최종까지 살펴야 되겠다 말이요.

이러니까 아무 설할 것을 주닙하지 못하고 설교할 것을 찾을라고 애를쓰기 는  쓰고 기도로 하기는 하고 또 자기가 이 말씀이다 하니까 그 말슴을 또 이렇게  명상하면서 연보를 했는데 또 이긴지 하니까 또 딴기 아니겠나 이라니까 또 딴기  또 나오니까 또 연구해야 되겟고 나옵니다. 최종으로 마지막에 설교할 그 시간에  다 달아서 그때에 이기라 하는 그기라 금라이요. 예수 이렇게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재판하는 사람이 이겼다 할지란도 아직까지 재판이 남았으면  이겻다 할 수 없어 요번에 이겼지마는 그 다음에 어찌되노 그 다음에 어찌되노  최종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에 게을한 사람들이 그렇게 살결를 마련합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자기가  에를 들면은 그 사람이 높은산을 올라가는데 저 사람이 십메다를 올라가가지고서  하는 설교인지 이십메다를 올라가지고서 설교를 인지 그 사람으로서는 그 이상  올라 갈수없다 하는거게 올라가가지고 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 이상은  제가 이상올라갈수 없는데 보니까 저 사람 올라가고 있는 핀아다 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저사람은 천메다에 지금 올라가 설교를 한다해도  천메다 올라가가지고 더 얼갈리고 애를 쓰며 올라간다 중에 있는 것이 나기 거게  벌써 자리잡고 앉은 사람이라면 흼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오만아한 자리에 앉은  사람입니다. 오만 한자리에 앉은 사람 그래서 우리가 한절 수라도 굳게  잡으면됩니다.

가만히 보십시요. 베발탑을 사는이 사람들이 자기네들의 자기네들이 뭘로 뭇는  뭉터이요 뭉터이요. 하나님 망아래에 있든지 저주알에 있든지 어데 있든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우리는 그대로의 무텅이가 되어있는 것이요. 그 사람이 지금  사형을 받았다 그러면 사형 그것도 주죄 뭉텅이 중에 하나입니다. 아밀이 이  못아 들려 임말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안들어간다 그 말이오. 들어가지 안해 지금  들어가지 안해서 말하고 있는 기라 뭐 때문에 여러번 자구 하겟소 안들어  들어가면 팍 깰긴데 확 깰긴데 확 깰긴데 안들어간다 그 말이오 꺼트머리 말  그거 가지고 안됩니다. 내가 하는 말을 못알아 듣고 있소 바벨탑을 싼 그들이  뭉텅이가 뭉터잉의 욧를 구 분석한다면 뭣 뭣입니까. 분석해 보십시요자기들  자기들 하고 자기들 사람들 또 그 다음에는 뭐이요. 시날평지 장소는 시날평지  때로는 그때 바벨탑 쌓을 그때 또 구음하나 또 한민족 이거외에 뭐있소 이것들이  그들의 요소 아니요.

그들은 이것이 뭉친 것이 그때 그 사람들들 아이요. 이 뭉친 것이 그러면 우리는  지금 뭘로 뭉치 가지고 이소. 우리의 우리의 뭐 현실이라는 것은 현실이라 말한  것은 합한 말인데 현실이라 말은 시간과 공간과 자기와 자기의 모든 소유되어  있는 요소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배경이 전부를 똘똘 뭉쳐서 현실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걸 뭉쳐 현실이라 말이요 현실이라 그 들어가버리 현실이  뭐인지 그저 내 현제가 현재라 이런 것도 자꾸 분석을 해서 분서긍을 또  세기보고 또 해석해보고 세기보고 해석해야 될터인데 그러면 그들이 바벨탑을  쌓을 때의 현실이나 우리의 현실이나 다 됴소가 같은 요소들입니다. 꼭같은  요소들이요. 요소인데 그분들은 뭣했습니까. 그거가지고 뭣했소 그거가지고서  누구위했소 그거 가지고 누구 위했지요. 한번 대답해봐 요조사 자기들 위했지  작게 말하면 자기 위하였게 자기들 위했지 자기들 위한 것  또 그 다음에는 뭐 위했어 서조사님 자기 위하고 자기들에게 주신 은혜 위했는데  은혜가 자기들에게 주신 은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 고거 위했는데 고것이  위하니가 잘됐습니가 바삭보사졌습니가. 어찌됐소 김응도 목사님 부셔졌습니다.

부셔쟈졌어 그 장소도 다 쫓기 달아났으니까 그것도 부졌지 한마음 한뜻인데  그것도 부셨졌지 힘이 똘똘 뭉쳐 하나 됐는데 그것도 부셔졌지 하나님 앞에 받은  받은 은혜로 된 것 다 부셔져 버렸어 자기들은 어쨌습니까 또 자기들은 위해  자기들은 부셔졌소 안부셔졌소 자기의 소유가 다 부셔져서 절단 나버렸지 또 뭐  하나 절단났습니까. 김정웅 조사님 뭐한 절단났어. 응 그 자기가 무셨는데  자기가 부셔졌으니까 자기 부셔졌다니 뭐 자기가 둥그러이 살아 있는데 뭐이  부셔졌으니 자기가 부셔져 버렸소. 자기네들이 받아가지고 있는 은혜가 다  부셔져 버렸고 또 하나 부셔진 것있는데 자기가 부셔지기는 부셔졌는데 왜  자기가 부셔져 소유다 없어졌지 자기네들의 하던 자네들이 건설한던 것 건설하던  것 건설 다 절단 나 버렸지 사람만 남아 있지 뭐 남아 있소 다 절단나 버리지  안했소. 그 사람의자 그 사람의형편과 소유가 가다 절다난 버렸어 하던 일이 다  절단나버렸으면사람 남아 있어도 송장 한다지요. 그게 절다나는 것 아닙니까.

이것도 좀 생각해 보라 그마링요. 자기들 위했는데 자기들이 절단났다 와  절단났어 자기네들이 자랑할 것을 구울이 하나인 것과 한족속인 것과 그  좋은아름다운 시날펴잊에 살고 있는것 그 잘먹고 잘입고 사록 있는 그것이 자기  하나님의 그 은혜인데 그 거 위할라고 했는데 그게 다 절단나벌났으니까 자기는  남아있지마는 그게 다 절단나버렸어 그래도 자기가 하던 이리이나 성공됐으면  좋은데 하던일 다 실패해 버렷지 그 이상 더더 절단 날 일이 어디 있소.

자기네들의 현실을 가직 자기를 위한다면 자기가 절단나고 자기네들의 현시릉ㄹ  가지고서 하나님한테 받은바의 은혜인 은혜 뭉터잉 그것을 위하면 그 절단나고  그런 것들을 위하면 위할 수록 절단이 나고하나님을 위하면 하나님의 더커지고  자기를 위하도록 하나님의 것 될라고 하면은은 작가 하나님의 것 되니까 더  커지고 더 완전해지고 이것입니다. 가만히 교인들 살펴 보십시요. 저 사람 사는  새오할이 두 가지 아니면 아브라함함 생활입니다. 아브라함 새오항이 아니면 뭐  천이든지 만이든지 그거는 다 바벨탑 쌓는 생활입니다. 발벨탑 쌓는 생활이  뭐인데 그 사람은 가만히 보니까 사업을 하는데 그 사람의 노력은 사업을 그것을  절단나지 안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업을 보존하고 사업을 흥왕 시키고 사업을 더  번성키기 위해서 상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요거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바벨탑 쌓는사람입니까. 바벨탑 쌓는 사람이요. 복잡한 것 말할 것 업싱 그  사람이 노력하는 것인 자기의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서 권세를 보전하기 이해서  명예를 보존하긱 위해서 자기 가정 보존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하는 것은 자기  소유 위해서 하는 것 아닙니까. 자기 지위 자기 기능 자기 명예 자기의업 자기  권세 자기의 가정 자기기 가지고 있는 사회 자기 민족 자기는자기들이 가지는  인류 무엇이든지 그것을 위하는 것 그것이하나님의 받는 바의 은혜를 위하는  것입니다. 자기 빼놓고는 다 그 하나님의 받은바의 은혜를 그 위하는 것이요. 또  은밀히 말하면 자기도 자기 위한 것도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은혜 그거 위하는  것입니다. 그거 위하는 것이요.

그러면 받은바의 은혜 그거위하는 것 저 사람들은 보자 뭐하는가 그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하나님 앞에 받은바 하나님에게 주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그걸  하나님에게 받은 거싱라는 그것도 잊어버렸다 그거 제것인줄 안다 노력을 그거  위해서 노력한다 어짤라고 그거 키울라고 이것이 곡간을 헐고 더 큰 곡간 짓는  내나 같은 것이요. 보니까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것 필요해서  이런 것 저런 것 다 자기들이 그 한말로 말하면 현실인데 그걸 주셨는데 그것을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극섯을 제 지혜대로 더 좋도록 하기 위해서 안됐는 거는  시정하고 제 견해대로 요거는 나쁘니까 고치자 요거는 좋으니까 보전하자 얼마나  인본입니까 제까짓기 좋고 나쁜 것 어찌 압니까. 인간은 일방적 견해지 전체적  견해를 못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 무엇을 제가 좋고 나쁜 것을 알겠소이러니까 제딴에는 나쁘다 하는 것은  이것 수정해서 좋게 만들고 좋은 것은 이것은 어짜든지 없애지 안하고  보존하도록 또 개 또개 첩첩 봉지를 싸가지고 보존할라 합니까. 그렇게 살면  고것은 산산히 콩가루 같이 깨져서 흩어진다는 것을 우리가 근근히 잡아야  됩니다. 견고히 잡아야 되 응 그라고 난 다음에 보니까 그 사람 하나님 생각지  안하고 자기 우상당할까 싶어서 하나님에게 욕되는 것 보다도 자기에게 모욕  되는 것 내가 어떤 장로 찾아가가지고서 장로님은 하나 버리야 되요 그 자존심  그게 우상이 됐기 때문에 벌리야 되요. 나는 참 그래요 나느 죽음 보다도  자존심에 걸리는 것은 그거는 못견뎌요 고것도 고것도 내나 자기 위하는  것입니다.

 보니까 하나님이 존귀가 떨어지나 영광이 떨어지나 그게 아니고 보니까 그 모든  자기 활동하는 걸 보니까 자기 위주로 자기 주인으로 하고 있다 자기 높히기  위해서 하고 있다 요거 바벨탑 쌓고 있다 고럴 때에는 말해줘 너는 바벨탑을  사고 있으니 너는 마망한도 내 소유도 그래 가면은 고속도로 가면 얼마가면  망한다 내라는 조내즌고 속도로 가면은 얼마 가면 다망한다 어떤 사람이 그때  마구 흥왕해 가지고서 이렇게 안주 안아 무인으로 존귀해 갈때입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을을 내가 한번 불러가지고 이야기 하기를 게제가 아주 제일알고 모든 걸  아는 척 이래 떠듭니다. 이래서 내가 거서 한 한 시간이나 이상으로 말하면서  말하니까 울면서 자기가 이래도 내가 예언하기를 내가 내 가치는 하루 이틀에  없어지기 안한다 오십이 되면 네 가치가 떨어질 것이고 네가 눈물을 흘려서 내  눈을 내가 쑤셨다 내 신세를내가 망쳤다 내 자리의 신세를 내가 망쳤다 내가  오십이 되야 깨달을 것이다 말했어 너가 딸이 비참하게 되는 것이 오십이 되면  비참하게 되는 것을 네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거는 내가 만들 알수 있을  것이다. 이러니까 그때 우는 눈물을 분해서울었소. 분해서 우는 눈물 신세  망쳤다 하니까 슬퍼서 우는 눈물 또 그것이 깨달음이 들어갔기 때문에 분하지  깨달음이 들어가서 우는 눈물 그래 지금은 벌써 옷비이 지냈는데 오십이  지냈는데 고대로입니다. 성경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히기 때문에  성경도 성고잉 있는 것으로 우리는 봐야 됩니다. 있는 것 같이 봐야 되요.

바벨탑으로 우리에게 갈르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에게 받음의 그 은혜로 되어  있는 그 존재 뭉텅이 존재 무텅이 자기 뭉텅이 현실 뭉텅이 지위 권새도 자기  뭉텅이 아니요. 자가 건강도 자기 뭉터잉 아니요 자기 모든 것. 하나님 앞에  은혜로 받아서 자기가 이런 자기로 되어 있든지 저런 자기로 되어 있든지 어떤  자기로 되어 있든지 자기로 되어 있는 것. 자기의 소유로 되어 있는 것. 크게  말하면 소유까지 전부 자기 것이요. 되어 있는 것 이것가지고 뭣했느냐 자기  높히고 그 다음에는 걱 거 보존하고 그것 보존하다니 우리가 흔텅이지 않도록  하자 하는 그것이 그것 보존하니까 사람이 자기에게 어떤 회사를 하나 줬으면 요  회사 요 준 요것은 회사를 요거 가지고서 어떻게 하면은 요것 가지고 하나님을  내 하나님 삼는데에 요걸 쓸고 요거 왜요 회사 여거가지고 회사 경영을 가지고  십년을 하든지 일년 하든지 할 화든지 요 회사 경영가지고 요 회가 가지고  하나님의 내 하나님 삼는것. 요 회사 가지고 하나님 높히는 것. 요 하나님에게  대한 것 일년했으면 일년동안 요거 가지고 하나님에게 대한 것. 하고 십년  했으면 십년을 요 하나님에게 대한 것 하고 요거 할라고 주신 것인데 요거  가지고 일년했으면 일년동안 내가 어떻게 되면 큰 사업주가 되고 큰 사장 되고  어떻게 하면권세와 지위와 명예가 높아지고 또 어떻게 하면 요 회사가 요것이 잘  보존되고 커지고 흥왕되느냔 사하고 자기하고는 우명이 가다 횟사를 애끼는지 저  애낀는 것이요 저 애끼는 것이 회사 애끼는 것이다. 회삭 커지야 자기가 컨진다  자기 커지는 것이 회사 커지는것이다. 요것은 한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요렇게 알고 있지요. 요래 알고 있지요. 하나님은 상관이 없게 됐다 말이요.

이것이 타락한 인간들이 죽음을 생홀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왔는 하나다 하나님이 내게 작아지면 내가 작아지고 하나님이 내게  커지면 내가 커지고 내가 커지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커지는 거시이지 요서 내가  커지야 되지 하나님 때네버리고 커지면 이것은 망하는 거싱다 요렇게 하나는  생명이 길이요. 하나는 사망길인데 요것이 자기에게 확실히 깨달아져서 요것이  자기에게 확실히 주관이 되어지고 자기가 되어지면 이것이 능력이요 역사인데  그저 껍데기만 알아 들어가지고 그런데 말로 표현하는 말로 표현하는 그것만  가지고는 언제든지 외식입니다.

언제든지 껍데기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몇가지 안되는 것이요. 말로 가지고는  표현을 못하는 것이요. 말로로 표현 못하는 것을 무엇이 표현합니까. 말로 표현  목사하는 것을 무엇이 표현하요. 성신의 감화가 표항현하요. 그말로 가지고서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성려으이 감화로 내가 받아 드릴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화로 받아 드릴 수 있어 인간의 말은 껍데기입니다. 껍베디기로 인해 껍데기  말해논 것은 속에 알맹이 역사는 성령이 역사해야 됩니다.

전하는 것도 성령이 역사해야 되고 또 듣는 것도 서열이 역사해야 되는것이비낟  이러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는 요 여게서 한걸음 들어가서 마롤 표현할 수 없는  그 깨달음을 자기에게는 느껴서 참 말하자면 꿀먹은 벙어리라고 말하지 않소  꿀먹은 벙어리 꿀먹은 벙어리 벙어리 꿀먹은 보니까 단맛은 확실히 느끼기는  느꼈는데 병벙을 벙을 해봤자 항상 그 소리를그 소리지마는 자기에게는 그거는  먹으니까 쓰더라 달더라 이 속에 작에게 체험에 있다 그 말이오 요것이 우리가  성령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하는 그 표하현할 수 없는 것이  증거하는자에게 잇어야 그것이 성신의 역사가 올 수 있고 들을 때는 말로 평할  수 없는 고것이 자기에게 통할 때에 고것이 영감을 영접할 수 있는 고 준비가 된  것이요 그 인격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이상중에 몰아 넣은 것은 그런 그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그 느낌  이상의 느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상중으로 몰아 넣었던 것입니다.

간단해요, 그 사람이 자 목회를 한다 그 사람보자 목회하는 데에 그 사람이  목회를 잘해서 이 교회를 지금 일으키고 있는데 목회하는자로 살면 그 사람이  목회를 위해서 목회를 하나 목회 위해서 목회 하면 어찌됩니니까. 목회 위해서  목회 하면 어찌지요. 송목사님 망합니다. 목회 위해서 목회하는 망합니다 .

그러면 뭘 위해서 목회를 하라 말이요. 응 그 목회는 그 목회 뭐 할라고 목회 해  하나님 내 하나님 삼을라고 목회합니다.

나를 하나님의 것 만들라고 목회 합니다. 인본주의라 할 것이요. 성경도 그렇게  말했어 그것은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실상이 이루어지지  안했어 역사적으로 이루어지지 안했어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어 있지마는  역사적으로 내 하나님 되어 있지 않다 말이요 역사적으로는 이 생활이 있어  실상적으로는 권위적으로 내 하나님 되어 있지 안해이러니까 내 하나님이 실상  내 실사응로 내 하나님 되도록 역사적으로 내 하나님이 되도록 또 내가 주의  것이 되어 있지마은 실상주의 것이 되어지도록 역사적으로 주의 것이 되도로  주의 것이 되어가지고 이런 여사 저런 역사 할 수 있도록 이것을 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반드시 목회 위해서 목회 하는 사람은 교회를 세우니까 가다 보면은 교회를  위해서 교회를 훌륭한 교회 큰 교회 참 은혜 있는 교회 만들기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하기 쉽습니다. 교회 위해서 하나는 것은 그것은 좋은 것인줄 압니까  그기나 돈 위해서 하는 기나 꼭 같은 것이요. 도적놈이 도적질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나 꼭 같은 것이요. 다른 기 아닙니다.

사람이 그그렇게 디기 쉬워 노아가 그렇게 망하게 된 것은 농사짓다가 눈중에는  농사짓는데에 마음을 기울이고 농사짓기 위해 농사짓다 보니까 농사의 것이 되고  말앗어 농사의 것이 되다니 어떻게 농사의 것이 됐어 노아가 어떻게 농사의 것이  됐어 정경수 목사님 글 포도주가 농사의 소산 아니요. 포도주의 것이 됐으니까  농사의 것이 되고 말앗지 엄간이 그렇게 되기 시쉽다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에  언제든지 자기가 어디서든지 하나님과 자기 하나님 수입 자기 수입 쉽게 말하면  그래 말하면 쉽소 자기가 어떤 고문과 고행을 당할 때에 그때 하나님을 내  하나님 삼을란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되야 됩니다 그런 해석을 할 수가 없어  그런 긴 해석이 나오지를 못해 고문과 고행 가운데에 무슨 그런 해석이 나오겠소  그때는 게거게서 그때는 주여 해야 되 아프면 주여 이제 추우면 주여 자꾸  나오는 말이 주여가 나와야되 주여 아파도 주여 추워도 주여 따가와도 주여  쩌리도 주여 응 이럴때에 그것이 그래가지고서 인간으로서 할일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주님과 자기와 바꿔지고 난 다음에는 평안이야 아무것도 없어 이것이  평소에 부스러기 승리에서서 큰 승리가 이루어지고 부스러기 수입에서 큰 수입이  이루어지고 부스러기 실패에서 큰실패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돼아 지극히  작은 것 즈극히 큰것것 이렇게 말했어.

그런고로 요 두 가지는 우리에게 간간단 명료하게 주신 법칙입니다. 복잡한  법칙을 다모를지라도 그 모든 법칙이 이 이런 법칙들을 해석해 주신 것이요. 그  창세기 1장에서 부터 이러헥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그 가치적으로  권위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을 그 축소해서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현실에서 바벨탑을 는 생활이냐 이 아브라함의 사는 사는 생활이냐 롯은 사는  생활이냐 로스의 사는 그 생활이 바벨탑을 쌓는 생활과 꼭 같습니까 다릅니까.

어떻소. 좀 다릅니까. 좀 다르요 형태는 다르지 형태는 다르지마는 이치는  꼭같습니다. 노아는 뭘 생각했지요. 아이 롯 롯은 뭣 생각했지요. 예. 그자기  가족들 생각햇어 사람들 자기 사람들 자기 가족들 내나 자기기들 생각했어  자기들 생각했지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 또 뭐 생각했어요. 응 한번 대답해봐요.

목축생각했지 목축생각하고 첫째는 자기 가족들 생각했고 같이 다니는 사람들  자기는 사람들 생각했고 둘째는 묵축 생각했고 바벨탑에는 뭘 생각했소 첫째 뭐  생각했소 사람들 생각했지 그 다음 뭣 생각했소 목축생각했는데 롯은 묵축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은 뭘 생각했소 구음을 하나도된 족속이나 시날펴잊에서 한  마음 한듯으로 시날평지에 사는 것 고거 깨지지 않도록 하자 고거 생각하지  않앗소 고거 위하지 안했소 꼭같은 짓입니다. 꼭같은 이치요. 응 이러니까  간단명료합니다. 그러니까 가보면 이걸 알면 뭣 때문에 구별 못하겠소 척 가보면  이 가정 희망없는데 가보고 이가정 희망 있는데 이 가정이 망할 요소 이 가정을  망칠 요소는 뭐엇이다 대번 딱안다 말이요 그러니까 고집에 가서 딱  고걸말하는기라 응 이가정은 희망있는데 지금 은 형편이 없어 이래도 요기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는데 싶으면 고거 딱 맞으면 요거 가지면 희망 있으니까 희망  있으니까 요거 가지면 희망 있으니까 요건 내가 놓치지 말아라 할 수 있소 내가  김영웅 목사님을 희망있다 하는 것은 자기가 깨달음이 하나 있더라 그 말이오 응  깨달음이 잇더라 하는 고것을 말합니다.

고 깨달음은 그 깨달음은 어떤 깨달음이냐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하는 것봐서  깨달아진 깨달음이요. 거게서 있을 것이 아니고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이제 한데  대해서 그것 지나서 깨닫는 것이 이제 최종 최고 깨달음입니다. 그 이상은 없소.

그러면 거게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는 것을 알게 되되는 것이요. 자기 된대로  그 도적은 보고 들리는 그게 전부가 도적으로 해석이 되진다 그 간교한자는  접촉디는 그 모든 것이 간교를 근거가지고 간교의 성경을 가지고 해석이 되진다  사람을 속이고 이간 붙이는 자는 그 들리는 말을 조것도 조 이간불이라고 조렇게  하는 것이로구나 다 그렇게 보여진다 고런 말 하나 했는데 고것은 자가기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하는데 대해서 깨달아졌소 고것은 내가 봤어 그 거서  깨달아졌다 말이요. 그 다음에는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한데 대해서 깨달아지면  그 것이 인간으로서는 최고봉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하나님이 자기에게  행한데 대해서 깨달아 지고 자기가 하나님께 대해서 행한대로  깨달아지면절정이다 그 이상 그것이면 완성이야. 이마니 목사님은 사랑에 대해서  그걸 사라의 본체에 대해서 말 안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마는 고것은 조그매  말했고 고만 주는기 남을 위하는기 사랑이라 이래 만 놓으니까 정욕사사랑도  안그렇소 그거 다 남을 위한 하는 것 아니요 구별 목사한다 그 말이오 사랑은  하나님만 가졌지 인간은 가지지 못했다 하나님의 가진자는 가진 사랑의 예수님의  하나님의 사랑이라 진리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걸 세상이 그 사랑을  싫어합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의 사랑의 가족들에게 주면 좋아합니까. 좋아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화평을 일으키러 온기 아니고 분쟁을  일으키려 왔다 했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사라을 줘서 분쟁이 났소 미움을  줘서 분쟁이 났소 대답해 보십시요. 에. 뭘 줘서 부쟁이 낫지요. 사랑을 주서  분쟁이 났어 사라응ㄹ줘서 분쟁이 났어 사랑이 그들에게는 미움으로만  나타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에예수님은적이 됐지 그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사라을 이것을 똑똑히 구별하지 못하면 결국은 인간의  사랑입니다 요새 지금 사랑의 들어서 막 망칩니다. 사랑이 들어서막 망치요.

사랑이 들어 망치다니 그러면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봉사하고 위하고 하는  그것이 없어져 망친다 말이요.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도 환영할라하는 것이지  진리를 주장해 네가 예수 안 믿으면 망한다 그걸주지 낳기 때문에 네가 주일  아니지키면 망한다 네고 공순주의 내가 하나님 없다 하지말라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을 모시라 그것이 그들에게 사랑을주는 것이요. 이 사랑 본체는 내비두고  사랑의 방편만 쓰면 세상 사랑과 불교 사랑과 유교 사랑과 사랑이 뭐 방편이야  다른 것이 뭐 있습니까. 같지 이라니까 환영하고 좋아하지 세상이 왜 진실한  자를 미워해서 다 그감람나무 두 중인을 다 죽여서 그 시체를길가에 꺼꾸러  트리버리고 장사하지 안하고 죽이 놓고 좋다고 춤을 추면서 잔치했습니까.

그들이 저희들을 미워해서 그랬습니까. 미워했지 미워했기 때문에 그들도  미워했지 미워했기 때문에 미워햇지 미워하다니 세상 이치로 말하면 미워했지  그러니까 그들이 미워했지 하나님의 이치로 말하면 그들을 사랑했지  하나님이치로 말하면 그들이 선지자를 사랑해서 미ㅣ워했소 하나니님의 이치로  말하면 그들이 선지자를 사랑했소 미워했소 신용인 목사님 사랑햇지 사랑했지 그  이상 선지자를 좋게 할수가 없지 복되고게 할 수가 없지 위할 수가 없지 예.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이 모르는 것을 우리가 증거하고 바독 저축하고  자라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간단해요 복잡하지 말고 바벨탑을 쌓은 것. 아브라함신앙 롯신앙 노아가  실패한 것. 노아가 성공한 것. 에덴동산에서 네가 여게 살아라 이것을 다스리고  지키라 베부르게 먹으라는것만 먹고 먹지 마라는 것 먹지 말아라 간단해 내가  아이 지금공산주의 만나가지고서 내가 지금 온갖박해를 당하니까 여게서 내가  뭐해야되지 역세가 하나님 수입봐야 되는구나 여게서 하나님을 내  하나님을마들어야 되구나 좋은 시기를 만났습니다. 다른 평안무사때에하나님  하나님은 내 하나님입니다. 만번 하는 것보다도 고자리에서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만이 내 하나님이다. 거게서 한마디 한 것이 평생에 천번  만번한것보다도 하나님은 더 저의 하나님 됩니다. 자기는 더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한마디 말한 것이 하나님 더 나타냈소 더 증거했어. 고면으로 뚤고  들어가면 아픈 것은 뒤에 따라와서 뭐 하지요. 또 뒤에 따라오면 자꾸  쫓습니다.가라고 자꾸 쫓소 요것을 가르쳐서 뱀의 후손을 여인의 후손의 무러  사해요. 발꿈치 발꿈치를 무니가 위에 사지는 자꾸 달아날 수 바께에는  대가가리를 상하면 어찌되겟소 대가리를 상하면 주저 앉아야 디되 요것이 신앙의  비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목회를 해도 보면 요새보면 지금 마구 돈이 어데 나오는지 이러니까 남한에 돈이  업성야 될기라 말이요. 돈이 어데 나오는지 일주일 동안에 종이가 내 손보십시요  이만침 옵니다. 두꺼운종이 아주 두거운 조이에 돈을 많이 드려서 거다  뭘가지고서 보내는데 전부 이 무슨 협회 무슨 협회 무슨 협회 전부 기독교  협회가 몇치나 되는지 뭐 선교 협회가 몇치나 되는지 이런데 파차고들어가  보면은 내가 이래야 유명해 질까 저래야 유명해 질까 전부 저 높히는 운동이요.

네 그 끝은망한 것입니다. 그살펴볼 때에 요것만 가지고 잣대로 재봐요. 한국에  복음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 운동이 어찌되겠느냐 보면 요서 사람을 고것을  통해서 하나님 포일라 한는 일일 할라 하니가 고것은 파묻어 들어갑니까 파묻혀  들어가요 보면은 여게 서 내가 이래야 출세를 할가 저래야 출세를 할까 전부  자기 출세하는 그 노름이요. 그것이 자기 올라가는 사다리요 전부 사다리 만드는  운동이라 그 말이오. 되지도 안하고 글을 써내서 줄줄줄 이래가지고서 그 사람  저서가 몇권이다 그 사람 저서 몇권이다 하는 그거가지고 사다리삼아서 올라갈라  하는 것이요. 그 사람이 무슨 협회장이다 무슨 장이다 뭐한다 뭐한다 전부이  자기 올리는기 아니면 하나나님 오릴는 것이요 소유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을 높히는데 쓰는 것이요 보존하는 것이 아니 대해서 쓰지 고만 요것만  똑똑히 요 진리만 아아 놔도 운동하는 것을 당장에 평가할 할 수 있습니다.

엑스포 74도 평가할 수 있고 비리그레함역사도 평가할 수 있고 무슨 여갓도  평가할 수 이속 이것이 땅의 운도이냐 하늘의 운동이냐 이기 신본이냐  인본이이냐 다시 말하면 사람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뭐이냐 이기 바벨탑이냐  아브라함의 걸어가는 걸음이냐알 수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고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면 족합니다. 그 이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는 것은 나는 요거 있으니까 됐다 조거 있으니까 됐다  요거싱 내 방패가 요기 있으니까 됐다 족기 있으니까 됐다 하는 우리들에게 고것  가지고는아무 소용이 없는 거승로 하나님이 끌고 갑니다 . 끌고가요 하나님의  방패가 아니면 하나님의 방패되지 안하면 소용없는 고자리로 끌고 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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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바로 아는 자의 복/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791019금야 선지자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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