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받는 매 주일


선지자선교회 1983년  4월 3일 주전

 

본문 : 요 11:25-2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오늘은 세계에 있는 기독교가 4월 3일 주일을 부활하신 주일로 이렇게 기념하자  하는 것이 공통돼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곳곳에서 연합 예배를 새벽 여섯시에  드렸습니다. 부산도 공설운동장에서 여섯시에 연합 예배를 드렸고 그 통지가 우리  교회도 몇 차례 왔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서기관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그들에게 바른 교훈 하시는 교훈이 싫어서 차차 미워함이  심해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 당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그들이  예수님의 바른 교훈이 저희들에게 거슬려져서 애매히 정죄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죽일 때에 죽인 단체들은 바리새교인, 전 유대인, 제사장, 서기관, 또  로마 정권자, 로마 병정들 똘똘 합세를 해 가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죽이고 난 다음에 그들은 '예수가 살았을 때에 죽은 가운데서 부활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단단히 지키지 아니하면 그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적해 가고 죽은  가운데서 부활했다 그렇게 말할 터이니까 단단히 지켜야 된다'는 것을 로마  정권자들과 병정들과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들이 다 공통 의논이 됐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날은 이 세상이 말하는 대로는 금요일날 죽였습니다. 금요일은  성경에 말한 대로는 육일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난 다음에 돌로 만든  무덤에 장례하고 로마 병정들이 많이 수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안식일을 지나고 난 다음에 안식일 지나고, 안식일은 유대교인들이  지켰고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는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들이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 지나고, 안식일은 이레 중에 마지막 날이오. 토요일날. 토요일 일요일  토요일 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그 날인데 그만 그 날이 온  세상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시를 안 하면 몰라서 부득이 월 화  이렇게 말합니다. 삼일예배 오일예배 그래 말하고, 오일예배는 금요일을 말하고  삼일예배는 수요일을 말합니다.

 이레되는 안식일을 지내고 이레 중 첫날인, 이방신 섬기는 날로 정한 것으로  말하면 일요일이요 우리로 말하면 이레 중 첫날입니다. 그날 새벽에 수직꾼들이  지키고 있는데 천사들이 빛 가운데 나타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무덤이 열리고,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때에 지키던 파수꾼들이 다 놀라서  기절하고 어떤 사람은 또망을 치고 그래 가지고 대제사장들과 그 정권자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천사가 광채를 가지고 나타났고, 크게 지진이  일어났고,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셔 가지고 나오셨는데 우리가 겁이 나서  기절해 있다가 겨우 도망쳐 가지고 왔다.' 하는 그 말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했습니다.

 어떤 백부장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구주 메시야라고도 하고, 또 대제사장  서기관 그 사람들은 저거가 성경 가르쳐 놓은 것을 예수님이 다 잘못 가르쳤다고  뒤벼놓으니까 저희들은 예수님을 시기해서 미워했지마는 백성들의 마음은 그렇지를  아니했습니다.

 이랬는데 만일 부활하신 이 증거가 나타나면 '너희들이 우리 구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아니했느냐? 살아 계실 때에 삼 일 만에 부활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지 아니했느냐? 너희들은 우리 구주 메시야를 죽인 정죄한 자들이기  때문에 돌로 쳐서 죽여야 된다.' 하는 그런 소동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말하기를 돈을 주면서 '너거들이 거게 대한 소문을 퍼뜨리지 말고  부활하지 아니했다, 또 그들이 시비를 해 가지고 도적해 갔다 해라 그렇게 말을  해라.' 해 가지고 대제사장 그들에게 속한 사람들은 또 그런 말을 듣고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실 그때에 무덤 가운데 있는 믿는 사람들이 많이 부활을  했고, 또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위로부터  갈라졌고, 또 땅이 진동하고 지진이 났고, 모든 바위가 다 떡떡 갈라져 버렸고, 그런  여러가지로 예언한 대로 다 사실이 이루어진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후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실상 부활하신 게 아니라  제자들이 시체를 숨겨 놓고 부활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런 각론이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때에 로마는 강한 세력을 가졌고 병정들은 강한 세력을 가졌기 때문에 병정들은  유대인들을 만나면 무조건 길을 가다가 '이것 짊어지고 가자' 하면 가야 합니다.

'이거 하라' 하면 해야 합니다. 아주 그 병정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해서는  전권을 가졌다고 할 만치 그런 엄격한 권위를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는가 지키라고, 많은 군대들이 모여서 지키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시체를 그 제자들이 도적해 갈 수가 있는 형편입니까? 말이 아닌 말이지마는 마귀란  놈이 내는 말은 자꾸 쏙삭거려 거짓말 하면 멸망할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이레 중 첫날인, 이방인들이 날을 말하는 걸로 하면  일요일입니다. 우리는 주일이라 하고 일요일이라 안 하는 게 좋습니다. 또  삼일예배는 삼일예배가 좋은데 그들이 모르기 때문에 수요일 예배라, 알도록  발표하기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또 금요일 예배는, 오일예배라 이래 하지마는  모르니까 금요일 예배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삼 일 만인 안식이 지난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이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따르던 여신도 마리아나 그런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묻어 놓고 안식일에는 손을 못 대기 때문에 안식이 지나가고 나서 첫날 새벽에  어떻게 됐는가 하고 가니까 천사들이 빛나는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 '너희들이  누구를 찾느냐?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는 줄 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에 너거들에게 말한 대로 살아나셔서 너희들보다 먼저 제자들을 만나러  갈릴리로 가셨다. 너희들이 여게 누우셨던 자리를 와서 보라.' 가 보니까 부활  하시고 없습니다.

 그래 여인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하는  소식을 전하니까 제자들도 '정말로 부활을 했는가 가 보자. 사람이 부활할 리가  있느냐?' 하고 달려와서 무덤에 보니까 부활하고 시체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마리아가 눈을 떠서 자세히 보니까 자기 옆에 예수님이 서서 계시기 때문에  서서 계시는 예수님을 보고 반가워서 손을 잡으려고 달라드니까 예수님께서  아직까지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부활 했지마는 아직까지 휘장 속, 법궤 위,  그룹 사이, 속죄소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지를 못했다, 곧 나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 나의 아벼지 너의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아직까지 너희가 내 몸에  손을 대지 말아라. 손을 못 대고 예수님께서 잠깐 보이지 아니하시다가 조금 후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에게 가서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에서  너희들의 대속을 완성을 하고 이제 내가 왔으니 지금은 나를 만져라 그때는  제자들도 만져보고 그 여인들도 예수님을 만져봤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내가 죽기 전에는 안식일을 지키지마는 내가 죽었다가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부활한 주일을 너희들이 기념으로 지켜야 된다' 말씀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서, 첫날 부활은 하셨는데 그 명령대로 첫날 그날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해야 될 터인데 로마 병정들 유대 교인들이 뭐 안팎 가득히  찼는데, 거게 있는 사람들은 전부 병정 아니면 유대교인들이요 바리새인들이요  서기관들이요 빠짐이 없는데, 콩기름 속에 끼인 콩기름 같은데 거게서 모일 수가  없어서 무서워서,  여게가 모이려 해도 거게도 보면 예수님을 죽인 그 단체들이 '예수가 지금  부활했다고 또 어데서 예수 믿는 자들이 모이고 하는가 보라' 이래 있기 때문에  제자들이 두려워서 모이지를 못했습니다.

 이리 저리 모일 곳을 찾다가 하루 종일 모이지 못하고 깜깜하게 어둡게 되니까  비로소 그때사 숨어서 저 어느 구석진 방에 가 몇이 모여 가지고 거게서 문을 닫고  거게서 주님이 주일 지키라 하는 주일의 예배를 소리도 내지도 못하고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문을 닫아놨는데 주님이 방 가운데 떡 서셨습니다. 서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평강을 주노니 안심하라.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안심하라. 나는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니 내 손에 못자욱을 보라. 내  옆구리에 창자욱을 보라. 나를 보고 너희들이 안심하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노니 너희들이  나의 하나님의 진리대로 하나님과 진리대로 죽으면 다시 죽은 가운데서 영원히 죽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는 이 도를 너희들이 확실히 믿으면 평안할 수 있고 담대할 수  있다.' 하시면서 설교를 하시고 그 다음에 '성령을 받아라' 이랬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고 나니 마음에 평강이 있어서 그 다음부터는 사십 일 동안을  예수님 승천하실 때까지 주일을 지켰는데 일곱 주일을 지켰습니다. 일곱 주일 지킬  때는 담대히 예수님 모시고 주일날 되면 예수님이 오셔서 설교해 주시고 또 그들은  기쁘게 담대히 주일을 지키고 이래 하다차 그 다음에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고 나서 우리는 안식일 지키던 날을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로 지키기로  그렇게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그렇게 변개해서 예언을 하셨고, 또 그후 성경  기자들이 다른 날로 바꾸어진 것을 성경에 기록하셨고, 또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모든 생명에 속한 일들은, 생명에 속한 일들은 전부 안식일날 하지 아니하고 안식  후 첫날 주일날 행사를 했습니다.

 변화산에 가신 것도 주일날이요, 또 세례 받으신 것도 주일날이요, 예루살렘에 나귀  타고 들어가신 것도 주일날이요, 모든 생명에 속한 일들은 미리 주일날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지 아니하면 안 될 이유를  여러분들이 잘 아는 줄 압니다. 대형 대행 대화친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새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피조물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것도, 지극히 크신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중에 한  인간으로 되어 나타난 것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큰 희생입니다. 또 이만하면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은 됐지마는 우리에게 실지로 영생하는 새생명을 주는 데는  당신이 또 사람으로 부활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사람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또 우리를 지극히 큰 능력으로 안보하시는 이 하나님의 안보를 우리로 하여금  받도록, 실지로 받도록 하시기 위해서 부활을 하셨습니다. 또 지극히 큰 능력을  우리에게, 받아 가지고 지극히 큰 능력의 사람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부활을  하셨습니다.

 또 세상에서 싸울 싸움이 많은데 죄악으로 더불어, 악령으로 더불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부패성으로 더불어 이렇게 싸워서 이 모든 것을 이겨야 승리한  승리자만이 하늘나라 가기 때문에 승리하는 그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l장 3절 이하에는 '찬송하리로다 그  아버지가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셔서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고  낡아지지 아니하고 더러워지지 아니하는 기업을 우리가 얻어 가지도록 하셨다. 이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그 구원을 얻기 위해서 너희들이 그 능력을 믿음으로  그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여러가지 온갖 시험을 당하나 이 능력만 너희들이  입으면 모든 싸움 다 이기고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무궁세계에 나타나게 된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지 아니하면 안  될 이유가 뭐인가? 사람이라야 사람을 대신할 수 있지 다른 것은 사람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되어 오신 것이고, 또 예수님이 죽으실 이유가 뭐인가? 우리의  죄값을,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우리 주장대로 산 자율의 죄, 불의 죄. 하나님과  원수된 죄, 이 죄의 형벌을 당신이 받아서-죄의 형벌은 죽음인데-당신이 죽어야 이  죄의 형벌이 없어지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고,  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으로 다 바쳐져야 되기 때문에 대신 순종하기 위해서  완전히 순종으로 다 바쳐 죽으신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된 이 원수를 원수된 이 요소가 완전히 죽어 하나님과 화친으로서  끝내고 불목된 불목을 대신하셔서 불목의 먼지 하나만치도 남기지 아니하고  화친으로, 하나님은 배척을 해도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더불어-화친하는 것으로서  전부가 끝나는 이것이라야 우리의 대속이 되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또 부활은, 이렇게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해결을 지워 주셨고 또 마귀에게서 완전히  해방을 시켰고, 마귀가 우리 왕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왕권에서 해방됐습니다. 또  죄가 우리에게 왕노릇 한 데서 죄에서 해방을 시켰습니다. 사망에서 해방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모든 데서 해방을 시켜서 자유는 해 주셨지마는 실질로 우리가 새생명으로  자체가 살아나야 되겠고 하나님의 권능을 실지로 받아야 되겠고 또 실제로 승리  생활을 이루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요 실상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아니할 수 없어서 하나님이 또 피조물을 입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우리를 대신해 죽었으니까 우리가 마음에  감사하기도 하고 또 아픔도 있고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데  대해서는 잘 못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은 영원 전 예정하실 때부터 창세기 3장  l5절에 당신이 여인의 후손이 돼 가지고 구속할 것을 말씀하신 그때 선포했고  그전부터 하나님이 피조물 되어서 우리를 대속하실 일을 한 기간도 길고 크지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셔 가지고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사랑의 중량이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사랑의 희생의  중량이나 그 중량이 다 같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이 대형 대생 대화친을 하셔서 모든  기반을 다 닦아놓고 실상으로 우리를 산 생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산 생활의  승리를 실상으로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이요 그러기에 부활하신 그 주일을  우리에게 엄격히 지키라고 하신 것은 다름이 아니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모든 것을 부활시켜 주시는 이 부활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  주일을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주일이라 하는 기념이라 말은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계속 주시는 이 은혜를 우리가  계속 받는 것이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을 부활 주일로 이렇게 지키는 것은 특별히 주님이 우리 위해서  주일날 부활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주일이라 하는 날이 시작됐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기억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우리는 주일날을 언제든지 주님이 나에게  대속하신 것을 실상으로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큰 희생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주님이 그 주일날 부활케 하시는 것을 그 부활을 받아야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이 대속을 기념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따라합시다,  주일은! 모든 죽은 것이! 부활하는 날!  주일은! 모든 죽은 것이! 부활하는 날!  부활은! 믿음으로만 부활하는 것!  부활은! 믿음으로만 부활하는 것!

 예수님께서 오늘 봉독한 말씀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하는 말씀은 모든 죽은 것이 예수님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택한 자들은  믿음으로 살아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믿음 외에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믿음으로만 살아납니다.

 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믿음으로 살아난 것은 그것은  믿음으로 영원히 삽니다. 살아난 것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주일날 예수님의 죽으심을 생각하고 부활하심을 생각하고,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오늘 나를 살려 주시는 날이니 이 날에 살려 주심을 내가 받고 살려  주심을 받은 그대로 내가 산 생활을 엿새 동안에 하고, 또 주님이 그 다음 주일날  또 살려 주시는, 그 살려 주심을 받고 또 살려 주신 그대로 내가 산 생활을 하고,  요것이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요 주님을 우리가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 죽고 난 다음에 마르다를 만나 가지고, 나사로가 죽어서 벌써  나흘이 웠는데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데 이를 네가, 믿느냐?' 이러니까 '예,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죽은 지가 나흘인데 이다음에 예수님이 오실 때에 부활을 할  줄은 알지마는 지금이야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했느냐? 네가 믿기만  믿으면 과연 하나님이 이런 역사를 일으키시는구나 하는 것을 네가 눈으로 볼  터이니 너희가 보고 난 다음에야 '과연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구나. 참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와 약속한 것이 변치 않는구나.' 하는 것을 네가 알게 되리라.'  그러고 무덤에 갔습니다. 예수님이 '돌을 옮겨놔라' 이러니까 '썩어 냄새나는데 옮겨  놓을 게 뭐입니까?' 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했느냐? 네가 믿으면 과연 이렇구나 하는 영광을 하나님 영광을 볼 터인데 네가  순종치 안하면 뭐이 되느냐?' '믿으면' 하는 말은 순종이라 말입니다.

 마르다가 속히 돌을 옮겨 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까 예수님이 '나사로야'  부르시니까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수건을 풀어 줘라' 다니게  풀어주니까 다녀서 그 뒤에 잔치를 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예수님에게는 부활과 영생하는 능력이 있는 것을 하나 형식으로 보여  주신 것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우리가 이 주일날은 언제든지 이렇게 지켜야  됩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써 모든 기반을 닦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심으로 그 속에 이제 닦아놓은 기반 위에다가 새생명을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일날이 예수님의 죽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모든  죽은 것을 다 해결 지으시고 살아나게 하시는, 부활케 하시는 주일이라 하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오늘은 주님이 무엇을 나에게 부황시켜 주실 것인가?' 그것을  기다리면서 부활시켜 주실 때에 즉시 부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 영은 이미 부활을 했고 또 우리의 육이라는 마음과 몸은, 마음과 몸 이것은  우리의 육인데 이 육은 부분적으로 부활된 것도 있고 부활 아 된 것도 있습니다.

부활된 것은 부활된 것이 엿새 동안에, 부활된 그것이 엿새 동안 사는 가운데에서  걸음발도 하고 이것이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자로 엿새 동안에 자랍니다. 또  주일날 또 부활을 합니다. 또 부활한 것이 엿새 동안에 또 이것이 연단받고 이렇게  연성돼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자로 장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일날 부활을 받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우리 부활받을 것은 우리  마음이 부활받아야 되겠고, 우리 몸이 부활 받아야 되겠고, 우리 마음과 몸의 기능이  부활을 받아야 되겠고, 우리에게 있는 온갖 속성이 부활을 받아야 되겠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기쁨이나, 능력이나, 지식이나 행복이나, 소유나, 사업이나, 가정이나,  부부나, 부부의 애정이나 모든 것이 부활을 받아야 됩니다. 이 날은 모든 것이  부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과거에는 우리가 죄와 허물로 영도 죽었고, 육도 죽었고, 모든 생활도  죽었고, 소유도 죽었고 다 죽었던 자들인데 영은 단번에 살아났지마는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차차 살아납니다. 우리의 생각도 조금씩 차차 살아납니다.

 예를 들면 두 부부가 예수 믿는 도리를 알지 못하고 서로 사랑합니다. 그 사랑하는  사랑은 죽은 사랑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랑이요 죽은 기쁨이요, 죽은 행복이기  때문에 가진 것만치 마지막에는 반드시 눈물로 슬픔으로 고통으로 끝을 맺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날 부활하면 부부의 사랑이 살아납니다. 부활한 사랑을 가지게 됩니다.

부활한 정리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늙어갈수록 더 강해지고, 죽을 때는  더 강해지고, 부활했을 때는 더 강하고 하나님 심판 앞에는 더 강하고, 그러기에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에게 속한 모든 행동과 우리 자신들이 가지고 누리고 있는  모든 온갖 것 가지고 있는 온갖 것, 모든 것이 다 살아나야 합니다. 살아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으로 살아나고, 약한 것이 강함으로 살아나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움으로 살아나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살아나는데 살아나는 것은  전부 믿음으로만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지금이 그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나를 믿는 자는 다 죽은 자는 살아나고 살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그러면 주일은 모든 죽은 것을 부활시키는 날이라. '여보, 자기하고 나하고  결혼해서 결혼의 첫사랑으로 죽고 못 살 만치 사랑하지마는 성경을 보고 성경을  배워보니까 이 사랑은 죽은 사랑이라 차차 나이가 많아지면 변해지고 안 변해지면  마지막에 죽을 때에 영감 죽은 데 할마니가 제일 슬프고, 할마니 죽은 데에 영감이  제일 슬프고,' 어떤 사람은 같이 따라 죽어 그만. 죽으면 얼마 안 있다가 따라  죽어버린다 말이오.

 '이렇게 고통으로 바꿔지는데 부부의 이 결혼의 첫사랑도 이게 부활이 있단다.

이것을 살려낼 수가 있단다 살려낸 그 사랑 부활한 사랑을 가지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도 안하고, 죽지도 안하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단다 이러니까 오늘 주일날  이제 주님이 무슨 부활 주실런가 부활 받자.'  '목사님, 우리 부부의 사랑을 참 좋아하는데 이 사랑을 좀 부활시켜 주십시오.'  '예,내가 부활시켜 주는 게 아니라 주님이 부활시키는 것인데 부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요. 부활하고 싶습니까?' '녜,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믿으면 부활합니다.

믿으면 부활합니다.'  '믿으면 부활하다니? 믿는 게 뭐입니까?' '주님이 부부에게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이  있으니 부부에게 대해서 네가 요렇게 인식을 해라, 말은 이렇게 하라, 행동은 이렇게  하라, 목적은 이렇게 하라, 너희들의 희로애락은 이렇게 하라, 주님이 딱딱 시키는  것이 있기 때문에 시키는 그대로만 딱딱 하면 당장 부활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그  부부의 사랑은 영생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안 변합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주일은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죽은  것을 살려 주시는 주일이라. 주일은 죽은 것이 살아나는 주일이라. 이러니까 주일날  살아나는데 뭘로 살아나느냐? 믿음으로 살아난다.

 믿음으로 살아나는 것이 뭐이냐? 주님이 이렇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천인 만인이 말하기를 '그거야 물에 넣어도 붓지 아니 할 말이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 말씀을 인정한다. 이대로인 것을 나는  인정한다.' 인정할 때에 마음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인간 말을 따라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 말씀, 순종해서 따라가는 것이 마음으로 내가  믿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고, 그 다음에는 '네가 이렇게 이렇게 행동하라' 하는 대로  네가 행동하면 그것은 몸으로 순종하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믿고 하면 두 가지 믿음이 합하면 온전한 믿음이 되어지나니  이러면 죽은 것이 다 살아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갖 말씀을 주시는 이 말씀은 다 부활시키는  말씀이요 영생케 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믿으면 영생합니다. 이 말씀을  믿다니? 이 말씀을 참되다, 천하에 인간이 다 거짓말이라 해도 '아니다. 이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참이다.' 이 말씀을 참되다 인정할 때에 네가 마음의  믿음은 됐고,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떤 애로가 있어도 그 말씀대로 네가 몸으로  실행을 하면 몸으로 믿은 믿음이 됐기 때문에,  마음과 몸으로 믿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은 어떤 행동이든지, 어떤 성 질이든지,  어떤 사업이든지, 어떤 애정이든지, 어떤 부부든지, 어떤 가정이든지 하나님 말씀을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요 두 가지 믿음을 가진 가정을 죽일 자가 없습니다.

부부간을 깨뜨릴 자가 없습니다. 사랑을 깨뜨릴 자가 없습니다. 사업을 깨뜨릴 자가  없습니다. 요것은 영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은 모든 죽은 것을 부활시키시기 위해서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은 모든 죽은 것을 다시 살리시는 살리심을 받는 날이다.

살려 주심을 받는 방편은 믿음 하나뿐이다. 요것을 기억하시고 지키면 날마다  살아납니다. 날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있는 날을 돈벌이에, 뭐 이런 세상  사업에 이래 하지마는 알맹이를 모르고 그 껍데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껍데기요 알맹이는 뭐입니까? 알맹이는 첫째는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오. 살려놓은  것을 영생시키는 것이오.

 그러면 내 심신에 이것을, 내세 인간성을, 모든 속성을, 내 마음을, 내 성질을, 내  말을, 내 혀를, 이렇게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은 마음을 믿음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말이 살아날 때에는 그 말이 권위가 있습니다. 죽은 마음이 살아나면  분명히 본인이 살아난 걸 압니다. 그 마음은 죽일 자가 없어. 성질도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은 모든 죽은 것을 살려 주시는 날이기 때문에 주일은 죽은  것이 살아나는 날이다. 살아나는 데에는 믿음으로만 살아난다. 믿음으로 살아난 것은  그는 믿음으로 살아난 것이 믿음으로 나가면 자꾸 자라나가고 믿음으로 살아난 것이  믿음을 배반하면 자라지 못하고 파묻혀 있다.

 믿음으로 살아난 것은 예수님 부활 새 다 살아난 것으로 나지마는 예를 들면 어떤  것은 요만한 싸래기만한 것이 아름되는 나무도 되어 있고, 어떤 것은 싸래기 그대로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움이 터 있는 것도 있고 이것처럼, 살아나 가지고 많이  자란 것도 있고, 살아나기만 했지 그대로 그만 파묻혀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살아날 모든 걸 갖춰 가지고 있지마는 살아나지 못한 것들도 있고 이것이 우리의  인생인데 이것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할 일거리입니다. 이 복잡한 일거리요. 이래  가지고 살아 가지고 조금 며칠 자란 것, 살아나지 못한 것, 살아날 모든 준비는 돼  가지고 있지마는 살아나지 못한 것,  그런고로 주일은 죽은 것이 살아나는 날이라. 그러기 때문에 거룩함과 복을 받는  날이라. 모든 것이 다 바꾸어져서 다 구별해서 다 바꾸어져 새로워지는 날이라.

성화를 받는 날이라. 거룩하게 변화라고도 하고 또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활  그것이 변화요 성화요. 또 거기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갖추어 받는 것이 복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의 죽은 것 다 살릴 수 있습니다. 죽은 걸 가지고 자꾸 아까와하지 마십시오.

죽은 것을 즉시 살려야지 살리기 전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부부간에 사랑하는 그 애정도 살아날라 하면 죽어야 됩니다. 왜? 이 세상  마귀법적으로 애정 있는 그것이 하나님의 법대로 순종을 하려 하면 일단 죽는  고비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기만 하면 영원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참된 가치 있는  것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축도)   주님 감사합니다. 부활하지 못한 죽음에 속한 것들로 날마다 부강 해지며  만족해지고 점점 확대되는 이것은 조만간에 반드시 사망과 다툼으로 커지고  확대해지건마는 이 사실을 악령이 유혹시켜 저들이 깨닫지 못하고 부활할 수 있는  기회에 좋은 것이면 부활하여 영영히 좋을 죽음이 없고 다시는 쇠해짐이나  낡아짐이나 더러워짐이나 쇠해짐이나 없어짐이 없는 이 영원한 것으로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사오니 이 사실을 깨닫고 날마다 죽은 것이 살아나기를  힘쓰며 살아난 것은 세상이 죽일 수 없는 것으로 영원히 사는 참 세상이 모르는 이  부활의 생명의 도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4 부활과 생명/ 요한일서 5장 4절-9절/ 811108주후 선지자 2015.11.02
63 부활과 이단의 미혹/ 고린도전서 15장 36절-45절/ 880523월새 선지자 2015.11.02
62 부활관/ 고린도전서 15장 50절-58절/ 890312주전 선지자 2015.11.02
61 부활관/ 고린도전서 15장 52절-58절/ 890312주후 선지자 2015.11.02
60 부활관/ 요한계시록 20장 4절-6절/ 890317금야 선지자 2015.11.02
» 부활받는 매 주일/ 요한복음 11장 25절-27절/ 830403주전 선지자 2015.11.02
58 부활에 이르려/ 빌립보서 3장 11절/ 800407월새 선지자 2015.11.02
57 부활의 소망/ 이사야 1장 1 8절-20절/ 890724월새 선지자 2015.11.02
56 부활의 소망으로 산 것은 헛되지 않다/ 890623금새 선지자 2015.11.02
55 부활의 소망으로 산 것은 헛되지 않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58절/ 890723주후 선지자 2015.11.02
54 부활의 영광의 차이/ 고린도전서 15장 40절-44절/ 881130수야 선지자 2015.11.02
53 부활의 차이와 심는 일/ 고린도전서 15장 42절-44절/ 880616목새 선지자 2015.11.02
52 부활한 몸/ 고린도전서 15장 42절-44절/ 881201목새 선지자 2015.11.02
51 부흥되지 않는 이유/ 에베소서 6장 18절-19절/ 890122남전도회 선지자 2015.11.02
50 부흥의 비결/ 이사야 49장 20절-22절/ 880731주새 선지자 2015.11.02
49 분망, 아담하와의 실패원인/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8. 8. 8. 오전집회 선지자 2015.11.02
48 불건전한 신비주의/ 베드로후서 1장 17절-21절/ 850703수야 선지자 2015.11.02
47 불기둥과 구름기둥/ 출애굽기 13장 21절-22절/ 810329주후 선지자 2015.11.02
46 불로 연단한 금/ 요한계시록 3장 18절/ 871028수야 선지자 2015.11.02
45 불목은 사망 화평은 생명/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871206주후 선지자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