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건전한 신비주의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3일 수야 

 

본문 : 베드로후서 1장 17절∼21절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 이러한 소리가 들렸다 하는 이 말씀은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과 셋이 모여서 앞으로 될 일을 의논하실 그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 제자가 거기에 동참했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도 형상이 변화됐고 또 모세와 엘리야도 변화된 형상으로 나타나서 이 산  이름을 그 후에 변화산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의 시민으로서 변화된  그대로 세 분이 나타났을 때에 제자들을 보고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또  평안했던지 그 산 밑에 수천의 무리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것은 다 잊어버리고  거기에다가 장막 셋을 짓고 하나는 주님 계시고 하나는 모세, 엘리야를 모시고  그들이 거기에 살면 좋겠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모세도 엘리야도 너희에게는  필요 없고 저의 말을 들으라. 예수님에게만 복종하면 너희들의 구원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모세도 보지말고 엘리야도 보지말고 예수님만 너희 구주로  모시고 믿고 순종하면 다 구원된다.' 하는 것을 공중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큰  소리로 외쳐 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때에 참 기절한 거와 같이 되었을 때에  주님이 위로해서 다시 소생시키시고 그 변화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소리는' 하는 그 소리입니다.

 '우리가 저와 함께' 저와 함께 있을 때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말합니다.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변화산상에 있을 때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하늘에서 음성이 난 것을 들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19절에 '또 우리에게'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하는 이  말씀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그 모든 구원 역사의 뜻을 나타내실  때에 나타내시는 방편이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혹은 꿈으로 나타내실 때도  있고 또 어떤 소리로 나타내실 때도 있고 또 어떤 그 환상으로 나타내실 때도  있었고 또 어떨 때는 어떤 그 섭리를 가지고 나타내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 그말은 여기 예언이라고 말한 것은 문서 계시를  말씀합니다. 신구약 이 문서 계시를 가리켜서 예언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혹 우리나라 말로 말하면 미리 예(豫)자 말씀 언(言)자니까 미래사를 말한 것을  예언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언이라는 이 뜻은 이  피조물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그 비밀의 뜻을 인간들에게 계시해 주는 것을  나타내 주시는 것을 가리켜서 예언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모르던 과거사를 우리에게 말씀해 준 것도 예언이요 또 모르는 현재사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것도 예언이요, 또 우리가 모르는 미래사를 말씀 해 주는  것도 예언입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문서로 기록해 주신 이 신구약 66권의  말씀을 가리켜서 예언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더 확실하다. '더' 라고 말하는 것은 사도들이  변화산상에서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변화산에서 변화한 이 세 분을 만나 봤고,  또 세 분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고, 또 공중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그들에게 큰  소리로 외쳐서 그들이 참 심히 놀라 기절할만한 그런 소리로 들은 일도 있었고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그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꿈보다, 소리를 들은 것보다, 또 어떻게  그림자같이 그렇게 보이는 그 환상 말입니다. 어른어른하이 그림자같이 보이는  그런 환상으로 우리가 보는 것보다, 또 어떤 그 섭리로 가지고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보다 이 예언은 그보다 더 확실하다 하는 말입니다.

 왜 그보다 더 확실한고 하니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꿈으로 알려 주시는  꿈의 계시도 있고 또 음성의 계시도 있고, 환상의 계시도 있고, 섭리의 계시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확히 구별을 못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요한 1서 4장 1절 이하에는 말씀하시기를 영들을 다 믿지 말아라. 그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성령인지 혹은 악령인 지를 잘 구별하도록 주의를 해라  말씀을 했고, 또 마귀도 천사와 같이 그렇게 가장을 해 가지고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심령이 어두운 우리들이요 중생됐다고 해도 우리 심령은  아직까지 어리고 어두움을 다 벗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사리 판단이나 가치  평가나 그런 것들을 우리가 바로 하지 못하는 어린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실 때에 이렇게 저렇게 방편을 써서 계시해 주시는  그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도 꿈에 계시를 받아 가지고 이런 걸  봤고. 또 지금도 모두다 그런 사람들 많고, 또 요셉이도 꿈으로 계시를 받았고,  또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도 다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한상동 목사님이  출감하시고 난 다음에 소련군에게 체포돼서 살해를 당할 것인데 그 때에  하나님께서 꿈에 그걸 보여 줘서 깜짝 깨 가지고 모든 출옥 성도들이 한테  있다가 다시 그 자리를 옮겨 다른 데로 피하고 그 사람들이 잡으러 온 것을  면했다는 말 들었습니다. 또 저도 그런 일을 몇 번 봤습니다. 그러나 그런  꿈같은 것은 우리가 악령이 보여 주는 것도 있고, 하나님이 보여 주는 영몽도  있고 악령이 보여 주는 악몽도 있고, 또 우리가 늘 낮에 생각하는 것을  주사야몽으로 그런 것도 있고, 또 우리 기억력 우리 상상 부대와 같은 그 속에  담겨 있던 것이 몸이 피곤하든지 온 정신의 모든 신경들이 다 건전하지 못할  때에 그런 것들이 나타나 가지고 그런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꿈으로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꿈 계시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 준 음성 계시라 할 지라도 또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신 환상 계시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또 섭리로서  이렇게 보여 주신 섭리 계시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주관이 정확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뭉해서 위험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서  계시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이것은 우둔한 우리라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확실성이 있어서 어두운 우리들이 더듬지 안 하고 삐뚤어지지 안하고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보다 우리에게는 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기에 더 확고하고 용이 한 점을 가리켜서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 말씀보고는 믿는 것보다 꿈이 꾸이면 어떤 사람은 꿈은  성경 말씀보다 더 믿는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거 아주 잘못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또 자기가 어떤 그 이상 중에 환상을 봐서 환상에서 환상이 나에게 말을  했다든지 그런 거 또 어떤 데에 자기에게 음성이 공중에서 나타나 가지고  들려진다든지 그런 거 다 있습니다. 있으나 그런 것은 우리가 잘못 이해를 해  가지고 실수하기 쉽지만 이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좀 어두운 사람이라고  실수하지 안하고 바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서 계시의 말씀을 가리켜서  더 확실한 예언이라 한 것입니다. 더 확실하다 말은 우리에게 있어서 위험성  없고 더 확고하게 정확성 있게 우리가 알기 쉬운 그런 문서 계시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꿈은 어떤 꿈을 꿨다 할지라도 그 꿈은 꾸고 난 다음에 성경  말씀대로의 된 꿈이라고 하면 성경 말씀을 잡고 성경 말씀에 이렇게 있는 꿈이기  때문에 이 꿈을 믿는 게 아니라 이로 인해서 이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하고  성경 말씀을 잡고 믿고 꿈 그런 것은 다 부인해 버려 버려야 됩니다. 그것을  버리지 안하면 그 꿈으로 인해서 마귀의 시험에 들기가 쉽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트리기 위해서 꿈을 열 번를 딱딱 맞게 합니다. 그 악령은 우리가 모르는 이  공간을 초월해서 아는 그런 지능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내 눈으로 안 보면  모르지만 악령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데 사람을 알려 줍니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악령이 우리에게 꿈으로써 아무 것이가 온다, 꿈  꿨는데 또 옵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아, 그 이튿날 또 그런 일을  닥쳤습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내 꿈은 참 정확하고 아주 딱딱  들어맞는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다 그것을 위험하니까  고쳐야 됩니다.

 '더 확실한' 더 확실한 예언이 있기 때문에 예언을 따라서 우리가 가야 되지  그런 것을 따라 가는 것은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속에 호기심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이라 하는 그 부패성 그 죄악성을 우리가 뽑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위험성에 걸려서 마지막에 건전한 경건한 신앙을 가지지 못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을 내가 꿈에 열 번 스무 번 백 번 맞았다 할지라도  꿈은 다시 성경 가지고 재조사해서 꿈 아니라도 성경에 이렇게 때문에 나는  이렇게 믿고 이렇게 행동하겠다. 마지막에는 성경으로 돌아가 가지고 성경을  믿고 성경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해야 되지 꿈이 이렇기 때문에 복종한다, 믿는다  이렇게 나가는 사람은 그 사람은 마지막에는 마귀에게 홀키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대로 안 볼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저도 뭐 환상 가운데서 주님이 보여 주셔서 한 일도 있었고 또 꿈에 보여  가지고 또 어려움을 면한 것도 있었고. 또 공중에서 금식 기도할 때 음성으로  나타나셔 가지고 저에게 안심을 주시고 그라고 난 다음부터 그 문제가 해결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것은 어떤 때 내가 말하느냐? 이것은 이런 일이 있으나  이런 것을 믿지 마십시오, 이런 것을 의지하시지 마십시오 하는 그런 데에 내어  쓰면서 증거하지, 이러니까 이런 걸 믿으십시오 하는 것으로써 증거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믿지 안해야 됩니다. 그라면 그 사람이 나중에  가서 불건전한 신비주의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말은 뭘 말하는 것인가 하니  기독교는 객관주의인데 주관을 부인하고 객관인 하나님을 따라 가는 것이  기독교인데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말은 자기 주관을 객관으로 인정해서 자기  생각나는 것을 다 주님의 뜻이라 주님의 생각이라 해 가지고 완전히 자기가 그  객관이신 하나님이 돼 가지고 모든 것을 인도하는 그런 무서운 시험에 든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건전한 신비주의는  좋지만 불건전 한 신비주의는 못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  외에는 우리를 인도하는 인도가 없다는 이 사실을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뭐 환상 봐서 환상을 따라서 성경을 이제까지 본 것보다도 환상이  나타나서 말하면 그것을 더 믿고 꿈이 나타나면 더 믿고 또 음성이 나타나서  말하면 더 믿고 하는 그런 사람은 그 사람은 시험에 들어 있는 사람이요. 성경을  믿는 사람이 아니요, 그 사람은 곧 자기의 주관을 믿는 사람입니다. 귀에 들리는  데도 자기 주관이 거기에 들어 있고. 소리를 자기 주관이 미치지 않는 데 주관이  들어 있고, 환상에도 들어 있고, 꿈에도 들어 있고 이 계시 말씀은 문서 계시는  다 통일돼 있기 때문에 66권의 문서 계시가 뚜렷이 돼가지고 있고, 다만 이 문서  계시를 우리가 그 계시를 보고 깨달아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게 제일  정확합니다. 무슨 그런 이상스러운 것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을 믿지 말고  아예 그거 말하면 여러분들을 때에 '저 사람 좀 정상의 신앙이 아니다. 정상의  신앙의 사람이 아니다. 저거는 비정상이다.' 그렇게 병신으로 아십시오. 그라면  좋습니다. 아무리 영몽이라도 하나님이 인도 하셔도 하나님이 이 문서 계시로  우리를 인도하시지 지금은 꿈을 꾸고 그런 거 하지 않습니다. 옛날 요셉이같은  그런 사람들이 꿈꾼 것은 그 꿈이 반드시 문서 계시로 나타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문서 계시로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는 꿈을 믿는 게 아니고 문서  계시로 나타난 그 문서 계시를 우리가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고 할 때에 이 하나님의 뜻이 이건지  저건지 모르겠다 이랄 때에 자기에게 마음이 으씩으씩 하면 마음 이  짜릿짜릿하면, 살이 떨리고 마음이 쩌릿쩌릿 으씩으씩하면 아. 이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이것이 뜻이라 가르쳐 주는가 보다 이래 가지고 막 기도하기를 '주님이여  내가 하나님 뜻이 이건지 저건지 내가 똑똑히 모르겠으니까 이게 뜻이면 이리  갈라 할 때에 내 마음이 쩌릿쩌릿하고 으씩으씩 하도록 해 주시고 또 이게  뜻이면 이렇게 해 주시고 그래 주십시오.' 그래 가지고 그것을 자기 인도하는  인도의 표준을 삼는 그런 위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자기가 어짠지 그 마음에 기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 기쁜 걸 가지고  판단의 그렇게 지침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 주관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다 몹쓸 것입니다.

 또, 어떤 유력한 그런 권사인데 그 분에게 내가 물었습니다. 그 분이 뭐  선지자라고 말하고 자기 자녀들이 다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고 이렇게 하는데 그 분이 ○○○씨에게 한 번 미혹을 받아 가지고 말하는  것을 내가 그것을 나무래고 고쳐줬고, 또 여기 ○○무슨 교파한테서 미혹 받는  것도 말해줬는데 아마 그 분이 좀 불건전한 것, 같아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  권사님은 하나님의 뜻인가 뜻 아닌가 하는 것을 무얼로 짐작합니까?' 이라니까  '목사님이 말씀하시니 제가 말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뉘 집에 가 가지고 이 집에  내가 온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뜻 아닌지 그걸 내가 모르는데 하나님의 뜻이면  그 날밤 잠잘 때에 잘 자고 하나님의 뜻이 조끔 어겨진 것이면 그 날밤에 거기  잘 때에는 그 소변을 옷에다 싸게 된다고 소변을 싸면 다 이거 하나님이 오지  말라 하는데 왔는가 보다 이거 틀렸다 이렇게 짐작하고. 또 어떨 때는 자기가  대변을 옷에다가 용변하는 일이 있다고 그러면 그때 이거는 여기에 온 것은 큰  화를 받을 일이기 때문에 빨리 떠나야 되겠다. 자기는 대변과 소변 가지고  하나님 뜻을 잠작한다고 그렇게 말합디다. 말하는데 그 아들도 훌륭한 집사요  딸도 훌륭한 집사인데 그래도 그 말을 은연중 그래서 어머니의 오줌 싸고 똥  싸는 그거 가지고 하나님 뜻을 짐작하는 그런 것으로 그래 구별하는 그런 데  쭐쭐 딿고 있기도 했습니다. 별별 일이 있습니다. 대개 남반보다 여자들이  많은데 자기 무엇이든지 앞길을 분별하고 또 판단하고 또 선택하고 하는 그 모든  인도 받는 것을 신구약 성경 말씀 가지고 받지 안하고 말씀 외에 딴것으로 받는  그런 사람들은 그거 다 몹쓸 사람이요 그것은 가정을 망칩니다. 망칩니다. 꼭  망칩니다. 뭐 그래 가지고 그만 어떻게 안 되면 벌 받는다고 화 받는다고 막  외치고 이래 놓으니까 그 가족들이 꼼짝 못하고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그만 대선지자를 모셔 가지고 가정을 망치는 그런 일 있습니다. 그 가정도  그리 된 것을 여기서 집사로 있다가서 환도할 때 올라갔습니다. 이북에 있는  분인데 그때에 여기서 그래 가지고 날 만나고 난 다음에 자기 어머니의 권위가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만 아주 신인 줄 알았는데 그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 말 들으면 너거가 죽는다 이래 가지고 아주 부인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벌써 그 사람이 꿈을 얘기하고 성경에 이렇고 이런 성경에  있는데, 여기 더 확실한 예언이라 말은 신구약 성경을 말합니다. 더 확실한  신구약 성경 말씀이 있는데 성경 말씀의 인도를 받아서 성경에 이렇고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이래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하지 안하고 성경 말씀 냅두고 내가  꿈을 꿨는데 이렇다, 내가 환상을 보니까 이렇다, 또 내가 소리를 들으니까  이렇다. 내 주관의 감정이 이렇다 이런 것을 말해, 가지고 사람들 낚는 순전히  그게 마귀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요 오늘 저녁시 요거 확실히 작정하십시오.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자꾸 늘 가르치는 게 아니고 한번 들으면 이거 언제  돌아올란지 모릅니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요거는 비유입니다.

이 문서 계시인 그 말씀은 비유컨대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다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비유는 그 실상의 정확성이 오십프로가 있다고 하면 뭐이든지  비유로 말하면 비유 말한 그것은 그 실상과는 그 실체와는 아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좀 비슷하지요. 이러니까 비유보다 그 실상이라고 하는 것은  백프로 확실한 것이고 비유는 한 오십 프로 확실하기가 어려운 것이 그것이  비유인 것입니다.

 여기에 비유로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 같다, 그 어두운 것은 이 세상에 인간이  타락후에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타락 후의 하나님과 끊어져 가지고 된 모든  전체를 가리켜서 그것을 어두움이라 그것을 어두움이라고도 말하고 그것을  죄악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모든 사망의 것들이라고, 말하고 그걸 삐뚤어진  것들이라고도 말하고 다 같은 말입니다. 그 어두움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연이  끊어져 있는 저주와 사망 아래 있는 그 모든 것을 가리켜서 어두움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두움의 권세도 있고 어두움의 세력도 있고, 어두움의  지식도 있고, 어두움의 성공도 있고 어두움의 행복도 있고, 어두움의 영광도  있고 어두움의 쾌락도 있고, 어두움에 속한 것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는. 세상을 가리켜서 악한 자 안에 있다 말했고, 세상을 가리켜서 어두운  세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말미암아 된 그 어두움에 속한 것, 어두움에  속한 그 모든 그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죄악과 사망의 이 모든 그런 것을 다  합해서 어두움이라 말했는데 그 어두움이 어두움에 비취는 등불이라. 그러면  등불이라고 하는 것은 그 빛은 작아도 작으면 빛이 작고 어두움이 크면 그 작은  빛이 큰 어두움에게 삼켜져서 절단이 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어두움이  클수록 적은 빛이 크게 나타나고, 또 그 어두움이 짙어서 어두움이 짙어서 강한  어두움일수록 그 빛은 더 밝게 세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이  세계에 가득 찬 그 어두움의 단합이라 할지라도 여기에 성냥개비 하나의 불 그려  놔서 불똥 빨갛게 있는 거 그것을 세계가 전부 어두움이라 할지라도 고 반짝  하는 불라 그것을 멸하지 못하고 그럴수록 세력이 더 강해지지 어두울수록 빛은  강하게 넓게 비취는 것이지 어두움에 멸해지는 것 아닌 것입니다.

 이래서,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움에 비취는 등불 같으니' 그 맡은 무엇을  가리켜 말씀하신고 하니 이 어두움에 빛이 나타나면 빛은 어두움을 완전히  멸하고 빛이 나타나서 빛이 활동하는 것만치 어두움은 소멸되는 거와 같이 이  예언의 말씀 요 말씀을 믿고 실행하면, 요 예언의 말씀을 믿고 실행하면 이  인간이 타락해서 하나님을 떨어져 가지고 이루어진 이 세상에 인간을 죽이는  어떤 그 죄악과 악령 악성으로 된 어떤 어두움의 어떤 죄악의 어떤 삐뚤은 어떤  그 강한 세력이라도 이 예언의 말씀을 믿고 실행하는 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다  녹아지고 만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어두움에 빛이 나타나면 그 빛은 어두움을 다 반드시 승리하고 어두움은  빛에게 다 소멸을 당하는 이것보다 이 예언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이 모든 어두움의 세력이 깨지는 것은 어두움이 불빛 앞에 깨지는 것  그것보다도 백프로 더 더 확고하다 하는 그런 것을 여기에 나타내서 어두움에  비취는 등불 같다 그렇게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요것을 잘 깨달아야 됩니다.

 요것은 비유입니다. 어두움에 비취는 등불 같다. 같다는 말은 비유라 그  말이오. 비유라 그말인데 비유는 정확성이 실체에 비하면 오십프로도 그 정확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인데 실상은 백프로가 인정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어두움이 빛 앞에서 깨어지는 이것보다 이 예언의 말씀을 믿고 고대로만 순종할  때에 이 모든 악의 세력, 죄악의 세력. 사망의 세력, 모든 불의의 세력이 깨지는  것은 그런 것보다 형언할 수 없이 백프로 이는 정확하다 하는 그런 것을 여기에  나타내서 어두움에 비취는 등불 같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요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말씀에도 내나 요와 같은 뜻을  나타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어두움에 비취는 등불 같으니' 이렇기 때문에  이 신구약 성경 문서 계시의 말씀은 믿고 행하는 자에게는 그 앞에 모든  사망이나 불행이나 저주나 죄나 삐뚤어진 것이나 모든 파괴되는 것이나  불행스러운 이거도 이게 전부다 어두움에 속한 것 아닙니까? 이 어두움을 백전  백승,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소멸하는 그 능력을 가진 이 문서 계시의 말씀이다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어두움에 비취는 등불 같으니'  하는 요 뜻을, 요 비유로 말씀한 요 뜻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영감이 아니면 믿어지지 안하고 자꾸 하나님 말씀을 과장하면 벌이  있습니다. 계시록에 이 말씀에 더하는 자는 이 말씀에 기록한 형벌에 더  추가된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성경 말씀을 자기가 거기에 있는 것 이상으로  사람에게 무슨 그 뭐 인기나 또 뭣을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 이상 말하는  그것은 어리석은 자요 미친 자입니다. 본 정신 가진 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뭣 때문에 자기 심판에서 멸망 받을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같으니 날이 새어' 이것도 비유입니다. '날이 새어' 날이 샌다는 말은 날이  새면 밤이 있다가서 날이 새게 되면 먼동이 떡 트고 날이 새기 시작하면 이  어두움의 세력이라 하는 것은 자꾸 물러가서 온 세계에 어두운 그 세력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여기에 '날이 새어'하는 그 말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예수 그리스도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다시 말하면 이  하나님의 그 구속의 역사, 이 구속의 역사가 가까이 오게 된다 구속의 역사가  가까이 오게 된다. 너 한 사람이 이 문서 계시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믿고 순종하면 네 앞에 있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이 다 전멸되어 다  물러가게 된다.

 이러니까, 다니엘이 그가 이 문서 계시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기도하는 것을  요동치 안할 때에 전국이 달라 들어서 다니엘을 죽일라고 그렇게 한 그 어두움의  세력이지만 그 어두움의 세력은 다니엘 한 사람이 확실히 믿고 순종하는 그  불빛에, 고거는 불과 같기 때문에 고 세력에게 그 모든 것은 다 소멸을  당했습니다. 그 이튿날 다 소멸 당했습니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지금도 꼭같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너 한 사람이 이렇게 하면 그 빛의 역사가 어떻게 하는 고 하니  날이 새는 거와 같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써 우리가 요번에  대창골도 한 육백 여명이 병이 낫지 안했습니다.? 병 나은 종류가 뭐 백 이십 몇  종류가 병이 나았는데 그런 것도 그것이 뭐이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 하는 것은 그 운동이라 말이오. 그 운동이 낫아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운동이 낫아 줬다고 했는데. 그 운동 예수의 피의 운동 사죄의 운동, 칭의의  운동. 화친의 운동, 성령의 운동. 진리의 운동,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과 또 죽으신 것과 다시 삼 일만에 살아나신 예수님의 낮아지심, 예수님의  죽으심, 예수님의 부활하심. 그 부활하심으로 보내신 성령과 진리의 이 구속  운동이라 말이오. 구속 운동이 뭐입니까? 하나님 목적 아닙니까? 하나님이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했고 목적을 위해서 모든 걸 창조했고 목적을  위해서 보존하고 섭리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운동이라  말이오.

 이 구속 운동이 구속의 날이 새며' 이 구속인데 네 한 사람이 믿고 순종하면 이  구속 운동이 네게 날이 새는 것같이 차차 차차 가까이 오게 된다. 가까이 오게  된다. 날이 샌다. 날이 샌다. 가까이 오게 된다. 그러면 가까이 오게 되면 이  모든 운동이 네 몸 안에서 작용하는 게 아니라 네 주위 환경에 너 한 사람이  그렇게 그 신앙생활을 하면 전부가 바꿔지고 사회가 달라지고 국가가 달라지고  세계가 달라지고 이 모든 이 광명의 운동이 이렇게 폭 넓게 와 가지고 비취게  된다. 너 한 사람이 그렇게 되면 그 직장에 몇십 명이 있든지 말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그 광명 역사가 피의 역사가 오게 된다. 그러면 차차차 죄악의 역사가  물러가고 이 구속의 역사 가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샛별이라 말은 새벽별을  말합니다. 새벽별 날이 먼동이 푹 트고 나면 먼동이 트면 날이 샐라고 한 밤중은  어두운 것이 차차 차차 어두워지고 어두워지다가 최고로 어두워지는 것을  가리켜서 한밤중이라 하고 한밤중 최고의 한밤중 어두움이 고개가 넘어 가면 그  다음부터는 차차 차차 어두움이 사라지고 날이 새게 됩니다. 날이 새게 되면  날이 새게 되면 날이 다 새어 갈 때에 새벽별이라고, 여기 샛별이라 말은  새벽별이라 말입니다. 새벽별이 나옵니다. 새벽별이 나오면 한 고개를 넘어서  날이 새게 되면 그 날이 새게 되면 새벽별이 그때 떠오릅니다. 새벽별이  떠오르면 그 새벽별은 어떤 별인고 하니 그 별은 태양을 지금 맞이해서 태양  앞잡이로 오는 것입니다. 새벽별이 와서 지나가는데 따라서 그 뒤를 따라서  태양이 그 뒤를 따라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날이 새어' 날이 샌다는 말은 이것은 그라면 자기 심령 속에  샌다 말입니까, 자기가 있는 그 세계와 사회와 주위와 환경에 하나님의 이 생명  광명 역사가 지금 이렇게 비추어 가까이 오는 것을 말합니까, 자기 안에 있는 걸  말합니까, 자기 밖에 있는 모든 분위기, 환경, 사회, 주위, 이 세계 그런 것에게  이 진리의 생명 역사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까? 안에서 말합니까. 그  환경에 그 모든 배경에 대해서 하는 말입니까? 배경 광명을 말합니까, 자기 주관  안에 있는 주관 광명을 말합니까, 뭘 말합니까? 배경 광명을 말합니다. 주관  광명 말하는 게 아니고 배경 광명이오. 그러면 나 한 사람이 그렇게 믿으면 안  믿는 동리 가 이상하게 물씬물씬해지고 또 안 믿는 사회가 물씬물씬해지고, 내가  세게 믿으면 그 모든 불교 세력들이 차차 차차 그것이 흐려지고 자꾸 먹어지고  자꾸 날이 샌다 말은 자기 그 몸 밖에 그 모든 배경 말이오. 배경이면 그 주위  환경 말 아닙니까? 그 환경 그런 것에게 이 빛이 옵니다.

 빛이 오고.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새벽별이 떠오른다  말은 네 속에 새벽별은 뭣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성신의 감화를  말합니다. 영감을 말합니다. 이제 영감이 성신의 감동이 네 속에 오르게 된다.

성신의 감동이 오는데 그 성신의 감동이 오고 난 다음에는 주님을 네가 만나게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영감 지나고 나면 그리스도의 영감을  만납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샛별이 너의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여기 주의라는 말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거기에 전적으로 주력한다  그말입니다. 여기 주의한다는 말은 거기에다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전부 너 있는 전부를 막 거기에다가 주력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이것은 뭐인데? 더 확실한  예언이 있으니 예언에다가 네가 주력하는 것이 가하다.

 주력해서 너 하나가 믿으면 마구 네 배경이 환하게 날이 새는 것과 같이  밝아지게 된다. 네 배경이 배경이 하나님의 구속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다니엘이 그와 같이 믿으니까 다니엘 죽일라고 온 국민들이 그 총리들이 그렇게  해 가지고 관민이 왕까지 전부가 다 단합해 가지고 그와 같이 한 그것이 뭐이냐  하면 그게 지금 복음 운동을 말살할라고 하는 것이지만 말살하는 게 아니고 그게  벌써 빛이 와 가지고 지금 어두움을 멸하는 운동이라 말이오. 멸하는 운동.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어두움이 멸해지지 안했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환경에 이 빛이 역사하고. 네 심령속에는 성신의 감화가 네게  와 가지고 네가 성신의 감화가 오면 우리 마음이 변화됩니다. 우리 마음이  달라집니다. 성신의 감화 없이 그 사람이 선한 마음 가진 사람 없습니다. 뭐  아무리 성신의 감화 받지 안한 사람이 도덕가고 뭐 한다해도 딱 말하는 것 보면  그 속에 전부 방편에도 다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자기 중심의 생활이 저급이 있고, 저급이 있고 고급이 있고 무식한 것이 있고  아주 지능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아주 거기에서 무슨 자기가 사상가라,  도덕가라, 박애가라 해 가지고 저렇게 해서 노벨상이 있지만 그 사람이 성신의  감화가 아니고 한 것은 나중에는 보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인 그 방편을 고등  술책을 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걸 몰라서 다 그와 같이 지금 칭찬하고 이러나  알고 보면 그것이 가장 고등적인 그런 자기 중심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 창설자들이 다 그런 데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자들의 생활은 다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를 위하는 것 그 외에는, 주를  위하는 거는 끝까지 내가 주를 위함으로 복 받았다는 것이 아니고 주를 위하는  그것이 주를 위함으로 나는 없어지고 주를 위하는 것으로 끝이지 주를 위해서 그  분에게 내게 무엇이 오는 것을 바라는 그런 것이 아닌 것이 깊은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이래서,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더 확실한 예언이 있으니까  이 예언에 너 전심 전력을 거기 다가 다 기울여서 여기에다가 주력하는 것이  가하니라. 뭣 때문에? 그러면 그것은 주력하면 그게 뭐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두움에 비취는 등불 같다. 모든 악의 세력을 다 소멸시키는 능력이 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또 다시 말하면 그러면 네 배경 전체가 날이 새는 거와 같이  환하게 빛으로 이와 같이 전부 어두움의 세력이 빛의 세력에게 밀려가는 이거 네  모든 배경 주위가 다 빛으로 화해진다. 그뿐 아니라 네 속에 그러면 밖에만 좋은  게 아니고 네 대내에는 샛별이 새벽별이 떠오른다. 성신의 감화가 네 속에 와  가지고 네 마음이 성신의 감화로서 하나님의 마음같이 네가 되어진다. 하나님의  마음같이 되어진다. 이러니까 성신의 감화가 오니까 하나님 좋아하는 거 내가  좋아하고, 하나님 싫어하는 거 내가 싫어하고, 하나님 미워하는 거 내가  미워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거 내가 사랑하고, 하나님이 귀하다 평가하는 거  내가 귀하다 평가하고, 천하가 귀하다 해도 하나님이 그 가치 없는 거다 할 때에  가치 없는 걸로 평가되는 것이니까 내 마음이 하나님 마음화되는 것이 그게  성신의 감화인 것입니다. 이 성신의 감화가 샛별이 너희에게 떠오른다. 그라고  나면 너는 예수의 몸이 되고 예수는 너의 머리돼 가지고 이와 같이 이제  정상적인 교회가 돼진다 하는 것입니다.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왜 주의하는 것이 가하냐? 20절에, '먼저 알 것은'  먼저 너희들이 알아야 될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경의 모든 예언이라 말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모든 예언은, 하나님의 이 나타내신 진리는,  하나님의 뜻은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지식은,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왜 주의해야 되느냐? 사사로이 풀어 서는 안 되기 때문에  주의하는 것입니다. 사사로이 푼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사로이 푼다는 말은  인간 주관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걸 말합니다. 인간 주관이 성경을 해석하는  거, 인간 주관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가리켜서 사사로이 푼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해석이 어떤 게 해석입니까? 해석이 이 성경 말씀에 이 뜻은 이런  것이라 저런 것이라 하는 것이 해석입니까? 네. 성경 말씀의 해석 중에 제일  일호 해석이 뭐입니까? 일호 해석은 성경 말씀은 신구약 성경 말씀인데 자기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요 현실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고 현실에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자기가 깨달은 그것이 성경 해석입니다. 그것이 이렇게 해야  되느냐, 저렇게 해야 되느냐? 이렇게 해야 되고 저렇게 해야 되는 것을 깨달은  것이 성경 해석이요 그것이 자기에게 대한 성경 해석이요, 그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그것이 제 삼자에게 가르쳐 주는 성경 해석입니다.

일 호 해석이 성경을 자기가 많은 성경이 있지만 이 성구를 지킬까 저 성구를  지킬까 모르니까 자기가 자기 현실에 지킬 성구를 아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자기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깨닫는 해석이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 성경을 가르친 해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해석은. 해석의 일호는  이 성경을 어떻게 네가 순종하겠느냐, 이 성경을 어떻게 순종하겠느냐? 이  성구를 순종할래 저 성구를 순종할래 이 66권의 많은 성구가 있으니까 어떻게  순종할 것을 선택하는 그것이 해석입니다. 해석. 푸는 것. 그것이 해석이요.

 그러면 어떻게 순종할 그게 해석이요. 요 해석을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 푼다  말을 가리켜서 이것을 무슨 성경 주석하는 것만 푸는 것으로 이렇게 알면 안  됩니다. 여기 외나 진짜 푸는 것은 성경은 네가 가지고 있지만 네 현실에는 어느  성구를 네가 복종해야 되고, 해석을 어느 성구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으로, 많은  성구 가운데 어느 성구가 네 지금 이 현실에는 네게 해당되느냐 그것이 자기에게  대해서 성경을 푸는 것입니다. 자기가 성경보고 이렇게 저렇게 행하는 그것이  성경 푸는 것이요. 자기가 성경 풀이하는 행동이라 말이오. 성경 풀이. 그 성경  푸는 대로 자기가 갈 것 아닙니까?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푼다는 말을 이것을 무슨 주석하는 것만 이래 생각하고  설교하는 것만 이렇게 생각하고, 설교하는 그것은 자기에게는 자기 복음이  아니요 자기 깨닫는 게 아니오. 이 성경을 푸는 것은 자기가 어떻게 행해야 될  것을 성경보고 어떻게 행해야 될 것을 그것을 바로 깨달아 가지는 그것이 성경  바로 풀이 하는 것이요, 바로 풀이하는 것. 그러기 때문에 그게 자기에게 대한  성경 해석입니다.

 이런데.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네가 신구약 성경 말씀은 같은 말씀이지만  네 주관대로, 현실을 당했는데 네 맘때로 이 현실에서는 이 성구대로 해야 된다,  이 현실에는 저 성구대로 한다. 해야 된다, 그 성구를 네가 그 현실에서 이래야  되느냐 저래야 되느냐 하는 성구 선택을 네 주관대로 선택하는 것은 그것은  사사로이 풀이라. 사사로가 해석하는 것이라. 그거는 다 안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주의해야 된다. 왜? 이 성경을 바로 깨달을라고 깨닫기를  어떻게 깨달을라고? 네 현실에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을 바로 깨닫는 그게 첫째  바로 깨닫는 것이오. 그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그것은 제  삼자에게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되는 걸  가르치는 것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오. 가르치는 거는  성경은 이렇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네가 어떻게 행해 것은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너희에게 기름 부음이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나니 그대로 거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만 네가 어떻게 행할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묻지 말고  배우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가르쳐 줄 수가 없다 그말입니다. 그것이 제일  일호의 성경 풀이입니다.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왜 풀 것이 아니냐? 왜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고  밑에 해석이 있습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신구약 성경 말씀은 언제든지,  밤이든지 낮이든지, 큰 일을 닥칠 때든지 작은 일을 닥칠 때든지, 평안할 때든지  기쁠 때든지. 병들었을 때든지 건강할 때든지. 형통할 때든지 불통할 때든지  하는 그것을 다 포함해서 언제든지라 말한 것이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하는 것은 그 장소와 시간을 다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 주관으로 성경을 이렇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어느 사람이 성경  기록했다 할지라도 그거는 사람의 주관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그런고로 이 모든  성경 말씀은 성신의 감동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가지고 말한 것이기  때문에 네가 이 성경을 깨닫는 데도 네 주관으로 할 거 아니라 네가 성신의  감동을 받아야 되고 이 성신의 감동을 받았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성신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받아 가지고 기록한 것이니까 너도 받아  가지고 행해야 된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그 주의하지 안하면 안 된다. 아따 참 깨닫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고 대단히 힘이 많이 드네. 거기에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서  주의한다 하는 것은, 주의한다 말은 거기 주력한다는 말이요, 주시한다는  말이오. 우리가 조심한다는 그런 말로 나가면 틀립니다. 조심 아닙니다. 여기에  주의하라 말은 네 전심 전력을 이 계시 말씀에게 다 기울이라 그말입니다.

 왜 기울이느냐? 이렇게 기울이지 안하면 기울이지 안하면 성신의 감동 못  받는다. 성신의 감동 못 받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요래라 조래라 또박  또박시키는 거 고거 듣지 못하고 네가 네대로 행하기 쉬우니까 요와 같이  또박또박 들어서 행하면 어두움에 비치는 빛이 되기 때문에 모든 어두움을  말살시키는 것이 되어지고 네가 만일 요 성경 가지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하지 안하고 네 사사로이 네 주관대로 하게 되면 어두움이 북돋워 주기  때문에 너는 어두움의 제일 일선에 나서 가지고 어두움의 앞잡이가 돼 가지고  이름은 하나의 성도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성경 말씀대로 산다 하지만 실은 네  행동은 어두움에 비춰 가지고 그 악령의 역사만 일어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알 것은 경에 있는 모든 말씀을 사사로이 풀지 않도록 조심해라. 이 말씀은  다 성신의 감동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말한 것이다.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말씀의 총 결론을 하면 뭐인고 하니 우리에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고 하나님의 인도를 알라고 하면 우리는 주의해야, 심신을 다  기울여서 그 뜻을 찾을라고 애를 써서, 그라고 나면 무엇되느냐? 그라면 네 있는  걸 다 기울여서 하나님 뜻을 바로 찾을라고 애를 쓰면 성신의 감동 받는  사람된다. 네가 성신의 감화를 받게 된다. 성신의 감화 받으면 다 아니다.

성신의 감화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요래라 조래라 하나 하나 너희에게 지도하는  고 지도를 네가 들을 수 있다. 귀 있는 자는 다 귀가 있어 들을 수가 있다.

그러면 고라면 고래 가지고 이 신구약 성경을 그대로 행할 때에 그대로 믿고  행할 때에, 그러면 이렇게 찾기 어렵고 힘드는데 그 뭐 그렇게 바로 찾아 가지고  바로 믿고 행하면 효력이 뭐인데 그렇게 애쓸 게 뭐인가? 효력이 뭐입니까?  그렇게 바로 찾아서 바로 믿고 행하면 효력이 무슨 효력이 있는고 하니 모든  어두움을 빛으로 소멸시키는 거와 마찬가지로 모든 어두운데 모든 어두운 데  이렇게 찾은 것은 빛이 된다. 이렇게 찾은 빛 앞에는 어두움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상대하지를 못하게 된다. 살아나지를 못하게 된다. 다 소멸하게 된다.

그러면 뭐 어찌 되는데? 그러니까 어떻게 되느냐 하면 날이 새게 된다. 날이  새게 되는 이 광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라면 어찌 되는데? 그라면 네  속에 샛별이 떠오른다. 샛별이라니? 예수님 앞잡이로서 너희에게 오는 샛별이  너희에게 떠오르게 된다. 성신의 감동이 너희에게 오게 된다. 그러면 주님  만나게 된다. 그러면 이제 모든 악령과 죄와 사망을 다 멸하고, 예수님께서  이것을 멸하고 승리하고 구출한 것처럼 이와 같이 되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밤 말씀은 말하면 우리에게 참 더 확고한 성경 말씀이 와  있기 때문에 이 말씀보다 더 뭐 모든 것보다 이 말씀이 더 우리에게는 확고하고  더 튼튼히 의심성 없이 위험성 없이 확고하게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이 성경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이런 해고한 말씀이 우리에게 확실한 말씀이  왔는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신의 감동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하나하나 또박또박 가르친 그대로 기록해 준 것이기  때문에 이 성경을 받아 가지고 믿는 사람들도 이렇게 사사로운 요것을. 자기  사사라 말은 자기 주관이라 말입니다. 자기 주관을 다, 자기 주관, 인간 주관 이  인간 전체를 다 합해서 사사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로 하지 말고 네가 전력을  기울이면 영감 받고 하나님께서 요거라 조거라. 요 현실에서는 이렇게 해야된다,  요거해야 된다. 요 성구를 행해라 요 현실에는 저 성구를 해라.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대로 해야 되는 것이니까 성경의 이 보배성을 우리가  믿어야 하고, 또 성경을 실행할 때에 그 권위성을 믿어야 하고, 또 거기에  대해서 이 권위성을 믿고 보배성을 믿고 권위성을 믿고 네가 거기다가 주력을 해  가지고 주의해 가지고 이렇게 하게 되면 날이 새게 된다. 날이 새게 된다 샛별이  떠오르게 된다. 그러면 어두움은 이 빛 속에 다 박멸을 당하고 빛이 서게 된다  그것을 가리 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어짜든지 자기가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무식해도 좋습니다. 어짜든지 아는 대로 성경 말씀을 아는  대로 그걸 활용해 가지고 옳게 바르게 할라고 애쓰는 고 마음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말했습니까? 고 마음이 뭐이지요? 그게 선한 양심입니다. 아무리  무식해도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 아는 대로의 못 읽어도 들은 대로라도 성경  지식을 가지고 요대로 어짜든지 옳게 바르게 요 말씀대로 바로 할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이 와 가지고 붙들고  역사하게 됩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이 말씀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에게 이용을 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박박사 말이오. 뭐 백 박사가 백 가지 박사, 백 박사가 예를  들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나는 이런 지식이니까 성경 말씀을 내가 보면 저  무식한 것 보다 나아야지 그 교만한 자에게는 그 성경을 외어도 한 성구도 네가  이 성구 지키면 산다, 이거 지키지 안하면 망한다 하는 한 성구도 제 생명으로써  알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그거 다 교만한 자를 넘어트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 앞에서는 겸손히 '이 말씀대로 내가 살겠다. 말씀이  나를 인도해 줄 터인데 주여 나를 바로 인도해 주옵소서.' 그렇게는 걸 다  기울여서 겸손히 주 앞에 간구하는 자에게는 무식해도 좋습니다. 다 그 사람은  다 찾아가기 때문에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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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건전한 신비주의/ 베드로후서 1장 17절-21절/ 850703수야 선지자 2015.11.02
47 불기둥과 구름기둥/ 출애굽기 13장 21절-22절/ 810329주후 선지자 2015.11.02
46 불로 연단한 금/ 요한계시록 3장 18절/ 871028수야 선지자 2015.11.02
45 불목은 사망 화평은 생명/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871206주후 선지자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