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목은 사망 화평은 생명

 

 1987. 12. 6. 주일오후

 

본문: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우리는 평생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힘쓸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이 없이   회개의 온전함을 이루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회개는 세상 떠나는 날까지 회개할 것이 계속 발견되는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회개할 것이 깨달아지지 못하는 것은 복이 적고 회개하고 나면 또  회개할 것이 또 생각나고 또 회개하고 나면 회개할 것이 생각나서 평생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까지 회개하는 일을 계속해서 회개가 점점 온전함에  도달해 가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그러면 이 회개에 맺어지는 열매는 화평입니다. 회개가 되는 것만치 화평은  맺어집니다. 화평은 화목이요 화친인데 사람으로 더불어 화친하고 화목하는  것이니 이것도 우리는 죽는 날까지 힘써 점점 범위 넓게 깊게 화목의 온전함에  나아가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이 화목이 이루어진 것만치 거게는 거룩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거룩도 우리는  세상 뜨는 날까지 거룩에 힘써서 점점 거룩에 온전함을 이루어 가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 거룩이 이루어지면 거룩 이루어진 것만치 우리는 하나님을 내 전부를 다해서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할 수 있는 이 생활에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도 세상에 있는 한 끝까지 쉬지 말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을 거룩에서 찾고,  자기가 아직까지 거룩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것을 깨달아서 거룩에서  찾고, 거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는 이 화평이  모자라서 그런 것인 것을 알고 화평에서 찾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자기의 회개의 부족에서 찾도록 그렇게 이 일은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계속 힘써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로 26절에는 보면 거게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조심해야 될  것을 거게 말씀해 놨습니다. 구약에는 살인하면 심판받는다 이랬지마는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또 멸시하고 욕하고 하는 그런 것을 다  “심판받는다, 공회에 잡힌다, 지옥불에 들어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람에게 대해서 아주 조심해서 거리낄 것이 없도록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하나님 앞에 무슨 예물이든지 예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혹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대해서 무슨 원망하는 그런 것이 생각이 나거든 그 예물을 두고  가 가지고 먼저 화친하고 그 뒤에 예물을 드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그 매인 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람으로 더불어 맺혀 있는 것, 사람으로 더불어 맺혀 있는 것을 우리가 세상에서  풀 수 있지, 세상에서 풀지 못하면 다른 데 가서는 풀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풀지 못한 그런 것은 무궁세계 가서는 다시 풀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세상에서 매인 것은, 서로 맺혀 있는 것은 언제든지 그게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맺혀진 것만치 자기는 자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 50절에는 보면 “너희가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말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야 이 화목이 되어지는 것이지 참 화목이 자기 부인하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녹아져야 되고 자기가 없어져야 화목이 되지  자기가 녹아지지 않고 없어지기 전에는 화목이 안 된다, 화목이라는 것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야 화목이 되어지지 그렇지 안하면 화목될 수 없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그러기에 화목이라는 것은 자기가 없어지는 거, 자기가 희생하는 것, 자기가  녹아지는 것, 자기가 없어지는 것만치 그 양이 화목이 되어지지 자기가 없어지지  않고는 화목이 안 됩니다.

이래서 쉬운 말 같지만, 언제 제가 한상동 목사님이 부민교회 집회할 때에 제가  한번 한 시간 갔었는데 가니까 그날밤에 말씀하시기를 화목에 대해서 ‘감을  서로 나눠 먹는데 감 큰 쪼가리는 다른 사람 주고 작은 쪽은 자기 먹는 그것이  바로 화목을 일으키는 것이라’ 그렇게 간단하게 말씀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자기가, 언제든지 인격으로서도 자기가 손해봐야 되고, 권위로도 손해봐야 되고,  위신으로도 손해봐야 되고, 명예로도 손해봐야 되고, 물질로도 손해봐야 되고,  자존심으로도 손해봐야 되고, 어쨌든지 자기가 이 화평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보다 귀하기 때문에 손해봐도 화평을 가지려고 해야 화평이 되지 그리 안 하면  화평이 안 된다 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가지신 그 생명을 다 돌아보지 안하고 화평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와 하나님과 원수되고 인간과 인간끼리 원수된 이 원수된 이것을  다 없애서 화목시키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것은 세 가지 일로써 죽으셨는데 그중에 하나는 화목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이 화목이라는 것은 생명과 주님은 바꾸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화목을 가지려고 하는 데에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닙니다.

제가 오늘 어떤 사람에게 모임이 있었다는 얘기를 간단하게 들었는데, 나는 처음  들은 말인데 들었는데, 말을 내가 한참 듣고 난 다음에 거기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 내 속으로 참 마음에 기쁘고 양식이 됐습니다.

왜? 모인 그 사람들이 전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평안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나 정신이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되고 녹아지는 그런 언행심사의  모임이었다는 것을 제가 생각하고 참 복된 사람들이다 그렇게 속으로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데도 보면 어짜든지 자기를 높이고 올리고 다른 사람을  까뭉케고 자기를 좀 많이 선전하고 다른 사람을 덮어 가루려고 하는 거게는  사망입니다. 거게는 생명도 없고 앞으로 미래에 희망이라 하는 건 없습니다.

앞으로 남은 것은 다 사망뿐인 것입니다.

이러기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네가 네 속에 네 마음 속에 아예 네가  녹아질 요량하고, 네가 어떻게 손해가 되든지, 어떻게 천하게 되든지, 어떻게  매장이 되든지, 어떻게 네가 박살이 나도 ‘어짜든지 이 화목만은 내가 깨지  않겠다’ 하는 그런, 네 마음에 소금을 두지 안하고는 이 화목이라 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마가 9장 50절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3장 13절로 18절까지에는 내리보면 “화평함이 먼저 있고 난 다음에  의가 이루어진다” 이랬습니다. 그래서, 화평함을 심어서 거기에서 열매맺는 것이  의다. 화평이 없는 곳에는 열매가 없다. 화평이 없는 생애에는 성령의 결실이  없다.

그러기에, 이 화평은 옳은 것을 맺는, 옳은 가정이 되는 데는 먼저 화평이 있어야  되고, 옳은 단체가 되는 데는 먼저 화평이 있어야 되고, 또 옳은 모든 역사가 있는  데에는 화평이 밑에 밑둥치가 되어지고 밑뿌럭지가 되어져야 되지 화평 없는  거기에는 좋은 것이나 옳은 것이나 행복된 것은 생겨지지 않습니다.

화평 없는 부부에는 행복이 없고, 화평 없는 가정에도 행복이 없고, 화평 없는 그  어떤 단체에도 행복이 없습니다. 화평이 모든 의의 성공의 밑둥치와 밑바탕이  됩니다.

모든 명철과 지능과 용감과 열심과 모든 총명은 그것은 있을지라도 화평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다 악의 자본이 되고 자료가 돼서 결국은 악을 달성하는  것이 되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무지 무능한 사람에게 화평이 있는 것과 화평이 없고 모든  지혜와 총명과 명철이 있는 것과 그 두 곳을 비교하면 어찌 되는가? 화평이 있고  지혜, 총명, 부강, 권세, 명철, 열심 그런 모든 기능이 없어도 화평 있는 곳에는  거게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훌륭하고 구비하고 하다  할지라도 화평이 없는 거기에는 결국은 사망 외에는 다른 것 맺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화평 위에는 생명이 맺고 화평 없는 모든 지능에는 사망이  맺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그 사람이 지능이 훌륭해도 화평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는 좋은 미래가 없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무지하고 어리석어도 화평이  있으면 그 미래에는 생명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 1장 20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이  화목을 위해서 화평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들과 불목한  여기에서 화평을 주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셨고, 또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평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로 이 죽으심으로 모든 불목과  불화를 다 멸했고, 또 주님이 모든 만물과,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과 만물 사이에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셋 순서가 있는데 처음에는 죄와 사망과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주님이 보혈을 흘리셨고, 둘째로는 우리들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 하나의 준비  공작이요 마지막에 결말이 되는 제일 결성이 되는 주님의 대속은 어떤 것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화목 제물이 되신 이것으로써 완성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화목하시고 또 화목케 하는 직책을 우리에게 맡기셨고  화목케 하는 말씀도 우리에게 부탁해 주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33장 1절로부터 17절까지에 보면 야곱이 그 형 에서의 축복을 가장을 해  가지고서 가로취했습니다.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야곱이 가로취해서  받았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해 달라고 할 때에  나는 너인 줄 알고 축복을 다 했는데 다시는 네게 복 빌어 줄 복이 없다 그렇게  하면서 세상에 있는 축복을 해 줬습니다. 네가 세상에 있어 용감스러운 자손들이  날 것이고 또 모든 투쟁에서 네가 승리를 할 것이고 또 네가 모든 땅에서  부강하게 될 것이라 이렇게 하시고 신령하고 영원한 축복,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장자의 영원한 축복은 그만 에서는 받지 못하고 세상  성공자로 신령한 면에는 완전히 패배자가 됐습니다.

이러니까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하니까 야곱이 미리 알고 피해서 밧단 아람에  자기 외삼촌 집에 가서 피해 가지고 거게서 우거해 있다가 마지막에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가지고 하나님이 다시 그 형 에서에게로 돌아가라 했습니다.

그러면 에서는 항상 사백여 명의 군인을 늘 양성해 가지고서 어느 기회라도  야곱을 만나면 야곱의 그 모든 가족들을 다 살해하려고 에서는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이 명령을 하니까 야곱이 자기 형 에서에게로 돌아가기는  돌아가야 되겠는데 그는 벌써 사백여 명 군대를 길러 가지고서 밤낮으로 야곱을  만나기만 하면 살해하려고 그렇게 도모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돌아가라 하니까  가기는 가야 되겠는데 가면 에서의 손에서 자기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는 그런 군대를 준비하지를 못했고 그저 자녀 기르는 데만 기울이고 하나님  말씀 지키는 데만 노력을 했으니까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은 에서에게로 가라  하는데 가면 자기가 죽을 터이니까 가지 못하겠다고 이래 가지고 밤새껏  하다가서 날이 샐 무렵에사 비로소 에서에게로 가겠다고 자복을 하고 그 에서  있는 데로 갔습니다.

가니까, 에서가 군대 사백 명을 벌써 거느리고 야곱이 그를 찾아서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듣고 나서 야곱이 에서를 만날라 할 때에 그때에 참 생명을 내놓고,  에서에게 미안하게 된 것을 다 사과를 하면서 땅에 대고서 여러 번 절하고  예물을 또 여러 가지를 보내고 이래 가지고 비로소 에서를 만나게 됐습니다.

에서를 만날 때에 그때에 하나님 은혜로 에서는 야곱의 목을 안고 울고 야곱은  에서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 둘이 화목을 취했습니다. 취해 가지고서 에서가  말하기를 ‘내가 네 길을 안내할 터이니까 그러면 어디로 하든지 가도록 하라.

그러면 내가 네 길을 안내해 주겠다. 나는 여게 익숙한 곳이니까 안내하겠다.’  ‘뭐 그럴 것 없이 그만 저는 저대로 두시고 형님만 앞서 가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너를 지킬 군대를 내가 몇 명을 여게다가서 유치해서 너희를  호위하도로 그렇게 해 주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저 나는 너무  거느린 식구가 많으니까 천천히 갈 터이니까 앞서 가시면 저는 아무 데 가서  머물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서로 나뉘었습니다.

그때에 만일 화목이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화목이 없었다면 야곱도 망하고  에서도 망하고 다 망합니다. 왜? 에서가 무기가 있기 때문에 야곱을 죽일 것이고  야곱을 죽였으면 하나님이 에서를 죽일 것이고 완전히 그만 그 가족은 완전히  전멸을 당하는 것인데 그 전멸당할 때에 그 화목이라는 이 화목이 들어 가지고서  그 가정을 구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창세기 45장 1절 이하에 죽 내려보면 요셉이의 사적과 그 형제들  만난 사적이 간단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요셉과 그 형들과의 사이는 어떤 그 일이  있었느냐 하면 그 형들이 요셉이가 아버지 심부름 온 것을 보고서 ‘저기 꿈꾸는  자가 온다. 저자를 우리가 여게서 그만 죽여서 땅에 파묻어 버리고 짐승이  찢었다고서 그 피를 제 옷에다가 묻혀 가지고 아버지에게 갖다주고 저걸  죽이자’ 그렇게 의논할 때 온 형제들이 다 그렇게 하자고 의논이 됐습니다.

그랬는데 그중에 르우벤이라는 한 사람이, 맏형인데 ‘우리가 지금 한 피에서  났는데 어떻게 그렇게 피 흘릴 수가 있겠느냐? 그만 죽이면 되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걸 죽이지 말고 저 깊은 구덩이에 올라오지 못할 데 던져 놓으면  거기서 배가 곯아서 나중에 죽지 않겠는가? 그리 하자.’ 이래 가지고 그 깊은  구덩이에 거게 던져 넣어서 짐승도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데 던져 넣었습니다.

그 요셉이는 거게서 나올 길이 없습니다. 없는데, 그래 놓고 난 다음에 뒤로 가  가지고서 요셉이를 어떻게 뭘로 가지고 달아올려서 거게서 구출해 가지고서 저  이스마엘 장사꾼들에게 팔아 가지고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가 가지고 보디발  집에서 종이 되었고 또 거게서 이럭저럭 지내다가서 감옥에 들어가게 됐고  감옥에서 이제 마지막에는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 형제들은 한 동태 형제간이 아니고 씨는 같지만 배는 다릅니다. 그런  이복 형제들이 단합해 가지고서 요셉이를 죽이려고 그렇게 미워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오랫 동안 경영하고 계획하고 이렇게 뭐 맺히고 맺혀 있는 원수입니다.

이랬는데 마지막에 그들이 요셉이가 그와같이 된 줄은 모르고 흉년이 들어서  양식 팔러 애굽으로 갔다가, 그 요셉이는 그 형제들을 짐작하고 만나서 그저  이리저리 쓸어 물어서 그 부모가 살아 있는지 혹은 자기를 그렇게 미워했는데  자기를 죽여서 자기는 죽은 줄 그들이 알고 있을 것이고,  또 장사꾼에 팔려  갔으니까 애굽으로 팔려가서 어떻게 비참한 자가 되었으리라 그렇게만 생각을  했었는데 요셉이는 그 형제들을 알았습니다.

알고서 ‘이제는 저놈들이 왔다. 내가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어 있으니  저놈들을 이제는 복수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 형제들을  어짜든지 이리저리 심문해서 그 속에 형제를 서로 미워하는 그 죄악을 뿌리뽑고  어짜든지 화평을 취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노를 쌓지 안하고 축복을 받으려고  그렇게 요셉이가 애를 썼습니다.

이래도 그들은 몰랐는데 마지막에는 나중에, 요셉이라고 이렇게 말을 해도 그들이  듣지를 안하고 근방에 겁이 나서 오지를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요셉이가 참 그  형제들인 것을 보고 마음에 어떻게 반갑고 그 또 과거를 생각하니까 마음에 뭐  견딜 수 없어서 사람들을 다른 데로 다 보내고 얼마나 마음에 억제 못 하는  대성통곡을 했든지 그 애굽에 있는 궁성에서 다 듣고 모두 다 소동이 될 만치  그렇게 됐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형제들을 만나 가지고서, 자기 동생 바로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  해서 베냐민을 만나 가지고 서로 껴안고 울면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베냐민은 요셉이하고 저하고 한 형제간이요 동태 형제간이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단단한 복수를 당해서 우리는 죽는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 뒤에 또 자기 형제들을 만나 가지고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통곡을 하면서 요셉이라는 걸 말할 때에 그 말을 듣고야 비로소 그 형제들이  요셉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가까이 왔을 때에 그 요셉이가 하는 말이, 나는 당신들이 나를 흙구덩에다  던졌다가 또 거게서 내가 구출돼서 애굽에 장사꾼에 팔려 와 가지고 이런 이런  경로를 겪어 가지고 옥중에서 나와 가지고 내가 애굽 나라에 총리대신이 돼서  지금은 애굽 나라의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어서 애굽 전 백성이 나를 아버지로  여기고 이렇게 존대하는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자기네들이 나를 여게 팔아서 온  게 아니고 우리 이스라엘 족속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그 형님들  앞서 이리 보낸 그 하나님의 섭리로 내가 왔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 것이니 거게 대해서 자기네들 뜻대로 했다고 생각지 말고 이 일은  자기네들이 책임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원의  섭리로 하셨다는 하나님의 섭리에다 두고서 형제들에게 조그마치도 원망이나  책임이나 그런 것을 하나도 가지지 안하고 그렇게 화친했습니다.

그러므로서 그 화친한 것이 요셉에게도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됐고, 또 그  형제들도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됐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화친치 안했으면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는 만날 터이니까 에서를 만나서 죽었을 것이고 에서를 만나  죽었으면, 죽이지 못해도 죽이려고 하면 하나님은 또 에서를 쳤을 터이니까  에서도 망하고 야곱도 망하고 다 망했을 것입니다.

다 망했는데, 화친할 수 없는, 그 화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원수가 어데  있습니까? 없는 그 화친하는 데에서 두 사람이 다 생명을 보존했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또 요셉이와 그 형제들로 말해도 만일 그때 요셉이가 그 형제들에게 대해서  복수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화평을 가지지 못했다고 하면 요셉이는 그후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는데  요셉이가 그 아주 먼 타국, 아주 민족도 다르고, 지금도 뭐 애굽 사람이라면 다  세계가 다 아주 무정하게 생각하는 잔인한 사람들입니다. 이랬는데 그곳에 가  가지고 총리대신이 돼 가지고, 일자무식꾼이 총리대신이 돼 가지고 그래도 거게서  명정치를 하게 된 것이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부절히 끊어지지  안하고 하나님과 연결돼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모든 행정을 하고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대로 모든 계획과 설치를 하고 이 순전히 하나님과 연결됨을 인해  가지고 그가 거게서 생명도 보존하고 존대도 받고 또 그 모든 야곱의 열두  아들의 그 모든 족속들도 거게서 평안하게 구원을 얻게 됐는데, 만일 요셉이가 참 자기를 죽이려고 원수를 품은, 여러 차례 죽이려고 하는 그  형제들의 그 악한 마음에 조그마치라도 섭섭하게 생각해서 복수를 했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자기를 향해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그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적으로 단편적으로 편견해 가지고 복수를 했다고 하면 하나님은  요셉과 다시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왜? 화평이 없이는 하나님 보지 못한다  했는데 하나님 보지 못하면 어떻게 그 요셉이가 하나님의 그 지능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러니까 그리 됐다면 요셉이도 하나님과 끊어지니 비참하게 망해졌을 것이고 또  그 형제간도 비참하게 망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이렇게 인간적으로서는 불목할 만한 그런 일이 많이 있지마는  광대하신 하나님의 경영과 하나님의 섭리를 그들이 생각하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양해하고 어쨌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는 것이 여게뿐 아니라 구약에 있는 모든 성경에 중심의 뜻이  다 그러합니다.

이래서 참 그는 그 화평하기가 어렵지 안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니까  어렵지 안했고, 에서와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못하고 화평을 할라 하니  심히 어려웠지만 하나님이 화평케 해서 그들이 화평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다른  데도 보면 그런 게 많습니다.

이래서, 화평은 구원이라. 화평은 생명이라. 화평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라.

이래서 말하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짜든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평이 없는 그런 것을 찾아서  우리가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과 불목한 그것을 조금만, 좀  범위 넓게 생각하면 그것이 없어서는 안 될 일들입니다.

왜?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우리로 온전한 사람을 만들고,  우리를 고독한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이렇게 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광대하신 섭리를 생각하면 땅위에서 화평하지 못할 그런  불목은 없고, 또 그 화평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목, 아주 불목이  됐을 때에 화평한 그것은 자기 생명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만일 불목을  그대로 가지고 통과하면 피차에 다 생명이 끊어지는 이 오랜 보응, 대번에는  아니지만 오랜 보응에서 필연적으로, 물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 다 결국은 사망으로 화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들끼리 서로 불목한 것을 금년이 지나가기 전에는 다 우리가  이것을 해결해서 화목하도록, 상대방이야 알든지 모르든지 내가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불목의 원인이 되어지고 언젠간가 발견되고 알 때는 불목이 되어질  수 있는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다 이것을 정리해서 어떻게 하든지 소금을 두고  화평을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불이 섞인 유리 바다에 대해서 증거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리  바다라는 것은 유리는 투명성을 말하고 바다라는 것은 미혹에 빠지는 걸 가리켜  말했는데 세상에는 미혹이 가득 찼습니다. 가득 찬 세상입니다. 미혹이 없는  세상이 없습니다. 이간 붙이는 미혹, 이간 붙이는 미혹, 시기나게 하는 미혹, 모든  간교, 또 자기를 공연히 치켜 올려서 우쭐하게 하는 미혹, 또 자기를 공연히  매장시키는 미혹, 이것 다 미혹입니다.

자신만 요동치 안하고 있으면 천하 인간이 자기를 끌어내릴라 한다고  끌어내려지는 것 아니고 천하 인간이 자기를 높인다고 해도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 절대 아닙니다. 높이는 것도 하나님 혼자 주권되어 있고 낮추는 것도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간교, 간사한 소리 하는 것, 이간을 붙이는 것,  모두 다 시기하는 것, ‘요 사람게는 시기심을 일으키면 되겠다’ 그 시기심의  형편을 알고 그 심리를 알고 시기심을 일으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목을  시키고 불화를 시키고 하는 그 죄악은 다 멸망을 받습니다. 그 죄악을 똑 떼버려  버리면 자기는 삽니다. 그 죄악을 똑 떼버리지 안하면 자기가 그 죄악과 함께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이 면을 아주 조심해야 됩니다. 사람들을 삼가는 것은 보면  어떤 사람은 말을 안 하는 것 같아도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말하는 것 보면은  어짜든지 거게서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어짜든지 불목케 하는 말  합니다. 어짜든지 불목하게 하는 말, 또 사이가 벌어지게 하는 말, 또 다른 사람을  시기나게 하는 말, 요렇게 조렇게 자기 지혜를 써 가지고서 그만 인간으로 하여금  불목하게 만들고 불화하게 만들고 구원에 손해가도록 만드는 그 사람의 행위는  그것이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걸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해서,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으면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고 이랬는데 화평을 자기가 취하려고 자기가 애를  써도 그게 갖춰지지 안하면 하나님 못 보는데 하물며 화평을 깨뜨리는 불목을  조장하고 불목을 도모하는 그자가 일시에는 아주 꿀같이 달고 재미있지만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죄악이 다 어데서 나오는가? 요 죄악이 다 어데서 나오는가?  그것은 우리 원수 그놈에게서 다 나옵니다. 어데서? 악에서 나옵니다, 악에서. 왜  인간들이 간교하며 이간을 붙이며 시기하느냐? 왜 이렇게 해 가지고서 모든  미워하는 것, 거짓부리, 이런 것을 다 하고 있느냐? 그것이 다 자기가 중심되는  데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왕으로 삼는 그자에게는 절대 생명과 평강이나 행복은  없습니다.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행복은 자기를 왕 삼은 데에서 완전히 자기를 죽여서, 왕 삼은  데에 자기를 죽여서 자기는 모든 인간에게 밟히는, 모든 인간의 밟는 그 디딤돌이  되고, 모든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되고, 모든 인간을 섬길 수 있는 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그 자리가 갖은 평안입니다. 그 자리는 저주가 없습니다. 그  자리는 생명과 평강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원수가 자기 중심인 악, 자기 중심인 악, 자기 위주인 악,  자기를 위하는 악, 자기를 위해서 자기 좋게 하려는 자기 그놈이 뭣이냐? 자기를  위하고자 하는 것, 자기 좋게 하려는 것, 자기 중심 자기 위주 하는 것 그 자기가  뭐인가? 그 자기는 자기가 아닙니다.

그 자기는 악령으로 자기 중심 원죄로 본죄로 되어 있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 가지고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그  자기 그것은 마음도 아니오. 그것은 몸뚱이도 아니오. 그놈은 순전히 싹 빼  놓으면 악령하고 악성 악습 그 악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는 악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원수 삼아 가지고서 이놈을 죽이면, 이놈을 죽이고 이놈을  없애버리면 우리는 항상 평안하고 즐겁고 하나님에게도 환영, 피조물에도 환영,  만물에게도 환영, 어데든지 행복되지만 자기가 왕이 되는 그것을 죽이기 전에는  절대로 원수 없는 세계에는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제가 동지끼리 권사는 권사들끼리 만나지 마라, 집사는 집사들끼리 만나지 마라,  기도하러 갈 때도 몇이 기도하러 간다 할 때에 조심해서 갔다오라 내가 이 말  하는 것은 왜? 그 속에, 악을 다 죽이려고 애를 쓰지만 악을 죽이지 못하고  착각하면 악 그놈이 저인 줄 알고 제 중심으로 한 시간 지나고, 제 중심으로 말  한 마디 하고, 제 위주로 생각 하나 가지고, 제 위주로 사람을 하나 사귀고 서로  한 시간이라도 사귄다고 하면 그 전부는 사망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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