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복음의 말씀

 

1986. 2. 12. 수새벽

 

 본문:베드로전서 1장 3절∼4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들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선지자선교회 여기서 보면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의 사죄와 또 사죄 공로를 우리에게 실상으로 입혀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이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영이 살아난 것이 예수님의 사활의 공로로 살아났습니다.

또 그다음에, 1장 23절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이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면 우리가 영이 중생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생했다 그말은, 말씀은 영감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으로 거듭났다 말은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났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중생이라 이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말씀의 힘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또 요한복음 3장 5절에는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또 여게는 똑똑히 성령과 물이라 했는데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예수님 사활의 공로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님과 진리로 우리 죽은 영이 살아났다 하는 요것을 꼭 잡고 놓지 말아야 됩니다.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우리가 뭐할라고 있는가? 영은 살아나서 다 영생을 가졌지마는 우리 심신으로 되어 있는 육 이것은 아직까지 다 살아나지를 못했습니다.

심신으로 된 이것은 하나로 된 것이 아니고 이것이 그 숫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 마음의 요소도, 기능도 그 수를 우리가 다 셀 수 없을 만치 많고 우리 몸의 요소도 기능도 셀 수 없을 만치 수가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은 단번에 살렸지마는 우리의 심신으로 된 이 육은 이것은 살리는 것이 뭐 수백 차 수억 차로 이렇게 살려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을 바꾸어 자꾸 주시는 것은 이 현실에서는 이 심신의 요소를 살리고 저 현실에서는 저 심신의 요소를 살리도록 전지하신 사랑의 주님이 그 모든 것을 다 아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을 줘 가지고 고 현실 현실마다 우리의 심신의 요소와 기능을 살리는 역사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난 것이 예수님의 피공로 또 부활하심,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가 살아났고 성신의 감동으로 살아났고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다. 이 세가지의 능력이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렸고 우리 영을 늘 붙들고서 이렇게 역사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능력은 완전한 능력이요 영원한 능력이요 변치 않는 능력이요 영생의 능력이기 때문에 이 능력이 우리를 붙들었기 때문에 이 능력으로 살아난 것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생된 영은 이것으로서 살아났기 때문에 다시 죽지 안하고 또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이것으로 지금, 살아난 것은 다 영생을 하는데 이것으로 살려 가지고서 영생 할라고 하는데 이것이 하나 하나, 토막토막의 단합이 있어 가지고서 밑에서 이 분자는 살아나도 주체가 살아나지 못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 영이 죽은 것도 영이 범죄해서 죽은 것도 아니고 영의 소유가 되어 있는 이 심신이 범죄했기 때문에 영은 주격 책임에서 죽게 된 것입니다. 마치 이 부산 시청에나 동회 이런 데 무슨 잘못 했으면, 동회 직원이 잘못 했으면 동장이 책임져야 되고 그 구내에 잘못이 있으면 구청장이 책임져야 되고 이 시내에 뭐 잘못 됐으면 시장이 책임지는 거와 꼭 같이 그렇게 주격 위치에서, 자기의 심신이 범죄해 가지고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영은 따먹은 것은 아니지마는 영은 주격 위치의 책임에서 정죄함을 받아 가지고 죽었던 것입니다.

단번에 죽은 그 영이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살나났다 해도 됩니다. 왜?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과 부활이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인데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전달시켜서 실상을 이루기 위해서 온 일군 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활의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서, 우리가 법적으로는 입고 있지마는 우리가 그 입은 걸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입은 걸 우리에게 알려 가지고 예수님의 사활의 공로를 우리에게 알릴라고 온 책임자 일군이 있습니다. 사활의 공로를 우리에게 알릴라고 온 책임자 일군이 있습니다. 그 일군이 있는데 그 일군이 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녜, 둘을 가리킨 분은 맞았고 서이 가리킨 분은 틀렸습니다. 일군이 둘이니 뭣 인가? 성령과 진리입니다. 성령과 진리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들에게 보내겠는데, 보혜사는 성령을 말합니다.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혀 준다고 해서 이름을 보혜사라 보호할 보(保)자 은혜 혜(惠)자, 보호하고 은혜를 입혀 주는 보혜사가 오면은 내것을 가지고 너희들에게 말하시리라 내것을 너희들에게 말해 주리라. 예수님의 사활의 공로를 말해 주리라 또 진리로 인도하리라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공로를 실상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일군 둘이 왔으니 곧 영감과 진리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살아났는데 그래서 영은 단번에 살아났지마는 우리 심신의 이 기능이라 하는 것은 요 현실에서는 요 부분이 살아나고 조 현실에서는 조런 부분이 살아나고 해서, 우리가 요 현실에서는 내게 거짓말하지 않는 고것이 살아나고 또 고 현실에서는 거짓말 했으면 죽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고다음 기회를 또 주십니다. 이러니까 한 기회를 주셔서 살아났으면 그다음에는 다른 걸 주실 터인데 못 살아났으니까 고다음에 또 그런 시험을 또 주십니다. 고런 기회를.

예를 들어서 요 기회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서, 자기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으면 그 사람에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시험을 주지 안하고, 고 단계에서는 주지 안하고 고보다 더 높은 고차원에서 높은 위치에서 이제 높이 주일을 지켜야 될 그런 시험은 뒤에 있습니다. 한 번 시험 치르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고게 대한 시험은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일학년 시험을 치러서 일학년 다 수료하는 종말 시험에 합격이 됐으면 그 학생은 다시는 일학년 시험을 치르지 안하고 또 이학년 시험은 그다음에 치릅니다. 그것 모양으로 우리가 주일에 대한 시험이라 하는 것도 단계가 있어 가지고서 자기가 한번 치러 그 단계에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으면 그 수준에서는 그에게 그런 시험이 없고 그다음에 수준에서 또 그런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에게 오는 이 현실 현실마다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을 살릴 그런 좋은 기회를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우연히 우리 현실이 닥치는 게 아니라 우리 현실이 그런 것을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우리에게 현실을 주신 것입니다.

6.25는 보면은 6.25는 많은 사람이 죽었지마는 6.25는 뭐 때문에 났느냐? 저는 해석을 하기를, 6.25가 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일군들의 남은 승리를 위해서 났고 또 예수님을 믿는 그 쭉덩이, 껍데기로 믿으면서 믿는 줄 아는 그자들의 이 껍데기라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6.25가 났습니다. 그래6.25에서 진실되게 믿지 못하는 자는, 믿지 못한다는 것을 자타가 알게 됐고 또 신앙을 지키는 자들은 신앙을 지킨다는 것을 자기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게 됐습니다. 그런 것도 다, 그 6.25를 만들라 하니까 6.25 만드는 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수많은 인명을 살해하고 그런 어려움을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한 것은 무엇 때문에 만들었느냐?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의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러면 우리는 현실을 만들어 주셨을 때에 그 자리에서 고만 우리 심신의 이 구속만 받으면 될 터인데 이렇게 감사한 것을 모르고 알지 못하고 그러니까 자기 주관에 맞지 않는 현실을 주시면 원망 불평합니다. 그 현실을 주님은 만드시느라고 큰 힘 들여 가지고서 고 현실을 만들어서 고 현실이라야 내 심신의 기능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고 현실을 주신 것인데 고 현실에 감사함으로 받아서 이렇게 구원을 이루지 안하고 오히려 원망 불평하는 그것은 몰라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 사실을 알면 참 감사하고 기쁘고, 큰 힘 들여 가지고서 내 죽을 것을 살리는 그런 기회로 줬으니까 그때 그만 살릴 힘만 쓰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할라 하는 말씀은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났으니, 우리 육을 살려야 되는데, 우리 심신을 살려야 되는데 우리 심신을 살리는 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안하는 미혹이 있습니다. 우리 심신을 살리는 이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될 터인데 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게 되는 미혹이 있다 말이오. 그 미혹을 가르쳐 말합니다.

미혹이 뭐이냐? ‘되었느니라’ 24절에 `그런고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지 못하고 세상을 기업으로 삼아 가지고 있다가서 고만 죽고는 유황불 구렁텅이로 갈 그런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데, 우리에게는 영생하는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 있는데 이 생명으로 살지 아니하고 우리가, 이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풀과 같은 육체와 풀의 꽃과 같은 그런 영광을 준 것인데 그 사람들은 그것밖에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거 보고 사는데, 그거 보고 사는 그것을 우리도 그것이 좋은 것인 줄 알고 그거 보고 살고 영생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했는데 그 말씀이 뭐이냐? ‘너희들에게 전한 복음이라’ 복음이라 말은 신구약 성경 이 법칙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 법칙대로 이렇게 살게 되면 이는 다 영생이 되어지기 때문에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가 받아서 영은 살았는데 이 심신이 지금 살지 못했기 때문에 심신을 영생으로 살릴라고 이렇게 하는 이 단계이고, 우리는 심신이 영생으로 살아날 이 현실이고 불택자들은 이것은 소망이 없기 때문에 이 심신 가지고서 풀과 꽃과 같은 그런 거 보고 살다가 풀 마르고 꽃 떨어지면 끝장나고서 그다음에는 유황불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그런 그것을 우리가, 우리 생활이 아닌데 보고 부러워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에게 전한 복음은 현실을 주시고 요 현실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라 말은, 복 복(福)자 소리 음(音)자, 복된 소리라 그말입니다. 복된 소리라 말은 신구약 성경 이 말씀은 우리의 죽을 심신의 기능이 다 영생을 얻기 때문에 이 말씀은 다, 이 이상 더 없는 복이 되는 이 복된 말씀을 우리에게 줬기 때문에 요 복된 말씀대로 고 현실에 살기만 살면 그 산 심신의 기능은 고만 영생이 돼 버렸습니다. 다시는 시험도 없고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이런 영생의 보배로운 일이 있는데 이걸 알지 못하고 이 구원을 받지 못한, 택함을 입지 못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물로 만들어 놔서, 껍데기는 꼭 같은 사람이지마는 택함을 받지 안한 사람은 택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물로 지음을 받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이사야 43장에 보면은 ‘애굽을 대속물로 삼았다’ 애굽은 세상을 가리켜 말한 건데 세상의 불택자들은 택한 자들을 구속하는 이 역사를 위해서 만들어져 가지고 있다. 이러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때에 그걸 위해서 만들었다 그말이오.

그러면 비유컨대 어떤 부자 집에 큰 황소가 있지마는 이제 빼빼 마른 조그만한 어린 아이 그것을 위해서 그게 있다 말이오. 이 아이가 병이 들었어. 병이 들었는데 이 황소 이놈을 팔아야 그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면은 황소 아끼지 안하고 당장 팔아 가지고서, 팔라 하니까 아무도 살 사람이 없어 푸주간에다 팔라 하니까, 잡아 먹는 데 팔라 하니까 살라 한다 말이오. 잡아 먹는 데 얼른 팔아 가지고 그 아이를 치료한다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불택자를 만드신 것은 택자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택자 구원을 위해서 필요 있게 이용하는 데는 아끼지를 않습니다. 애초에 그걸 만들 때 그와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제가 처음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어느 교인들 집에 가니까, 왜정 때입니다. 왜정 때는 경관이 세력이 있었습니다. 칼 기다란 거 차고 아주 세력이 있습니다. 그 집에 가 가지고 복음을 전하니까 그 순경이 있다가서 비쭉 비웃기 때문에 내가 요 말을 했어. ‘불택자는 택자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물로 만들었다. 당신이 불택자면은 구원을 위해서 이용물만 됐지 그거는 다 지옥이지 소용이 없다.’ 이말 하니까 그 사람이 고만 하도 기가 차서 말도 못하고 그만 뒤로 덜컥 넘어가 버리요 그만. 넘어가면서, 분해서 말이오. 분해서 못 견뎌서,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거 어떻게 한다 말이냐’ 그래 내가 그래 가지고 한번 그때 신강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예수 믿은 지 한 일 년 됐던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렇기 때문에, 전한 이 복음의 말씀 이 말씀으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그런고로, 2장 1절에 ‘그러므로’ 그러므로 말은 위에, 우리는 중생됐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현실 주시는 것은 우리 심신의 기능을 영생으로 속량하시기 위해서 현실을 주셨다. 이런데 그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은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심히 고통스럽고 좀 어려운 일도 있지마는 이 말씀이 복음이다. 이 말씀은 곧 너희들이 어렵지마는 고대로 살면 영생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2장 1절에 ‘그러므로’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이 구원을이룰라고 힘을 써야 될 터인데 구원 이루는 방편을 요게다 말해 놨습니다.

뭐이냐?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이는’ 이렇게 사모하면 ‘이는' 이렇게 사모하라 하는 말씀은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 보았으면 그리하라’ 너희들이 주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죽으심도 한없는 큰 희생이요. 부활하심도 한없는 희생인데, 주님의 한없는 인자하심의 이 대속으로 인해서 성령과 진리로 네가 중생됐으면 이렇게 살아라.

중생됐으면 너는 땅 위의 풀과 풀의 꽃과 같은 그런 것을 보고 살 네가 아니고, 네 현실에서 네가 돈 보고 살아서 돈 취하고 영광 취하고 무슨 행락 취하고 이 세상들의 좋아하는 모두 그런 거 번쩍거리는 그런 거 취할 현실로 너는 살 사람이 아니다.

너는 현실을 그렇게 살 사람이 아니고 너는 벌써 영이 중생됐고 몸의 기능이 영생으로 속량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힘들여서 현실을 만들어 줬기 때문에 그 현실에서 너 할 일은 이 복음으로 살아서 영생을 이루는 것이 너 할 일이지 이것은 하지 안하고 엉뚱스럽게, 풀과 풀의 꽃과 같은 그런 걸 보고서 자꾸 부러워하고 날뛰고 있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거와같이 육체의 모든 것은 그와 같다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계시 3장에 보면은 사데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사데 교회가 살았다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인데 왜 그랬느냐? 네가 어떻게받고 어떻게 들은 것을 다 잊어 버렸기 때문에 안 된다.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받은 것을 생각하라’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받았고 또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부활하심으로써 이제 중생까지 했고, 죽으심으로 사죄 칭의 화친을 받았고 이것을 또 우리에게 실상으로 이루어 주시기 위해 가지고서 삼 일 만에 다시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부할하신 이 사랑의 대속의 은혜를 받았고, 사활의 대속의 은혜를 받았고 이러기 때문에 감히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돼서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되셔서 대답하시고 우리에게 의논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시고.

또, 인간이 몰라서 석가모니 같은 그런 사람으로 말하면은 인생의 그 비밀을 알기 위해서, 인생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지마는 삐뚤어진 길을 갔다 그말이오. 모든 동양이나 서양에 그 위인들이 많고 모두 다 성현들이라는 사람들이 많고 철학자가 많고 모든 종교 창설자들이 많지마는 우리가 성경을 보니까 다 삐뚤어지게 갔다 말이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당장 삐뚤어진 걸 알겠다 말이오. 이치를 모르고 뭐인지 모르는데,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 말씀으로 영원 무궁까지를 환하게 우리에게 알게 해 주셨고 또 성신의 감화를 우리가 받게 됐고 우리가 중생해서 중생한 생명을 우리가 분명히 안다 그말이오.

알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거. 기도 들어 가지고서 일을 한 그 일이 큰 게 아니라 만유의 대주재이신 창조주 자존자이신 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되셔 가지고서 내 기도를들으시는 이게 크다 그말이오.

예를 들어서 서울에서 ○대통령이 역부러 와 가지고서 무슨 약 한 봉지나 무슨 선물 하나를 역부러 가지고서 비행기를 타고 와 가지고서 우리 집에 와 가지고서 나에게 줬으면은 그 선물을 가치로 따지면은 돈 만 원짜리밖에 안 된다 하지마는 주신 분이 크기 때문에 그 선물이 크지 않습니까? 이보다도 내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크신 분이니까 이분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대구에서도 육백여 명에게 그 많은 소원을 들어 주시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내기도의 소원을 듣는다는 것을 우리가 한 번 봤으면은 그분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믿고 끝까지 이래 나갈 일이지 내가 기도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는데 또 그다음에 ‘그때는 들었지마는 앞으로는 들어 주실까 몰라.’ 이렇게, 제가 경거 망동하고 변하는 거와같이 하나님도 변하시는 줄 알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과거에 그런 기적을 보고 ‘시험하다가’ 기적을 보고 시험 닥치면은 ‘그때는 그런 기적으로 구원 했지마는 이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란가 몰라. 봐야 알지.’ 요게 시험이라 말이오. 그거 가지고 망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 가지고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어 주심을 받아 본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받아 본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받아 보지 안한 사람 여기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한 사람도 없어. 받아 보지 않은 사람 한 사람도 없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데 교회와같이 받은 바의 은혜를 다 잊어 버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날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활의 대속을 주신 거, 진리를 주신 거, 영감을 주신 거. 나에게 이 생명으로서 살려 주신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 거라 그말이오.

그러면 자꾸 이와같이 이것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받은 것은 생각하면 돼요. 받은 것은 생각하고 잊어 버리지 안해야 돼요. 받은 것은 생각해야 돼요.

생각해서, 어떤 사람들은 신앙 생활할 때 그렇게 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은혜 베푸신 그 은혜를’ 이 은혜를 생각하든지 저 은혜를 생각하든지 그 은혜를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는 그 생각을 끊치지 안할라고 애를 씁니다. 그 생각을 끊치지 안할라고.

자기가 무슨, 뭘 볼 때에 눈으로 볼 때 말이지요. 내가 눈으로 봄으로 말미암아 고만 주님이 내게 베푸신 그 은혜. 주님. 주님과 그 은혜, 주님과 나와의 관련 맺어져 있는 그 은혜와 주님을 고만, 눈으로 보이는 그것 때문에 잊어 버렸다 말이오. 잊어 버렸으면 그것을 참 말할 수 없이 한숨을 쉬고 탄식을 하고 ‘요렇게 내가 봄으로써 눈에 퍼뜩 보이니까 주님 다 배반해 버리고 은혜 다 배반해 버리고 여게 따라 붙으니까 얼마나 그게 창기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요 창기성의, 말하자면 인격이 말이오. 창기와 같은 인격성이라 말이오. 요것을 자기가 탄식을 하면서 요런 실족이 없을라고 애를 쓰고, 또, 자기가 이래 다른 사람이 척 오니까 그 사람하고, 사람 오니까 그만 사람만 봐 버리고 주님 내 던져 내버렸습니다. 주님 은혜를 내 버렸습니다. 이게 얼마나 분한 일입니까? 이게 참 인간, 이거 도무지 이거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이거는 너무 거짓되고 허무해서 견디지를 못하겠다 말이오.

또 자기가, 뭐 주의 일이라면 좋지마는 주의 일도 그것도 그렇게 좋은 것 아닙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다 보면은 ‘이 일을 이래 할까 저래 할까?’ 자기에게 닥친 이 일을 ‘이래야 하나님의 뜻대로 할까 저래야 하나님의 뜻대로 할까? 이거 하다 보면은 그만 그 일에 대해서만 그만 전부 전력을 기울여서 그 일만 전공했지 주님은 깜빡 잊어 버렸다 말이오. 이것도 가증스러운 거라 말이오.

주님이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었는데 우리가 일해 봤자 무슨 큰 일 할 것입니까? 우리가 무슨 큰 일을 경영하고 이 일은 뭐 교회 하는 일이고 큰 일이기 때문에 이 일 하는 것을 여게 대해서는 뭐 주님 다 잊어 버려 버리고 이 일만 해도 되겠다. 그거 도무지 안 됩니다. 그거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러다가 보니까, 일을 생각하고 그거 하다 보니까 주님 잊어 버려 버리고 일만 거머쥐고 날 뛰었으니 주님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예를 들면은, 비유가 잘 안 되겠지마는, 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집에서 있는데 내가 지금 몇시에 인제 돌아올 것입니다. 약속을 하고 고 시간에 돌아오는데, 반드시 돌아오는데 어데 외국에 갔다 지금 어데 갔다 돌아오는데, 약속을 딱, ‘고 시간이면 내가 요 대문에 내가 도착할 것입니다.’ 요래 놨는데, 대문에 와 가지고서 문을 뚜드려도 벨을 눌려도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남편이 어떻겠소? 고 시간 딱 돼 왔는데 없으면 ‘이거 무슨 집에 사고가 났나’ 암만 벨을 눌려도 없으니까 '이게 무슨 어데 딴데 외출을 했나?’ 자꾸 그라면 연상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게 바람을 피우나 이게 어데 지금 뭐 하고 지금 무슨 재미에 빠져 가지고 이 시간 다 잊어 버리고 있느냐?’ 뭐 이거 돋칠 것 아닙니까, 이거? 그 부애가 돋칠 거라 말이지.

돋치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꾸 심히 뚜드리니까 문을 열어 주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부엌에서 남편 온다고 음식 만든다고 뭐 야단하고 그거 지금 보니까 딴거 안 하고 음식 만든 거는 분명하다 그말이오. 했지마는 분하다 그말이오. 그 남편이 어짜겠어? 거석한 남편 같으면 와 가지고 발길로 그까짓 거 음식이고 뭐고 발길로 다 차 버리고 다 깨뜨려 버리고 없애 버릴 것이라. 말이오. ‘이게 내게 무슨 필요 있어?’ 이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거 다 못 해도 딱 그 시간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 가지고 벌써 차가 우르르 하니까 문을 탈칵 엽니다. 그러면, 그거 볼 때에 ‘그 동안에 얼마나 수고했어요? 그래 얼마나 기다렸지요?’ 이라면서, 만족이라 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음식이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 뭐 그거야 없어. 왜? 자기 아내를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기 때문에 음식 없어도 아내면 만족이라. 좋은 부부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을 바라보는 거.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을 바라보는 거 이것을 당신이 제일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데, 사건으로서도 당신의 대속을 잊어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게 뭘 베풀어 주신 그것을 ‘어떻게 받았으며 이것을 생각하고’ 당신이 나에게 말씀해 주신 말씀은 ‘지켜 회개하고’ 말씀을 지켜 보니까 말씀에 회개하라 하는 거 회개하고 말씀을 지켜도 또 잘못 지켰으면 또 회개하고 이렇게 하면은 내가 나와 흰옷 입고 같이 다니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경건을 위해서 지난 주일에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경건은 내 주관 편에서, 내 주관에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 그걸 말하고 겨자씨 믿음은 주관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턱 할 때에 그분에게 피동되는 그것이 겨자씨 믿음이라. 하나님이 이래라 할 때에 그분에게 피동되는 거. 그분에게 피동된다는 그게 내 주관으로 준비가 돼 가지고 있어야 피동이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겨자씨 한 알만 있으면 산을 옮겨서 바다에 옮기우라 해도 옮겨진다’ 그말은 하나님이 내게 대한 뜻을 그거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그 뜻을 딱, 주님이 지금 나에게 이걸 명령하셨다 하는 것을 확실히 구별해서 알게 되면은 안 고대로는 행할 때 모든 게 되기 때문에 다 행한다 그말이오. 우리가 이거 주님의 뜻인가 아닌가 성경만 가지고 지금 주의 뜻에 맞는가 안 맞는가 이것만 찾고 있지 영감이 내게 왔나 안 왔나 그걸 모른다 그말이오. 영감이 온 것은 됩니다.

그래 내가 그때 먼저, 보니까 척 스미스 목사가 설교한 그 테이프를 보니까 그래 놨어. 자기는 그런 기적은 전연히 못 봤어요. 못 봤는데, 한번은 길을 가니까, 앉은뱅이라든가 뭐라든가 내가 그거, 그런 사람이 하나 와 가지고서, 목사님 나를 좀 안수 기도해 낫게 해 달라고서 자꾸 이래 쌓는데, 그런 일을 못 해 봤으니까, 그런 일을 나는 안 해 봤는데 이랬는데 자기 마음에 썩 나오기를 ‘아, 기도하면 낫지’ 이게 쑥 나오더래요. `기도하면 낫지' 하는 그 확신이 기도하면 낫겠다 하는 그것이 싹 믿음이 생겨지더래요. 그래서, 그래 가지고 손 대고 기도했더니마는 그만 그 앉은뱅이가 일어났더라고서. 고것이 자기가 체험이라. 고 사람이 진실하기 때문에 고런 거 안다 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말로 성경 보고 이래 주 대서 내가 이래 해야겠다 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딱 온 걸 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환자를 데려다 놓고 기도해 달라고 해도 그 기도해 달라 할 때 낫게 기도를 못합니다. 기도 못 하고 자기에게 꽉 그게 왔을 때에 그 기도를 하지 그 전에는 ‘이 사람이.’ 분명히 알기를, 죄를 회개시키러 왔기 때문에, ‘주님이여, 이런 이런 죄를 회개를 하도록 해 주옵소서. 회개하게 해 주시고 회개 할 때에, 회개를 차차 하거든 그 병이 차차 낫고 단번 다 회개 다 하거든 단번 낫고 회개 하는데 따라서 낫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한다 그말이오.

그때에 여기 ○○○이라고 우리 우유 갖다 주는 사람들 그 사람 그때 황소가 밟아 가지고 여기 갈빗대가 여섯 개인가 몇 개가 뿔라지고 여기 푹 이만치 들어갈 만치 이 가슴 젖 사이가 뼈가 막 바싹 부숴져 가지고 내려 앉았다.

말이오. 내려앉았는데 내게, 그 사람의 형편이 못 되고 이러니까 뭐 육 개월인가 해야 뭐 수술하고 어짜고 낫고 어짜고 한다 하는데 그런 돈도 없지 기도하면 하나님이 낫아 주실 것인 걸 믿어져. 믿어져도 내가 기도하지 안했습니다. 안 하고 사흘인가 다른 것만 하고 이래 지냈어요. 지냈는데 사흘인가 지낸 후에 ‘이제는 가서 기도해야 되겠다’ 모두 다 권사님들 다 오라 하고서 그 기도해 가지고서 간단하게 기도했는데 그만 기도하고 나니까 뼈가 뿔라져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던 게 푹 올라와 버렸어. 또 속에는 뭐 이만치 들어갈 구멍이 뭐 하나 있었는데 그것도 꽉 메워져 없어 버려. 지금 완전히 낫지 안 했습니까? 그거 뭐 돈 들일라 하면 전부 우사 그거 다 팔아야 될 터이니까 그거는 다 우리 교회 돈이기 때문에 문제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때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버지가 고렇게 해 주시는 것을 낱낱이 다 알았는데, 알았는데 우리는 그걸 못 듣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믿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많이 듣고 고것을 자주 듣고 어떤 사람은 평생, 하나님은 그와같이 하시지마는 모른다 그말이오.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있지마는 그 뜻이 뭐인지, 영감에 연결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겨자씨 믿음이 안 된다 말이오. 영감에 연결을 받으면 고것이 산 믿음이요 겨자씨 믿음이기 때문에 그거는 전능이요 만능이요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준비를 하기 위해서 경건을 준비하자 이랬는데 여게도 이런 모든 것을 다,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 모든 것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 젖은 진리와 영감을 말합니다.

순전한 것을 사모하라. 하는 것은. 순전한 것을 사모하라 하는 말은 진리를 사모하라 말이요.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 말은 영감을 사모하라 말입니다. 자꾸 우리가 사모해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도하러 가 가지고서 그냥 이래 가지고 기도하면 안 돼. 제가 기도하는 것이, 시간 있으면 기도하러 가 가지고서 무릎 꿇고 앉아서 이 성경부터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요 성경을 읽을 때에 깨닫게 해 주옵소서.

성경을 길게 안 읽어도 깨닫게 해 달라고서 그라고, 이제 성경 보고 깨달음이 오면, 성경 보고 깨달음이 오면 그만 그 깨달음 가지고 자꾸 기도해요. 그 깨달음 가지고서, 고대로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해서 또 고대로 할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요렇게 하면 그만 주님 만나게 됩니다.

그걸 못하면, 이 설교 말씀은 내개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달아 가지고 설교해 준 것이기 때문에 요 설교 말씀을 자꾸 이와같이 새김질하고 요래 하면은 설교 말씀 새김질하다 보면 자기가 변화가 돼 버려. 기도는, 기도의 입문이 첫째는 주님의 은혜가 내게 감사하다는, 감사가 내게 생겨 나오는 것이 입문입니다. 고다음에는 내가 주님 앞에 잘못됐다는, 죄가 자복되는 것이 그것이 고다음에 한 자욱 더 들어간 것입니다. 고다음에는 우리가 모든 걸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이 고것이 고다음에 걸음입니다. 고라고 난 다음에 내 모든 사정을 주님에게 다 고하는 것이 고것이 고다음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라는 것은 기도하러 가 가지고서 자체가 변화가 있어야 그 기도가 바로 된 것이지 변화 없는 거는 기도하러 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지금 양산동 기도실에 기도하러 가는 그것이 내켜졌는데, 우리 교회에 우리 모두 기도도 하고 또 장로님이 거게다가 이렇게 힘을 쓰고 이렇게 해서 그저 살살 기도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떠들지 말고 좀 그렇게 해서, 얼마든지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러 갈 수 있으니까 하고 어짜든지 우리가 지금은 변화를 받읍시다 주님이 축복하는 게 분명합니다. 기적이 지금 시작을 했고 이 구원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짜든지 기적과 축복 가지고 우리가 모든 것을 하도록 우리가 깨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되면 안 될 게 어디 있습니까? 용사의 뺏은 것도, 이거는 절대 안 된다 하는 것도 다 당신이 책임지고 다 복구시켜 주겠다고 말씀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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