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받는 순서

 

1987. 9. 26. 새벽 (토)

 

본문:시편 1편 1절∼6절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기독교는 모두가 돌담을 쌓는 것과 같이 필연적의 것입니다. 돌 하나 놓고 또 그 위에 돌 놓을라 하면 그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돌을 놓지 않고 그 위에 공중에 돌을 놓을라고 하면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못 합니다. 그러나 돌 위에 돌을 포개는 것이야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자의 신앙 생활이나 구원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초절은 안 되고 초월적입니다. 고것보다 조금 낫고 고게서 진보 진보로 자꾸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고 또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의 구원 방편은 모두가 다 필연적이라 하는 것을 장생골 집회 때 많이 말했습니다.

기독자의 구원은 필연적이라.

그러기에 중요한 것이 자기가 노력하는 그것도 중요하지마는 노력하는 것에 못지 않는, 순서를 바로 정하는 것입니다. 순서를 바로 정하지 안하면 그 일이 안 됩니다.

기독자의 구원은 자기가 힘을 써서 자기 힘으로 한 것같이 그렇게 여겨지는 그런 방편으로 우리 구원은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이 구원을 이루는 것 중에 몇 가지 어려운 게 있는 것은 ‘하나님이 전적 은혜로 해 주신다.

안 해 주시면 안 된다.’ 지난밤에도 3절에 있는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잘 심어 주셔야 되고 잘 가꾸어 주셔야 되지 인간으로서는 절대 안 된다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데에 대해서 어려운 점이 뭐이 어려운 점이냐? ‘전적 하나님의 은혜니 우리 사람은 노력할 필요가 없다’ 하는 그 미혹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또 ‘자기가 이렇게 노력을 해야 된다’ 하는 거게 대해서 어려운 점은 어떤 어려운 점이냐? ‘사람이 노력을 해야 되는 것같이 보여지지마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다. 사람이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이 전적 은혜로 주시는 것을 공짜배기로 받을 수 있는 인간의 자세는 자기가 해서 된 것같이 여길 그런 정도의 성의와 열심을 가지고서 하나님 은혜를 받으려고 할 때에 그때에 그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자의 자세요 그 정신이요 행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받는 데에 쓰여지는 것이지 그 은혜로 되는 그것을 만드는 데에는 추호도 쓰여지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의 구원은 다 제가 해서 된 것같이 여겨지는 그런 방편을 통해서 되어지는데 제가 하여 된 것같이 여겨지도록의 그 정도의 행동은 그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을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세요 행동이다. 은혜 받는 행동이지 그것을 만드는 행동은 아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고, 또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이 다 순서가 있다. 순서가 있어서 그 순서를 바로 찾는 것이나 자기가 구원을 이룰라고 노력하는 것이나 그 노력의 중량이 같다.

노력을 하는 것만큼 그 순서를 바로 찾을라고 애를 써야 된다. 바로 찾고 난 다음이라야 되기 때문에 애쓰는 그것이 바로 찾지 안하면 모두가 다 소용이 없다.

바로 찾는 데는 본인이 알 수 있는 것은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라” 말씀을 하신 것은 그 원인을 모르거든 결과를 보아서 알라 그 말입니다.

원인을 모르거든 결과를 보아서 알라. 행위의 순서를 비유컨대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자꾸 이렇게 호수를 매겨 나간다고 하면 일호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은 이호를 보면 네가 알 수 있다.

○○○씨? 이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에 들어 깨달을라고 애를 써 한 마디씨 듣는 데에, 들을 귀가 있어서 듣는 데에 재미를 붙이면 절대 잠이 안 옵니다. 또 그렇게 졸며 들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이 설교록이 나갈 때에 그 설교록을 사람이 그냥 허욕쟁이는 이 설교록을 봐야 하나도 안 됩니다. 보면은 제가 욕심쟁이로서 ‘몇 장 몇 절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했는고 보자’ 그걸 찾으면 제가 잘 찾지도 못할 뿐 아니라 찾아도 헛일일 것입니다.

왜? 한 설교를 적어도 몇 번 하고 이래서 끄트머리 결론을 짓는 것인데 그 순서를 말하는 그것을 제가 들을라고 하지 안하고 제 욕심 품는 것을 당장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찾아보는 자는 허욕쟁이기 때문에 그런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기 때문에 제 위해서 말이 나오지 안한 것입니다. 그 차차 차차 들어서 깨닫고 깨닫고 요렇게 나가면 나중에 마지막에 자기 구원이 되는 도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열매를 보아 알라” 그 말은 일호를 네가 바로 했나 안 했나 하는 그것은 일호가 바로 되고 안 되는 것은 일호의 열매는 이호입니다. 이호를 네가 봐라. 네가 또 이호가 그것이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은 삼호를 봐라.

그러면 이호 바로 되고 안 된 것은 삼호에 나타나고, 삼호에 바로 되고 안 된 것은 사호에 나타나고, 이러기 때문에 오호에 바로 됐나 안 됐나 그것은, 오호가 바로 됐나 안 됐나 그거는 볼 수 없으나 오호가 바로 됐는지 안 됐는지 하는 것은 그 열매로, 그 열매로 나타나는 육호를 봐라 하는 그런 말입니다.

이러니까 모든 것이 다 필연적이요 점차적인데 그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여게서는 4절부터 먼저 말하고 또 3절을 그 다음에 말하고 1절과 2절을 맨 마지막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직 신앙이 어리지 어둡지 또 아주, 군불 땔려고 하는 데에 생탱이, 생목 나무 가져온 것과 마찬가지로 생 게 돼 놓으니까 이거는 불이 붙지 안하지, 이러니까 그런 것을 좀 말리느라고 꺼꾸로, 알아듣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삼호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호, 이호를 하고 난 다음에 일호, 1, 2절에 일호를 마지막으로 말씀을 했습니다.

시편 1편에서, 의인의 길은 다 형통하고 악인의 길은 망하는데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에 시발이 어데 있는가?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의 시발이 어디 있는가? ○○○집사님, 고것 좀 알아 보십시오.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이 시발이 어디 있는지? 뭐? 자기가 알려고 달라들면 어려운 것도 알고 또, 어려운 것은 어려워서 모르다가 알면은 참 기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는 것인데 그뭐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애도 안 쓰고, 모르는 줄도 모르고 아는 줄도 모르고, 바른 줄도 모르고 삐뚤어진 줄도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 감각 없는 시체와 같기 때문에 뭐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돼. 얼마나 깨어 가지고서 기도해야 될란지.

기도도 말이요, 기도도 진리에 맞은 기도라야 되지 다른 기도는 그것은 응답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향기가 나서 썩은 내음새는 나지 않습니다. 순서를 모르고 기도해도 기도하니까 기도하는 동안에는 다른 잡된 생각을 대개는 안 하기 때문에 썩는 내음새는 덜 나오고 향기는 나온다. 그래서 기도를 향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고 행하게 되면은 옛사람은 견고해지고 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잘못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거기에서, 기도원에 가 가지고서 아주 못쓸 사람 만들어 가지고 옵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악령 악성 악습의 이 원죄 본죄 마귀의 일이 견고해서 그것이 자기 사상이 되고 주장이 되기 때문에 그자는 회개를 못 합니다.

그 회개할 때는 하나님이 몽둥이로 쳐서 다리가 뿔라지든지, 허리가 뿔라지든지, 대가리가 깨지든지 이렇게 절단이 나서 죽을 지경이 돼야 그때에 그 회개가 되는 건데 그래도 회개가 안 되는 것이오. 그것을 가리켜서 원죄,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잘못 기도하면 그런 것이 자꾸 되어져 갑니다. 기도는 자기 뜻을 이루려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고, 또 기도는 첫째가 자기의 잘못된 것을 찾으려 하는 것이 기도고, 둘째로는 자기가 마땅히 해야 될 자기 사명을 지금 찾으려는 것이 둘째로 기도의 중점이고, 셋째는 그러니까 자기는 지금 어떻게 경영하고 어떻게 도모해야 된다는 것을, 항상 자기 할 일, 자기 책임만 찾습니다. 자기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찾습니다. 그것이 기도의 성공이오. 그것만 찾아 하면 하나님이 뭐 하시는 것은, 우리 주관과 객관이 있는데 우리가 할 일만 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은 그뭐 즉시 당신이 응해서 이루어 주십니다.

제일 여게서는, 시편 1편에서는 제일 원인이 뭐이냐 하면은 “복있는 사람은” 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것이 제일 첫머리입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복받아야 되겠다. 하나님에게 복을 받아야 뭐이 되지 복 안 받으면 헛일이다.’ 제가 뭐 아무리 잘나봤자 그까짓 거 아무 소용 없어. 수단 좋아봤자 아무 소용 없어. 열심히 하고서 날쌔봤자 소용 없어. 또 유식해도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오. 유식도 다 노아 홍수 속에 다 들어갔던 것이오. 노아 홍수 속에 들어갔던 것은 다 아무것도 아니라.

과학도 아무것도 아니고, 지식도 아무것도 아니고, 재물도 아무것도 아니고, 미인도 아무것도 아니고, 미남도 아무것도 아니고, 홍수를 꿰뚫고 홍수에 매몰되지 안하고 홍수를 밟고 그 위에 올라선 그것이라야 가치가 있지 홍수 속에 들어간 것은 가치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있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하나님이 주시는 내가 축복을 받아야 되지 축복 안 받으면 안 된다.’ 이것이 제일 일호입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보다 과학을 낫게 여기는 자, 하나님의 축복보다 자기의 실력을 낫게 여기는 자 ‘내가 아무래도 학위도 따야 되고 무슨 실력도 갖춰야 되고’ 하는 그 실력을 하나님의 축복보다 낫게 여기는 자, 또 자기의 그 현실을 ‘나는 이런 좋은 지금 사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좋은 회사 나는 사장으로 되어 있다. 나는 좋은 직장을 가졌다. 나는 좋은 시민권을 가졌다.

나는 좋은 강대국의 지금 국민이다.’ 네가 썩고 망할 것으로만 가득 차서, 하나님의 축복이라야 된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는 데에 방해하는 그놈만 다 뚤뚤 끌어모아 가지고서 끌어 만들어 놓고 있으니까 점점 하나님과는 멀어집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한 여인이 두 남편을 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보야 섬기지요. 바보는 섬기지마는 슬기있는 사람은 당장 그것은 이혼이오. 성경에도 이혼하라 했어. “음행한 연고 없이는 하지 마라” 음행의 연고는 하라 그 말이지.

이런데, 하나님이냐 다른 것이냐? 악이 뭐인데? 하나님 외에 딴것, 악은 하나님 외에 딴것을, 뭐 인류 박애주의면 얼마나 거석하요? 톨스토이가 인류 박애주의입니다. 인류 박애주의지만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 아니오. 그 사람이 뭐 세례도 받았고 하나님 말 많이 하고 이런 사람이지만 예수 믿는 사람 아니오.

그것은 왜? 인류 박애주의로서 인류가 중심이지 하나님이 중심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나님을 전적, 다 믿는다고 하지마는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은 믿을 수 없다고 하고서 그가 부정했어. 그것 못 믿는다는 그 말은 모든 성경을 믿지 않고 자기 주관을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복있는 자는” ‘나는 복있는 자가 돼야 되겠다. 복은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복이 있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는 복받는 자 돼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제일 중점입니다. ‘하나님 앞에 복받는 자 되어지는 것이 그거 중요하다. 하나님께 복받는 자 되야 되겠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하나님 대신으로, 하나님 대신 보배, 하나님 대신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 하나님을 대하는 것,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 하나님을 대리하는 것, 하나님을 대하는 그런 것을 사람들이 만들지 안하려고 애를 쓰고 복없는 자는 하나님 대가 되는 것 그런 것을 만들라고 애를 씁니다.

왜? 하나님은 자꾸 거리끼면 안 될 것이고 하나님은 객관성이요, 하나님 대하는 것은 내가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 내가 가지면 내가 손쉽게 쓸 수 있고 언제든지 쓸 수 있지마는 하나님은 사귈라면 힘들고 이러니까, 칼도 남의 칼집에 들면 자유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와같이 지금 하나님에게 있으니까 하나님 그 사귀어서 하나님께 사정해 가지고 간구해 가지고서 얻을라 하니까, 그 효력을 볼라 하니까 힘이 들지마는 하나님 대하는 것, 하나님 대신하는 것, 하나님 대신하는 거 내가 이놈을 잘 마련하면 밤에든지 낮에든지 이거는 내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자유로 쓸 수 있다. 그게 더 편리하고 좋거든.

하나님 대신하는 것이 뭘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으로 하고 있는 것이 뭣뭣인지 한번 말해 봐요. ○○○씨 한번 말해 봐.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으로 하는 것 대리로 하고 있는 것. 하나님 의지하는 것만큼 하나님으로 하는 것보다도 뭘로 하면 된다는 그런 게 다 하나님 대신하는 것 아니야? 대신하는 게 뭣뭣인지 한번 알아봐요. ○○선생 한번 알아 봐. 돈, 또? 자기 실력, 또? 그래 돈, 자기 실력, 자기 환경, 세상 피조물의 조건 다 그런 것이 하나님 대하는 것이지. 그거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 그게 좋으면. 그게 하나님 대하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하나님 대하는 그런 걸 없애려고 애를 씁니다.

없애려고 애를 써요.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은 받지마는 하나님 떼내 버리고 ‘이 조건 좋으면 된다. 조건 구비하면 된다.’ 하나님보다 조건을 앞세우면 망할 줄 알기 때문에 암만 조건 좋은 게 있어도, ‘하나님이여, 내가 이 조건 좋은 거 여게 내가 성패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축복의 은혜에 성패가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고 확정했기 때문에 이 조건 좋은 이것을 내가 찾지 않습니다. 당신이 천하에 제일 나쁜 조건에서라도 당신이 축복하시면 얼마든지 될 수가 있고 천하에 제일 조건 구비한 조건이라도 당신이 나 모른다 하면 그만입니다.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것보다 당신을 높이 평가합니다. 당신이 주시면 나쁜 조건도 좋은 조건도, 나쁜 현실도 좋은 현실도, 장사하는 데 나쁜 장소도 좋은 장소도, 당신이 함께 하면은 사막에도 푸른 초장이 있는 줄을 압니다. 사막에도 생수가 있는 것을 내가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당신이면 다지 당신 버리고 뭐 이거 있으면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안하려고 애를 씁니다.

좋은 게 오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 의지하겠습니까? 이게 됩니까? 당신의 축복과 은혜로만 나는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여게다가 승패의 조건을 붙이지 않습니다. 성패의 원인을 붙이지 않습니다.’ 이래 그걸 항상 멸시합니다.

멸시하고, 멸시해. ‘하나님이 당신이 해 주셔야 됩니다.’ 이걸 항상 멸시를 하는 것이 나중에 가 보면은 그것을 정상적으로 평가했지, 멸시 안 하고 그걸 ‘암만 그거 멸시할 수가 있나? 그것도 귀중히 여겨야지.’ 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기울어져서 넘어가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섭섭해서 하나님이 삐꾸고 돌아갔어, 벌써. 삐꾸고 돌아갔다 말이오.

‘네가 뭐 그거는 나한테 은혜 은혜 주 대지마는서도 실상 깊은 잔재미의 속삭거리는 잔재미는 그놈하고 있고 나하고는 없다. 나는, 본남편 나는 너한테 벌써 배척을 당했고 간부하고 네가 둘이 속삭거리고 있다.’ 간부가 뭐입니까? 간부가 뭐입니까?○○○선생? 간부가 뭐인지? 녜,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인데 뭘 그러면 간부라 하는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라 말이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다” 하나님 벌써 삐꾸고 돌아가 버렸어.

못난 남자가 그 아내가 부정해도 그냥 덜덜 붙어 있지 그리 안 하면 붙어 있겠습니까, 있기를? 똑똑히 안다면. 몰라 그렇지.

이러니까 어짜든지 ‘복있는 자가 돼야 되겠다’ 복은 제게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복 주시면 있고 안 주시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복을 받아야 되겠다.

복 안 받으면 헛일이다.’ 요것이 제일 으뜸입니다. 제일 으뜸이 요것이오.

요것이 돼서 ‘하나님이 복 주셔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요것을 가진 자는 하나님이 버리지 않습니다. 왜? 당신 아니면 안 되고 당신이면 되고 당신에게 내 생사화복이 다 달렸으니까 당신 나 버리면 죽습니다.’ 하는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이 버릴 수 있어? 하나님을 볼끈 요동치 못하고, 하나님을 요동치 못하게 볼끈 붙드는 방편 중에 하나가 이거라.

그뭐 커단한 거 제맘대로 뛰어 돌아다니는 건 괜찮지마는 어머니가 그 안 먹이면 못 먹고 그만 죽는, 그 생사가 자기 어머니에게 달렸으면 그 어머니가 자녀 그걸 사랑으로도 버리지 못할 뿐이 아니라 양심으로 버리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라도 ‘저것은 죽고 사는 것이 내게 매였다’고 하는 그 책임성이 자기에게 딱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그 아버지는 자기의 생명보다는 아이 생명을 좀 못하게 여길런지 몰라도 자기 생명 다음에는 그 아이 생명을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붙드는 것은 ‘하나님 당신이 아니면 나는 망합니다.

당신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당신이 복 줘야 되고, 당신이 형통케 해 주셔야 되고, 당신이 나를 도와 주셔야 되고, 당신이 나를 인도해 주셔야 되고, 당신이 나를 북돋아 줘야 되고, 당신이 나를 심어 줘야 되고, 당신이 나 하는 일에 모든 걸 해 줘야지 당신이 전부지 당신 아니면 안 됩니다.’ 요렇게 당신을 바라보는 자를 당신이 버리지를 못합니다. 요것이 하나님을 붙드는 것 중에 하나라.

하나님을 꼼짝 못하게 붙드는 것을 그전에 방법을 가르쳤는데 몇 가지로 말했지? 일곱 가지. 하나님을 붙드는 방편 일곱 가지. 그거 그라면 뭐 하나님이 꼼짝 못해.

못 가요.

여게 시편 1편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복있는 자” ‘하나님에게 복받아서 모든 것 되지 복 안 받으면 안 된다’ 하는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시간 지나갔으니까 그 다음에 하나만 말해 주고, 그거는 그대로만 나가면 돼.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요것은 해 봐야 알지 그 전에는 몰라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그 말은 자기 중심의 사람들, 자기 중심의 사람들, 또 피조물 중심의 사람들, 피조물 중심의 사람의, 꾀라 말은, 꾀라 말은 정식 방식이 아니고 합법적인 진리적인 방식이 아닌, 옳은 방식이 아닌 삐뚤어진 방식을 다 가리켜서 꾀라 요렇게 말합니다. 삐뚤어진 방식을 가리켜 꾀라 요랍니다. 거게는 속이는 것도 있고, 거게는 기만도 있고, 거게는 허욕도 있고, 허영도 있고 어째 바르지 못한 방편입니다. 꾀라 하는 건 그것이오.

“악인의 꾀라” 그 말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다른 것 피조물 중심, 제 중심이든지 아내 중심이든지,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기를 그래 하고 있습니다. ‘저거는 우상이 있으니까 그 우상에서 깨어나게 해 주옵소서.

우상에서 헤어나게 해 주옵소서.’ 우상이 있는데 뭐 우상이라? 아내가 우상 되는 사람도 있고, 남편이 우상되는 사람도 있고, 제 지식이 우상되는 사람도 있고, 돈이 우상되는 사람도 있고, 저게 지금 교만해 가지고 뒤로 저뻥하이 이렇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그 우상이 있어 그래. 우상이 있는데 제딴에는 돈이 있거든. 또 기술이 있거든. ‘공산주의가 돼도 의사는 다 죽이지 안한다. 의사는 써먹을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용만 하지 죽이지 안한다.’ 이래 가지고 과학자들은 공산주의가 들어오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독자만이 절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 우상이라.

그게 저 망치는 거라.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는데 ‘이것이 있으니까’ 하니까 그건 다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놈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총으로 쏠 것 아닙니까? 활로 쏠 거, 사격할 것 아니요? 하나님이 사격하면 제까짓 게 뭐 천하 있는 공산주의가 다 달라들어도 하나님이 사격하면 그놈은 죽지 망하지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데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꾀라 말은 그거라 말이오. 꾀라 말은 정상적인 그 방식이 아닌 것을 가리켜서 꾀라 이렇게 말합니다. “악인의 꾀” 하나님 중심을 벗어난 것, 어떤 피조물 중심의 계획이든지 경영이든지 주장이든지 운동이든지 “좇지 안하며” 거게 따라가지 안하며, 거게 따라가지 안하며, 그러면 하나님 중심이 아닌 그 중심을 자기가 따르지 안하려고, 하나님 중심이 아닌 중심을 따르지 안하려고, 또 하나님의 뜻에 맞은 그 법칙이 아닌 그 꾀가 되는, 궤휼이 되는, 복술이 되는 그런 걸 따르지 안하는 요것만 생각합니다, 요것만.

요걸 생각하면은 모든 사람과 자기와의 딱 구별이 돼 버립니다. 모든 사람과 이 모두 다 얽혀 타협하는 것이 딱 구별이 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 구별해서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가 깨끗한 사람이 됩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 깨끗한 사람이 됩니다.

이러니까 세상 수많은 중심에 그 흩어 놓은, 열 중심에 흩어 놨으면 자기는 열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백 중심을 갈라 놨으면 백 가지로 자기는 갈라졌습니다.

분산돼 버렸어.

사람이 화목성이 좋은 줄을 알지마는, 좋기는 좋지마는서도, 화평함과 거룩함이 있어야 되지 그것 없으면 소용 없어. 이러니까 무골호인같은 사람, 팔방미인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은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아하니까 제딴에는 처세술이 능한 줄 알지.

내가 어떤 목사님에게 그때 한번, 자기가 병들었기 때문에 내가 딱 말하기를 ‘네가 네딴에는, 소진 장의는 삼국 정승을 거석하니까, 삼국은 그때 원수인데 그가 여게 가 저게 가 말을 잘 하니까 삼국 정승 소진 장의라 하는데 아주 그와 마찬가지로 네가 이 사람도 화합되고 저 사람도 화합되고 네딴에는 자꾸 처세술이 능한 줄 알지마는 너는 팔방미인이라. 너는 중심이 없는 사람이 돼 버렸어. 그걸 회개해야 돼. 그거 회개 안 하면 너딴에는 아주’ 아주 능한 처세술 신앙 생활에 능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하고 화목해서 다 좋아하고 ‘나는 이 사람도 좋아하고 저 사람도 좋아하고 저 사람도 좋아하고 나는 다 좋아한다.’ 화목하는 게 좋은 것 같지마는 자기를 분산하는 것으로 되기 쉽다 그 말이오.

자기를 하나님 중심 외에 딴 중심 그런 것을 하나를 용납하면 자기는 둘로 갈라졌고, 하나님 중심 그거 중심. 서이로 갈라지면 서이로 갈라졌고, 열 중심으로 나눠지면 열 가지로 갈라졌다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에게 대한 마음이 나누어졌다 말이오. 인격이 나누어졌어.

그러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께는 십분지 일밖에는 안 돼.

이런데 “악인의 꾀” 꾀라 하는 것은 ‘이게 꾀가 이게 원 진리의 방식이가?’ 거게서 살피고, ‘이게 보자 이게 악이, 이 사람이 지금 주장하고 있는 이것은 피조물 중심이가 하나님 중심이가?’ 그것만 살펴서 피조물 중심을 버리려고 하면은 열 명이 앉아서 회의를 하는데 앉았기는 앉았지마는, 열 명 앉아 회의하는데 하나도 합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도 합해지지 안해.

‘저것도 보니까 피조물 중심이다. 하나님 위하는 척하지마는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지 실은 중심은 하나님 중심 아니다. 저건 다른 사람의 피조물 중심을 두고서 저건 피조물 중심이다 나무라고 책망하고 있으니까 저거는 바로 된 것 같지마는 그것을 사다리로 삼아서 밟고 올라설라 하는 것이다.’ 이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려고 살피고 보면 자기는 또록또록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말아. 또록또록한 사람이 돼서, 그러니까 아무 땅위에 붙을 데가 없으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향하는 솔직하고 진실하고 단순하고 단일성의 하나입니다. 이중 삼중이 아니고 단일성의 사람이 됩니다.

단일성의 사람이 되면 그것 다 싫어하고 보니까 하나님밖에는 비위 맞은 이가 없어. 하나님밖에는. 이러니까 하나님과 결합이 되는 거라. 이래 가지고서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러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면 필연적으로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게 되고,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면은 필연적으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하게 되고, 이 세 가지 하고 보니까 여호와의 율법밖에는 좋아할 게 없고, 여호와의 율법만 좋아하는 이 네 가지를 하고 보니까 밤낮 생각하는 것이 주야로 묵상하는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된다. 그러니까 그는 시절 따라서 열매 맺게 된다. 필연적이다. 그러니까 그 잎사귀는 항상 청청하다.

그러니까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요 순서적으로 그런 것입니다.

자꾸 가서 새기고 깨닫고 이래 가지고 자기가 그 실행을 해 봐야 되지, 사람이 악인의 꾀 좇지 안할라고 하면은 거게서 그만 외로워지고 대적이 많아집니다.

대적이 많아져.

이러니까 가만히 회의나 싸움을 봅니다. 보면은 ‘이거는, 이 회는 악인이 주장을 하고 있다. 악인의 세력들이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려면 거게서 고독하게 됩니다. 독보의 신앙이 되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고 둘이고 들어붙으면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려는 요거 하나에서 그 밑에 것은 저절로 됩니다.

‘하나님의 복이라야 된다’ 요것만 하면 필연적으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필연적인 구원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생각해서, ‘일호가 잘됐나 못됐나?’ 여게는 일호가 뭐입니까? 여게는 일호가 뭐이 일호요? ○○○목사님? 복이 일호입니다. 일호가 잘됐는지 못됐는지 그것은 어데서 알면 됩니까? 일호가 잘됐는지 못됐는지 그거는 어데서 알면 돼? 이호에서 알 수 있어, 이호에서. 이호. 일호가 바로 됐으면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이 돼.

자기가 악인의 꾀, ‘아이구 내가 악인의 꾀에 이거 자꾸, 악인의 운동에 내가 가담할라?’ 이걸 자꾸 살피는 사람이 됐으면 일호가 잘됐고 거게 대해서 무심하면은 일호는 제딴에서 제 꾀로 제 평가로 됐지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짜라 그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맙시다.

또 지하철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꼭 계속을 합시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도록 하십시오. 외워야 됩니다. 외우고, 명상하고, 또 그대로 한번 연습해 보고, 한번 연습해 보는 건 실행으로 연습하는 것입니다. 실행해 봐요. 그러면 깨달아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이 있을 것이요 그때 가르칠 때에 자기에게 있는 것이 그대로 갑니다.

행함 하나도 없고 입술만 하면은 녹음기 말하는 것 모양으로 행함은 가지 안해.

내게 있는 영감이 있어야 가고, 행함의 능력이 있어야 가고, 진리를 내가 아는 게 있어야 가고, 내게 있는 것이라야, 가르치는 건 주는 것인데 내게 있는 것이라야 주지 내게 없는 걸 어떻게 줄 수가 있습니까? 그런 외식을 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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