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전투-말씀-형통


선지자선교회 1984년 8월 10일 금새집회

 

본문 : 시편 1편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말씀은 전에도 자주 배웠기 때문에 세밀한 해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강령만  들어서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만 몇 가지 증거하겠습니다.

 여기에 '복있는 자'라고 하신 이 복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대로 뭐 오복이니  하는 그런 것 아닙니다. 영과 육의 복 있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금생과 내세에  복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의 그  구원을 잘 이룬 것을 말해서 복 있다 이렇게 표시한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구원을 잘 이루는 사람은 그 말입니다. 구원을 잘 이루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 구원을 잘 이루는 사람은 이렇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번에도 여러 날 동안을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특히 우리가  공부한 것은 음녀의 공부를 했고, 간부의 공부를 했고. 또 하나님의 선물의  공부를 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공부했지마는 앞으로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뭉치어 하나가 되고 어린 양인 참 교회만이 거기에 가담되지  아니해서 온 세계는 두 쪽으로 나누어진다 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혹 표면에는 이렇게 저렇게 혹 두 가지로 세 가지로 이렇게 그 표면을  가진다 할지라도, 외모는 두 단체 세 단체 혹은 이렇게 보여진다 할지라도 그  뿌럭지는 하나라. 뿌럭지는 하나인데 사람들은 잘못하면 우리가 앞으로 온  천하에 모든 것이 다 하나된다고 했는데, 이런 사상과 저런 주장과 또 이런  단합과 저런 단합이 단합 이 혹 둘이나 서이나 이렇게 될 때에는 우리가 미혹  받기 쉽습니다. 하나가 된다 했는데 아직까지 하나가 안 되고 둘 셋이 있으니  아직까지 때는 안 됐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외모는 그렇게 두 단체 세 단체로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서 깊이 심사할  것은 그 어린 양을 대항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것이 하나인지 둘인지 그 면을 좀  잘 살펴야 될 것입니다.

 악령은 저의 때가 없는 것을 아는 고로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과 힘을 다 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할려고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데는 이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이 말씀이 흐리도록 해야 되니까 너희들이 보고 있는 성경대로 안  된다 하는 그것을 하나 좋은 그 전술로 삼고 전쟁하는 술법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우리 보기에 혹은 두 쪽 세 쪽으로 그렇게 될지도 모르고 넷 쪽, 다섯  쪽으로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것이 몇 쪼가리로 된다 하든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데는 한 덩어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된 교회로 더불어 대립되는 그 면이 하나이면 그 자체가  저희들끼리 단결해 가지고서 마치 야바우노릇 하는 것처럼 연극하는 것처럼  저거끼리 단합해 가지고 '너는 붉은 모자 쓰고 나가거라. 나는 검은 모자 쓰고  나갈게. 나는 누른 모자를 쓰고 나갈게.'그렇게 외모는 다를지라도 그 욕망은  하나님의 교회를 대립하는 그 욕망 하나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혹 그럴  때에 외모까지가 다 하나가 되지 안한다고 해 가지고 혹 미혹을 받을까 해서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또 더 첨부하는 것입니다.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하나가 되는데 우리가 잘못 비판하고 계산하면  그것이 하나인 것을 둘로 셋으로 그렇게 보기 쉽습니다. 대체적으로는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기가 가까울 때에는 온 세상은 세상과 세상끼리 하나 되는 것은  아주 관리하게 쉽게 하나가 되고, 또 외모가 무엇이 이렇다 저렇다 할지라도  속은 하나되고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대항하는 이런 일이 되게 됩니다.

 마치 지금도 공산 국가라 하면은 대동소이입니다. 공산 국가라 하면은 약간씩  의견이 다른 거 있지마는 그래도 대체적으로 한 단체입니다. 또 민주주의 해도  국가는 다르니까 각각 약간씩 다른 점이 있지마는 그래도 민주주의적인 그런  정신으로서 하나된 것처럼 앞으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이 모든 것이 한 덩어리  되는 그때도 혹은 외모는 그것이 한 덩어리가 다 될런지, 외모는 한 덩어리가 안  되고 끄트머리 외모는 약간 약 간 다른 그런 외모를 가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외모가 한 덩어리 되는 그 면만을 보고 생각하고 있으면 혹  실족하기 쉽겠습니다.

 있는 사상이라는 모든 사상이 다 하나되고. 힘이라는 것이 하나되고 온 세상이  다 하나되고 이렇게 하나가 되는데 하나가 되는 그 점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어린 양 참된 교회를 대항하는 참된 교회를 대항하는 그 면으로 그 모든 것이  하나된다 요렇게 우리가 생각을 하고 그 면에다가 항상 연구를 하고 지혜를  가지고 살펴본다고 하면 거기에는 실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형까지  하나된다는 그것만 생각하고 우리가 대비한다고 하면은 우리는 혹 실족할런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 면은 하나됩니다.

 그러기에, 어린 양은 기독교가 예수교가 어린 양이요. 그 어린 양 예수 교  가운데도 진실한 자들만 그들과 대항합니다. 그러면 진실한 자들이라면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인데 참된 신앙을 가진 그 사람들과 대항되는 것이니 과거  역사를 본다고 하면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외식자와 진실자가 대항되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순교자들은 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순교를  당했지 이방인에게 순교당한 사람 없습니다.

 손 양원 목사님도 순교당할 때에 그 순교를 먼저 안내한 사람이 애양원 교회  교인이 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그렇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도 예수님의 그  죽으심을 안내한 사람이 바로 열 두 제자 가운데 있는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의인이 이 순교를 당할 때에 예루살렘 밖에서 순교  당하는 일 없다. 예루살렘 안에서 순교 당한다 그렇게 말한 것은 예루살렘은  하나님 믿는 백성들 속에 있는 성입니다. 하나님 믿는 백성들 속에 수도로 되어  있는 것이 예루살렘입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우리는 늘 깨어서 조심할 것은 어린 양을 대항하는 단체로 온  세계가 하나된다 하더라 하는 요것을 제일 명심하고 있으면 거기에는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서 예수 믿는 교회라 하면서 그래 교파의 이름을 가지고 참된  예수교를 대항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이 이방이 대항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공산주의가 대항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이런데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  면에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어린 양으로 더불어 다툴 것이다 하는 요 면을  두고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그것을 살피고 그것보다도 더 우리가 힘쓸 것은 그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진실한 사람이 될라 하면은 그 지식이 진실해야 되고 또 허위가 진실하게  되면 그만 두 가지만 진실하면 진실한 사람됩니다. 거기에 빠져 있는 것이  영이기 때문에 영은 먼저 진실해 가지고 있는 고로 그만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진실이 뭐이 진실인가?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삼는 것이 지식  진실이요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이 행위 진실이요. 또 하나님의  말씀에 속해서 동거 동행하는 그 영이 진실한 영이니 이 셋이 합하면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눈이 어두운 사람은 큰 거는 보여도 작은 것은 안 보입니다. 저도 이렇게  돋보기를 쓰는 것은 작은 것은 안 보이기 때문에 돋보기 씁니다. 또 먼 데 것은  안 보이기 때문에 돋보기를 씁니다.

 이렇게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하나 된 그 모든 세밀한 부분을 그것을 다  알아야 요 면은 요 면으로 대항하고. 조 면은 조 면으로 대항하고, 요것은  요렇게 준비하고 저것은 저렇게 준비를 해야 되는 것인데, 그러기에 하나님의  교회의 대적을 똑똑히 보고 세밀히 보고 상세하게 보고 자세히 볼 수 있어야  되는데, 그 볼 수 있는 그 눈은 어린 양을 대항하는 그 단체로 모든 것이 다  뭉쳐진다 하는 그것만 보고, 그러면 큰 뭉텅이로 뭉쳐진다는 그 면만 보고 다른  면을 보지 못하면 대단히 서툴겠습니다.

 그 면에다가 뭉치는 것은 그 각각 저거들이 연극하는 거와같이 저거들이 단합해  가지고서, 우리 속은 하나가 돼 가지고서 지금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워서 어린  양을 박멸시키자 이럴지라도 성경 말씀에 그 모든 것이 단합해서 하나가 되어  가지고서 한 마음을 한 뜻을 가지고 한다고 했기 때문에 벌써 장생골 거기에서는  그런 것을 설교를 하고 예언해 놨기 때문에, 이제 그러면 안 되니까, 우리가  속은 하나나 어린 양으로 더불어 대항해 싸우는 면은 하나이지마는 우리가 하나  아닌 것으로서 이렇게 변색을 해 가지고 나가자. 이래서 이런 외모 이런 단체  저런 단체 여러 단체로 외모는 여러 단체로 돼 가지고. 속이 하나 되어서 목적인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목적은 하나로 이렇게 싸우는 그런 일이 있을 터인지  모르니까 하나 된 다 하는 그 면을 외부적으로 우리가 지식 해 가지고 있어야  되겠고, 외부적으로 그 면을 지식하고 있어야 되겠고, 그 면을 우리가 생각하고  있어야 되겠고,  또 그 안에는 외모로 하나되는 그것이 둘로 나뉘어 될는지 서이로 될는지  지금은 뭐 여러 수십 수백인데 그래 될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외부가 하나 되는  그것도 우리가 조심하지마는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 면을 우리가 조심하자  이래 가지고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 면에다가 우리가 주시를 해 가지고  거기에다가 주목을 해 가지고 잘 살피면 아, 이것은, 이것은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지마는 그 어린 양을 대항하는데에는 저 사상을 가진 것이나 꼭 같다. 이  나라는 저 나라와 한 나라가 아니지마는 이 나라로서 어린 양을 대항하는 것이나  저 나라로 어린 양을 대항하는 것이나 어린 양은 대항하는 것은 이 나라는 둘,  서이지마는 꼭 같다. 요렇게 그 면을 우리가 살피면 좀 눈이 더 밝아지고 우리가  세밀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보다도 더 세밀히 알게 되는 것은 진실한 자가 되려고 진실한 그 지식을  진실한 지식을 가지려고, 진실한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진실한 지식인데,  진실한 지식을 가지고 진실한 지식으로 모든 것을 다 이렇게 비판하고 평가해서  진실한 지식에게만 지도를 받아 가지고 진실한 지식이 지도하는 대로 그대로  행하려고 이래하면은 아주 거기에는 세부적인 면도 다 보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현실 현실을 만날 때에 내가 하나님의 지식에 내가 지도를 받느냐, 이  인간 지식에 지도를 받느냐? 요 현실에서 어느 지식에 내가 지도를 받아서 어느  지식을 내가 영접하고 환영해서 그 지식에 지도를 받느냐 하는 요 둘이 현실에서  지금 서로 많은 신강이 있습니다. 그냥 싫어 하는게 아니라 대단히 거기에  마찰과 대립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때에 하나님의 지식에 지도를 받을라고  하면은 이 인간 지식의 지도의 세력이 아주 압도하고 미혹하고 유혹하고 또  타이르고 별별 그 마찰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의 지도를 받겠다. 하는  여기에서 많은 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적을 발견할 수가 있으니까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하는 그면 만  보고는 아주 자기가 볼 때에 그 적의 세부면이 보이지 안하지마는 진실한 지식을  가질라고 하는 거기에서 그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 대적들에 대해서  세부적 세부면을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또 자기가 내가 이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을 하며 어떻게 모든 것을 취급을  하느냐 할 때에 하나님의 지식이 나를 지도하는 대로 그 지도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고 그 지도에 따라서 모든 것을 취급하겠다. 그 지도를 따라서 내가  행동하겠다. 이랄 때에 그게 뭐 쉽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식에게 지도를 받아서 행동하려고 하면은 이 세상 지식대로 지식에게 지도를  받으려고 하는 그 세력이 많이 나타나 가지고 우리를 대항하게 됩니다.

 그렇게 대항하게 될 때에 그때에 그 대항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외모가 세  뭉텅이 네 뭉텅이가 됐다 할지라도 보니까 그 면으로 다 하나라 하는 것으로서  거기에서 눈이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진실을 만들라고 애를 쓰는  사람이 아니면 어린 양의 적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그 첫 시간부터 단합이라는 그 단합을 많이 말했는데, 이거는 아주 외형적이고  외부적입니다. 너무 그것을 오늘은 어떻게 해 가지고 있느냐? 이 단합이라 하는  것을 죄악시하지 안하고 이 단합이라는 것을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 적대시하지  안하고 이 단합이라는 것이 아주 예수교 중에 가장 진수요 그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고 이렇게 오인을 딱 하고 있는 것이 온 세상들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지금은 뭐 단합이라는 것이 가속도로 지금 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단합이 아니라면 벌써 그 사람은 독선주의요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요 그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이요 그 사람은 고집쟁이요 그 사람은  치우치는 사람이요 이래서 다 정죄를 해 가지고서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은 그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할 만치 이렇게 지금 모두 인식이 돼 가지고서  가속도로 지금 나갑니다.

 그러기에, 과거에는 교파들이 여러 교파가 있었지마는 지금은 교파가 여러  교파가 있지 안하고 이름만 그래 과거에 있었지 지금은 교파와 교파에 다 교파  초월이라, 교파 초월한 사랑을 가지자 이래 가지고서 교파와 교파의 그 관념이  없이, 그 관념이 없는 것은 뭣을 말하는고 하니 과거에는 교파가 지방색을  가지고 나눠진 것도 있었지마는 그래도 대개는 교리와 신조 문제 때문에  나뉘어졌는데 지금은 교리 신조를 가지고서 그렇게 다툴 필요가 없다 하는  것으로서 다 하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 그라면서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교파가 이것이 한쪽 머리는 이 교파를  초월해서 모두 단합되자 이래서 그 우주 통일, 우주 통일을 주장하는 그 교파를  아주 이단시했었는데 그 뭐 이단시한다는 것도 구원이 없다는 말은 아니고 아주  교리와 신조적으로 신앙적으로는 그는 너무 속화됐다 이렇게 봤는데 지금은  그것을 찬성하고 다 우리가 그와 같이 합하자 이렇게 사람들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라면서, 또 지금은 교파가 과거보다 몇 십 배 늘었습니다. 몇 십 배 늘어서  마음대로 자유로 자기 교회 교회마다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뭐 이 교파도  속하지 안하고 저 교파도 속하지 안하고 우리는 또 우리 독단으로 간다. 우리는  이 교파고 저 교파고 가릴 것이 없이 그렇게 아무 교파도 속하지 않는다  이러니까 교파수가 또 많습니다.

 이렇게 과거에 있던 것을 없이 해서 합하자 이라고, 또 여기에서 늘여트려서  이렇게 나눠서 또 갈라트리자 이래 가지고 합하는 것도 자유로, 나누는 것도  자유 이래서 뭐 꼭 그 합해야 된다, 꼭 나누어야 된다 하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참 신사적인 신앙이요 이것이 아주 관대한 신앙이요 인격적  신앙이라 이래 가지고서,  이 모든 것을 자꾸 이렇게 합했다가 나누었다가 이렇게 하는 그 바람에  사람들이 거기에 끼여 가지고 그만 얼마 동안 시달리고 나면은 거기에서 뭐  자기는 무슨 교리 주장도 그만 피곤하고 신조 주장도 피곤하고 교파 주장도  피곤하고 이러기 때문에 지금은 뭐 피곤한 그런 교리 설교를 할 필요가 없고  교파 설교를 할 필요가 없고 뭐 이단이니 틀렸느니 이것이 바르니 옳으니 그렇게  그것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 그 구별하는 것은 그거는 다 너무도 소인적이고  그거는 너무도 불화적이고 이러니까 그것은 편벽되고 못 쓴다 이래 가지고 점점  그렇게 돼 나갑니다.

 이러니까 첫째로 이 모든 것이 뭉치자 하는 것을 모두가 다 제일 좋은 것으로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면에 대해서 주의를 많이 줬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아무리 뭉치는 것이 좋지마는 진리를 버리고 뭉칠 수는 없다.

우리는 뭉쳐도 진리로 뭉쳐야 되지 진리를 버리고 인간끼리 그칠 수는 없다 또  아무리 뭉치는 것이 좋다 해도 하나님을 중심해서 뭉치지 인간을 중심해서 그래  그렇게 뭉칠 수는 없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을 하고 이 뭉치는 것을 심사한다  할지라도 어디까지 나 진리를 중심해서 하나님을 중심해서 뭉쳐야 된다 하는 이  정도를 가지고는 너무 자기와 거리 먼 상관이 없는 공중 누각과 같은 그런 그  방식이요 태도이기 때문에 그 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적을 명중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니까 그 적을 바로 발견하는 데는 진실한 사람이 돼야 된다.

 진실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은 자기가 성경 말씀에 그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 그 지식으로 자기가 모든 것을 지도 받을라고 그 지식의 그 지도를  받을라고 하는, 그 지식을 자시가 등용하고 용납하고 그 지식을 자기가  영접하려고 이렇게 그 지식을 자기가 영접해서 자기 지식으로 삼으려고 요렇게  하는 여기에서 대개는 그 적이 다 나온다. 그러면 개인 개인을 만 날 때든지  교파를 만날 때든지 또 이렇게 일반 그 생활을 만날 때에 자기가 하나님의  지식으로서 자기 지식을 삼으려고 하는 여기에서 그 많은 대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행동할 때에 하나님의 지식에 내가 인도를  받겠다. 하나님의 지식에 인도를 받고, 그럴 때는 하나님의 지식의 인도를  받을려고 하면 사람의 지식의 인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게 없으면 사람의  지식인지 하나님의 지식인지 아무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의 인도를 받겠다. 이라며는 비로소 그 사람의 지식이 와  가지고서 인도하려고 할 때에는 처음에는 와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인지 사람의  지식인지 잘 구별하지 못 할 만치 사이비한 걸 가지고서 우리에게 유혹하지마는  하나님의 지식의 인도를 받을라고 작정을 하고 고대로 하나씩 양보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지식의 인도를 받을라고 하면은 벌써 이 세상 지식의 인도라 하는 것이  똑똑히 보여지게 됩니다.

 이래서, 자기가 진실한 그 지식과 진실한 행위 이 두 가지를 자기가 가질라고  요 면에 애를 쓰게 되면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하나 되어서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것은 그것이 뭐 껍데기를 붉은 모자를 쓰고 나왔든지 검은  모자를 쓰고 나왔든지 횐 모자를 쓰고 나왔든지 알롱달롱한 모자를 쓰고  나왔든지 어쨌든지 한 내끼도 빠지지 안하고 낱낱이 거적은 다 발견해 가지고서  거적을 다 대항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첫 시간에, 첫 시간인가 어느 시간인가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면은 적을 발견하지 못한다 하는 그런 말을 약간 좀 증거하기는  증거했는데, 이제는 오늘 아침에는 마지막 시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말해줘야 될  것이라 해서 말해 주는 것입니다.

 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그 진실한 자들은 진실한 지식과 또 진실 한  행위 그 진실한 영, 그러니까 진실한 영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진실한  지식과 진실한 행위와 진실한 영이 합하면 그것이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진실을 가지려고, 진실은 뭐 이 진실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은 영감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타고 들어가면 영감을 만나게 됩니다. 영감의 말씀이기  때문에 영감의 말씀대로 자기는 지식하고, 영감의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서 이제는 영접하고 또 하나님의 지식의 인도를 받아서 자기가  움직이고. 또 하나님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이제 동거 동행하고 있는 우리의 영이  있고 이래서 요 두 면을 힘을 쓰게 되면 자연히 모든 대적을 세밀히 발견해서,  우리가 부산에서 떠날 때에 그때에 그 날 밤에 아주 비상이 걸려 가지고서 뭐  야단이 났읍디다. 그거는 간첩이 어데서 와 가지고서 지금 그것이 간첩이 몇이  와 가지고 그랬는데 간첩을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 그거는 모르지마는 그 간첩이  하나 들어온 거 그걸 뭐 그까짓 하나 오나 마나 잡을라 하는가? 간첩 하나. 둘  온 것이 그것이 온 나라를 바로 끌어 엎을 수도 있다 그 말이오. 조그만한 몇 명  간첩이지마는 그것이 전국을 망칠 수 있는 그런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에 정신을 차려서 지극히 작은 것을  단속하고 지극히 작은 죄를 단속하고 지극히 작은 그 마귀의 화살을 단속해야  되지 그걸 단속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러기에, 그 외부적으로는 이렇게 모든 것이 단합된다 하는 그 단합되는  그것을 우리가 첫째는 방어해야 되겠고, 또 단합된 그들의 그 단체에 단합되는  거기에만 주시할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을 대항하는 것으로서 어떤 것이 다 단합이  되어 있느냐? 어린 양 대항하는 것은 다 그 단체들이다, 또 이렇게 봐야 되겠고  그보다도 세밀한 것은 진실한 자만 이긴다 했으니까 내가 하나님이 내 지식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영접하려고 할 때에 이 지식을 차지하라 하는 그  외부에서 반대하는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하는 것이 나타나니 그때에 내가  하나님의 지식을 내 지식으로 영접하려고 할 때에 그때에 세부적인 적을  발견하게 된다 또 하나님의 지식에 지도를 내가 받을라고 할 때에 그때에 그  세밀한 적이 다 발견하게 된다. 이러니까 이 면에서 적을 발견하고 대항해  나가야 되지 이 면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은  대내전인데. 이것이 대 내전이요 자기에게 직접 그 접촉되는 전쟁인데 이 전쟁을  하지 못하면 나중에 외식자로 다 패전하게 된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대로의 지식,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성경대로의 지식,  성경대로의 행위 이래서 성경대로의 사람이 되면 이 성경은 뭣을 가리키고  있는가? 이 성경은 그 어린 양 예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  양 중심의 그 지식, 어린 양 중심의 행위, 어린 양 중심의 영 이래 가지고 어린  양 중심의 사람이 되면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 시므로  이기시는데, 그 중심이 되면 그분이 내게 와 가지고서 어린 양이 이기신 그 양이  내 안에 와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못하면 외모의 단체만 보고 대적 대항해서 싸우고 자기 바로 몸에  붙은 간첩 자기 몸에 붙은 그 원수는 생각지 못하기가 쉽다 그 말이오. 자기  속에 하나님의 지식이 아닌 그 지식이 들어와 있으면 그것이 간첩입니다. 그것이  간첩이라. 그것이 하나 들어오면 우리 전신은 파괴시켜 버립니다. 또 우리 행위  속에 하나님의 지식의 지도를 받지 않는 그런 행위가 우리 속에 있으면 그  행위는 간첩입니다. 그 행위 하나가 들어서 우리 전신을 파괴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오늘 아침에 마지막으로 이 봉독한 것을 간략하게 말할려고 합니다.

 첫째는. 복 있는 자라 이랬습니다. 복 있는 자라 말은 영과 육이 잘되는 자라  말입니다. 영과 육이 잘되는 자라. 잘 되는 자는 이 복은 자기가 만 드는 복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복을 받는 것입니다. 복은 받는 것이지 자기가 만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받는 것이지 자기가 만드는 것은 아니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이 자전차 발통이 조그만한 요 찍해야  한아름 밖에 안 되는 것이 요만 밖에 안 되는 것이 그것이 천 리도 갈 수  있습니다. 뱅뱅뱅뱅 돌면 자꾸 간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렇게 이 신앙생활 할 때에는 신앙생활이 그러면 자.

성경 읽는 것도 신앙생활. 기도하는 것도 신앙생활 또 주일 지키는 것도  신앙생활. 연보하는 것도 신앙생활, 전도하는 것도 신앙생활 요렇게 뭐 이  신앙생활 이러니까 어디서 시작해야 될지 그것을 모르기 쉽다 그 말이오.

 마치 계란이 먼저냐 병아리가 먼저냐 닭이 먼저냐 이걸 누가 뭐이 먼저라고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보기 때문에 닭이 먼저라 이렇게 하지마는 이세상  사람들은 그 무엇이 먼저인지 모릅니다. 자 계란이 먼저냐 어디서 시작했느냐  하는 것은 자기네들은 모른다 그거요. 계란이 처음 시작됐는지 닭이 시작됐는지  병아리가 시작되었는지 병아리 속에서 닭이 나오고 닭 속에서 계란 나오고 계란  속에서 병아리 나오고 자꾸 이러니까 뱅뱅도니 어디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이 여러 그 부분이 있으니까 어디서  신앙생활을 시작할까 그것을 모르기 쉽다 말이오. 그래서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언제든지 요 시편 1편에서 복에서 시작하라. 복에서 시작하라. 복에서  시작하고, 복에서 시작해 가지고서 그 다음에는 뭐 시작하나? 그 다음에는 전투  생활에서 시작하라. 그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서 묵상하는  거기로 또 그 순서를 밟아라. 그러면은 이제 모든 것이 다 형통해서 승리하게  된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라.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 있고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라, 하나님이 복 안 주시면 저는 골만 빠지지 헛일입니다. 아주 일생동안 애를  써서 했지마는 마지막에 죽기 전에 천물이 돼요. 죽기 전에 천물 돼요. 이러기  때문에 젊을 때에 뭐 목회한다고 큰 교회를 목회를 하고 이렇게 떠들어대지마는  마지막에 죽기 전에 실패하고 실수해 가지고서 아주 팍 썩어 버리고 또 아주  배척 당해 버리고 천물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시작도 문제지마는 이제 결말이 좋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작이 좋으면 결말이 좋고 이런데, 우리는 결말이 그거 중요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뭘 중간에 어떻다 해도 결말이 못 쓰면 소용없습니다.

 그 사람이 장사한다고 이 사람이 장사한 지가 십 년 됐다고, 십 년 됐는데 그  사람이 뭐 하루 몇 천 만 원 매상을 올려서 사고 팔고 몇 천 만 원 매상 올려  굉장히 장사 잘하는 사람인데 마지막에 장사를 딱 정리하고서 손을 뗄라고  보니까 돈은 한푼도 모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 장사 잘하는  사람입니까 실패자입니까? 실패자라 그 말이오. 그 다른 사람 보기에 뭐 장사가  되는 것 같지 않고 이렇지마는 나중에 그 정리하고서 떡 나오니까 큰 재벌가가  되었더라. 그러면, 그 사람 돈 장사 잘한 사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복 주시면 하나님이 복 주시는 지식 하나님이 복  주시는 말, 하나님이 복 주시는 행위, 하나님이 복 주시는 몸, 하나님이 복  주시는 그 인격 이게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지 복 안 주시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 사람들에게 그렇게 매수를 당하지 안하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에게 매수를 당하지 안하시는 분이요, 또 당신은 사람의 그  유혹의 꼬임에 빠지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빠지지 않는 하나님이시오. 또  당신은 인간의 단체 그 데모 운동에 겁이 나서 쩔쩔매는 우리 하나님이 아니시라  그 말이오. 또 사람들의 그 위협이나 협박에 뻘뻘 떨려서 그 끌려가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혹 그런 사람 있습니까? 이래 모든 걸 이래 생각하다가 내  구원은 둘째 두고, 이 전지전능 또 지공 지성 이 완전자 이 사랑은 우 선 놔두고  사랑은 내두고, 이분은 참 전지전능이요 완전자요 지공 지성 자라. 이분이  계시는 것을 세상을 보고서 찬양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세상에는 너무 이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것이 없어서 뭐 그 공의 가  있습니까, 거기에서 구별이 있습니까, 바로 아는 것이 있습니까? 전부 거짓  말쟁이가 세상을 점령하고 악한 자가 점령하고 이렇게 그 치우친 자가 점령하고,  봐야 이것도 봐야 썩었고 저것도 봐야 썩었고 하나도 공의도 없지 진실도 없지  참 정직도 없지 또 바로 아는 것도 없지 안 속히는 인간이 없고 안 속히는  인간이 없고,  이러니까, 세상이 너무 허무해서 도무지 이런데 뭘 참으로 세상만 본 다면 그  뭐 자, 사람이 세상을 본다면 인간이 죽으면 끝난다 하면 그걸 인간이 죽으면  끝이 난다, 어쩌든지 죽어 버리면 끝난다 이렇게만 지식을 가졌다고 하면은  세상을 보고는 세상을 아는 사람은 자살하는 사람이 제일 많을 것입니다. 아야  이걸 내가 고칠래야 고칠 수 없고 또 거기에 따라서 가봤자 또 따라서 가니  더럽고 이러니까 그만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자 하는 그 자살하는 사람이  제일 많을 것입니다. 너무 세상을 볼 때에 도무지 그 참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어. 곧은 것이 하나도 없어. 바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공의가 하나도 없어. 공의라는 것은 자기에게도 사가 없는. 사가 없는 공의인데  전부 자기라는 사 이것이 움이 터 가지고 이것으로 주장해서 모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니까 이것도 봐도 사가 뿌럭지고 사가 그 종자라. 이것도 봐야 사가 종자  저것도 봐야 사가 종자, 그놈의 말도 보면 사가 종자, 그 사상도 사가 종 자, 그  종교도 사가 종자. 사가 종자 그 모든 것의 존재가 다 사라는 자기중심 사라는  그것이 다 종자가 돼 가지고 있으니까 그거 뭐 취 할 것이 있나? 너무 더러워  이런데,  이제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능치 못 하심이 없고  이것에게 매수도 안 당하고 저것에게 매수 안 당하고 이것에게 위협도 당하지  안하고 저것에게 위협도 당하지 안하고 이것에게 꼬임도 받지 안하고 잘못 아는  것도 없이 모든 것을 바로 아시는 이분이 계시니까 참 좋습니다. 이래서 하나님  이분이 계신 데 대해서 어떻게 좋은지 그분이 계신 데 대해서 좋아서 눈물  흘리면서 당신이 계시니 내가 살 욕망이 있습니다. 당신이 계시니 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 희망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만들어 이래 만들은 이 모든 존재가 있는데, 이 존재 가운데에  당신이 없다고 하면은 이 존재는 참 비참 중에 비참입니다. 만일 이것을 당신이  만들었다면 당신이 만들어 놓고 당신이 어디 가 버리고 만든 이것을 저것대로  내버려둔다면 만든 그분이 저주를 받아야 될 것입니다. 저주를 받아야 될  것입니다.

 이거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것을 당신이 떠나지 안하고 이것을 끝까지 다  참관해서 당신이 통솔하신다고 하니 안심이고 참 좋습니다. 이 세상에 이 구석을  보면 탄식이지마는 당신을 보면 이 구석 탄식이 조만간에 반드시 이것이 아 바로  귀정이 되어질 것이 있으니 이렇게 억울해서 첩첩이 억울하니까 첩첩이  억울하니, 보면 가정마다 억울하지 않는 가정이 없습니다. 침략 안 하는 것이  없고. 또 피해를 받지 안하는 것이 없고 이렇게 다 돼요. 이러나 그것도 보면  이것도 보면 이것 탄식이고 다 희망이 없지마는 주님을 보시면은 그 모든 것을  아시고 그걸 책임지시고 다 그것을 결국은 다 부활시켜 가지고 다 완전히  정리해서 정돈해서 아주 흠과 흠과 티와 주름잡힘이 없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할 그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기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이 안 된다는  걸 이것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속지 안하는 하나님입니다. 제가 아무리 언변이 좋아도  하나님은 제 언변으로 설득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 천하에 제일 좋은  언변에게 설득 당하지 아니하시고 참되게 바르게 하시는 그분이 계시니 좋다  말이오.

 아무리 이거 뭐 대통령으로 천거하고 뭐 이렇게 이 사람이면 우리를 맡아  주시면 좋겠다. 해도 그것이 그만 이 사람의 말에도 설득을 당하고 저 사람의 그  간교에 대해서도 또 넘어 가고, 저 사람의 아부에 대해서도 넘어 가고, 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세상에, 자, 믿을 이가 없지 의지할 이가 없지 바라볼  이가 없지 맡길 이가 없지 부탁할 이가 없지 지도 받을 이가 없지 또 힘입을  이가 없지 아무도 없는 이 세상이라, 사실. 이러니까 주님 외에는 그럴 분이  없어.

 이런데, 이 분이 이 분이 모든 것을 주권을 가지시고 딱 눈으로 감찰하셔  가지고서 그 악인의 모든 행위, 인간의 행위, 모든 거 껍데기 또 이것 만 보면  알지마는 나는 사람의 중심을 본다 그 말이오. 속의 알맹이를 본다 그 말이오.

'나는 사람의 마음과 뜻을 살피는 자이다'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사람은 마음과 행동이 다르고 그의 지식과 그 마음이 다르고 이렇게  뭐 이중 삼중 십중으로 되어 있는데 주님은 그 하나도 남김 없이 세밀히 살피고  계시는 이 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나쁜 면을 향할 때에 이 분이 계시니  안심할 수가 있고 자기에게 대해서 나쁜 면을 생각할 때에 겁이 나 가지고 이  분에게 어서 기회가 지나기 전에 해결을 해야 되겠고 또 자기에게 장점이 있다면  그 장점이 있는 것을 알아주지 안하고 여기에 대해서 보상이 없는가, 보상은  너무 세밀하고 철두철미하기 때문에 벌받을 거나 겁이 나가지고 처리하고  준비하고 정리할 일이지 의를 행해 놨는데 그 값이 올랐는가 안 올랐는가 그걸  생각하는 거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이 분은 사람이 이중 삼중 십중에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그 진상을 속의 실상을 있는 대로 그 진상을 다 바로 아시고 고대로 공명되게  이렇게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당신이 은혜의 주님으로 지금은 모든 만물을  상대하십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아시고 은혜의 주님으로 사랑의 주님으로  상대해 가지고서 그저 잘못돼도 또 타이르고, 타이르고, 또 고치면 또 용서하고  고치면 또 용서하고, 또 구하면 또 주시고 또 주시고 이렇지마는 일단  재림하시면 그때 그거 없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다 사랑의 주님이요 구원의 주님이요 인자의 주님이요 용서의  주님이요 다 우리에게 그 간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시는 그 주님이시지마는  구름타고 턱 오시면 그때 이 주님은 완전히 그때부터 바꿔 버려요. 그때  바꾸는데 그때는 뭐이 됩니까? 심판의 주가 됩니다. 심판의 주님이 돼 가지고서  처리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일도 언제 오실라는지 모르고. 이 일도 언제 오실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에게 문제되는 거, 그 문제되는 것은 영원히 그  보응시키는데, 그분에게 문제될 일을 오늘을 넘기지 말고 그 문제되는 일을  우리가 해결해서 정리해야 되겠고 정리를 해야 되겠고 또 오늘의 그 은혜의  주님인 때에 우리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되지 이때 해결하지 안하고 어리석게  주님이 누구신지,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그것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사느냐? 하나님의 심판을 도무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도 날 보면 그럴 것이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날 보면 그럴 것이고 나도 다른 사람을 보면 그런데,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남의 눈에 티를 보거들랑 그 티로 인해서 네게 있는 들보를  발견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뭐 하는 걸 봐야 심판 모르고 말하는 것도  들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고 말하고 또 경영하는 것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고 경영하고. 자랑하는 것도 그렇고 저거끼리 무슨 속삭속삭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목회하는 것도 그렇고 전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것이냐, 안 받을 것이냐 이거는 생각해보지 안하고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신앙생활이 뱅뱅 그 쳇바퀴 모양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여기에는 성경보고 여기에는 기도하고 여기에는 전도하고 여기에는  연보하고 여기에는 주일 지키고 여기에는 신앙 행위하고 여기에는 묵상하고 뺑뺑  뺑글 돌아가니까 이 돌아가는 신앙생활을 어디서 시작을 할까? 신앙생활을  기도에서 시작할까요, 성경 보는 데서 시작할까요, 회개하는 데서 시작할까요  전도하는 데서 시작할까요. 여러분들 신앙을 언제든지 매일 시작할 때에 어디서  시작할랍니까? 매일 시작할 때에 어디서 시작해야 되겠습니까? 복에서  시작하십시오. 복에서. 복에서 시작해요.

 아, 아침에 일어날 때에 '오늘은 또 일어나서 새벽 기도 인도해야지.' 새벽  기도에서 시작할랍니까'? '아. 새벽에 설교를 해야 되겠다. 또 기도를 해야  되겠다.' 그러면 또 기도에서 시작할랍니까 설교에서 시작할랍니까? 아니요.

복에서 시작하십시오. 복에서 시작하십시요. 하나님이 나를 복 줘야 되지 복 안  주면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일어나서 대번에 시작할 때에 '아, 주님이 나에게 복을 주셔야  됩니다. 주님이 복을 주시는데 나에게 속아서 내 언변에 내 외식에 껍데기에서  복을 주지 안하고 내 진상을 보시고 복도 주시고 책망도 하시고 진노도 하시고  징계도 주시고 이렇게 주시는 것이니까 주님 앞에서 주님 앞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내가 돼야 되겠다.' 주님이 복을 주실 수 있는 내가 돼야 되겠으니까 복,  그만 일어나면 복, 자, 따라합시다. 복! 복! 복! 복! 복으로 시작하십시오.

복으로.

 아침에 척 일어나면 일어나 가지고서 누구가 오니까 그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그런 전법을 생각지 말고 또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니  저렇게 말하니 거기에 대해서 내가 그 뭐 섭섭하니 좋으니 나쁘니 그것 생각지  말고, 누구니 뭐니 아무리 모든 것 보아도 제일 먼저 생각하기를 복을 생각하면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복을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잘못하면 탈선되기 쉬운데 복을 생각하는 거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래서, 제일 먼저 생각하기를 복을 생각하면서 '아, 내가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아야 되겠는데 복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나? 하나님이 나를  복을 주시겠느냐?' 이라면서 뭐 거석하면은 '아, 이 생각은 내가 복을 받겠느냐?  이 생각은 내가 복을 받겠느냐? 이 말은 복을 받겠느냐? 이 정신은 복을  받겠느냐? 이 행위는 복을 받겠느냐? 내가 이렇게 지금 뭐 활동하든지 이 교제는  복을 받겠느냐? 이 사람을 대해서 내가 이렇게 말하니 복을 받겠느냐?' 전부  복으로서 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 이 사람을 만나서 이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까?' 그  사람하고 이 야기해서 그저 반가우니까 반가워하고 기뻐하고 하는 그게 아니라  거기에도 복으로 시작해야 됩니다. 거기에도 '이 사람을 만나서 내가 어떻게  하면 이 말을 하는데 복을 받겠느냐? 이 복을 받을려면 어떻게 하면, 또 나도  복받고 이 사람도 복받고 복을 다 나도 받고 이도 다 받고 복을 받구로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이것이 시발이 되고 난 다음에 그렇게 되도록 모든 뒤  공작을 해 가지고서 이렇게 시공을 하면은 우리가 실수가 적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복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때문에 그 감옥에 들어간 사람 많이 있는데 뭐  감옥에 안 들어간 사람들은 다 그거는 내버려두고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은 제일  머리로 삼아서 말하는데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 가운데 제일 많이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서 옥살이하고 그 신사 참배  안하고 나온 사람들이 어느 교파에 제일 많으냐 하면은 시온교파에 제일  많습니다.

 시온교파. 시온교파라 하면 그 교파는 일종의 지시파입니다. 지시파. 지금도  부산에 시온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그때는 좀 시온교회가 많았는데 시온교회가  해방 후에 다 부숴져 버리고 몇 교회 남지를 안했습니다. 그 분들은 왜  부숴졌는고 하니 팔월 십오일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해 가지고 그분들은  지시파입니다. 지시, 일종의 지시파이기 때문에 팔월 십오일에 주님이  재림하시니까 우리가 다 재림할 준비를 하고서 이제는 유무상통으로 있는 거  없는 거 마구 떨어 먹고 주님 오시면 될 터이니까 자, 일 할 거 없이 전부이 돈  있는 대로 돈 털어 가지고서 팔월 십오일까지만 먹고살면 된다 이래 가지고서  전부 팔아 가지고 다 재림 주를 영접할 준비 한다고서 흰옷을 다 만들어 가지고  다 꼭같은 흰옷을 만들어 가지고서 입고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한다고서 뭐 대구  어느 산에 올라 가 가지고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기다렸는데 대구에 시온파가  제일 많았습니다.

 이랬는데, 그분들이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서 신사 참배 안 하려고 지내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었습니다. 다 승리하고 승리하고 팔월 십칠일날 나오니까  거기에 있는 모든 무리들이 팔월 십오일날 주님 재림하신다고 다 살림 털어먹고  흰옷 입고 다 산으로 가서 모여 가지고서 거기에 모여 가지고서 주님의 재림이  온다 했는데 주님의 재림이 안 되고 팔월 십오일날 해방이 됐다 그거요. 해방이  됐어. 그러니까 이제 그 사람들이 지시를 잘못 봤어.

 그래 가지고서 그때 살림 판 그것에서 분쟁이 일어나 가지고 다 그 교파가 다  깨져 버리고 그 남은 사람들은 몇 안돼요. 시온 교회가 지금은 종자가 뭐 많지  많아 몇 교회가 있어요.

 있는데 제가 그 가조집회할 때에 그 팔월 십오일날 재림한다고 그렇게 흰옷  입고 가 가지고 산에서 영접하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팔월 십오일날 주님이  재림하시지 안해서 실패를 당한 그 할머니를 내가 만났습니다. 그때 나는  가조집회할 때에는 아주 젊을 때인데 해방이 몇 해 됐습니까? 예? 얼마 몇 해  됐어? 삼십 구년전이니까 그때 그 젊을 때인데 그분은 아주 여자인데 그  집사님인데 뚱뚱하이 아주 인물도 잘나고 아주 그때 한 오십 세 넘어 된 분인데  그분이 신사 참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다가 신사 참배 안 한다고 반대하고  그래도 내놔서 나와 가지고 그 예수님 재림을 팔월 십오 일 날 맞이한다고 옷을  다 해입고 모두 다 이래 가지고서 그 산에 가 기다리다가 실패한 그분이 와  가지고서 나는 시온파라 이랬는데, 그만 그분이 다 실패해 버리고 이거 다  시온파, 나는 시온파 치워 버리고 다른 교파로 가겠다고 이라면서 그때 가조  집회때 와 가지고서 참석을 해서 그 시온파에 대한 것을 세밀히 제가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감옥에서 신사 참배는 제일 많이 이겼다 말이오. 그러면 신사 참배  이겼다고 그것 가지고 또 다는 아니라 그거요. 그분들이 그 교파에서 신사  참배를 제일 많이 이겼는데. 그 교파는 그것이 이단 교파라 그 말이오. 잘못된  교파다. 그때에 신사 참배 때도 그럴 때에 거기에서 신사 참배 반대하고, 또  동방요배까지 반대하고 요렇게 둘을 반대하고서 동방요배도 안하고 신사 참배도  안 한 그런 사람들은 그 중에는 하나도 굽히지 안하고 그대로 성경대로 쭉  계속해서 해 나간 이는 제일 최 덕지 선생이라 그 분이 제일 강하게 이겨  나갔습니다. 그분은 남해에 있는 최 상림 목사님의 그 제자입니다. 그 제자인데  최 상림 목사님은 순교했습니다.

 이라고, 그 최덕지선생 또 (김 뭐이 압니까 젊은 신자들이) 김○○신도 그 두  분이 동방 요배 안 하려고 하니까 동방 요배 하는 사람들은 다 거기에 들어가  가지고서 이래 자유로 하면서 이래 가지고 뭐 먹고 입고 이랬지마는 그 사람들은  나올 때까지 꼭 고랑을 차고 있었습니다. 차고 있어서 전부 여름에는 이게 썩어  가지고서 구더기가 나오고 그거 다 이래 가지고 그 ○○○씨 알아요? 그때 김  무슨 조사, 저 최덕지선생하고 같이 승리하고 나온 사람, 무슨 집사 있었지 와,  생명된 신앙은 저버리고 말라진 교리만 붙들고 있다. 우리의 땅은 땅에 있지  안하고 우리나라는 하늘에 있다' 그때 그 혁명가를 가지고 그래 갔는데 그때 그  최 덕지 선생은 그분은 이기기를 완전히 이겼는데,  그러면 그때에 여기에 한 상동 목사님이니 주 남선 목사님이니 이런 분들이 다  그 같이 감옥서 다 감옥 옥중 생활을 했는데 그때에 그분들은 그래도 굴하지  안하고 이분들은 그거는 굴했습니다. 처음에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걸 굴했소. 그  손 양원 목사님 그때 했던가 몰라 동방 요배안했어? 손 목사님 안하고 한 상동  목사님 주 남선 목사님 이런 분들은 다 동방요배 했어요.

 한 사람들은 수월했고 안 한 사람들은 고문과 고행이 더 많았기 때문에 나오고  난 다음에 그들을 다 존경하고서 그분을 따르려고 했는데 그분들이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은 절교 운동을 했습니다. '이거는 다 마귀당들이니까 이거는 말하지  안해야 된다. 서로 교제하지 안해야 된다.' 그만 그 말 안 하는 절교 운동을 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처음에는 절교 운동해도 '우리는 죄인이니까 절교해도  그저 죽여주십시오.' 하고 이래 됐는데 나중에 절교 운동 해 가지고 나가는데  조금 치우치게 자꾸 이래 나가서 '아, 이게 아니다.' 그래 가지고 재건 교회가  그만 좀 시들어지고 재건 교회가 지금도 있기는 있습니다. 부산도 있어요.

 얼마 전에도 그 재건 교회 목사님을 제가 만나봤습니다. 그래 재건 교회가  있기는 있는데 그 재건 교회 교리가 성경적이 아닌 것이 몇 가지 나와 가지고서  그만 재건 교회가 지금 힘을 못 쓰고 있고 제일 신사 참배에 이 동방요배는  하기는 했지마는 신사 참배 안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주장하는 중에 그때 한 상동  목사님이니 주 남선 목사님 이런 분들이 제일 건전하게 나가고 건전하게 나가는  데에  그때에 마침 박 윤선 목사님을 붙들어 가지고 박 윤선 목사님이 교리와 신조에  건전하게 말하고 이러니까 제일 신사참배 이기고 교리와 신조에 건전한 그  교파가 고려파라 하는 것을 고신이라는 고려파라 하는 것을 고신이라 하는 것을  내세워 가지고서 고신 그 계통을 세워 가지고서 그리 사람들이 쫙 모여들었어.

그때 쫙 모여든 것은 무슨 교리와 신조가 좋아서 모여든 것이 아니고 그때  모여든 것은 이 신사 참배 안 한 사람들이 참 신자들이요 참 성도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들을 신앙의 지도자로 삼고 우리가 그 지도를 받아야 되겠다. 하고서  이래 모아 들었는데 그 모아 들어 가지고서 그때 그만 신앙 지도를 하려고 해도  아무도 없었으면 그때 유지 안됐는데.

 마침 박 윤선 목사님이, 그때 박 윤선 목사님은 신사 참배 한 분인데 그 회개를  하고서 그 교리와 신조 그 신조를 해서 진해에서 처음으로 신학 강좌라는 것을  열어 가지고 신학 강좌를 진해에서 했습니다. 했을때, 그 교리와 신조가 다 맞고  좋고 이렇고 또 정확하고 명랑하고 이러니까 쭉 따라서 그때 고신이 가속으로  그렇게 늘게 됐습니다.

 그랬는데, 그 최 덕지선생은, 그만 복으로 치우쳐 버렸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뭐이지 복 받는다 이래 가지고서 밥을 먹으면 말이지요, 밥을 먹으면 십일조를  해야 복을 받는다 이래 가지고서 밥을 먹을 때에는 딱 그릇 하나 빈 그릇 갔다  놓으면서 그거는 장도 한방을 딱 떠놓고 고 십분지 일고 채소도 떠 넣고 밥도  떠놓고 전부 이 십분지 일을 다 떠놓는다 말이오. 십분지 일을 딱 떠놔 가지고서  그래 그것을 처음에는 그것을 떠놔 가지고서, 그러니까 십일조를 떠놔 가지고  그걸 이제 나중에 계산을 해 가지고 돈으로 쳐서 넣고 이래 가지고 뭐 어찌됐던  간에 뭐이든지 십일조를 철저하게 한다는 이 문제로 이래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그거 해 가지고서 모든 사람이 하니까 다 자꾸 썩혀내요. 그래 자꾸 썩혀  내버리게, 돼지고 이래 돼지니까 이것도 비성경적이다 이래 가지고 뭐 그 교파가  시지부지해서 그렇게 재건 교회가 지금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그 재건 교회가 언제 한번 우리와 합해 가지고 같이 나가자 하는 그런 한번  요청해 온 일이 있었습니다. 청해 왔는데 그때 뭐 우리 그만 각각 처해 있는  대로 있으면서 구원 이룹시다. 또 합하면 문제 일어나고, 또 나뉘면 문제 나니까  그러다가 구원 못 이루니까 그래 합시다. 그래서 저거도 이렇게 뭐 이 교파  만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래 나가도 보니까 하나씩 둘씩 들어붙어 가지고  이래 가지고 된 것이지 이걸 그때 그 교단 문제로 교단 등록하기 위해서 할 때에  그때에 우리와 합하자 하는 그런 교단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여러 교단이  왔었습니다.

 '그 뭐 우리는 합하지도 안 할 거고 교단 등록도 안 할 거고 그대로 그만  예수님 믿다가 주님 오시면 가겠다.' 이래 가지고 아직까지 등록 안 했습니다.

그 분은 그 복, 복 이래 가지고서 복이라는 거기에 대해서 그만 주장 하니까 그  복 받기 위해서 하니까 신사 참배를 그렇게 이길 수 있는 깨끗한 신앙이 자꾸  그렇게 자라진 것이 그것이 힘을 얻어 가지고 자라졌는데 이게 그만 넘어가  버렸다 말이오. 치우쳐서 그만 안돼 버렸어. 안돼 버렸는데 우리는 그렇지는  안해도 정당하게 이 복을 생각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에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가 무슨 목회를 해도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그  목회의 결과가 좋지, 우리 가정도 하나님의 복을 주셔야 뭐 처음에는 이렇다  저렇다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복을 주시면 그 결과는 그 가정이 좋아집니다.

 목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또 사업도 주님이 복을 주시면 처음에 복을  받기까지야 뭐 별일 안 있습니까? 요셉이가 복받는 데까지 나가는 데에는 별별  애로가 있고 망하는 것이 많이 있었지마는 결과를 보면 그 성공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으면 당신이 그걸 책임져 가지고서 운영을  이래 하기 때문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복의 결말을, 결과의 복의 그 열매를 딱 맺게 이래하지마는 사람은  그걸 모른다 말이오.

 사람은 미래를 모르요. 미래에 수많은 요소가 있는데 그 수많은 요소를 사람은  몰라요. 모르기 때문에 계획도 어둡지 경영도 어둡지 또 방편도 어둡지 모든  수지 계산도 어둡지 준비도 어둡지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 받기를  원해서 주님이여 복을 주시옵소서' 하고 자기 힘껏 요라며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느냐? 요라면 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그 복을 하나님이 복 주신다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말이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 쉽게 복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된 그 은혜를 우리에게 주셔야 되기 때문에 이 복을  생각해 가지고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복을 주시겠느냐? 나는. 또 하나님의 복을  주실 수 있는 자가 되느냐?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자가 내가 돼야 되지 복을 주실 수 있는 자가 안 되면  안 됩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안 되면 안돼요.

 이런고로, 이 복 문제를 생각하면 요새는 뭐 최 덕지 선생 같이 그렇게 치우쳐  나갈까 그런 염려는 한내끼도 없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치우쳐 나갈까 그런 것이  생겨질는지 몰라도 치우쳐 나갈까 그런 첫 생각도 못 해. 너무 타락했기 때문에  죽자건 올라 가봤자 정상 궤도에나 올라갈까 뭐 지나쳐 넘어갈 만한 그런 사람  그런 열심이 있는 사람을 나는 요새는 보지를 못했어 그런 사람들은 털끝만치도  그걸 놓고서 어림도 없습니다.

 그랬는데, 과거에 동방요배도 그래요. 동방 요배도 이상하게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 있었어요. 동방 요배 그때는 죄인지 뭐인지 동방 요배가 뭐 인지 그것도  모르는데 그 교회 가 가지고서 교역자가 예배 보다가 턱 일어나 가지고서 '자.

모두 일어섭시다' 교역자가 일어서라 하니까 쭉 일어섰다 말이오.

 일어서 가지고서 그래 그 대번에 말하면 안 되니까 떡 말하기를 그래지 금 일본  나라에서 그때 우리나라지요. 우리나라에서 명령을 내리기를 이 예배보기 전에  동방 요배는 동쪽에 천황 폐하가 있기 때문에 동쪽을 향해서 절을 하고 그래  예배를 봐야 되지 그 절을 안 하면은 용납지 안한다고 이러니까 동방 요배를  우리가 다 지금 해야됩니다. 일어서십시다. 처음에 모르니까 일어서자 하는 대로  일어서 가지고서 '자, 동쪽으로 돌아서서 향합시다' 해서 '동쪽으로 돌아서  향합시다' 이러니까 교인들이 그리 쭉 돌아서 향하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서 에히! 하면서 주저앉은 사람이 있었다 말이오. 그 뭐인지 모르지마는  동방 요배를 반대하고서 주저앉은, 안하고 거기에 가 가지고 그거 안 하고서  예배만 보고 동방 요배도 안 하고,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그런 거는 알지 동방  요배가 뭐인지 어찌 알 것이소? 아는데 그 속에서 튀여 나와 가지고 이 '무슨  짓이야' 하면서 동방 요배를 반대하고 동방 요배도 반대하고 신사 참배도  반대해도 자유로 활동하고 다니도록 그렇게 내 버려 두는 그런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말이오. 그거 다 준비에 있어요, 준비.

 그만큼 어제 준비를 하는데, 무슨 준비가 제일 좋다 했어요? 무슨 준비가 제일  좋아요? 네, 진합 태산, 티끌모아 태산 준비가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그렇게  준비해서 벌써 준비의 양이 평소에 기울이는 것이 더 많이 기울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 사람은 뭐 동방요배 안 한다고 매도 맞지도 안하고 동방 요배도  안하고 더 깨끗이 안 하고, 또 신사 참배도 안하고 깨끗이 안하고 그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돼요.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돼요.

 이러니까, 우리가 신앙에도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돼요. 여기에 보니까 '무릇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하는 그 말은 뭐 신사 참배하라 하는데 신사 참배 딱  막혀 놓으면 형통입니까, 어디? 신사 참배 막히면 형통이 아니라 말이오. 신사  참배하는 그것도 뭐라 하든지 신사 참배 안 하는 것으로 쭉 통하고 신사 참배 안  하는 것으로 쑥 통하고 주일도 지키는 것도 쭉 통하고 뭣이든지 신앙 양심 영감  생활 진리 생활 영감 생활 진리 생활이 쭉 통하고 아무것에게도 거리끼지 안하고  붙들리지 안하고 침노도 받지 안하고 그 영감과 진리 생활을 그대로 쫙 일관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그 행사가 형통한 것이라 말이오.

 형통한 것이니까, 이런 것이 다 우리가 제일 시발이 복 받는 여기에서  시발됩니다. 그저 평생 '아 주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나?' 암만 내가 결심해 봤자  주님이 나에게 내 결심에 복 주시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지혜와  총명 가지고서 목회를 능란하게 한다 해도 주님이 복 주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썩어서 더러운 것으로 화해져 버리고 맙니다.

 이분이 속지도 안하고 이분이 꾀임에 빠지지도 안하고 이분이 모르지도 안하고  이분이 치우치지도 안하고 이분이 어리석지도 안하고 이분이 누구한테 억압도  당하지 아니하고 이분이 옳고 바른 거를 다 아시지 옳고 바르게 딱 판단하는 이  분이 복을 가지고 있으니 이 분을 보면서 이 분에게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이분이 나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기가 사는 거 무슨  행동이든지 복을 생각하고 거기에서 출발하는 그것이 되어야 됩니다.

 요새도 우리 보면 우리 교역자들 우리 진영은 교회 몇 안돼요. 우리 진영  교회가 뭐 얼마인가 몰라. 몇 교회입니까? 칠십 육 교회면 그 뭐 그 몇 개  됩니까? 이렇지마는 거기에 보면 참 안타깝고 불쌍한 교역자들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라는 복, 하나님의 심판을 몰라요.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데 그  행동 하나님이 저주할라는지 어떻게 할라는지 막 하나님이 몽둥이로 곧 때리는데  곧 때리는데 그 몽둥이가 곧 올건데 이렇게 망령을 부리고 미련을 부리고 아주  외식하는 것을 볼 때에 참 기가 막힌다 그 말이오.

 이거는 하나님도 무시하지, 하나님의 심판도 무시하지 하나님의 축복도  무시하지, 그저 말만하면 다 되는 줄, 행동하면 되는 줄, 사람하고 이렇게 해서  저거 둘이 서이나 너이나 이래 돼지면 되는 줄 그게 소용이 없다 말이오. 노아  때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많이 취했지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바벨탑을 쌓을  때에 천하 사람이 똘똘 뭉쳐 하나가 됐지마는 하나님께서 바싹 부수니까 바싹  부숴지지 안했습니까!  이거 도무지 그러니까 암만 이 진리를 가르쳐야 진리가 그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거요. 여기에서 이래 가르쳐도 사실 교역자들 위해서만 가르치는 것  아니오. 그 교역자들이 알면 참 좋겠는데 알아 가지고서 가르치면 좋겠는데. 이  교역자들은 나중에 보면 허무한 사람이 돼 버리고 오허려 무식한 평신도가  존귀한 사람이 될는지 몰라요. 이 교역자면 다 예수 잘 믿는 줄 그렇게 오인을  하지 마십시오.

 내가, ○○○ 목사님 선교 한 거 내가 청해 가지고 요번에 한번 했나? 어? 안  했어? 우리 교회에 ○○○목사님이라고 그분을 청해 가지고서 그때 한번  설교했어요. 한번 집회를 했는데 지금은 그분하고 나하고 그만 만나지도 못하고  아주 이렇게 저 좀 만나지를 못하고 거리가 멀어져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  요번에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I. C. C.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아래  우리 서부 교회에 왔던 그 ○○○목사님과 같이 받았습니다. 그분을 청해 가지고  집회를 하는데 그분이 그렇게 말해요. 그분에게 들었어요.

 어떤 그 참 목회를 잘하고 대부흥사인데 그 사람이 입신 가운데에 들어갔어. 그  입신 중에 들어갔는데 가니까 안내자가 있는데 여기 보라 이 모두 각자의  십자가가 있고 면류관이 있다' 이라는데 그래 보니까 아주 좋은 금면류관이  있는데 '아마 저 면류관은 내 것일 거다' 이랬는데 '이게 네 것이다 할까'  했는데 아무말도 안하고 지나가요. 그 물을 수도 없고 이래 그냥 지나갔는데, 또  보이고 보이고 보이더니마는 그래 나중에 저 밑에 가니까 그 개털벙치가 하나  있더래요, 개털벙치 개털로 만든 벙치가 개털벙치가 하나 있더래오. 개털벙치가  있는데 '이것이 네 면류관이다' 개털벙치가 그 부흥사 면류관이라.

 기가 차서 '그래 그러면 그 위에 있는 금면류관은 누구겁니까?' '그것은 네  강단 앞에서 항상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그 할머니의 면류관이다' 이라더래오.

네가 그 할머니의 성심 성의 정성 다 기울이는 그 기도의 혜택으로 네가  돌아다니면서 대접이나 받고 너는 유명하기만 유명해졌지 너는 기울인게 없어.

네 면류관은 개털벙치라' 그래. 그래서 거기에 보니까 십자가가 주르르 있는데  그 위에 보니까 모두 아주 금십자가가 있는데 그 십자가가 참 아주 제일 좋고  영광이 있는데 보니까 금십자가 있고 쭉 또 내려가 보니까 금십자가를 다  지나가고 보니까 나무 조각으로 만들은 십자가가 맨 밑에 있더래요. 그래  말하기를 저게 네가 지고 온 십자가다 저것이 네가 지고 온 십자가다.' 나무  쪼가리고 만들어 놓은 그게 제가 지고 온 부흥사가 지고 온 십자가래요. 그러면  십자가를 지는 문제.

 그래서 그때 그 설교를 듣고 지금은 내가 잘 생각해요 그게 내다. 그게 내다  이렇게 지금 날 생각해요. 내가 그렇게 십자가도 참 다른 사람은 십자가  지지마는 저는 십자가 별로 지지 안하고, 개명 교회 있으면서도 유명하다고  이랬지마는 모든 집사님들이 십자가 졌어. 집사님들 여기 많이 왔구만. 왔는데  어제 내가 그 말했지마는 참 산 순교자들 많습니다. 뭐 생명 내놓은 사람들 생명  내놓고 신앙생활한 사람들 많이 있어요.

 내가 어제 어떤 사람 하나 물었어요. '그 사람이 어떠냐?' 저거 남편 그래  반대한 남편은 죽었고 그이는 교회는 안 나온다 그래. 교회 안 나온 다 하는데  그이가 어떤 분이냐 하면은 신씨라고 하는 분인데 자기 남편이 예수 믿는다고서  너 예수 믿으면 그때 송판 켜는 거두쟁이래요 거두쟁인데 '네가 예수 믿으면  다리를 끊는다' 그래 가지고 그 꼭 항복을 안하고 그러니까 톱으로 다리를  끊어서 다리를 톱으로 끊어서 아주 끊기지는 안했는데 그만 톱으로 이래 끊었다  말이오. 그러니까 뭐 피가 흐르고 막 이래 가지고 뼈가지는 얼마나 끊겼는지  몰라요. 이랬는데 그래도 예수 믿겠다고 하니까 나중에 가서 그만 남편이 어찌  할 수 없어 내놨는데 그렇게, 제가 그때 집사로 있을 때인데, 그렇게 열심히  믿는 사람이었는데 요새는 예수를 안 믿는대요. 어제 내가 들으니까,  이래서, 시간이 있으면 내가 한번 가 가지고, 그렇게 생명 내놓고 예수 믿던  사람들이 그만 그래 됐어요. 그러니까 말할 것 없이 교인은 교역자에게 달린  것입니다. 교역자에게. 교역자를 만나서 순교할 수 있는 사람도 교역자  달라지면은 그만 낙심할 수도 있다 그거요. 교역자에게 달렸어.

 이러니까, 네로 황제 때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그 설교 듣고 그 이튿날  순교하고, 또 내일은 아무 데서 모이겠다. 하면은 그들이 그렇게 잡을려 해도  잡지를 못 해. 아무데 모이겠다. 하면은 거기에 모인 사람은 아무데 모이겠다.

해도 죽어도 그 소리를 안 불어 주니까 안 불어 주니까 그 소리를 못 하고 자꾸  이래 이래 이래 나가 가지고서 이래 하다가서 그때에 네로 황제 때에 많은  순교자가 그래 났다는 말을 전설을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교역자가 그 믿음 없는 사람 믿음 있게도 만들고 또 믿음 보통  사람을 잘 믿게도 만들고, 보통 사람을 순교자로 만들게 할 수 있는 것이  교역자에게 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역자가 바로 되면 그리 되고  교역자가 바로 안 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장에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비밀이라 그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최 덕지 선생 그분이 최 상림 목사님 그 교훈 아래에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사십 오 년이나 한 오십년 전인데 그때는 신사 참배 말이 안 날 때입니다.

진주 성경 학원에 가니까 학생들이 왔는데 학생들이 왔는데 학생이 이거는 뭐  예수를 믿는지 마는지 더럽게 믿어. 학생들 더럽게 믿어, 아, 만나 보니까 그  신앙이 깔깔하고 똑똑한 신앙들이 있어. 그 신앙들은 물으니까 전부 최 상림  목사님 시찰군에 있는 학생들이라. 최 상림목사님 시찰군에 있는 학생들은 다  그렇게 똘똘하게 예수 믿어요. 그 최 상림 목사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돼졌다 그 말이오.

 그 최 상림 목사님은 내가 최 상림 목사님의 그 교인들을 보고서 학생들을  보고서 유명해서 그분이 오면 내가 한번 볼 만하겠다. 그분을 사모하니까 그분이  요번에 강의하러 온다 이래. 강의하러 그날 왔다 해요. 왔다해서 내가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감히 가지 못하지만 가 가지고서 최 상림목사님한테  문밖에서 말하니까 들어오라 이래. 들어가니까 뭐 시커멓트리하이 수염이  굴레수염이 이만치 났는데 싹 다 깎아 버리고 이래 꺼머트리하이 뚱뚱하이  그래요 입술이 뚜부리하이 그런데 들어가서 내가 묻기를 '목사님 그곳에서 온  학생들이 아주 모두 다 신앙이 다 모두 깨끗하고 이래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표어가 뭐입니까?' 내가 표어를 물었다. '목사님 표어를 무슨 성구를  표어를 삼고 있습니까?'  이러니까 '어, 좋은 거 물었어. 나는 옥토에 뿌린 씨가 옥토에 뿌린 씨 가 내  표어야.' 이래 옥토에 뿌린 씨가 표어라. 항상 내가 옥토에 뿌린 씨 돼야지.

옥토에 뿌린 씨 평상 옥토에 뿌린 씨 돼야 된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평상  그걸 외우고 있다 해요. 나는 어디서든지 사람 만나면 옥토에 뿌린 씨 돼야지.

또 옥토에 뿌린 씨 돼야지. 그거 하나 가지고서 그렇게 승리를 하는 사람이  된다고,  또 한 상동 목사님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마태복음 28장  끝절에 그것이 한 상동 목사님의 표어라. 다 요렇게 다 표어들을 가진 고 힘을  가지고서 모두 이겨 나갔더라 그거요. 저는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네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내 의사가  주님의 의사와 일치되는 그것이 내 소원이라 그것이 저의 표어였습니다.

 이랬는데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너무 이거 복을 모르기 때문에 복에 대해서  지금 하는 말씀입니다. 이제 교역자들 여기에 많이 있는데 교역자들 정신  차려요. 내가 이 말을 하면은 지금 이거 복을 받겠느냐? 내가 이 생각을 가지면  복을 받겠느냐? 내가 이런 단체와 이런 단체는 복을 받겠느냐? 그걸 좀  생각해봐요. 뭐 몽둥이로 지금 때리면 절단이 날 건데 그것도 모르고 어쩌든지  이거 뭐 심판도 모르고 축복도 모르고 이렇게 망령을 부리니까,  아, 아합왕이 말이요, 아합왕이, 아들이 그렇게 미끈미끈하이 다 요새로 말하면  대학했고 다 아합왕 아들만 하면 정치 다 해요. 나중에 장관이고 다른 사람 줄  거 없어요. 그 아들네들만 하면 다 정치를 다 할 수 있었어. 다 할 수 있었는데  하루에 칠십 명이 다 모가지를 끊겨 가지고서 한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런 참혹한 일이 올 줄을 누가 알았느냐 그거요.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시면 다 그래.

 그런고로, 우리가 내가 이 일을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느냐. 복을 주시겠느냐  해서 생각도 가지고, 내가 이 생각은 복 받을 생각인가, 내가 이 마음은 복 받을  마음인가, 내가 이 행동은 복 받을 행동인가 이 교제는 복 받을 교제인가, 화를  받을 교제인가?' 이래 가지고 뭐 참 개는 개하고 모이고 닭은 닭하고 모여. 암만  짐승이 여러 종류 있어도 개는 개하고 모입니다. 닭은 닭하고. 제 동무 제 찾아  제대로 모이요. 이것모양으로 딱 보면 멸망할 것은 멸망할 것으로 주워 모인다  말이오. 왜 그리 되느냐 그거요. 복 받기를 위주하고,  둘째로 주장할 것은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라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자기중심을 가지고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이웃하고 하는 거기에 끌려가지  말아라 그 말이오. '악인의 꾀를 좋지 말아라' 이게 악인의 꾀인지 하나님을  중심하는 이 믿음의 것인지 도무지 구별하지를 않는다 그거요.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라. 가만히 봐서 자기도 내가 이거 내 중심의 것이냐? 내  중심의 것 그러면 복을 못 받지. 주님 중심이라야 복을 받지. 만나도 그 사람이  만난 거 말해 보면 주님 중심인지 자기들 중심인지 그 걸 알 수가 있다.

그말이요. 사람을 만날 때에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라.

 악인의 꾀는 나쁜 사람, 불량한 사람, 그렇게 악의 정의를 악의 정의를 나쁜  사람, 불량한 사람, 도적질 한 사람 이러면 도적질하는 사람도 악인 아니오. 그  실수로 할 수 있다 말이오. 악은 악의 정의는 뭐가 악의 정의냐? 하나님 중심 그  선을 넘어간 것은 다 악입니다. 자기중심이든지 민족 중심이든지 국가  중심이든지 뭐 문화 중심이든지 뭣이든지 그 중심  언제 내가 하룻밤에 심심해서 라디오를 맞추어 그때 들을려고 하니까 열 한  시인가 됐는데, 그때 자야 되는데 잠이 안오고 해서 라디오를 틀어 가지고  들으니까 서울의 어느 대학의 총장인데 그분이 불교인이라. 불교인인데 그래  가지고서 뭣을 말하는데 어떻게 해서 박사 학위가 서른 둘이라. 학위가 서른  두개, 논문 박사가 열 몇 개. 박사 학위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대요  이런데, '이렇게 된 그 동기가 어디 있습니까?' '이거 모든 사람들이 다 하고  갔는데 내가 지금 뭘해야 좀 유명해질까 해서 모두 다 하고 가 버렸으니 남아  있는걸 가려볼 때에 이것밖에 남아 있지 안해서 내가 이걸 착수를 했습니다.'  그때 자기중심이라는 것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 위주 자기중심이라는 것을  딱 냈을 때에 당장 사망의 정죄인데 그걸 자랑삼아 하고 있으니까, 또  아나운서는 '예, 그렇습니까? 참 위대합니다. 학위는 몇 개나 됩니까?' 이런 걸  쭐쭐 말을 하고 있어.

 여러분들 악은 피조물 중심이오. 자기중심 피조물 중심이 악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그 의요. 이러기 때문에 이 정의를 바로 말한 그것도 자꾸 이 걸 그리 안  친다 말이오. 그걸 안 써 밑에 있어도. 인간들이 말한 어학사 전 보고서  거기에서 해석해 놓은 것이 옳지 이거 뭐 악인이 악인이라 하는 것은 악인이라  하는 여기에 피조물 중심이라, 얼토당토 안 하게 자기중심이라 얼토당토 안  하게. 이렇게 말하니까 거리가 너무 참 도(道)와 거리가 너무 천리 만리 너무  멀다 말이오. 멀기 때문에 깨닫지도 못해. 말해 줘야 깨닫지를 못한다 그거요.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  하나님에게 네가 복 받기를 네가 첫째 복 받는 데부터 시작해라. '주여 나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복 받을 수 있는 언행 심사를 해야 되겠다. 복 받을  수 있는 내가 돼야 되겠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마음놓고 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아무리 하나님이 주고 싶지마는 복을 줄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사람에게 복 생각하고  그 다음에 둘째 생각할 거는 뭐이냐? 자기중심이 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네가 자기중심에 따라가지 말고 너도 자기중심에 움직이지를 말아라.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라.

 그 다음에 셋째는 뭐이냐?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라' 죄인의 길은 벌써  바깥으로 나왔다 말이오.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라' 이거는 하나님의 성경말씀  이제 이탈을 네가 하지 말아라.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 말은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 말은 하나님의 성경에 이탈을 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성경이라는 궤도  위에서 달리고 하나님의 성경 궤도를 네가 이탈하지 말아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 그 다음에는 오만한 자의 자리, 네가 어디까지  가든지 이제 됐다, 네가 숨을 쉬지 말아라. 네가 앉지 말아라. 네가 쉬지  말아라. 이제는 됐다고 갈급하고 가난하고 급급한 그 마음이 네게서 떠나지  않도록 해라. 언제든지 갈급한 사람으로 급급한 사람으로 가난한 사람으로  목마른 사람으로 이렇게 참 답답한 사람으로 이제 어려움을 지금 원한을 가지고  지금 기가 막혀 죽는 이 사람으로 네가 살고 있지 이 제는 됐다 안심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지 말아라 이랬는데,  모두가 다 안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즐거워하십시오. 그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이런 율법으로서 율법으로서 죽고 난 다음에 다시 살아나는  것이 있고 율법으로 울고 난 다음에 은혜로 웃음이 있지 율법의 정죄로 울기  전에 울기 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의도 아니오. 울고 난 다음에 웃음이  있는 것이 십자가의 도요. 죽고 난 다음에 이제 사는 것이 십자가의 도요. 고통  너머 평안이 있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런데 막바로 단번에 이제 평안을  취하려고 이렇게 하니 이거는 마귀법이라 말이오.

 마귀는 자꾸 올라가다가 떨어져서 지옥 가는 것이 마귀고, 성도는 자꾸 자기는  겸손히 '나는 여기에 차지 못합니다. 내가 여기에 어찌 해당되겠습니까?' 자꾸  내려가면서 천국 가는 것이 그것이 이제 성도의 걸음이라 그거요  그러고, 우리는 성경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주님 사모하는 것이요 주님  사모하는 것이 성경 말씀 사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해도 이 사모를  중단하지 맙시다. 주님을 사모하는 사모를 중단하지 맙시다. 주님을 사모하는  사모를 중단하지 말아요  주님이 언제 나에게 뭣 지시해 주실는지 언제 나에게 이제 그 피난처를 말해  주실는지 언제 내 원수가 원수 온다 눈 떠라, 원수 오는데 이제 내 믿어라. 방패  가져라. 언제 당신이 나에게 시작할는지 모르는데 내가 주님을 사모하지 않으면  그의 음성을 계속 들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의 음성을 계속 들어야 된다  이거야. 그러니까, 주님 사모나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나 다 하나입니다.

 왜? 성경 말씀과 주님과 함께 있어. 주님 성경 말씀 안에 영감이 들어 있어요.

영감이 벌써 그리스도의 영이니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삼위일체를 바로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은 예수님의 영이요,  곧 그리스도의 영은 아버지의 영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든지 주님을 사모하든지  주님을 사모하는데 주님을 사모하면은 진리 말씀을 사모해야 되고 진리 말씀을  사모하려면 주님을 사모해야 되고, 진리 말씀을 묵상하다가는 주님이 바로  연결이 돼 가지고서 진리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시발해 가지고서 '주님  사모하는 것으로 얼른 건너가야 되고, 주님 사모하는 그 사모가 얼른 진리 말씀  묵상으로 건너가서 이래서 여기에서 시작했으면 저리 건너가고 저기서  시작했으면 이리 건너 와서 이래서 항상 이 둘이 하나 돼 야 되지 어데서  시작했든지.

 그러면, 주님을 사모하는 데에서 어디로 가야 돼? 주님 사모는 항상 합니까?  주님 사모만 항상 하면은 그 사람 나중에 시험에 들어 버리고 맙니다. 나중에  마귀들고 말고 그 사람 불건전한 신비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그 주님 사모가  주님의 말씀 묵상으로 주님 사모했는데 말씀 사모와 말씀 묵상이 돼 버리고  말아. 말씀 묵상하다 보니까 주님 사모가 됐습니다. 이렇게 돼져야 이게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다가 보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다보니 사람을 사랑하는  거 사람 사랑이 나고, 사람을 사랑하다 보니 하나님 사랑이 나오고 이 둘이  떨어질 수 없는 연결이 이것이 대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연습을 해  가지고서 이게 돼져야 비로소 바로 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면 우리는 신사 참배 때에도 신사 참배를 만나도 자랑할 것이 있소. 자랑을  많이 하면 큰 일 납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자랑을 많이 하면.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모르도록 하려고 애를 써요. 모르도록 하려고 애쓰고.

 과거에 신사 참배 그 옥중에 들어갔다 나온 그런 분들 가운데 많이 자랑 한  분들이 있었지 옥중에 신사 참배를 참으로 자유로 활동하면서 신사 참배에  하나도 굴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은 자랑을 안 하고 딱 감춰놓고 아무도 모르게  살았오. 이 자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아 넘어졌다 말이오. 신앙의 결말을 보면  그 신앙의 마지막 결말은 신앙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자랑은  백해무익이라. 칭찬도 백해무익이라.

 나를 욕하는 것은 유익만 있지 손해 갈 거 하나도 없어. 욕을 하면 욕을 하면  욕 얻어먹을 만한 거 있으면 고치게 됐으니까 그분이 나에게 선지자요. 또 욕을  얻어먹고 나니 없는데 욕을 하면은 뭣 됩니까? 참고 있으면 복되니까 나를  축복하는 것이오. 그런데 저는 축복아닌 축복하지마는 축복 아닌 것이 축복이  됐다 말이오. 축복아닌 것 같은 참 진짜 축복을 해 주는 것이 거짓 것으로  욕하는 것이오. 아닌데 억울하게 욕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욕하는 것이나 해하는 것은 유익뿐이지 손해는 하나도 없지마는 칭찬  받는 것은 그것은 손해뿐이지 유익은 한내끼도 없습니다. 그 걸로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대우받아도 그것도 탈, 또 그러니까 그런 칭찬 받는  가운데에서 자기를 멀어지고 툭 떨어져 버리면 그것도 박살돼 버리니까 그것도  문제. 칭찬은 백해지 유익이 하나도 없어. 억울하게 욕하는 것은 분하지마는  실상 욕하는 것은 그것은 유익이지 손해 갈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이오.

 뭐 어제도 누가 뭐 이렇게 욕하고 저렇게 욕하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에 껍데기는 웃음이 나와요. 왜 웃음이 나오느냐? 복된다  이랬지마는 그만 웃음을 또 감출 새가 없어. 뭐냐? 이놈아 네 가 그 사람들이  거짓꼴로 핍박해서 너는 복받는다 좋다 하고서 거짓꼴로 핍박하는 사람 그  사람의 그 형편은 어떻게 될는지 그게 대해서는 생각지 안 하니까 너는  이기주의요 너는 너만 생각하는 놈이다 이러니까 처음에 들을 때는 우습고  즐겁지마는 조금 있다가는 할 수 없이 걱정이 되고서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지  안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진다 말이오.

 그런고로, 오늘은 지금 시간 다 됐는데 이제, 이제 모든 말씀을 많이 배웠는데  단단히 기억하되 우리는 신앙 시작을 신앙을 자다가 일어나든지 어디든지 길  가다가도 뻐뜩 잊어 버렸다 말이오. 그만 가다가 보면 동무들하고 이야기하고  친구하고 이야기하고 일 부지런히 하다보면 신앙을 잊어 버렸다 말이오. 신앙을  잊어 버려 나중에도 잊어버리고 밥먹다가도 잊어버리고 길 가다가도 잊어버리고  뉘 만나다가 잊어버리고 물건 흥정하다가 잊어버리고 사다가 팔다가 잊어버리고,  또 뭐 일거리 연구하다가 잊어버리고 신앙을 잊어버리기가 쉬워.

 신앙을 잊어버렸다가 그 신앙을 시작할 때에 뭘로 출발해야 됩니까? (복) 뭘로  출발해야 됩니까? (복) 복 이거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잊어버리지 마시오. 이거  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쳤고 또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참되다 제가 경험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다 말하는 것입니다. 복을 잊지 마십시오. 여기에서  교역자들부터 앉아 수근 수근 거리는 거 내 행동이 보면 그래요. 저가  아무것이가 매를 맞겠는데 참 기가 찬다 말이오. 저가 곧 주님의 매를 맞겠는데  맷정을 자꾸 씁니다. 그라고 난지 삼 사 개월 이 내면 매가옵니다. 그럴 필요가  뭐 있겠소?  그러고,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원치 안하는 것이 있거든 원치 안하는 그것을  그거 원치 안하는 것이니까,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지 말고 원치 안하는 그것은  주님은 아시기 때문에 그것이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게 있는 것이라는 것을  해석을 하고 필요하니 그것이 없어도, 없어도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만 돼  버립니다. 있어서 필요한데 그게 있어 필요한데 그게 없어도 될 사람은 안 되고  그게 없어져 버리면 어찌 되겠소?  내가 요번에 기도를 하면서 그런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이러니까 그래 속에서 주님이 웃으시면서 나에게 말을 해요. 네가 그거 없애  주면 좋겠느냐? 없어지고 나서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폐단을 네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게 내게 퍼뜩 들어와. 이래서 고만 후퇴를 해 버렸어. '아이구 나는  모르겠습니다. 내. 소원은 그런데 내 소원은 그런데 내 소원대로 하지 마시고  모든 것을 알지 못하심이 없고 모든 것을 아시는 주께서 아시는 대로 그 일을 복  되게만 해 주십시오.' 또 복으로 돌아갔다 말이오. 복되게만 해 주십시오.

그런데 제 생애는 소원은 그게 소원입니다마는 나는 무지하기 때문에 내 말대로  하지 마시고 잘 아시고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교인들에게 모두 곤고한 사람, 재산에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그  기도할 때에도 '그 사람에게 재산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할 만한 사람은 없어.

벌써 그렇게 기도할 만한 사람이면 내가 기도하나 안하나 조금 있으면 재산이 와  버렸어 벌써. 내가 생각하기 전에 벌써 재산이 와 버린다 그 말이오. 주님은  뭐라 했습니까? 즉시. 즉시. 즉시, 우리 어려움을 당하는 거 즉시, 우리가  기도하는 거 즉시, 그 즉시라는 말을 두 번이나 했어. 즉시 즉시.

 이러니까, 고것을 생각해서 내나 이러면 어찌 되나? 보면 그것을 말도 못 해  사람 있어, 말도 못 해 줄 사람. 말도 못 해 줄 사람은 약발은 잘 받아. 약발은  잘 받기 때문에 고 말을 하면 고게 대해서 잘 깨우치지기는 깨우쳐지는데 그게  약발 받아 가지고서 약발에다가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감정으로 팩  돌려버리면 그게 도리어 손해가 된다 말이오. 그래 말을 못 해 줘. 분명히  이거는 약발 이거는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을 일이다. 이거는 네가 교만한  일이다, 이거는 네가 하나님을 도리어 무시하는 일이다 이 거는 성공회를 네가  무시하는 일이다, 이거는 하나님의 교회를 네가 무시하는 일이다. 피로 값 주고  산 주님의 양떼를 네가 무시하는 일이다. 분명히 그게 있건마는 그것을 말을 못  해 줄 때가 있다 그 말이오  우리는 복 받는 사람됩시다. 껍데기로 우리가 암만 장식해서, 뭐라 했습니까?  천하를 다 얻어도 자기 잃으면 소용이 없다 했어. 자기 잃으면 소용없다 말은  세상 마귀 방법을 써 가지고서 천하를 다 취득한다 할지라도 참사람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 아닌 자기 아닌 자기를 죽인 그 거짓 사람,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그 옛사람 그 사람 가지고서 네가 천하를, 얻어 봤자 참사람을 네가  잊어버리고 그 옛사람으로 네가 살아서 네 심신은 옛사람의 도구가 돼 가지고서  움직이면 네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말입니다.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은 무엇이 와요? 빼앗기는 거는 뭐이요?  현실에서는 영원한 자기의 그 심신의 기능을 가지고서 이 심신의 기능을 가지고  영계와 물질계를 막 자유해서 이와 같이 무궁토록 써먹을 수 있는 이 심신의  기능을 현실에서 취득하는 건데 세상 것 취할라 하다가 이것을 다 취득하지  못하니까 뺏긴 자라 그 말이오. 현실에 기능의 그 기능이 영생으로 고정될 수  있는 그 기회를 둘째 사망의 해로 다 죽어 버리니까 빼앗겼다 그거요.

 그러면 천하 얻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뭐 천하나 얻고 그렇습니까?  찍해봤자 제 욕심대로 뭐 조금만 꼽짝꼽짝해서 뭐 교인 몇 명 데리고 해 가지고  그거 제 사람 만들어 가지고 그 제단 교역자 저거. 동무 저거 동무 그까짓 거  천명 만명이면 무슨 가치 있소? 하나님과 함께 해야지. 하나님은 저거 단체 똘똘  뭉쳐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홉짝홉짝하며는 그것 때문에 자기를 잊어버리고  옛사람이 하지 그것 때문에 자기 성화 될 그 기능 영생될 기능이 전부 영멸로  멸망하고 말지.

 이러기 때문에, 괘씸하게 여길 거는 없어. 괘씸하게 여기는 거는 제가 저 망할  줄도 모르고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이렇게 하는 그것을 불쌍히 여기지 그것을  괘씸하다 할 수는 없어. 왜? 주님도 나도 별 사람이 아니야 나도 주님이 놓으면  그 사람되고 말아요. 주님이 '저런 인간이 어디 있는가?' 이 말을 하고 취소를  안하고 있으면 얼마 안 가서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을 주님이 당장 만들어  주십니다. 만들면 그 사람되는 것이 저 먹장같이 모든 거 흉측한 아주 저런,  흉측한 죄인이 어디 있느냐 이래도 그 말을 하고서 속에서 사함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 주장을 자기가 만일 가지고 있다고 하면은 당장 그 사람은 그  사람되고 맙니다. 주님이 놓으면 그 사람되지 천하에 내가 못 될 죄인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어떤 죄인이 안 되겠다. 할 수 있는가? 아니오. 천하의 제일  죄인도 될 수가 있고 제일 되는 그 죄인도 제일되는 의인도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라는 위치가 뭐인지. 자기라는 실력이 뭐인지  자기를 바로 알고 사는 그것이 막바로 겸손입니다. 자기를 모르고 사는 것이  그것이 교만이오.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금번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에게 의심 없이 간절한 원한으로 주님 앞에  간구합니다. 이번에 진리와 영감으로 주의 피의 대속을 증거하사 우리로 하여금  피 안에서 성령으로 진리로 살 수 있는 이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은혜에 저의 부족으로 인해서 예언하는 영이 예언자로 인하여 제재를 받는다고  말씀하신 대로 저가 방해하는 일이 많은 줄 압니다. 사유해 주시고 이 은혜가  저희들에게 얼마든지 충만하고 충만하고 넘치고 넘쳐 역사하여 다 주님의 구속을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자 합당한 행위 합당한 결과를 맺어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거는 의심 없이 간구합니다. 이거는 아무런 다른 것이  섞인 것이 없이 간구합니다. 또 다시 주님 앞에 간구합니다.

 주의 은혜를 깨달아 주님을 위하여 참 구속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행위를 하고  싶으나 벌써 때가 지나가서 몸이 징계도 받고 이리저리 허비 남용도 하고 범죄도  하였으므로 인해서 다 약하여서 마음에 원하는 것을 몸이 수종들어 따라가지  못하는 이 몸의 약함을 가진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께서 주의 뜻대로 살기에 합당한 그 건강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시기를  원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주님 앞에 다시 간구합니다.

 저는 이것이 완전히 무슨 병이든지 무슨 약이든지 노약이든지 병약이든지 약한  것을 다 고쳐서 강건케 하사 주님의 보호에 수종들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간구에 주님에게 다시 간구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오니 주께서 그에게 주어서 합당한 그 주님의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주께서  그에게 가장 적당하게 합당하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어서 그에게 해독이 되는  것을 저의 미련한 간구에 응하지 말으시기를 다시 간구합니다.

 또 다시 간구합니다. 아직까지 주님이 누구신지 주님의 하시는 그 역사의  흔적을 보지 못하므로 인해서 믿음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고 유리하고 모두 다  의심하고 번민 가운데에 있는 형제들이 많습니다. 확신을 잡지 못 한 형제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런 표적을 보지 안하고 영감으로 인해서만 믿는 사람들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기는 섞인 것이 없이 간구합니다.

 다시 주님 앞에 간구합니다. 저들이 이 은혜로 주께서 베풀지 아니하시고  저들에게 표적을 보임으로써 믿음을 생겨 이 표적으로 받은 거 다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는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주님  앞에 어떤 것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저들의 간구의 부족이나 저들의 믿음에  부족한 것이나 이런 것을 개의치 마시고 어떤 그 질고든지 이것을 고쳐 주어서  이것을 인하여서 남은 때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은 주님께서 다 고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어떤 병이든지 다 고쳐 주시옵소서. 다만 고쳐 주시되 고쳐 주셔서  그들에게 폐단이 되고 도리어 자신의 구원에게와 다른 사람의 구원에게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은 주님이 이것을 뜻대로 하여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금번에 이 일을 위해서 협조한 모든 관민들과 동민들과 하나님의 남녀종들에게  주님이 축복하셔서 주님을 보고서 주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이것을 차차 깨닫는  자들 되게 하시고 이렇게 복음 운동에 이모저모로 이용되는 이것을 기뻐  만족하고 피곤치 않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앞으로 점점 갈급한 저희들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관을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점점 확대하여서  여기에서 치료할 자를 많이 치료하여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이제, 이제 우리가 이 시간으로 나뉠 터이니까 나누는 인사로 다 오른손을  들어서 한번 인사합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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