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상대로 주님을 기쁘시게

 

1985. 10. 30. 새벽

 

본문:  마태복음 18장 21절∼35절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는 한없는 비참한 가운데에 빠져 있던 우리들입니다 그 비참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약 한 말씀을 어긴 값으로 하나님과 관계는 끊어졌고 또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은혜도 다 끊어졌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진노의 저주만 우리들에게 오게 되어 그것이 영원히 계속하게 된 우리들입니다.

그랬는데 주님이 이것을 구원하실려고, 여게서 구원하실려고 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라고 우리 잘못한 것을 그만 그대로 묵과하고 용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공하신 그 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도 당신이 입법해 놓은 것을 어기지 못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법에 죽는다고 하는 이 법을 범했으니 영원히 죽어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요 또 하나님은 영원히 죽여야만 당신이 당신의 법을 이행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하나님 법 어긴 데에서 구원하는 일은 죄에서 구원하는 일인데 죄에서 구원하는 일은,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망하고 죽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망을 하나님이 대신 받으시는 이 대상이 있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은 우리를 그 죄에서 구출할 수가 없고, 또 대형만 받으면 우리는 벌 받는 데서는 거게서 구출하셨지마는 하나님 앞에는 세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죄 없다고 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의가 있는 자라야 서지 의가 있지 안하면 설 수 없는고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또 대신 우리의 몫을 다 행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 관계된 이 모든 행동을 다 예수님이 대신 행하셔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지성 지공 전지의 그 법을 다 이행한 사람으로 대신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인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은 율법에 우리는 완성을 할 수 없는 율법대로 살 수 없는 우리들인데 예수님께서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만족을 다 이루었다 이랬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완행을, 완전히 행하신 이로써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함으로 받은 형이 무한하고 영원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 행하셔서 의롭게 하신 일이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로 더불어 하나이니까. 이 화친을 하기 위해서도 무한한 그 화친을 일으켰습니다. 그 일으킨 것은, 신인 양성 일위이신, 사람만이 아니고 하나님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형을 대신함으로 우리를 해방을 시켰습니다. 대신함으로 우리를 해방 시켰고, 또 우리 대신 행하심으로써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 대신 화친함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그 무한의 완전이, 무한의 완전이 우리와 연결돼 가지고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의 완전이 얼마든지 역사하고 발휘하고, 발휘라는 말은 등불이 비취면 환하이 빛이 비취는 그런 걸 가리켜서 발휘라 이래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속성, 무한하신 지혜와 무한하신 능력과 무한하신 사랑과 무한하신 진실과 무한하신 거룩과 무한하신 지식과 지혜와 무한하신 그 의와 권능이 우리와 연결돼 가지고 그 무한함이 우리를 통해서 마치 나타나기를 내 말이 이 마이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처럼, 내 말이 이 마이크를 통해서 나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이 우리를 통해서 모든 택자들과 모든 만물들에게 이렇게 나타나 가지고 하나님이 피조물을 살리는 그 모든 은혜, 새롭게 하는 은혜 이 모든 은혜가 우리를 통해서 영원히 모든 만물들에게 이렇게 발휘할 수 있는, 전달될 수 있는 이런 일이 화친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큰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이요 은혜의 빚욜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잡수실 때에 '내 살을 기념하라 내 피를 기념하라'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 기념하라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의 잘못을 대신하신 그것을 언제든지 나타내라, 또 예수님이 우리가 행할 것을 대신, 우리가 행하여야 할 것을 우리가 행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대신 행하신 것을 언제든지 기념하라, 나타내라,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예수님이 이렇게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화친을 일으켰으니 이 큰 공로, 사람뿐 아니고 하나님이신 사람이신 신인 양성 일위가 우리를 대신해서 화친을 일으키시느라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화친을 일으킨 이 사실을 기념하라 그렇게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남은 생활이 어떤 생활을 우리가 할 건가? 예수님이 대형을 했기 때문에 대형의 원인이 되는 다시는 죄를 범치 않는 사람이 돼야 되겠고, 예수님이 대형을 하셨으니 대형을 기념하므로 다시는 영감에 복종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하는 영감 복종이 계속해야 되겠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살아야만 할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되고, 하나님의 영감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되고, 하나님의 원형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되고, 이건 다 하나님에게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래 하면 그러면 그 외에 딴것은 없느냐? 하나님에게 대해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데 하나님께 대해서 할라고 해도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형체가 없습니다. 형체가 없고 그저 무형의 완전자로 이래 계시니까, 우리는 그러면 하나님을 그저 무형의 존재이니까 마음으로만 그렇게 해야 될까, 또 그러면 그저 그렇다고 생각만 해야 될까, 그러면 우리는 아무래도 무엇을 상대해 가지고, 상대를 해서 해야 되겠는데 이 상대를 해서 진리를 어기지 안해야 되겠고 또 진리대로 영감대로 살아야 되겠고 또 하나님과 이와같이 지금 화친해 하나님의 모형으로 형상으로 살아야 되겠고 이래야 되겠는데,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상대한다면 하나님은 보이지 안하는 무형의 존재이니까 아무 무형의 존재에게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가지고 생각을 가지고 뜻을 가지고 이렇게만 가지고 있을까? 그러면 보이지 않는 자를 향하여 상대한다면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해야 되겠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하니까 보이는 행동이 상관이 없고 보이는 행동 아닌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상대해 살아야 되겠는데 이 일은 우리가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이 일 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실효가 없는 일이요 그저, 그러면, 말만하고 생각만 하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형체가 있는 우리들이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또 보이는 실상이 있어야 되지 보이는 이것이 없으면 우리 행동은 그만 허무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 가지 대속을 기념하는 것은 대속해 주신 주님에게 이 사실을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하고 생각하고 이 세 가지에 관련된 이 세 가지 생활을 해야 우리가 기념하는 일이 되는데, 그러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상대하고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상관이 없는가? 이것을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보이지 않는 나와의 관계된 것을 너희들이 기념할 때에는 보이지 않는 나를 생각함으로 보이는 사람을 상대해서 하라' 요렇게 하나님께서 규정을 지워 주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네 마음과 뜻과 성품을 가지고 행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분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니까 무형의 존재에 대해 가지고서 어떻게 행해야 될란지 그 행동을 우리가 할 수 없으니까 그 너희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은 상대하고, 너희들이 보이는 행동은 곧 하나님을 상대하는 그 상대로 보이는 사람을 상대해서 그렇게 하라' 요걸 하나님이 규정을 지워 놨습니다. 그래서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보는 형제를 사랑해야 된다. 보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거는 거짓말이 되고 만다' 이제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만 상대한다고 하면은 이거는 보이는 실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실상을, 보이는 실상을 가진 존재가 보이는 실상이 없는 행동을 한다면 이거는 전부 다 거짓말이 되고 말고, 하나 공상이 되고 말고, 망상이 되고 말고, 이거는 참 말할 수 없는, 사람을 방종 탈선케 되는 일이 될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보이지 않는 당신을 상대하는, 보이지 않는 역사, 내 마음이나 뜻이나 생각이나 정성이나,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그 상대를 하면서 보이는 네 몸뚱이 움직이는 거 또 네 혀가 움직이는 거 눈이 움직이는 거 귀가 움직이는 거 수족이 움직이는 거 네 피부가 움직이는 거' '그런 것은 어디다 대고 해야 됩니까?' '사람에게 대해서 하라' 요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요 소자 하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 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인간이 볼 수 있는 행동, 또 네가 볼 수 있는 행동, 그 형체를 가진 행동, 모양을 가지고 있는 행동, 우리가 손으로 하는 행동은 다 형체 가지지 안했습니까? 또 눈으로 하는 행동도 형체요 귀로 하는 것도 형체를 가졌습니다. 그런 것은 다, 주님에게 하는 일을 사람에게 상대해서 해라 고렇게 우리에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비유에,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과 가치를 비교하면은, 백 데나리온의, 백 데나리온의 만 배가 되는 것이 한 달란트입니다. 이런데, 이렇게 많은 주님 앞에 은혜와 그 모든 용서와 봉사와 희생과 사랑과 참고 견디는 인내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것이 그것이 몇만 배 몇억 배라고 하면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행한 것은 암만 자기가 잘 행해 봤자 주님이 내게 행한 거 몇억분의 일도 안 되는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항상 사람에게 대해서 무슨 언행 심사의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에 사람과 나와의 관계만 생각지 말고, 사람과 나와의 관계만 생각지 말고,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그것을 고것만 가지고 계산하지 말고 사람과 나와의 관계 그것을 언제든지 고 조건으로 주님과 나와의 이 대속의 관계를 가지고서 연상해라, 그러기 때문에, 네가 사람에게 어떻게 잘했든지 그것을 계산할 때에는 '주님은 나에게 얼마나 잘하셨느냐, 주님이 나에게 얼마나 잘하셨는데 나는 이 사람에게 잘한 것이 얼마나 잘했느냐' 고 비중을 비교하면은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잘하신 것이 내가 사람에게 잘한 것의 몇억 배 더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이 내게 교만해지지 안하고 '바로 정상적인 정신을 네가 가지고서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또 사람이 내게 어떻게 잘못한 거게 대해서 '그가 나한테 잘못했다' 고것만 고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너는 이미 대속을 받은 자요 그 기념해야 될 것이 너의 남은 여생의 생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너한테 잘못한 그것과 또 네가 주님에게 대해서 잘못한 것과 그 계산을 해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계산을 해라. 그 계산을 해서 거게서 네가 잘못하고 잘한 것을 따져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혜택을 입혔고, 어떤 용서를 했고, 또 어떤 봉사를 했고, 어떤 희생을 했고, 그이의 잘못을 내가 얼마나 부담을 했고, 그이가 할 것을 내가 얼마그 부담을 해서 대신 행했고, 또 그이의 모든 원수된 그런 것을 내가 화목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거기 공을 들였고 하는 그런 것을,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하되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계획을 해야 할 것이고, 또 내가 사람과 나와의 관계, 사람이 내게 잘못된 그 모든 것과 못 한 그것을 주님과 나와의 관계, 주님이 내가 못 한 것을 대신하신 이 일을 생각하면서 생각하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대해서 어떤 일을 하든지 계획할 때에는 주님이 네게 대해서 어떻게 하신 그것을 원함으로 삼아 가지고 네가 모든 것을 계획을 해라.

또 사람과 너와의 계산을 따질 때에는 주님과 너와의 계산 댄 일이 있기 때문에 그 계산을 원형으로 해 가지고서 그렇게 계산을 대라. 그러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이라는 그 마지막에 결산이 나올 것이고, 또 네가 아무리 사람에게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주님이 '내게 대해 한 그것을 이제 사람에게 해라'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결국은 나는 빚졌다, 나는 사람에게 대해서 행할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하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결국은 나는 사람에게 할 걸 다 하지 못한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다' 이런 마지막의 결산이 나올 것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원형으로 삼아 가지고 사람에게 모든 건설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는 죽도록 충성해도 미진이요 무익한 종이요 빚진 자가 되겠고, 또 이 파괴된 것을 대형하는 이 대속하는 일도, 사람과 나와의 그런 대속적인 관계에 있는 것도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빚진 자가 되고 항상 무익한 종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항상 의에 갈급이 있을 것이요, 갈급이 있을 것이요 자기에게는 더 갈망과 더 열중이 있을 것이요 더 충성이 있지 오만한 자리에는 앉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인 관계를 주님과의 관계 이것을 원형으로 삼아 가지고서 인인 관계를, 관계를 가져라, 네가 할 일이나 그 형제가 너한테 잘못한 일이나 형제가 너한테 감사치 못하는 일이나, 뭐 형제가 너에게 잘못된, 잘못하는 그 모든 것을 네가 주님에게 어떻게 잘못됐나 하는 그런 것을 계산하고, 네가 형제에게 어데까지의 옳은 일을 하고 사랑을 베풀었다 할지라도 주님이 네게 사랑 베푼 그 계산을 거게다가 대고서 계산을 해라. 그러면 주님이, 공연히 위안제나 마시고 자기 마음에 겸손해지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요것을 낱낱이 다 갚아 주마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을 냉수 한 그릇 한 것도 다 갚아 주겠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고, 또 없어질 거 가지고 이래 했을 때에 영원한 처소에서 그 친구가 갚아 준다 청지기 비유에는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없어질 거 가지고서 네 형제를 대우한 것을 영원한 집에서 너를 초대해 가지고서 영원히 대우하겠다.

그래서, 우리가 인인 관계에 대한 것을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원형으로 삼아 가지고서 상대할 때에 우리는 항상 무익한 종이겠고 갈급이겠고 부족이겠고 더 소원해서 더 충성하는 이런 사람이 돼서 의를 행하는데 권태나지 안할 것이고 오만하지 안 할 것이고 교만하지 안 할 것이고, 또 의례히 그것은 법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대신하신 분이 너희가 사람 앞에 이렇게 해라 이랬으니까 법적으로 우리는 안 하면 안 될 그 법적 의무와 책임을 진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낱낱이 또 하나도,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그대로 두지 안하고 전부 다 댓가를 치르겠다 이랬습니다.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했어. 그러면, 댓가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상으로 주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그것을 안 해도, 안 해도 대속의 공로는 우리에게 온 것인데 그 하는 것은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받는 그 댓가가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받는 댓가가 아니고, 대속의 공로는 순전히 은혜로 주셨기 때문에 이제 자기가 그와같이 하는 것은 이다음에 주님이 당신이 빚진 거와 같이 갚아 줄 것이요, 빚진 것과 같이 갚아 주는데, 그것보다도 또 상급으로 그렇게 갚아 주리라, 이거는 승리했다는 상급으로 갚아 주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이것을 여게다가 말씀했습니다.

그러고, 또 우리가 주님을 대해서 이것이 기쁘게 하는 일, 주님을 대해서 기쁘게 하는 일은 다른 게 없습니다. 주님을 대해서 기쁘게 하는 것은 주님에게 대해서 행할 것을 사람에게 대해서 우리가, 보이는 형상은, 사람을 하나님의 대리라 했기 때문에, 대표라 했기 때문에 사람에게 행하는 그것이 주님에게 행하는 것으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대한 그 간절한 우리의 중심을 보이지 않는 중심, 마음이 보입니까? 정성이 보입니까? 소원이 보입니까? 그런 거는 안 보인다 말이오.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그거 무형의 존재 아닙니까? 암만 내가 소원하지마는 겉으머리 주먹같이 뭐이 나타납니까? 그런 거 안 보인다 그 말이오. 소원이나 마음이나 간절이나 정성이나 보이지 않는 것을 하나님에게 향하지마는,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 향하지마는 보이는 행동은 그분이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 말이오. 그 보이는 행동은 사람에게 대해서 하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을 향하는데 보이는 사람에게 주님이 내게 하신 거와 같이 내가 탈 때에 고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뭐 보이지 않는 주님에게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것은 거짓되기가 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보이는 사람에게, 주님이 내게 대해서 행하신 그 일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기념한다 그 말이오. 보이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와같이 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또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어떤 게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인가?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보이는 사람에게 주님이 내게 대해서 행하신 그 일을 하지 안하고 주님이 내게 대해서 행하신 대속의 공로는 다 잊어버리고 다 집어 던져 버리고 그 사람과 나와의 일 대 일로 해서, 일 대 일로 해서 주님이 내게 대해서 행하신 그 일을 보이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 행하지 안하는 그것이 주님을 노엽게 하는 유일한 노여움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요 두 가지를 우리가 바로 깨닫고 굳게 잡아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건가?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가, 그 일을 내가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내가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노엽게 하는 것인가?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행하신 그것을 내가 사람들에게 대해서 하지 않는 그것이 주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을 여게서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당장 잡아다가서 옥에 가두면서 이렇게 분개했습니다. 그 분개한 것은, 옥에 가둔 것은 그렇다고 해서 대속 받은 사람이 지옥 간다는 것 아닙니다.

대속 받은 사람이 지옥 가는 거 아닌데, 이렇게 주님이 내게 대해서 행하신 것을 내가 사람들에게 행하지 안할 때에 옥에 가둔다, 그건 지옥에 가둔다 그 말이오.

그러면, 우리 대속 받은 사람을 지옥에 가둘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 O선생, 없어? 어떻게 없어, 여기 가둔다 했는데?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치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리라' 이러면, 옥에 가둔다 했다 말이오. 옥에 가두는 것은 가둡니다. 이제 우리가 현실에서, 현실에서 하는 행동은 상급 받을 행동은 뭐이냐 하면은 주님이 내게 대해서 행한 그것을 내 현실에서 사람에게 대해서 행하는 것이 상급 받을 일이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내가 주님을 노엽게 하는 일은 내가 현실에서 주님이 내게 대해서 행하신 그 일을 내가 사람들에게 대해서 행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고것이 이제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하지 아니한 고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옥에 갇혀서 영원히 나오지 못합니다. 영원히 옥에 가둡니다.

고것을 여게서 말씀하신 것이니까 우리가 여게서, 내가 주님에게 주님을 대해서 어떻게 살며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살까 하는 요것을 곧 바로 생각해서 주님에게 대해서 살아야 할 이 사는 생활을, 그 마음과 그 정성과 그 소원과 그 뜻을 어데다가 소원 성취를 하겠느냐, 그것을 어데다가 할 것이냐? 그것을 보이는 사람에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그거는 비유가 잘 안 되겠지마는 어떤 자기의 남편이 자기의 남편이 참 외국에 유학을 하러 가면서, 그 남편이 자기에게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었고 은혜를 베풀었고, 참 밤낮 잊을 수 없는 그 남편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고 외국에 먼 나라에 가면서 이제 갓난 아이 하나를 맡기면서 '이것은, 이것은 너와 나와 둘이 합해 가지고 낳은 어린것이니 이것은 내 아이니까 네가 나를 보지 못할 때에 이것을 날 본 것같이 보고, 네가 나한테 간절한 것을 이 아이에게 간절하고, 네가 나한테 이렇게 아주 성심 성의 기울일 것을 내가 맡겨 준 이 아이에게 네가 성심 성의를 기울이라.? 그러면, 그 여인이 참 그 남편에게 대한 사모와 그 은혜의 감사함을 인해서 그 아이에게 감사함의 행동을 하는 그와 꼭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 택함을 받은 자들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그것이 다 주님이 성도들로 더불어 하나 돼 가지고 낳은 것입니다. 우리 권찰들 가운데는 자기가, 자기가 전도해 가지고서 낳은 아이, 낳은 성도가 아마 몇백 명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는 지금 여게, 뭐 우리 교인이 유치반까지 다 하면 몇만 명이 되지마는 내가 직전 전도해 가지고 한 것은 몇 사람이나 되는지 모르겠소. 그저 나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 여러분들은 낳았고 여러분들은 생모라. 여러분들은 전도해서 낳았으니까 생모라. 나는 지금 무엇하고 있는고 하니 기르는 사람이라. 그래 나는 양부나 될란가 모르겠어. 나는 양부. 양부나 될란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는 물 주고 기르는 사람이요 여러분들은 지금 전도해 가지고 한 것은 여러분들이 낳은 사람들이라 말이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해 가지고 이제 성도하고 주님하고 둘이 뜻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고 영감을 맞추고 행동을 맞춰 가지고서 그 하나를 구출해 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의 아들이라 이래, 믿음의 아들. 바울이 말하기를 내 믿음의 참아들 디모데라, 믿음의 참아들 디모데라 했으니까, 참아들 디모데라 탰는데, 믿음의 아들이니까, 그러면, 믿음의 아들이라면은, 믿음의 아들이면 바울이 믿음의 아버지라 말이요 믿음의 어머니라 말이오? 예? 예? 뭐 말이오? 예? 믿음의 아버지라 말이요 믿음의 어머니라 말이오? 이것도 모르고 백지 그러면 개 머래 먹듯이 그랬구먼. 바울이 내 참아들 디모데라 했으니까 이제 그것은 믿음의, 믿음의 어머니라는 말이오, 믿음의. 믿음의 아버지는 뉘냐? 믿음의 아버지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시오. 주님이신데, 그러기 때문에, 또 주님이 내 안에 와서 역사했기 때문에 내 안에, 그 교인의 아버지가 내 안에 있어. 내 안에 있고, 나도 또 그 교인의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상호 내주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다, 보이는 그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그게 뭐이냐 하면은 주님이 다 그거 위했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가지고서 그것을 낳은 것이라, 주님의 대 속의 공로를 베풀어 가지고서 다 갇혀 있는 것을 해방해 냈고, 그것을 죽은 것을 살려냈고, 또 그것에 모든 구비한 은혜를 줘 가지고서 이래 한 것이기 때문에 곧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결론적으로는, 내가 보이지 않는 주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할 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내가 현실에서 나와 관련된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느냐 하는 그것으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고, 또 내가 현실에서 보이는 상대인 그 사람에게 어떻게 행한 것으로서 주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현실에서 내가 사람 상대하는 거게서 이루어지고,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현실에서 내가 사람 상대하는 거게서 이루어지고 노엽게 하는 것도 사람 상대하는 거게서 이루어진다는 요것을 언제든지 생각하고, 우리는 현실에 어떤 사람과 관련되든지 현실에서 관련된 고 사람, 고 사람과 나와의 관계로 주님을 무한히 기쁘시게 하는 결과도 맺을 수 있고 주님을 무한히 노엽게 하는 결과도 맺을 수 있다 하는 요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명심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 빚진 빚 탕감해 준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만 것을, 수많은 것을 다 탕감해 주지 안했습니까? 이랬는데, 우리는 사람에게 조금 잘못한 거 그거 잘못해도, 주님이 나한테, 내가 주님에게 잘못한 것을 말하면 억억억억만 배도 더 잘못했는데 고것 잘못한 고것은 따지고 주님에게 큰 은혜받은 거는 잊어버린 그자를 주님이 노여워하신다 그 말이오. 요것을 기억해서 우리가 형제에게 대하여 해야 될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갔는데, 오분 기도 후에 권찰회 있습니다. 잠깐 참석이라도 하고 가시고, 또 여게 제가 권찰 책임 맡은 권찰장인데 뭐이든지 저한테 말할 것이 있으면 직접 못하면 요 신고함에다가 써 넣으시면 감사합니다. 그러고, 혹 설교를 들을 때에 '이거는 내게 대해서 한 말이라'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거는 자기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니고 모든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안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야 됩니다. 전부 다 '아 이거는 다 내가 받아서 내가 지켜야 될 말씀이다. 내가 고쳐야 될 말씀이다' 하는 이것을 전부 책임을 지고 들어야 되지 책임을 지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나를 지적해서 하는 것이다' 그라면 고 마귀란 놈이, '이건 나를 지적해서 하는 말이다' 요라고 나면은 그다음에 마귀란 놈이 '그거 참 나한테 하는 말이다.' '나한테만 대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전 성도에게 다 대해서 하는 말씀이니 내게 대한 말씀도 되지. 그러니까 나는 거게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고쳐야 되지' 요라면 마귀란 놈이 떠나는데, '내게 대한 말씀이다' 고라고 나면 마귀란 놈이 '그래. 그렇다. 이것이 너 인신 공격을 하는 것이다' 요놈이 요래 나옵니다. 요래 나오면 고서 '그래. 인신 공격한다. 그러면, 나는 이제, 그가 나한테 인신 공격 하니까 나는 그로 더불어 원수가 된다' 이제 하나님의 종으로 더불어 대항이 됩니다. 그러면 어찌 되느냐? 그러면 이제 지옥으로 자꾸 끌려간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설교는 언제든지 개인의 그 사정을 보고서 설교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뭐 들어, 보든지 듣든지 하면은 그 전부를 향해서 하는 말이라, 전부 교인 전부에게 대해서 하는 말씀이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 그걸 내가 안 전하면 내가 파수군이기 때문에 내가 뒤에 가서 형벌 다 받아.

그러기 때문에, 뭐이든지 그와같이 말하는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교회 무슨, 이런 것을 설교를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것이 있으면은 자꾸 신고함에 써넣어라 말이오. 신고함에 써 넣으면 나는 그것을 또 자꾸 나팔을 붑니다. 나는 파수군이니까 나팔을 불어야 돼. '저기 누가 있다. 아, 저기 적이 들어온다. 저게 적이 지금 저 구석으로 들어온다' 파수군에게 가서 말하면 파수군이 나팔을 불면서 '저게 적이 들어오니까 다 깨라' 이라면 이제 그 적이 들어오다가 못 들어오고, 들어와도 방어할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해야 될 일을 안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나한테 신고함에 써 넣어 가지고서 말하면 그걸 내가 보고서 또 나팔을 분다 말이오. 또 안 할 것을 하는 일이 있으면 또 신고함에 써 넣으면 내가 그걸 보고서 나팔을 분다 그 말이오. 이래야 되니까 자꾸 그것을 신고함에 써 넣어야, 내가 그 모든 정보를 들어야 되지, 내가 또 하나님이 아닌데 그 모든 걸 안 들으면 내가 압니까? 교인들은 지금 다 이라고 있는데 나는 그걸 하나도 모르고 엉뚱한 짓 하면은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은 내 눈이 되고 내 귀가 돼. 내가 못 들은 걸 여러분들이 들어 가지고 내게 알려주고 내가 보지 못하는 걸 여러분들이 보고서 나한테 알려주고, 여러분들은 내 귀와 눈이 돼야 되고, 그러면 나도 또 여러분들의 귀와 눈이 된다 말이오. 여러분들이 못 본 걸 또 내가 또 보고 또 여러분들이 못 보는 걸 내가 보고 말해 줘. 여러분들이 못 들은 걸 내가 듣고서 말해 줘.

이러니까, 나는 여러분들의 모든 이목구비 수족이 되고 여러분들은 내 이목구비 수족이 돼 가지고서 한 몸이 돼 가지고 이래 가지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된다 그거요.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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