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


선지자선교회 1984년 1월 8일 주후

 

본문 : 약 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우리가 믿음을 말할 때에 자기가 말로 믿는 그 믿음 그것을 그만 믿음의  실상으로 생각하는 데에서 모든 잘못됨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우리가 늘 배운대로 마음으로 행하고 몸으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한 그것이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든지 영감을 하시든지 하실 때에 그를  참되다 받아들이고 그와같이 하려는 그 마음을 가졌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마음으로 순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몸으로 행하는 것은 그렇게 마음으로  하기로 작정한 그것을 몸으로 또 그것을 실행을 했을 때에 몸으로 행함이  되겠습니다. 그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행하고 몸으로 행하는 것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는  그 순종, 마음으로 그대로 하고자 하는 그 믿음이 우리 몸으로 하여금 그와같이  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하는 말은 그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하신 그 말씀을 받아들여 인정하고 그대로 살기를  원하고 그대로 살려고 그 마음이 애를 쓰는 그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게  됩니다.

 '믿음이 그의'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이라 하는 것은 몸으로 하는 것을 말하고 또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 명령 인도를 참되다 인정하고 그대로 마음으로 할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게 믿음이고 그 믿음 가지고, '행함과 함께 일하고'  그 믿음 가지고 또 몸으로 행하게 됩니다. 몸으로 행하면 그것도 몸으로 믿는  믿음이 되겠습니다.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우리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그렇게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참되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그대로 행할라고  애쓰는 마음을 가리켜서 마음의 믿음이라. 그 마음의 믿음이 암만 좋다 해도 그  마음의 믿음이 행함의 믿음이 안 되면 그 마음의 믿음은 마치 농사 지은 것이  아무리 풋수는 잘 돼도 결실을 못 하면 그 헛일인 거와같이 또 그 사람이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서 우등 공부를 했다 할지라도 그 공부한 것을 나중에 써먹을  수 없게 되면 그 공부한 것이 다 헛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첫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이대로  할라고 애쓰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그 마음이 있는 그것으로서 끝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되고 마음에 있는 대로 그 몸으로 행해야  이제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돼 버립니다.

 여게 또 비유하기를 사람이 배고플 때에 음식을 먹으면 배부를 줄 압니다. 암만  배부를 줄 안다 할지라도 음식을 먹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음식 먹으면  배부를 줄 아는 그 지식 가지고 배불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을 먹어야 되지.

또 추운데 불을 따뜻이 때고 의복을 따시게 입고 이라면 추위가 없어지고 따실  줄 압니다. 어떻게 하면 따시겠다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마는 입을 옷도 없고 또  뭐 불을 땔 만한 그런 것도 아무 것도 없고 하면은, 자기가 불 때고 옷 입으면  따시진다 하는 것을 안다 할지라도 그것이 실지에는 효력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도리를 받아서, 아 옳다 참되다 그와같이  이제는 행하겠다 해도, 행하겠다 하는 그것까지만 가지고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행하겠다 하는 그것을 몸으로 행할 때 비로소 온전한 믿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도를 듣고 깨닫고 이대로 행할라고 하는 그 마음을  가지는 것은, 비유컨덴 배고픈데 음식 먹으면 배불러 진다 하는 것을 아는 거와  꼭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만 가지고 사람이 배가 불러지느냐 안 됩니다. 도로 갈증만 생기지  음식을 착 먹으면 그만 배가 불러지는 것처럼 우리는, 아무리 마음으로 듣고  깨닫고 행할 마음을 아무리 간절히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도로혀,  사람에게 고민만 가지지-행하지 못 하니까?-고민만 가지지 그라다가 척 행할 때  그때에 능력이 옵니다. 행할 때에 능력이 옵니다. 우리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것으로서 결과를 맺는 그런 종류의 것도 있고 마음으로 믿는 그것을 몸으로  행하는 것까지 겸해야 결실을 맺는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행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올해는, 우리가 많이 배워서 깨달았는데 배워서 깨닫는 그것도 좋지마는 깨닫는  그것을 행함을 거게다가-아무리 어려워도-겸해서 배우고 읽고 들어 깨달은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행함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행함을 만들지 안하면 듣고  깨달은 것이 무슨 일을 우리에게 하느냐? 듣고 깨닫고 행하지 못한 그 지식이  행하지 못 했으면 우리에게는 유익을 주느냐 해를 주느냐? 성경에 말하기를 이  말씀이 우리를 마지막에 심판한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마음으로 인정하고, 그와같이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만 가지고  실행하지 못하는 그 지식은 우리를 심판하는 심판이 되고 말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유익은 없고 전부 해가 되고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으로 자기가 깨닫고, 마음으로 행하는 것 마음으로  지금 해볼라고 애를 쓰는 것이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할라고 애를  쓰다가, 사람들이 행하면 그만 큰 능력이 오고 자기에게 쓴 큰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행할 마음을 가지고 행할라고 애를 쓰다가 행하지 못하고 그만  끝을 마쳐 버리면은 그 지식은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 되어지고 구원이 하나도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참되다 인정을 하고 또  그와같이 할라고 원하고 이라다가 행하는 결실을 하지 못하는가? 왜 그 행하는  그 성공을 하지 못하는가? 못 하는 이유는 우리가 마음으로 할라고 할 때에도  악령의 방해가 많이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몸으로 행할라고 할 때에는 여러 가지  악령의 방해가 많습니다. 악령이 사람을 통해서 방해하고 물건과 일을 통해서도  방해하고 뭐 위에 있는 상관을 통해서도 방해하고 부하를 통해서도 방해하고  가족을 통해서도 방해하고 또 자기 동역자를 통해서도 친구들 통해서도 원수를  통해서도, 뭐 별별 것을 통해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대로  살고자 하는 대로 행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여게서 떨어져 가지고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  끝나 버리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올해는 우리가 실행하는 이 구멍을 뚫어야 되겠습니다. 실행하는 일을  어떤 애로가 있다 해도, 참 내가 금년에는 너무 많이 시작지 말고 그저 자기가  꼭 할 수 있는 것, 오전에 말한 대로 할 수 가 있는 것을 시작을 합시다.

 오전에 열 가지를 말했는데 그 열 가지를 여러분들이 각각 자기가 돌아 가서  명상을 하면은 그 열 가지는 우주에 가득 찰 것입니다. 그 열 가지는 자기 마음  안에도 가득 찰 것이요 자기 가정에 가득 찰 것이요. 이 세계에도 우주에도 가득  차고 우주에 가득 차고도 우주가 모자랍니다. 그 한 없이 많고 양이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서도 한이 없습니다. 무한합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연구함에 따라서 자기는 커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그 넓음에 대해서  깨달은 대로 자기의 자유의 활동하는 무대는 넓어집니다. 또 자기의 소망의  지극히 큼에 대해서 깨달은 대로 자기는 점점 커집니다. 그것을 우리가 첫주일날  하나님에게 받았으니까? 이것도 실행을 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합시다. 하루 종일  이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행위로 오늘도 이 시간에도 이를 실행하는 행위로  살라고 애를 쓸 때에 자기에게는 어두움이 와서 가루지를 못하고 또 악령의 이,  언제든지 우리를 참소해 가지고서 넘어지게 하는 악령이 거게 가까이 접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마음은 옳고 바르고 참되고 곧고 크고 넓고  견고하고 깨끗하게 되어집니다.

 그러면 이 우주에는 하나님의 지으신 선물로 가득찬 세상이기 때문에 그 선물만  자꾸 가지면 얼마든지 행복되고 하나님의 그 선물을 잘못 가지면 저주가 되는  것인데 저주로 그걸 가지면 제가 견뎌 배기지를 못 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죽는  날까지 그 저주를 가지므로서 완전히 멸망을 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오전에도 우리는 새로 지음을 받은 새것. ○○교회라고 하는 교회가. 교파가  생겨져서 지금도 ○○교파라하는 교회가 종종 있는 같습디다. 아마 그 분은 이  새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깊이 깨닫고 그만 그리만 치우쳤기 때문에 그렇게 좋지  못한 결과를 맺었습니다.

 우리는 새것으로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새사람입니다. 새사람이요 또 지혜도  새 지혜를 얻었습니다. 새 지혜. 묵은 지혜, 사람을 죽고 망치는 묵은 지혜가  아니고 새 지혜 새 능력, 새 능력은 뭐이 새 능력인고 하니 내가 하나님에게  순종해서 내게 힘있는 걸 다 기울였을 때에 내 힘엔 그 나머지기를 이어 가지고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이 역사하는 그것이 새 힘입니다. 새 힘, 새 능력. 우리는  새 능력을 벌써 받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새 나라, 새 나라. 우리는 세상  나라를 위해 살지 안하고 새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새 나라. 새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새 나라 새 소망. 새 일, 새 지식, 새 생활, 이렇게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것이 되었다는 이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우리는 또 명상하다 보면 잘못하면 그만 옛것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또 새것으로  또 일어서고 새것으로 일어서고 자꾸 옛것으로 더불어 싸울 때 그때가 새것으로  사는 때지 자기는 새것으로 산다고 생각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벌써 넘어  갔습니다. 새 것.

 또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게 하려 함이라' 자기 위해서 살지 말고,  자기 위해서 사는 그것이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제 이계명에 무엇이든지 닥칠  때에 이거는 사랑하는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라. 이것을 자기를 위해서 살게  되면 그것이 필연적으로 결과적으로는 우상돼 버리고 맙니다. 자기 위해서 산  것이 우상 안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위해서 살면 우상되고 자기  위해서 살지 안하고 그것을 주를 위해서 살게 되면 뭐이 되는고, 주를 위해서  살게 되면 그 삶이라는 그 삶이 주님을 기쁘시게 한, 주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돼 버리고 주님을 영화롭게 한 것이 돼 버리고 또 주님을 존귀케 하는 것이 돼  버리고 주님이 기뻐하셔서 축 복주시는 축복이 돼 버리고 그렇게 좋은 결과를  맺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주를 위해서 살다 보면 그것이 사랑도 되고 진실도 되고 거룩도  되고, 주를 위해서 살라고 그것만 하나 가지고서 살다 보니까? 그 진실도 돼  버리고 거룩도 돼 버리고 의도 돼 버리고 사랑도 돼 버리고 전도도 돼 버리고 또  참 옳은 것도 돼 버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되고 영화롭게  하는 것도 되고 하나님을 존귀케 하는 것도 되고 내기에 복도 되고 또 나와 내게  속한 사람에게 복도 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둘째로는 우리가 다시는, 다시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안 하고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신 자를 위해서 살게 하려 함이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는 자기 위해 살지 안하고 주님 위해서 살기를 작정하고 이  생황 할라 하면은 거게 수많은 암투도 있고, 암투도 있고 또 드러나게 아주  양성적인 전투도 있고 자기 안에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대내 싸움도 있고 자기  밖에 있는 수많은 것을 상대하는 대외전도 있고. 대내전도 있고 대외전도 있고  우리는 뭐 싸움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싸움이요 이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선한 싸움이란 말은 그것이 전부가 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위한  모든 투쟁입니다. 그렇게 주를 위해서, 다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안하고 주를  위해서 살 것.

 그러면 주를 위해서 사는데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없애 주셨기 때문에 죄 없는 자로 살 것. 죄를 짓지 않는 자로  살것. 이것도 우리가 싸울라 하면은, 이게 다 보배인데 있는 것 다 팔아야 사지,  있는 걸 다 팔아야 이렇게 사죄를 보존하지 입는 것 팔지 안 하면 사죄를 보존  못 합니다. 있는 걸 다 판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주님 말씀 하시기를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버린 자는 여러 배 혹은 백 배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얻을 때는 다 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 하는 것은 얻을 때에 그  얻어지는 그 방편은, 이 이라면 인제 망한다 네가 이제까지 망해 놓고 또 더  주를 위하면 인자 완전히 바싹 망한다 하는 그런 순서를 통하기 때문에 믿음이  아닌 사람과 주님을 사랑치않는 사람은 그때 그만 돌아서 버립니다. 그때  돌아서지 안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에 그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에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 그렇게 표시했습니다.

 우리가 어데서든지 우리는 이제 죄를 지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 죄를 짓는  그 결과가 비참하게 망하기 때문에 그 죄는 일시에 몰라서 아주 얼롱달롱하게  아주 번쩍거리는 그 광채가 있다 할지라도 선악과요. 또 어떻게 재미가 있고  맛이 있다 해도 선악과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것 단정합시다. 이제는  내가 죄를 짓지 않겠다 몰라서 짓는 죄는 그것은 허물이라 어짤 수 없지마는  알고는 고범죄를 짓지 않겠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들로서 대게는 보면 주의  종으로 하여금 고범죄를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는 것을 많이 기도들 했습니다.

이러니까? 알고 짓는 죄는 안 짓겠다 요거 우리 작정합시다. 알고 짓는 죄는  짓지 않겠다, 우리가 몰라서, 죄인지 모르고 하는 그런 것은 참 우리가  모르지마는서도 죄로 알고는 짓지 않겠다 하는 요것이 사죄를 기념하는 것이요  요것이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고 아무리 큰 무슨  이해가 있고 아무리 난처한 일이 있고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 있고 아무리 죽을  만한 그런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이제는 사죄를 받았기 때문에 죄짓지는  않겠다 요것을 우리 속에 마음에 결심을 하면 우리에게는 능력이 옵니다.

 지난번 교역자회때에 그 모두 교역자들이 간증을 하는데, 그 ○목사님이,  ○○○목사님이 서울 가 가지고서 교회가 지금 부흥이 됩니다. 되는데 그  ○○○목사님이 간증을 할 때에 그렇게 합디다. 아 우리가 참 뭐 하나님께  대해서도-지금 조직 신학을 좀 연구하라 했더니마는서도-하나님께 대해서도,  그저, 대개 책이라고 있는 유명한 책은. 다 갖추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라면서  그 책들을 많이 보고서 거의다 열람을 이래 해 봤는데 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간단 명료하게 아주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 중심의 요지를  다 가르쳐 주셨다고서 이렇게 말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을 이제까지는 모르는  자로 살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는 자로 살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았다는 그것을 자기가 깊이 회개를 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 편에서 가지고서 한번 살아보겠다 하는 그  마음만 먹으니까? 그만 교회가 부흥이 되고 자기도 달라지고 그렇게 한다고 하는  그런 간증을 합디다. 그거 바로 깨달은 거요.

 하나님을, 이제는 참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을 자기가 인정하는 자로 살라고,  이제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분을 크신 분으로 모시고 크신 분을 섬기는 자로  살겠다 하는 그 마음만 가져도 자기가 변화되고 교인들이 모두 변화가 되더라  하는 그 말은 자기가 하나님의 크심을 차차 차차 알고 이렇게 인정해 가면  자기는 죽도록 충성하고도 항상 마음으로 한 것뿐이 지 그 자기의 몸으로나  행동으로는 하지 못 했다는, 점점 죄인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나이가 많에  갈수록이 점점 더 큰 죄인이 돼서 괴수 죄인이 된 그것이 그 방식입니다. 그냥  입술로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면 자기는  죽자껏 힘써 행해도 행할수록 자기는 점점 죄인되어 가는 것.

 그러기에 기독자는 의인될라고 하므로 죄인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므로서 하나님을 거슬리는 자가 되어진다는 그것이 자기 주관대로 자기를 아는  판정이요 제삼자들이 볼 때에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성자라 성녀라 그렇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금년에 작정합시다. 요것도 실행이 있어야 되니까? 이제는  나는 죄를 짓지 않겠다 내가 알고 짓는 죄를 고범죄를 짓지 않겠다 이걸 딱  작정해서,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열람할 때에 나는 어떤 어떤 죄를 짓느냐  상식적으로 짓는 죄도 있고 또 실수로 짓는 죄도 있고 제일 많이 실수로 짓는  죄가 있겠고 이러니까? 그런 것을 다 해서 이제는 아는것. 죄라고 아는 것은  내가 범하지 않겠다 고범죄를 범하지 않겠다 요렇게 확정을 지웁시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 기꺄지 하셔 가지고서 나에게  사죄를 주신 그 사죄를 자기가 참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기까지 이렇게  하셔서 나에게, 형을 대신 하시고 사죄를 주셨으니 나도 죽었으면 죽었지 죄를  범하지 않겠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나에게 죄 없애 주신 사죄 주신 사죄를 나도  죽음으로 이 사죄를 보수하겠다 죽음으로 내가 벎죄를 안하겠다 요것을 우리가  결심하고 요 작정을 하면 벌써 그 마음이 다를 것이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이 이것도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대신 행해서 의를 입혀  줬으니까? 주님이 입혀 주신 의, 이제는 내가 곤난해도 가난해도 이 의는 내가  내 주지 않겠다 이 의는 팔지 않겠다 이 의는 양보 하지 않겠다 뭐 마지막에 참  생명을 빼앗겼으면 빼앗겼지 이 의는 뺏기지 않겠다 내기에 닥쳐 온 의라면 내  있는 소유, 몸. 생명까지 다 해서라도 내 몫에 당한 의는 내가 기어코라도 이  의를 건설하겠다 요렇게 의에 대해서도 작정을 하고 그 실행의 열매를 맺도록  그렇게 금년에는 출발합시다.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것이 하나님과 우리와 이렇게 화친돼서 참  하나님이 만유의 대주재 하나님이 우리와 화친됐다는 것, 이것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십니다. 또 늘 자꾸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데는 하나님에게 뭐 사소한 일을 말해도  하나님이 딱딱 들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와에 이렇게 친부자의 친교를 가지고,  아버지는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 보다도 더 무한하신 그 사랑을 가지고 한다  했습니다. 너희들이 악할지라도 자식이 좋은 것을 달라 하면 나쁜 것을 주겠느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겠느냐 아버지는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보다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또 모든  것을 다 준비해 가지고 갖춰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  배반하지 안하고 하나님 모시고 사는 것….

 하나님 모시고 사는 일이 이거 얼마나 어려운 지 모릅니다. 참 자기 그 직장에  딱한 일에, 그때에, 딱한 일도 뭐 물질에 대해서 손해가는 그런 딱한 일도 있고  자기의 위신에 대해 딱한 일도 있고 자기의 직장에 대해서 딱한 일도 있고,  마지막에는 이리 되면은 자기의 생명에 대해서 위험한 딱한 일도 있으니 생명에  대한 딱한 일이 그 일이 최종입니다. 뭐라고 싸아도 생명 문제가 제일 최종이요.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라고 하면 생명을  내놔야 되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따라오지 못한다 있는 것을 아야  다 포기해야 따라 온다 그 말입니다. 생명 하나라도, 목숨 하나라도 가지고는  따라 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뭐 어누리해서 그렇게 과장하게 말한 말이 아니요. 우리는 그런  것을 뭐 날마다 체험합니다. 하나님을 내놓지 안할라 하면 자기 생명이나 뭐  이런 것 모든 것 다 뭐 다 내놓지 안하면 뭣이든지 걸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뭐이든지 하나라도 내놓지 안하고 갈라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내놓지 안할라 하는 그것으로 인해서 마귀의 낚시에 걸리게 돼  버립니다. 안 됩니다.

 그런고로 요것을 우리가 꼭 실행하도록. 가만히 생각해서 나는 어떤 직장에  있다 어떤 위치에 있다 어떤 사회에 있다 어떤 대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명예를 가지고 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다 어떤 가정을 가지고 있다. 요걸  자기가 다 아니까? 그게서 요 세 가지를 내가 주를 위해서 하는-거기 주를  위해서 하는건긴데- 요 세 가지 생활을 실행을 할라고 하면은 어떤 애로가  오겠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면 그것 위해서 우리가 기도 합시다.

그러면 어떤 일이 와도 와도 이렇게 해서, 기도하면 감당치 못할 시험은 당치  않게 하신다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잘, 믿는 사람인고 하니 간 작은 사람이 잘 믿습니다. 간 큰  사람은 예수 못 믿습니다. 간 큰 사람이 뭐 담대한 그 사람이 무슨 일할 줄  알아도 아니요. 간 작은 사람이 예수 잘 믿습니다. 간이, 작아서 미리. 벌써  다섯 가지 말했지 않습니까? 다섯 가지 이것도 실행을 할라 하면은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하노 해서 거기 대해서 간이 작아서 두려워서 견디지  못해서 이거 하나님 앞에 미리부터 기도 해야 되겠다 하고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많이 하고, 자기 혼자는 이길 수 없고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한 사람은 그 일이  닥쳤을 때에 모든 사람이 같이 닥쳐도 간 큰 사람은 다 패전하고 그 때 뭐 간 큰  게 어데로 갑니까? 다 그만 간이 작아서 견디지를 못하고 그럴 때에 간이 작아서  미리부텀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두려워 떠는데 그 사람은  아무 무서운 줄을 모릅니다. 무서운 줄을 모르고 지내갑니다. 두려운 줄도  모르고 그 말을 뭐 한 것이 옆에 사람이 보면 기절할 만하지마는서도 저 사람이  저 말해 가지고 어짤라고 저 말 하는 가, 그 하는 본인은 아무 두렵도 안하고  보통으로 말하요. 보통으로 턱 말하는데 하나님이 같이 하기 때문에 원수들이 다  꺾어진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그 환난에서 고난을 받아 이기는 것도 좋지마는서도 그 환난이  환난되지 않게 환난을 평지와같이 지나가는 사람이 더 위대한 신앙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어 가다가서 붙들리고 하는 것보다도 그만 날라가는 사람은. 훅  떠서 날라가는 사람은 밑의 것들이 뭐 거리낄 것도 없이 쉽게 가 버립니다.

그런고로 간 작은 사람이 신앙생활에 성공을 하지 간 큰 사람은 신앙생활에  성공을 못 합니다.

 제가 해방 직후에. 그때에 대구에서 전국 총회가 모였는데, 그때는 참 신앙의  지조를 지킨 사람들과 신앙을 판 사람들과 이래 모였는데 그때 신앙 지킨  사람들을 신앙 판 사람들이 다 존대하기는 했습니다. 해서 그때 총회가 모였는데  그 앉는 좌석이, 그래도 그분들이 신앙을 지킨 사람들은 한가운데 딱 앉히고  신앙 지키지 못한 사람은 가에로 삥 둘러서 목사 장로들이 앉히고 이래 존대를  이래 합니다. 하는데 나도 그때 그 참석을 해서, 그때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  참석 안하고 옆에 뒤에서 봤습니다. 나는 외형을 봤소. 몇 가지 외모를 보니까?  그 모두 신사 참배 다 패전한 사람들은 보니까?, 이 옆으로 내가 또 가 봤어 요  시간에는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또 옆에 보고. 옆에서 보니까? 옆에서  보니까? 전부 이 생기기를 이래 생겼소. 이래, 여게서 뒤에 목이 있는 데도 이래  쭉 나오고 앞에도 나오고 이래 가지고 이리 삼각형이라 [주: 역삼각형 모양을  나타내심] 이 삼각형이면 대 정치가가 되는 사람이요 다 담대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전부 잘 난 사람들 담대한 사람들뿐이라. 또 내가, 이 보자 하고서 뒤에  가서 보고 앞에서도 이래 다른 걸 모르는데 내가 이래 또 가보니까?, 앞에도  보니까? 위에가 다 이래 쩍 넓고 아래 쭉 빠지고 다. 다 용사들입니다. 용사들  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패전했습니다. 이랬는데 승리한 사람들은 보니까?  목아지가 가늘 가늘한 것이 어떻게 못 생겼는지 위에 이래 가지고서, 그 밑이  넓어야 사람이 되는 건데 이게 위에만 이렇고 아래 쪽 빨지 (주: 일반적으로  외형이 배짱이 없는 사람이 승리하신 것이라고 주해하심) 이것 뭐 아주 참  장찍어 두 잎 푼치도 안 돼, 장찍어 두 잎 푸치도 안 되는 순 병신 쪼다리 같은  것 그런 것이 일본 나라를 이겼고 다 승리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래요. 어떤, 제가 책을 읽으니까? 믿는 사람은 간 큰 사람은  승리를 못 한다 간 작은 사람이 승리를 한다. 우리 종교 개혁에 루터 선생이 참  간이 작았습니다. 루터 선생이 간이 작아서 그 종교 개혁, 7백년 동안이나  ○○교로 이렇게 타락해 가지고서 교권들이, 그때 그 사람들은 뭐 조그매만  걸리면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 수십만 명 죽었습니다. ○○교를 환영하지  안하고 이 성경대로 살라 한다고 죽인 것이 뭐 수십 만 명이 아니고 뭐 수십만  명이 아니고 뭐 수백만 명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거의 인종을 멸하다시피 이래  죽였습니다. 죽이는데 거게서 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선 사람이 루터 선생인데  루터 선생이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이 간 작은 사람이라 간 작은 사람이라 그래  기록돼 있습니다. 간작 은 사람이라 왜? 같이 길을 가다가 뇌성이 하니까?, 뇌성  소리가 나니까? 못 겨뎌서 그만 길에서 그만 구부러져 가지고. 구부려 가지고 저  개천에 가 처박혀 버렸어 겁이 나서 다른 사람이 모두 그 사람 모두 겁쟁이라  하는데 그래 겁쟁인데.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깨닫고 앞으로 신앙생활해  나갈라고 하면은 얼마나 애로와 마찰과 두려움이 있겠느냐 이래 놓으니까?  평소에 견디지 못해서 조급해서 하나님에게 자꾸 부르짖었기 때문에 그때에  담대히 그 종교 개혁을, 종교 재판할 때도 담대히 그가 나자서 승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렇게 실행을 하려고 하면은 참 어떤 애로가 있겠는가 그걸  생각하고 들읍시다. 그러면 우리가 여게서 주님 앞에 가중스러움이 안 될  것입니다. 뭐 문채나 광채나 그것도 아니고 요 성경대로 요 사실이니까? 요 일을  실행을 하려고 하면은 내가 어찌 되느냐 여게서부터 어깨가 눌리고 내가 이렇게  실행할라 하면 어찌해야 되겠냐 여게서부터 못반자가 되고 여게서부터 그  겁쟁이가 되고, 여게서부터 참 아주 못난자가 돼가지고 그 못난자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기도하는 그 사람이 현장을 다스릴 때는 하나님이 도와 주시므로  담대히 세상을 이깁니다. 담대히 세상을 이기요. 담대히 자기 환경을 이기고  자기 세상을 이기고 자기의 모든 사회를 이기고 자기가 살고 있는 국가를 이기고  모든 걸 이기고 세상을 이 기고 승리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라고 그 다음에 다섯 가지.

 우리가 주일 지키는 것도 딱 결정합시다. 주일 지키는 것도 아무리 말로는  알아도 소용이 없어. 주일을 지킬 수 있을 매에는, 지킬 수 있을 때에는 그  앞으로 가치있는 주일 지키는 것을 연습하는 때요. 연습하는 때 지 주일 지키는  것 되지 못합니다. 주일을 평소에 지킬 수 있는 그럴 때는 잠깐 동안 고요한  시기를 하나님이 주셔 가지고서 앞으로 주일 지키는 거기에 큰 하나님의 상급이  나타나고 또 크게 실패하는 것이 나타나고 승패와 또 생사가 결정되는 그 주일  지키는 것을 지금 연습하는 예비적인 시험이요 예비 생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주일 지키는 이것도, 이래 가다가 앞으로 주일 지킬라면  어떤 애로가 있을 건가 그것을 아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비적  영감을 받은 사람이요 우리가 기도 자꾸 하면 기도 안할 때는 깜깜해도 기도하게  되면은 앞으로 '아, 내가 주일 지킬라 하면 내게는 이런 일이 있겠다 뭐 저런  일이 있겠다' 그게 자꾸 생각이 나집니다. '이 딱한 일이 있겠는데 저 딱한 일이  있겠는데' 그런 것이 생각이 나진다 말이요. 만일 자기가 어떤 그 고위층에  있다고 하면, 그날 고위층에서 나라, 국가 경영으로서 주일날 어떤 일을 행사를  한다고 하면은 그 행사 하는데 거기 참석 안하는 날이면 그 뭐 역적이 될 것이고  그만 뭐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 일을 자기가 연상해서 평소에 그 일을  두고서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한 사람의 기도로서 날짜도 변동될 수 있습니다.

날짜도 변동뒬 수 있어 주일날 하는 것이, 주일날이 다른 날로 변동될 수도 있고  또 주일날 한다 해도 자기는 담대히 이길 수가 있도록 그렇게 돼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비적 영감을 받아서 주일을 지키는 데에는 얼마나 애로가  있을 건가 그것을 미리 알고 거게 대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예비적  영감을 받은 사람이지 깜깜하게 있다가 그런 일이 척 닥치니까? '아이구 어짤고'  그래서 뜻밖에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 사람은 그때에 신앙으로 깨어 있지  안하고 잤다는 증거입니다. 잔 증거요. 깨어 있는 자에게는 절대로 도적이 오지  못한다 했습니다. 깨어 있는 자에게 도적이 옵니까? 낮에 속한 자는 다 깨어  있기 때문에 도적이 오지 못하고 밤에 속한 자가 자고 다 도적을 맞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잠깐 동안 깨어 있지 안하면은 우리는 잠자고,  잠자게 되면은 원수가 와 가지고 갑자기 닥칠 때에 우리는 그만 경거망동도 하고  실수도 하고 넘어 지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예비적 영감을  받아서 모든 것을 예비적으로 방비하게 됩니다.

 열 처녀 비유에 미리 기름 준비한 그 사람은 다 승리했고 슬기없는 다섯 처녀는  패전한 그것이 무슨 비유인고 하니 우리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준비로 되는 것이지 그때 당시에, 그 당시에 당장에 용기를 내가지고 된다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꼭 준비로 되어 지는 것이지 그때 뭐 전부다 생명을 내놓고  어짜고 뭐 결사적으로 한다고 돼지는 것 아닙니다. 꼭 준비하는 자로만  되어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 하시고 그래 처리하십니다. 그러기에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미리 내사' '미리 내사' 피할 길을 미리 주신다고  했습니다. 승리할 길.

 그러기 때문에, 예비적 영감을 받아서 우리는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서 다른  사람은 모르지마는서도 그 일이 오기 전에 울고 그 일이 오기 전에 놀래고 그  일이 오기 전체 당황하고 그 일이 오기 전에 마음이 졸려지고 그 일이 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 애걸하고, 이래서 그 일이 올 때는 정작 모든 것 다 해 놨으니까?,  예수님께서, 이제는 자라 쉬라 안심하라 이제는 가자 하신거와 마찬 가지로 외나  그런 일 척 닥칠 때에는 닥쳤는가 말았는가 그 일이 오는 가 말았는가 아무  관심도 없이 제 밑대로 조리어 대로 신앙생활 뿍뿍 걸어가도 아무도 제재하지를  못합니다. 아무도 관하지를 못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예비적 영감을 받도록 이렇게 깨어서 우리가 삽시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작정하고, 이것도 애로가 많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는 것도, 그저 뭐 성경 읽을 때는 읽고 못 읽을 때는 못  읽으면 쉽지마는서도 최소한 성경을 작정하십시오. 내가 몇 장은 읽겠다 페이지  수로 작정하지 말고 성경에 작정하고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읽기는 읽어야  되는데 시간은 없고 이러니까? 할수 없어 시편을 가집니다. 시편에 가서 시편에  제일 짧은 걸, 어떨 때는 저도 그런 일 해봤소. 그 뭐 성경 꼭 읽을 수 없는데  장수는 있어야 되지 이러니까?, 시편 외우는 거, 외우는 제일 쌀은 시편을 그만  한 여나므번 주루루루 그만 계속 해서 외우고, 그래서 열장 읽기는 읽었거든.

그래 또 떼우고, 그래도 그래라도 몇우고 하면은 뒤에 깨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그것은 참 실패는 아니지마는 그 실패는 아니지마는서도  실패의 희망성이 많은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창세기 일장으로부터 쭉 계속해서 성경보는 것으로서 어떨  때는 긴 장도 있고 짧은 장도 있으니까?, 일은 다급하지 성경 그 장은 보니까?  어떻게 긴지, 또 보니까? 또 남고 또 보니까? 그 다음에 아직 멀었고 아직  멀었고 아직 멀었고, 애가 터집니다. 그러면 그만침 읽어 놓고, 그만침 읽어  놓고 그것을 꼭 가지고. 급한 일 보고라도 어느 틈을 타 가지고서 기어코 성경을  읽으면 그걸 하나님이 더 기뻐하십니다. 기어코 우리는 성경을 최소한 작정해  놓고 그 장수를 읽도록 그렇게 합시다.

 그러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기도하는 것, 기도하는 것도 각자들이 다 자기  처지와 자기 신앙 정도를 따라서 기도도 작정을 합시다. 우리가 기도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만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만나는 것을  아마 다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면 하나님이 뚜렷이 사람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만나면 영감 오는 것이 하나님 만나는 것이요.

영감 오는 것이 하나님 만나는 것이요. 영감이 오고 그 다음에 영감을 지내가면  하나님이 눈에는 안 보이지마는서도 그 성경에 나타난대로 지극히 큰 하나님을  우리가 만나게 됩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깨끗해지고 우리는 그때 죄라 하는 것이  다 도말되어져 버리고 죄와 아주 완전히 멀어지고 죄라는 것이 생각이 안 나고  하나님께 대해서만 모든 동경과 욕망이 생겨지게 됩니다.

 그렇게 기도도 자기 정도대로 나는 하루 몇 번 기도 하겠다 몇 차례 하겠다  시간으로서는 그 얼마를 기도 하겠다 또 기도하는 그 종목으로 말 하면 이렇게  이렇게 이런 기도의 종목으로 내가 기도를 하겠다. 그러면 기도의 차례 수도  정할 수 있고 기도의 시간도 정할 수가 있고 기도의 종목도 정할 수가 있고  거게셔 좀 들어가면 내가 기도하되 주님과 나와 만나는 영으로 기도하는,  성령으로 기도하는 그기도의 맛을 보고야 놓지 그 기도 맛을 보지 안하면은  기도해야 아무 뭐 기도한 것같지 않고 이러니까? 어짜든지, 애를 써 가지고서  영감을 만나서 영감을 만날 때는 자기가 깨끗해지고 환하게 밝아지기 때문에  그만 이제 사람이 죄를 이긴다는 것이 어 려운데 그렇게 밝아질 때는 죄라는  것이 그렇게 아주 무시해지고 멸시해 지고 그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참  동과 서가 먼 것처럼 그렇게 멀어 지고 자기에게 아주 맑고 깨끗하고 모든 것이  빛으로 와 가지고서 하는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볼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될 때에는, 내가 아무데 가서 기도할 때 그랬는데, 그 장소를  갑니다. 어떨 때는 그 장소를 찾아 가지고, 거기 가서 내가 기도할 때에 내가  그랬는데 여기는 안 되니까?, 그래 자기가 암만 시간이 바빠도, 부득이 산이면  산 뭐 들이면 들 강가면 강가 그리 찾아 가 가지고 그래 봐도 안 되고 그 자꾸  이렇게 애를 쓰면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는 기도를 하지 안하면  못 견디는 또 그런 사람은 자꾸 정도에 따라서 점점 앞으로 성장하고 향상해  가자 이기요.

 그라고 하나는 이제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 사람 구원하는, 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면 자기 구원아 됩니다. 사람 구원하는 일. 우리가 사람 구원하는 걸,  하나님 잊어버리고 사람 잊어버리고 해 놓으면 그만 자기는 이거는 완전히  멸망의 뭉텅이가 돼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가 깨닫고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분이 제일 소원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 구원하는 것, 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서의 그 사랑하는 일을 사람에게 대해서 행하게도 그때에 우리는 제일  온유해지고 평안해지고 만족스러워지고 우리는 아주 화평해지고 아주 유유하게  온유해집니다. 아주 너그러워지고, 그 참 제일 평안한 것은 아무리 봐도  사랑입니다. 아무리 봐 그, 거룩도 좋고 진실도 좋고 공의도 좋고 다 좋지마는  그래도 제일 평안 하고 좋고 떠나기 싫은 곳은 사랑입니다.

 그런고로,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다 사랑에 속한 것인데 사람 구원하는 일을  잊지 말고 그것도 자기대로 오전 말한 대로 작정을 합시다. 나는 이런 방편으로  나는 사람을 구원 하겠다. 하나님 주신 은혜가 각각 다르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호별 방문으로 구원하는 사람, 심방으로 구원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조그만한 어떤 그 처소에서 구원의 역사를 하는 사람, 어데서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심성의를 기울이나 하는 성심성의의 그 중량이, 성심성의의  중량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지 사람 보기에 넓은 무대 고귀한 무대 유명한  무대라고 사람 많이 구원하는 것 아닙니다. 여러 수십만 명을 모아 놓고도  거기서 자기가 말했는데 수십만 구원할지도 몰라도 수십만 명에게 구원은 다  냅두고 수십만 명의 마음을 쏵 돌아서게 만들어 가지고서 아 이것은 마귀말이라  하고서 다 배신해서 사람에게 아주 구원 얻는 다 해도 멸망을 주는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아만 대장은 하나 천대받는, 그 집에서 일하는 그 종으로서 포로되어 온 그  종으로서 가정에서 내나 부엌일 하고 있으니까? 그 얼마나 뭐 천한 것입니까?  그러나 그 여종이 그 부엌의 층층시하의 종노릇하는 거게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그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할라고 애쓴 그 양은 하나님 보시기에 크고 넓고 이라니까? 하나님께서 나아만  대장을 병들게 해 가지고서 나아만 대장 병들었을 때에 그 여종이 있다 가서  엘리사를 소개를 해 가지고 와 가지고 거기서 문둥병이 나았으므로서 아람  나라에 뭐 하나님 섬기는 것이 가득 찼습니다. 아람 나라에 복음이 꽉 차  버렸어.

 그러니까?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는 참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알아 줄 수 있도록 뭐 광고도 해야 되고 선전도 해야 되고  간판도 가져야 되는데 우리에게는 간판도 뭐도 아무것도 없고 자기만 다 드리면  됩니다.

 그러기에 다윗 왕도 보면 그 형제간도 볼때에 말째 그까짓 거야 뭐 사람 축에  가도 안한다고 '아 이제 다 왔습니다' '정말로 다 왔나' '아 마지막에 그거는  사람같지 않은 내나 양이나 먹이고 하는 그런 것 하나 있는데 그 뭐 오나 안  오나 뭐 올 것도 없습니다.' 사무엘이, '그 사람을 데려오지 안하면 내가 먹지  안하겠다 그 사람 데려오라' 와 보니까?, 그 오는데 하나님이 있다가 말하기를  '사무엘아 이가 그로라 이 사람이 이스라엘 왕도 사람이다' 그 보십시오.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또 자신도 자기를 천한 줄 알고 그렇게 그저 뿍뿍 양이나  먹이고 이랬지마는서도 하나님은 그 중심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무엘 더러 말하기를 나는 신장이든지 용모든지 그런 것을 내가 보지 안하고  사람의 중심을 본다 하나님이 중심을 달아보니까? 그 다윗의 중량이 이스라엘의  왕이 넉넉히 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등용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람 구원을 얼마든지 어떤 처지에서라도 우리는 큰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큰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과 자기를 다 들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것이  큰일입니다. 다른 것이 큰 일이 아니고.

 또 마지막에 다섯째로서는 물질에 대해서. 물질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또 물질 요것만 하나 꼭 하나님의 법도대로  지킬라고 해도 많은 애로가 있는데 요 애로를 통해서 물질부자가 됩니다. 물질  부자가 되고 싶거든 물질에 대한 계명을 지키십시오. 물질에 대해서, 물질로 죄  짓지 안하고, 물질은, 이 사람에게는 천하 물질을 다 줘도 그로 인해서 하나님  더 영광스럽게 했으면 했지 물질로 인해 시험에 들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이  사람에게 물질을 많이 맡기므로서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고 자타를 구원하지  물질로 인해서 이 사람 손해가 하나도 안 갈 사람이라 하면은 하나님께서 있는  걸 다 맡길 수도 있습니다. 맡기는 것도 문제가 없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사람된다는 것이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암만 알아도 실행 안 하면, 배고플 때 음식 먹으면  해결될 줄 알지마는서도 안 먹으면 소용 없고 추울 때 의복 입고 따시게 불 때면  해결될 줄 알지마는서도 불 안 때고 옷 안 입으면, 옷 못입으면 소용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알고 있다 해도, 실행할 때에 그 때에 하나님의 축복도 능력도  같이 하지 실행을 안 하면 소용이 없는데 왜 사람들이 실행을 못 하느냐? 실행을  할라 할 때는 반드시 여러 가지 애로와 마찰이 있기 때문에 실행을 못 하는  것이니 그때 애로가 있고 마찰이 있어도 실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담대한  사람 강한 사람이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참되다 인정하고 믿는 그 믿음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좀 전에 어떤 사람을 만나니까? 말하기를 그렇게 말해요. '아 우리는  아무리 못났고 못나고 이래 무식하지마는서도 아무리 잘난 사람들에게 가  가지고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하나님의 도를  가지고서 그 사람을 죽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어데든지 복음을 전할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요. 그래 내가 있다가서, '그래 전해 봤습니까? 전하니까?  됩디까' '예 못 전할데 없습니다. 아무 데라도 아무리 무식하지만 암만 높은  학자에게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떻게 전해요' 이라니까? '그 전할  때 하나님이 말씀을 줍디다' 하나님이 말씀을 줄줄 주시니까? 그만 그 대학자가  그만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말이요. 그래서 그게 뭐이냐 하나님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 가지고 하지 믿음으로 세상은 이깁니다. 세상을 이긴 것이  뭐이냐? 믿음으로 이긴다 이랬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금년은 어짜든지 꼭 실행의, 실행의 해로 우리가 이제는 많이 들을라고  하지 말고 하나 하나 듣고 아는 것을 꼭 실행합시다. 실행 할 때에. 어떤 애로가  있어도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광대하시고 세밀하신 것과 우리의 소망이 지극히 큰 이 세 가지만 확신하면  우리는 실행할 때 애로라 하는 것은 문제 없습니다. 모든 애로는 다 발 아래  밟고 다 통과하고 이기고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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