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는 초저녁에 준비

 

1987. 1. 2. 밤 (금)

 

본문:시편 91편 14절∼1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광고합니다.

언제든지 대예배 때에 앞의 자리 앉을라고 힘을 쓰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오지 안한 그 사람들이 오리라 생각을 하고 자리를 잡아놓고 다른 사람이 그 빈 자리 앉을라고 해도 앉지 못하도록 그래 가지고 오해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면 자기 소지품 중에 또 뭐 하나 놓고 또 한 자리 한 자리 이래 쭉 잡아놓고 그 뒤에 오는 사람이 자리가 비었으니까 앉을라 하면 거기는 안 된다고 큰 자세를 부리고 그렇게 아주 신강을 합니다.

그래 언제 한번은 딴 교회서 온 분인데 좀 앉자고 해도 여기 안 된다고 다른 사람이 온다고 이래 가지고 할 수 없어 밀려갔는데 그만 저 뒤로 갔는지 '이 교회는 좀 못쓸 교회다' 하고 저 그만 가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한 분은 그라니까 암말도 안 하고 꾹 누르고 앉았더래요. 이 사람 같잖은 거 말 같잖은 거 이따위 소리야 내가 들을 게 뭐 있나 하고 딱 버티고 앉았으니까 그 사람한테는 꼼짝 못 하더래요.

그런 짓 앞으로 하지 맙시다. 자리 잡아놓고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합시다.

그것을 지금 권찰회 때에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그 일은 책임을 지도록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앉은 사람이 있으면 가서 얘기를 해 가지고 다시 그 버릇을, 잘못 그 악습이니까, 자기 중심의 버릇, 그건 악습이라. 악습이기 때문에 그 병을 고치도록 그렇게 잘 타일러서 고쳐야 할 것입니다.

또 앞에 와 가지고, 저 구석에 앉았으면 문제가 없지만 입구에 딱 앞에 가지고 기도하는데. 나는 기도하는데 뭐 옆에 사람이 와서 하니 `내가 기도하다가 중단을 해? 암만 해도 내가 기도 다 하고 일어나지.' 이래 가지고, 그건 제가 잘못했기 때문에 빨리 일어나서 자리를 비껴 주든지 안으로 들치든지 해야 되는 것이지.

그럴 때는 그 하는 것이 죄를 범하는 것이지 그 믿음으로 환경을 이기는 건 아닙니다. 자기가 예배당에 앉아서 기도할 수 있는 그럴 때에 기도를 하는데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이놈들 기도하지 말라고 몽둥이로 뚜드리고 야단지겨도 그때는 하거나 말거나 내 기도하는데 용납 안 하고 양보 않겠다 하는 그런 건 좋은 것이지만, 애배당에 대예배 때에 와서 앉아서 제가 입구를 딱 가로막아 앉아 가지고 뒤의 사람이 와서 하마나 기도하고 일어날 건가 하고 기다리고 있어도 꼭 버티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제 기도 다 하고 나서 일어나는 거, 내가 기도하는 그 경험으로서는 그 사람이 잡된 기도 가증스러운 외식 기도입니다.

평소에는 이래 눈감고 있으면 소리 안 나고 살몽살몽 하면 나는 못 듣습니다.

평소에는 못 들어요. 기도할 때는, 기도해서 심령이 밝아질 때에는 여기뿐 아니라 벌써 십 리 밖에서 내게 대해서 그 소관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심령이 밝아서 누가 이거 아마 오겠는데. 또 여기서는 무슨 일이 생기겠는데. 또 주위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뭐 지금 나를 염탐하고 있다 뭐 하고 있다 그런 것이 환하게 그래 보여지는데 옆에 서서 자꾸 이래도 `음, 나는 기도하고 있으니까 뭐 이거는 양보 안 한다.' 그건 고집통이고 무례한 고집통이라.

제가 입구를 막았으니까 비껴 줘야 될 거 아니겠소? OOO선생? 그거 잘했어? 저 뒤에서 기다리고 한참 섰으니 안 비껴 줘. 그러니까 할 수 없어 딴데로 가 버렸지. 억세구만. 못 써, 그거. 그런 건. 그게 강퍅이라 말이오. 강퍅이고 악독이고 완패요. 미련하고 낡아진 거라. 완패. 그래 하지 말아요.

오늘 시편 91편 14절을 봤는데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는 이 성구를 생각할라고 합니다.

저가 하는 말은 어떤 사람이든지 중생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주님을 아는 사람 전부를 다 가리켜서 저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예수믿는 목사라도 주님을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에게 대해서는 저라고 말하지 안했고 "저가 나를 안즉" 하는 것은 주님이 어떤 분인 것을 아는 그 사람에게 한해서 "저가"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안즉,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 말은 무슨 말인가? 이 말씀은 구약과 신약의 이 계약을 두 권 선포해 놓으시고 그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안즉 하는 말입니다.

이름을 안다 말은 하나님의 역사를 안다 말이요, 하나님이 하시는 그 운동을 안다 말이요, 하나님의 그 모든 행하심을 안다는 말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신다" 그것도 주님의 이 모든 역사, 행적, 또 운동 그런 것을 다 한 말로 말해서 이름이라 표시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 사람의 이름이 점점 높아져 간다, 그 사람 이름이 점점 파묻혀지고 안 보인다, 그 사람의 이름이 아주 수치스럽다, 그 사람의 이름이 영광스럽다 하는 것은 다 그 사람의 행위가 그러하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하는 말씀은 어떤 그 택한 자가 주님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 이행을 안즉, `주님은 이렇게 행하시는 분이라' 하는 것을 내가 알고 그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동을 하니 "그를 높이리라" 얼마든지 그를 높이리라, 모든 면을 높여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는 것은 너무 범위 넓게 이렇게 섭리하셔 가지고 높이시기 때문에 그 높이는 것을 사람들이 봐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 앞에 실컷 높임을 받아도 주님을 모르니까 제가 잘나 높아진 줄로 그렇게 아는 사람들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님이 지금 마구 높이고 있는데 제 지식이 틀려가지고 그 높아지는 것을 높아지는 줄 모르고 자꾸 그게 낮아지는 것인 줄 알고 거기 또 불만 불평 있는 그런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지식이 통일되지 안하기 때문에 참 하나님도 우리에게 대해서 답답하고 애 터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서로 통하지 안하니까.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그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로 누구든지 내 이름을 안즉 하는 건 여호와의 이름이라 말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라 말은 신구약 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선포해 놓으신 계약대로 그대로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안즉,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신다. 또 이럴 때는 이렇게 역사하실 거라, 저럴 때는 저렇게 역사하실 거라.'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 거라 하는 그것을 아는 그자는 하나님이 높이신다 그 말입니다.

높이면 어떻게 높이시는가?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그러면 높이시는 것은 그 사람이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주신다 그 말입니다. 이거 얼마나 높아지는 것입니까? 그 사람이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신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신다. 그러면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시니까 그것이 큽니까, 그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실 수 있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큰 겁니까? 어느 것이 큽니까? 기도의 응답이 큽니까 그 기도 한 것이 큽니까? 둘 중에 어느 것이 큰겁니까? 응답을 받은 것이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퍼뜩 들어, 응답을 받은 것이 응답, 기도한 대로 하나님이 응답을 해 주셨다 말이오. 응답을 해 주셨으니까 응답 받은 그것이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봐요. 안 드는 사람은 뭣 때문에 안 들어요, 그라면? 그것보다 하나님이 다 들어서 응답해 주실 수 있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제 조금 많기는 많아도 별로 많지는 않은데. 별로 많지 안해요. 후자가 맞았어요. 후자는 하나님하고 동거 동행이라. 지식이 같고, 사상이 같고, 소원이 같고, 계획이 같고, 성품이 같고, 그만 하나님하고 하나된 사람이라. 그거 뭐 기도해서 응답 받아 봤자 그거야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것도 크지만 하나님과 그 사람하고 하나된 게 크다 그거요.

이런데 이거 물으니까 답을 똑똑히 못 하고 처음에 드는 사람 있는 걸 몇 있는 것을 똑똑히 돌라 하니까 아마 이게 맞은갑다 싶어, 점은 잘 쳐요. 맞은갑다 싶어서 모두 손을 들더니만 또 나중에 새로 두번째 자, 그라면 응답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그런 기도 한 게 더 크다 하는 그러면 손들라 하니까 그것도 또 손을 드는데 그거 더 따졌으면 몇 분 좀 더 들 겁니다. 이런데 몇 만 들고 말아요.

그러니까 뭐 아는 것인지 모르는 건지 이거 도무지.

그것은 그 기도하는 대로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영감과 진리에 합당치 안한 것은 하나님이 들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간구하고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성품과 꼭 들어맞으니까 맞은 그것이 기도한 그 응답받는 것보다도, 응답해서 이루어 주시는 것보다도 그게 훨끈 더 큽니다. 이제 크다는 거 인정이 됩니까? 어떻게 인정이 돼요? 그러면 기도해 가지고 기도한 대로 하나님이 들어 주셔서 그 기도한대로 이루어진 거 그것이 큽니까, 하나님이 뭐이든지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실 수 있는 그런 기도만 할 수 있는 그런 그 사람된 것이 큽니까 응답받은 게 큽니까? 뭐가 큽니까? 사람된 게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제는 다 아는 모양이오. 환하게 다 드는구만. 네, 그렇습니다.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이게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높여 주시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사람 된다 그 말입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하는 그 말씀의 속 뜻은 무슨 뜻인고 하니 저는 내게 소원하는 그런 간구하는 것이 내가 들어주지 안할 수 없는 꼭 내가 소원하는 거와 저가 소원하는 것이 꼭 일치되는 소원을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하고 모든 비판이나 평가나 계획이나 소원이나 사상이나 정신이나 모든 것이 같다 말 아닙니까? 이 맞아요? 해석이 맞아요? 같다는 말이란 말이 해석이 맞습니까? 그러면 첫째는 이렇게 높여 줍니다. 자, 얼마나 그게 높습니까? 비록 피조물이지만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과 꼭 같이 움직이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과 동거 동행 아닙니까? 그렇게 높여 주시요.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높이는가? 환난 때에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동거 동행합니다.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그러면 환난 때에 하나님이 동거 동행해 주시는 이런 높임을 해 주십니다. 어떻게 높이는가? 환난 때에 동거 동행한다. 이거 얼마나 높인 겁니까? 환난 때에 하나님이 동거 동행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환난이 오면 사람들이 다 박해를 당하고 해를 받고 다 꺾어지는 것인데, 환난을 닥치면 사람들이 꺾어지는 것인데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환난 때에 건진다 그 말은 환난이 그 사람을 파묻지 못한다, 그 사람을 낮추지 못한다, 그 사람을 약하게 하지 못한다.

건진다 하니까 밑으로 안 들어 간다 말 아니요? 안 건지면 물 속에 빠질 건데 건지니까 밑에 빠져 들어가지 않는다 그 말이오. 건진다 말은 그 환난이 그 사람을 떨어뜨리지 못한다, 그 사람을 낮추지 못한다, 그 사람을 구덩이에 처박지 못한다, 파묻지 못한다, 그 사람이 묻혀지지 않는다, 멸해지지 않는다, 낮아지지 않는다.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환난 때에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또 영화롭게 하리라" 환난이 오면 사람들은 다 전부 수치스럽고 모두 다 험하고 추해지고 이런 건데, 환난 오면 다 추해지지 안해요? 6.25때 보니까 6.25 환난 때 안 추해지는 사람이 없어요.

또 그 집에 불이 나면 모두 그 집안 식구들은 새카많게 모두 추해집니다. 또 그 집에 그 동리에 모두 염병, 전염병이, 독한 전염병이 들어 놓으면 그 동리 사람들이 모두 다 추해지고 모두 천해집니다. 이런데 환난이 오면 영광스러워지고 환난이 오면 더 영화로워지고 환난이 올수록 자꾸 영광스러워집니다. 이거 뭐 얼마나 좋은지. 뭐 얼마나 그게 높이는 것인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저를 영화롭게 하리라' 또 그 다음에 16절에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이렇게 해 주시는 것이 혹 백 년 해 준다 해도 참 좋은데, 이 세상에서 정권은 미국 정권으로 말하연 사 년밖에 더 있습니까? 사 년만 영광스러워도 영광스럽다 하는데 이는 천 년 그런 것도 아니고 만 년 그러지도 안하고 "내가 장수함으로" 하나님이 장수하면 몇 살이나 삽니까? 누가 아십니까? 몇 살 삽니까? 한 백 살 사는가? 영원히 살지요, 영원히. 장수함으로 그 말은 영원히 살므로 영화롭게 한다, 만족케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높여 주시는 높임을 영원히 높여준다 그 말입니다. 뭐 백년 천년 만년 억만년이 아니라 자꾸 높여 줘, 영원히 높여 줘.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구원을 그러면 그 사람에게 보여 준다, 하나님이 이렇게 도와 주신다. 도와 주는 것을 그 사람에게 보인다 말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를 돕는 그 일을 소문이 나도록, 모든 사람의 광고가 나도록 이렇게 보인다 말이요?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 말이요 그 본인에게 보인다 말이요?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그러면 구원으로 보이는 것은 본인에게 보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구경하라고 보입니까?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 그거 아주 빈틈없이 말 하기는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 말이요, 뭐.

제가 받았으니까 제가 뭐, 잡았으니까 제 자신이니까 그거는 말할 것 없는 거고 모든 사람이 다 소문이 나고 광고가 나고 이렇게 아주 명예스럽고 영광스럽게 된다 그 말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어떻게 높이는가? 간구하는 대로 다 응답해 주신다. 그러면 기도하는대로 다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는 그것도 크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께 무슨 의견만 내면 그 의견은 다 백프로 하나님이 다 들을 수 있고 하니까 하나님과 의사와 꼭 같은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높이는 것이 더 크게 높이는 것입니다,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함께하여 어려움 당할 때에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니까 평안할 때 으례히 동행해 줄 것 아니겠습니까? "하여 저를 건지고" 모든 환난은 파묻어 버리는건데, 환난이 오면 그만 그 가정에도 환난 오면 그 가정이 그만 파묻혀 버립니다. 그만 그 가정이 뚝 떨어지고 그만 그 가정이 박살이 나 버려. 환난 오면 박살나는데 이 건진다 말은 환난이 파묻지 못하게 환난이 올수록 반석 위에 지어놓은 집은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고 이 환난이 오니까 도리어 다른 집은 다 떠내려 가버렸지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더 우뚝하이 솟은 거 모양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높여 준다 그 말이오. 이걸 단단히 기억해요.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하는 데에 기도 응답 다 들어 주신다.

이것만 말하면 설교가 껍데기 설교입니까 아주 알맹이 설교입니까? "이름을 안즉 아는 자에게 높이는데 내게 간구하리니 내게 응답하라" 했으니까 기도하는 대로 다 하나님이 기도를 다 들어서 이루어 주신다 이렇게 해석만 하면 그 설교가 껍데기 설교요 알맹이 설교요? 껍데기 설교라? 알맹이 설교는 뭐인데?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래. 그라면 잘 대답해야지 엉뚱한 소하면 되는가? 자세히 들어야 돼. 그래야 알맹이 설교가 됩니다.

"내게 응답하리라" 자, 이거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게 얼마나 큰지 그걸 자꾸 좀 알기 위해 하는 거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이랬으니까 이 복이 한 개입니까 둘입니까? 둘입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하는 이 복이 두 개라, 둘로 높이는거라. 기도하는 걸 다 응답해 주니 그것도 참 크게 성공되는 일이고 또 그렇게 하나님과 의사가 꼭 같은 자가 되어지는 그것은 더 높은 거라 말이오.

또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환난 때 함께하니까, 환난 때에 그 나라의 정권자만 같이 해도 거석할 터인데 환난 때에 이 하나님이 동행하니까 그거 얼마나 높은 것입니까, 환난 때에 하나님이 그 사람과 동거 동행하면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요거 좀 가만히 좀 생각해 봐요.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이 여러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우리 나라의 정권자하고 같이만 이래 동행한다면 그 어려운 그런 게 다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 것도 그런데 하물며 이 하나님이 우리와 동거동행해 주니까 이거 얼마나 높은 거요? 자꾸 생각해 봐요. 굉장히 높은거라, 이거. 높여 주는 거라.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환난이 오면 모두가 다 부서지고 박살나는 건데 건진다 말은 환난이 와도 환난이 그를 까뭉케지 못하고 조그마치도 절단내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서 우뚝 솟아서 드러난다 그 말이오. "저를 건지고" 하는 것은 건지면 어찌 돼요? 건지면 우뚝 솟는 거 아니겠소, 건지면 말이요.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오히려 그 환난으로 인해 가지고 더 크게 유익이 된다.

영화롭게 하리라 말은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는 그 말과 좀 다릅니다. 영화롭게 하리라 그 말은 자신도 한없이 좋고 다른 사람도 또 그로 인해서 좋아지고, 자타가 좋아지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영화롭게 한다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도 기쁘고 다른 사람도 기쁘고 다 기쁜 걸 말합니다.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영원히 하나님께서 이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높이되 영원히 높여 준다 말이오.

"내가 장수함으로" 그 말은 하나님이 영원하신 그대로 이 높여 줌도 영원하다.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이렇게 높인다 하는 것을 저만 알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다 알도록 이렇게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주의 이름을 아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주의 이름을 안다는 말은 주님이 하시는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 그 말이지요. 그러면 주님이 하는 역사를 아는데 여기 이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인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신구약 성경 계약서를 선포해 놓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그 모든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이것이 우리에게 이렇츰 복이 됩니다.

주님의 이름을 그러면 주님의 역사를 안다, 주님의 역사를 아는데 그 역사 아는 것이 어떻게 아는 것이 아는 것인가? 첫째는 신구약 성경의 계약서를 보고 이렇게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이 계약대로 이대로 실행하시는 하나님이라 그렇게 아는 것이 첫째로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은 참 아는 것의 중매쟁이라. 참 아는데에 찾아 들어가는 지금 길입니다.

알고, 그 다음에 이제 그 이름을 아는 거 그 역사를 아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자기 현실에서 아는 것입니다. 자기 현실에서 아는 거.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포해 놓으신 이 법도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믿음으로 산다" 이렇게 말했고 이 법도를 어기는 사람을 가리켜서 "범죄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자기 현실에서는 뭐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데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주신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처음에 아는 것은 신구약 성경을 보고 이 현실에서 자기가 범죄하면 하나님 앞에 징계받고 저주받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칭찬받고, 축복받는다 이걸 성경 보고 아는 것이 처음에 아는 것이고, 그거는 외부로 아는 것이라. 그거는 참 아는 데에 들어가는 하나의 노정입니다. 하나의 노정이지 외나 알맹이는 아니라.

알맹이는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이 계약을 어기면 하나님은 나에게 벌을 주시고 이 계약대로 실행하면 내게 축복해 주신다' 하는 그것을 아는 것이 주님의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

이래서, 내가 현실에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아무리 유익이 된다 할지라도 그 유익과 또 하나님이 벌 주는 벌과 둘을 따져보니까 유익이 있지만 유익보다 하나님이 벌 주고 징계 주는 것이 작다고 생각하면 그 하나님을 바로 안 사람이요, 아무리 죄를 지어서 뭣을 좋은 걸 많이 얻었다 할지라도 그거와 하나님의 징계와 벌과 비교할 때에 징계와 벌의 중량은 천 근이나 되면 자기가 죄지어 얻은 것은 한 근도 못되는 것으로 이렇게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까? 자기 얻은 수입이 하나님이 벌 줘 봤자 벌받는 것보다도 얻은 수입이 더 크다 이렇게 알았으면 여호와의 이름을 바로 안 사람입니까 모르는 사람입니까? 바로 모른 사람이라. 그러면 인제 문서로 알아 놓고 그 다음에 알맹이로 아는 것은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하면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고 함께 해주신다.' 그러면 이름을 아는 것은 성경 보고 아는 것도 아는 것이고, 그거는 초보로 아는 것, 그거는 아직까지 외부로 아는 것, 알맹이로 아는 것은 언제 아는 것이 알맹이로 아는 것입니까? 현실에서 아는 것이 알맹이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아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이 계약을 선포해 놨기 때문에 이 계약을 어기면 하나님쎄서 징계와 저주를 주신다 하는 그것을 현실에서 알고 또 하나님의 계명대로 이렇게 순종 생활, 믿음 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칭찬과 축복을 주신다 하는 그것을 알고, 그것을 아는 거.

그것을 아는 거, 그러면 이것은 알맹이입니까, 또 그 속에 인제 알맹이가 또 있습니까? 현실에서 여호와 하나님이라, 계약을 선포해놓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여호와 이름을 아는 것이라 그거요, 성경을 보고 알고 또 그 다음에는 그 현실에서 이렇게 계명 어겨서 행동하면 하나님이 징계와 저주를 주신다 하는 그것을 현실에서 알고 또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축복해주신다 하는 것을 그것을 현실에서 알고 요라면 인제 알맹이 알았소 몰랐소? 알맹이 알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다 들어 봅시다.

그러면 알맹이 아직 몰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거 뭐인지 뭐.

껍데기 또 했는데 또 그 안에 알맹이가 또 있어 그래? 그 현실에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행동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징계와 저주를 주신다 하는 것을 그 현실에서 알고 또 하나님의 계약대로 이와같이 실행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칭찬하시고 축복을 주신다 하는 것을 그 현실에서 자기가 알면 요라면 알맹이로 안 것이요 또 껍데기입니까? 알맹이로 안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OOO목사님이 알맹이라 했는데, 이제 그거 그러면 그런 줄 알고도 안 행하면 그거는 알맹이 틀 말했고 그런 줄 알고 그대로 행해야 알맹이랍니다. 그 답이 맞아요 안 맞아요? 네, 그거 맞았어요. 그래도 목사가 목사로구만.

OOO목사님 말이요, 그전에 저게 구서동에서 교회 세워 가지고 거기가서 전도하니까 `여기는 어디 속했습니까?' 이라니까, 아예 다 마귀란 놈이 알고 `어디 속했습니까?' 이래 놓으니까 `이거 우리 총공회는 이거 참 아주 시시한 건데.' 저거 집에 있지만 총공회는 시시하게 봤다 말이오. '시시한 건데 이거' 이래서 다른 소리는 못 하고 `예, 우리는 그전에 고신에 있다가 그먼 어쩌고 어쩌고 이래 쌓으니까' `아, 대체 어디 속했습니까? 여기 백파 아니요?' 그만 백파라 이단이라 해서 그만 선전을 해 가지고 이라니까 그만 `하, 이거 백파 가지고는 전도 못 하겠고 이거 교회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그래 그만 그 예배당 팔았습니다.

못견디고 예배당 팔았어.

예배당을 팔고 그래 또 저게 부산대교회라고 떡 해 가지고 찍해야 하나님 의지하는 게 아니라, 부산대가 제일 큰 모양이라, `부산대학' 하는. 부산대교회라 하면 부산대학교 교회인갑다 이래 가지고 또 행여나 덕이나 볼까 싶어서, 그거 하나님이 보면 우스울 거라. 하나님이 보시면 우스워요.

언제 보니까 떡 차에 '부산대 어린이 선교회라' 이래 차에다 떡 붙여 놨어. 이래 놓으니까 부산대 차고 또 부산대서 어린이 선교하는데 선교차니까 이거 부산대학이면 이거 건드리지도 못한다 싶어서, 그래 차를 위반하고 쑥 지나가니까 있다가 떡 말하기를, 떡 간판을 보디만, 턱 세우는데 간판을 보더니만 `알 만한 분이 그라네요.' 이라며 그래 보내더래. 알 만한 분이. 부산대 덕 많이 봤어.

이랬지만 하나님 덕은 못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이놈, 네가 나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이랬는데.

그래 인제 그때는 간판도 이래 우물쭈물하게 그래 붙었어요. 그래 저 먼저 오더니만 `내가 그거 회개합니다. 양사방 이제 교파 다 돌아다녀 봤고 여기 저기 다 돌아다녀 돌아보니까 우리 총공회가 제일 좋아서 이제는 총공회를 내가 자랑스럽게 알고 이제 자랑을 합니다. 이제 간판 다 새로 갈아 붙였습니다.

이랬는데 아마 그라면 그 교회가 될 거라.

이제 부산대교회라면 부산대학 있는 데 거석하니까 뭐뭐 그것도 괜찮지만 속으로는 말이요 부산대학을 의지하면 안돼요. 간판이라도 부산대 의지한다 하면 주님은 참 굉장히 시기하는 분입니다.

시기하는 뭐,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서 4장에는 보면 시기한다 했어요. 당신만 의지하지 안하고 이 세상 의지하면 그만, 어떤 아내가 자기 난편 사랑하고 의지 안 하고 남의 간부 의지하고 사랑하면 막 시기하지 않소? 이거 모양으로 하나님은 그렇게 시기하는 분이시라. 이러니까 부산대라 하는 그 이름을 의지하고 하면 그것 때문에 주님이 만날 쳐 돌아 가지고 있어요. O목사님 암만 `주님이여, 주님이여' 해도 `음, 음, 음.' 요랍니다. 이래 가지고 주여 해도 암만해도 안 들어요.

이제 그걸 속으로 다 회개하고 `이제는 내가 주님만 의지하지 내가 부산대가 그거 뭐입니까? 한국도 안 의지하고 세계도 안 의지합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이렇게 자꾸 그래 봐. 기도해 놓으면 그래 놓으면 주님이 있다가서 그때는 좋아서 슬그머니 이러며, 자꾸 그래 하면 `뭐할라고 그래?' `뭐 어쩌고 왔습니다.' `가 봐' 가 보니까 다 해 놨거든. 가 보니까 다 해 놨어. 벌써 됐다 말이오. 참 재미가 있습니다. 인제 그런 경우를 알아야지. 그게 이 이름을 아는 거라.

오늘 지녁에 보니까 답을 잘 했어. 그런 답은 하기 쉬운 건데, 백점 맞았어요.

그런데 다른 분들 뭐, 사람이 온전한 사람 된다는 거 그것도 알맹이인데 그건 거리가 조금 멀어. 그거 한 80점 주는데 실행해야 된다 하는 건 백점 줄 수 있어요.

그러면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얼마나 높이는가? 기도하는 것 다 응답해 준다, 거기 두 개. 그러면 높여서 하나님과의 그만 전부 언행심사가 하나가 되도록 이렇게 성화시켜 준다. 또 그 말한 대로 다 이루어지게 한다. 또 환난 때에 그를 건지고 또 영화릅게한다. 또 영원히 또 그를 만족케 해 가지고 모든 사람이 "이는 참 하나님의 도움이다. 이거는 제 힘으로 된 게 아니고 하나님의 도움이다.' 모든 사람이 환하게 볼 수 있도록 이렇게 높여 주시겠다.

그러는데 그게 뭐이냐? 주의 이름을 아는 것이 어떤 게 아는 것인가? 첫째는 성경 보고 `성경에 하나님은 계약을 이렇게 두 권 했구나' 하나님의 그 계약서가 몇 권입니까? 신구약 두 권이라 하면 돼. 66권이지만 두 권이라 하면 돼요.

이 계약서 두 권을 보고 `하나님은 이렇게 계약해 놓고 실행하시는 하나님이로구나.' 이렇게 아는 것이 제일 입문으로 아는 것이고, 제일 그 초등으로 아는 것이고, 그 다음에 중등으로 아는 것은 현실에서 아는 거, `내가 현실 닥쳤는데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약하신 이 계약대로 내가 당신을 보면서 이 계약대로 실행을 하면 당신이 기뻐하셔서 나에게 축복해 주신다' 이것을 알고, `내가 이 시간에 하나님의 계약을 어겨서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나에게 저주와 멸망을 주신다. 징계와 멸망을 주신다.' 이렇게 아는 거, 이것이 속껍데기라. 그것도 껍데기는 껍데기입니다. 속껍데기. 알맹이는 뭐이요? 현실에서 모르고 성경보고 아는 것은 제일 걸껍데기고 또 현실에서 그렇게 그 사건 당할 때 `여기서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축복해 주신다. 이 말씀을 어겨서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징계와 멸망을 주신다.' 이것을 현실에서 다 안다 말이오.

암만 옆에서 말해도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 이렇게 알면 그것은 속껍데기입니다.

그러면 속알맹이는 뭐인가? 현실에서 그렇게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알맹이라 그대로 그 현실에서 그렇게 알고, `성경에 뭐라 했노?' 한 거 이래 또 보고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약에 딱 맞게 요래 하면 하나님이 기삐하셔서 축복하신다.

이 계약을 어겨서 옆에 사람들이 말하고 환경 주위가 말하는 대로 그대로 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징계와 패망을 주신다.' 이걸 알았다 말이오. 이거 알았어.

이거 알았으면 그것은 속껍데기라.

알맹이는, 그럴 때에 '하나님의 계약대로 하면 주님이 기뻐하셔서 주님이 축복해 주신다' 이것도 알고, 또 `하나님의 계약을 어겨서 옆에 환경과 주위와 형편과 사정대로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징계와 패망 주신다' 이것을 알고, 주위 환경에 사람이 시키고 형편 사정이 암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행하는 그것을 버리는 것이 그거 뭐입니까? 버리는 그게 그 행동을 버리는 것이 그것이 알맹이요 껍데기요? 그것도 알맹이요, 그거는 화를 막는 알맹이라. 징계를 막는 알맹이, 저주를 막는 알맹이, 모든 멸망을 막는 알맹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딱 단행하는거, 말씀대로 그대로 현실에서 딱 그대로 행하는 거, 그대로 행하는 이거는 진짜 알맹이라. 예수 믿기 쉬워. 이거라, 단지. 이겁니다.

이러니까,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얼마나 높이는고 또 한번 헤아려 봅시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그러면 이것은 한 가지 높이는 겁니까 두 가지 높이는 겁니까? 두 가지 높이는 거. 이거 참 좋은 거 배워요. 두 가지 높였습니다.

또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환난 때에 하나님이 우리와 동거 동행해 주시면 이거 우리를 높이는 거요 안 높이는 거요? 하나님이 나하고 동거동행하면 이렇츰 높이는 게 어디 있어? 자, 하나님이 나하고 동거 동행해서 하나님이 나하고 동거 동행하는 것이 대통령하고 동거 동행하는 것보다 좀 못합니까 같습니까? 그만 합니까 그만 못합니까? 그것보다 좀 낫아요? 낫습니까? 강대국 미국 나라 대통령, 일본 나라 수상 이 사람들하고 동거 동행하는 것과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것이 좀 더 높습니까? 무한히 높습니다. 그라면 3가지 높였습니다.

또, `저를 건지고' 건진다 말은 뭣을 전제로 하는 말인가 하니까 마구 이 환난이 파묻고 끌어묻고 처박고 아주 쑤셔 처박고 할라고 인제 그걸 전제로 하는 거라.

그러면 이 환난은 자꾸 이거 파묻고 절단을 내고 깨뜨릴라 하는데 건진다 말은 그 환난이 그 사람을 아무리 해할라고 해도 해하지 못하고 도로 해할라 하는데 하나님이 그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신다 그 말이오.

그라면 이거 높이는 겁니까 높이는 거 아닙니까? 참 좋아요. 우리가 나이가 많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나이가 많으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자꾸 이거 늙는데 처박혀 늙는데 처박히는데 나는 사람 보기에는 처박히지만 껍데기 속에 속으로는 지금 자꾸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겉은 후패하나 속은 날마다 새롭도다" 이래 놓으니까 이제 아무리 이거 뭐 인간이 늙어 죽는 노쇠 또 사망이 와도, 노쇠가 와도 점점 새로와지고 점점 좋아지지, 또 죽음이 오니까 그만 영생으로 그만 바꿔져 버리지 이거 도무지 이렇게 높일 수가 없어. 요거 자꾸 새겨봐요.

예수 믿는 사람이 자꾸 앉아서 생각하고 생각하면, 이불을 덮고 가만히 생각하고 이거 생각하고 생각하면 그만 이불 휙 던져 버리고 그만 좋아서 그만 일어나 않습니다. 앉아 가지고 또 생각하면 일어납니다. 또 자꾸 생각하면 혼자 또 춤을 추요. 아 춤추는 거야 뭐이 나빠요? 다 모두 음욕을 가지고 다 방탕해 춤추는 거 그렇지 하나님보고 좋아서 춤추는 거는 좋아요. 성경에 그건 좋아요. "저를 건지고" 그러면 4가지 높였어요.

또,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오히려 그로 인해서, 그로 인해서 영광스러워집니다. 그로 인해서 영광스러워지는 거.

손양원 목사님도 6.25가 와 가지고 그 환난이 들어서 그분 영화롭게 했어. 만일 그때 그만 순교 안 당했으면 뭐 그럴 건데 순교를 당해, 내나 죽기는 죽는데 6.25 와 가지고 손 목사님을 영화롭게 했어. 그래 내가 손 목사님 밑에 있는 O목사라고 그때 부목사라고 있었는데 역부러 내가 물어봤어. '그때 어디 맞았습니까?' 그때 내가 오른손이든가 원손이든가 손에 맞았는데 '그라면 피를 많이 흘렸겠네요?' 나는 다 안다 그 말이오. 나는 못 들었지만 내가 성경 보고 깨닫기 때문에 `피를 많이 흘렸겠네요?' 이라니까 `아니오. 훅 이래 조금 비지 껍데기만 벗겨졌지 피는 뭐 조그매 훌렸던가 몰라요. 피를 별로 안 흘렸어요.

총알이 지나가 비지 껍데기만 벗겨졌어요.' 그 비지 껍데기 벗겨졌어요 그래.

그래 내가 속으로 '피는 안 났다. 비지 껍데기만 벗겨졌을 거다.' 나는그래 생각했어. 왜? 성경 보니까 사랑하는 자는 살 대로 다 살고, 이미 죽는 건데 주를 위해서 죽고 이미 죽는 건데 마귀와 세상을 이기고 죽고 이라니까 마귀 세상을 다 이기는 그 죽음하지, 또 하나님 앞에 이렇게 제일 순교 상받는 높여 주는 이걸 또 높이 되는 이런 죽음을 하게 하지, 또 하나님을 다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거는 끝인데 생명보다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들어 줬지 뭐이거 뭐 좋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먼저 OOO목사님 와 가지고 좋고 좋고 이저 뭐 자꾸 노래를 부르며 좋고 좋은데 참 좋고 좋아. 안 좋아요? 그냥 `아야 아야 아야 아야'하다가 죽는데 주님을 사랑함으로 생명을, 생명멱을 바쳐서 주를 사랑했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영화롭게 하리라' 환난으로 인해서 영광스러워집니다. 손 목사님도 환난으로 인해서 영광스러워졌고, 우리 한상동목사님, 주남선 목사님 영광스럽게 아주 그분들 영광스럽다고 이렇게 다 말하는데 영화롭게 됐는데 그 뭘로 영화롭게 됐지요? 고려신학교를 세워서 영화롭게 됐어요? 뭘로 영화롭게 됐어요? 왜정 말년 신사참배 때문에 영화롭게 됐어요. 신사참배 때문에 영화롭게 됐어.

신사참배 때문에 유명해졌어요. `영화롭게 하리라' 그러면 이 환난이 들어서 자꾸 더 좋아져. 그 몇 가지를 높엿습니까? 다섯 가지 높였고.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여" 장수함으로 만족케 한다 말은 하나님은 영원이라. 장수라 말은 영원히 그를 만족케 하겠다. 자, 하나님이 하루만 만족케 해도 좋고 한 번만 만족케 해 줘도 좋을 건데 영원히 만족케 하시니까 이거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이 영원히.

자. 백 년 만족케 하는 게 좋아요 천 년 만족케 하는 게 좋아요? 어떤 게 좋습니까? 천 년 만족케 하는 게 좋지. 억만 년 만족케 하는 게 좋아요 영원히 만족케 하는 게 좋아요? 영원히 만족케 하는 게 좋지. 막 생각해서 계산을 대면, 이거 전자계산기 가지고 계산을 대면 막 좋아서 죽을 지경이라. 알겠소? 하나님의 장수가 억만 세입니까! 영원이라. "내가 장수함으로 만족케 한다" 말은 내가 영원히 영생하는데 영생토록 내가 그를 만족케 하겠다, 얼마나 높였는지. 그라면 여섯 가지 높였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남았어.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제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이렇게 여섯 가지로 높여 주시고 이 높여주신 것을 본인만 알게 아니라 모든 만인간이 만물이 전부가 다 환하게 알도록 이렇게 광고를 해서 다 알려 주니까 그거 높은 거 아닙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노벨상 받았다 하면 세계가 노벨상이라 이래 광고를 하니까 다 광고가 되니 그거 높아지는 거 아니요? 이거 모양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여섯 가지로 높인 것을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도록 다 광고한다 하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높여 주시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면 일곱으로 높였어요.

그런데, 뭐 하면 이렇츰 일곱 가지 높여 주는고? 높여 주는 건 쉬워.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이것 뿐이라. 주님의 이름을 아는 거 있는데 아는 것이 껍데기는 둘뿐이라.

맨 겉껍데기는 하나님이 계약으로 선포해 놓은 두 계약, 신구약 이 계약서보고 '하나님은 이렇게 다 보응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그것이 제일 겉껍데기로 아는 것이고, 그 다음에 속껍데기로 아는 것은, 책상 위에서 알아야 돼요 어디서 알아야 돼요? 현실에서 알아야 돼요. 현실에서 아는데 현실에 속껍데기로 아는 게 뭐인고 하니 그 현실에서 세상은 이래라, 또 속의 성신의 감화는 이래라, 양심은 이래라, 자꾸 이래 뭐 이래라 저래라 이래 쌓는데 그럴 때에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의 말씀대로 요대로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계약을 어기고 요렇게 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징계와 멸망을 주신다' 하는 이것을, '요거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요대로 된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속껍데기라.

  선지자선교회

그러면 알맹이는 그 현실에서 속껍데기쯤 딱 벗겨버려야 돼, 속껍데기를 막벗기고, 그렇게 아는 그 껍데기를 딱 헤치고 들어가서 그 현실에 그대로 행하면 돼 버려.

 

행하면 알맹이라.

 

이제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부디 좀 나옵시다. 내가 그런 말 들었어. 테레비를 자꾸 남편이, 잡시다 잡시다 하니까 자지도 안하고 테레비를 보고 이라니까 테레비 본다고 끄고 나면 싸우고 이래 가지고 테비를 못 보구로 이라고 또 이제 늦게 있다가 또 이거 좀 잘라하면 또 잠 못 자구로 깨우고 그게 마귀라. 남편이 마귀가 아니고 남편 속에 마귀가 들어가 행동은 마귀라 그 말이오. 행동은 마귀라. 여기 그렇게 한 남반들 손 한번 들어 봐요. 그건 회개해요 다, 그렇게 한 남반들. 자꾸 새벽기도 나올라 하면 못 나오구로 잠도 못자구로 하고 이래 가지고 자꾸 테레비 보고 이래 쌓는.

 

, 새벽기도는 새벽에 준비해야 됩니까, 초저녁에 준비해야 됩니까? 초저녁에 준비해야 돼. 일찍 누워자야 되지 별수 없어요. 그래 가지고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오기로 작정하고 못 나오면 내일 아침에, 이제 많이 해야 안 되겠어.

 

내일 아침만 굶을 사람. 새벽기도 못 나오면 내일 아침 굶고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오기로 작정하는 사람 자, 한번 손 한번 들어 봐요, 여기는 안 드네.

 

안 들면 패전하겠다.

 

하나 안들었어 자,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오기로 하고 만일 못 나오면 내일 아침에 굶기로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아이고 손도 더럽게도 든다. 좀 힘있게 간절한 소원 가지고 들어야지. ,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오기로 작정하고 못 나오면 아침을 굶기로 작정하고 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인제 됐다. 그래 나와요. ,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저녁에 이거 일곱 가지로 하나님이 높여 주심을 받는 것은 그저 주의 이름을 알면 돼요. 아는데 그 세 가지 단계, 겉껍데기 속껍데기 그 속에 알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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