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으로 자라가라

 

1984. 12. 24. 새벽

 

본문 : 빌립보서 2장 1절∼1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절로부터 4절까지에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며 또 어떤 사상을  가지며 또 어떤 단합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이 목적을 세우신 그 목적은 교회인데, 교회는 위로는 하나님이 머리가  되시고 모든 형제들은 한 몸 한 지체가 되고 그렇게 된 것이 교회입니다. 천상  천하에 하늘의 영물들도 천군 천사들도 땅위의 모든 만물들도 많이 있는데 그는  다 발등상이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발등상이요,  하나님은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 몸과 지체가 되고, 그 모든 움직임은 하나님  그 한분에 따라서 움직이는 그것이 교회입니다.

 마치 우리 몸에 여러 지체가 있지마는 그것이 그 머리에 따라서 움직이고  머리와 그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뭐 발끝에 고장난 것도 그게 모두 머리  고장이라 이렇게 의사들은 말들을 합디다. 인체를 연구하는 의사들은 이런  면에서는 그 지식을 가지지 안한 사람보다 훨씬 하나님과 교회를 알기에 그  지식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체의 머리와 그 몸이 신경이 하나이고 또 거게서 움직임이 다  하나이고 이러니까 목적도 하나가 되고 마음도 하나가 되고 뭐 움직임도 하나가  되고 소원도 하나가 되고 전부 하나라. 갈라 놓으니까 머리 있고 몸 있고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지마는 그 모든 평안한 것이나 고통스러운 것이나 또 원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이나 그 전부의 움직임과 또 자극이나 충격이나 되는 것은  꼭. 머리하고 몸하고 한 덩어리가, 둘이 아니고 한 덩어리, 이와 마찬가지로 그  교회라는 것은 순전히 교회는 피조물, 피조물입니다. 피조물 사람입니다.

사람인데, 사람하고 하나님하고 또 진리하고 이렇게 이 셋이 꼭 하나같이 그렇게  밀접해져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과 이질. 질이 다른 거, 하나님과 이 질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진리와 서로 이질되는 것은, 이질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진리,  교회, 사람 말이오, 믿는 사람.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그것이.

 사람은 진리에게 지음을 받은 것이요, 또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오  이렇게 각각 나누어서 위치를 말하면 사람보다 진리가 먼저 있었고 진리보다  하나님이 먼저 계셨고, 하나님이 혼자 스스로 계셨고. 스스로 혼자 계시는 그  하나님이 당신이 뜻을. 뜻을 나타낼 때에 그 뜻이 진리이고, 또 하나님이 그  뜻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할라고 하실 때에 그 진리가 만물을 창조했고, 그 만물  중에, 창조된 만물 중에 사람이 하나 있게 된 것인데,  그러면, 그 논리적 순서로,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제일 먼저 하나님이 계셨고  고 다음에 진리가 있었고 고다음에 천상 천하의 영계나 이 물질계나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들이 다 있게 되었고 이렇게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이 순서가  첫째 둘째 세째로 이렇게 순서를 정할 수가 있고, 또 그 본체의, 본체의  권능이나 또 영광이나 그 지혜나 그런 실력을 분류한다면 사람보다 진리가 그  모든 면이 뛰어난 실력을 가졌고 또 진리보다 하나님은, 같지마는서도 능력이  그분이 진리보다도 무한히 크신 분으로 그렇게 분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진리가 어데까지를 그 한계를 해서 둘로 나눌 수 있다고  그렇게 하지 못할 만치 그만치 하나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가  계시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또 하나님이 동하시는 모든 것이 다 진리로 동하고  이러니까, 하나님과 진리와 논리적으로는 순서도 있고, 순서가 하나님이  자존하시고 그다음에 진리이고, 논리로도 그 순서를 말할 수가 있고, 또 그  자체를 말할 때도 하나님은 자존하신 신격을 가지신, 우리로 말하면 인격과 같은  그 신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요, 진리는 신격을 가진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그 살아 계심과 같은 그런 생명은 없는 것이요 하나의  참된 이치이나 그 능력도 지극히 크고, 그러나 인격 존재는 아닙니다. 진리는  인격 존재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격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신격을 모형한  신격을 닮은 신격과 같은 그 인격을 가진 사람들인데, 사람들의 인격의 원형이  하나님의 신격이요 하나님은 그 신격을 가지셨지마는서도 진리는 그 신격을 가진  것은 아니고 하나의 진리입니다. 진리인데, 그 진리가 능력이 무한하고 지혜가  무한하고, 능력이 무한하나. 영광도 있지마는서도 신격의, 신격이 가지신 신격  같은 그 신 격은 없고 또 신격이 가진 생명 같은 그런 생명은 가지지 안하고  그런 생명이 아닌 다른 것으로서 그 진리도 영존하고 다 영원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이 가지신 그 생명 같은 그런 생명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자체에 있어. 본체에 있어서 하나님과 진리를 이렇게 우리가 각각 나누어서  말하도록 성경에 가르쳐 놨고 또 그 진리와 사람을 나누도록 그렇게 가르쳐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움직이는 그 역사함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진리는 하나라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가 돼 가지고 역사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진리시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진리시라 이랬으나 진리는 하나님이라 그렇게는  말을 못 합니다. 그거 알아 듣겠습니까? 하나님은 진리라, 하나님은 진리시라  이떻게는 말할 수 있어도 진리는 하나님이라 그렇게는 말을 못 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리시라 이렇게는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진리와 꼭 함께 동하고 정하고 함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종자가 어떤 것이 교회의 종자인고 하니, 에덴 동산의 그 아담  해와가 교회의 종자인데 그 종자가 타락해 가지고서 그 교회가 깨졌는데 다시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과 또 배암의 후손이 서로 다투어 가지고 배암의 후손을  여인의 후손이 이길 것이라, 그러고 또 가죽 옷을 지어서 아담과 해와에게  입히시고, 또 짐승을 잡아서 속죄 제사를 지내서 그 죄의 사함을 받으라고  그렇게 하나님이 약속을 선포해 주신 그것이 구약 교회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에 보면은 구약의 사람들도 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서 얼마나 잘 믿었습니까? 아주 잘 믿고 참 죽도록  충성하는 그런 신앙들을 가지고 있었지마는서도 그들은 그들만으로서는 그  교회가 완성을 되지를 못했습니다. 완성되지 못하고. 하나님과 완전 연결이 되지  못하고, 그러니까 죽음도 완전히 이기지를 못했고 죄도 이기지는 못했고 악령을  이기지도 못했는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세례 요한을 통해서 성신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보라, 참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제까지 수많은 짐승을  잡아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이래 드려서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그 모든 문제점을 다 해결을 짓고 이랬지마는 그것은 다  앞으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의 대속을 베푸실 한 예표, 한  상징으로 예약을 하셨을 때에 그 예약을 믿고 그렇게 한 자들이 다 예약을  믿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있었지마는서도 완성이 안 됐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완성을 하실라고 하나님이 사람 되었다는 것을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그렇게 그 세례 요한이 주님을  가리켰었습니다.

 주님이 오셔 가지고 복음의 모든 개봉을 해서 막혀 있던 복음을 당신이  증거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육체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에 성전과 지성소라는 이래 두 칸을 만들어  놓고 안에는, 지성소에는 법궤와 하나님이 계시고 고 밖에는 제사장들이 또 거게  안에, 고 안에는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제사를 드리고 고 사이에 이 휘장이  가리워 있었는데, 휘장이 가리워 있었는데 그 휘장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휘장  밖에는 제사장들이 있고 이랬었습니다. 그래서 그 휘장 밖에는 제사장들이  거게서 하나님을 섬기지마는서도 휘장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휘장 안에는 일  년에 한 차례만.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한 차례만 휘장 안에는  들어갑니다. 들어가면 앞에 있는 모든 제사장들은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 휘장을 피를 가지고. 피를 가지고 뿌려서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속으로 들어갔을 때에 거게서 이제 살아 나오나 죽어 나오나 하는  그것을 떨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족지 안하시면 죽어 버립니다.

이래서, 그 사가랴도. 사가랴도 대제사장인데 들어가고 난 다음에 제사장들이  '어찌 되나' 하고서 이렇게 떨면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가랴가 들어갔다가  나와 가지고 어찌 됐지요? 벙어리 됐지요? 벙어리가 돼 가지고 나왔습니다.

벙어리 될 때 그때에 세례 요한이 잉태될 것을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사가랴에게 말하고 다시 이 말을 이 사실을 반포하지 말라 하는  것으로써 나와 가지고서 다시 거기 대해서 말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육  개월 후에 예수님이 잉태하시고 난 다음에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발표가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휘장이 있었는데 이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을 하실 때에.

운명하실 때에 그때에 이 휘장이, 사람들이 손을 대지 못합니다. 손 대면 대번에  직사하기 때문에, 만들기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 하나 만들었지마는서도  손을 대지 못하는데 그 휘장이 위로부터 짜개졌습니다. 위로부터 손대지 안하고  확 짜개져서 그 성 소와 지성소 사이가 활하게 통해 버렸습니다. 그 휘장이 아주  금으로 만들어서 무거운 휘장인데 그 휘장이 짝 갈라져서 그 사이가  통해겼습니다. 통해진 이것으로써 미리 선지자들이 예언해 놓은 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 휘장은 죄를 그렇게 상징해서 그럴게 하나님이 만들라 하신  것인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죄가 들어서 그 사이를 가로막아 가지고서  틔하지 못하고 있었고 일 년에 한 차례만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겨우  들어가서 하나님에게 봉헌 할 것을 봉헌 하고 그렇게 했는데, 그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자 운명하시는 즉시로 그 휘장이 위로부터 짜개져  가지고서 성소와 지성소 사이가 이렇게 열려졌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지성소에 들어간 그  지성소는 하나님이 실지로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것을 표시해 가지고서,  지성소에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만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막혀 있다,  죄로 더불어 막혀 있다 하는 그것을 하나 계시해서 알리기 위해서 성소를  만드셨고 또 그 가운데는 휘장이 가리워 있었는데 그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참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문제되어 있는  죄는 이제 완전히 사죄가 되었다 하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부활하시니까, 예수님이 삼 일 만에 부활하 시니까  모든 무덤들이 다 열렸습니다. 모든 무덤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동시에 모든  무덤들이다, 많은 성인들의 무덤들이 다 열려 가지고 무덤들이 열려 가지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나오실 때에 그때에 모든 무덤에서, 무덤이 열려  가지고 무덤 안에 있던 그 성인들이 다 무덤 밖에 나 왔습니다. 무덤 밖에 나와  가지고서 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그  무덤으로 다 들어가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다 보도록 그렇게 한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됐고 하나님과 원수된 문제가  해결이 돼서 화목이 됐고 예수님이 살아나심으로써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과  영생이 있는 것을 표시 하나 나타내는 그 계시로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교회가 어떤 교회냐? 구약 교회는 여인의후손 곧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하나님과 그 문제를 예약적으로 상징적으로 해 주시는 그를 시행함으로  사죄함을 받아 가지고서 이렇게 있었으나 그것이 다 미결 중에 있다가 예수님이  식자가에 못을 박히심으로써. 박히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비로소 이  구약 성도들이 예약적으로 상징적으로 믿고 그 행사를 하고 소망하던 그 일이  완성이 됐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l1장 끝에 보면은 신약 교회가 아니면 그들로  하여금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가. 신약 교회는 예수님이 신약 교회에  속했는데 그 신약 교회로 말미 암아 온전을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종자는 뭐이 교회의 종자인가? 교회의 종자는 예수님이  교회의 종자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종자인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과 진리와 요 셋이 합하여서 하나된 것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교회 종자요, 그다음부터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인성에 접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인성을, 중보이신 예수님의 인성을  통하여 인성에게 다 접해 가지고서 그 무한하신 하나님에게 이렇게 접해서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이렇게 합해 가지고서 하나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의 씨는 하나님과 사람과 진리가 합해서 뭐이 됐는고  하니 일위가 됐습니다. 일위. 신인 양성 일위라 말은 신성은 하나님이라 말이요  인성은 사람이라는 말인데, 신성과 인성이 한 몸이 된 게 아니라 한 격위가 돼  버렸습니다. 한 격위가 된 이것이,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시요 교회의  종자입니다. 종자이고,  그로 인해서 이제 된 모든 것이 어떤 것이 교회냐 하면 하나님과 사람과 진리가  합해 가지고서 일위 되는 것이 아니고, 일위 된 것이 아니고. 일행이 된 것이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의 종자는 신인 양성과 진리가 일위가 됐고, 일위가  됐고, 그 종자로 말미암아 그 종자에게서 벋어 나와서, 이렇게 종자가 벋어 나와  가지고서 종자가 이렇게 커진, 커져 있는 모든 교회 들은 신인 양성 일위의  종자에서, 일위의 중보자에게서, 일위로 인하여서, 일위의 첫 열매로 인하여  모든 교회들은 신인 양성 일행, 신인 양성 일행, 일합, 일합 일행, 이래 합해  가지고서 하나 되었고 행동은 같이 하고 일위는 못 됩니다. 일위는 안 됩니다.

하나로 랍해졌고 일행이 되어서, 그리스 도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어서 이렇게 합해져 가는 것이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말할 때에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합하여 한 움직임을  가지고, 한 생명을 가지고, 한 힘을 가지고서 영생하는 것이 교회라.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천 명이나 만 명이나 억천만 명 이나 역사에 있는 모든 교회,  아담 해와로부터 예수님의 재림까지의 뭐 동서양 어데 있든지 어떤 교인이든지  교인이라고 하면은, 교인이라고 하면은 어떻게 된 것이 교인이냐? 교인은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의 이렇게 합해 가지고서 한 덩어리,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외부적으로 같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이 교회요, 같이 행동 할 수 있는  것이 교회요,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교회요, 또 힘이,  힘이 한 힘 가지고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교회요, 한 힘 가지고서 살고 있는  것이 교회요, 또 한사상 한 사상. 한 정신,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서 사는  것이 교회입니다. 또 한 생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 교회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잘 들어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래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도 하나요 그리스도도 하나요 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이시라. 그런고로, 이제 모든 성도들은, 수많은 성도들이  있지마는서도 다 그것은 합하여, 말하자면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고 또 지체  속에 또 여러 세포가 있어서 그렇게 수많은 세포가 있고 수많은 지체가  있지마는서도 그것은 다 한 몸은 한 생명 가지고 살고 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한  성질을 가지고 살고 한 행동을 하고 산다.

 그래서 행동할 때에는 머리도, 머리가 그 행동을 원하고 머리하고 또 이  몸뚱이하고 지체하고 같이 움직입니다. 우리가 손을, 내가 손을 이래 하는 것은  벌써 내 머리에서 이렇게 하도록 머리가 작용하지 안하면 이 손이 펴질 수가  없고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 그것이 실제 우리의 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한 분과, 한 분과 연결된 그 연결 하나님과 사람이 연결된 고 연결, 고  연결을 통해 가지고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면  살았고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이 연결된 연결이 어떤 연결로 됐느냐 하면은 신 성과  인성이 연결된 연결, 신성과 인성이 연결된 그 연결로 됐는데 그 연결이 영원히  떨어지지 일습니다. 그 연결로 인하여 우리들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살아난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가리켜서 말하기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신인 연결 그 연결로 거게 우리도 같은 연결이 돼 가지고  살기 때문에 예수님의 한 연결로 모든 성도들이 연결되어 산다. 연결이 된  연결이 생명이오. 연결되면 살고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것을 말하고 다시 중생이라 하는 살아난  중생은 하나님과 연결이 된 거, 완전과 연결이 된 거, 완전과 연결이 됐으니까  살았고 하나님의 그 지혜와 연결됐으니까 그 인간의 죽은 지혜가 그 연결이 돼서  그 지혜로 살기 때문에, 그 지식으로 살기 때문에, 속성으로 살기 때문에 산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한 생명으로 산다, 한 뜻으로 산다. 한 마음으로  산다, 한 성품으로 산다, 한 소원으로 산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 라에는  수억억억만도 넘은 그 성도들이 사나 뜻이 꼭 같고 마음야꼭 같고 소원이 꼭  같고 성품이 꼭 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내가 저 먼저 들으니까 목사님하고 여기 ○○○  장로님하고 둘이 만나디마는서도 말하기를, ○ 장로님이 좀 말이 좀 어둔하고 또  ○ 목사님이 어둔하니까 그래 그 둘이 말하기를 '하늘나라에 가면은 우리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라니까 있다가서 말하기를 '말이 없다. 그  나라에는 말이 없다.' 둘이 그 말을 하고서 서로 웃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늘나라는 말이 없습니다. 말을, 이런 말 둔한 걸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속이, 속이 같지 않기 때문에 같다는 것을 하기 위해서 그 사람하고 말을 해서  서로 통해 가지고 나도 이렇다 너도 이렇다 자구 이렇게 대화 해 가지고 통할라  하는 것이지, 피차에, 피차에 마음이 꼭 같은데 말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하늘나라는 언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돼서. 하늘나라는 종자부터가, 종자부터가, 이 본문을 내가 읽은 것은  왜 읽었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 교회의 종자부터가,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의 본체 이지마는서도 삼위 중에 일체인, 삼위 중에, 삼위 중에 일위인  성자가 인성을 입고 오섰습니다. 이러니까, 고 성자가 인성을 입고 오셨으나 그  성자 안에 성부 성령이 다 하나이기 때문에 같이 계시고 이러니까 논리적 순서로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삼위라고 말하지 그 본체는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자가 인성을 입고 오셨지마는서도 그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라, 하나님의 본체라.

 그러나 본체이시나 그 움직이심이 하나님과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안 하고  자기를 비어서. 성부 성자라는 한 일체이지 마는서도 그 위라는 그 직책을,  직책을 맡은 그 지위에 있어서, 위(位)에 있어서 그 위라는 것을 절대 엄격하게  지켜서 그 위를 조금도 범하지 안하고 그 위를 철저한 위가 지켜져 있는, 그러기  때문에, 교회 종자부터가 질서가 아주 절대입니다. 질서가 절대 정연합니다.

그것을 봐서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겨서 그렇게 하지 안하고서 성부는  성부로 성자는 거게 이제 속한 위치를 가지칙 본체이지마는서도 이 교회의  책임을 질 때에는 거게 소속한 위치를 가겼기 때문에 그 위를 범하지 안하고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안하고 자기를 비워서 종 되라면 종 되고, 그러면,  하나님이 종의 형상을 업었고 또 하나님이 지으신, 당신이, 지은 창조주가  피조물같이 되어져 가지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이 일을 하였음으로써 비로소  예수님이 신인 양성 일위의 교회의 종자를 완성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존재들을 다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모든 존재들이 그로 인해서 구원 얻는 이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이  일이 완성됐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게서, 빌립보 2장 l절로부터 쭉 읽어보면, 사람들은,  타락한 사람은 백 사람이면 백 사람 주관이 각각 다릅니다.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의 주관이 다 다르고 욕심이 다 다르고 성질이 다 다르고, 전부 다  자기중심입니다. 전부 자기중심. 자기중심이고, 이러니까, 죽은 것이 왜  죽었느냐?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에게 속해서 이래 질서 정연하게 창조주에게  속해 가지고서 그분으로 동하고 정하켠 사는데 그분으로 동하고 정하지 안하고  제 중심이라는 것 생긴 고것이 이름이 뭐이요? 제 중심이라고 생겨겼는데 고게  이름이 뭐 입니까? 예? 원죄, 고게 원죄요 원죄. 제 중심으로 생겨진 그것이  원죄라. 그럼으로 말미암아 죽어졌습니다.

 이러니까, 이 죽은 자들, 전부 백 사람이면 백 사람 전부 제 중심 되어 있고 만  사람이면 만 사람 전부 제 중심 돼 있고. 제 중심의 욕심,제 중심의 성질, 제  중심의 소원, 제 중심의 목적, 제 중심의 노력, 만 명이면 만 명이 똑 서숙알 만  개 모양으로 각각 딴 개입니다. 만 개 딴 개입니다. 딴 개가 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딴것으로 그와 같이 되어 있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딴거  되어 있는 요자는 다 죽은 자라. 요것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서 되어 있는  자이고 자기는 죽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죽었고 우리의 몸도 죽었고, 마음이  죽었다 말은 마음도 하나님과 끊어졌고 몸도 하나님과 끊어져서 죽은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이 마음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서 그 주인이 돼  가지고서 이 마음이 그거에게 속해 가지고서 이 마음이 제 각각 마음이 됐고 제  각각의 몸이 되어 있는 이것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다 죽여 버려서 물리쳐  버리고, 물리쳐 버리고 거게서 해방돼 가지고서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마음도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고 몸도 하나님과 한 몸이 되고 이렇게 모든  움직임이 하나님과 하나 된 요것이 뭐이냐? 산 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다 이렇게 늘 가르치는 것이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에는, 하늘나라에는 개별이 없다. 개별 되어 있는 그것은 다  심판으로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여게서, 우리가  한 생명으로 살아야 될 우리들이요, 한 뜻 한 힘, 온 몸이 한 힘으로 살고 한  생명으로 살고 다 한 신경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머리에 한 신경 물론  신경에 이 부문에서는 다 그거는 분엽적으로 이렇게 나가 있지마는서도 실은  근본은 하나라 말이오.

 이렇게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머리로 삼아 가지고서 그 몸이  전부 머리에게 속해 가지고서 하나가 되어져서 저 손가락 끝에 가시가 하나  찔리면은 온 전신이 깜짝 놀래는 것처럼 이럴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진  이것이 하늘나라에 갈 것이지, 이렇게 뭐 오늘날 지금 교회에서 네 교파 내  교파로 미위하고 다른 사람은 거짓으로 막 모욕을 시키고 매장을 시키고 욕을  하고 이래 쌓는 이것은 전부 옛사람입니다. 전부 옛사람. 고것은 죽을 때 쏵  하나님이 빗고 깎아서 쏵 유황불 구렁텅 이에다가 넣어 버리고, 또 이  세상에서도 그와 같이 하는 사람은 마귀 운동이지 그거는 성령의 운동이 아닌  것입니다. 성령의 운동은 한 성령의 감화로. 한 진리로, 한 예수님을 구주로, 한  대속으로, 한 아버지로 이렇게 한 분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요것이 되어져야  되기 때문에 제일 첫째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를  부인하라' 또 '십자가를 져라'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되어서  하나 되어지는' 그 되어짐의 어려움을 가리켜서 십자가이니까, 하나됨의 어려움,  하나 되기 위해서 어려움 당하 는, 어려움을 가리켜서 십자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 됨에 대해서 어려움 그 어려움은 무슨 어려움이냐? 그것이  새사람의 어려움이냐? 옛사람 중심으로 산 그놈이 어려움이라. 그놈이 어려움  되기 때문에 그놈이 어려워서 그놈이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진리와 영감을 버리지 안하고 주님을 중심해서 지리와 영감으로  살기 위해서 그렇게 살라 할 때에 세상이 살지 못하게 할 때에, 살라고 하고  살지 못하게 하고 이랄 때에 살라고 하는 그것을 양보 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받을 때에 어찌 되느냐? 죽임을 받을 때에 그 영과 육이라 하는 것은  완전허 생명으로 속해서 옮겨져 버리고 맙니다. 완전히 진리의 것이 됐고 영감의  것이 됐고, 하나님 중심, 하나인 거기에 소속이 되어졌기 때문에 이럼으로써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긴다, 고거 여러분들이 이거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모릅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그렇게 자기를 부인함으로써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을  배쳐해 버려 버리고 참 자기로 영원히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썩을 것으로 심은다. 심은다 말은, 심으면 자기 가지고 있던  것을 내놔야 심어지는 것 아닙니까?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것으로 심으고 영원한 것으로 다시 살고, 약한 것으로 심으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 혈육의 것을 심으고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산다 그 말은 이제  이것이 영감과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속하기 위하여서 세상에서 세상에  속해진 그것이 절단나는 것이 이 예수 그리스도 와 진리 영감에게 소속한 것이  되어지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사망 창고에 들어 있던 것이 사망 창고에서 생명 창고로 가면은  사망 창고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오 없오? 없지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옮기는 것은 그 진리와 영감과 주님에게 소속할라고  하니까 이 세상이 소속하지 말라고 자꾸 이래 쌓다가서 소속할라 하면 '소속하면  죽인다 죽인다' 협박을 하다가 마지막에 딸라 죽어 버리면은 그것은 주님과  진리와 이 영감에게 속함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끊어지지 아니함으로써 세상이  없애 버리기 때문에 그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와 같이 했습니다. 이들이 협박을 하공 자꾸 이래  하다가 나중에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 난 다음에도 '지금이라도 내려 와서,  지금이라도 내려와 가지고, 살아 내려오라 살아 내려오면 이분 참 하나님인가  보다 해 가지고서 우리들이 다 믿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겠다' 강도도  말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것이 예수님에게 큰  유혹입니다. 이래서, '그래, 내가 못 살아날 줄 알고? 그러면, 내가 살아 나오면  믿겠느냐? 내가 한번 살아 나와 볼께' 만일 그렇게 했다면은 예수님은 사탄에게  순종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완전 패전됩니다.

 이러니까 예수님께는 그렇게 말했지마는서도 그렇게 하지 안하고 하나 남으로  동하고 정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동하고 정했지 그들의 말한 대로 동하고 정하지  안하고 있으니까 그들이 자꾸 항복하라고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나중에 행여나  항복할까 항복할까 하다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아프고 하니까 거기서 항복을  할까 싶어서 이래 하다가 마지막 항복하지 안하고 숨이 딸칵? 끊어져 버렸으니까  그다음에 마귀란 놈이 시험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완전 이제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감에게 진리에게 속한 것으로서 끝이 났습니까, 아직까지 미  결입니까 끝이 났습니까? 예? 저 ○○○ 집사, 끝났어. 끝났어, 끝났어. 요래서  주님이 마지막에다, 그걸 다 하시고 난 다음에 이제, 당신의 것이 다 이제  끊어질 고 찰나에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시지마는서도 하나님과 어떤  연결을 가겼으며 어떤 위치를 가져 그 위치를 엄수 했으며 어떻게 화목했으며  어떻게 그로 더불어 동하고 정했으며 또 사망을 어떻게 이겼으며 또 마귀가 어떤  시험을 했던가 요것을 그 첫 열매인 예수님의 모든 고 실상을 우리가  연구함으로써 우리도 고와 같은 종자요 고와 같은 방편과 승리로 구원을  이루어지는 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의 성탄이 됐다고서 뭐 기뻐하고 즐거워 하고 하면서 이렇게  그저, 안 믿는 사람들은 성탄이 왔으니까 모든 요리집마다 모두. 사창굴에도,  사창굴에도 크리스마스라고 전부 추리 해 놓고서 그래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 그거는 다 외부적이요 그와 같이 여겼고. 또 미국 같은 나라는  크리스마스라면 굉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굉장한 것이 예수님의 성탄에 대해서 축하하는 그 모든  깨달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이렇게 축하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그 껍데기  외형만 자꾸 번져 나가 가지고서 이와 같이 돼져 버리고 그 속에 알맹이에  대해서는 회미해겼기 때문에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나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 그거요. 그래서. 모두가 다 자꾸 형식화 자꾸 돼 나 갑니다.

 그래서 이 성탄 축하에 대해서도 사창굴에서 축하하는 것과 또 일반교인이  축하하는 것과 또 참된 깨달음의 성도들이 축하하는 것과 그 축하 하는 그 근본  정신이 다르고 또 방편도 다릅니다.

 추수 참사 연보도 그래. 추수 감사 연보 하는 것도 그거 재미있어요. 추수  감사함인데. 그 추수 감사 연보는 예수님의 세가지 유월절 오순절장 막절 이것을  기념하는 근본인데 '그 사람들이 그 감사를 뭘로 하겠느냐? 농사 지을 때이니까  농사 짓는 농작물을 가지고서 그렇게 감사하는 표시를 해라' 했는데 그 중심은  그만 가리워져 버리고 농작물 가지고서 표시하는 이 껍데기 이 외식만  남았습니다. 남았기 때문에, 그것이 전해 내려오기를 추수 감사절이라 하면은  호박도 가져오고 무우도 가져오고 이런 거 모두 다 가져와서 이런 거 뭐 전부  가져와 가지고 이렇게 하는 그것도 재미있으나, 재미있으나 그것이 실은  예수님의 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그 삼대 절기를 자기가 뜻을 깨닫고 그를  기념하는 그 기념의 그 표시로, 말하자면 여게 불이 있으면은 연기가 날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연기와 같이, 차가 지나가니까 차가 지나간 그것이 실상이요  거게서 먼지가 나오는 것처럼 거게서 그로 인해서 따라 나는 그 먼지처럼 거게  분위기가 일어나는 그런 것이지 그것이 실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대로에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래서, 그게 없으니까 모두 '재미가 없다' 또 그런 거 있으면 모두 재미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거게 조금 약간의 그것을 표시해서 떡국도 끓여 먹고  그래 가지고서 또 성탄 연보를 해서, 연보를 해 가지고서 이 연보를 가지고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우리가 가서 방문하지 못하는 그 문둥이들도 일 년에  한번 방문하고 고아도 방문하고 양로원의 양로들도 방문하고 또 그 모든  이웃들도 다 이렇게 돕는 일을 그렇게 하고, 지금도 어떤 지역에서는 아주 여러  해를 가물어 가지고서 지금 사람이 삼십 분만이면 하나씩 굶어 죽는 그런 지역이  있습니다. 그런 지역에, 언제 내가 신문 보니까 요번 성탄 때에 거기에 우리가  돕는 일을 하자 하면서 ○○목사님 이라는 목사님이 ○○○교회 있었는데,  저하고 잘 압니다. 그런데 그분이 요새 보니까 총회, 합동 총신이라는 총신에  그분이 총회장이 돼 가지고 있읍디다. 총회장이 돼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발표를, 성탄에 대해서 소식 전하는 것을 그가 전했습디다.

 그런고로 우리가 어쨌든지 진실되게,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요대로 우리는 너와  나와 두 사람이 각각 가지고 있는 옛사람은 그것은 다 죽여 버려라. 그거 지금  우리가 죽여 버려야 새사람으로 자꾸 자라가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그  나라를 구해라' 주님 모신 그 나라. 새사람으로사는 그 생활, 새사람으로  자라가는, 새사람이 무엇인데? 새사람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렇게  살아난 사람인데, 요 셋으로 살아난 사람, 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진리도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사람이 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자기 개성이라는 거, 자기 개성  자기 사욕이라는 거, 자기 사라는 것은 완전히 죽여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자기  원수인 줄 알아야 되지, 그놈으로 사는 것은 옛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이제 너도  나도, 전부 네 소원도 버리고, 네 욕심 내 욕심도 버리고 성령의 소욕, 성령님의  소욕, 그러니까 육체의 소욕은 천 개도 만 개도 넘지마는 성령의 소욕은  하나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인 성령의 소욕으로 사는 요 완전히 변화된  새사람이라야, 자기 새사람으로 자라가야 자기 실력이 자라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난밤에도 재독할 때에 참석한 사람은 백 팔십 사 명밖에 안 되는데,  여러부들이 몰라서 이렇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무슨 설교인지 모르는 사람은  자꾸 재독을 빠지지 안하고 자꾸 들으면 이제 귀가 열려 가지고 알게 될 터인데.

어제도 설교한 걸 제가 재독을 들었음니다. 재독을 들었는데, 그거 내가 한  설교가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설교요.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인데 이걸 모두 모르기 때문에 전부 재독을 이래  한다는 이 재독이 있어도 재독을 들을려고 하지 안해요.

 저도 설교할 때에는 무슨 설교 했는지 잘 몰라요. 이러나 내가 재독할 때에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도 어제 재독을 끝까지 다, 언제든지 재독을  끝까지 다 듣습니다. 이런데 그 재독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줬지 사람이 한 말이  아니오. 하나님이 해 주신 말씀인데 이걸 그렇게 사람들이 귀너머 듣는다  말이오. 성경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지만 성경 말씀도 뭐 귀너머 들으니까 설교도  귀너머 듣지 그 사람이 뭐 들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재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의 필요성을 또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내나 옛사람 그놈이 들어서 그렇게 하는 것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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