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뜻, 행동,

 

1982. 6. 7. 월새

 

본문:에베소서 5장 15절~17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우리의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고, 또 생각은 자기 욕심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자기 습성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자기 본능에서 나오는 것도 있습니다. 자기  본능에서 나오는 것은 자기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본성, 본능에서  나오는 것 있고, 또 자기가 이제까지 무엇을 했든지 길들인 게 있어. 늘 습관이  있어서 늘 연습을 해서 그 면이 숙달됐다 그말이오.

습성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자기 욕심에서 나오는 생각도 있습니다. 욕심은 여러  가지인데, 만일 자기에게 몸에 위험한 일을 닥쳤을 때에는 위험에 대한 생각이  나옵니다. 이것은 자기 몸이 건강하고 튼튼하고 안보하려는 자기 몸의 안보의  욕심입니다. 또 자기에게 죽음이 닥칩니다. 죽음이 닥쳤을 때에 그때의 생각은  애착욕이라는, 생의, 살고저 하는, 생명을 아끼는 생의 애착욕이라는 그  욕심에서 나옵니다.

욕심에서 나온다는 것은 아주 욕심은 그 숫자가 많습니다. 욕심에서 나오는  생각도 있고, 자기가 이제까지 늘 그 일을 많이 연습해서 그 일이 발달됐다  그거요. 연습도 기술의 연습도 있겠고 도덕의 연습도 있겠고 모든 죄악적인  연습도 있겠습니다.

연습에서 나온 생각도 있고 욕심에서 나온 생각도 있고 자기의 본능 본성,  본능과 본성이라는 것은 습성이 아주 뽑아 버릴 수 없도록 그 습관이 자기가  됐을 때에는 그것을 가리켜서 본성이라 본능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일생동안 자기가 연습을 했으면 그거는 벌써 자기의 본능이 됐고 본성이  됐습니다. 그것이 자기라는 사람이 됐습니다. 또 악령이 감화시켜서 나오는  생각들이 간혹 있습니다. 악령이 직접으로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는 것도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악령은 일찍부터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일해 놓은, 악령이 일찍부터 우리  속에 와서 일해 놓은 벌써 설비가 있습니다. 일해 놓은 설비가 있는데 그 설비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에게 잘못된 욕심 그것이 마귀가 와 가지고 일찍부터  공작해서 설치해 놓은 마귀의 소유입니다. 우리의 각양의 잘못된 욕심, 또  그보다도 더 일찍부터 설비해 놓은 악령의 기관인 악령의 설비가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의 습성입니다, 습성.

또 그것보다 악령이 아주 튼튼하게 일찍부터 공작해서 많은 세월을 거쳐서 자기  것을 든든히 만들어 놓은 그 기관이 있으니, 요새 말로 말하면 미사일이라고,  전쟁에 미사일 뭐 포 어쩌고 하는 것 모양으로 아주 중요한 것을 많은 세월을  걸쳐서 건설해 놓은 제것이 있는데 그것이 곧 그 사람에게 잘못된 본능 본성  그것들입니다. 대개는 악령이 그것을 이용해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나지 직접  나타나서 하는 일들이 자주 없습니다. 특수한 기회에 하지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생각은 다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 생각 이것은 어떤 사람은  생각이 바로 행동되는 사람 있습니다. 생각이 행동이 되어서 생각에서 행동이  직접 나와 가지고 생각이 행동 되는 사람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생각대로 바로 하지 않고 생각이 한 순서를 거쳐 가지고  행동으로 나타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신중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생각이 자기의 뜻으로 옮겨져 그 생각이 자기 뜻이 되어  가지고 그 뜻에서 행동이 나오는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세상에서  실력있는 사람이요 교회 안에서도 실력있는 사람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즉각 즉각 단행하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마는, 생각나는 대로 직접  바로 실천에 옮기는 이런 행동이 빠른 사람은 좋은 것 같지마는 그 사람은 물을  채로 한 번 더 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물이 텁텁하기 쉽습니다. 일차 정화되지  아니하고 나오는 물과 같고, 뜻을 통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그 정화의 과정을 한  번 더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뜻을 정해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행동은 두 가지입니다. 행동이 두 가지라 말은 인간에게는 뜻이 두  가지라는 말과 같습니다. 행동이 뜻에서 나오기 때문에. 또 생각이 두 가지라는  말도 됩니다. 행동이 두 가지라는 것은,-그만 도를 말하면, 실지로 자기가  행하려고 보면 이렇게 배워야 되는데, 도를 배워야 되는데 도는 듣기 싫고,  행하지 아니하고 말 구경만 하니까, 어떻게 행해야 될까 하는 그 행하는 데  구체적인 요령이 없이 이거 해라 하면 듣기 좋아합니다. 그거는 실상 그래  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어제 오후 설교는 구체적인 공작을 하는 설교가 아니라. 그저 말 구경만 시키지,  그거야 좋지. 어쩌든지 하나님의 수입만 봐라 하는 거야, 하나님은 네 하나님  삼아라 하는 말이야 쉽고 좋고 참 좋지. 이렇지마는 ‘네 하나님을 삼을려고  하면 거기서는 이런 저런 수많은 과정에 모든 형편 사정 그런 것들이 있다.’  실지로 살려고 하면 그게 나오는데 ‘이게 있으니 네가 이리 이리 해야 된다’  는 말하면 그만 듣기 싫다 말이오. 실행을 도무지 싫어하는 사람 들이라. 실행을  원하는 사람은 오후 설교 같은 그런 설교 가지고는 고민이요 번민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그때는, 처음 들을 때는 그렇다 할지라도 막상 그래 하려고  하니까 일이 안 되는데, 하고 싶기는 하지마는 이때 어떻게 해야 될런지를  모르겠다 그거요.

행동이 둘이라 말은, 행동이 어디서 나오느냐? 어떤 사람은 뜻에서 나오고 어떤  사람은 생각에서 나오고 이러기 때문에 행동이 두 가지 종류 있는 것은, 크게  나뉘어서 두 가지 종류, 하나는 영생이 되는 종류 하나는 사망이 되는 종류,  행동이 두 가지 종류 있다는 말은 인간에게는 뜻이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말입니다. 뜻을 백 가지를 가져도 도매금으로 이거는 사망에 속한 것 이거는  생명에 속한 것이다 둘로 나눌 수가 있다 그말이오. 뜻이 두 가지. 또 뜻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어디서? 생각에서 나왔지.

유식한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그거요. 하는 말을 왜 몰라? 이미 세상 지식이  있으니까 더 잘 들을 수 있지마는 교만해서 저 죽이는 말, 죽이는 이 세상의  거짓된 오묘한 말은 귀에 속속 들어오지마는 절대적인 이 말은 귀에 안 들어와.

절대적인 말이라도 쉽고 그렇거든. 일반이 들을 수 있는 말이거든. 그래도  하나님 말씀인데, 일반이 들을 수 없는 아주 대학원에서든지 어디 최고의 어떤  위치의 특별 학원에서 듣는 말이면 ‘이 말은 가치있다.’ 그 말은 죽음이 더  독이 많다. 참 불쌍하고 가련해.

자식들 공부 많이 시키려고 하지 말아요. 그런 미혹 받지 말아요, 절대로.

자연스럽게 공부하려고 해서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억지로  도적질을 해서, 계명을 어겨서 하나님을 노엽게 해 가지고 공부를 가지면 좋은  줄 알아도 그거는 세상에서 죄짓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뿐이지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그 지식이 오면 자기 다 우상이 되고 맙니다.

지식 가지고 망한 사람 꽉 찼소. 지식 가지고 뭐 취직은 하고 지식 가지고 그  사람이 돈벌이는 한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망하는 사람 꽉 찼어. 내가 이름은  안 부르지마는, 세상에서 보면 그 사람 성공자이지마는 그것 때문에 신앙을  가지지 못한다 그말이오. 그런 불쌍한 사람이 돼. 아, 참!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외모가 다 뭐이요? 세상의 지위, 권세, 명예 그런  것 다, 재벌 사업 그거 다 외모요. 외모 그거 가지고 무궁세계에서 평가해 주는  게 아니라 각 사람의 행한 그대로 평가해 줘. 이러니까 세상에는 대가리가  되는데 마지막에 뚝 떨어지는 것, 여러분들 ‘구름 같은 간증자들이 많다’ 그  당시에 세계에 제일 세력을 가졌던 영웅들, 정치가들, 위인들 그 사람들 지금  생각하면 불쌍하고 가련하지 위대가 뭐 있느냐 그거요.

동양에서는 제일 위대한 사람이 진시왕인데 진시왕이 지금 생각할 때에 불쌍하고  가련한 자이지 그자의 위대가 뭐 부러운 것이 하나나 있습니까? 뭐이 위대하다  그말이오? 그 당시에 아무도 몰랐던 조롱받았던 아브라함 그런 사람이 위대하지.

뜻도 둘, 생각도 둘, 또 생각이 욕심에서 나오기 때문에 욕심이 여러 수천  가지도 넘었지마는 크게 나누면 죽을 욕심 살 욕심, 살 욕심은 성신의  욕심이라고 해도 죽을 욕심은 자기의 심신에서 나온 욕심이라 이렇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욕심도 둘, 또 습성도 둘, 이 연습도 했고 저 연습도 했고 뭐 어떤 사람은 고기  낚는 연습, 어떤 사람은 또 뭐 다마 치기라더나 그거 뭐라 하노? 당구장인가 뭐  당구 연습, 어떤 사람은 자기가 사용하지 아니하고 그만, 운동하는 것도  운동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연습이 되어 가지고 자기 된 사람도 있어. 운동 연습,  또 무슨 노는 연습, 또 연습 중에도 아주 못쓸 것, 다른 사람이 알면 참 아주  기막힐 것 그런 것 더러운 연습 별별 연습들이 다 있다 말이오.

그러나 말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 하나는 생명에 속한 연습, 하나는  사망에 속한 연습 연습도 둘입니다.

그 위에는 본능도 둘이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본능이 둘이라. 안 믿는 사람은  본능이 하나뿐이오. 믿는 사람은 본능도 둘입니다. 본성도 둘이오. 그 위에 뭐  남았습니까? 남반에, 그 위에 뭐 남았소, 이제는? 무엇이 남았지? ○○○,  ○○○, 무슨 영? 네. ‘영’ 말을 했는데 영이 무슨 영이라고 그래야 되지  ‘영’ 하면 아직까지 미결이라. 또 악령과 성령, 악령과 성령이 이제 그 위에  있습니다. 악령과 성령 위에 또 뭐 있습니까? 없소.

이러니까 우리가 행동할 때에, 행동할 때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자세히” 자세히라 말은 덜렁덜렁 이렇게 하지 말고 좀 세밀히 말을  하라, 세밀한 사람들이 되어야 돼. 들을 줄 아는 세밀한 사람들이 되어야 돼.

어제 제직회 할 때에 처음에 동의는 먼저 제일 처음에 했지마는 그 동의에  재청이 그 후에, 동의 나온 동의와 재청이 있은지 후에 처음에 나온 동의에  재청이 나왔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 둘이 같다는데 같은 게 아니오. 하나요.

동의와 개의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것이 어떠냐?’  이런 것을 물었다 그거요.

사람은 세밀히 살아야 됩니다. 하나는 이 두 가지니 둘 중에 어느 게 하나인가  묻자는 그 동의 재청이고, 또 하나는 뭐이냐? 이게 좋다 이게 좋으니까 이제  이걸 좋은가 안 좋은가 다 이것을, 우리는 이게 좋은데 모두 다 이걸 다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그걸 물을려는, 하나는 하나를 두고 말하고, 하나는  둘을 두고 양쪽으로 선택하는 것이오. 어떻게 이게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둘과 같다 말이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거기 대해서 아무 말이 없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거 구별성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오.

말은 말을 들을 때에 말은 말로 듣는 게 아니오. 말을 들을 때에 ‘이 말은  어디서 나오는 말이냐? 참말이냐 거짓말이냐?’ 참말, 있다 한다고 참말이냐  거짓말이냐? ‘아, 그 사실대로의 말은 말이다. 사실대로의 말은 말이다. 있는  걸 있다 했다. 없는 걸 없다 했다.’ 그러면, 있는 걸 있다 하고 없는 걸 없다  했으면 거짓말이오 참말이오? 자 이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있는 걸 있다 없는 걸 없다 한 이걸 참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모른다 그말이오, 손 안 드는 것은.

이것이 거짓말도 될 수 있고 참말도 될 수 있습니다. 거짓말 참말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어디다가 근거를 두고 판단하라고 배웠습니까? 구원! 구원이  되는 말이면 다 그 말은 참말이오. 있는 걸 없다고 했더란대도 그거는 참에 속한  말, 인간을 살리는 참말이라. 그 사람을 속이는, 그 사람을 속이지 않은 그  사람을 참으로 유익되게 하는 말이라 그말이오. 있는 걸 있다고 해도 그말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말 될 수 있고 인간에게 해를 줄 수 있는 말도 돼.

기생 라합이 있는 것을 없다고 말했다 그거요. 그말 했으므로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해 주셨소. 거짓말 한 사람을 구원하지 않아요.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 하지 말아라” 그러기 때문에 계명에 그걸 붙여 놨어. 사람은  세밀해야 됩니다.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을 때에 이 말이 참말이냐 거짓말이냐? 웅변이 하는 말이냐  양심이 하는 말이냐? 그 목적이 어디 있느냐? 동기가 어디서 나왔느냐? 성령으로  말미암았느냐 육체로 말미암았느냐? 감정으로 말미암았느냐? 언제 어떻게 말  한마디 하니까 그것 저 살리려고 지금 사는, 죽을 때 사는 주사 놔 줬는데 이제  ‘나 찌르더라’ 해서 그 복수에서 나온 말이냐? 말을 다 듣습니다. 제 명예에서  나오 것, 비웃는 조롱에서 나오는 말, 조롱에서 나오는 말.

○○○집사님이 어제 하는 말이 조롱에서 나왔어. 왜? ‘뭐 목사님이 책임  맡아야 될 것이고 책임 맡으면 될 건데 빙빙빙 둘러 가지고 저럴 게 뭐 있는가?  목사님 책임 맡고 싶으면 맡아서 하고 정 맡기 싫으면 그 위원회를 조직해야  되겠고’ 그 심리 자기도 모르는지 모르는데 나는 그것 다 알고 있다 그거요.

○○집사님 저기 와서 앉았기 때문에, 좀 믿음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이 말  해. 아닌 것은 말하면 지금 그것 때문에 나를 물려고 달려드는, 개에게 진주를  던지면 진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거는 밟고 물려고 달려든다 그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됩니다. 어리석어. 내가 이 말 하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에는 ‘아, 어제 그 말 했으니까 이제 그 복수하는 것 같다.’ 복수 그까짓  거야, 복수할진대 내가 여기 있지도 아니해. 나도 내대로는 뭐 할 수 있는  사람이오.

그게 아니고 수십년 길러 놨는데 안된 그게 기막히고 그래도 또 거기에서라도  살려 볼까 싶어서 하는 말이지, 어제 말할 때에 한 시간 십분이나 되는 것  당장에 딱 말 한 마디 하면 ‘자, 그러면 어떻게 할까? 두 가지 있는데 거수로  결정합시다.’ 하면 그저 한, 의논은 십분이면 끝납니다. 왜? 한 시간 십분이면  나는, 내가 뭐 말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인간을 살리려고 하는 그것을 당신이 보고 기뻐할 수 있고, 인간을 살리고,  죽이는 자도 반성해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 하나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작용은 날마다 있는 게 아니고, 그래 내가 ‘우리 교회서는  제직회가 아주 일 년에 한 번 있거나 두 번 있는데’ 하는 말은 날마다 있는  일이 아닌데 그 일에서 살릴 일은 그 일에서 살려야 되기 때문에 그 일에서 삶을  얻지 못하면 나는 실패라 그말이오. 모두 살리지 못하면 나는 실패라. 그런 지금  원대하고 장구하고 고상한 욕심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그런 정치적인 움직임, 정치적인 움직임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거는 하나님이 노여워하시고 하나님이 ‘야, 이놈아, 외식하는 이놈아’ 해서  당신이 나를 가증스럽게 여기고 당신이 나와 멀어지기 때문에 나도 그런 일 못  하고 수입을 못 얻기 때문에 그런 일 못 한다 그말이오.

정말로 건축위원회가 모여 가지고 건축하면 할 것인가? 못 합니다. 못 해. 내가  거기서 의견을 내어 가지고 하면 저거끼리 쑥덕공론하고 뒤에 가서 이러니  저러니 반발을 하고 이러면 내가 그거 하면 사람 자꾸 죽이는 그럴수록 자꾸  사람이 벌어지는데 사람 죽이는 일 하고 예배당 그까짓 거 지으면 뭐 할 거라?  그보다 사람이 더 큰 건데.

여러분들이 좀 폭이 넓어야 되겠고 깊어야 되겠고 높아야 되겠고 좀 지혜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어. 너무 무지해. 잘났다 하는 사람이 더 등신이라. 자기  앞에 불칼이 있는 것도 모른다 그거요.

이 말 한마디 해 놓으면 ○○○집사님도 ‘아, 내게 대해서 어제 말한 그  복수다.’ 또 본인이 모르면 그 생각도 없이 했다고 생각할런지 모르지. 그걸  모르면 안돼. 그걸 자기가 반성해 알아야 되지. 알고 나면 ‘내게 대해서  복수한다. 내게 대해서 한방 놓는다.’ 아, 그놈대로 하면,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높으신 그분 앞에서 그분의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내가  범성죄를 지었다. 거룩을 범하는 범성죄를 지었다. 어디라고 그분 앞에서,  그분에 대한 일을 의논하는데 내가 신실치 아니하고 그렇게 했나? 참 죽을 죄를  지었다.’ 이러면 희망이 있을 건데 그게 아니고 또 잘못하면 ‘복수성을 가지고  나한테 이래, 언제든지 목사님이 저걸 딱 그래 품어 가지고 내게 대해서 그렇게  이제 관념을 가지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와는 멀어진다.’ 마귀라는 놈이  이렇게 만드는 그런 마귀의 이용물이 된다면 참 가련합니다.

그럴 사람에게는 썩해 말하지 않습니다. 말 안 합니다. 뭣 때문에 내가 그런 말  해 주겠소? 안 하는데 좀 될상바르면, ‘저거는 어째 그러면 좀 감당할 것  아닌가?’ 해서 말하면 표리부동으로 180도로 영 감당 못하고 휙 뒤비지는 것  있어. 그게 뭐이냐? 예수 믿는다는 것이 자기라는 그 옛사람 그놈이 이리 발라  맞추고 저리 발라 맞추고 막 꾸며 맞추어 가지고 예수 믿으니 한방 놓으면  깨지니까 그까짓 게 사망 앞에서 무슨 신앙을 가져, 가지기를? 그것이 무슨 자기  지위를 이기며 그것이 무슨 자기를 이길 수가 있어? 돈을 이길 수가 있어? 못  이겨. 여러분들 죽어야 됩니다. 죽고 다시 살아나야 됩니다.

행동은 이렇게 뜻에서, 생각에서, 욕심에서, 습성에서, 본성에서, 본능에서,  악령에게서, 성령에게서, 이러기 때문에 욕심도 성령의 욕심과 육체의 욕심,  생각도 육체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 영의 생각.

이런데 “자세히” “자세히” 이 말은 세밀히라 그말이오. 자세히라 말은  세밀히 생각하라 그말이오. 세밀히 생각해. 얼렁뚱땅으로 생각지 말고 세밀히  생각해.

세밀히 생각하고저 하는 사람은 설교를 들을 때에도 그 세밀 그게 실상을 이룰려  하면 이 생각하는 세밀보다도 참 거기 대한, 거기 대한 실상의 세밀이  통과되어야 실행이 되어지는 것인데, 실행을 할려 하는 사람은 ‘집 지으라’  하면 ‘집을 지으라? 집을 어째 지으라 말이오?’ ‘아, 집 지으라. 집만 지으면  되지 않아?’ ‘그 어째 지으라 말이오? 칸이 몇 칸이며, 그런데 그 재료는  나무로 지으라 말이오, 뭘로 지으라 말이오? 그냥 집만 지으라 하면 어떻게  합니까?’ ‘나무로 지으라’ 이러니까 ‘나무로만 지으라면 어쩝니까? 나무로  지으면 그러면 몇 칸을 만들며 뭐 단층을 만듭니까 이층을 만듭니까?’ ‘이층  만들어라’ ‘아, 이층만 만들어라 하면 어쩝니까? 이층이면 이층에 방이 몇  칸인지 단층에 방이 몇 칸인지 그걸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이층에 두 칸 단층에 두 칸 지으라’ ‘이층에 두 칸 단층에 두 칸이라 하면  어찌 됩니까? 문은 없어도 됩니까 있어도 됩니까? 어째야 됩니까?’ ‘문은 이리  내고 저리 내고’ ‘아, 또 그러면 어쩝니까? 온돌로 해요 마루로 해요 뭐  다다미방으로 해요? 뭘 그 칸을 내요 어짜요?’ ‘허 참, 까다롭네. 그러면  다다미방으로 해라.’ ‘다다미방으로 하면 천정은 또 어쩝니까?’ ‘뭐 그러면  다 안 됐나?’ ‘그러면 천정은 그냥 내둬도 됩니까 천정을 합니까 지천을  합니까 뭘로 합니까? 페인트를 칠합니까? 또 페인트는 수성 페인트를 합니까  유성 페인트를 칠합니까?’ 일을, 정말로 지을려 하는 사람은 그 속에 세밀한  그게 있어야 될 모든 구비 요건이 안되면 안된다 그말이오.

이런데 제가 행하고저 하는 사람이 이 설교를 들으면 마구 기뻐 뛰고 즐거워할  건데 전부 말 구경만 하고 하는 그런 인간들이기 때문에 듣기가 싫고 지루하다  그말이오. 들으면 잠이 와. 네가 실행을 할려 하는 소원이 하나도 없는 거라.

설교를 들으면 설교에 ‘저거는 말만 듣고 팔아먹는 자다. 제가 실행하려고 한번  애써 봤다. 저 사람은 실행을 한 사람이다.’ 아는 사람은 환하게 알아. 환하게  알아요. 그래도, 서울에 있는 그 무슨 교회인지 나는 그 교회 이름을 잊어 버렸어. 이병규  목사님이 전도사로 있을 때에 송도교회 전도사로 있었는데 절 한번 집회를  청해서 일주간 내 가니까 한 마디도 못 알아들어. 멍 해 가지고 있어. 그 뒤에  그 교회서 저를 집회에 청했어. ‘이상하다. 이 사람이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무슨 집회를 청하노?’ 집회를 청하기 때문에 내가 거부를 했어.

거부를 하니까 ‘그때 내가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여기 와 가지고  김현봉 목사님에게 내가 3년을 배웠는데 3년을 배우고 보니까 그때 목사님 말한  것이 지금 이해가 됩니다. 이래서 왜 내가 이번에 강사로 청하는 게 아니라  김현봉 목사님에게 배우니까 그때 백조사님이 와서 가르친 거와 비슷한 것  같은데 같은가 틀린가 한번 새로 한번 재독하기 위해서 그래 강사로  청했습니다.’ 그래. 그래서 내가 갔다 그거요.

나는 그때 김현봉 목사 알지도 못하는데, 알지도 못하고 소문도 못 들었는데,  나는 그때에 머리 깎았는데 머리 깎으니까 그 파인 줄 알지만 알았는데 나는  그게 아니오. ○○교파하고 싸우다가 싸우다가, 나는 ○○교파에 애착심 가지고  아무래도 이걸 살려야지 이래서 안 되겠다 해서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내가  포기를 했어. ‘내가 이제 다시는 교파니 뭐이니 여기 대해서 내가 완전히 씻어  버리고 나는 돌아섰다. 내가 다시는 여기 대해서는 내가 말하지 않겠다.’ 하는,  완전히 이제는 교파의 애착심을 완전히 포기하고 돌아서기로 작정한,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작정한 그 작정하는, 그 작정하는 그날 내가 머리를 삭발했습니다.

머리를 깎았어. 다른 사람은 뭣 때문에 깎았는지 몰라.

그러니까 나를 김현봉 목사님 제자라고 했어. 나는 그분 나는 알지도 못하고  인사도 못한 사람이오. 그런데 말은 들었어. 저 의령인가 어디인가 와 가지고,  그때 환도할 때입니다. 6·25때 피난갈 때 거기 와서 피난해 가지고 얼마동안  같이 있는데 거기서 배우던 집사가 여기 무슨 집사고? 그 양복쟁이 한 사람 그  뭐이지? ○○○장로님, 유사 양복점인가? 뭐라 하노 창녕서 온 집사인가 있지  않아요? ○○○집사님 잘 알지. 뚱뚱한 여집사. ○○○씨 누이 이름이 뭐입니까?  그분이 신앙이 좋았습니다. 그분이 와서 말해. ‘그 목사님이 참 와서  가르치는데 은혜가 있더라.’ 그말을 한번 풍문에 들었어. 가니까 벌써 거기  배운 사람들이 목사가 근 백 명 돼요. 김현봉 목사님에게 배운 목사들이.

그때 목사들이 다 모여 가지고 하니까 그때는 귀가 뚫려서 알아들어.

알아들으면서 저거끼리 말하기를 ‘이제는 한국에 제일 우리를 바로 지도하는  선생님 두 분을 우리가 잡았다. 이만하면 우리가 한국 교회를 살릴 수가 있다.’  이러면서 하는 소리를 들었어.

그러면서 이병규 목사님이 나한테 자꾸 묻는 것이 서로 대조를 해서 틀렸는가  옳은가 이걸 물어. 이러니까 그 배운 것이 여기와 같고 거기는 여기와 같고  이러니까 이제 그분들이 홀빡 녹았더라 그거요.

이래도 얼마 되고 난 다음에는 명예심으로 그 사람이 그만 배운 자리 있지 않고  가르칠려 하는 자리 있어 가지고 나중에 가서 손을 딱 떼 버리고 다시는 내가  가르치는 일 하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분은 스승이 실은 없는  사람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 버리고 말았어.

여러분들 눈을 뜨고 보면 알아. 그 사람 말하는 것이면 10년 지나면 알고 20년  지나면 아는데, 그대로 되고 안 되는 것을 아는데, 현재는 현재로만 말려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지 긴 세월을 두고 보면 그 사람 언행심사가 어떤 것인지,  인간적인지, 권위있는지, 영원한 영원적인지 알 수가 있는 거라.

실행할려 하면, 자 이러니까, 지어 놨습니다. ‘지으라’ 이러니까 ‘또 그러면  어째 짓습니까?’ ‘이렇게 말해 줘도 몰라? 이 바보야, 집 짓지.’ ‘그러면  문은 유리문을 합니까 나무문을 합니까 무슨 문을 합니까?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게 있지 않습니까?’ ‘문?’ ‘예.’ ‘문은 또 무슨 문 해라.’ ‘또 그러면  또 어째 지어야 됩니까?’ ‘허 참, 답답이네. 그러면 되지 않느냐?’ ‘이래만  해 놓으면 됩니까? 밑에 깔개는 뭐 나무 장판을 합니까 뭐 비니루 장판을 합니까  종이 장판 합니까 어째야 됩니까? 또 밖에 도색을 합니까 안 합니까?’  이거 집이 다 될려고 하면 무엇이 있어야 되니까 이걸 다 물어야 되는데 ‘집만  지으라’ 하는 이것만 가지고 ‘아, 됐다.’ 집만 지으라 소리 듣고, ‘집만  지으라는 말 들으면 되지 뭐 지지하이 설계사라고 내놓고 자꾸 그래 쌓으니  복잡하게 귀찮게 한다. 집만 지으라는 말 한 마디면 되는데, 한 마디 가지고  되는데’ 이 말만 듣기 좋아하는 여러분들이라.

‘집만 지으라 하니까 쉽다. 아, 그러니까 환하게 알고 되겠는데’ 집을 짓는데  이리 저리 하는 것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러니까 실상으로 지을 사람들은  아니라 그말이오. 기차. 기가 차. 실상으로 지을 사람들은 아니라. 아무리 내가  가르친다 할지라도 이래 가르치면 그때 실상을 할려 하면 거튼거튼 해서 이것만  알면 거기서 혹 생각할 수 있다는 그런 말이 있는 것이지 실지로 실행을 할려  하면 이보다도 더 많은 복잡이 거기서 일어납니다.

이러니까 내나 갔다가 끄트머리, 10리까지는 잘 구별해 갔는데 그 끄트머리에  아직까지 갈래길이 많은데 그 끄트머리에서 탈선되어도 헛일이라. 당장 탈선되는  사람, 5리 가서 탈선되는 사람, 10리 가 탈선되는 사람, 10리 남겨 놓고  탈선되는 사람, 5리 남겨 놓고 탈선되는 사람, 5리 남겨 놓고 탈선되는 사람을  여기 사람은 바로 갔다고 야단지기지마는 그 앞에 사람이 보면 5리 가 가지고  탈선되어서 딴걸로 비켜졌다 말이오. 문에 들어가 버려야 돼. 거기까지는  갈래길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 “자세히” 세밀히, “자세히 주의하여” “주의하여” 주의는 뭐인데? 한  군데 뜻을 딱 기울이는 그것을 가지라 말이지, 주의라 말은. 어떻게? 무슨 주의?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딱 기울여 놓고 하나님의 뜻이냐 뜻 아니냐  여기에다가 눈을 딱 부릅뜨고 거기, 총 놓는 사람이 그 짐승에만 딱 겨누는  것처럼 거기만 딱 겨누고 여기서도 주의 뜻 저기서도 주의 뜻에, 주의 뜻에  전체를 기울여 가지고,  ‘세밀히’ 모든 세밀한 것에 거기서 주의 뜻을 찾아서 이래 해라. 이래야  신앙생활이 되어지는 것인데, 덩덕꿍이로, 요새 재독하는 것도 듣기 싫다  하는데, 재독하는 것도 자기가 들어서 들어서 해도 그것 가지고도 자기 속에  영감이 와야 되지 영감이 안 오면 자기 갈 길 모릅니다. 그것 가지고는, 그것  가지고 윤곽만 말하는 것이오, 윤곽만 말해. 윤곽만 말하는 것이지, 그게 윤곽  정도라. 실지에 행하려고 하면 수많은 인간 심리 수많은 악령의 작용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제직회 할 때에도 사람들의 심리를 다 환하게 봐서 모든 것이 다 나타나니  생명에 속한 것 있고 사망에 속한 것 있고, 참 이 성전 짓는 데에 참으로 성전  짓기를 진정 원하는 사람 있고, 또 무지하게 원하는 사람 있고, 거기서 자기  한번 나타내 볼려 하는 사람 있고, 애터지는 사람 있고, 애터지는 사람들도  있고, 너무 시간이 지루하니까 ‘이잉’ 찌걸거리며 하는 사람 있고,  얼마나 큰 일인데, 이 일에 대해서 자기의 있는 재산을 전부 다 털어 바친  사람도 있고, 없는 것을 자기가 지금 어떻게 빚을 내 가지고 일년이나 뭐 몇해  벌어 갚아도 갚을동 말동 하는 그렇게 기울인 큰 일인데, 중대한 일인데 액수는  적어도 사람의 실력에 따라서 이 일에서 중대한 일인데, 그러면 짜증나고 하는  그런 사람 있고, 애터지는 사람 있고, 여기 대해서 ‘백목사 자기가 맡고 싶은  이 일에 연극하는, 연극하고 있다.’ 웃는 사람도 있고, 맡고 싶은데 거기  대해서 좀 반발해 보면 싶은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거요.

세상에서는 으레 이게 세상입니다. 으레 그렇소. 다 그런 줄 알아요. 유엔  총회를 할 때에 자기 나라에 대한 것이 그때는 딱 결정이니까, 결정이, 이거냐  저거냐 결정이 딱 되게 됐는데 결정되면 자기 나라 절단나 버린다 말이오.

이러니까 뱀을 잡아 가지고 회의실에 휙 잡아 던져 버리니까 ‘아이구’ 하는  바람에 벌써 시간 다 돼 버렸어. 이러니까 그때 결의할 게 턱 지나가고 나니까,  그때 지나갔으니까 그 다음에 서로 지하공작을 해 가지고 의논도 하고 서로  거석도 하고, 거기까지는 미리 싸 놓지 못했는데 거기 다시 수단을 부릴 수 있다  말이오. 잘난 사람이오. 뱀 집어 던진 사람 잘난 사람이라. 으레 알지. ‘저놈이  저거 결의에 대해서 저거 절단날상바르니까 뱀 집어 던지는 것’ 알지. 알아도  수단꾼이요 능력있는 사람이라.

세상은 그렇게 전투를 해 나가지마는 교회라는 거는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하고  우리가 영생을 두고 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다 이거는 썩을 것인데 그분을 두고  이렇게 모시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그분에게 합격이 되느냐 버림을  당하느냐, 그분에게 ‘네 이놈, 내 일에 방해하는 놈’ 이게 되느냐, ‘내 일을  조롱하는 네 이놈’ 이게 되느냐 ‘나를 두려워하는 네다. 내 뜻에 합한 자다’  하는 것이, 영생이냐 멸망이냐 둘이 결정이 되기 때문에 난제라 말이오.

아무나따나 할 수가 없어.

이걸 모르는 목사들 꽉 찼습니다. 우리 진영에 이걸 모르기 때문에 저 망할 일  자꾸 하고 있어. 뭐 말해서 이 사람 틀려서 그걸 그 기회에 고쳐 주지 뒤에  은밀히 말할 기회가 없어. 일하는 사람이, 복잡한 사람이 그까짓 걸 은밀히 말할  기회 가질 여가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과 교제하기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이러니까 그저 듣기 안됐든지 뭐이든지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고쳐 주도록 이래  말했으면 나중에 듣고 그 사람이 좀 띵하이 해 가지고 있어도 ‘야 이 사람아’  목사는 ‘여보시오. 그거 그리 되면 망하는 것 아니겠소? 그 말을 해 주니까,  자기가 죽을 병이 들었는데, 죽을 병이 들었는데 뺨을 때리면서 살 주사를 놔  주든지 업어 주면서 살 주사를 놔 주든지 살 주사를 놓아서 생명 건졌으면  감사할 일이지 뺨을 때리면서 살 주사 놔 줬다고 섭섭하다 그래 가지고 됩니까?  그 말은 옳은 말인데 감사하십시오.’ 이래야 될 터인데.

딱 있다가 ‘됐다. 저 사람이 내가 그때 꾸지람 들을 때에 분하고 섭섭한 것처럼  저 사람도 분하고 섭섭할 테니까 이 기회에 저 사람을 내 사람 만들어야  되겠다’ 하고 딱 마치면, 또 나도 본다 말이오. ‘저게 이제 저거 데리고 갈  거다’ 하면, 내가 뒤에 사람을 뭐 두고 자세히 살펴 봐. 내가 그거 알기 위해서  살피라 한다 말이오. 딱 나오기를 ‘아무것이하고 둘이’ 여기 뭐  지하다방이라던가 저 대원호텔 밑에 있는 것, ‘그 지하다방으로 갔습니다.’  ‘갔지? 그게 갔지. 내나 마귀가 마귀 일 하지 뭘 하겠노?’ 그래 가지고  저거끼리 모아 가지고 죽이는 거라. 그 중에 하나가 ○목사라. ○○○목사.

하나는 ○○○목사요. 같이 따라 움직이던 하나는 ○○목사라.

이러다가 ○○목사는 일찍부터 참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자기는 ‘아무래도, 뭐  이래도 저래도 내가 여기는 떠나지는 못합니다.’ 이번에 서울에 말하는 것처럼,  뿌리가 깊으니까 위에 건드려 흔들리지만 그렇다 그말이오.

이게 논인장단이오? 여러분들 안 죽으라고 하는 말이오. 살리는 말이오. 그  사람들한테는 들으면 내가 주목받지. 내가 주먹 맞을 소리지. 주먹 맞을  소리지마는 여러분들 살리기 위해서 주먹 맞을 소리 하는 것이 나는 십자가라.

이것이 십자가인 것을 똑똑히 알아.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남한테 욕얻어  먹고 남한테 밉상스레 보이는 그것이 내가 상하고 죽어지는 십자가라. 주님이  기뻐하는 상급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 조금도 요동치를  않습니다.

바울이 ‘내가 너희들에게 유익할 말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다 했다.’  상대방에게 유익한 말을 다 하려면 여기서도 하면 기찰 일이지. 믿음 떨어지면  별 수 없습니다. 떨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떨어져요. 하나님이 올려서 올라간  것이 믿음 떨어지면 떨어집니다.

그래 그 다음에, 이러니까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것 참 생각이 이래 중요한데  생각을 제 마음대로, 생각을 자기 속에 안된 결심, 그거 의지라. 안된 결심을 해  놓고 ‘음, 나는 아무것이 하고는 대립이다. 언제든지 내가 복수해 본다.’  그것이 나쁜 뜻이오, 나쁜 뜻. 어디든지 그겁니다. 언제 무슨 말로 그게  생겼다는 그것도 알고 있어, 하나님의 사람들은.

잘못된 뜻, 생각, 생각 이놈에서 고칠려 해도 힘이 듭니다. 생각 이놈에서  고칠려 해도 힘이 들어요. 생각이 어디서 나옵니까? 욕심에서 나오기 때문에  욕심 그놈을 고쳐야 되지 욕심 그놈 고치지 아니하고, 욕심 그놈 고치지  아니하고 제가 생각만 고칠려고? 어림도 없습니다. 욕심을 안 고치고서야, 절  죽이고 지금 망쳐서, 저와 가정을 망칠 수 있는 그런 욕심이 가득 차 있는데  그냥 그 욕심 안 고치고 돼? 욕심 위에 뭐 있소? 예? 습성. 일찍부터 벌써 여러 해를 연습 연습해서 습성이  되어 가지고 있는데, 벌써 그게 본성이 거의 돼 가도록 습성이 되어 있는데 습성  안 고치고 일이 돼요? 안 됩니다. 습성을 고치고 그 다음에는 이제 벌써 자기는  그게 본능이 되어 가지고 있어. 본성이 되어 가지고 있어. 그 위에는 마귀가  자기를 붙들고 있어.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이라’  말했습니다. 집은 집인데, 주님이 지으라 하는 대로 집은 짓기는 지었는데  요소가 금과 은과 보석, 영원히 멸망받지 아니할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것이  아니라. 행동은 그렇지마는 속에 요소가 아니라 그말이오. 다시 말하기를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이것이 다 자기 인간 위에 구상된 것이지 반석, 영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이 기초가 되어 가지고 된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이 강단에서 못 살아나면 다른 데서는 못 살아납니다. 살아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공연한 말 아니오. 나도 내가 말하는 게 아니고 나에게 가르쳐 주는 말  해요. 내가 그분에게 배우기를 이제까지 연습해서 그분이 나를 붙들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교회에서 하는 것은 직접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나 거기서  얼마든지 복받을 수도 있고 얼마든지 화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제 오전에 ‘복과 화 둘이 있으니 모두 복받는 사람 되고 화받는 사람 하나도  되지 맙시다’ 하는 그 말이 어떤 자는 ‘아따, 예배당 잘 짓도록 협조해 달라고  꾀운다. 꾀운다. 꾀운다.’ 그거 지으면, 꾀우면 세상 이해를 말하는 것인데  뭐하려고? 그거 해서 뭐하려고? 자기 구원 망치고 뭐하려고? 또, ‘방해  못하도록 협박한다.’ 이 지경 되면, 이 지경 되면 그 사람 살아나기  어렵습니다. 이거 못난 사람 같으면 주먹으로 때리면, 매를 때려 가지고 고칠 수  있지마는 잘난 사람은 주먹으로 때려도 안 되지. 이거는 참 천국 가기가 약대가  바늘 구멍에 나가기보다도 더 어려울런지 몰라.

‘주의해라.’ 주의할 것 네 가지를 말했어. 사리 사욕만 취하면 안 돼.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의 일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는 자기 사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사리를 사욕을 붙일 수가 없어. 어디라고  거기가. 어디라고.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시요 나를 대속하신 분이신데, 거기는  사욕과 사리를 붙이면 안돼. 이걸 말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많아. 거기에서는  부정하면 안돼.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열심히 노력해야 됩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라’ 있는 것을 가지고 물질과 자기 몸을 다 드려서  해야 돼. 이번 성전 이것 짓는 것으로 서부교회가 영육이 푹 일어설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고, 일어서는 사람은 일어서고 망하는 사람은 망하고 그 두  가지가 날 터인데 망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꾸 고쳐서 옳은 것인 줄 알면 지체 말고 빨리 빨리 따라가야 돼.

어제 내게 전권을 맡겼는데 전권 맡긴 것은 뭐이냐? 서부교회 교인은 내가  얼마든지 잡아 부릴 수 있는 그런 전권 맡은 것 한가지라. ‘아무것이 사무가  바빠도 오늘은 와서 이것 좀 봐야 되겠다’ 하면 와서 봐야 된다 말이오.

그래야 자기네들이 전권 맡긴 그것을 자기네들이 지키는 것이지. 그러면 뭐  실력있고 솜씨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와 가지고 일하라 하는데 제가 일 안 하고  제가 빼고나리 쳐 그렇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터인데 뭐 헛된 걱정을 자꾸 해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실은 아무것도 없는 비오는 달밤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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