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두 길

 

1988. 1. 17. 주일새벽

 

본문: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오늘 공과의 제목은, ‘사람의 두 길’ 좁은 길과 넓은 길,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두 길.

서론에, 사람들 중에는 모든 것이 둘로 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한쪽만 보고 사는  사람들은 다 멸망합니다. 언제나 둘을 보고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만 취하여야  합니다.

본론에, 첫째, 물질계와 영계, 이제 것과 장래 것,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는  것과 죽는 것, 실패와 성공, 선한 것과 악한 것, 없어질 것과 영원히 있을 것,  근심과 기쁨, 큰 것과 작은 것, 둘째, 금생과 내세, 지옥과 천국, 영과 육, 세상 나라와 천국 나라, 세상 재판과  하나님의 재판, 인간 지식과 하나님 지식, 마귀와 하나님, 창조주와 피조물, 악한  동무와 선한 동무, 세째, 망하는 것과 흥하는 것, 원인과 결과, 주는 것과 받는 것, 사랑함과 미워함,  젊음과 늙음, 건강과 병, 욕과 칭찬, 상과 벌.

묻는 말, 첫째, 하나만 생각하고 살면 어찌 되느뇨? 멸망합니다. 답에, 멸망합니다.

둘째, 어떻게 살아야 하느뇨? 답에, 둘을 같이 보면서 선택하여 살아야 합니다.

세째, 하나님 가르침과 마귀 가르침이 어떠하뇨? 하나님은 둘을 보면서 살라고  가르치시고 마귀는 하나만 보고 살라고 가르칩니다.

이게 공과인데 반사들은 깨닫고 가르쳐야 되고 학생들에게는 그저 이렇게  가르쳐서 주입식으로 자기의 상상 부대에다가 또 기억 부대에다가, 먼저 읽어  주면서 따라 읽도록 이렇게 해서 그 속에 집어 넣기만 넣어 놓으면 제가 앞으로  자라가면서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이 복음이 그 사람을 구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가르칠 그 공과의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고 하니, 언제든지 우리 앞에는  둘이 있다는 것, 둘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를 살게 하는 길이요 하나는 죽게 하는  길이요, 하나는 성공케 하는 길이요 하나는 실패케 하는 길이라,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이요 하나는 마귀가 우리를 인도하는 길이라.

우리 앞에는 언제든지 무엇이나 둘이 있다. 반드시 쌍이 있으니까, 성경에는  반드시 짝이 있다. 짝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무엇을  보든지 하나만 볼 것이 아니고 둘을 봐야 됩니다. 무엇을 닥치든지 여게 대한 이  짝은 뭐이겠느냐 이렇게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많은 고생을 당하고 있을 때에는 고생의 반대되는 짝이  뭐이겠습니까? 평안이라 그말이오. ‘여게는 내가 이 고생당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평안을 취할 수 있고 이렇게 하면 고생을 취할 수 있다’ 하는 두 길을 찾아  가지고 ‘그러면 지금은 내가 이 고생을 당하고 있는데 고생을 내가 던지고 평안을  취해야 되겠느냐 오는 평안을 던지고 이 고생을 취해야 되겠느냐?’ 고 둘을  선택하는 데에서 자기는 망하고 흥하는 것은, 실패하고 성공하는 것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걸 몰라요. 자기가 살아가는 데 뭐, 대학자들도 모릅니다. 대학자들도  이 상대성이라 하면은 그 몇 가지는 알지마는서도 내나 그것도 하나밖에는  모르는 셈이야. 자기가 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 이런 것 저런 것, ‘이것의 반대는  뭐이며 이것의 상대는 무엇이냐? 여게는 두 길이 뭐이냐?’ 이렇게 해도 크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피조물, 피조물 이것 가운데서 이것 저것만 자꾸  말하고 있지 그 상대가 되는 것은, ‘모든 존재가 있다’ 할 때에는, 모든 존재가 있다 할 때에는 뭐이 상대가 되느냐  하면은 이 존재를 있게 한 창조주가 있다 그것을 알아야 될 터인데, 모든 존재의  이 존재를 있게 한 그 창조주가 있다 하는 이것을 알아야 될 터인데 피조물만  보면서는 창조주를 보지는 못합니다.

또, 모두가 다 현재에 나타나 보이고 있는 이 현상, 나타나고 있는 이 현상들만  보고 선택할 줄 알지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을 몰라.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이 지식을 일방적 지식에서 전체적인  지식으로 우리를 새롭게 해 줄라고 애를 씁니다.

사람들은 말을 하기는 해요. 죽는다는 걸 말은 하지마는서도 사는 것만 알고 있지  죽는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별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시간까지 살  준비만 하고 살라고만 애를 쓰지 자기가 죽을 준비를 한다든지 또 죽어 볼라고는  하지를 안해. 그러니까 살라고만 애를 쓰지, 살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다 죽고 다  망해요. 자기는 죽을 것을 알고 죽을 연습을 하는 사람은 살아요. 죽을 연습하는  사람은 살고 살라고 하는 연습만 하는 사람은 죽어.

이래서, 뭣이든지 닥치면 닥치는 거기에서 이것에 상대는 뭐이냐? 이것에  대해서는 둘이 있다 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하나는 뭣이겠느냐? 그것을 찾아  내도록 그 면에 눈을 띄워 주는 것이 반사 여러분들이 하는 일입니다.

세상은 이 쌍방을 모르도록 합니다. 마지막 그 문답에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마귀  가르침이 뭐 어떠뇨?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 둘로 되어 있기 때문에 네가 둘을  한꺼번에 보고 ‘이때는 이걸 택해야 되겠나 저걸 택해야 되겠나?’ 고생의 반대는  평안인데 사람들은 평안만 보기 때문에 평안만 취할라 하다가 망한다 그말이오.

이 고생과 평안이 있는데 이때는 평안을 취하나 고생을 취하나? 이때는 고생을  취해야 앞으로 평안이 오겠다. 이때는 내가 이 고생을 버리고 평안을 취해야  되겠다. 이거 선택 바로 하는 것이 바로 인간 성공, 금생 성공 내세 성공입니다.

이것 바로 택하지 못하면 실패해요.

이러니까, 하나님은 둘을 같이 보면서 거게서 선택해 가지고 살아라. 네가 둘을  같이 보면서 이때는 이걸 택해서 내가 이걸 해야 되겠느냐 저걸 택해서 저걸  해야 되겠느냐? 둘 중에 하나 너는 하게 마련이니까 어느 걸 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네가 둘을 같이 보면서 잘 생각하고 성경이 뭐라고 너에게 말씀해 줬는지  잘 생각하고 깨달아 가지고서 하나를 택해서 살아라 이라고, 마귀란 놈은 둘을 못 보게 합니다. 어짜든지 하나만 보고 빠져 죽도록 만듭니다.

하나만 보고 빠져 죽도록 해요. 이 작업을 마귀가 언제부터 했느냐 하면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했습니다.

이래서, 에덴 동산에서도 우리 인류 시조가 그 마귀가 선악과만 딱 보도록 고만  거게만 주시하고 딴데로 옮기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때에 선악과 보지 안하고  다른 과실을 보면은 다른 과실도 다 그렇게 인간에게 지혜도 주고 생명도 주고  힘도 주고 맛도 있고 다 그런 것인데 동산에 꽉 찼는데 하필 선악과 고것만 볼  게 뭐 있겠습니까? 사람이 둘을 보지 안하고 하나만 보게 될 때에는 그것은 벌써  마귀에게 꼬여서 붙들려 있다 하는 것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그만 절망을 만났을 때에 자꾸 마귀는 절망에서 자꾸  절망으로 들어가도록 자꾸 그랍니다. 절망에서는 상대가 뭐입니까? 거게서 소망을  찾아야 됩니다. 절망에서 소망을 찾으면 됩니다.

그러면, 소망은 좋으냐? 소망은 또 소망에서 소망만 보고 사는 사람은 또  실패합니다. 소망을 보면서 ‘절망이 있다’ 소망이 있으면 소망을 보고 살면서  ‘절망이 있다’ ‘내가 이러면 이렇게 이 소망하는 것을 바로 소망하고 있으니까 내가 여게서 이  소망을 잘못하면 예사로 여기다가는 이 소망 뺏겨 버리고 절망에 내가 도달하게  될 것이다. ’ 소망에서 절망을 보아서 소망을 놓지 안하도록 하고, 언제든지  쌍방을 보는 그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은 생명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요 생명  길을 택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넓은 길을 택하고 좁은 길을 택하는 사람이 아주  희귀합니다.

이러니까, 반드시 자기에게는 범사가 모든 물건이 또 모든 사람이 반드시 두  종류가 있는데 거게서 세상만을 아는 사람들은 다 한 길만 택해 가지고서 망하게  됩니다. 세상에 제가 학박사라도, 세상에 뭐 민족을 다스리는 대정권자라도 그  사람은 하나만 보지 둘은 못 봅니다. 하나만 보지 둘은 못 보요. 다만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만 둘을 보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자유중국에서는 머리되는 사람이 죽었지마는, 그 사람은 잘난  사람이오. 잘난 사람입니다. 저 중공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잘난 사람이오. 잘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은 하나만 보고 살았다. 그 사람은 둘을 보지 못하고 하나만  보고 살았다. 그말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그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어째  하나만? 그 사람 오만 거 다 쌍방을 다 알고 공부도 많이 했고 박식한 사람인데  어째 하나만 보고 살아? 하나만 보고 살다니, 뭘 하나만 보고 살았어? 한번 알아  봐요. 저 ○ 선생 한번 알아 봐요.

그 사람들은 피조물과 창조주를 좀 말했어. 말했는데 그 사람은 지옥과 천국을  몰랐어. 지옥과 천국을 몰랐어. 모른 것 많애. 그래 피조물과 창조주도 이 둘을  똑똑히 몰랐어. 금생과 영원한 내세가 있는데 그거 모르고 이 금생만 보고  살았어.

이러기 때문에, 택함받고 중생받지 안한 사람, 택함을 받고 중생한 그 사람 외에  사람은 뭐 천이나 만이나 억만이나,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명철한 사람이나 둔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전부, 불택자, 중생되지 못한 사람 그 사람은 종교를 어떤 종교 뭐 창설했다,  석가모니도 하나만 보고 둘 보지 못했어. 그 사람은 피조물만 봤지 창조주를  발견하지를 못했어. 그러기 때문에 그 한 모든 것이 다 사망 속에 있는 것이요  하나만 본 것이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늘 시간을 통해서, 그래서 뭐 순서가 없는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앞에 갈 것 뒤에 가고 뒤에 갈 것 앞에 갔고 이렇게 이래 여러  가지로 이래 한 것은 학생들에게 어짜든지 ‘둘이 있다. 우리 앞에는 둘이 있다.

둘이 있으니까 둘을 같이 보면서 거게서 선택해 가지고 하나는 버리고 하나를  취해서 살아야 되겠다. ’ 또, 어떨 때는 평안을 취해야 되고 고통을 취해야 되겠다. 어떨 때는 존귀를  취해야 되고 어떨 때는 비천을 취해야 되겠다. 이거 다 취할 그 시기가 따로 있고  종류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 학생들에게 무엇이든지 둘이 있다는 그걸 눈을 띄워  주라 말이오.

마귀란 놈은 자꾸 하나뿐이라고 하나만 보라고 눈을 띄워. 이러기 때문에 천하에  참된 기독자 아닌 자는 다 이 현상 세계에서 살 것만 보고서 살 준비만 하고 살  데 대해서만 의욕을 가지고 살 데 대해서만 모든 것을 구비하지 삶의 반대는  죽음인데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 없고 죽음에 대해서는 어쨌든가 피할라고만  애를 쓰지, 죽음에 대해서는 피할라고만 애를 쓰지 죽음을 취하는 일 없다  그말이오.

삶보다도, 사는 것보다도 죽는 걸 취하는 게 더 귀할 때 있고 살 준비보다도 죽을  준비가 더 귀한데, 살 준비 이 모든 살 준비가 뭐이냐? 죽을 준비라야 돼. 살  준비는 죽을 준비라야 돼. 살 준비는 죽을 준비. 죽을 준비는 또 뭐이라요, 또?  죽을 준비는 무슨 준비라야 돼요? 그거 모를 거야 아마. 죽을 준비는 또 살  준비라. 지금 뭣 때문에 순교를 자취하느냐? 그건 살 준비라. 이렇게 순교자들은  영원히 잘 살기 위해서 순교하는 거라.

잘 살다니?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고 주님 앞에 떳떳하게  사랑을 받고 은혜를 감사하면서 사은의 영생을 할라고 그래 순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둘 있다는 이걸 깨닫게 하는 이 눈을 띄워 주는 것이 완전히 마귀의  미혹에서 구출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반사들이 이걸 알고 반사들도 지금 잘 깨닫지를 못해요. 이러나 여게  있는 공과를 자꾸 외워 가지고 가르치든지 또 외웠는데 똑똑히 못 외우거들랑  보고 가르쳐도 정확하게 이거 하나씩 하나씩 이래 또박또박 읽어서 듣겨서 그  아이들에게 눈을 띄워 주라 말이오.

이것도 하나님 앞에 기도해 가지고서 많은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이 알려 주셔서  안 거라. 주일학생들에게 무엇을 지금 가르치고 갈까? 학생들에게 이 눈을 띄워  줘야 된다.

마귀란 놈은 하나만 보도록 해 가지고 사람을 박사도 죽이고 왕도 죽이고 부자도  죽이고 철인도 죽이고 모든 이종교가도 다 죽인다. 하나만 보도록 해 가지고 다  죽인다. 마귀가 죽이는 방편의 그물은 뭐이냐? 일방으로만 치우쳐 가지고 죽도록  했다. ‘너희들은 모두 다 이리저리 치우쳐서 곁길로 가서 다 무익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말은 뭐이냐 하면은 이리 치우쳐 가지고 쌍방을 못 보고 일방만 보고  살았다 그말이오. 쌍방을 못 보고 일방만 보고 살기 때문에 멸망한다 그말입니다.

마귀란 놈은 일방적 지식을 가지도록 하나만 보고 살도록 하는 것이 마귀가  사람을 죽인 그 유일한 방편이다. 인류 시조를 죽일 때에도 하나만 보고 죽이도록  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사람이 아무리 명철한 사람이라도 좋은 거라도 하나만  보면 그때 그 사람은 망하고 맙니다.

자기가 공부하는 그런 데도, 공부하면 자꾸 일류대학에나 가야 되겠다고 자꾸  그렇게만 지금 하고 있는데 그 지식을 배울 때에는 ‘일류대학에 가야 되겠다. 또  아무래도 대학은 가야 되겠다. ’ 이러니까, 지식에 대해서는 뭐입니까? 지식에 대해서는 뭐이 두 길입니까? 지식에  대해서는 두 길이 뭐이요? 말해 봐. 왜 말 못 해? 지식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마귀  지식이 있어. 하나님의 지식과 마귀 지식. 그걸 못 보고 사는 사람은 아는 것만치  저는 깊이 망해 버리고 말아요.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이라 하는데 실은 인간 지식이라 하는 것은 너무 그래  말하면 성내고 달라들까 싶어 그렇지 하나님 지식과 마귀 지식 둘뿐이라.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신구약 성경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이요  인간 대가리서 내놓은 거는 전부 마귀 그놈에게서 다 나왔어. 하나님의 지식을  빼놓으면 전부 인간 지식입니다.

이러니까, 인간 지식을 공부하면서 이 지식이 다가 아니라 이 지식의 반대로  하나님의 지식이 있다. 하나님의 지식을 생각하면서 인간 지식 공부하고 인간  지식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지식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더 똑똑히 알기  위해서 인간 지식 공부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공부하면서 인간 지식에게 유혹받지  안하고 인간 지식을 잘 이용해서 ‘지혜는 배암같이 하라’ 배암은 마귀를 가리킨  거라.

이러니까, 이래서 쌍방을 알도록 하는 이 눈을 띄워 줘라. 마귀란 놈이 사람을  일방적으로 하나만 보도록 하는 이 눈을 감겨 가지고 죽이는 것인데 그걸  치료하는 데는 쌍방을 가르쳐 줘야 된다. 여기 사람들이 무슨 뭐이든지 그 아이가  어데로 치우쳐 가지고서 그 사람이 무슨 병이 들어서 지금 절단 나고 있느냐  하는 것을 봐서 그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은 어떤 사람이든지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은 뭐이냐? 두 길을 그에게 알려 주는 것이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정신 이상자도 그렇고 똑똑한 사람도 그렇고, 그 사람이 어떤 시험에 빠졌다든지  했으면은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게 좋을 거라.

해방 직후에 이 모두 다 안 믿는 이방 사람들은 ‘아, 기독교가 그거 제일 그래도  왜정 말년에 보니까 기독교가 제일 정조를 지키고 인격의 지조를 가지고 모두 다  참 애국자이고 다 그들이 민족주의자들이라. 이러니까 해방하고 난 다음에는  그분들에게 정권을 줘야 되겠다. ’ 다 이렇게 해서 한창 그때 기독교가, 기독교 뭐  장로들 목사 이분들이 세상에 좋은 자리는 다 차지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뭐 그저  정신없이 마구 세상을 거머잡았습니다.

그럴 때에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은 ‘너는 일방적 지식으로 마귀에게 홀렸다’ 왜?  `너 지금 사는 것만 생각하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죽는다는 것 모르나? 오늘  죽으면 지금 너 뭐하는 것이가? 너는 이 세상만 보고 천국을 보지 못하느냐?  너는 지금 살고 있는 것만 보고 죽는 걸 보지 못하느냐? 너는 죽을 것만  생각하고 부활을 보지 못하느냐?’ 이렇게 이 쌍방 지식을 갖다 대 가지고서 그  사람에게 눈을 띄워 주면 다 그 사람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걸 보여 주지  못해서 그렇지.

그런고로, 오늘은 이 뜻을, 여러분들은 좀 들었었기 때문에 알지마는서도 이걸  가지고 본문대로 읽어 줘요, 그저. 물질계와 영계, 이거 쉬운 말 같지마는서도 이  세상에 있는 공산주의 치하에 있는 사람들의 그 박사는 전부 다 모아도 이거  무슨 말인지 몰라요. 물질계와 영계, 그 사람들 입으로 말하지마는 영계를 몰라요.

영계를 믿으면 그런 무식한 무지한 짓을 하지 안해.

물질계와 영계, 이제 것과 장래 것,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는 것과  죽는 것, 실패와 성공, 선한 것과 악한 것, 없어질 것과 영원히 있을 것, 근심과  기쁨, 큰 것과 작은 것, 금생과 내세, 지옥과 천국, 영과 육, 세상 나라와 천국,  세상 재판과 하나님의 재판, 인간 지식과 하나님 지식, 마귀와 하나님, 창조주와  피조물, 악한 동무와 선한 동무, 망하는 것과 흥하는 것, 원인과 결과, 주는 것과  받는 것, 사랑함과 미워함, 젊음과 늙음, 건강과 병, 욕과 칭찬, 상과 벌, 이런 걸로 가지고 자꾸 이래 두 가지를 자꾸 이래 말해서 그들에게 주입식으로  넣어 주면 이 지식이 그 속에 들어 가지고 마귀란 놈이 뒤에 꼬울 때에 일방적  지식으로 눈을 가뤄 가지고 하나만 보고 살도록 하는 마귀가 멸망시키는 그  그물에 걸렸다가도 그걸 척 닥쳐 가지고 조금 그것이 실패의 시작만 돼도 ‘아,  내가 둘을 모르고 여기서 지금 잘못 끌려 왔구나. ’ 이것을 둘을 생각하면 즉시  살아나요.

그래서 문답에, 하나만 생각하고 살면 어찌 되느뇨? 멸망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뇨? 둘을 같이 보면서 선택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가르침과 마귀 가르침이 어떠하뇨? 하나님은 둘을 보면서 살라고  가르치시고 마귀는 하나만 보고 살라고 가르칩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렇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도 돈 주는 사람이, 나는 예수  믿기 전에 돈놀이를 했는데, 돈놀이 해서 돈 많이 벌었어. 그래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돈놀이 해 놓은 돈 다 그거 뭐 전부 다 없애버렸어. 한 푼도 없이 다  그만 다 줘 버리고 내던져 버리고 없애버렸어.

이랬는데, 돈 놀이할 때에 돈 한 푼도 떼이지를 안했어요. 떼이지 안한 그거는  떼이지 안한 그 비결 중에 하나는 그거였어. 여기도 돈 놀이 하는 사람 귀가  쫑긋할 거라. 돈 얻으러 왔을 때에 그 사람이 ‘그래 뭐할라 하느냐?’ `이런데'  `그러면 그게 뭐 하면 어찌 되는데?’ 이러면 ‘이렇고 이렇고 이라면 이거 하면  이리 되고 이리 되고 이리 되고’ 막 성공할 반석 같은 성공할 그런 일을 쭈욱  늘어 놓습니다. 그러면 좀 염려를 가집니다. 이 사람이 이거 실패할 사람이다.

‘그러면 그게 대해서 혹 위험성은 없느냐?’ ‘뭐 위험성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 장사해서 백에 백이 망하겠소, 백에 혹 하나라도 성공이 있겠소? 저 ○○○  장로님 한번 대답해 봐요. 백에 백이 다 망하겠어 백에 하나라도 성공하는 게  있겠어? 성공하는 건 하나도 없어.

내가 지금 돈이 없다 이란다 말이오. 줄 돈이 없다. 그러며 속으로는 뭐이냐  하면은 거짓말할 수야, 그때는 안 믿어도 거짓말할 수 없지마는서도 ‘너 빌려 줄  돈은 없다. 내 버리면 내 버리지 너 돈 빌려 줘 가지고서 나 돈 떼이고 너 나쁜  사람 만들고 망치고 할 수가 있겠느냐?’ 아예 안 줍니다.

그래 이거 떡 만나 가지고서 물어 보니까 ‘무슨 성공 있는데?’ 이런 성공 있고  저런데, 이런 성공이 있는데 거게는 이런 애로가 있고 이런 애로는 이렇게  방지하고 다 뭐뭐 전부 쌍방을 보고서 싹 다 알면은 그 사람 돈 없어도 살아요,  그만. 성공해요. 돈 줘 놓으면 나중에 안 받을라 해도 자꾸 이자 총총 갖다 주고  이래 거석해. 이러니까 돈을 떼여 본 일이 없어.

그때 나는 안 믿을 때에도 그러면 그 쌍방 지식을 가졌는데 그 쌍방 지식은 크게  말하면 일방 지식입니까 쌍방 지식입니까? 일방 지식이요 쌍방 지식이요, 넓게  말하면? 일방 지식이라. 일방 지식이기 때문에 일방 지식에서 돈벌어 가지고서 한  푼도 안 남기고 다 집어 던져 버렸지. 그거 멸망하는 거거든.

이러니까 무엇이든지, 이것은 여러분들이 좀 깨닫게 하도록 하는 말인데.

무엇이든지 하나만 보고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은 실패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정권을 잡았을지라도 정권 잡아 가지고 있는 그것만 보고 있으면 나중에 가서 그  사람 위험합니다. 하야할 것도 생각해야 되지.

요새 대통령 선거했는데 대통령 선거할 때도 대통령에 지금 당선될 그것만 보고  하는 사람은 일방이라. 낙선될 것도 생각하고 지금 당선할라고 당선 운동을 하는  이때도 보면서 당선은 내가 필요없는 그런 때도 보면서 해야 실수가 없어.

일방적으로 살기 때문에 전부 그 운동한 것이 눈 좀 뜨고 본 사람들은 전부  실수투성이라. 실수투성이. 그 사람들은 정권을 맡길 만한 자격이 없어. 봐야  쌍방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를 맡길 수가 없어.

이러니까, 사람들이 전부 하나만 보고 일방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다 망하고  있어. 이러니까 일방 지식에서 쌍방을 보라 하는 이 눈을 좀 띄워 주면은,  저희들이 모르지마는 그거 주입시켜 놓으면은 나중에 자라고 난 다음에 때가  되면 그 지식이 나와서 그를 알려 줘요.

이러니까, 나중에 가서는 제가 배운 게 아니고 제가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마는서도  우리가 가르쳐 놓은 그것이 그 속에서 생명으로 역사해 가지고 살게 하는 것이라  말이오. 언제든지 둘을 봐요. 그러면, 둘을 보고 살아라. 반드시 짝이 없는 것이  없다. 성경에 ‘짝 없는 것이 없다. 하나님이 모았기 때문에 짝 없는 것이 없다. ’  이랬어.

이러니까, 무엇이든지 짝이 있는 것이니 이것의 짝은 뭐이냐? 이 두 짝이  있으니까 지금 내가 취하는 것은 이거 취하고 사는데 이게 좋으냐 저게 좋으냐?  어떨 때는 좋을 걸 취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나쁜 것을 잡았을 때도 있다  말이오. 나쁜 걸 잡았을 때는 그 나쁜 것을 버려야 될 거라 말이오. 마귀는  언제든지 현재에 좋은 것을 취하게 합니다. 이러니까 다 마귀에게 끌려가지.

하나님은 현재에 좋은 걸 취할 게 아니라 장래에 좋은 걸 취해라. 결과에 좋은 걸  취해라. 결말에 좋은 걸 취해라. 자꾸 그것을 말씀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 교인들도 보면은 그 일방 지식으로 가지고 있어서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은 고 사람을 가리켜서 이 사람이 선악과 먹었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선악과  그거는 마귀가 줘 선악과 먹고 나니까 천상 천하에 인간에게 제일 해독은  선악과인데 하, 마귀 그놈이 들어가 놓으니까 천상 천하에 제게는 선악과가 제일  유익하다고 보지 안했습니까? 마귀 들어오면 이렇게 홱 뒤비져. 이러니까 하나만  보게 돼 버려.

이러니까, 요 공과를 그저 주입식으로 자꾸 이래서 읽어 듣기면, 그 아이들  때에는 그때 기억식이라. 뭐이든지 받아들이는 기억식이라. 기억식이기 때문에  하면 속에 박혀 들어가. 그뭐 이해를 몰라요. 받아서 자꾸 재료만 지금, 재료  수집하는 시기가 언제까지냐 하면은 한 스물 댓 살 먹을 때까지는 재료 수집하는  시기입니다. 그때는 뭐 들어오면 기억 다 돼요. 재료만 수집하고 스물 다섯 살이  떡일반 통계를 보면은스물 다섯 살이 떡 되면은 그때부터 이제 수입된 그  재료를 가지고서 분석 모두 화합 이래 가지고서 거게서 연구가로 지금 출발하게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둘이 있으니까 둘을 보고 살아라. 하나만 보고 살지 말고  둘을 보고 살아라. 요것을 여러분들이 깨닫고 느끼고 학생들에게 주면은  학생들도, 그래 가지고 준 것은, 마음에 심은 것, 제가 느낀 게 아니라도. 느낀  선생이 그에게 요 지식을 넣어 줄 때에는 고 지식이 들어갈 때에 느끼는 것까지  같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 학생은 지금은 이해를 못 해도 그 속에 느낌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그 때가 되면은 깨달아서 느끼는 것까지 돼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다른 거와 달라. 성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반사  선생이 가르친 그대로 학생들이 돼집니다. 이래서 요한계시 1장에 일곱 촛대와  일곱 별의 비밀이라 이렇게 말했어. 일곱 별은 지도자이고 촛대는 모두 지도를  받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데, 그러면, 가르친 자의 형상 배운 자의  형상이 꼭 같애. 고대로 돼져요. 영감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반사 선생님을 따라서 학생들은 고대로 됩니다. 이러니까 반사  선생님이 어떤 선생님인지 잘 모르겠다 말이오. 모르겠으면 그 학생을 보면은 ‘저  반사 선생님 어떻다’ 그말이오. 내나 반사 선생님의 표시하고 있는 그 표시판이  뭐이요? 반사 선생의 표시판이 뭐이야? 학생이라. 알겠어? 반사 선생이  세모잡이면 학생이 세모잡이라. 반사 선생이 네모잡이면 학생이 네모잡이고. 반사  선생이 둥글면 학생이 둥글어. 반사 선생이 추저운 거는 학생이 추져. 그러니까  그 학생을 보아서 그 반사 선생을 알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요게 대한 지식을 확고히 가지고 ‘아, 인간은  일방적으로 치우쳐 다 망한다. ’ ‘이리저리 치우쳐서 곁길을 가서 다 망하고  말았다 한 사람도 망하지 안한 사람이 없다’ 하는 것을 로마서에 말씀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요 둘이 있다는 요걸 그저 학생들에게 인식시켜서 하나만 보고 사는  세상에서 쌍방이 있다는 요게 대해서 눈을 띄워서 둘을 볼 줄 아는 요런 사람을  만들면 그만 성공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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