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알맹이


선지자선교회 1982년 4월 27일 화새

 

본문 : 고전 13:4-13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 속에 사랑이 없는 온갖 능한 말, 또 사랑이 그 속에 없는 온갖 신기한 지식,  기술, 또 그 속에 사랑이 없는 온갖 율법적인 믿음의 행위, 그 속에 사랑이 없는  온갖 친절, 봉사, 희생, 화친 이런 것은 껍데기로 보면 좋은 것 같지마는 실은  아무 유익없는 것, 또 아무 소용도 없는 것, 또 죽은 것, 죽은 것이요 소용없는  것이요 유익 없는 것입니다.

 이 외모가 아주 귀하지마는 그 속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온 사랑이 있고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온  사랑이 있으니,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온 사랑은 가장 독소가 많은 죽이는  사랑이라. 전 인류를 이 사랑으로 죽였고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온 사랑은  생명과 평강이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이니 이 사랑으로 먼저 택자들이 살았고 그  다음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다 살아나는 사랑입니다.

 이러기에 아름다운 이 외모 속에, 아름다운 말의 외모, 지식의 외모, 행위의  외모, 봉사와 희생의 외모 이 속에 첫째 아담의 죽은 사랑이 그 속에 있으면  이는 참, 범이 기어 다녀도 해독을 끼치는데 범이 날개를 가졌으면 해독을  얼마나 끼칠 것입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이 아름다운 외모 속에 인간의 사랑이 그 속에 들어 있으면  이는 수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외모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들어 있으면 이는 수많은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고 산 자를 지극히  존귀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 아담의 사랑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성경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이 가진 사랑이 아니고 하는 걸 말한 것입니다.

「우려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는 말은 우리 인간이 가진 사랑이  아니라 그말이오. 첫째 아담의 사랑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그 사랑이 뭐이냐. 「독생자를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의 제물로 주셨다」 하는 그말은 대형, 대행, 대화친의 생명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5장에 보면 사랑의 해석을 해 왔는데,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간에게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계명 지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둘은 떨어지지를 못한다고  요한일서 5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것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여기에서 말씀하지마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그 중간이  끊어져서 초절이 되어 가지고 있어. 이 인간 사랑은 이해가 되고 좋은 줄로 아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 사랑은 자기 욕심의 최고의 욕심입니다. 자기 욕심의 최고의 욕심이기  때문에 그것이야 욕심으로 죽은, 원죄로 죽은 인간이 욕심이 강해지면 원죄가 더  커지지요. 그것은 필연한 것입니다. 원죄는 쉽게 말하면 자기 욕심이  원죄입니다. 자기중심 자기 위주가 원죄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사랑은 원죄의  가장 강한 요소요 원죄의 근본 행위요.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지마는  이것은 참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사죄가 온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칭의가  온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과 화친된 이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요새 보면 모두 조금만 저거끼리 계급이 안 맞다고, 자격이 맞지 않다고,  이혼하는 것 보면 전부 자격이 안 맞다고 또 서로 친구간이라 하던 것이  벌어지는 것 보면 하나가 조금 지식이든지 직장이든지 그런 것이 좀 나아지면  지위가 안 맞다고, 뭐 인간과 인간 사이 그까짓 것이 차이가 있어 봤자 서숙,  좁살 몇 개, 좁살내끼 한 내끼 차이 정도에 있는데도 그거 차이 있다고 사람들이  친근하지 않고 이렇게 배척하고 또 자기 성미에 안 맞다고, 성미에 안 맞는  사람을 그것을 살려 볼려고 암만해도 안됩니다.

 인간은 이런데 하나님과 우리와, 타락한 우리와는 성미도 이것은 뭐 안 맞는  것이 억억만도 더 안 맞습니다. 계급도 그러합니다. 지능도 그러하요. 욕망도  그러하요. 질도 그러해요. 이런데 당신이 우리와 이렇게 한덩어리 되는 화친한  이 사랑, 이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리 친해도 빛무리를, 서로 요리집에 다니면서 뭐 너 아니면 나 죽는다고  떠들어 쌓던 것들이 빛무리만 좀 하면 당장에 멱자비를 놓고 싸우고 평생 원수가  되어 가지고 헐고 헐고 하는데, 이분은 우리의 수많은 잘못된 저질러 놓은 것을  다 대신 감당했소. 이것이 사랑이오   다른 사람을 조그매만 봉사해서 도와도 야단인데 하나님 앞에 우리에 대한 지공  지성의 율법의 요구를 대신 행했으니까 얼마나 참 거석하겠습니까. 이래도 교만  부리지 않길, 이래도 자세 부리지 않고 우리에게 대해서 긍휼한 이 사랑이라고  하나님의 사랑,  그런데 이 사랑이 없는 아름다운 외모, 말, 지식, 믿음, 봉사, 희생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유익이 없소. 죽은 것들이오. 이 진리를 굳게 잡아야  됩니다. 이걸 알면 세상에 미혹을 받지 않을 것인데 이것 없는 인간들,  언제 히브리어 박사한테 배워 가지고 와 가지고 말하기를,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가 원어인데, 히브리어 박사들은, 히브리어 어학박사들은 구약성경은 안  믿는 박사들이라도 원어 히브리어 모르는 목사들보다 훨씬 구약성경은 낫게 알고  있다, 이것을 공공연하게 신학교 강단에서 외쳤고 이 외치는 소리에 얼마나  감화를 받았든지 그 제자가 와 가지고 이것을 주장합디다.

 그래 안 그렇다고 내가 말을 해도 쌔우기 때문에 고함을 질러버렸소. 만일 그때  안 들으면 내가 호통을 치고 교수를 내가 당장 그 따위 행세하지 말라고 내가  전한다고, 그 행세 안 내버리면 저주받는다고 내가 그렇게 말할까 하고 있는데  그 말 뜨끔 그치고 중단해서 말았어.

 그것이 뭐이냐. 그 속에, 나는 히브리어 박사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목사요  히브리어 박사기 때문에 구약성경은 나 이상 아는 사람이 없다 하는 그 자랑이  속에 들어서 내나 그 예수와 진리와 모든 어학 공부한 걸 전부 저를 위해서  이용해 먹는 것이니까, 주의 피도 이용되고 주님의 십자가도 이용되고 하나님도  이용되고 신구약 성경도 이용되는 이 무서운 죄를 지니고 있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참람한 말을 하는 것이라 그것이오.

 이 아름다운 참 좋은 외모, 말, 또 지식, 믿음, 희생, 얼마나 좋지마는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다 무익하다.

그 사랑이 뭐인가. 그 사랑은 사죄, 칭의, 화친의 생명입니다. 이 세 가지가  자기 속에 약동해 가지고 이것이 나와야 되지 이것 없이 나온 그것은 다 사망의  것들입니다.

 그 다음에 4절로부터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 이 참는 것, 참는다 말은 계속한다 말인데, 참는다는 말은 옳은 것을  계속하는 걸 말합니다.

 이것도 여기에 어제 말한 것이 몇가지지요. 열다섯 가지. 열다섯 가지인데,  열다섯 가지가 아주 좋은 것입니다마는 열다섯 가지도 땅에 속한 것이 있고  하늘에 속한 것 있고 두 가지 있기 때문에 땅에 속한 것은 해독이 큽니다.

 왜. 이것이 그물이 큽니다. 땅에 속한 것은 이 그물로 훌트리면 어리석은  사람들이 좋다고 이가 성자다, 이가 성녀다, 이가 의인이다, 이가 성현이다 이래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훌트려서 멸망시킨 것이 이종교 창설자들이요, 모든  종교들이요, 석가모니요.

 석가모니가 이자 중에 한 자요. 제가 아무리 의롭게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하나님의 택함을 입지 않은 자, 택함 속에서 나지 않은 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히지 않으면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진리와  성령과 피로 중생되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런 것도  둘이 있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사랑은」 그말은 속에 사랑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이런 것은  나온다 그말이오. 속에 깜깜한데 등불을, 촛불을 딱 켜가지고 등 안에 딱  끼우니까 그 등이 환해집니다. 불을 켜면 등이 환하고 불 꺼지면 새까맣습니다.

 이와같이 속에 사랑이 있으면 이 열다섯 가지가 환하게 나타난다. 열다섯  가지로 나타난다. 열다섯 가지로 비추어 진다.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그 안에 밖에 없어. 그말은 하나님과 접선되어 가지고,  하나님과 접선되는 것은 그에게 밖에 없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나님과 접선이 되면 접선된 광채가 나온다 하는 말입니다.

 이제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이런데 사랑이 그 속에 있으면 되어지는데  이 사랑 없이 우리가 이것만 하려고 애를 쓴다 말이오. 이거 하려고는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 열다섯 가지 이것을 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어.

 예를 들면 담대라 합시다. 공산주의가 와도 내가 그때에 놀라지 아니하고  그때에 담대해서 고문과 고형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하려는 이것을 노력하는  것은, 소원은 그것이 소원은 가지지 마는 그 노력을 하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내가 말 들으니까 어떤 산에서는, 아따 이름이 뭐이더라, 훈련이라든가. 그  뭐이요. 용문산에서 그 무슨 훈련이라든가. 수련, 옳지 수련 수련이라고 하는데,  수련이라고 이제 이거는 담력을 기른다 해 가지고 고함도 지르고 막 이래 손도  펴고 음음 이러기도 하고 이렇게 수련받는 기간이라고 또 수련 시간이 있다고  하는데 그거 다 외식입니다. 암만 담대하려 해야 소용없소.

 하나님이 만들어 그거 하기 때문에 자기가 암만 담대해도 그 담대가 딱  오그라지고 그만 쥐구멍을 찾아서 뭐 들어가려고 애쓰고 그렇게 겁쟁이 비겁한  자가 되어지도록, 하나님이 어떤 것이라도 그렇게 겁쟁이가 되어서 그 담력을  거기에서 가질 수 없도록 딱 두려움을 끼쳐 주면서 다만 그 속에 사랑이 있어  사랑의 힘으로만 그 두려움을 다 물리칠 수 있도록 이렇게 딱 해 놨기 때문에 그  속에 사랑이 내주하지 않는 그자는 천하에 제일 담대한 자라도 뻘뻘 떨지 않을  수 없도록 하나님이 하는 시험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처럼 믿음을 연단하는 것이라  그말은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견디지 못하는 그런 어려움을 끼쳐 준다  하는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것도 헛말, 수련받는다는 그것도 헛말, 그거 헛일이오. 뭘  해야 되느냐. 자기 속에 사랑을 영접해야 됩니다. 사랑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법적으로 이 대속을  주셨는데 이 대속 주신 이 대속을 자기 마음 안에 자기 몸 안에 영접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이것이 사랑을 찾는 것이오, 사랑을 찾는 것.

 주님이 나를 사죄 주셨으니 나는 이 사죄를 보존하겠다, 「내 피를  기념하라」기념하라 말은 그것을 나타내라 그 말이오. 주님이 나에게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새생명을 주셨으니 내가 이를 배반치 않고 내가 보존하겠다. 죄에  빠지지 않겠다. 죄를 환영치 않겠다. 이것을 의롭게 살겠다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이 사랑을 찾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이러다가 사랑을 만났습니다. 사랑을 만났으면 사랑을 만난 것은 어떤 것이  사랑을 만난 것이라고 했소. 어떤 것을 사랑을 만난 것이라 했지요. 사랑을 만난  것은 뭐이라고. 사랑을 찾다 사랑을 만났습니다. 사랑을 이제는 만났소. 사랑을  만난 것을 어떤 것이 사랑을 만난 것이라고요. 남반에. 양성원에 입학한 사람들  한번 대답해 봐요. 사랑을 만난 사람들,    씨 입학했어, 했어, 대답해 봐.

사랑을 만난 것이 뭐이 사랑을 만난 것이라. 어제 아침에 가르쳤는데. 이르는  것. 또 여기에  , 저 전부 양성원 학생 자격 없어. 또 보자 누가 입학했노,     입학했어, 사랑 만난 것이 뭐이지, 여반에 사랑 만난 것이 뭐이요. 사랑을  찾다가 사랑을 만났습니다. 어제 아침에 들었어, 안 듣고 와 가지고 그래  짐작해서는 안돼.

 사랑을 만난 것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이 사랑인데, 이 세 가지 이것이  진리를 만나서 진리와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을 찾는 것이오. 또 사랑을 만난 것은 뭐와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을  만난 것입니까. 성령님의 영능이, 이 성령의 권능이 와 가지고, 성령의 권능이  와가지고 이 세 가지를 나에게 이루려고 하는 것이 사랑을 만난 것입니다.

 이제 사랑을 만났지마는 이 사랑을 받아서 이 사랑이 자기 것이 되지 않고 이  사랑이 자기 속에 내주했다가 마지막에 육체로 마친다고 말합니다.

 이제 이 주님의 사랑을 진리와 함께 이루려고 이제는 성령님의 권능이 와  가지고 함께 이루려고 하다가 실상이 이루어졌다 말이오. 열매가 맺어졌어.

「열매를 맺은 자는 더 많이 맺게 하기 위해서 더 이를 깨끗케 하느니라」  열매가 맺어졌어. 결과가 이루어졌어.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이루어진 것만치  자기는 이 열다섯 가지가 그만침 소량으로, 이 사랑이 점점 이런 종류 저런  종류, 이런면 저런 면에 충만하게 이루어지면 이 열다섯 가지가 이면으로도  열다섯 가지 저 면으로도 열다섯 가지, 열다섯 가지가 되어집니다.

 이것이 이루어짐으로, 이것이 이루어짐으로 담대해지는 그것이 신본의  담대입니다. 이래서 요한일서 4장에 말씀하시기를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느니라 두려움에는 심판의 염려가 있지마는 두려움이 없는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속에 사랑이 생겨짐으로 외모의 열다섯 가지 행위는 필연적으로 된다.

사랑은 이렇다. 사랑이 있으면 이것이 나온다. 이런 것인데 자꾸 껍데기로, 왜.

껍데기 이것은 사람들이 원죄니까 속에 어찌 됐든지 좋은 것 알기 때문에 좋은  껍데기를 가지려고 하는 데에서 외식은 생겨지는 것입니다.

 좋은 껍데기가 좋지마는 알맹이 없는 것은 알맹이 없는 그대로 나와야 그것이  정죄도 받고 높은 지위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과오를 많이 범하지 아니하지  알맹이 없는 껍데기만 가진 그것은 그걸 원하는 자는 자기 자멸을 원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네 가지 아름다운 외모가 있어도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구별해야 되겠고 이 열다섯 가지 빛을, 자기가 빛만  행하려고 속에 없는 것이,  어떤 사람 보면 돈이 없어서 먹지는 못하니까 봐 보니 영양실조요  영양빈약인데, 먹는 것 그거는 먹는지 안 먹는지 모르고 낯에 바르는 것은  이것은 거석하다 해 가지고 아주 바르는 고급, 그것만 했으면 한달 바르는 것만  하면 한달 영양 채워 먹을 것인데 제일 고급만 사다가 낯에 쳐 바르지,  또 옷 그거 한 철에 입는 옷만 하면 그 철에 영양실조 않고 다 먹을 수 있는데  전부 옷 입고 바르는 것 여기에만 이래 주력을 하고 있으니까 보면 안다 말이오.

아이구, 저거는 참 외식하는 여인이로구나, 저거는 영양은 실족되어 있으면서  옷하고 바르는 것 저기에만 다 기울인다, 환하이 보인다 그말이오. 미가  나옵니까. 속에 뭐 영양이 있어야 미가 나오지.

 그와 마찬가지로 자꾸 허약해집니다. 자꾸 못나지요. 못나지니까 더 좋으라고  쳐 바르면 나중에 가서는 그거는 참 못 볼, 똑 묵은 기생 같다, 똑 묵은 기생  같다, 똥을 먹은 기생이 아니라 똑 묵은 기생이라 말이오. 묵은 기생, 묵은  기생.

 묵은 기생이 자꾸 그래 가지고 자꾸 얼굴 좋게 하려고 자꾸 애를 쓰고 이래 해  놓으니까 그만 기생 늙은 것은 보지 못합니다. 자꾸 장식을 많이 하고 장식에만  애쓰고 속에 애쓰지 않았기 때문에 보면 알아. 보면 알아. 그 여인이 기생 같다,  기생 늙은 것 같다, 흉한 걸 볼 때에 똑 묵은 기생 같다,  나는 어릴 때에, 똥 먹은 기생이다, 똥, 인분이나 개똥이나 똥 그거 먹은  고양이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나중에 알고 보니 똑 묵은, 지금 새 기생이  아니라 묵은 기생, 묵은 기생 같다, 그것이 인간이 외모만 단속하는 것 욕하는  것입니다.

 내 어제도 어떤 희망있는 청년을 만나 가지고 말했소. 네가 껍데기 단장하는  그것이 너 망친다. 그거 하지 말아라. 네가 속에 있는 실력을 갖추어 가지고  하거나 말거나 이를 다물고 이를 깨물고 속에 있는 실력을 길러서 나중에 실력이  겉어머리로 확 피어나올 때에 모든 사람이 보고 놀라고 영광있는 것이지 껍데기  그까짓 거 단장하는 것 무슨 소용있나.

 어떤 사람 보니까 그래요. 그런 실력 갖추려는 그런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넥타이를 맸는데 넥타이를 매면 속에 들어가면 안 되고 꾸불어질상 바르니까  빳빳하이 서지를 못해, 이놈이 여기 걸려 가지고 혹 구부러지고 하니까. 이래  가지고 덜렁 덜렁하니 넥타이 하나 가지고. 보니까 이 넥타이에 거기에 신경이  다 가는 것 같아, 넥타이 하나에 신경이 다. 아이고, 불쌍하고 가련해서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청년이오. 야, 너는 신경이 전부 넥타이 한개에 다 가 있구나.

그까짓 거야 거꾸로 됐든지 삐뚤어졌든지,   남자가 준비할 때에는 그렇습니다. 준비할 때에는 포마드 기름을 바를려 했는데  보니까 이래 가지고 훅 발랐는데 여기 뭉텅이가 기름 뭉텅이가 옆에 가 뚱그래  있고 여기는 안 발렸소. 그걸 보고 내가 야, 이놈 희망있다, 이놈 희망있다 해서  그놈을 내가 붙들어 가지고 한 10여년 넘어 썼습니다. 썼다가 인제 자유를  됐는데 여기 와서 앉았는지 모르겠소.

 결혼을 그거 시켜 놓고 한번 보니까 제딴에는 꾸민다고 꾸민다는 것이 포마드  기름이 여기 이만침 뭉텅이로 여기 있고 딴데는 바르지도 않았어. 그렇게 자기  외모 단장에 생각이 없고 자기 속에 알맹이 목표에 거기에 전심이 기울어져야  됩니다.

 사람도 친구 많은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언제 사람 사람 비위  만들고 그럴 여가가 없어. 자기 목표를 향해서 달리느라고 옆눈을 뜰 여가가  없어. 그놈이 성공합니다.

 이러니까 성공하고 나면 뒤에 그 친구가 자꾸 따라오니까 그것이 귀찮아서 떼  내 버려도 자꾸 줄줄 따라오는 그 친구가 자기에게 필요하고 하는 것이지 이것이  이 사람과도 사귀고 저 사람과도 사귀고 이럴려고 하는 그런 사람은 희망이  없어. 이 껍데기 안된다 그 말이오. 알맹이라야 되지.

 사랑, 사랑이 생명이요 평강이요 능력입니다. 사랑이 생명이요 평강이요  능력이라 말은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요 평강이요 능력이란 말이오.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요 평강이요 능력이란 말은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이 우리의  생명이요 평강이요 능력이라 말입니다.

 이것을 누가 맡았는가. 성령과 물과 피가 한덩어리 돼 가지고 맡았습니다. 피  때문에 물이, 진리가,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너희들을 진리 안으로 이끌리라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말하리라」  이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 사랑이 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인간  사랑을 하려고 해도 인간 사랑이 받아들이지를 않아.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거리  머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인간 사랑을 껍데기에 발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끌려고 해도 안 되는 거라,  이러니까 혈육정실이 좋습니다. 혈육정실이 좋으나 혈육정실 그것은 인간  사랑인데 인간 사랑을 낚시 밥으로, 고기 먹는 낚시의 밥으로 인간 사랑을  거기에다가 미끼를 끼어 가지고 인간 사랑보고 달려들면 하나님의 사랑의 낚시에  딱 낚이도록 이렇게 하는 방편으로 이렇게 쓰지 그것이 제일이라고 하는 자는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니라, 또 사랑이  있으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이런 껍데기로 나타난다. 껍데기 열다섯 가지만 보고  좋고 그것만 하려고 애를 쓰고 사랑에 노력하지 않는 자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뭐인가. 사랑을 찾아라. 사랑을 만났느냐 사랑을 영접하여  네것을 만들어라.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생애의 전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10분 기도하고 결혼 상담회로 모입니다. 지난번에 광고했는데 자기  구역에 열아홉살 이상의 미혼 남녀는 이름이라도 다 기록해 내십시오, 용지를  받아 가지고 가서, 그것도 우리 할 일입니다.

 그것이 뭐이요. 시집 보내고 장가 보내는 그것이 뭐 이루는 것이 지요. 그것 뭐  이루는 것입니까.  장로님이 알까. 그것 뭣 이루는 것입니까. 잘 알았어.

100점이오. 가정교회 이루는 것이라 그것이 가정교회.

 우리가 지금 오늘 아침에 결혼상담으로 모이는 이것이 천한 것이 아니라  가정교회를 이루는 것이라 그말이오, 가정교회.

 10분 기도하고 결혼상담회로 모입니다.

 중간반 반사들은 안 와도 되고 남녀 권찰님들 또 주일학교도 책임자, 왜. 그  주일학교 반사를 우리가 잘 모르니까 총무는 참석하고, 장로님들은 다 참석하면  참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이 일을 잘 이루어야 돼요.

 이것이 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남자고 여자고 결혼 안 하려고 뒤로 미루는  그놈은 반드시 그 속에 뭐 있습니다. 뭐 그렇게 단정 지워야 돼. 또 없는 사람도  혹 있지. 있는 것은 뭐이냐. 자기의 지금 전공해서 나아가는 그 일에 눈코를 뜰  여가가 없는 그런 사람은 거기에 전심전력이 기울여져 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은 인간 성공은 그거 하나로 성공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이  구비해야 되지. 그건 정신이 빠져 가지고 지금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정신  빠진 사람이라. 그 사람을 깨우쳐 가지고, 네가 이것만 해도, 이것이 시기가 다  있는 것인데, 이 시기가 있는 데 이 시기 놓치면 안되니 이거는 이 시기에 하고  또 그다음에 해야 그것이 모든 것이 진행이 바로 된다.

 내가 여기 몇 사람 봤는데, 그 사람이 학자인데, 학을 공부하느라고 그만  이렇게 하다가 나이가 뭐 마흔세살인가 됐는데, 이제 그때까지 학을 연구를  할대로 하고 나서 보니까 결혼이 늦었거든. 아이구, 인제 뭐 결혼하려고, 결혼할  취미도 없지 맛도 없지 욕심도 없지 시기도 지나갔지 안 하려고 해. 그러면 그  신세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그래 가지고 제가 무슨 구원도 못 이뤄.

 그래 억지로 이것을 결혼을 시켜 가지고 마흔세살인가 먹어서 결혼을 시켜  놓으니까 이게 바보요 병신이라. 가정에 대해서는 병신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 지식이 항상 일방적이요 기형적이어서 그 지식을 아무 채용할 것이 없어.

채용할 것이 없어 기계와 같이 책 보따리라. 한 책으로 볼 수는 있어, 그  책으로. 여기에 대해서 그 책을 볼려면 그 책을 보면 되는 것처럼 그 사람 데려  가면 그건 쭉 잘 알아.

 그러니까 어쨌든지 결혼은 조혼을 해야 됩니다. 일찍 결혼해야 돼요. 그만  열아홉살 먹으면 결혼해야 돼요. 아들 딸 있는 분들은 빨리 결혼을 시켜요.

 저는 일찍 깨달아서,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데보다 먼저 깨달아서 열아홉살  먹을 때에 결혼시킬려고 애를 그렇츰 써도 하나도 못 시켰어. 그건 강제로 못해.

막 죽자 살자 하고 뭐 반대를 하는데 어쩔 거라. 그래도 일찍 했으면 참 좋을 뻔  모두 했습니다.

 왜. 그 사람이 제2세도 일찍, 말하는 것이, 요새 모두 통계가 나오기를 머리가  제일 좋고 몸은 작고 강건하고 이러니까 유지비는 덜 들고 속에 사용하는 힘은  많습니다. 자꾸 이렇게 늦물이 될수록 크나 약해. 그 머리가 좋지를 못하다  이래.

 그러니까 일찍 해야 되고 또 일찍 결혼하면 인생관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둘이 일찍 만나 가지고 신앙으로 하면 아주 이것은 참 찰떡같이 인생관이  됩니다.

 뭐 꼭 결혼식을 해 보면 찰떡을 해 가지고 오는데 그 찰떡 같이 갖다 주지마.

그거 암만 찰떡 해 봐야 나이 많은 사람은, 교수들, 교수가 결혼한 사람들 보면  저거끼리 인생관이 딱 있어 가지고 두 인생관이 일치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저 외식으로 하니 예의와 체면 처세술로 이러고 있는 것이지 둘이  딱 들어 붙어 가지고 안 한다 그말이오.

 조혼이 복입니다. 덜 더러워지고. 더러워지기도 덜 더러워지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러니까 이 사상을 바꿔요. 어쨌든지 혼사는 조혼이 좋다. 조혼을  시키는 데에는 서로 같은 걸 시키고 잡놈한테 좋은 어린 처녀를 맡겨 놓으면  큰일나. 그놈이 아주 어떻게 악질 행세를 하는지 꼭 잡놈은 잡년하고 맡겨야  됩니다. 여럿이 있는데 욕을 해야지 개인을 두고 욕을 하면 욕을 안 받을거라  그말이오.

 자기가 결혼한다는 열 아홉 살로부터 스물 다섯 살까지면 한 6년 동안인데, 6년  동안이 인생 일생을 결정 지우는 가장 요긴한 때입니다. 얼마나 요긴한 때인데.

그때 방종해 버리면 뒤에 고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거기서 패전한 것은 25세로부터 30세까지 한 토막 남았습니다.

5년동안 한 토막 남았습니다. 거기에서 바로 되면 바로 됩니다. 잘 됩니다.

 인간이 그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뱃속에서 교훈받은 것이 나고 난 다음에 교훈  받은 전부보다 귀하다, 선천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학 통계입니다.

또 말하기를 사람이 한 살 이내, 나고 나서 1년 이내에 받는 그 교훈의 영향이  1년 후 일생 받는 것보다 중요하다, 자꾸 근원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이것이  심리학자들의 지금 통계다 그말이오.

 요새는 또 그것에 반대해 가지고 껍데기가 대단하다는 마귀란 놈의 심리학이  나와 가지고 있는데 이거는 현재에 맞거든 현재에 맞는다 그말이오. 과학은  껍데기가 맞고 이 신앙의 하나님의 법칙은 저 위에서 맞춰 들어오니까 인간들이  말하는 과학이 더 권위를 얻지마는 이거는 껍데기요 저 안에가 알맹이입니다.

세상 인간들은 결과를 중요시하고 하나님은 동기를 중요시합니다. 근원을 중하게  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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