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인한 세가지 희생

 

1984. 4. 20. 금새

 

본문: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나를 따라 오려거든' 하는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려거든 하는 말이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만유의 대주재가 되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이 사랑을 깨닫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하는 말이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뭐인가? 우리의 영과 육을  영원히 구원하신 그 사랑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을 받을려고  하면 하는 말입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하는 말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으니  이 주님을 나도 사랑하려고 하면 이 걸음 걸어야 된다 말이오. 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모두가 다 구원인데 주님이 주시는 그 구원을 내가 받아  가질라고 하면 다 이 걸음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대할 때에, 생각할 때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 사랑의 그 형태를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어떤 어떤 형편에서 우리를 사랑했던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형편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 그 자체를 우리가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경과, 사랑의 그 통과, 사랑의  경과, 사랑의 형편 그것을 우리가 연구해서 주님이 어떤 형편에서 나를 사랑하신  그것을 나도, 양은 같지 안하지마는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 형편에서 나도  주님을 사랑해야 할 것을 우리가 깨닫고 이대로 사랑하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 행위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실려고 하실 때에 어떤  형편을 닥쳤는가 그것을 생각해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데에 그 어떤  형편을 닥쳐도 주님의 그 사랑을 받는 그 받는 것을 변동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당신이 가난해지지, 예를 들면 가난해지지 안하면 우리를  사랑할 수 없을 때에 주님은 꺼리지 안하고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부요를 내놓으시고 가난을 취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구원을 받는 데에 이 구원을 내가 받을려고  하면은 가난해져야 되겠고, 가난해지지 안하려고 하면은 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에 우리가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서 이 구원 받는 일을  멀리하고 물리치면 우리는 주님 앞에 참 용납지 못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이런 일이 됩니다. 주님이 어떠한 형편에서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어떠한 형편을 만났는가? 그러면, 그  형편을 만난 것이 좋은게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려고 하는 데에는, 우리를  구원하실라고 하는 데에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뭐인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을 이룬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그 사랑을 우리에게 설정하실려고 하실 때에 이런 가난이라는  이런 어려움을 당신이 차지하면 우리를 구원할 수 있고 당신의 그 부요를 그대로  가지고 있을라면 구원할 수 없을 때에는 당신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난을 달게 받으셨습니다. 가난을 달게 받으시고 자원해서 가난을 취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으니까. 우리가 그 구원을 받을 때에 주님이 이렇게  가난해지심으로 주신 구원을 내가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서 이 구원을 받지  않는다면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우리는 정죄함을 받을 것입니다.

 또. 주님이 낮아지심으로써 나를 구원하신 그 구원을 내가 낮아지지 않기  위해서 그 구원을. 구원 받는 일을 꺼려 했으면 그것도 심판에 다 그리스도의  심판에 걸릴 일입니다. 낮아지시고 가난해지시고 뭐 가난해졌다 면은 영광이  없어지면, 가난해진 것은 없어지는 것이 가난해지는 것인데 영광이 없어지는 것,  지위가 없어지는 것. 권세가 없어지는 것. 존귀가 없어지는 것 이런 모든 것이,  평강이 없어지는 것 그 모든 것 없어지는 것이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비해서 모든 것이 얼마나 구비하고  중만하신데, 구비하고 충만하신 그 충만하심이 다 없어지는 지경 까지 이르러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일을 놓지 안했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당신의  부요를 아끼지 안하고 다 그것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고, 또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낮아지셨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래야 내려갈 수 없는 음부까지 주님이  낮아지셨습니다. 죽음까지, 저주의. 하나님의 저 주의 죽음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이 주신 구원을 내가 이 구원을 받을라고 하면은 내가  낮아져야 할 때에, 내가 이 구원 받을라고 하면은. 하나 예를 들면은 이 구원을  내가 받을라고 하면은 이번에 좋은 자리가 나섰지마는 이런 취직을 못 하겠다.

그러면 자기는 - 그거는 가난에 속하지마는 - 내가 이번에 한 자리 더 올라가게  됐는데 주님의 구원을 내가 받을라고 하면은 이번에 올라갈, 뭐라 합니까?  영전이라 합니까? 예? 예? 승진이라 합니까? 저 ○○○목사님, 위로 올라가는  것을 뭐라 합니까? 벼슬 올라가는 것. 승진이라 합니까? 그전에는 영전이라  했는데. 승진, 승진? 예? 승진? 올라갔다 말인가? 내가 한 자리 올라가겠는데 이  구원을 손 해보지 안하려고 하면은 올라갈 자리를 올라가지 못하겠다. 그럴 때에  주님이 날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낮아지심을 우리가 생각하고 그럴  때에, 내가 올라갈 수 있는 무엇이든지 어떤 면으로서든지, 경제면으로서든지  권세면으로서든지, 지위면으로서든지 명예면으로서든지 존귀면으로서든지 모든  면으로 내가 올라갈 수 있는데 이 올라가는 것이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나님으로서 낮아지시면서 주신 이 구원을 내가 받는 데에 이 구원에 손해가  가니 내가 올라가기 위해서 이 구원을 손해보는 것, 주님이 낮아지시면서 나에게  주신 이 구원을 내가 올라가기 위해서 이 구원을 등한히 하는 것, 이 구원을  멀리하는 것, 이 구원에 손해보는 것은 이것은 합당치 않다 그렇게 자기  현실에서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고 올라가지. 올라가는 길이 있어도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이요, 아예 올라가지 아니하는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서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목사님도 벌써 그분이 은행장이 돼 가지고서, 벌써 은행장 이  됐을 것이오. 은행장이 됐는데, 은행장 한 층씩 올라가는 시험은 꼭 주 일날 쳐.

주일날 치기 때문에 주일날 시험을 치면. 올라가지마는 또 주일날 시험을 치지  못해서 못 올라갔고, 못 올라갔고 이래서 은행장에 못 올라갔는데 은행장에  올라갔으면, 모릅니다. 은행장에 올라갔으면 어떤 실족 해 가지고서 감옥에 들어  앉았을란지, 평생 죄인이 돼 있을란지, 또 그 자리에서 공연히 정신없이  너굴거리고 지내면서 목사님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비참한 가운데서 죄 짓는  자리에 있을란지 모른다 그말이오.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이 통계해 보고는 주님을  위해서 했다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자기 위한 일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주관으로만, 형편으로만 주님을 위해서 했지 주님 위해서 한 것이  마지막에는 자기 단독, 자기 독단 자기만을 위해서 한 결과를 맺어지고야 마는  것이 인간의 다 신앙 경험이요 다 체험입니다.

 우리는 낮아지는 데에서도 주님이 날 사랑한 사랑은, 주님이 나를 사랑 함으로  주신 구원은,-그런고로, 주님의 구원과 사랑이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님의 구원이 주님의 사랑이요, 또 주님의 사랑이 구원이요 또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이 말씀이 주님의 사랑이요 이 말씀 이 주님의 구원입니다. 이  말씀을 취하면 구원이 이루어지고. 이 말씀을 칙하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고, 이 말씀을 물리치면 주님의 사랑을 물 리침이요 주님의 주신 구원을  물리침입니다.

 그러기에, 영감과 진리는 하나요, 또 영감과 진리와 주님의 구원은 하나요  영감과 진리와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입니다. 이 셋은 하나인데 하나인데  이런 각도로 말했고 저런 각도를 말했지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구원을  받을 때에 구원을 받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요, 구원을 배척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배척하는 것이요. 말씀을 배척하는 것이 구원을 배척하는  것이요, 말씀을 배척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은밀히 영감을  환영하는 것이 주님의 구원을 내가 영접하는 것이요.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가난해지고 부요해지는, 가난해지고 부요해지는, 주님은 그  부요의 자리에 있을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변하지 안했습니다. 부요의  자리에 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또 그 부요가 없어져도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부요할 자리에서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생각해서 부요해도 가난해도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가  깨닫고 우리도 부요해도 가난해도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을 변동 안 해야  되겠고, 다시 말하면 우리는 부요해도 가난해도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에 대해서  우리는 구원을 둥한히 해서 안 되고 구원을 우리는 어떤 걸 해도 우리는 이  구원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또 내가 낮아져도 그러하고 높아져도 그러하고.

 그다음에 하나 있는 것은 뭐이냐? 고난입니다. 고난. 그러면 고난은, 다 고난은  범위 넓게 우리가 외로워지는 것도 고난이요, 사람에게 배척 당하는 것도  고난이요, 멸시 당하는 것도 고난이요, 병드는 것도 고난이요, 어려움 당하는  것도 고난이요, 고문과 고행을 당하는 것도 고난이요, 핍박당 하는 것도  고난이요, 죽음 당하는 것도 고난이니까, 주님이 온갖 고난 가운데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온갖 고난이다. 가로막아도 그  고난에게 막히지 안하고 고난이 두려워서 멀리 피하지 안하고 고난을 당신이, 그  가시밭을 넘어서, 고난을 넘어서 고난을 무릅쓰고 고난을 당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고난을. 우리가 당하는 그  고난을 인해서 그 주님의 사랑을 멀리하거나 고난을 인해서 주님이 주신 이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거나 그렇게 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다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라면 마지막으로 결론은 죽음으로써 끝을  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난해질 때에, 낮아질 때에, 우리가 온갖 고난을 당할 때에  그럴 때에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나는 요렇게 참 가난 해 봤자, 내가 있는 것  톨톨 털어서 다 가난해져 봤자 하나님이 그 부요로서 가난해진데 비하면은 뭐  그건 억억만의 일도 아니고, 억억억억억억. 평생 억억억억억 억억억억 억억억의,  억억억만의 일도 안 됩니다. 그 큰 가난을 날 사랑하심으로써 달게 받으시고  나를 사랑하셨는데 내가 이 가난을 이것을 인해서 주님의 사랑을 내가  멈춤거리고 머믓거리고 주저하고 있는 그것을 자기가 깨달아서 마음에 양심의  가책이 돼서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어느 가난, 가난의 어느 지경, 가난의  어느 지경까지 이를지라도 써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변하지 않겠습니다.

나도 주님이 나를 가난함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나도 가난 가운데서 주님을 좀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가난을 기대하고 고대하고 있다가 가난이 올 때에  주님이 날 사랑하는 그 사랑을 다문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닥쳤다  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것이 참 성도들의 양심이겠습니다. 또 그것은  세상도 다 그러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부부간도 그렇고, 또 서로 보면 형제간도  그렇고, 또 이 전쟁에서 전쟁하던 그 전우 사이에도 그렇고 다 그가 나를 어떻게  사랑했는데 나는 그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서로 이것이 '서로 사랑하라' 이  사랑에 주고 받는 이 사랑의 교제가 그것이 사랑의 교제입니다.

 고런고로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에 가난을 당할 때는 가난함, 나를 위해서  가난함으로 사랑하신 그 사랑의 주님을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고  낮아짐으로서에 낮아지신 그 주님을 내가 교제할 수 있는 낮아짐의 기회를  만났고 또 주님이 고난당하심의 그 사랑을 교제할 수 있는 그 고난의 기회를  만난 그것을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항상 기도로 우리는 사모하고 고대하고  기다리다가 그런 기회가 올 때에 우리는 사랑해야 되지 아무 준비 없이 이래  하면 그 기회라 하는 것은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가 자기가 무엇을, 고만 기회를 지나 보내고, 기회를 지나  보내고 자꾸. 기회를 떨구었기 때문에, 어떤 책에 보니까 그분이 그래 써  놨습니다. '기회라는 자는 대가리는 털이 많아서 더풀더풀 해서 거머쥐면 놓이지  안한다. 거머쥐면, 머리를 거머쥐면 그 기회를 거머쥐고 내 자유대로 사용할 수  있지마는 꼬리는 어떻게 매끄라운지 머리를 놓치고 나면은 그다음에 꼬리는 암만  잡아야 꼬리를 잡을 수 없다. 매끄라워서 다 불거져서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기회는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서 그 기회가 올 때에 기회를 머리를 잡아서 그  기회를 내가 이용 해야 되지 그 기회가 머리를 잡지 못하고 어정어정 하다가서  하면은 그 기회가 지나가는 그 기회를 잡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기회의  머리는 더풀더풀 하고 꼬리는 매끌매끌하다' 하는 그런 것으로 비유해서 기록한  그런 어떤 책을 제가 봤습니다.

 우리는 참 가난하신, 가난으로 날 사랑하신, 가난해도 그 날 사랑한 사랑이  가난을 이기신 그 사랑, 낮아짐을 이기신 사랑, 또 죽음을 이기신 사랑. 그러면,  가난, 그 부요보다 날 사랑하셨고. 높아지는 것보다 날 사랑 하셨고, 평강에  사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 사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했고, 나를 놓는 것은  죽음보다 더 어려웠고, 또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놓치는 것은 낮아지는  것보다 더 어려웠고 가난해지는 것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에 당신은 그 모든  부요와 높음과 평강을 다 내어놓고 가난해지 시고 낮아지심을. 죽으심을 겪어도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은 놓지를 안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서 우리도  주님을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그래서 ○○○ 목사님의 그 시가 하나 있는데 그 시에 '주(主) 아위사  (我爲死)하니' 주님이 나를 위해서 죽었으니 '아(我) 주위사(主爲死) 라' 나도  주를 위해서 죽겠다, '주(主) 아위생(我爲生) 했으니' 주님이 날 위해서  살았으니 '아(我) 주위생(主爲生)이라' 나도 주를 위해 살겠다, 그렇게 기록을  한 것을 언제 한번 설교 가운데에 강의할 때에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가니까 거기에 글을 써 놓은, 글을 써 놓은 필적이 있습니다.

있는데, 거기 뭐라고 쓰였느냐 하면은 '나는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주를 위해  죽겠노라' 하는 그것이 거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기록했느냐?'  이라니까. 주 기철 목사님의 모교인데 주 기철 목사님이 그 교회에서 나 가지고  그 교회서 믿어 가지고서 이제 장성해서 이 교회 저 교회 시무하러 이동이  됐었었는데 그 주 기철 목사님이 믿을 때에 표어가 그 표어라고 '나는 온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주를 위해서 죽겠노라'그것이 주 기철 목사님의 표어라고. 그때  그 동지 몇 사람이, 동창생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 가운데 그때에 ○정권  때 모두 장관한 사람도 있고, 아주 다 장관급에서 있는 사람들이 동창 가운데 몇  사람 있었는데 그 주 기철 목사님은, 그때 아마 학창기에 서로 의논하기를 나는  뭐이 되겠다고 다 욕망들을 모두 가졌겠지요. 가진 그걸 보고서 주 기철  목사님은 발표하기를 '나는 온 천하를 얻어 가지고서 다스리는 것보다 나는 주를  위해서 죽겠노라' 하는 그것을 당신의 사상과 포부로서 그렇게 기록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교제를, 우리는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대로 나도 주님을 한번  사랑해 보겠다, 주님이 날 사랑한 그 사랑의 교제를 나도 죽음으로 날 사랑하는  그 주님의 사랑에 나도 죽음으로 사랑하여서 주님의 사랑을 서로 한번 사귀어  보겠다.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기도 알려  하여서 달음질한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겠다고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여러 가지로 거기에 생각하기 어려우니까, 낮아지는 것,  가난해 지는 것, 낮아지는 것, 고난당하는 것이 세 가지 면으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이 세 가지에게 막혀지지 안 했고  가리워지지 안했고, 이 세 가지를 인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이 놓쳐지고  우리를 피하지 안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원하시면서, 스스로 이 세 가지를  당하면서, 이 세 가지를 무릅쓰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가 깨닫고  우리 현실에서 하나 하나 이 사랑을 느껴서 사랑의 교제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을 당할 때에는, 이때는 주님이 어떻게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생각하고 나도 거기에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렇게 해야 되겠고  주님이 나에게 구원을 주신 이 구원이 이렇게, 이럴 때에 나를 이 걸 무릅쓰고  나에게 구원을 설정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죄를 당할 때에 칭의를 당할  때에, 화친을 당할 때에 그 모든, 주님이 어떻게 해서 이 대속을 설정하신, 그  설정하신, 이 대속을 건설한, 대속을 설정하신 것을 생각을 하면서 우리도 그런  형편 당할 때에 우리가 그 구원을 멀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이러하고, 또 이 사랑은 필연적입니다.

필연적이라는 것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데에는 가난해지지 안 할 수 없는  가난이 필연성입니다. 가난해지지 안할 수가 없었고, 낮아지지 안할 수가 없었고  고난을 당하지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우리가 멸망한 원인이, 멸망의,  멸망하는 그 멸망의 댓가가 뭐인고 하니 부요하기 위해서 우리가 멸망을 받았고.

높아지기 위해서 멸망을 받았고, 우리가 어짜든지 평안하기 위해서 멸망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에는 이 부요의 댓가를 내놓으니까  당신이 가난해져야 되겠고, 낮아져야 되겠고 죽어져야만 우리를 구속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안할래야 안할 수 없어서 당하신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의 성격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또 사랑의 그 필연성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면은 우리가 가난해져야만 사랑하게 될  때에 우리가 지금도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사랑이나 구원을 멀리한다면  우리는 고만 옛사람으로 돌아간 것입이다. 옛사람. 그러면 주님의 구속은  구속으로 따로 있고, 나는 나대로 따로 있기 때문에 구속과 상관이 없는, 자기를  부인하지 안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그 말은 자기는 언제든지, 처음에도 멸망을 시작한  것도 부요하려고, 올라갈라고, 평안하려고, 살라고 이래 가지고서 이 세 가지  때문에 멸망을 받았고. 또 계속 멸망에서 멸망으로 자꾸 타락해 내려가는 것도  이 세 가지 때문에 타락해 내려가는 것이니까 거기에서 이제는 역류해야  되겠습니다. 거슬러 올라와야 됩니다. 거기서 거슬러 올라와서 이제는 나는  주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또 내가 주님이 부탁하신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나는 이제, 우리의 갈 길은 무슨  길이냐? 우리의 갈 길은 가난해지러 가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요, 우리는  가난으로 걸어가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요, 우리는 낮아짐으로 걸어가는 것이  우리 갈 길이요 우리는 고난으로, 죽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우리 갈 길이오.

이렇게 우리는 이 길 걸어가는 것이 우리 정상이요. 우리의 필연성이요, 이 길을  걸어가는데. 이 길을 걸어가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할 때는 나는 낮아지는데  당신은 나를 높이고, 나는 가난해지는데 당신은 나를 부요하게 하고, 나는  죽을라 하는데 당신은 살리고 이래서, 우리는 이 세 가지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죽는 이것이 내가 해야 할 길이요 내가 걸어갈 길이요 내 생활인데, 주님은  거기에서 자 꾸 가다가는 참 가난과 낮아짐과 죽음을 그렇게 주실 때도 있지마는  자꾸 당신은 나를 올리고 나를 부요하게 해도 나는 그 부요하게 한다고, 당신이  올리지 나는 낮아져야 되고 가난해져야 되겠고, 방신이 올리지 나는 낮아져야  되겠고 당신이 살려 주지 죽어져야 되겠고, 이것이 우리의 생이니까 요것을 잘  구별해서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그  현실에서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고. 어떠한 그 형편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를  대속하신 그 대속을 생각해야 되겠고, 또 우리가 어떻게 해서 타락을 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고, 또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제는 주님의 주신  구원을 받아서 타락에서 자꾸 하나님을 향하여서 향상을 해야 될 것을 우리는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향상은 낮아짐으로 향상하는 것이오. 우리의 향상은  낮아짐으로 향상하는 것이요. 우리의 향상은 가난해짐으로 향상하는 것이요.

우리의 향상은 죽어짐으로써 향상하는 걸음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걸음은 자꾸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가야 되는데 올라가는게 뭐이냐? 거슬러, 과거에 이랬던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걸음을 정반대로 거슬러서 가야만 올라가는 걸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록에 등록된 분 오천 오백 사십 사 명이 등록하고 기도합니다. 어짜든지  우리 기도에서 앞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참 죽음으로 인도할 때에 우리에게  현실은 주님이 주십니다. 꼭 현실은 주님이 주신다는 것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현실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우리 할 일은 주님의 사랑을 보존해야 되겠고 주님의  이 대속의 구원을 보존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현실에 보존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보존할 때에는 우리는 부요해도 가난해도 이것이 요동 안해야 되겠고.

높아져도 낮아져도 요동 안해야 되겠고. 살아도 죽어도 요동을 안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걸어가는 걸음은 자꾸 정반대 우리가 올라감으로  죽었습니다. 부자될라 하다가 죽었소. 올라갈라 하다가 죽었소. 우리는 살라고  하다가 죽었습니다. 이러니까. 정반대의 역행의 걸음을 우리가 걸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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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7 사랑/ 요한일서 4장 10절-11절/ 790715주전 선지자 2015.11.02
876 사랑/ 요한복음 15장 9절-11절/ 811029목새 선지자 2015.11.02
875 사랑/ 마태복음 24장 3절-14절/ 790709월새 선지자 2015.11.02
874 사랑 알맹이/ 고린도전서 13장 4절-13절/ 820427화새 선지자 2015.11.02
873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라/ 누가복음10장25절-28절/ 1988. 8. 11. 오전집회 선지자 2015.11.02
872 사랑과 희생으로 영광,기쁨,평화/ 누가복음 2장 14절/ 871226토새 선지자 2015.11.03
871 사랑관/ 베드로전서 1장 23절-25절/ 870619금새 선지자 2015.11.03
870 사랑연결 의사연결 활동연결/ 요한복음 15장 9절-17절/860316주후 선지자 2015.11.03
» 사랑으로 인한 세가지 희생/ 마태복음 16장 24절/ 840420금새 선지자 2015.11.03
868 사랑의 고귀성과 구별/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820428수새 선지자 2015.11.03
867 사랑의 본성과 역사/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 880723토새 선지자 2015.11.03
866 사랑의 봉사/ 요한 복음 3장 16절/ 791225화새 선지자 2015.11.03
865 사랑의 봉사/ 출애굽기 12장 14절/ 791124토새 선지자 2015.11.03
864 사랑의 빚/ 로마서 1장 14절/ 830713수야 선지자 201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