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귀성과 구별


선지자선교회 1982년 4월 28일 수새

 

본문 : 고전 13:1-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1절로 3절까지에 세상에 보배로운 것을 다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첫째는 말의  권위를 말했고 둘째는 지식의 권위를 말했고 셋째는 믿음의 권위를 말했고  넷째는 봉사와 희생의 권위를 말씀했습니다.

 이런 것이 다 극히 보배로운 것으로, 이 보배로운 권위, 세상을 점령하고  세상에 제일 존대를 받는 이 네 가지인데 이 네 가지가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죽은 것이요, 아무 것도 아니요, 자타에게 유익이 없다 그렇게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 4절 이하에 보면 세상에 아름다운 덕된 생활, 세상이 존경하고  교회가 존경하고 존경하는 아름다운 덕된 생활, 이것을 말할 때에 사랑이 이런  덕된 아름다운 생활을 한다 또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8절에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모든 것이 다 끝나는 날이 있지마는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또 그렇게 사랑을  평가했습니다.

 또 마지막 절수에 보면 모든 것이 다 폐해지고 없어지고 변동되지마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도 사랑이 제일이라 아주  사랑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습니다. 제일로 평가했습니다. 하나님 다음에는  사랑을 제일로 이렇게 귀하게 평가를 했습니다.

 또 불신 사회서도 제일 높이 평가하는 것이 어떤 것인고 하니 사랑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사랑을 제일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이 종교의 창설자들의 근원이  사랑입니다. 모든 세상 사상들과 정치들과 운동들의 모든 근본도 다 뿌리를  사랑에다가 박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교회 안에서도 사랑을 제일 귀하게 평가하고 이방에서도 사랑을 제일  높이 평가하고, 교회서도 사랑을 부르짖고 이방인들도 모두 사랑을 부르짖어  사랑이 그립고 사랑을 찾아서 모든 사람들이 다 집결됩니다.

 이러기에 이방의 운동도 사랑을 근거로 해 가지고 하고 있고 교회 운동들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평화롭게 하자, 모든 무기들을 다 축소하자,  전쟁에 대한 군비를 축소하자, 또 공산주의 민주주의 할 것 없이 우리가 화친을  일으키자, 또 이북과 이남에는 이렇게 많은 살해가 있지마는 그래도 동족애로서  대화통일 하자 이런 것 다 사랑입니다.

 이방은, 사상이야 어찌됐든지 사랑으로 통일하자, 또 교회서도,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어떤 교파든지 통일하자, 이래서 천하통일을 주장하는 그 사상이  에큐메니칼 사상인데 그보다도 한걸음 더 나서가지고 000이는 종교는 기독교만이  아니고 불교도 통일을 하자, 종교 통일을 부르짖는 것이 000씨의 사상입니다.

 이러니까 이방인들은 서로 죽이는 부수모수 이 원수이지마는, 민주주의  공산주의가 참 우리나라만 해도 6·25의 그 비참한 비극을 일으켰지마는 그래도  사랑으로 화평하고 통일하자 이러는 판에 그 뭐 기독교가 그렇게 고집할 것이 뭐  있느냐, 천주교와 개혁교가 수많은 살생을 일으켰지마는 우리끼리 통일 못할  것이 있느냐 해서 천주교와 개혁교는 지금 벌써 통일이 됐습니다. 되어서 성경  번역도 공동 번역을 하니까, 성경에서 신앙들이 나오는 것인데 성경을 반은  천주교적으로 번역하고 반은 개혁교적으로 번역을 하니까 벌써 통일이 된  셈입니다.

 산업전도를 하자, 뭐 주일이 문제가 아니라 어쨌든지 다 같이 예수 믿어서 구원  얻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 산업전도를 하자, 또 세계에 선교를 하자, 동남아  선교협회, 세계선교협회, 또 대학생선교회 이렇게 모두 다 운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 그 뿌리를 다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이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을 했고 또 이방인들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이렇게  다 평가하고 사랑을 말하면 다 머리를 숙이고 좋아하고 환영하지마는 옳고 그른  것을 시비를 따지는 일을 하면 다 염증내고 싫어하니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 가운데도 각국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생명 없는 소리나는 울리는 구리와 소리나는 괭과리와 같다, 죽은  것이라, 생명 없다.

 예언하는 능이 있다는 그 예언보다 더 높은 지식이 없는데 예언하는 능,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다 통달해도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있는 것으로 다 구제하고 몸을  주어 불사르게 내어주는 희생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

 모든 것은 다 폐해지지마는 사랑은 폐하지 않고 길이 있다, 떨어지지 않는다.

끊어지지 않는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하늘에서도 있을 영원한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모든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터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또 네가 말에나 행실에나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로 알고 행하라, 긍휼  없이 행하는 자는 긍휼 없이 심판을 받을 것이요 긍휼이 모든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리라, 사랑이 심판을 이긴다.

 이러니까 성경도 사랑이 제일이라, 이종교의 경전들도 모든 주의, 사상,  도덕들도 다 사랑이 제일이라 이렇게 여기에다가 뿌리를 박아 참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 말세가 되면 이제는 사랑 운동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이래서 사랑 운동이 얼마나 일어날 것인가 하면, 한 짐승에게 머리가 일곱이라  하는 것은 굵닥 굵닥한 사상을 말합니다. 일곱은 하나님의 수인데 사상의 전부를  총칭할 때에 혹은 일곱이라 열이라, 숫자를 다 말할 때에는 일곱이라고도 하고  열이라고도 하고 반을 말할 때에는 셋 반이라고 이렇게 성경에 표현을 한 것은  예언에 대해서는 대개 이렇습니다.

 이렇게 말세가 되어 가면 일곱 머리라 하는 것은 껍데기는 일곱의 사상이지마는  실은 그 몸둥이는 짐승 한 마리에게 일곱 머리가 있다, 내나 몸둥이는 하나다.

그 짐승은 세상을 말합니다. 일곱 머리가 있지마는 내나 같은 세상들이다.

 또 열 뿔이 있다, 열 뿔은 세상에 있는 힘을 말합니다. 과학의 힘, 도덕의 힘,  종교의 힘, 지식의 힘, 사상의 힘, 역사의 힘, 정치의 힘, 모든 통계의 힘, 별별  힘들, 예술의 힘, 땅의 힘이라고 하는 전 힘을 뿔이라고 이렇게 뿔로  상징했는데, 열 뿔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힘 전체가 합해서 열 뿔이라 이렇게  말했는데 열 뿔도 한 짐승에게 달렸습니다.

 열 뿔도 한 짐승에게 달려서 모든 힘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 때에는 다  한덩어리가 된다, 모든 힘은 한덩어리가 된다, 모든 사상은 다 한덩어리 된다,  다만 한덩어리 되지 않는 것은 뭐 있느냐.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울 터이라,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울 것이라.

 어린양만 세계 통일된 이 통일과 맞서서 대립의 자리에 있지, 어린양만 거기에  포섭되지 않고 거기에 포함되지 않고 가담되지 않았지 어린양 외에는 모든 것이  다 통일됐다,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 중에 또 하나입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땅 위에 있는 힘이라고는 전부가 다 통일이  돼야 된다 하는 것은 절실히 느끼고 있고 다 이를 위해서 주장을 하면 그 언권이  셉니다. 어디서든지 우리는 지상에 있는 전 힘을 다 합하자 하는 이 말은  속으로는 음침한 생각을 가질지라도 외부적으로는 옳다, 그말이 옳다 다 찬성을  합니다.

 이래서 옛날 바벨에서 탑을 쌓을 때에, 홍수 후 바벨탑 쌓을 때에 그때에 모든  언어와 사상과 목적과 소망이 다 하나 됐던 그것이 이제 다시 예수님 재림  때에는 그것이 이루어집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사상과 주의와 목적과 그 방편들이 다 하나가  되어서 통일될 것이라, 통일되는데 그때 다만 어린양만이 거기에 포함되지  아니하고 열 뿔로 더불어 이 짐승으로 더불어 싸우는데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이랬습니다. 어린양은 한덩어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렇게 전 인류와 모든 존재들이 힘으로도 사상으로도 통일되는 이  통일이 어디다가 뿌리를 박는가. 사랑에다 뿌리를 박고 통일이 됩니다. 이러기에  말세가 되면 사랑에 반대되는 것은 아주 그것은 용납되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이러기에 사랑만을 모든 사람들이 위주로 해 가지고 전체가 통일이 되는데,  사랑으로 통일이 되는데, 화목으로 통일되자, 화친으로 통일되자, 봉사로  통일되자, 협조로 통일되자. 이렇게 통일이 되는데 이것이 어린양과 대립이  됩니다. 어린양과는 대립이 되고 또 어린양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기  때문에 저를 이길 것이라.

 그런데 어린양에게 속한 무리가 약간 있으니 어떤 것이 있느냐. 「부르심을  입고 빼심을 받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진실한 자들은 어린양 편에서  가지고 이깁니다.

 거기에 부르심을 입었다 말은 중생을 말하고 빼심을 받았다 말은 선택을  말하고, 그런데 선택받고 중생돼 예수 믿어도 진실을 잊어버린 자는, 다  세계통일 우주 통일하자는 이것이 지금 한국에는 보면 뭐 그전에는 I.C.C.C도  나오고 나왔는데 그것은 중간파요 칼측은 우주가 다 통일되자 하는 그런 포부를  가진 그 사상인데 그 사상은 000이 사상보다 좀 더 큽니다.

 이래서 모두가 다 합치되어 나가는데 예수님만이 여기에 일치되지를 아니하고,  또 택함을 입고 중생된 자가 예수 믿는 생활을 해서 교회가 많지마는 그 진실한  사람 진실한 개인, 그 진실한 개인은 어린양 편이 되어 가지고 이 우주통일,  세계통일, 사상통일을, 모든 힘 통일, 전 통일된 이 통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기지마는 진실이 없는 자는 다 여기에 삼켜지게 된다.

 여기에 삼켜지지 않으려고 하면 몇이든지 죽이게 된다, 매매를 못하게 한다,  이마에나 오른손에나 표를 받지 않은 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 다 목 베임을  받게 한다.

 그런데 그 세력을, 세력의 이름을 말했는데 그 이름이 666이다. 그런데 그  숫자는, 곧 666이라는 숫자는 사람의 수요 짐승의 수다, 세상의 수요 인간의  수다, 인본이다, 암만 해봤자 666, 6666, 6이지 7수는 아니다. 하나님의 수에는  나아가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수에 다음에는 간다. 이것이, 하나님이 안 계시면  이것이 왕이 될 터인데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안된다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다 사랑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세에는 사랑과 사랑을 분별하는 이것을 분별치 못하면 저는  말의 권위를 다 가졌어도, 그 교파가 말의 권위를 다 가졌어도, 지식의 권위를  다 가졌어도,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으면 됐지, 아니오.

 바울이 말하기를 「율법으로서는 내가 흠이 없는 사람이라」 그가 오랜  신앙생활 한지 노경에 말했습니다. 그가 거짓말하는 분은 아니오. 율법으로서는  흠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생활을 했지마는 그 사람이 그때는 생명이  없었습니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적의 입장에서, 하나님에게 가장 열심 있으나  하나님에 적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적해서 예수님을 대적한, 스데반을 죽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어도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소유와  몸을 다 희생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자기에게도 무익하고 남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다, 이러니 이 사랑이 무엇인가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해독이 제일 많은 것이 사랑이요 생명과 행복이 평강이 제일 많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이 둘이니 한 사랑은 죽은 사랑이요 죽이는  사랑이요 독소가 있는 사랑이요, 한 사랑은 산 사랑이요 살리는 사랑이요 진리와  은혜가 충만한 사랑입니다.

 이렇게 해독이 있는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첫째 아담이 가졌던 사랑이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나타난 사랑입니다. 생명의 산 사랑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사랑입니다.

 이러기에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그말은 인간 사랑이 아니라 그말이오. 인간 사랑이 아니라  말이오. 「하나님께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우리를 구속 하실려고 그  외아들을 보내 주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나님을 사랑이시라 사랑함에  온전함을 이루라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의 염려가  있음이라 온전한 사랑은 심판을 이기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랑, 이  사랑이 둘째 아담의 사랑입니다.

 며칠전에 보니까 의령에서 62명을 그 사람이 총살을 했는데 그것이 무엇이 그런  고장을 낸 것인 줄 압니까. 사랑이 고장을 냈어. 서로 너 아니면 나 못살고 나  아니면 너 못산다는 사랑, 첫째 아담의 사랑이 그것이 지혜가 없고 능력이  없으니까 사랑하는 대상도 아랫도리를 쏘아서 뭐 병신이 됐지, 또 자기는 그만  자기 생명을 자기가 끊었지. 많은 생명을 끊었지. 그 지혜가 유한하기 때문에,  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에, 또 권위가 유한하기 때문에 그렇게 좋던 놈의 사랑이  당장에 변해지니까 그 변동을 인해서 생겨졌다 말이오. 그러기에 사랑은  전지전능 영원 완전 불변 이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언젠가 끊어질  날이 있고 떨어질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산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사랑인데, 이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이지 다른 것은 가지지를 못합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시요 하나님의 모든 속성은 이 사랑이 그때 그때  상대방을 향하여 나타나기를 지식으로도 나타나고, 진실로도 나타나고,  거룩으로도 나타나고, 의로도 나타났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십니다.

 이런데 이 사랑은 인간에게는 없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왔으니  막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신데 예수 그리스도인 이 사랑이 이렇게 저렇게 모든 존재들을 향하여  나타날 때에는 이렇게도 나타나고 저렇게도 나타났는데 이 사랑에서 첫째 번져  나온 사랑이 신구약 66권 도리요 문서계시가 하나님의 사랑이 비추어 나온  것입니다. 또 이 사랑 속에는 영감이 내재해 가지고 역사하여 이 지식도 다 산  지식이요 전지전능의 지식이오. 문서계시 이거 하나님의 사랑인데 이 지식이, 이  진리가 없는 가운데 영계와 물질계를 창조하실 때에 창조는 하나님이 하시고  창조하실 때에 창조한 그 실지의 시공자는 누구인가. 누가 영계와 물질계를 창조  시공을 했는가. 누가 창조했는가. 창조주는 하나님이시요 시공자는 진리입니다.

진리가 시공했어.

 이렇게 이 문서계시는 영감과 진리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이 문서계시는  어떤 사랑이 이렇게 퍼져 나온 것이 문서계시요 영감인가. 십자가의 대속,  예수님의 대속, 대형의 사죄 대행의 칭의 대화천의 새생명, 예수님의 영원하신  대속과 구속이 하나님의 사랑이오. 하나님의 사랑이 도성인신으로,  신인양성일위이신 하나님이 나타났으니, 「하나님을 본 자가 없으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장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라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의 형상을 덧입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신인양성일위로 온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이 이 물질계에  나타난 제일 첫사랑의 뭉텅이입니다. 사랑의 뭉텅이. 이 뭉텅이가 세 가지 대속  구속으로 퍼져 나와 이것이 십자가의 대속이요 이 십자가의 대속이 널리 퍼져  나왔으니 66권 도리요 곧 영감이십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시기 전에 구약은 있었는데 그 무슨 말이냐. 구약을 똑똑히  보면 구약은 미래에 십자가에 못 박히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다 구약이요  신구약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퍼져 나온 사랑이  이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여기 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하나님이 사람되어 온 신인양성일위 이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다,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왔고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을 거머쥐어야 우리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에 양성일위로서 오셨다, 이것이  사랑인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신인양성일위의 이 은총이, 십자가의  대속의 이 구속의 은총이 말 속에 없으면 다 죽은 말이다.

 원자탄이 크다고 하지마는 아니오. 그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닙니다. 원자탄보다  센 놈이 있습니다. 원자한보다 센 놈이 뭐입니까. 센 놈이 입펀치요 말입니다.

원자탄 그까짓 것은 말에 따라서 이리 가고 저리 가고 그것이 말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말이 다 정권을 잡았고 말이 다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대대로 싸우며 나왔는데 보면 그 일본나라를 물리친 그 모든  명사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데 그들이 무슨 조화를 가지고 했다 뭐 했다 하는  그 말이 그걸 신화로 붙여야 맛이 있기 때문에 붙인 것이지 실은 그거 아닙니다.

그것이 전부 입펀치요 사명당이 얼음 얼게 해 줬다는 그것이 얼음 얼게 한 것  아닙니다. 그때는 저 중국에서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일본에  머리되는 사람이 사명당을 만나 보니까 선생님 중에 선생님이니 그들은 의리가  있어서 선생님을 배척하지 못합니다. 그때는 거기에 다 속한 사람입니다.

 그 선생님이 왔는데, 그 선생님이 왔으니 그 선생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고  그 선생님에게 복종하고 선생님을 존대해야 되겠는데, 선생님을 존대해야  되겠으니 그 선생님을 거역할 수 없는데 그 때에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그때에  이 모든 무리들이 지금 대립되어 가지고 있는 데에 사명 받아온 이 선생님은 안  죽이고 어쨌든지 살려 보내야 되겠으니 보내기 위해서 저희들이 다 조화를  부려서 거짓말을 꾸며 가지고 제일 조화를 부리는 분이니 이분을 해쳤다가는  큰일난다 해 가지고 그렇게 된거요. 그거 전부 다 입펀치요, 다.

 이러기 때문에 세계에서 지금도 말이 제일입니다. 전쟁이 나느냐 안 나느냐,  정상회담이라, 미국의 대가리하고 소련의 대가리하고 대가리들이 모인다 이렇게  말한 그 대가리 모임에서 원자탄은 왔다 갔다 합니다. 모든 신무기들은 왔다  갔다, 있다 없다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의 권위가 제일 있소. 이렇지마는 그 속에 사랑 없으면  헛일이다, 사랑 없으면 헛일이다, 무엇이 없으면 헛일이라, 껍데기로 말하면  신구약 66권의 성경적이 아니면 헛일이다, 성경적이라도 소용없다, 성경적인  속에 3대 대속이 그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 』대 대속 속에 신인양성일위가 그  속에 들어 있어 주장이 되어 있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다 생명 없다 죽은  것이다.

 이랬는데 교회가 얼마나 타락했든지 사랑과 사랑을 혼돈해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은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것을 인간 사랑과 바꾸어  가지고 인간 사랑이 교회를 주장하고 세계를 주장하게 했으니 오늘의 교회는 참  비참하고 가련합니다.

 「성전 밖마당을 측량하지 말아라」 외부에서 볼 때에는 성전이지, 성전 울타리  안이니까 성전이지, 안에서 들여다보면 성전 밖마당은 이 예배당으로 보면  예배당만 하고 「그 안에 있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만 간섭하라」 그것은  성전이 예배당만 하다고 비하면, 밖에서 보는 성전이 예배당만 하다고 비하면  밖마당은 이 예배당이 요 안에 있는 성전은 이 책상보다 작습니다.

 그러면 이 책상이 이 예배당 몇 십분지 일이나 되겠습니까, 몇백분지 일이나  되겠습니까. 이만치 말세에 교회는 참교회는 교회라고 인정하는 것의 몇백분지  일밖에 안 된다, 그것만 측량해라, 그밖의 것은 다 내가 내어줬다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세에는 사랑과 사랑의 구별이 이것이 제일 무섭고 어려운  것입니다. 첫째 아담의 사랑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위주로 그만  바라보던 것이 주인을 바꿨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고 인간이 주인 됐소.

왜 인간이 주인 됐던가. 인간이 주인 되게 된 그 동기는 배암이 와서 꾀워서  뱀에게 설복 당했다.

 이러니까 그 사랑이 생겨질 때에 배암이 갖다 줘서, 배암에게 처음에 접선돼  가지고 그 사랑이 생겨졌고 뱀에게 접선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 배반하고 네가  하나님 된다는 그 인간이 주장이 되어 가지고, 배암이 준 사랑이 하와 속에 와  가지고 이 사랑이 들어와서 내주하게 됐고 내주한 이것이 이 사랑의 활동이  뭐이냐. 보기 좋은 것, 먹기 좋은 것, 탐스러운 것, 지혜 얻을 만한 것  이것으로서 행동해 나갑니다. 배암 사랑은 이것으로 행동해 나가요. 여러분들  눈을 뜨면 환하게 알지. 배암의 사랑은 이것으로 배암의 사랑이 활동해 나가는데  배암의 사랑은 배암의 사랑이 들어오고 나니까 인간이 제가 주장이오.

 이러기에 에큐메니칼이니, 뭐 엑스포 74니, 빌리그레함 운동이니, 산업전도니,  세계선교협회니, 대학선교니 말하는 것 뭐이든지, 만교회운동이니 무엇이든지  배암의 사랑인지 하나님의 사랑인지 그걸 모르거든 그 중심과 주체가 누가 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지 하나님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는지  보라.

 왜 6·25때에 왜 그렇게 되었느냐. 이용을 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이용당했으면 죽었지. 하나님 배반하지 않지. 이제까지 하나님을 이용해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들에게 소속했지. 신사참배도 그렇지. 이용해  먹느냐 안해 먹느냐. 그러면 그것이 또 그래도 모르느냐. 껍데기를 봐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고 지혜 얻을 만하고 이 네 가지로 활동하느니라.

네 가지로 활동하고 있느니라 그렇지, 세상이 보고 좋다 하는 껍데기 아름다운  것, 외모의 미를 보고 미를 중심해서 활동하지, 먹음직하지, 취하면 참  유익되겠다 해서, 취하면 유익되겠다, 주는 것이 다니고 제가 죽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취하는 것이지. 다 속을 들여다 보면 그것이 전부 그래 가지고 이  운동을 해 가지고 전부 제것 만들려 하는 것입니다. 흉측한 것입니다. 흉측한  것.

 내가 어떻다 해서 한번 가서 그 시간 참여해서 처음에 보니까 이렇게 수많은  돈을 들여 가지고 움직여서 그때에는, 지금 인제 뭐 5백만이 모였다던가, 그  뒤에는 내가 가지 않았어. 그때 한시간 모인 사람이 50만이라 했는데 50만이면  참 어마어마 합니다. 여의도 광장에 꽉 찼습니다. 찼는데 설교하는 것은 우리  주일학교 학생 시켜 놓으면 다 그보다 낫게 해. 한 마디도, 생명에 대한 말씀은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도 없고 전부 세상 운동이라. 세상 운동 말만 해,  이만하면 알 수 있지.

 거기서 나는 단정지웠습니다. 이는 완전히 첫째 아담의 사랑운동이요  배암운동이라 하는 것을, 그렇게 세계가 움직이는데 그런 말을 어떻게 하겠소.

무슨 심판을 받고 무슨 정죄를 받으려고. 그 많은 자 모였는데 가면 죽을  것입니다. 그때는 대통령도 거기 나와서 참석을 하고, 미국의 대통령이 특별한  친서를 써 가지고 보내고 야단입니다.

 여러분들 정신 차려야 됩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이것만 취하면 되겠다.

먹음직하고 아주 탐스럽고 지혜를 얻을 만하고, 아담의 사랑이 이렇게  활동했습니다. 활동해 가지고 이 사랑이 들어서 첫째 전달된 전염된 것이 어디  전달됐느냐. 아담에게 전염됐습니다.

 아담이 이 사랑 받고 보니 하나님 버리고 하와 사랑해서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안 먹을 수 없어. 또 하와는 이 선악과 먹고 나서 저만 먹을 수 없어 사랑하는  자를 먹였어. 여기에서부터 사랑은 변질돼서 그의 본능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타락 전 아담 하와가 사랑한 그 사랑 하나님의 사랑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아니오 인간의 사랑인데 그때는 타락하지 않은 죽지 아니한 살아 있는  사랑이었소. 그 사랑이 죽었습니다.

 그 사랑이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오. 하나님의 사랑 아니오. 하나님의 사랑  아닙니다. 타락 전 아담 하와가 사랑한 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오. 이  교리와 신조를 세계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얼마 얼마 지나가면 점점 더 껍데기가 나타납니다. 이러기에  사랑이 일치되어 있어. 이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사랑은 까뭉케고 인간의  사랑이 다 위를 덮고 있어. 파묻고 이와같이 지금 포위를 하고 있어. 하나님의  사랑이 포위를 당합니까. 당하지 않습니다.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롭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고, 깨끗한 자는 그대로  깨끗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습니다. 눈을 뜨고 보면 환하이 보여져.

성경이라는 맞보기 안경을 쓰고 보라, 너는 눈먼 자 되어 있으니 내게서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성경으로 씻고 영감을 네가 받아 봐라, 네가 이 말씀을  사모해서 네 속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이를 사모하는 것이 합당하니라,  가하니라. 샛별이 뭐이요. 영감입니다. 영감 오기 전에 뭐이 됩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랑과 사랑을 혼돈하면 안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위주가 아니라면, 그거 어떤 말에도 그 동기가 성경적인  것, 그 방편이 성경적인 것, 목적이 성경적인 것, 결과가 성경적인 것, 아니  성경적인 것도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소용이 없어 그 속에 또 성경적인  속에 사랑, 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이 있어야 돼.

 그러기에 자기가 사죄 받았으니 사죄를 보수하려고, 칭의를 보수하려고,  하나님과 화친을 보수하려고 애를 쓰는 이것이 무엇을 찾는 것이라고, 사랑을  찾는 것이라. 사랑을 찾다가 사랑을 만난 것은 무엇을 만난 것이 사랑을 만난  것이라고, 대속을 내게 보수시키고 이 대속으로 전달되어 나가도록 하는 이  능력의 성령의 권능이 오면 이 사랑을 만난 것입니다. 사랑을 만났어. 이 사랑을  자기 속에 영접하는 것은 이 신인양성일위의 인격으로 인하여서 세 가지 대속을  받아 신인양성일위는 안되지마는 신인양 성일위로 인한 신인양성 뭐이 되어야  돼. 신인양성 뭐이 되어야 돼. 결합이 되어야 돼. 신인양성 결합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이 자기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4절 이하로 「사랑은 오래 참고」 이것이 좋으니까 그것 만 하려고  애를 쓰지마는 그것은 우리 할일이 아니라. 오래 참는 것도 온유도 겸손도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려고 하는 것도 그걸 우리가 하려고 애쓰는 것  아닙니다. 그거 하려고 애쓰면 껍데기로 나가기 쉽습니다.

 그거 하려고 애쓸 일이 아니고 그 속에 사랑을 영접하려고 애를 쓰면 영접된  사랑이 그것을 해야 산 것이지 영접된 사랑이 없이 그것을 하는 것은 똑 같이  한자리에서 신앙생활 하는데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외식이오. 그것이 생명 없는 죽은 교회요. 앞으로 계속을 좀  더 할 것입니다. 이것이 며칠 됐지요. 벌써 언제부터요. 지난 주일부터 시작해  가지고 계속 오늘까지 해 나오고 있는데 말씀을 듣지 못하고 제가 무슨 신앙생활  하겠소. 새벽기도 나오지 않은, 그 깜깜해 가지고 지금 주인도 바꾸지 못하고  그래 가치고 있는데 뭐이 하겠습니까. 주인 바꾸기 전에는 구원은 안됩니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이요 모래 위에 짓는 집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겨요.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깨달아서 자기 속에 이 지식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이 사람 돼야 됩니다. 그러면 두렵지 않아요.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요,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요 우리는 예수님의  이 중보자로 말미암아 신인양성일위는 되지 않지마는 신인양성결합으로 일행은  돼야 됩니다. 신인양성일행. 일행. 이러면 두려울 것이 없어. 세상이 돕는데 뭣  때문에 두렵겠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883 사람의 중심/ 사무엘상 10장 6절-8절/ 881205월새 선지자 2015.11.02
882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3절/ 790715주후 선지자 2015.11.02
881 사랑/ 마태복음 24장 12절-13절/ 790711수새 선지자 2015.11.02
880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790706금야 선지자 2015.11.02
879 사랑/ 마태복음 24장 12절-13절/ 790710화새 선지자 2015.11.02
878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820418주전 선지자 2015.11.02
877 사랑/ 요한일서 4장 10절-11절/ 790715주전 선지자 2015.11.02
876 사랑/ 요한복음 15장 9절-11절/ 811029목새 선지자 2015.11.02
875 사랑/ 마태복음 24장 3절-14절/ 790709월새 선지자 2015.11.02
874 사랑 알맹이/ 고린도전서 13장 4절-13절/ 820427화새 선지자 2015.11.02
873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라/ 누가복음10장25절-28절/ 1988. 8. 11. 오전집회 선지자 2015.11.02
872 사랑과 희생으로 영광,기쁨,평화/ 누가복음 2장 14절/ 871226토새 선지자 2015.11.03
871 사랑관/ 베드로전서 1장 23절-25절/ 870619금새 선지자 2015.11.03
870 사랑연결 의사연결 활동연결/ 요한복음 15장 9절-17절/860316주후 선지자 2015.11.03
869 사랑으로 인한 세가지 희생/ 마태복음 16장 24절/ 840420금새 선지자 2015.11.03
» 사랑의 고귀성과 구별/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820428수새 선지자 2015.11.03
867 사랑의 본성과 역사/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 880723토새 선지자 2015.11.03
866 사랑의 봉사/ 요한 복음 3장 16절/ 791225화새 선지자 2015.11.03
865 사랑의 봉사/ 출애굽기 12장 14절/ 791124토새 선지자 2015.11.03
864 사랑의 빚/ 로마서 1장 14절/ 830713수야 선지자 201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