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본성과 역사

 

1988. 7. 23. 토새벽

 

본문: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사랑은 두 종류인데 땅에 속한 사랑, 인간 사랑, 배암 사랑, 곧 죽은 사랑 죽이는  사랑 이 사랑이 하나 있으니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것인데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사랑의 알맹이 곧 생명은 떠났습니다.

생명은 떠나고 생명 없는 사랑이 사람들에게 해를 계속 끼치는데 이 사랑의,  알맹이가 변했기 때문에 이 사랑은 변질된 사랑이요 곧 죽이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알맹이는 무엇이 알맹이 됐는고 하니 악령, 악성, 악습이 사랑의  알맹이가 되고 근본 사랑의 알맹이인 죄가 없고 의롭고 하나님과 화친된 이 세  가지 알맹이는 없어졌습니다. 범죄로 인해서 그 절단돼서 없어졌습니다.

이래서, 변질돼서 알맹이가 다른 그 사랑이 하나 있으니 곧 인간 사랑, 육체의  사랑, 세상 사랑, 배암의 사랑, 마귀 사랑, 순전히 죽이는 것 밖에 없는 사랑이  하나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이 우리들에게 나타났으니 곧 사죄, 칭의, 화친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사랑은 사죄, 칭의, 화친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역사를 할 때에 그때에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사랑을 주셨는데 그 사랑이 범죄로 인해서 생명이 떠나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서 생명 없는 변질된 사망의 사랑이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의 사랑은  그 사랑이 순전히 악입니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내용이 돼 가지고 있어서  껍데기 작용은 사랑, 희생, 또 봉사, 주는 것, 또 상대방이 행복되기를 원하는  것까지도 부모의 사랑은 있습니다.

 그러나, 속에 그 생명의 힘이 사망이 그의 힘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령,  악성, 악습 이것이 그 속에 사랑의 힘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은  언제든지 악령적이요 악성적이요 악습적이기 때문에 그 전부는 다 사망 아래에  있고 항상 사망 운동만합니다. 이래서 범죄운동만 하고 사망 운동만 하는 것이  육의 사랑입니다.

이래서 혹 생각할 때에 이 껍데기 사랑 외부의 이 사랑, 이 사랑이 이것이 혹  속에 알맹이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그 안에 집어넣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이 되기 쉽습니다. 이래서 이 사랑은 속에 알맹이만 갈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이 돼지는데 이 사랑은 완전히 못쓰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알맹이를 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랑은 악령의 것이 벌써 되어져 가지고 그 본질이 그것이 악이요. 또 본성이  악입니다. 전부이 본성도 피조물 중심이요 또 그 본질도 피조물 본질로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은 순전히 신적 요소입니다. 신적 요소요  인적 요소가 아닙니다.

이래서, 혹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이 껍데기 사랑 이 세상이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랑 이 사랑도 그것이 필요가 있지 않느냐? 그 사랑을 가지고 속에 차차 차차  하나님의 사랑을 그 속에 내부적으로 조성해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사람들이 착각하기 쉽습니다.

아주 은밀히 말하면 이게 껍데기 사랑이라고 하는 인간사랑, 배암의 사랑, 모든  육의 사랑, 세상 사랑 이 사랑은 그 본질과 본성이 악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랑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립입니다. 대립이 돼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도 아니하고 또 받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또 본질과 본성이 정반대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이 육의 사랑이 하나님의 그 사랑의 알맹이를 채우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가지는데 고것이 인본주의요 절대 안됩니다. 요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곧 하나님의 본성이요 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으니 곧 그 사랑은 사죄, 칭의, 화친으로서 완전히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과 행복만 가득 차 있고 거게 다른 흠이나 점이나 그런 것은  전연히 없는 순전한 생명이요 순전한 평강이요 순전한 부강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에 이 사랑이 어떤 역사로 우리에게 나타났는가?  이 사랑이 나타날 때 이 사랑의 외모가 어떤 사랑으로 어떤 것으로 나타났던가?  나타난 것은 도성인신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신인 양성 일위로 나타나서 있는  전부를 희생하는 그 희생으로 나타났고,' 또 수고와 고난으로 나타났고, 또 길이  참으시는 것으로 나타났고, 마지막에는 다시 피조물을 입고 부활하시는 이 부활로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을 처음부터 성령과 진리는 이 사랑과 함께 했습니다. 사랑은  성령의 본성입니다. 또 성령은 사랑이십니다. 성부도 사랑이요 성자도 사랑이요  성령도 사랑이십니다.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그 본성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나타날 때에 성령으로 나타났고 진리로 나타나 가지고 우리에게 이  사죄, 칭의, 화친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나타난  사랑의 본체는 곧 사죄, 칭의, 화친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의 근본인 이 사랑의  본체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속성이신 하나님의 본성이요 곧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에 이 사랑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어떤  역사를 했는가?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역사가 첫째가 하나님의 그  목적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택한 예택의 역사로 나타났고, 그 후에  이제 도성인신의 역사로 나타났고, 또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희생하는 역사로  나타났고, 주는 역사로 나타났고,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 역사로  나타나서 우리에게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사랑이 우리에게 와서 이 사랑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역사할 때에 당신이 있는 전부를 다 희생하는 사랑으로, 또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는 사랑으로, 또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주는  사랑으로, 또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다 희생으로 주시고, 영원히 우리들이 다  행복되기를 기다리는 소망하는 그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 자체가 역사해서 우리에게 와서 역사할라고 그  사랑 자체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는 그 역사가 곧 희생이요 봉사요 또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는 그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랑은 그것이 근본 하나님에게서 타락된 사랑인데 그 사랑이  시발을 해 가지고 그 사랑이 역사를 해서 모든 작용을 하는데 시작이 그 사랑  같으나 실상은 내용은 그것이 사랑이 시작이 아니고 속에 악령, 악성, 악습 그것이  속에서 작용해 가지고 그것이 땅에 있는 사랑의 말하자면 힘입니다.

 땅의 사랑의 힘이 돼 가지고 그 힘이 이제 땅에 있는 사랑을 이것을 작용해  가지고서 나타냅니다. 그러고 또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가 또  역사해 가지고서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한 것도 그 사랑이 역사하는  역사요, 또 예정 창조하는 것도 그 사랑이 역사한 역사요, 도성인신 하신 것도 그  사랑이 역사한 역사요, 또 사활의 대속하신 것도 그 사랑이 역사하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속에 내용이 되고 본체가 돼 가지고서 활동하는 그것이  외부에 사랑으로 또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으로 또 희생으로 봉사로 인내로  그래 가지고서 이 사랑이 차차 차차 우리에게 오기를 시작해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온전을 이루었으니 온전을 이룬 그 사랑이 곧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왜 이 말을 자꾸 하느냐 하면은, 그러면 이 껍데기사랑이  필요하니까 껍데기 사랑을 해 가지고서 알맹이 사랑이 차차차차 생겨져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 세상에 다른 모든 식물들은 껍데기가 생겨 가지고  알맹이가 생겨집니다. 그러나 실은 껍데기가 생겨 가지고 알맹이가 생겨지는 것이  아니고 속에 생명 자체가 그 껍데기도 만들고 알맹이도 만들어 가지고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 사랑을,  우리가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내가 사랑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이 가진 세상 사랑 그것을 가지고서 차차 차차 하나님의 사랑화 시키도록  이렇게 세상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바꾸어 교체해야 되겠다 그런  사람들이 생각을 가지는 그런 잘못이 많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서 뭐 행정이 틀렸느니 방편이 틀렸느니 하면서 다  기어나가는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는 근본부터 다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사랑에도 봉사가 있고 또  사랑하는 것도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것도 있고 또 소망하는 것도  있고 봉사하는 것도 있고 희생하는 것도 있고 수고하는 것도 있고 또 참고  견디는 것도 있습니다.

 있는 그것은 속에 알맹이가 알맹이 힘으로서 속에 이 사랑의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서 나타나는 그 역사가 희생이 되고 또 사랑이 되고 인내가 되고 행복을  비는 소망이 되고 이래 돼지는 것이지 껍데기가 생겨져 가지고서 알맹이가 되는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할 때에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함으로써 차차  차차 이 사죄, 칭의, 화친의 구원을 주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가지기  쉬운데 사랑함으로써 먼저 사랑함으로 사랑하고 봉사하고 이래 가지고서 속에  생명인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산 사랑을 그 속에다 넣어 줄라고 이렇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이 땅에 속한 사랑은 주인이 있습니다. 그 주인은 악령이  주인이요 악성이 주인이요 악습이 주인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절대 뺏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아주 그 사랑을 가지고서 내가 이거 육의 사랑 가지고서 신령한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차차 교체하면 될 것이지 않느냐, 바꾸면 되지 않느냐,  그리 자꾸 진출되고 성장되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사람들이 계산하는데 그것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아야 됩니다. 그것은 그 주인이 있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에 사랑함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거, 속에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고 외부에 나타나는 사랑을 말하는데 서로 사랑함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하는 그것이 속에서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참 사랑을 가지고 그  사람을 사랑해서 구원하겠다는 이 참 사랑이 속에서 역사해 가지고서 그 참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기 위해서 희생도 하고, 봉사도하고 수고도 하고 또 외부에  나타나는 사랑도 해야 되지, 그것이 동기가 되고 그것이 시발이 되고 그것이  원인이 돼 가지고 되어지는 것이라야 이루어지지 이 땅에 속한 사랑이 동기가  되고 시발이 돼 가지고서 그것을 저 가서 중간에 가 가지고서 교체할라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밀히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사랑이이 세상  사랑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차차 성장되고 진출된다 전진된다 향상된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마귀에게 벌써 점령하고 속는 것입니다. 고 묘하게  하나님의 사랑인 사죄, 칭의, 화친,  이 벌로 들으면 몰라요. 이거 모르는 사람은 지금 우리 교회에 아주 유력한 그  성직들을 가진 사람이 이 도의 속에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 있습니다. 앵무새같이  뭐 알기도 많이 알고 증거도 잘하지마는 이 도를 아직까지 받지 못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둔해도 받은 사람 있고 무식해도 받은 사람이 있다  그거야.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이 사랑의 역사가 나타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하는 역사가 나타날 때에 사랑도 하고 봉사도 하고 희생도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능력은 뭐인고 하니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역사해서 나타나는 그 나타남이 희생도 봉사도 수고도 인내도  나타나는 거 있고 또 사람들이 이 땅에 속한 이 사랑을 가지고서이래 사랑하다가  나중에 하나님의 사랑 사죄, 칭의, 화친의 알맹이가 생겨지는 거 있으니까 이리  가도 되고 저리 가도 된다고 요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저게 이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해 가지고서 이 인간 사랑과 같은 외부를 가지게 되는 요것과 또  인간 사랑이 와 가지고서내용을 차지하는 걸로 그렇게 오해하고 착각하게 되는데  고거는 엄연히 아주 다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와 가지고서 역사할 때에 요거와 마주치면 요게 죽어져  버리고 요 사랑이 성립이 됨으로써, 그것 같지마는서도 실은 이것은 죽어져  버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승리를 해 가지고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하자면 땅에 있는 사랑은 이것은 결과적으로 말하면 완전히  죽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역사하는 것은 땅에 있는 사랑은 완전히 죽고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해 가지고서 나타나니까 내나 옛날 그거같이 보이지마는  서도 그것은 아니고 완전히 이거는 근본적으로 본질과 본성이 다른 사죄, 칭의,  화친의 그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 가지고서 이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인간의 사랑이 죽은 것만치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만치 인간의 사랑이 죽습니다. 이래서 이  사랑은 하나는 한 사랑은 죽어지고 한 사랑은 차차 점령해 가지고서 이렇게  성장돼서 나가게 됩니다.

 이런데, 이것을 미리 '육체의 사랑을 다 죽이라' 이거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역사하라' 이리 되면은 이 교체점에 있어서 이 절단이 돼지고 그 일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지 않고 이것을 유지시키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와 가지고서 안에서 역사해서 이것을 점령하는데 따라서 이건 차차 차차  죽어지게 됩니다. 죽어지고 그 이용물이 되고 그 밥이 되어지고 자꾸 죽어지고  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게됩니다.

 이래서 하나 예를 들면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함으로써 그뭐 그보다 더 큰  희생이 없고, 그보다 더 큰 희생이 없고 더 큰 수고가 없고 더 많은 것을 준 일이  없고 또 우리에게 행복되기를 우리에게 희망을 그렇게 크게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랑이 땅에 없습니다.

 이러나, 이 예수님이 가지신 그 사랑의 외부는 내용이 하나님의 사랑, 죄 없게,  의롭게, 하나님과 완전한 화친을 가지게 하는 그 사랑이 역사 해 가지고서 외부에  이 모든 도성인신도 시켰고 또 사활의 대속도 시켰고 또 영원히 책임지고 우리를  구원하는 그 역사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은 그러했는데 예를 들어서, 그로써는 또 잘 모르면, 어떤  성자가 있습니다. 성자의 그 사랑이 성자가 아주 사랑의 성자, 그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라, 예를 들어서 사도 요한이는 사랑의 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사도 요한이가 가진 그 사랑이 내나 부정 모혈로 된 이 땅에 속한  사랑이 그것이 성장돼 가지고서 내용에 하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알맹이를 가진  그 사랑이었는가? 그 사랑이었는가! 사도 요한이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 가졌던  사랑 그 모든 인간 사랑을 가졌던 그 사랑이 변화가 됐는가? 그 사랑이 진화가  됐는가? 그 사랑이 성장이 됐는가? 그 사랑이 개량이 됐는가?  또, 그렇지 안하면 순전히 그 사랑은 다 죽어져서 없어져 버리고 이제 하나님의  사랑이 와 가지고 그 사랑이 차차 차차 역사하는데 따라서 이 사랑이 죽어지고  이 사랑의 능력으로 역사해 가지고서 이제 사도 요한이 사랑의 사도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 사랑이 이루어졌던가 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구별을 하면은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사죄, 칭의, 화친 그것이 우리에게 온 사랑인데 그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에서 그런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나타나서  우리가 그 사랑으로 차차 온전함을 이루어 가는데,  그러면,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마음을 어데다가  다하며 뜻을 어데다가 다하며 힘과 목숨을 어데다가 다할 것인가?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는 데에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에  다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크시기 때문에 그분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라,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라,  힘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 할 때에 우리자 무엇을, 하나님을 사랑해 줄  수가 있는 줄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무한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분을 도와 줄 수도 없고 그분을  사랑할 수도 없고 또 그분을 위할 수도 없고 그분을 유리하게 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이러니까,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말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 말입니다.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라. 네가  마음도 목숨도 뜻도 힘도 다 하나님의 사랑을 네가 받아 가지는 데에 다  투자해라.

 그래서, 네 마음 전부는 사죄의 마음이 되고 칭의의 마음이 되고 화친의 마음이  되고 또 네 생명 전부는 사죄의 생명 또 칭의의 생명 화친의 생명이 되고 네  뜻이나 힘이나 그 전부가 다 사죄의 뜻과 힘이 되고 칭의의 뜻과 힘이 되고  화친의 뜻과 힘이 되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기념한다 말은 '나를 기념해라, 이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기념하라는 것은 그때 있던 그 사실을 그 후에 계속해서 나타내는 것을  가리켜서 기념이라 그럽니다. 어떤 사람이 살았을 때에 된 그 이력을, 그것을  사후에도 그대로 계속해서 그 행사를 가지는 것을 가리켜서 기념이라 하는데,  이제 사죄, 칭의, 화친 그것을 계속 가지고 사죄, 칭의, 화친 이 사랑을 계속 내가  가지고 이 계속 이 사랑 계속 생활 해라. 이 사랑을 계속 네가 받아 가지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 이 셋을 계속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 받다가서 받는 일을  치우고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죄를 버릴 때에는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것이요  칭의를 버릴 때에는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역사해서 이 사랑의 빛이 광채가, 이 사랑의  빛이 이 사랑의 광채가 나온 것이 그것이 희생이요 봉사요 수고요 사랑이요  소망이요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이 사랑 자체가 본질적으로 본성적으로  역사하는 그것이 곧 사랑이요 봉사요 희생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하신 것은 무엇이 했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본성의 그 능력이 들어서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것을 해야  되겠나 안 해야 되겠느냐 하는 그런 비판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비판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그 본능이 본성이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이렇게 나타나서 이렇게 봉사로 희생으로  수고로 또 위함으로 화목으로 이렇게 또 온유로 유순으로 이렇게 행복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이래 된 것과 이거와 또 인간의 사랑이 그와 같은 이 꺼풀  가지고서 나타나는 거와 정반대인 것입니다. 하나는 하늘에서 내려왔고 하나는  땅에서, 타락한 것이 땅에서 지금역사하고 있는 것인데 그 사랑은 점점 이제  근본에서 끊겨졌기 때문에 일 년 가면 일 년 간 것만치 죽었고 십 년 가면 십 년  간 것만치 죽어서 결혼의 첫사랑도 일 년이 지나면 그 사랑이 이제 차차 차차  쇠퇴해지고 십 년 가면 이십 년 가면 삼십 년 가다가 마지막에는 그만 죽은  송장으로 완전히 눈물로 바꿔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이 인간의 사랑에, 인간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의 껍데기로  이렇게 보면은 안 됩니다. 인간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알맹이 사랑이 되지 못하고  이 껍데기로 외식 사랑, 외식 사랑으로 되어있는 것인데 이 사랑은 언제든지  인본적이요, 악령적이요, 악성적이요, 악습적이요, 사망적이요, 마귀적이요, 그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와 가지고서 부딪칠 때에  그 사랑의 역사가 와서 부딪치는 것만치 이 사랑은 죽은 자기 때문에 도태를  당해 나갑니다.

 도태를 당해 나가서, 이래서 저거가 결혼의 첫사랑이라는 그것도 그것은 다 땅에  속한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와 가지고서 그 사랑의 역사로 차차 차차 육체의  사랑 인간 사랑 그것이 없어지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히 그것이 바꾸어졌을 때에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안하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저거가 뭐 아무리 물고 빨고 뭐 생명까지 아끼지 안하고 준다고 떠들어 쌓아도  그 사랑은 결국은 사망입니다. 사망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거게 생명이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죄 없이 살도록, 의롭게 살도록, 하나님과 친근하게 살도록  했는데 하나님의 법도를 어김으로 말미암아 끊어졌음으로 이 세 가지가 한목  없어졌습니다. 한목 없어진 것을 예수님이 건설하러 오신 것이 도성인신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도성인신으로 오셨으면 그때 하나님의 사랑을 만들었느냐?  만든 게 아니고 이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이요 영원  자존하는 사랑인데, 자존한 사랑인데 이 사랑이 목적을 정했고 이 사랑이 예정도  창조도 했고 이 사랑이 도성인신했고 이 사랑의 역사가 와 가지고서 사활의  대속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은, 이 하나님의 사랑의 근본이 어뎁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근본이 어뎁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속해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대속해 주셨는데 이 사랑의 근본이 어뎁니까? OOO.

이 근본이 하나님의 본성이십니다. 이 근본이 하나님의 본성이오. 하나님의  본성이신데 곧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이, 본성이 역사해 가지고서 목적도 정했고 또  예정도 창조도 했고 이 본성이 역사해 가지고서 도성인신도 하셨고 또 십자가에  사활의 대속도 하셔 가지고서 이렇게 한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랑은 완전에서, 이  사랑은 완전입니다. 이 사랑의 이름을 말하면 완전이요 영원이오.

 이 사랑이 역사해 가지고서 땅위에 충만하게 돼 가지고 이제 무궁세계에 충만한  것은 이 사랑이 이 사랑의 빛이 가뜩 차 가지고서 되어지는 것이요 땅위에  인간들이 가진 사랑은 털끝만한 것도 거게는 가지는 못하고 다 소멸돼 버리고  맙니다. 죽기 전에 이 사랑이 바꾸어져야합니다. 그런고로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883 사람의 중심/ 사무엘상 10장 6절-8절/ 881205월새 선지자 2015.11.02
882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3절/ 790715주후 선지자 2015.11.02
881 사랑/ 마태복음 24장 12절-13절/ 790711수새 선지자 2015.11.02
880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790706금야 선지자 2015.11.02
879 사랑/ 마태복음 24장 12절-13절/ 790710화새 선지자 2015.11.02
878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820418주전 선지자 2015.11.02
877 사랑/ 요한일서 4장 10절-11절/ 790715주전 선지자 2015.11.02
876 사랑/ 요한복음 15장 9절-11절/ 811029목새 선지자 2015.11.02
875 사랑/ 마태복음 24장 3절-14절/ 790709월새 선지자 2015.11.02
874 사랑 알맹이/ 고린도전서 13장 4절-13절/ 820427화새 선지자 2015.11.02
873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라/ 누가복음10장25절-28절/ 1988. 8. 11. 오전집회 선지자 2015.11.02
872 사랑과 희생으로 영광,기쁨,평화/ 누가복음 2장 14절/ 871226토새 선지자 2015.11.03
871 사랑관/ 베드로전서 1장 23절-25절/ 870619금새 선지자 2015.11.03
870 사랑연결 의사연결 활동연결/ 요한복음 15장 9절-17절/860316주후 선지자 2015.11.03
869 사랑으로 인한 세가지 희생/ 마태복음 16장 24절/ 840420금새 선지자 2015.11.03
868 사랑의 고귀성과 구별/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820428수새 선지자 2015.11.03
» 사랑의 본성과 역사/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 880723토새 선지자 2015.11.03
866 사랑의 봉사/ 요한 복음 3장 16절/ 791225화새 선지자 2015.11.03
865 사랑의 봉사/ 출애굽기 12장 14절/ 791124토새 선지자 2015.11.03
864 사랑의 빚/ 로마서 1장 14절/ 830713수야 선지자 201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