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봉사

 

1979. 11. 24. 토요일 새벽

 

본문: 출애굽기 12장 14절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선지자선교회 이 절기는 유월절 절기인데 환난 절기요 곧 구원절기입니다. 지낸 밤에 성도들은  자기가 만든 환난에서 망하고 자기가 만든 환난에서 흥하게 되는 이 두 종류의  환난이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백성을  구원할 수가 없고 또 하나님 백성은 환난을 통하지 않고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은 기본구원 외에는 다 환난을 통해서 주고 또  하나님의 백성의 기본 구원 외에 건설구원들은 환난을 통해서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건설구원을 자기를 통하여 건설이 되고 건설구원의 파괴도  자기를 통하여 파괴가 된다는 말입니다. 건설구원은 자기를 통한 의로 인하여  이루어지고 건설구원의 파괴는 자기를 통한 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이스라엘이 하셨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축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변질되면 망하고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그대로 있을 때에는 어떤 것이라도 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한 가정을 구원할 때에 모든 가족이 다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깨끗한 이스라엘이 있을 때에는 그  이스라엘을 통하여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도수를 따라  구원의 도수가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구원 역사가 축복 역사 권위 역사는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이스라엘이 되어 있는가에 기인됩니다. 이스라엘은 회개의 이름이요  계약의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똑똑히 알려 주기 위해서 한  형식을 취해서 계시됐습니다.

얍복강 가에서 야곱이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시고 주신  것은 그것이 형식적으로는 시발이었으나 근원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요. 또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알리기 위해서 한 형식을  통해 계시됐는데 그 계시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더불어 밤새껏  씨름하다가 이기지 못할 줄 알고 이기지 못할 줄 알고 야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을 치시기 시작했습니다. 환도뼈를 맞아 상했을 때에 야곱은 거기서 시비를  이제 끝내고 돌이켰습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비하면 망한다는 것을 깨닫고  시비 않기로 돌아섰고 하나님이 얍복강을 건너서 에서에게로 가라 하는 그  명령을 거역했던 것을 회개하고 가기로 돌이켰던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내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라  이제는 내가 도적이 아니다, 이제는 도적을 회개했으니까 도적은 회개했으니까  도적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하라. 도적하는 그 도적질하는 길이 망하는 길인  것을 네가 깨닫고 이제는 도적질하지 않기로 회개했으니 도적질하다가 망하는  것을 당하고 이제는 도적질하지 않기로 작정했으니 이제는 너를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시고 축복하셨을 때에 해가 돋았다 그렇게 그게 기록 돼 있습니다.

그것을 표시할 필요가 없는데 해가 돋았다 이제는 암흑이 지나가고 광명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 다 그 형식도리 이 하나님의 구원도리를 이스라엘의  본질과 본성을 나타내신 하나의 형식 계시입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시비하면 망하는 이 사실을 깨닫고 시비하다가  망한 시비하다가 망하는 이 멸망을 당하므로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역하므로 망한 이것을 깨닫고 이제는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양보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양보하고  자기를 부인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비우기로 작정하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명령대로 순종할 것을 작정하고 얍복강을 건너 에서에게로 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이제는 너는 이스라엘이라 이기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  거역하고 하나님과 시비하므로 멸망당한 이것을 기억하고 여기서 돌아서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비워 하나님을 세우고 무조건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인도를  받는 이것이 자기에게는 구원이 되는 것인 것을 이전 밧단 아람에서 자기의  외삼촌의 집에서 된 것과 벧엘에서 약속한 그것을 새삼스럽게 이제는  깨달아졌습니다.

이렇게 돌아서서 출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축복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이스라엘이 됐을 때에 이스라엘이 됐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과 축복을 주셨고 이 축복을 받았을 때에 해가 돋아서  이제는 밝은 천지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에서를 향하여 갔을 때에 그가 이스라엘의 본질과 본성이 똑똑치 못한 것  만치 그에게는 공포와 비겁이 되었고 불안이 되었고 그러나 똑똑치 못한  이스라엘로서는 에서를 향해 갔을 때에 그 변질된 변질되어 있는 변질이 그대로  있는 그것 때문에 고통만 당했지 실지에 에서에게서 오는 박해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에게 완전히 별질 된 것이 복구가 되었더라면 그때에 고통은 없었을  것이고 공포도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하시는 솜씨만이 바래지고 기쁘고 그  역사를 구경할 재미만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야곱에 얍복강에서 이만한 믿음이  없이 하나님이 가라 하셨을 때에 에서에게 갔으면 그가 심히 두려워서 기절할  정도의 저는 고통을 당했지마는 에서는 야곱을 죽이지 못합니다. 해하지는  못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본질과 본성을 갖추지 못한 데에서 주관적인 고통이  있고 모든 구원을 멸망이라 모든 축복을 저주라 성공을 실패라 주관적 견해가  잘못 돼서 이것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정 거꾸로 견해 하는 데에서 저만  고통입니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역사는 그대로 뿍뿍 밀고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요셉의 한 이스라엘을 통해서 모든 그 족속을  구출했습니다. 칠 년 동안 준비 없는 백성들에게 흉년을 만냈는데 그 흉년을  도리어 더 풍부한 평강으로 통과한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진실한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자연을 거기 맞추어  움직이시고 수많은 넓은 그 지역과 세상을 그 한 이스라엘인 요셉을 인하여  섭리했던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풍년이 왜 들었으며 칠 년 흉년이 왜  들었느냐? 하나님 백성 거짓이 없는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요셉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얼마든지 구원을  베푸실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이 이를 위해서 섭리한 것으로 우리가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일개의 신으로 볼 때는 이런 것이 부정되지마는 하나님이 주권자시요  주재시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라 말입니다. 주재지요 창조주시요 세밀한  개별까지를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이 하나님으로 바로 깨달은 자는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부터 그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비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비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거기에 인본의 생각을 개입을 했더라면 그 형제들로 더불어  화평할 수 있는 기회를 매일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내놓지  못했고 무조건 하나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이것을 양보하지 안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변질되지 안 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갑론을박을 하고 다투고  거역하는 것이 멸망이라는 것을 변함없이 요대로 인식하고 요대로의 사람이 되어  있고 요대로의 행동이 요동치 않기 때문에 그는 집안에서 환난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환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때문에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환난을 만냈소.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환난  만난 이 환난을 인하여 그가 헷 족속에게 상품으로 팔려서 애굽을 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변질되지 아니하므로 형들은 미워했지만 그는 형들을 미워하지  못했습니다. 못한 그것은 이스라엘이 변질된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상대방이 미워하니 자기도 어떻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내놓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일방적인 사람을 가졌습니다. 자기  행동을 나타낼 수 없고 순종 행동뿐이기 때문에 그는 일방적인 쪽 사랑을 하고  사랑을 그는 했습니다.

형들은 미워하는데 그는 형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첩첩 산중에 그렇게  살해할라 하는 그 형들에게 아버지의 보내는 선물을 가지고 기쁨으로 반가움으로  갔습니다. 그는 참 변질되지 않은 순진한 이스라엘이었소. 상대방은 그를  해했습니다. 요것이 환난입니다.

고 환난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바라보기 때문에 당한 환난이요.

요 환난 때문에 요 환난이 없었다가 요 환난이 업어 다 애굽 나라 보디발  시위대장의 집에다가 떨어졌습니다. 보디발 시위대장의 집에서 또 그 아내로  일어나는 그때에 이스라엘이 변질됐으면 그의 명철에서 얼마든지 그것을 요리할  수가 있었을 것이요 얼마든지 거기서 일시 평강과 환영과 대우를 더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이 변질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확고부동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 생각을 자기 의견을 자기 지혜를 자기 방편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를 내놓을 수 없는 고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비할 수 없는  고로 이스라엘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법도 인도 그 영감을 거역할 수 없어  그대로 한 것이 그에게는 큰 환난이 돼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환난은 애굽나라 대신들 갇히는 정치범이 갇히는 그 특수 감옥에  투옥이 됐습니다. 그리 안 하면 요셉이 자기가 그 자리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 들어가서 애매하게 몇 해 동안이나 있어도 그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로 높아져도 낮아져도 변질되지 않게 하는 연단 역사를 했고 요셉은  자기도 모르게 요동치 않는 이스라엘의 수양을 받았습니다.

감옥에서 장기간 동안 자기는 탈옥할 만한 그 길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애굽  사람으로서 모든 언어나 모든 면이 능통해서 어데 가서든지 애굽에서 잘 처신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실력이 있었습니다. 감옥 가운데 있었지마는 그는 감옥에  옥사장과 같은 옥사장의 대리의 그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점점 이스라엘이 변질되지 안하고 이스라엘로 점점  견고해지고 성자 되어져서 애굽 나라의 총리 대신이 되는 그 일국의 제 이인  자로 그렇게 존귀한 위치는 가지지 못했지마는 모든 위대한 정치 범인들이  들어와 있는 그 감옥에서 그 감옥의 머리되는 그 사람 밑에서 제 이인 자로  거게서 존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이 변질되지를 안해서 그 수양은 마지막에 애굽 나라에  가서 총리 대신의 위치에서도 이스라엘이 변질되지 않을 만한 그런 깨끗한  견고한 수양을 마련했고 장기간 감옥에서 있는 그 자유하지 못하는 다시 말하면  자기의 자손들의 민족에게 자기 족속에게 찾아 가고싶은 그런 것을 못하고 견딘  그 그것 아니면 지금이라도 갈 수 있는데 자기 족속을 찾아갈 수 있어. 자유로 갈  수 있어.

포승줄로 뭐 그렇게 묶어 놓은 것 아니요. 그 사람은 출입을 감금하지 안 했소.

이랬으나 거기서 하나님을 내어놓을 수 없고 자기를 세울 수 없는 요것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가 뭐인가 요것 찾아 요대로 할려는 요것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 요 둘 때문에 그는 거기서 여러 해 동안을 머문 그 어려움이  요셉을 애굽 나라 바로의 그 궁전으로 옮겨다 놨소. 거기서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이기 다 형식계시요

형식계시를 또 우리에게 문서계시로 재삼 기록해서 우리에게 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이요. 그 후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이렇게  멸망하는 환난을 당한 그것을 지낸 밤에 말했습니다. 거기에서 또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에 이스라엘의 전부로는 구원을 못했습니다. 그 이스라엘  속에서는 구원할 만한 그런 이스라엘이 없었소. 이스라엘의 대중을 구원할 만치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없었소. 이스라엘을 구원 할 만치 하나님의 명령  일하에서만 복종하는 그런 이스라엘이 없었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일찍 택해 세워서 이스라엘로 인해서 어머니  젖가슴에서 젖을 먹으면서 교훈을 받았고 은밀히 그 자기의 누이에게 자기의  형제에게서 전달되는 그 교훈을 받아 이스라엘이 점점 성장돼 가는 이 모세는  이스라엘로 인해서 거기서 살지 못하고 망명하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쳐야  되는 망명해야 되는 그런 이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 전부 어려움이요 둘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 그가 그 자리 있었으면 바로의  계대의 애굽 나라 왕을 삼았을런지 모르요. 애굽 나라의 모든 부요가 자기  부요라고 했습니다. 그를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여러 모양으로 연단 시켜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시켜서 수양시켰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너무도 엄청난 믿음을 지키도록 하려고 그 짐승  같은 강퍅한 애굽 나라 바로 왕에게 가서 네가 이렇게 말해라 하는 그 일에는  부스러기라도 자기라는 것이 있으면은 자기 의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일이요.

그래서 자기 의사가 세 번 나왔습니다. 자기가 세 번 나왔소. 하나님으로 더불어  세 번 시비를 했소.

부스러기 남아 있던 마치 가라앉았던 꾸중물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 깊은 속에  자기는 몰랐지마는 그 깊은 속에 그런 일을 척 당하고 보니까 아무래도 내가  거기 가 가지고서 어찌 되겠는가 하는 시비가 나왔소. 세 번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일려고 하나님이 하실 때에 그가 돌이켰고 자기의 가족이 거기서 유혹을  줄 때에 모세를 또 죽일라고 하니까 거기서 차돌을 취해 가지고 할례를 받고  이제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출 하실라고 애굽으로  보낼 때에 모세는 그 이후로서는 다시는 시비가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한번 약한  작지로 돌을 칠 때에 그것이 나왔어. 그 벌을 받았어. 이스라엘이 너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고역이 더 심해졌다 짚을 주지 안하고 더 고역이 심해 졌을 때에  하나님이여 이거 내가 그러므로 이렇게 돼 가지고 고역만 있고 아직까지 구원이  오지 않았으니 어쩐 일입니까? 하는 고것이 고 속에 또 남았던 찌꺼기가 또  나왔소. 자기를 부인해 버리는 이것이 나와서 하나님 앞에 한 번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열 가지 재앙을 가지고 바로에게 갔을 때에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로는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날 때에 바로의 마음은 강퍅해졌고  분해졌고 그들의 단결은 더 심해졌고 그들의 계획과 경영은 더 혹독해졌고  그러니까 모세가 아론으로 더불어 바로에게 가는 거기에는 자기가 있고는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형편입니다. 막바로 죽음을 지금 찾아가는 것입니다.

막바로 죽음을 찾아가는 것이니까 죽음을 찾아가는 그 길이지마는 거기서 이 길  가면 내가 죽지 않습니까? 이 일이 되겠습니까? 하는 자기의 의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기 의사가 하나도 없이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갔고 간  것보다도 간 것은 죽으러 갔지마는 가서 그들이 거역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이것을 선포해라. 열 가지 재앙을 선포하는 그 선포. 너희들이 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게 돌려보내지 안 하면 놓아 보내지 안 하면 이런  재앙이 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협박인데 하나의 협박이고 하나의 위협인데  망한다는 위협인데 그렇게 했다가 그것이 안되면 저는 참 뭐 죽어도 보통 죽는  게 아니라 굉장할 것이요. 그렇지 않게?  그렇게 했다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안 하면 그럴 때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하나님에게 그 재앙을 빈 그 빎이 우리는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데에 의심이 섞여 있으면 안됩니다. 거게는 의심이 섞여 있으면 안돼요.

그기 뭐이냐? 자기를 부인치 않는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과 뜻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시요. 그것은 그러기  때문에 외부적으로는 예수님은 모세의 해방 운동을 계대 했다 이렇게 할 수 있고  성경에 그런 뜻으로 또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때에 모세의 자기 부인이나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지체하지 안하고 그에게 와서 올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에게  순종할 수 있도록 모세가 하나님에게 순종이 섞임 없는 온전한 순종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의 명령에 또 순종해서 온전함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모세가 조금 만치라도 순종에 잡된 것이 섞였으면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시면 하나님은 거짓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  모세에게 거짓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40년 동안 연단을 시키셨고 또 세 차례  연단을 시켰고 또 한차례 하나님이 진노를 하셨고 이래 가지고 모세가 순진한  이스라엘이 됐을 때에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만 인간을 구원할 수가 있고  이스라엘에게만 하나님은 축복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무슨 회개? 다른 회개 아무 소용없어.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비하는 것 고거 회개해야 돼.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비하는 그 회개. 하나님이냐  내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냐 자기나 어떤 피조물의 시키는  대로냐? 요거 회개입니다. 요거 회개를 통해서만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작용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작용하는 것은  마치 배가 물을 타고 다니는 것처럼 이 환난을 타고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환난 없는 데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노릇을 못 하요. 왜? 이스라엘은 자기와  하나님과 바꾸는 것이요. 자기와 하나님과 바꾸는 것이요. 그러니까 그 환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소. 모든 자기가 좋아하는 인간과 하나님과 바꾸는 것이요.

자기와 하나님과 바꾸기 전에는 자기를 주고 하나님을 취하기 전에는 모든  자기의 이웃을 주고 하나님을 취하기 전에는 바꾸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세상과 자기의 소유 자기와 소유와 하나님의 축복과 바꾸는 것이요.

자기의 소유와 하나님의 축복과 바꾸는 것이요. 눈에 보이는 요것만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이렇게 바꿨소. 롯은 바꾸지 못했소. 자기의 세상과 하늘나라와  바꾸는 것이요. 자기의 평강과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과 바꾸는 것이요. 평강과  고통과 바꾸는 것이요. 이것이 뭐이냐? 일시적의 것과 영원한 것을 바꾼다는  말입니다. 일시적인 빈부 고락과 영원적인 빈부고락을 바꾸는 것인데 이것이  환난을 통하지 안하고는 올 수가 없습니다. 잠깐 동안 있는 이 자연 생명과  영원한 생명과 바꾸는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거기에 일어나는 풍파가 없을 수 없어. 물결이 없을 수  없어. 환난이 없을 수 없어. 속에는 생명 역사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고 구원 역사  생명 역사가 이루어지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역류하니까 사망 속에서 생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니까 올라가는 것은 모이지 아니하고 끄트머리 물결만 일어나는 기  보이요.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데 거기서 어떤 뭉텅이를 위로 당겨 올리면 자연히  거기 마찰의 물결이 나올 수밖에 없어.

그러기에 이제 당하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이루어지는 그 생명 역사로 인해서 끄트머리에 파문이  일어나는 이 파문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환난이 없이는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와 자기와의 관계 가진 모든 사람과 이 둘을 하나님만 못한 줄  알고 이 둘을 내어놓고 하나님을 취해야 되지 이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잡지  못합니다. 절대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저를 낫다고 해  가지고서 바꾸지 안 하는 데에 망했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접하는 사람들이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체의 자기 소유. 이것을 하나님의 축복보다 크게 여겼기 때문에  바꾸지 안 했소. 세상과 천국을 바꾸지 안 했소. 일시 가난과 영원한 가난이 있고  일시 평안과 영원한 평안이 있고 일시 부요 영원한 부요가 있어요. 일시 귀함과  영원한 귀함이 있고 일시 천함과 영원한 천함이 있어. 일시의 빈부귀천 이것을  버리고 영원한 빈부귀천을 취하는 것인데 현재에 보이는 이 모든 부귀 영광  존귀가 이것이 바꾸어지는데 이것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환난이 없을 수 있겠소?  이거 없어지는데 어떻게 환난이 없겠소? 자기가 깨어지는데 어떻게 환난이  없겠소? 모든 사람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취하는데 버리는데 환난이 없겠소?  세상을 버리고 천국을 취하는데 세상을 버리는데 그 환난이 없겠소?  이러기 때문에 버리는 환난을 통하지 않고는 버릴 수가 없어. 이것을 주고 영원한  것을 자기가 바꾸어 가지게 되기 때문에 이거 내어놓은 거 없이 어찌 그 바꿀 수  있겠소? 그것을 받을라고 하니까 이것을 내어놓게 되어져. 내놓은 기 없이 파괴가  없이 건설이 안되다는 말이요.

그런고로 우리는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이것을 기억해야됩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고 구원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원수는 자기가 원수요. 자기 아닌 옛사람 그게 자기 아닙니다.

자기 아닌 옛사람 그놈이 원수요. 다음에 원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에게  대립되어 있는 모든 이웃이 둘째 원수입니다. 마귀 그 놈은 그 속에서 역사 하요.

이것만 아니면 마귀 저는 죽습니다. 와야 할 일이 없어.

그러기에 자기를 누가 망치느냐? 자기가 망치고, 자기를 누가 망치느냐? 자기의  사랑하는 자기 이웃이 자기를 망칩니다. 그러기에 혈육 이놈은 그 결과가 망하요.

혈육 정실 지방 정실 동류 정실 뭉치면 어쩔 것이요. 뭉치면 둘이서 뭉치면,  뭉치면 어쩔 것이요. 망하는 거 외에는 없어. 해 보지. 안 망하는가? 자기가  인간만 못하요 하나님이 인간만 못하요? 아니요. 어리석소. 정으로 욕으로 뭉치지  말아라.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예수 믿는 사람 돼. 정으로 욕으로 뭉치면  그거는 사망의 뭉텅이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깨끗한 이스라엘이 없으면 구원 역사를 못하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으로 보내는 것은 일하는 것은 일하기가 쉬운 것이요. 또 어렵습니다.

쉽다는 말은 그 일하기는 쉬워. 어렵기는 왜 어려워? 이스라엘 되기 어려워  이스라엘 되기가 어려워. 이스라엘만 되면 일은 하나님이 하시요. 이스라엘  대중을 인도했는데 모세가 뭐 그 말하기가 뭐이 어렵소? 자기 주관을 부인하지  할 때에 어려웠지. 아 사람 앞에 가 가지고서 그 말하는 기 뭐 어렵겠소? 자기를  부인치 못하기 때문에 어렵지.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에 어렵지. 이스라엘이면  어려울 게 뭐 있소? 그런고로 이스라엘이 되기 전에는 이스라엘이 되기 전에는 구원 역사는 못하고  이스라엘이 없으면 하나님은 구원 못하시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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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790706금야 선지자 2015.11.02
879 사랑/ 마태복음 24장 12절-13절/ 790710화새 선지자 2015.11.02
878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820418주전 선지자 2015.11.02
877 사랑/ 요한일서 4장 10절-11절/ 790715주전 선지자 2015.11.02
876 사랑/ 요한복음 15장 9절-11절/ 811029목새 선지자 2015.11.02
875 사랑/ 마태복음 24장 3절-14절/ 790709월새 선지자 2015.11.02
874 사랑 알맹이/ 고린도전서 13장 4절-13절/ 820427화새 선지자 2015.11.02
873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라/ 누가복음10장25절-28절/ 1988. 8. 11. 오전집회 선지자 2015.11.02
872 사랑과 희생으로 영광,기쁨,평화/ 누가복음 2장 14절/ 871226토새 선지자 2015.11.03
871 사랑관/ 베드로전서 1장 23절-25절/ 870619금새 선지자 2015.11.03
870 사랑연결 의사연결 활동연결/ 요한복음 15장 9절-17절/860316주후 선지자 2015.11.03
869 사랑으로 인한 세가지 희생/ 마태복음 16장 24절/ 840420금새 선지자 2015.11.03
868 사랑의 고귀성과 구별/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820428수새 선지자 2015.11.03
867 사랑의 본성과 역사/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 880723토새 선지자 2015.11.03
866 사랑의 봉사/ 요한 복음 3장 16절/ 791225화새 선지자 2015.11.03
» 사랑의 봉사/ 출애굽기 12장 14절/ 791124토새 선지자 2015.11.03
864 사랑의 빚/ 로마서 1장 14절/ 830713수야 선지자 201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