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세가지 알맹이


선지자선교회 1982년 4월 25일 주후

 

본문 : 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0절에 「사랑이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말했습니다.

 여기에「사랑이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는 이  말씀은, 우리 사람들도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랑이냐 하면 첫째 아담이 가진 사랑으로, 아담은 하와 죽이고 하와는 아담을  죽인 그 사랑으로 대대손손에 모든 사람을 다 죽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 말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하는 이 사랑은 첫째 아담이 가진 그 사랑이 아니란  말입니다. 첫째 아담이 가진 그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지마는  언제나 주관적이요 하나님은 그 사랑을 받을 수도 없고 또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참 사랑이 여기 있으니 이는 인간이 가진 사랑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아니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가진 사랑으로  사랑하는 인간이 가진 사랑이 아니라. 그러면 어떤 사랑이라 말인가. 하나님이  가지신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면 나타난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하나님의  독생자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본체 그대로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이  사랑이 와서 사랑의 지식을 우리에게 나타냈으니 사랑이 지식으로 나타났을 때에  곧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이 지식으로 나타난 사랑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지식으로 나타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또 이 사랑이 어떤 일을 했느냐, 이 사랑이 사랑의 일을 세 가지 했으니,  사랑이 사랑의 일을 세 가지 했으니, 사랑이 세 가지 사랑으로 나타났으니,  사랑이 움직여 사랑이 사랑으로 나타났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 사랑이 나타난  사랑이오.

 그러면 이 사랑이 또 어떤 것으로 나타났느냐. 이 사랑이 죄를 멸하는 사죄로  나타났습니다. 죄를 멸하는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죄를 멸하지 아니하면 사망에서 놓여 나오지를 못합니다. 사랑은 본능적으로  본성적으로 상대를 멸망 가운데 두고는 더 둘 수가 없던 것이 사랑의 본성이요  본능입니다. 멸망 가운데 있는 것을 구출하는 것이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 사랑이 역사 했으니 이 사랑이 역사한 이 역사가 죄에서 구출하는 역사를 한  이 구출 역사가 하나님의 사랑이오. 구출 역사를 사랑이 한 사랑의 행동입니다.

죄에서 구출한 이 사죄로 하나님께서 상대방을 완전히 멸망 가운데에서 구출해  냈습니다. 죄가 없어지기 전에는 멸망이라 하는 것을 없앨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 사랑이 한 일이 뭐이냐. 이 사랑의 역사가 피조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여야 될 피조물이 하나님을 떠나 제 주장대로 제 주장대로 제가  근본이 되고 제가 주가 되고 제가 왕이 되어서 하나님을 떠나 제가 독립적으로  제 주장으로 나서는 이것을 없애야 죽이는 세력이 없어집니다. 이것을 없애야  죽이는 세력이 없어지고 어떤 피조물이든지 피조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에게 속하여 그로 인하여 움직이는 이것이 있어야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하여 하나님으로 피동되는 이것이 있어야 생명이 생겨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대립되어 있으면 원수되어 있으면  이는 사망을 면하지 못합니다. 사망은 하나님과 떨어지면 사망입니다. 하나님과  나눠지면 사망입니다.

 이 사망을 멸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나누어지는 이 값을 대신 받아 하나님과  나누어진 이것을 없앤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에게 소속한 자로  하나님에게 따라서 움직이는 자로 이렇게 만든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대행으로 칭의를 주신 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 만든 것이요 또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자 만든 것이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칭의입니다.

 아무리 사죄가 되어 있고 칭의가 되어 있어도 하나님과 화친이 안되면, 결합이  안되면 생명은 그에게 생겨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이 사랑이 하나님과 결합 역사를 이루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일하는 일이요 하나님과 결합의 이 결과를 맺은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다」 우리 인간들이 사랑하는 그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그 사랑이 뭐이냐. 아버지가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보내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바 되었으니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뭐이냐 하나님의 독생자가 대속주로  나타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이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온갖 각국 방언을 다 하고 천사의 말을 해서 아주 말에 대해서 어떻게  능하고 어떻게 능란하고 어떻게 권위 있다 할지라도 사죄의 역사가 그 속에  없으면 그것은 생명 없는 것이다. 사죄의 권위가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이다  칭의의 역사가 없으면 그는 죽은 것이다. 칭의의 권능이 있어야 비로소 생명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케 하려는 이 역사가 있어야 그 말이 산  말이요 그 모든 방언들이 산 말이지 이 사죄와 칭의의 역사, 하나님과의 화친케  하는 이 역사가 없으면 죽은 말이오.

 또 이 세 가지 역사를 이루려고 애를 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잡으려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려고,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서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사죄의 능력이 오고 칭의의 능력이 오고 신인 화친의  능력이 와서 이 세 가지가 이루어졌으면 사랑이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이루려고 애를 쓰는 것은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이루기 위한 말이라면, 이 세 가지를 이루려고 노력을  하는 말이라면 사랑을 찾는 말이 된다. 이 세 가지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이  능력, 이루어지게 하는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말이다. 이  세 가지가 이루어졌으면 그 말속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 없는 말, 사랑을 찾는 말, 사랑을 만난 말, 사랑이 있는 말 각각 다르니  사랑이 없으면 어떠한 말을 한다 할지라도 울리는 구리와 꽹과리가 되고 만다.

생명이 없다.

 여러분들 이거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내 귀에 달콤하게 말하고 천하 것을 다  갖다 주는 말을 할지라도 그 말이 진정코 나를 사죄케 하려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자기 주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서 사는 그것이 의입니다. 의는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의입니다. 자기 주관대로 사는 주관을 꺾고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자기가 어떤 피조물과 한 덩어리 되는 그걸 죽이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하나님과 화친하는 이 하나님과 화친하는 이 화친을 되게 하려고  애쓰는 말이면 그 말은 사랑을 찾는 말이다. 찾는다고 만나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애를 쓰다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능력의 역사가 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말이다.

 이러다가 그 권능이 와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결과가 그 속에 많이  이루어졌든지 적게 이루어졌든지 이루어졌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일차적으로는 어떤 말이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이  말이라야 필요하지 이 말이 아닌 말은 천하에 가득 차도 다 죽은 말이요  소용없는 말입니다.

 그 말로서 세계를 통치하는 그런 아주 말의 권능이 있다 할지라도 그 말이  인간을,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간을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하는, 사죄케  하려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하는 그 말이 아니면 천하를 움직여도 다 죽은  말입니다.

 또 아무리 제가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을 하고,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자율과 주관을 죽이고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려고, 자기도 다른 사람도 이 사람이 되게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또 하나님과 대립된 자가 하나님과 화친된 자가  되도록, 하나님하고 가까워지게 하려고, 하나님과 친근해진 자가 되게 하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습니다. 권능이 와서 역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정말로 사죄의 권능이 네 말에 역사하느냐, 칭의의 권능이 네 말에 역사하느냐,  하나님과 화친의 능력이 네 말과 함께 역사하느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느니라.

 인생이 땅 위에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지마는 그 말하는 것이 꿰뚫어 분석해  보면 어쨌든지 제가 왕 되려고 제 욕심으로, 피조물을, 피조물로 왕으로 심기고  하라고, 이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마는 인간을 김일성이에게  귀속시키려고만 애를 쓰지 하나님에게 귀속시키고, 하나님의 법을 준해서 죄  없이 하려고, 하나님의 그 자존하심을 따라 그분에게 소속하게 하려고 애쓰는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내가 이 말 함으로 인해서 때가 되면 내 살을 찢을 것이오. 그것이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가 끌고 간 법궤 실은 수레가 장작 나무가 되어 가지고 소가 그 위에서  번제로 타 죽는 것처럼 이제 이런 말을 해 놓은 것이 내가 꼼짝 못하고 그들의  손에 순교를 할 수밖에 없는 순교를 장만하는 것입니다. 이걸 장만하는 것이오.

어떤 사람이 보면 비참하다 하지마는 어떤 사람이 보면 하나님의 권능이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땅 위에 수많은 묘한 말이 많습니다. 이 인간들이 성경 보지 않고 어쨌든지  잡지, 소설, 인간들이 내어놓은 과학문서 모든 이런 책은 보려고 애를 쓰지마는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데, 모두 다 이런 책 저런 책 세상에 유명한  책들을 읽어서 시간을 보내고, 자기 속에 옛사람 죽여야 할 그놈을 살을 찌우고  그놈을 키우고, 이놈을 살을 찌우고 이놈을 키워 놓으면, 내가 유식하다, 야,  이놈아 많이 죽었다. 너는 죽은지 오래 됐다 죽고 또 죽고 뿌리까지 뽑혀 열매  없는 가을나무다. 희망이 없다. 많이 죽었다. 이런데 이것이 많이 죽은 것을  자랑하지마는 죽은 자들은 볼 때에 죽은 것으로 커지니까 저거 왕입니다. 저거  스승입니다.

 수많은 말에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첫째 아담의 사랑을 찾아서 말하고 둘째  아담의 사랑을 배척하려고 하는 것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지식입니다. 이거 다  배암의 지식입니다. 이런 모든 지식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려고 찾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지를 않다니,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구리요  소리나는 꽹과리인데 생명 없는 소리인데 생명 없는 말인데 생명을 찾아야 그  소리가 살아나지. 말이 생명을 찾는 말이 있어. 생명을 찾는 말.

 생명을 찾다니, 생명은 여기에 있어. 해석을 달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사랑의 뭉텅이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퍼져 나온 것이 신구약 성경의 영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퍼져 나온 것입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하나님의 사랑이 번져 나와서  그 사랑의 빛이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물결처럼 일어난  것들입니다.

 사랑은 죄를 멸하는 것과 자기 주관으로 사는 것을 멸하고 하나님으로 따라  살게 하는 이것과 하나님으로 화친되는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 세 가지를  합니다. 이 세 가지 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가  이루어졌으면 그것이 사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의 조성품, 사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사랑의 새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랑을 찾는 말이 아니면 죽은 말이니 죽이는 역사를 하는  말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하는 말이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말이 아니고, 생명인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말이 아니고 첫째 아담의 사랑을  가지고 이것을 일으키고 이것을 크게 만들고 이것으로 역할하게 하고 이것에  미혹되게 하고 하면 그것은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수가 네 집안  식구니라」「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있다가 지옥 갈려느냐, 얼마나 네 심신의 기능을 다 불태우고 말 것이냐.

 신랑과 신부의 웃음소리가, 맷돌을 들어서 바다 가운데 던지면 푹 빠지고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것처럼 신랑과 신부의 사랑의 소리가 다시는 이 땅위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괘심해서 분해서 복수했든지 정신  차려야 됩니다. 정신 차려.

 말 중에는 첫째 아담의 사랑을 말하는 그 말이 독이 제일 많고 그 죽은 사랑  외에 말 중에 제일 옅은 가치가 있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말,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말.

 그 말 가치 없소. 말속에 생명이 있어야 말이 가치가 있지. 아무리 키가 크고  다리가 크고 이렇게 장사의 몸둥이라도 생명 떠나면 송장이니까 썩는 것뿐이요,  짐덩이 되는 것뿐이지 무슨 가치 있습니까. 말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어야 그 말이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말이라니, 그 말이 사죄를 일으키려고 사죄의 역사를  일으키고 사죄를 지금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칭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죄운동 칭의운동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백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는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말입니다. 사죄를 찾는 말이요 칭의를 찾는  말이요 화친을 찾는 말이오. 그래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하나님의 사랑이 왔는지 안  왔는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왔는지 안 왔는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다니,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와서 사죄를 일으키는 권능이 왔나,  칭의를 일으키는 권능이 왔나, 화친을 일으키는 권능이 왔나. 진리의 능력,  영감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 사랑의 능력이 왔나 안 왔나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왔나 안 왔나 하는 것이 문제요. 이 능력이 안 왔으면 백 목사 설교해야 골만  빠지지 아무 소용없습니다. 울리는 꽹과리요 소리나는 구리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권능이 오면 어쩌느냐. 권능이 와도 이것만으로는 소용없습니다. 권능이 와도  이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소. 권능이 와서 그 말 속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구리요 소리나는 꽹과리가 됩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랑이  있으면 이 말은 생명 없는 구리의 소리가 아니고 꽹과리의 소리가 아니라. 이  말은 산 말이요 살리는 말이 됩니다.

 무엇이 와서 있으면, 사랑이 와서 있으면. 사랑이 와 있다니, 사죄가 실상으로  이루어졌으면, 칭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나님과 화친이 이루어졌으면, 이것이  이루어졌으면 벌써 이 말은 산 말이 됩니다. 능력 있는 말이 되는 것이 됩니다.

 이러기에 이 말씀을 증거하는 데에 여러분들 속에 사죄의 열매가 맺어져서,  사죄가 죄를 미워하고 어떻게 하든 죄에서 벗어나야 되겠다, 죄를 미워하고 죄를  벗어나고, 사죄를 주셨으니, 인간의 전 불행은 죄값이라. 슬픈 것도 죄값,  고통스러운 것도 죄값, 번민스러운 것도 죄값, 근심도 죄값, 가난도 죄값, 병도  죄값, 불쾌도 죄값, 불만도 죄값, 모든 불행도 죄값, 슬픔도 죄값, 이거는 전부  죄값인데, 죄 이것이 멸해졌으면 멸해진 것만치 우리에게 있는 불행은 있든지  말든지 벌써 뿌리 뽑았기 때문에 죽었소. 끊어 놨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조만간에 그러면 시체가 돼 버리고 맙니다.

 이 세 가지 역사가 없으면 말은 죽은 말입니다. 여러분들 성경은 안 읽고,  성경은 안 읽고 수많은 책들을 읽고 있는데 그 책에 사죄가 있습디까, 사죄를  찾겠습니까. 사죄운동을 합디까. 예수님의 사죄운동 합디까. 칭의 운동을  합디까.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운동을 하는 말입디까. 사죄 칭의 화친의 운동을  하는 책이 있습디까. 말이 있습디까. 대부분은 없습니다.

 옆에다가 기독교 서적이라고 만들어 가지고 해 놓은 많은 책들이 있는데 그  책이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 새생명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을  찾으려고 애쓰는 책인지, 책을 읽어보면 제 자랑만 실컨 해서 예수를 팔아먹고  이용해 먹고 진리를 이용해 먹어 가지고,  요새 방화 사건에서 42명의 목사들이 나서 가지고 공산주의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 가운데서 지금 미국에 대해서 반발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  가짜 목사들, 예수를 팔아먹는 자들, 그자들이 말하기를 우리 기독교를, 언제  제까짓 것이 우리 기독교라. 우리 기독교가 언제 제게 가담했던가, 순  공산주의가 되어 가지고,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가지고 그따위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정체가 자기도 모르게 폭로된 것입니다.

 나는 공산주의를 반대합니다. 무신론을 반대합니다. 유물주의를 반대합니다.

하나님은 계신다는 걸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사는 것을 위주로 합니다.

신앙위주입니다. 신앙주의요. 유일신주의요. 뭐 무엇 때문에 지금 판사들도  거기에 대해서 판결할 때에는 벌벌벌벌 떨려서 공산주의가 네 뒤에 지금 독침  가지고 있다, 권총 가지고 있다, 네가 언제 암살 당할지 모른다 하니까 겁이  나서 말하기가 벌벌벌벌 떨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지마는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공산주의자들이 다 달려들어도 내 생명이  끊어지지 않아. 일각이라도 일찍 죽이지 못해, 저희들이. 민주주의가 다  달려들어도 네 생명을 일각이라도 연장시키지 못해. 오직 당신에게만 주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있지마는 예수를 팔아먹고 이용해 먹고 교회를 팔아먹고  이용해 먹지, 책을 읽어보면 그 책 가운데에 그걸 이용해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 이 성경 전부를 이용해 가지고, 이것을 이용해서, 이것을  사다리를 삼아 가지고 제가 올라 갈려고 하는 책이지 거기에서 어떻게 하면  사죄를 일으킬까 칭의를 일으킬까 하나님과 화친을 일으킬까, 사람으로 하여금  이 은혜에 좀 굳게 서도록, 이 은혜에 좀 잠기도록, 은혜에 물이 들도록 할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책은 심히 귀합니다. 심히 희귀하요. 전부 자기  자랑하고 자기 나타내는 책들뿐이오. 간혹 가다가 섞여있습니다.

 또 아무리 하나님의 사죄를 말하고 칭의를 말한다 할지라도 권능이 와서  역사하느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느니라. 권능이 와서  역사하느냐 권능이 역사 하느냐. 네 입술만 징얼거릴 때에, 권능은 성신의  권능인데, 하나님의 권능인데 입으로 암만 말해도, 인간들은 어리석어서 설복도  당하고 미혹도 당하지마는 하나님은 가증스럽게 봅니다.

 인간의 많은 말과 웅변에 하나님이 그에게 설복을 당해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같이 일하겠다고 동참하겠습니까. 안합니다. 거기에는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거짓이 없이 주의 구속을 깨닫고 구속으로 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이 사실에서 주의 것이 되어 가지고 진정코 인간을 주의 세 가지  구속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의롭게 하려고, 하나님과 화친케 하려고  하는, 진심으로 역사할 때에 성령의 능력이 와서 같이 역사하고,  역사해도 사죄가 되어졌어야 돼. 죄를 벗은 그것이 생겨져야 돼, 그 사람의  100분지 1이 죄에서 벗어났든지 10분지 1이 벗어났든지 100분지 99가 벗어났든지  죄에서 벗어난 실상이 생겨져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칭의의 부분이 다만 얼마라도 생겨져야 됩니다. 하나님과 화친이 단번에 다는  안 되어도 100분지 1이 화친 됐든지 1000분지 1이 화친 됐든지 화친된 것이  있어야 그것만이가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헛일입니다.

 여러분들, 말을 이것으로서 평가하십시오. 무엇 때문에 소설, 잡지, 쓸데없는  글은 보고, 신신학자들, 이단자들, 기독교를 팔아먹는 이 기독교 원수, 적기독,  따라합시다.

 적기독.

 적기독.

 적기독.

 거짓 그리스도.

 거짓 그리스도인.

 외식하는 자들.

 속으면 안됩니다. 말에 대해서 그 속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사랑 없으면  인간의 방언을 할지라도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구리요  꽹과리라. 꽹과리라. 울리는 꽹과리요 소리나는 구리라.

 세상은 말이 점령합니다. 교회도 보면 요거 마귀 새끼가 어떻게 언변이 좋고  세상 마귀 지혜가 많은지, 마귀 지혜 마귀 언변 가지고 살살살살 사람들을  꼬우니까 그만 다 꼬여 넘어 간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이것이 교회에  들어오면 며칠 안되어서 교회를 훼딱 디비트려 놓습니다.

 여러분들, 언제든지 자주 설교가 날 수 없습니다. 자꾸 이런 설교가 있을 수가  없소. 없기 때문에 말에 대해서는 사랑이 그 속에 없으면 생명 없는 울리는  구리요 소리나는 꽹과리라 생명이 없는 말들이라.

꽹과리 소리 듣고 사람이 살아납니까. 꽹과리 소리 듣고 구원됩니까. 구원이  됩니까.

 저거는 생명이 없는 말이로구나 이걸 알아야 될 것인데 유창만 하면 가치 있는  줄 압니다. 세계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고 많은 것을 말하면 다 가치 있고 실력  있는 말인 줄 압니다. 통틀어 한 말로 천하 것을 다 말하는 말이라도, 세계를  제것으로 삼은 말이라도, 세계를 제것으로 삼은 것은 사탄이 제것으로 삼았소.

예수님이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하는 것은 사탄을 말했습니다. 이런  말이라도 사랑 없으면 죽이는 말이요 죽은 말인 줄 알아야지.

 사랑 없다니, 무엇이 없으면, 사랑이 뭐인데 첫째 아담의 사랑은 아닌 둘째  아담의 사랑, 첫째 아담의 사랑은 저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 배반하고 하나님  말씀 배반하고 마귀하고 합작한 것이 그것이 첫째 아담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다 죽은 말이요 죽이는 말이니 책을 읽다가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느냐 보자, 하나님의 사랑이 뭐인데. 네가 그 책을  읽어보니까 사죄의 역사가 점점 더 이루어지느냐, 주님이 나를 죄에서 죽기까지  하셔서 사죄해 주셨으니까 내가 죽기까지 힘써서 죄에서 벗어나야지, 다시는  죄짓지 않아야지, 그것이 이루어지느냐. 내 생각 내 욕심 내 뜻대로 하는 것은  죽는 것이니까 이제는 피로 구속 받았으니 주님으로 인하여 살아야지, 그것이  이루어지느냐 하나님의 아버지 된 것이 확실하고 친근해지느냐.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하나님 떨어지기가 싫으냐. 그것이 있느냐. 있으면 사랑이 있는  것이요 사랑이 있는 말이요 그것이 없으면 사랑이 없는 말이라.

 사랑을 찾는 것, 사랑을 만난 것, 사랑의 권능이, 사죄의 권능 칭의의 권능  화친의 권능, 사죄를 일으키는 권능 칭의를 일으키는 권능 화친을 일으키는  권능, 성신의 권능이 왔으면 사랑을 만나기는 만났습니다. 사랑을 만나기는  만났소. 사랑을 만났다고 해 가지고 사랑이 내 속에 들어옵니까. 내게 이 세  가지가 이루어졌으면 그것이 막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막바로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말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구별해야 되겠고,  네가 모든 것을 예언하고 모든 비밀을 알고 모든 지식에 통달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까짓 것이야 있으나 마나 많으나 적으나 상대할 것도  없다.

 천하에 책이 많으면 무슨 소용 있느냐, 억만 권을 독서했으면 무슨 가치  있느냐, 아무것도 아니다.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치로 칠 것은 하나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뭐인데.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 사죄 칭의 새생명 이것이 없으면,  20세기에 과학 속에는 그것이 조금 있습니다. 언제 내가 보니까 인공위성을  발명한 그 비행사들이 공중에 가 가지고 하나님 증거한다고, 하나님이 이렇게  오묘하게 만들었다 애써 가지고 기어올라 가지고 거기 가서 하는데 네가 애써  기어올라 갈 것 없이 여기서 별이, 그분이 간 그 별 같은 것  억억억억억억억억억억억억 만개도 더 되는데,  더 되는데 거기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고, 그거 내 소유인 줄 내가 알고 있고,  잠시 잠간 후면 1초 동안에 우주 진부 다 순행 다 하고, 내가 관리 다 하고,  처리 다 하고, 그 영광 내가 다 받고, 내 발등상 만들고, 당장에 주인공인데 그  귀때기 한군데다 발을 디며 놨으면 뭐이 크다고, 어리석어. 공연히 풋장난,  아니오. 그 말들은 다 없어져도 이 강단에서 내가 지금 하는 이 말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권위 있어.

 지식에 사죄 역사가 없으면, 칭의 역사가 없으면, 하나님과 화친 역사가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역사가 없는 지식이다. 수많은 지식에 이 세 가지를  실질적으로 와 가지고 접촉하는 사람에게 일으키는 이 능력이 그 지식 속에  없으면 이 지식은 아무것도 아니다.

 능력이 와서 있다 할지라도 실제로 사죄가 이루어지고 칭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화친의 결실이 이루어졌으면 그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것이 사랑이니 이것이 속에 알맹이 든 지식이라면 그 지식은 보배  지식이다. 마귀 지식에 이것이 속에 들어 있으면 마귀 지식을 점령해 가지고  죽은 지식을 살려서 산지식이 되어 졌다.

 다 같이 지식을 과학을 가졌는데 어떤 자의 과학 지식은 살았고 어떤 자의 과학  지식은 죽었습니다. 어떤 자의 과학 지식은 보배고 어떤 자의 과학 지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식도 그 속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믿음, 믿음은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걸 가리켜서 믿음이라 합니다. 믿음이면  온전한 것인데 생각할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 그때는 구약만 있을 때인데 구약 성경 말씀을 지키는 데에는 일점  일획도 흠이 없다. 구약 성경을 꼭 다 한 사람이다, 이래도 멸망 속에 있었어.

이래도 멸망 속에 있었어.

 오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몇 가지 지켜서 행하면 그만하면 다인 줄 압니까.

아니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 철두철미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법칙을  삼아서 산다 할지라도 거기에 사죄를 운동하는, 칭의를 운동하는, 화친을  운동하는 그 간절한 소원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거기에 이 세 가지를  일으키는 성령의 능력이 와서 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이 세 가지가 실질적으로 성립됐으면 그 믿음 속에는 생명이 있는 산  믿음이다. 사랑이 있는 믿음이다.

 네가 아무리 그 사람이 네게 와 가지고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희생해 주고  봉사해 주고 붙들어 주고 도와주고 너를 보호하고 너를 협조하고 너를 올리고  너를 좋아하고 아무리 해도, 너 아니면 나 죽고 나 아니면 너 죽고 해도, 그렇게  생명까지를 희생해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네게도 유익 없고 주는 자에게도  유익 없다.

 사랑이 뭐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사죄 칭의 하나님과 화친으로  나타나지 않았느냐 이 세 가지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면, 이 세 가지를 위한  희생인지 아닌지 하는 것은 인간은 몰라도 성령은 안다. 정말로 이 세 가지를  위한 희생이라면 성령이 와 가 거기에서 능력으로 역사함이 있을 것이다.

 성령이 능력으로 와서 역사함이 있다 할지라도 착수하고 보니까 가짜다. 그러면  성령은 떠난다. 이러기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다. 성령의 권능이  왔으면 반드시 결과적으로 사죄의 결과가 맺어졌을 것이다. 많든지 적든지  사죄가 만들어졌을 것이요 칭의가 만들어졌을 것이요 하나님과 화친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만들어졌는데 만들어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것이 생명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시다. 이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속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나님이 그 속에서 내주하고 계신다. 그에게는 영생이 있다.

 여러분들 어지러운 말세에 그저 땅에 속한 사랑이 세월이 났습니다. 왜. 말세에  죄악은 어떤 죄악이 제일 관영한가. 이기주의, 자기 욕심, 자기 좋도록 하는  이기주의, 국민학교보다 중학교가 되면 이기주의 이놈이 더 커지고 대학생이  되면 더 커지고 성년이 되면 더 커지고 세상 경험을 더 하면 더 커지고,  이래서 요새는 나이 많은 사람이 차를 탈려 하면 안 세워줍니다. 안 세워주요.

안 세워주면, 저놈들 나이 많은 사람은 다 같은 돈을 줘도 안 세워 준다 욕을  하면, 야 이놈의 영감탱이야, 야 이놈의 할망탕구야 네가 그렇게 썩었기 때문에  다 그런 것 아니냐.

 왜, 왜 나이 많은 사람 안 태워 주느냐. 욕심만 가득 차서, 요새 기분요금이  얼마입니까. 250원입니까. 600원. 600원이면 600원이라 50원 깎아도 안 되겠나,  550원을 딱 요래 넣어 가지고 딴데로 이래 넣어 놓고, 아 돈을 가지고 오다  보니까 550원밖에는 없네요. 밉상스러운 소리 말하는 것은 할망탕구들  영감탕구들입니다. 욕심만 자꾸 길러 놓으니까. 욕심만 길러 놓으니까.

 이래 놓으니까 첫째 아담의 사랑은 뭐이요. 첫째 아담의 사랑은 하나님 버리고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첫째 아담의 사랑이오. 하나님은 버리고 자기가 왕 되어  가지고 마귀를 상대하고 제 자율로 제 생각으로 제 욕심으로 나간 그것이 첫째  아담의 사랑입니다.

 이러니까 아예 나는 차 잡으러 갈 때에는 나는 나서지 않습니다. 안 세워 줄  것이기 때문에. 꼭 젊은 사람을 데리고 나가. 데리고 나가서, 차 좀 잡아라. 저  먼데 있다가, 옆에 가까이 있으면 안됩니다.

 가까이 있으면, 쭈르르 설라 하다가 영감 하나 있는 것 보고는 그만 달아나  버리요. 저놈의 영감 또 억지 내겠다 싶어서.

 그 전에는 여기에 곰탕집이 있어서 보신탕집이 있어서 차가 많이 오는데, 거기  올 때에는 내가 반드시 저기에 타고 가면 2분지 1은 더 줍니다. 200원 같으면  300원 줍니다. 이렇게 주면 아이구 감사합니다. 몇번 그러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어디 가다가 이래 만나면 벌써 손을 안 드는데, 어디 가시렵니까, 아니 먼데 안  가고 여기 바로 이웃에 갑니다.

 이래 가지고 늙은 사욕과 주관 자율로 산 그 죄의 댓가를 냅니다. 죄의 댓가를  내면 몇 번 받아 본 사람은 알지마는 그거 다른 사람 다 그래 압니까.

 이렇게 세상은 욕심이 점점 관영해 가기 때문에 유식해 갈수록 자기 주관  사욕주의가 강해집니다. 이러니까 죄악이 점점 관영해져 나가요. 이것이 뭐이냐.

땅의 사랑인 것입니다.

 종교 창설가들 보면 그자는 최고의 도둑놈이오. 아주 고급 도둑입니다. 고등  도둑이오. 돈 그거 유치하게 돈 가지고 이러니 하지 않고 행복이니 뭐이니 해  가지고 그 사람을 제 사람 딱 만들어 놓으면 제가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 하면  사는데 그 사람이 살림이 다 제 살림이라 이것이 모든 이종교의 종교 창설자들의  강도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는 것은 예수교보다 먼저 온 그런 모든 인간의 주관의 사욕의 나온 것은  다 절도요 강도라 그말이오.

 이러니 말에 대해서, 지식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희생에 대해서, 봉사에  대해서 사랑 없으면 다 생명 없는 것,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 사랑  없으면 아무 유익 없는 걸 가지고 공연히 사람을 꾀우는 것입니다.

 사랑이 뭐이뇨.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하나님이 독생자 보낸 것이 사랑이요,  독생자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으로 나타났으니 이것이 사랑이요, 사랑이  움직여서 나타난 사랑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 가지가 없으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요 죽은 것이요 무익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식을 공부를 장을 이 세 가지를 팔아서 사랑을 팔아서 마귀의  사랑, 인간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바꾸라고 하는 것이 에미 애비 아닙니까.

여러분들 회개해야 돼요. 회개해야 됩니다.

 나도 그 전에 그래 살았소. 나도 그 전에 그렇게 살았어. 살고 보니까 후회가  돼, 살고 보니까 후회가 돼. 그거 있으면 될 줄 알았지. 아, 예수 잘 믿어라.

부디 잘 믿어라 공부보다 예수 잘 믿어야 된다. 말을 하니까 되는 줄 알았는데  나는 그 말 한마디하고 말고 학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되게 쪼아대면서, 이  학과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쪼아대니까 자연히 마음이나 시간이 그리  기울어지다 보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멀어지고 그놈이 왕이 됐더라 그 말이오.

 사죄와 칭의와 이 사랑이 그 속에 있어야 되고, 그 지식 속에도 이것이 있어야  되고, 말속에도 이것이 있어야 되고, 모든 희생 속에도 이것이 있어야 되고 그  속에 모두 다 이것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은 잊어버리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이번에 뭐 000장로가, 장로 불쌍하게 장로 내놔, 그까짓 일로 그러면. 장로라  하는 사람이 1년에 본 교회서 한번 집회 있는 그 집회에 가는 닷새만 휴가  맡으면 되는데, 1년 동안에 닷새 휴가 못 맡는 그런 직장이 어디 있어. 법적으로  허락되어 있어 닷새 휴가라 하는 것은.

 닷새 휴가를 못 맡고 뭐 또 깍쟁이 같이 에누리 해 가지고 이제 월요일날 종일  일 보고 오후에 퇴근해 가지고 좇아 올라가면 그때 예배는 참석할 것이다,  하나님 섬기는 데, 하나님 은혜를 받는 그렇게 약지같이, 그렇게 깍쟁이같이  그렇게 인색하면 하나님은 안 줍니다. 이놈아, 너 네것 가지고 실컨 살아라,  나는 그렇게 천한 것이 아니다. 말씀하실 것이오.

 여름에는 방학이니까 의례 될 것이고, 닷새 동안을 휴가를 못 맡아요. 어떤  직장이 1년 동안에 닷새 휴가, 나는 그때는 휴가를 맡아야 됩니다. 그때 휴가  맡아.

 어떤 사람 보니까 장가를 가는데, 장가 갈 그날도 출근 딱 하고 퇴근시간  나와서 저녁에 장가가고 그 이튿날 출근시간에 딱 출근하고 이러면서 집회 때는  딱 휴가 내니까 사장이 있다가, 지금은 어려운데, 사장님 내가 아무 날 그날  내가 결혼했습니다. 뭐 결혼 해, 그날 결혼했는데 그날 내가 하루도 내가 한  시간도 조퇴도 않고 지각도 않고 꼭 출근했습니다. 이거는 내 결혼보다 내 죽고  사는 것 문제 있는데 내가 여기에는 그만 두면 두되 휴가를 안 내주면  안되겠습니다. 휴가 안 내줘도 가긴 가야 됩니다. 깜짝 놀래 가지고 그렇츰  그런데, 내가 그래도 암만 가도 그때 결혼할 때는 말했으면 내가 그래도 그럴  수가 없는데 그럴 수가 어디 있느냐, 그것은 휴가를 안 맡아도 여기에는 휴가를  안 맡으면 안됩니다. 이 사람이 여기에 있을 것이오. 이렇게 다 예수를  믿습니다. 주의 말씀이면 생명을 내놓고 따라갈려 하는데 무엇이 거리꼈다  그말이오.

 공부도 자기 자식이, 자기가 주권할 수 없을 때는 할 수 없어 그 놈이 커져  가지고 날뛰면 어쩔 수 없어. 아비와 어미 말을 들을 수 있는 때라고 하면  이놈을 보자, 보자 하나님의 지식이 주인이 되어 있나 세상 지식이 주인이 되어  있나, 어느 것이 주인이 되어 있나.

 제가 이 지식을 가지는데 이 지식 속에 하나님의 사랑, 사죄 칭의 새생명이  속에 알맹이 주인이 되어 있느냐 사죄 칭의 새생명을 모르는 그것을 배반하는 이  지식을 가지느냐. 똑똑히 봐서 너는 집회 안 가도 네가 학교 공부하는 전체가  사죄를 위해서 공부하고 칭의를 위해서 공부하고 이 구속을 전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이 구속에게 영광을 돌리고 구속에게 핍박과 조롱을 돌리지 않기  위해서 전부 공부하는 공부니 너는 집회 안 가도 된다, 해야 할 것이오.

 만일 그것이 듣는 말과 지식에 이 사랑이 그 속에 주인공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 그대로 두면 죽일 터이니까 일찍 살리는 것이 낫지. 나중에 크게 죽어  놓으면 다시 살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를 중단하고 집회를  데리고 가야 되지. 그러면 학교 퇴학을 해도 그때부터 살리는 것이 낫지, 죽인  후에는 뒤에 못 살립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여러배 백배로 얻습니다.

 먼저 어떤 학생 떡 가니까, 이 공부하는 걸 지금 하루만 빠져도 안 되는데  닷새나 빠지면 어쩌려고 지금, 무식한 부모는 어쩔 수 없다고, 도무지 무식해  그렇다고. 우리 유식한 어머니 아버지는 그리 않고 너는 알뜰히 공부해라,  알뜰히 공부해라 그렇게 하고 공부하는 데 밥해 주기 위해서 집회 갈 사람들  식모도 집회 가지 마라, 가지 말고 알뜰히 공부하는 데 밥해 줘라. 그런 썩은  짓을 하는 데에,  이러니까 조그만한 학생이 주여, 나는 하나님 말씀을 배우러 가지 않으면  안되겠고 공부 떨어지면 하나님에게 욕 돌아갑니다. 복음이 가리워집니다. 주여  주의 총명을 주시옵소서. 이러고 갖다 오니까 갖다 와서 당장에 100점, 100점,  100점. 1등이라. 그 학년에 1 등이라. 이러니까 공부 알뜰히 한 사람은 가보니까  50점 60점 뭐 많은 것이 70점 야, 너는 집회 안 가도 이러냐, 나는 집회  갖다와서 전부 100점이다, 봐라. 그 조그만한 것 가지고 장로 목사보다 하나님  영광을 더 받습니다. 이것이 신앙이오.

 하나님의 말씀은 죽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말씀대로 할 때에 전능이 역사합니다.

 작년인가 저 작년인가 어떤 집 보니까 이제 이러니 너거도 하나님 말씀을  배워야 되겠다 다 집회 가자, 학교를 전부 뭐 서인가 너인 가 다 결석을 시키고  데리고 가 놓으니까 이거 뭐 야단이고, 안되면 퇴학할 요랑하고 가자, 이랬는데  와 가지고 그것들이 전부 1등이라, 전부 1등. 내가 뭐 그 반에서 1등인지  전교에서 1등인지 그 점수만 1등인지 모르지마는 어쨌든지 1등이라 말을 내가  들었소. 듣고, 전부 1등을 했다고 이러면서 감사를 하면서 아 참 신기하다고

 자, 하나님을 믿는 자는 속삭속삭 해 가지고 축복을 주니까 안밖에 사람 보는  데부터 잘되면 시기 질투할 건데 안 보는 속알맹이부터, 사람부터 잘되고  지능부터 잘되고 그러고 난 뒤에, 안에서 잘되어 껍데기로 나오니까 껍데기  시기하면 탁탁 깨지는데 어쩔 것이라. 이런 사람 있고, 하나님 배반하고 제  뫼대로 해서 보기에는 되는 것 같지마는, 되는 것 같았는데 망하고 성공 같은데  실패하고, 이 실패가 젊을 때 되면 좋지마는 젊을 때 성공 같았는데 늙어서  실패했고, 또 늙어서 살아 있을 때 실패가 됐으면 회개를 해야 될 터인데 죽을  때 그때까지, 그때까지 성공됐다가 죽고 난 다음에 보니까 전부 실패입니다.

이것이 시편 73편에 저주받은 자 아닙니까.

 「사랑은 여기 있으니」 사랑은 세 가지 구속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 구속이 없는 말, 세 가지 구속이 없는 모든 지식, 세 가지 구속이 없는  믿음, 세 가지 구속이 없는 희생, 아버지 어머니는 내 학비를 위해서 전부를  일생을 다 해 가지고 다 바쳐 줬으니 요 지식으로 인해서 내가 주일학교 다닐  때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 희생 가지고 나를 위해서 내가 세상 지식을 넣어  가지고 대학을 졸업맡고 나니까 믿음이 어디로 가고 믿음 다 없애 버렸네, 그게  막바로 원수된 아버지요 고것이 원수인 아비와 어미, 고 아비와 어미가  원수입니다. 원수입니다.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천지는 변해도 이 말은 변치  않습니다. 가감이 없습니다. 성경대로 내가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니라, 모든 것은 없어지지 마는 사랑은 영원히  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 영원무궁토록 주님이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으로 화친한 거, 죄 없는 것만 영원하고 의로운 것만  영원하고 하나님과 한 덩어리 된 것만 영원합니다. 이것만이 영원하요. 이것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 마십시오. 이 보배를 빼앗기지 마십시오. 팔지 마십시오. 땅위에 뭐이  좋습니까. 뭐 좋은 게 있어 이걸 팔아, 팔기를 어리석게 그까짓 게 뭐인데,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 그  아름다움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영원토록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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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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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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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 사랑의 빚/ 로마서 1장 14절/ 1983. 7. 13. 수야 - 중복 선지자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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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 사랑의 빚외에는 지지 말라/ 로마서 13장 8절-10절/ 880717주전 선지자 2015.11.03
» 사랑의 세가지 알맹이/ 요한일서 4장 9절-10절/ 820425주후 선지자 2015.11.03
859 사랑의 역사/ 요한계시록 1장 5절-6절/ 810411토새 선지자 2015.11.03
858 사랑의 완성/ 요한일서 4장 17절-21절/ 820417토새 선지자 2015.11.03
857 사랑의 정의/ 에베소서 1장 3절/ 890504목새 선지자 2015.11.03
856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4절-11절/ 890610토새 선지자 2015.11.03
855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4절-11절/ 890609금야 선지자 2015.11.03
854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6절-11절/ 890605교역자회. 선지자 2015.11.03
853 사랑의 종류/ 요한일서 3장 1절/ 800310월새 선지자 2015.11.03
852 사랑의 표본/ 히브리서 12장 3절-13절/ 810409목새 선지자 2015.11.03
851 사랑의 표준/ 요한일서 4장 17절-21절/ 850821수새 선지자 2015.11.03
850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05목새 선지자 2015.11.03
849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04주전 선지자 2015.11.03
848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6절/ 791104주후 선지자 2015.11.03
847 사랑의 행복/ 요한복음 15장 9절-11절/ 811028수야 선지자 2015.11.03
846 사랑의 힘/ 로마서 8장 34절/ 840311주새 선지자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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